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출10. 하나님의주권-주권적 긍휼/예정과 자유의지.바로의 정체..그는 누구인가
첨부파일 :

출10장....<출애굽, 곧 세상을 미워함은 주님 신뢰함으로써 그분의 말씀 참되게 절대적으로 순복함이다!!> ::: 주님의 손에 이끌려-주님에 의해-주님을 통해-주님과 함께 실행함


**주권적 긍휼과 자유 의지와 함께 찬찬히 헤아려 반드시 알아두고 붙들어야 할 예정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이 예정론은 <각 사람의 구원 또는 멸망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이중 예정의 운명론]이 아닌 것을 분명히 꿰뜷어 알아두고 끝까지 주의해야 함.......성경 그 어디서도 [다함 없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극진한 사랑의] 하나님이 친히 내신 바 <그리스도의 대속 통해 보시는 바, 당신의 친 자녀요 대사로 보시며>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 대해 구원 영생을 예정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을뿐이며......다만 그 구원을 이룸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하심을 신뢰함으로써 전존재의 중심으로 주 이름 부르며 주로 인해 그리스도를 사는, 그리스도의 반쪽인> 각 사람마다의, 자유 의지적 선택에 달려 있음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니...이것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대한 롬8장, 특히 후반부의 10-39에서 확증하고 있음을 명심하라!!....다만 이것 이룸을 시기하는 사탄과 그의 종노릇하는 사탄적 체계인 세상 가치를 꿰뚫어 보고 대적함으로 가능케 하시는데.. 이것은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알 것...영분별)이요>하신 말씀대로 주님과 친밀함 안에 동행할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여기에서>바로는 사탄을 상징한다는 자명하다...하지만, 한편으로 영적 실제에 있어서는 <사탄과 세상에 물들어 하나님을 대항해 거역하거나 그분과 간교하게 흥정하는 바, 천연적 생각-감정-의지인> 그대의 자아, 곧 천연적 사람이기도 하며, 심지어 그러한 경향성을 보이며 강요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조차 오늘날 바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약4:4..*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출9:15, 16 *15.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16.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터무니 없이 교활하고 완고한 태도로 잔꾀 부리며 끝까지 협상하려는> 바로는 결코 홀로 스스로 그렇게 설 수는 없었으며, 실지로 바로를 세우고 떠 받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지금 친히 드러내 말씀하고 계심을 보라....바로가 왕 위에 오른 그것은 바로의 타고 난 어떠함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 땅에 주권자로서 그분의 능력을 보이고 온 땅에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주님은 바로 그 때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세상이 무엇이며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한지<그분의 극도로 미워하심을> 교육하심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계시하려 하심이었다.

==

**바로는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날 경험되는가....바로는 사탄이자, 자아요 천연적 사람(천연적 생각-감정-의지) 자체요, 심지어 친척이나 친구들이 될 수도 있다....그 공통 특징은 하나님을 대항해 거역하거나 그분과 간교하게 흥정 벌이려 하는 특성을 보이는 자마다 모두 바로인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셨다는 것과 바로가 <또한 스스로!!>자신의 마음을 굳게 했다는 것을 둘 다 분명히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바울이 로마서 집필 당시에도 이미 이런 논쟁이 제기되었었기에 바울은[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롬9:20) 이어,...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닌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느냐]....여기서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 마음대로 하실 주권적 권위가 있으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분명히 우리는 진흙이요 하나님은 주권적 토기장이이심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대가 누구인가는 어떤 종류의 그릇인가는 절대적으로 [[만들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주권적 문제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의존되어 있다...우주 안에 있는 그 많은 것들과 같이 여기에도 두 가지 면, 곧 하나님의 면과 사람의 면이 있다.  우리가 자신을 진노의 그릇이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그런 그릇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영광에 이르는 긍휼과 존귀의 그릇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바로 그러한 그릇들인 것이다. 

....롬9:16에서 바울은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말은 곧, 영광에 이르는 긍휼과 존귀의 그릇이 되는 것은 우리의 원함이나 달음박질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긍휼의 그릇인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긍휼에 속한 것이다. 

우리는 긍휼의 그릇이 되는 것을 결정한 자들이 아니었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셨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의 그릇들(긍휼을 입은 그릇들)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

우리 자신 안에서나 우리에게 속한 것에서는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 흙덩이에 관한 권위를 가진 토기장이로서 주님은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하셨다.(그러나, 우리가 "나와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바 된 긍휼의 그릇들"이라고 말하는 그 고백이 하나님이 <그분의 긍휼로>그렇게 만드셨고 정하셨음에 대한 확증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전적으로 그분의 뜻을 따른 것인데, (롬9:18에서 바울은 이렇게 결론짓는다.."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모세와 바로가 그 좋은 예이다....모세는 하나님이 그분의 긍휼을 보이고자 하신 사람이었던 반면에, 바로는 하나님이 강퍅케 하고자 하신 사람이었다...[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이 여기리라..롬9:15]) 우리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보이시기로 원하셨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긍휼이 우리에게 미쳤다는 것이다....이것은 우리에게 보이신 긍휼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가리킨다.

.....그분의 주권 안에서....더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주권 안에, 주권적 택하심 안에  있다(롬9:20-23).....오직 주께서 긍휼 베풀 자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대표적으로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서 볼 수 있었다).....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는 택하고 다른 하나는 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절대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로서 우리는 그분의 긍휼을 인해 그분께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진실로!! > 그분의 주권을 인해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한다......아쉬운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찬송들은 있으나,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찬송들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하나님의 주권에대한 찬송을 쓰려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음=빈곤함을 느낀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바울과 더불어 (영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끌려질 필요가 있다. (사탄이 그리하듯이!!! 감히)그분과 <그분의 주권에 손대려 논쟁하지 말라..[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하는 바울의 경고를 주의하라(롬9:20) .그 대신에 오직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오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주권을 인해 당신을 경배합니다. 비록 진흙에 불과한 나는 가치가 없지만 당신의 주권 안에서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가이없는 긍휼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의 자유 의지... 우주 안에는 부인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 그리고 사람의 자유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은 모두 신성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  반면에 사람의 자유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인데, 하나님은 바로 이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그분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위대하시기에 그분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강제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 자신이 잘 분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를 주셨다.. 위대하고 지혜롭고 사랑 많은 사람은 함부로 강요하지 않는 법... 이처럼 주님은 자유 의지를 주셔서 우리가 분별하여 선택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다....<바울은 스스로가 다메섹 도상 체험 이전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천연적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 없는 비상식적 비논리적 행위라 여겨지는 그런 방식으로 오셨기에 그 내용을 믿고 받아들여 영접할 수 없었다... 즉,[시온에 둔 바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가 바로 그분의 연약함과 비천함으로 성육신 하시고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그러나 부활하신 그분이 직접 지금 그를 만나셔서 (제자들이 고백하며 주장하는 그대로) 부활 주님이자 영원한 대속주로서 자신과 교통하고 계심을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정말 그들의 고백대로 그러하셨음을 믿는 것이 그 이전에는 도무지 믿기 어려웠음을 토로했으나 이제....주님 만난 후부터 믿음의 눈 열어주심따라, 믿음의 눈을 들어 주 알기 원함 통해 깨닫게 하심 받은 바>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적 긍휼에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고전1장] *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다시 정리해보자))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에게는 절대적 주권이 있다(롬9;20)...같은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다른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으신데, 곧 긍휼의 그릇(롬9:23)과 아울러 진노의 그릇(롬9:22)을 만들 권리가 있으시다.

