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1장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무화과나무에게 이르시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무화과나무가 마르다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없음)
===예수의 권위를 두고 말하다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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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1:15-19...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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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 바야보우 예루샬람 바야보 야후슈아 엘-베이트 하미크다쉬 바야헬엘 레가레쉬 미샴 에트-하모크림 베에트- 하코님 바미크다쉬 베에트-쉴라하노트 하쉴하님 베에트-모셰보트 모케레 하요님 하파크))
==@바이_보우<바브-요드, 베이트-알렙-바브(중)> @예루샬람<요드-레이시-바브(중)-쉰(우)-라멛-멤> @바이_보<바브-요드,베이트-알렙> @야후슈아<요드-헤이-바브(중)-쉰-아인> @엘-베이트<알렙-라멛, 베이트-요드-타브> @하미크다쉬<헤이, 멤-코프-달렛-쉰(우) *카도쉬(코프-달렛-바브(상)-쉰(우)..[오직,.사랑으로!!]정화/성별하다> @바이_아헬<바브-요드, 헤이트-라멛> @레_가레쉬<라멛, 김멜-레이시-쉰(우)> @미샴<멤-쉰(우)-멤> @에트-하모크림<알렙-타브, 헤이,멤-바브(상)-카프-레이시, 요드-멤> @베_에트-하코님<바브,알렙-타브, 헤이,코프-바브(상)-눈,요드-멤> @바미크다쉬<베이트,멤-코프-레이시-쉰(우)> @베_에트-쉴라하노트<바브, 알렙-타브, 쉰(우)-라멛-헤이트-눈-바브(상)-타브> @하_쉴라하님<헤이, 쉰(우)-라멛-헤이트-눈,요드-멤> @베_에트-모셰보트<바브, 알렙-타브, 멤-쉰(우)-베이트-바브(상)-타브> @모케레<멤-카프-레이시-요드> @하요님<헤이-요드-바브(상)-눈-요드-멤> @하파크<헤이-페이-쿠프>
....@바이_보우<바브-요드, 베이트-알렙-바브(중)> ..[창1:1,2절 그대로 적용하여 일하고 계심, 그 바탕위에서..] 친히 (말씀)거처이신 Q으로서, (하나되신 아버지와함께, 동심합치의 참믿음으로 반응하는 택자를 Q으로 변화시키려하심)
....@예루샬람<요드-레이시-바브(중)-쉰(우)-라멛-멤> ...'레이쉬(ר)'는 '로쉬'(ראש 머리)를 암시 --으뜸/머리는 지적인 능력, 이성과 지혜의 근원-- [중심 철자들은] 레이시-쉰(우)-라멛, 여기에 요드-바브(중)이 더해지며 그로 인해 그것을 담은 그릇됨이니 ...머리이신 주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부어주사 [동심합치로 그뜻 이루시도록 참믿음으로 반응하며 말씀이신 주님을 붙좇는자마다] 참제자 만드심, 곧 그분 담는 그릇 나타남이 바로 예루살렘이란 뜻..
....@바이_보<바브-요드,베이트-알렙.. *보<베이트-알렙>..들어오고 나가다/출입하다> @야후슈아<요드-헤이-바브(중)-쉰(우)-아인>
....@엘-베이트<알렙-라멛, 베이트-요드-타브> ..예수님 자신이 바로 Q 말씀이시요, 친히 그 말씀 안에 거하시며 일하심으로써 온전케 만드시는 영-생명이시라.
....@하미크다쉬<헤이, 멤-코프-달렛-쉰(우) ..미크다쉬 = 멤+*카도쉬(코프-달렛-바브(상)-쉰(우)..[오직,.사랑으로!!]정화/성별하다> ..곧 ((지고지선의 유익 누림 주고자 하여!!)) 접촉하는 모든 것마다 정화-성별하는, 거룩케 하는 그 진리말씀이시로다.
....@바이_아헬<바브-요드, 헤이트-라멛>..부활생명의 영으로 친히 베푸시는 말씀.. @레_가레쉬<라멛, 김멜-레이시-쉰(우)>..친히 머리되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그 말씀 안에 Q의 모든 것 담아 부으심이라.. @미샴<멤-쉰(우)-멤> ..진리말씀 통해 베푸신 모든 것 담는 진리말씀의 그릇 만드시도다..
