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8장
==하나님의 확실한 인정, -로 여기다 reckon, consider, set down....헬라어[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 히브리어[하샤브]
[롬4:1-5...*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마귀는 오늘도 계속 정죄감을 심어 주려고 한다.. 죄책감에 묶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셨던 보혈의 은혜보다 자신의 죄가 더 커보이도록 영적인 눈을 가리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의 감격 죄사함의 기쁨 하나님의 자녀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들려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는 훨씬 더 크다.. 그 은혜 안에는 죄로 인한 정죄가 없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의롭다고 칭해 주셨다.. 그런데도 마귀는 아니라고 한다.. 잘못믿고 있다고 조롱한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인해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며> 칭해 주셨다.. 이는 참된 영적인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완성해 주셨던 사랑의 법칙이니..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주시며 천국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여기다"를 뜻하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 신중하게 결정내리다 확정하다 결론을 내리다 생각하다 추정하다 = 그렇게 이미 획득한 것으로서 그것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계좌에 현금 이체 해 둔 것처럼!! 네가 찾아서 필요한 데에 적절하게 쓰라...있음에도 마치 없는 것처럼 사장시키지 말고 필요한데 쓰라!!. = 생생하게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주님 그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적용하여 친히 깨닫게 하사 이끌며 동행하실 바 그 다음 행보로 나아가 믿음의 그 능력을 체득하라)는 의미... 그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오류도 없는 확실하게 결론 내리는 것을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라고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를 자주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고 의롭다고 칭해 주시며 자녀로 삼으시는 은혜에 대해서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를 사용했다... 더 이상의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 중의 진리인 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 ////: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롭다 여겨주시는 로기조마이의 은혜.////
[롬 4:18-25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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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하샤브) ...생각하다, 계획하다, 간주하다, 판단을 내리다, 계산하다
.....하샤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생각하다, 계획하다, 평가하다, 간주하다, 판단을 내리다, 계산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개념은 사고 활동에 있어서의 정신의 일이다. 이 단어는 '이해력' 보다는 새로운 사상의 창조를 언급한다.
(a) 하샤브는 '계획하다, 고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 관련하여 사용되며, 이것은 칼형과 피엘형 모두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은 형제에 대하여 악을 '도모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슥 7:10).
단 한 구절, 창 50:20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 언급되어 있으며, 여기서 요셉은 이 단어를 두 번 사용한다: 즉 그의 형제들이 일찍이 그를 대할 때 악을 '의도하였지만'('계획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을 위하여 '의도하셨다'('계획하셨다').
(b) 하샤브는 '판단을 내리다' make a judgment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 역시 사람과 하나님을 언급하여 사용되며 칼형과 히필형으로 나타난다. 잘 알려진 구절, 사 53:4에서 이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는 생각하기를(판단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매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판단하사)..."라고 욥이 외치는 욥 33:10에서 하나님께서 주어로 나온다. 니팔형은 단순히 칼형의 수동태이다.
(c) 하샤브는 드물게 단순히 '마음으로 생각하다', '숙고하다' meditate(칼형과 피엘형)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말라기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에 대하여 칭송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다윗이,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심'에 대하여 인간의 정체를 고려해 볼 때 놀라움을 나타내는 곳에서(시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피엘형이 사용되었다(의미상 어떤 뚜렷한 구별은 없음).
(d) 하샤브는 '~의 탓으로 돌리다, 전가하다, 간주하다, 여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사실상 '판단하다'의 특수한 의미이다.
이 의미로는 칼형으로 3회, 니팔형으로 3회 나오며, 후자는 단순히 수동형이다. 이것도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한 후에, 죄를 자신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다윗에게 간청한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삼하 19:19).
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하나님께서 '(죄 따위를) 돌린다'고 언급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돌리셨다' imputed)(창 15:6, 롬 4:3).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죄를 '돌리지' 않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시 32:2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롬 4:8).
(e) 하샤브는 '발명하다', '창안하다' to invent이며, 칼형으로만 사용된다.
이것은 장막의 우두머리 건축자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은 브살렐과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금과 은과 놋을 이용하여 공교한 것들을 '고안해 내는' devising('발명하는' inventing) 그의 일의 일부를 묘사한다(출 31:4, 출 35:25, 출 35:35). 유다 왕 웃시야는 영리한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 기계를 '발명케 하여' 예루살렘에 배치해 두었다(대하 26:15).
(f) 하샤브는 '계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피엘형으로만).
이 단어는, 노령의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시대에 성전 수리를 행하였을 때, 일하는 자들이 정직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돈(은)을 사업계획과 연관시켜 일하는 자들과 함께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모세 율법에서 다가오는 희년에 비추어 소유지와 산물의 변동 가격을 계산하는데 필요한 '계산' accounting에 관하여 몇 회 사용되었다(레 25:27, 레 25:50, 레 25:52, 레 27:18, 레 27:23).
(g) 단 한번 나오는 힛트파엘의 용례는 단순히 두 번째 지적한 '판단하다'라는 의미의 재귀적인 용법이다(민 23:9).
===바울이 (환상 중 나타나신 주님 말씀 인해 아덴에서의 실패느낌/눌림에서 회복됨)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고린도는 코린트 문화 양식에서 보듯이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어느 시대, 어느 곳보다도 성적 타락과 부도덕, 곧 퇴폐와 향락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물론 현 시대의 어떠함은 당시 고린도나 에베소 보다 더한 것도 사실이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생업 위해 + 그리스도를 나누기 위해)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성령의 백성]○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빌립보-데살로니가-베뢰아 교회로부터 보내준 선교 헌금을 가지고 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생계 위한 천막 만들기를 중단하고 날마다 온종일)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Q 말씀에 붙잡혀(헬라어 '쉬네코'(συνέχω) : Q경륜 이루실 바!!, 열어 부어주시는 Q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열어드림+동시에 그 말씀 주시는 Q 온전히 붙잡아 하나 됨 --전존재를 이끄심의 말씀에 맡겨드림으로써 그분을/그분의 길 따라 좇아감)...보혈-말씀-성령과 생명공동체에 (기쁨으로!!) 강권함 받아들여 붙잡힘의 "수동태"의 "빠져들어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됨"의 축복이여(-주부적 관상에서 보듯)...주께서 말씀하시게 하라... 바울은 동시에 상호붙잡힘contemplation을 강조하는바, 주님께 빠져들라: 연합한 하나, 주와 합한 한 영됨 [고후6:17.."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
.....'강권하다'의 헬라어 '쉬네코'(συνέχω)란 단어의 어원은 σύν (쉰)과 ἔχω (에코=오이코스, 집-가정, 오이코노미아는 경륜)란 단어의 합성어.... '쉰'은 전치사로 '함께'(with)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에코'는 동사로 '가지다, 붙들다, 강권하다"....수동태이니 "말씀에 붙잡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여기서 ‘강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쉬네코’인데, 이는 ‘통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쉬네코’를 ‘control’로 번역한다.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고린도후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고후 5장17절에 나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의 체계를 따라 산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 새로운 피조물은 사람을 죽이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성령으로 산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5절)....사도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인데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아덴에서의 실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아덴 사역이 왜 실패하였던가? 아덴에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했지만, 그러나 아덴의 학문적 풍토를 의식한 탓으로 지나치게 자신의 지식과 헬라철학을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덴에서의 전도를 통해 '전도란 사람의 말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전에도 바울에게 이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덴 사역 이전까지 그것은 이론적인 이해였다. 그는 어느 정도, 사람의 설득력이나 지혜, 또는 언변이 복음의 결실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덴 전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내리는 결단에 자신의 언변이나 지식, 지혜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일으키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에 이르러서는 전혀 자신의 지혜를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을 전했다.
사도 바울은 이때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고린도전서 2:1-5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것은 그가 진정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을 신뢰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창11:20-르우는삼십이세에 스룩을 낳고]--스룩의 뜻은 ‘(칭칭 감는)넝쿨, 매우 단단한 힘’..... 이것은 세상과 분리되고 하나님과 관계를 개선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의 영혼을 담장의 넝쿨처럼 칭칭 감아 함께 얽히게 함으로써 세상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분리의 역사가 가능케 된다(요 15:7). 성도가 제 힘과 의지로는 세상과 분리될 수 없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해지며(딤전 4:5), 그 위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은혜로 부어질 때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 성도를 붙잡으시는 ‘매우 단단한 힘’이다.
고린도후서 5:14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강권하시는도다”라는 단어의 난하주를 보면 ‘끄는도다’라고 해석되어 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강권하시는도다”는 헬라어로 ‘쉬네코’이다. 이 단어는 ‘단단히 붙잡다, 사방에서 소를 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아서, 목자가 소를 몰듯이 주님이 우리를 몰아 전진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인 것이다(롬 8:30). 하나님의 사랑의 고집은 세상의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꽉 붙잡고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복음전파라는 그 어려운 성역을 쉽게 걸어갈 수 있었다. 오직 한 분, 그에게 사랑을 쏟아 주시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그분에게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전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온 몸 바쳐 끝까지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가진 재산, 가진 명예, 가진 지식도 모두 내려놓았다. 예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이 바울에게는 배설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빌 3:8). 그 사랑이 너무도 강하여 로마에서 생명까지 기쁨으로 바쳤던 것이니,,, 그렇다. 참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세상-롓자아-죄성/육신과 분리 , 곧 서로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힘"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지니... 그러면 분리의 아픔, 분리로 인한 고난, 분리로 인한 인간적 손해가 아무리 엄청날지라도 아까운 것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려서 살 때는 분리의 길이 순교의 길이라 해도 기쁨으로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리라.
........[마13:10-17...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말씀을 사모하며 성령 앙망하는))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피스튜오의 사람마다, 파라람바노 자각하라..상호 사로잡힘의 하나됨/생명 교통 공급..카타람바노 이루라..그분의 충만에 이르도록!!..그분을 디오코 하라/그분의 길 따라 좇으라))빌3:12..내가 이미 얻었다(람바노..얻다/획득하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텔레이오오..완성/성취하다) 함도 아니라.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카타람바노)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카타람바노) 달려가노라(디오코.[헬>디오코...) 뒤쫓다/run after, 추적/추구하다 pursue, 박해하다 persecute]....주께서 지혜와 계시 말씀으로 열어보여 주심 통해 [길-진리-생명-빛-은혜] 깨달아 알아채도록 하신바, 너무나 엄청나고 커서 도저히 감당못할만큼 큰 구속의 은혜와 그분의 말씀에 전존재가 사로잡혀 주와 합한 영으로 하나되어 말씀의 그 능력으로 살며, 게다가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엄습하는 파도처럼 그러나 잔잔히, 늘 충만하여 넘쳐나도록 끊이지 않고 공급해 주시는, 쏟아지는 폭포수나 소낙비 같은, 불러내신 그분의 뜻 이룸 위한 충만한 은혜 늘 새로이 부어주시는 주 성령님을, 오늘 지금!!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 전적으로 의지하며 붙듦으로써 (이 세상에 보내신) 그분이 뜻하신 목적 그대로 그분 빼어닮아가며, 맡기신 사명 끝까지 완수하고자 함..
...[요1:5, 9-14...*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0 절: 알다..--(히)야다(알다)--라아/하자(보다)--샤마(듣다)..(헬)기노스코..시각적 경험으로 지각하여 인식하다/알아차리다--확인/확증하다/낳다--이해/해석/판단/결정하다
---11절의 ‘영접하다’ = παραλαμβανω(파라람바노).. '옆에' παρα(파라) +'람바노'(받다) = (믿음으로써) 아래 있는 내게로 끌어당겨 받아(붙잡아) --내 영혼몸 전존재와 하나됨 만들어 의지하며 살다.
@@카타람바노) 붙잡다/따라 잡다, 이해하다/깨닫다, 압도하다/이기다/사로잡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탈람바노(Homer 이래)는 전치사 카타(katav, 2596: 아래로, ~에 대하여, ~에 따라서)와 람바노(lambavnw, 2983: 취하다, 가지다, 받다)에서 유래했다.
카타는 원래 '위로부터 아래로'이며 따라서 카탈람바노는 완전히 단순형을 강화한 것이다.
