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13 임마누엘 주님이면 충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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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3장

===아브람과 롯이 서로 떠나다 [438 내영혼이은총입어]

  주 임재 영광  덮고 가리는 수건(롯)을 제하시는 하나님..이제 벗겨 내시는 하나님을, 벗고 밝게 된 눈으로 보는 바 <지고지선의 진복 임마누엘 주님 원하시는>주님의 길 <좀 더 명확히>보여주신다..

^^롯의 문제 - 생계(다툼)문제 + 주도권 문제 :: 룻은 이 두 가지 문제 처리에 있어서 실패했다. 그 후 롯은 하락의 길로 간다, 주님 임재로 사는 나오미에게 주도권 넘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여겨 끝까지 순종하였던 룻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롯은  다툼 동기 유발자를 처리하고  주 임재로 사는 아브람과 함께 끝까지 동행했었어야 했다 ::: 애굽 사건을  통해 언약 백성을 전적으로 위하며 모든 필요 채우시는 주님에 대한 교훈 붙들고 <사람이 보기에는 당장 손해로 여길 수 있지만 > 너그러이 반응하며 처리하는 아브람의 믿음을 보라

^^아브라함의 문제..아마도 <그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불편한 기색이나 짜증- 판단-어떤 꾸지람의 모습을 보여 마음에 상처 준 것은 아닐지...끝까지 [친절과 자비 그 자체로 일절 참아주시면서 초월적 지혜 가운데!!] 일하고 계신 주님 앙망함 안에서 주님 일하심따라 행해야 하리라..>이렇게 떠난 <아브라함에 대해 상심하고 질색한 나머지..> 정말 아쉽고도 유감스럽게도!! 롯은 그 후에는 아브라함을 <마치...상종 못할>죽은 자로 여기고 있음에 주의하라..

*네게브 = 애굽시내 너머 히브리(가나안) 남부에 속하는, 브엘세바 서쪽 삼각형의 황무지 사막지대

*요단 = 아르덴(아라드..아래로 흐르다--백년설산인 헬몬산 남부 텔단지역 곧 골란고원에서 발원하여 사해로 흘러 내려가는 늘 새로운 은혜의 생명수 강)

*소돔 =둘러싸인, 고모라 = 깊은 -- 고인 물이 풍부한 습윤지대(요단 계곡길은 벳산에서 시작 에시온게벨 곧 엘랏에서 끝남)

*소알 =작다  사해 남단 소돔 남쪽에 위치  ^^소돔 고모라 소알은 모두 요단 길 = 계곡길에 인접한 모압변경지역에 위치함  소돔 사해 상부 동남단, 고모라는 사해 하부 동남단 소알은 사해 남단 끝에 위치

*족장의 길 = 나사렛  세겜(=어깨...실로 =평강...벨엘= 하나님의 집)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브론(교통 결합 친구) 브엘세바(맹세의 우물)을 잇는 길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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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웨감-레롵 하호레크 엩-아브람 하야 촌-우바카르 웨오하림)

==@웨감-레롵<바브_기멜-멤, 라멛_라멛-바브(상)_테이트> ..(십자가 성령의 거처된 참제자, 그 인격은 십자가 생명-인격이시니 그분이 참지헤시라)..

@하호레크<헤이_헤이-라멛-쿠프>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그대로 신뢰하며 주이름 부르며 읊조리며 그대로 이루실바를  감사함, 그렇게 말씀으로 적셔짐이야말로 그영을 호흡함으로써 붙들어 동행함인것, 전존재가 그 말씀 거처됨이니.)..

@엩-아브람<알렙-타브, 알렙-베이트-레이시-멤> @하야<헤이-요드-헤이> ..("아브람"은 친히 말씀이시요 거처, 주님거처를 확장 건축해 가시는 아버지Q께 그분의 거처로 자신을 열어 내어드린자, 곧 빚어다루심 그대로 껴안고 Q의 속성으로 새창조함 받은자라, 바로 말씀을 호흡하시며 친히 그대로 사역하시는 분의 실제를 그대로 나타내는자라)..

@촌-우바카르<체데-알렙-눈, 바브(중)_베이트-코프-레이시> @웨오하림<바브_알렙-헤이-라멛-요드-멤> ...(친히 자신을 열어 연합한 한몸 이루신 Q을 그대로 살아내며 확장하는자이니, 이는 자신을 먼저 십자가로 열어주신분, 십자가 주님께서 그토록 갈망-교통-고대하시는 바로 그대로 십자가로 나아가 주 이름 부르며 앙망함의 붙좇음 인해 "새창조" 이루고 계심을 알기에, 그대로 Q의 호흡해내신 말씀따라 살아가며 그분의 거처 이루게 하심 그대로 살아감이라)..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웨로-나사 오탐 하아레츠 라쉐베트 야흐다우 키-하야 레쿠솸 랍 웨로 야케루 라쉐베트 야흐다우)

==@웨로-나사<바브_라멛_알렙, 눈-신(좌)-알렙> @오탐<알렙-타브-멤> ...목양하시는 Q의 참제자란 그분 생명 보좌-거처의 확장인바 기름부으심의 육화로서 Q을 살아내는바 그분의 속성 그대로 "새창조함"의 조성말씀-곧 거듭남+빚어다루심 그대로 받아 온전케 됨 껴안는자라)..

