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일3..하나님의 자녀의 마땅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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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요일3장 ...[288.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286.주예수님 내맘에 오사] [287.예수앞에 나오면] [289.주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후]


@@요일3장은, JC 믿는이마다, 죄의 몸<육신..마귀가 죄를 통해 부패-타락시킨 죄된 본성 가진, 잘못/허물/범죄 가능성이 있는 몸, [이미, 그러나 아직!! 아들화 되지 않은 몸...몸의 <아들화>는 구주 재림때에 완성될 것]>이로되, [영 안에서 거듭난,]Q 생명 받은 <낳으신 바 친자녀>자녀로 거듭남, 곧 놀랍고도 신성한 출생, 온 우주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을 특히 강조하고 있음....이 신성한 거듭남<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을 통해 영원 생명(요일1:2)이자 신성한 생명을 신성한 씨로서(요일3:9) 영접했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모든 풍성이 우리 안에서부터 자라나오게 되고, TUQ 안에 거함 통해 일상생활에서 <의도적으로> 죄짓는 것을 거절하게 되고(요일3:9), 의를 실행하며(요일2:29), 형제 사랑을 실행하게 되며(요일5:4), 세상을 이기면서(5:4),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5:18), <살아 생동하는 믿음 발휘함으로>주 안에 거함의 신성한 생명을 살게 되었다....이 사실은 주께서 주신 영[TUQ의 최종 완성이신 그 영]에 의해 우리 영 안에 그분이 거하심을 알게 된다(요일3:24).... 이제, 그분은 또한 말씀을 먹고 마시며 음미하며 깨달아 그 안의 요소들로 우리를 성장성숙케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그분 자신과 말씀으로, TUQ의 임재로 믿는이를 적셔 주시는 바, 우리 전존재가 <과정을 거치신>그분의 어떠하심으로 인해 충만히 적셔지게 되고, 그 결과 그분의 표현, 그분의 의의 표현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자녀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아버지가 아들을 이땅에 보내심은 믿는이들을 자녀로 낳기 위한 것이기에, Q의 사랑은 낳는 사랑이요 특히 아버지 안에 있는 사랑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자녀란 부모를 닮는 것이 당연함..그 생명 그대로 판박이 될 바]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비밀한 출생 통해 믿는 우리를 Q자녀로 낳으신 아버지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재림 구주] 나타나시면 우리가 [성품의 어떠함<성의진선-곧 어가페 사랑>, 모양, 형상, 그 모든 면에 있어서 생명 충만, 성숙의 완전함이신  JC 닮도록 인도하고 계신 바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투명하게 깨닫고]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JC 어떠하심 그대로, 점흠티주름 없는, 성의진선의 완전함]과 같이 자기를 [늘 성령의 조명아래 자기영혼 상태를 점검해 봄으로써 JC께 합당하지 못한 것마다 자백하고 십자가보혈로 씻김 받아]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육을 따라 죄를 작동시키는 =죄를 실행하는 = 범죄하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아노미 :: 위법, 지고지선 Q 누림의 법/규준 위반/거스름]이라