(a) 능동태로 (특히 적대적 방법으로) '붙잡다, 단단히 쥐다', (b) '~에 빛을 비추다, 따라 잡다', (c) '파악하다, 참으로 이해하다', (d) '굳게 잡다', (e) 중간태로 ① 자신을 위해 요구하다, ② '파악하다, 이해하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카타람바노는 70인역본에서 126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사그(5381: 도달하다, 미치다, ~에 뒤따르다, 창 31:25; 레 26:5; 신 19:6; 삼상 30:8; 왕하 25:5), 라카드(3920: 포획하다, 붙잡다, 취하다, 민 21:32; 삿 7:24; 삼하 12:26; 잠 16:32; 사 20:1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카탈람바노는 '붙잡다, 취하다, 놀라다, 갑자기 만나다, 압도하다, 빼앗다, 지각하다, 헤아리다, 이해하다, 따라잡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카타람바노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고전 헬라어나 70인역본의 개관을 통하여 이미 드러난 요점은 카타가 단순형에 강력함(힘으로 붙잡음, 막 9:18)이나 갑작스러움(놀라움, 살전 5:4)의 성격을 부여해준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요 8:3 이하;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때에 대해, 요 12:35). 이 용어의 인식론적 성격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만을 제외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 동사는 롬 9:30에서 믿음에서 난 의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아무 노력없이 얻는다는 면에서 '최종적으로 획득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바로 다음 구절에서처럼 '~에 비추거나 따라 잡는다'는 요소가 인지됨). 또 빌 3:12; 빌 3:13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잠정적으로 나타나고 부활로 말미암아(영적인 몸으로) 완성된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친교의 측면에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친교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따라잡으려고 분투해야 하며, 결국에는 ejxanavstasi", 1815(부활)에 그것을 소유할 것이다.
그것은 부활을 통하여 종국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믿음의 삶 가운데서 매일 매일 새롭게 확인되어야만 한다.
빌 3:12c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이 사망과 부활의 친교 속으로 완전히 끌어 들이신다.
고전 9:24은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면류관, 즉 이 친교의 완성 = 조에 아이오니오스에 대해 말한다.
또한 '압도하다, 눌러 버리다, 제압하다'라는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요 1:5).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어둠은 빛을 이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 빛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안에서, 로고스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궁극적 생명이다.
어둠은 그분의 빛의 능력을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이 빛의 존재 자체로 말미암아 밤의 영역 전체가 정복되고 그 능력을 빼앗긴 바 되었다.
중간태로는(지적인 영역에서만), '확증하다'(행 4:13; 행 25:25), '기본적으로 이해하다, 마음 속에 전유하다'(행 10:34; 엡 3:18; 온전히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함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G. D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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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것<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이 이기는 것
[요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깨닫다의 헬라어는 <카타람바노 καταλαμβάνω>... "~아래로 ~에 따라서"를 뜻하는 전치사<카타>+ "공격적으로 취하다, 받다"를 뜻하는 <람바노>가 합쳐진 단어로,... <카타람바노καταλαμβάνω>는 "확실하게 잡다, 정확하게 파악하다, 차지하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의 뜻을 가진다.
.......[요1: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에서 깨닫다 <카타람바노>가 사용되었다 ....어둠은 빛이 와도 깨닫지 못한다... 더 정확한 의미로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빛이 어둠에 비춰지게 되면 어둠은 물러 가기 때문이요, 빛 앞에서 꼼짝 못하기 때문이다... 그 빛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어둠은 마귀에게 속한 죄로 눌린 세상의 모습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모든 것을 이기실 수 있지만, 믿는 우리는 어둠에 속한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그 (말씀-지혜 JC) 진리를 깨닫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이길 수 있는 지름길이요,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존 전에 무릎 꿇게 되며,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길 수 있게 되며, 깨달을 때 자신을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니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이여!! 오늘도 그 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말씀으로 하루를 살게 하소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나를 완전히 사로잡으사 완전히 깡그리 아시는 주여, 주 영광의 말씀으로 흑암의 옛사람을 처리해주시고 거듭난 나의 모든 것 되소서, 나를 변화시키시며, 내 안에서 주님께서 친히 사명 이루시옵소서! 지금 오늘도 내내 새롭게 하시며 내 전존재를 사로잡아 주와 하나 되어 삶 이루게 하소서===
구원에는 3 가지 시제가 있다. 구원의 과거, 구원의 현제, 구원의 미래이니,...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이루어 간다.-- 구원을 완성할 것이다.
.....구원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나는 그리스도 안으로 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죽음이 나의 죄에 대한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나를 위한 부활이 된다. 바로 그러하기에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갖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구원의 과거라고 한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하여 나의 인격이 바로 예수님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요, 나는 이제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하는 바, 이것을 성화라고도 하고 구원의 현재라고도 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모두 부활한다, 이것을 구원의 미래 또는 구원의 완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이미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가르치거나 주장하면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고, 모세 5경을 지키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빌립보 교인들을 혼동으로 몰고 갔을 그 때, 바울은 이에 대해 경고하면서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빌3:12)
바울은 구원의 완성을 본 것이 아니고 완성을 향하여 좇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는바, 바울은 구원의 현재를 강조하고 있었다. 구원의 시제 중에 바울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구원의 현재!!.... 예수님의 은혜를 덕 입어서 지금 여기서 나를 변화시키는 삶을 사는 것,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임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함이다... 왜 그럴까? 구원의 현재 이외에 구원의 과거(믿음으로 죄 용서받음)나 구원의 완성(부활)에서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현재에만 가능한 것이니,. 우리의 할 일이 있는 곳은 오직 구원의 현재뿐인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구원의 현재이다.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부활은 나중에 구원이 완성될 미래의 일이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구원의 현재를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덕 입어서 열심히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성화되어야 하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 사역을 열심히 이루어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는 어차피 구원을 받았고, 어차피 주님이 재림 할 때 우리의 부활도 이루어지니까 이 땅에서는 그냥 그렇게 살다 가자!” 이렇게 생각하거나, 실지로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란!!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까지는 이 땅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긴장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종종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향하여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실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없다”고 말들 하는 바,. 사실 이 말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 상태, 가장 중요한 약점--구원의 현재를 살고 있지는 못함--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의 현재를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는 것이다. 개역성경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다고” 번역했다. 여기 잡혔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카타람바노..... 꼼짝 못하게 꽉 붙잡혀 있다는 의미.... 그래서 사로잡다, 체포하다는 뜻도 되고 체포해서 신문하여 이해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바울은 언제 예수님께 체포되었을까? 다메섹에서!! 다메섹에서 그리스도가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거기서 바울을 사도로 사로잡고 체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체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울을 잘 알고 계시는데!!, 바울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심, 이것을 속칭 "신상이 털렸다".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울은 참되게 아는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사로잡은 것은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잘 알고, 바울의 죄를 용서하고, 바울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울은 정말!! 알았다. 그래서 바울도 예수님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을 체포한 것은 과거형, 수동태이니!!,.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미 체포되었다...그리고 바울이 좇아가는 것은 현재형, 능동태이다. 지금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먼저 사로 잡혔기 때문에, 바울도 예수를 사로잡으려고 지금 좇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미리 맛본 사람이라야!! 현재도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다. 아무도 미리 은혜를 맛보지 않으면 주님을 현재 좇을 수 없다. 주님을 붙잡기 위해서 좇아가기를 원하는가? 미리 예수님께 사로잡히셔야 한다. 예수님께 사로잡히면 예수님께 신상이 털리는 것이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다 아시고 용서하시고, 여러분의 약점을 다 아시고 강하게 하시고, 여러분의 성공도, 실패도 깡그리 다 아시기에!!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미리 맛보아야 우리도 그분을 붙잡기 위하여 좇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주님을 좇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주님께 사로잡힌 적이 있는지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 먼저 사로 잡힌바가 되어야 여러분이 주님을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너희를 떠나 반비례적으로!!)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말씀 사모하는 유대인마다에게로 복음이 전파됨)
.......구속하시는 주님의 움직임, 신약 경륜이 유대인--->이방인-->유대인으로 향해야 함을 드러내고 계심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극도로 타락-음란-우상 가득한, 이데올로기적 우상-맘몬들, 곧 극단적 이기주의- 능력주의, 인본주의-기회주의-상대주의-대중/군중영합주의-쾌락/금욕주의-포스트모더니즘/물질주의자(이상적 민주주의 연대의 공고 추구를 주장하는, 마이크 샌들의 논지는 [조건의 평등 추구하는] 이익 당사자 집단들의 광장 중심 토론 통한 정의와 공정 지향하는, 공동체주의적 사회-공화주의...666)들이 우글거리는] 이 성중에 내 백성(=택한자..지금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곧 나타날바)이 많음이라 하시더라....모태에서 조성될 때부터 멸망 받아 마땅한 자기 죄와 죄인 됨를 드러내어 비추시는 성령, 구주JC 믿음 아니고서는 피상적-부분적 접근에 불과한 학문적-이론적-철학적 접근은 아첨에 불과함...오직 공동체주의적 복음주의자로서 그리스도 살기 문제임!!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오직 성령 내주하심 여부의 문제....주예수보다더]○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바울 소송단의 대표자 역할함으로써 몰매 맞았으너, 이를 계기로 주께 돌이킴
===바울이 안디옥으로 내려가다...
18. [때와 시기 지도하시는 성령 인도따른 작별]○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아볼로가 담대히 전도하다
24. ["나야말로 독사의 자식, 죄인의 괴수"고백하기를 배워 전도함, 땅끝까지 나아가는 전도자]○(애굽 제1의 학문 도서관 도시,70인역 구약성경 번역된곳)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바울은 남이 세운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것을 원칙 삼았었기에!! 베드로의 구역으로 여겼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자연적으로 메세지는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였을것...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바울과 함께 장막 만드는 업율 같이 하면서 깊이 사귐 통해 주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배워 알고 적용하며 예수 제자인 전도자로 살아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그들로부터 듣고 패러다임 전환 이룬바)아볼로가 아가야[고린도]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자기 부인-자기 십자가 짐, 곧 성령의 수술대에 올라 수술/처리 받음인 "절제"를 포함한, 9가지 성령 열매를 사시사철 맺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자기 죄 회개하고 주 이름 불러 자기위 구주, 곧 주님-주인이요 유일무이한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주 예수 이름의 세례=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세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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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8 Amplified Bible
===Paul at Corinth
1 After this Paul left Athens and went to Corinth.
2 There he met a Jew named Aquila, a native of Pontus, who had recently come from Italy with his wife, Priscilla, because [the Roman Emperor] Claudius had issued an edict that all the [a]Jews were to leave Rome. Paul went to see them,
3 and because he was of the same trade, he stayed with them; and they worked together for they were tent-makers.
4 And he reasoned and debated in the synagogue every Sabbath,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5 but when Silas and Timothy came down from Macedonia (northern Greece), Paul began devoting himself completely to [preaching] the word, and solemnly testifying to the Jews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6 But since the Jews kept resisting and opposing him, and blaspheming [God], he [b]shook out his robe and said to them, “Your blood (damnation) be on your own heads! I am innocent of it. From now on I will go to the Gentiles.”
7 Then he moved on from there and went to the house of a man named [c]Titius Justus, who worshiped God and whose house was next door to the synagogue.
8 Crispu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believed in the Lord together with his entire household [joyfully acknowledging Him as Messiah and Savior]; and many of the Corinthians who heard [Paul’s message] were believing and being baptized.
9 One night the Lord said to Paul in a vision, “Do not be afraid anymore, but go on speaking and do not be silent;
10 for I am with you, and no one will attack you in order to hurt you, because I have many people in this city.”
11 So he settled there for a year and six months, teaching them the word of Go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12 But when [d]Gallio was proconsul of Achaia (southern Greece), the Jews made a united attack on Paul and brought him before [e]the judgment seat,
13 declaring, “This man is persuading people to worship God in violation of the law [of Moses].”
14 But when Paul was about to reply, Gallio said to the Jews, “If it were a matter of some misdemeanor or serious crime, O Jews, I would have reason to put up with you;
15 but since it is merely a question [of doctrine within your religion] about words and names and your own law, see to it yourselves; I am [f]unwilling to judge these matters.”
16 And he drove them away from the judgment seat.
17 Then the Greeks all seized [g]Sosthene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and began beating him right in front of the judgment seat; but Gallio paid no attention to any of this.
18 Paul stayed for a while longer, and then told the [h]brothers and sisters goodbye and sailed for Syria; and he was accompanied by Priscilla and Aquila. At Cenchrea [the southeastern port of Corinth] he had his hair cut, because he was keeping a [Nazirite] vow [of abstention].
19 Then they arrived in Ephesus, and he left the others there; but he entered the synagogue and reasoned and debated with the Jews.
20 When they asked him to stay for a longer time, he refused;
21 but after telling them goodbye and saying, “I will return again if God is willing,” he set sail from Ephesus.
22 When he had landed at Caesarea, he went up and [i]greeted the church [at Jerusalem], and then went down to Antioch.
===Paul’s Third Missionary Journey
23 After spending some time there, he left and traveled through the territory of Galatia and Phrygia, strengthening and encouraging all the disciples.
24 Now a Jew named Apollos, a native of Alexandria, came to Ephesus. He was an eloquent and cultured man, and well versed in the [Hebrew] Scriptures.
25 This man had been instructed in the way of the Lord, and being spiritually impassioned, he was speaking and teaching accurately the things about Jesus, though he knew only the baptism of John;
26 and he began to speak boldly and fearlessly in the synagogue. But when Priscilla and Aquila heard him, they took him aside and explained more accurately to him the way of God [and the full story of the life of Christ].
