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및 공동서신
@@1차전도여행후(안디옥..공의회 참석 위해 예루살렘으로 출발 직전..AD49).갈라디아서[이신칭의 획증] ==> 2차전도여행중(고린도 체류중..AD52)데살로니가전후서 ==>.3차전도여행중(에베소 체류중...AD55~58).고린도전후서/3차전도여행중(고린도 떠나기 직전..AD57~58)로마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가이사랴(2년 체류) 거쳐서 로마로 이송...로마감옥(1차수감중..AD60~62)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 ==>.석방후 (여행중..AD63~66)디모데전서/디도서.==>..로마감옥(2차수감중..A67-68.)디모데후서/히브리서...CF>베드로전후서(바빌론 체류시..AD67년 순교전 )..야고보서(AD44이전), 유다서(AD67이전, 또는 AD70-85년사이), 요일이삼서(에베소..AD90-91년).
-목 차-
I. 서 론
A. 바울의 회심(A.D.35)
B. 제1차 전도여행(A.D.46-48)
C. 예루살렘 총회(A.D.49)
D. 제2차 전도여행(A.D.50-52)
E. 제3차 전도여행(A.D.53-58)
F. 결박과 순교(A.D.59-67/68)
II. 각 서신의 개론
A. 갈라디아서
B. 데살로니가 전서
C. 데살로니가 후서
D. 고린도 전서
E. 고린도 후서
F. 로마서
G. 골로새서
H. 빌레몬서
I. 에베소서
J. 빌립보서
K. 디모데 전서
L. 디도서
M. 디모데 후서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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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바울의 서신서를 알기 위해서는 바울과 그의 전도여행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본 서론에서는 바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의 전도여행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쫓아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본론부에서는 각 서신서들을 바울이 기록한 연대순으로 하여 정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론에서 서술되어질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 바울서신의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1.1. 바울의 회심(A.D.35)
바울서신의 저자인 바울은 당시에 매우 번성하고 교육의 중심지인 다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상속받았으며(행22:25-28), 다소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행21:39). 또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율법주의자였다. 이 열심으로 그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전15:9; 갈1:13,23).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을 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돌아와 다메섹 근처에서 (도합)3년을 지낸 그는 [홀로, 개인적으로..회심후 첫번째방문]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15일 동안 머물렀다(행9:22-26;갈1:18..베드로,야고보를 만남 : 예루살렘에서 복음전도하다가 헬라파유대인들의 살해음모를 눈치 챈 성도들에 의해 가리사랴로 이동, 그후 다소로 이동). 고향인 다소로 가서 잠시(약10여년) 머물렀다가 시리아 안디옥으로 가서<바나바가 와서 데리고 감> 1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흉년을 맞은 예루살렘교회에 구제금품을 전달하러 올라오게 되었고 [2번째 예루살렘 방문...성전에서 3층천의 황홀경에 들어간 듯함, 이 때 황홀경중 환상속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받은 것으로 추정함...**[고후12:1-10.삼층천 경험]고린도후서는 AD57년 가을~58년 봄 사이에 에베소에서 쓴 것이기에, 대체로 AD43~44사이에 예루살렘방문중 성전에서 환상중 경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 때 흉년으로 인한 부조금을 예루살렘에 전달하러 갔었다... ]
그후, 안디옥으로 복귀한 다음, 이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지시하심따라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임명 받아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행11:27-30; 12:25).
1.2. 제1차 전도여행(A.D.46-48)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의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의 살라미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구브로 섬의 서부 지역인 바보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다(행13:4-12). 이곳의 전도 이후부터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한다.[바보의 총독 서기오바울 만난 기념 + 마술사 엘루마의 시력상실 사건]
바울과 그 일행이 배를 타고 버가(소아시아)에 도착한 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13:13).
바울과 바나바는 내륙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이곳에서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유대교로 개종한 귀부인등과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고 반대-대적-박해함 통해)유대인들이 박해를 하여, 이고니온으로 갔고(거기에서상대적으로 오래 머물렀음 :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여 루스드라로 이동), 루스드라로 가게 되었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지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울을 쫓아 나선 유대인들의 방해로 더베로 갔다(행14:19). 더베를 방문하여 많은 결실을 거둔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복귀하기로 결정) 이전에 그들이 전도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안디옥에 들어가서 그들을 다시 격려한 후(행14:20-23...각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움),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버가에서 복음을 전한 후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1.3. 예루살렘 총회(A.D.49)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행15:1). 이 같은 문제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이 총회에서 이방인 성도들이 최소한의 몇 가지만 삼가해 줄 것을 결정하고(행15:19-21,28,29), 바울과 바나바, 바사바와 유다와 실라를 통하여 이방 교회에 전달하도록 하였다(행15:22). 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으로 [3번째 예루살렘 방문]가던 중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본다(A.D.49).
1.4. 제2차 전도여행(A.D.50-52)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해 주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다(행15:30-36). 이들은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남부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버가에서 헤어진 마가와 동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구브로) 근방으로 떠났으며(행4:36), 바울 역시 자기 고향(길리기아 다소) 쪽으로 향하였다. 이때부터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실라와 함께 하였으며,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였다(16:1-3).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 이르러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드로아로 갔다(행6:6). 다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네압볼리로 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였다(행16:6-12).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에서 나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행17:1).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을 전도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로 쫓겨났다.
밤에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가서 전도를 한 후(행17:10), 아덴에 가 그곳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설교를 한다(행17:22). 이후에 아덴을 떠나(디모데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상황을 살펴보고 오라고 부탁) 고린도에 이르러 일년 육개월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복귀한 디모데로 부터 데살로니가교회 상황을 전해 듣고 고린도에서]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보냈다(A.D.52). 고린도에서 또다시 반대에 직면하여[바울을 갈리오총독앞에 고소하였으나 무시당하자 소스데네를 법정, 갈리오앞에서 무리들이 폭행함]겐그레아(고린도교회를 겐그레아교회라고도 함)를 거쳐서 에베소에 갔다가[아굴라부부를 머무르게 함] 잠시 전도한 후 [유월절절기에 맞추어] 배를 타고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하여 예루살렘에 나아가[4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곧바로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행18:21,22).
1.5. 제3차 전도여행(A.D.53-58)
안디옥에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다가(행18:23), 에베소로 가서 전도하였는데(행19:1-41), 이곳 에베소에서(3개월+2년 체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개의 서신을 썼다(A.D.55-58). 데메드리오의 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와 헬라의 아가야(고린도...3개월 체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행20:1-5). 바로 이때에 이 지방에 있는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에 로마서를 써 보내었다(A.D.57/58).
무교절 후에 바울은 빌립보에서[누가가 합류 동행]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이레 동안 머물며 강론을 하였다(행20:6-12). 이 후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하였다(행20:13-16). 이곳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을 하고(행20:17-38), 행선하여 제자들의 반대에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행21:1-17). 둘레마이에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하루를 묵은 후 가이사랴에 이르러 빌립의 집에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로부터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듣지만 계속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마지막이자 5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여 '형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행21:1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결예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 안뜰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말로 군중을 충동하여 바울은 심하게 폭행을 당하였다(행21:28-29). 이 때 로마군 천부장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왔다. 그러나 바울의 고발당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천부장은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 앞에 데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행22:30).
1.6. 결박과 순교(A.D.59-67/68)
대제사장과 몇몇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첫 재판을 한 후 재판을 연기한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연기하였다(행24:27..2년간 가이사랴 체류). 이후 유대인들은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에게 로마로 건너가 네로 황제(가이사 행25:7-12)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베스도 총독은 상소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하여 헤롯 아그립바2세를 불러 도움을 구했다(행25:26-27).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행은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 상륙을 하기도 한다(행27:14-28:1).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무사히 로마까지 도착하게 되었다(행28:11-14).
이 로마감옥의 첫 투옥 때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옥중서신을 보내었다(A.D.60-62). 그 후 다시 석방이 되어 자유롭게 마지막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보냈다(A.D.63-65). 그러다 갑작스럽게 로마의 감옥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서신[또한 마지막 옥중서신으로 봄]인 디모데 후서를 보내었다(A.D.67/68).
바울은 네로 황제시대 때 순교를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년도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주후 67년으로 잡고, 교부 제롬은 주후68년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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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각 서신의 개론
2.1. 갈라디아서
2.1.1. 배경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이방인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행13:1-3;14:25-27). 그 소식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유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원을 얻는 데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믿음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고 곧 유대적 의식들, 특히 할례도 역시 불가결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방인들의 회개 소식에 항의를 하였다(행15:1). 이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를 누비면서 이방인들도 구원의 한 방법으로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사도의 직분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며 따라서 바울의 복음은 간접적으로 전수된 것이며 그는 단순히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힘쓰며 만약 조건만 부합하면 자신도 할례를 전한다고 주장함으로 바울의 신뢰성에 도전을하였다.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의 소리에 갈라디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자 바울은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2.1.2. 저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본서에서 기록자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다(1:1). 그러나 튜빙겐 학파와 부르노 바우어, 로만, 피어슨, 나벨 그리고 반 마엔 등이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주관적 추론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에 그친다.
유세비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그리고 이레니우스 등은 자신들의 서신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초대교회의 인물들이 본서를 저자를 바울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서가 저자를 바울임을 자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은 매우 인간적이며 전체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사람"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다소의 바울이다.
2.1.3. 수신지
본서 3:1을 보면 본 서신의 수신자들을 갈라디아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인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로 요약할 수 있다.
2.1.3.1. 북갈라디아설
갈라디아는 지리적인 위치로 볼 때 로마령인 갈라디아의 북쪽 지역으로 바울이 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고 갈라디아서는 그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
북갈라디아설은 여러 가지의 증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말의 통속적 사용을 볼 때에 북갈라디아 지역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가 사용한 행13:13,14과 행14:6 그리고 행16:6의 일반적 용법과 남갈라디아 여러 도읍들에 관한 누가의 설명, 행16:6과 행18:23의 의미를 볼 때에 갈라디아란 행정구역이 아니며, 제3차 전도여행 초기에 북쪽 지역을 방문했을 때 세운 교회라고 본다.
그러나 북갈라디아설은 이제 남갈라디아설에 의해 매우 광범위하게 논박되고 있다.
2.1.3.2. 남갈라디아설
이 남갈라디아설은 19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2.1.3.2.1. 사도행전에 그 당시 중요한 논쟁이 있었던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을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을 지지한다.
2.1.3.2.2.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에 갈라디아 교회들을 처음 방문하였다고 하였는데(갈4:13), 이는 건강의 회복기에 있는 환자로서 지형이 매우 험악한 북쪽 지역을 말하기 보다는 남쪽지역일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2.1.3.2.3. 바울은 자기 세운 교회들을 언급할 때 교회가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의 명칭들을 사용하였으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그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교회의 사람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2.1.3.2.4. 바나바의 이름이 갈2장에 세번이나 기록되었는데 이는 그가 남갈라디아 교회들에 개인적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갈라디아설에 대하여는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수신지인 갈라디아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에 남갈라디아설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2.1.4.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저작연대는 수신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먼저 두 견해를 살펴 본 후 저작연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1.4.1. 북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처음의 저작연대는 갈1:6의 타케오스(quickly)라는 단어에 의해 갈라디아를 바울이 방문한 직후에 씌어졌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갈라디아인들의 변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직후에 기록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주장은 갈라디아서가 로마서보다 먼저 씌어졌으며 고린도 후서가 기록된 후에 씌어졌다고 보고 제3차 전도 여행 말기에 고린도에서 보낸 서신으로 보고 있다.
2.1.4.2. 남갈라디아설에 따른 연대
남갈라디아설도 갈4:13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예루살렘 공회 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와 예루살렘 공회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연대에 관한 결정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살펴봄으로써 결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예루살렘 방문에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즉 갈라디아서 2:1-10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 방문이었다는 견해와 갈라디아서 2:1-10이 사도행전 11:30에 나오는 방문과 같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전자의 견해는 전통적인 견해로 두 본문의 유사점을 들어 설명하지만 갈2:1에 나오는 "다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를 방문하기 전에 예루살렘에 두번 방문한 사실은 구제기금을 가지고 방문한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과 사도행전 15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언급된 공회기간에 합의를 보았다는 법령에 관한 것들이 갈라디아서에는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갈라디아서 2:6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더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식사 문제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은 그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한 예루살렘 공회 후에 있은 사건이었다기 보다는 공회 이전이 사건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반박들로 인하여 갈2장과 행15장이 동일하다는 견해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전하는 자로 (바나바와 함께)파송을 받아 예루살렘에 갔었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교제할 것을 권면하였었다. 그러나 그 직후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교제를 나누던 중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피한 일이 있어 바울은 공적 자리에서 이를 책망하였다. (그리고 1차전도여행 후 갈라디아지방 교회들에 유대인 거짓교사들의 책동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들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안디옥 교회에 대표자들을 급히 보내게 하였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는 이러한 일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바울 등 대표자들을 보내고 이 결정을 위하여 회의가 소집된 것으로 본다(행15장).
이와 같은 사정과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볼 때에 본 서신은 바울이 공회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쓰여졌다고 보여지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 연대는 A.D. 49년경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데살로니가전서는 A.D.50년즈음, 2차전도여행중 아테네에서 머무는 동안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음]
2.1.5. 저작동기와 저작목적
동기는 그 당시 율법과 할례에 대하여 지나친 열심을 가진 유대 그리스도인(거짓교사)들이 교회 안에 분쟁의 근원을 제공하여 갈라디아에서 기독교적 자유의 교리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자극을 받은 것이 그 이유라고 본다.
그리고 목적은 바울이 교회 안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는 반대되는 [율법준수행위을 통한 의]를 강조함으로써 교회 안에 혼란이 일어난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율법과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재강조하고,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생활로써 그 믿음의 순전함을 입증하려는 권면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2.1.6. 내 용
2.1.6.1. 인사와 사도직의 권위(1:1-5)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기원을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의 사도직은 자신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신적인 기원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2.1.6.2. 변절자들에 대한 저주(6-10)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에게는 저주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2.1.6.3.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1:11-24)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말미암을 것으로서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복음이 철저한 율법주의자요, 광신적인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간증하고 있다.
2.1.6.4.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는 바울(2:1-14)
여기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로부터 사도로 인정 받는 겸손한 동역의 모습과 복음 진리를 확신 있게 수호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2.1.6.5. 믿음으로만 얻는 의(2:15-3:14)
사람들은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짓밟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바울은 사람의 의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말하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의롭게 된다는 구원을 핵심을 가르치고 있다.
2.1.6.6. 율법이냐? 약속이냐?(3:15-29)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과 약속의 목적과 의미를 바로 지적하고 있다. 언약은 변경할 수 없고 중요하다. 그리고 율법의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지만 죄를 드러냄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인도하는 개인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2.1.6.7. 종에서 아들이 됨(4:1-11)
과거에는 우리가 종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아들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은 종과 아들을 대조시켜서 은혜의 복음 아래 있는 신자의 축복의 특권을 가르쳐 준다. 또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다.
2.1.6.8. 바울과 갈라디아인들과의 관계(4:12-20)
그리고 갈라디아인들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바울 자신의 목자 심정과 영적 어머니로서의 헌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해산의 수고라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2.1.6.9. 이삭과 이스마엘(4:21-31)
아브라함의 꾀에 따라 얻은 하갈의 자녀와 하나님의 주신 자유를 누리는 여자 사라의 자녀와의 비유를 통해서 은혜(약속) 아래 사는 생활과 율법(의지) 아래 사는 생활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다.