5.  그가 우리 죄를[=죄와 죄들을]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그리스도 안에는, 본성 안의 죄로서]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습관적-고의적으로, 육을 따라]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그를 보았고 안다 함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말씀하신 그대로 참으로 그러하심을 깨달음/자각 통해 얻고 따르며 감동/열락 체험/누림, 그 안에서 행함의 산 지식 소유함을 의미.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내주하사 그 충만 감동으로 늘 비추고 살아 움직이시는 기름부음 따름으로써, Q의 어떠하심 그대로 주께 합당하게 진실하게 살아감이 의의 삶인 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육을 따라 죄를 작동시키는 =죄를 실행하는 = 범죄하는]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마귀의 소유가 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내주하시는 그 영의 기름부음<곧 Q의 어떠하심 그자체의 능하심인 바, 생명 흐름>에 주목하여 따름으로써, 습관적-의도적으로 깨어 있어 영을 분별하며, 육을 따르기를 대적-거절함으로써]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생명 모본 JC]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습관적-고의적으로 육을 따라]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 신성한 생명<씨>와 신성한 영은 Q자녀인 믿는이마다 당장 사용가능한 기본 능력 요소[자본]으로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의<그분의 행함>와 신성한 사랑<그분의 어떠하심>을 실행 +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이김]을 가능케 함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이 판단 기준은 신성한 거듭남에 의한 생명과 본성 존재 여부에 달린 문제임] 무릇 의를[말씀하시는 Q 어떠하심 일치하여 따름]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Q께로부터 출생한, 참되게 믿는이마다 주관적으로 체험 가능한, 내주하시는 TUQ 그리스도의 영, 기름부음, 그 비추며 인도하며 공급하시는 참생명 능력의 움직이심 따라]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신성한 생명<씨>와 신성한 영은 Q자녀인 믿는이마다 당장 사용가능한 기본 능력 요소[자본]으로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의<그분의 행함>와 신성한 사랑<그분의 어떠하심>을 실행 +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이김]을 가능케 함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성의진선의 JC의 영의 감동따라..  [389.내게로 오라하신주님의]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육에 속한 상태에서는 결코 할 수 없으나, 영의 기름부음을 따름으로써 모본이신 JC 따름 이루는 바]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 선악지식의 나무에서 생명나무에로 옮겨졌음(요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미워함은 실지로는 살인을 실행함인 것을 명심하라, Q 자녀된 우리로서 [마땅히] 실행하는 바 사랑의 범위는 [JC께서 그리 하셨듯이] 형제된 이 뿐 아니라 심지어 [세상이 우리를 참되게 알지 못함이기에]우리를 멸시하는 자, 박해하며 잔멸하려는 자까지도 당연히 포함하여야 함을 잊지말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은혜가, 빛으로부터 진리가 샘솟아 나오게 됨으로써]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오직 일편단심, 일심의 믿음 견지함으로써]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 결코 스스로 자포자기 말라..동시에 늘 깨어 있어서 참과 거짓 사이에서 생명 선택하기를 연습하라..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모든 믿는이의 몸마다 죄의 몸, 옛창조에 속한 몸이며, <비록 주께서 시탄의 머리를 깨뜨리셨기에 사탄은 분명히 무장해제되었으나 그 죄된 본성이 여전히 몸안에 거하기에(이 문제는 부활의 몸 입히심 받게 될 때 완전히 해결될 것) 때때로 죄 범할 가능성이 있으나, 그 어색함과 불편함, 속상함을 자각할 때마다 즉시 주께 자복하고 토설함으로써 보혈로 씻김 받아 처리해 버리도록 하라..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때때로, 잘 납득되지 않는 바]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JC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JC이름과 JC십자가-대속의 보혈 통해 바라보고 품어주고 계심]....오늘 매순간순간을 주 안에서 살도록 하라...모든 것마다 다 알지 못하며, 유한한 인생이기에, 어떤 거리낌의 <편하지 못한> 불분명한 느낌이 지속된다 해도 결코 <결벽주의적>태도로 함부로 스스로 정죄함의 태도를 취하지 말고, 오직 주 이름 부르며 주께 아뢰어 진솔하게 올려드리고 <오히려 전적으로 주를 신뢰함으로써> <주께서 친히 그 정체를 밝히 드러내 주시리니, 주 앙망하며 기다리기를 배우라>  

**[가책이 있든 없든 지고지선의 주님을 신뢰하라.., 그 어떤 괴로움이나 거리낌이 있음을 내적으로 느낀다면 , 오직 그대 마음의 지향이 주를 향하게 하고, 주 이름 부름으로써 일편단심으로 기다리도록 하라...주 임재 앞에 <굳센 믿음으로!!> 머물러 있다면 조만간 분명하게, 조명해 주시리니, 그분의 인도를 기다리고 따라 처리하도록 하라!! ]

***종종 실생활 중에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 바, [믿는 이라도 살인할 수 있는가, 살인을 저질러도 영원 생명이 그 안에 거하고 있는가]라고 <일반화 하여> 누군가가 묻거나, 그런 생각이 들어 오는 경우, 결코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여겨서 억지로 대답하려고 욕심내지 말라....긍정도 부정도 할 수도 없고, 섣부르게 단정하려 해서도 안되고, 오히려 [마귀야, 내게 이것을 묻지 말라.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내 하나님께 네가 직접 물어보거라, 나는 이런 것을 모르며 이런 것 때문에 시달리기를 원치 않는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그러나, 마귀야, 나는 거듭났고 내 안에 신성한 생명이 있음을 알며, 신성한 본성을 누리고 있으며 내 안에 살아계시는 신성한 영이신 바로 그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 나는 네 질문에 대답하기를 원치 않는다. 내게서 떠나라]라고 말하기를 배우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마음의 요동-거리낌-혼돈==>평강 없음  ::: 교통 끊김 ==>양심이 Q앞에서 조사 통해 자백하게 함, 보혈로 씻김 통해 , 양심에 책망할 것이 없음 = 교통 회복의 평강/평온과 담대함 얻음 **마음의 4대요소(양심<대표>-생각-감정-의지)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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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요일3장

===하나님의 자녀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 모습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누구나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4.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6.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그를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7.  어린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습니다.