@하아레츠<헤이_알렙-레이시-체데> ..(곧 말씀 그대로 호흡하며 주님을 살아가는, 말씀의 절대진리로 적셔져 살아가는바, 그분 뜻의 경영 그대로 따르며, 그분의 동행으로서 상호거힘 이루며 붙어살아가는 반석-바위삼아 의지하고 뿌리내리는바 주님의 거처된 존재요 생명나무 가지라)

@라쉐베트<라멛_쉰(우)_베이트-타브>,,(말씀의 기름부음께서 거하심 온전히 이룸이란, 진정한 회개-회복이니.. [십자가 주님 앙망하며 자신을 열어- 비워-내어-맡겨드림, 곧 주로 주되시게함-자신을 내려놓음이라] 기름부음의 거처, 십자가와 하나됨으로 자아로 삶을 끝내는것이라). 

@야흐다우<요드-헤이트-달렛(점)-바브> ...(친히 사역하시는 주님께서 참생명-인격, 곧 머리되심이시라 결합한 한몸의 하나 이루사  십자가 길 보이시며 생명의 참빛으로 비추시도다)..

@키-하야<카프(점)-요드, 헤이-요드-헤이> ..(십자가로 아나가 주이름 부르라-앙망하며 열어-비워-내어-맡겨드리며, 그분을 머리삼아 붙좇을바-붙어가라, 성령께서 본질-성분을 그분과 똑같게  Q속성/진리 그대로 만드실바 참생명-인격이신 십자가 주님의 이르시는 말씀에 적셔지라, 그분의 빚어다루심 껴안으라..이것이 "카프(점)이니..거기에 머무르며 말씀이신 주님을 호흡해냄이 카프(점)-요드"가 된다.."헤이=호흡해내신 말씀을 절대 믿음으로 껴안고 그 자체를 읊조리며 적셔짐의 하가(헤이-기멜-헤이)로 소화-분해-흡수 함" 되어야 그리 조성되는것이니, 껴안고 붙좇음이 먼저요, 그리할때 주께서 친히 움직여 운행하심을, 붙어 동행-동역 함이 된다...그때 알게되는것은 "영의 참자아 본체는 바로 주님이시요 주께 붙어가는 바는 점에 불과 하지만, 주께서 영화롭게-영광스럽게 하시는바, "얘야, 내가 너를 통로삼아 주님의 일 이루었단다"하고 계심이다..읷이 "하야(헤이-요드-헤이)"이다.)...

@레쿠솸<레이시-카프_바브(중)_쉰(우)-멤> @랍<레이시-베이트> ..오로지 그영(성령)께서 구주 빼어닮은 십자가를 살아가는 존재 조성하심, 그것은 십자가 오직 십자가 주님 붙좇음-자신을 열어-비워-내어-맡겨드림-내려놓음 통해 일어나는바 주님, 원천적 기름부음이신 그분께서 머리 되심 인해 주님 자신을 기름부음으로 아낌없이 내어주사 Q속성/진리 그자체로 변화된 그릇이자 기름부음의 주님으로 채워진 그릇으로서 그 전달 통로 삼으심이니, 오직 주님 주장하심이라, 그분의 거처됨이 그러하다.)

@웨로<바브_라멛-알렙> @야케루<요드-카프-라멛-바브(중)> ..(목양하시는/말씀으로 양육하시는Q,친히 사역하시며 조성해나가시나니, 말씀하심 그대로 받아 먹는자마다 참제자 만드심이라, 이 말씀 이루시는바 십자가 주님을 붙좇으라)..

@라쉐베트<라멛_쉰(우)_베이트-타브>,,(말씀의 기름부음께서 거하심 온전히 이룸이란, 진정한 회개-회복이니.. [십자가 주님 앙망하며 자신을 열어- 비워-내어-맡겨드림, 곧 주로 주되시게함-자신을 내려놓음이라] 기름부음의 거처, 십자가와 하나됨으로 자아로 삶을 끝내는것이라). 

@야흐다우<요드-헤이트-달렛(점)-바브> ...(친히 사역하시는 주님께서 참생명-인격, 곧 머리되심이시라 결합한 한몸의 하나 이루사  십자가 길 보이시며 생명의 참빛으로 비추시도다)..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와예히-리브 베인 로에 미크네-아브람 우베인 로에 미크네-롵 웨하케나아니 웨하프맂지 아즈 요쉡 바아레츠)

===@와예히-리브<바브_요드-헤이-요드, 레이시-요드-베이트> ..또한 친히 행하시는 주께서 온전히 끝까지 말씀 호흡해내신 그대로 이루는바, 십자가 말씀이시니).. 

@베인<베이트(점)-요드-눈> @로에<레이시-아인-요드>  ..("베레시트" 주뜻 그대로 창조주로서 거처 건축-확장하시는 말씀이시라, Q 거처 확장-산출하고 계시나니 분배말씀의 생명가지시라, )..

@미크네-아브람<멤-코프-눈-헤이, 알렙-베이트-레이시-멤> ...(오직 생명 양식인바, 진리 생명 말씀, 그 자체시요, 주님 갈망-교통-고대하심 그대로 껴안아 호흡하며, 창조주 전능 아버지의 집 건축자로서 진리의 그집 원천 되심이라)..

@우베인<바브(중)-베이트-요드-눈> @로에<레이시-아인-요드>   ..( 또한, "베레시트" 주뜻 그대로 창조주로서 거처 건축-확장하시는 말씀이시라, Q 거처 확장-산출하고 계시나니 분배말씀의 생명가지시니, )..