2.1.6.10. 자유인으로 살라(5:1-12)
지금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말한 바울은 5장 부터는 실제적인 생활 속에서 자유를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참자유란 어떤 목표와 욕심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 위에 굳게 서서 사는데서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2.1.6.11. 자유의 본질(5:13-15)
신앙은 얽매임이 아니라 자유에로의 부르심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인 하나님 앞에 거리낌없이 나갈 수 있는 자유요, 사랑과 섬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1.6.12. 성령의 열매(5:16-26)
복음을 믿음으로서 얻은 자유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온전해 지는 것이다. 즉 성령의 소욕에 헌신적으로 순종할 때에 열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이다.
2.1.6.13. 낙심치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라(6:1-10)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낙심치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심는 대로 거두게 해 주신다고 신뢰로 행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의 자유는 실제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섬길 때에 완성되어감을 말하고 있다.
2.1.6.14. 십자가를 자랑하라(6:11-18)
이제 바울은 편지를 끝맺으면서 친필로 힘있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율법주의자들처럼 그들이 자랑으로 일삼는 율법도 지키지 않는 모순에 빠진 그들을 본받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예수의 흔적을 가지는 성도가 되라고 하는 권면으로 끝맺고 있다.
2.1.7. 평 가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서신서 중 최초의 것으로서 "종교적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려온 서신서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리고 그를 통한 자유의 복음을 말한 성경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본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 아래 본서는 복음에 대하여 그 핵심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서신서이다. 본서를 통하여 율법과 분리된 믿음에 의해 의로와진다는 이신득의의 칭의 교리는 교회에 의해 인정되고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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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데살로니가 전서
2.2.1. 배 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동방으로 연결하는 로마의 대로인 비아 에그나티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하였다.
행정관들로 구성된 자치 기구가 있었으며, 또한 회당이 있었던 사실로 보아(행17:2) 도시 안에 유대인 식민 구역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 실라 및 디모데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것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였다.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었던 빌립보를 떠난 직후였다.
이곳에서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대다수는 우상숭배자들이었던 것 같다(살전1:9).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지식과 신앙의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염려는 디모데를 자기 대신 데살로니가로 보내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을 알아오게 하였다.
2.2.2. 저 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그러나 본서가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위조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본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 보다 교리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고, 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생각을 공격치 않고 있으며 데살로니가의 새신자들이 불과 몇 개월 이내의 기간에 내외적으로 그토록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본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에 대한 격렬한 말(2:14-16)은 로마서의 글과 다르며, 너무나 바울의 성격과는 다른 글이므로 분명히 위조자의 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서 자체가 바울로부터 보내어진 것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으며, 전형적인 바울의 문필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본서에 사용된 어휘의 9/10이 다른 서신들 중에 나타나고 있으며, 바울의 특유한 어휘들이 발견되며, 다른 서신들 중에 나오는 교리와 배치되는 기록이 없으므로 바울이 본서의 저자임에 틀림없다.
또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인 이그나티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등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2.2.3.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2.2.3.1. 저작장소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쳤으며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아덴으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갔다. [아덴]에 체류하는 동안 바울은 교회의 형편을 확인하기 위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으며 [고린도로 이동하였고] 디모데가 고린도로 돌아와 전한 보고를 접하자 즉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고린도에서 썼다. 2.2.3.2. 저작연대
본서의 저작연대는 본서의 문안의 기록(살전1:1; 살후1:1)을 볼 때에 제2차 전도여행때로 본다. 더 자세한 연대 추측을 위해서는 델피에서 발견된 碑銘(비명)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갈리오의 법정에 끌려 왔었다(행18:12-17)고 하는 성경의 기록을 미루어 볼 때에 본 서신의 기록 연대를 A.D.52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2.2.4. 저작동기 및 저작목적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매우 짧은 기간동안 머물다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몸소 갈 수 없음과 초신자에 불과한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그들의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로부터 당하지 않으면 안될 경멸과 조롱의 결과 우상숭배와 유대교에로 한없이 되돌아 가려는 유혹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온 소식은 그들이 바울의 염려와는 달리 굳은 신앙과 사랑과 소망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좋지 못한 소식도 있었는데 바울이 전한 말씀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었고 이에 바울은 위로와 지도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본서의 저작 목적은 바울 자신의 "인격"과 동기에 대한 비방 운동과의 정면적인 대결(1,2장)과 반가운 소식으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사의 표현(3장), 잠자는 자들로 인해서 일어난 문제와 재림의 양상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해명, 그리고 그들에게 지도와 교훈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본서를 쓰고자 하였다.
2.2.5. 수신자
본서의 수신지는 1:1에서 말하고 있듯이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이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다음과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다른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당으로부터 전도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 회당에 출석하던 소수의 유대인들과 아주 많은 경건한 헬라인들과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상류계급에 속한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많은 이방 우상 숭배자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 의해 선포된 복음을 듣고 심정의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했다(살전1:9). 결국 이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2.2.6. 내 용
2.2.6.1. 문안인사(1:1)
이 문안인사에서 이 서신을 보내는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등장하고있으며 수신자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2.2.6.2. 감사의 기도(1:2-10)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나타난 열매들인 믿음에 의해서 비롯되는 역사, 사랑에 의해 촉진되는 수고, 소망에 의해 고무된 인내들로 인하여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한 메시지와 메시지의 전달자들을 영접한 태도와 믿음의 전파, 성령의 역사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2.6.3. 바울의 목자생활(2:1-12)
앞 부분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모범적인 신앙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이 이처럼 성장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한 바울의 헌신적인 목자적 삶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순수한 동기,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필요를 채운 일 및 그들을 향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강조하고 있다.
2.2.6.4.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말씀을 받는 자세(2:13-16)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고 복음을 위해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음을 감사하고 있다.
2.2.6.5. 목자의 기쁨(3:1-13)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소망과 기쁨이며 자랑이라고 말하며 그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심을 말하며(17-20),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 일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굳게 섰다는 좋은 소식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준 모든 기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다시 하며 그들의 미래를 위한 기도를 한다.
2.2.6.6. 실제적인 권면들(4:1-12)
다음으로 바울은 그들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 신자답지 못한 점이 있음을 알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두신 뜻은 거룩함이므로 성결해야 하며, 형제들간에 더 많이 사랑하며, 근면하게 일을 할 것을 권면한다.
2.2.6.7. 주님의 재림(4:13-5:11)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먼저 간 성도들로 인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기독교인들은 재림 사건에 동참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을 통해 위로를 주고 있다(13-18). 또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는 그 때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림은 급작스럽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2.2.6.8. 기타 실천적인 권면(5;12-22)
사도 바울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책임들(화목하며 게으른 자를 책망하고 약한 자를 돕는 등)과 영적인 의무들(기뻐함, 기도, 감사, 성령을 소멸치 않음, 선을 굳게 붙잡음 등)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성격의 권면들이다.
2.2.6.9. 결론(5:23-28)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하며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랑의 모습과 모든 형제에게 편지를 읽어주라는 명령으로 편지를 마치고 있다.
2.2.7. 평 가
본서에서는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없는 최후의 사실들에 관한 교리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매 장마다 재림을 가리키는 언급으로 매듭지어져 있다. 재림을 갈망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관심에 해답을 주기 위하여 종말론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 서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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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데살로니가 후서
2.3.1. 배 경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설명은 전서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데살로니가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데살로니가는 현재의 살로니가만에 위치해 있었고 이 만의 높은 지대로부터 경사진 지점에 원형 경기장과 같은 형태로 세워진 도성으로서 이 거대한 도로상에 있는 모든 대소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곳이었다.
데살로니가는 주전 315년에 알렉산더 대왕 밑에서 군관으로 있던 카쌘더(Cassander)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대왕의 모친 올림피아를 죽이고 그녀의 군대를 궤멸한 후 정치적인 배려로 대왕의 이복 여동생과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이 데살로니가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이름을 기념하여 이름 지어진 도성이 바로 데살로니가市가 되었다.
그후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으며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자유시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데살로니가는 상당한 자치권을 획득했다.
데살로니가인들의 대부분은 그리스인들이었고 따라서 문화는 그리스 문화였다. 그리고 상업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고 이들의 활동은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일부 이방인들이 회당에 출입하게 하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였다.
2.3.2. 저 자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본서 또한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살후2:1-12은 계시록에 나타난 말세론적 구절이므로 다른 서신서와는 다르며, 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한 사실로 보고 있는데 후서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 죄의 사람(2:1-12)은 네로나 베스파시안 황제 또는 트라얀 시대 등을 가리키므로 바울이 본 서신의 저자일 수 없다. 그리고 전서의 내용을 많이 반복하고 있고 냉담하고 유대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문안의 말은 고의로 꾸민 위조자의 글이다.
그러나 외적증거로 유세비우스, 오리겐, 터툴리안, 및 뮤라토리 단편의 증언들은 본서가 바울의 기록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이레니우스는 본서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본서의 기자에 대하여 논의가 있을 때마다 사도 바울이 기자로 여겨졌었으며 데살로니가 후서 자체의 내적 증거는 외적 증거와 완전히 일치하므로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 틀림없다.
2.3.3. 저작장소와 저작연대
문안의 기록(살전1:1;살후1:1)에 제2차 전도여행 때에 바울과 동행하였던 실라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제2차 전도여행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2차 전도 여행 시에 빌립보에서 활동했다(행16:11-40). 그곳으로부터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로 갔고 이어서 아덴으로 갔다(행17장). 그리고 아덴으로 부터 고린도로 나아갔다(행18:1). 바로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디모데와 실라가 마게도냐로부터 도착했었다(18:1,5). 이는 데살로니가 전서에 있는 내용과 동일함으로 바울은 고린도에 있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본 서신의 기록 장소는 [고린도]로 보여진다.
데살로니가 후서가 데살로니가 전서 보다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견해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이유로서는 후서에는 전서에서 다루어진 문제들이 더욱 깊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데살로니가 후서에 나오는 이전 편지에 대한 언급(2:15,3:17)은 데살로니가 후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서에 나오는 명령(4:1-12;5:12-28)이 있는데 후서에서는 이러한 명령들 주 일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되어 있고 명백한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3:6-15).
그러나 전서와의 간격은 데살로니가 전서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회답이 고린도로 돌아올 정도의 수개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으므로 데살로니가 전서의 연대를 A.D.52경으로 본다면, 데살로니가 후서도 같은 연대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3.4. 수신지
수신지는 본서의 1:1에 나오듯이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2.3.5. 저작 동기와 저작 목적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데살로니가 전서는 여러 형제들에게 기쁘게 읽혀졌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제2의 서신이 필요했음이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 여전히 박해를 당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여전히 혼동이 있었다는 소식도 바울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훈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처리와 고린도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있는 바울 자신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기도해 주도록 요청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서신을 보내게 되었다.
첫째,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 핍박 속에서도 경험하고 있는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고, 그리스도 재림 시에는 그들의 원수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영광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으로 격려하기 위해서이다(1장).
둘째, 재림과 관련하여 잘못된 오해들을 진정시키고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일어날 어떤 사건들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2:1-12).
셋째, 주의 날이 이미 지나갔다는 가짜 서신에 속지 않도록 경고하고, 문란한 자들에게 훈계를 주고, 교훈들에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2:13-4:18).
2.3.6. 내용
2.3.6.1. 문안인사(1:1,2)
데살로니가 전서에서와 같이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문안인사를 하고 있다.
2.3.6.2. 핍박 중에서도 이기도록 격려(1:3-12)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여전히 어려운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핍박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핍박의 유익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상기시킴으로써 격려하고 그들을 위한 소망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2.3.6.3. 재림;동심하거나 흔들리지 말라(2:1-12)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주의 날은 이미 임한 것이 아니며, 불법의 사람이 먼저 나타나야 하며, 주 예수께서 재림으로 그를 폐하시고, 그가 패망하기 전에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 받게 될 많은 이들을 속이고 현혹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른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2.3.6.4. 바울의 감사와 기도(2:13-17)
불법을 따른 자들과 대조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선택하였음을 기뻐하며 이어서 그들이 가르침 받은 유전을 지키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바울은 감사에 넘쳐 기도하고 있다.
2.3.6.5. 권면들(3:1-15)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의 요청을 하고 또한 그들의 믿음을 깊이 인정한다(3:1-5). 이어서 게으름으로부터 말미암은 규모 없는 행동을 책망하고 있다(3:6-13). 이와 같은 그의 가르침은 바울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도 해당되며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3:14,15).
2.3.7. 평 가
본서 또한 데살로니가 전서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 교훈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서보다 엄격한 교훈조이며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한 유대적 색채를 띠고 있다.
특히 본서 중에는 주의 재림의 전조가 될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① 신앙심이 깊은 이들로부터 갑작스럽게 배교가 급증할 것이며, ② 어떤 견제적 영향이 옮겨질 것이고(2:6,7), ③ 사단에 의해서 생기가 불어 넣어지고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 위에 자신을 높여 대적할 악의 現身이 완전히 모습을 들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가르침은 바울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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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고린도 전서
2.4.1. 배경
2.4.1.1. 고린도 市
고린도 시는 그리이스의 펠로폰네수스 반도에 있는 호머시대 부터 유명한 도시였다. 이곳은 두 바다를 연결짓는 항구를 소유하고 있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그리이스 최대의 도시였지만 그러나 B.C.120년에 로마의 뭄미우스(Mummius)에 의해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그후 씨이저(Julius Cesar)에 의해 재건되었다. 도시가 재건이 되자 상인들이 그리이스 전역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유대인들 역시 상업상의 편리함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 후 고린도는 그 부와 예술, 문학, 사치 등으로 아카이아(Achaia) 지방의 수도가 되어 다시금 옛날의 영광을 되찾았다. 사도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 도시는 그리이스의 영광이라고 할 정도로 위치에 와 있었고 세네카의 형제인 로마 총독 갈리오의 통치 아래 있던 시기였다.
2.4.1.2. 바울의 고린도 사역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아테네를 떠나서 혼자 이 도시를 방문하였으며, 마게도냐에서 온 실라, 디모데와 얼마 후에 이곳에서 합류하였다(행18:5). 이곳에서 바울은 아굴라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그와 천막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편 회당에 나가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 이렇게 1년 6개월을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적대로 이 후에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함께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 겐그레아로 갔다. 그리고 나서 겐그레아에서 동료들과 작별하고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잠시 그곳에서 머문 뒤, 안디옥으로 갔다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경유하여 다시 에베소로 갔다. 이곳에서 3년간 체류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고후 12:14의 기록을 볼 때에 고린도후서를 쓰기 이전에 바울이 최소한(스스로 세번째로 방문하고자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두번은<제2차전도때 한번, 그후 불확실한 시점에? 아니면 3차전도때 마게도냐 거쳐서 한번 더> 공식 방문한 것으로 보여진다.(아마도 3차전도여행시, 안디옥에서 에베소로(3년간 머무름),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이어서 마게도냐로(드로아에서 고린도전서를 받은 고린도교회 사정을 가져 올 디도를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하여 마게도냐로 건너감..거기에서 소식을 가져온 디도를 만났음),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 집필하기전에 한번 더 다녀왔다?> 고린도에 공식 방문하지 않았나 여기는 것이 타당함??...만약 그렇다면 그후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마게도냐로 돌아왔으나, 예루살렘에 오순절이전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마게도냐를 떠나기 전에 고린도후서를 쓴 것으로 보임)
2.4.2. 저자
본서는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를 본서의 내적증거(1:1-3; 3:4,6)와 초대 교부들의 주장들이 증명하고 있다.