8.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서 생겨났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9.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10.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

11.  ○이것은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인데,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는 가인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가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14.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우리는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요,

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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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hn 3 Amplified Bible
Children of God Love One Another 3 
1. See what an incredible quality of love the Father has shown to us, that we would [be permitted to] be named and called and counted the children of God! And so we are! For this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because it did not know Him. 
2 Beloved, we are [even here and] now children of God, and it is not yet made clear what we will be [after His coming]. We know that when He comes and is revealed, we will [as His children] be like Him, because we will see Him just as He is [in all His glory]. 
3 And everyone who has this hope [confidently placed] in Him purifies himself, just as He is pure (holy, undefiled, guiltless).
4 Everyone who practices sin also practices lawlessness; and sin is lawlessness [ignoring God’s law by action or neglect or by tolerating wrongdoing—being unrestrained by His commands and His will]. 
5 You know that He appeared [in visible form as a man] in order to take away sins; and in Him there is [absolutely] no sin [for He has neither the sin nature nor has He committed sin or acts worthy of blame]. 
6 No one who abides in Him [who remains united in fellowship with Him—deliberately, knowingly, and habitually] practices sin. No one who habitually sins has seen Him or known Him. 
7 Little children (believers, dear ones), do not let anyone lead you astray. The one who practices righteousness [the one who strives to live a consistently honorable life—in private as well as in public—and to conform to God’s precepts] is righteous, just as He is righteous. 
8 The one who practices sin [separating himself from God, and offending Him by acts of disobedience, indifference, or rebellion] is of the devil [and takes his inner character and moral values from him, not God]; for the devil has sinned and violated God’s law from the beginning. The Son of God appeared for this purpose, to destroy the works of the devil.
9 No one who is born of God [deliberately, knowingly, and habitually] practices sin, because [a]God’s seed [His principle of life, the essence of His righteous character] remains [permanently] in him [who is born again—who is reborn from above—spiritually transformed, renewed, and set apart for His purpose]; and he [who is born again] cannot habitually [live a life characterized by] sin, because he is born of God and longs to please Him. 
10 By this the children of God and the children of the devil are clearly identified: anyone who does not practice righteousness [who does not seek God’s will in thought, action, and purpose] is not of God, nor is the one who does not [unselfishly] [b]love his [believing] brother.
11 For this is the message which you [believers]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of your relationship with Christ], that we should [unselfishly] love and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12 and not be like Cain, who was of the evil one and murdered his brother [Abel]. And why did he murder him? Because Cain’s deeds were evil, and his brother’s were righteous.
13 Do not be surprised, believers, if the world hates you. 
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because we love the brothers and sisters. He who does not love remains in [spiritual] death. 
15 Everyone who hates (works against) his brother [in Christ] is [at heart] a murderer [by God’s standards];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abiding in him. 
16 By this we know [and have come to understand the depth and essence of His precious] love: that He [willingly] laid down His life for us [because He loved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the believers. 
17 But whoever has the [c]world’s goods (adequate resource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but has no compassion for him, how does the love of God live in him? 
18 Little children (believers, dear ones), let us not love [merely in theory] with word or with tongue [giving lip service to compassion], but in action and in truth [in practice and in sincerity, because practical acts of love are more than words]. 
19 By this we will know [without any doubt] that we are of the truth, and will assure our heart and quiet our conscience before Him 
20 whenever our heart convicts us [in guilt];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He knows all things [nothing is hidden from Him because we are in His hands]. 
21 Beloved, if our heart does not convict us [of guilt], we have confidence [complete assurance and boldness] before God; 
22 and we receive from Him whatever we ask because we [carefully and consistently] keep His commandments and do the things that are pleasing in His sight [habitually seeking to follow His plan for us].
23 This is His commandment, that we believe [with personal faith and confident trust]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that we unselfishly] love and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just as He commanded us. 
24 The one who habitually keeps His commandments [obeying His word and following His precepts, abides and] remains in Him, and He in him. By this we know and have the proof that He [really] abides in us, by the Spirit whom He has given us [as a gift].
Footnotes
1 John 3:9 I.e. in human terms, God’s seed is like a divine “genetic code” which is passed on to His children and produces in them the desire to live in a way which pleases Him.
1 John 3:10 See note 2:10.
1 John 3:17 Lit livelihood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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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개요)

아들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1,2), 성결함(3)과 죄(4-12)에 대한 언급.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굳세게 할 방법(13-22). 믿음에 대한 교훈(23). 순종의 미덕(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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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삼으심(요일 3:1-3)

그리스도에게서 나고 이로써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의 권위를 보여 준 사도 요한은 여기에서 또 다음과 같은 찬양과 칭찬을 보여주고 있다.

Ⅰ. 놀라운 축복의 샘인 은총을 찬양하고 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주셨는가?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아들로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불러 형제로 삼았고,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였다. 

본성적으로 죄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으며, 사실에 있어서 불의와 불순종 그리고 배은망덕한 자식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또한 아들이라 일컬어질 수 있게 된 것은 영원한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 때문이 아닌가! 

거룩하신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며 또한 우리를 그의 아들이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Ⅱ. 믿는 자들이 받는 존귀함은 세상 사람들의 인식밖에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말한다. 불신자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하고 있다"(1절).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기쁨과 행복을 모른다. 

JC의 제자들은 이 세상과 이 세대의 일반적인 재난을 겪고 있다. 다른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 임한다. 오히려 그들은 더 큰 슬픔을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불신 세상은 보는 대로 행하며, 그리스도인들의 권위와 특권,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기쁨과 명예로운 이름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은 이 가난하고 비천하며 경멸을 당하는 자들이 장차 하늘에서 사랑받을 자들이며, 머지 않아 하늘에서 길이 거하게 된 자들임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그다지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주님도 그들 이상으로 몰라주는 가운데 살았는데 "이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1절). 