@미크네-롵<멤-코프-눈-헤이, 라멛-바브(상)-테이트> ..( 오직 생명 양식인바, 진리 생명 말씀, 그 자체시니, 공급말씀의 인격은 바로 십자가의 참생명 넘쳐흐름의 지혜시로다)

@웨하케나아니<바브_헤이_카프(점)-눈-아인-눈-요드> ..(붙좇는바 십자가 주님께서 호흡해내심 그대로, 조성하며 세우며 확장하심 그대로 따라 붙어가는 생명가지 그 삶을 살아내라)..

@웨하프맂지<바브_헤이_페이(점)-레이시-자인-요드> ..(호흡해내심 그대로 주님 붙좇을바 주님께 자신을 열어드리며 그영의 빚어 다루심 그대로 껴안고 기꺼이 감수하라)..

@아즈<알렙-자인> @요쉡<요드-쉰(우)-베이트> ..(Q께서 빚어다루시나니, 이는 먼저 십자가로 자신을 열어 참생명-인격의 기름부음이 되심이니 친히 사역하시는 주께서 자신을 열고 기다리시는바, 그대로 믿음 발휘하여 주께 자신을 열어드리는자를 껴안아 주사 친히 상호 거함 이루심이라).

@바아레츠<베이트(점)_알렙-레이시-체데> ..("베레시트" 주뜻 그대로, 친히 아버지의 거처시요 말씀으로서 믿는이의 마음에 거하심으로써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 되게 하심이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와요멜 아브람 엘-롵 알-나 테히 메리바 베니 우베네카 우벤 로아이 우베인 로에카 키-아나쉼 아힘 아나흐누)

==@와요멜<바브-요드(점.상)_알렙-멤-레이시> @아브람<알렙-베이트-레이시-멤> @엘-롵<알렙-타브, 라멛-바브(상)-테이트> ...Q의 진리의 영께서 산출하신바, Q의 거처된 아브람이, Q의 속성/진리-형상의 그 말씀인바, 참생명의 흘러넘치는 흐름인 참지혜이 사람 롯에게 이르되)..

@알-나<알렙-라멛, 눈-알렙> @테히<타브-헤이-요드> ..(Q말씀 그대로 살아내며 확장함으로써 Q을 살아가는바, 그것이 곧 십자가 말씀이신 여호와를 호흡함이라)..

@메리바<멤-레이시-요드_베이트-헤이> @베니<베이트-요드-눈-요드> ...(진리의 영을 그대로 붙좇아 따름이야말로 거함 이룸이니, 말씀을 살아내며 확장하게 하시리라).. 

@우베네카<바브(중)-베이트-요드-눈-요드-쿠프> @우벤<바브(중)-베이트-요드-눈> @로아이<레이시-아인-요드> @우베인<바브(중)-베이트-요드-눈> @로에카<레이시-아인-요드-쿠프> ...(십자가로 나아가 주 이름불러 앙망함으로써 열어-비워-내어-맡겨드리며 내려놓음 통해 주께서 친히 머리로서 거하시며 그분자신의 거처를 확장하며 담겨지심이라, 그리하심으로써 목양을 이루시나니)..

@키-아나쉼<카프(점)-요드, 알렙-눈-쉰(우)-요드-멤> @아힘<알렙-헤이트-요드-멤> @아나흐누<알렙-눈-헤이트-눈-바브> ..(십자가로 나아가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주로 주되시게 해드림으로써 Q생명 확장의 기름부음께서 움직이시며 거하시는 그 거처 되나니, 부활생명의 영, 곧 Q의 거처 되게 하실바 십자가로 나아가라)..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로 콜-하아레츠 레파네카 힢파레드 나 메알라이 임-핫스몰 웨에미나 웨임-하야민 웨아스메이라)

==@하로<헤이_라멛-알렙> @콜-하아레츠<카프-라멛, 헤이_알렙-레이시-체데> @레파네카<라멛_페이-눈-요드-쿠프> @힢파레드<헤이_페이(점)-레이시-달렛> @나<눈-헤이> @메알라이<멤-아인-라멛-요드> @임-핫스몰<알렙-멤, 헤이_신(좌,점)-멤-알렙-라멛> @웨에미나<바브_알렙-요드-멤-눈-헤이> @웨임-하야민<바브_알렙-멤, 헤이-요드(점)-멤-요드-눈> @웨아스메이라<바브_알렙-신(좌)-멤-알렙-요드-라멛-헤이>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와잇사-롵 엩-에나우 와야르 엩-콜-키카르 하야르덴 키 쿨라흐 마쉬케 리페네 솨헤트 아도나이 엩-세돔 웨엩-아모라 케간-예호와 케에레츠 미츠라임 보아카 초알)

==@와잇사-롵<바브_요드(점)_신(좌, 점)-알렙, 라멛-바브(상)-테이트> @엩-에나우<알렙-타브, 아인-요드-눈-요드-바브> @와야르<바브_요드(점)-레이시-알렙> @엩-콜-키카르<알렙-타브, 카프(점)-라멛, 카프(점)-카프(점)-레이시> @하야르덴<헤이_요드(점)-레이시-달렛(점)-눈> @키<카프9점)-요드> @쿨라흐<카프-라멛(점)-헤이(점)> @마쉬케<멤-쉰(우)-코프-헤이> @리페네<라멛-페이-눈-요드> @솨헤트<쉰(우)-헤이트-타브> 예호와<요드-헤이-바브-헤이> @엩-세돔<알렙-타브, 싸멕-달렛-멤> @웨엩-아모라<바브_알렙-타브, 아인-멤-레이시-헤이> @케간-예호와<카프(점)-_기멜-눈, 요드-헤이-바브헤이> @케에레츠<카프(점)_알렙-레이시-체데> @미츠라임<멤-체데-레이시-요드-멤> @보아카<베이트(점)-알렙-캎카프-헤이> @초알<체데-아인-레이시>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와입할-로 롵 엩 콜-키카르 하야르덴 와잇사 롵 미케뎀 와이파레두 이쉬 메알 아히우) 