....@에트-하모크림<알렙-타브, 헤이,멤-바브(상)-카프-레이시, 요드-멤> ..*모카라<멤-바브(상)-카프-레이시>--모카림<모카라+요드-멤>..진리말씀-곧 그안에 담겨진 부활생명의 그영을 담고 있는- 받고 수용-적용함으로써 그대로 새로이 조성된바, Q의 참생명-관계적 인격에로의 질적변화 온전히 이룬 그릇
....@베_에트-하코님<바브,알렙-타브, 헤이,코프-바브(상)-눈,요드-멤>..Q의 모든 속성/일하시는 모든 내용 = 에트(알렙-타브) *콘<כונ..카프-바브(상)-눈> --코니네하<כוננה..카프-바브(상)-눈-눈-헤이>..수용-적용한바 모든 말씀은 생명, 그 생명의 확장이심..
....@바미크다쉬<베이트,멤-코프-레이시-쉰(우)> 미크다쉬 = 멤+*카도쉬(코프-달렛-바브(상)-쉰(우)..[오직,.사랑으로!!]정화/성별하다> ..곧 ((지고지선의 유익 누림 주고자 하여!!)) 접촉하는 모든 것마다 정화-성별하는, 거룩케 하는 그 진리말씀
....@베_에트-쉴라하노트<바브, 알렙-타브, 쉰(우)-라멛-헤이트-눈-바브(상)-타브 *쉴라흐<쉰(우)-라멛-헤이트..보냄받다>> ..곧, Q의 모든속성 담긴, 보내심 받은 생명이 작동하여 온전케되게 하시도다. ....@하_쉴라하님<헤이, 쉰(우)-라멛-헤이트-눈,요드-멤> ..곧 보내심 받은 생명 담긴 그릇, 진리말씀, 그 자체이심.
....@베_에트-모셰보트<바브, 알렙-타브, 멤-쉰(우)-베이트-바브(상)-타브 *모샤브<멤-바브(상)-쉰(우)-베이트>..Q생명-관계적 인격, 그 모든 것으로 질적변화 온전히 이룬바, 진리말씀의 거처.
....@모케레<멤-카프-레이시-요드> *모카라<멤-바브(상)-카프-레이시>--모카림<모카라+요드-멤>..진리말씀-곧 그안에 담겨진 부활생명의 그영을 담고 있는- 받고 수용-적용함으로써 그대로 새로이 조성된바, Q의 참생명-관계적 인격에로의 질적변화 온전히 이룬 그릇/거처되심
....@하요님<헤이-요드-바브(상)-눈-요드-멤 *요나 "יוֹנָה" ..요드-바브(상)-눈-헤이..= 비둘기..순전함/단순함의 시야로 일편단심/일심으로 목표지향성 가지고 계심> @하파크<헤이-페이-쿠프> ..*하파크<헤이-페이-쿠프>..."보라, 내가 만믈을 새롭게 하노라(계21:5-8), ..새 하늘과 새 땅(계21:1-4)"...(날마다) 새롭게 하시는분..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베로 히니아흐 레이쉬 라쉬에트 켈리 데레크 하미크다쉬))
==베로<바브, 라멛-알렙> 히니아흐<헤이-눈-요드-헤이트> 레_이쉬<라멛,알렙-요드-쉰(우) 라쉬_에트<라멛-쉰(우), 알렙-타브> 켈리<카프-라멛-요드> 데레크<달렛-레이쉬-쿠프> 하_미크다쉬<헤이, 멤-코프-달렛-레이시-쉰(우)
....@베로<바브, 라멛-알렙>..말씀이신 하나님은.. @히니아흐<헤이-눈-요드-헤이트 *노아<=누하..안식..눈-헤이트..>..참 은혜의 실제시요, 안식이시라.. @레_이쉬<라멛,알렙-요드-쉰(우)>..그 말씀은 , 일하시는 Q의 부어주시는바 모든 것 자체라.. @라쉬_에트<라멛-쉰(우), 알렙-타브>..곧, 부어주신 모든것은 다름 아닌, 알렙에서 타브까지 그분의 속성/내용이로다.. @켈리<카프-라멛-요드>..참되게 겸손히 받아-수용.적용함으로써 그대로 조성되고 새겨질바이니... @데레크<달렛-레이쉬-쿠프>...부활생명의 그영, 그분을 모든것 삼고 그분과 연합한 하나 이룸의 실존 나타남 됨이라.. @하_미크다쉬<헤이, 멤-코프-달렛-레이시-쉰(우) ..미크다쉬 = 멤+*카도쉬(코프-달렛-바브(상)-쉰(우)..[오직,.사랑으로!!]정화/성별하다> ..곧 ((지고지선의 유익 누림 주고자 하여!!)) 접촉하는 모든 것마다 정화-성별하는, 거룩케 하는 그 진리말씀따라 그대로 찍어낸 바 됨이로다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바이라메드 바이오메르 라헴 할로 카투브 키 베이티 베이트 테필라))
==바이_라메드<바브-요드, 라멛-멤-달렛> 바이_오메르<바브-요드, 알렙-멤-레이시> 라헴<라멛-헤이-멤> 할로<헤이-라멛-알렙> 카투브<카프, 타브-바브(중)-베이트> 키<카프-요드> 베이티<베이트, 요드-타브-요드> 베이트<베이트,요드-타브> 테필라<타브-페이-라멛-헤이>
....@바이_라메드<바브-요드, 라멛-멤-달렛>.. 말씀, 곧 참길-진리-생명 베푸시는 분으로, 연합한 하나, 부활생명의 그영, 그분을 모든것 삼고 그분과 연합한 하나 이룬 바 될지니.. @바이_오메르<바브-요드, 알렙-멤-레이시>..Q이신 진리말씀 그 자체가 곧 (부활생명의 영이신) 그영이시라. @라헴<라멛-헤이-멤>...말씀은, 동시에 참 생명-호흡-숨결이신 영의 그릇/거처라..@할로<헤이-라멛-알렙> .. 곧, 영이신 Q이 바로 말씀이시라.. @ 카투브<카프, 타브-바브(중)-베이트>..마땅히 겸손하게 기꺼이 받아서 그대로 수용-적용-조성되고 새로이 새겨질지니, 동심합의로 온전케 됨이야말로 거함 이룸, 곧 거처됨이라.. @키<카프-요드> 바로 그렇게 조성되고 행하라.. @베이티<베이트, 요드-타브-요드>...바로 그리 행하여 거처됨 온전히 이루라.. @베이트<베이트,요드-타브>..거처됨으로써 또한, 온전케 되라.. @테필라<타브-페이-라멛-헤이> ..말씀 드린 바 온전히 그대로 이룬 참제자의 실제 되라((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바이-셰므우 하쑈페림 베라셰이 하코하님 바이트니켈루 오토 레하셰미도 키 요르우 미파나이브 야안 아쉬르 콜-하암 미셰토메밈 알-토라토))
==바이-셰므우<바브-요드, 쉰(우)-멤-아인-바브(중)> 하쏘페림<헤이, 싸멕-바브(상)-페이-레이시-요드-멤> 베_라셰이<바브,레이시-알렙-쉰(우)-요드> 하코하님<헤이-카프-헤이-눈-요드-멤> 바이_트니켈루<바브-요드, 타브-눈-카프-라멛-바브-(중)> 오토<알렙-타브-바브(상)> 레하셰미도<라멛-헤이-쉰(우)-멤-요드-달렛-바브(상)> 키<카프-요드> 요르우<요드-레이시-알렙-바브(중)> 미파나이브<멤-페이-눈-요드-바브> 야안<요드-아인-눈> 아쉬르 콜-하암<카프-라멛-, 헤이-아인-멤> 미셰토메밈<멤-쉰(우)-타브-바브(상)--멤-멤-요드-멤> 알-토라토<아인-라멛, 타브-바브(상)-레이시-타브-바브(상)>