27 And when Apollos wanted to go across to Achaia (southern Greece), the brothers encouraged him and wrote to the disciples, [urging them] to welcome him gladly. When he arrived, he was a great help to those who, through grace, had believed and had followed Jesus as Lord and Savior,
28 for he powerfully refuted the Jews in public discussions, proving by the Scriptures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Footnotes
Acts 18:2 This action may have been prompted by conflicts within the Jewish community caused by the spread of Christianity.
Acts 18:6 An act symbolizing rejection.
Acts 18:7 One early ms reads Titus; two early mss omit the name.
Acts 18:12 Junius Gallio’s term as proconsul was brief a.d. 51-52, but is validated by an ancient inscription found at Delphi. This is important because it establishes the date of Paul’s visit to Corinth while on his second missionary journey and sets the date of his letters to the church at Thessalonica.
Acts 18:12 The proconsul tried cases from a large, raised stone platform situated in front of his official residence.
Acts 18:15 Gallio, the proconsul of Achaia, in essence ruled Paul’s teachings to be a form of Judaism and therefore legal under Roman law.
Acts 18:17 As leader of the synagogue Sosthenes would have presented the charges against Paul. Apparently something related to this made him the target of the attack. If this Sosthenes is the same man mentioned in 1 Cor 1:1, he later became a believer and follower of Christ.
Acts 18:18 Lit brethren.
Acts 18:22 This marks the end of Paul’s second missionary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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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Ⅰ.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나눈 사적인 대화.
유대인들과의 공개적인 토론.
유대인들이 바울을 배척함으로 그가 이방인을 향하여 돌아선 사실들이 소개된다(1-6).
Ⅱ. 그곳에서의 그의 사역의 큰 성공.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 더욱 큰 복음의 풍성한 수확을 바라고 계속 노력할 것을 격려하신 사실(7-11).
Ⅲ. 얼마 후 바울이 그곳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방해 공작.
그러나 로마의 통치자인 갈리오의 냉철한 판결에 의해 그는 그 난관을 잘 뚫고 나간다(12-17).
Ⅳ. 고린도에서 오래 동안 머물러 있은 후 바울이 여러 지방을 여행함.
그것은 그가 설립하고 개척한 교회들을 교도하고 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여행 동안 그는 예루살렘을 잠시 방문한다(18-23).
Ⅴ. 아볼로의 지식의 괄목할 만한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그의 유용함에 대한 설명(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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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의 고린도 방문(행 18:1-6)
바울은 아덴에서는 그다지 많은 박해를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거나 그들과 이해 관계가 있던 그러한 장소에서도 바울이 종전에 당했던 것과 같은 심한 대우를 받고 쫓겨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바울에 대한 태도는 냉랭한 편이었으며 또 거기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어떤 전망도 거의 없었으므로 디오누시오와 함께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의 보살펴 줌을 뒤로 하고 그는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교회를 세우는 도구 역할을 하였다.
고린도는 마게도니야지역의 베뢰아에서 남쪽 방향에 있는 아티카반도지역의 아테네에서 서쪽방향에 좁은 육로로 연결되는 펠로포네스반도를 포함하는 그리스(헬라)중 아가야 지방의 중심 도시였고 당시는 로마 제국의 속령으로써 부유하고 찬란한 곳이였다. [고린도(코린트) 남쪽에 겐그레아, 동쪽에 아테네, 남서쪽에 스파르타가 위치]
고린도는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허용된 곳은 아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당시 그 주변 지역은 펠로포네스(펠로폰네스, 펠로폰네소스)반도, 그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의 자신의 생계를 위한 노동(2, 3절).
1. 바울은 비록 학자로서 자랐지만 또한 그는 수공업 기술자였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기술자였으며 또한 실내 장식품 제조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천이나 피륙 혹은 가죽이나 짐승의 껍질을 가지고 군인들이나 양치기들이 사용할 천막을 만들었다(어떤 이들은 당시는 일반적으로 천막을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전해 준다). 즉 천막의 겉 덮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천막 안에서 사는 것을 짐승 가죽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였다.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손들에게 학식이나 유산을 물려 주기도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기술 한 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음을 말해 준다. 랍비인 유다(Judah)는 "그의 아들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기술을 가르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울타리로 잘 보호된 포도원을 지닌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전문적이고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도록 하라..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기술을 지니고 있어서 그 기술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여 스스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이에게 이로운 좋은 기술은 그 어떤 종류라도 그 누구도 결코 경멸해서는 결코 안 되는 법이다.
바울은 비록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었고 또 그 기술을 오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기술을 망각해 버리지 않았다.
2. 비록 바울은 그가 설립한 교회나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생계 문제를 의뢰할 권리가 있었지만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의 직업을 가지고 가능한한 일했다.
이러한 점은 더욱 그의 위대한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바울이 얼마나 겸손했는가는 생각해 보자. 사실 바울은 이 겸손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으로부터 배웠다.
바울이 얼마나 부지런하였으며 얼마나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자.
정신적인 측면에서 뛰어날 만큼 우수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그였으나 때때로 그가 손으로 노동하여 일용양식을 마련하는 것도 결코 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너는 빵을 먹게 될 것이다"라는 저주로부터 면제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가 가장 부당하고 터무니없는 정황 속에서도 그의 전도 사업을 잘 추진하였고 또 복음에 대적하는 온갖 편견을 얼마나 신중하게 극복하였는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에게 "짐스러운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일을 하여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고후 11:7; 살후 3:8, 9).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3. 우리는 바울 스스로가 그의 기술의 숙련도에 있어 대가였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돌아다니며 삯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고린도에 왔는데 그들도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수 있는 일당에 불과한 돈을 벌었다.
가난한 기능인들은 비록 부유한 상인들같이 재산을 늘릴 수는 없지만 만일 그들의 직업으로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감사히 여김이 마땅하다.
4. 비록 그 자신이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후에 알 수 있듯이(26절)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매우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동역자였었음을" 인정한다(롬 16:3).
이 사실은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돕기 위한 섬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하라는 좋은 본이 된다.
JC 안에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이다. 서로 JC에 대한 지식을 증진시켜 줄 사람들과 동료가 되어 사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자신들이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듯이 우리들도 그러한 영향 아래 살게 하려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이 아굴라에 관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전해 준다.
(1) 그는 유대 사람이었으나 본도에서 태어났다(2절).
베드로 전서 1장 1절에 나타나 있듯이 흩어진 많은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 정착하여 살았다.
(2) 그는 최근에 이달리야로부터 고린도로 온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그의 거주지를 옮겼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 세상이라는 곳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거할 곳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그러한 자유 세상은 아니다.
(3) 그가 이달리야를 떠나게 된 이유는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부터 추방한다는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최근의 칙령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았고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는 치욕과 곤경이 안기어졌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유산은 "무늬있는 매와 같은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매들이 그를 에워쌌다"(렘 12:9).
아굴라는 기독교도였지만 그는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추방을 당했다. 이방인들은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를 구별할 줄을 몰랐다. 글라우디우스 당시에 생존했던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이 칙령이 글라우디우스 통치 7년에 발령되었는데, 그 칙령이 내려진 이유는 유대인들은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는데, 이 소요의 발생 근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찬성자와 반대자들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점점 과열되어 결국 로마 당국에까지 알려져서 문제가 되었는데, 이 상황은 소심하고 신경이 과민하였던 글라우디우스황제를 분격하게 하였고 그는 유대인들을 로마경내에서 모두 추방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였다면 이방인들이 기독교도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다 박해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Ⅱ. 바울의 유대인들에 대한 설교.
바울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개종하여 유대인들의 집회에 드나드는 희랍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게 하려고 했다.
1. 바울은 공개적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
우리는 사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는가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힘이나 폭력으로 하지 않았으며, 불이나 칼로 하지도 않았고 절대 수락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정정당당한 논리에 의해 복음을 선포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복음으로 이끌어 들였고 조리있게 강론했으며 그것에 반대할 자유도 허용했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고 초청하신다(사 1:18). 그리고 죄인들에게 그들의 변명을 해보라고 도전하신다.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사 41:21)
바울은 성서에 입각한 설교자였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설교가였다.
2. "바울은 그들을 권면했다"(에페이덴, 18:4).
그가 권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중 한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들이 속히 믿어야 된다는 절박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논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권면하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위해 또 그들 자신의 영혼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제시된 구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2) 아니면 그가 복음을 권면한 것은 복음을 지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권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그가 그들을 설복시켰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의견에 따르게 하였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그의 조리있는 강론에 의하여 믿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굴복한 것이다.
3. 바울은 그의 동역자요 보조자들이 그에게 오자 더욱 열심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와서" 마게도니아 교회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바울에게 주었고, 또 즉시 고린도에서 바울을 돕게 되자 바울은 전보다 더욱 "말씀에 붙잡혀" 말씀 전하는 일에 바울의 힘과 능력을 진력하였다.
바울은 그의 동포인 유대인들의 완고한 고집과 불신앙을 비탄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열심을 내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고후 5:14). 앞의 인용한 내용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증거하였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그렇게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기에 바울은 모든 가능한 권위와 진지함을 가지고 그 자신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확신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되고 또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 증거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신실한 자세로 그들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이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Ⅲ. 그 후 바울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단념하고 그가 다른 장소에서 했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6절).
1. 많은 유대인들 아니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고집했고 가장 강력한 논증에도 굴복하려 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권면에 대해서도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적하여 훼방하였다"(본문을 직역한다면).
그들은 복음에 반대하기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복음의 전진을 막기 위하여 손을 잡았다.
그들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으며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조리있는 말로 격퇴시킬 수는 없었다. 조리있는 말로 전도자들을 대항할 수 없게 되자 폭언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훼방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독적인 언사를 말하였다. 또한 이로써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계 13:5, 6).
자기들의 불신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2. 그러므로 바울은 그 자신이 그들에게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을 하고 그들이 그들의 불신앙 속에서 멸망하도록 방임해 버린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그들에게 증거했었다"(5절). 그러나
그들이 바울의 증언을 반대하고 그들의 반대를 고집하고 그들이 전도자들을 반증하는 악령에 사로잡히자(6절) 바울은 그의 열심을 그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냈다.
즉 그는 "그 의복을 흔들어" 그 먼지를 떨어버렸다(전에도 그들은 "발에 묻은 티끌을 털어 버렸었다." 행 13:51).
이같이 바울이 옷의 먼지를 털 것은 그들을 대적하는 증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같이 바울은 그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그 다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빌라도가 그의 손을 씻음으로써 그 상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를 유대인들의 책임으로 전가시켰듯이 바울은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림으로써 만일에 있을 그들의 심판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1) 바울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으며 그들 영혼의 피에 대하여 그는 깨끗하였다.
비록 그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충실한 파수군과 같이 그들에게 경고를 하였고 또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믿게 하려고 하였으나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피에 대하여 바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문과 20장 26절의 내용은 바울이 에스겔 33장 8, 9절을 참조한 것임이 명백하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을 경고하는데 자기 책임을 다했노라고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역자의 마음에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2) 만일 그 유대인들이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저주는 바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너희가 자신들의 파괴자가 될 것이며, 이 땅에서 너희 나라가 멸망할 것이요 하늘 나라에 가서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너희가 져야 하리라"고 하였다.
3. 그들을 포기하였다고 해서 바울은 자신의 사명마저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이스라엘을 도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도 가리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맨 처음 복음에 대한 초청을 받았고 또 그들에게 응당한 대우가 취해졌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하여 불평할 수가 없었다.
처음 초대된 손님들이 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준비된 음식을 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본문은 다음가 같은 뜻의 말씀이다.
"우리들은 유대인들을 모아들이려고 하였다(마 23:37).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몸이 없는 머리가 되실 수 없으며 기초없는 건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거부와 소수의 회심이 이방인들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정면에서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 위해서였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롬 11: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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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고린도에서의 바울(1)(행 18:7-11)...이제, 유대인 회당이 아니라 디도 유스도의 집을 전도할 거처로 삼는 [이방인의 사도] 바울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전해지고 있다.
Ⅰ. 바울의 장소 이동.
JC는 그의 제자들을 파견할 때 그들에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눅 10:7) 지시하셨다.
그러나 본문의 바울의 경우처럼 장소를 변경해야 할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사악함에 의해 축출당하였으므로 회당을 나갔다. 그리고 바울은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7절).
바울이 이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것은 그곳을 숙소로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울로 하여금 평화스럽게 그들의 회당에서 그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자 착한 사람인 유스도는 바울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고 그가 자기 집에서 전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방주가 개인의 집에 정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을 때 바울은 개인 집에서 전도함으로 그의 가르침에 손실을 보지 아니하였다. 이 사람과 그의 집에 한 본문의 설명을 고찰하여 보자.
