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13.땅끝까지돌파개시.안디옥교회의금식기도안수_바울과바나바파송.1차전도여행(실루기아_구브로살라미/바보[엘루마사건]_비시디아안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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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3장 : 1-13(찬26.289 384.-교독42-) ...금식기도는 성령께서 그대 전존재를 온전히 소유하시도록 주권 내어드림이다!!


[안디옥교회 : 타문화 전도를 통해 처음 설립된 교회(행 11:19~21)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E-1; 동질문화권 전도)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E-2 ; 유사문화권 전도,E-3;타문화권 선교)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요8:31,32......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전13:9-12...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후3:12-18..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5:11-21....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30...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방어하는 교회가 아니라 공격하는 교회임을 알라!!)) 마16:18, 19...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방어하는바, 사망/음부의 문들이....공격하는 교회 권세를))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거듭난 믿는이들의, 합심_(금식)_기도의 비밀: 범사에 이김!! 그리스도의 그 능력 풀려남!!)) 마18:18-20...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부부만이라도, 일심으로))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교회))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다

1.  [다국적인으로 구성된 = 빈부귀천, 차별이나 편견 넘어선, 다민족이 다양성 중에서도 함께 하나된]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본명 요셉", 레위지파사람, 디아스포라:: 위로의 아들)와 니게르(흑인)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안디옥교회 설립자 중하나로 여겨짐)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특권층 지위 내려놓음)과 및 사울이라

2.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영적 유익 위함의 목적 가지고!! 평소에 하고 있었던 바...금식의 영적 능력 아는 교회였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금식은 곧 주 섬김의 참예배이기도 함을 증거하고 있음]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사울은 그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따로 세우신 그릇이라 하신 주님말씀을 분명히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바나바는 그 자신의 고향에도 이제 그 자신이 복음 전해야 한다는 영적 부담감을 항상 느끼고 있었음**오늘, 나는 분명히!! 주께서 주신 영적 부담감이나 그 어떤 소명이 있다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령이 있으니, 성경은 필요없다(직통계시우상화), 또는 성경이 있으니 성령은 필요없다(성경우상화) 모두 양극단임을 명심하라...치우침 없는 균형이 중요!!

....주님 뜻대로 두 사람을 따로 세운 후, 구체적으로 인도하심 받기 위해 다시 금식 기도!! -->재확인하고서 안수하여 파송함 :: 첫번째 금식은 주 사랑함 인함이었으나, 두번째 금식은 분명한 목적 확인하고, 결단-행동에 옮김 위한 영적 충만 예비함의 "주께서 친히 이 두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아 주세요"요청하는 금식이었다.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 기도는 주님 자신께서 스스로 자유함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원리원칙임을 기억하라//담임목사 두 사람, 선교사로 파송하라심!!에조차 순종하고 있는 안디옥교회였다..

......@@18C.영국교회는 국교회, 곧 태어나는 사람마다 자동적으로 신자로 인정했음--거기서 빚어진 치명적 문제는 참 회개가 사라져버린, 영적 무장 해제 상태의 무력함!!...그 가운데서 .감리회 목사인 .존 웨슬리는 말씀묵상-구제-성만찬 , 여기에 더하여 목회자가 되려면 반드시 수요일*금요일마다 (오후3시까지) 금식기도 훈련 통한 영적 경건훈련을 통과하는 이들에게만 안수 통해, 목회자 서임 받도록 정하였음..@@막2:19,20 묵상하라!!  [막2:18-20...*18.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모세의 3차례 40일 금식 기도..Q 마음을 움직이다!! ...**[시내산 꼭대기, 1차 40일 금식기도 -- 십계명 받기 위한 준비]...미리 상당기간 꼭대기에 머무르게 될것을 알려주었고, 주로부터 십계명 두 돌판 받은 직후 주님은 "금송아지 우상 만들어 섬김으로써 네 백성이 타락하였으니 너는 내려가라"...하셨었고...그들을 진멸하고 모세 잣긴을 큰 나라 되게 하시겠다 하셨으나, 모세는 중보기도모세의 분기탱천의 충동적 행동((주님이 친히 써 주신 십계명 두 돌판 던져 깨뜨려 버림)) --> 더 이상 주님 임재의 동행은 없을 것이지만 주님의 사자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 주시겠다 하시지만  모세의 끈질긴 40일 중보 금식 기도[제2차 ...우상 숭배 회개]) , 뒤이어 회막 중보기도로 마음을 돌이키시며, 모세의 구함 대로 주님의 영광을 회막에서 보여주고 계심....그 직후, 다시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오라(두 돌판 만들어 주시려) 하심따라 꼭대기에서 깊은 감사 가운데 [시내산 꼭대기에서 3차 40일] 금식 기도  끝날 무렵, 다시 계명을 새로이 베풀고 계심 + 두 돌판 다시 만들어 주심!!....[출32:7-14, 19...*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6.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하다...본래 이른비는 초막절직후 내리는 비로서 씨뿌림을 위한, 늦은비는 보리추수  직전의 열매 맺게 하는비를 지칭, 한편 성령 부어주심에 관해 적용할 때는  이른비 성령은 오순절, 늦은비 성령은 주님나라 도래  확장증대산출 위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른비--교회 탄생 :: 오순절 성령 임하심--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으로부터..//늦은비--이방 전도 폭발 위한 성령 부어주심 :: 금식이 일상이었던 안디옥교회로부터 시작..오늘날!! 금식-기도가 평범한 일상이 되도록 금식하는 교회마다에 늦은비 성령 부어주심 임할 것!! + 정한 날에(날을 정하여) 연합 금식 기도의 예배 가운데, 참되게 회개하며 돌이키고!! 깨닫도록 열어주시는 바, 주님 마음따라 마음 합하여 함께 구하라...디아스포라 교회여 일어나라!!)) 욜2:23-32...*23.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주여, 주님의 권능/능력으로 충만히 임하소서 *복음 듣는 그 사람의 마음 열어주세요 *사탄의 모든 궤계/방해를 막아주세요(..분명히 영적 실체가 느껴지면!!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주JC이름으로 대적하라, 추방 선포하라!!....오직 금식과 기도로 가능하다!!)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이고니온 거쳐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는 경험..디모데 확증 ..딤후3:11, 고후12:1-4) :: ......이 [삼층천] 경험이 (고린도후서12:1-6) 본서의 집필시기가 AD57년경이니. 14년 전이라면 A.D. 43년 경이었을 것이고 수리아의 길리기아에서 보냈던 '침묵의 세월'(약 A.D. 35-43년)에 있었던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일리가 있다(Harris)....그렇지만 혹자는 행14장의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여겨 성밖에 내쳐진 AD47년 그 때로 보기도 하고, 행 22:17에서 언급된 바 대로 성전에서 본 환상을 가리킨다고 추정한다(Hughes).


##지금 그대는 주 앙망-주목-바라봄-주이름 부름으로 성령 안에 거하여 교통하며 따라 행하는 자로서, 24시간 성령 안의 예배자로  걷는바, 오늘 주의 날, 열린 하늘, 그 하늘이 열린 바로 그날...예배하는 그대는 어디 있는가...보라, 기억하라, 밧모섬, 영어의 몸 상태였으되 사도 요한은 성령 감동 안에 있는 중에!!  예언 말씀 기록하라시는  영광의 어린양 JC를 보며, 보좌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있다....그 때,  실지로  그영 안에서 대제사장 JC 영광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다..

##reality  란 무엇인가, 진실과 실지 그 상황과 형편이기에!!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참 삶일지니!!

[계1: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4:1-11...*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1-14...*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6:1-17...*1.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7:1-17...*1.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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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3 Amplified Bible

===First Missionary Journey

1 Now in the church at Antioch there were prophets [who spoke a new message of God to the people] and teachers: Barnabas, Simeon who was called [a]Niger, Lucius of Cyrene, Manaen who had been brought up with [b]Herod [Antipas] the tetrarch, and Saul. 

2 While they were serv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P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3 Then after fasting and praying, they laid their hands on them [in approval and dedication] and sent them away [on their first journey].

4 So then, being sent out by the Holy Spirit, they went down to Seleucia, and from there they sailed to Cyprus. 

5 When Barnabas and Saul arrived at Salamis, they began to preach the word of God [proclaiming the message of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in the synagogues of the Jews; and they also had John [Mark] as their assistant. 

6 When they had traveled through the entire island [of Cyprus] as far as Paphos, they found a sorcerer, a Jewish false prophet named Bar-Jesus, 

7 who wa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c]proconsul [of the province], Sergius Paulus, an intelligent and sensible man. He called for Barnabas and Saul and wanted to hear the word of Go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8 But Elymas the sorcerer (for that is how his name is translated) opposed them, trying to turn the proconsul away from accepting the faith. 

9 But [d]Saul, who was also known as Pa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led by Him, looked steadily at Elymas, 

10 and said, “[e]You [Elymas] who are full of every [kind of] deceit, and every [kind of] fraud, you son of the devil, enemy of everything that is right and good, will you never stop perverting the straight paths of the Lord? 

11 [f]Now, watch! The hand of the Lord is on you, and you will be blind, [so blind that you will be] unable to see the sun for a time.” Immediately a mist and darkness fell upon him, and he groped around, seeking people to lead him by the hand. 

12 The proconsul believed [the message of salvation] when he saw what had happened, being astonished at the teaching concerning the Lord.

13 Now Paul and his companions sailed from Paphos and came to Perga in Pamphylia; but [g]John [Mark] left them and went back to Jerusalem. 

14 Now they went on from Perga and arrived at Antioch in Pisidia, and on the Sabbath day they went into the synagogue and sat down. 

15 After the reading of the Law and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the officials of the synagogue sent word to them, saying, “Brothers (kinsmen), if you have any word of encouragement for the people, say it.” 

16 So Paul stood up, and motioning with his hand, he said, “Men of Israel, and you who fear God, listen! 

17 The God of this people Israel chose our fathers and made the people great and numerous during their stay [as foreigners] in the land of Egypt, and then with an [h]uplifted arm He led them out of there. 

18 For a period of about forty years He put up with their behavior in the wilderness. 

19 When He had destroyed seven nations in the land of Canaan, He gave their land [to our ancestors] as an inheritance—this took about four hundred and fifty years. 

20 After this, He gave them judges until the prophet Samuel. 

21 Then they asked for a king, and God gave them Saul the son of Kish, a man of the tribe of Benjamin, for forty years. 

22 And when He had removed him, He raised up David to be their king: of him He testified and said, ‘I have found David the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conforming to My will and purposes], who will do all My will.’ 

23 From this man’s descendants God has brought to Israel a Savior, [in the person of] Jesus, according to His promise. 

24 Before [i]His coming John [the Baptist] had preached a baptism of repentance to all the people of Israel. 

25 And as John was finishing his course [of ministry], he kept saying, ‘What or who do you think that I am? I am not He [the Christ]; but be aware, One is coming after me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even as His slave]!’

26 “Brothers, sons of Abraham’s family, and those among you who fear God, to us has been sent the message of this salvation [obtaine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27 For those who live in Jerusalem, and their rulers, who failed to recognize or understand both Jesus and the voices of the prophets which are read every Sabbath, have fulfilled these [very prophecies] by condemning Him. 

28 And though they found no cause or charge deserving death, they asked Pilate to have Him executed. 

29 And when they had finished carrying out everything that was written [in Scripture] about Him, they took Him down from the [j]cross and laid Him in a tomb. 

30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31 and for many days (forty) He appeared to those who came up with Him from Galilee to Jerusalem, the very ones who are now His witnesses to the people. 

32 And we are bringing you the good news of the promise made to our fathers (ancestors), 

33 that God has completely fulfilled this promise to our children by raising up Jesus, as it is also written in the second Psalm, ‘You are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fathered) You.’ 

34 And [as for the fact] that He raised Him from the dead, never again to return to decay [in the grave], He has spoken in this way: ‘I will give you the holy and sure blessings of David [those blessings and mercies that were promised to him].’ 

35 For this reason He also says in another Psalm, ‘You will not allow Your Holy One to see decay.’ 

36 For David, after he had served the purpose of God in his own generation, fell asleep and was buried among his fathers and experienced decay [in the grave]; 

37 but He whom God raised [to life] did not experience decay [in the grave]. 

38 So let it be clearly known by you, brothers, that through Him forgiveness of sins is being proclaimed to you; 

39 and through Him everyone who believes [who acknowledges Jesus as Lord and Savior and follows Him] is [k]justified and declared free of guilt from all things, from which you could not be justified and freed of guilt through the Law of Moses. 

40 Therefore be careful, so that the thing spoken of in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does not come upon you:

41 ‘Look, you mockers, and marvel, and perish and vanish away; For I am doing a work in your days, A work which you will never believe, even if someone describes it to you [telling you about it in detail].’”