**또한 분명히 주님은 그분의 주권적 결정에 따라 롬9:18절에 의하면 긍휼을 보이시거나 강퍅케 하실 수 있으시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분의 긍휼을 보이고자 하신 사람이었던 반면에, 바로는 하나님이 강퍅케 하고자 하신 사람이었다....하여 롬9:15에서는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이신 <그분의> 긍휼이 절대적으로 그분의 뜻에 따른 것임을 가리킨다.

**그대는 자신을 어찌 생각하는가, 진노의 그릇인가 아니면 긍휼의 그릇인가? 한편으로 그대가 어떤 종류의 그릇인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의존한다.....자기에 관해 <자기를 어떤 존재로 말하고 여기고 행하느냐>, 바로 그것에 의해 자기의 그릇됨은 결정됨에 주의하라...[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그러므로 속지말라!!]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자신을 <진노의 그릇>으로 표현하거나<하나님 영광에 이르는 긍휼과 존귀의 그릇>이라 말하거나 바로 정말 !! 그러한 그릇이거나, 향후 그렇게  되기 때문이며 그것은 결국 그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된다....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인간 한 사람 한사람마다를 그리스도의 구속 아래에서 보시기로 창세전에 이미!! 주권적으로 결정하셨기에, 곧 <하나님 영광에 이르는 긍휼과 존귀의 그릇>으로 보고 계시기에 그러하다!!

===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긍휼 베푸시기로 하셨고 계획하셨고 시작했으며 일정을 짜셨고 그 모든 환경-상황-분위기를 조성하심으로써 우리는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기에 자랑할 것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현재 붙들고 있는 바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고수하며 더욱 더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를 존중하심으로써 <최종적 결과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뒤따르는 자유 의지적 선택>에 두셨음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한편, 바로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강퍅케 하시겠다> 결정하시고 첫 단계를 취하셨음을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출4:21) 먼저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강(완고)하게 하신 후에 <개재하심 통해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실 수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심으로써 완강한 상태가 유지되게 하셨다 = 강퍅케 하셨다 !!> 그 다음에 바로는 그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해서 이 강퍅케 하신 바를 스스로 더 강퍅케 함의 <자유 의지적> 선택을 통해 악순환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강퍅케 함으로써 그의 마음이 강퍅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바라건데!!>주님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자라나도록 허용하지 말라!!....그 소극적인 것이 일단 자라나기 시작한다면... 주님이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개재하실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

10가지 재앙을 들여다 보라...첫 재앙은 물이 피가 됨, 곧 사망...10째 재앙은 흑암, 곧 사망으로서 사망에서 사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망으로 관통되어 있다....믿는이가 진실로 하나님의 거처가 되려면 주께서 보여 열어주시는 영적 관점에서 세상을 철저히 잘 알고 분별하여 세상적 요소가 남김없이 근절되도록 순종함이 있어야 한다....이를 위해 십자가 구원 믿음 인해 체험적으로 홍해와 요단강 건넘의 완전한 구원 체득이 필요하다.

==

[계시록의 7 대접 재앙...계16]

^1>땅의, 짐승의 표 받은 자 +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독종 발생(16:2)--->

^2>바닷물이 피가 됨(16:4)-->

^3>강과 샘<물 근원들>의 모든 물이 피가 됨(16:4) -->

^4>해의 열기로 사람들이 태움 받음(16:8) -->

^5>짐승의 나라에 흑암 임함(16:10)-->

^6>유브라데 강물 마름 + 아마겟돈 전쟁 위해 각나라의 군대 소집 위해 귀신의 영 동원됨(16:12) --> 

^7>공중의 대기, 곧 사탄의 권세 깨어짐(16:17)...*귀신의 영에 의한 궤계 무용케 됨 *지진으로 큰 성 바벨론이 완파되어 세 조각 남 + 만국의 성들도 무너짐 *큰 성 바벨론이 완전히 멸절되어 버림)

===

[바로(사탄 표상)의 Q말씀 거절과 흥정 5단계]....[말씀 Q]을 상대화 하여 타협을 시도함 그 자체가 <사탄적 체계로서의> 세상의 특징임

....*1)<사흘 길 광야로 나아가서 주님 경배하게 하라>는 Q 말씀의 절대적 준수 명령이자 요구 거절<=경멸> ==><흥정....상대화 함으로써>*2)애굽에서 드리라 ==>*3) 애굽에서 가까운 광야에서 드리라 ==>*4)남자만 가서 드리라 ==>*5)양떼와 짐승은 남겨두고 가라  ==>결국 장자의 죽음 재앙으로 이어짐..

------

[이것은 복음 전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반응 패턴들이다!!]....그러나 우리의 흥정이 끝날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우리의 지고지선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상황 위에 그분의 <끊어내심의> 능력을 행사하신다!!