하나님의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번 거하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를 세상은 알지 못했다. 

유대 세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과 한 혈통을 이어받았고 그들의 땅에 거하였음을 알지 못했다. 

JC가 백성에게 왔으나 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그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못박지 않았을 것이다"(고전 2:8).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알아주지 않는 나그네의 땅에 거하며 또한 그들의 주님이 세상 앞에 그렇게 취급을 받고 계시는 이상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야 마땅하다.

Ⅲ. 다음으로 사도 요한은 그들의 위엄과 권위에 대한 확실한 계시를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그들의 영광스러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러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자이므로 너희는 우리에게도 사랑스러운 자들이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이다"(2절). 

우리는 중생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얻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심으로 귀한 이름과 능력 그리고 아들의 기업을 차지할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영광은 모든 성도의 것이다."

1. 부자지간에 나타날 축복에 대한 계시는 나타나 있지 않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다"(2절). 

아들과 양자로 삼으심에 대한 영광은 내세의 것으로 미루어졌고 또한 미래를 위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영광에 관한 설명은 지금 여기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아니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또한 소망으로 살아야 한다.

2. 적당한 위엄과 특권의 신분 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실 때 나타나게 된다. 

즉 그가 나타나시게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알게 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만일"이라고 번역되는 바 전치사 ‘에안’(ejavn)-즉 때라는 말로 생각될 수 있다. 즉 그 이유는 전치사 ‘임’(!ai) 히브리어로 휘트비(Whitby) 박사가 말하는 대로 "때"로 번역해야 한다. 때때로 ejavn은 o{tan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어느 구절에서는, 더구나 여기에서는 o{tan으로 읽혀지는 바 "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 3절의 경우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예비하게 된다면)이란 말은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한 다음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또는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도록 너희를 이끌리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적합할 것이다.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교회의 머리, JC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의 지체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며, 또한 아버지와 함께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주 예수의 계시를 믿음과 소망 그리고 진실한 기대 속에 기다려야 한다. 

피조물들도 완전해지기를 기다리며 "피조물의 기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임과 같이 그들은 기다려야 한다"(롬 8:19).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의 하나님과 동일한 점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즉 영광과 권능과 존귀에 있어서 "그들은 그와 동일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더러운 몸은 JC의 영광된 몸과 같이 될 것이다. [HS 곧 영광의 영, 주의 영으로 인해 영화롭게 될 것..[고후3: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갈5:22, 23]*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출 34:6, 7]*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시103:8, 9] *8.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들은 생명과 빛 그리고 [거룩함의]축복으로 충만 되어질 것이다. 그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그들도 그와 함께 영광에 임하게 될 것이다"(골 3:4). 

그들에 대한 그들의 동일함의 확인은 그를 본 것, 그리고 그를 볼것으로부터 언급되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다." 

그들의 동일함은 그를 보게 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진실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보는 것처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하늘에 있는 그들과 같이 그의 계신 그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악한 자는 그의 찌푸린 얼굴과 위엄에 대한 공포, 그리고 무서운 복수를 감행하려는 모습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동일함은 하늘에 복있는 자처럼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를 보게 됨은 그들이 그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취할 수 있는 동일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를 받게 된다.

Ⅳ. 다음으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이루시는 성결함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3절).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께서 거룩하시고 깨끗하심을 안다. 그는 어떠한 죄나 불결함도 용납할 수 없는 보다 정결한 마음과 눈을 가지고 계신다. 

그와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세상과 육신, 그리고 죄로부터 그의 지고한 순결성을 탐구하고 추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곧 그들은 은혜와 성결함에 있어서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주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명령하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새로운 성품이 이렇게 하도록 이끌며 그들의 하늘에 대한 소망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며,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대제사장이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며, 정결하심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하나님과 아버지가 귀하고 거룩하신 분임과 모든 사귐은 순수하고 거룩하며, 그들의 유업은 빛나는 성도의 것임을 안다. 

그것은 죄와 더러움에 치우쳐 있는 소망과는 상반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결케 된 것처럼, 또한 소망으로 말미암아 성결케 되어야 한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소망에 대해 성결해져야 한다. 

더러운 욕망과 정욕에 만족을 주도록 허락하는 것은 위선자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소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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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의 표시(요일 3:4-10)

하늘의 소망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사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신자들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할 것을 강조한 다음 사도 요한은 죄에 대한 격렬한 논증과 어두움에 대한 불결하고 열매가 없는 일들에 대한 모든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Ⅰ. 그는 죄의 본성과 그 죄의 본질적인 악성에 대해 추론하고 있다. 죄는 거룩한 율법에 대해 상반되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또는 죄를 짓는 자마다 흉악한 죄를 범하는 것이며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나니) 그 이유는 죄는 불법이며 무법한 것이기 때문이다"(4절). 