....@바이-셰므우<바브-요드, 쉰(우)-멤-아인-바브(중) *셰마/쉐마<쉰(우)-멤-아인..들으라/듣고 순종하라/청종하라...동심합치의 믿음 발휘하여!!>.. @하쏘페림<헤이, 싸멕-바브(상)-페이-레이시-요드-멤 **쏘페르=서기관(סֹפֵר)...싸멕-페이-레이시..보좌에 계신, 그영의 말씀하심의 기록>..Q이 진정 원하시는바, 택자마다 주관적 데바르의 말씀 새김판으로서, 구주의 어떠하심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베_라셰이<바브,레이시-알렙-쉰(우)-요드 **로쉬=머리(ראש)..레이시-알렙-쉰(우)..지적인 능력, 이성과 지혜의 근원=유일무이의 .'으뜸/시작/우두머리/지도자'> @하코하님<헤이-카프-헤이-눈-요드-멤 **코헨=제사장..(כהן) ..카프=헤이-눈 -->코하님(각자마다 진실한 제사장인, 단체적 제사장 무리)
> @바이_트니켈루<바브-요드, 타브-눈-카프-라멛-바브-(중)>..참생명 말씀으로 산출된 제자됨 온전히 이룰지니.. @오토<알렙-타브-바브(상)>..곧 Q의 모든속성과 일하심의 그 내용으로 찍어냄 받은자라.. @레하셰미도<라멛-헤이-쉰(우)-멤-요드-달렛-바브(상) *샤마/솀<쉰(우)-멤>..말씀청종자>..말씀 청종의 그영과 연합한 하나 이룬 참제자 됨 그 말씀을 참되게 배우라.. @키<카프-요드>..그렇게 조성됨으로써 행하라... @요르우<요드-레이시-알렙-바브(중)>..그영 Q을 살라.. @미파나이브<멤-페이-눈-요드-바브>..진리말씀을 , 그 안의 생명 작동하심따라 말하고 그대로 행하라 @야안<요드-아인-눈>..분배받은 말씀이 작동하는바 생명 되시게 하라.. @아쉬르 ...복되도다,,@콜-하암<카프-라멛-, 헤이-아인-멤>..새겨진 말씀, 곧 분배된 생명-호흡-숨결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내는 그릇이여.. @미셰토메밈<멤-쉰(우)-타브-바브(상)--멤-멤-요드-멤>...참생명 확장된 진리말씀의 그릇인바 샤마임이니.. @알-토라토<아인-라멛, 타브-바브(상)-레이시-타브-바브(상)> 분배된 말씀, 그 말씀안의 부활생명의 영을 살도다.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바예히 비아레브 바에체 엘-마후츠 라미르))
==바_예히<바브,요드-헤이-요드> 비아레브<베이트, 아인-레이시-베이트> 바_에체<바브, 요드-체데-알렙> 엘-마후츠<알렙-라멛, 멤-헤이트-바브(중)-체데> 라미르<라멛-아인-요드-레이시>
....@바_예히<바브,요드-헤이-요드>..자존하시는 분, 주님께서.. @비아레브<베이트, 아인-레이시-베이트>..분배되어 오신 참빛, 부활생명의 그영으로 거하시는바.. @바_에체<바브, 요드-체데-알렙>..곧 낮에는 드러나게(밤에도 쉼없이, 조용히) 일하시는 분, 의로우신 Q이시니.. @엘-마후츠<알렙-라멛, 멤-헤이트-바브(중)-체데> ..[동심합치로] (옛존재를 처리하시는) 진리말씀이시라.. @라미르<라멛-아인-요드-레이시>..동시에 새 생명을 발아케 하시는 말씀, 곧 부활생명의 영이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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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장 (개요)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시고 큰 사건이 일어났던 주간인 수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Ⅰ.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심(1-11).
Ⅱ. 그리스도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12-14).
Ⅲ.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추방하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심(15-19).
Ⅳ.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경우를 당하여 신앙의 능력과 기도의 효능에 대하여 제자들과 대화하심(20-26).
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권세에 대해 질문하는 자들에게 대답하심(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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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막 11:1-1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당하시기 사오일 전에 예루살렘성에 공공연히 입성하시는 기사를 여기에서 접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가까웠을 때에 드러나게 마을에 들리시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일을 보여 준다.