.....마치 바로가 그러헸듯이 많은 이들이 <정말 아쉽게도, 그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바로(사탄)와의> 이 5가지 단계 흥정을 통해 [긍휼의 그릇됨 온전히 이룸의 구원의 길에서 곁길로 나아가 탈락하여] 사라져 버렸다....물론, 그들은 처음에 주님을 부인했으나 (단순한 지적동의에 그쳤을 수는 있으나, 어떻든 외견상으로 볼 때에는 분명히 말씀따라) 믿음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 그런 다음에는 믿기는 하지만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 남아 있기를 원했으며, 그 다음에는 기꺼이 애굽을 떠나려 했으나 너무 멀리는 가지 않으려 했고, 그 후에 무엇을 애굽에 남겨두느냐에 대한 협상이 뒤따랐다.(마6:21..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법이기에!!....바로가 우리의 부를 붙잡아 쥘 수 있다면...우리 아음은 그의 손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주 예수를 믿지만 그들은 그들의 <세상=애굽에서의>지위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믿으려 한다.(이 때, 우리의 죄 사함은 받을지 모르나 사탄의 학정으로부터 구출됨이 없는 바, 애굽에 남아 있음은 사탄의 학정 아래 남아 있음이다) --->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애굽으로부터 약간 움직이려 한다(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영리함을 자랑하고 그들이 지혜롭고 균형잡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그들은 극단주의적 금욕자들이 아님을 지적하기 좋아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세번 째, 네번 째, 혹은 다섯 번째의 흥정 단계에 있다. 사탄은 그들을 가게 할 지라도 어린 자들은 가지 못하게 한다.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에서 부와 물질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도 탈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의 침례는 홍해를 건넌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은 단지 그들에게 종교의 일부가 된 형식에 불과했다. 

....애굽에 임한 재앙은 심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굽인들과 이스라엘을 위한 참된 교과서로 제시되었음을 기억하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죄는 미워하나 <사탄을 위하는 사상과 가치, 삶의 모든 방향성을 오도-착각-속임 통해 사탄에게 매이게 하는 사탄적 체계인 바> 세상은 별로 미워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죄 짓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거스르는 것이지만((회개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항하는 것이요, 그분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의로움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는 것을 잊고 있는듯 하다!!((오직 심판-멸망밖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참되게 그 본성을 알고 파악하고 분별하여, 참되게 미워함이 진정 주님 원하시는 바임을 명심하라!!] <약4:4..*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You adulteresses, do you not know that friendship with the world is hostility toward God? Therefore whoever wishes to be a friend of the world makes himself an enemy of God.>

---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자유 의지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룸 통해서만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며, 그러므로 그 사람은 자신의 발휘한 바 자유 의지적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게 된다!!]

 

Q이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부터 이미 긍휼의 그릇으로 예비된 자로서 우리의 경험을 볼 때 Q께서 구원의 계기-시간표-계획을 짜셨고 <우리자신이 의지적으로 그분의 구원 안으로 들어가 하나됨을 원하고 결정하여> 자원함으로 그분이 베푸신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음을 말할 수 있으리라.. ((이것을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우리 자신을 겸비케 할 것이며, 자동적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하게 될 것이기에 이렇게 말씀드리게 된다....[주여 모든 것이 당신의 주권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할 지라도 나는 <마땅한> 나의 책임을 자원함으로써 완수해야 합니다].....우리의 책임을 다하려고 자원할 수록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었다는 표시가 더욱 강한 것이다)) 이 원칙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하나님은 모세가 바로와 충돌하기 전에 그분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리라 하셨다.(4:21)...즉, 하나님이 먼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나, 그 다음에는 그 자신의 자유 의지 발휘함을 통해 이 강퍅케 된 바를 실행함으로 스스로 나아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어떤 구절들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했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구절들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동일한 원칙으로 어떤 곳에서는 바로가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고 말하나(8:15, 19), 다른 곳에서는 바로의 마음이 강퍅했다고 말한다.(7:13)  마음을 강퍅케 하는 것<결심>과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것<실행>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바, 먼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함의 결과로 그의 마음이 강퍅케 된 것이다....즉 바로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기전에는 그의 마음이 부드럽게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대신에 오히려 강퍅케 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누구라도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지 전에는 그의 마음은 강퍅하지 않고 적어도 어느정도는 부드럽지만, 일단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기로 작정하면 그의 마음은 강퍅하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결코 주님에 대해 그 어떤 소극적인 것이 자라도록 허락하지 말라....이 소극적인 것이 일어나기 전에 그대에게는 여전히 두 가지 선택, 즉 Q을 위하는 것과 대항하는 것이 있게 된다.. 그러니, 일단 어떤 소극적인 것이 나오고 그대의 마음이 완강해지면 그대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선택, 다시 말해 Q을 배척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

Q은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강하고 고집스럽게) 하신 후에도 분명히 부드럽게 하실 수 있으셨으나, <그대로 내버려두심으로써....바로 마음에 대해 부드러워지도록 게재/간섭하시지 않으심으로써...그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도록 만들기를 거절하심으로써>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강퍅해지도록 만드셨고 그 결과는 영원히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믿는이마다 소극적인 그 어떤 것도 자라나지 않도록 주님의 주권 앞에 자신을 겸비케 하고 우리의 책임을 완수하면서 우리 마음을 지키는 것을 배워야 하리라.....소극적인 것들이 자라도록 방치한 자들, 그들 앞에 처음에는 여전히 두 가지 선택이 있었던 바, 그들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있었지만 일단 그들이 소극적인 선택을 하면 돌아서는 것이 결코 없었는데, 그 때부터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상태나 결과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처럼, 소극적인 어떤 것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결토 이러한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주 이름 불러서 그분께 아뢰어 교정 받으라....어떤 일을 한 후에 바꿀 것이라고 결토 말하지 말라.... 그대가 도중에 바꾸기를 갈망할 지라도 그대의 선택으로부터 난 결과는 당신이 바뀌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도 그러한 소극적인 상황을 바꾸려는 의도를 갖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또한, 바로에게 긍휼을 보이지 않으시고 바로 안에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바로를 스스로 서게 하셨던 것과 똑 같은 상태를 계속되게 하실지도 모른다...즉, 일단 그대 마음을 완강하게 했다면 당신의 마음은 강퍅하게 되어 <하나님이 그분이 하신 일을 바꾸기를 거절하신다면> 강퍅한 채로 있게 될 것이다.<그것은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한 일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잠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우리는 그분의 주권으로 인해 Q을 경배하며, 그분의 긍휼로 인해 감사하며, 우리의 <마땅한> 책임을 수행하고, 우리와 주님 사이에 그 어떤 소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Q의 은혜 안에서 바로 아닌 모세가 될 것이다. 우리는 바로와 같이 진노의 그릇들이 되지 않고 모세와 같이 긍휼과 존귀의 그릇들이 되도록 주님을 앙망할 필요가 있다. 