2.4.3. 저작 장소와 저작 연대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던 기간인 A.D.51년 7월에 세네카의 형제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으로 부임했으므로(행18:12), 바울이 고린도를 처음 방문하여 머물던 기간은 [제2차 전도여행중인] 50년 가을부터 52년 봄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18개월 동안 머물렀고, 그후 에베소,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에 들어가는 제2차 전도 여행을 마쳤다(행18:22). 그후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에 나서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두루 경유하여 에베소에 이르렀다(행18:23,24). 에베소에서 약3년간(실은 도합 5년간?) 머물며 바울은 전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에 이 서신은 에베소에서 썼으며 그 시기는 바울이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겠다(고전16:5-9)고 말한 오순절 이전의 어느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보여지므로 A.D.57년, 곧 바울이 처음 방문한지 5년 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2.4.4. 수신지
본서의 1:2에서 본서의 기록자인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고린도 교회를 수신지라고 밝히고 있다.
2.4.5. 저작 동기와 목적
에베소에서 바울은 3년간 머물면서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려온 소식(1:11)과 그들이 그에게 보낸 질문이 가득 담긴 편지는 바울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바울은 기독교리의 교리와 실제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에 대하여 답변하면서 교회에 발생한 여러 가지 죄에 대한 책망을 하고자 편지를 쓰게 되었다.
본 서신을 바울이 쓴 목적은 교회 안에서 허용한 죄들로 인해 그들을 책망하려는것과(1-6장),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그 생활의 근거가 되는 교리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2.4.6. 내용
2.4.6.1. 바울의 인사와 감사(1:1-9)
바울과 소스데네의 이름으로 고린도의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는 모든 다른 자들에게 발송되었다. 특별히 이 교회가 소유한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바울은 감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지키시리라는 확신으로 끝맺고 다. 타락하여 용납하기 힘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서도 감사할 것을 찾는 바울의 모습은 본받을만한 것이다.
2.4.6.2. 당파심에 대한 바울의 교훈(1:10-4:21)
1장 10절부터 6장까지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하는 부분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라는 이름으로 당파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즉 먼저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대조시킴으로 참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였다. 하나님의 역사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다르며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서 하나님의 참 지혜를 전하신다(1:17-2:16).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농업과 건축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자기가 서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데서 나왔음을 지적하고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는 미련한 자가 되어야 참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고 말하였다(3:18).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인정치 않자 이에 대해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면서(4:1-5), 그 이유는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4:6-13). 이러한 지적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함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간절한 권면이라고 말하고 있다(4:14-21). 2.4.6.3. 도덕적 타락의 문제(5:1-13)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에서 나온 근친상간의 문제에 대하여 그 범법자는 교회로부터 내어쫓아야 한다. 그 목적은 그로 죄를 회개케 하여 구원하기 위함이며 나쁜 도덕적 죄는 반드시 교회로부터 축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5:1-8).
그리고 범죄한 자들과는 사귀지 말 것을 권면하는데 이는 교회의 신앙을 지킬 목적이므로 그들과 깊은 영적 교제를 갖지 말라는 것이다(5:9-13).
2.4.6.4. 불신자들 앞에서의 송사(6:1-11)
교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앙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불신자들에게 의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므로 믿는 사람들끼리 신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송사하는 것은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게 된다.
2.4.6.5. 도덕적 방종에 대한 경고(6:12-20)
여기에서 바울은 다시 음행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가를 말한다. 음행은 자기 몸을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는 범죄이며 저주 가운데로 빠뜨리는 일이다. 성도의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니라 주님의 피값으로 산 주님의 것이며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므로 주를 위하여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사용해야 한다.
2.4.6.6. 결혼에 대하여(7:1-40)
먼저 혼인하는 문제와 독신으로 지내는 문제에 대하여 흑백 논리로 말하지 않고,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에 따라야 한다. 독신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지만 정욕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결혼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혼에 대하여서 이혼은 어떤 이유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함께 살고, 신앙을 이유로 갈리고자 하면 갈리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어떤 형편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든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
처녀의 결혼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만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며 더욱 주님만 더 잘 섬기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2.4.6.7.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8:1-11:1)
우상에게 한 번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의 여부를 묻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먼저 자기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연약한 자를 사랑으로 세우고자 하는 기준에서 행해야함을 말하면서 우상의 제물의 문제에서 조그마한 자기 지식을 포기하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은 얼마나 큰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한 이유(9:15-18)와 그의 신앙의 자세(9:19-27)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를 들면서 주님을 믿음으로 이제 모든 것에 자유하였으니 우상의 제물을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자만하는 자들은 그 교만으로 넘어지기 쉽다(10:1-13). 우상숭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참여할 수 없다(10:14-22).
결론적으로 우상제물에 대하여 자기 지식으로 옳게 여기는 대로 행하거나, 자기 믿음의 분량껏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다 가한 것이 아니며 성도의 모든 행동 기준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유익과 권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해야만 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2.4.6.8. 공적 예배에 대하여(11:2-14:40)
먼저 교회 안에서의 남녀간에 있어야 할 질서에 대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이 원리는 인격체의 우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세상에서의 질서면에서 말하는 것이다(11:2-16).
성만찬을 일반 음식과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면 심판을 받는 것이므로 자기를 살핀 후에 참예해야 한다는 성만찬의 바른 의미와 자세를 말하고 있다(11:17-34).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바울은 이 모든 은사들은 성령의 주권적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으로서 하나의 지체처럼 각기 다양한 은사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몸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2장). 그리고 여러 은사의 우열 문제로 문제가 된 고린도 교회에 교회와 남에게 가장 유익을 주는 사랑은 이 모든 은사들 보다 중요하다(13장). 그러나 이런 은사의 사용을 업신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사를 사모하되 그 목적이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활용하라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14장). 교회의 질서는 이 모든 문제들, 그것이 은사의 사용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여성들의 사역에 대한 것이든 간에,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이다(14:26-40).
2.4.6.9. 부활에 대하여(15:1-58)
바울은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인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답변을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궁극적으로 부정하게 되며,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15:1-19).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모든 신자들이 부활하며 만물이 다 하나님께 복종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부활을 믿는 신자의 실제적 삶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를 말해준다(15:20-34). 죽은 자들이 어떤 종류의 육신을 장차 받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부활할 몸의 형체와 성질에 대해 답변한다(15:35-50). 그리고 부활에 대한 결론으로 부활은 사망을 이기고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면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면 보장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15:51-57).
2.4.6.10. 헌금(연보)에 대하여(16:1-4)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할 것을 말하면서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야 하며 헌금 관리는 신실한 몇 사람이 하도록 권면한다.
2.4.6.11. 결론(16:5-24)
바울은 이제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전도 일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간절한 권면으로 믿음 안에서 사랑으로 강건하게 서 있을 것과 주님 역사에 충성하는 일꾼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의 수고를 알아 줄 것과 주님을 사랑할 것을 말하면서 인사를 하고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선언하고 사랑의 확인으로 편지를 마친다.
2.4.7. 평가
본서는 고린도 한 교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으로써 그 지도 원리는 깊은 영적 진리에 입각해 있다. 예를 들면 음행에 대하여는 교회가 기강을 바로잡아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이 회개할 때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3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문학적 가치 또한 탁월한 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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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고린도 후서
2.5.1. 배 경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부도덕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경고(고전5:9)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고린도 사람들이 이 편지를 잘못 이해하였다는(고전5;10,11) 사실을 전해 들음과 동시에 교회 내에 어떤 무질서가 있음을 글로에의 집을 통하여 들었다. 그 후에 그 교회의 대표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바울에게 도착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냈다.
그 후 바울은 [제3차전도여행을 시작]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갔다. 또한 거기서 마게도냐에 갔을 때 고린도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온 디도를 만났다. 이에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보낸 고린도전서와 디도의 보고를 듣고서 고린도후서를 썼다.
2.5.2. 저 자
본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없다. 본서가 저자를 사도 바울이라고 내증 있으며(1:1;10:1), 본서의 특징이 다른 바울의 서신과같다.그리고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이 서신을 인용하였고 바울의 서신임을 말하였다.
2.5.3. 저작장소 및 저작연대
제3차 전도여행이었던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쓴 후,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로 들어갔다(고후2:12,13). 바로 이때 마게도냐에 머물면서 쓴 서신이 본서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기록한 때는 고린도전서 16:8에 언급된 오순절 이전의 어느 시기에 기록한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후 늦어도 1년 이내이므로 A.D.57년 가을이나 이듬해인 58년 봄에 쓰여졌을 것이다.
2.5.4. 수신지
수신지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다(고후1:1).
2.5.5. 저작동기 및 저작목적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악행을 듣고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다. 그후 디도를 보내 고린도 교회를 시정하고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만들도록 하였다.
그 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디도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갔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시금 그들이 회개를 하였다는 좋은 소식과 함께 아직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말과 바울을 오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오해를 풀고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서의 목적은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한 논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회개한 대적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도록 권면하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러 갈 때 그들의 헌금이 순조로이 되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
2.5.6. 내 용
2.5.6.1. 서론(1:1-11)
인사를 한 후에 바울은 자신이 주의 일을하다가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으며,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오히려 환난을 통하여 얻게 된 평안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한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도 기도로써 그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권면한다.
2.5.6.2. 바울의 계획(1:12-2:17)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함으로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즉 변경한 이유는 고린도의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설명하였다. 오히려 바울의 방문이 지체됨으로 인해 대적자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들에게 동정심을 베풀라고 권면한다.
2.5.6.3. 사도의 성격(3:1-7:16)
고린도 교회 내에서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이들에게 자신은 모세와 같은 구약의 일꾼이 아니라 새 언약의 일꾼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 복음이 율법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설명하고(3:6-18),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감사와 자부심으로 자신이 전한 복음은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한 것이며, 계시된 복음을 증거한 것이라고 말한다(4:1-6). 그리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의지하고 자신을 질그릇으로 인정한다(4:7-12). 그러나 더 큰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으로 화목케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된 삶을 말하고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한다(6:14-7:1). 그리고 이전에 죄를 지은 사람에 관한 심한 책망의 편지를 쓰고 근심했는데 오히려 그 책망이 받아들여짐으로 커다란 영적 유익을 얻었음을 말한다(7:2-16).
2.5.6.4. 헌금계획(8:1-9:15)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동참시키고 있다. 헌금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을 상기시키고, 헌금의 원리, 관리, 준비, 유익 등을 설명하면서 권면하고 있다.
2.5.6.5.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10:1-13:10)
거짓 선생들이 바울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듣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즉 자신의 '외모의 초라함'과 '약함'에 대하여, 신령한 참 '능력'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잘 대조하며 답변한다.
또한 강한 어조로 거짓 선생들을 공격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한다. 특히 자신이 교회를 위해 당한 갖은 수난과 행적을 자세히 열거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비 체험을 오히려 약점으로 들어 자랑하면서 이 모든 것의 자랑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곧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말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진리에서 떠난 자들이 계속 회개를 하지 않으면 엄히 다스리겠다고 말한다.
2.5.6.6. 결론(13:11-1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와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빌어 주면서 본서를 끝맺는다.
2.5.7. 평 가
본서는 다른 서신들이 보여주지 않는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반대자들에 의해 비난을 받은 점과 자신의 신비체험에 대한 간증과 육체의 약점, 등이 보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답변과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취했던 그의 강한 어조가 돋보이는 서신이다. 한편 바울의 자서전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본서는 바울의 연구에 대한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관적인 성격의 서신이며, 그리스도의 환난을 강조하고 있는 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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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로마서
2.6.1. 배 경
2.6.1.1. 로마교회
로마교회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그가 로마서 15:20에서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고 말함을 보아 이미 로마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함께 갔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행2:10)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이 로마의 교회는 신자들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혼합된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색채는 이방적 요소가 강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바울은 본서의 초두에서 그들을 이방인으로 분류했으며(롬1:13), 바울의 로마방문 기사에서 보여 주듯이 그곳 유대인들마저도 기독교 진리에 대해 전연 무지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6.2. 저 자
로마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롬1:1).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자기들의 편지에서 본 서신을 인용함으로써 본서가 바울의 서신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초대 교회 이후로 이점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기록자는 자신을 사도 바울로 말하고 있으며(1:1), 바울이 기록한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로마서에 담긴 교리적인 내용들은 사도 바울에게 늘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내용들임을 볼 때에 본서의 기록자가 사도 바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6.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2.6.3.1. 저작장소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좌절되었다(15:21,1:13). 그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모든 지역에 전한 후에 예루살렘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금을 방금 마친 상태였다(15:22). 그리고 그 편지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위하여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다음 해에 쓰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이 편지를 썼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증거로서 바울이 "겐그레아 일군"으로 지칭하는 뵈뵈를 천거하고, 고전1:14에서 언급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가이오의 인사(롬16:23), 에라스도의 문안인사를 들 수 있다. 특히 에라스도에 대하여 딤후4:20에서 "고린도에서 머물렀고"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6.3.2. 저작연대에 대하여
저작연대를 잡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바울이 최초로 고린도에 체류한 것은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2) 동안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짧은 체류기간 동안에 이렇게 긴 서신을 저술하기에는 힘들다고 볼 때에 행20:3에 기록된 아가야(그리이스)에서 있었던 3개월에 걸친 전도의 막바지인 제3차 전도여행 중 세 번째의 고린도 방문기간(행18:23-21:16)에 로마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전 기간을 53/54-57/58년으로 추정할 때에 로마서의 저작 연대는 그가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인 57년 또는 58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6.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윌리엄 맨슨은 바울이 구약성경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서신의 전체적 주장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J.Munck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느 한쪽이 우세한 하나의 혼합된 공동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로마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로마 교회가 이방인 세계의 가운데 있다는 "너희 가운데"라는 표현을 볼 때에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로마 교회의 대다수가 이방인인 성도로 구성되었음이 타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은 그가 편지하고 있는 그들 가운데 유대인과 이방인 중 어느 편이 더욱 많은가 하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강조점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모두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으며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임을 말하고 있다.
2.6.5. 저작동기와 저작목적
바울은 이제 제3차 전도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그는 몸소 로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곳에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 가져왔던 소망인 로마에 가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때문에 곧 바로 갈 수 없어 구제헌금을 전달한 후에(행24:17), 로마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 로마서를 저술한 목적은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는 먼저 동료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자 저술을 하였다(롬1:11). 그리고 개인적 상면의 대용물로서 서신의 수단을 통하여 로마교회와 교제를 갖기 원하여서 쓰는 것이다. 또한 목회적인 관점에서 불신자들의 공격에 어떻게 방어하고 이겨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서 썼다. 마지막으로는 바울 자신의 서바나에로의 여행과 관련하여 로마 교회의 협조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본서가 쓰여졌다고 본다.
2.6.6. 내 용
바울은 이신칭의의 교리가 실제적이며 필요한 것이고(1-3장), 성경적이며(4장), 효과적인 즉 열매를맺는 것(5-8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 9-11자에서 역사의 노정에서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약속이 신앙하는 남은 자들을위하여 의도되었고, 그들 안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하고있다.그리고 12-16장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담고있다. 2.6.6.1. 서론(1:1-17)
바울은 서론에서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로마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서론부 마지막에는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며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2.6.6.2.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1:18-32절은 이방인의 죄로서 이방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고의적으로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내어 버려두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2:1-3:8절에서는 유대인의 죄를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을 판단하며 비방을 하지만 오히려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할례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할례라는 의식만 자랑하는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들을 지적하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라는 질문에 유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이용하여서 구속계획을 성취하셨는데 이는 불의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참되심과 선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불의한 자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서 하나님은 결코 일부러 불의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불의를 섭리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는 것 뿐이다.
