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제13장 [586어느민족누구게나]
[개역개정/표준새번역/우리말성경]... [잠4:23..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네 마음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AMP]잠4:23 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NASB]잠 4:23 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 //[NRSV]잠 4:23 Keep your heart with all vigila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 //[NKJV]잠 4:23 Keep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out of it spring the issues of life. //[NIV]잠 4: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이 말씀은 독재자나 악한 정권의 자주 오용하는 바 [Q 마음에 합당한 통치를 버리고 오용-남용-악용하며 (Q의 마음을 따라 주님이 그때 그 때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 진리로 권면하며 참된 공도를 밝히며 기도하는 교회에게 부당한 불이익 및 악한 공박과 박해로 공공연히 위협하며 입 다물도록 하기 위해!!) 정권 연장 빌미와 방패로 삼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길-진리-생명-빛 Q은 (그분과 하나 된 그의 백성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들으시는 대로) Q의 때에 (상대적 선함, 권선징악, 공익과 질서 유지를 위해 지금은 참아주고 계시나, 주님이 정하신 때에 갑자기 세상 정권의 악함에 대해 친히 갚으시며 당신 뜻 이루시겠다 하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주님 향한 믿는이의 마음이니!! 분명한 것은 Q을 버리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가로채려 함에 대해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죽기를 각오함으로 기도하라, 오직 주께서 있게 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끝까지 머물러 기도함으로 성령의 불 밝히도록 하라..동시에 기회를 열어주실 때에는 Q의 마음을 성령의 입에 넣어주사 말하게 하심을 따라 분명히 밝힘으로써 소금과 빛 됨이 중요하다!!....[Q나라 임한. 거듭난 믿는이인] 그대가 먼저, 그리고 믿는 두 세 사람이 모인 교회와 가정이, 지역교회가, 한국 교회, 땅끝까지 우주적 교회에 이르기까지 먼저 주 바라기와 동행함으로 변화되는 그 때, 나라 전체의 구원이 올 것을 믿고 나아가라!!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사 위임하신 권위이기에 순복하며, 임금-관장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강조하는 사도 바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참 회개함으로써 보혈로 씻긴!!, 그리스도의 심장, 곧 청결한 마음으로 반드시 세밀히 점검하고 돌아봐야 할 것이 있으니!! = 생명 위하시는 Q 마음을 거역하고 떠나서, 오히려 그 귀결이 생명 말살-사회와 나라의 지속적 안녕 유지 위한 공공질서와 공중도덕, 청결한 양심따라 살 권리를 잔멸코자 하며 일부 기득권층의 탐욕과 사익만을 위하는 편향된 악법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Q 나라-백성을 황폐케 하려는 사탄적 궤계에 동조하거나 대규모 인종청소/대량학살을 모색하거나, Q의 뜻따라 살아가는 거듭난 믿는이들을 멸절함으로써!!, 위임하여 세우신 Q의 뜻에 거역하고, 축복 명령인 피조세계 돌봄의, 생육-번성-정복-다스림 집행할 대리왕의 위치를 벗어나는 권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세우는 것임을, 주 앞에서 반드시 여쭈어 확인하여 보고 각자의 마음마다 확증하여 주와 함께 끝까지!! 한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구원의 때가 가까워졌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롬13:2를 기억하라...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권세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 각자에게 해당되는 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위에 있는 세상 권세에 대한 믿는 이의 태도와 반응에도 먼저 살펴야 할 선결 요건이 있다.... 먼저, 믿는 내가 [회개한 청결한 양심으로] 믿음소망사랑인내로 주 앙망하며 동행함 확인이 선결요건의 첫째이다.. ...둘째, 주안에서 부으시는 사랑희락화평가운데 머물러, 일절 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를 날마다 연습하기를 게을리 말라. ...세째, Q임재의식으로 깨어 회개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바로 그렇게 [언행심사 모든 영역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보혈로 씻긴] 양심따라 그리스도의 중보와 중재기도에 동참하기를 게을리 말라...((이것이 주 다스리심처럼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 이루는 섬김이다!!))... ...이제, 성령따라 이끄심대로 힘써 선을 행하며, 주께서 주시는 기회를 잘 사용하여, 권세자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거든 바로 그 때 성령이 주시는 복음을 전하고 각성하도록 말하라 @@@ ---------- ***그 어떤 것도 두려워 말고 오직 사랑희락화평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담대하고 용감하게 그리스도의 선을 적즉적으로 행하라, 사랑과 선행을 실행함으로 당하는 [억울한] 모든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케 하심으로 여겨 기뻐하며 감수하라*** --------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바르게 말하되, 치우치지 않고 (육을 따라 무언가 첨삭하여 말하지 말고 짐짓 추정하여 남을 비난함으로써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하지 말라, 다만 사실에 바탕을 두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 그 귀결을 말하되, 성령따라 오직 진실을 참되게 말하라) 마땅히 할 말을 한 후에 듣지 않는다면 한 두번 더 말한 후 멈추되, 오직 포기하지 말고 중보기도로 전환하라@ ==맹세하지 말라== [마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약5:12]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표준새번역>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 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의견을 말함에 잇어서 결코 (함부로, 보증하는, 지키지도 못할)맹세의 말을 덧붙이지 말라!! == 네 자신의 말을 보증하려 들지 말라, 또한 남의 보증을 서지도 말라!!.... 이런 경우, 자기의 말에 스스로 묶여서 선행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 표준새번역]제13장 그리스도인과 세상 권세 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주님의 승인과 통제범위내에서 정해주신 시간과 공간적 범위안에서만 위임/지명된 바..권선징악의 다스림을 통해 모든 이들의 유익=공익을 위하는 권세임...공익실현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권세자나 개인 공히 주님 보시기에 깨끗한/선한 양심으로 사랑을 따라 행함))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세자라도 각자 결국 주님의 심판대앞에 단독자로 서게 됨 잊지말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헤롯왕 치하에서 사셨던 JC를 때때로 떠 올려 묵상해 보라!! [악한 권세자의 유익함이란 믿는 이의 속사람의 생명 성숙의 온전함 이루기 위해 회개로 이끈다!!] 부당한 대우와 공적 박해가 공공연히 묵인되고 자행되더라도 주를 보라.. 이것까지 참을 수 있겠느냐고 격려위로하시는 주님을 깊이 생각하라!! 비록 권세자가 실제로 공익을 무시하며 사리탐욕에 가득 차 있어서 실지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포악한 압제자라 판단되더라도 직접 원수를 갚지말라!!, 짐짓 추측함으로써 육을 따라 악하게 대적하여 비판하고 저주하거나 반대당을 지어 체제전복을 꾀하려 하지 말라,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주님과 연합한 바 마음중심으로 주께만 사정을 올려드리고 중보하고 용서를 선포하라, 선한 양심으로 선대하고 축복하라, 혹시 진정으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거든 입에 넣어주신 주님의 말씀을 말하라)) 3. 치안관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4. 통치자는 여러분 각자에게 유익을 주려고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각자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5. 그러므로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라도 복종해야 합니다. 6. 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또한 조세를 바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을 하는 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9.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2)"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 NASB]제13장 1. Let every person be in subjection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 which exist are established by God. 2. Therefore he who resists authority has opposed the ordinance of God; and they who have opposed will receive condemnation upon themselves. 