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2장.
[출34:5,6,7...*4.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So Moses cut two tablets of stone like the first ones, and he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went up on Mount Sinai, as the Lord had commanded him, and took [a]the two tablets of stone in his hand. *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Then the Lord descended in the cloud and stood there with Moses as he proclaimed the Name of the Lord. *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6 Then the Lord passed by in front of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compassionate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ingkindness and truth (faithfulness);]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죄벌은 반드시 집행하시되 긍휼을 잊지 않으심..죄벌 집행=보응하심의 .그 목적은 회복!! >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keeping mercy and lovingkindness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but He will by no means leave the guilty unpunished, visiting (avenging) the iniquity (sin, guilt)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and the grandchildren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that is, calling the children to account for the sins of their fathers...회개케. = 새로운 복된 존재로 회복시키려 하심].”
....<이스라엘 = 사라 + 엘....늘 한결같이 감내하며 지속적으로 행하사 만족하심, 곧 늘 주도하시며 끝내 이기시고 다스리시는 한결 같은 하나님!!, 그분의 왕자(왕이신 Q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자)..> ==>redeemed, transformed<=sanctified>, bondservant of YHWH<구속받고 변화된 주님의 노예> ...."히브리" = 강을 건넌 자,..다함 없는 지고지선-사랑의 주님, 진정 주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바로 그 존재로 살게 하소서, 구속함 받고 거듭난 제게서, 주께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 제하시어 오직 주님의 기쁨과 사랑 만드소서.
..**다루심과 연단 거쳐 주께 절대적인 그릇으로 준비되고 있던 레위-유다 지파증에서 먼저 레위 지파를 들어 쓰심을 기뻐하라.. 주께 합당한 예배와 대언적 가르침이 무엇보다 먼저 있을 때 비로소 변화 통한<생명 성숙>과 함께 죄 정복이 오고 축복과 다스림이 바르게 시행된다!!
--------- <이스라엘>을 히브리어로 분해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 + <엘> 즉... <이스라>는 '주도하다, 끈질기게 다투어서 이기다, 다스리다'를 뜻하는 <사라>의 3인칭 평서형 또는 기원형입니다.((끝까지 주도적으로 이끌며 다스리사 마침내 이기소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 하나님이여!! ---너 주님의 왕자야, 이제 주로 주 되시게 하라 = 네 이름을 <주로 주 되시게 하는 주님의 왕자>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엘>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부르던 하나님의 이름이죠....그러니까 둘을 합치면 평서형으로 보자면 '하나님이 주도하다, 하나님이 이기다, 다스리다'가 되고 기원형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하나님이 이기시기를,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이 되는 거죠. 히브리사전이 내린 정의. 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이스라엘> n.pr.m. et gent. Israel - El persisteth, perseverth (or. juss. Let El persist. usu. Let El contend) ==.<이스라엘> 고유명사(n.pr.).남성(m). 그리고 민족 이름(et gent). 이스라엘 - 하나님이 <계속 끝까지>주도하신다 (또는 기원형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대개는 하나님이 <한결같이 계속 해오신 그대로 이겨내심으로써 만족케 되시기를>(싸워 이겨내시기를) .. persist.. persevere, contend 창세기 32장 24절에 보면 야곱이 혼자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여기서 주어는 어떤 사람', 곧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야곱과 싸웁니다. 그런데 싸움은 하나님이 먼저 거셨는데 시간이 갈수록 야곱이 그 싸움을 주도하게 됩니다. 2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못 이겼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야곱이 겨루어 이기는 것이 맞습니다. 뭐 이때까지 야곱은 누구와 겨루든 늘 이겨왔었죠. 줄곧 그랬었잖아요. 언제나 끈질기게 주도하고 늘어져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어내고야 말았죠. 형 에서와도 그랬고, 아버지 이삭과도 그랬고, 삼촌 라반과도 그랬죠. 그리고 32장에서는 급기야 하나님까지 그렇게 물고 늘어져서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26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에게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노라'고 달라 붙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야곱이 주도적인 사람입니까? 얼마나 끈질긴 사람입니까? 결국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그는 '야곱'이라 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는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왜냐하면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28절).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28절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너는 다시는 야곱이라고 부르지 말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야곱', 곧 철저히 육을 따라 천연적 생명으로 살아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그들과 겨루어 이겼고 게다가 오늘은 하나님인 나와 겨루어서까지 이기고야 말았잖니....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말도록 하자꾸나. 이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왕자로 살거라.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주도하고 내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하나님의 간곡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막무가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요? 그 마음이 느껴지신다면 히브리 사전이 정의내린 것처럼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주께 합당하도록, 주로 주 되시게 하는 자]이라는 뜻이 옳은 답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말씀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는 말씀도 이해가 되시겠죠? 이 말씀은 지금까지 야곱이 사람과도,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긴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계속>다스리시기를'이라는 본디 뜻과 상충되는 말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그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 때문에 모든 주석서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뜻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고 단순하게 정의내려 버린 거죠.