==@와입할-로<바브_요드(점)-베이트-헤이트-레이시, 라멛-바브(상)> @롵<라멛-바브(상)-테이트> @엩-콜-키카르<알렙-타브, 카프(점)-라멛, 카프(점)-카프(점)-레이시> @하야르덴<헤이_요드(점)-레이시-달렛(점)-눈>  @와잇사<바브_요드(점)-싸멕(점)-아인> @롵<라멛-바브(상)-테이트> @미케뎀<멤_코프(점)-달렛_멤> @와이파레두<바브_요드(점)-페이(점)-레이시-달렛-바브(중)> @이쉬<알렙-요드-쉰(우)> @메알<멤-아인-라멛> @아히우<알렙-헤이트-요드-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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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람이 헤브론으로 옮기다.<주안에있는나에게455>

..믿음으로 산다 함은 [하나님만을!!]절대 신뢰-절대 기쁨-절대긍정함으로 삶이다!!  이제 그리스도 the seed와 그리스도의 몸, 단체적 그리스도인 교회, 교회 생활 안애서 누림 가능한  교회의  머리 그리스도 the land 의 약속을 주신다...  땅 그리스도는 하나님 백성의 안식처이자 대적 멸절 터전이며  하나님 임재의 왕국의 기반인데 이것이 바로 교회생활이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벧엘은 주님 심장부위에 속함.... 북쪽 나사렛 남쪽  예루살렘 헤브론 브엘세바 이제는 좌우방향 지중해 곧 대해 방향과 요단 서안까지 바라보고 마음에 품으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발바닥으로 밟으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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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은 하나님의 간증의 시작이지만, 장막은 하나님의 간증의 완성이다!!]

((세겜 땅 모레에서 제단 쌓음...그러나, 장막 치지는 않음...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목적지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 세겜<강함 주는 어깨>모레<지식 주는 선생], 상수리나무<그늘과 강함 제공>

믿음은 보는 것으로 사는 것과는 정반대임.....믿음으로 산다 함은, [바로 주님 만남 인해 그분 임재를 체험한 자마다 자연스럽게 헌신하는 바, 제단 쌓음을 의미.].이것은,<자기의 어떠함(됨됨이 형편-상황-처지)과 소유한 바 <주도권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종의 위치에서 수종함인데, [주님은 그 누구보다도 기억력이 좋으시기에!!, 바로 그것대로 행하심으로써] 주님은 주 임재 안의 참된 친밀함과 달콤함으로 이끄신다..!! 

....((벧엘<하나님의 집>과 아이<폐허더미>사이에서 제단 쌓고 장막을 치고 교통-경배-헌신함)).... 하나님의 집 벧엘, 여기에 장막을 치게 하셨던 바,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하나님을 표현하는 간증을 시작하게 하신다.. 

....그 후, 아브라함은 <교통,우정, 친교, 결합>을 의미하는 헤브론의, 마므레<=강함> 상수리나무 수풀로 그의 장막을 옮겼다...곧 주와 교통하는, 지속적인  영적 상호 교통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있게 되었다. 창18장에서 하나님은 직접 아브라함의 장막에 머물기 위해 오셨고, 드려진 제물을 잡수신다.((믿는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참된 의미에서 본다면, 그 이후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늘 장막 옆에 제단이 짝을 이루어 항상 뒤따랐다.>...이것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바벨론과의 극명한 차이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막을 가진 이들마다 참되게 느끼는 바는, 이 세상을 사는 우리 안에는 이 땅에는 그 어떤 것도 영속되는 것이 없음, 곧 (성취를 포함한)모든 것이 다 일시적이요 임시적인 것이요 무의미한 것을 깨닫게 됨이요, 하여 <약속하신 바>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앙망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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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 (개요)

본 장에서도 아브람에 관한 기사가 계속된다.

1. 약속의 땅에서의 아브람의 형편과 행실에 관한 일. 그 땅은 이제 그의 순례지가 되었다.

   (1) 그의 이동(1, 3, 4, 18).

   (2) 그의 부귀(2).

   (3) 그의 헌신(4, 18).

2. 아브람과 롯 사이에 있었던 다툼에 관한 구체적인 기사.

   (1) 그 불화의 불행한 근거(5, 6).

   (2) 그 불화의 격화 및 거기에 관련된 무리들(7).

3. 아브람의 사려 깊은 중재로 인해 그 다툼은 해결된다(8-9).

4. 롯은 아브람을 떠나 소돔 평지로 간다(10-13).

5.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확인하신다(14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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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창 13:1-4)

Ⅰ. 아브람이 애굽에서 돌아왔다(1절). 

그는 자신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때로 유혹의 자리에 돌아가는 수가 있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거기서 빠져 나오도록 해야 한다(룻 1:6).

Ⅱ. 아브람의 재산. “그는 매우 풍부하였다”(2절). 

(히브리어로는) 매우 “무거웠다”는 뜻이다. 즉, 부귀라고 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 된다. 부요하게 되는 자는 “볼모 잡은 것으로 무거운 짐진 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합 2:6). 