1. 그 사람은 유대인들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으며 고넬료와 같이 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비록 유대인들을 단념하였지만 이 사람의 집에서 모임을 시작하므로 유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바울이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야 할 수밖에 없었을 때일지라도 그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2. 그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 집이 회당 옆이라" 하였다. 그 일에 대하여 바울이 회당으로부터 사람들을 그들의 모임으로 끌어들이려는 계획 아래서 이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바울이 그가 할 수 있는 한 그들 가까이 있으려 한다는 것과 만일 그들이 그의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전처럼 그의 메시지를 반박하고 모독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그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사랑의 정신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Ⅱ. 바울이 즉석에서 거둔 그의 수고의 결실.
이러한 결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수확한다.
1. 저명인이요 또난 유대인인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8절).
교회나 국가의 고관들이나 통치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복음에 매우 영예로운 일이다.
유대인들의 회당의 최고 책임자가 즉 성서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나 그들의 신앙에 대한 열심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그가 복음을 믿었는데도 나머지 유대인들은 복음을 반대하고 모욕을 가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로 변명의 여지가 없게 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그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 가족이 믿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 회당장과 함께 바울에 의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고전 1:14).
2. 이방인이었던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고전 6:11 의 "너희 중에 어떤 자들"이라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나쁜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처음에 그들은 들었다. 왜냐하면 "신앙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들 중 혹 어떤 사람들은 아마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이 옳지 않다고 하는 어떤 양심의 확신에 의해서 바울의 말을 들으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몰려 온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파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듣고"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음을 정하고 그리스도교를 신앙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부여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다.
Ⅲ. 바울은 환상을 통하여 고린도에서 그의 일을 계속하라는 격려를 받았다(9절)..성령께서 지지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의 일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즉 침상에 누워서 골똘히 그가 여기에서 계속해서 전도 일을 할 것인가, 혹은 이곳에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좋은 성과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가 등에 관해서 심사숙고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적절한 시기에 바울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즉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에 골똘하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위로로 기쁨을 맛보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1. 바울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위임과 책임을 새롭게 인식한다.
주님은 그에게 "유대인들을 두려워 말라. 비록 그들이 난폭하고 더욱이 그들 회당의 총관리자가 전향을 하였으므로 더욱 광분할 지라도 두려워 말라. 또한 그 도시의 행정장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에게 위에서 주어진 것 이외에는 너에 대하여 반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외치는 것을 하늘을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담대히 행동하라.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주시함에 대하여 당황하지 말라.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말라.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라. 그들이 두려워서 말하는 것을 중단하지도 말고 숨어서 말할 필요도 없다. 소심하게 또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 말고 분명하게 확신을 갖고 그리고 용기있게 말하다. 크게 외치라.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답게 자유롭게 행하라"고 하신다.
2. 바울은 주님이 그와 맘께 하심을 확신했다.
이 사건은 바울에게 생기를 불어 넣고 활기를 주었다.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너를 보호하고 네가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내게 하고 너의 모든 두려움에서부터 너를 이끌어낼 것이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내가 인정할 것이며 너와 함께 일할 것이며 기적을 통하여 너의 말을 확증하리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는 제자들에 대한 위임시에 주어진 약속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움추려들어도 안 되는 것이다.
3. 주님은 바울에게 그를 아무런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보증을 하신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네가 악하고 분별 없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며 다른 곳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다녔듯이 쫓겨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어떠한 사람도 바울에게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는 다음의 본문에서 바울이 대적함을 받아 "재판하는 자리에 끌려 왔다는"(12절)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너를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절제될 것이다. 또한 너는 빌립보에서 당했던 것과 같이 여기서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그의 전도 사업 후기에서 보다 처음에 혹심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고난을 당하던 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시련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시 66:10-12).
또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내적인 의미의 말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어느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18:10) 네 영혼에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어떠한 괴로움을 주더라도 그것이 네 영혼을 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너를 죽이더라도 그들이 참으로 너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시 23:4; 사 41:10).
4. 주님은 바울에게 성공의 전망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으로 너의 일을 방해하려는 어느 누구도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의 일을 보살필 것이다. 그러기에 너는 그 일을 즐거움을 가지고 원기있게 행하라. 이 성중에는 너의 전도에 의해 실제적으로 따라 나설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서 너의 영혼이 산고의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나를 위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과 또 앞으로 그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아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은 그가 그들에게 역사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한 그는 그의 하실 모든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비록 나를 아직 모르고 지금까지 그의 의지대로 사탄에 붙잡혀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들을 나에게 주셨으며 나를 섬기는 자손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들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기로 내가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기를 "그가 예정한 자를 또한 부르셨다"고 하였다.
비록 고린도는 매우 불경스러운 악한 성이고 불순한 것으로 가득 찼으며 그곳에 비너스의 신전이 있어 사람들이 그곳을 자주 찾아 갔지만 이같이 쭉정이만 쌓인 것 같은 무더기 가운데도 알곡이 있었던 것이다. 쓸모 없는 것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석 속에도 금(金)은 있었다.
고린도 같은 곳에서까지 그리스도께서 많은 그의 백성들을 소유하고 계셨다면 우리는 어떠한 장소에 대하여서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Ⅳ.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 바울은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게 된다(11절).
그는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유하였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편안히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일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서 즉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 도시는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으므로 바울은 그곳에서 낯선 이국 사람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여러 다른 지방까지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울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
1.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는 그곳에 많은 사람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그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 그가 처음 복음을 선포했을 때 한 번 그물을 던져 수 천의 사람들을 이끌어 들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한 달 혹은 한 주일만에 그들 모두를 회개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일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고린도에서 예정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복음에 귀의하였다. 어떤 자는 이러한 설교로 또 다른 자는 저런 설교로 그들은 복음에로 하나씩 나아왔다.
"우리는 아직까지 만물이 그리스도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일이 한꺼번에 이루워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더라도 짧은 기간 안에 이룩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의무를 계속해야 한다.
2.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성숙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개종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특별히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 자신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그 곳에 좋은 씨를 뿌리자마자 적들이 와서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게 위해서였다.
즉 이들 적들은 거짓 사도들이나 속임수를 쓰려는 일군들로서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들에 대하여 많은 비난을 하였다.
자타가 인정하는 바, 복음전파의 대적들인 유대인 박해자들의 손이 묶여지자 바울과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가장해서 기독교를 유대화시키려는,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려는 거짓교사나 거짓예언자들의 수작에 의해 많은 고통과 많은 불명예스러운 피해를 당했다.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자마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첫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영감에 의하여 그가 쓴 여러 서신 중 첫 번째 편지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같은 교회에 두 번째 편지가 씌여졌다.
사역자들은 좋은 설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좋은 편지를 씀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고 그들 사역의 위대한 목적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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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고린도에서의 바울(2)(행 18:12-17)....법정, 곧 아가야총독 갈리오가 있는 앞에서 (관리잘못했다고)공공연히 [회당장] 소스데네를 폭행하는 박해자 무리들..소스데네도 그 후 회심하여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처럼 바울의 조력자가 됨
여기서 바울과 고린도에 있는 그의 동료들이 당한 약간의 고난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해를 당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곳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에는 많은 방해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Ⅰ.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 앞에 고소를 당한다(12, 13절).
그곳 통치자는 고린도 성이 있는 "아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였다."
아가야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갈리오는 식민지의 총독이었다. 이 갈리오는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형이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노바투스(Novatus)라고 불리웠는데 그가 쥴리우스 갈리오의 집안에 양자가 되었으므로 갈리오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는 그의 동생인 세네카에 의해서 매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좋은 성품 때문에 그는 '선량한 갈리오'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세네카는 전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바울이 난폭하게 체포되어 갈리오 앞에 끌려온 사실을 생각해 보자.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였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당한 모든 곤경을 주도한 주모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바울에게 해를 입히려고 결속하였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는 만장일치였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이 악한 일에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은 그것을 분노와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서둘러서 바울을 "재판 자리로" 끌고 갔다. 본문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바울에게 그의 재판을 위해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2. 바울이 갈리오 앞에서 거짓 고소를 당한 사실을 고찰해 보자(13절).
그들은 그에 대하여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 말라고 권하였다거나 또는 다른 신을 공경하라고 한다고(신 13:2) 고소할 수는 없었다.
다만 율법에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한다고 고소하였다.
로마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율법을 준수하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율법을 허용했다고 해서 그들과 같은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기소할 권한까지 그들에게 준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거짓 증언을 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고소는 율법의 측면에서 볼 때도 정당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율법에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세우실 한 선지자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들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이 선지자를 믿고 또 그의 말을 들으라고 권면했다. 그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왔기 때문이다."
고린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하라는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 자신이 이미 이렇게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들의 회당에서 예배를 일부라도 어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령으로 그를 예배하라고 가르친 것뿐인데 마치 그가 율법에 저촉되게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백성들을 가르친 것처럼 모함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가르침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Ⅱ. 갈리오는 그들의 고소를 듣자마자 아니면 처음부터 전혀 듣지 않고 있다가 그 기소를 기각하고 그 문제를 심리(審理)하려고 하지도 않았다(14, 15절).
바울은 저들에 대해 자신이 율법에 반대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변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재판관 갈리오는 이 소송은 재판으로 다룰 문제가 못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문제를 심의하는 번거로움에 자신이 끼어들고자 하지 않았다.
1. 갈리오는 그가 심리해야 할 사건이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을 집행할 태세가 갖추어졌음을 보여 준다.
갈리오는 고소자인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 있으면, 즉 너희들이 도둑질이나 사기, 혹은 살인이나 약탈 혹은 부도덕한 어떤 행위로 사람을 고소하였으면 너희가 소란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너희의 불평을 들어야 마땅하다고 내가 생각할 것이다."
청원자들이 무례하더라도 그들의 소송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들의 소송을 정당하게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곧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해자에 대하여는 책망을 하는 것이 행정관들이 의무이기에, 만일 고소자들이 갖추어야할 모든 예절을 갖추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그들의 고소를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2. 갈리오는 그들이 그의 사법권 밖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한 너희 가운데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들은 내가 그것을 인내하고 들어야 하는 짐을 지우지도 말고 그것에 관해 재판함으로써 내 양심에 부담을 주지도 말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청원을 들어 주도록 간청하고 압력을 가하자 그는 "저희를 재판자리에서 쫓아 내어 버렸다"(16절).
그리고 다른 소송건을 처리하게 가져 오라고 명령했다.
(1) 갈리오의 행동에는 정당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재판하려 하지 않은 태도는 칭송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 자신의 종교에 관한 일에 대하여는 유대인 스스로 그 일을 처리하도록 버려 두었으며, 그러한 허위 주장을 가지고 그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능욕하게 버려두고자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자기가 바울에게 불리한 심판을 내림으로 그들의 악의의 도구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갈리오는 그 일이 그의 사법권 안에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간주했고 그러기에 그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2) 그러나 그가 경시한 것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또 그것으로 그가 자신을 아는데 이용해야 할 율법과 신앙을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였다는 것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예배되어져야 하며 예수는 메시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혹은 복음이 과연 신의 계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자신이 비웃고 경멸하여 칭했듯이 단순한 "언어와 명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써 만일 그러한 질문들을 그가 올바르게 이해하였다면 그도 그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갈리오는 마치 성서에 대한 그의 무지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하였고 그것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마치 하나님의 율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는 그것에 관해서 탐구를 하는 것은 그와 상관없고 그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그는 생각하였다.
Ⅲ. 소스테네에게 가해진 능욕과 그 문제에 대한 갈리오의 무관심(17절).
1. 희랍인들이 소스테네를 잡아다가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린 것은 사실 재판정을 모욕하는 행위였다(역주:흠정판에는 희랍인들로 되어 있음).
이 일에 관하여는 많은 가정들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소스테네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그를 능욕한 희랍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가설로는 소스테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의 특별한 친구로서 갈리오가 그 소송을 기각시켜 버리자 바울을 위해 앞장 서서 그의 안전을 도모하여 그를 피신시켰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를 보호한 소스데네에게 덤벼들었던 것 같다.
고린도의 저명 인사로 바울의 친구인 소스데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사역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그를 그의 형제라고 불었으며 또한 그와 연명으로 편지를 띠우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1).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디모데를 취급하였던 것과 같이 소스데네를 취급하였다. 그리고 본문의 소스데네가 고린도 전서의 소스데네와 동일 인물인 것이 사실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회당장이였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그리스보와 공동 회당장이라는 말이든가 아니면 그리스보의 관할 회당이 아닌 다른 회당의 회당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헬라인들이 소스데네를 학대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역주:한글 개역에는 그냥 모든 사람들이라고만 되어 있음) 그들은 복음을 반대하는 일에 유대인들과 합세한 헬라계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임은 틀림 없는 것 같다(4, 6절).