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히브리 낱말을 문법 그대로 풀어낸 해석이 아니고 히브리어를 고려하지 않고 28절 후반부만 보고 도출해낸 해석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본디 의미와 정반대의 뜻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 @@말씀(דְּבָרִים)에 관하여 ^^히브리어 מדבר 미드바르(광야)의 뜻 :::: מדבר 미드바르 = 광야, 황무지, 거친땅, 거친들, 불모지, 사막, = 입 (아 4:3) :::: 유래>> מ 멤 = 혼동, 나라, 언어, 40. 최악의 한계 + דבר 다바르 = 말, 말하다, 이르다, 명하다, 가로되, 명령, 명령하다, 언약 ===> מ + דבר = 미드바르 = 광야는 말씀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3:16).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계시하여 주신 말씀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저술된 책이다.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성경이다. 요한복음의 맨 첫 구절에 ‘말씀’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그리스어로 <로고스 λόγος>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1:1). 그리스어 <로고스>는 구약성경 칠십인역에서 십계명을 가리키는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열 마디의 말씀을 개역은 ‘십계(十誡)’라고 옮겼으나 나머지 한글역본들은 일제히 ‘십계명(十誡命)’이라고 번역했다(출34:28). ‘십계명’이란 용어는 히브리어로는 <아세레트 하더바림 עֲשֶׂרֶת הַדְּבָרִים >이다. <아세레트 עֲשֶׂרֶת>는 ‘열/10’이란 기수이고 <더바림 דְּבָרִים>은 ‘말들’이라는 뜻의 복수명사이다. 한글성경은 복수명사 <더바림 דְּבָרִים>을 ‘계명(誡命)’이라고 옮겼다. 복수명사 <더바림>을 그리스어로 옮기면 <로기온 λόγιον>이 되는데 칠십인역(LXX)은 출34:28에서 복수 대격(accusative)으로 옮겨 ‘십계명’을 <투스 데카 로구스 τοὺς δέκα λόγους>라고 번역하였다. ‘십계명’<아세레트 하더바림 עֲשֶׂרֶת הַדְּבָרִים >을 풀어 쓰면 ‘열 마디 말씀들’이 된다. 이 용어는 출34:28; 신4:13; 10:4에 나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동작은 피엘 동사 <디베르דִּבֶּר >로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디베르> 열 마디 말씀<더바림>이 십계명이다. 히브리어 동사 <다바르 דָּבַר>에서 명사 <다바르 דָּבָר>가 파생하였는데 이 명사의 복수형이 <더바림 דְּבָרִים>이다. 동사 <다바르 דָּבַר>는 ‘말하다’란 뜻 외에도 ‘선언하다’, ‘대화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경고하다’, ‘위협하다’, ‘노래하다.’ 등등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동사는 KJV에서 서른 가지 정도로 다른 역어로 번역되어 있다.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다바르 דָּבָר>도 ‘말’, ‘말하기’, ‘연설’, ‘일’, 등등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이것도 KJV에서 80가지 정도로 다른 역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특이한 것은 이 명사가 ‘일/사건’이라고 번역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명사에서 발전한 아람어 명사 <디브라 דִּבְרָה>는 ‘문제/일/사안/matter’이란 뜻이 되었다. 창15:1에 이 동사와 복수명사 함께 나온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창15:1). 이 구절에서 <더바림>은 ‘일들’이라고 번역되었고 <디베르>는 ‘말씀하셨다’라고 번역되었다. ‘이런 일들<더바림>이 일어난 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디베르>.’ 이와 같이 히브리어 복수명사 <더바림 דְּבָרִים>은 ‘사건/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말하다’란 히브리어 동사 중에 <다바르 דָּבַר> 말고 <아마르 אָמַר>란 단어도 있다. 둘 중에 <아마르>가 훨씬 많이 사용된다. <아마르....(풀어) 이르다....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는 화자가 말하는 말의 내용에 집중하지만, <다바르>는 화자의 말하여 나타난 바 된 행위에 그 초점을 집중한다.((곧 Q의 말함<계명> 그 자체는 그대로 발현, 입증해 내심, 일하심의 행위 = 사건이라는 뜻)) 명사 <다바르>는 행하여진 일을 알려주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명사는 ‘사건/행동/일’이란 뜻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하신 말씀은 곧 실행되어 하나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말씀은 곧 사건이 된다.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시는 강림사건을 보도한다. 시내산 강림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 강조한다. ‘소리’는 히브리어로 <콜 קוֹל>인데 이 명사는 출애굽기 19장에 다섯 차례 반복된다(출19:5, 16, 16, 19, 19). ‘소리’<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강조한다. 여호와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이해하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신현현은 모세가 질문하면 여호와는 대답하시는 소통의 장이다(출19:19).백성은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모세만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화하는 상황이 사람에게는 가장 거룩한 상태일 것이다. 교회의 설교와 말씀 공부는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거룩한 장이다. 교회의 회중은 예배 중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교회는 부단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익히고 실천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교회의 모습이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사건이 발생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주석하여 원문의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이 설교다. 설교가 선포되는 현장은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응답하는 회중의 행위를 통해서 역사적 사건으로 나아간다. 말씀이 역사 속에서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 곧바로 구원의 사건이 발생한다. 세상의 폭력에 의해 억압당하는 모든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구원을 받는다. 이 구원의 사건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십계명은 사람을 의무로 묶어 억압하는 율법이 아니다. 십계명 말씀은 억압당한 사람을 해방하고 폭력에 억눌린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 구원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십계명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로 표상된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구원사건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81:1, 10...*1.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Sing aloud to God our strength; Shout for joy to the God of Jacob (Israel)...*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up from the land of Egypt. Open your mouth wide and I will fill it.]