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원수들의 권세와 악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자와 같이 익명으로 몰래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않으셨다. 결코 그러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를 찾는 탐정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예수께서 스스로 드러나게 나타나신 것이다.
이 사실은 그들의 원수들의 권세와 분노에 겁을 먹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게 되었다.
제자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담대히 그 원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계신가를 보아야 했던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고난을 향하여 접근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도 사기가 떨어지거나 위축되지도 않음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공공연히 입성하시고 계셨을 뿐 아니라 유쾌한 기분과 환호 가운데 입성하시고 계셨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지금 전쟁 마당을 향하고 있고 "갑옷을 입는 자"였으나 완전히 승리를 확신하고 마치 적을 격퇴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진군하고 계신 것이다.
Ⅰ. 외관상으로 볼 때에 이 승리는 대단히 초라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데 그것은 나귀라고 하지만 한심스러울 정도이고 모양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귀새끼로서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이므로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것일 뿐더러 우둔하고 다루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위엄에 대하여 장해가 되고 명예롭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 이 나귀는 빌려온 것이었다. JC께서는 빌린 배를 타시고 물을 건너다니시고, 빌린 다락방에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었고, 빌린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고 지금 여기에서 빌린 나귀를 타고 가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은혜를 끼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좋은 안장도 없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등에 깔았고 예수께서 그위에 타시었다(7절).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공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자기 겉옷과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그리스도를 환영하였는데 이런 방식은 그들이 초막절 때에 시행하여 왔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그의 겸손의 표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겸손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는 교훈을 친히 가르쳐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자리를 취하려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는가를 이미 말씀하셨다.
Ⅱ. 이 승리는 내부적으로 대단히 위대한 것이다.
이것들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외에도(마태복음에서는 밝히고 있음) 이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실 가운데서도 몇 줄기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빌리러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먼데 떨어져 있는 사물에 대한 그의 지식과 인간들의 의지에 대한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1-3절).
이 사실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일들을 하실 수 있고 그에게서 아무 생각도 숨길 수 없음을 나타내 보여 주고 계셨다.
2.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다른 피조물이 인간에게 복종함은 바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함을 뜻하는 것이다(시 8:5, 6; 히 2:8 과 비교해 보라). 왜냐하면 본래적 의미에서 보면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중재로 인해, 이 저속한 세상의 통치에 대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창 1:28).