즉, 본토 유대인들은 이들을 부추겨서 소스데네에게 폭행을 가하게 함으로 자기들이 받을 비난을 다소나마 모면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소스데네를 때린 것은 바울에 대하여 매우 격분했기 때문이요, 동시에 또한 갈리오에 대해서도 격분했기 때문이었다.
갈리오가 그들의 고소를 고려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재판 자리 앞에서 공공연히 스소테네를 때린 것은 그것을 통하여 사실 그들이 갈리오를 무시한다는 것을 갈리오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였다.
만일 갈리오가 그들의 기소를 집행자이기를 원치 않으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2. 법정만 그 일로 인하여 모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재판관도 역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였다." 만일 이러한 그의 태도가 악한들의 도전을 무시한다는 의미였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법률과 통치의 공정성을 착실하게 견지하면서 그러한 그의 태도에 대한 악인들의 모욕은 무시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내가 생각한 바 대로) 만일 그가 선량한 사람이 치욕을 겪고 있는데도 자신이 개입하기를 꺼린 것을 의미한다면 그가 대범하다기 보다는 그가 나쁜 인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재판정에서 [합당치 못한]악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솔로몬은 이러한 사태를 개탄하였다; 전 3:16).
그런데 그러한 일을 제지하거나 제압하는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갈리오는 재판관으로서 소스데네를 보호해야만 했으며, 그를 폭행한 희랍인들을 제어하고 처벌해야만 옳았었다.
사실 누가 거리에서나 시장에서 폭행을 당한다면 쉽게 도움을 베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재판하는 곳 즉 바로 법정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재판관이 앉아서 방관만 하고 있다면서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라고 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 59:14, 15).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듣고도 그들에게 아무런 동정도 베풀지 않으며 관심도 갖지 않으며 동정도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는 자들은 그들이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를 막론하고 그들은 선한 사람이 그의 면전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 일에 관계치 아니한" 본문의 갈리오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시온에 편히 앉아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들"과 같으며(암 6:6) "수산 성은 어지러운데도 앉아서 술만 마시는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과 같은 자들인 것이다(에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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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안디옥으로 내려가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의 에베소와 예루살렘 방문(행 18:18-23)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얼마간 휴식을 취한 후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을 매우 분주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조용히 앉아 있거나 바쁘게 움직이거나 간에 그것은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도록 하자.
Ⅰ. 바울의 고린도 작별(18절).
1. 바울은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한 후 얼마간 기간이 지나기까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폭풍(박해)이 일어나면 즉시 떠났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고린도에서는 폭풍이 일어나다 곧 가라앉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우리에게 이때 갈리오는 사적으로 바울과 면대하였고 또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전해 준다.
또 몇몇 고대 교부들은 이러한 교제가 계기가 되어 바울과 갈리오의 형제인 세네카 사이의 서신 왕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 보면 "이 일 후에"즉 소송 사건이 있은 후에는 "바울이 더 여러 날을 유하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체류를 앞서 언급한 "일년 육개월"을 초과한 여러 날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1절).
이제 바울은 그의 노고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더욱 계속해서 노력하였다.
2. 바울이 떠날 때, 그는 그의 형제들과 진지하고도 많은 사랑과 적절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누면서 작별을 하였다.
또한 작별 기도를 하고 좋은 것은 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권계하면서 또한 거짓 사도들의 간계에 대하여 필요한 주의 사항을 그들에게 전하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별 설교는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을 것이다.
3.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함께" 데리고 갔다.
그것은 그들이 바울과 동행할 의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고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꺼려한 것은 그들의 선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른 불순한 동기가 있는 것처럼 나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과 바울 사이에는 아름다운 우정이 맺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떠나갈 때 그들은 바울과 함께 동행하기를 간청했다.
4.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떠난 자들이 기항하는 [고린도의 남쪽에 있는]항구인 겐그레아에서 바울 또는 아굴라 둘 중의 한 사람이(한글 개역에는 바울로 되어 있지만 희랍어 사본대로 하면 누구인지 구분이 되어져 있지 않다) 머리를 깎았다.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본문에 보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고 하였다.
이는 유대 땅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그 일을 성전 안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도 그 일을 이행할 수가 있었다. 나실인의 머리는 그의 구별됨이 우연히 더럽혀졌을 때 그러한 경우에 그는 다시 시작해야만 하므로 머리를 깎아야 했다(민 6:9). 또는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즉 그 기간이 만료 됐을 때도 그의 머리를 밀었다(민 6:13-18).
우리는 본문에서 머리를 깎은 것이 바로 후자의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깎은 것이 아굴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2절) 유대교를 쉽게 떠나는 것아 아쉬워서 관례보다 특별히 그러한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본다(역주:즉 유대교인으로서의 아굴라의 서운이 그 때 끝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바울에 관계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어떤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가 또 한번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21:24, 26).
"그것은 유대인을 얻기 위하여는 유대인이 된다"(고전 9:20)고 하는 바울 자신의 방침에 따라 그가 유대인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실인의 서원이 비록 제의적인 것이고 또 폐하여질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직 도덕적이며 경건한 의미를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머리를 깎은 것은(나실인의 기간이 끝나면 머리를 밀었듯이) 유대의 모든 제의적인 율법이 종식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실인들은 선지자들과 관계가 밀접하였다(암 2:11). 그들은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애 4:7). 그러므로 바울이 잠시 동안 나실인의 서원을 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고 또 머리를 깎으므로 유대인들에게도 자신이 호감을 얻으려 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동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이 서원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Ⅱ. 바울의 에베소 방문.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대도시요 항구였다.
1.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거기 머물러 두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의 여행에 단순히 짐스러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복음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그곳에 잠시 동안만 체류해 있기로 즉시 작정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가 없는 동안 그곳에 남겨 두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어느 곳이나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사도를 파견하여 그의 길을 예비시킨 것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사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매우 분별력이 있고 현명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돌아올 때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 바울을 친절히 영접하고 그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여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동역자"라고 부른 것이다(롬 16:3).
2. 에베소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비록 바울이 여행 도중 그곳을 잠시 들린 것이었으나 그들에게 아무런 설교도 없이 지나쳐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청중으로서가 아니라 설교자로서 "회당에 들어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19절).
비록 바울이 그를 반대하고 모욕하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포기해 버렸으나 그들 때문에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아직도 그들을 복음선포의 첫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단체의 일부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 전체 집단이나 한 종파를 다 비난해서는 안 된다.
3.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그렇게 몰아내지 않고 그에게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간청했다(20절).
본문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그에게 더 오래 있으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주기를 청했다.
그곳 유대인들은 고린도나 다른 곳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기품이 있었고 잘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두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4. 바울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울은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였다"(19, 20절)고 하였다.
그는 갈 길이 멀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키기 위해서였다"(한글 개역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음:역자 주).
그것은 바울이 그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바울은 절기를 규정하는 율법이 더 이상 그를 결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이 (그것이 어떤 일이었든지 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각처에서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그 절기에 수행되어야 최선의 득이 있었다.
그 절기가 어떤 절기인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5. 바울은 이 여행이 끝날 후에 다시 에베소에 와서 얼마간 머물겠다는 그의 의도를 말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그들의 친절한 초청에 격려를 받아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선한 사업을 끝낸 후 다른 일을 모색함에 있어서 미리 비축시켜 놓은 기회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라는 필수적인 단서를 삽입한다.
우리들의 시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 있다.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허락한다는 전제 아래서 약속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만일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살겠고 또 이것 저것고 하리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일 영이 허락한다면"(행 16:7) "내가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면 오리라는 것이 바울이 취한 입장이었다.
Ⅲ.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그것은 매우 짧은 방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모(母) 교회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데 기여하였다.
1. 바울은 바다를 건너서 예루살렘 곁에 있는 항구에 당도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21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였다"(22절)고 하였다.
바울은 바다 여행을 선택했다. 그것은 안전과 신속을 위해서였고 "주님의 역사와 깊은 곳에서의 그의 행하시는 기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본래 욥바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항구였으나, 헤롯은 욥바 항구가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가이사랴 항을 개설하였고 그 후 이곳이 일반적으로 이용되었다.
2. 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여기 언급된 교회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라고 강조하여 부른 것은 예루살렘에 그리스도 교회가 이미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행 15:4).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룩한 성공을 계기로 그가 그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그들과는 독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영예를 안겨 주었으므로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진 신세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그들이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 바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은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순수한 심정으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을 향한 그의 진심어린 선의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간다고 하여 옛날 친구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전에 맺은 우의를 다시 상기시켜 다짐한다. 그것은 선한 사람들이나 훌륭한 사람들을 사역자들이 기쁨으로 여겨야 할 일이다.
예루살렘의 사역자들은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고 바울은 끊임없이 지방을 순회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므로 그가 떠나 있을 때도 그들이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그가 그들과 합류할 때 그들을 반갑게 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이 서로 상대방의 평안과 성공을 축하하고 또 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2) 그것은 잠시 동안의 방문에 불과하였다.
그는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 아마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곧 그들을 떠났다.
그것이 일시적인 방문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바울은 그럼에도 이것을 위하여 기나긴 여행을 하였다.
이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그러한 곳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흩어지고 분산된 "세상의 소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때로 서로를 만나서 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비록 잠간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며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영적 교제를 더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더 열심히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Ⅳ. 바울은 먼저 그가 복음을 전파했던 여러 지방들을 거쳐서 돌아 온다.
1.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얼마간 머물렀다"(23절).
바울은 그곳에서 그의 옛 친구들을 만나 보았다.
그곳으로 바울은 낸 처음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었다(행 13:1).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사역자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자신이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하였다.
신실한 사역자가 그의 친구들과 휩싸여 얼마 동안 같이 있는다고 하는 것은 기분전환에 더없이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쇠는 쇠붙이에 의해서 날카롭게 되듯이 사람은 그의 친구들을 대함으로 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바울의 안디옥 방문은 지난 날을 회고하게 하였으며 그것은 바울에게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2.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녔다." ....이제 3차전도여행이다!!
그곳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파하였고 교회를 설립하였었다.
이곳들에 대해서는 매우 짧게 언급되어 있지만(행 16:6) 갈라디아서 4장 14, 15절에서 나타난 대로 그곳에서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가 처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과 그리고 그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받아들였음을 말한다.
바울은 이들 시골 교회들(이 교회들이 시골 교회들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갈라디아 지방의 어느 도시에 교회가 있다는 말을 성경에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을 바울은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그가 심기 위해 수고를 하였던 교회들에 물을 주고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바울이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과 그들의 사역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바울의 그들과의 접견은 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다. 바울은 그들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설교를 또한 그들에게 하였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각오와 그를 향한 그들의 경건한 애정을 더 풍부하게 하였다.
제자들은 허약한 약점들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힘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사역자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회중 모두를 강건하게 해야 한다.
즉 그들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도록 그들을 이끌므로 그들을 강건케 해야 한다.
그들의 허약함 속에서 그들의 힘이 온전하여지고 또한 사역자 자신이 그들의 힘이요 노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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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가 담대히 전도하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전도자 아볼로(행 18:24-28)
거룩한 역사서인 본서는 여행 중에 있는 바울의 문제를 감간 떠나 본문에서는 에베소에 있는 아볼로에 대하여 몇 가지 언급하고 있다.
본문은 바울 서신의 몇몇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Ⅰ. 에베소에 당도한 아볼로의 특성이 소개되고 있다.
1. 그는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의 양친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진 이래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시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리라"고 전해 예언되었던 그대로(신 28:68) 거기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방신의 이름의 하나인 아폴로(Apollos)고 아니라 아볼로스(Apollos)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가 로마서 16장 10절에 나오는 아벨레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2. 그는 재간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공적인 봉사 활동을 위하여 매우 적합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그는 "학문이 많고 (구약)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약 성경을 늘 접촉하며 성장하였다.
(1) 그는 언변이 좋았다.
그는 "구변이 좋은"사람이었다(역주:한글 개역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 하였으나 흠정판은 구변이 좋은 사람으로 나옴. 공동 변역 성경 또한 흠정판 영어 성경과 동일함). 희랍어 본문은 ‘아네르 로기오스’(18:24) - 즉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학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훌륭한 역사가라고도 생각한다. 여하간 이러한 자질은 전도에 유익한 자질이었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도 적절하고 상세하고 또 충분하며 유창하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2) 그는 또한 성경에 능한 자였다.
이것은 특히 그에게 있어서 뛰어난 점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에베소에 이르렀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 능한 자라"고 하였다.
그는 성서 해석의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과 또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널리 알려진 장소인 에베소에 와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려고 하였다. 그는 성경에 정통해 있어서 본문을 찾아 보지 않고서도 즉석에서 인용하거나 그것들을 암송하고 또 그런 말씀은 어느 곳에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많은 육에 속한 유대인들이 그러하였던 바, 그들을 "지식의 형태"나 "율법의 문자"에나 정통한 자들이라고 일컬어졌었다) "성경에 깊은 깨달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였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적용할 것인가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하여 강력하게 변론을 전개할 수도 있었다.