42 As Paul and Barnabas were leaving [the synagogue], the people kept begging that these things might be spoken to them on the next Sabbath. 

43 When the congregation of the synagogue had been dismissed, many of the Jews and the devout converts to Judaism followed Paul and Barnabas, who, talking to them were urging them to continue in the grace of God.

===Paul Turns to the Gentiles

44 On the next Sabbath almost the entire [l]city gathered together to hear the word of the Lord [about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45 But when the Jews saw the crowds,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began contradicting the things said by Paul, and were slandering him. 

46 And [at the same time] Paul and Barnabas spoke out boldly and confidently, saying, “It was necessary that God’s message [of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be spoken to you [Jews] first. Since you repudiate it and judge yourselves unworthy of eternal life, now we turn to the Gentiles. 

47 For that is what the Lord has commanded us, saying, ‘I have placed You as a light for the Gentiles, So that You may bring [the message of eternal] salvation to the end of the earth.’”

48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began rejoicing and glorifying [praising and giving thanks for] the word of the Lord; and all those who had been appointed (designated, ordained) to eternal life [by God] believed [in Jesus as the Christ and their Savior]. 

49 And so the word of the Lord [regarding salvation] was being spread through the entire region. 

50 But the Jews incited the devout, prominent women and the leading men of the city, and instigated persecution against Paul and Barnabas, and drove them forcibly out of their district. 

51 But [m]they shook its dust from their feet in protest against them and went to Iconium. 

52 And the disciples were continually filled [throughout their hearts and souls]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Footnotes

Acts 13:1 A Latin word spelled with Greek letters.

Acts 13:1 Herod Antipas, the Herod who beheaded John the Baptist.

Acts 13:7 In a Roman province, the proconsul was head of the local government.

Acts 13:9 Saul was the apostle Paul’s Jewish (Hebrew) name. As his ministry to Gentiles began he became known by his Roman (Latin) name, Paul.

Acts 13:10 Elymas’ claims of having “special power” or “secret knowledge” were based on his deceitful use of illusions.

Acts 13:11 This is Paul’s first recorded miracle.

Acts 13:13 John Mark and Barnabas were cousins and his departure caused a rift between Paul and Barnabas (15:37-39). The reason for his departure is not stated in Scripture.

Acts 13:17 The symbol of God’s great power.

Acts 13:24 Lit the face of His entering, representing a Hebrew/Aramaic idiom (and indicating that Paul was speaking in Aramaic).

Acts 13:29 Lit wood.

Acts 13:39 Because of one’s personal faith in Jesus Christ as Savior, God graciously credits His righteousness to the believer. Justification denotes a legal standing with God as designated only by God. God declares a believer to be acquitted (absolved, freed of all charges), then designates the believer to be brought into right standing before Him.

Acts 13:44 Antioch in Pisidia.

Acts 13:51 A symbolic act expressing contempt for a place that had rejected the message of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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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개요)

지금까지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대로  복음이 본격적으로 폭넓게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되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물론,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그 문이 열리기는 하였지만  그 후에도 일정기간까지는  여전히 복음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다(11:19). 

언뜻 보면 이방 세계에 비치기 시작한 빛이 사라진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본 장에 보면 그 위대한 선한 사업이 수 년 내에 다시 활발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유대인들이 복음의 첫 열매가 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대다수가  이를  거절하므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행위의 대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Ⅰ.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엄숙하게 안수하여 주변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사명을 맡긴다. (아마도 다른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명을 받아 같은 사명을 띠고 제각기 흩어진 것 같다(1-3).

Ⅱ. 그들이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거기서 마술사 엘루마의 훼방을 받는다(4-13).

Ⅲ. 바울이 비시다아 안디옥의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우리는 이 가르침의 서두를 보아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대체 무엇을 전하였는지 짐작하게 된다(14-41).

Ⅳ. 복음을 이방인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에게 전한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변박하므로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품고 있던 불쾌한 생각에 대하여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하나님이 사도들과 함께 하신다(42-49).

Ⅴ. 신앙이 없는 유대인들이 사도들에게 끼친 고통.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다른 장소로 옮긴다(50-52).

---이와 같이 13장은 사도들의 얼마나 신중하게 또 점진적으로 또 상당한 근거 아래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고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부지런히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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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행 13:1-3)

본문에서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라는 주님의 사명이 수여되고 있으며, 금식과 기도를 한 후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사명이 주어지는 내용이 수록되고 있다.

Ⅰ. 본문에는 개척되었던 안디옥 교회의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다(11:20).

1. 안디옥 교회에는 훌륭한 사역자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거기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1절) 하였으니 이 말은 은사와 은혜와 봉사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면서 혹은 선지자로 혹은 교사로" 사람들을 세우셨다(엡 4:11). 안디옥에 이 두 요소가 다 갖추어 있었다. 

아가보는 선지자요 교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언자가 아닌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사람들은 때로 신의 영감을 받기도 하였고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하늘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예언자(선지자)란 칭호도 그들에게 주어졌고, 게다가 그들은 교회의 교사로서 신앙적인 모임에서 성서를 해석하며 그리스도교리를 적절히 적용하여 가르치는 일을 맡아 하였던 바, 이들은 모두 예언자요 서기관이요 교사였다. 

이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마 23:34) 이와 같이 여러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자질이 주어졌다. 

안디옥은 대단히 큰 도시였고 또한 그곳에 기독교인들도 많았다. 따라서 그들은 한 곳에 모두 모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각 집회처마다 머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많은 교사들이 절대 필요했던 것이다. 

바나바의 이름이 처음 기록된 것은 그가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이요, 사울이 맨 끝에 언급된 것은 아마 그가 제일 젊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후에는 나중된 자가 앞서므로 사울은 교회에서 더욱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다른 세 사람이 나온다.

(1) "시므온" 또는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다. 그는 다른 시몬과 구별짓기 위하여 그의 머리 색깔을 따라 "니게르" 즉 "검둥이 시몬"이라 불렀다.

(2) 구레네 사람 "루기오"이다. 

어떤 이는 루기오를 사도행전을 쓴 누가와 동일 인물로 생각한다(라이트푸트 박사에게 그런 경향이 있다). 

누가는 본래 구레네 사람이었고 구레네 대학 아니면 예루살렘에 있는 회당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3) "마네아(마나엔)"로서 그가 "분봉왕 헤롯과 함께 양육되었고" 같은 우유를 먹고 자랐고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에게서 배웠으며 더 나아가 그의 계속적인 동료가 되었던 것 같다. 이같이 그는 지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육을 받는 데 있어 헤롯의 친구였고 따라서 관계에 진출하는 길이 그에게 넓게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 모든 희망을 포기하였다. 그는 모세가 "자라서 비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워지기를 거절하였듯이" 그의 영화로운 생을 포기하였다. 그가 자기와 함께 자라난 헤롯과 합세하였다면 그도 블라스도의 지위와 같은 지위를 얻었을 것이었고 그의 궁내대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폭군과 함께 사귀며 박해자가 되는 것보다 성도들과 사귀며 고통당하는 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

2. 그들은 주를 위하여 충성하였다(2절). "그들은 주를 섬겨 급식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부지런하고 신실한 교사들은 참으로 주님께 충성한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을 가르치므로 그리스도를 섬겼다. 그들은 진실로 그의 영예를 높였고 그의 나라를 위하여 일했다. 

기도하며 가르치는 일로써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두 가지 의무가 본문에 한 가지로 다루어지고 있다)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교회의 종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목회의 목표를 그에게 두었고 또한 상급도 그에게서 받을 것이다.

(2)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를 섬기는 것은 교회와 교회에 속해 있는 교사들이 해야 할 고정된 임무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시간이 배정되어야 하며 매일 얼마를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봉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과 교역자들에게 있어서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보다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골 3:24; 롬 14:18).

(3) 신앙적인 금식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겸손의 표시며 금욕의 수단이 된다.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랑이 떠난 후에 그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괴로움을 견디기로 공부한 사람들처럼 금식을 많이 하였다.

Ⅱ.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구분해 세우실 것을 명하셨다. 

나머지 사람들이 매일의 일과를 수행하는 동안 성 안에 있던 몇몇 사역자들이 모여서 금식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그 때에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하셨든지 또는 성령께서 예언자였던 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심으로써 알게 하셨든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말씀이었다. 

성령께서 그 임무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바나바와 바울은 이전의 부르심을 통하여 그 의미를 알았다. 특히 사울에게 있어서는 "그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야 한다는 것과"(9:15), "그가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아야 한다는"(22:21) 사명이 주어졌다. 

이 문제는 이에 앞서 예루살렘에서 그들 사이에 결정된 것이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사람들은 할례받은 자들 가운데 복음 전하는 사명을 맡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에게 가도록 결정되었었다(갈 2:7-9). 

바나바도 자기가 바울과 마찬가지로 이 사명을 위하여 택하여진 것을 알았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추수하라는 명령을 받기까지는 추수할 것이 많았지만 이방인들을 추수하려고 스스로 먼저 나아가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에 이르기를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라고 기록되었다. 

명령은 "나를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역자들을 임명하신다.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그들은 그를 섬기는 일에 자격을 갖추게 되며 복음을 사랑하고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염려를 벗어버리게 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을 위하여 구별하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전을 섬기는 일을 위하여 바쳐지고 또 기꺼이 자신들을 드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듯이 구별된다. 

이들에게는 지시가 주어지며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재능과 진지성이 나타난다. "그들을 성별하라"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2.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주님과 성령을 위하여 구별된다. 

"그들은 나를 위하여 구별하여 세우라" 하신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불리움을 받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사역자로서 구별된 모든 사람들은 일을 시키기 위하여 택하여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게으른 종들을 보호하지는 않으신다. 

"감독으로 택함을 받은 자는 선행을 할지니"라고 말씀되었듯이 구별되어진 자는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안정된 생활을 위하여 택함받은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기 위하여 택하여진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할 일은 - 이 일을 위하여 그들은 구별된 것으로 - 이미 착수된 사업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이 일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고 외적인 부르심에 의하여 방향이 설정되고 택정된 것이다.

Ⅲ.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명 위탁을 위한 안수는 성령이 예비하신 체계에 준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안디옥교회의)일반 사역자로 불리워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일반적인 사역영역에 계속 쓰임받을 것이 아니라(바나바와 사울은 이미 전부터 둘 다 주의 사역자들이었었다), [이방인 전도 및 교회 개척이라는]특별한 사명을 주어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일에는 특수성이 있었고 그러기에 새로운 위탁이 요구되었던 바,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이 사명의 위탁이 "예언자들과 교사들의" 손에 의하여 전달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다. 

교회에 이렇게 지시를 하신 것은 교사들이 교사들을 안수함으로(이제 예언자들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명을 전수함으로 후손들을 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디모데 후서 2장 2절에도 이르기를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 하였다. 

그리하여서 본문에서는 당시 안디옥 교회의 신실한 교사들인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이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그들을 파송한 것이다"(3절). 그리고 이는 성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들은 두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주의 일군들이 선한 일을 하려고 나갈 때 그들의 같은 동역자요 군사된 형제들에게 특별히 성별된 기도를 받는 것이 좋다.

2. 그들은 다른 주의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3절). 

그리스도는 스스로 철야를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이러한 본을 보이셨다. 그가 사도들을 보내시기 전날 밤 그는 기도로 밤을 지새우셨다.

3. 그들은 두 사람에게 안수하였다.

(1)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의 두 사람의 현재의 임무를 그만 두게 하고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정당한 것이며 허락되어진 것임을 알리고 또 그들을 영예롭게 보내려 하였다.

(2)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복음사업에 축복이 임할 것을 간구하였고 하나님이 두 사람과 함께하셔 그들이 성공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또한 이 일을 위하여 그들이 일하는 데 있어서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할 것을" 구하였다. 14장 26절에 보면 바로 이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 

거기에 바울과 바나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안디옥은 원래 온 교회가 하나님의 은총을 빌어 주는 가운데 두 사도가 임무를 맡은 곳이더라." 

바나바와 사울은 그들과 대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또는 그보다 못한 사람들의 안수에 순복함으로 자신들의 겸손을 나타냈다. 

또한 다른 교사들은 바나바와 사울이 그들보다 앞서서 영예를 얻게 된 것을 시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함으로 기꺼이 그들에게 사명을 위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갈아 엎어야할 묵은 땅이 있는 나라들에 대한 염려로 "그들을 급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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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하다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엘루마가 장님이 됨(행 13:4-13)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었다.

Ⅰ. 바나바와 사울이 유명한 구브로 섬에 도착한 데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주어지고 있다. 

아마 그들이 발걸음을 그쪽으로 먼저 옮긴 것은 바나바가 이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4:36). 