---

[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의 인내.....출9:15, 16...*15.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16. 내가 너를 (번번이 일으켜)세웠음은(살게 하였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15.For now I will stretch out my hand, that I may smite thee and thy people with pestilence; and thou shalt be cut off from the earth. *16. And in very deed for this cause have I raised thee up, for to shew in thee my power; and that my name may be declared throughout all the earth.....*15. For by now I could have put out My hand and struck you and your people with a pestilence, and you would then have been cut off (obliterated) from the earth. *16. But indeed for this very reason I have allowed you to live, in order to show you My power and in order that My name may be proclaimed throughout all the earth...]....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며(11:10),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멸절됨으로부터) 세우셨다....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기 때문에 바로는 주님의 다루심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바로는 혼자 그분을 대항해 설 만큼 강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세우신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의 어떠하심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알리고 그분의 이름을 온 땅에 선포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기에 바로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모세도 바로도 주님께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었다......아마도 바로야말로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하는데 있어서 <역사적으로>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주권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로서, 주권이란 절대적인 권리와 권위와 능력을 뜻한다. 주권적이신 분이신 하나님께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하나님은 사랑이심 곧, 긍휼이 충만하시며 친절과 용서가 풍성하심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동시에 분명히 바로 그 사랑의 하나님이 그분의 주권에 따라 <바로 그날에!!>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기 위해 오셨음도 기억해야 한다.

===

특별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약속된 장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세상에 속한 생활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그 사이에 있는 각종 재앙과 더불어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임을 반드시 참되고 올바르게 깨달을 필요가 있고. 바로 그 바탕 위에서 하나님의 이상<출애굽 통한 하나님의 거처 건축에 대한 이상>을 보고 추구할 필요가 있다.

.....세상 그 자체를 표상하는 애굽<곧 세상 왕 바로=사탄에 사로잡힌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멈추시고 애굽<세상>의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셨을 그 때, 애굽>에 임한 첫째 재앙은 물이 피가 됨<곧 [생명 낳는 근원으로 여겨졌던 그 물조차!!]사망이 그 본질임을 드러냈다>, 아홉째 재앙은 <일상 생활 영위가 전혀 불가능한 상태는 사망을 가져오므로.. 곧 사망을 나타내는> 흑암으로서 둘 다 사망을 상징하기에 사망에서 시작하여 결국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피와 어두움 사이에 개구리-이-파리(식물 손상)-악질-독종(가축-사람 손상)-우박-메뚜기(곡물 손상)가 있으며, 우박-메뚜기-흑암 재앙에서는 애굽과 관계된 우주의 기능들은 애굽을 덮고 있는 그 <영적>분위기가 더 이상 인간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긍휼로 인한> 순기능을 바꾸고 계시는 바, 그것은 사망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 마지막 귀결은 장자로 표상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적하는> 세상에 속한 모든 인간의 멸절 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갈1:4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현재의 이 악한 시대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려고 우리의 죄들을 위해 자신을 주셨고, 그러므로 완전한 구원은 유월절과 홍해를 건너는 것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으로부터 구속된 후 하나님은 그들을 호렙산으로 이끄셨으며 거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거처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하나님의 이동하는 거처로서 장막을 짓게 되며,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입성 후 약속된 땅을 싸워 정복한 뒤에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고 그 안에 비로소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고 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세상과 하나님의 거처에 대한 분명한 조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그룹의 재앙...] 햇빛-바람-비를 땅에 공급하는 하늘과 대기 천체<우주>를 망라함] 

....::: 비는 땅의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인데, 하나님은 그 기능을<자연 원칙 중 한가지를>바꾸셨음(출9:27.)..우박이 떨어질 때에 불이 대지 위에 함께 달렸다..더불어 섞이기까지 했었다(24절)...영적 체험에 적용시켜 본다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합당하다면 그분은 우리의 영 안의 정원을 촉촉히 적시고 우리의 갈증을 해결할 영적인 비를 보내실 것이나, 우리가 주님께 대해 완고하거나 거역적이라면 우리의 영 위에 우박과 함께 불을 보내심 통해 채소와 나무를 파과하심으로써, 곧  비의 영적인 기능을 바꾸심으로써 심각한 손상을 초래케 하실 것.

....:::바람이 정상적일 때<합당한 경우, 주님은 우리의 영의 산들바람이시다!!> 신선한 공기를 공굽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능을<자연 원칙 중 한가지를>바꾸셨음 : 비정상적일 때는 우박 재앙에 상하지 않은 남은 것을 <철저히, 자세하고도 상세하게 찾아내어> 먹어치워 황폐케 하는 메뚜기를 오게 한다. 

....:::햇빛, 곧 태양 빛의 기능을 바꾸심...하나님은 그 기능을<자연 원칙 중 한가지를>바꾸셨음...캄캄한 흑암이 3일동안 애굽 온 땅에 있었다(10ㅣ22)...바늘 구멍만한 틈도 없는 굉장한 어둠...생활의 모든 움직임을 중단시키는 어둠... 

--->그토록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 이르시는 말씀 청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하나님과 흥정 곧)) 모세에게 협상하려 듬....


===여덟째 재앙 : 메뚜기가 땅을 덮다

1.  [447.이세상끝날까지..내마음주께바치옵니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아마르...친근히 하나하나 풀어 설명하며 이해되도록 설복시키고 계심...먼저 모세가 충분히 잘 이해해야만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 가능하기에]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온천하만민이 주 하나님 이름과 그 능력을 참되게 알고 주로 주 되시게 함의 경외함 통해 그들의 후손 대대에 걸쳐 진정한 야타브의 특별 은총(은혜)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 출애굽기의 일 행하고 계심, 곧 출애굽의 목적을 드러내고 계심..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대언함도 아마르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아마르]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아마르..모든 소통의 말이나 충고도 아마르임]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아홉째 재앙 : 흑암이 땅에 있다

흑암이 있게 하라.....“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이 말씀을 원어 그대로 직역을 해 보면 “흑암이 더듬어 찾도록 만들 것이다.”(darkness will cause to grope)입니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더듬어서 길을 찾는 것처럼, 눈이 있어도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드는 흑암이라는 것...“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세가 순종하여 그 손을 내밀자 <고센 땅은 제외된!!.... 특별 은총의 차별적 은혜 적용으로> 애굽 땅 전역에 사는 이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만드는 흑암, 모두를 마치 시각장애인처럼 더듬거리게 만드는 흑암이 온 애굽 땅을 3일간 뒤덮게 된 것... 그래서 삼일 동안 서로 볼 수도 없고, 집에서 나와 길거리를 걷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요, 그러자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백성을 내 보내주겠다고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는 것.

....<창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이 표현은 창조 이전에는 온 세상이 100% 어둠으로 덮였었다는 것임..>.

