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10.이방인중첫성령세례자고넬료의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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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0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다..**고넬료에게 Q경외함 알게 한 그 누가 이미 있었다!!.할렐루야**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pm3 :기도시간..am9-12MD-pm3)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Q보좌앞 생명책에 기록되었음!..복음전도자로)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베드로의 경호 위해)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세인들의 낮잠시간..비록 덥지만 홀로 있어 기도하려..12MD)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기도중 환상)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Q의 성품, 경륜-섭리따라 각사람의 성품과 관점의 패러다임을 깨뜨리심...다 내려놓고 주님 따르라...땅끝도 Q나라 영역임.)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Q이 받으심!)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다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성정을 가진...행14:15]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변화산 기억 떠오르게 하심)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만유=모든 사람...출신성분차이상태:빈부귀천한계,편견-선입관 분쇄 초월)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부활JC만남+경험+거함)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Q이 넣어주시는 말씀, JC만을, JC에 대해 말하며, HS께서 하라시는대로 행함으로써JC를 살아내라. : 고넬료도 JC의 구속-죄사유함의 은총이 필요함..기대하라!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듣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오순절날처럼 하늘로부터 직접 부어주심의 성령세례..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근원적, 본질적-경륜적 HS그 자체...방언 그자체는 HS받음의 증거가 아님에 유의하라!..사마리아신자, 다소의 사울, 에베소 신자들에게는 [안수]통해 임했음..한편, 유대신자 3천-5천-이디오피아내시-안디옥성도들에게는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외적 큰능력없이 세례/성령세례 주어졌음 : 조건은 오직 승천하사 보좌에 ㄴ앉으신 JC바로 그분의 영광을 사모함!! ) ..경륜= Q의 [가정사에 대한] 주권적 뜻 이룸 위한 시대적 경영관리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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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0...Amplified Bible, Classic Edition

1 Now [living] at Caesarea there was a man whose name was Cornelius, a centurion (captain) of what was known as the Italian Regiment,

2 A devout man who venerated God and treated Him with reverential obedience, as did all his household; and he gave much alms to the people and prayed continually to God.

3 About the ninth hour (about 3:00 p.m.) of the day he saw clearly in a vision an angel of God entering and saying to him, Cornelius!

4 And he, gazing intently at him, became frightened and said, What is it, Lord? And the angel said to him, Your prayers and your [generous] gifts to the poor have come up [as a sacrifice] to God and have been remembered by Him.

5 And now send men to Joppa and have them call for and invite here a certain Simon whose surname is Peter;

6 He is lodging with Simon a tanner, whose house is by the seaside.

7 When the angel who spoke to him had left, Cornelius called two of his servants and a God-fearing soldier from among his own personal attendants.

8 And having rehearsed everything to them, he sent them to Joppa.

9 The next day as they were still on their way and were approaching the town, Peter went up to the roof of the house to pray, about the sixth hour (noon).

10 But he became very hungry, and wanted something to eat; and while the meal was being prepared a trance came over him,

11 And he saw the sky opened and something like a great sheet lowered by the four corners, descending to the earth.

12 It contained all kinds of quadrupeds and wild beasts and creeping things of the earth and birds of the air.

13 And there came a voice to him, saying, Rise up, Peter, kill and eat.

14 But Peter said, No, by no means, Lord; for I have never eaten anything that is common and unhallowed or [ceremonially] unclean.

15 And the voice came to him again a second time, What God has cleansed and pronounced clean, do not you defile and profane by regarding and calling common and unhallowed or unclean.

16 This occurred three times; then immediately the sheet was taken up to heaven.

17 Now Peter was still inwardly perplexed and doubted as to what the vision which he had seen could mean, when [just then] behold the messengers that were sent by Cornelius, who had made inquiry for Simon’s house, stopped and stood before the gate.

18 And they called out to inquire whether Simon who was surnamed Peter was staying there.

19 And while Peter was [a]earnestly revolving the vision in his mind and meditating on it, the [Holy] Spirit said to him, Behold, three men are looking for you!

20 Get up and go below and accompany them without any doubt [about its legality] or any discrimination or hesitation, for I have sent them.

21 Then Peter went down to the men and said, I am the man you seek; what is the purpose of your coming?

22 And they said, Cornelius, a centurion (captain) who is just and upright and in right standing with God, being God-fearing and obedient and well spoken of by the whole Jewish nation, has been instructed by a holy angel to send for you to come to his house; and he [b]has received in answer [to prayer] a warning to listen to and act upon what you have to say.

23 So Peter invited them in to be his guests [for the night]. The next day he arose and went away with them, and some of the brethren from Joppa accompanied him.

24 And on the following day they entered Caesarea. Cornelius was waiting for and expecting them, and he had invited together his relatives and his intimate friends.

25 As Peter arrived, Cornelius met him, and falling down at his feet he made obeisance and paid worshipful reverence to him.

26 But Peter raised him up, saying, Get up; I myself am also a man.

27 And as [Peter] spoke with him, he entered the house and found a large group of persons assembled;

28 And he said to them, You yourselves are aware how it is not lawful or permissible for a Jew to keep company with or to visit or [even] to come near or to speak first to anyone of another nationality, but God has shown and taught me by words that I should not call any human being common or unhallowed or [ceremonially] unclean.

29 Therefore when I was sent for, I came without hesitation or objection or misgivings. So now I ask for what reason you sent for me.

30 And Cornelius said, This is now the fourth day since about this time I was observing the ninth hour (three o’clock in the afternoon) of prayer in my lodging place; [suddenly] a man stood before me in dazzling apparel,

31 And he said, Cornelius, your prayer has been heard and harkened to, and your donations to the poor have been known and [c]preserved before God [so that He heeds and is about to help you].

32 Send therefore to Joppa and ask for Simon who is surnamed Peter; he is staying in the house of Simon the tanner by the seaside.

33 So at once I sent for you, and you [being a Jew] have done a kind and [d]courteous and handsome thing in coming. Now then, we are all present in the sight of God to listen to all that you have been instructed by the Lord to say.

34 And Peter opened his mouth and said: Most certainly and thoroughly I now perceive and understand that God shows no partiality and is no respecter of persons,

35 But in every nation he who venerates and has a reverential fear for God, treating Him with worshipful obedience and living uprightly, is acceptable to Him and [e]sure of being received and welcomed [by Him].

36 You know the contents of the message which He sent to Israel, announcing the good news (Gospel) of peace by Jesus Christ, Who is Lord of all—

37 The [same] message which was proclaimed throughout all Judea, starting from Galilee after the baptism preached by John—

38 How God anointed and consecrated Jesus of Nazareth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strength and ability and power; how He went about doing good and, [f]in particular, curing all who were harassed and oppressed by [the power of] the devil, for God was with Him.

39 And we are [eye and ear] witnesses of everything that He did both in the land of the Jews and in Jerusalem. And [yet] they put Him out of the way (murdered Him) by hanging Him on a tree;

40 But God raised Him to life on the third day and caused Him to be manifest (to be plainly seen),

41 Not by all the people but to us who were chosen (designated) beforehand by God as witnesses, who ate and drank with Him after He arose from the dead.

42 And He charged us to preach to the people and to bear solemn testimony that He is the God-appointed and God-ordained Judge of the living and the dead.

43 To Him all the prophets testify (bear witness)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ho adheres to, trusts in, and relies on Him, giving himself up to Him] receives forgiveness of sins through His name.

44 While Peter was still speaking these words, the Holy Spirit fell on all who were listening to the message.

45 And the believers from among the circumcised [the Jews] who came with Peter were surprised and amazed, because the free gift of the Holy Spirit had been bestowed and poured out largely even on the Gentiles.

46 For they heard them talking in [unknown] tongues (languages) and extolling and magnifying God. Then Peter asked,

47 Can anyone forbid or refuse water for baptizing these people, seeing that they have received the Holy Spirit just as we have?

48 And he ordered that they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Messiah). Then they begged him to stay on there for some days.

===Footnotes

Acts 10:19 Marvin Vincent, Word Studies.

Acts 10:22 Marvin Vincent, Word Studies.

Acts 10:31 Joseph Thayer, A Greek-English Lexicon.

Acts 10:33 Marvin Vincent, Word Studies.

Acts 10:35 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fers this phrase as a definition of “acceptable.”

 

Acts 10:38 Marvin Vincent, Word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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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사도행전에 새롭고 뚜렷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과 그밖에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으로써 거기서 그들은 유대인이나 또는 할례를 받고 유대 종교의 귀의한 헬라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시작된다. 

본문에서 그들에 대한 신앙의 문이 열린다. 사도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기독교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이방인으로 첫 번 입교한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입교가 허용되었다. 그 내용 구분은 다음과 같다.

Ⅰ. 고넬료가 환상을 통하여 베드로를 청하여 오라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함(1-8).

Ⅱ.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음. 그가 이방인이었지만 주저치 말고 가라는 것이었고 그대로 순종하여 감(9-23).

Ⅲ. 베드로와 고넬료가 가이사랴에서 기쁨으로 만남(24-33).

Ⅳ.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전한 설교(34-43).

Ⅴ. 먼저 성령으로, 다음에는 물로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세례를 받음(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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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다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고넬료에게 일어난 사건(행 10:1-8)

성도들과 같은 시민들과 하나님의 권속들에 대하여는 나그네요, 외국인 같았던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개종되었다는 것은 사도들에게까지 신비로운 일이었다. 

이같이 놀라운 일이므로(엡 3:3, 6) 이 위대한 사업이 시작된 환경을 관심으로 가지고 세심히 살펴 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가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신 것은" 큰 경건의 비밀임이 틀림없다(딤전 3:16). 

이방인들 가운데 몇 명은 이전에 유대인의 회당에 출입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서 복음이 전하여지는 것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전하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세례받은 사람이 없었다. 

고넬료는 계획적으로 전도되고 복음을 믿은 첫 사람이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고넬료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그가 누구며 직업은 무엇이고 또 이방인으로서 처음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수록되고 있다. 

그는 지체(=품위)있는 사람인 동시에 선한 사람이었는데, 이 두 성품이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루게 되면 서로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이 두 가지 특징이 한 사람에게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인데 고넬료는 그러한 인물이었다. 

선함은 위대한 것을 참 가치있는 것이 되게 해 주며 위대함을 갖추면 보다 많은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1. 고넬료는 군대의 장교였다(1절). 

그는 당시 가이사랴 빌립보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대 헤롯(헤롯1세)때에 개축하여 요새화한 강한 성으로 아구스도 가이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가이사랴라고 명명하였고, 그 영토를 다스리던 빌립이 더 단장하였는데, 지중해 해안가의 가이사랴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보란 이름을 덧붙였다. 

이 성은 메롬호수(현재 훌라호수)와 그 북서쪽에 위치한 헬몬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시내로 연결되는 그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헬몬산 서북서쪽에 다마스커스가 위치하여 있으므로 로마나 로마의 다른 식민지들과의 교통이 편리하였기에, 로마 총독이 주로 여기에 거하였으며(23:23, 24; 25:6) 로마 보병대 아니면 로마군단이 주둔하였는데 아마 총독의 경호 목적으로 보인다. 

본문에서는 "이달리야대"라 그 명칭이 불리우고 있는 바, 그들이 순수한 로마인의 혈통을 지녔음을 뜻하고자 한 것으로 그들은 모두 로마 본토민 즉 이태리 사람들이었으며, 고넬료는 이 군대의 한 지휘관이었다. 

고넬료라는 이름은 로마인들 가운데 흔한 이름으로 특히 고대의 몇몇 귀족 가문 가운데서 이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장교로서 백부장이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에게 대단히 칭찬을 받은 또 하나의 백부장이 [가버나움에 주둔하여 있었고, <주께서 친히 오시지 않더라도 말씀하시기만 해도 자기의 종이 나을것으로 믿고> 아끼는 종을 위해 주께 <사람들을 보내어서>간구했었다]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마 8:10).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이방인이 선택되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는 이방인 철학자도 아니였고 더구나 이방신의 제주(祭主)도 아니였다(이들은 그들의 선입견과 그들의 전통적인 예배로 완고하여져 그리스도 복음을 잘못 판단하였다). 그는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인 한 군인이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소개받고 그것이 참됨을 알게 되자, 그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중에서 첫개종자들은 무식하고 무지한 어부들이었지만, 이방인들의 경우는 달랐다. 

복음이 그 자체로써 상당히 지식을 갖춘 사람들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이 백부장이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짐작된다. 

군인이나 장교들은 그들의 직업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받는 억압에서 자기들을 자유롭게 해 준다거나, 또한 군대 생활이 그들에게 폭넓게 살게 해 주며 따라서 신앙이 없는 것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보라, 여기 한 장교가 군대안에서 그의 위치가 바뀌었거나 스스로 그 직을 그만 둔 것도 아니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이방인들이 교회에 가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믿는 사람이 로마의 장교였다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수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에 다름 없었다.

2. 그는 본래 착한 품성에 따라서 믿는 신앙인이었다. 

본문에 보면 그가 참으로 아름다운 성격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2절). 

그는 우상 숭배자도 아니었고 또 거짓신들이나 부적을 섬기지도 않았으며 이방인들의 세계의 대부분이 오염된 부도덕에 빠지지도 않았다. 

불신 이방인들은 그들의 우상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1) 그는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한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영광과 엄위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으며 죄를 져서 그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비록 군인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퇴시키지는 못하였다.

(2) 그는 그의 가족과 더불어 신앙을 지켰다. 그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그는 자기 집 사람 중 아무도 우상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겼다.