그리고 아마 그리스도께서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써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와 같은" 인간들의 심령에 그의 능력의 그림자를 던져 주었을 것이다(욥 11:12).
3. 그 나귀는 두 길이 만나는 곳(where two ways meet)(4절)에서 끌고 왔다.
이 사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두 길 앞에 서서 잘못된 길로 가기 쉬운 인간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보여 주시는 듯하다.
4.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호산나 찬송을 받으시었다.
이 호산나 찬미의 의미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환영함과 동시에 그의 왕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두 가지이다.(9절).
호산나를 외치도록 그들의 마음에 이 찬미를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에, 훗날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것 같이 인간의 계교와 충동질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리들의 신앙과 찬미에 의하여 스스로 영광을 받으실 것을 미리 생각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의도를 넘어서 이렇게 존귀를 그리스도께 돌리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1)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환영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약속되어 왔고 오랜 기간 기다려 오던 하나님의 사신으로 세상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호산나 찬송하리로다"(9절).
주께서는 우리의 큰 환호와 최대의 사랑을 받으심이 마땅하다. 그는 찬송 받으실 구세주이시며 우리에게 하늘의 축복을 가져오신 것이다.
또한 구주를 보내신 하나님께 찬송할지로다 !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모든 족속과 모든 세대가 마땅히 그를 복되다라고 외칠지어다. 그리고 그를 높고 영광 받으실 분으로 생각하고 말할지어다 !
(2) 그들은 그리스도의 뜻하시는 바가 잘 성취되기를 기원하였다.
그들은 비록 지금 그리스도께서 초라한 모습으로 입성하시나 그의 왕국이 있으며 곧 그의 조상 다윗의 왕국과 같이 이 땅에 그 나라가 수립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 왕국은 다윗과 그 자손들을 위해 영원히 존속할 것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이 왕국은 "주의 이름으로" 임하며 하나님의 권세에 의해 수립되는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
이 나라여 터를 잡으라. 기초를 닦으라. 그 능력으로 이 나라가 임하리라.
모든 반대하는 법률과 원리와 세력은 무너지고 정복당하리라. 그 나라가 정복하리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이 나라여. 그 나라에 번영이 있을지로다. 모든 행운이 이 나라를 돌보리라.
호산나에 대한 알맞은 의미는 요한계시록 7장 10절에 찾아볼 수 있으니 이르기를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신앙의 승리는 자연과 계시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인 것이다.
지극히 높은 보좌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우리의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그의 천사들에 의해서 찬송을 받으시며 그들에게 화답하여 우리의 호산나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그렇게 환영을 받으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입성하시어 성전으로 향하여 가시었다.
여기에는 그를 환대하기 위한 연회가 준비되지 않았고 약소한 다과도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의 일을 착수하시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양식이요 음료였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성경에 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는 성전으로 들어가시었다.
이 전에 아무런 통고도 없이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니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다"(말 3:1, 2).
그는 성전에 들러 모든 것을 살펴보시었다(11절).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아직 아무 말 없이 나가시었다.
그는 성전에서 많은 무질서함을 보시었지만 침묵을 지키시었다(시 50:21).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나무랄 생각이 계셨지만 갑자 기이 모든 일을 단행하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주께서 이 날밤에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물러나오고 다음날 그 성전에 혁신을 요하는 일을 몸소 단행하시려 생각하시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죄악을 보시고 계시지만 그가 곧장 모든 일을 처리하거나 축출해 버리시지는 않음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안에서 모든 것을 살펴보시고 주목하신 것이 있지만 그날 밤에는 베다니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쉬시러 가시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예루살렘보다 조용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분을 추종하는 당파를 계획한다는 의심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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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의 부정적인 사건(막 11:12-25)
Ⅰ. 그리스도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JC께서 베다니에서 한 밤을 편히 쉬시고 그 곳으로부터 나오시는 길이었는데, 지금 예루살렘에는 자기의 하실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일할 때가 되어 그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는 베다니에서 아침도 들지 않고 출발하신 것이며 많이 걸으신 후에야 시장함을 느끼시었다(12절).
왜냐하면 그는 죄 없으시지만 우리와 같은 약한 몸의 본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장함을 느끼고 멀리 떨어져 있는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었는데 잎이 무성하여 열매가 많이 있을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가보시고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아시게 되었다.
그는 얼마의 열매를 얻으리라 바랐던 것이다. 아직 무화과를 거둘 때는 안 되었지만 무화과를 거둘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나무가 열매가 있는 것처럼 자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때가 아니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무 열매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또한 이 때는 어쩌면 무화과가 풍년이 든 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다른 무화과나무보다 더욱 나쁜 상태였다.