....오병이어 사건과 뒤이어 칠병이어 사건을 본 제자들에게 <보고 듣고 깨달은 바를 붙들어 시너지 일으키는 상승하는> 이른바 주님 추구하는 생생한 믿음 발휘에는 아직 들어서지 못한 제자들을 보시며 일말의 아쉬움을 토로하시며 한탄조로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막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라 하셨음을 기억하자...[어두운 내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하소서..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빛을 찾게 하소서] ....흑암 재앙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동안 속임 당해서> 영적인 혼란 가운데 살아 왔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참된 신, 곧 알파요 오메가, 제한받지 않으시며 영존-자존-불변,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해주신 사건인 것.


21.  [440.어디든지예수나를이끌면. 366어두운내눈밝히사....빛되신주]○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바로가 약속 어겼기에 또 한번 경고 없이 재앙을 보내고 계심..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바로 이때 흑암 재앙 있은 후 바로가 모세를 불러들인 그날,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바를<마지막 장자 재앙에 대해!!> 바로에게 통보하고서 바로 앞을 나오고 있다

=======

출애굽기 10장 (개요)

본 장에는 애굽에 내린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재앙, 곧 메뚜기와 흑암 재앙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1. 메뚜기 재앙.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의 섭리의 놀라운 경륜의 의미를 가르치신다(1, 2).

   (2) 메뚜기 재앙에 대해 경고하신다(3-6).

   (3) 신하들의 설복으로 바로는 다시 모세와 담론한다(7-9). 그러나 협상은 결렬되고 만다(10, 11).

   (4) 메뚜기가 내습한다(12-15).

   (5) 바로는 자신이 범죄했음을 시인한다(16, 17). 모세의 기도로 재앙이 물러가나, 바로는 또다시 강퍅해진다(18-20).

2. 흑암 재앙.

   (1) 재앙이 내린다(21-23).

   (2) 바로는 다시 항복 의사를 밝히며 모세와 협상하나 완전히 결렬되고 만다(24 이하).

=======

메뚜기 재앙에 대한 경고(출 10:1-11)

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모세는 아마 두 가지 면, 바로의 고집과 하나님의 냉혹하심에 대해 매우 놀랐을 뿐만 아니라, 황폐해지는 애굽에 대해 동정을 금치 못했을 것이며, 또한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해방될 것이며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일러 주신다.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1, 2절). 

열 가지 재앙은 반드시 임해야 한다. 그들의 행적을 자자손손 후대까지 부인하지 못할 증거로 전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 부인하지 못할 증거란 무엇인가?

1.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곧 모든 피조물을 선하신 뜻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다. 그의 선하신 뜻에 따라 쓰이는 정의의 봉사자나 재난의 사자는 그의 권위에 대한 증거다.

2. 사탄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하시는 권능이다. 

즉 하나님은 악을 억제하고 당신과 당신의 교회의 적들의 오만불손함을 책벌하시는 권능을 갖고 계신다. 

이 재앙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교회의 행복, 그리고 죄악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영구적인 기념비들이며, 모든 후대의 자손들에게 “주를 노여워하시게”(고전 10:22) 하거나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투는”(사 45:9)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확고부동한 충고자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이들 교훈의 혜택은 그 재난이 준 희생과 능히 상쇄될 수 있다.

Ⅱ. 바로는 책망을 받았다(3절). 

가난하고 멸시받고 박해받는 히브리인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고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이니, 그들이 만일 그것을 거부한다면 곧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열왕들과 싸우신 이래로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벨사살 왕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지 않았고(단 5:22),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 앞에서 겸비치 아니했다(대하 36:12). 

자신을 낮추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법이다.

바로는 때로 겸비한 체했을 뿐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진실하지도 못하고 한결같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Ⅲ. 메뚜기 재앙에 대한 경고가 내려졌다(4-6절). 

우박이 땅 위의 초목을 꺾어 넘어지게 했는데, 이제 메뚜기들이 와서 그들을 삼키게 되었다. 

지난번 재앙의 벌레들은 지역이 한정되었으나, 이 메뚜기들은 애굽의 온 집을 버렸다. 이것은 이전의 재앙보다 더욱 지독한 것이었다. 

모세는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는 바로에게 전보다 더 만족할 만한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왔다”(6절).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고,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지시하셨다(막 6:11). 

여호와의 종들에게서 합당한 이유로 버림받는 자들은 멸망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삼상 15:27 이하).

Ⅳ. 바로의 수행원들, 즉 대신들과 비밀 보좌관 등은 모세와 협상할 것을 권유했다. 

그들은 바로에게 애굽 왕국의 비참한 상황(애굽이 망했다)을 보고하고,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자고(“그들을 가게 하라”) 충고했다. 

이 일이 성취될 때까지는 모세가 올가미를 씌울 것이며, 나중에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따르는 것보다는 처음에 동의해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들에게 무거운 돌이 되어 마침내 애굽의 왕들은 이들을 기꺼이 쫓아내고자 하는 것이다(슥 12:3). 

모든 국가가 왕들의 교만과 고집으로 인해 멸망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을 기억하자(가능하다면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즉 국민복지 제1원칙을 생각하자(Salus populi suprema lex).

Ⅴ. 새로운 협상이 바로와 모세 사이에 전개되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가서 희생을 드리는 것을 허락했으나, 누가 갈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온 가족과 전 소유물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9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세는 “우리가 제사를 드리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온 가족이 제사에 참여해야 하며 우리의 가축들은 제사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간청했다.

2. 바로는 모세의 간청을 결코 수락하지 않으려 했다. 

모세가 앞의 협상에서 한 번도 이런 조건을 요구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장정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다. 

“너희들이 구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냐”고 시치미를 뗐다. 이것은 “어린 것들을” 볼모로 잡아 둠으로써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자는 심산이었다(10, 11절).

바로는 크게 화를 내며 질책하고, 만일 이스라엘이 어린 것들을 데리고 가기를 고집한다면, 그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사탄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자녀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방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사탄은 유년 시절의 신앙이 자신의 왕국의 세력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어린 신앙인에게는 철천지원수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를 갈며 방해를 놓는 것이다. 자녀들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 방해가 사탄의 손길에 의한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3. 협상은 갑자기 결렬되고 말았다. 

전에는 바로 앞에서 자기 발로 걸어 나가던(6장) 모세와 아론이 이제는 쫓겨나게 되었다. 

자신의 임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곧 파멸의 운명이 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대하 25:16 참조). 