앞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죄인임을 말한 바울은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3:9-20절에서 선언하고있다. 2.6.6.3. 하나님께 나아가는 의의 길(3:21-5:21)
1:18-3:20에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밝힌 바울은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죄악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어서 절망적이었는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로 믿음에 의한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3:21-31).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미치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증거되고 있음을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은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4:1-25).
그리고 5:1-11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임을 말한다. 그 근거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에 있다.
5:12-21에서는 첫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오늘에까지 의롭다함(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2.6.6.4. 죄에서 해방됨(6:1-8:39)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죄와의 관계를 6장에서 밝히고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율법과의 관계를 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지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한다. 7장에서는 의롭다함을 얻은 신자는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그 내면의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아 그리스도 아래 있으므로 강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지키고자 하는 성도에게 부딪치는 내적인 투쟁을 치열하게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다.
8장에서는 성령을 통한 해방을 말하고 있는데 성화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좇아 행할 때 가능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은 오히려 고난에 직면해야 되는 삶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6.6.5. 이스라엘에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9:1-11:36)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문제를 포함하여 전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밝히고 있다. 즉 많은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이 배척함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선택한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9:30-10:21에서는 인간의 책임편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실패했지만 여전히 남은 자가 있음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면서 교만하지 말고 거울로 삼아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2.6.6.6. 의의 적용(12:1-15:13)
1-11장에서 기술한 교리의 윤리적 적용에 대한 내용이다. 구원 받은 신자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취할 태도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원수와 불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의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태도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다.
2.6.6.7. 결론(15:14-33)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의 계획을 말하며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2.6.6.8. 추신(16:1-27)
사도 바울은 동역자의 이름을 일일이 들어가며 문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고를 하고 게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붓을 놓고 있다.
2.6.7. 평 가
본서는 바울의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조직적인 기독교의 중심적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성질상 논쟁적, 교정적인데 반해 본서는 주로 교육적이다.
즉 본서는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을 받쳐온 地主가 돼왔으며, 칭의, 전가, 수양, 성화와 같은 신학적 전문용어들은 본서의 어휘들로부터 전용된 것들이며 이 서신의 논증적 구조인 선교적 목적을 위한 논리 역시 기독교 사상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불같은 어조로 복음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옹호하는 갈라디아서와는 달리 로마서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하여 율법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충분하고 값없이 주시는 구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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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골로새서
2.7.1. 배 경
골로새 지방은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市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리쿠스 강의 협곡을 내려다보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 아시아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전 5세기 경 페르시아 전쟁 기간 중에는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읍이었으나,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가 도시로 발전되
어감에 따라 골로새의 상업은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특히 인근에 언덕으로 된 시골에서 목동들의 손으로 길리워진 양떼들로부터 얻어지는 검은 윤택이 나는 양모 때문에 중요시되어 왔다. 바울 당시에도 아직은 웬만한 크기의 도시로 남아 있긴 했었으나 이미 퇴폐기에 접어 들어 있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때 브루기아 지방을 지나가긴 하였지만 그가 직접 골로새나 그 인근 도시들을 방문했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문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곳 사람들이 "그의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골2:1)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는 바울이 아시아에 체재해 있는 동안 아마도 디모데나 에바브라(골1:7)에 의해서 복음화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파하고 있을 때 여러 곳을 순회중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잡다한 신들을 숭배하는 브루기아인들이 사는 도시였으며, 행2:10에 '브루기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기록되었음을 볼 때 이미 이 도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행2:5)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전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러한 배경들을 살펴 볼 때 골로새에는 기독교의 반대 세력이 많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바울 역시 본 서신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암시하고 있다(2:8,16,18).
2.7.2. 저 자
본서의 기록자는 사도 바울이다. 내증으로 본서 자체도 기록자가 '바울'임을 밝힌다(1:1,23;4:18). 뿐만 아니라 본서의 문체나 용어 역시 바울의 다른 서신인 에베소서와 비슷하다. 또한 본서는 바울이 쓴 빌레몬서와도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골4:1-14과 몬23,.24). 외증으로 초대교회의 지도적 인물들도 본서가 바울의 기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등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2.7.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에베소서와 빌립보서, 빌레몬서처럼 골로새서도 옥중서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 서신의 저작 시기와 장소가 대체적으로 네 서신들 모두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죄수의 몸으로 있었다(골1:24;4:3,10,18). 그 장소에 대하여는 가이사랴에서 썼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행24-26장을 살펴 보면 가이사랴의 감옥생활과는 일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로마에서의 생활과 조화를 이룬다(행28:30,31). 그리고 에베소의 감옥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를 인정할 때에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누가가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었다는 행27:1과 28:16의 말씀을 통하여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작 시기는 A.D.61-63경인 듯한데 아마 이 시기의 중간쯤에 썼을 것이며 빌립보서 보다 먼저 썼을 것이다.
2.7.4. 수신자
수신자는 1:2에 저자가 기록한대로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임에 틀림이 없다. 바울이 직접 골로새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졌으므로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에바브라의 권위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편지할 수 있었다.
2.7.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당시의 골로새는 혼합종교가 만연하던 도시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교주의적인 물결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으며, 또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혼돈 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에바브라를 통하여 알게 된 바울은 그러한 이단적 사조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벗어나야 될 것을 염려하며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 서신을 바울이 쓴 목적은 골로새인들에게 영혼을 파멸케 하는 이전의 악한 행실로 되돌아 가지 말도록 경고하고(골1:21,23;3:5-11),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구세주(2장)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란 것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그리고 골로새인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에게로 돌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1:13-18;2:8,9). 또한 에바브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썼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덕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교리적인 문제와 기독교인의 삶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2.7.6. 내 용
2.7.6.1. 서론(1:1-12)
바울은 문안인사에 디모데를 포함하고 있다(1:1,2). 그리고 그의 제자 에바브라에 의해서 세워진 골로새 성도들 가운데 믿음, 소망,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그들이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기도하고 있다.
2.7.6.2. 기독론 해설 : 교리부분(1:13-2:23)
바울은 이 부분에서 골로새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짓 가르침을 말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15), 창조와 만물과의 관계에서(16-17), 교회와의 관계에서(18) 말씀하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20)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은 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비록 고난이 있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단에 대한 경고(2:8-23)를 하고 있는데 헛된 철학을 피해야 하며, 의식의 준수 특히 음식과 절기에 관한 율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재가 된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피해야 하며, 천사숭배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다는 사실을 손상시키므로 피해야 하며, 엄격한 금욕주의는 방종을 억제하는데에 무력한 인간의 고안물에 불과하므로 피해야 한다.
2.7.6.3. 복음의 적용 : 실천적 부분(3:1-4:6)
그리스도인 삶은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한다(3:1-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3:5-9) 새사람을 입은 새사람은 교회생활에 대하여(3:12-17), 가정생활에 대하여(3:18-21), 직장생활에 대하여(3:22-4:1) 새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 항상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하고 불신자들에 대하여 지혜로 행하고 말을 맛있게 곧 은혜스럽게 해야 한다(4:2-6).
2.7.6.4. 결론(4:7-18)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본 서신과 함께 추천을 하고 바울 자신의 동역자들인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 에바브라, 누가 데마가 에바브라에 대한 특별한 언급과 함께 인사하고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서신교환을 하라는 지시가 있고 아킵보는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도록 요청 받고 있다. 그리고 친필로 자신의 매임을 생각하라는 감동적인 요청으로써 서신을 마치고 있다.
2.7.7. 평 가
에베소서가 교회론을 부각시켰다고 한다면 골로새서는 기독론이 두드러지게 담겨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며 그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형상화 되셨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의 모든 보화들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이론들만 말하지 않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만을 붙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으며 따라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듯이 바울은 기독교인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할 뿐만 아니라 새 사람을 '입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항상 부정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긍정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금욕적 경향을 지닌 그 당시의 모습을 강하게 공격하며 반대로 금지들과 함께 적극적인 내용들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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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빌레몬서
2.8.1. 배 경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 그는 빌레몬에게 죄를 저지르고(아마 주인의 것을 훔친 듯함;18,19절) 주인 집에서 도망하여 멀리 로마까지 갔다. 로마에서 노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다. 그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어 변화된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도망친 노예는 주인이 붙잡아 사형에 처할 수도 있었으므로 오네시모는 언제 주인에게 붙들려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가련한 신세에 처해 있는 사람이었다.
2.8.2. 저 자
본서의 저자는 세번 이상 자신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몬1,9,19절). 그리고 그의 요구는 매우 결정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위조자 그것을 위조하였다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바울의 편지들의 개성들이 본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외증으로 유세비우스가 유명한 저서들의 목록에 포함시키고 "공인된 바울서신"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오리겐도 인정하였다. 그리고 터툴리안은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단자 말시온조차도 바울의 작품으로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증거들을 볼 때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2.8.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본서는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처럼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본서는 다른 옥중서신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록연대 역시 서로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A.D.61-63년경 로마의 옥중에서 바울은 본서를 기록하였다.
2.8.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다. 그는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냈다(1:7). 그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1:19) 아마 에베소에서 바울이 3년간 사역하고 있을 때인 것으로 여겨진다. 신앙 안에서 새로워진 빌레몬을 통해 그의 가족들도 신앙을 갖게 되었다. 신자들은 빌레몬의 집에서 정규적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 같다(1:2).
2.8.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빌레몬서의 저작동기와 목적에 대하여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을 하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이 가설은 J. Knox와 E. J. Goodspeed에 의해서 나온 것으로서 대부분 낙스의 가설이다. 그는 오네시모에 대한 사건을 재구성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익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어떤 노예가 있었는데 사실 주인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종이었다. 그의 주인은 아킵보였는데 골로새 교회의 조력자요 교인이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주인과 불화로 도망을 하였고 에베소에 투옥된 바울을 찾아 갔다. 그는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전도활동을 위해서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생각 끝에 아킵보로 하여금 오네시모를 해방시키게 하여 전도의 일을 시키겠다는 소망을 품고 주인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형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빌레몬에게 펴지를 보내어 빌레몬이 바울의 요구에 지지를 보내게 하였다. 빌레몬은 바울의 요구에 찬성하고 종과 편지를 골로새로 보낸다. 그리하여 골로새 교회는 바울의 요구룰 지지하게 되고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낙스의 가설은 본서에서 세번씩이나 말하고 있는 실제적인 수신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오네시모의 주인은 빌레몬이다. 그리고 바울은 본서를 에베소에서 쓴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 쓴 것이다. 또한 바울은 몬14절에서 오네시모를 자기에게 돌려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원히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로서 대하라고 말하고 있다(16절).
다시 정리하면, 골로새 교회의 일원이었던 빌레몬은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다. 그의 종 오네시모는 로마로 도망을 쳤는데 그곳에서 바울을 만났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울의 필요를 따라 섬기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로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주인에게 돌려 보내도록 작정한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제로서 다시 맞아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목적은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히 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하며, 바울 자신이 놓인 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예비케 하기 위함이다.
2.8.6. 내 용
2.8.6.1. 서론(1-3)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수신인은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이다.
2.8.6.2. 빌레몬에 대한 칭찬(4-7)
빌레몬의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 예수에 대한 믿음에 대해 감사와 칭찬을 하고 있다.
2.8.6.3. 오네시모를 위한 간청(8-22)
노예요, 도덕질했던 오네시모를 위해 마치 자신이 빚진 자처럼 자기가 회계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즉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 주 안에서 거듭났으므로 형제로 영접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2.8.6.4. 결론(23-25)
골로새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동료들로부터의 인사말이 전해진 후 통상적인 축도가 덧붙여진다.
2.8.7. 평 가
본서는 빌레몬이 왜 도망친 종을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 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본서에는 용서에 대한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다. 불법(11,18), 동정(10), 중보(10,18,19), 대상(代償,18,19), 호의의 회복(15), 새로운 관계에로의 승화(16) 등, 죄의 용서라는 각각의 양상이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해 간청한 용서 속에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편지이다.
또한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편지이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노예제도를 초월한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로 대해 줄 것을 권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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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에베소서
2.9.1. 배 경
에베소는 B.C.11세기에 건설된 도시로서 이오니아의 식민지, 페르시아의 영토, 알렉산더의 자유도시, 로마제국의 州 등의 역사를 겪으면서 신약 시대에 이른 도시이다.
신약시대의 이곳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며,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고 종교와 우상 숭배의 중심지이기도 했다(행19장). 사도 바울 이후에는 사도 요한, 디모데 등이 이곳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였는데 마침내 에베소는 예루살렘, 안디옥과 더불어 초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2.9.2. 저 자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주제를 다른 사람이 모방하고 창작하거나 다른 서신의 확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작권을 말할 필요가 있다.
2.9.2.1. 전통적인 견해
전통적인 견해는 바울이 기록한 서신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 내증으로 본서의 서두에서 바울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에베소서 전체와 3:1 이하에서는 1인칭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증언들이 다른 서신들이 바울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과 너무나도 잘 일치하고 있다.
외증으로 2세기 중엽에 에베소서가 정통 기독교인들과 이단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고 있었으며,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정경인 마르키온 정경(A.D.140년경)속에 'Laodiceans'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었다. 또 무라토리안(A.D.180년경)도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 하였고, 라틴역본 및 수리아 역본에서도 바울 서신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외에도 본서의 문학 양식과 신학적 유사성 등이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과 명백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내증과 외증을 살펴 볼 때에 서신 자체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임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금까지 에베소서에 대해 바울의 저작권을 인정해왔기 때문에 본서의 기록자가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2.9.2.2. 바울의 저작권을 반대하는 주장들
이에 대한 반대 주장들은 언어 문체적 논증, 문학적 논증, 역사적 논증, 교리적 논증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언어,문체적 논증을 살펴보면, 다른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지 않은 용어들이 많이 들어 있으며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어들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1세기 말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누가복음, 사도행전, 클레멘트1서, 베드로전서, 히브리서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Goodspeed는 말하고 있다.
문학적 논증에서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사이의 관련성을 말한다. 즉 에베소서의 용어들 가운데 1/4이상을 골로새서에서 빌어왔고 골로새서의 용어들 1/3이상이 에베소서에 다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에베소서의 저자가 골로새서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더 중요한 문제는 에베소서의 저자가 유사한 단어나 용어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미턴은 에베소서의 저자가 자기의 기억을 통해 골로새서를 인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귿스피드는 그는 바울의 제자였기 때문에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 논증으로 굳스피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은 장벽의 철폐는 비록 비유이긴 하지만 성전의 파괴로 그 장벽이 제거된 A.D.70년 이후로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에베소서 2:2,11은 본 서신의 수신자들이 모두 한때 이방인이었음을 입증해 준다고 주장한다. 2:3에서 저자는 이런 점에서 독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방인이었음이 틀림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울이 저자일 수 없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교리적 논증으로 교회와 기독론, 사회적 교훈 속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굳스피드는 자녀에 대한 견해도 서로 다르며, 저자의 할례에 관한 언급에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너무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이의에 대하여 유사점이라고 나타나는 점들은 바울이나 그 밖의 신약, 저자들이 동일한 샘, 그리스도에게서 물을 길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이점이 많다는 이의에 대하여 에베소서에 여러 가지 교리들이 다른 서신들보다 더 강조되고 확대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다른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교리들과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엡3:1; 4:1)이라고 하였듯이 사도 바울이다.