바나바는 그의 새로운 사명에 따르는 그의 수고의 첫 열매를 그들에게서 얻기를 바랐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성령을 통하여 그들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 사업을 하는데 있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4절). 

성령께서 그들을 보내셨다면 또한 그는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힘을 주시며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성공을 주시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이민족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기꺼이 안디옥을 출발하여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제 구브로는 그들에게 아주 조용한 항구가 되었다.

2. 그들은 구브로 건너편에 있는 항구인 실루기아에 들려서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다. 

구브로섬에서 그들이 처음 간 성은 섬의 동편에 있는 살라미였다(5절). 

거기서 그들은 복음의 씨앗을 뿌린 후 "섬 가운데로 지나서"(6절), 서해안에 위치한 바보에 이르렀다.

3.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자기들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들도 제외시키지는 아니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변명할 수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을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원치 않았다." 

그들은 남모르게 활동하지 않았으며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야를 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공개하여 회당 지도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그들이 할 말이 있으면 복음을 반대하여 논쟁하도록 하였다. 

또한 그들은 별도로 행동하지도 않았고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그들과 그들의 회당에서 쫓아내지 않는 한 그들과 협조하려 하였다.

4. "그들은 요한을 그들의 수종자로 두었다." 

그러나 그는 막일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있어 그들의 조력자였다. 그는 그들이 가려고 계획한 곳으로 가는 길을 돕거나 또는 그들이 복음 전파를 시작한 곳에서는 그들의 복음 전하는 일을 도왔다. 

그는 그들이 공중을 향해 설교할 때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복음을 설명해 주었다. 

이와 같이 그는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유용하였다. 특히 낯선 지방에서는 더욱 큰 힘이 되었다.

Ⅱ. "박수 엘루마"와의 만남에 대하여 특별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를 총독이 거하는 바보에서 만났다. 

이곳은 비너스를 위하여 세워진 전각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 때문에 이곳을 파피안 비너스(Paphian Venus)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전파되어 악마의 소행들을 파괴하는 데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곳이었다.

1. 거기에 서기오 바울이라 칭하는 이방인 총독이 있었는데 그가 사도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자 하였다. 

그는 로마 황제 밑에 있는 이 지방의 총독이었다. 그는 성격이 신중한 사람이었으며 지혜있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감정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성으로 사리를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바나바와 사울을 초청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우리가 듣는 것이 하나님께 우리를 인도해내는 성격의 것이라면 더 들으려고 사모하는 것이 바른 자세임을 기억하자. 

이들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당한다 할지라도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추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고 또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복음 전도자들은 뛰어난 인물이 못되었다. 그렇다 하여도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면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에게 알릴 필요가 있고 그렇다면 그도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2. 거기서 유대인 박수 엘루마가 그들을 반대하여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들을 저지하려고 했다. 

이 유대인이 그들을 향하여 너무도 악의를 품었으므로 이것이 동기가 되어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계기가 이루어졌다."

(1) 이 엘루마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꾸미는 자요, "박수"며 "거짓 선지자"이며 거룩한 자로 여김을 받는 지였다. 

왜냐하면 그는 거룩한 것으로 꾸미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점쟁이로서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며 과거의 일을 알아 맞추었다. 아마 그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마귀와 연합한 자인 것 같다. 그는 여수아의 아들로써 이름이 바예수였다. 여수아의 아들이라 함는 구원의 아들이란 뜻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리아어로 그는 바르쇼마라 칭하여졌는데 그 뜻은 "자랑스러운 아들" 또는 "교만한 아들 - filius inflationis -"이란 뜻이었다.

(2) 그는 그 지방의 총독에게 의존하며 지냈다. 

총독이 바나바와 사울을 초청한 것처럼 그를 초청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억지를 부려서 총독을 수중에 넣고 그에게서 돈을 갈취하려고 하였다.

(3) 그는 바로의 궁정에서 애굽의 술사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였듯이 바나바와 사울에게 대적하는 일을 일삼아 하였다(딤후 3:8). 

그는 자칭 하늘에서 온 사자라고 하였고 그들은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또한 그는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고"(8절)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눈치를 채고 그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사단은 특별한 방법으로 위대한 인물들이나 권력있는 자들이 신앙을 지니지 못하도록 애쓴다는 것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그들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도록 조장하는 사람들은 악마의 일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4) 사울(본문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고 불리워지는데)은 이 일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로써 그를 공박하였다. 

본문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칭하여지고 있다(9절). 

사울은 히브리인으로서 또한 베냐민 지파로써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그의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유대식 이름으로 불렀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았으므로 로마식 이름으로 불렀었다. 

이는 바울루스란 이름이 로마인들 가운데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도시들 가운데서 그가 일하기 용이하도록 명칭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가 서기오 바울을 그리스도 신앙으로 회개시킨 때를 바울이라고 부르게 된 계기로 생각한다. 즉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얻은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바울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인들 가운데는 그가 어떤 지방을 점령하면 그가 그 지방의 이름을 따서 자기 이름을 짓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예를 들면 "게르마니쿠스라든가 부리타니쿠스라든가 아후리카누스"라든가 하는 이름이다. 

서기오 바울은 그가 사울에 대한 우정과 존경의 뜻으로 바울이란 자기 이름을 그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베스파시안 황제도 그의 이름인 플라비우스를 유대인 요세푸스에게 하사하였던 것이다.) 이제 바울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자.

① 그가 "성령으로 충만하였다"고 했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원수노릇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는 자를 대항한 거룩한 열심히 충만하였다. 

"불타오르는 영"도 성령의 은사의 하나이다. 그는 능력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그에게 퍼부었다. 

"심판의 영"도 성령의 은사의 하나이다. 그는 보통 때보다 강한 정열을 마음 속으로 느꼈다. 

그는 미가 선지자가 "여호와의 신으로 채움을 얻었을 때"(막 3:8)와 마찬가지의 모습이었고 또한 에스겔 선지자가 "그의 얼굴이 화석보다 더 굳어졌음같이 되었다"(겔 3:9) 했을 때의 그러한 모습이었다. 

또 이사야 49장 2절에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셨다" 함과 같았다. 

바울이 말한 것은 어떤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고 성령께서 그의 영혼을 강하게 충동하셨으므로 우러나온 것이었다.

② 바울이 "엘루마를 주목하였다." 

즉 그의 사악한 수작에 대처하여 정면으로 그를 위압하였고 또한 거룩한 용기를 표시하였다. 

그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그를 향하고 있음을 표하려는 듯 그를 주목하여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호와의 얼굴이 그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시 34:16). 

또한 그는 엘루마가 자기가 행한 행위에 대한 후회의 표정이 있는가를 그의 안색에서 분별해 보려고 그를 주목하여 바라보았다. 

만일 그에게서 자책의 기미라도 발견하였다면 저주를 받는 것을 면했을 것이다.

③ 바울은 엘루마의 참 면모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알기 보다 더 그들을 잘 아시는 성령으로 그러하였다(10절). 그는 엘루마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첫째, 마귀의 자식이라 하였다. 

악한 자의 소생으로 악마의 화신인 가인이 그의 형제를 살해한 이후 지옥은 이 세상에 존재하여 왔었다(이 세상은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터였다"). 그가 동생을 죽인 것은 "그의 행위는 악하였는데 그의 형제는 의로웠기 때문이었다." 이 엘루마는 비록 바예수 즉 "예수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지기는 하였지만 그는 참으로 "마귀의 자식"으로 그의 탈을 쓰고 마귀의 욕망에 사로잡혀 악마의 이익을 위하여만 일하였다(요 8:44). 

어린이가 그 아버지를 닮듯이 그는 두 가지 점에서 마귀를 닮았다.

1. 간교하다는 점이다. 

"뱀이 땅의 어떤 짐승보다 간교하였더라"(창 3:1). 이같이 엘루마도 참된 지혜는 결핍되어 있었지만 "모든 궤계로 가득 차" 인간들을 속이고 그들에게 부담을 지게 하는 데 익숙해 있었다.

2. 잔인하다는 점이다. 

그는 "악행이 가득한 자"요 악의로 가득찬 심술궂은 인간으로 하나님과 선에 대하여는 돌이킬 수 없는 대적자였다. 

간교와 악행이 가득차면 드디어 그는 악마의 자녀가 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그는 하늘에 대한 적이었다. 

그가 악마의 자식이라면 악마가 그러하듯 그도 "모든 의의 원수가 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모든 의에 대해서 원수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의가 종합되어 완성되기 때문이다.

④ 그는 엘루마의 현재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그것에 대하여 타일렀다. 

"주의 바른 길을 굽히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주의 바른 길을 왜곡시켜 거짓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로 바른 길로 들어서서 그 길에서 행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첫째, 주의 길은 바르다는 사실이다. 

주의 길은 바르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완벽하다. 주 예수의 길은 바르다. 그 길이야말로 하늘 나라와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바른 길이다.

둘째, 이 바른 길을 그르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스스로 그 길에서 벗어나 방황할 뿐 아니라(엘리후가 참회하여 말하기를 "내가 바른 길을 그르쳤고 그것으로 내 유익을 삼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다), 다른 이들도 잘못 인도하여 그들에게 이 길과는 반대되는 불의한 길을 제시해 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불확실한 것이며 보잘 것 없고 또한 그리스도의 법은 이해할 수 없으며 비실제적이며 또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불쾌하고 아무런 유익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아야말로 주의 바른 길을 부당하게 그르치는 행위요, 주의 길이 굽은 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짓이다.

셋째, 주의 바른 길을 그릇되게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마음이 굳어져 주의 길이 바르다는 사실이 강력하고도 명백한 증거에 의해 밝혀진다 하여도 그들은 악행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 즉 네가 충고할지라도 결코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길을 자기의 길로 삼는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좋아하며 그들을 따라 가려고 한다."

⑤ 그는 엘루마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 당장 눈이 멀 것이라고 선포하였다(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 곧 의로운 손이 네 위에 있도다. 하나님이 너를 사로잡아 정죄하려 하신다. 왜냐하면 네가 그를 향하여 대적하였음이로다. 그러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이 심판은 그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주의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는 그의 악함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주의 바른 길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기적이었고 동시에 그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당연한 형벌이었다. 

그는 복음의 빛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즉 마음의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의 육신의 눈도 멀어서 태양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총독으로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려했다(그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신의"대리자였다. 고후 4:4). 그러므로 그는 저주를 받아 장님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관대한 처벌이었다. 단지 눈이 먼 것에 불과하지만 그는 마땅히 저주를 받아 죽어야 했던 것이었다. 

또한 "얼마 동안"이라고 하였다. 즉 그가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다시 시력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회개하지 않아도 시력이 회복되었으리라고 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심판의 의해서이든지 그의 자비에 의해서든지 그를 회개케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⑥ 이 심판은 즉시 이루어졌다. 

즉 소돔인들이 롯을 핍박할 때와 시리아인들이 엘리사를 핍박할 때에 그랬던 것처럼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었다." 

이 사건은 즉시 그를 잠잠케 만들었다. 그는 당황하였다. 또한 이 사건은 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말한 모든 것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이 되었다. 

자신이 벌을 받아 장님이 되었기에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총독의 양심의 안내자인척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더욱 큰 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유 13절). 

이제 엘루마는 자신을 통하여 참된 기적을 경험하였다. 이제 그는 "인도할 사람을 두루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가치있게 여기던 마술로도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도 없었고 또 그에게 친절히 길을 안내해 줄 친구도 찾지 못하였다.

3. 엘루마가 "총독으로 믿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또 이 기적은 박수 자신도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이것은 마치 "애굽의 술객들로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였다"는 말씀과 같다). 

총독은 매우 지각이 있는 사람이었고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본래 신적인 비범한 점들을 관찰하였다.

(1) 바울의 설교에서 그는 비범성을 보았다. 

그는 "주의 가르치심" 곧 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겼다." 

바울이 가르친 내용은 주님에게서 온 것으로 주께서 아버지에 대하여 발견하신 사실들과 주님 자신에 관한 것 즉 그의 인격, 본성, 직능, 사업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안에 놀랄 만한 것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복음을 알수록 더욱 복음에 대하여 기이히 여기게 되며 놀라게 된다.

(2) 이 기적에서 그는 기이한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또한 바울의 능력이 박수보다 훨씬 강하며 또 엘루마가 낭패하여 당황하는 것을 보고 그는 믿었다. 

그가 세례를 받고 완전한 개종자가 되었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바울은 그의 사명을 행함에 있어서 어중간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그는 완벽하였다." 

총독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관직을 물러났거나 방향을 전환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이 있는 총독답게 그의 영향력을 발동하여 그 섬에 기독교를 전하는 일에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카톨릭 교회 전승은 교권을 확립하려는 의도로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만나는 모든 뛰어난 개종자들에게 감독직을 수여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서기오 바울을 프랑스 나르본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본다. 그들에 의하면 바울이 스페인으로 여행하면서 그를 거기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Ⅲ. 구브로 섬을 떠나다. 