**창49장의 <야곱의 임종 직전 예언에서> 레위는 [시므온과 함께, 비록 공의를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판단대로<삿된 계교와 분노와 혈기를 따라...자행자지함으로써> 칼의 폭력을 행사한 자라는 아비 야곱의 정죄-저주를 받기는 했으나, 그 저주는 430여년이 지난 이제, 모세에 이르러서는, 모세를 통해서 저주는 생명의 축복으로 변하게 되는데, 즉 축복의 통로로 발견되는 전환점을 보게 됨...여기에서는 <자기에 대한 자각에 있어서 이미> 죽음을 통과한 자로 여김으로써, 전심으로 자기를 주께 열어드리며 그분을 의뢰하기를 배우고 주님을 추구할 때 또한, <물에서 건져냄을 받은 자...즉, 죽음의 물을 통과하여 새 생명 삶 안으로 들어 간 자> 모세는 오히려 생명을 살리며 양육하고 번성-충만에 이르게 하는 자가 됨을 시사함... **여기에서 모세가 예표하는 바는 장차 JC, 사내아이로 나타나고 있음...*1) [JC]JC탄생 후 당시 아기를 죽이려는 유대 헤롯왕의 유아 말살 책동 및 *2)[보좌로 부활-휴거 된 사내아이]계시록에서 펼쳐 보이는 바, 여자(교회)가 낳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사내)아이를 삼키려는 용의 의도를 좌절시키시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보호-양육하사 부활-휴거 시키심으로써 하늘 군대와 함께 사내아이로 하늘에서 사탄마귀를 축출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 지혜와 그 실행능력을 찾아 볼 수 있음.. **모세의 부모를 보라!!..오직 주를, 주의 언약 말씀을 믿는 부모가 <그들의 아이에 대해> 깨달아야 할 바를 주께서 열어 보여 주고 계심을 기억하고 명심할 것!!, (비록 그들의 몸에서 낳은 바 되었더라도, 주께서 주신 바 그 아이가 <그 몸 상태가 어떻든지 무관하게> 바로 주로부터 왔고, [정해진 기간까지는!!] 그를 사랑으로 주님 말씀과 훈계, 주님의 공급하시는 초월적 사랑과 관심으로 양육하도록 친히 위탁 받은자 됨을 자각하는) 부모의 기도-가르침-축복과 양육-돌봄의 위대한 효능을 볼 수 있어야 함....또한 더 나아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서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할 그때에 이르러서도 주께 마음을 열어드림 통해 여쭘으로써 그의 모든 행보와 일거수 일투족 책임 져 주실 것을 중보하고 맡겨드리되, 생명 살리는 최선의 선택을 실행하며 관심 가지고 지켜 봄 통해 하나님의 친히 일하고 계심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끝까지 [주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완수함으로써]주와 동역하는 부모 되기를 원하고 계심.. **이제, JC와 함께 그분의 <대속의> 죽음 안으로 세례 받은 이들마다, 죄와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과 그분의 의에 대해 다시 살아난, 새 생명을 사는 자 됨의 의식으로 그분의 부활 안에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참되게 알며-사랑하며-섬기는 그분의,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 됨을 위해서는 말씀(JC의 다리에 새겨진 Faithful and True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바 Q말씀은 영이요, 생명임!!]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모든 차원-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영생자존하시는 그분의 모든 요소와 어떠함의 영광 그대로를 말해냄= 믿는 모든이에게 그분 자신을 공급함이기에) 그대로 믿고 붙들어 그렇게 여기며 그분의 임재 앞에서 행하는 이마다 진실로, 실지로 그분이 그대로 나타내시며 이루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고, 친밀히 알고-누리며-사랑하며-섬기며- 연합한 하나됨의 영생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빼어닮은>그분의 신부-아내인 새 예루살렘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지고지선의 영생복락 누리는 자 됨을 약속하고 계심...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 땅에서 <말씀 안에> 곧 광야<미드바르>-사막을 주와 함께 걷는 동행-동거-동주의 삶의 교통하는 실행을 통해 믿는 이 마다마다를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불러 구원하시고 참되게 완전히 아시며 구주 보혈을 통해 보심으로써 <네가 없이는 나 하나님 안할란다!! 하시며, 너도 나 아니면 살 맛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하시며!!> 전적으로 형언 못할 기쁨으로 완전히 열납하시며 절대적으로 위하시며 자신을 온통 쏟아 부어주시는 그분, 바로 그 분이 누구신지를 참되게 알고-사랑하며-섬김 안으로 들어 오기를 그토록 열망하고 계심!!
===모세가 태어나다 1. [400.험한시험믈속에서..405주의친절한팔에]레위[=주와 연합한 거듭난 자 의미]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아비 아므람, 어미 요게벳, 누이(미리암, 8<-12>세 위), 형(아론, 3세 위)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한 몸 이룬 부부사이의 친 자녀 산출 통해서, 서로 다른 두 핏줄은 진정한 결혼, 곧 하나의 혈연으로 맺어진 한 가족이 되게 하셨음을 명심하라]그가 잘 생긴[=주님 생명 인해 빼어남...준수한/귀티나는/빼어난/범상치 않은..fine, beautiful, goodly, fair]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아이 소리가 커져서]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테바....방주..상자..만유와 만물이 그 안에 담김, 곧 JC 암시..방주-상자-유월절의 이스라엘집-교회는 세상과 분별된JC의 몸 의미]를 가져다가 역청[= 헤마르 : 타르(콜타르), 아스팔트...동물 유래 성분..바벨탑 쌓을때 썼었음]과 나무 진[=제페트, 나무 진..식물 유래 성분..방주 지을 때 썼었음]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주 경외하는 사람마다 마땅한 바 주 앞에서 합당한 .진인사 후 대천명의 동역, 이는 그 표본!!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제례 전 성결례로서]목욕하러 나일 강[그곳]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주님의 계획하심따라]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Q의 불어넣으신 긍휼의 정]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wet-nurse)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가장 탁월한 교육은 [바로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며!!] Q 경외하는 친모의 감성 충만한 돌봄과 Q 경외함의 교훈을 따라 가르침의 양육임. 10. 그 아기가 자라매[젖 떼는 때, 약3-4세가 되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모세가 미디안으로 피하다 = (세상적 관심에서 주님의 관심에로!! 패러다임 전환과 그 실행 가르치심 위해) 그의 속사람 새로 조성하심 통해 주의 뜻 이룰 그릇 만드심...갈2:20..<세상에서 당하는> 고생과 고난, 고초가 심할수록 그는 비례적으로 주께 귀한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환난 = problems and trials> ::: 쑥-담즙-고초torment(괴롬+어려움) =problems 11. [379.내갈길멀고밤은깊은데...341.십자가를내가지고...나의기도하는것보다..하늘의문을여소서..마라나타] ○모세가 장성한 후에(40세경...그동안 양모 하트셉수트 돌봄 아래 .애굽 왕좌 위해 <다스림 위해 필요한, 모든 면에서 능한> 왕자로 길러졌음)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하트셉수트 사망으로 그녀의 섭정은 종식되고, 본격 등장한 투트모세3세 (30세 즈음) 치하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주께 여쭘 없는>자행자지하는 부정적<소극적> 남성적 생명으로 행함 = 다루심과 연단 통한 생명 성숙, 형상 표현과 축복, 다스림의 학습 필요 상태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투트모세3세]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의, 아카바만 북서 지역]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23. ○여러 해 후에 [모세 수배령 내렸던]애굽 왕은 죽었고[중간기((나그네-생계 위한 종, 자기 비움의 인생))40년 생략...모든 천연적 생명 따른 자존심과 심지어 자존감 마저 내려놓고 처리받는, 자기 부인/자기 십자가 적용의 자기 비움, 곧 <적극적 여성 생명의 주 바라기> 듣는 마음으로 주 앞에 날마다 살기를 배우고 있었음 = 적극적 여성적 생명 살기를 배우는 기간을 지나고 있음]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이 시점, 출애굽 시점의 애굽왕은 아멘호텝2세....<사방으로 막혀 있어도 하늘은 항상 열려 있음!!>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 ..Amplified Bible ===The Birth of Moses 1 Now a [a]man of the house of Levi [the priestly tribe] went and took as his wife a daughter of Levi. 2 The woman conceived and gave birth to a son; and when she saw that he was [especially] beautiful and healthy, she hid him for three months [to protect him from the Egyptians]. 