[일반적으로 볼 때]부유한 자에게는 그것을 모으는 “염려”라는 짐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두려움”이라는 짐이 있으며, 그것을 쓰는 데는 “유혹”이라는 짐이 있으며, 남용에서 오는 “죄책”의 짐이 있으며, 그것을 잃으면 “슬픔”이란 짐이 있게 되며, 마침내는 이와 관련하여 남의 손에 넘겨야 할 “계산”의 짐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이 소유한다고 하는 일은 사람을 무겁고 부자유하게 만들 뿐이다. 

[주 앙망하며 주 바라기 삶 사는] 아브람에게는 믿음과 선행, 그리고 약속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육축과 은금도 풍부했다.”

1. 하나님께서는 그 섭리를 통해 때때로 선한 사람들에게 부족함을 참고 견디는 방법은 물론이요, 그들을 부요케 하여 풍부에 처하는 방법도 (친히!!)가르쳐 주신다.

2. 선한 사람들의 부유는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복을 내리리라” 했으니, 그 행복은 그를 아무 근심 없고 풍부하게 했던 것이다(잠 10:22).

3. 참된 경건은 큰 풍요와 조화될 수 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지극히 어렵기는 하나 불가능하지는 않다(막 10:23, 24). 아브람은 지극히 부유했으나 신앙심이 깊었다. 

더욱이 경건이 외적인 번창에 대한 벗이 되는 것처럼(딤전 4:8), 외적인 번창도 잘 관리만 된다면 경건을 단장하는 장신구가 되며, 보다 큰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Ⅲ. 아브람이 벧엘로 이동했다(3, 4절). 

그가 거기에 간 것은, 그 곳이 전에 그가 장막을 쳤던 곳이요 옛 친지들에게 가고자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록 그 제단은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아마 거기에서 우상을 숭배하거나 가나안 사람들이 더럽히지 못하도록 떠날 때 그가 없애버렸을 것이다) 전에 “단을 쌓은 곳”에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전에 그 곳에서 가졌던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에 대한 기억을 되찾기 위함이었든지, 그가 애굽 여행을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 맹세했던 제물을 드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훨씬 후일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 같은 사명을 주시고 바로 그 동일한 곳으로 보내셨다. 곧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 하셨다(35:1). 우리는 우리의 엄숙한 맹세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온갖 기회를 타서 그 맹세를 지켜야겠다. 아마 그들이 맹세를 했던 그 곳이 그들의 기억을 새로이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우리의 선함이 될 것이다.

Ⅳ. 그 곳에서의 그의 헌신. 그의 제단이 없어져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으나, 전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12:8).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1.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들이다. 기도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호흡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는 편이 빠를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자는, 끊임없이 신앙의 봉사를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 중의 많은 사람들은 신앙을 잊어버리지만 아브람은 애굽에서도 자기의 믿음은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3. 우리가 바라는 바를 행할 수가 없을 때, 헌신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해야 함을 유의하자. 제단이 없을 때도 기도하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겠으며,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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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과 아브람의 이별(창 13:5-9)

아브람과 롯이 불행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는 떨어질 수 없는 벗이었으나(5절과 12:4 참조) 이제는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Ⅰ. 분규의 이유는 저들의 부유함이었다. 

아브람이 얼마나 부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읽었다(2절). “아브람의 일행이었던 롯도 역시 부유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브람과 동행했기 때문에 그에게도 풍성한 것으로 축복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명심해 둘 것이 몇 가지 있다.

1. 선한 자의 벗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와 동행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슥 8:23).

2. 순종하는 일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협동하는 자는 그 기쁨과 즐거움도 함께 나누게 된다(사 66:10). 

이제 그들은 서로가 매우 부유했기 때문에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치 못하였으니” 서로가 즐겁고 화평스럽게 동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부유함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을 당한다.

(1) 상호간의 간격. 

그 땅은 그들에게 너무 협소하여 자기들의 재산을 저장할 여지가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서로 흩어져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의 온갖 낙에는 거기에 수반되는 십자가가 있음을 명심하자. 

사업은 하나의 낙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편함도 있는 법이다. 곧 그 같은 열락의 사회는 흔히 우리가 바라는 바와 같이 그처럼 오래 사랑할 것은 못 된다.

(2) 상호간의 알력. 

부귀가 흔히 친족이나 이웃들과의 분쟁과 논쟁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것이 바로 “부유하려고 하는 자들이 빠지게 되는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의 하나인 것이다(딤전 6:9). 

부유함은 논쟁할 문제를 야기하고, 흔히 싸움을 유발하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교만하고 탐욕스럽게 함으로써 분쟁의 정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내 것과 네 것”은 이 세상에 싸움을 일으키는 화근이 된다. 가난과 괴로움, 그리고 곤궁과 방황 등은 아브람과 롯 사이를 분리시키지 못했으나, 부유함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친구들이란 곧 잃어버리게 되나, 행운의 극치와 불행의 심연에서도 우리가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랑을 지닌 친구는 하나님이시다.

Ⅱ. 분쟁은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서 비롯되었다(7절). 

그들은 보다 나은 목장이나 물을 차지하려고 싸웠고 자기 주인들을 그 싸움에 관여하게 만들었다. 

악한 종들은 흔히 거만과 정욕과 거짓말, 중상, 그리고 고자질로 그 가족들에게 많은 해를 줌을 유의하자. 

종들이 친척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악한 일을 행하고 불화의 씨를 뿌리는 것은 지극히 사악한 일이며, 그런 것을 일삼는 자는 마귀의 하수인이며, 또 그들의 주인들에게는 가장 악한 적이 된다.