3. For rulers are not a cause of fear for good behavior, but for evil. Do you want to have no fear of authority? Do what is good, and you will have praise from the same; 4. for it is a minister of God to you for good. But if you do what is evil, be afraid; for it does not bear the sword for nothing; for it is a minister of God, an avenger who brings wrath upon the one who practices evil. 5. Wherefore it is necessary to be in subjection, not only because of wrath, but also for conscience' sake. 6. For because of this you also pay taxes, for [rulers] are servants of God, devoting themselves to this very thing. 7. Render to all what is due them: tax to whom tax [is due;] custom to whom custom; fear to whom fear; honor to whom honor. 8. Owe nothing to anyone except to love one another; for he who loves his neighbor has fulfilled [the] law. 9. For thi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if there is any other commandment, it is summed up in this saying,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10. 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love therefor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11. And this [do,] knowing the time, that it is already the hour for you to awaken from sleep; for now salvation is nearer to us than when we believed. 12. The night is almost gone, and the day is at hand. Let us therefore lay aside the deed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13. Let us behave properly as in the day, not in carousing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promiscuity and sensuality, not in strife and jealousy. 14. But put on the Lord Jesus Christ, and make no provision for the flesh in regard to [its] lusts. ----------- Amplified Bible Be Subject to Government 13 1 Let every person be subject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granted by His permission and sanction], and those which exist have been put in place by God. 2 Therefore whoever [a]resists [governmental] authority resists the ordinance of God. And those who have resisted it will bring judgment (civil penalty) on themselves. 3 For [civil] authorities are not a source of fear for [people of] good behavior, but for [those who do] evil. Do you want to be unafraid of authority? Do what is good and you will receive approval and commendation. 4 For he is God’s servant to you for good. But if you do wrong, [you should] be afraid; for he does not carry the [executioner’s] sword for nothing. He is God’s servant, an avenger who brings punishment on the wrongdoer. 5 Therefore one must be subject [to civil authorities], not only to escape the punishment [that comes with wrongdoing], but also as a matter of principle [knowing what is right before God]. 6 For this same reason you pay taxes, for civil authorities are God’s servants, devoting themselves to governance. 7 Pay to all what is due: tax to whom tax is due, customs to whom customs, respect to whom respect, honor to whom honor. 8 [b]Owe nothing to anyone except to [c]love and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for he who [unselfishly] loves his neighbor has fulfilled the [essence of the] law [relating to one’s fellowman]. 9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any other commandment are summed up in this statemen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10 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it never hurts anyone]. Therefore [unselfish]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11 Do this, knowing that this is a critical time. It is already the hour for you to awaken from your sleep [of spiritual complacency]; for our salvation is nearer to us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in Christ]. 12 The night [this present evil age] is almost gone and the day [of Christ’s return] is almost here. So let us fling away the works of darkness and put on the [full] armor of light. 13 Let us conduct ourselves properly and honorably as in the [light of] day, not in carousing and drunkenness, not in sexual promiscuity and irresponsibility, not in quarreling and jealousy. 14 But clothe yourselves with the Lord Jesus Christ, and make no provision for [nor even think about gratifying] the flesh in regard to its improper desires. Footnotes Romans 13:2 An exception to this is recorded in Acts 5:27-29. See especially v 29. Romans 13:8 Debt is generally to be avoided, but Paul probably is addressing debt to individuals with whom one has a personal relationship. Romans 13:8 The key to understanding this and other statements about love is to know that this love (the Greek word agape) is not so much a matter of emotion as it is of doing things for the benefit of another person, that is, having an unselfish concern for another and a willingness to seek the best for other believers. ===롬13개요==== Ⅰ. 합법적인 권위에의 복종(1-6). Ⅱ. 우리 형제들에 대한 공의와 사랑(7-10). Ⅲ. 우리 스스로의 온건과 경건(11-14). ====== 권세에 대한 복종(롬 13:1-6) 우리는 권력자들을 상대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 여기 밝혀져 있다. 우리 머리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들을 가리켜 "위에 있는 권세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왕과 그 밑에 따르는 모든 권력자들의 권위와 위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걸 가진 사람들을 들춰 말하지 않고 그 권력의 위치를 두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들이 제아무리 악하고 시온의 백성의 멸시를 받는 몹쓸 사람들이라도(시 15:4), 이들이 가진 공의로운 권세는 복종하고 순종해야 한다. 사도는 앞 장에서 우리 스스로 복수하지도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인들 사회에서 일반 행정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해서 이 기회에 그 필요성과 악행을 저지르는 자에게 내리는 당연한 처벌의 부과를 주장하고 있다. Ⅰ. 임무 부과. "각 사람은 ……굴복하라."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교직자들까지 다 포함해서 누구나 [그 위치의 권세는 주께서 세우신 것이니, 국가 권력자의 공적 권세에]굴복하라는 말이다. [국가 권력에 무관하다]며 모든 왕들을 교황에게 굴복케 하여 스스로 최고 높은 자리 곧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서는 로마교황청의 그런 자들도 예외없이 여기에 굴복하라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의 양심을 어떤 인간의 의지에 굴복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법률을 만들어 인간의 마음을 묶어 놓은 것은 하나님의 대권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복종이 자발적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전 10:20). 헤아리고 상상하는 건 배반의 시작이다. 여기서 요구하는 복종에는 충심에서의 공경(벧전 2:17)과 외적인 존경을 다 포함된다. 곧 그들에게 직접 말할 때나 그들을 두고 타처에서 말할 때나 마찬가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합법적이요 정직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의 명령에 [당연히] 순종하는 것이요 그밖에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저항 없이 [잘못된 불의한 법적 판단으로 인한 것이라도..JC처럼 Q만 앙망하면서 바르게 반응함으로써] 처벌을 달게 받으며 인내하는 것이요[=이것이 박해요 고난인 바 그리스도의 그 수준에 도달하기를 힘쓰라!!...