즉 하나님은 그가 그처럼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들을 어리석음에 버려두신다(Ouos Deus destruet eos dementat). 바로처럼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큰 어리석음에 빠졌던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

메뚜기 재앙(출 10:12-20)

Ⅰ. “하나님의 위대한 군대” 메뚜기 떼의 침입(욜 2:11).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을 펴라”고 명하셨다(12절). 말하자면 메뚜기 떼를 부르시기 위함이다(그들은 부를 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지팡이를 들었다”(13절). 

9장 22절과 비교해 보라. 모세가 지팡이를 뻗친 것은 자신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메뚜기 떼는 부름에 복종하여 동풍을 타고 날아왔고 “그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시 105:34, 35). 

아마 무서운 기병이나 보병도 이 곤충의 병력보다는 막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자가 누구인가?

Ⅱ. 메뚜기 떼는 황폐를 가져왔다. 

메뚜기들은 “온 지면에 덮여” 그 “열매를 다 먹었다.” 

땅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시 115:16)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들의 소유를 피폐케 할 수 있으며, 메뚜기와 황충으로 소유물을 빼앗아 낼 수도 있다. 

채소는 “사람의 소용을 위해”(시 104:14) 자라지만, 주께서 원하시면 하찮은 곤충들이 채소의 공동 소유인이 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약탈하여 빵을 없애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소모되고 없어져 버릴, 먹고 사는 일을 위해서만 수고할 것이 아니라 침해받지도 부패하지도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것들을 위해 수고하자(요 6:27).

Ⅲ. 바로가 승낙했다(16, 17절).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 버리면서(11절) 아마 다시는 너희들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시 그들을 급히 불러, 전에 그들을 쫓아내면서 경멸했던 만큼 예의 있고 친절하게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

조언하는 자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책망을 무시하던 자는, 언젠가는 그들에게 혜택을 바라고 자신의 행동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주목하자.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그들의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간청했다(마 25:8).

1. 바로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범죄하였노라.” 

그는 지금 이제껏 하나님과 그의 사자들에게 가했던 경멸과 반항은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좀 후회하는 것같이 보인다. 

주의 종들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욕하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낮추실 때는, 자신들을 돌이키게 되고 그 일이 양심의 무거운 짐이 되고 말 것이다.

혹자는 바로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한 말은 결국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힘센 대적으로 생각하여 그와 싸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충성을 다해 순종해야 마땅한 저들의 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참회자들은 하나님, 곧 자신들이 감사드려야 하는 하나님께 저지른 죄를 통회한다.

2. 바로는 참회자들이 마땅히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용서를 빌지 않고, 자신을 보다 쉽게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한 모세에게 용서를 구했다. 

실제로 특수한 임무로 인해 모세는 “바로에게 신”이 되었으므로 “그가 뉘 죄든지 사하면”(요 20:23)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구했을 때는, 그가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는 약속이나 그에 대한 어떤 특별한 언질조차 주기 싫어하는 듯했다.

거짓 참회는 대개 막연한 약속으로 사람을 속이고,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유념하자.

3.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빌었다. 

불행에 빠져 다른 사람의 기도의 도움은 간청하면서도 자신은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갖지 못한 자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조차 느끼지 못한 자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바로는 “죄”가 아니라 단지 “죽음”이 자신을 떠나도록 기도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완악한 자신의 마음보다 메뚜기 재앙만 없어지기를 탄원했다.

Ⅳ. 모세의 기도로 재앙이 물러갔다(18, 19절).

1. 그것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보여 주는 한 본보기다. 

동풍이 메뚜기 떼를 몰고 왔으나, 이제는 서풍이 다시 몰아가 버렸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며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바람이 임의로 분다”(요 3:8)는 것은 우리가 바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천하에 퍼치신다.

2. 그것은 모세의 권위에 대한 위대한 증거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의 사명과 특권에 대한 확고부동한 인준이었다(사 45:7). 

모세의 요청에 따라 심판이 임했으며 이제는 기도하여 재앙이 물러감으로써, 그는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인들의 호감도 얻게 되었다. 

그는 재앙의 날을 경고하면서도 결코 그 재앙의 날이 임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세의 사명은 분명 애굽인들의 의사에는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중보 기도는 애굽인들을 위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된 좋은 이유이기도 했다.

3. 이것은 심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회개에 대한 강경한 요청이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고 자비를 빨리 나타내신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회의 고백을 하고 겸손의 기미를 보이면,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번번이 그랬던 것처럼 심판을 돌이키시거나 아합의 경우처럼 심판을 연기해 주신다. 

그러니 우리가 회개에 충실하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게 은혜를 베풀 것이며, 참된 회개자들을 얼마나 반가이 맞이할 것인가! 

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리라!

Ⅴ. 바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겠다는 불경한 결심을 했다(20절).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손이 그에게 미쳐 마음이 완악해지고, 고집이 세졌기 때문이다. 종종 양심의 가책을 짓밟아 버리고 또 끝까지 그것에 저항하는 자들은 양심의 가책이 줄 혜택을 상실할 것이며(양심의 가책이 아무리 강해도), 양심의 가책보다 훨씬 더 강력한 마음의 정욕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

흑암 재앙(출 10:21-29)

Ⅰ. 흑암 재앙이 애굽을 뒤덮었다. 

그것은 가장 두려운 재앙이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내린 재앙들 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편에는 열 재앙 중 첫 번째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시 105:28). 

또한 그것은 “짐승의 보좌”(계 16:10)에 쏟아진 다섯 번째 대접에서 생긴 애굽의 영적 멸망이었던 것이다. “그 나라가 곧 어두워졌다.” 이 재앙에 관해 자세히 관찰해 보자.

1. 그것은 철저한 어두움이었다. 

하늘의 모든 빛이 구름으로 가려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불과 등불이 습기나 칙칙한 수증기에 의해 꺼져 흑암이 발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23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서로 볼 수 없었다.”

불빛이 비추지 않을 것이요, 비록 그들은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라”는 부름을 받지만(사 50:11)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둡게 되리라”는 것이 악인들에게 경고된 것이다(욥 18:5, 6). 지옥은 철저한 암흑이다.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리라”(계 18:23).

2. 그것은 “더듬을 만한” 흑암이었다(21절). 