3 When she could no longer hide him, she got him a basket (chest) made of papyrus reeds and covered it with tar and pitch [making it waterproof]. Then she put the child in it and set it among the reeds by the bank of the Nile. 4 And his sister [Miriam] stood some distance away to find out what would happen to him. 5 Now the [b]daughter of Pharaoh came down to bathe at the Nile, and [she, together with] her maidens walked along the river’s bank; she saw the basket among the reeds and sent her maid [to get it], and she brought it to her. 6 When she opened it, she saw the child, and behold, the baby was crying. And she took pity on him and said, “This is one of the Hebrews’ children.” 7 Then his sister said to Pharaoh’s daughter, “Shall I go and call a [c]wet-nurse from the Hebrew women to nurse the child for you?” 8 And Pharaoh’s daughter said to her, “Go ahead.” So the girl went and called the child’s mother. 9 Then Pharaoh’s daughter said to her, “Take this child away and nurse him for me, and I will give you your wages.” So the woman took the child and nursed him. 10 And the child grew, and she brought him to Pharaoh’s daughter and he became her son. And she named him [d]Moses, and said, “Because I drew him out of the water.” 11 One day, after Moses had grown [into adulthood], it happened that he went to his countrymen and looked [with compassion] at their hard labors; and he saw an Egyptian beating a Hebrew, one of his countrymen. 12 He turned to look around, and seeing no one, he killed the Egyptian and hid him in the sand. 13 He went out the next day and saw two Hebrew men fighting with each other; and he said to the aggressor, “Why are you striking your friend?” 14 But the man said, “Who made you a prince and a judge over us? Do you intend to kill me as you killed the Egyptian?” Then Moses was afraid and said, “Certainly this incident is known.” ==Moses Escapes to Midian 15 When [e]Pharaoh heard about this matter, he tried to kill Moses. Then Moses fled from Pharaoh’s presence and took refuge in the land of [f]Midian, where he sat down by a well. 16 Now the priest of Midian had seven daughters; and they came and drew water [from the well where Moses was resting] and filled the troughs to water their father’s flock. 17 Then shepherds came and drove them away, but Moses stood up and helped them and watered their flock. 18 When they came to [g]Reuel (Jethro) their father, he said, “How is it that you have come back so soon today?” 19 They said, “An Egyptian saved us from the shepherds. He even drew water [from the well] for us and watered the flock.” 20 Then he said to his daughters, “Where is he? Why have you left the man behind? Invite him to have something to eat.” 21 Moses was willing to remain with the man, and he gave Moses his daughter Zipporah [to be his wife]. 22 She gave birth to a son, and he named him Gershom (stranger); for he said, “I have been a stranger in a foreign land.” 23 Now it happened after a long time [about forty years] that the king of Egypt died. And the children of Israel (Jacob) groaned and sighed because of the bondage, and they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bondage [h]ascended to God. 24 So God heard their groaning and God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Isaac, and Jacob (Israel). 25 God saw the sons of Israel, and God took notice [of them] and was concerned about them [knowing all, understanding all, remembering all]. ===Footnotes Exodus 2:1 I.e. Amram; Ex 6:20 identifies Amram and Jochebed as the parents of Aaron and Moses. Exodus 2:5 If the pharaoh is Thutmose I, then this is likely his daughter, Hatshepsut. Exodus 2:7 Lit a nursing woman. Exodus 2:10 The name Moses is a wonderful choice. It means “drawing out” in Hebrew, but in Egyptian, a similar word means “man of royalty” (e.g. the syllable “mose” in names like Thutmose). Exodus 2:15 This pharaoh is likely to be identified as Thutmose III (1483-1450 b.c.). Exodus 2:15 After Sarah died Abraham took Keturah his concubine (see note Gen 22:24) as a secondary wife. Midian was the fourth of six sons born to Keturah. Abraham gave gifts to Isaac’s half brothers and sent them eastward so that they would have no claim on Isaac’s position as Abraham’s only heir and the son of promise. Exodus 2:18 Reuel’s other name, Jethro (Excellency), may have been a title indicating his rank in the tribe. Exodus 2:23 The description of God in this passage (vv 23-25) attributes human qualities to God, including human emotions and ways of thinking or decision-making. It is meant to relate to a human point of view, without concern for a strict theological accounting of God’s nature. In reality, God is present everywhere, and is always aware of everything that has happened and will happen. --------- ===KJV] 1. And there went a man of the house of Levi, and took to wife a daughter of Levi. 2. And the woman conceived, and bare a son: and when she saw him that he was a goodly child, she hid him three months. 3. And when she could not longer hide him, she took for him an ark of bulrushes, and daubed it with slime and with pitch, and put the child therein; and she laid it in the flags by the river's brink. 