죄란 세상을 선하게 통치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으며, 인간에게 온전한 성품과 기쁨과 평안의 길을 보여주며, 거룩한 품성과 정결함의 표상인 율법과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를 범하는 것은 [마음과 영혼의 생각과 언행심사를 주께 합당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말씀 곧 내적인]거룩한 율법과 권위를 저버리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Ⅱ. 이 세상에 주 예수께서 오신 목적과 의도는 죄를 없이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5절). 

그는 무서운 형벌과 율법의 저주 아래 자신을 복종시키며 고난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거룩한 율법을 입증하고 완성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며 그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죄를 사하시며 우리 안에 새로운 성품을 이룩함으로(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정결케 될 수 있으므로) 죄가 없으신 자신의 모범을 따라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위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바라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최상의 정결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와의 교제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이 무엇임을 알고 또한 이를 숙고해야 한다. 즉 그가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다. 

곧 너희가 아는 대로(지식은 깊고 실제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고자 오신 것이다.

Ⅲ. 사도 요한은 죄와 주 그리스도와의 사이에는 크나큰 분수령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6절). 

여기에서 죄를 짓는다는 말은 죄를 범한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8,9절). 그리고 죄를 범한다는 것은 죄를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행치 않게 된다. 

주 예수와의 생명적인 연합이 심령과 성품 안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린 것과 같이 인간의 삶과 행위에 있어서 죄의 통치와 만연을 방지한다. 

여기에서 부정적인 표현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즉 죄를 짓지 않는 자는 순종하며 신실하고 올바르게 그의 생활에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일들을 행한다"(22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와 함께 그들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들이며 결과적으로 죄를 경계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강한 빛과 그의 지식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들은(죄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며(그리스도께 대한 건전한 복음적인 식견이 그의 마음속에 박혀 있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를 알지도 못하며, 그에 대한 아무런 경험적인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죄에 대한 실제적인 부정은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 계속적인 관계와 구원의 지식에 대한 크나큰 확증이 된다.

Ⅳ. 사도는 죄의 행함과 의로운 상태는 모순된 것임을 암시하면서, 의를 행함과 의로운 상태에 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이에 반대되는 것을 추리함은 크나큰 속임수이다.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라. 너희의 새로운 빛과 기독교를 수락함을 찬양하며 너희의 지식, 신앙 고백, 그리고 세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관심과 성실함으로부터 면제함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는 일에 경계하라. 의를 행하는 자만이 의로운 자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마태복음 5장 1절의 말씀대로 성서중 몇 군데서 나타난 바 의로움만이 정당하게 신앙으로 간주되어질 수 있는데, 의를 행함은 믿음을 위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 "의를 위하여, 신앙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라는 말씀이라든가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씀 가운데도 교육한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의미하고 있다. 

다음으로 의를 행함은 죄를 행하며 범하는 것과는 특별히 반대적인 면에 놓이게 된다. 즉 신앙적인 것을 행하는 자는 의로운 자다. 

그는 어느 점으로 보든지 의로운 자다. 그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며 올바른 자다. 

신앙의 실천은 하나의 통일과 양심의 원칙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자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에서 나타난 바 죄의 용서와 의로운 삶에서 이룩되는 의를 소유한다. 

또한 그의 강림하심을 바라는 자들에게 이룩하신 그의 언약과 약속에 따라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는 의의 면류관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얼마간 의로와 졌으므로 거룩한 법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현재에 그리스도와 함께 비교적 의로와진 상태에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다.

Ⅴ. 사도는 죄인과 마귀의 관계를 언급하고, 마귀에 대한 주 그리스도의 의도와 사명을 말하고 있다.

1. 우선 죄인과 마귀의 관계를 알아보자. 

다른 곳에서 죄인들과 성도들을 구분하는 것처럼(비록 성도들도 넓은 의미에서 죄인이라고 불려지지만) 여기서도 "죄를 행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로 간주된다. 그의 죄된 성품은 마귀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또한 마귀와 뜻을 같이 하고 그를 기쁘게 한다. 그는 마귀와 그 일당의 유익을 도모하며 그 왕국에 속해 있다. 

죄의 주동자와 후원자와 시행자, 바로 마귀가 인간을 태초로부터 죄로 이르는 유혹자이다. 여기에서 사도가 언급한 바를 알아보자.

2. 주 그리스도의 목적과 사명은 마귀를 반대하고 멸하려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다"(8절). 

마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멸하려고 계획하며 힘썼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를 대항하여 거룩한 싸움을 싸웠다. 

그는 마귀를 정복하고 섬멸키 위하여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는 죄를 완전히 파멸시킬 때까지 죄를 흩어 약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따르거나 탐닉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음을 잊지 말자.

Ⅵ. 사도는 죄의 재기와 폐기를 논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은 내적으로 새로워짐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품의 거룩한 통일성과 방향을 회복하게 만들었을 의미한다. 

"죄를 짖지 아니하는 자"는 그의 새로운 성품과 영에 대해 상반되고 불의나 불순종을 행하지 아니한다. 