왜냐하면 잎사귀는 무성하였지만 무화과는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들어 교훈하시려 한 것은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그 세대의 인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최초의 축복인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0)신 축복에 반대의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
"이제부터는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14절).
사사기 9장 11절에 요담의 비유 발언에 보자면 무화과의 영광에 대하여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라고 표현하였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대한 겸손한 봉사와 나무들 위에 뛰어난 탁월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무화과나무가 그 영광을 잃고 저주를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오셔서 열매를 찾으셨으나 얻지 못한(눅 13:6, 7) 유대교의 운명에 대한 상징을 의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유에서 나타난 운명처럼 즉시 베어지지는 않았지만 역사에 있어서 이와 같이 저들은 눈멀고 완악한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롬 11:8, 25).
그러므로 그들은 그후로 아무 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나무에 대하여 무슨 말로 저주하시는가를 듣고 주시하였다.
축복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저주의 말씀도 주의하여 듣고 마음에 기억해야 한다.
Ⅱ. 그리스도께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그 곳에 늘어선 자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어 깨끗하게 하시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화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 다른 곳에서 음식을 얻으셨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그를 삼켜버려 그 자신을 잊어버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전히 시장하시었지만 예루살렘으로 곧장 올라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시어 전날에 지목하였던 잘못들에 대하여 개혁을 단행하였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롬 11:26).
JC께서는 고소자들이 거짓 증언을 한 것처럼 성전을 헐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정결케 하시기 위해 오시었고 자기의 교회를 원래의 진실된 자리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오시었다.
1.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15절).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기를 권세 있는 자와 같이, 아들이 자기 집에서 하는 것 같이 단행하시었다.
시온의 딸들의 부정이 정결케 되는 것은 힘으로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심판의 영과 불타오르는 영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감행하시는데 아무런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신 이 혁신은 옳고 선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일에 정죄를 당하고 면책을 당한 사람들의 양심에 있어서까지 옳게 여겨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들이 이렇게 하여서 돈벌이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열심 있는 개혁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 부패를 자주 추방하여 정화시키고, 잘못을 바로 잡고, 이해하는 것보다 단 한가지의 쉬운 일이라도 더 증거하게 될 것이다.
신중한 시도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때때로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두려움을 주는 사자들을 발견치 못할 것이다.
2. 예수께서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셨다"(16절).
어느 기구나 상품이나 물건을 성전 안으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성전 안으로 통행하면 가깝고 노동력을 절약하기 때문에 그리로 통행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집단 수용소를 만들거나 이방인들의 뜰을 삼거나 길이나 통로를 삼거나 어떤 곡식단을 들고 다니는 것 등은 성전에서 존귀케 하는 예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이것에 대하여 좋은 이유를 제시하시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17절).
이 말씀은 이사야 56장 7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성전은 그러한 목적 아래에서 만민에게 허용될 것이다.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 이 목적은 첫 번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그러하였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하였다(왕상 8:41-43).
그리고 성전에 대하여 더욱 높은 차원으로 예언을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적 교회의 모양으로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시었다.
(1) "기도하는 집."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제물로 쓰는 소와 비둘기를 몰아내고 성전을 가리켜 "기도하는 집"으로 진리를 상기시켰다.
즉 모든 희생 제물은 사라질지라도 기도와 찬미의 신령한 희생 제물은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교훈하신 것이다.
(2) 성전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으리"니 육신으로 야곱의 혈통에서 나지 않은 자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음"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초정하는 만민들에 대하여 편견을 갖는 것은 강도의 행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 초기에 예루살렘방문시에는 비둘기 파는 자들과 사는 자들이 쫓아내시며 성전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나무라셨었다(요 2:16).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으로 "강도의 굴혈을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공생애중 예루살렘 첫방문 이후로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두 번이나 돌로 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요 8:59; 10:31).
또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이 강제로 떠맡기는 일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강도의 굴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속적인 생각들이 그들의 안에 거하도록 허용하는 자들은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자들이다.
과부의 집을 삼킬 듯이 길게 기도하는 자들도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것이다.
4.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이 일에 몹시 당황하였다(18절).
그들은 그를 미워하였고 그에 의하여 혁신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권세를 올바르게 활용치 못하고 남용하였음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의자도 집어던지고 내어쫓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큰 흥미를 가지고 있고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며" 그가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하나의 법이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그토록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가 감히 시도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며 그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그와 더불어 화친하느냐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를 꾀하였던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결사적인 획책기도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으로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세와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려 하였던 것이다.
Ⅲ.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경우를 당해 당신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심.
날이 저물매 그리스도께서는 평일과 같이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갔다.
그러나 아마 날이 어두웠으니 그들은 그 무화과나무를 못보고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들이 그곳으로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았다(20절).