숨겨진 것은 반드시 드러나리라...주께서 약속하셨다!!] 만사에 있어서 신하의 위치와 본분에 일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다 높은 권세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고 거기에 복종하기만 하라." 이처럼 공적 권세에 복종할 것을 이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1.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에서 사회 안녕과 질서, 정부에 원수요, 이 세상을 왈칵 뒤집어 놓는 분파요 가이사의 원수들이요, 더욱이 그 지도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비난 때문이다. 모두가 낯익은 중상이다. 예루살렘은 "패역한 성읍이라……항상……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스 4:15, 16). 우리 주님께서도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들에게 마찬가지 비난을 받으셨다. 그렇다면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있어서도 원수들이 이들에 대한 만행의 구실을 이처럼 잡은 이상 "분파적이요 선동적이며 난폭하다"는 똑같은 중상 모략으로 모든 세기에 걸쳐서 욕을 먹어 오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사도는 이 중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적 권세에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율법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곧 그리스도교는 백성이 선한 신하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인 만큼 그 종교 원리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분파와 반역이라는 말을 이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2. 또 다른 이유는 크리스천들이 공적 권세에 대해 달리 생각을 품기 쉬운 유혹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는 본래 유대인들도 있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른 민족에게 굴복하는 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왕은 동족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는게 이들의 사고방식이었다(신 17:15). 게다가 바울은 그들에게 이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가르쳐 왔다. 이 자유가 방종으로 흘러 분파와 반역을 조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공적 권세에 복종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것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자기들의 시민권과 권위를 아직 파괴하지 않은 권세자들은 이방인이요 불신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권력은 박해를 일삼고 있었으며 법률 전체가 이들을 몰아 세우고 있었다. Ⅱ. 이 임무 실천의 이유. 왜 우리는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1. "진노를 두려워해서"(새번역). 우리가 저항으로 말미암아 안고 들어가는 위험 때문이다. 권세자들은 칼을 쥐고 있으므로 이들을 거스리는 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귀한 모든 걸 궁지에 모는 것이요 무모한 짓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 때문에 권세자들의 칼을 받기가 쉬웠는데 그들의 반역으로 이걸 더 악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저항이나 반역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이것이 확대되어 전체 사회에 편파적인 문제로 등장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들이 우선 복종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모시는 하나님 문제로 그들을 들볶을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2절)는 말씀은 이런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 스스로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다(크리마 렘프손타이). 그 저항이 하나님에게 관계되는 것이기에 그는 그 책임을 따져 물으실 것이다. 권세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저항자들은 율법의 채찍을 맞게 되고, 내리깔고 뭉게기엔 위에 있는 권세들이 너무 높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공적인 통치가 배반과 반역에 엄하고 가혹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관원들은……두려움이라"(3절)는 말이다. 이것은 물론 유익한 논리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수준 이하다. 2. 우리는 "진노를 두려워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양심을 위해서도" 복종해야 한다. " "처벌을 겁내서"가 아니라 "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 공공임무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곧 이 임무가 "양심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러한 관계에 두신 섭리를 생각하고 그의 교훈이 우리로 하여금 이 관계에서 파생되는 임무에 복종케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똑같은 일이라도 여러 가지 다른 차원에서 실천되어질 수 있다. 이제 양심으로 하여금 복종케 하기 위해서 그는 다음 몇 가지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1-4, 6절). (1) 권력의 제도면에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배자와 통치자로서 권력기구를 제정하셨으니 모든 공권(civil power)은 그에게서 발원하며 그는 당신의 섭리에 의해서 그 권력을 가진 자들이 누구이건 그들의 손에 이것을 관리하도록 하셨다. 덕분에 이에 의해서 제왕의 통치가 가능하다(잠 8:15). 이 권력의 횡포와 남용은 하나님 소관이 아니다. 그가 죄의 원저자(author)가 아니요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타고난 여러 능력이 죄의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서온 것이듯이 공권은 하나님의 통치 능력에서 온 것이다. 이 세상에 더 없이 불의하고 독재적인 왕이라도 위에서 허락하신 만큼의 권력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19:11). 신의 섭리는 특별한 모양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통치형태의 변화와 전복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것은 일반적인 통치를 두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그들 가운데 다스리는 자들과 다스림을 받는 자들을 구별하시되 약육강식하는 바다의 고기처럼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는 점에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 능력 그리고 선하심의 한 가지 예증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그의 피조물의 유익을 생각하셨다. "모든 권세는," 전체 정치, 귀족 정치, 민주 정치 가릴 것 없이 그 통치력이 어디에 국한되어 있든 그것이 당장 보아서는 인간의 제도 같지만(벧전 2:13) 하나님의 제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걸 받아들이고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제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걸 받아들이고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테타그메나이, 13:1), 이것은 군 사용어로 권세자들 임명뿐 아니라 군대에서 부하가 최고 지휘관에게 바치는 복종을 의미한다. 권력자들 가운데는 그들이 받은 은사와 임무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누구고 간에 "권력을 저항하는 자는 하나님의 제도를 저항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큰 재앙도 달리 많지만 권력기구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요 하나의 위대한 법률이요 위대한 축복이다. 그래서 통치를 받지 않겠다고 벼르던 벨리알의 자녀들은 법을 어기고 축복을 모독한 자로 여겨졌다. 그러기에 권세자들은 신들(gods)이라고 말한다(시 82:6). 하나님의 권위의 형상이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권력을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특징 왕과 왕국의 권리, 그들의 부속국가에 적용할 수도 없으며 또 여기에서 치자와 피치자간의 원형적인 계약관계에 대한 어떤 원칙이 생길 수도 없다. 다만 개인들로 하여금 그 개인적인 자격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놓아 주신 주위 환경에 가능한 한 평화롭고 조용하게 처신하라는 얘기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그들 위에 세워 두신 공적 권력을 마땅히 생각하고 살라는 얘기다(딤전 2:1, 2).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사자라는 말이 연거푸 되풀이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다(4, 6절). 권세자들은 더욱 특이한 면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이들이 지니는 위엄은 우리의 충성을 요구한다. 이들이 우리를 지배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요 하나님에게 결산을 볼 자들이다. 공적인 정의 집행, 분쟁해결, 정직한 자들의 보호, 범법자들의 교도와 처벌, 국가적인 평화와 질서 유지, 이 모든 면에 있어서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로서 행동한다. 