2.9.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바울이 본서를 감옥에서 기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과연 어디에 있던 감옥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가이사랴, 혹자는 로마, 에베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본서의 기록 장소가 '로마'일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가 가장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A.D.60-61년의 어느 시기이었을 것이다.
2.9.4. 수신지
에베소서의 문제는 엡1:1에 언급된 수신인에 대한 기록이 희랍어 사본에는 차이가 있다는데 있다.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다. 즉 "에베소에 있는"(??? ?????)의 첨가된 구절에 난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내진 서신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라고 하기도 하며, 어떤 제한된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기는 하지만 에베소는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지방적으로 혹은 어느 한 특수 지역을 위하여 쓰여졌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고대 사본에는 본 서신은 "에베소인들에게"란 제목이 붙어 있으며, 사도행전에 있는 바울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본 서신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설명한 의미에서 본 서신의 수신지는 '에베소'였다.
2.9.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직접 3년간 머물며 온 힘을 다 기울여서 세운 교회였기 때문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로마의 죄수로 갇혀 있던 바울은 에베소에 직접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간절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본서를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축복과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에베소 교회를 포함하여 당시 아시아의 교회들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늘 분열의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바울은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감취었던 비밀, 즉 그리스도 안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은 물론이고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도 없다는 그리스도의 몸의 비밀을 밝히는데 그 목적을 가지고본 서신을 썼다.
2.9.6. 내용
2.9.6.1. 서론, 경배와 찬송(1:1-23)
사도 바울은 인사를 한 후 "찬송하리로다"하며 영적인 축복이며 성부, 성자,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이어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2.9.6.2.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2:1-10)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가를 알도록 기도하던 바울은 이제 성도들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즉 본래 사람은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으며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행하셨는가 그리고 구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2.9.6.3.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2:11-22)
사람끼리 즉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화목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육체로 십자가에 피흘리심으로 의문에 속한 계명을 폐지시켰고, 그의 죽음과 부활로 새 인류를 창조하시어 막힌 담을 헐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유롭게 하셨다.
2.9.6.4. 비밀의 경륜(3:1-13)
바울 사도는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공개하면서 비밀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서로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것임을 말하였다. 즉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된다는 것이다.
2.9.6.5. 기도하는 바울(3:14-21)
그리스도의 비밀을 설명한 후 기도한다. 그들의 속사람이 강건케 되고 사랑의 뿌리가 깊이 내리며, 하나님의 충만을 맛보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2.9.6.6. 교회의 유기적 통일성과 성장(4:1-16)
교회 내에서 통일성은 다양한 은사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합된 통일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극적으로는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한다.
2.9.6.7. 그리스도인의 새생활(4:17-5:21)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을 하도록 구체적으로 말하고(4:17-32),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5:1-14). 그리고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며 구체적으로 그 생활을 제시하고 있다(5:15-21).
2.9.6.8. 가정생활(5:22-6:9)
성령 충만한 부부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자녀 관계 그리고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주종 관계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2.9.6.9. 성도의 영적 투쟁(6:10-18)
사도 바울은 편지를 끝내면서 성도가 사단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무장에 대해서 권면한다. 그 무장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2.9.6.10. 결론(6:19-24)
마지막 부분인 결론 부분에서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형편을 동역자들에게 자세히 알리고 또 그들의 형편을 알고 위로하고자 두기고를 보내는 것으로 본 서신을 맺고 있다.
2.9.7. 평 가
로마서가 교회를 처음 방문한 경우에 가르치는 표본이라고 한다면 에베소서는 "성경 토론 기술"의 한 견본이라 볼 수 있다. 본서의 대부분의 자료들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중복되어 나타날 수 있고, 에베소서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란 거의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복합적 구성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형성되었고 자체의 고유한 표준들로 장비를 갖추었으며, 그리고 동일한 영적 투쟁에 참예하고 있는 단일한 기능적 몸으로서의 교회라는 한 구조 속에 융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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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빌립보서
2.10.1. 배 경
2.10.1.1. 빌립보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父親 마게도냐의 필립Ⅱ세는 "적은 샘물"이란 뜻을 가진 크레니데스(Krenides)로 불렸던 곳에 인접해 있는 금광지대를 병합시켰다. 후에 이 도시를 확장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B.C.167 년 마게도냐가 로마에게 패배한 결과 빌립보는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빌립보는 황제도시의 축소판인 小로마가 되었고 빌립보의 원주민들은 로마시민됨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들은 어디서나 로마시민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2.10.2. 저 자
본서를 쓴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서두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라고 시작을 한다.
그러나 모두가 바울의 저작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바우어(F.C.Baur)와 그의 논증을 용인한 튀빙겐 학파의 몇 사람의 제자들이다. 바우어는 빌립보서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고린도 후서 그리고 로마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의 이름으로 통하는 모든 서신들에 대하여 바울의 저작권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본 서신은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28장에 서술된 것과 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성격도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본서에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유세비우스, 폴투스의 감독이었던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이레니우스, 뮤라토리, 익타디우스, 클레멘트 등의 글들을 통하여 그들이 빌립보서의 저자는 바울로 인정하고 빌립보서를 잘 아는 가운데 인용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서의 저자는 바울임이 틀림없다.
2.10.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불린다. 즉 본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의하면 빌립보(행16:23-40), 예루살렘(행21:33-23:30), 가이사랴(행23:35-29:32), 그리고 로마(행28:16-31)에 있었다. 이러한 구절들로 인하여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빌립보와 예루살렘은 서신을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제외될 수 있다. 그리고 가이사랴설은 다른 이론들보다 설득력이 결여되어 오늘날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에 로마설에 도전을 하고 있는 에베소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던컨은 빌립보 교회가 초기 단계에 바울의 사역을 위해 한 번 이상의 헌금을 했기 때문에 약 10년이라는 기간이 경과한 후에 다시 헌금을 보냈다고 믿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복음의 시초에'(빌4:15) 부터 돕고 있었으며 바울이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보여줄 매우 귀중한 일이라고 믿었던 구제 사업을 위해 자신을 위한 헌금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빌2:19과 행19:22을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에베소 투옥이 귀환 여행을 할 만큼 긴 기간이었으며 행19:21과 19:23 사이의 일이어야 하며 디모데와 에라스도의 사역은 이 기간 안에 완료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빌2:19과 행19:22을 동일시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이 외에도 바울과 빌립보 사이의 잦은 서신왕래, 문헌적인 연관, 유대인 논쟁, 재판, 시위대와 가이사의 가솔들 등에 대하여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본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는 전통은 훨씬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시위대(1:13)와 '가이사 집'(4:22)은 저자가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시위대나 혹은 황제의 호위병을 의미한다. 바울이 재판 중에 있으며 임박한 느낌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재판을 기다리고있었던 것은 더 이상 上告를 할 수 없는 재판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있게 복음을 전파한 것은 많은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있던 로마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바울의 개인적인 형편이 로마 투옥의 상황과 일치한다(행28:16,30,31). 그리고 마르키온의 서문은 본서가 로마로부터 발송되었다고 언급하고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설의 해석에 대한 불확실함과 사도행전의 침묵이 에베소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본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본서 저작시기는 사도행전 28:30에 언급된 2년간의 투옥 생활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므로 A.D.61-63년 말에 쓰여졌다고 본다.
2.10.4. 수신지
본서의 수신지는 1:1의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이라는 말씀을 볼 때에 빌립보 교회이다.
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사람은 바울이다. 이곳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 루디아와 귀신들렸던 여인 그리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주축으로 교회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외에 본서에 기록된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이다. 이 모든 이름들은 빌립보 교회가 두드러지게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교회의 조직은 서두인사에서 볼 수 있는 '감독들과 집사들'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곳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성공적이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6:40에 '형제들'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바울이 빌립보를 떠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행17:1부터 20:4까지는 '저희'(they)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 바울의 일행이 빌립보를 떠날 때 함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누가는 빌립보에 남아서 교회를 도왔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울이 덜어져 있던 기간 동안에도 빌립보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위한 모금을 보냈으며(빌4:15), 그 후에 다른 선물들도 보냈음이 분명하다(고후11:9).
2.10.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로부터 선물을 가지고 에바브로디도가 왔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형편에 대한 보고와 바울의 필요를 도우려는 목적을 위해 그리고 바울의 안부를 알고자 빌립보 교회의 보냄을 받은 것이었다(빌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사역하는 동안에 거의 치명적인 병으로 고생을 하였으며(2:27),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빌립보 교회는 듣고 그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고 바울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는 고향인 빌립보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이같은 소망에 바울은 그를 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거스리는 에바브로디도의 빌립보로의 귀환을 본서의 직접적인 저작동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헨드릭슨은 이러한 이유 외에 에바브로디도가 가지고 온 소식 중에 빌립보 교회의 형편에 대한 보고가 있었는데 교회 안에 있는 개인적인 알력과 유대주의인 '손할례당'에 대한 보고를 접하고, 또한 자신에 대한 빌립보 교회의 깊은 관심에 답하고자 하였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동기들로 인하여 본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의 귀환에 본서를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감사의 편지를 하고자 하였는데 에바브로디도의 병 때문에 지연되었다고 보여지므로 에바브로디도의 귀환만이 본서를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자신이 빌립보 교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생각들을 적고자 하였다고 본다.
본서의 목적은 글로써 바울 자신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은 로마의 시민권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로마의 시민권을 자랑하지 말고 하늘의 시민권을 행사하며 유대주의자들을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영적 지침들을 주고자 하였다. 또한 빌립보 교인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바울 자신에 대한 안부에 대하여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며(빌1:12,17),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고자 하였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가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났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그들에게 보임으로 염려를 덜고 에바브로디도의 갑작스런 귀환에 놀라지 말고 주안에서 기쁨으로 영접하라는 것이었다(빌2:28-29).
2.10.6. 내 용
2.10.6.1. 서론(1:1-11)
빌립보 교회와 그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하여 문안을 한 후 그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에 참예한 것을 기뻐하고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깊은 사랑과 진심으로 감사의 제목들을 말하고 있다.
2.10.6.2. 바울의 형편(1:12-26)
바울 자신은 감옥에 투옥이 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복음의 진보가 각 지역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복음이 담대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항상 옳은 동기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지만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고 있음을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소원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니라"(20)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석방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2.10.6.3. 권면(1:27-2:18)
먼저 굳건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1:27-30). 즉 성령의 하나되심 안에서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일심으로 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같은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는 하나됨을 가지라(2:1-4). 또한 예수님의 마음인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2:5-11). 순종과 성결을 가지라(2:12-18).
2.10.6.4.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2:19-30)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하여 디모데의 신실함을 말하고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사역을 도와주고 수종든 사실을 들어 그를 영접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2.10.6.5.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3:1-4:1)
당시 빌립보 성도들의 거짓 선생들에 대한 분별력을 일깨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가치관에 대해 보여주고자 자신이 그렇게 자랑으로 여기며 신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유대주의자들인 '손할례당'에 대한 경고이며(3:1-16),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다(3:17-4:1).
2.10.6.6. 권면들(4:2-9)
다시 하나됨에 관해 특별히 유오디아와 순두게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또한 기뻐하라는 주제를 다시 강조하고 믿고 기도하는 것은 평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고상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2.10.6.7. 선물들에 관한 감사(4:10-20)
바울 사도의 물질적인 쓸 것을 위해서 빌립보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또한 배부름과 배고픔 그리고 풍부와 궁핍에 일체의 비결을 주 안에서 배웠다고 간증하며 자족하는 비밀을 주 안에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빌립보 사람들이 과거에 쓸 것을 보내준 일을 회상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번에 보낸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2.10.6.8. 결론(4:21-23)
문안 인사를 하고있으며 가이사 집 사람들에대한 문안이 특별히 언급되고있다. 통상적인 축복으로 서신을 끝맺고있다.
2.10.7. 평 가
빌립보서는 받은 호의에 대한 감사의 서신이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울의 개인적 생활의 표현이다. 또한 바울이 겸손에 대한 실제적인 호소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기독론은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교리를 잘 가르쳐 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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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디모데 전서
2.11.1. 배 경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랫동안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 용어에 대하여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세 서신서들이 교회 목회의 원리적인 면들과 목회자가 지녀야할 자질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기 때문에 목회서신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바울이 투옥된 이후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바울 자신은 자신의 소명을 불타게 잡으려고 좇아가는 일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빌3;12).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나이 많은 나 바울"(몬9절)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목회서신들이 쓰여졌기에 어휘나 형식 등이 다른 서신들과 달라지게 된 것이다.
바울은 황제 앞에서 가진 첫 심문에서 무죄방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후에 그는 짧은 동안이었지만 자유의 몸으로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바울의 당초 계획은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에 보내는 헌금을 전해주는 것이었고, 다음에는 서둘러 서쪽으로 가서 로마 교회를 강화시키고, 거기서 스페인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가 자기 계획들의 입안자로만 남아 있은지 4년이란 세월이 경과한 끝에 드디어 그는 풀려나게 된 것이다.
2.11.2. 저 자
서신의 인사말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만 현대 비평가들은 이를 무시한다. 그들은 이 서신들이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다른 이들도 가명을 사용하여 서신을 기록한 적이 있다는 입장을 지지할 만한 다른 예들을 거의 볼 수 없음으로 이들의 주장은 무너진다.
그리고 외증으로 목회서신들이 폴리캅, 저스틴, 헤라클레온 등에 의해 알려졌고 또한 사용되었으며 이레네우스 시대까지는 확실하게 바울의 저작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데오빌로는 목회서신들이 영감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증과 외증을 통하여 볼 때에 본서의 기록자는 바울이다.
2.11.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바울이 제1차 로마 투옥에서 석방되었고, 몇 번 여행을 했으며, 그후 자신의 전도 사역을 마무리짓고 다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는 그 사이의 어느 한 여행 시에 디모데 전서를 썼다. 그러므로 본서는 A.D.62-63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서가 기록된 장소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첫번째 감옥생활에서 풀려난 후 마지막 전도 여행을 하는 도중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11.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디모데이다.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행16:1에서이며, 루스드라라는 곳에서 헬라인 부친과 경건한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적 신앙교육으로 양육을 받았고, 구약성경을 배웠다(딤후3:15).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시에 바울로 말미암아 회심케 되었으며, 제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과 함께 하였다.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복음화 시키는 데도 한 몫을 했으며, 바울이 에베소에서 가르치던 3년 동안에도 그를 도와 일했다. 그 기간을 통하여 디모데는 에베소 시나 그 지방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들에 대해 모두 정통해 있게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도록 지명되었던 대표단들 중의 일원이었고(행20:4), 아마도 귀환 중의 모든 여정에도 바울과 동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이 풀려난 후 바울과 함께 여행했고,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에베소로 떠나면서 디모데에게 이곳에 머물려 있으라고 부탁했다(딤전1:3). 거기에 머물러 에베소 교회에서 자라난 분규를 수습하고 있는 동안 본서를 받은 것이다.
바울의 생애가 끝나갈 무렵 그는 로마에서 다시 바울과 합류했고(딤후4:11,21), 그 자신도 투옥을 겪었으며(히13:23) 후에 방면되었다.
2.11.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기를 권하였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마게도냐로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체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딤전3:14,15), 서로 내용이 아주 비슷한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에베소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선생으로 자처하면서 끝없는 족보 이야기와 허탄하고 망령된 신화와 같은 것들을 크게 강조하면서, 그들의 이상한 교훈들을 전하였다(딤전1:4,7;4:7). 그들은 영적 부활만을 인정했으며(딤후2:18), 결혼을 폐하였으며 어떤 음식들은 못 먹게 금했다(딤전4:3). 이렇게 거짓된 교리와 윤리를 주장하는 것 외에도, 이들 때문에 공중예배 때 바른 행실에 관한 아주 분명한 규범들을 규정할 필요가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부인네들이 이 점에 있어서 특별히 교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에베소의 사태는 심각하였다.