사도 요한이 첨가해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빛과 능력으로 거하기 때문이다(베드로전서 1장 23절의 말씀대로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하신 말씀과 같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즉 배자(胚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거룩함의 원리가 그 안에 있다. 새롭게 하는 은혜는 하나의 살아있는 원리다. 

종교는 그 기원에 있어서 하나의 기술이 아니었으며 습득된 기교나 기술이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본성이다. 

바로 그러하기에 새로운 인류, 거듭난 사람,  regenerated person,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죄된 행위를 저지를 수 없다는 말은 현명한 해석자에게는 난해한 것으로 취급된다. 

죄를 고백함이 우리의 의무로 나타난 1장 9절의 말씀과는 [어찌 보면]상반되는 것이다. 그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특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는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사도가 말한 바 "저가 범죄치 못한다"는 견해에서 볼 때 분명히 "죄를 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죄의 길을 따라 죄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성도라든가 하나님의 종과는 정반대 되는 죄인이라 명명할 만큼의 죄는 지을 수 없다. 

또한 그는 비교적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이전 상태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죄를 지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금지 내지는 배제되어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1. 그의 마음에 있는 빛은 죄의 불의함과 악한 죄성을 밝히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2. 그의 심령 속에는 그로 하여금 죄를 질색, 증오하고 미워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

3. 죄악된 행위의 힘과 견고성을 파괴할 만한 근원적인 영적 원리 또는 원동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영적 원리는 다른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의한 절대적인 능력에서 비롯되거나 또는 마음과 영혼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죄악된 행위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영은 육체를 거스린다." 그러므로 죄에 관해서는 "이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서 중에는 인간의 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데, 다만 마음과 영혼의 경향과 구조는 죄와 대치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4. 죄를 지었을 경우 죄에 대한 수치심과 후회하는 감정이 있게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범죄할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본성적 또는 도덕적 인간의 무능함을 깨닫게 된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종교적으로 선한 일을 수행할 수 없다. 

한편 중생한 사람이 범죄할 수 없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죄지을 수 있는 능력에 억제와 금지(흔히 우리가 말할 수 있듯이)가 가해진다. 

이러한 억제와 금지는 그로 하여금 죄에 대해 은밀하게 또는 사려 깊게 거스리도록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흠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을 일컬어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농담을 하지 않으며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며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란 말씀이 있다. 

분명히 죄된 생활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자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Ⅶ.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식별하고 있다. 그들은 객기 특히 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게 된다"(10절). 

(고전적인 식별 방법에 의하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손과 뱀의 자손이 있다. 뱀의 자손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1. 신앙에 대한 태만으로 뱀의 자손임을 드러낸다. 

"의를 행치 않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등한히 하며 무관심 하는 자, 즉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로움이나 혹은 하나님께 그의 의무를 시행하는 것인데 누구든지 이를 의식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요," 반대로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마귀는 불의한 자 또는 불신앙인들의 아비다.

2.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함으로 그들이 밤의 자손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또한 그리스도로 인해 사랑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고, 경멸하며, 증오하고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그들 속에 아직도 뱀의 본성을 머물게 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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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1)(요일 3:11-13)

Ⅰ. 사도 요한은 마귀의 자녀의 표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로써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사랑의 탁월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실제적 기독교의 기본적 원리를 이루고 있는) 소식 (사명 또는 책임)이니라"(11절). 

우리는 주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귀히 알고 결과적으로 그 사랑의 대상인 모두를 사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

Ⅱ. 사도는 이러한 사랑에 상반되며 형제를 미워하는 모든 악의와 가인의 행위를 저버리도록 하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가인의 시기심과 악의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필히 배제되어야 한다.

1. 가인은 최초의 뱀의 자손임을 보여주었다. 

최초의 인간의 맏아들인 그는 악한 자편에 있었다. 그는 마귀를 따르고 그를 본받은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2. 그의 악의는 제지를 받지 하니했다. 

곧 그의 악의는 인간이 지구상에 가장 희소할 때 최초로 형제간의 살인을 계획하고 성취하도록 했다. "가인은 그의 아우를 죽였다"(12절). 

제멋대로 행해지는 죄는 한계를 모른다.

3. 악의가 그 안에 마귀를 이끌어드림으로써 그의 아우를 죽이게 했다. 

가인은 보다 우월한 제사를 드린 아벨에 대해 분노를 발했으며, 하나님과의 우호 관계에 있는 아벨을 시기했다. 이로써 그는 형제를 살해했다.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12절). 

악의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러러보며 모방해야 한 것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도록 자극한다.

Ⅲ. 선한 사람이 푸대접을 받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13절). 

뱀의 성품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다. 즉 거대한 뱀이 마치 하나님처럼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연인의 후손인 당신들을 뱀이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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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2)(요일 3:14-19)

사랑하는 사도 요한은 비로소 거룩한 사랑에 대해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그는 마치 물에 뛰어드는 자처럼 강렬한 논증을 전개하며 사랑의 실천을 힘있게 강조하고 있다.