그의 성서 주석과 응용에는 확신시키고 복종하게 하며 진리를 수호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는 많은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성경에 대한 지식을 입증하고 성경에 대한 그의 능력을 입증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3.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복음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과 기독교의 근본 원리, 즉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이 세상에 오신 선지자이다"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이 근본 개념은 아볼로와 같이 성경에 능한 자들은 쉽게 용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때의 징조"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부모나 또는 사역자들에 의해서 복음에 대하여 "배웠다." 또는 ‘카테케메노스’(18:25)라는 원어의 뜻대로 한다면 "교리 문답식으로" 복음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에 의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얼마간 가르침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사람들은 먼저 자신들이 주의 말씀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배워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의 입으로 주의 말씀을 외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그리스도의 가신 길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야만 하는 것이다.
4. 그럼에도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요한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였다.
즉 그는 주의 길 자체보다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하여 "주의 길에 대한 준비 단계"밖에는 몰랐다.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또한 성령이 강림한 이후 어떤 사도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였었다.
또한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을 뿐이고 제자들이 오순절에 받은 것처럼 성령으로 세례받지는 못하였다.
Ⅱ. 우리는 본문에서 그의 재능이 에베소에서 받아들여지고 또 증진된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는 선을 행하고 또 선한 것을 얻을 기회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었고 그는 이 두 가지를 다 발견하였다.
1. 아볼로는 그곳에서 그의 재능을 공개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그는 아마 유대인의 회당의 교사로서 적임자라는 추천을 받은 것 같고 또 그가 받은 재능과 "주어진 은사의 분량에 따라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25절). 그리하여 그는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말하며 가르쳤다."
비록 그는 사도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갖지 못했어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그 분량은 각각 다르더라도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맞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는 비유로써 그의 사역자들에게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아볼로가 지식과 언변에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성경에 능한 자였다." 아볼로는 유용한 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하여 설교자로서의 더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되는가 보기로 하자. 그의 본은 모든 설교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다.
(1) 그는 생기발랄한 열정적인 설교자였다.
그는 머리도 좋았고 또한 성품도 훌륭했다. 그는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신의 광채뿐만 아니라 신의 빛을 열(熱)도 가진 사람으로 빛을 발할 뿐만 아니라 태우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귀중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충만하였다.
그의 이러한 점은 그가 "회당의 지도자들에게 부름을 받았을 때 서슴없이 말씀을 전하였고 또 열정적으로 설교한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설교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그의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품인가! 열심히 많은 사람들은 지식에는 약하다.
그들은 성서의 지식이 모자라 적당한 말씀을 찾아 내지도 못하며 또 부적당한 인용문으로 설교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하며, 많이 배웠고 현명한 사람들은 생명력과 열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볼로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그의 일을 위하여 완전무결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말솜씨나 열심을 다 갖추었으며 신에 대한지식과 신에 대한 사랑도 충만하였다.
(2) 그는 근면하게 노력하는 전도자였다.
"그는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쳤다." 그는 전도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했다. 또한 그는 상세하게 말씀을 전했다.
그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 또는 그의 희생이 깃들지 않은 것은 회당이나 하나님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그가 전할 말씀을 자신이 음미해 보고 그리고는 그의 전도를 받을 사람들에게 힘을 기울여 그들의 인상에 남도록 말씀을 전했다.
"그는 근면하게 가르쳤다." 또한 "정확하게, 엄밀하게" 가르쳤다. 그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꼭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3) 그는 복음적인 설교자였다.
비록 그가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복음의 시초였고 또한 그는 복음에 근접해 있었다.
왜냐하면 아볼로는 주에 관한 것 즉 주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가르쳤고 주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또한 주를 높이게 할 그런 경향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한 주제는 메시야의 왕국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비록 그가 제의적 율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유대 청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이방 철학에 관한 것을 주제로 매우 잘 얘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주에 대한 것들만을 가르쳤다.
(4) 그는 용기있는 전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였다"(26절).
그는 그가 말한 진리를 알고 또 그것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의 가치를 알고 또 그것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였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권력자들도 있었던 "회당에서" 아볼로는 하나님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그들이 그가 전하는 내용에 대하여 편견을 지닌 것도 알고 있었다.
2. 아볼로는 그곳에서 사사로이 그의 은사(지식)을 더 많이 증가시켰다.
그는 연구를 통해서 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만일 에베소에 바울이나 혹은 다른 사도나 설교자가 있었다면 그가 아볼로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조력자가 없었기 때문에 "천막 만든다는 사람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볼로는 그들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적었지만 공적인 섬김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그 모임에 근면하고 충실하게 참석함으로써 그들은 아볼로의 사역을 격려하였다. 이같이 장래가 있는 젊은 사역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격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들이 의(義)로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아볼로의 기독교에 관한 지식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그들과 같은 집에 유숙시키고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일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길을 "더욱 완전히" 가르쳤다. 그들은 아볼로에게서 발견한 결함을 비난하거나 타인들에게 그를 헐뜯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볼로를 강단에 서기에 적당치 않은 애숭이 전도자라 칭하지 않았고 그가 다만 요한의 세례에 대한 지식만 지녔다고 하여 그가 일하기에는 부적당한 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과의 오랫 동안의 친밀한 대화에 의해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전하고 그가 전에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제시하고 방법론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①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실례를 보게 된다.
가진 자 또 가진 것을 활용하는 자는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그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하게 장사한 사람은 곧 그것을 두 배로 늘렸던 것이다.
②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례를 우리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서 보게 된다.
그들은 그들이 능력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하였다. 아굴라는 사실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회당에서 이야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볼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공적인 일을 위한 그러한 재능을 그는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볼로에게 지식을 제공하였고 그 지식을 그의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전하도록 하였다. 사적인 대화에 의해 젊은 그리스도인들과 신진 사역자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복음으로 잘 성장하고 또 그 사역을 잘 수행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나 교회에 다같이 유익한 것이다.
③ 아볼로의 진실된 겸손의 실례를 우리는 보게 된다.
그는 여러 가지 재능이 많고 학식이 있는 매우 총명한 젊은이였다. 그는 이제 막 대학 과정을 마치고 새로 사회에 배출되었고 또 인기있는 설교자였으며 또 능력있게 외침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현명하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임을 발견하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경험적으로나 거시적으로 많은 것을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록 그들이 기술자로 가난한 천막 제조업자들이었지만 그는 그들에게서 기꺼이 가르침을 받았고 그의 결점과 잘못에 대한 그들의 지적을 받아들였으며 또 그들에 의해 그것을 수정하고 그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다.
젊은 학생들이 원숙한 실천가들에 의하여 정통하게 되듯이 신입 교인들은 오래 믿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도록 해야 한다.
아볼로는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웠지만" 전에 획득했던 지식에 머물러 있으려 하거나 그가 누구 못지 않게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러한 결점은 교만하고 속기 쉬운 젊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그는 도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므로 완전하게 되기를 기꺼이 원했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알기를 갈망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더 잘 알고자 노력하여 완전에 이르기까지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④ 본문에서 비록 회당이나 교회에서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적인 대화를 통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지식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한 훌륭한 자기부인의 실례를 보게 된다. 바울은 "늙은 여자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다(딛 2:3, 4).
Ⅲ. 이제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를 섬기는 일에 승진 발탁된다.
그곳은 당시의 에베소보다 그가 더 유용하게 일할 수 있는 장소였다.
바울은 복음의 수래를 특별히 아가야의 시청 소재지인 고린도에서 활발히 움직이게 하였다(역주:복음의 수래는 아볼로를 말함).
고린도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에 의해 마음이 감동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확신시키는 일이 필요하였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 때문에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을 설파시킬 필요도 있었다.
바울은 다른 일로 부름을 받아 그곳에 가고 거기 있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제 아볼로로 이 공백을 메꾼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는 심는 것보다 물을 주는 데 적합한 사람이었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교회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설립되어 있는 교회들을 튼튼히 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더 살펴 보자.
1. 그가 이 일에로 부름을 받은 것은 바울이 마게도냐에로 부름을 받을 때와 같이 환상에 의해서도 아니고 그가 작정한 곳 사람들의 초청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1) 아볼로는 자신이 가기를 원하였다.
본문에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라고 하였다. 그는 그곳 교회의 상황을 듣고 그가 그들 가운데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할 결심이 그에게 생겼다.
비록 그곳에는 영적인 은사로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볼로는 그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2) 그의 친구들이 그곳에로 가고자 하는 아볼로를 격려했고 그의 목적을 찬성하였다.
아볼로는 그곳 아가야에 대해서는 전혀 낯선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은 아가야에 있는 제자들에게 아볼로를 받아들이고 그를 채용하기를 권하는 추천서를 그에게 지참시키었다.
사역자들이 본문의 아볼로의 경우처럼 교회를 옮길 의향이 있을 때는 교인들과 사역자들이 그를 서로 추천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고 이렇게 함으로 교회 간의 교제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에베소 사람들이 아볼로가 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지만 그들은 아가야 사람들이 받게 될 이익을 시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고린도 교회를 잘 안다는 이점을 활용하여 그를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비록 그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사실 하나이기 때문이다.
2. 아볼로는 그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의 의도와 기대는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충족되었다.
(1) 신자들은 대단히 교화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믿음이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저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27절)고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
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믿게 된 것이 온전히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려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이다.
② 은혜로 말미암아 믿게 된 사람들도 계속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기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그들 안에 불신의 요소는 남아 있게 마련이며 또한 온전케 되어야 할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의 결함이 있으며 성취되어야 하는 신앙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③ 신실한 사역자들은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들을 많이 돕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그들은 신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불신자들은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그들의 반대 의견은 충분히 답변되었고 그들 주장의 어리석음과 괴변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기들의 입장을 수호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입은 닫혔고 그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다(28절).
"그는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
그는 열심히 또는 대단한 열정으로 그 일을 하였다. 그는 고통을 무릅쓰고 그 일을 수행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고 또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참으로 열망하는 사람답게 오직 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었다. 그는 그 일을 능수능란하게 하였다.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그의 입장이 분명했고 또 그를 위한 논거가 확고했으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에 반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을 좌절시키는 것은 쉬웠다.
비록 그들이 사나왔다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떳떳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거리낌없이 그들의 반대를 무찔러 버렸다.
이제 그가 그들을 확신시키려고 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또한 그들의 조상들에게 오리라고 약속된 메시야이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들은 이 다른 사람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만 한다면 그들 자신의 율법까지도 그들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사역자들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아볼로가 그들을 확신시킨 방법은 "성경에 의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는 논쟁이 있어서 기선을 잡을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거룩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성경에 능한 그가 성경으로부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사역자들은 다만 진리를 설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증명하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온순함으로 그러나 능력있게 반대자들을 확신시키고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진정한 섬김인 것이다.
===
==호크마==
사도행전 18장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ㅇ바울이...고린도에 이르러 -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이스와 남쪽으로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했다. 이 도시의 동서쪽에는 각각 항구가 있어 전략상 요충지였다. 한편 이 도시는 B.C. 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6, 7세기경에는 영화와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B.C. 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B.C.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러 이곳은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바울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ㅇ18:2 아굴라...브리스길라 -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지역에 있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한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다. 롱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장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다(3, 18, 19, 26절 ; 롬 16 : 3 ; 고전 16:19; 딤후 4 :19).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글라우디오 칙령(49년)의 원인인 유대인 폭동의 주동자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브리스길라가 로마 시민권이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면 그녀는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남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을 것이다.
본서나 기타 바울 서신서에서도 이들이 바울에 의해 개종된 자들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로 보아 이들은 이미 고린도에 오기전에 그리스도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Zahn).
누가는 바울을 중심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기때문에 대체로 바울과 관계있을 경우에만 다른 인물들을 기록한다.
따라서 누가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고 있다.
ㅇ글라우디오 - 로마 제국의 4대 황제로서 그의 재위 9년(49년 경)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追放令)을 내렸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이 추방령이 내려지게 된 동기는 로마의 유대인 사회 내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으로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수에토니우스가 언급한 크레스투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고, 그 소동이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를 두고 충돌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년 후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회심하기도 했다는 본서 28:17 - 29의 기록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R.C.H.Lenski).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ㅇ업(業)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 크고 번창한 도시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이 새로이 전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생계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했다.