그리스도의 저주는 그 표현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때가 많은 것이다.
그 저주는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 효과는 더욱 켰다.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이다.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이제 그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잎사귀도 내지 못할 것이다.
1. 이 사실에 대하여 제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가?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놀라 말하기를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절)하였다.
그리스도의 저주는 놀랄 만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푸른 월계수와 같이 무성한 나무를 곧 말라죽게 하였다.
그가 저주한 사람은 참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 이것은 유대교의 성격과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유대교는 그후로 뿌리로부터 마른 나무격이 된 것이다.
마른나무는 열매맺기에 적합하지 못하고 연료에나 알맞은 것이다.
레위족속의 처음 제사장직의 수립은 마른 지팡이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재가를 얻고 확고하게 된 것이다.
그 마른 지팡이가 하루밤새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민 17:8).
제사장직에 대한 열매의 풍성함과 무성함에 대한 행운의 징조였다.
그런데 지금 대조적인 기적으로 말미암아 무성한 나무가 하루밤 사이에 말라 죽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제사장직의 만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 제사장직을 남용한 그 제사장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제자들에게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상스럽게 보였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정하는 유일한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이 그렇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 무화과 나무가 그렇게 쉽게 말라버리는가에 대해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버리는데서 비롯되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들이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2. 이 사실로부터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시었다.
(1) 그리스도께서 이 후로는 믿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심(22절).
"하나님을 믿으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의 말씀에 대한 능력을 찬양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생기 있는 활동적인 신앙은 그들의 기도에 큰 능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3, 24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통하여 가장 큰 고난도 극복될 수 있으며 그 일들이 해결될 수 있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시지 않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절) 하시었다.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시었다(23, 24절).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①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
사도들과 초대 복음 전도자들에게 부여되었던 기적적인 신앙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마귀를 추방하는 등의 자연의 일들에 있어서 기적을 행한 것이며 이 신앙은 산을 옮기는 효력을 나타낸다.
지금 여기에서 사도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생생하게 발휘되는 그런 신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그런 신앙안에도 때때로 거룩한 사랑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음, 곧 참사랑이 결핍된 심령상태에서라도 믿음의 기적이 나타날 수는 있음이다.(고전 13:2)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신앙의 그 근본동기는 오직 JC의 바로 그 사랑으로 말미암도록, 당신의 사랑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주님안에 거하는 것이 더 우선순위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② 신앙의 기적.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 = 생각도 상상도 하지못할 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안의 비가시적인 것들을 당장 내눈앞에 나타나보이는 것처럼 실제로 여긴 바, 그 바탕위에서 믿음으로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정말 그러하다"고 입증해 주사, 나타내시는 기적>]
이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되며 이는 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기적을 나타내는 것dlek.
이 신앙은 우리를 의롭게 하며(롬 5:1) 죄의 산들을 옮겨 바다 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다시 떠올라 우리를 향하여 심판할 수 없는 것이다(미 7:19).
그 신앙은 우리의 심령을 정결케 하며(행 15:9), 부패의 산들을 옮겨 하나님의 은혜 앞에 평지가 되게 한다(슥 4:7).
세상을 정복하고 사탄의 맹렬한 공격을 무력하게 하며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사는 일도 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또한 신앙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항상 우리 앞에 계시게 하며, 보이지 않으시는 그를 보는 것이며, 그리고 그가 우리 마음속에 계시게 하는 것이다.
이 신앙이 산을 옮기는 효력을 지닌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임재 앞에서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산들은 요동할 뿐더러 옮겨지기 때문이다(시 114:4-7).
(2) 이 신앙에다 여기에서 승리의 기도에 대한 필요한 자격을 첨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혐의가 있는 자들을 우리가 용서해 주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는 것이다(25, 26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일어서는 것은 기도에 적당한 태도가 못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기도를 가리켜 그들이 서 있다고 한다.
그들이 기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보존된다고 말할 때에 세상은 일어섬으로 보존된다고 표현한다(The world is upheld by standings).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무릎을 꿇는 더욱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주일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특별히 금식의 날들이면 그러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우리의 원수들이나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원수들에게 악을 행하고 그들이 불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도록 기도한 우리의 기도는 진실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 드리기 전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우리는 가서 그들과 화목하도록 해야 한다(마 5:23, 24).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우리는 곧 그들에게 찾아가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① 이렇게 행하는 것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마땅한 길이기 때문이다.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25절).
이 말씀은 "너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니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에 손상됨이 없이 너희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려면 그렇게 해야된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야 될 그런 자들을 괴롭게 하신다면 그것은 죄를 사해 주시는 모범이 되기에 적합할 수 없는 것이다."