Ⅰ. 사랑은 복음적인 칭의(justification)와 생명의 상태로 옮기었다는 표시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14절)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식이요 죽음의 상속자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아(복음은 계약 또는 약속을 뜻한다.) 우리의 상태는 내세를 지향하도록 변화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었고 사망의 죄의 법에서 생명의 법으로 옮기었다. 이러한 변화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요 3:36). 

우리는 지금 놀라운 상태로 변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 간 줄을 알거니와"(14절)라고 하신 말씀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된 상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확신과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표시로 생각할 수 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일반 종교에 있어서 파당을 이룩하는데 대한 열심이나 자기와 동일한 교파에 속한 자들이나 자신의 감정에 맞는 자들을 위한 애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 여기에서 말하는 형제애는 인류를 위한 일반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의 기독교적인 사랑의 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한 인류 사회 안에서의 보편적인 범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인간은 원칙적으로 사랑을 받아야 한다.

(1) 첫째,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탁월한 걸작이요,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놀라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인자에 대한 심판을 가하시는 이유는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이다"(창 9:6).

(2)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the Gens human)는 타락한 천사와 구원받은 백성과 구분되어 있는 하나의 존재 또는 구세주가 계획하고 준비했으며, 그들에게 부여한 바를 지니고 있는 존재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한 이 세상은 마땅히 우리들에 의하여 사랑을 받아야 한다. 

이 사랑은 부르심을 입지 못한 어두운 세상의 중생과 구원을 위한 간절한 간구와 기도와 사도로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내 마음의 소원과 기대는 그들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사랑은 원수에 대한 모든 의무적인 사랑을 포함한다.

2.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에 의하여 구원받고 의로와졌으며 성화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로의 지체서의 신앙적 공동체와 일반 교회 더 나아가서 교회의 머리(그리스도)를 위한 각별한 사랑을 내포한다. 

이 사랑은 특별히 인격적인 사귐과 피차간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일반적인 교회의 성도들에 대해 행해지며 작용한다. 

성도들은 그들을 사랑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스스로가 이룩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들 안에 와 그들을 위해 이루어진 사랑의 가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룩되는 결과이며 이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과정의 표가 된다.

Ⅱ. 반대로 형제를 미워함은 죽음의 상태와 사형 선고 아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4절). 

그는 아직도 율법의 저주와 형벌 아래 있다. 이 사실을 사도는 명확한 삼단논법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 줄을 알아야 한다"(15절). 

한편 14절의 표현대로 "사랑치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자요, 그의 형제로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 

즉 사람에 대한 미워함이 더하는 것만큼 이는 생명과 복지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며 자연적으로 생명과 복지의 종식을 바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가인은 그의 아우를 미워함으로 종국에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미움은 불쌍한 형제에 대한 연민의 정을 막아 버리며 이로써 그들에게 죽음의 슬픔을 안겨 준다. 

형제를 미워함은 어느 때든지 그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추한 평판과 비난을 가하며 종국에는 핍박과 무력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자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적 경향과 악하고 맹렬한 정욕을 알고 있으며 한편 하나님의 거룩한 법의 온전함을 알고 있는 자는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놀랠 필요가 없다. 

마음의 기분과 성향에 따라 살인을 행하는 자는 그 안에 영생이 거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자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롬 6:6).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이 말씀은 의를 말씀하신 구세주에 의해 주어지는 영생의 내적인 원리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다는 말은(14절) 상대적 변화를 의미함이 아니라 중생으로 이룩된 실제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14절에 언급된 "사망에 거하느니라" 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바 영적인 죽음 안에서의 존속 또는 부패된 본성 안에 거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이나 생명으로 옮겨지는 일은 인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씻김을 받는 것은 죄의 부도덕성과 그 힘으로부터 씻김을 받는 것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이상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은 영생의 내적인 원리를 소유하거나 혹은 소유하지 못함에 따라 증명되거나 혹은 반증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Ⅲ.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모범적인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6절). 

위대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놓았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씀이 하나님이시었고, 그가 우리를 위해 육신이 되셨다"고 선포하는 한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이 말씀이신 하나님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 자신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다. 생명을 취하시고 또한 우리를 위해 그 생명을 내어주셨다. 여기에 그 자신의 보혈로 하나님의 교회를 지속하실 거룩한 사랑에 대한 겸손과 이적과 신비가 있다. 

하나님이 이처럼 지극히 사랑하신 그들을 우리도 사랑함이 마땅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들은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Ⅳ. 강렬한 사랑의 모범과 그 사랑의 동기를 제시한 사도 요한은 이러한 기독교의 사랑의 성격과 열매는 어떤 것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1. 그 사랑은 교회를 위해 우리로 하여금 죽기까지 고난을 자처하게 하는 최고도의 열렬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라는 말씀과 같이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진흥을 위해 우리보다 더욱 봉사적인 자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우리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마땅하다(16절).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4).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자제하는 생활을 해야 할까! 

초연한 생활을 좀더 나은 생활을 하도록 얼마나 준비해야 하며, 또한 어떻게 좀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2. 그 다음으로 형제들의 궁핍에 대해 동정적이며, 인색하지 않으며 친절해야 한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도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7절). 