4. And his sister stood afar off, to wit what would be done to him. 5. And the daughter of Pharaoh came down to wash herself at the river; and her maidens walked along by the river's side; and when she saw the ark among the flags, she sent her maid to fetch it. 6. And when she had opened it, she saw the child: and, behold, the babe wept. And she had compassion on him, and said, This is one of the Hebrews' children. 7. Then said his sister to Pharaoh's daughter, Shall I go and call to thee a nurse of the Hebrew women, that she may nurse the child for thee? 8. And Pharaoh's daughter said to her, Go. And the maid went and called the child's mother. 9. And Pharaoh's daughter said unto her, Take this child away, and nurse it for me, and I will give thee thy wages. And the women took the child, and nursed it. 10. And the child grew, and she brought him unto Pharaoh's daughter, and he became her son. And she called his name Moses: and she said, Because I drew him out of the water. 11. And it came to pass in those days, when Moses was grown, that he went out unto his brethren, and looked on their burdens: and he spied an Egyptian smiting an Hebrew, one of his brethren. 12. And he looked this way and that way, and when he saw that there was no man, he slew the Egyptian, and hid him in the sand. 13. And when he went out the second day, behold, two men of the Hebrews strove together: and he said to him that did the wrong, Wherefore smitest thou thy fellow? 14. And he said, Who made thee a prince and a judge over us? intendest thou to kill me, as thou killedst the Egyptian? And Moses feared, and said, Surely this thing is known. 15. Now when Pharaoh heard this thing, he sought to slay Moses. But Moses fled from the face of Pharaoh, and dwelt in the land of Midian: and he sat down by a well. 16. Now the priest of Midian had seven daughters: and they came and drew water, and filled the troughs to water their father's flock. 17. And the shepherds came and drove them away: but Moses stood up and helped them, and watered their flock. 18. And when they came to Reuel their father, he said, How is it that ye are come so soon to day? 19. And they said, An Egyptian delivered us out of the hand of the shepherds, and also drew water enough for us, and watered the flock. 20. And he said unto his daughters, And where is he? why is it that ye have left the man? call him, that he may eat bread. 21. And Moses was content to dwell with the man: and he gave Moses Zipporah his daughter. 22. And she bare him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Gershom: for he said, I have been a stranger in a strange land. 23. And it came to pass in process of time, that the king of Egypt died: and the children of Israel sighed by reason of the bondage, and they cried, and their cry came up unto God by reason of the bondage. 24. And God heard their groaning, and God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with Isaac, and with Jacob. 25. And God looked upon the children of Israel, and God had respect unto them. ====== 출애굽기 2장 (개요) 본 장은 모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지상에서의 훌륭한 행적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모세는 선지자로, 구원주로, 율법 수여자로 또한 중보자의 모습으로서 가장 확실한 주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모세의 생애에 대한 책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다소 허구라고 생각되는 모세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모세 자신이 자신에 관해 기록한 본서는 믿을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기록의 진실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무한한 지혜자이신 하나님이 이것은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신 바이기 때문이다. 본 장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모세는 출생과 동시에 위기를 맞는다(1-4). 2. 위험에서 보호받은 모세는 유년 시절, 청년 시절에 특혜를 누리며 성장한다(5-10). 3. 장성한 모세는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설 것을 각오한다. (1) 모세는 백성들이 원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다(11-14). (2) 후일을 기약하며 모세는 물러난다(15-22). 4. 이스라엘 해방의 날의 여명이 밝는다(23 이하). ======= 모세의 출생(출 2:1-4) 모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레위인이었다. 야곱은 레위가 치욕의 상황에 처할 것을 예언했다(창 49:5). 그런데 그 후 모세는 레위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은 허물 많은 육신의 모양을 입으시고, 우리로 인해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레위 지파는 모세의 출생으로 다른 지파와 구별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게 되었다. 이 갓난아기에 대해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모세는 어떻게 숨겨졌는가? 히브리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잔인한 법이 제정된 것은 바로 모세가 태어날 당시였다. 그래서 많은 어린 사내아이가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세의 양친에게는 모세보다 나이가 많은 미리암과 아론이 있었는데, 그들은 살생의 법이 선포되기 전에 태어나 별 위험 없이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롭게 세상에 태어난 자들은 그들이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그들이 부딪힐 역경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모세의 어머니는 그의 출생을 앞두고 근심에 싸여 있었다. 살생의 법이 발효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태하지 못한 자가 복이 있도다” 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눅 23:29).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살인자에게 내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나았을 것이다(호 9:13). 그러나 이 아기는 후일 그 아비의 집에 영광이 되었다. 이와 같이 때때로 가장 큰 근심거리가 결국에는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하심을 보라. 바로 왕의 포악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비로소 구원자가 태어난 것이다. 인간이 교회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교회의 구원을 예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명심하자. 