Ⅲ. 분쟁이 격화된 것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다음과 같이 진전되었다.

1. 매우 큰 위험이 되었다. 

만일 아브람과 롯이 그들의 가축 떼를 함께 사육하기로 합의하지 못했을 때, 그들의 공통의 적이 습격하여 그들을 함께 약탈하지 않는다면 다행한 일일 것이다. 

흔히 가정과 교회의 분열은 그들의 멸망을 재촉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큰 수치거리가 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모든 이웃들의 눈은 그들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니, 이는 특히 그들의 신앙이 같았고 그들이 특별히 정결한 생활을 맹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그 싸움을 즉시 알게 되며, 싸움이 계속되면 그들의 치욕이 되었을 것이다. 

신앙 고백자들의 싸움은 그 맹세에 대한 치욕이며,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적대자들이 그를 모독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됨을 유의하자.

Ⅳ. 이 다툼이 끝났다는 것은 큰 다행이었다. 

평화를 지켜 파괴되지 아니하게 하는 일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진정 이견이 발생했다면, 그 차선책은 급히 그것을 조정하여 이미 발생한 불을 끄는 일이다. 

이런 분쟁을 막고자 하는 동기는, 비록 아브람이 친척 관계로는 손위요 연장자였다고 해도, 그에 의해서 제안된 것이다(8절).

1. 평화를 바라는 아브람의 탄원은 지극히 사랑에 넘쳤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서로 다투게 말자”고 했다. 아브람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

(1) 감정을 억제하고, 노여움을 거두고, 부드럽게 답변하는 태도를 알고 있는 침착한 마음의 소유자.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는 결코 조롱을 조롱으로 갚으려 해서는 안 된다.

(2)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 자기 손아랫사람에게까지도 화평을 간청했으며, 먼저 화해를 제의한 사람이다. 

지배자들은 권력으로써 평화를 이룸을 자기들의 영광으로 헤아리고 있으나, 온유한 지혜로 평화를 이루는 것은 그에 못지않은 일이니,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스스로 평화를 좋아하는 온유한 백성임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남들은 무엇을 원하든지 우리는 평화를 위해야 마땅하다.

2. 화평을 찾는 그의 청원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1) “너와 나 사이에 다툼이 없게 하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된다고 해도, 보다 선한 것을 알고 있으며 보다 좋은 나라를 사모하고 있는 너와 나는 다투지 말자.” 

누구보다도 신앙을 고백한 자들은 논쟁을 피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눅 22:26), “우리에게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고전 11:16). “너와 나 사이에 다툼이 없게 하자. 그토록 오래 함께 살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느냐?” 여기서 유념할 것은, 어느 때라도 새로운 싸움이 일어날 수 있으나, 그런 싸움은 오랜 우정을 기억함으로써 속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 “우리는 한 골육이라.” 

히브리어로는 “우리는 한 형제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주장을 볼 수 있다.

①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니 화평하게 지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니 이성으로 다스려야 한다. 

우리는 금수가 아닌 인간이며, 어린이가 아니라 장성한 사람이다. 또한 우리는 사교적인 피조물이니 최선을 다해 서로 화친해야 된다는 것이다.

② 우리는 한 형제다. 

동일한 본성과 동일 혈연과 가문, 그리고 동일한 신앙, 또 하는 일에 있어서도 한 동료요, 참는 일에 있어서도 한 동료라는 것이다. 

우리 상호간의 관계를 한 형제로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정욕을 완화할 수 있으며, 우리의 분쟁을 저지하거나 중지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형제는 형제답게 사랑해야 한다.

3. 평화를 위한 그의 제안은 정당했다. 

화평을 맹세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것을 지향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람은 여기서 자신이 평화를 위한 진정한 친구임을 보여 주고,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치를 제안했다. 

곧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는 것이다(9절). 이것은 “우리 둘 서로에게 흡족한 땅이 있는데 어찌 우리가 땅 때문에 다투어야 하겠는가?”라는 말이다.

(1) 그는 자기들이 당연히 헤어져야 하며, 또 친구지간으로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나를 떠나라.” 이보다 더 다정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브람은 그를 내쫓지도 않았으며, 떠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 떠나라고 조언했을 뿐이다. 또한 떠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물러가 달라고 겸손히 빌었을 뿐이다. 

명심할 것은 명령권이 있는 자라도 때로는 사랑과 화평을 위해, 바울이 빌레몬에게 간청했듯이 간청해야 한다(몬 1:8, 9). 

크신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낮추고 간구하시는데, 인간이 “화목을 위해” 서로 간청하는 것은 당연하다(고후 5:20).

(2) 아브람은 자기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의 충분한 몫을 롯에게 주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람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그에게 약속한 바는 있지만(12:7), 그 약속이 롯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적으로 롯을 제외하고 아브람이 홀로 그 땅을 고집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롯과 제휴했고 자기와 동등한 권리가 없는 그에게 동등한 몫을 제공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의 논쟁을 조장하는 것으로 삼지 않으려 했을 뿐 아니라, 그런 약속을 핑계로 자기 혈족에게 어려움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3) 아브람이 롯에게 선취권을 주고, 자기는 남는 것을 취하겠다고 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브람이 먼저 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자기의 권리를 양보했다. 

화평을 위한 양보는 숭고한 승리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과 정욕을 정복하는 것임을 명심하자(마 5:39, 40). 