하급 권세자를 죽이는 일에 있어서도 비록 그가 옳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왕에게 배신 행위로 몰리듯이 신자들도 자신들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어떠한 권세자든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제도를 저항하는 것이다. (2) 권력의 의도면에서.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① 권력은 악한 행위와 악인들에게 무서운 존재이다. 권력에는 칼자루가 있으니 전쟁의 칼일 뿐 아니라 공의의 칼이다. 권력자는 "속박의 후손들"로서 범법자들을 괴롭게 하는 자들인데 라이스 백성들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삿 18:7). 죄와 타락의 힘은 어찌나 강한 것인지 하나님이나 자연의 율법, 그리고 다가올 진노에 대한 관심 정도로는 많은 사람들의 지독한 사회악을 억제할 수가 없고 오직 지금 당장의 처벌이 뒤따라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타락하고 고의적인 인류가 이것을 필수적이게끔 만들었다. 따라서 무법자와 불순종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법률이 그리스도인 국가에도 제정되어야 마땅하며(딤전 1:9) 복음에도 그것이 일치하는 것이지 모순되는 게 아니다. 인간들이 서로간에 이러한 금수와 맹수가 되고 말면 "남을 견제 하기 위해서"라도(in terrorem) 마땅히 처벌을 받고 멸망받아야 한다. 말과 나귀도 이래서 재갈과 고삐로 묵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권세자는 "하나님의 사자"(4절)다. 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일처리를 한다. 따라서 그의 판단을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악으로 행하는 자에게……보응하는 자니라." 제 아무리 충실한 권세라도 그 사법적인 처리 과정은 물론 더러는 그 큰 날의 심판을 어렴풋이나마 예고하고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과는 훨씬 비교가 안된다. 그들은 오직 악한 행동만 붙잡고 늘어지며 악을 "행하는"자에게만 진노를 베풀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악한 생각에까지 미치며 마음의 의도를 살핀다.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권력을 권세자의 손에 쥐어 주신 것은 거저가 아니라 무질서를 바로잡고 견제하려는 의도에서다. 그러므로 "권세자들의 눈에 띄고 그들의 제제에 속한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권세자들의 눈은 재빠르고 그들의 팔은 길기 때문이다." 범법자들의 처벌이 하나님의 제도로서 운용되고 그에 의해서 제정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첫째,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으로서 그 죄에 대한 공적인 증거가 이렇게 해서 마련된다. 둘째, 온 세계의 왕이요 평화와 질서의 하나님으로서 이 평화와 질서가 이렇게 해서 유치된다. 셋째, 선한 자들의 보호자로서 그들 자신과, 가족, 재산 및 그 이름이 이런 방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넷째, 죄인들의 영원한 멸망을 원치 않고 일부를 처벌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여 그와 같은 악을 방지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걸 들어 두려워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처벌받는 자들을 사랑하는 의도에 된 일이니 육신은 멸망받아도 영혼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② 권력은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칭찬이다.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자들은 권력자들의 칭찬과 보호를 받게 마련이다. "선한 일을 하라(3절). 그러면 권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권력은 그 자체로서는 무섭지만 자신들의 죄로 스스로 거기에 가증스러운 존재를 만드는 자들이 아니며 따라가 붙잡지 않는다. 불은 가연성 물질만 태울 뿐이다. 그대는 권력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권력의 의도다. 따라서 우리는 양심을 위해서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제정된 권력인 만큼 개개인의 이익은 거기에 압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슬픈 일은 이 은혜로운 의도가 곡해되어 칼을 쥔 자들이 죄를 좋아하고 묵인하면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악한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이렇게 되는 게 사실이지만(시 12:1, 8) 그러나 이런 때라도 일반적인 보호라는 축복과 유익, 정부와 질서의 체면이라는 건 여전히 있는 만큼 무질서하게 보상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선행에 대한 핍박을 인내하며 받아들이는 게 우리의 임무다. 네로처럼 정부의 목적을 악용한 군주도 없었지만 바로 이 사람에게 바울은 탄원을 제기했으며 그 아래서 부하 권력자들과 법률의 보호를 한 두 번 받은 게 아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쁜 정부라도 있는 게 낫다. (3) 거기에서 얻는 우리의 유익 면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너는 정부의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그걸 유지하는 일을 해야지 그걸 어지럽게 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보호는 충성을 유발한다. 우리가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 거기에 복종하는 게 마땅하다. 정부를 치켜 올림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울타리를 그만큼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금을 통해서 이 복종을 표시하기도 한다(6절).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곧 양심에 마땅하다고 보는 네 복종과 감사의표로써 바치는 것이다. 너는 세금을 바침으로 너는 권력자의 권위를 소유할 뿐 아니라 그 권위의 축복을 네 것으로 하는 셈이다. 정부를 유지하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 수고의 보상으로 너는 그걸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자가 마땅히 그의 할 일을 다하고 있다면 그는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는 것이 된다. 그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우리가 바치는 세금과 복종은 마땅한 것이다." 공세를 바치라(포루스 텔레이테). 그는 "네가 그걸 구호금으로 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마땅한 빚으로 알고 내라. 아니면 공공 행정의 축복과 혜택에서 모두 돌려 받을 것을 알고 빌려 주라. 그 혜택은 네가 다시 받을 것이다" 하는 식이다. 바로 이 점이 사도의 교훈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배워 실천해야 한다. 곧 땅에 거하는 경건한 자들이 그 땅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 공의와 사랑(롬 13:7-10) 여기에는 공의와 사랑의 교훈이 담겨 있다. Ⅰ. 공의(7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라." 물론 이 말은 앞서 말한 권력자들을 두고 한 말이자 우리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하다. 공정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가 받을 것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청지기로써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가진 것에 관심이 있으며 그걸 그들에게 돌려 주는 게 마땅하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에게 그가 마땅히 받으실 것을 드리고, 네 자신, 네 가족, 네 친척, 네 지역 사회, 네 교회, 가나한 자 그리고 거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몫을 돌려 주라. 그들의 몫을 돌려 주되 법률로써 강요받을 때가지 기다리지 말고 즉석에서 실천하라". 그의 세목을 보자. 1. 마땅한 세금.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 처음 이 복음이 전파되던 지역의 대부분은 당시 로마제국에 멍에 아래 있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부유하기 때문에 세금과 기타 공과금으로 골치를 앓고 있던 로마 사람들에게 쓰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들에게 이 세금을 정직하게 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세와 국세를 구별하여 전자는 고정적인 세금이고 후자는 필요에 따라서 내는 잡세로 보기도 한다. 어떻든 양자가 다 법률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충실하고 양심적으로 내는 게 마땅하다. 우리 주님도 그의 어머니가 세금내러 갔을 때 태어나셨으며 그도 또한 씨이저에게 세금 바칠 것을 명했다. 다른 일에 있어서는 올바른 사람들이 이 일에 있어서는 양심을 속이고 왕을 속이는 건 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바울의 교훈에 어긋난다.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라." 2. 마땅한 존경.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면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것은 우리가권세자들에게 지고 있는 임무뿐 아니라 부모, 스승 그리고 주 안에서 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지고 있는 임무를 종합한 것이다. 이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에 따른 것이다. 이것을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놀라서 겁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 순종에 찬 경외다. 