후일에 이스라엘을 이 속박의 소굴에서 이끌어 내게 될 모세는 압제자의 광포한 희생 제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그 살인자들의 손에서 그의 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해 거룩한 열심으로 더욱 힘을 얻도록 한 것일 뿐이다. 1. 모세의 부모는 그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아이임을 알았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아이였다(행 7:20). 그들은 이 아이가 보통 아이와는 달리 얼굴에 광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 과연 얼굴에 빛이 있었다(34:29).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위대한 역사를 대행하도록 계획하신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사의 보증과 자신을 미리 나타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강하게 하셨으며(삿 13:24, 25), 사무엘을 가까이 하셨고(삼상 2:18), 다윗을 구원하셨으며(삼상 17:37), 디모데에게는 어려서부터 같이하셨던 것이다(딤후 3:15). 2. 그러므로 부모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더 큰 정성을 기울였다. 그들은 이것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위대한 일에 대한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적은 은총으로도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즉 섭리자 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암시는 그것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발각된다면 부모의 생명까지도 위험했지만, 그들은 “석 달 동안” 모세를 자신들의 집 은밀한 방에 숨겨 두었다. 여기서의 모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다(마 2:13). 즉 그리스도께서도 수많은 아이들이 학살당했을 때에 기적적으로 보호받으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23절에는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모세를 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모세의 부모가 그들의 자녀 가운데 구원자가 출생할 것이라는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추측한다. 어쨌든 그들은 이스라엘의 보존에 대한 일반적인 약속을 믿었으며, 그 약속을 믿음으로 행동에 옮겼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움 없이 거역하며 아기를 숨겼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은 결코 취소될 수 없다. 그것은 자비를 획득하는 합법적인 방법을 더욱 촉진하게 하는 것이다. 의무는 우리의 몫이요,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사람을 사로잡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해 줄 것이다. Ⅱ. 모세는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석 달이 다 될 무렵 숨겨진 어린아이를 찾는 자들이 사방에 돌아다니자 그들은 더 이상 모세를 숨길 수 없었다(아마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은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가에 놓아두고”(3절) 그의 누이에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게 했다.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 누구의 손에 넘겨지는지 살피도록 한 것이다(4절).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 일을 하게 하셨다. 즉 모세가 바로의 딸의 손에 들어가게 하시고, 나아가 이 절박한 위험에서 그를 구하심으로써 지금처럼 버려진 하나님의 교회를 구원하라는 실례를 보여 주고자 하신 것이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자들을 특별히 보살피셨다(시 147:2). 이들은 그의 버림받은 자들이었다(사 16:4). 모세는 친구들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듯했다. 그의 어머니도 감히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를 붙드셨고 지켜 주신 것이다(시 27:10). 2. 지극히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하는 모험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들이 아이를 감춰야 했던 (객관적 견지에서 보기에는 <기왕이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추어 두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는 바로 그 때에....<오히려, 어찌 보면...무모하게도 보이지만 전심으로 주 여호와 이름 불러 그분께 맡겨드림으로써> 아이를 <강가 갈대 밭에> 버려두기로 결정했다는) 것은...어찌 보면 하나님의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축복 약속 말씀에 어긋나는 일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주를 신뢰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심 아래에서 일어남인> 억압 받는 환경으로 보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면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행할 바 여쭘 통해!!...사람을 두려워 함이 아니다!! 신뢰함으로써 주께 맡겨드림이다 **분명히 개인적으로 말씀하신다!!) 이는 섭리에 따르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험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 모세의 구출(출 2:5-10) Ⅰ. 멸망의 위험에서 모세는 구원을 받았다. 이 위대한 인물이 어렸을 적에 처해 있었던 곳을 보라. 그는 갈대 상자에 담겨 강가에 버려졌다. 만일 그가 그 곳에 계속 놓여 있었다면 틀림없이 곧 굶주려 죽었을 것이다. 물속에 가라앉거나 아니면 악어가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만일 모세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졌다면 곧 바로 물속에 처박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의 공주를 불쌍하게 버려진 아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고 그를 불쌍히 여기게 하셨다. 이것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공주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5, 6절).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백성들은 마음이 완악해져 절망에 처한 어린아이에게조차 연민의 정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일이 보살피시니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큰가!(겔 16:5, 6) 2. 비천한 자의 고통을 알아주고 돌보고 도와주는 일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3. 모세처럼 버림받지는 않았다 해도 어릴 적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위험들로부터 지켜 보호해 주셨던 이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시 22:9, 10). 4. 하나님은 가끔 대적들 중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할 동역자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잔혹하게 멸망시키려 했지만 그의 딸 공주는 히브리인의 아이를 동정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양육하게 되었다. 오! 주여, 당신의 섭리는 참으로 놀라울 뿐이니이다! Ⅱ. 모세는 사랑하는 친어머니를 훌륭한 유모로 제공받았다(7-9절). 바로의 딸은 히브리인을 유모로 두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모세의 누이는 기지를 발휘해 모세의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했다. 아기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친어머니야말로 아기에게는 최상의 유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모세의 어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그녀는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게 되었고, 이제 아무런 공포 없이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기쁨에 도취되어 행복에 겨워했더라면 아기의 친어머니임이 탄로났을지도 모른다(왕상 3:27). Ⅲ. 