(3) 그는 많은 구제를 베푼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신앙적인 독선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 

비록 자신이 이방인이었지만 구제할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어떤 신앙을 갖고있는가를 개의치 않고 기꺼이 그들을 도와 주었다.

(4) 그는 기도를 많이 하였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여 놓고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구제와 경건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안 된다.

Ⅱ. 하늘로부터 천사들을 통하여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오라는 명령이 그에게 주어졌다. 

만일 그가 이러한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를 초청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1. 이 명령이 그에게 주어진 방법과 경로. 

그는 환상을 보았고 환상 중에 천사가 그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다. 때는 "제 구시 쯤" 즉 오후 세 시 경이었다. 

대개 하루중 이 때가 가장 분주하고 교제가 많은 시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때가 성전에서 저녁 희생을 드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은 이 때를 "기도의 시간"으로 삼았다. 

이 사실은 우리의 모든 기도는 예배에 힘을 입어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고넬료는 기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는 그 자신이 말해 주고 있다(30절). 본문의 내용은 다음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다.

(1)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왔다는 것이다. 

그는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그토록 환하게 빛나고 그의 품행이 뛰어난 것을 보고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름 아닌 하늘의 사자인 천사였다.

(2) 그가 그의 육안으로 직접 천사를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이다. 

즉 그의 상상의 작용을 받은 꿈속에서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 나타난 환상 속에서 보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증거를 이 사건은 보여 주었다.

(3) 그가 "고넬료야"하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그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뜻하는 것이다.

(4) 이 일은 당장에는 고넬료에게 두려움을 주었다(4절). "그가 그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였다."

아무리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하늘에서 범상치 않은 사자가 나타날 때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인간은 하늘에서 그에게 좋은 소식이 들여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넬료는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라고 부르짖는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고 두려워서, 진리를 알고는 그 두려움에서 놓여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말한다. 

아니면 여호수아나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바라며 그 뜻에 따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여호수아는 "나의 주님께서 그의 종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나이까?"라고 말하였고 사무엘은 "말씀하소서. 주의 종의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2.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내용.

(1) 그는 하나님께서 그가 빛 가운데 생활한 것을 열납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4절). 

왜냐하면 그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천사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도와 구제는 항상 병존해야 함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구제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사 58:6, 7). 

우리를 성결케하는 데는 기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 구제해야만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끗하여진다(눅 11:41). 

또 우리는 구제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또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받는 자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고넬료는 기도도 하고 구제도 하였다. 그러나 오직일절 신실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듯이 하였다. 

본문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행적은 하늘 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생명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진 것으로 그들이 기억된 바 되므로 복이 될 것이다. 

"네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고 너의 구제가 보상될 것이라"고 천사가 말한다. 

율법 시대의 희생은 기억하신 바 되기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레 2:9, 16; 5:12; 6:5 을 참조하라). 

그리고 기도와 구제는 우리의 영적인 제사로서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으시고 또 인정해 주신다. 

신적 계시가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었고 최소한 이방인들도 그것과 연관이 있었다. 

신적 계시는 빛과 자연의 법칙을 지시하고 개선해 줄 뿐만 아니라 장차 메시야가 오리라는 약속이 되었다. 

고넬료는 이 신적 계시는 믿고 복종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신앙 안에서 행하였고 신앙으로 하나님도 받아들였다.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이방인도, 마치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신앙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였다.

(2) 그는 최근에 세상에 알려진 신의 은총을 더 알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5, 6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이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가서 그를 초청하면 그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물은 너의 질문에 답하여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너에게 보이리라" 한다. 

본문에는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놀라운 두 가지 사실이 있다.

①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기도와 구제를 하였고 또 이 신앙을 스스로 지켰고 그의 가족도 신앙대로 살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으나 아직 그가 더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베푸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기독교를 믿는 것이 유익하고 받을 만한 것이니 원한다면 개종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용납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그가 하나님께 용납되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메사야 강림에 대한 약속을 믿었었으므로 이제 그는 약속이 실현된 것을 믿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신 약속보다 더 많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나타내셨다. 

그리고 그는 이 복음이 임하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신다. 

앞으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한 우리의 기도나 구제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를 믿는 것이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는 기도와 구제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침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인격과 기도와 구제가 용납되려면 그들은 예수를 믿어야 하고 그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② 이제 고넬료는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렇지만 이 천사는 그리스도 복음도 전해주지 않았고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전해 주지 않았다. 

다만 천사가 말한 것은 "베드로를 부르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말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천사의 말이 복음에 큰 영예가 된 것과 같이, 또한 복음 사역의 중요성과 유일무이한 가치, 그 고귀함도 높여 주었다

복음 전파 사명은 가장 높은 천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비록 보잘 것 없는 성도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려 함이다"(엡 3:8). 

그 능력의 뛰어남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에게 높은 지각을 주셨음을 전하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히 2:5), 인자가 통치하시며 사람들을 인자의 나라의 소수의 작은 통치자-섬김이들로 삼으실 것이다. 

천사의 나타남이 고넬료에게 그러하였듯이 그들의 나타남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멍에를 메우려는 것도 아니었다." 

천사도 할 수 없는 그것을 사도가 전한다는 것은 그에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또 사도를 초청해 오도록 명령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사자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더 큰 명예였다. 

신실한 사역자와 즐거이 순종하는 백성을 한데 결합시키는 일은 천사에게도 가치있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불리움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겨 응해야 한다.

Ⅲ. 고넬료가 이 명령에 즉시 복종함(7, 8절). 

그는 급히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해 오게 하였다. 

이 일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가 직접 욥바로 가고 싶었겠으나, 돌봐야 할 가족과 수하인들과 친구들 등 적은 무리와 함께 지내야 했으므로 그가 직접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그가 언제 사람을 보냈는가?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지체없이 그는 하늘이 보여 준 환상에 복종하였다. 

그는 천사가 말한 것을 통하여 그에게 부과된 막중한 사명이 있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 대하여 빨리 듣고 싶었다. 그러므로 지체없이 이 명령을 서둘러 수행하였다. 

우리의 영혼이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2. 그가 누구를 보냈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집안 하인 둘과" 오랫 동안 그의 수종을 들어 주던 자들 중의 한 사람인 "한 경건한 군인을 보냈다." 

믿음이 깊은 백부장에게는 믿음이 깊은 병사가 함께 있었다. 적은 신앙의 본이라도 보이면 그것이 군인들에게는 큰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이런 신앙을 갖고 있으면 부하들에게 더 큰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복음서에서 가버나움 백부장이 그러하였듯이 군대에서 장교들은 수하 병사들에게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고 이 권력은 부하들의 신앙을 증진시키는데 좋은 요소가 된다(마 8:9). 적어도 그들이 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의 죄악과 불의는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백부장이 부하 몇 명을 선택하여 그를 수종들며 항상 그의 옆에 있게 한 것은(그는 아무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앙있는 자들을 택하였는데) 이와 같이 그가 경건한 부하들을 더 사랑하는 것을 다른 부하들에게도 보여 주어서 그들로 본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다윗의 행한 규칙 즉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이다"(시 101:6)라는 말씀을 지켜 행하였다.

3. 그가 그들에게 무슨 교훈을 하였는가? (8절) 

"그가 이 모든 일을 다 고하였다." 즉 그가 본 환상과 베드로를 칭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상세히 말해 준 것은 그들이 할 일이 바로 베드로를 모셔오는 일이었고 또 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를 통하여 영혼이 구원받아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디 가면 베드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 말한 것이 아니고(실상 이것만 말해 주어도 족한 것이었다 - 즉 종들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몰라도 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베드로가 무슨 사명 때문에 와야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베드로를 강청하여서라도 오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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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본 환상(행 10:9-18)

고넬료는 하늘로부터 베드로를 초청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베드로에 대한 소문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과연 고넬료에게 오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남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고넬료와 같이 예절있는 사람에게 그가 자기의 교리를 전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가르침이 고넬료의 마음을 상케 하지는 않을까 염려할지도 알 수 없었다. 

고넬료는 매우 품위가 있는 사람이었고 많은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요, 할례를 받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의 율법으로 그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민족들과 사귀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교제할 수 없었다. 설사 이방인들이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그들과 사귀는 것은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은 이 법을 지나칠 정도로 지켰으므로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까지 꺼려하였다. 이들과 접촉하는 일은 절기에 대한 모독이 되었다(요 18:28). 

베드로는 자기 동족들의 적대적인, 독선적인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고넬료에게 오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었다. 

이제 이러한 난관이 제거되기 위하여 그에게 환상이 주어진다. 

이 환상은 아나니아에게 나타난 환상이 그를 바울에게 가게 하였듯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서 온 전언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데 의미가 있었다. 

구약 성서는 이방인들도 교회의 일원이 되리라는 것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을 때 이런 의도를 명백히 암시하셨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들도 함께 후사가 될 것을"(엡 3:6) 계시받기까지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Ⅰ. 이 환상이 나타난 상황.

1. 이 때는 고넬료가 보낸 사자가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9절). 

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전혀 알지 못하였고 또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그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만남을 준비하셨고 그들의 교통과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촉진하시었다. 

모든 하나님의 목적에는 시기 즉 적절한 때가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하던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할 바로 그 순간에 그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2. 그 때는 정오 즈음으로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을 때였다."

(1) 베드로는 공사에 대단히 분주하였지만 기도를 많이 하였다. 특히 그는 은밀한 시간에 기도하였다.

(2) 그는 다윗의 본을 따라서 "제 육시가 되어" 기도하였다. 

그는 아침과 저녁에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정오에도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었다(시 55:17). 

우리는 식사를 하지 않고 아침에서 밤까지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도 없이는 하루를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3) 그는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거기서 그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거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의 소리 또한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의가 산만함으로 방해를 받지 않았고 또 스스로 허식을 부릴 필요도 없었다. 

지붕 위에서 그는 놀라운 하늘나라의 환상을 보았다. 

이 환상이 그가 기도하는 하나님께 경건한 찬양을 올리도록 그에게 힘을 주었고 또한 거기서 모든 성과 지방들을 바라봄으로 그가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건한 동정심을 일게 해 주었다.

(4) 그는 그가 기도한 후 복음을 전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즉시 이 환상을 보았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은 신의 은총과 가호하심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다.

3. 이 때는 그가 "매우 시장하여" 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10절). 

그가 아침 나절에도 기도했을 것은 틀림 없는 일이지만 그가 그날 아침 식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야 그는 식사를 하려고 했다. 

본문대로 하면 그는 끼니만 면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그가 먹는 것을 대단히 절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매우 시장하였을 때도 그는 적은 양으로 만족하게 여기곤 하였고 먹는 것을 탐하지 않았다. 

이제 이 배고픔이 식사에 관한 환상을 유발시킨 동기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도 광야에서 시장하실 때에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었다.

Ⅱ. 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은 고넬료의 경우처럼 평범한 것이 아니라 더욱 상징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인상을 더욱 깊게 주고자한 것이었다.

1. 그는 "무아지경 또는 황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 역자 주).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깊은 명상에 잠기어 외계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었고 전혀 인식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세상을 완전히 떠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과 대화하였다. 

아담이 죄 없을 때에(하와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깊은 잠이 그를 엄습하였을 때와 같았다. 

우리가 세상에서 더욱 확실히 초연할수록 우리는 더욱 하늘 나라에 가까워간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우리도 이것을 분별하여 말하기를 어려울 것이다(고후 12:2, 3) (창 15:12 과 행 22:17 을 참조하라).

2. 그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가 하늘에서 온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에게서 비춘 빛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신적인 능력이 그에게 사명을 수여하였다. 

하늘이 열린 것은 감추어 있던 신비가 개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롬 16:25).

3. 그는 "한 그릇이 땅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생물로 가득 차 있었다." 본문에 땅에 드리웠다함은 이것이 지금 그가 있는 지붕 위에까지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땅의 짐승들뿐 아니라 날 수 있는 공중의 새들과 기는 것이 있었다. 또한 가축들이 있는가 하면 야생동물들도 있었다. 

본문에는 바다의 고기들은 없는데 이는 그것들이 특별히 부정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고기들은 어느 것이든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같이 가득찬 보자기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보자기는 하늘이 열리고 내려온 것으로 내려올 뿐 아니라(계 21:2) 영혼들을 실어 하늘 나라로 올리우기도 한다. 

네 귀퉁이가 매여졌다함은 세계 각처에서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용납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안에 들어온 영혼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존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안에서 우리는 헬라인이나 유대인 구별없이 또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의 차별없이 모든 지방과 민족과 각색 언어를 지닌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골 3:2). 

복음의 그물은 나쁜 것이나 좋은 것이나 전에 깨끗한 것이든 부정한 것이든 모든 것을 포용한다.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율법이 금하기 이전에는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었다. 이제 그 율법이 취소되므로 우리는 이전의 권한을 다시 돌려받게 되었다. 

이 환상을 통하여 우리들은 하등 생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봄으로 이런 생물들도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이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는 이것들을 우리에게 합당하게 지으시고 그것들에 대한 권한을 우리에게 주어 그것들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주께서는 인간이 무엇이관데 저를 영화롭게 하시는가! (시 8:4-8) 우리에게 부과하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극진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하늘에서 내려보내시어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4.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보낸 많은 온갖 것들을 먹으라는 하늘에서의 음성을 들었다(13절). 

"일어나 잡아 먹으라. 정한 것, 부정한 것을 가리지 말고 네가 가진 것을 먹으라"는 말씀이었다. 

율법이 음식에 대한 차별을 규정한 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차별을 두고자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즉 음식을 제한함으로 그들이 이방인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음식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는 것은 이방인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자유롭게 사귀라는 명백한 허락이었다. 