그러나 디모데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사태를 수습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그가 디모데를 떨어 뜨려 둔 에베소를 떠나와 마게도냐에 머물면서(딤전1:3), 디모데에게 교회의 일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글로 써서 보낸 것이다.
글을 쓴 목적은 디모데가 받은 은사와 선한 증거와 그에게 부탁한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거짓된 교훈들과 싸울 수 있는 지침을 주고 그가 바른 교훈에 거하도록 권면해 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공중 예배시의 바른 행실에 대한 지침을 주고자 보낸 서신이다.
2.11.6. 내 용
2.11.6.1. 서론(1:1-2)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으로 거듭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인사를 한다.
2.11.6.2. 교리적 교훈(1:3-20)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거짓 교사들의 이단 사상, 신화, 끝없는 족보를 따지는 일, 변론을 일삼는 일, 율법을 오해하여 잘못 사용하는 일, 등의 사상들을 막아 교회를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바른 복음으로 무장해야 하며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듯 선한 싸움을 싸우며 바른 복음을 가르치고 지켜야 한다.
2.11.6.3. 교회 안에서의 바른 행동(2:1-15)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남녀 성도들의 생활자세에 대하여 남자는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하며, 하나님께는 기도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여자는 정숙한 의복과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워야 한다.
2.11.6.4. 교회의 일꾼의 자격(3:1-16)
감독이 되는 것에 대한 권고와 그 일의 영광스러운 성격과 감독의 필요한 자격들에 관한 지침들을 1-7에서 보여준다.
집사들과 그들을 돕는 여자들의 필요한 자격에 관한 지침들, 그리고 집사들과 보조 집사들의 성실한 직무 수행에 대한 권고를 준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자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2.11.6.5. 목회자에 대한 권고(4:1-16)
거짓 교사들이 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꾼의 책임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일꾼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를 바른 교훈으로 가르치며 믿는 자에게 본이 되고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고 자신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2.11.6.6. 교인들과의 인간관계(5:1-16)
교회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2.11.6.7. 장로에 대한 가르침(5:17-25)
장로들에 대한 태도와 장로를 어떻게 세우고 훈련시켜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2.11.6.8. 종들에게 대한 가르침(6:1-21)
종들은 상전이 불신자인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도록 마땅히 공경하고 신자일 경우에는 더 잘 섬겨야함을 가르치고 있다.
2.11.6.9. 거짓 선생에 대한 경계(6:3-10)
거짓 선생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들의 가르침의 동기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2.11.6.10. 믿음의 선한 싸움(6:11-16)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이지를 보여주고 있다.
2.11.6.11. 물질에 대한 태도(6:17-19)
믿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후하게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2.11.6.12. 거짓 지식에 대한 경계(6:20-21)
디모데에게 부탁 받은 것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2.11.7. 평 가
본 서신은 목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다루고 있는 교회의 목회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교회를 대적하는 이단에 대한 경계와 교회 문제와 교회 내의 다양한 지도층의 자격 요건과 그들이 해야 할 의무 등을 다루어 현대의 목회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 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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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디도서
2.12.1. 배 경
바울은 석방되자마자 곧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빌2:19-23). 아마도 주후 63년 안팎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소아시아를 향하여 여행길에 오르고 도중에 디도를 그레데 섬에 떨어뜨려 두어 거기에 세워졌던 교회의 조직을 완료시키도록 하였다(딛1:5).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고 그가 계획했던 대로 골로새에 이르기까지 계속 여행을 한 후에(몬22절)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다. 여기서 빌립보에서 돌아온 디모데를 만나고 그를 에베소에 남도록 하였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갔다(빌2:24;딤전1:3). 그는 에베소로 곧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체될 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었다(딤전3:14,15).
2.12.2. 저 자
본서의 기록자는 바울이다. 바울은 디모데 전서를 기록한 뒤 곧 이어 디도서를 기록하였다.
2.12.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바울이 디도서를 어디에서 기록하였는가에 대한 기록은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디모데전서가 기록된 직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므로 기록연대와 장소가 서로 비슷하다고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A.D.63-65년 경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2.12.4. 수신자
바울이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교회를 도와 결론을 짓도록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되었을 때에, "그 중에 몇 사람"과 함께 동행했다는 말씀이 사도행전 15:2에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갈라디아서 2:1,3의 "나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나와 함께 있는 디도라도"와 비교해 보면 그 가운데 디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디도에 대한 언급이 사도행전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딛1:4)이라고 한 바울의 말을 볼 때에 바울에 의해 회심케 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의 양친은 모두 이방인들인 헬라인이었으며(갈2:3), 이로 인하여 그는 바울이 유대주의에 도전하는 길에 동행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여행 때 고린도의 사태를 수습하는 막중하고 어려운 임무를 디도가 맡게 되었다. 바울은 디도가 고린도에서 돌아 오는 길에 드로아에서 그와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불안하였다. 그래서 드로아를 떠나 마게도냐로 건너갔다. 여기서 바울은 디도를 만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그가 성공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잘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그곳의 나쁜 소식도 접하게 되자 바울은 그곳에서 고린도 후서를 썼으며, 디도를 시켜 전달케 했다. 그 후 상당기간 동안 디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다 다시 언급이 되는 때는 바로 그가 그레데의 교회를 맡으면서이다. 바울은 그의 1차 로마 투옥에서 석방되어 동쪽으로 여행하는 길에 딛1:5에 기록되어 있는 명령을 수행하도록 그곳에 그를 떨어뜨려 두었던 것이다.
2.12.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두었으며, 니고볼리에서 만나고자 하였다. 그레데 사람들의 평판은 전혀 좇지가 못했다. 회중, 개인, 가족, 그리고 공중생활의 완전한 성화의 필요성이 다른 어떤 곳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레데에서 일을 대신 맡아 볼 사람이 거기에 도착하여 인계를 맡게 되는 대로, 바울에게 디도를 니고볼리로 오도록 명하려고(3:12) 하였다. 그리고 교법사 세나와 말에 능한 전도자 아볼로가 급히 그들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3:13). 또한 회중, 개인, 가정, 그리고 사회관계에서의 성결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주려고 본서를 썼던 것이다.
2.12.6. 내 용
2.12.6.1. 인사(1:1-4)
바울은 디도에게 문안한다.
2.12.6.2. 장로에 대하여(1:5-9)
디도의 임무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즉 그의 임무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는 자격이 잘 갖춰진 장로들을 세워야 한다고 장로들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12.6.3. 그레데의 형편(1:10-16)
그레데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심하고, 천성적으로 악하고 이기적이며 쾌락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2.12.6.4. 교회의 각계 각층에 대한 권면(2:1-10)
교회내의 '늙은이에게 주는 교훈과 젊은이가 가져야 할 태도 그리고 종들이 상전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2.12.6.5.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2:11-15)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의 친백성이 된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에 열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2.12.6.6.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3:1-2)
그리스도인은 정부에 대하여 복종의 의무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에 대하여는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함과 예의바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2.12.6.7. 구원의 근거와 목적(3:3-8)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결코 근거치 않고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목적은 후사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로 삼기 위함이다.
2.12.6.8. 피해야 할 일과 힘써야 할 일(3:9-11)
어리석은 변론과 분쟁, 족보이야기, 다툼을 피하고 선한 일에 힘써야한다. 그리고 작별인사를 함으로 편지를 맺고있다.
2.12.7. 평 가
본서는 디모데전서와 내용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아 디모데전서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본서는 제도적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는 목회서신이다. 그러므로 목회서신답게 교회의 조직, 특히 장로의 자격과 감독의 직무에 대해 교훈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선택(1:1), 영생(1:2;3:7), 그리스도의 신성, 영감, 은혜, 구원의 보편성, 재림, 대속, 전적 부패, 중생, 칭의 등의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교리를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신자들의 경건한 삶과 선행에 대하여 거듭 교훈하고 있기 때문에 본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선행'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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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디모데 후서
2.13.1. 배 경
바울은 마게도냐를 전도여행 하던 중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그리고 니고볼리로 가서 겨울을 보내고(딛3:12), 디도와 합류하였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서반아로 갔다가 돌아와 소아시아로 갔는데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그를 에베소 남쪽, 밀레도에 남겨 두었다(딤후4:20). 사도는 다시금 디모데와 상봉했다. 드로아에서 그는 가보를 방문했다가 자기 외투를 그의 집에 놓아 두었다(딤후4:13). 에라스도가 머물러 있었던 고린도를 경유하여(딤후4:20) 로마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었다. 그 당시에는 네로가 왕위에 있었다. 따라서 제2차 로마투옥은 가혹하였다(딤후1:16,17; 2:9). 2차 투옥 기간 중 누가만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자기한테 오라고 명하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이 서신은 죽음의 그늘이 사도 바울에게 정면으로 드리워진 때에 기록되었던 것이다(딤후4:6-11).
2.13.2. 저 자
본서의 기록자는 사도 바울이다. 그는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하였을 때는 자유로운 몸이었고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는 몸이었지만 본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죄수의 몸이었다. 즉 본서는 그의 마지막 서신인 것이다.
2.13.3. 저작 장소 및 저작 연대
본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전도여행 중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기록된 것이다. 이때는 네로가 왕에 있었으며 바울이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전에 쓰인 것이므로 A.D.67-68년 경에 로마의 감옥에서 쓰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 이유는 바울이 A.D.68년 경에 로마시에서 약 5㎞ 정도 떨어진 '오스티안 가도'에서 참수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바울이 처형당하기 직전인 A.D.67-68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
2.13.4. 수신자
본서는 1:2에 나오고 있듯이 바울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이다. 디모데는 본서를 아마 에베소에서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을 디모데가 알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1:15) 이는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었으므로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또한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얼마나 섬겼는지에 대해 디모데가 자신보다 "아주 잘 안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가(1:18) 오네시보로의 가족에게 바울의 문안을 잘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4:19). 그리고 4:12의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는 구절에 에베소가 언급되어 있다. 이외에 바울이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한 일, 본서에 있는 이단의 성격이 에베소에서 받은 디모데 전서와 성격이 같은 이단인 점 등을 볼 때에 디모데는 아직 에베소에서 본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2.13.5. 저작 동기 및 저작 목적
바울은 이제 감옥에 있으며 그의 생의 마지막에 직면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떠나고 누가만이 남아 자신을 지키고 있는 이때에 자신의 믿음의 아들이 디모데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있는 에베소 교회에 대한 염려와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본서의 목적은 사도 바울이 이 세상을 떠날 기약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 되도록 빨리 디모데를 보고자 재촉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맡겨진 임무를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인내하며 바른 교리를 굳게 지키라고 권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이렇듯이 본서는 바울 자신이 성취해 온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고대하고 있는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조력자들과 친구들에게 주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2.13.6.내 용
2.13.6.1. 인사(1:1,2)
디모데전서와 거의 동일하다.
2.13.6.2. 복음을 지키라(1:3-18)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그리고 모든 사람으로 버림을받은 사도 바울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빠져 있는 디모데에게 그의 깊은 사랑과 쉬지않고 기도함과 신뢰와 감사, 은사 등을 상기시키면서 바른 말,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하고있다.
또한 믿음의 배반자와 믿음을 지킨 사람의 사례를 들고 있다.
2.13.6.3. 복음의 일꾼의 자세(2:1-26)
성도를 군사로 비유하여 복음의 일꾼의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군사와 같이 고난을 이겨내며 모든 힘을 다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경기하는 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며, 수고하는 농부와 같이 열심히 일을 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를 깨끗이 하고, 세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들과 깊은 교제를 가져야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일꾼이 된다.
일꾼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하며, 온유한 성품을 지녀야 하며, 다투지 않으며 인내할 줄 알고 거역하는 자일지라도 온유함으로 회개시킬 정도가 되어야 한다.
2.13.6.4. 복음의 진리 안에 거하라(3:1-17)
말세는 언제이며, 나타나는 죄악들은 무엇이며, 거짓 교사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하며, 그들의 마지막은 어떤가 그리고 성도들은 말세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혼탁한 말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우고 확신한 말씀의 진리에 거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2.13.6.5. 말씀을 전파하라(4:1-18)
바울은 복음의 일꾼인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관제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과거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하고 미래에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음을 말하면서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의 노고를 외면치 아니하시고 보상을 하신다는 위로를 주고 있다.
2.13.6.6. 결론(4:19-22)
마지막으로 디모데를 만나 위로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길 원하고 그를 격려하고 교훈을 주고자 속히 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동역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또한 디모데에게 다른 몇몇 사람들이 인사를 보낸다. 축도로 그의 마지막 서신을 맺고 있다.
2.13.7. 평 가
본서는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쓴 그의 간절한 심정으로 쓴 유서와도 같은 글이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보다 개인적 私信이며, 비교적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복음의 사역자들의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삶과 바른 생활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즉 전서의 주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의 진리와 교리를 잘 지키라고 하는 것이라면, 본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믿음 생활을 잘 지키라는 것이다.
젊은 전파자들이 겪지 않으면 안될 미래의 위협적 요소들에 의한 위협 때문에 목회 서신서들에서는 이전의 저작들보다도 공식화된 신조에 더 역점이 주어지고 있다. 본서에 등장하고 있는 신조 형태의 구절들(1:10; 2:8; 3:16)은 읽는 이에게 목회서신들은 교회의 신앙을 명확한 술어들로 표현하기 시작하고 있는 어떤 한 교회에게 쓰여진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리고 조직체의 의식이나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영적 활력이나 행실 등의 선교적 동기가 아직 식어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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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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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렴 헨드릭슨.「헨드릭슨 성경주석」로마서(上), 손종국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3.
.「헨드릭슨 성경주석」로마서(下), 황영철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3.
.「헨드릭슨 성경주석」에베소서, 신성종 옮김, 아가페출판사, 1993.
.「헨드릭슨 성경주석」빌립보서, 서춘웅 옮김, 아가페출판사, 1993.
.「헨드릭슨 성경주석」골로새서 빌레몬서, 신현필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3.
윌렴 헨드릭슨.「헨드릭슨 성경주석」데살로니가 전후서, 김용섭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3.
.「헨드릭슨 성경주석」목회서신, 나용화 옮김, 아가페출판사, 1993.
찰스 핫지.「헨드릭슨 성경주석」고린도전서, 김영배 손종국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4.
.「헨드릭슨 성경주석」고린도후서, 박상훈 옮김, 아가페 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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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개론
1. 표제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들에 붙은 이 책의 표제는 단순히 “히브리인들에게”이다.
이 책은 주로 성소와 성소 봉사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통찰은 초기의 히브리인 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이 표제는 특별히 적합한 표제임에 틀림없다.
2. 저자
히브리서의 저자는 초기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하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초기 교부들 중의 한사람인 오리겐(Origen)은 이 책의 저자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를 한 끝에 마침내 그는 “누가 이 편지서를 기록했는지는 참으로 하나님만이 아신다”라는 선언으로서 그의 연구를 끝내었다.
다른 교부들은 이 책의 저자가 바나바, 아볼로, 클레멘트, 또는 누가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와같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불확실하게 여겨진 사실은 로마 제국의 서부에 살고 있던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지서를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사실에 있어서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히브리서는 로마 제국의 서부에서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세기 동안 히브리서 저자에 관한 논란은 중단되었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바울의 저작으로 받아들였다.