윗 사람에 대한 이런 마음의 존경이 없이는 그밖에 다른 임무도 제대로 할 수 없다. 3. 마땅한 빚.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지불할 수 있는데도 빚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에게 그의 몫을 되돌려 주라. 그걸 네 스스로 쓰지도 말고 더욱이 네 자신을 위해 싸놓지도 말라" "악인은 꾸고 갚지 않는다"(시 37:21). 이 문제를 익히 아는 사람들도 빚지고 있는 게 죄라는 건 전혀 생각치 않는 사람이 허다하다. Ⅱ. 사랑. "아무에게든지 아무것도 빚지지 말라"(오페일레테)하는 식으로 읽는 사람도 있다. "네가 어느 누구에겐 진 것이 무엇이든 이 사랑의 빚이라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항상 갚고 갚아도 또 갚아야 할 빚이다." 사랑은 빚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인류의 이익이 바로 그렇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로 안 해도 좋은 무엇이 아니라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임무의 원칙이요 종합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로의 진일보인 것이다. 이것은 둘째 돌판에 새겨진 모든 것을 종합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요일 4:20). 만약에 사랑이 진지하다면 그건 "율법의 성취"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사랑"이란 말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본문을 한 마디로 간략하게 함축하고 있는 말이요 우주의 미와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이야말로 이성적인 존재의 기쁨과 행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이요 사랑은 영혼에 박힌 그의 형상이다. 이것이 있는 곳에 그 영혼은 제 모양을 갖추며 마음은 온갖 선한 일에 적합하게 된다. 사랑이 율법의 성취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는 다음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1. 개별적인 교훈의 소개(9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다 포함되어 있는 십계명의 후반부를 그는 나열하고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곧 같은 분량이 아니라 같은 성질의 사랑이다. "그 정도가 똑 같을 수는 없지만 네 자신을 사랑하는 동일한 정성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자는 자기 이웃의 몸, 재산, 명성도 자기 것처럼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기초에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서 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인간의 율법의 제지가 없었던들, 처벌도 없었을 것이요(이것은 인간의 악의 때문에 다 필요하게 된 것이다) 사랑의 율법만으로도 이 모든 잘못과 상처를 방지하고 우리들 가운데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여러 계명을 나열하는 데 있어서 그는 제 7계명을 제 6계명 앞에 놓고 있다. "간음하지 말라." 이 간음이라는 말이 흔히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고 있지만(이 좋은 말이 그렇게까지 악용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이나 도둑질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어기는 것이다. 진정한 형제애는 우선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남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더럽히는 자는, 비록 더없이 열렬한 사랑의 핑계를 대겠지만(잠 7:15, 18), 실제에 있어서는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악마와 같이 그들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2. 형제애의 성격에 관한 일반적인 교훈.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10절). 사랑 가운데 걷는 자는, 곧 사랑의 원리의 지배를 받고 사는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 그는 "이웃에게" 어떠한 악을 품지도 실천하지도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우크 에르가제타이). 따라서 악을 도모하는 걸 가리켜 침상에서의 악의 실천이라 부르고 있다(미 2:1). 사랑은 어느 누구에게도 악을 품거나 계산하지 않으며 어떠한 종류의 편견이나 상처를 주는 일을 일체 반대한다. "악을 행하지 않는다." 어떠한 종류의 악이든 반대한다는 얘기다. 표현되어진 것보다 표현되지 않은 것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선을 강구한다. 이웃에게 악을 꾀하는 것뿐 아니라 마땅히 선을 베풀어야 할 자에게 선을 보류하는 것도 죄이기 때문이다(잠 3:27-29). 이것이 곧 사랑은 율법의 성취요 율법의 모든 목적에의 해답이라는 걸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 말고 우리에게 악을 억제하고 선을 행하도록 강요하는 게 또 다른 게 없지 않는가? 사랑은 전 율법에 대한 순종의 살아 있는 적극적인 원리다. 사랑의 법이 있는 곳에는 전 율법이 씌여 있다. ------- 그리스도인의 지침(롬 13:11-14) 우리는 여기서 스스로 온건하고 경건할 것을 가르침 받고 있다. 우리의 주 업무는 우리를 보살피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일과에 있어서 네 가지 일이 지적되고있으니 곧 언제 일어날 것인가, 어떻게 단장할 것인가, 어떻게 걸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이다. Ⅰ. 언제 일어날 것인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11절). 죄의 잠에서(죄악스런 상태는 잠자는 상태이기 때문에), 육의 안일한 잠에서, 게으름과 태만에서, 영적 사망의 잠에서 깨어 날 때가 가까워 온 것이다. 지혜로운 처녀나 어리석은 처녀들이 다 잠들고 있었다는 점을 주의하라(마 25:5). 우리는 때때로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누가 흔들어 주고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깨어 있으라"(watch)는 말이다. "깨어 있으라. 곧 네 영혼, 내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라. 죄를 조심하고 선한 일을 하도록 힘쓰며 언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거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처한 시간. 시기를 알거니와, 지금 시간이 어느 때인가를 생각해 보면 벌써 일어날 때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복음의 시대요 받아들여진 시대며 일하는 시대다. 지금은 어둠에 있던 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때다. 해가 중천에 떠 올라 우리 얼굴을 비치고 있으니 진작 일어났어야 할 때다. 우리는 아직도 이 빛을 받으며 자고 있는가?(살전 5:5, 6). 다른 사람들은 다 일어나 활동하고 있으니 진작 일어났어야 할 때다. 이 때가 바쁜 때인 줄 알라. 할 일도 많거니와 주님께서는 또 일을 많이 맡기신다. 이 때가 위험한 때인 줄 알라. 우리는 원수들과 사냥군들의 틈바구니 속에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 우리 이웃을 불사르고 우리 집도 불붙어 있으니 진작 일어났어야 할 때다. 충분히 잘 만큼 잤으니 일어나야 할 때다(벧전 4:3). 보라 신랑이로다 깨어 일어날 때다." 2. 우리에게 임박한 구원.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이제 우리가 우리 몫으로 선택한 영원한 행복이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가졌을 때보다 여행 목적지에 가까웠으므로 우리의 옷매무새를 여미도록 하자. 우리가 우리의 중앙에 가까울수록 우리의 활동은 그만큼 더 빨라져야 한다. 우리와 하늘 나라 사이에는 한 걸음밖에 안남았는데 그렇게 뭉그적 거리고만 있을 것인가? 그렇게도 발걸음이 무거워서야 되겠는가? 날이 그만큼 단축되고 은혜가 그만큼 증대할수록 우리의 구원은 그만큼 가까워오는 것이기에 우리의 영적 활동 또한 그만큼 신속하고 박력이 있어야겠다. Ⅱ. 어떻게 단장할 것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음으로 옷을 줏어 입어야 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옷을 입을 때다. 빛이 환하게 되고 나면 이전에 비해서 복음의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횡포와 잔인의 밤이 다 지나갔으니, 곧 그들이 핍박의 날도 저물었으니 우리의 구원도 가까워 온 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구속의 날이다(눅 21:28). 이에 따라 하늘의 영광 안에서 이뤄질 우리의 완전 구원의 날도 가까워 있다." 1. "그렇다면 무엇을 벗어야 하겠는가? 잠옷이다. 잠옷을 대낮에 입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려라." 죄악스런 행동은 모두 어둠의 일로써 무지와 실수의 결과다. 이런 행동은 모두 은시과 남의 눈 피하는 걸 좋아하며 지옥과 파멸로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낮에 다니는 사람은 잠옷을 벗어 버리자. 그것을 실천하는 걸 중지할 뿐 아니라 그걸 증오하고 경원하며 더 이상 상종을 말자. 영원이 문턱에 와 있으니 더 이상 불리한 짓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자"(벧후 3:11, 14). 2. "다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입어야 하겠는가?" 우리의 영혼에게 무슨 옷을 입힐 것인가? (1) "빛이ㅡ 갑옷을 입으라."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들의 득실거리는 가운데 사는 군인이요 그들의 생활은 전쟁이다. 따라서 그들의 복장은 갑옷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엡 6:13 이하). 그리스도인은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발가벗은 거나 마찬가지다. 성령의 여러 은혜는 사탄의 유혹과 이 악한 세상의 공격에서 지켜 주는 갑옷이다. 