이제 유대인들도 이방인들이 먹는대로 먹을 수 있었고 따라서 그들과 같이 식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5.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하던 그대로]그의 원칙을 고수하려 하였다. 

그는 비록 시장하였지만 하늘의 음성을 듣고 동요되지 않았다(14절). 그러므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거부한다. 

배고픔은 돌담이라도 뚫을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에게 돌담보다 더 강한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쉽게 깨뜨릴 수는 없다. 

"잡아 먹으라"는 명령이 그가 말씀 즉 율법이 확고히 서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주신 명령이라고 생각한 그는 하늘에서 들린 음성이 율법을 폐기한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하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볼 때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는 그의 답변은 훌륭한 것이었다. 

금단의 과실을 먹으라는 유혹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는 단호한 거절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유를 제시한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순수성을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지금까지 큰 죄에서 우리를 지키셨다면 "모든 죄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이 사실을 내세워야 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철저히 지켰으므로 안디오커스 치하에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었던 일곱 형제는 율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극형을 당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베드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떤 금지된 음식도 대지 않았고 그의 양심이 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았으므로 쾌히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6.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의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통하여 율법에서 이 부분이 폐기되었음을 선포하였다(15절).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율법을 만드신 바로 그분이 또 원하신다면 율법을 변경하시거나 원상태로 환원시키실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규약의 제도를 바르게 실현시키시려고 유대인들에게 이러이러한 음식은 먹지 말라고 금하시었다. 

이제 이 제도가 지속되는 동안은 그들은 마음으로 이 제도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는 신약의 제도에 알맞게 그 체제를 해제하시고 이 문제를 개방하시었다. 그리고 전에는 우리를 부정케하던 것을 정하게 하시고 우리로 이를 이용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자유 위에 견고히 서야 하며" 하나님께서 정하다 하신 것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이 제정한 음식의 분별에서 자유함을 받게 된 것을 크신 긍휼로써 환영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이 선하므로 아무 것도 금지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돼지고기나 산토끼나 집토끼 또는 우리 몸을 위하여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음식을 사용함으로 유익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양심이 이러한 성질의 것들에 대한 멍애에서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은 자연법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의무들을 제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세의 율법과 같이 죄 아닌 것을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일 년 중 어느 때를 가려 어떤 종류의 고기는 먹지 말라고 금하고 신앙을 그 안에 제한시키려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깨끗게 한 것을 속되다고 부르는 사람들이며 진리에서라기 보다는 이러한 잘못된 점에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하겠다.

7. "이런 일이 세 번 있었다"(16절). 

보자기가 조금 올라갔다가 두 번째 다시 내려오고 세 번째로 다시 그를 불러 잡아 먹으라는 말과 함께 보자기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 같이 하나님이 깨끗게 한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두 번, 세 번 계속 거절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처음에 그의 거절에 대한 만족한 대답이 주어졌기 때문에 거듭 거절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 것 같다. 바로가 두 번 꿈을 꾸었듯이, 베드로에게 세 번 거듭 환상이 나타난 것은 "이 문제가 확실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그가 더욱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케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말씀에 대한 설교를 듣든지 성례전에 참여하든지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실들에 대한 지시는 자주 반복될 필요가 있다. 즉 "경계에 경계를 더 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사 28:10). 

이제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 그릇이 교회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그릇에 정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이 다 포함된 것처럼 교회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포함된다고 믿으며 따라서 이 그릇이 올라가는 것은 믿음을 지닌 이방인들이 교회에 허입되며 또 하늘나라, 즉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늘 나라를 여시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서 "이스라엘 모든 족속 중 인친 자들과 함께 각 족속에서 온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계 7:9).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따라]하나님께서 정하게 하신 그러한 무리들이다.

Ⅲ. 하나님은 이 환상을 때맞추어 설명해 주었고 베드로도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셨다(17, 18절)

1. 그때까지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의도하셨는지 알지 못하였다(요 13:7). 지금도 "그는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였다." 

그는 이 환상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상이었다. 다만 그가 의문시한 것은 환상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자기 자신을 점차로 나타내시지 단번에 보이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는 그들로 잠시동안 의심하게 하신다. 또한 그가 그들에게 사실을 밝히시기 이전에 그들로 이 문제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시며 마음으로 갈등을 느끼게 하신다.

2. 그러나 그는 곧 즉시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고 물었고 그리고 그들의 심부름을 통하여 이 환상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도움을 받게 될지 또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아신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에 직면하여서 그 때에 도움을 받고 나서야 그가 우리를 가르치시려는 바 그 의미를 보다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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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음(행 10:19-33)

이제, 베드로와 백부장 고넬료가 만나는 기사를 보게 된다. 

바울은 이방인들 중에서 알곡을 모으는 사명이 주어졌고, 베드로는 할례받는 자의 사도가 주 역할이었지만 베드로에게도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가로막힌 분단의 빙벽을 깨고 이방인의 첫 결실을 거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함으로 이방인들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던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을 보다 원만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방인들이 할례자들의 사도요 유대적인 사도에 의하여 처음으로 교회에 가입됨으로써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참생명과 진리의 도가 아닌 외적 경건의 모습으로서의 할례를 강요하려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성령의 뜻대로 제지할 수 있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15:7). 

보라, 베드로는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셨다"고 증거한다.

Ⅰ. 베드로가 고넬료의 사자를 따라갈 것을 성령이 지시하였다(19, 20절). 

이 지시는 환상에 대한 해석의 역할을 하였다. 이제 수수께끼는 풀렸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즉 그가 그 문제를 주께 마음드려 집중하면서 명상 통해 곰곰이 음미하고 있을 때 그에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 뜻을 또한 명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베드로는 갈피를 못잡았었으나 그 다음에는 그것이 해명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할 때에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1. 언제 그는 지시를 받았나? 성령께서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천사가 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성령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하셨듯이 은밀히 그것을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셨다(삼상 9:15). 또 성령이 말함으로 그것은 그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되어서 그는 그것이 약속에 의거한 신적인 영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요 16:13).

2. 지시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하인들이 그에게 와서 말하기 전에 그는 아래층에 세 사람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성령을 통하여 이미 알았다(19절) (한글 개역에는 두 사람으로 되어있음. 그러나 7절에 하인 둘과 종졸 하나를 보냈다 했으니 세 사람이 타당하다 하겠다:역자 주). 

또한 그는 명상에서 깨어나 환상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내려가야 할 것을 알았다(20절). 

물론,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하신 이가 보여 주는 환상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색에 잠겨있거나 기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며, 때로는 밖의 세계를 보고 그들이 주변을 돌아보아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서 만나야 한다. 성서는 매일 배움을 완성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성령으로부터  "사자들과 함께 고넬료에게 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가 이방인이지만 아무런 의심도 품지 말라고 하신다. 

그는 가되 자발적으로 주저함이 없이 가는 것이며, 율법에 저촉되지나 않나 하는 의구심도 없이 기쁘게 가고 있다. 그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지 의아히 여기지도 않았고 또 그가 가야할 곳에 대하여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의무였다.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설사 네가 그 일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에게 견책을 당할지라도 네가 그들과 가는 것을 내가 증거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떤 직책에 부름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질 때 이전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하여 생기는 바, 그 부르심의 직무에 대한 의심과 주저로 또는 인간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돈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무릇, "각자가 자기의 마음 속에 확실히 거한 바, 자기가 맡은 일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Ⅱ. 그는 사자들과 그들의 메시지를 다 받아들였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내려갔다"(23절).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같이 가기를 피하거나 대화를 나누기를 거부하지도 않았으며, 고넬료가 보낸 자들이 거기 머무른 지 이미 오랜 자들처럼 그들을 자기 숙소에 유숙케 하였다. 그는 자기가 직접 그들에게 가서 그가 그들이 찾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1. 그는 호의를 가지고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마음을 활짝 열고 겸손하게 그는 그들의 용무가 무엇이며 그들이 그에게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러자 그들이 그들의 온 목적을 말한다(22절). "고넬료의 심부름으로 왔읍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장교요 매우 정직한 교양인이며 그의 동료들보다 더욱 큰 신앙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느 7:2) 비록 유대인은 아니더라도 신앙을 잘 지키므로 "유대 온 족속이 칭찬을 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은 그가 양심적이며 진실하며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며, 베드로가 그를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무에게도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통하여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모세의 율법도 천사의 배려로 주어진 신탁이었다). 

그들은 계속 말한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직접 지시한 바, 그의 집으로 "베드로를 초빙하라"는 명령을 받았고(지금 그는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영접할 준비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어떤 말씀을 하실지 알 수는 없으나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는 "당신에게 들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을 기억하자. 

베드로는 후에 이 사실을 회상하면서 보다 확신있게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즉 11장 14절에서 그는 자기가 전할 말씀이 "너와 네 온 집의 구원을 얻을 말씀이었음을" 확신하였다. "그에게 가십시다. 천사가 당신을 청하라고 그에게 명령했습니다. 그에게 갑시다. 그는 당신이 그에게 전해 줄 구원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고 사자들은 말한다.

2. 그는 사자들을 친절하게 영접하였다(23절). 

"그는 그들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비용을 들여 여관을 얻어 가서 쉬고 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그들을 자기 숙소에 영접하였다. 

이제 그를 위하여 준비된 것은(10절) 그들도 같이 나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식사를 청할 때에 그들이 어떤 동무가 될 것인가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계셨다. 기독교인들이나 주의 사역자들은 능력이 자라는 데까지 자비를 베풀어야 된다. 그리고 "나그네를 영접하는 일"도 이 자비로운 일 가운데 하나이다. 베드로는 그들이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을 유숙시켰다. 그리고 그는 그가 이방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라는 의도를 지녔던 환상을 잘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가 그들과 즉시 식사를 같이 하였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둘은 하인이었고 한 명은 사병이었지만 그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체면을 깎이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고넬료와 그의 가족에 관하여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비록 그들이 성령의 지시를 받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다른 정보도 이용하려 했음을 보게 된다.

Ⅲ. 그는 "그들과 함께" 고넬료에게 갔고, 가서 고넬료가 그를 맞을 준비를 갖추고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1.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갈 때에 그가 지금 거하고 있는 욥바에서 몇몇 형제들도 데라고 갔다(23절). 

11장 12절을 보면 그가 그들 중 여섯 명을 데리고 갔다고 하였다. 

베드로가 그들과 동행하기를 원한 것은 그가 이방인들에게 나아간 것이 충분한 고려 끝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가 간 것은 좋은 동기가 있었던 것을 그들이 증거해 주기를 바라서였다(11:12). 아니면 그들이 간 것은 베드로에게 수종들기를 바라서, 그럼으로써 베드로와 동행하는 명예와 행복을 얻기를 바라서였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초대교인들이 그들의 사역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한 방법이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여행할 때 교인들은 사도들과 동행하였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의 체면을 세워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교역자들을 도울 뿐 아니라 그들과 대화를 나눔으로 그들이 감화를 받기 바랐다. 

대화를 통하여 [그 영과 진리, 생명 나눔 통해]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홀로 여행하려 함은 참으로 안 된 일이다.

2. 고넬료는 베드로를 영접할 준비를 한 후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기다렸다." 

욥바에서 가이사랴빌립보까지는 [도보로] 하루 길이 넘는 거의 이틀 길이 되는 거리였던 것같이 보인다. 

"그들이 가이사랴에 당도한 것은" 그들이 출발한 다음날 오후이었기 때문이다(24, 30)절). 

대체로 사도들은 걸어서 여행하였다. 그들이 고넬료의 집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다음 사실을 발견하였다.

(1) 그들이 그를 몹시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에게 힘이 되었다. "고넬료는 그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러한 손님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고넬료가 천사가 그에게 베드로에게 듣기를 명하였던 것이 얼마나 능력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해도 이를 책할 사람은 없으리라.

(2) 많은 사람이 베드로를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더욱 그의 용기를 촉진시켰다. 

베드로가 자신이 공급할 영적인 선물을 같이 나누어 주려고 몇 사람을 데리고 온 것처럼 고넬료도 자기 자족뿐 아니라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들이 그가 베드로에게 듣기를 원했던 하늘나라의 교훈에 같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베드로에게는 더욱 선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식물을 홀로 먹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욥 31:7).

신앙적인 행사에 우리의 친척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참여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을 권하는 사람은 친절로, 또 권유를 받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해야한다. 

고넬료는 그가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의 친척과 친구들도 마땅히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그들을 와서 듣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후에 그가 변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Ⅳ. 본항에서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첫 번째 면담을 고찰하여 보자.

1.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최대의 경의와 찬사를 표시하였다(25절).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그를 맞아" 친구처럼 그를 껴안거나 포옹하는 대신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였다." 

고넬료가 그를 친구로 포옹하였어도 베드로는 고맙게 여겼으리라. 

그를 그렇게 맞아들인데 대하여 여러 이견이 있다.[다만 예를 갖춘 최상의 존경의 인사로 마음을 표한 것이라고 봄이 맞다..지나친 억측은 삼가도록하자]

**어떤 사람은 그가 베드로를 동방의 예를 따라 왕이나 위대한 인물처럼 영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가 베드로를 육신을 입은 신적 존재 또는 그를 메시야로서 영접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후자의 의견은 다소 과장된 억측이라고 본다.]

그가 인간에게 경배하였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책망받을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몰랐던 [지극히 귀한 진리를 비로소] 알게 되리라 여기며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용서될 수 있는 일이요 오히려 그의 안에 있는 장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의 경배는 거룩한 것 또는 천상적인 것에 대한 그의 경의를 나타내는 것이라 봄이 타당하다. 물론, 베드로를 청해오라는 명령은 하늘로부터 천사가 전한 것이었다.