(안개가 너무 짙어서) 손가락 끝으로 원인을 감촉할 수 있을 정도며, 눈으로 그 결과를 감지할 수 있었으므로 안개 때문에 눈은 몹시 쓰리고 문지르면 더욱 심하게 아팠을 것이라고 혹자는 생각한다. 흑암 때문에 큰 고통이 온다고 하는 요한계시록 16장 10절의 말씀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3. 그것은 분명히 그들을 놀라게 하고 공포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 땅을 어둡게 했던” 구름 떼 같은 메뚜기 떼도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이 흑암 중에 악령이 출몰하여 소름끼치는 소리와 웅성대는 소리가 나 그들이 공포에 떨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더 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시편 78편 49절의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라는 말씀은(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이런 언급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재앙을 두고 한 말이라고 혹자는 생각한다. 악마의 속임을 받은 자들은 마침내 악마에게 공포를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4. 흑암이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홀(Hall) 주교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이 흑암의 사슬에 갇혀 있었으며, 가장 밝던 궁전도 토굴 같은 감옥으로 변했다고 했다. 

아무도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23절). 그들은 모두 집에 갇혀 있었다. 

무서운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으므로, 감히 의자에서 침대로 혹은 침대에서 의자로 왕래할 수 있는 용기조차 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흑암 중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삼상 2:9). 이제 바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적인 어두움은 영적인 속박인 것이다. 

사탄은 인간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수족을 묶어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도 없게 하며, 하늘을 향해 나아갈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어둠 가운데 앉아” 있을 뿐이다.

5.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런 식으로 처벌한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바로와 그의 백성들은 모세가 그들에게 전한 하나님 말씀의 빛을 배신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흑암으로 벌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빛보다는 흑암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들 마음의 어두움이 이런 대기의 흑암을 가져온 것이다. 바로의 마음처럼 그렇게 어두웠던 마음은 일찍이 없었으며, 그 때 애굽의 흑암처럼 그렇게 캄캄한 대기도 결코 없었다.

애굽인들은 잔악함으로 이스라엘의 등불을 꺼 버렸고 그들의 숯불을 꺼 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인들에게 불빛을 꺼 버렸던 것은 당연한 처사다. 이것을 소돔 사람이 받은 벌과 비교해 보라(창 19:11).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자. 단 사흘 동안의 암흑이 그처럼 가공할 것이었다면 영원한 어두움은 오죽하랴!

6. 그러나 같은 시각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23절).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부분 사는 고센 땅뿐만 아니라 애굽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주지에도 빛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후일 애굽인과 구별하기 위해 그들의 문설주에 표를 했다는 점에서 밝혀진다(12:7).

(1)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는 실례다. 

자연의 일상적인 능력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의 실증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의 과정을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연 과정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것을 우리에게는 보류하실 수도 있으며 두드러지게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나 의로운 자에게 똑같이 해를 비춰 주시나, 그것을 다르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지 않고 내리시는 자비의 은혜를 받고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2)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총의 실증이다. 

다른 사람들이 “캄캄한 흑암”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빛 가운데서 행했던”(요일 1:7) 것이다. 

비록 어두운 세상이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으니, 

그 곳은 “빛의 자녀”가 있는 곳이요, “빛을 뿌려 주시고”(시 97:11), “돋는 해가 위로부터 임한다”(눅 1:7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인을 이렇게 구별하신다면, 애굽의 가장 화려한 궁전보다 이스라엘의 가장 초라한 오두막을 더 좋아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눈에 띄지는 않아도 저주받은 악인의 집과 축복받은 의인의 집에는 뚜렷한 구별이 있는 것이다(잠 3:33). 

우리는 이런 구별이 있음을 믿고, 이에 따라 우리 자신을 삼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어둡게 하시니 그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시 105:28)라는 말씀에 근거하면, 흑암의 사흘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다가올 유월절 축제에 대비해 할례를 받았던 것이요, 그들은 그 명령의 말씀을 어기지 않은 것이라고 혹자는 추론한다. 

또 가나안에 들어갈 때 받은 할례는 그들의 다음 세대가 받은 할례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수 5:2).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애굽인들에게 내린 흑암의 사흘 동안 이스라엘은 바로의 승낙 없이 빛 가운데에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성급히 도망치기를 원치 않으셨고(사 52:12) 오직 “그의 위대한 손으로”(KJV에는 “with an high hand”로 되어 있음) 그들을 인도해 내시기를 원하셨다.

Ⅱ. 바로는 흑암 재앙에서도 이전의 재앙의 때와 같은 감명을 받았다.

1. 이 재앙은 바로로 하여금 모세와 아론을 불러 새로운 협상을 하게 했다. 

마침내 바로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희생을 드리러 가도 좋다고 했다. 다만 그들의 가축만은 담보물로 남겨 두기를 원했다(24절). 

사람들은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 한다. 

그들은 죄는 버리려 하나, 모든 죄에서 완전히 떠나겠다고 하지 않으며, 잠시 동안은 죄악에서 떠나려 하나 영원히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모시려 하나 세상과 욕정도 함께 모시려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요,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 

모세는 바로의 조건에 누그러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라고 했다(26절). 

화해의 조건은 변동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아무리 그것을 변경시키려 해도 바꿀 수도 낮출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 두자.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욕심의 조건을 채워 줄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항상 다음 원칙에 의해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들이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는 것이다(렘 15:19). 

모세는 왜 그들의 생축과 같이 가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말했다. 

희생을 드리기 위해 생축을 갖고 가야 하며, 어떤 종류의 희생을 드려야 될지, 얼마만큼 드려야 할지 수를 모르니,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과 자녀와 세상의 모든 소유물도 하나님의 사업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쓰실지, 또한 우리가 무엇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명령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바로는 격노하여 갑자기 회담을 파기하고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는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했던 것이다(28절). 바로는 진노하여 모세를 쫓아냈고, 죽음으로 위협하면서 다시는 궁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지금껏 강가에서 모세를 만났던 것과 같은 그런 식으로는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모세에게는 금지되었다.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그러나 이 얼마나 허튼소리인가! 모세가 자기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그에게 재앙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번번이 자신을 치료해 주고 또 재앙을 없애 주는 의사처럼 모세를 부른 사실을 잊었다는 것인가? 이제는 모세가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그와 같이 강한 힘으로 무장해 있고, 또 이제까지 번번이 자비를 구하던 모세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악의다! 마음이 완악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계명을 업신여기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모세는 그에게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다(29절). 그러나 아직은 회담이 완전히 결렬된 것이 아니었다(11:8). 

모세는 “화를 내며” 나가면서, 바로는 곧 마음이 변할 것이고 교만한 마음은 꺾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실현되었다(12:31). 

또한 그 때 바로는 모세에게 “부디” 떠나 달라고 간청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던 것이다. 