빛의 갑옷이라는 것은 로마 군인들의 군복이 반짝거리는 걸 두고 말한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고 또는 대낮에 입기에 어울리는 복장이라서 그렇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성령의 은혜야말로 꼭 알맞은 휘황찬란한 갑옷이요 하나님 앞에 귀한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14절). 이 명령은 13절에 있는 천박한 여러 정욕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방탕과 술주정"의 옷을 벌어버리라는 말 다음에는 그 반대의 말인 "온건과 절제의 옷을 입으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그렇지가 않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에는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칭의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서 그분 안에서 발견되어지도록 하시라(빌 3:9). 맏형의 제사장 옷을 입고 있으라. 그럼 그 축복을 얻을 것이다. 성화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과 은혜를 입으라. 새 사람을 입으시라(엡 4:24). 은혜의 길을 확인하고 그 행동을 재빨리 살아나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단장할 수 있는 최선의 복장이요 무장이다. 이 옷은 검소하면서도 반짝거리고 위엄이 있으며 적을 막아준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는 맨 몸이요, 일그러진 몸이나 마찬가지다. 그밖에 다른 모든 것은 누더기요 무화과 잎사귀며 누추한 초가집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크고 튼튼하며 따스하고 질긴 가죽 옷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세례 받음으로 이미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고 고백했다(갈 3:27). 이 고백을 진심으로 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옷입되 너를 다스리는 주님으로, 너를 구원하는 예수로 옷입으며 이 양자에 있어서 이 다스리는 일과 구원하는 일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임명과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라." Ⅲ. 어떻게 걸을 것인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옷을 입었으면 수도사처럼 부러 캄캄하고 은밀한 곳에만 앉아 있을 게 아니다. 우리가 좋은 옷을 입은 이유는 그걸 입고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닌가? "……행하자"(Let us walk). 그리스도교는 우리에게 눈을 떼시지 않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살전 4:1).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엡 5:8) 말씀과 비교해 보라. 우리의 행동은 복음에 어울리는 것이라야 한다. "단정히 행하라." 곧 네 주장대로 단정히 행하며 우리 주 하나님의 말씀을 단장하며 네 종교를 남에게 아름답게 추천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라.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남들이 눈여겨 보는 점에 있어서 방정하게 행동해야 하며 어질고 좋은 평판을 얻도록 해야한다. 특별히 여기에는 세 쌍의 경고가 있다. 1. 우리는 "방탕과 술주정"을 금해야 한다. 먹고 마시는 일(drinking)에 있어서 우리는 과식 과음을 금해야 한다. 추호도 난봉꾼이라는 인상을 남들에게 줘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입맛을 극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방탕과 술주정으로 마음을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눅 21:34). 이것은 낮으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취하는 자는 밤에 취하기" 때문이다(살전 5:7). 2.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제 칠 계명에서 금하는 육신의 정욕 곧 어둠의 일은 하나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간음과 간통은 금지된 방이다. 음란한 생각과 애정, 음란한 표정, 말, 책, 노래, 몸짓, 춤 곧 불결하게 만드는 이 모든 것은 금하는 호색에 속한다. 정숙과 검소라는 순결하고 신성한 법을 어가는 것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3.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이것 역시 흑암의 일이다. 왜냐하면 쟁투와 시기를 밥먹듯이 하면서도 누구 하나 자기는 분쟁을 좋아하며 시기심이 많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게 성도들의 운명이긴 하지만 그러나 스스로 쟁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겸손하고 평화로운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방탕과 술주정이 있는 곳에 간음과 호색, 그리고 분쟁과 시기가 따르게 마련이다. 솔로몬은 이것을 하나로 묶어 얘기하고 있다(잠 23:29 이하). 술에 잠긴 자들 에게(30절) 분쟁이 있고 까닭 없는 상처가 있으며(29절) 그들이 눈에는 이상한 여인들이 보일 것이다(33절) Ⅳ.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14절).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몸에는 신경을 쓰지 말라."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우리의 영혼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가? 그렇다. 그러나 두 가지 금지 사항이 여기 따르고 있다. 1. 무리한 염려로 고민하는 것. "몸을 위해 뭘 어떻게 할까 하고 안달하지 말라. 뭘 어떻게 먹여 살릴까 하고 조바심을 갖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마 6:31). 쓸데없는 초조한 염려를 경계하고 있다. 2. 못된 욕심에 탐닉하지 말 것. 그저 몸을 먹여 살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몸은 등(lamp)과 같아서 계속 기름을 공급해야 한다] 거기서 나오는 정욕을 채우지 말라는 말이다. 몸의 필수적인 것은 공급되어야지만 그 욕정은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생리적인 욕망은 채워져야 하지만 호색적인 취향은 억제하고 거절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몸에 고기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십사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우리 정욕을 위해 고기를 달라고 조르는 건 골치 아프다(시 78:18). 영 가운데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갈 5:16). === >>성장과 성숙, 성화로 가는 길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인간답게 자라는 일이 소중하다. 사실 현 세상, 아니 과거와 마래까지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거기서 인간들에 의해 발생되는 모든 문제들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답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으로 났으나 마치 인간다움이란 그저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것 그 이상도 아니요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언행으로 인해 사회는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 같은 흉포하고 무질서한 공간으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세상의 보통 사람들조차도 이제야 사람들의 문제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성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즉, 도덕성이 수반 되지 않은 운동 선수들이나 일반 직장인들은 결코 자신의 분야에서 롱런할 수 없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유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원리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는 교인 수가 늘지 않는 것이 아니요, 다만 교인다운 교인의 부족함에 있는바, 목사나 장로 집사 등과 같은 영적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영적 성숙함에 대한 아쉬움은 하늘 만큼 땅 만큼 크고도 깊다. ==여기에서 청교도시대의 그리스도인다움 추구를 살펴보자. 청교도들은 신자들을 얻는 일만큼이나 신자들을 성숙으로 이끄는 일에도 혼신의 노력을 다한 사람들이라고 평가 받는 이들이다. 일례로, 존 번연 목사의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읽어보라. 그것은 한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자신의 죄짐을 벗고 자유케 된 후 천성에 이르기까지 성숙, 곧 성화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책이다. 거기서 주인공 ‘크리스챤’은 천성에 도착할 때까지 ‘믿음’이라는 친구와 ‘소망’이라는 벗과 동행하고 사단과 싸우고 세상의 유혹들과 투쟁하면서 ‘좁고 곧은 길’을 걷는다. 이 천재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그림처럼 묘사한 내용들이야말로 청교도들이 당시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성장, 성숙, 성화의 교훈들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번연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존(John)이라는 이름의 오웬 목사는 신자의 내면에 거하는 죄죽임의 교리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 역시 신자들의 진정한 성숙함이 자기 속에 거하는 죄의 잔재 세력을 온전히 멸하는 일임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치밀함을 갖춘 성경적 가르침 아래서 성장한 신자들이 현 시대까지 ‘성경 밖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인 사람들’로 묘사 되고 있는 청교도들이다. ==성경은 참된 믿음을 이중 나선구조를 지닌 DNA와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 한 가닥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요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이요, 다른 한 가닥은 그 믿음이 만들어내는 성화를 추구하는 생명의 움직임, 실지로 성령따라 행동하는 믿음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하듯, 믿음을 구성하는 이 두 가닥은 항상 공존함이 마땅한데, 그 중 하나가 없다는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은 반드시 성화, 성숙의 추구를 낳고, 성화 성숙함은 그 사람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킨다. ===현 시대를 사는 믿는 이에 대한 소회.