고넬료가 전후 사정을 배워 잘 알기까지는 [설령] 그가 베드로를 메시야로 여겼기에, 또는 메시야의 외적인 승계자로 여겨서, 그 자신이 인간일 뿐 아니라 죄인인 베드로를 경배하였다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경계해야 하는 바는, "온 땅이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리라"(계 13:4)는 경고를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베드로는 그에게 주어진 영예를 정중하고 경건하게 사양하였다(26절). 

그는 고넬료를 받아 "일으켰다"(그가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또 그들에게 자신이 호의를 베푸는 것이 옳은지 충분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는 말한다. "일어서라. 나도 [그대들과 똑같이 성정을 지닌...행14:15] 사람이라. 그러니 내게 경배하지 마시오." 

하늘의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지상교회의 천사들인 사역자들도 그들에게 보내지는 적은 영예도 자신이 받지 말고 하나님에게 돌려야 한다. 

천사도 요한에게 말하기를 "삼가 내게 경배하지 말라"고 한다.(계 19:10; 22:9)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는 고넬료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였다." 얼마나 그의 태도가 주의 깊었는가(고후 12:6). 

그리스도의 참된 종들은 신처럼 숭앙받기 보다는 차라리 모욕받는 일을 택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그를 경외하면 좀 지나친 점이 있다하더라도 설교의 효율을 높이는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배제하였다. 

또 고넬료가 미혹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베드로도 [단지 성정이 똑 같은] 사람임을 알게 하려 하였던 바, 가치있는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이며 따라서 고넬료가 귀하게 여길 것도 베드로 안에 있는 말씀이었다.

Ⅴ. 베드로와 고넬료가 서로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다른 동료들에게도 하늘의 섭리로 그들이 함께 자리를 하였음을 설명해 주었다. 

"베드로는 그와 더불어 말하며 들어갔다"(27절). 

베드로는 고넬료와 다정하게 얘기하며 들어갔다. 즉, 그는 고넬료와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하여 이방인으로서 그에 대하여 가졌던 일종의 혐오감을 벗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안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대하였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같이 많은 사람이 모였으므로 신교의 기회를 폭넓게 주어진 동시에 장내 분위기도 더욱 엄숙하게 하여 주었다.

1.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이들 이방인들에게 가라는 지시를 하였음을 선포한다(28, 29절). 

그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이 함께 하는 이 집회가 유대인들이 일방적으로 꺼리는 바,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불법적 모임이란 것을 알았다. 

즉 베드로 자신과 같은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민족들 즉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사귀는 것은 추악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규정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유대학자들이 정한 규례였지만 그들은 이 법이 율법 못지않은 구속력을 지닌다고 믿었다. 

그들은 거리나 상점에서 또는 거래상 대화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함께 식사하는 것은 금하였다. 

벌써 요셉의 시대에도 애굽인과 히브리인들은 함께 식사할 수 없었다(창 43:32). 

다니엘의 친구 세 명은 "왕의 진미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 하였다"(단 1:8). 

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간주하였으므로 그리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경멸조로 대하였던 것처럼, 이방인들도 여러 나전어시에 나타나는 것처럼 유대인들을 경멸하는 데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하시고 그의 국적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거절하지 말라" 명하셨다고 말한다. 

새로운 개종자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가르친 베드로가(2:40) 이제 경건한 이방인들과 교제를 나누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이었던 형식적, 외적 요소는 폐지되었고 도덕적, 내적(영적) 요소가 더욱 중시되어야 함을 이제 깨달도록 하셨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그가 어떻게 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였는지 또 그것이 신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문제를 경솔히 다루었다는 꾸중을 듣지 않기를 바랐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은 분리의 담을 무너뜨리셨다.

(1) 그는 그의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킨다. 

그가 그 동안 이방인들에게 말씀의 봉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혐오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허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허가를 받았으므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내가 초청을 받았을 때 내가 유대인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할 준비를 하고 부름을 사양치 않고 왔노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베드로가 지금에 와서 인정한 바, 이 잘못은 다른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었다.

(2) 그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 주기를 원하는가 묻는다.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또는 무슨 용무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하나님의 종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바른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지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뜻을 갖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해 오라고 지시한 것을 밝힌다. 

그리고 그가 그를 초청한 것은 이 지시에 절대 복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복음 사역자를 초대하고 또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항상 우리의 근본 동기와 목적이 올바른가, 곧 주께 합당하고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규례를 정하시고 그 규례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지시를 반드시 존중해야만 한다.

(1) 고넬료는 그에게 천사가 나타난 것과 베드로를 초대하라고 그가 지시한 것을 설명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사건 자체를 자랑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베드로에 대해 하늘에서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를 바라서였다.

① 그는 이 환상이 그에게 일어난 경위를 설명한다(30절). 

"나흘 전 이맘 때까지 금식을 하는데"(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즉 오후 늦은 시간으로서 베드로가 지금 당도한 시간과 같은 때를 말한다. 

이 금식은 보다 진지하고 엄숙하게 기도하기 위한 신앙적인 금식이었고, 이런 금식은 유대인 아닌 경건한 백성들도 행하곤 하였다. 요나 3장 5절에 보면 "니느웨 왕이 금식을 선포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다. "나흘전부터 바로 지금까지 내가 금식을 해왔습니다"라고 본다. 즉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고기를 먹지 않았다든지 전혀 식사를 안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금식은 환상을 이야기하려는 서론으로 언급된 것이었기에, 후자보다 전자의 뜻이 옳다고 보겠다. 

"그는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였다." 회당에서가 아니라 그는 집에서 기도하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거하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가 집에서 기도하였다고 해서 골방에서의 [혼자 드리는] 은밀한 기도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거실에서 행한 기도였으며, 아마 이 기도회가 끝난 후 그가 홀로 있을 때 이 환상을 본 것 같다. 

"제 구시"라 함은 오늘날은 오후 세시를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중이거나 사업을 하고 있거나 들에서 일을 하든지 친구를 만나고 있든지 오락을 즐기든지 점심 후 낮잠을 잘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고넬료는 예배를 드렸다. 이것만 보아도 신앙을 그의 본분으로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메시지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때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쉽게 말씀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에게 먼저 많이 구해야 한다.

② 그는 하늘로부터 그에게 이 메시지를 갖고 온 사자에 대하여 묘사한다.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섰다"고 하였다. 

이 모습은 그리스도가 변형되셨을 때의 모습과 같았고 그리스도의 부활 때 나타났던 두 천사들의 모습과도 같았으며(눅 24:4) 또한 그가 제자들에게 빛의 세계와 그들과의 관계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승천하실 때의 모습과도 같았다(1:10).

③ 그는 지금 우리가 보는 바대로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를 반복한다(31,32절과 4-6절 비교). 본문에는 다만 "네 기도를 들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가 무엇에대해, 어떻게 기도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기도에 응답된 메시지로 보아 다음과 같이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즉 자신의 본성의 완악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어떻게 하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까 고심하는 중에, 그는 더욱 자기의 완악함을 알게 하여 주실 것과 구원의 길을 알려달라고 간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간구에 대하여 "그렇다면 베드로를 청하라. 그가 네게 지시할 것이니라"고 천사가 말하였다.

(2) 그는 자신과 그의 친구들이 베드로가 전할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한다(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우리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신실한 종들은 진실로 그들에게 교훈 받기를 기쁘게 바라는 사람들에게 온 것을 다행히 여긴다는 것을 기억하자. 

초청을 받을 때 응낙하여 오는 것은 신실한 주의 종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행이다. 

이제 베드로는 그의 사명을 다하려고 왔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할 일을 마땅히 하였는가? 그들은 마땅한 마음의 준비를 다 하였다. 

"당신이 전할 준비를 하고 왔으니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었나이다"(삼상 3:9, 10).

① 말씀에 대하여 신앙을 가지고 참석함.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며 주를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자의 마음으로 모였나이다"라고 말한다(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신이 이런 사명을 띠고 우리에게 왔고 또 우리는 전에 결코 가져보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다시는 기회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여기 예배하는 장소에(비록 개인 집이었으나) 예배하는 마음으로 모인 것이요, 우리가 모두 여기 있나이다(‘파레스멘’,10:33). 우리는 중대한, 생명에 관한 일이 있어서 온 것이요, 소명에 응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특별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거기 참여해야 한다.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였다. 고넬료는 "이제 우리가 모두 모였나이다.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은 빠짐없이 모였나이다"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참석한 것이 틀림 없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참된 신앙적 참여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거룩한 법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보여드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늘 우리를 살피시고 계심을 알고 그 앞에 서야 한다.

② 참석한 목적.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다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우리에게 전할 책임이 있읍니다".

첫째,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에게 명한 모든 것들을 전하러 거기에 왔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을 전할 사명을 남달리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전할 내용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가 하나님에게서 명령을 받은 바로 그것을 듣고자 하였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사도들에게 전수된 것은 사도들 독단적으로 이를 전하든지 말든지 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 진리를 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물며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들려 주시오. 당신이 전하도록 위탁받은 그 모든 것이 비록 우리의 혈육에는 불쾌함을 준다 하더라도 또 우리의 이전 생각과 현재의 세속적인 이해에 상반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하나라도 숨김없이 전해 주시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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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함(행 10:34-43)

본문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행한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용은 전체 설교를 발췌한 것 또는 요약한 것이다. 이 요점을 그들에게 증거하고 교훈하기 위하여 그는 많은 다른 말을 하였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베드로는 장중하고 엄숙하게 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34절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라는 말씀을 보면 그가 자유롭게 풍부한 내용을 전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 후서 6장 2절에서 바울은 "오! 고린도인들이여 이제 우리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라"고 입을 열었었다(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당신들이 듣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전할 것이요"라는 뜻의 말이다. 

지금까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 대해 사도들의 입술은 닫혀 있었고 그러므로 복음을 그들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을 여신" 것처럼 그들이 입을 여셨는데, 이 아름다운 베드로의 설교는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 놀랍게 적합한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설교였다.

Ⅰ. 그의 설교가 새롭게 들려진 것은 그가 전한 대상들이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방인들이었음에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이 큰 것을 베드로는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는 이 복음만을 전하였고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복음의 유익을 얻도록 전하였고 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복음의 유익을 얻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였다. 

이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위로로 그가 전하고 또 그들은 듣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불변의 원리로 전제하며 전한다. 

구약에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라" 하였고 이는 재판관들이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신 1:17; 16:19; 잠 24:23) 그렇게 하면 정죄되었다(시 82:2).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 자주 기록되고 있다(신 10:17; 대하 19:7; 욥 34:19; 롬 2:11; 골 3:25; 벧전 1:17). 

하나님은 인간의 내적인 가치와는 관계없는 어떤 외적 아름다움 때문에 인간을 차별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미모, 지위, 국적, 부모 친척관계, 사람의 부나 영예로 인하여 인간을 편벽되게 판단하시지 않으시며, 악한 자의 악행에 대하여 호의를 보이시지 않으신다. 자비를 베푸실 때 하나님은 자기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은혜를 베푸신다(신 7:7, 8; 9:5, 마 20:10). 그러나 재판장으로서 그는 그렇게 함부로 다스리시지 않는다. "그는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으시는 분이시다"(35절). 이 사실은 다음의 경우를 보면 명백히 나타난다.

1.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생을 살다가 죽는 악한 유대인들을 결코 의롭다 하지도 않으셨고 구원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가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할례를 받으므로 주어지는 모든 영예와 유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변함이 없으시다. 

그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분노와 진노를 형벌로 보상하신다." 

이 또한 "먼저 유대인에게 임하는데" 그들의 특권과 고백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해 주는 대신에 그의 죄와 저주를 더욱 분명케 한다. 로마서 2장 3,8,9,10절을 참조하라.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교회의 일원이라는 그들의 특권 때문에 다른 민족들보다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푸시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들의 고백과는 반대로 부도덕한 일을 자행한다면 어떤 특별한 개인을 그 특권 때문에 용납하지는 않으신다. 

특히 당시에 가한 복음교회에 대한 박해에 대해서는 더욱 용납될 수 없는바,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죄는 컸던 것이다.

2. 그는 정직한 이방인 즉 그가 비록 유대인들이 지닌 특권과 이익은 가지지 않았지만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경배하며 의를 행하며(이는 곧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봉헌할 때나 일상 대화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본성에 따라 생활하는 자들을 과거에도 거절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가 어떠한 민족이든 설사 그가 아브라함과는 혈연관계가 아주 소원하며 또 비열한 민족 출신이며 그 이름이 나쁘게 알려졌다해도 이 때문에 그가 부당하게 취급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나라나 조상에 의해 판단치 않으시고 그들의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어디서든 정직한 자가 있으면 그는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에게 발견된다(시 18:25).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의를 행하는 것은" 병행해야만 한다. 

인간들을 향해 의를 행함은 참 신앙의 일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다른 말로 보편적인 의를 부분적으로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건과 정직도 병행되어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된다면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들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은 틀림 없는 것이다. 

타락한 후에 어떠한 인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에게 경외를 표하지 못했던 자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Q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은총을 베푸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는 고넬료에게 행하였듯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에 그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 했다. 

이제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베드로가 인식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이다. 

그것은 태초에서부터 정해진 심판의 척도였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또한 죄에 대한 심판이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창세기 4장 7절에도 말씀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날에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를 물으시지 않고 그들이 어떠한 사람이며 무엇을 행하였고 하나님과 그들의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물으신다. 

만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커다란 차이에서부터 오는 외적인 특징이 이익도 해도 안겨주지 않는다면 생각과 행함에 있어서 그 차이가 극소한 기독교인들간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는 로마서 14장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와 음식을 중히 여기는 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행하는 의와 평강과 기쁨에 있느니라"는 말씀도 확실하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마다 하나님에게 용납되며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이를 우리가 감히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는다는" 이 전리는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특이성 때문에 불분명하였었다. 