그들은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한 것 같다. 다만 기록된 것은 총독의 회심 같은 비범한 사실들만이었다. 

그들이 임무를 완수하였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하였는지 생각해 보자.

그들은 이 지방을 떠나 "버가로 갔다." 일행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와 동행하기를 원한 것 같고 그러므로 구브로에서 그 수효가 증가된 것 같다. 즉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를 떠났다. 즉 그의 열심히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은 선한 사업을 위하여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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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1)(행 13:14-41)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는 특히 다이아나 여신을 위하여 세워진 신전으로 인해 유명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저희가 거기를 지나갔다"(13, 14절)고만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의 여행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도의 여행에 대한 기록처럼 기록되어야 할 많은 가치있는 내용들이 빠졌다. 그것은 "만일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겠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그들이 간 곳은 또 다른 안디옥이었다. 이곳은 그들이 맨 처음 출발한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과 구별하기 위해서 비시디아에 있는 안디옥이라고 칭하고 있다. 비시디아는 밤빌리아를 경계로 하는 소아시아의 지방으로서 비시디아안디옥은 비시디아의 대도시였던 것 같다. 

많은 유대인들이 거기 살았고 그들에게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한 설교가 본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설교는 사도들이 각처에서 유대인에게 일반적으로 전하였던 설교와 그 본질이 같은 것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을 취급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받아들일 신앙이 그들이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 열성적인 구약과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Ⅰ.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집회에 참석함(14절). 최근에 그들은 로마인 총독을 회개케 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들이 안디옥에 이르러서는" 그 지방의 장관을 찾아가거나 그의 협조를 요청하지도 않고 유대인들에게 갔다. 이 사실은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더욱 열심히 있었고 또 그들의 안녕을 바란 좋은 증거였다.

1. 그들은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는 날인 그들의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끼리 있을 때는 주(週)의 첫 날을 기독교인의 안식일로 지켰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인과 만나게 될 때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그들은 이 같은 경우에는 때때로 편리한 방법대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형식적인 율법이 사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율법이 묻힌 예루살렘의 폐허 속에서도 율법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제 4 계명의 정신이 완전히 주일날로 의미가 전기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대인들의 예배에 그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이 잘못될 것도 없는 것이다.

2. 그들은 유대인들의 예배처인 "회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안식일은 경건한 집회에서 거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안식일은 주로 공중예배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나그네들이였으나 예배처를 찾아갔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모든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은 나그네들이었지만 회당에 입장하도록 허락을 받고 들어가 앉았다. 

공중예배처에서는 나그네들의 편의를 배려해야 한다. 그들이 가난한 자들일 경우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도 귀중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혼 때문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Ⅱ. 그들에게 말씀 전할 기회가 주어짐.

1. 회당에서의 일상적인 예배 절차가 진행되었다(15절). 즉 그날을 위하여 배정된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이 읽혀졌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일 때는 기도와 찬송으로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도 예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요 계명을 주신 분으로서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 된다."

2. 이 일이 끝난 다음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설교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15절). 

회당장들은 사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아마 회당장들이 그들을 만난 다음 그들끼리 사전에 합의를 한 것 같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열의는 없었다 하여도 호기심을 가지고 바울이 말하려는 것을 듣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을 뿐 아니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으면" 하도록 간청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집회에서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은 해석되고 백성들에게 말씀이 주는 교훈을 전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그물을 치는 것이요 백성들에게 말씀이 유익이 되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하므로 그들을 돕는 것이다. 즉 말씀을 그들의 삶에 적용하도록 돕는 것이라 하겠다.

(2) 집회를 주관하고 통솔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그들에게 권교의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때로 낯선 교역자들에게서 들은 권교의 말씀이 그들이 잘 준비하여 전할 때 백성들에게 대단히 유익이 된다. 

바울은 회당장들이 청하지 않았을 때도 "자주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자주 그들과 다투면서라도 말씀 전할 기회를 만들었다(살전 2:2). 그러나 본문의 경우를 보면 일반적으로 다른 회당장들보다 이 회당장들은 더 고귀하고 관대하였다.

Ⅲ. 회당장들의 청에 응하여 바울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행한 설교. 

그는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을 때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는 나그네이므로 이 일은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거절하지 않았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마지 못하여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마치 준비라도 한 사람처럼 "일어서서 손짓하여" 저희들에게 들을 자세를 갖추도록 하였다. 

그가 연사처럼 손을 흔든 것은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 줌으로 들으려는 열의를 불러 일으키려는 데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 말씀 전할 기회를 준 데 대하여 회당 안에서는 회당장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은 바울이 설교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따라서 자칫하면 소동이 일어날 판국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점잖게 손짓을 해서 이런 움직임을 제지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그들이 편견을 갖지 않고 참고 들어 주기를 바라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태어날 때부터 유대인인 이스라엘 사람들아 또 유대 신앙으로 개종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잠깐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오. 내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평안에 관하여 말할 것이 있오. 그러니 내 말을 헛되이 듣지 말라"고 한다. 

이 뛰어난 설교가 기록된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 그들에게 안위를 주기 위하여 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대 민족들에 대하여 전혀 편견이 없었다.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돌이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설교 내용 하나 하나는 심판의 확실성을 보여 주며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JC를 약속된 메시야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깃든 것이었다.

1.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백성임을 상기시킨다. 

이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 타민족과 혼합될 위험을 안고 살았던 "흩어진 유대인들은" 본토 거주인들보다 더 그들의 특이성을 지키려는 열심히 강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바울도 본문에서 그들의 영예를 높여 주기 위하여 매우 주의깊게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1) "온 땅의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사"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며" 또한 그들에게 "다른 민족이나 백성들에게는 결코 알리시지 않은" 그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그들의 이웃 민족들보다 구별되고 또 품위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즉 특별한 교훈에 의하여 통치되어야 하며 특별한 약속에 의지해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그의 친구로 선택하셨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워졌다. 또한 그들의 조상들을 예언자들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그의 뜻을 그의 교회에 나타내셨으며 그가 교회와 맺은 계약의 보증인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고 또 이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선택에 충실하셨기 때문이었다(신 7:7, 8).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28절에는 "저희가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기록하고 있다.

(3)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높이시고" 그들이 많은 영예를 얻게 하셨으며 그들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으며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에" 진토에서 그들을 세우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아무런 조건도 없었지만 그렇게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채무자일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은 단순히 즉 그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지 그들에게 적은 가치라도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 그의 뜻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그가 원하신다면 이를 폐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선민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제거하신다고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에게 빚진 자들이었고 그러기에 그들은 그는 그의 뜻대로 사실 것을 알고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 그가 그의 교회에 이방인들을 더하실 계획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4)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한다. 

거기서 그들은 나그네였을 뿐 아니라 노예였으나 많은 기적을 베푸심으로 즉 그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그들의 압제자들에게는 심판을 행하셨고("기사와 이적" 신 4:34) 또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심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즉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고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던지셨도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주리라"(사 43:3, 4).

(5)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약 사십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셨음을 말한다(18절)(‘에트로포레센5159’). 어떤 이는 본문을 ‘로포포레센(에트포포레센)’ - 즉 그가 그들을 교육하셨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70인 역에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돌보듯이 돌본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신 1:31). 두 가지 뜻이 다 포함되었다고 보겠다. 왜냐하면

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그들을 위하여 많은 양식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적으로 빵을 먹이셨고 또한 기아에서 그들을 보호하셨다. "그들은 어느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② 그는 오랫 동안 그들을 참으셨다. 

그들은 도전적이고 불평이 많고 믿음이 없는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참으사 그들의 행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노를 오랫 동안 참으시되 모세의 기도와 중재를 통하여 노를 돌이키셨다. 

우리 각자가 이 세상에서 사는 연수가 여러 해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상냥하신 아버지로 모셔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공급해 주셨으며 "이 날까지 오랫 동안 우리를 먹이셨으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관용을 베푸셨고(그가 이스라엘에게 그리하셨듯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느 9:17) "우리가 잘못한 것을 그대로 갚지 않으셨다." 

그래도 우리는 그의 인내를 시험하였고 지칠 줄 모르고 그렇게 하였다. 유대인들도 그들의 선택의 특권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 특권을 수없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6)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19절).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이들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뽑힘을 당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들의 소유가 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는 징표이며 또한 그들에게 영예를 수여하신 증거이다. 그는 이 영예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려 하지 않으셨다.

(7)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백성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또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들을 핍박하였던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셨다(20,21절).

① 그는 그들에게 "사사를 세우셨다." 

이들은 공직을 수행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서  사건이 생겼을 때 영혼에 부딪쳐 오는 호소를 따라 부름에 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반역적인 백성이었지만 그들을 노예가 되지 않게 하셨고 설혹 죄로 말미암아 노예가 될지라도 그들이 간구하면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셨다. 

성서 비평가들은 "약 사백 오십년 간"이란 기간을 계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대다수의 견해를 먼저 보도록 하자.[생명의 관점]출애굽부터 시작하여"애굽에서 해방된 후에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시온에서 추방한 때까지가 "사백 오십년이 된다."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므로 이방 족속들을 완전히 추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주로 사사들이 통치하였다. 

^^또 다른 견해가 있다.(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긴 하지만) [사망의 관점]즉 여호수아가 사망시점부터 엘리의 사망시점까지의, 곧 사사들의 통치 기간이 "삼백 삼십 구년"으로 카운트 되고 있지만 이 기간은 (가나안에 입성하여 영토를 분할받고 거주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이민족의 압제하에 신음하고 있었던 110년을 더하면) 실상 사백 오십년이 되어야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그들을 압제하던 몇몇 민족들의 노예로 있던 시기가 사사시대의 중간에 있었으나 역사에 기록되기는 마치 이 기간은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압제받던 시기 "일백 십 일년"을  "삼백 삼십 구년"에다 더하면 사백 오십년이 된다고 본다. [지금 사도바울은 후자의 관점을 택하고 있으며 이제 선지시대시작을 알리는 사무엘로 연결시키고 있다!]

② 그는 예언자 사무엘을 통하여 그들을 다스리셨다. 사무엘은 신의 영감을 받은 자로서 백성들의 문제를 다스렸다.

③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므로" 그들의 요구에 따라 "기스의 아들 사도"를 왕으로 세우셨다(21절). 사무엘의 통치와 그 후에 계속된 사십년은 신정통치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④ 드디어 그는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셨다(22절).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폭정 때문에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왕위를 계승시키시리라는 계약을 세우셨다." 그가 한 왕을 제하시므로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곧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를 세우시되 천하고 낮은 지위에서 일으켜 "높이 세우시었다"(삼하 23:1).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증거를 인용한다.

첫째, 하나님의 선택은 거룩하였다. 

"내가 다윗을 세웠다"(시 89:20). 즉 하나님 자신이 그를 세우신 것이다. 발견하셨다 함은 그가 찾으셨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은 그의 목적에 합당한 사람을 찾으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샅샅이 찾으셨고 그래서 발견한 것이 다윗이었다.

둘째, 다윗은 신적인 성품의 소유자였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바라던 자란 뜻이요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요 그가 합당히 여긴 자였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처음으로 기름부음 받기 전에 그에게 수여된 것이었다(삼상 13:14).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였다"했으니 즉 그가 바라는 자임을 뜻한다.

셋째, 다윗의 행동이 거룩하였고 그는 신의 지시에 따라 행하였다. "그가 나의 뜻을 다 이룰 것이라."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를 사모하였고 또 그 뜻대로 행할 능력이 있었으며 그 일에 임명되자 이를 철저히 행하였다. 

이 모든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보여 줄 뿐 아니라(이런 사실을 인정하므로 이스라엘이 감사하는 심정이 되기를 사도는 바랐다) 그가 계획하고 있던 또 다른 성격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이제 그것은 복음이 전파됨으로 그들에게 제시되었다. 그들의 애굽에서의 석방과 가나안 정착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표상이었다." 

겉으로 보이게 나타난 바, 이스라엘의 정권의 교체는 그것이 예표요 모형일 뿐, 완전한 것이 못됨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그 본질인 바 영적인 메시야 왕국이 대두되어 이제 바야흐로 세워지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그 나라를 수긍하고 그 나라에 복종하면 영적인 메시야의 왕국은 "그들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복음이 유대 교회의 우수성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이 복음 전도에 대하여 시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 바울은 다윗으로부터 다윗의 자손에 걸쳐 설명하면서 우리 주 예수에 대하여 완벽한 설명을 그들에게 하고 있다. 

또한 이 예수는 다윗에게 약속된 자손임을 보여 준다(23절). 

"이 사람의 씨에서" 즉 "이새의 자손으로부터" 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였다."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게 된다.