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성화를 예수 믿은 다음에 부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거나 적절한 시간이 지난 다음 얻을 수 있는 경험정도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성장 성숙 성화를 품고 있는 씨앗과 같다. 그 믿음이 생명을 지닌 살아 있는 믿음이라면 반드시 성장 성숙 성화의 싹을 틔우기 마련이다. 즉 성숙함은 믿음과 동시에 얻는 것이요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 믿음은 곧 성화에로의 출발을 의미한다. 예수 믿음의 받아들임은 곧 성화를 받아들임이다. 믿음과 성화를 시간적으로 구분하려거나 체험적으로 분리하려는 움직임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교훈을 더하셨다. 예수님의 용서는 결코 죄책감을 덜어주는 수준의 용서가 아니다. 지옥의 두려움을 제거시켜 주는 수준의 용서도 아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자들로 하여금 사랑의 감격 속에 자발적으로 그 분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있는 용서이다. ==추구하는 믿음으로 살 때, 교회는 교회다워진다. 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되고 확장 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성장-확장 추구와 동시에 이미 믿는 성도들은 말씀과 성령안에서 하나됨의 교통과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며 알고 섬김 통해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의 성숙과 '그리스도 빼어닮기'의 성화를 추구해야 한다. 교회의 강단은 성경으로 돌아와 부분적인 가르침이 아닌 총체적인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 성숙을 잃은 교회는 이미 전도와 선교의 걸림돌이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성화되지 않는 성도들은 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불신자들에게 굴욕적으로 짓밟히며 조롱거리로 전락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성숙은 성도의 삶의 본질이요,. 성화는 성도의 영광이다. 진실로 성숙과 성화는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다시금 드높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 ***남녀 구분없이 모든 사람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두신 이유 : 구태여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해 본다면, 남성성은 상대적으로 좀 더 이성적인 이해-용납-희생적 사랑-목표/목적 추구경향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고, 여성성은 상대적으로 더 감성적 경향(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 짐짓추측 -- 미혹되어 속임당하며 이용당할 가능성 좀더 높음??).....남편과 아내 모두 주안에서 여성이요 아내들이며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용납하시며 주안에 있는 참된구원에로 이끌어 올리시는 유일한 .참된 머리/남편이신 JC의 영,HS께 순복/존경함 배우고 이를 통해 남편(이해-용납-희생적 사랑)-아내(존경/순복) 사이에 상호존중/아낌-헌신-초월적 만족-평강 누림 가능하게 하셨음
== ==== ====[권위에 순복함]====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1-7) --------------- 로마서 13장 1-7절의 말씀에 대해 기독교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상의 권위에도 굴복해야 하는가? 더구나 선한 정부나 선한 권력에는 굴복할 수 있지만 악한 권력에도 굴복해야 하는가? 선악을 떠나서 현실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악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30대의 나이에 대학의 교수가 된 천재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교수직을 내던지고 히틀러 암살단에서 활동하다가 처형되었다. 히틀러 암살단의 생각은 술에 취한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이 그 차에 타고서 운전자가 운전을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불의해 보이는 정권에 맞닥뜨렸을 때 로마서 13장에 있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라고 하였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하였다. ‘모든 권세’에는 선한 권세도 악한 권세도 포함된다. 교회의 문제를 말하다가 바울은 왜 갑자기 정치적인 문제를 말한 것일까?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상태였고 세네카와 그의 동료들이 네로 황제 재위 초기에 로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때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만약 폭군 네로가 통치했으면 바울이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를 잔인하게 박해하는 네로 같은 정권에게도 복종해야 하는가?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는가, 아니면 무력으로 저항해야 하는가? 우리도 36년 동안 일제의 탄압을 받았는데 무조건 일본에 복종해야 했는가, 아니면 윤봉길 의사나 안중근 의사처럼 폭탄이나 권총을 들고 나서야 했는가,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양심에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였다. 바울은 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하였을까? 가. 위에 있는 권세 ‘위에(μπερεχω)’라는 말은 ‘~보다 뛰어나다. 지배하다. ~보다 낫다.’라는 의미가 있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고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위에 있는 권세’는 구체적으로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권세를 의미한다. 모든 권세는 사실상 나를 지배하며 내 위에 있는 것이다. 권세가 나보다 아래에 있다면 내 마음대로 하겠지만 위에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 자체는 힘이고 능력이며 자유다. 권세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이것이 통치권이고 세상 권세다. ‘위에 있는 권세’는 나보다 크고 강하며 내 위에서 나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세는 당연히 위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위는 어딘가? 그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다. 창조적인 위치는 궁극적인 최상의 위치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로 인해서 존재하므로 피조물의 위치는 우리의 궁극적인 위치다. 그 위치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는 절대적인 위치다. 정권은 아랫사람이 치고 올라갈 수도 있고 위에 있던 사람도 밑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영원히 절대적인 관계인 것이다. 이것이 ‘위에’라는 개념의 궁극적인 의미다. 현실적으로는 부모가 나의 위다. 인류의 창조자가 하나님이라면 나의 창조자는 부모다. 나는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없는 동양권에서는 부모를 하늘로 알았다. 하나님 다음에는 부모인 것이다. 배우려고 하면 스승이 필요하니까 스승은 배움의 창조자로서 내 위에 있다. 생이지지(生而知之) 하는 수도 있다지만 전혀 배우지 않고 아는 사람은 없다. 현실에서 회사의 사장은 직장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회사는 사원들로 인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 인해 있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노동자가 있어서 기업이 생긴 것은 아니다. 기업가가 있어야 기업이 생기지 노동자는 천만 명이 있어도 기업이 생길 수 없다. 기업가는 기업의 세계에서 하나님이다.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듯이 노동자가 없으면 기업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노동자가 회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업자가 없으면 기업은 없는 것이다. 창업자는 직원에게는 위에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사회와 실생활에 적용해 보면 권위는 창조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악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만들어 낸 것은 창조적 능력이다. 그래서 창조한 이에게 권위와 권세가 있는 것이다. 권세와 권위와 능력은 동의어다. 능력이 없으면 사장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권세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 권세 자체는 창조적이다. 마피아를 만들더라도 그것은 창조적 능력이 있어서 만든다. 비록 마피아지만 말 한마디로 세계를 움직일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권세는 어떤 것도 위로부터 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권위(εξομαία)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하였다. 