그들에게 구별됨의 표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 새롭게 제시된 주님의 경륜이 더욱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의식적인 율법은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 사이를 구별하는 담장이었다. 또한 이 율법 안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사랑하신 것"도 사실이다(롬 3:1, 2; 9:4).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바, 그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여] 그들 가운데 특정 인물들은 그들이 그들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은 받아주시며 이방인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 잘못을 막고 교정하려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귀를 막고 완악한 고집으로 그 말씀을 부러 거절함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율법을 폐기하고 선민 계약을 폐하시며 범위를 확대시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다 하나님 앞에 동등한 위치에 세우시므로 이 잘못을 효과적으로 폐하셨다. 

이제 베드로는 그가 본 환상과 고넬료가 경험하였던 환상을 비교함으로 이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갈 5:6; 골 3:11).

Ⅱ. 그들도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지역내에서 사는 이방인들이었으므로 그는 그들도 잘 알고 있을 사실들 즉 우리 주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설교와 기적 그의 죽음과 고통을 전하였다. 이 사실들은 이미 그 나라의 구석구석에 전하여진 일이었다(37줄어들). 

이러한 조건은 주의 종들이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문제에 대하여 다소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이 지식에 근거하여 그들이 호소할 수 있었고 여기를 토대로 그들이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낸 말씀" 즉 복음을 윤곽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하였다(37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그들도 복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도시와 마을의 이야기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그가 지상에 계셨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이 온 가나안 땅에 전파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또 그가 승천하신 후에는 그의 복음에 대한 소문이 세계 각처에 전파되었다(롬 10:18). 이 말씀, 이 거룩한 능력과 은총의 말씀을 "너희도 알거니와" 이렇게 베드로는 서두를 시작하였다.

(1) 이 말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Q은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유앙겔리조메노스 에이레넨’(10:36) 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오히려 화평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는 인류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과 화평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세상과 자신의 화해를 이루시었다.

(2) 이 말이 전파된 것은 먼저 유대인들을 위해서였다. 

복음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웃들도(이방인들을 말함) 이 복음에 대하여 듣고 율법을 부럽게 여겼던 것 이상으로 복음의 유익됨을 부럽게 여기기를 바랐다. 그 때에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고 말한다(시 126:2).

2. 그들은 이 복음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알았다.

(1) 그들은 요한이 복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한 회개의 세례를 알았다. 

여기서 복음은 처음 시작되었던 것이다(막 1:1). 그들은 요한이 얼마나 비범한 인물이냐 하는 것을 알았고 그의 가르침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내용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많은 무리가 세례를 받으려고 몰려왔고 그가 상당한 세력을 가졌다는 것과 또 그가 행한 것을 알았다.

(2) 또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있는 직후에 평화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유대 땅에 전파되었고" 이 복음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열두 사도와 70문도와 또 우리 주님 자신이 이 기쁜 소식을 나라 방방곡곡에 전하였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읍이나 촌락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해도 틀림 없을 정도였다.

(3)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두루 좋은 일을 행하셨음을" 알았다. 

그들은 그가 그 민족에게 인간의 영육간에 얼마나 훌륭한 혜택을 베푼 자인가를 알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으셨다. 

이것이 그가 하신 사업이었다. 그는 게으르시지 않고 계속 일하셨으며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선을 행하였다. 

또 그는 한 지역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으셨다. 

그는 그들에게 가셨고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선행을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이 선 자체이시며 또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나타내셨다. 그가 선을 행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세상에서 선을 행하셨으므로 세상에 선을 증거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14:17). 

그러므로 그는 우리와 우리 시대에게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기는 모범을 보여 주셨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할 수 있는 한 세상에 살면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선행에 풍성하고 또 그 안에서 거하여야 한다.

(4) 그들은 또한 그가 특별히 "모든 악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고치셨고" 또 사단의 압제 하에 있는 그들을 도우셨음을 알았다. 

이 사실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악마의 역사를 멸하시려고도 보냄을 받은 것이 분명히 나타났다. 이는 그가 악마에게 승리하심으로 그는 더욱 많은 사람을 얻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5)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를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 그는 "누구를 너희들이 살해하였는가"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방인들에게 전하므로 누구를 "그들이 죽였는가에" 대하여 말씀한다. 

유대인들에게 그는 말할 수 없이 선한 일을 행하셨고 또 계획하셨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그들이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 사실들을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지 않도록 또 대개 소문이 그런 것같이 사실 이상으로 과장되지 않기를 바라서 베드로는 자기와 다른 사도들의 이름으로 이 사실을 증거하였다(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즉 목격자요 그가 전한 가르침을 직접 귀로 들은 증인이었음을 전한다.

3. 그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그가 하셨던 대로 전하고 행하실 사명을 하늘로부터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었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그의 강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이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모든 사건들을 이용하였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이 예수가 "만유의 주시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부수적으로 언급되었지만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진 이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라는 사실은 증거해야 할 으뜸가는 전제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영구히 넘치게 주신 분일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의 손에 의탁하신, 또한 모든 재판권이 그에게 허락되어진 중재자였다. 

그는 천사들의 주님이기도 하다.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청종하는 종들이다. 

또한 그는 모든 어둠의 세력들에 대하여 승리하셨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들의 주님이시기도 하다. 

그는 민족들의 임금으로 모든 육체들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으며 또 성도들의 임금으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그의 생도들이며, 그의 신하들이요, 그의 군병들인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과 권능으로 기름부으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행한 것은 신의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할 수 있도록 권위가 주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그리스도 -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리워졌다. 그가 세례받을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파하고 기적을 행함에 있어서 능력이 충만하였다. 이 기적은 그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인치심의 표시였다.

(3)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다(38절). 

그의 역사(役事)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내내 그와 함께 계셨고 모든 그의 섬김과 고통을 함께 수행하셨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들에게는 그가 동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그가 그의 성령을 부으신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

Ⅲ. 그들은 이 예수에 관하여 소문으로 들은 것 이상의 것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그 증거를 밝힌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죽음을 다하심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들이 생각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그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소문은 유대인들이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그를 훔쳐갔다"는 거짓을 퍼뜨렸으므로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신 평화의 말씀의 중요 근거로써 주장한다.

1. 그를 일으키신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신적인 것이었다(40절). 

"그를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다." 

이 사실은 사람들의 그를 향한 모든 비방과 고발을 백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십자가의 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음을 하나님께서 만족히 여기시고 받아들이셨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는 감옥을 부순 것이 아니라(즉 법을 어기고 기들을 사하심을 말함:역자 주) 합법적으로 보상하시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2. 그가 부활하신 증거가 말할 수 없이 명백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가 부활하신 것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를 (10:40) 나타내셨다. 즉 명백히 보이셨다. 

그러므로 그는 나타나셨고 이것은 자신과도 아무런 모순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순이 아닌 것이다. 

이같이 그를 보이셨으므로 그가 부활하신 사실은 더욱 분명한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를 나타내지는 않으셨다(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공개된 것이라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자신을 보이셨는데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그는 죽음의 증인이었던 사람들에게만 보이셨다. 

모든 백성들은 그가 그의 신적인 사명을 기적을 통하여 입증하신 온갖 증거에 대해 항거하므로 이 위대한 사실에 목격자가 되는 은총을 상실하였다. 

그의 누워있던 시체가 도난당하였다고 날조하고 조장하였던 자들은 스스로 현혹되어 이 사실을 믿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모든 백성들에게 나타나심으로 현혹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셨다. 터툴리안의 변증법 제11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시지 않은 것은 그들 가운데 경건치 못한 자들이 일순간에 그들의 죄과에서 놓여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난관을 통과하여서 쌓아올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그를 보지 못했지만 그의 부활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인원이 그를 보았다. 유언자(여기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킴:역자 주)의 마지막 유언과 계약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공개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믿을 수 있는 적정수의 증인들 앞에서 증거됨으로 충분하다. 이런 뜻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충분한 인원 앞에서 입증되었다 하겠다."

(1) 그들은 우연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이 증인이 되기 위하여 주 예수에게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그와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또 미리 이같이 그를 알았으므로 그가 바로 예언되었던 분이었음을 더욱 잘 확신할 수 있었다.

(2) 그들은 그를 갑자기 순간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와 오랫 동안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었다." 

이 사실은 그들이 그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와 함께 식사한 것을 증언하였으며 그와 함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함께 식사를 하였다. 

이 사실은 그가 참으로 실제의 몸을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를 공포심을 가지고 당황하면서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주 그를 보았고 그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와 함께 먹고 마셨으므로" 누가 이 사실을 그들 앞에서 증언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지녔던 생각 즉 "그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는 전망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출 24:11).

Ⅳ. 그는 이 모든 사실을 고찰한 후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그러므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고넬료에게 와서 전할 것은 그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였고 이것이 그 답변이라고 한다. 

그의 기도와 구제는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거지 결여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 그러면 왜 그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믿음은 증거와 관계가 있는 것이며 기독교 신앙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그들이 증거한증거 위에 세워져야 한다."

(1) "사도들에 의하여 증거되었다. 수제자로서의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다는 것"과 또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전하고 증거하라"는 책임을 주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증거는 믿을 만할 뿐 아니라 확실한 것이고 그러기에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신앙하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이 곧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이 증언을 새로운 소식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기록된 자료로써 그것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하여 사람들은 심판받게 된다.

(2)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증거 되었다. 

그들의 증거는 벌써 이전부터 있었고 그의 수난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모와 계획까지 증거하였었다. 

그리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한" 이 증거는 수난에 관한 사도들의 증거를 확증하였다(43절). 

우리는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이 예언자들의 기록을 전혀 몰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씀이 확립된 것은" 서로 일치하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같은 증언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2. 예수에 관하여 그들은 무엇을 믿어야 했는가?

(1)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도들은 이 사실을 세상에 증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Q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 예수인 것을 증거케 하셨다(42절). 

그에게 구원의 한계를 결정하는 권능이 주어졌고 그가 정하신 법에 의하여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되며 "산 자와 죽은 자"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또한 그는 대심판 날에 모든 인간의 자녀들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들 중 어떤 자는 살아서 그 날을 맞이할 것이요, 어떤 이들은 죽음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죽는 자 가운데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17:31).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는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가 그의 마음에 드는 것과 그를 우리의 친구로 삼는 일이다.

(2) 우리가 그를 믿으면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의롭다 인정함을 받게됨을 믿어야 한다(43절).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언할 때에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나 그를 믿는 사람은 그의 이름으로" 또는 그의 공로를 인하여 "죄사유함을 받게 될 것을 증거하였다." 

이것만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이다. 이것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죄사유함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그들의 제의적인 희생과 성결을 통하여 죄의 용서를 확립하려고 하였고 이방인들 역시 그들의 죄를 보상함으로 용서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다 헛것이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또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요,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죄 사유를 확신하게 되며 죄의 사유는 다른 모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초석이 된다. 

죄사유는 축복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만약 죄가 용서되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요, 영원한 형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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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설교의 효과(행 10:44-48)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행한 설교의 요점과 효과를 알 수 있다. 

그가 한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이제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Ⅰ.하나님께서 베드로의 말을 주장하셨다. 그의 말씀을 듣는 즉시 성령이 임하였다(44절). 

"베드로가 아직 이 말을 할 때에" 아마도 더 말을 계속하고자 하는데 그는 "성령이" 기적적인 능력을 통하여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주목하라, 이 성령의 임함은 11장 15절에서 베드로가 말한 대로 처음 사도들에게 임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이 성령 임함이 오순절 다락방에서처럼 거친 힘있는 바람과 함께 또 여러 가지 방언으로 임하였다고 생각한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베드로가 말한 것을 입증해 주셨고 신적인 권능을 그 말씀에 부여하셨다. 

이같이 하여 고린도 후서 12장 12절에 있는 "사도의 표가 그들 가운데 임하였다." 

베드로 스스로는 결코 성령을 줄 수 없었지만 베드로의 말씀과 함께 성령이 부어지셨다. 이로써 그를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셨음이 분명하여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성령이 그들이 먼저 물세례 받은 후에, 즉 확신한 후에 성령이 임하였었는데, 이들 이방인들에게는 세례받기도 전에 성령이 친히 임하셨다.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에 얽매이시지도 않으며 외적인 징표에 제한을 받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령이 할례받지도 또 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왜냐하면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이다."

2.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사실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들은 결코 배우지도 않은 방언을 말하였는데 아마 거룩한 언어인 히브리어였던 것 같다. 

설교자들이 듣는 사람들의 사용하는 방안을 말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것처럼 듣는 사람들도 즉시 원어를 배워야 설교자들이 본래 구약에서 이끌어낸 증거들을 직접 살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주의 사역자들로 택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성령이 처음 그들에게 임함으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 자격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들은 말씀을 전하였다. 

이제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리스도와 구속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에게 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도 성령을 처음 받는 사람들처럼 행하였다(2:11). 

어떤 은사를 받든지 우리는 이것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특히 입으로 찬양하며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3. 이 사실이 그 자리에 참석한 신앙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45절)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 사실을 보고 "놀랐다."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여섯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그들을 대단히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 민족들만이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성령의 은사를 이방인들에게도 부어 주심을 인하여" 개운치않은 심정들이었다. 

그들이 이 사실에 대하여 지적해 준 구약 성서를 이해하였다면 이 사실이 그들에게 놀랄 만한 일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같이 흔히 우리의 잘못된 이해 때문에 우리는 신의 섭리와 은총의 방법에 대하여 스스로 장애물을 만드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Ⅱ. 베드로는 성령이 임한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줌으로 하나님의 일을 주관하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비록 그들이 성령은 받았지만 아직 그들에 세례를 받는 것이 필요하였다. 