많은 경우, 평화를 위한 희생은 영예의 결실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유익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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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으로 이주한 롯(창 13:10-13)

롯이 아브람을 떠날 때, 그가 무엇을 선택했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그는 아브람을 떠나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임을, 마지못해서라도 표현했어야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는 자기의 선택권을 다시 아브람에게 양보할 정도로 예의바른 사람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숙부에 대한 그의 복종심이나 존경의 예를 찾을 수 없다.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제의했을 때, 그는 아무 감사의 표시도 없이 그것을 수락했다. 정욕과 이기심이 사람을 버릇없게 만든다.

Ⅰ. 그는 그 땅의 비옥함에만 치중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 그 곳은 소돔이 있던 평야였다. 감탄하리만큼 “온 땅에 물이 넉넉해서(아마 분쟁의 초점도 물이었고 이 때문에 그는 특히 이 같은 유리한 사정을 좋아했을 것이다)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였다”(10, 11절). 에덴 동산과 같은 그 계곡은   그에게 지극히 즐거운 전망을 가져다 주었다. 

그가 보는 대로는, 그 곳의 조건이 매우 좋았다. 지상의 모든 기쁨이 거기에 있어 보였다. 

그는 자기가 그같이 비옥한 땅에 살면 분명히 번창해 매우 부유하게 될 것이며, 안락하게 정착하게 되리라는 것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그가 본 전부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왜 그랬을까? 그에 관해 듣는 그 다음 소식은, 거기서 곤욕을 당하고 자신과 재물이 모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롯이 소돔 사람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그들과의 교제로 의로운 영혼이 번민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불을 그 도성에 퍼붓고 부귀와 쾌락을 택했던 롯으로 하여금 안전하게 산으로 도망하도록 강권하시기까지는, 결코 단 하루도 즐거운 날을 가지지 못했다. 

육욕적인 선택은 죄의 선택이며, 좀처럼 번성하는 일이 없음을 명심하자. 

이해관계나 직업, 거주지, 또는 안정을 택하는 일에 있어서 육신이나 눈의 욕망, 또는 이생의 교만에 따라 이끌리면서, 영혼과 신앙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축복을 기대할 수도 없다. 

흔히 그들이 목적으로 삼고 있던 모든 것에서까지 실망할 뿐이며, 또 자기들에게 만족을 약속했던 그것을 놓칠 뿐이다.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다음 원칙을 따르자. 곧 영혼에 가장 좋은 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최선의 것이라는 것이다.

Ⅱ. 롯은 그 거민들의 사악함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소돔 사람은 악했다”(13절).

1.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소돔 사람들은 일급 죄인들이었다. 곧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 이는 몰염치하고도 뻔뻔한 죄인들이었다는 뜻이다. 격언에도 그들은 그렇게 불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자들을 지칭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다”(사 3:9)는 것이다.

2. 어떤 죄인들은 좋은 땅에 산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욱 악해진다. 

소돔 사람들이 바로 그와 같았다. 교만과 식량의 풍족, 그리고 태평함이 소돔 사람들의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악행은 그들의 땅이 생산해 낸 지극히 큰 풍요로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겔 16:49). 그러므로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잠 1:32).

3.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큰 죄인들에게 지극히 큰 풍요를 주신다. 

신실한 아브람과 그의 경건한 가족들은 초목도 없는 황폐한 산 위에서 장막을 치고 거할 때, 한편에서는 추악한 소돔 사람들이 도성의 비옥한 들에 거주했던 것이다.

4. 악이 그 절정에 이르면 멸망이 멀지 않음을 기억해 두자. 

죄악이 만연됨은 다가오고 있는 심판의 전조임이 분명하다. 소돔 사람과 더불어 살려고 롯이 그리로 다가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소돔인들에 대한 놀라운 자비는 다분히 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끄시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롯은 그들에 대한 예언자이자 의의 전도자였으므로, 그들이 만일 롯에게 귀를 기울였다면 개심할 수도 있었고 멸망을 막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사자를 보내기 전에 전도자를 보내신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2) 롯에게는 크나큰 고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사악함을 보고 슬퍼할 뿐만 아니라(벧후 2:7, 8), 그들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았다. 

이는 롯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섹에 유하며”(시 120:5) 사악한 이웃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때때로 선한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운명이 된다. 

또한 이 롯과 같이 지각없는 선택으로 그런 운명을 자초했다면, 그것은 더 큰 슬픔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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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약속을 확인하심(창 13:14-18)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 후손들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브람을 찾으셨다.

Ⅰ.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새롭게 하시고 그것을 시인하신 시기.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라고 했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1. 즉 분쟁이 끝난 후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정신이 고요하게 안정되어 어떤 정욕에도 동요되지 아니하는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2.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 아브람이 롯에게 자기를 부정한 겸양을 보인 후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총의 표를 가지고 그에게 오신 것이 바로 그 후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웃간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적인 평화를 풍성히 보충해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아브람이 쾌히 자기의 권리의 절반을 롯에게 주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권리의 전체를 재확인해 주셨다.

3. 그가 자기 혈족과의 평안한 유대를 잃어버린 후였다. 

롯과의 이별로 아브람의 힘이 약화되고 비탄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기쁘고 위안이 되는 말씀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언제나 우리 벗들과의 교제 속에 부족함이 있을 때 그것을 채워 주시며, 친척들이 우리를 떠날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심을 유의하자.

4. 롯이 자기 마음에 드는 비옥한 계곡을 택하고 나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떠난 후였다. 

아브람이 그를 부러워하거나 롯에게 선택권을 준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셨다. 