(1) 이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졌을 때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전파가 어떻게 환영되고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① 이 복음은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준 구세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옛날의 사사들이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건졌으므로 "구원자들"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이 구세주는 역사에 의하여 입증된 바와 같이 사사들이 할 수 없었던 일 즉 그들의 가장 큰 적인 죄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분이다.

② 하나님은 구세주를 세우시고 그에게 하는 뜻을 이루도록 의탁하셨다.

③ 먼저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를 구세주로 세우셨다. "그는 그들에게 복을 빌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복음이 이스라엘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모으려고 시도된 것이다.

④ 옛 왕가인 "다윗의 씨로부터" 구세주를 세우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나 다윗 왕가는 현재 기억에서 망각되어 가므로 전 민족의 수치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음은"(눅 1:69) 그들에게 큰 기쁨인 것이다.

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구세주를 세우셨다.

 이 약속은 다윗에게 주신 것이요(시 132:11) 후에는 구약 교회에게 주신 약속이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렘 23:5) 하셨고 또 "이 약속은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26:7). 

그러면 어째서 유대인들은 복음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때 이를 냉혹하게 받아들였는가를 후에 고찰하게 될 것이다.

(2) 이 예수에 관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말한다.

① 모든 사람들이 예언자라고 인정한 위대한 인물 세례 요한이 그의 선구자였다. 

앞서 세례 요한을 보낸 것은 백성들로 메시야의 오심이 너무 돌발적이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이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그들에게 이에 대하여 충분히 경고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영접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생각할만한 여유가 있었다. 

요한은 두 가지 일을 하였다.

첫째, 그는 몇몇 택한 제자들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 그의 오심을 예비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 주었고 "임박한 진노에 대하여 경고했으며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엄숙한 의식이나 또는 세례의 표시에 의하여 구속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세례를 줌으로 그들에게 확실성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백성들에게 주 예수를 위한 준비를 하게 하였다." 

이같이 그들이 자신을 알게 되었던 바, 그들은 메시야를 받아들여야 마땅하였다.

둘째, 요한은 메시야의 임박성을 알렸다(25절).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즉 그가 한참 정열적으로 그의 사명을 수행하고 또 한참 놀라울 만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는 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그의 설교를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어떤 견해를 지니고 나를 대하고 또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너희는 내가 너희가 기대하는 메시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가 아니다(요 1:20 을 보라). 바로 그가 문 밖에 서 있다. 보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그는 모든 점에서 나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나는 그의 가장 천한 직분 하나도 감당할 가치가 없는 자로다.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니 너희는 오실 분이 어떤 이인지 생각할 수 있으리라."

②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앞장서서 즐거이 그의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할 유대인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의 핍박자가 되고 살인자들이 되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전파할 때 그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치욕적인 죽음을 감추거나 은폐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전하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 즉  거룩한 성이요, 왕의 도성이요, 그들의 통치자들이 거하는 곳인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다(27절).

첫째, 그들의 죄는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저들이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으나" 즉 입증할 만한 죄도 없었고 의심할 만한 죄도 없었지만(그를 심문한 재판관까지도 그들이 그를 거스려 한 모든 말을 들은 후에 "그에게 아무 죄도 발견할 수 없노라"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를 죽여 달라 하였다"(28절).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미친 듯이 비난함으로써 빌라도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도록 강요하였다. 

실상 빌라도는 그리하기를 원치 않았고 자기 양심에 거리낌을 느꼈으며,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죄목을 찾지 못했지만 결국 "참혹한 죽음을" 그에게 선고하였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청중들에게 그 죄를 문책하지는 않는다(2:23).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죽였다"고 베드로는 책망하였었으나 바울이 그와같이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유대인이더라도 그 사건이 일어난 곳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 책임을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과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바울은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민족성에 대하여 긍지를 느낄 이유가 결코 없음을 보여 주었던 바, 그들이 이와 같은 범죄를 자초하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이치를 따져 본다면,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학대한 메시야에게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전파가 먼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게 하셨다.

둘째,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는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27절).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고 그가 무슨 사명을 띠고서 세상에 왔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만약 그들이 이를 알았더라면 그들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사실 때문에 그들의 죄에 대하여 이해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이 그 하는 바를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도다"라고 베드로도 말한다(3:17). 

그들은 매 안식일마다 예언자들의 말씀이 낭독된 것을 들었지만 그것을 깨달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겪으리라고 예언된 것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생각도 못했다. 그랬다면 그들은 결코 그의 수난의 도구 노릇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언서를 읽는 많은 사람들은 예언자들의 말씀을 알지도 또 성서의 의미를 이해하지고 못하고 읽는 경우가 많음을 기억하라..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귀로 듣기는 하나 그 의미를 머리로 생각하지도 않고 마음 속으로 그 맛을 음미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미리 증거한" 예언자들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고 그 말씀을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킬지도 몰랐다.

셋째, 하나님이 구약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그들을 다스리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상하지 말라는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정죄함으로써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단 9:26)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성서의 말씀을 어기므로 즉 그리스도를 박해하듯이 특히 교회를 박해하므로 인간이 성서의 예언을 응하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성서의 예언이 때로는 불분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만약 예언이 분명하다고 하면 그 때문에 예언이 성취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저들이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반대로 그들이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였다면 그들이 예언을 성취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넷째, 메시야의 고난에 관하여 예언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29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즉 그가 목마르실 때 신 포도주를 마시라고 준 것부터 그의 장례에 관하여 예언된 것까지 다 성취되었다. 

그들이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니" 이 말씀을 본문에 언급한 것은 부활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뜻에서였다. 

그리스도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또 세상도 그들과 관계가 없듯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기억하라...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은 산 채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됨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죽여 무덤에 누이고 그를 붙잡아 두었다고 생각하였다.

③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 

이 사실은 우리가 전해야 할 위대한 진리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요 기둥이고 이 기둥에 의하여 복음이라는 전 건축물이 지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사실을 중대하게 다루고 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승낙으로 부활하셨다. 

그가 우리 죄로 인하여 무덤에 갇히셨을 때 자기 자신이 옥을 깨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가 체포되신 멍에에서 정당하고 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풀려 나오셨다(30절). "하나님이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사 무덤을 막았던 돌 문을 제거하시고 예수께서 죽으시면서 그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셨던 영혼을 그에게 돌려 주셨다. 

그리고 성령으로 그를 소생케 하셨다. 

그의 적들은 그가 언제나 무덤에 누워있기를 바라서 그를 그곳에 두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단연 거부하셨다. 

그리고 그의 목적과 그들의 목적 어느 것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나타내셨다.

둘째, 그가 부활하셨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었다(31절). 

그는 그를 친숙하게 잘 아는 사람들에게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날 보이셨다." 

그들은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로," 그를 끝까지 수종하였고 이제는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증인으로 임명받았고 여러 번 그 일을 증거하였으며 늘 그런 준비를 갖추고 지냈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기꺼이 죽었다. 

바울 자신이 [부활의 영체의 영광으로 직접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증언한 곳은 성경에 찾아 볼 수 없다. 

그가 고린도 전서 15장 8절에서 [직접]언급한 것은 아마도 환상을 통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환상은 너무나도 극명하였던 바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보다 그에게는 더욱 확실한 것이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다. 

그것은 참된 소식이었을 뿐 아니라 좋은 소식이었다. 

"우리가 이를 전파하되 기쁜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는도다(32, 33절). 이 소식을 특별히 너희 유대인들은 받아야 하는도다. 우리가 이 교리를 전함으로써 너희를 비방하려는 것도 또 너희에게 잘못을 행하는 것도 아니라. 만약 너희가 이를 바르게 받아들이고 옳게 이해한다면 큰 영예가 되며 만족을 줄 것이라.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므로 너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너희에게 이루어졌도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약속이 주어진 것은" 그 민족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임을 인정한다(롬 9:4). 

또한 그들은 처음 약속이 주어진 조상들의 자손들이므로 그들이 약속의 후예임도 인정한다. 

구약에서의 위대한 약속은 메시야에 대한 것으로 "그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었다."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은 그 가족의 특별한 명예이기는 하지만 축복은 아브라함의 가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의 다 같은 이익을 위해서였다. 

이같이 그는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세움을 받으셨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우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수를 높이셨다"(본문에). 

저를 "다시 살리셨다 함은"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을 뜻한다. 우리는 두 가지 의미로 다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구주예수에게 세례를 베푸심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예언자로 세우셨고, 그의 죽으심 통해 죄를 속하는 제사장으로 세우셨으며, 그의 부활승천 통해 모든 사람을 통치하는 왕으로 세우셨다. 

또한 "죽은 자들과 죽는자들 가운데서 그를 세우심"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모든 일을 맡기신 확인이요 비준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러한 직책에 봉하신 증거였다.

2. 이것은 조상들에게 행하신 약속, 즉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한 약속의 성취이다. 

또한 그를 통하여 그와 함께 맛보게 되는 모든 축복과 이익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였다. 

"이 사람이 오시리라고 하신 바로 그분이라. 비록 너희가 바라던 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메시야를 통하여 주시겠다고 한 약속이 모두 이룬 것이로다." 

바울은 이 약속이 성취된 유대인들 가운데 자기도 속해 있음을 말한다. "우리가 그들의 자손들이라."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민족의 원수로 여기는 대신에 "이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면" 그들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절친한 친구로 받아들이고 두 손으로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마땅하였다. 만일 유대인들이 약속을 그토록 귀중히 여긴다면 그만치 그 약속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들에게 행한 약속 자체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메시야를 통하여 축복을 받으리란 말씀이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이며 시편 2편에 있는 말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란 말씀을 확인해 주고 있다. 죽은 자로부터 JC가 부활한 사실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제시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사도의 다른 글을 보아서도 명백하여진다(롬 1:4).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도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그에 관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마 3:17) 선언하셨다. 

이 말씀은 시편 2편에 있는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명백히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 속에는 상당한 진리가 숨겨있다. 

JC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서 출생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출산되었으므로 그의 인격이 표현된 형상이었다." 

JC는 영원한 마음에 대해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이며, 또한 [성육신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된 분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눅 1:35) 칭하여진 것이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행자였고 세상을 대속하시고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셨다. 

그는 "그의 집의 아들과 같이 성실하셨으며" 그러므로 "만물의 후사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선포되었고 다시 그가 변형되실 때에 확약되었던 이 모든 사실이 부활에 의하여 부정할 수 없이 명백히 증거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선언되었던 선서가 확실히 나타났다. 그리고 죽음이 그를 가둘 수 없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러므로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생명을 묻어 두실 수 없고 다시 회복하셨다. "

그의 영원한 출생이 언급되었다고 해도"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말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시므로 그에게는 하루도 영원한 날에 속한다. 이 말씀은 부차적 의미에 있어서 그의 부활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도다. 오늘날 내가 네게 준 바 모든 것을 낳았도다"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록되기를(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즉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가 썩음을 당하지 않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으며 다시는 부패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하여 즉 다시 산 사람들이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것같이 죄시지 않기 위하여 하늘의 생명을 입으셨다는 사실은 더욱 그가 약속된 메시야임을 확증하는 것이다.

(1) 그는 부활하사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셨다. 

로마서 6장 9절에는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며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암이로다"라고 말씀되고 있다(욥 17:14).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올 때에 그의 수의를 입은 채로 나왔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 수의를 입어야 되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시는 수의와 관계가 없으셨으므로 그것들을 무덤에 남겨 두시었다. 이 사실도 성서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주리라"고 기록되었다(사 55:3). 

다윗에게 허락된 거룩한 것 곧 확실한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하신 약속과 또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신 약속에 대하여 하나님의 신실성이 대단히 강조되고 있다(시 89:1, 2, 5, 25, 33).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하여 "그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셨다(시 89:35). 

그들에게 은혜를 공급하실 책임을 맡은 그가 사시고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사셔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가 우리를 위해 베푸신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지켜 보신다. 

만일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또는 그가 부활하셨어도 다시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는 확실한 은혜를 상실하게 되거나 적어도 은혜를 확신하지 못하고 말았으리라.

(2) 그가 죽은 후 곧 다시 사셨으므로 그의 육체가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시체가 부패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도 다윗에게 약속되었다. 즉 이것도 "다윗에게 허락된 확실한 은혜"의 하나로 시편 16편 10절에 그에 관하여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35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야를 세우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이 되셨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는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다. 이 약속은 다윗에게서 성취될 수 없었고 그리스도를 바라고 주어진 약속이었다.

① 이 약속은 다윗 자신에게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36절). 

왜냐하면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즉 그를 왕의 자리까지 이르게 하신 그분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조상 다윗의 생애와 죽음과 그의 장사에 대한 설명과 그가 계속 죽음의 세력 아래 놓여있다는 설명을 대하게 된다.