하나님은 제도화된 규율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규율에 구속을 받는다. 어떤 비범한 은사도 우리로 이 규칙들을 초연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비범한 은사를 받을수록 이 규칙들을 수행할 책임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물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수세는 성령의 세례에 비하면 하급에 속한다"고 한다. 천만에! 수세가 결코 하급의 세례가 될 수는 없다. 수세는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규칙으로 보이는 교회에 입교하는 관문이요, 새로운 계약을 인치는 것이다.

2.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성령을 받았으므로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47절).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즉 아무리 엄격한 유대인일지라도 "능히 물로 세례 묻을 금하리요"라고 베드로는 말한다. 

논쟁의 여지도 없는 문제였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징표를 주는 일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의 계약을 주신 사람들이 계약의 인침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확실히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세례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신 자들을 우리가 받아 사귀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믿음의 자녀들과 그의 후손들에게 부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그들에게" 물로 세례 주는 것을 누가 금하겠는가라고 한다. 

이제 그들이 세례 받기 전에 성령을 받은 이유가 분명하여진다.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설교할 명을 받지 않았다면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것, 그 이상으로 이런 일이 없었다면 베드로가 자진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기 위한 신의 은혜의 다른 하나의 이례적일 조치가 취하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선한 사람들의 구제 이상으로 넓게 우리에게 미쳐온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3. 베드로는 자신이 직접 세례를 주지 않고 "명하여 세례를 주게 하였다"(48절). 

아마 그와 함께 온 형제 중 몇 사람이 그의 명령을 따라 세례를 베푼 것 같다. 

그가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은 바울과 같은 이유로써 그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자신을 낫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을지도 모른다"(고전 1:15). 

사도들은 "가서 세례를 주어 모든 민족을 내 제자로 삼으라"는 위탁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념한 일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었다. 

바울은 그가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르치는 일이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베푸는 일은 대체로 하위 계열의 사역자들이 행해졌다. 이들은 사도들의 명을 따라 행동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를 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시킨 것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Ⅲ. 그들은 베드로의 가르침을 더 받기를 바람으로써 베드로의 말과 하나님의 역사를 같이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다.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그들은 그가 그들과 함께 계속하여 있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가 다른 곳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당장에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가 즉시 떠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동안 그들과 함께 유할 것을 진지하게 간청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를 원하였다.

1.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사람들은 더욱 그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또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일지라도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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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ㅇ가이사랴에 고넬료 -   베드로의 세번째 방문지로 언급되는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0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8:40에 의하면 빌립이 선교 활동을 벌였던 지역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곳이다. 이 지명에 대해서는 12:19  주석을참조하라. 당시 가이사랴에는 총독의 관저가 있었으며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고넬료는 주둔군의 하급 지휘관이었던 것 같다. B.C. 82년 만 명의 노예를 해방시켰던 고넬료 슐라(Cornelius Sulla)의 이름을 본따 당시 고넬료라는 이름이 흔했었다(Longenecker). 아마 고넬료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인 것 같다.

ㅇ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 이는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부대로서 총독 보호를 위해 배치된 지원 부대로 보인다. 한편 '대'(스페이라)는 본래 300-6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되는 부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 부대는 오늘날의 대대 병력 정도를 의미하며 그중에 백부장은 100명의 지휘관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중대장급에 속하는 지휘관으로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이방인 백부장이 자주 언급되지만(마 8:13;27:54;막 15:39;눅 7:2;23:47) 부대 이름을 밝한 것은 본문 외에 27:1에서 '아구사도대'뿐이다. 따라서 팔레스틴에 주둔해 있었던 황제 직할 부대는 2개 이상이었을 것이다.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ㅇ그가 경건하여 -    '경건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세베스'에 대하여 혹자는 이방인 개종자들이 지닌 독특한 경건이라고 생각한다(T. Whitelaw). 이에 대해 혹자는 그가 완전히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proselyte)이라고 주장한다(Olshausen,Neander,Fecht, Ritshl). 그러나 몇몇 학자는 11:3을 근거로 그가 회당 집회에는 참석했으나 할례 받은 개종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H. Marshall,Neil, Haenchen, Bruce,Hervey). 내용 전개상으로 보아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ㅇ하나님을 경외하며 - 이말은 할례받은 유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면서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유대교인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Haenchen). 특히 이 말은 이방 유대교인을 뜻하는 누가의 일반적인 표현이다. 혹자는 당시 이방 유대교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2절을 볼 때 이 견해가 당시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ㅇ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고넬료가 경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임을 알리기 위해 누가는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백성을 구제했다는 말은 곧 궁핍한 자들을 경제적으로 많이 도왔다는 말로서 초대 교회 당시 궁핍한 자에 대한 구제가 깊은 관심거리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유대인들에게 많은 구제를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본문에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구제와 기도에 열심을 내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ㅇ하루는 제 구시쯤 -   9시경은 오후 3시경이다. 고넬료는 아마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오전 9시와 오후3시경에 기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누가가 고넬료가 기도한 시간을 언급한 것은 (1) 환상에 대한 사실성 강조를 위한 의도와 (2)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고넬료의 습관을 암시한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고넬료의 경건성을 부각시키는 효과도 지닌다.

ㅇ 환상 중에 밝히 보매 - 고넬료가 경험한 이 환상은 9:10에서 언급된 아나니아의 경험과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환상에 대해 혹자는 '인간의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거나 천사를 만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정의를 내린다(Haenchen). 고넬료는 기도 중이었으므로 환상 가운데서 실제를 보듯 천사와 대면했던 것이다.

ㅇ사자가 들어와 - 구약 시대에 '사자'는 왕의 전령,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 또는 제사장, 그리고 천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신약 시대에는 주로 '천사'에만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자가 '들어온다'고 표현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넬료가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개인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ㅇ주여 -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바라본 고넬료의 반응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찬 것이었다. 고넬료는 주의 사자를 '주여'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는 절대자이신 하나님 또는 예수에 대한 호칭이 아니다. 다만 자신 앞에 갑자기 나타난 초자연적 사건 앞에 당황하며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였을 것이다(9:5).

ㅇ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 주의 사자가 언급한 말은 고넬료의 신앙과 행실을 용납하였다는 의미를 지닌 '상달하여'(아나바이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는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까지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즉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까지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즉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 행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었다는 말이며 고넬료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ㅇ기억하신 바 - 이 말은 구약적인 표현으로(출 2:23;17:14)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Haenchen). 본 구절에서 누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위로와 격려 외에 (1) 고넬료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 (2) 이방인인 고넬료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기독교인으로 개종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방인에 대한 선교 정당성은 그만큼 강화된다.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ㅇ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   이 지명은 9:43에서 언급된 것과 연계되어 있다. 이는 본문의 지명과 이야기를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본문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임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욥바 체류는 고넬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나타내 보이려고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ㅇ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   사자는 계속해서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피장 시몬의 집을 지시하면서 그 집이 해변에 위치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언급된 지명이 더욱 정밀해짐으로써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더욱 섬세하게 느껴지게 한다. 피장 시몬의 집이 해변가에 위치한 것은 그의 직업적인 이유로 이해된다. 아마 피혁 가공 작업상 바다를 낀 곳이 유리하기 때문일 수 있으며(Lenski) 무역을 위해 바닷가에 위치해 있을 수 있다.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ㅇ하인 둘과 종졸...하나. -   사자의 지시에 대해 고넬료는 즉각적이고 정중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고넬료의 행위를 매우 진지하고 정중하게 묘사하려 했다. 그 근거는 (1)단순히 사람을 보냈다고 언급하지 않고 보냄을 받은 사람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으며, (2) 특히 '종졸'이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한편 '종졸'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트라티오테스'는 '군사'를 의미한다. 이군사는 고넬료 자신의 수하()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을 것이다.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ㅇ욥바로 보내니라 -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의 거리는 약 50여km 정도로 사람이 걸어서 약 10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9절에서 이튿날 제육시경에 도착했다는 언급과 무리없이 연결하자면 이들이 출발한 시각은 고넬료가 환상을 본 시각인 제 9시 직후이며 도중에서 잠을 잔 후 계속 길을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ㅇ이튿날...제 육시더라 -   고넬료가 보낸 심부름꾼들은 최소한 전날 오후 3시 이후부터 그 다음날 정오 12시경까지 약 20여 시간을 소요하여 욥바에 당도했다(10:1-6 주제 강해 '유대인의 시간 구분'의 도표 참조). 이에 대해 혹자는 밤을 세워 50km의 거리를 걸어서 가기에는 곤란하다는 점에서 말을 타고 갔을 것으로 가정한다(Bruce).

ㅇ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 베드로가 기도하러간 지붕은 헨헨(Heanchen)의 말처럼 통풍이 잘되고 햇빛이 잘드는 옥상을 가리킨다(신 22:8;왕하 23:12;렘19:13;습1:5;눅 5:19). 아마 피장 시몬은 베드로가 머무는 동안 그곳을 기도처로 예비한 것 같다.

ㅇ제 육시 - 시각은 낮 열 두 시로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과 상관없다. 따라서 본절에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습관과는 상관없이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시간적 언급은 베드로의 환상에서도 언급되는 바처럼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을 타파하려는 선교적 동기를 암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ㅇ시작하여 먹고자 하매 -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려 하는 베드로의 심리 상태를 그린 본문은, 곧이어 언급되는 환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보통 유대인들은 오전 기도시간(9시)을 지나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기도를 시작한 즉시(12시경)에 배고픔을 느낀 것이 아니라 아마 기도하러 옥상에 올라가서 상당한 시간에 걸쳐 기도하던 중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누가는 환상의 배경을설명하기 위해 언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 나오는 환상을 먹고 싶은 베드로의 욕구 때문에 나타난 환각과 환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누가는 환상이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매개로 하여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ㅇ비몽 사몽간에(에게네토 에크스타시스) - 이 말은 환상을 경험하는 베드로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심리 경험을 묘사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환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서 3절 주석을 참조하라.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ㅇ하늘이 열리며 -   이 말은 매우 문학적이며 심정적 표현으로 베드로의 경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환상에  대한신약적인 표현방식으로 (7:56;마 3:16;계 19:11)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나타낸다.

ㅇ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 개역성경은 여러 소문자 사본에 따라 번역했으나, 권위 있는 시내산 사본과 알렉산드리아 사본(A) 및 바티간 사본(B)은'매어'란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대로 직역하면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머물렀다'란 표현이 되어 그 뜻이 매우 애매 모호하게 된다. 이는 보자기 같은 그릇의 네 귀가 땅에 드리워진 모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지 않고 개역 성경처럼 번역되면 그 그릇의 네 귀가 매여 땅으로 내려 오는 모습이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서 보자기 같은 것이란 표현으로 보아 네 귀가 매여 땅 위로 드리워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고 여러 학자들이 지지하는(Holtzmann, Westcott, Hort) 권위있는 사본을 따라번역하면 보자기 같은 그릇이 어떠한 모습으로 드리워졌는지 모호하다. 한편 그것의 네 귀퉁이가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으며 하늘로 부터 땅 위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땅 위의 모든 영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Lange, Bengel, Neander). 즉 환상에서 보여주듯이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을 파기한 것처럼 유대의 배타적 선민 의식도 파기되고, 하늘이 온 세상을 덮듯이 온 세계가 유대인과  이방인 곧 민족적 구별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암시하고 있다.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ㅇ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 -    짐승들에 대한 이목록은 창 1:24, 25을 연상하게 하는 데 아마도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피조물임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짐승 목록은 14절로 보아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부정한 짐승이라고 규정하여(레 11장;신 14:3-20) 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짐승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창조물의 목록 중 물고기가 빠져 있다. 아마도 물이 없는 공중의 그릇이라는 이유로 물고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Weiss, Knowling).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ㅇ잡아 먹으라 -   누구의 음성인지 전혀 언급없이 베드로에게 보여준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는 명령문이 언급되고 있다. 이 명령은 10절에서 베드로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준비했다는 진술과 상응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먹고자 하는 식욕 앞에, 제공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은 매우 반가운 제안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명령에 베드로를 시험하는 의도가 내포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명령은 베드로의 대답을 예견한 명령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에 대한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ㅇ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   베드로의 대답은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대표적 생각을 나타낸 것 뿐이다. 즉 그의 대답은 생활과 종교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에까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유대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베드로는 '결코...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어를 사용하여 전면적으로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부정적 대답은 주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이 얼마맡큼 철저한 율범적 생활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같은 베드로의 대답은 모든 유대인들의 대답으로 상징될 수 있다(겔 4:14).