② 이 용서의 결핍은 우리의 죄 사함을 받는 일에 있어서 확실한 장해가 되는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만일에 너희가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그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가지며 모든 기회를 다 이용하여 그들을 욕한다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 주tl지 않으리라."
기도할 때에 이 일을 꼭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늘 보좌를 행하여 아뢰어야 할 한 가지 큰 사실은 우리의 죄 사함 받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일상적인 관심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의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이 일에 대하여 자주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게 하는 일이 주님의 큰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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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시비(막 11:27-33)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산헤드린공회에 의하여 그가 어떤 권세를 가졌는지에 대하여 시험을 당하신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지자들을 불러 그들의 임무에 대하여 물을 권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관습에 따라 그들이 가르칠 때에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말하곤 했었다.
성전 뜰에 있는 길이나 광장은 이 목적에 적합한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주의 깊게 그의 말을 듣는 것을 보고 초조하였다.
그러므로 약간의 위엄을 띄우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궁지에 빠뜨리려고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29절)하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서 이하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Ⅰ. 그들은 예수로 하여금 좌초케 하여 당황하게 만들려고 계획을 하였다.
만일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계획을 관철시켜 그가 하는 일은 합법적인 선교가 아니고 정당 권세를 부여받지 못하였으니 그가 비록 자격을 갖추었고 유익한 설교를 잘할 수 있더라도 그의 말을 듣지 말라고 백성들을 설득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완고한 불신앙에 대한 마지막 구실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교훈을 듣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고 그들은 그의 임무에서 어떤 흠을 찾아 그것을 무효하게 하려고 결심을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에 그것이 그들의 법정에서 나왔고 인준된 것이 아니면 그렇게 하려고 꾀하였던 것이다.
천주교도들은 우리 목사들의 선교에 대해 우리와 더불어 많은 논쟁을 벌이려고 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내 뱉을 만큼 이야기하고는 비록 성서의 진리는 우리편에 있는데도 자기네가 우세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가로서 행동하거나 사역자로서 하거나간에 누구나 거기에 합당한 좋은 대답을 할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바, 자문 자답을 통해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내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는건가?" 그러므로 "보냄을 받지 않고 어떻게 전파할 수 있으리요?"
"그들이 권세를 받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위로와 신념과 성공의 소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겠는가?"(렘 23:32).
Ⅱ. 예수께서 다음의 질문으로 효과적으로 그들을 좌초케 하고 당황하게 하였다.
"너희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요한이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요한이 무슨 권세로 설교하고 세례를 베풀고 제자들을 모았느냐?" "내게 대답하라"(30절).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반문하심으로써 우리 주님은 당신의 교훈과 세례가 얼마나 세례 요한의 것과 가깝다는 것을 암시하시었다.
그들은 둘 다 천국 복음을 소개하고 전파함에 있어서 동일한 근원과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성향을 가진 것이다.
그들은 요한을 조사하기 위해 그 위원들을 보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질문을 그들에게 던지심이 더욱 합당하였을 것이다(요 1:19).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세례 요한을 조사한 결과가 어떠하였느냐?"고 물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하늘에서 보냄을 받은 자라고 생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지금 무어라고 대답해야 하느냐인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대로 말해야만 할 인간들로서 그들은 스스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만일에 그들이 사실대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곧 그들에게 향하여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그리고 그의 세례를 받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하심에 대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은 그들의 양심의 소리를 견디기 어려웠다.
양심은 그들을 조이고 침묵케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의 소리는 비록 그것이 그들에게 약간 체면과 감정을 상할지라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나름대로 그들은 이 일을 잘 처리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삼상 15:30) 한 사울의 한계를 더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2. 만일 그들이 "요한의 세례가 사람의 것이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그의 교훈과 세례가 그 자신의 창작이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자기들을 드러내게 되어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 모른다.
아마 적어도 그들에게 대하여 소란을 피울 것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육적인 비열한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악한 종들에게나 악한 지배자들에게 다같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떤 질서 가운데 보존하고 폭력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의 권력으로 더욱 창대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궁지에 밀어 넣은 것이다.
(1)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후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모르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33절).
자부심이 강한 그들이 모른다고 한 것은 그들의 심각한 입장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최악과 고집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혜로 이루신 일에 우리는 정성을 다해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벧전 2:15)일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더욱 영광스러운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무모한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거절하심으로 스스로를 정당하게 하시었다.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33절).
그들은 대답을 얻을 만한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로 만족하지 못하고 승리로만 만족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께서 그들에게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가 행하신 일은 하나님에게서 허락하신 권세로 말미암는 것임을 이미 분명히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가 행하신 그런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3, 4일만 기다려 보면 그의 부활이 곧 그에게 권세를 주셨는지 증거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사실이 그가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버리는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원수 됨을 선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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