바울은 전도 여행중에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20 : 34 :고전 9: 1 - 18 : 고후 11 : 7 - 12 : 살전 2 : 9 : 살후 3 : 7 - 10). 당시 천막은 바울의 출신지인 길리기아의 다소 근방에서 산출되었던 염소의 피륙이나 기타 가죽으로 제조되었다고 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전통이나 유산을 물려줄 뿐 아니라 기술을 한 가지씩 가르쳐 주어 차후에 생계 유지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그런 기술을 어떻게 익히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는 낯선 곳에 당도(當到)하자 그의 기술을 사용하여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사람이나 가죽 기술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물었을 것이고 그런 계기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을 것이다. 이들은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ㅇ안식일마다 - 바울은 평일에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였고 안식일이 되면 으례히 그의 습관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전파했다. 쟈안(Zahn)의 견해에 따르면 당시 고린도에는 회당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ㅇ강론하고...권면하니라 - 바울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대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는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에 의하여 곳곳에 유대교 회당이 설립되었고 또 그들에 의하여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구약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흩어진 유대인들에게서 구약성경을 배우게 된 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율법의 조항을 부분적으로 준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회당 예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이 율법을 준수하며 회당 예배도 참석하였지만 유대교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거나 완전한 개종자들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유대교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에 의해 이방 민족을 무시한 데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율법을 배우고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은 유대교에서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 대부분의 유대인들로부터 부정한 자들로 여겨져 배척당하곤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한편 이때까지의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그다지 적극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 즉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속히 와서 자신의 사역에 참여할 때까기는 이곳에서의 사역을 어느 정도 크게 확대하는 것을 자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사역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의 언급이 없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ㅇ실라와 디모데가...내려오매 - 마침내 바울이 고대하던 두 명의 사역자가 당도했다. 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거나 아니면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먼저 도착하고 그 후에 실라가 빌립보에서 도착했을 것이다(Lenski).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살전 3 : 6),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약간의 혼란이 생겼다는 섭섭한 소식도 전하였다(살전 4 : 13 ; 5: 11).
바울은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나서 이에 대한 답장을 썼는데 이 서신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하여 혼란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번째 서신인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하였다.
한편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다(고후 11 : 9 ; 빌 4 : ]4, 15).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은 이 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ㅇ말씀에 붙잡혀 - 실라와 디모데가 온 후 바울의 회당에서의 말씀 증거는 안식일에만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현금 덕분으로 장막 만드는 일에서 벗어나 말씀 준비에만 몰두했고 또 준비한 말씀을 전하는데만 전력 투구(全力投球)했다.
특히 '붙잡혀'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쉬네나케토'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이러한 사역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지속되었음을 나타내 준다.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ㅇ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 '훼방하거늘'이란 뜻의 헬라어 '블라스페문톤'은 '신성 모독'이라는 뜻으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과 대적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신성 모독이었다. 특히 '대적하여'를 나타내는 '안티타쏘'는 '반대편'이라는 뜻의 '안티'와 '정돈하다', '배열하다'는 뜻의 '타쏘'의 합성어로서 유대인들이 바울의 반대 입장에서 전열을 가다듬어 게획적으로 대적하며 방해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와 같은 것이었다(13 : 46 -52). 바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사악하고 완악한 행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 전파에서 방향을 바꿔 이방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ㅇ옷을 떨어... 너희 피가...돌아갈 것이요 - 성경에서 '옷을 떤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엄숙한 맹세'나 또는 '저주의 행동' 등으로 받아들여졌다(느 5 : 13).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은 이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의 발에서 먼지를 떠는 모습을 통하여서도 비춰졌다(13 : 51). 바울이 이렇게 옷에서 먼지를 떠는 행동은 예수께서 12제자와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지 않는 자들을 향해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과 유사하다(눅 9 : 5 ; 10 : 11).
이렇게 발이나 옷에서 먼지를 떠는 것은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마을에 들어갔다 나오면 으례히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는 모습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발의 먼지를 떠는 것은 부정한 모든 것을 거룩한 곳인 자신들의 땅에 묻혀 들어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행동이다. 즉 종교적으로 정죄되었던 이방인들의 영향력을 제하여버림과 동시에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행동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역이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복음과 무관(無關)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방법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편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라는 바울의 말은 겔 3 : 18 ; 33 : 4, 8 ;삼하 1 : 16에 나타난 말씀이다. 아울러 이 말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기 위해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면서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마 27 : 25).
이는 결코 단순한 저주나 악담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자는 죽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또 그 책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이 말씀은 바울이 최선을 다해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으나 유대인들이 이것을 끝내 거부했으므로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자멸을 초래한 것이다.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ㅇ디도 유스도 -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Titus justus)의 집이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 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 준다. 추측건대 그는 B.C. 44년 로마 황제 가이사(Julius caesar)가 고린도롤 재건할 때 이곳에 정착했던 로마인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한편 람세이(Ramsay)는, 디도는 그의 둘째 이름이고 유스도는 셋째 이름이며 그의 첫째 이름은 다름아닌'가이오'(Gaois)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이 디도가 롬 16 : 23의 가이오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전 1 : 14에서 바울은 그의 고린도 전도 초기에 개인적으로 세례를 준 '가이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장소가 되었다.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ㅇ회당장 그리스보 -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하다. 여기서 그리스보가 고린도 선교 사역의 최초의 열매처럼 보이지만 고전 16 : 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렇지만 고린도에서 바울이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다(고전 1 : 14). 바울이 직접 그리스보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그가 회당장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매우 비중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것이다. 다른 일반개심자들에게 바울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은 이유는 그 사역을 이미 실라와 디모데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고전 1 : 14 - 17). 아무튼 그리스보의 걔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ㅇ수다한 고린도 사람 - 이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받아들인 이방인 개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헬라인들과 로마인들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누가는 유대인들이 이방지역에 거주한다고 해서 그들을 '고린도 사람들'이라는 형태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도 숫자상으로 많지 않으므로 '수다한'이란 의미 속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많은 로마인들이 고린도에 거주했고 많은 헬라인들도 경제적인 것을 비롯하여 기타 이유들로 인해 고린도에 많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또 그들로부터 많은 결실을 거두었을것이다. 이때의 개심자들로는 유스도와 그리스보를 제외하고도 에배네도와 스데바나(롬 16 : 5 ; 고전16 : 15) 그리고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고전 16 : 17) 등 다수의 이방인들이 있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고린도 서신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는 대개가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 렌스키(Lenski)는 고린도 교회에 있던 게바의 추종 세력들(고전 1 : 12)은 이 소수의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ㅇ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 원문상 이 부분은 현재 분사와 미완료 과거형으로 구성된 구절로서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바울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으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인 부흥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이다. 이것은 공동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ㅇ주께서 환상 가운데 - 바울은 이미 여러차려에 걸쳐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다메섹(9:4)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때를 위시하여, 드로아(16:9), 예루살렘(22:17) 등지에서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환상 가운데 예수를 만나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그는 차후에도 환상 가운이 예수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된다(23:11;27:23). 이렇게 때때로 환상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는 바울이 그의 사역을 흔들림없이 굳건하게 수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ㅇ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 고린도의 유대인들 회당장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자급 인사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보고 바울에 대해 보복(報復)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바울은 그로 인해 큰 동요가 생기기 전에, 그리고 유대인들이 핍박이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기 전에 조용히 고린도를 떠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16:19-19;17:13, 14).
바울은 고전 2:3에서, 자신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두러워하며 떨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심령이 위축되어 영적 위로와 격려가 꼭 필요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말씀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주신 것과 유사하다(출 3:12; 신 31:6; 수 1:5, 9: 사 41:10;43:5; 렘 1:8).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ㅇ네가 너와 함께 있으매. 이 말씀은예수께서 부활. 숭천하실 때 이 땅에 있는 그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다(마28:20).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의한 약속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바울이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오랜 선교 여행과 지속적인 말씀 전파 그리고 지속되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위협으로 지치고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약속을 바울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심으로 그에게 위로를 주시고 있는 것이다.
ㅇ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 이는 앞으로 바울이 전혀 박해를 받지 않거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앞으로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며 고난도 당할 것이지만 그때마다 그와 함께 예수께서 계시사 그 어려운 상황을 넉넉히 극복하게 할 것이며 아무런 허도 받지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12-17절).
ㅇ내 백성이 많음이라 - 여기서 이르는 백성은 곧 바울의 복음 증거로 구원허야 할 많은 고린도의 사람들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시기로 택정한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 성 내이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의 권속(券屬)으로 삼으셔서 그의 아들이 되게 할 것을 예정하셨다(롬 8:29; 엡 1:5).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과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엡 1:4 - 11;2:8, 9).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예정을 궁극적인 목적은 그가 예정하셔서 구원하신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개개인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결단과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바로 이 고린도 성 내에는 아직까지 바울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피택된 백성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11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ㅇ일 년 육개월을 유하며 - 1년 6개월의 기간에 대해서나 학자 간에 다소 의견에 차이가 있다. 즉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해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의 전체 기간을 말한다는 의견(Zahn, Haenchen, Longenecker)과 바울이 환상을 경험한 후 고린도에 머문 기간만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다(Robertson, Whitelaw). 여기에서 어느 것이 정확한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적어도 1년 6개월 고린도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린도에 머물며 참으로 당사역을 수행했다.
한편 롬 16:1 과 고후1:1 을 살펴보면 고린도와 인접한 아가야와 겐그레아 항구까지 복음이 전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바울이 그러한 지방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추측할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바울은 주로 고린도 내에서 활동하였고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인접한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추측이 훨씬 더 타당하다(Lenski). 특히 '유하며'의 헬라어 '에카디세' '머물다', '거주하다'는 뜻으로 바울이 고린도를 벗어나지 않고 전도 사역을 지속했음을 시사한다.
ㅇ하나님의 가르치니라 - 바울이 고린도 성 내에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다. 바울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관한 것이었다(17:31). 이 사실에 근거해 볼 때 화목을 이루신 예수를 전파했고 또 그를 믿는 믿음에 관해 가르쳤을 것이다.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ㅇ갈리오가 아가야 총독되었을 때 - 갈리오는 본명이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로서 코르도바 츨신이고 스페인의 뛰어난 수사학자이며 갑부인 마르쿠스 안네우스 세네카(M.A. Seneca : B.C.50 - A.D. 40)의 아들이며, 스토아 철학자, 정치가, 희곡작가인 루키우스 안네우세네카(B.C. 4-A.D. 65)의 동생이었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통치 기간(A.D.41-54)중에 그는 로마로 가서 로마의 수사학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었으며 A.D.51년 7월 1일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다. A.D. 65년 네로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그는 네로로부터 자살할 것을 강요받고 그로 인해즉게 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갈리오가 부임한 아가야는 B.C.27 15년까지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있고 그후 황시령이 되었다가 다시 A.D. 44년부터 원로원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따라서 이 당시 아가야는 지방 총독의 통치를 받았다.
ㅇ유대인이...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 바울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기전 약 8, 9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선교사역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A.D.50 년 가을부터 A.D. 51년 7월 초순까지). 이 기간 동안의 바울의 사역에 대해 유대인들은 많은 불만이 있었던 듯하다. 그 즈음에 총독이 새로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교를 봉쇄하고 새로운 총독도 시험해 보기 위해서 게략을 꾸몄던것같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을 총독에게 데려가 고소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미 빌립보에서 바울을 관원들에게 데려가 고소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16:19 ). 그리고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며 바울을 잡고자 했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한다(17:51). 한편 유대인들이 총독이 바뀌는 상황을 틈타 바울을 고소한 것은 때우 교묘하다. 아마도 이들은 임지(任地)로 처음 부임하는 고관이면 으례히 그 지방 주민들로부터 환심을 얻고자 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새로운 총독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ㅇ율법을 어기어...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바울이 불법 종교(religio illicita)를 전한다는 것이다. 로마법상 로마 정부로부터 공인되지 않은 종교를 전하는 것은 불법 행위였다. 그런데 유대교는 당국으로부터 승인된 공인 종교(religio illicita)였다. 따라서 유대교는 자유로운 예배행위를 허유받았고 나아가 로마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신들과는 달리 공인되지 않은 불법 종교를 로마의 법을 어기민서 전하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2) 바울이 로마법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형태의 종교를 전파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3) 바울이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의 칙령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Caligula)의 경우는 자신을 살아있는 상(像)을 예루살렘 성전안에 둠으로써 유대인들이 깊은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글라우디오가 횡제로 즉위하면서 그는 칙령을 발표하며 유대인들에게 로마 제국 내의 어느 곳에서든지 그들의 관습과 율법을 자유릅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자유로은 관습을 간섭하고 훼방하므로 결국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있다고 고소한 것이다. 이들 견해증 14, 15절에 언급된 갈리오의 말을 염두에 둘때 첫번째 견해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ㅇ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 로마법상 재판은 원고(原告)의 고소와 피고(被告)의 변호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원고와 피고는 마주 서서 재판장을 향해 각자가 자기주장을 하게된다. 바울도 역시 원고의 고소 내용에 따라 자신을 변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갈리오의 변호 승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바울은 자신을 변호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갈리오가 이 사건 자체를 기각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ㅇ부정한 말이나 괴악한 행동 - 이는 갈리오가 재판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나타낸다.