이 견해는 일반적으로 지지되어 비교적 가까운 현대까지 이르러 왔으나, 마침내 그 문제는 다시금 학자들간에 의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1885년까지만 해도 개역 성경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울의 편지로 보았으나, 현재는 이러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바울이 히브리서를 기록했다는 견해를 반대하는 주장들은 주로 이 책의 문체와 내용에서 그 증거들을 들고 있다.
한 저자의 어휘와 문체가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일은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그 저자가 기록하는 상이한 주제의 특징을 이루는 전문적인 용어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그의 어휘들과 특별히 거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단어들, 말하자면 전치사, 부사, 및 특히 연결어 등은 전문적인 용어들보다도 더 저자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된 바울의 편지들과 비교할 때 히브리서는 그것의 저자가 문장의 절들을 연결시키는 작은 연결어들에 있어서 특별히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뚜렷한 차이점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방법이다. 먼저 받아들여진 서신서들은 구약을 인용할 때에 일련의 다소 표준적인 귀절들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히브리서는 다른 유(類)의 귀절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서신서들은 사도 바울의 구약 자료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워, 때로는 70인역에서 인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히브리어에서 자기가 스스로 번역하여 쓰기도 하며, 또 때로는 정확하지 않는 애매한 인용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히브리서에서의 구약 인용구들은 사실상 언제나 70인역으로부터 자구적(字句的)으로 옮겨진 것들이다.
좀 더 넓은 견지에서 볼 때, 히브리서의 일반적인 문체는 바울의 저작으로 되어 있는 다른 어떤 서신서들의 문체와도 현저하게 다른 것이 사실이다.
후자의 문체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저자의 사상들을 표현하는 비등(沸騰)하고 열렬한 귀절들로써 현저하게 특징지워져 있기 때문에 매끈하고 우아한 문체가 손상되어 있는 반면에 히브리서는 철저하게 정돈된 논증을 제시하고, 따라서 신약의 그 어떤 책보다도 높은 수사학적(修辭學的)수준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같은 문체상의 차이점은 코이네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초기 교회의 저술가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 215? 사망)는 바울이 처음에 히브리서를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말하였다.
그와같은 설명은, 히브리서가 다른 언어에서 번역되어질 수 없는 헬라어 단어들로써 말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의하여 타당하지 않는 것으로 비록 판정이 되긴 하였으나, 클레멘트의 진술은 그것이 히브리서의 헬라어가 바울의 헬라어 같지는 않다는 인정을 함축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술이다.
초기 교회의 뛰어난 학자들 중의 하나인 오리겐(A.D. 254? 사망)도 마찬가지로 히브리서의 문체와 바울의 문체를 조화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인정하였다.
그가 내린 해결책은 이러하였다. “그 사상은 바울의 사상이다. 그러나 그 문체와 작문은 그 사도의 가르침들을 회상하여, 말하자면 그가 한 말에다 약간의 주석을 붙인 다른 사람의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하나의 추정 근거는 3세기의 것인 체스터 베티 성경 파피루스들의 발견으로 비교적 근래에 나타나게 되었다.
바울 편지서들로써 구성된 사본 가운데서 히브리서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사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이 곧 히브리서의 바울 저자설을 확증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그것은 교회 역사의 매우 초기에 히브리서가 바울의 저작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이 존재했던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바울 저자설을 반대하는 유력한 논증들이 제시되긴 하였으나, 그와같은 논증들이라 할지라도 바울이 이 책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견해를 뒤집어 엎기에는 불충분하다.
이미 알려진 바울의 편지서들과 비교할 때, 히브리서의 음조와 문체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의 대부분은, 그 다른 편지서들이 특정한 교회 집단들, 또는 개인들에게 특정한 문제 해결을 위하여 보내졌다는 사실을 고려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기초 위에서도 설명될 수 없는 문체상의 어떤 차이점들이 혹시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차이점들은 바울이 하나의 특별한 주제인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에 관하여 설교들을 했다는 점과, 그 설교들은 속기로써 기록되었다는 점 등의 추측된 사실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기록이 되는 문서들에 있어서 흔히 그런 것처럼, 전사(轉寫)된 문서의 최종적인 문체는 그 전사자의 색채를 강하게 띠기 마련이다. 바울이 그의 설교들을 편집, 교정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쉴새없이 여행하였으며, 이윽고 그의 여행은 순교를 당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히브리서가 예루살렘 함락(A.D.70)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동의를 얻고 있다. 그런데 A.D. 70 이전의 몇 해 동안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수효가 매우 적었다.
그렇다면 그 지도자들 중에 과연 누가 이 히브리서에 제시된 바와 같은 심오한 논증을 진술하였을까?
십중팔구 그 인물은 바울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같은 초기의 교회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그리스도인이라고 간단히 말해 버리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히브리서와 같은 위대한 저작을 내놓을 만한 신학적 통찰력과 논리적 설득력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교회 지도자들의 수효는 그토록 적은 반면에 교회의 일군들의 기록은 그토록 풍성하던 그 시기에 미지, 또는 무명의 저자로 전해진 것은 어찌된 일인가?
3. 역사적 배경
사도시대의 교회에 따른 어떤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분열을 초래한 문제는 필경 의문률(또는 예식법)과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지키는 문제였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예식법 준수의 의무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 그리스도인 대집단은 아직도 그 동일한 자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그 법을 지켜야 한다고 의심 할 여지없이 믿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문률의 준수 문제가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의 커다란 분파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이미 폐기된 신앙 생활의 까다로운 제도를 여전히 따르고 있었으므로, 교회 내에는 자연히 불미스러운 긴장이 감돌게 되었다.
바울과 그의 측근자들은 모세의 율법들과 의식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구속의 경륜 가운데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에 놓을 수 있기에 필요한 통찰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들의 일시적인 성질과 그것들이 이미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골 2:16, 17).
예루살렘에 그 중심을 두고 있던 유대인의 그리스도 교회는 미구에 닥쳐올 재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절기들을 지켰고, 예나 다름없이 희생제물들을 드렸으며, 의문률에 대하여 여전히 열심이었다(행 15장).
그들은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에 관해서는 매우 희박한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분의 봉사에 대하여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고, 갈보리산 위의 위대한 희생제물에 비춰볼 때 그들 자신의 제물들은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율법에 열심있는”(행 21:20) 이 수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될 때 일대 위기를 맞이할 것이었다.
이 일은 히브리서가 기록된 직후에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이 때야말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실재들에 대하여 눈을 뜨기에 적절한 기회였다.
그들의 성전이 파괴되면, 그들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확실하고도 견고한 어떤 것에 믿음의 닻을 드리워야 할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마음으로 하늘의 대제사장과 성소를 주목하고 염소와 송아지보다 더 좋은 희생제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단순한 지상의 건물이 없어질지라도 낙망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와같은 소망이 없거나, 하늘의 성소에 대한 비젼(vision)이 없으면, 그들이 의지하고 있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볼 때 당황하고 난처한 지경에 빠질 것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차 있을 로마와의 전쟁 동안에 예루살렘의 신자들이 흩어져서 살게 될 모든 지역의 이방인 교회들을 위해서도 이와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히브리서가 나타난 것은 이와같은 위기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 당시에 필요되던 바로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성소 문제,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피(히 12:24),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남겨놓은 안식(히 4:9),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는 복된 소망(히 6:19)등에 관하여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베드로 후서 3장 15-16절에 바울이 히브리인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음...베드로전후서 기록연대를 AD64-68사이로(대체로 AD68년) 본다.]]
4. 주제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구속의 경륜을 제시해 주신 방법으로서의 상징들과 십자가 이후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하시는 봉사의 실재를 비교하고 대조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모형적 제도 아래서 고대 이스라엘이 겪은 체험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과 경고로서 제시되어 있다.
모형적 제도와 그 제도 아래서 겪은 이스라엘의 체험들을 통하여, 바울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더욱 완전한 이해와 인식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5. 개요
Ⅰ.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지위와 권위 1:1-2:18
1. 아버지와 동등하심 1:1-3
2. 천사들보다 우월하심 1:4-14
3.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받아들이는 일의 중요성 2:1-4
4.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 2:5-18
(1) 고양(高揚)된 인류의 운명 2:5-8
(2) 성육신의 결과로 가능해진 구원 2:9-18
Ⅱ.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 3:1-4:16
1. 우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3:1-6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에 실패한 고대 이스라엘 3:7-19
(1)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라는 호소 3:7-15
(2)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이 된 불신 3:16-19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라는 호소 4:1-16
(1) “안식”의 약속이 아직도 효력이 있다는 증거 4:1-11
(2)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이 “안식”을 찾으라는 권면 4:12-16
Ⅲ.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탁월한 신분 5:1-8:13
1. 아버지에 의하여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신 그리스도 5:1-10
(1) 대제사장의 기능 5:1-3
(2) 그리스도의 임명 5:4-6
(3)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준비 5:7-10
2.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영접하라는 권면 5:11-6:20
(1) 많은 사람들이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더디 이해함 5:11-14
(2) 독자들의 이해력이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 6:1-12
(3) 그리스도교의 소망의 확실성 6:13-20
3.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7:1-28
(1) 멜기세덱의 탁월한 위치 7:1-4
(2) 아론의 제사장 직분보다 더 우선하고 우월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 7:5-11
(3) 아론의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으로 대치됨 7:12-24
(4)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효능과 영원성 7:25-28
4.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8:1-5
5. 그리스도께서 그 아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새 언약 8:6-13
Ⅳ.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 9:1-10:22
1. 지상 성소와 그 봉사에 대한 묘사 9:1-7
2. 지상 성소의 모형적 의미 9:8-14
3.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9:15-28
(1) 피에 의한 옛 언약의 비준 및 그 성소의 봉헌 9:15-22
(2) 그리스도의 피가 새 언약을 효과있게 함 9:23-28
4. 그리스도의 희생은 짐승의 희생보다 우월함 10:1-22
(1) 짐승의 희생의 무효함 10:1-4
(2) 그리스도의 희생의 효능과 영원성 10:5-18
(3)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를 받아들이라는 호소 10:19-22
Ⅴ. 성실과 경건한 생활에 대한 호소 10:23-13:17
1. 심판날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10:23-29
2. 옛날 노독들의 충실한 모본에 비추어서 11:1-12:2
3. 시련과 박해에도 개의치 않고 12:3-13
4. 시험에도 개의치 않고 12:14-29
5. 일상 생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13:1-17
Ⅵ. 사도로서의 축도와 개인적 인사 13:18-25
===매튜헨리 히브리서 서론==
히브리서(서론)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다음의 내용을 먼저 알아내야 한다.
1. 히브리서의 권위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들의 비정상적인 관점으로는 히브리서에서 빛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오류는 시정되었을 것이다.
히브리서에서 빛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의 예로는 먼저 아리우스 주의자들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격(神格)과 스스로 존재하심을 부인하였고, 다음은 소시니주의로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속죄를 부인한다. 그러나 결국 그런 사람들 모두가 해 놓은 일은 히브리서를 험담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거룩한 권위는 강하고 명확한 빛으로 빛나며, 읽는 사람의 마음에 정경(正經)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해 줄 것이다.
주제의 거룩성, 문체의 고상함, 구성의 탁월함,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의 조화와 모든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합당한 이 모든 것들이 히브리서의 권위에 대한 증명이 되어 주는 것이다.
2. 히브리서의 저자.
신의 필생(筆生) [주님의 서기관]역할을 한 분에 대하여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서신과 같이 서두에 저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히브리서를 썼는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간에 논쟁의 쟁점이 되어 왔다.
어떤 사람은 로마의 클레멘스라고도 말하며 어떤 사람은 누가라고 말한다.
또 많은 학자들은 바나바라고도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에서 묘사된 바나바와 같이 히브리서의 표현 방식과 문체 속에서 열렬하고 권위적이며 다정다감한 성격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초대 교부 중의 한 사람은 히브리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그것이 바나바의 말이라고 설명한 예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로 추측한다.
후기에 와서 어떤 사본과 번역에는 히브리서의 서두에 바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보편적으로 바울의 저서로 알려졌으며, 히브리서의 문체나 사상이 바울의 사상과 일치하고, 바울은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서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데 노력하고, 그것에 목적을 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베드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바울이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베드로 후서 3장 15-16절에 바울이 히브리인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음).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히브리서 외에 다른 서신을 히브리인들에게 보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없다.
[바울이 기록했다고 여기고서 좀 더 관찰해 보자면]
바울이 다른 서신에는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서신에서 이름 쓰기를 생략한 까닭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어떤 주석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고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편견 때문에 그의 서신을 읽지도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울의 이름을 익명으로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3.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구조와 목적에 대하여,
본서는 히브리인들에게 고차적인 신앙의 비의를 명확히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과 심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또한 히브리인들에게 율법을 초월하는 복음의 탁월성과 히브리인들이 그렇게 귀중이 여기고 심취하여 거기에 빠져버린 여러 가지 의식법들을 버리라고 주장하였다.
히브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낡은 누룩을 너무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서의 목적은 믿는 히브리인들이 신앙 때문에 당할지도 모르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인내로써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복음의 주인이신 영광된 예수의 탁월함을 역설하였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진시키고 그리스도의 모든 것 안에서 전부가 되심을 강조하였다.
히브리서 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본서에서 발견될 수 있는 깊은 맛은 우리가 이 서신을 이해하느라 쏟은 모든 수고를 충분히 보상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히브리서를 신약의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히브리인에게 보낸 이 편지보다 더 거룩하고 신성함으로 채워진 성경의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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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다소에서의 바울]]
1. 바울의 초기 행적에 대한 성경의 증거
회심 이후 자신의 행적에 대해 바울은 갈1:17-18에서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라고 설명한다.
더글라스 레드포드의 정리에 따르면, 다메섹에서 일어난 바울의 회심은 AD 34년이고 그가 아라비아로부터 예루살렘에 방문한 때는 AD 37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바울의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회심 후 3년만에 이뤄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행9:26-30은 바울이 그가 핍박하던 복음의 변호자가 되었으나 예루살렘 제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행9:30은 “형제들이…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고 기록한다.
이 후 AD 46년, 바나바에 의해 사울이 다소로부터 안디옥으로 부름받을 때까지(행11:25) 훗날 바울이라 이름하는 이 사울은 약 10년간 그의 고향 다소(행22:3)에 머물렀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합치된 견해다.
그로부터 약 12년 후인 AD 58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음을 상기한다면, 회심 후 체포까지의 그의 행적은 약 13년(아라비아 3년, 다소 10년)의 준비와, 약 12년의 본격적 사역으로 크게 나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아라비아와 다소에서의 행적들 후3년만에 예루살렘에 방문했던 일은 보다 사려깊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바울은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그의 사역에 있어 충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바울의 다소행은 그의 자의라기보다 타의에 의한 도피에 가까운 것으로 행9:29-30이 기록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서도 그는 그 특유의 성품대로 담대했다.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변론에 대해 누가는 두 번이나 “담대히(παρρησία)”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행9:27, 29)
이는 3년 전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 직후 “힘을 더 얻어”(행9:22)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명한 것과 확신이나 방식에 있어 유사함을 보인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 지난후 예루살렘방문, 그리고 예루살렘 방문 이후 다소에서의 10년은 이 후의 사역에서 보이는 바울의 신학적, 사역적 확신과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2. 아라비아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아라비아는 건조한 사막으로 불리던 곳이다.