모세는 바로의 딸의 아들로 발탁되었다(10절). 모세의 부모는 공주를 위해 그를 양육한 것이었지만, 공주의 아들로서 받는 그 영광에 대해 대단히 만족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미소들은 성난 얼굴보다도 우리에게는 더 강한 유혹이어서 거스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친자식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녀 또한 외동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세가 그녀의 아들로 책정되어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모세는 의젓하게 왕관을 쓰고 궁정의 고위층들 앞에 서 있게 되었으며, 뛰어난 학자들로부터 최상의 교육과 지도를 받아 애굽의 모든 학문에 능통하게 되었다고 한다(행 7:22). 다음을 기억해 두자. 1.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어 방백들 중에 세우신다(시 113:7, 8). 태어날 때는 미련하고 가난해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인해 세상의 마지막에서는 상좌에 앉게 되니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줄을”(단 4:26) 알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의 위대하신 역사를 이루도록 미리 계획하신 이들을 찾아내신 다음, 자격을 구비케 하여 준비시킨다. 모세는 궁정에서 받은 교육으로 왕자와 여수룬의 왕이 되기에 적합했다. 궁정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음으로써(당시의 애굽은 그러했다) 역사가(성경 기록)가 되기에도 충분했다. 모세는 애굽 왕국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왕궁에 파견된 전권 대사로서의 자격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Ⅳ. 그의 이름은 모세라고 지어졌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모세가 할례를 받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요아김이라고 이름 지었으나, 바로의 딸이 애굽어로 “물에서 건져진 자”라는 뜻의 모세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대의 율법 수여자를, <다름 아닌> 애굽인이 <이름 짓고, 모세라!!>명명했다는 사실은 이방 세계에 대한 좋은 징후인 것이다. “나의 애굽에 복이 있으라”고 말해질 그 날에 대한 희망을 주는 사건이다(사 19:25). 또한 모세가 궁정에서 교육받은 사실은 이사야 49장 23절 말씀인 “열왕이 너의 양부가 될 것이며 왕비들이 네 유모가 되리라”는 약속 이행의 보증이 된 것이었다. --------- 모세의 살인 사건(출 2:11-15) 모세는 이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바로의 궁전에서 생애의 첫 40년을 보냈다. 바야흐로 이제는 그가 행동으로 옮길 시기가 온 것이다. Ⅰ. 모세는 대담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망을 지지, 옹호하고 나섰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아가 그 고역함을 보았다”(11절)고 했는데, 이 뜻은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모세는 애굽 왕궁의 영화와 쾌락을 감히 멸시하고,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왕궁을 떠났다. 그 유혹은 실로 강한 것이었다. 모세는 소위 출세의 좋은 기회를 쥘 수 있었으며, 또한 왕궁에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었다. 그는 바로의 딸에게 호의와 감사로 순종을 해야 했으나, 마침내 거센 유혹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영예로운 승리를 얻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영예롭고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2. 모세는 속박당하고 있는 불쌍한 동포에게 자상한 관심을 보였다.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쉽게 고난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핍박받는 백성들의 멍에를 보고 동정을 금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같이할 것을 결연히 결심했던 것이다. Ⅱ. 모세는 앞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위해 해야 할 위대한 일에 대한 모범을 두 가지 작은 실례로 보였다. 이것은 그의 열조들이 “항상 성령을 거스렸다”고 했던(행 7:51) 스데반의 말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행 7:23 이하). 또한 모세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타났을 때도,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사역자였던 모세에게 고의적으로 반감을 품었던 것이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지도와 충동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으며, 게다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던 애굽인들을 괴롭혔다. 그 한 예로 모세는 히브리인을 때린 애굽인을 죽인 적이 있었다. 아마 그는 (혹자의 생각대로) 모세의 친척으로 레위 지파에 속하는 히브리인 노예를 학대하던 애굽의 감독 중 하나였을 것이다.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억압받던 그의 형제를 구했던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늘의 뜻이 있었던 일이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어떤 무기로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인 베드로처럼 그 입의 말씀으로 죽였다고 한다. “모세가 그를 모래에 감추었다” 함은 후일 바로와 그의 추종자들이 모세의 권능으로 인해 홍해 바다의 모래 속에 장사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혼자서 이 정의를 실행하려 했던 것은 긴요한 신중함과 조심성을 동반한 하나의 시험적 행동이었을 뿐이다. 아마 아직은 신앙이 미약했으므로 그가 한 일에 대해 약간 주저했을 것이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도 지극히 작은 믿음에서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무서워 떨면서 말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2. 모세는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을 했다. 그 예로 두 히브리인 사이의 다툼을 말리려 했고, 그로 인해 고난을 당했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모세와 두 히브리인 사이의 불미스러운 다툼이 기록되어 있다(13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어쨌든 애굽의 혹심한 억압과 지배를 받을 때에 서로 싸웠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애굽의 매가 부족하여 그들이 서로 때려야만 했다는 말인가? 다음을 명심하자. ①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똑같은 고통을 모두 함께 받아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서로 연합시키지는 못한다. ② 하나님께서 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한 도구를 일으키실 때는, 압제자인 애굽인들을 견제하고 다투는 히브리인들을 화해시키는 일이 생기는 것을 볼 것이다. (2) 모세가 그들을 처리한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잘못을 저지른 자를 따로 세워 놓고 “네가 어찌하여 너의 동료를 치느냐?”고 유순하게 따져 물었다. 남을 해친 애굽인은 죽임을 당했으나, 해친 히브리인은 단지 질책을 받았을 뿐이다. 애굽인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악한 데서 우러난 범죄였으며, 히브리인의 행동은 일시적인 격분에 의해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현명하신 하나님은 모든 현명한 통치자들처럼 하나님 자신의 판단에 따라, 또 동일한 범죄라도 범죄의 성질에 따라 범죄자를 서로 구별하실 수 있다. 모세는 그들을 친구로 삼으려 했다. 그것은 선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다툴 때에 그들을 나무라셨던 것을 알 수 있다(눅 9:46 이하; 22:24 이하). 이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예언자로, 화평케 하는 자로, 또한 모든 원수를 멸망시키기 위해 동포들을 찾아간 모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하나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어찌하여 너의 동포를 해치느냐?”