① 그의 생애. 

죽음의 잠을 자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의 시대를 섬겼다." 

다윗은 유익하고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그의 통치를 통하여 실현시켰다. 

"그는 자기 시대를 섬기므로써"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헌신적이며 또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인물이었다(그러므로 삼하 3:36 에는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자기를 지킬 수 있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을 보라. 그는 인간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섬겼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를 따라 섬기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를 명하시고 또한 공직을 수행할 자격을 부여하시고 그 일에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의 뜻에 의하여 "자기 세대를 섬겼다."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모든 피조물은 우리에게 관활할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40년간 다스린 다윗은 그가 살던 시대에게 큰 축복이 되었던 바, 그의 세대를 위한 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세대에 대하여 저주와 온역과 멍에 노릇을 하여 왔다. 

낮고 천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이 "자기의 세대를 섬기기 위하여" 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선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한다"(고전 9:19).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들로서 이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윗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이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다윗은 오직 그의 세대만 섬겼다. 즉 그가 살고 있는 세대만 섬겼고 그러므로 그가 할 일을 다 마쳤을 때 또 그가 기록할 것을 다 기록하였을 때 그는 죽어 무덤에서 계속 갇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다윗과 같이 다만 기록된 자신의 글이나 말씀만 아니라 그의 인격적인 능력으로도) 모든 세대를 섬기셨고 영원히 사셔서 다윗과 같이 사십년 동안만 아니라 야곱의 집을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며 태양과 달이 계속 존재하는 한 모든 세대를 섬기실 것이다(시 89:29, 36, 37). 

그의 보좌에 좌정하신 연수는 천상의 날과 같은 것이요 모든 세대가 그에게서 축복을 받게 된다(시 72:17).

② 그의 죽음. 

"그가 잠들다"라고 하였다. 죽음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과 또 그들의 세대를 위하여 섬기느라고 수고한 사람들에게는 잠 곧 평안한 휴식이다. 

그가 그의 세대를 섬기기를 마치기까지 즉 하나님이 그를 세우신 바 그 일을 다 완료하기까지 그는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에게 위탁된 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 날의 일과를 다 마치기 전에는" 쉼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그들이 그들의 증언을 완료하기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야 "땀 흘린 자의 휴식인" 잠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다윗에게는 성전 건축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마쳤을 때 - 이 일을 위하여 그는 택하여졌는데 - 그는 잠들고 솔로몬에게 일을 물려 주었다.

③ 그의 장사.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 그가 "다윗성에 장사되고"(왕상 2:10)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새의 묘실에 묻히지 않았지만 "그가 조상들과 함께 누웠다"라고 말씀되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무덤은 우리 앞서 간 사람들 곧 우리 조상들의 거주지이기 때문이다(시 49:19).

④ 그가 계속 무덤에 머물러 있음. 

"그는 썩음을 당하였다." 확실히 그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다. 베드로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2:29).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썩음을 당하였고 그러므로 이 약속이 그의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② 이 사실은 주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37절).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안에 확실한 은혜가 우리를 위하여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삼일만에 부활하셨고 그러므로 당시에 썩음을 맛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신 후 다시 죽지 않았으므로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예수에게서만이 약속은 이해되어야만 하고 다른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3)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에 대하여 설명한 후 이 사실을 그들과 관련시킨다.

① 설교 도중에 그는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청중들에게 그들도 모두 이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였다(26절).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먼저 보내셨도다"(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 역자 주). "만약 너희가 너희 불신앙으로 이 말씀은 너희의 구원을 위하여 너희에게 전해진 것이로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는 너희의 잘못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 말씀은 그들이 교제도 하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핑계하지 못하게 되기를 그는 바랐다. 

그러므로 먼저 그들을 위하여 복음은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복음은 바로 너희에게 전해진 것이지 타락한 천사들을 위한 것은 아니로다. 살아있는 인간인 너희를 위한 것이지 죽은 자나 저주받는 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부드럽게 경의를 가지고 말한다. "여러분 형제들이여"라고 그는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의 말씀이 그들에게도 전하여졌으므로 우리와 같이 큰 구원을 위한 기회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을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 

이제 바울이 하늘의 지시에 따라 본문에서 "구원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

①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들로서 바울 자신처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들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예들이여 너희가 비록 타락하였다 하더라도 너희에게 전해졌으니 죄에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고 말한다. 

좋은 가문 출신이란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반드시 구원의 말씀만은 먼저 그들에게 전파된다. 

"아브라함이 그의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그를 따르라고 명하였다"함과 같다.

② 개종자들로서 본래 이방인이었으나 유대교로 전향한 사람들이었다. 

본문에는 이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너희가 자연종교에 대하여 지식이 있고 또 자연법에 복종하였으며 그 신앙의 위로를 의지하였도다. 그러한 너희에게 구원의 말씀이 전하여졌노니 이제 더욱 계시 종교에 대하여 알고 그 취지를 깨달아 준비를 갖추자. 그리고 이 법도를 기쁘게 받아들여 유익함을 얻도록 하라"고 말한다.

② 설교를 끝내면서 그는 그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한 것을 청중들에게 적용한다.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오랜 시간 말하였다. 그러면 이 모든 말씀이 과연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제 그는 이 관계를 그들에게 명백히 말해 준다.

① 만약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이 구원의 말씀을 믿으면 말할 수 없이 유익하리라고 한다. 

복음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에서 그들을 자유케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범죄로부터 자유케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이것을 알지니 우리는 너희에게 이것을 전하도록 사명을 받았도다. 또한 너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불리어졌도다." 

그는 그들 앞에 공연히 서서 설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회개시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설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성을 지닌 피조적 존재요 그러기에 설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나누고 상대할 수 있는 형제들이었다. 

더구나 같은 본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같은 민족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청중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같이 친숙하게 부름으로 그들의 번영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그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알려 줄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이 말씀이 왕 중 왕이 자기의 왕위와 왕권을 더럽히고 반역한 인간들에게 허락된 사면장이란 사실이다. 

이 은총의 법령이 통과되고 선포된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중재를 서신 때문이었다(38절).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 사람을 힘입어 너희에게 죄의 사유가 전파된 것이라(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도다. 너희 죄가 아무리 많고 크다 하여도 용서될 것이라. 하나님의 영예를 손상시킴이 없이 죄사유는 이루어질 것이며 너희도 이를 얻게 되리라. 우리가 죄사유를 위한 회개와 또한 회개와 죄사유를 주시는 신의 은총을 전하는도다. 이 사람을 힘입어 죄가 사유된다. 그의 공로로 그것은 구입된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제공되었고 그의 권위에 의하여 그것은 수여되었도다. 그러니 너희가 그를 사귀고 그와 친해지는 일에 관심을 갖자.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 죄사유를 전하는도다. 그것은 우리가 너희에게 소개하는 구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러니 너희는 우리를 친구로 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자로 맞아 영접하는 것이 합당하도다."

둘째, 복음이 모세의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열심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이 속죄와 화해의 희생제를 명령하며 여러 가지 순결의 제사를 지시해 주기 때문인데 이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상상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인(義認)은 그리스도를 하여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더러운 죄에서 의롭게 되지 못한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도다"라고 말한다(39절).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을 환영하고 영접해야 하며 복음에 반대되는 율법을 추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율법에 대한 완성이지 율법의 폐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첫째는 죄인은 의롭다함을 얻고 죄에서 용서를 얻으며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을 최대의 관심사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참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사실이다. 

만일 죄가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를 추궁한다면 그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죄인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도덕법으로 우리는 완전히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것을 어겼고 날마다 그것을 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대신에 우리를 정죄한다. 모세의 정결법으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씻기지 못하며 하나님의 손상된 의를 만족시키거나 죄인의 상처받은 양심을 평정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제도일 뿐이었다. 히브리서 9장 9절, 10장 1, 4절을 참조하라.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가 완전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삼판자로서의 예수를 통하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義)이신 그분을 통하여 즉 "의로우신 주님"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 

다섯째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며 자신을 포기하여 그의 통치 아래 자신을 맡기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외에 그들이 의롭게 될 길은 없다. 

여섯째는 "율법이 연약하므로 할 수 없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과 그 제도의 명예를 높이려는 열심 때문에 JC의 복음과 더 완벽한 제도를 정하려는 계획에 대하여 시기심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②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그들에게 제시된 선물에 등을 돌려댄다면 그들에게 가장 큰 불행이 될 것이라고 한다(40, 41절). 

"그런즉 주의하라. 이제 너희에게 귀한 초청장이 주어졌도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그것을 소홀히 여기거나 반대하지 않도록 하라" 한다. 

복음을 전해 받은 그들은 시험을 받으셨으되 선을 행하신 분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어진 은총을 거절한 자들로 발견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한다. 

"너희가 믿는 자에게 주어지리라고 예언서에  말씀된 축복을 잊어버릴까 주의하라. 또한 불신을 고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리라고 예언서에 예언된 운명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너희는 선지자들에게 말씀된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조심하라." 

위협은 경고를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완고한 죄인에게 오리라고 말씀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도록 경고하여 우리를 일깨우고자 한 것임을 기억하자. 

하박국 1장 5절에 예언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갈대아인들이 유대 민족을 파멸하되 족히 비교할 유폐가 없을 정도로 파멸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이 말씀은 로마인들을 통하여 이 민족에게 닥친 파멸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사도는 칠십인역을 사용하고 있다. 거기에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라고 기록되었다(히브리판에는 "보라 이방 가운데 있는 너희여"라고 되어 있음). 

왜냐하면 칠십인역이 그의 사용 목적에 더 잘 부합됐기 때문이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는 "예언서에서 말씀된 죄악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즉 복음과 복음의 전달자를 멸시하며 솔선하여 복음에 참여하려는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말지어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이란 말씀이 너희에 대한 말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신앙을 멸시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패망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신앙을 그들 수준 아래의 것으로 취급하고 신앙에 고개 숙이는 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는다. 

둘째는 "예언서에 말씀된 심판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즉 너희가 놀라고 망하되 완전히 망하리라. 너희의 파멸에 자신도 놀라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놀라리라"는 뜻이다.

 기어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은 놀라고 멸망할 것이다. 교회에서 특권이나 누리고 이러한 특권들로 자기들은 구원받을 거라고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은 그들의 헛된 자만이 폐기되고 그들의 특권 의식이 더욱 그들을 용서받을 수 없도록 정죄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놀랄 것이다. 불신의 유대인들이 기대할 것은 하나님이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는 사실뿐이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예언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가능성은 그들의 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곧 그리스도를 통한 세상 구원이 그들에게 가장 엄숙하게 선포되었다 할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의심이 많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 1절에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라고 말씀되어 있다. 

그것이 못하실 일이 없고 그의 선포에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이루신 일이었지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들의 시대에 이 일을 이루셨으므로 영예와 특권을 지닌 그들이었으나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은혜는 없었다. 

다른 가능성은 이것이 그들의 파멸에 대한 예언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유대 국가 조직이 해체되고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서 취한 바 되어 이방인에게 넘겨지고 그들의 성전과 거룩한 성이 파괴되며 백성은 흩어지리란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하늘의 사랑을 받은 민족인가를 생각할 때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리라고 믿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미친 재난은 전에 있던 어떤 백성에게도 결코 있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마 24:21). 

갈대아인들에 의하여 그들이 망하리라는 말씀이 예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멸망을 보면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도다"(애 4:12)라 하였고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라고 말씀되었다(욥 31:3). 특히 그리스도를 경멸하는 자들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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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2)(행 13:42-52)

이 내용은 사도들 특히 바울의 변명이 그 중심이 되고 있다(로마서 11장에서도 그는 자세히 자기를 변명한다). 

이 사건은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한 데 대한 유대인들의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바울은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고 이 일에 대처하고 있음을 본문에서 보게 된다.

Ⅰ. 유대인들 중에는 이방인에게가 아니라 자기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격노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참고 듣지 않고 바울과 그의 가르침을 경멸하고 또 청중들을 훼방하려는 목적으로 바울이 설교하는 동안 "회당에서 나갔다"(42절) (42절의 내용은 AV와 한글 개역 간에 차이가 많으므로 AV 내용을 소개한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먼저]나가니 이방인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 줄 것을 간구하더라." 역자 주). 그들은 서로 수근거리며 뜻을 합하여 그를 비난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입증하였다.

1. 그들의 공개적인 불신앙이다 .

복음을 듣는 것이 신앙인데 비하여 이것은 명백한 불신앙의 고백이었다. 

그들은 공공연히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과 법도에 대한 경멸을 표하였고 또 이를 부끄러히 여겨 낯을 붉히지도 않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에 대한 편견을 주입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이 악독한 행위에 끌어들였다.

2. 완고한 불신이었다. 