ㅇ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 - 본 구절은 베드로가 그 짐승들을 잡아 먹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1) 제공된 짐승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짐승으로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먹지도, 가까이 하지도 않는 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2) 자신이 어려서부터 이 짐승들을 멀리하고 정한것과 부정한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며 살아온 바처럼 지금도 지켜야 될 규범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같은 베드로의 대답은 유대인들의 일반적 견해다. 베드로는 아직 환상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ㅇ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니 말라 -   이 말은 곧 유대인들이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규범시해 왔던 이분법적() 사고를 뒤엎는 타격적 선언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이미 12절에서 짐승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연상케 하고 11절에서 하늘이 열리고 짐승들을 담은 그릇이 땅에 늘어져 닿았다는 표현 속에 암시되어 있다. 본절에서 하나님의 선언은 베드로에게 보인 짐승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고 있다. 본 구절은 당시 속되다고 인식되던 것을 깨끗하다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면 속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이분법적 상상들을 인간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파기하고 일치와 화해, 용서와 사랑의 시대를 선언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과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6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ㅇ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 이제까지 묘사된 환상을 말하는 것인지 15절에서 언급된 음성, 곧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선언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베드로가 계속 명령을 거부하기 때문에 세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공동번역은 '이런 말이 세 번 오고 갔다'고 말함으로써 베드로가 완강하게 거부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RSV는 이런 일이 단순히 세 번 일어났음을 언급하고 있다. 어쨌든 저자 누가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명령에 대해 베드로의 거부가 세 번 반복되었다는 데 있다. 즉 전통적으로 세 번 반복하는 형태가 지극히 강조적 묘사라는 점에서(요 21:15-17), 본절의 세 번 반복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이신 환상이 (1) 매우 명백했다는 사실과 (2)베드로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실과 관련이 있음 및 (3) 베드로가유대적인 전통을 하나님 앞에서 고집했음을 의미한다.

ㅇ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 베드로가 체험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이 구절은 11절의 '땅에 드리웠더라'는 표현과 대응되는 구절이다. 즉 하늘로부터 내려왔던 그릇과 짐승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 묘사는 이야기 전체가 나타내고 있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거룩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하늘에서 그들이 속되고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짐승들이 내려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며, 그들이 속되고 부정하다고 판단한 것들이 깨끗하고 거룩된 것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세상에 오심 이후부터 깨끗하고 부정한 것의 구별이 없고 이방인과 선민이라는 구별도 파기되었다(고전 10:26).

17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ㅇ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    '의심하더니'로 번역된 '디아포레오'는 본래 출구가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를 의미하며 공동번역은 이 단어를 '어리둥절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베드로는 환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지 못함이 분명하다.

ㅇ마침 - 이 말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한 시각을 알 수 있는 단서로 베드로가 환상을 본 직후 도착했음을 의미한다. 이 시각이 베드로의 기도 시작 시간인 정오였는지(92절) 아니면 정오가 지난 어느 시간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ㅇ우거하느냐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세니제타이'는 '거주하다'는 의미와는 달리 손님으로서 잠시 유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보아 베드로는 피장 시몬의 집에 오랫동안 머문 것이 아니라 손님의 자격으로 잠시 머무른 것 같다.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ㅇ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 -   이 말은 17절의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베드로는 자신이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깨닫고자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ㅇ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 비록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 있지도 않았으며 기도하고 있지 않았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무런 제한없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여기서 누가는 그 음성이 설명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면서 조금 전의 환상과 구분 시키고 있다. 이 같은 묘사는 초기 사도들의 활동이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ㅇ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 베드로를 찾는 이들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라면(17절) 두 명이 아니라 두 명의 하인과 한 명의 종졸을 포함해서 모두 세 명이어야하는데(7절) 여기서는 두 명이라고만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베자사본(D)에서는 숫자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한편 사본 A, C, E에서는 '세 사람'이라고 언급하는데 본문은 바티칸 사본(B)을 따라 두 명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두 명이란 표현은 결코 잘못된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언급된 두 명은 고넬료의 직접적인 사명을 부여받은 두 사람을 가리키며 그들을 호위한 종졸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ㅇ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   내려가라는 성령의 지시는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간 후 아직 내려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성령은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유없이 무조건 두말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암시한다.

ㅇ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 고넬료로 하여금 하인을 베드로에게 보내도록 지시한이가 4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들로 묘사된 반면 여기서는 성령으로 언급되었다. 따라서 천사와 성령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 4절의 천사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서 묘사되지만 본절의 성령은 환상 중이 아니라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결코 동일한 표현으로 볼 수 없다. 특히 본절에서 '내가'(에고)가 강조됨으로 써 그 음성의 주제가 하나님이심을 부각시키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성령'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ㅇ무슨 일로 왔느냐 -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말보다도 제일 먼저 그들이 온 목적에 대해서 물었다. 이로 보아 아직도 베드로는 환상과 두사람의 방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ㅇ의인이요 -   유대인들이 말하는 의인은 율법 준수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었다(Lenski). 그런데 고넬료는 유대교로 개종한 자도 아니고 더욱이 유대인들을 지배하는 로마의 군인이기에, 그에게 붙여진 의인이라는 말은 매우 파격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인이라는 표현을 유대인들이 고넬료에게 직접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두 하인이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가 비록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는 전제하에서(2절 주석 참조) 유대인들에 의해 고넬료의 경건한 삶이 인정되었을 것이며, 그에 따라 그는 의인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ㅇ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 베드로와 대면한 고넬료의 하인들은 먼저 자신들을 보낸 주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소개의 내용 중 유대 온 족속들이 고넬료에게 하고 있는 칭찬을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유대인이므로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고넬료의 인물됨에 대해서 2절에 언급되었으나 본절과 같은 칭찬은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인들이 베드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특별히 언급한 이야기로 이해된다.

ㅇ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강조되는 점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의한 것이라는사실이다. 4절에서 언급되었던 '천사'(앙겔로스) 앞에 '거룩한' 명령임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지시하다'라는 말에 헬라어 '크레마티조'의 제1부정과거 수동태 '에크레마티스데'가 사용되어 고넬료가 받은 지시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명령이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방인에 대한 선교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베드로로 하여금 깨우쳐 주고 있다.

ㅇ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타'는 생동감있는 말씀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나오는 성령에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이 '말'은 베드로의 설교뿐 아니라 간증이나 예수 사건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 등을 포괄하고 있다.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쌔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ㅇ베드로가 불러들여 -    방문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후 그들을 집 안으로 영접한 베드로의 행위는 그 방문객들이 이방인이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즉 베드로가 그들의 말을  신뢰하였다는 뜻과 함께 이방인을 한형제로서 용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시몬의 집으로 영접한 것은 아직  이방인과의 접촉이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 비추어 보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베드로는 그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으므로  그렇게  행동한것 같다.

ㅇ유숙하게 하니라 -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함께 잠을 자게 한다는 사실은 당시에 매우 반 유대교적 행위로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11:1-3).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되어 이제 무할례자인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베드로가 그들을 유숙하게 한 것은 그들이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므로 다시 가이사랴까지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본절의 핵심은 이방인을 전적으로 용납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다.

ㅇ욥바 두어 형제 - '두어'로 번역된 부정대명사 '티네스'는 확정되지 않고 또한 많지도 않은 수효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런데 11:12에서 여섯 명이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갔다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본절에서 언급된 형제는 세명이 분명하다. 이 표현상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 있다. 누가는 본절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11:12은 베드로의 고백의 입장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베드로의 고백 부분에서는 정확한 숫자가 언급되어 그 고백의 사실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누가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므로 정확한 숫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욥바에서 세 사람이 베드로를 동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본문에서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만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1) 이방인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그 세사람이 목격하고 증인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 (2)아직도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신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베드로가 그들과 동행하게 되어 혹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임.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ㅇ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    본 구절에서 구체적 도착 시간은 언급되지 않고 욥바로부터 출발한지 이틀째 되어 가이사랴에 도착했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30절에 따르면 고넬료가 환상을 체험했던 그때와 어느 정도 일치함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후 3시를 전후해서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것이다.

ㅇ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 이는 고넬료가 환상을 굳게 믿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동시에 형제 사랑과 신앙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준다. 만약 그에게 그 사랑과 열정이 없었다면 자기 가족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족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으며 함께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고자 원했다.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ㅇ베드로가 들어올 때 -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이한 장소가 고넬료의 집인지 가이사랴로 들어가는 어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어떤 사본(D)에서는 베드로가 도시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24절의 정황으로 보아 집으로 들어올 때라고 보는 것이 정황으로 보아 집으로 들어올 때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Haenchen).

ㅇ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 고넬료가 베드로를 마중할 때 보여준 자세는 마치 신적인 존재나 로마 황제를 대하는 듯하였다. 이는 당시에 사도들이 지녔던 권위를 보여주며 또한 고넬료의 겸손하고 순수한 성품을 나타낸다. 특히 고넬료가 베드로를 대할 때 신적인 권위 앞에서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베드로를 환상 중에 경험한 천사의 말과 관계된 사람으로서 특별히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을것이다(5절 참조).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ㅇ나도 사람이라 -   고넬료의 행위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신적 권위를 사양하며 동등한 사람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 같은 베드로의 행위는 겸손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사도와 일반 성도는 하나님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고넬료가 로마 군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경배 행위가 로마인들의 황제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인간에 대한 신적인 숭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를 부정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것을 보고

ㅇ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   누가는 이표현을 통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음을 강조하려 했을것이다. 즉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해 지니고 있던 배타적 우월감을 버리고 15절에서 지시한 주의 말씀을 따라 이방인을 한 형제로 용납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 같은 베드로의 행위는, 17절에서 베드로가 자신의 경혐한 환상의 의미에 대해 고심했지만 지금은 그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ㅇ위법인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   고넬료 집 안에 모여 있는 고넬료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24절)을 향해 베드로는 자신의 방문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을 언급하고 있다. 즉 신 7:3, 4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모든 이방인과의 교제를 죄악시하고 이방인들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식품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대했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베드로 자신의 고넬료집 방문은 유대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이러한 사실을 고넬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가 일종의 모험임을 강조했다.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ㅇ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      여기서 언급된 '사양치 아니하고'라는 단어 '아난티르레토스'는 직역하면 '반대하는 말을 할 수 없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강조해 준다.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ㅇ나흘 전 이맘때까지 -   고넬료가 환상을 체험한 날로부터(3절)나흘이 지났음을 밝히고 있는데, 고넬료의 하인들이 이틀만에 욥바에 도착하였고(9절) 욥바서 하루를 묵고(23절)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이틀 걸려 도착하였으므로 3박 4일이 지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흘'이란 표현은 타당하다.

ㅇ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 본 구절은 3, 4절에 언급된 천사에 대한 묘사로 70인역 자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Haenchen). 희고 빛난 옷은 거룩한 천사의 옷으로 자주 묘사된다(1:10;마 28:3;막 16:5;눅 24:4).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ㅇ들으시고...기억하셨으니 -   4절과 내용상 같다. 다만 4절보다 간략하게 진술되고 있을 뿐이다. 용어상의 차이로 4절에서는 '상달하여'가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들으시고'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의미상 아무런 차이는 없다.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ㅇ베드로...우거하느니라 - 이 부분의 헬라어 본문은 세 가지로 읽혀지고 있다. (1) '바닷가'란 말이 생략되었다. (2)'바닷가' 다음에'와서 너에게 말할 자'호스파라게노메노스 랄레세이 소이가 첨가되어 있다. (3) 개역성경과 같은  독법을취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본들은  2)의 독법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청하라'는 말속에 (2)의 첨가된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누가는 앞의 사건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2)의 독법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3)의 독법이 가장 무난하다.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ㅇ하나님 앞에 -   본 구절이 사본에 따라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다. (1) '하나님 앞에 , 대부분의 사본이 이 독법을 취한다. (2) '주님 앞에', 몇몇 소문자 사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3) '당신 앞에', 서방 사본과 역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3)의 독법에 따르면 베드로의 권위가 강조되지만 (1)과 (2)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지닌 고넬료의 모습이 강조된다. 특히 '하나님 앞에'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여호와 앞에서'와 함께 자주 사용되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순종과 경건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구절에서는 '하나님 앞에'가 가장 무난하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ㅇ베드로가 입을 열어 -   빌립이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할 때(8:35), 또는 산상 설교에서 예수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 5:2) 처럼 '입을 열어'라는 표현은 곧이어 언급될 이야기의 권위와 잔중함을 암시해 준다. 여기서는 이방인에 대한 구원을 선언하는 중대한 선언을 나타내기 위해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

ㅇ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조건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신 10:17의 인용구로 짐작된다. 여기서 언급된 '외모'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과 종교적 제의와 관습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형식적인 경건주의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유대인과 이방인의 외형적 구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35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ㅇ이제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선민의식과 같은 배타적 우월감이 하나님 앞에 용납되지 않는다. 여기서 구원받을 대상의 범위가 온세상 사람으로 확대된다. 한편 본절의 표현은 구약적인 표현인데 이를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로 해석할 수 있다.

ㅇ깨달았도다 - 헬라어 본문에서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여 이제 분명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ㅇ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 -   이제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선민의식과 같은 배타적 우월감이 하나님 앞에 용납되지 않는다. 여기서 구원받을 대상의 범위가 온세상 사람으로 확대된다. 한편 본절의 표현은 구약적인 표현인데 이를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로 해석할 수 있다.

ㅇ깨달았도다 - 헬라어 본문에서 이 동사는 현재형으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보여진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여 이제 분명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ㅇ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   베드로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사용하던 칭호를 예수에게 사용하면서 이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 예수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만우'는 헬라어로 중성과 남성  모두에 해당되어 '세계 만물'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혹자는 '만유'를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혹자는 '만유'를 '모든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Haenchen, Bruce). 이는 롬 10:12의 '모든 사람의 주'란 표현과도 일치한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은 본 구절을 '만민'으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만유'를 '만민'으로 해석해야 할 정당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만유'로 해석하는 편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이 '만유'란 표현은 모든 피조물을 지칭하므로 '만민'이란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ㅇ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 베드로는 평화를 예수가 전한 복음의 핵심으로  본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뜻한다(Haenchen). 과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심판하는 자와 죄인의 관계였으므로 화해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의 관계로 바뀌게 된 것이다(롬 5:10, 11). 또한 이 평화는 사람간의 평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엡 2:14, 2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있으서, 그동안 그 둘을 가로 막았던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편견과 편애가 없어졌다. 이런 의미엥서 복음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ㅇ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   예수가 선포했던 평화의 복음은 요한의 세례에서 부터 출발된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서 언급된 '그 세례'는 메시야이신 예수를 예비하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앞서 세례요한을 언급했던 것이다.