적극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위임이고 소극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인정이다.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도 하나님은 인정하신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하였다. 사탄은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라고 하였다. 누가 넘겨주었는가? 하나님이 넘겨주신 것이다. 사탄의 권세마저도 하나님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지정된 것이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악한 권세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니까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면 권세가 없을 텐데 하나님이 인정하시기 때문에 권세가 있다. 우리는 악한 권세가 있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어느 시기까지 인정하신다. 사탄이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권세는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라고 하시지 않고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 경배하지만 나는 하나님께만 경배한다.”라고 하셨지 사탄의 권세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만일 그것을 부인하셨다면 빌라도 앞에서도 당연히 부인했을 것이고 “네가 무슨 권세로 재판을 하느냐?”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권세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사탄의 권세를 인정하시고 악한 권세를 인정하시는지 다 모른다. 오늘 그 이유를 알면 좋고 지금 이 시간에 알면 더 좋겠지만 차츰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로마서 13장 2절에는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였다. 이미 인정된 권세이므로 그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악한 권세라도 그 밑에 있으면서 거스르면 보복을 받고 처벌을 받는다. 그 권세 아래 있으면서 굴복하지 않으면 당연히 징벌을 받는다.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시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당장 징벌이 오는 것이다.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권위는 위에서 온다. 위에서 온 것이 곧 권위인 것이다. 창조적인 것, 그것이 곧 권위다. 창조자는 절대적인 권위자다. 악한 권세를 포함한 세상 모든 권세의 궁극적인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궁극적인 권세 밑에 악한 권세도 포함되는가? 이것이 우리의 의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악한 권세도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였다. 나. 권세에 굴복함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은 창조의 능력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피조물이다. 우리가 피조물임을 확실히 아는 것이 곧 창조자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사람이 높은 경지에 이른다 해도 자기 위에 창조자는 항상 있다. 그가 부처님같이 된다고 해도 그의 위에 창조자가 있다. 창조적인 권위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인데 부인하려고 하니 고생을 하는 것이다. 1) 창조의 능력 앞에 창조의 능력 앞에 굴복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을 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창조가 자기에게 보이면, 자기 위에 무엇이 있다는 것이 보이면 굴복하게 된다. 자기 위에 있는 작은 것이라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그 궁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궁극적인 것도 인정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권세도 인정하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권세를 인정하겠는가. 창조의 능력 앞에 굴복하는 것은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창조의 권세를 알게 될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의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기 집에서 귀여움만 받을 때는 자기 위에 누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유치원에 가서 자기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못하는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면 그때부터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듣게 되고 자기보다 큰 아이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런 의식이 생기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이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알고도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 말씀이 들려오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금방 인정하게 된다. 누가복음 7장에는 어떤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면서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낫겠다고 한 것이다. 그 백부장은 군인의 길을 통해서 자기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능력과 권위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같으면 말만 하면 될 것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그는 보이는 현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능력을 알았던 놀라운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군대도 상관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 오늘이라도 발령이 나면 짐을 꾸려 임지로 떠나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도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백부장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하였고 그 시로 병들어 죽게 되었던 종은 나았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그를 기이히 여기셨다. 능력 앞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자기 앞에 있는 구체적인 능력, 창조의 능력 앞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2) 구속의 능력 앞에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창조의 능력 앞에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구속의 권세 앞에 있다.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하는 것은 구속의 능력 앞에 복종하는 것이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속의 능력 앞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건져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사탄에게 종 되었던 사람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건져 내심을 받았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사탄의 종이었을 것인데 그분으로 인해서 우리는 종 되었던 데서 해방되었다. 우리는 창조의 권위와 구속의 권위의 이중적인 권위 앞에 있다. 이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다. 3) 굴복된 사람들인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것은 곧 창조와 구속의 능력을 만나는 것이다. 이 능력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굴복된 사람들의 단체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거역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권위 앞에 굴복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수 믿고 천당에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당이 아니라 그 나라다. 기도의 능력이 있고 은사가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된 단체 안에 있어야 한다. 굴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안 되면 그의 수고가 의미가 없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하셨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거역한 백성을 하나님께 굴복케 하는 것이다. 굴복한 사람이 남도 굴복하게 한다. 자기가 먼저 창조의 능력, 구속의 능력 앞에 굴복한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자기 위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굴복하게 할 수 없다. “너는 왜 굴복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굴복하라고 하느냐?”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는 전할지 몰라도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 이 능력을 불신하고 거역하는 세상에 대해서 이 능력 앞에 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