그들이 회당을 나가므로 그들은 복음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려 하였고 나아가서 믿지 않으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시키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귀먹은 살무사가 되려는 듯 귀를 틀어막았다. 그들은 자진하여 복음에서 떠났다. 

그들은 누가 그들을 내보내지도 않았는데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러므로 복음이 그들을 지나쳐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들이 그를 떠나기 전에는 결코 먼저 떠나시지는 않는다.

Ⅱ. 이방인들은 거칠고 불평이 가득찬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나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꺼이 복음을 들으려 하였다. 

"그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이같이 능력있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안식일은 "다음 주간 사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주간 중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을 어떤 회당에서는 강론을 위한 날로 정하고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함께 모인 것은 다음 안식일이었다(44절). 그들은 다음과 같이 간구하였다.

1.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것과 같은 말씀을 그들에게도 전해 달라고 정하였다. 

지금까지 바울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들에게만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였고 이방인들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유를 전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유대인들이 버리고 짐스럽게 여긴 것을 그들은 동경하였다. 

이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초청을 받은 것처럼 그도 초청을 받았으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떳떳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그토록 간절히 먹을 것을 구하는 자에게 생명의 떡을 나눠 주기를 거절할 수 있는가. 또한 식탁에서 자녀들이 먹는 떡이지만 문 밖에서 구걸하는 그들에게 어찌 나눠 주기를 거절하겠는가?

2. 같은 교훈이 그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었었다. 그러나 한 번 들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그들이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해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은 좋은 일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들은 것이 우리 속에 깊이 뿌리가 내리고 제자리에 단단히 박힌 못과 같이 되기 위하여 다시 듣기를 바라야 한다. "같은 말을 듣는 것이" 수고로움이 없고 안전하기 때문이다(빌 3:1). 

이방인들이 그들 유대인들이 다시는 듣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다시 듣기 바랐으므로 유대인들의 감정이 상하였다.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보여 준 나쁜 본을 좇지 않은 이방인들의 훌륭한 성품을 찬양하는 바이다.

Ⅲ. 얼마의 유대인들과 또 많은 이방의 개종인들이 복음 전도를 듣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복음을 전도함으로 유대인의 특권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공격하는 자들은 그들이 늘 그랬던 것과 같이 "그들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는도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바울은 "일이 그렇지 않도다. 오히려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고 반박하였다. 

바울 자신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롬 11:5). 또한 본문에도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고" 그들로부터 더욱 교훈과 고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복종하였고 복음이 주는 이익과 위로를 허용받았다. 

이 말은 그들이 계속하여 가르침을 받는 생활을 한 것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다." 

그들은 두 사람의 제자들이 되었고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그리스도에게 귀의시킨 사람들은 또한 그의 종들에게 자신들을 소속시키고 그들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았지만 유대인들 중에 즐거이 그들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환영하였고 또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모두에게 호의를 보였다.

2. 그들이 기독교 교훈을 받아 그 안에 거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였다. 

자유스럽게 그리고 할 수 있는 우정을 표하여 그들에게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였다." 

또한 그들이 받은 것을 굳게 잡고 은총의 복음을 계속하여 믿으며 은총의 성령을 의지하고 은총의 방법에 의지할 것을 권고하였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계속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은총이 결코 사라짐이 없을 것이다.

Ⅳ. "다음 안식일에도" 복음 전도를 모두 즐거이 들었다(44절). 

"온 성이 거의" (일반적으로 이방인들이 거하는 곳을 말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

1. 바울과 바나바는 주간 중에도 태만히 지내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그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키려고 온갖 기회를 다 이용하였다(어떤 이들은 이방인들이 복음 듣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공적인 설교를 하였을 뿐 아니라 사적인 강론을 통해 또는 대화를 나눔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 

회당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과 성문 곁에서 지혜는 전파되었다(잠 1:20, 21).

2.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안식일에 수다한 무리가 모였다. 

어떤 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나 하는 호기심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이 두 번째의 복음 전파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기를 원하여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더욱 말씀을 듣기 위하여 왔고 또 그 말씀을,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다스림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되는 "인간의 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위하여 왔다. 

이러한 정당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였고 또 그는 그들 가운데 열심있는 청중들을 만나게 되었다. 

"추수할 때가 되어 밭이 희어졌으니" 그가 낫을 들어 추수하여야 했던 것이다.

Ⅴ. 유대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격노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분이 가득 찼다(45절). 

"유대인들이 무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비둘기 떼가 그 집 문을 향하여 날아들 듯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바울이 얼마나 힘을 얻을까 하는 점과 또한 이 많은 무리들 가운데 몇 사람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하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시기로 가득 찼다."

1.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리고 사도들이 증거하려고 할 때 회당이 가득찬 것을 보고 초조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품었던 심정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철렁하였다. 

하늘 나라가 열려졌을 때 그들은 자기들만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남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2. 그들은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 것을 변박하고" 그들을 트집잡았으며 - 즉 변박하고 비방하면서 바울이 말한 모든 점에 대하여 시비를 따지며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양심과 분노를 가득 품고 대들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모순됨을 주장하였고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그들은 공격을 위한 공격을 했고 가장 명백한 것을 부정하였다. 또한, 반대의 기미가 없는 것을 보고 온갖 악한 말로 JC와 그 복음을 비난하면서 공박했다. 

하나님의 성령에 속한 것들을 받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그들의 말로써 처음을 시작하나 곧 악마의 화신인양 말을 하며 불경스러운 말을 지꺼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난을 시작하면 결국 신을 모독하는 말을 지껄이게 된다.

Ⅵ.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사도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자기들의 책임을 벗게 되었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잠잠한 틈을 이용하여 자유로히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제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책임을 사도들에게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행하였으므로 영구히 불평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들이 행한 짓은 영구히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을 분리시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이른 바대로 "전하여졌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불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였다"고 기록된다(46절). 

지금까지 그들은 유대인들의 비위를 상케해서 복음전하는 일이 방해될까 두려워하여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전하였으나 이제는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복음 전도자들은 때에 따라서 사자처럼 용감할 줄도 알아야 하며 뱀처럼 지혜롭게도 하며 비둘기처럼 순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비방자들로 인해 잠잠해지는 것은 복음 변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소의 희망이 있다면 그들에게 "부드럽게 가르쳐야 하지만"(딤후 2:25),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면 담대히 증거해야 하며 그들의 반대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복음의 적들의 몰지각한 행위는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는커녕 더욱 용기있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들의 정당성을 확실히 알고 있고 또 누구에게 증거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 은총의 복음을 전한 다음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한다(이는 바울이 롬 11:14 에서 말한대로). 

"이는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키게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었다."

1. 그들은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 전함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약속에 주어졌고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이요 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먼저 보냄을 받은 너희에게 먼저 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도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고 명하신 것은 유대인에게서 시작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라는 전략적인 지시였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아" 복음 전파로 먼저 그들에게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7장 27절의 "자녀로 먼저 먹게 할지니"란 말씀과 같다.

2. 그들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한 데 대하여 책임을 지웠다. 

"너희가 스스로 버렸다." 

너희가 제공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대적하였다고 말한다. 

만약 스스로 그들에게서 복음을 제외시키려 한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복음을 취하여 버리신다해도 마땅한 일이다. 

만나가 싫어서 받은 바 그 떡을 "하찮은 떡"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만나를 줄 필요가 없으며 또는 복음의 특권을 버리고 "다윗에게 붙어 봐야 돌아 올 몫은 없다"(삼하 20:1 , 공동 번역 참조)고 말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억지로 떠맡길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하여 그들은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여 버린다. 

다음과 같은 뜻에서는 우리가 영생을 받을 만한 자격이 결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 안에는 또는 우리가 행한 것으로는 아무 것도, 우리가 이것 때문에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다는 뜻에서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입장이 다르다. 

"너희는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전 존재로 드러내며어 거절하며] 말하는도다. 너희는 모든 너희의 권리를 포기하고 말았도다. 너희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영생을 맡기신 분의 손에서 그것을 받기를 거절하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로 자처하였노라. 오직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서 영생은 수여될 수 있는데 너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를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절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도다"라고 말한다.

3. 이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이 무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이유로 삼는다. 

"너희가 영생이 전하여졌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이 받아들일 것이다. 결혼식에 먼저 초빙을 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결혼식장을 손님으로 가득 채워야 하므로 큰 길과 모퉁이에 서서 참석하기를 원하는 자로 초청하리라. 친척이라도 친척의 할 바를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차지할 것이요 그렇다고 그들이 불평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룻 4:4).

4.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하는 것이 신의 명령이라고 정당화시킨다(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셨도다. 주 예수께서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그의 증인이 되라고 명하시고 다음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 지시하셨도다." 

이것은 구약에서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메시야가 유대의 불신을 예상하고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도다"라고 말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이스라엘이 모이지 않는다 하여도 그는 영광을 받으리라." 

또한 그가 헛되이 피 흘린 것도 아니요 몸을 헛되이 구속물로 준 것도 아니요 헛되이 말씀을 전하거나 그의 성령을 주신 것도 아님이 말씀된다. 

"내가 너를 세워 이방의 빛으로 삼았노라. 또한 잠깐동안 비추이는 빛이 되게 하여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이 되도록 하리라" 하신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실 뿐 아니라 자신이 구원이시다. 그 자신이 우리의 의(義)시며 생명이요 힘이시다.

(2) 그리스도께서 구원이 되도록 예정된 곳에서는 어디서나 그는 빛이 되시어 사람들의 눈을 밝히시며 영혼을 구원하신다.

(3) 그는 땅 끝까지 이르러 이방의 빛과 구원이 되신다. 

그는 모든 민족들을 환영할 것이요 모든 민족이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것이다(롬 10:18). 그리고 모든 나라가 결국은 그의 왕국이 될 것이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우리의 섬 나라 영국에 이루어지므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영국은 아는 바대로 땅 끝이요, 세계의 한 모퉁이인 것이다. 때가 되면 그리스도의 왕국은 더욱 완성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롬 11:25).

Ⅶ. 유대인들이 경멸조로 거절한 복음을 이방인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48, 49절). 

상속자가 없어서 땅을 물려 주지 못하는 경우는 없는 법이다. 

"유대인들이 넘어지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고… 저희의 넘어짐으로 세상의 화해를 이루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된다." 

이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 11장 11, 12, 15절에 광범위하게 다룬다. 

본 가지인 유대인들이 잘리웠으므로 들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이 접붙임을 받는다(롬 11:17, 19). 이제 본문은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복음의 차례가 온 것을 얼마나 기뻐하였는가에 대하여 전해 주고 있다.

1. 그들은 복음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였다." 

그들이 의례적인 율법에 복종하고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보다 더 명백하고 가까우며 나은 방법에 의하여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그와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었다. 

이제 분리의 벽은 무너지고 그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왕국의 특권을 누리도록 영접되었고 유대인에게 굴종하지 않고서도 약속을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온  백성에게 미치는 기쁨의 가장 큰 소식이었다."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것과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뻐해야 할 문제임을 기억하자. 

이방인들은 그들에게도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을 듣고 은혜의 말씀이 그들에게 전파되고 은혜받는 방법들이 그들에게 알려지기만 하였는데도 "기뻐하였다." 

이는 그들에게도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기뻐해야 할 때 그들이 과연 그의 안에 있는지 어떤지를 의심하므로 슬퍼한다. 황금홀은 이미 그들에게 내밀어졌고 와서 그 끝을 만지도록 허용된 것이다.

2.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였다." 즉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한 표시가 되는 것이다. 또는 복음을 찬양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이 복음에 대하여 알수록 그들은 더욱 복음에 대하여 경탄하였다. 

복음에는 얼마나 놀라운 빛과 능력과 보배가 따르는가. 그 진리와 사상과 약속들은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그것은 다른 모든 제도들을 훨씬 상회한다. 그리고 그 유래는 명백하게 신적이고 천상적인 것이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했다."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요"(시 138:2)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셨기 때문이다"(사 42:21).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1) 이제 복음에 대한 지식이 널리 확산되고 유대인에게만 제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광채는 퍼져나갈수록 더욱 밝게 빛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은 촛불 같지 않고 태양과 같아서 멀리까지도 강력하게 빛을 발한다.

(2) 이제 복음에 대한 지식이 그들에게도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영광을 돌리는 길은 그것을 경험하고 말할 때이다. 

즉 자기 자신이 그 능력에 의하여 압도당하고 그 인자함으로 위로를 받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3. 수다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였을 뿐 아니라 신앙에 복종하였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는 행복을 주시기로 약정한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참된 신앙을 주신다.

(1)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하여 그는 은밀하고 능력있는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시키신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이끌어내셨기 때문이요 성령이 그들에게 복음이 능력있게 역사하도록 도우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며(골 2:12)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바로 그 능력에 의하여 이끌려진 것"이라고 말씀되고 있다(엡 1:19, 20).