ㅇ갈릴리에서 시작되어 - 본 구절이 예수의 사역이 시작된 지역에 대한 설명인지 아니면 예수의 출생에 대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36절에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란 표현이 사용된 점으로 비추어 보아 본 구절은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ㅇ두루 전파된 그것 - '전파된 그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게노메논 레마'는 '되어진 말씀'으로 직역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예수를 통해 온 지역에 전파된 말씀으로 앞에서 언급된 '화평의 복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여기서는 비록 '말씀'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이 말씀 속에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 외에 행하신 표적도 포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를 통해 나타난 계시는 말씀에 의한 것과 행위에 의한 것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ㅇ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   누가는 '나사렛'이라는 지명과 함께 예수를 언급하여 그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을 강조했다. 한편 누가는 역사적 예수가 수행하신 모든 언행에 대한 권위를 언급하려는 의도로 본문을 서술했다. 즉 앞절에서 언급한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언행과 일치하는 것이고 나사렛 예수의 언행은 하나님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가 행했던 모든 언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그 정당성이 인정받게 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는 본절 마지막에 '이는 하나님의 함께 하셨음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ㅇ착한 일을 행하시고 - 이에 대해 혹자는 헬라적인 의미에서 백성들에게 은인으로 인정받는 군주에 대한 암시를 주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Haenchen). 즉 군주가 백성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애정으로 도움을 베풀어 줄 때 헬라인들은 그 군주를 향해 선한 일을 행한다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군주를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의 통치자적인 모습을 연상하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는 것으로 진술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선하신 본질을 지니신 예수가 행하신 일에 대해서 유대적인 윤리 개념으로 진술했을 뿐이다.

ㅇ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    예수의 기적 행위를 치유의 행위로 연결시켜 모든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즉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는 이 모든능력을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로 말하여 예수의 모든 언행을 하나님의 권위로 전당화하여 설명하려고 한 것 같다(2:22).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ㅇ우리는...모든 일에 증인이라 -   '우리'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베드로와 그 동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아마도 열 두 사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 즉 역사적 목격자이며 동시에 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선언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ㅇ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 예수는 온 인류를 우해 죄에 대한 저주를 담당하셨다. 그리고 이 저주는 신 21:22에 따라 나무에 달린 것 곧 십자가 지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5:30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고  묘사하였다. 따라서 본문은 초기 기독교의 상투적 증언 내용으로 예수의 죽음을 구약 예언의 성취로 보면서 또한 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하는 이중적 효과를 나타낸다.

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ㅇ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   베드로는 예수의 죽으심에 이어 부활 사건에 대해 증거함으로써 당시 사도들의 증거 내용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본 구절에서는 부활 사건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베드로가 이미 본문과 같은 내용의 설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설교한 점을 미루어 보아(2:32;3:15;4:10;5:30) 부활이 초대 기독교에 있어서 선포의 주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ㅇ본 구절은 베드로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의 권위를 보증하려는 의도로 언급되었다. 즉 예수의 십자가 부활 사건이 모든 백성에게 보여진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선택한 몇몇 증인에게만 나타난 것이다. 이 표현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사도권에 대한 배타적 강조이다. 특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증언자로서 선택되었다는 특권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초대 기독교의 교권 중심을 사도 중심으로 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8:14 주석참조). 둘째는 부활 사건에 대한 증인이 소수였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불특정한 다수를 통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불러 세운 소수의 증인을 통해서 일하심을 밝힘으로써 소수에게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ㅇ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 - 부활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사도 들의 새로운 소명 체험의 시기와 사건에 대한 진술로서 아마도 눅 24:36-49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베드로는 부활 후 함께 식사를 나눌 때 주어진 예수의 명령을 부활에 대한 증언자로서 선택된 사도들의 소명의식으로 이해했다. 초대 기독교에서 사도의 권위에 대해 문제가 되었을 가능성은 본서에서 사도권에 대한 계속된 강조 속에 암시되어 있다(1:2;2:42;4:35-37;5:12, 41;6:6). 본절 역시 사도권에 대한 정당성과 그 권위를 강조하려는 변증적 입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ㅇ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   지금까지 베드로는 세상에 오신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했으나 본절에서는 세상 마지막 날 수행하실 그의 사역에 대해 진술한다. 이는 초대 기독교 인들의 고백으로서 부활하신 예수가 장차 종말적 심판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선포다.

ㅇ증거하게 하셨고 - 베드로는 앞에서 언급된 내용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증언 내용을 정당화하며 증언의 권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ㅇ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   이 내용은 이미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3:18,19;사 33:24;53:5;렘 31:31-34;49:6;눅 24:46, 47).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설교의 내용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죄사함이 선포됨으로써 베드로의 설교가 종결되면서 복음이 사람에게 끼치는 결과가 핵심적으로 진술되었다. 즉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가 믿는자들에게 주어짐으로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죄 문제가 해결됨을 선포했다.

44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ㅇ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   본절로 미루어 보아 성령 강림의 시점이 베드로의 설교가 끝난 뒤라기보다는 성령 강림으로 인해 베드로의 설교가 중단된 듯한 인상을 더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표현이다. 당시 성령의 임재가 곧 기독교인됨에 대한 징표로 여겨졌지만(8:14-20), 무엇보다 본문의 사건은 안수나 세례 없이 성령이 강림하였다는 점이 처음 성령 강림의 때와 유사하다. 이는 '말씀'의 권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성령의 임재가 어떤 의식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은 이들이 이방인들이었다고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려고 기독교인의 어떤 집회에 참여했다는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성령은 인간이 갖춘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로써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이 확실하게 제시되었다. 한편 여기서는 2:2-4과 같이 성령이 강림함을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어떤 묘사가 없지만 46절에서는 방언을 말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점이 유일한 성령 강림의 외적 증거로 묘사되어있다. 이는 고넬료의 가정에도 2:2-4와 같은 현상이 있었느나 누가가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ㅇ할례받은 신자들이...놀라니 -   본절은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유대인들의 절대적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묘사한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이란 여기서 정통 유대인을 말하며 욥바에서 베드로를 따라 동행했던 자들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놀람은 구약 시대에서부터 시행된 할례 의식을 통하지 않고 이방인도 구원의 경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이 같은 장면 묘사는 첫째로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도 아직까지 이방인 구원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고 둘째로 유대인을 이방인에게 직접 임재하는 성령의 활동을 목격한 증언자로 언급하여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유대인들에게 강조하려는 누가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볼수 있다. 여기서 이방인 선교와 이방인 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한다는 바울의 구원관이 암시되어 있다.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ㅇ방언을 말하며 -    오순절 사건(2:4)과 같은 현상으로 묘사되었으나 그 당시와 같은 각국 방언 현상은 아닐 것이다.

ㅇ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 '들음이러라'의 헬라어가 미완료 과거형으로 '계속해서 들었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이방인들에게서 계속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찬양 행위가 노래였는지 말로 표현되었는지 아니면 방언으로 찬양한 것인지는 정확히 규명할 수 없으나 베드로의 일행이 그 찬양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했을 가능성이 높다.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ㅇ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   이방인들의 성령 받음을 베드로는 자기들의 성령받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즉 베드로는 이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이방인들의 성령 체험을 정당화했다. 이는 이방인 전도문제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ㅇ누가 능히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요 - 반문 형식으로 된 본문은 강한 긍정의 대답을 전제한 어투이다. 첫째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울에게 기독교인 됨의 형식인 세례행위(8:12)는 마땅히 수행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둘째는 성령 받음은 기독교인됨의 가장 확실한 징표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베드로의 어투는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푸는 행위가 당시 할례자들에게 매우 문제시 될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따라서 본절에서 베드로의 증언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재하였다는 사실이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기독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아무 하자가 없음을보증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ㅇ세례를 주라 하니라 -   베드로가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고 누구인지는 언급이 없지만 베드로는 그에게 세례를 주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것은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던 사실과 마찬가지로(8:12) 당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사도들의 고유 권한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베드로를 대신해서 세례를 베푼 자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놀란 할례자들, 곧 욥바에서 베드로를 수행한 자들이었을 것이다(23절). 

ㅇ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설교한 것 만큼 중요한 사실이기에 언급되었다. 왜냐하면 누가는 이방인과 사도가 함께 자고 먹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이방인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으며 유대인의 의식 절차를 밟지 않고 서로 교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비록 본구절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더 머물렀는지에 대해서 누가가 언급하지 않았으나, 11:1-3로 미루어 보아 그가 그곳에 머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특히 누가는 어떤 사건이 다음에 문제시되거나 그 내용이 반복된다면 그 진술들이 상호 보충되도록 서술하는 방법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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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가이사랴는 지중해연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지역의 미항으로 두로와 욥바사이에 위치하며 (샤론평야지역에 속하는 갈멜산/하이파 남서쪽 368km.예루살렘북서쪽104Km) 이 도시를 건설한 헤롯궁전 및, 빌라도, 벨릭스등 로마총독들의 관저가 있음.. 두로와 이집트간 해상무역의 본거지여서 헬라인이 많이 거주했음, 관련된 인물로는 빌립, 고넬료-베드로, 바울임

...베드로의 설교도중 고넬료가 하늘로부터 직접 성령세례를 받은, 이방인전도의 새로운 이정표요 신약경륜안에서 전도/선교적 관점의 돌파와 전환을 연 곳

...집사/전도자 빌립의 거주지

...바울은 처음 회심후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보내어졌고, 그후 2차, 3차 선교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에 각각 들렀으며, 3차여행에서 복귀 도중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하겠다는  최종 결심도 이곳에서 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성전모독 누명으로 살해당할 위기에서 천부장 루시아의 결정으로 벨릭스총독이 있던 이곳으로 이송되어 2년간 있었다가 로마로 이송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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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빌립보...오늘날 바니아스] 메롬호수(=오늘날 훌레 호수)는 갈릴리호수 북쪽에 위치하는데 헬몬산에서 발원하는 시내로 갈릴리호수와 연결됨...메롬호수  북서쪽에 헬몬산이 위치함....즉, 헬몬산과  메롬호수사이 중간지점즈음에 가이사랴빌립보가 위치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베드로가 고백한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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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 = 타고난 본성과 감정 ...우리나라에서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과 관련된 성정에 대한 논의. 

:::  사단은 『맹자(孟子)』에서 말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본성, 이것의 표현으로는 ‘측은(惻隱..인자), 수오(羞惡..선과의 없음을 악함을 부끄러워함), 사양(辭讓...합당치 않은, 예의에 벗어난 것을 거절함), 시비(是非...의와 정직을 따라 선택함)’의 정(情)이며, 

:::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에서 말하는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을 말함.

.... 이러한 사단과 칠정에 관해 이황은 ‘사단을 리(理)의 발(發), 칠정을 기(氣)의 발(發)’이라고 하여 리기가 각각 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리기가 각각 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발하며 칠정 중 선한 것이 사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이는 기대승의 주장에 동조하여 사단이 칠정 속에 포함되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후 학자들은 대체로 남인의 경우 이황의 견해를, 서인의 경우 이이의 견해에 동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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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네가지 근본도리] <측은>仁慈인자=어짐사랑 실행 <수오> 義善의선(=옳고착함) 없음을 부끄럽게 여김 <사양> 禮義예의=예절(禮節)의리(義理)에 어긋나는 것을 정중히 물리침  <시비>智慧지혜=도리슬기, 공의와 정의, 진리를 따라 선택 실행함

::: [세속오계=화랑오계]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 [오상]五常 :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곧 부자 사이의 친애(親愛), 군신 사이의 의리(義理), 부부 사이의 분별(分別), 장유(長幼) 사이의 차서(次序), 붕우(朋友) 사이의 신의(信義).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아버지는 의리로, 어머니는 자애로, 형은 우애로, 아우는 공경(恭敬)으로, 자식은 효도로 각각 대하여야 할 마땅한 길 또는 오륜(五倫 : 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지키는 다섯 가지 계율[오계]. 곧 죽이지 말 것, 훔치지 말 것, 사음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술 마시지 말 것

::: 三綱五常(삼강오상 =삼강오륜)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으로서 사람이 항상(恒常) 지켜야 할 큰 도리(道理) 

...삼강(三綱)은 군신ㆍ부자ㆍ부부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道理)인 군위신강(君爲臣綱)ㆍ부위자강(父爲子綱)ㆍ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고, 오상(五常)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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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생명양식...수8 :30-35, 수9장]]

------먼저 에발산 돌비석에 새겨진 말씀에로 나아가라==> 철연장 없이 새로운 돌로 쌓은 제단에서 경배하라<오직 주만 바라보라....주님은 유일무이한 모든 것 되심을 다시 새롭게 하고 그 안에 거하라...붙회떨감!!> ::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그리심산>이냐 저주냐<에발산>를 믿는 네가 선택하라"함이니..... 오직 매밍 매순간을 생명삶으로 살아내려면, 영적 전쟁에서 파수꾼의 깨어있음, 사탄에게 자기를[옛사람을 선택함이다!!] 내어줌 : 참된 자비-온유-겸손-신중-영적 경계심 늦춘 결과임>---돌이킬 수 없는 후회할 일 저지름...:스스로 자초함 ==>통회하라, 참되게 회개하라, 오직 <롬8:1십자가 보혈안에 머무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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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8장]

===에발 산에서 율법을 낭독하다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 9장]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이다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8.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9.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  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

12.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13.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16.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21.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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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제8장

==생명의 성령의 법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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