그리고 그가 소유했던 것은 “영원히 그와 그의 자손의” 유업이라는 것을 보증하셨다. 따라서 롯이 비록 보다 나은 땅을 소유했겠지만, 아브람은 보다 나은 칭호를 얻었다.

말하자면, 롯은 낙원을 가졌고 아브람은 약속을 가졌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떠하든 간에 아브람이 사실상 보다 좋은 편을 소유했다는 점이다(욥 22:20 참조).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 후에 교회가 바울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과 같이(행 15:39, 40), 아브람과 롯이 분쟁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소유하게 되었다.

Ⅱ.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로하고 부유하게 해주신 약속 그 자체. 하나님은 두 가지, 즉 좋은 땅과 그것을 향유할 많은 자손을 보증하셨다.

1. 좋은 땅, 곧 모든 땅 중에서도 가장 이름난 땅을 허락하는 기사가 있다. 이는 곧 그것이 거룩한 땅, 임마누엘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며, 또 다음과 같은 땅이기 때문이다.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12:1), 그 땅을 아브람에게 보이시고, 후에는 비스가의 꼭대기에서 모세에게 보여 주셨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다”(10절). 롯은 그가 본 땅을 차지하러 떠나갔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르시기를 “자, 이제 와서 네 눈을 들어 네 자신이 차지할 것을 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것이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보다 헤아릴 수 없이 좋은 것이며, 또 보다 바람직한 것임을 유의하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망은, 감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더욱 부요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저 세상에 있는 하늘의 가나안 땅이 예정되어 있는 자들은 때때로 믿음을 가지고 현재 상황 속에서도 그 가나안에 대한 즐거운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고후 4:18).

(2) 하나님은 이 땅을 영원히 그와 그의 자손들의 것이라고 보증하신다(15절). 

즉 “보이는 땅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 또다시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7절)고 하셨다. 모든 약속의 반복은 그 약속에 대한 비준이다. 

“너와 네 자손에게”이지 롯과 그 자손에게가 아니니, 그들은 이 땅을 상속받게 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는 롯이 먼저 아브람을 떠나도록 명하셔서, 그 은사가 아브람과 그 자손의 것이라고 승인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한 것으로부터 선을 이루시며, 인간의 죄악과 어리석음을 그 현명하고도 거룩하신 뜻에 도움이 되게 하신다. 

“너와 네 자손에게”, 즉 낯선 자로서 그 안에서 체류하게 되는 너와, 소유인으로서 그 안에 살고 다스리게 될 네 자손에게인 것이다.

 “네게”라는 것은 곧 “네 자손에게”라는 뜻이다. 영원히 그와 그 자손에게 허락하신 것은,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하늘 가나안의 상징이다(히 11:14).

(3) 비록 장차 향유하리라는 권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허락하여 점유권을 그에게 주신다. 

“너는 일어나서 그 땅을 행하여 보라(17절). 들어가서 점유하고 그 땅을 휘둘러보라. 그리하면 원거리에서 조망하는 것보다 훨씬 낫게 보일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의 불변성과 언약이 주는 축복의 무한한 가치를 그 약속의 후사들에게 기꺼이 보다 충분하게 보여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유의하자.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라”(시 48:12).

2.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16절). 

곧 이같이 좋은 땅에 편만하게 하여, 상속자가 모자라 땅을 잃는 일이 없도록 수많은 자손을 주리라는 약속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그들이 말할 수 없으리만큼 늘어나고, 아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많아지게 하리라”는 뜻이다. 

솔로몬의 시대에 가서 그렇게 되었으니(왕상 4:20), 곧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졌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아브람에게 미리 주신 것이다. 상속할 재산을 주시는 그 하나님께서 그것을 상속할 후사도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거룩한 땅을 마련하신 이가 또한 거룩한 씨를 마련하신다. 영광을 주시는 이께서 그 영광에 합당한 은혜를 주신다.

Ⅲ.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아브람에게 그 약속을 확인해 주실 때, 아브람은 무엇을 행했는가(18절).

1. 그는 “장막을 옮겼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땅을 행하여 보라”고 명하셨으니, 이것은 “그 안에 붙어 안주할 생각은 버리라. 걷고 밟는 땅은 일시적 거류지요, 영구한 도성인 정착지가 아님을 항상 생각하라. 보다 더 좋은 가나안<영적 의미로 볼 때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늘 최선-지고지선-최상의 유익한 생명 열매 맺고 풍성히 생명씨앗 산출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의 통로로서] 순답하며 통과하여 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장막을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순례자적 상황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동이다.

2.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신 방문에 감사하는 표로써 그는 거기서 “단을 쌓았다.” 

은혜로운 약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실 때,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찬양하는 마음으로 그를 섬기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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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당시 가나안 입성에 선택 가능했던 교통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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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광야길> 고센-->시내산-->에시온게벨(엘랏)

<홍해 길>호르산(자발 마두라)-->엘랏(에시온게벨 인근)

<광야길, 사막길>에시온게벨/엘랏 근처--[사막길, 세렛시내 건너서는 광야길로 불림]--자하스--느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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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대로(좌우)>가데스바네아-->보스라

<왕의 대로(상하) =에시온 게벨~다마스커스> 에시온게벨 --세일산지(페트라, 자발 하룬 인근)--보스라((왕의 대로 상하-좌우 교점 지역))--세렛시내 건너서 느보산-아벨싯딤으로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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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의 길 = 지중해 해변 길 > 고센-->불레셋 가사--하솔(가버나움, 갈릴리)--다메섹 땅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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