ㅇ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 갈리오가 갖고 있는 법적인 권한이 제시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의 고소가 법정에서의 판결이 필요한 믿.형사상의 문제라면, 갈리오는 성심껏 판결을 내려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ㅇ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 갈리오는 이 고소 사건이 민.형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 자체 내의 '언어와 명칭과 그들의 법'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언어'는 곧 '말씀'(로고스)을 나타내는 것이고 '명칭'은 메시야와 관련된 '이름'(오노마타)을 뜻하는 것이며 '법'은 곧 '율법'(노모스)을 나타낸다. 따라서 갈리오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볼때 이 사건은 자신이 재판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왜냐하면 총독이 해야 할 일은 로마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관계 있는 민.형사상의 문제를 재판하는 것이지 유대의 종교 문제를 중재(仲裁)해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리오는 개인적으로 민.형사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도 매우 번거롭고 성가셨을 것이므로 그는 그의 책임 영역 밖의 종교 문제까지 중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갈리오는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문제를 유대인들 스스로 처리할것을 명령함으로써 종결지어 버린다.
한편 이는 A.D. 49년 경에 있었던 로마의 유대인 사회내의 폭동을 갈리오가 염두에 두어 그러한 폭동이 고린도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갈리오는 그의 재임 기간 초기부터 이러한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하지 않고자 했던것 같다.
16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ㅇ저희를...쫓아내니 - 갈리오의 이러한 결정이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해서 내려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마게도냐 선교 당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었다(14:5, 19;16:19;17:5;고후 11:24-27). 따라서 만일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억지 고소내용대로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면 이 전례를 따라 각 지역의 행정관들은 동일하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고 바울은 무수한 어려움 속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그 터무니없는 고소를 물리쳤다. 갈리오의 명망과 지위를 고려할 때, 이 결정은 훗날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하였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순탄케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Richard N.Longenecker).
한편 유대인들은 갈리오의 기각(棄却) 선고를 듣고서도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해서든 총독을 설득시키려고 계속 남아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을 것이나 총독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갈리오가 부하들을 시켜 그들을 쫓아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Lenski,Zahn).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ㅇ회당장 소스데네를...때리되 - 당시 그리이스-로마 세계에서는 반(反)유대주의 감정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갈리오도 이러한 반유대주의 감정에서 예외가 아니었고 이 재판정에서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갈리오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군중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갈리오 앞으로 끌고가 때리게 되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쟈안(Zahn)과 헨헨(Haenchen)은 그 재판에 실망한 유대인들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롱게네커(Longenecker)는 이 사람들이 헬라 군중들이라고 본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가 기각되고 총독이 유대인들을 냉대하는 것을 보자 반유대적 감정을 품고 있던 헬라인들이 책임자격인 회당장을 무고죄(誣告罪)로 구타한 것 같다.
한편 앞서 고린도에는 하나의 회당이 있고 그 회당장이 그리스보(8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회당장이 소스데네로 나와 있다. 그러나 다소 규모가 큰 회당에는 때때로 한 사람 이상의 회당지도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니면 소스데네는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게 되자 그의 후임으로 회당장 직분을 맡았을 수도 있다.
ㅇ얼마 있다가 -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 얼마 동안 체류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롱게네커(Longenecker)는 이 기간 52년 여름부터 53년 봄까지로 추정한다. 이 기간동안 그는 두 차례의 선교 여행을 돌아보며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숙의(孰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간 여독을 풀면서 3차전도 여행에 대한 게획을 세우며 준비하였을 것이다.
ㅇ떠나 - 누가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제1차나 2차 전도 여행과는 달리 바나바나 실라는 데리고 갔다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바울이 이번 여행을 홀로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ㅇ갈리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굳게 하니라 - 이 지역은 아마도 브루기아 방언과 겔틱 방언이 사용되는 지역인 갈라디아시 브루기아 지역이나 남부 갈라디아의 어떤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16:1-6). 바울은 이러한 지역을 다니면서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제자'들이 된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의 거짓 교훈에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서도록 격려하며 위로했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ㅇ더 여러 날 유하다가 - 바울의 전도여행을 살펴보면 바울은 항상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험한 상황들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곤 하였다(14:6,20;16:40;17:10;18:;19:8;20:1). 고린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여기서'여러 날' 더 머문 것이 앞서 11절에서 언급된 1년 6개월의 기간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추가되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런데 바울이 갈리오의 뜻하지 않은 옹호를 받게 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바울은 고린도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한 듯하다(I.H. Marshall).
ㅇ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기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26절;롬 16:3;딤후4:19). 이는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브리스길라의 신앙이 아굴라의 신앙보다 더 신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바울의 선교에 매우 헌신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이었다(롬 16:4).
ㅇ바울이...게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의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 일정 기간의 나실인의 서원(Nazurute viw, 21:17-26주제 강해 '나실인 제도' 참조)을 하였으며 이제 그 기간이 다 지나갔음을 보여준다(민 6:2-21).
원래 이러한 서원(誓願)은 예루살렘에서 온전히 마감되는데 그곳에서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다(민 6:13-21).
여기서 바울이 유대의 옛 관습을 좇아 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바울은 스스로 자기자신을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고(고후 11:22) 또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맺음할 때에도 그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23:6). 한편 혹자(Grotius, Meyer, ieseler)는 머리를 깎은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아굴라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는 거의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또 저자 누가가 아굴라 같은 인물에 관해서까지 그렇게 세세한 언급을 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한편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으로 고린도의 외항(外港)이며 지중해연안의 여러 도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도시에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며 전도하여 거둔 열매인 여집사 뵈뵈가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다(롬 16:1, 2).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ㅇ에베소에 와서 -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관할 지역의 수도이며 상업 중심지였다. 아울러 이 도시는 원로원과 시의회를 갖춘 자유 헬라 도시였다. 이곳에는 아데미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은 고대의 칠대 불가사의(七代不可思議)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A.D. 262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ㅇ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는 의미인 듯하며 이들의 체류 기간은 4, 5년 정도로 짐작된다.
이들은 이곳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대접하며 바울의 서신을 통해(고전 16:19) 고린도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데메드리오의 공격시에(19:23-41) 이곳에 있었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으며(롬 16:4) A.D. 54년(혹 56년) 글라우디오 횡제가 죽은 후 로마로 돌아갔다(롬 16:3). 한편 이 때의 실라와 디모데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계속 머물며 그 곳의 사역을 감당했거나 아니면 바울과 계속 동행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에베소에 돌아왔을 것이다(Longenecker).
ㅇ회당에 들어가서...변론하니 - 바울이 낯선 땅에 들어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회당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그의 선교 방법이었다(4절;13:5, 14;17:1, 10,17:19:8). 그런데 바울이 회당을 찾은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회당을 찾으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꼭 안식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또는 토론과 담소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회당에 모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회당을 찾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고자 했기때문이었을 것이다.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ㅇ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매우 전망이 좋았고 사람들도 호의적이었다.
바울의 설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에베소사람들이 바울의 체류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한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가 왜 이렇게 여행을 서둘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21절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몇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ㅇ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바울 자신도 어느 정도 에베소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서의 아쉬움을 남긴 채 에베소의 선교전망과 이곳에 뿌린 씨앗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ㅇ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바울이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22절)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비잔틴 사본(Byzantine Text)에는 본 구절에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절기를 지키야 하리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본들의 구절을 참고해 보면 바울은 아마도 유월절 내지는 오순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서둘러 가려고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의 성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3.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전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의 서원을 지키기위해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을 것이다(18절;21:26).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ㅇ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탄 배가 수리아 안디옥의 항구 실루기아(Seieucia)에 정박하고자 했으나 강한 북동풍이 봄철 풍향 사정 때문에 쉬운 항로를 택하여 그곳보다 약 400KM 남쪽에 있는 가이사랴항에 상륙하였다고 주장한다(Haenchen).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풍향 사정이 아니었다면 바울이 얼마 후면 곧바로 다시 돌아갈 안디옥에서 무려 400KM나 떨어진 가이사랴에 굳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둔 것이고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목적(21절 주석 참조)을 간과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한편 가이사랴는 헤룻 대왕 이후 예루살렘의 항구 역할을 해왔다.
ㅇ올라가...내려가서 - 어떤 학자들(Knopf, baurnfeind)은 본 구절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성도들의 안부를 물어보려고 항구에서 가이사랴 성내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랴 항구까지 온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l.H.Marshall).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104KM 떨어겨 있었으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사실 팔레스틴의 지형상 헤브론쪽의 방향을 제외하고난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서든지 윗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헬라어 원문에서 올라가다'를 뜻하는 '아나바이노'는 뜻의 '카타바이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에 덧붙여서 '교회라는 뜻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더욱 더 확증해 주고 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으며 이번이 그중 4번째였다(9:26;11:30;15:4;21:17). 그리고 세차례에 걸친 바울의 선교 여행은 모두 예루살렘 방문으로 마감되었다고 본다(본절:15:4;21:15).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두번째 선교 여행의 결과를 보고하고 이 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결속(結速)올 다졌을 것이다. 아울러 축제에 참석하여 30일간의 결례기간을 가진 후 성전때 올라가 그의 서원대로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방문 목적이 끌나자 그의 이방 선교의 전도 기지인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 약480KM 지점에 있었다.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ㅇ알렉산드리아 - B.C 332년 알렉산더대왕이 세운 중요한 해양 도시이다. 상업의 중심지요,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B.C. 280년경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서인 70인역(LXX)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대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는데, 유대인들이 크게 번성하뗘 당시 인구의 1/3이나 되었다 한다. 따라서 유대적 헬라 설학이 발달하였는데 그 철학자들 중 필로(Philo)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때까지 필로가 생존해 있었으로 아마 아볼로는 그 필로 학파의 일원이었던것 같다.
ㅇ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성경에 능한자라 - '학문이 많고'의 헬라어 '로기오스'는 '유식한', '말 잘하는'이란 뜻이다. 이는 아볼로가 천부적인 언변(言辯)과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또한 아볼로는 이 외에 '성경에 능하기'까지 했다. 즉 그는 그의 언변과 학식을 성경 연구와 그 연구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복음의 핵심을 몰랐다.
한편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한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잠시 머물다 떠난 후(19:1)부터 그가 제3차 건도 여행 때 다시 에베소롤 방문하기(19:1) 전의 기간이었다.
이 때에 아볼로가 에베소를 방문하여 영적 지도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ㅇ주의 도를 배워...요한의 세례만 알따름이라 - 아볼로가 어디서 어떻게 주의 도를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가 않다.
추측건대 그는 세례 요한의 몇몇 제자들을 통해 기독교의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누가의 저서에 있어서'주의 도'나 '하나님의 도'는 항상 '기독교의 가르침' 즉 복음을 의미했다(Haenchen).
그러나 아볼로가 주의 도를 아무리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다고 해도 세례 요한이 죽기까지 예수에 관해 이야기한 것만 부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흘츠만(Holzmann)은 아볼로가 세례 요한의 뒤를 잇는 인물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디벨리우스(Dibelius)는 아볼로를 통해서 혼합적인 반(半)기독교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캐제만(Kasemann)은, 아볼로는 사도 중심적 기독교에 대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기독교 교사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누가는 그를 불완전한 교사로 묘사했다고 한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ㅇ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 본 구절에서도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었다.
이는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에 있어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Haenchen).
이들 부부는 아볼로가 회당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가 복음의 진수(眞髓)에 대해 무지한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가르쳤다.
여기서 특별히 아볼로가 세례를 받았다는 언급이 없는데 이에 대해 혹자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아볼로가 이전에 받은 '회개의 세례'를 기독교적 세례로 간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Longennecker)고 주장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많은 학자들은 아볼로가 성령 세례를 밞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학자 간에는 이 구절이서 기독교의 성령 세례에 관해서 논하기도 한다.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ㅇ아볼로가 아가야로...많은 유익을 주니 - 베자 사본(Codex Bezae)에 따르면 에베소에 몇몇 고린도 교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아볼로의 이야기를 듣고 아볼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고린도에 갈 것을 부탁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에베소에는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사역하고 있었으므로, 또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바 은혜를 전하고싶어 고린도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볼로의 고린도 사역을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추천장을 써주기도 하였다. 결국 고린도에서의 아볼로의 사역은 후에 큰 결실을 거두었고 바울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전1-4장).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ㅇ성경으로써...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 아볼로 역시 바을과 마찬가지로 메시지의 핵심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집중시켰다. '성경에 능한 자'(24절)였던 그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공증 앞에서 그가 알고 있던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더욱더 설득력있고 확신있게 전하였다. 그의 능슥한 언변과 철학적 학식, 성경지식에 능통함 등은 그가 복음을 전하는데 뒷받침이 되었고 특별히 유대인을 설복시키는데 귀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아볼로의 사역을 근거로 마르틴 루터(M,luther)는 히브리서가 아볼로의 성경적 논증의 실례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이 유대교를 능가한다는 점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건들을 뒷받침할 만한 분명한 자료들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