이 면담이 있은 후 모세는 바로가 와달라고 사람을 보내기 전에는 바로 앞에 나가지 않았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낼 때, 하나님은 그들을 미혹 속에 빠지게 버려두시며,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정도에 따라 그들을 징벌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거라사 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떠나 주기를 원했을 때에, 그리스도는 즉시 그들을 떠나셨다.

===

===

======

10장: 메뚜기 재앙과 흑암 재앙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신다. 악인들의 악한 마음까지도 그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신 목적은 그의 표징(오스 )[표]을 그들 중에 보이시기 위함이었고 또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그들의 아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그것이 그들의 구원과 영생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3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불순종이 그의 겸비치 않음 즉 마음의 교만때문이라고 지적하셨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며 오직 겸손한 자만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할 것이다.

[4-6절]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들에 너희를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비와 네 조상이 세상에 있어 옴으로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로 메뚜기 재앙을 선언하셨다. 이것은 여덟째 재앙 곧 메뚜기 재앙이다.

[7절]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고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올무]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애굽 왕 바로보다 그의 신하들의 마음속에 먼저 깨달음이 생겼다. 그들은 애굽이 거의 망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고,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다.

[8-11절]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뇨? 모세가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바로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우양은 두고]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의 또 하나의 타협안이었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달랐고 모세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12-15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인지라.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머물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기후 변화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문명국가라도 폭설이나 폭우나 폭풍 등의 자연 재해를 막지 못한다. 메뚜기는 애굽 온 땅에 와서 그 사방에 머물므로 그 해가 심했다. 이런 메뚜기 떼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메뚜기는 온 지면에 덮여 날므로 땅이 어둡게 되었고, 애굽 전역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을 먹음으로써 남은 것이 없었다. 메뚜기 재앙은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었다.

[16-20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 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그 무서운 재앙 앞에서 바로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인정하였다. 모세는 바로에게서 나가 여호와께 구했고 여호와께서는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셨고 애굽 온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하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

[21-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이것은 아홉 번째 재앙 곧 흑암 재앙이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자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의 온 땅에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고센 땅에는 빛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과 고센 땅을 구별하셨다.

[24-26절]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이것은 바로의 마지막 타협안이다. 그것은 재물을 두고 사람들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모든 소유물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27-29절]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메뚜기와 흑암의 재앙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셨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다. 우리는 사시고 참되신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죄만 짓다가 지옥 불못에 던지우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알고 의와 선을 행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는 바로처럼 마음이 완고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할 것이지만, 그의 은혜를 받은 자는 겸손하게 되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바로의 타협안들은 모세와 아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뿐 아니라 아내들과 자녀들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소들과 양들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온 가족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우리의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 이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
===주 영광 보기를 사모함... 임마누엘 주 임재 동행의 완전한 은혜를 간구함!!
[출33]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님의 은총은 다름 아닌 주님의 친밀한 동행....함께 계신 임마누엘 주 임재 영광, 그 안에 머물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이끄심 받도록 하심으로써!!]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더 나아가 주 뜻하신 그대로!!]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나와 주의 백성 이스라엘]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KJV
6.  And the children of Israel stripped themselves of their ornaments by the mount Horeb.
7.  And Moses took the tabernacle, and pitched it without the camp, afar off from the camp, and called it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And it came to pass, that every one which sought the LORD went out unto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hich was without the camp.
8.  And it came to pass, when Moses went out unto the tabernacle, that all the people rose up, and stood every man at his tent door, and looked after Moses, until he was gone into the tabernacle.
9.  And it came to pass, as Moses entered into the tabernacle, the cloudy pillar descended, and stood at the door of the tabernacle, and the Lord talked with Moses.
10.  And all the people saw the cloudy pillar stand at the tabernacle door: and all the people rose up and worshipped, every man in his tent door.
11.  And the LORD spake unto Moses face to face, as a man speaketh unto his friend. And he turned again into the camp: but his servant Joshua, the son of Nun, a young man, departed not out of the tabernacle.
12.  And Moses said unto the LORD, See, thou sayest unto me, Bring up this people: and thou hast not let me know whom thou wilt send with me. Yet thou hast said, I know thee by name, and thou hast also found grace in my sight.
13.  Now therefore, I pray thee, if I have found grace in thy sight, show me now thy way, that I may know thee, that I may find grace in thy sight: and consider that this nation is thy people.
14.  And he said, My presence shall go with thee, and I will give thee rest.
15.  And he said unto him, If thy presence go not with me, carry us not up hence.
16.  For wherein shall it be known here that I and thy people have found grace in thy sight? is it not in that thou goest with us? so shall we be separated, I and thy people, from all the people that are upon the face of the earth.
17.  And the LORD said unto Moses, I will do this thing also that thou hast spoken: for thou hast found grace in my sight, and I know thee by name.
18.  And he said, I beseech thee, show me thy glory.
19.  And he said, I will make all my goodness pass before thee, and I will proclaim the name of the LORD before thee; and will be gracious to whom I will be gracious, and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
20.  And he said, Thou canst not see my face: for there shall no man see me, and live.
21.  And the LORD said, Behold, there is a place by me, and thou shalt stand upon a rock:
2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ile my glory passeth by, that I will put thee in a cleft of the rock, and will cover thee with my hand while I pass by:
23.  And I will take away mine hand, and thou shalt see my back parts: but my face shall not be seen.
------NASB
6.  So the sons of Israel stripped themselves of their ornaments from Mount Horeb [onward.]
7.  Now Moses used to take the tent and pitch it outside the camp, a good distance from the camp, and he called it the tent of meeting. And it came about, that everyone who sought the LORD would go out to the tent of meeting which was outside the camp.
8.  And it came about, whenever Moses went out to the tent, that all the people would arise and stand, each at the entrance of his tent, and gaze after Moses until he entered the tent.
9.  And it came about, whenever Moses entered the tent, the pillar of cloud would descend and stand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nd the LORD would speak with Moses.
10.  When all the people saw the pillar of cloud standing at the entrance of the tent, all the people would arise and worship, each at the entrance of his tent.
11.  Thus the LORD used to speak to Moses face to face, just as a man speaks to his friend. When Moses returned to the camp, his servant Joshua, the son of Nun, a young man, would not depart from the tent.
12.  Then Moses said to the LORD, "See, Thou dost say to me, 'Bring up this people!' But Thou Thyself hast not let me know whom Thou wilt send with me. Moreover, Thou hast said, 'I have known you by name, and yo
이전글 : 출9. 바로를 세우신 분의 목적. 주의 거룩하심=언약에 신실하심
다음글 : 출11.장자 죽음 재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