바울이 당시 ‘아라비아’라고 이름하는 지역에 머물던 시기에 그 곳은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바테아 왕국의 중심지는 나바투(훗날의 페트라)였고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아울러 시리아(수리아)의 다메섹까지를 포함하는 영토를 사실상 정치적으로 지배했다.
주후 105년 로마황제 트라야누스가 나바테아 왕국을 로마제국에 편입시키기까지 나바테아는 로마의 인접왕국으로서 건재했다.
한편, 고후11:32에서 ‘아레다 왕’으로 간단히 언급되듯이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의 나바테아 왕은 사료상 발견되는 아레타스 4세(9BC~40AD)였을 것이다.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라는 숨은 시간(hidden time)에 대해 아직까지 합치된 견해는 없고, 바울의 아라비아 행적에 대해 크게 4가지의 의견이 있을 뿐이다.
첫째, 그가 3년간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Moo)
이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마도 이 곳에서 ‘갈라디아서’에서 드러나는 ‘이신칭의’ 교리를 정교화했을 것이다.
둘째, 그가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Hengel and Schwemer) 그렇다면 이 시기는 바울의 진정한 1차 선교가 된다.
셋째, 그가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Timothy George)
이 견해는 첫째와 둘째 견해를 아우르는 듯 하고 설득력 또한 크다.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의 3년간의 시간은 장래 사역을 위한 준비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넷째, 바울이 3년이라는 시간 대부분을 실제로는 다메섹 전도에 매진했고 아라비아에는 단지 얼마간 내려갔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행9:19-25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행9:23의 “여러 날(ἡμέραι ἱκαναί)”을 “많은 날” 혹은 “충분한 날”로 직역하여 이 시간이 바로 3년을 뜻하는 것이며 본문의 문맥에 따르면 이 시기동안 바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활동에 매진했다고 한다.
요컨대, 이 마지막 견해는 바울의 3년을 다메섹에서의 3년으로 보는 것이다.
---바울의 숨은 3년에 대한 성경본문들과 또 이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비교해볼 때 위에서 다룬 셋째 견해, 즉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앞으로의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있어 보인다.
우선 아라비아를 다메섹으로 축소하여 해석한다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아라비아를 언급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된다.
또한 그가 만일 아라비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갔다면 사도행전이나 이 후의 어떤 서신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이 재차 언급되었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단순히 중세 수도사들처럼 기도와 묵상에만 매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회심 직후 그가 다메섹에서 즉시 전파했던 모습(행9:20)이나 3년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전파한 모습(행9:29)은 매우 활발하여 수도원적 모습과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3. 다소의 위치와 바울의 행적
척박한 아라비아와 달리 길리기아 다소(Tarsus)는 헬라철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길리기아는 시리아에서 북서쪽에 위치했으며 다소는 그 곳의 큰 성이었는데 그 곳은 아덴 다음으로 이름난 학문의 도시였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이 곳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성장했다(행22:3). 그러나 그는 다소 사람이라 불리웠다(행9:11).
바울의 학문은 위정자들에게도 유명했다(행26:24). 훗날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헬라문화(신화나 철학)에 매우 익숙한 유대인이었다.
다소는 큰 성이었으므로 그 곳에도 분명 유대인의 회당이 존재했을 것이다.
바울은 매우 당연한 듯이 거점도시마다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자신만의 규례를 갖고 있었다.
아라비아에서의 행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과 달리 다소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가 있다.
사도행전이나 다른 서신서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 그가 사역을 감당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바나바가 그를 찾기 위해 다소를 방문하기까지(행11:25) 바울은 무명의 사역자로 활동했다.
다소에서 행한 그의 사역이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이 시기까지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행9:26)
그는 악명높은 핍박자에서 이제 막 기적적으로 회심한 신자였다. 교회는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둘째, 사도행전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끝을 겨냥한 안디옥교회의 선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바울의 다소 사역은 주목받을 이유가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4. 바울의 시간표: 아라비아 이후와 다소 이후
바울은 분명히 회심 이후 곧장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노라고 말한다.(갈1:16)
아라비아에서의 3년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1:17-8)
그 곳에서 바나바는 “그[바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행9:27)을 말하며 그를 예루살렘교회 형제들에게 변호했다. (그러나, 사도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변론때문에 살해하려는 음모를 피해 다소로 보내어지게 됨)
바나바가 이로부터 10년 뒤 또다시 바울을 찾으러 길리기아 다소에 갔던 것(행11:25)은 그가 오랜 세월 바울의 충실한 변호자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바울은 이미 회심 직후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행9:22)시켰었다.
이는 구약에 능통했던 그에게는 직가 거리에서의 며칠이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성취를 연관짓기에 충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성취에 대한 그의 신학적 토대는 아라비아에서의 3년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곧장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면 아라비아 3년은 그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또 그 다음 다소 10년은 그의 사역에 어떠한 발판이 되었는가?
아라비아 3년 이후 바울은 [회심이후 처음으로, 홀로]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본래 사도들에게 전해듣지 않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마주했던 바울이었다.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올라갔는가? 이에 대해 바울은 “게바를 심방하려고”(갈1:18)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울은 왜 게바를 심방하려 한 것인가? 아마도 바울은 게바나 야고보 처럼 자신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갈1:17)을 만나서 함께 사역하기 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갈1:22)했다는 표현에서 짙게 나타난다.
그는 그때까지도 사도성은 고사하고 회심의 진정성조차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신과 같은 배경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했고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행9:29)는 바람에 고향인 다소로 보내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다소 10년은 바울이 계획했던 시간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는 아라비아 3년 이후 자신의 사역을 본격화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앞서 다룬대로 예루살렘과 유대의 교회들이 그를 인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에서 머물러 10여년 사역하고 있는 중, 바나바가 찾아와서 안디옥에서 동역하기를 제안하여 안디옥으로 옮겨 갔고, 1년정도 될 무렵, 성령의 계획하심따라 바나바와 함께 1차전도여행을 다녀 온 후, (회심으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였음) 바울은 또다시 [이방인신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유대인교사들의 문제에 대한 처리방침 논의 + 1차전도여행 보고 위해] 공적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를 다룬 갈2:8에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이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역적 역할분담을 위한 것이었다.
왜 이러한 사역적 역할분담이 필요했을까? 갈2:2에서 바울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다소에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그리스도의 도를 유대교의 보완이나 개혁 정도로 여겼던 소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세력은 그 때까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헤롯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교와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던 이 시기(행12장) 이방인 또는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한 바울의 선교적 열심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고립되어 가던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인정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짊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바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갈2:9)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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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브로디도, 디도, 에바브라====
!Epafrovdito"(1891, 에파프로디토스) 에바브로디도 Epaphraditus
에파프로디토스는 '잘생긴, 매력적인'을 뜻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에바브로디도'로 번역되었다. 에파프로디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빌립보서에 2회 나온다.
(a)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b)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헌금을 가져온 빌립보 교회의 일원이다.
그의 헬라 이름은 라틴어 베누스투스(Venustus, "비너스에 속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본래 유대인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 이름은 헬라나 라틴 이름 중에 흔한 이름으로서, 에바브라(Epaphras)라는 축약형으로도 흔히 사용되었다. ..(주의)그러나 골로새의 에바브라와 그를 동일시할 만한 증거는 없다(골 1:7; 4:12).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존경받는 교인이었다. 그가 관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교회의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하도록 위임받았으며(빌 4:18) 그와 함께 머물면서 그를 도왔다(빌 2:25; 빌 2:30).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그를 그들을 대신하여 바울을 섬기도록 보내어진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로마에서 위독한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의 병은 여행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으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을 완수하려는"이라는 구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로마에서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데서 온 과로 때문일 가능성이 더 많다. 에바브로디도가 천천히 회복이 된 후에 바울은 그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빌립보에서 자기를 걱정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듣고 근심하였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편지와 함께 그를 보내면서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할 것을 부탁하였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로 묘사한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그를 매우 존중한 것을 알 수 있다.(참조: D. E. Hie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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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vto"(5103, 티토스) 디도 Titus(인)
티토스는 '공경하다'를 의미하며, 신약성경에 13회 나온다.
티토스/ 디도는 헬라인이며 바울의 동역자였다(고후 8:23; 갈 2:3). 바울이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고후 2:13; 고후 8:23; 딛 1:4).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바울과 동행했다(갈 2:1-3; 행 15:1; 행 15:2).
그는 바울이 고린도로 보내었으며(고후 8:6; 고후 8:16-22; 고후 12:17; 고후 12:18), 마게도냐에서 다시 바울을 만났다(고후 2:13; 고후 7:6; 고후 7:7). 그로 인하여 바울이 위로를 받았다(고후 7:13; 고후 7:14).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더욱 깊어갔다(고후 7:15).
바울이 그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두었으며(딛 1:5) 바울이 편지로 그가 그레데에서 할 일을 지시했다(딛 1:4). 그는 니고볼리에서 다시 바울과 함께 하였으며(딛 3:12) 그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 4:10). (참조: 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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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fra'"(1889, 에파프라스) 에바브라 Epaphras(인)
에파프라스는 에파프로디토스(!Epafrovdito")의 축소형이며, '매력적인'을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에바브라'로 번역되어 있다.
에파프라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골 1:7; 골 4:12; 몬 1:23).
에바브라는 골로새 태생의 사람이며 골로새 교회의 창시자로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쓸 때 그와 함께 있었다(골 1:7, 8; 4:12, 13; 몬 23). 그를 빌립보 교회의 일원인 에바브로디도(빌 2:25; 4:18)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에바브라는 바울이 개종시킨 사람인 것같다. 바울의 대리자로서 그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에(행 19:10) 골로새(골 1:7 RSV)와 이웃 도시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4:12, 13)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가 로마에 있는 바울을 방문하였고, 루거스(Lycus) 계곡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의 보고를 받고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게 되었다(골 1:7-9).
바울이 에바브라를 높이 평가한 것은 바울이 그에 대하여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골 1:7), "그리스도 예수의 종"(4:12), 그리고 "나와 함께 갇힌 자"(몬 23)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은 아리스다고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에(골 4:10), 에바브라와 아리스다고가 번갈아서 자발적으로 바울과 함께 옥고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
에바브라의 훌륭한 인격은 바울이 루거스(Lycus)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뜨겁게 중보기도하는 그를 칭찬하고 있는 데서도 일 수 있다(골 4:12, 13).(참조: H. S. See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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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란, 성(城)의 지명이 아닌 한 지방의 명칭이며 갈라디아서는 일부 다른 서신들처럼 한 성에 있는 한 교회나 여러 교회에게 주어진 서신이 아니고 한 지방에 속한 여러 교회에 주어진 서신이다.
((당시 터키를 지역적으로 대별해 보면 서쪽의 아시아(소아시아), 서북~북방의 비두아니아-본도, 서남방의 루기아, 동부중앙의 갑바도기아, 동부남방의 길리기아, 중앙부와 동북부에 걸친 갈라디아로 나눌 수 있음))
......각 지역의 주요 도시들로서는, 아시아(=소아시아...해변인근에는 드로아-앗소- 에베소-밀레도<에베소 서남방>, 해변인근에는 에베소-서머나-버가모, 내륙의 두아디라-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골로새<비시디아안디옥의 서남방, 에베소 동남방160km, 라오디게아 동남방19km.히에라볼리 서북방10km>가 속함), 루기아(바다라, 무라, 앗달리아, 버가 : 1차전도시 앗달리아-버가를 거쳐서 비시디아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로 나아갔음), 길리기아(다소), 그리고 중앙부에서 동북부에 이르는 갈라디아는 터키의 중앙부지역과 갑바도기아 북부에 걸쳐 있는데(r자형) , 갈라디아 북부와 서북단 경계는 비두니아-본도에, 남단경계는 밤빌리아지역에 잇닿아 있으며, 터키중앙부의 갈라디아를 다시 남북으로 나누어 보면 비시디아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은 모두 남갈라디아에 속함 : 비시디아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들은 모두 1차 전도여행때 바나바와 함께 방문한 곳들임))
......이 갈라디아인들은 바울이 전도하여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로 보이며, 비록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첫 개척자가 아니었다 해도 적어도 그는 갈라디아 교회들을 성장시키는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은 본 서신의 내용을 통해서 또는 사도행전 18장 23절의 내용을 통해 입증되는데,
그 기록에서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의 각 교회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모든 제자들을 굳세게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그들은 그의 인격과 목회에 대단한 경의와 애정을 표현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그들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몇몇 유대교 신앙을 강조하는 교사들이 그들 가운데로 들어왔고 그들의 꾀임에 의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들 교사들 이외의 사람들은 낮게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이 거짓 교사들이 주로 목표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을 예수의 주된 가르침이었던 의인의 교리를 그들은 파괴하려고 하였던 것으로서, 조잡한 수단을 통해 이 일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다 모세 율법 준수를 첨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그들의 계획을 보다 잘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바울 사도의 인격과 명성을 떨어뜨리려 하였고, 그의 가르침이 멸절된 위에 자신들의 교리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바울을 비록 자기가 사도라고 주장은 하지만 다른 사도들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인물이며 특히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받는 존경과 같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바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제자들인 것처럼 행세하였고 이러한 그들의 음모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러한 동기로 인해서 사도는 이 서신을 쓰게 된 것이었다.
[[1차 전도여행 보고 위해, 그리고 이방인들의 율법 준수 문제 논의 위한 예루살렘공회가 열리기 직전에 보낸 것으로 보임...AD49년경]]
본 서신에서 그는 그들이 복음에 대한 믿음에서 그렇게 쉽게 떠난 사실에 대하여 유감을 표현했다.
또한 그들이 그의 적들의 비방을 듣고 사도로서의 그의 특성과 권위를 무시해 버리고 또 그의 사명과 가르침이 모두 신적인 데서, 유래한 것임을 부인하며 무엇으로 보든지 그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못한 자로 여기로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유감을 표시한다(고후 11:5).
그는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되는 위대한 복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거듭 주장한다.
이어서, 그들의 마음에 복음에 관하여 제기되기 쉬운 어려운 문제들을 제거해 준다.
이 중대한 가르침을 재확립한 후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자유롭게 하신 그 자유에 굳게 서서 이 지유를 능욕하는 자들과 대항해 싸울 것을 경고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몇 가지 매우 필요한 의견과 지시 사항을 그들에게 전해 주고 그런 다음 이들에 의해서 그들이 함정에 빠졌었던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저희에게 말하고 또한 자신의 심정과 행적을 말하므로 서신을 종결짓는다.
이 서신을 통하여 나타난 그의 원대한 안목과 계획은 떠나간 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였고 요동하기 쉬운 자들을 안정되게 하였고 그들 가운데 본래의 순수한 신앙을 그대로 간직한 자들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다. http://hangyulcmi.org/word_r/8896 갈라디아 지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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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마케도니아 북부지역에는 트라키아(북동부), 모에시아(정북부), 일루리곤(북서쪽)으로 나뉘어 있었음 ,
**마케도니아의 경내 :: 동쪽부터 네압볼리(트라키아 접경지역인근), 빌립보(네압볼리 서북서쪽), 암비볼리/아볼로니아(빌립보 남서쪽), 데살로니가(빌립보 남서쪽...아볼로니아 서북서쪽), 베뢰아(데살로니가 서남서쪽),
**그리이스(헬라)영내 :: 아테네(아티카지역....베뢰아 남쪽방향 아티카반도의 끝), 아티카와 펠로폰네소스반도가 이어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입구에 고린도(코린트)가 위치,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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