는 모세의 책망은 오늘날까지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동포를 해치는 것은 어떤 경우든 나쁜 일이며, 특히 어떤 박해를 통해서든 어떤 다툼이나 싸움에서든 거친 말이나 손으로 동포를 해치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는 더욱 악한 일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우리가 해친 자들을 생각해 보자! 그는 우리의 동포요 형제요 동료인 그리스도인이며, 우리의 종 곧 고난 받는 동포인 것이다. “어찌하여 해쳤는가”를 생각해 보라! 아마 정당한 이유와 원인이 전혀 없을 것이며, 말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3) 모세의 계획이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누가 너를 우리의 법관으로 삼았느냐?”(14절)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모세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피해를 입은 쪽은 분명히 화해하려 했으나 가해자 쪽은 오히려 화를 냈던 것이다. 책망을 참지 못하는 것은 죄책의 표징이다. 흔히 가해자에게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피해자에게 잘못을 참으라고 설득하는 편이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전 6:7, 8). 모세가 말썽을 부린 히브리인에게 준 책망은 매우 사려깊고 온화했지만, 그 말썽원인자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쓸데없는 저항을 하여 <스스로>상처를 입었고(행 9:5) 자신을 책망하는 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① 그는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 즉 “누가 너로 우리의 법관을 삼았느냐?”고 했다. 우정어린 충고를 하는 데에는 어떤 큰 권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친절한 행위다. 그러나 그는 모세의 우정의 충고를 건방지고도 주제넘은 일로 여겼다. 좋은 충고나 적절한 훈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충고나 훈계를 설교라고 부르려 한다. 그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지지하거나 죄악을 반대하는 어떤 말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양, 모세를 몹시 비난했다. 그러나 모세는 사실상 그들의 왕자와 심판자였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히브리인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자기를 도와 협조할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고집대로 행동했으며, 그를 “밀뜨려” 버린 것이다(행 7:25-27). ② 그는 모세가 애굽인을 죽였던 일을 비난하며 또 “나도 죽이려느냐?”고 대들었다. 최선의 말과 행위가 얼마나 악하게 돌아오는지를 보라! 모세가 꾸짖었다 하여 자신까지 살해하려 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의 죄악을 비난하는 공격을 그의 생명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모세는 애굽인을 살해했기에 충분히 그런 혐의를 받을 수도 있었다. 마치 모세는 애굽인과 히브리인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만약 모세가 피해를 입은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해 애굽인을 살해했다면, 모세는 마땅히 히브리인의 친구다. 또한 비범한 권력과 열성을 가진 친구인 모세에게 복종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히 행한 일이요 약속된 전조였던 모세의 행위에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히브리인들이 그 암시를 깨닫고 모세를 그들의 우두머리, 곧 지도자로 맞이했다면 아마 그들은 그 당시에 해방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자를 저들이 멸시했으므로 저들의 해방은 마땅히 지연되고 저들의 속박은 40년이 더 연장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후에 가나안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된 그 자신들은) 멸시하여 결국 가나안 사람들이 40여 년이 지나서야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어 그 땅에서 쫓아낼 수 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나(여호와)는 원하나 너희는 (해방을) 원치 않는도다.” 신실한 책망과 충고자를 거역하고 멸시하려는 인간은 자기들이 행하는 바를 바로 알지 못하며, 무엇이 그들 자신의 유익에 적이 되는가를 바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히브리인들이 모세와 다투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후 40년 동안 모세에 관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평화의 날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조차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축복의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아마 크게 낙심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감수하고 있었다(히 11:25, 26). 이제 그가 첫 출발에서 고통을 당하고, 동족에게 능욕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결심에 매우 괴로운 시련이 되었다. 아마도 모세는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생각이라면 나는 다시 궁정으로 돌아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첫째, 우리는 몇몇 특정 종교인들의 어리석음과 까다로움으로 하나님의 방법과 그의 백성들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둘째, 교회의 가장 훌륭한 친구들도 그들의 목회와 구원 사업에서 많은 반대와 실망에 부딪히며, 심지어 형제들에게도 공격받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도 건축자들에게서 버림받은 돌이 되셨으며, 지금도 그가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들에게서 여전히 배척받고 있다. (4) 그 결과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갔다. 결국 지금까지 모세를 향한 모욕과 언사는 실로 친절을 베푼 말이 되고 말았다. 즉 모세는 자기가 애굽인을 죽였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것을 깨닫고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의 진노가 불현듯 그를 처치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다툼까지도 그의 백성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세가 애굽인을 죽였다는 정보(이것은 모세의 책망을 받은 그 히브리인의 소행이 아니었음은 다행이다)가 바로에게 전해졌다. 모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므로 모세는 안전을 위해 미디안으로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15절). ①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신중한 생각에서 미디안으로 갔다. 만약 그가 애굽을 버린 것이 사도들의 기록과 같이 믿음으로 된 일이라면(히 11:27),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다하려다가 어려움과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신앙의 은혜는 우리 자신에게 합당한 보존책을 적절히 강구해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27절에는 “그가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본문 14절에는 “그는 두려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모세는 그를 약하게 하고 괴롭히는 망설임과 놀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길을 가야만 한다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품게 했다. ② 하나님은 현명하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그것을 마련하셨다. 상황은 아직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성숙되지 않았다(때가 되지 않았다). 애굽의 죄악의 분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