부요한 사람들의 자비와 사랑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자비와 사정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형제들이 가난을 자처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믿는 형제들로 하여금 가난한 성도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세상의 재물을 쓰게 하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세상의 재물을 소유한 자들은 좀더 하나님과 그들의 선량한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재물을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형제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곧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는 곳에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참 사랑도 없다.

3. 나는 다음절에서 최하위의 사랑을 암시하려 하였으나 사도 요한은 이 마지막 말만으로, 자선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낮은 사랑임을 암시함으로 나의 의도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또 다른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 모든 것에 진실하고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절). 

칭찬과 아첨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이루지 못하며 거룩한 애정의 신실한 표현과 사랑의 봉사와 수고만이 그리스도인을 이루게 한다.

Ⅴ. 이러한 사랑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들의 신실성을 증명해 주며 우리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부여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19절). 

믿음 안에서 우리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은 없다. 견고한 자리에 이른 자들은 하나님께 대해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세상의 비난과 책망을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호소하게 된다. 

기독교의 진리와 완전에 대한 지식에 이르며 또한 내적인 평안을 얻는 길은 피차간 사랑에 얽히어 믿음의 형제에게 사랑의 수고를 베푸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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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증거(요일 3:20-22)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확증과 진실한 신앙의 특권이 있음을 암시한 다음 사도 요한은 계속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Ⅰ. 양심의 심판과 그 권위를 말하고 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20절).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혼과 기질 그리고 행위를 알 수 있으며 이로써 하나님 앞에 우리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며 분별할 수 있는 고상한 최상의 능력이다. 이것은 양심, 혹은 도덕적 자아 의식의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은 증인과 심판자 또는 재판을 수행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한편 이 능력은 비판과 변호도 하며 정죄와 심판도 한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능력이 주어진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며, 섬세하게 심층부 다시 말해서 인간의 내면과 비밀한 사건들을 탐색하는 하나님의 등불이요, 하나님에 의해 밝혀지는 발광체이다(잠 20:27). 양심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판을 수행하고 하나님을 대행하는 역할을 행한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벧전 3:21).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우리 믿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의 마음 보다 크시고 능력과 판단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과 양심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일까 보냐?" 그러므로 법정의 결의와 판단은 곧 하나님의 결의와 판단이시다.

1. 만일 양심이 우리를 책망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책망할 것이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비교할 수 있겠는가?"(20절)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보다 더 훌륭한 증인이요, 우리들에 대해 양심보다 더 많은 것을 아신다. 그는 양심보다 더 위대한 재판장이시다. 

그는 최고의 재판장이므로 그의 판단은 정당한 것이며, 마침내 온전하게 수행될 것이다. 

이런 점은 "나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 다른 사도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한다. 

"나는 나의 직무와 사명에 있어서 어떠한 간교도 의식하지 못하며 불성실함도 인정하지 못한다. 이로써 나는 의롭지 못하다. 내가 서며 넘어지는 일도 내 양심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내 양심의 정당성 혹은 의로운 판결로 당신과 나 사이의 논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럴 경우 당신은 양심의 판결에 호소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 양심의 결정에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가장 온전하게 결정적으로) 판단하실 이는 당신과 내가 끝까지 따라 가야 할 주님뿐이시다"(고전 4:4).

2. 만일 양심이 우리를 무죄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 내리실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21절), 이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하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를 죄없다 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주제넘은 사람들은 "나는 심판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하리라. 나의 마음은 나를 정죄하지 아니하므로 또한 하나님도 나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라고 확신한다"고 할 것이다.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경건하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나의 마음과 양심은 나를 책망하오나 나는 진정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야만 합니까?"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은 법관의 판결 같은 것으로써 헤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즉 무지와 오류, 편견, 편파, 그리고 선입관은 재판석의 재판관이나 그의 수행원(마치 마음과 기호, 정열, 성격, 기질 혹은 혼돈된 두뇌 같은 것)과 거짓된 판결을 내리는 배심원의 과오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오는 재판관 즉 자기 의식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양심(쉬네이데시스, 4893)의 과오가 아니다. 무지와 실수의 행위는 자기 의식의 행위가 아니라 모종의 오류를 범하게 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양심의 판정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본질과 과정에 따라 이룩된다. 

그러므로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호소하며 열심히 주의를 집중하자.

Ⅱ.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향한 선량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특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하늘과 하늘의 보좌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간구는 하늘에 상달된다. 즉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는다"(22절). 

간구하는 자들은 보좌의 존귀와 영광 또는 그들 자신이 의도한 영적 선물에 위배되는 것은 구하지도 않으며 구하려는 의도도 전혀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구한 바 선한 것들을 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들은 그에 대해 합당한 것이며 그들의 자격과 실천력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이 구한 바 좋은 것들을 받게 되리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22절). 

순종의 사람들은 축복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응답의 약속을 받고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자신을 기쁘게 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시 64:18; 잠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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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의 준수(요일 3:23-24)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들의 의무로써 계명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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