(2) 하나님께서는 이 믿는 은혜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에게 다 주셨다. 

이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신 것"이라 하겠다(롬 8:30).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 함은 그들의 영원한 상태가 어떠한가 관심을 가지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확신하려는 목표를 지닌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은 영생을 보존케 하신다(요일 5:11). 

그리스도는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고레스 왕의 유대에 대한 해방 선포는 포로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것을 따른 자들은 다만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도록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뿐이었다(스 1:5). 그의 은총에 의하여 영생을 얻도록 작정된 자들은 그리스도 앞에 인도되어 믿도록 해야하며 이를 목적하고 살도록 도와야 한다.

4. 그들이 믿게 되자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식과 그의 복음을 이웃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49절).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복음이 시의 중심지에서 이의없이 받아들여지자 곧 그 지방 각처로 퍼졌다. 새신도들은 자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 가운데 충만한 것을 전하려 하였다.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자들이 큰 무리라"(시 68:11)(한글 개역에는 공포하는 여자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들은 자진하여 다른 사람들도 그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크고 부요한 성에 살면서도 학문이나 철학의 경우처럼 자기가 자진 것에 탐닉하려고 하지 않았다. 

복음은 보다 정중하고 고상한 사람들에게 계속 전파되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즐거움을 같이 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처럼 구원되어야 할 영혼을 지닌 가난하고 무식한 평민들이 사는 지방에도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Ⅷ.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다른 곳에도 교회를 세우려고 그곳을 떠났다.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굳건히 하려고 또 그 진리를 백성들에게 확신시키려고 기적을 행하였다는 내용을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확신시키려고 기적이라는 방법을 흔히 사용하시지만 때로는 그것 없이도 그의 일을 하신다. 

성령의 직접적인 감화를 통하여 믿음을 낳는 것 자체가 그것이 일어난 자들에게는 가장 큰 기적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적도 행하였다. 그들은 다음에 방문한 그 장소에서 기적을 행하게 된다(14:3).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1.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서 사도들을 좇아냈다. 처음에 그들은 사도들에게 등을 돌려대고 다음에는 "그들을 내좇아 버렸다"(50절).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였다." 

그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그들이 거리를 지나갈 때 그들의 인격에 모욕을 줌으로 핍박하도록 하였고 관리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투옥하고 처벌함으로 사도들의 하는 일을 핍박하였다. 

"사도들이 지혜롭게 성령이 충만하여 말하는 것을 당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오만한 불신앙자들의 최후의 보루인 이러한 야만적인 방법들을 이용하였다. 

사단과 그의 종들은 복음 전도자들이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격노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박해하고야 만다. 

이리하여 세계의 위대한 많은 인물들이 좋은 일을 하고도 부당하게 처우를 받으며 그들이 인류를 위하여 한 선행이 찬양되는 대신에 핍박을 받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1)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괴롭힌 방법.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핍박하게 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내에 있는 지체있는 부인들을 이용하였다. 이 부인들은 유대교에 감화를 받은 자들로 그 교에 귀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경건한 귀부인들"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부인들은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들의 추구하는 교에 대하여 열심이었고 또 독선적이었다. 

그러므로 감언이설로 그들을 유혹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른 모든 종교를 파괴하는 것처럼 설득하여 그것을 대적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실상 복음은 다른 종교를 온전케 하는 것이었다. 경건한 부인들이 헌신적이고 신앙적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을 보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그들이 세상 일을 멀리할수록 그들은 더욱 자기 영혼을 위해서 일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사귀는 일에 시간을 더욱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열심인 것 같으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처럼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적의를 품을 때는 참으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여성 박해자라니! 그들은 여성 고유의 상냥함과 연민도 잊어버렸단 말인가! 도대체 이들이 귀부인이라니!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짓을 행함으로 그들의 영예를 더럽히고 자신에게 모욕적인 일을 하며 천박하게 구는 것인가? 

그들이 귀부인이라 할 때 이는 정말 격에 맞지 않는 짓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죽이려 하면서 그래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열심히 있는 자들에게는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꼴 필요하다. 

이 경건한 귀부인들 외에도 그들은 "그 성내 유력자들도" 선동하였다. 

즉 그들의 손에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총독과 관리들로서, 그들을 이용하여 사도들을 박해하게 하였다. 

이들 유력자들은 "자기들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악한 본성을 지닌 무리들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2) 그들은 사도들이 "그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박해를 계속 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을 추방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이 그들의 영내에서 압박을 못이겨 나갈 때까지 그들을 핍박하도록 경비병들에게 명령하였다. 

즉 사도들이 좇겨난 것은 두려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골적인 폭력에 의한 것이었다. 

박해는 교회의 처음 개척자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수단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10장 23절 말씀대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이러므로 너희가 이스라엘의 모든 성들을 다 돌게 될 것이 아니야"는 말씀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착한 사람들을 통하여 사도들에게 온정을 베풀도록 기회를 만드시기도 한다.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동정이 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도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들을 그들의 지경에서 추방하므로 사람들은 무슨 나쁜 짓을 유대인들이 사도들에게 행하였는가를 알아 보려하였고 사실을 알고는 그 경내에 남아있는 자들을 무시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게 대하였다.

2. 사도들이 불신하는 유대인들을 포기하였다(51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렸다." 사도들은 성을 나서자 성문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하였다. 

또는 그들이 그 지방의 경계선을 벗어났을 때 그들이 그 지방에서 완전히 떠났나 확인하기 위하여 보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이 행위의 뜻은 무엇인가?

(1) 이렇게 해서 사도들은 더 이상 그들과 관계없는 것을 선언하였다. 

즉 그들의 것은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는 표시이다. 실상 사도들이 구한 것은 무슨 재물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영혼이었다. 

그들은 티끌과 같은 존재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티끌은 자기들이 소유하라고 한다. 그것이 사도들에게 묻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2) 이렇게 해서 사도들은 그들의 불신에 대한 혐오감을 표시하였다. 

그들은 본래 유대인 출생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므로 사도들의 눈에는 이방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지 그들이 믿기만 하면 동등하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선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더러운 것이 된다.

(3) 이렇게 함으로 사도들은 그들에게 도전하였고 또한 그들과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경멸을 표시하였다. 

"너희가 아무리 악하게 굴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섬기고 신뢰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

(4) 이렇게 함으로 사도들은 자기들이 복음의 은총을 그들에게 전한 증거를 남겨 놓았다. 

심판날에 이 사실은 그들에 대한 고소가 될 것이다. 이 티끌은 복음 전도자들이 그들에게 갔었으나 그들이 저들을 추방하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명하신 것이다(마 10:14; 눅 9:5). 

"사도들은 그들을 떠나서 이고니온으로 갔다." 이는 안전을 위한 도피가 아니라 일을 찾아가는 행진이었다.

3. 사도들이 안디옥에 남겨논 새로운 신자들의 상태(52절).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불의를 참았을 뿐 아니라 용기있게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용기를 얻었다.

(1)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의 지경에서 추방되고 또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으므로 제자들이 슬픔과 두려움에 쌓여있을 것이라고 흔히 기대하게 된다. 기독교를 이식시킨 사람들이 떠나므로 그 노력한 것이 곧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까 염려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는 다음 차례로 그들이 추방되지나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은 바로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에 더욱 슬픔을 안겨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슬퍼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충만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그의 사업을 완성하고자 하심을 의심치 않고 믿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보호하시며 또는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들의 모든 두려움은 믿음으로 오는 기쁨에 의해 완전히 추방되었다.

(2) 그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한다 하여도 그리스도를 붙잡으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용기백배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하였다는" 말씀의 의미일 것이다. 

베드로가 용기를 얻어 복음을 전할 때도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4:8). 또한 스데반과(7:55) 바울의 경우도(13:9)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수록 우리는 경건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심령이 용기로 충만할수록 우리가 경건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 부딪치는 난관에 잘 대처하게 된다.

==[[바울의 전도여행1,2,3차 지도]==== https://blog.daum.net/jsdoh7/1281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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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도행전 13장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ㅇ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 - 11:19-30예서 언급되었던 안디옥 교회가 새로운 이야기의 장소적 배경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명의 교사와 선지자들이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안디옥 교회는 11:19에 언급될 당시보다 많은 성장을 한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은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직분자들로 보인다. 
한편 11:27에서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음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본절에 언급된 선지자들에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서 언급된 선지자들은 아가보와 같이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기능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목회적 직분을 지녔으므로 예루살렘예서 왔던 선지자들을 제외한 본래  안디옥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선지자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이 주장을 취할 경우 선지자들이 함께 언급되는 '교사들'(디다스칼로이)과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허비(A.C. Hervey)는, 선지자들을 당시 교회의 정규 전도요원으로 생각하여 가르치는 기능이 강조된 교사들과 구분시키고있다. 
그리고 아사노 중이찌는 선지자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 전하는 은사를 구비한 사람으로 이해하여 지적인 입장에서 신앙을 변증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구분하기도 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고전 12:28, 29와 엡 4:11에서 함께 언급되어 별 구분없이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담당한 자들로 생각될수 있으나 선지자란 표현 자체가 예언과 대언(代言, 회중 대상 설교 ---여기에 추가적으로 더할 바가 있으니, 곧 신언...살아낸 그리스도를 (성령이 말하게 하심 따라) 소모임의 나눔 통해 그리스도를 공급함)의 은사를 받은 자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으므로 그 둘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한편 누가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그룹 즉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명단을 언급하면서 바나바를 맨 처음에 언급하고 사울을 맨 나중에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안디옥 교회에 있어서 중심 서열 내지 신앙의 연륜에 따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바나바를 비롯하여 시므온, 루기오는 사울이 안디옥 교회에 오기 이전부터 직분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11:20). 그러나 누가 선지자인지 누가 교사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혹자의 주장처럼 바나바와 시므온 그리고 루기오는 선지자로, 마나엔과 사울은 교사로 보는 것은(Meyer, Longenecker, Hervey) 분명하지 않다.
ㅇ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 니게르라는 말이 검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때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볼 수 있다(Alford, Longenecker, 아사노 중이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예수의 십자기를 졌던 구레네 시몬(눅 23:26)과 동일인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만일 동일인이었다면 루기오를 구레네 사람으로 언급하면서 구레네 사람으로 더 잘알려진 시몬을 굳이 니케레네 사람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동일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ㅇ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 '젓동생'이란 같은 젖을 먹고 자란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친한 친구를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표현이 헤롯과 마나엔이 서로 매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ㅇ주를 섬겨 금식할 때 - 27:9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금식(禁食)절기를 정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를 섬겨'라는 단서를 달아 유대교적인 금식과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 '섬기다'는 봉사한다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본절예서는 예배행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본 구절을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을 때에'라고 번역했다.
ㅇ성령이 가라사대 - 성령의 지시가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임하였는데 성령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앞절에서 언급한 바나바 외에 4명이다. 
성령의 지시는 바나바와 사울을 이방 선교를 위한 사역자들로 구별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를 위한 중심지가 되며 성령의 지시로 인해 사울은 사도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ㅇ따로 세우라 - 롬 1:1; 갈 1:15에서는 이 표현이 바울의 소명(召命)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특별히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임명받은 것을 강조해 주고 있다.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ㅇ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 여기서 언급되는 금식 기도가 2절에서 시작되었던 금식 기도와 동일한 것인지(Lenski) 아니면 2절의 금식 기도가 끌난 다음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기 위하여 일종의 임명 예배를 다시 했다는 것인지(Alford, Haenchen, Hervey) 분명하지 않다. 두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예배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 따라서 2절과 3절의 진술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ㅇ안수하여 보내니라 -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按手)를 베풀고 선교사로 파송한 주체가 누구인지 본절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1절에 언급된 시므온과 루기오 그리고 마나엔 이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것이다. 그 세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했다고 해서 안수받은 두사람보다 직책상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는 말할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성령의 지시로 두 사람을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로 혹은 사도로 인정하는 의식을 집행했을 따름일 것이다. (([선지자와 교사 그룹에] 성령께서 분명히 지시하심따라  따로 세워 (그 지시의 확실함에 대한 재확인 및 그들의 빈 자리를 어찌 하실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충분히 주께 직접 듣고 인도 받아야 하기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내니라 -
.........(("안수"의 의미를 [전임사역자로서 인정하고 안수하여 목자로서 섬기게 하려 하거나, 선교사로 보내는 교회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고 검토해 봐야 하리라 = (전존재로 신뢰함으로써 [주 안에서!!] 그대의 권위자로서 존중하여 따르며 바르게 행하도록 전적으로 도우며, 주께 하듯/주를 섬기듯 섬기기로 위임함이기 때문이다!!).....첫째, 주님이 보시는 관점에 따라 [전임사역자의 조건19가지에 따라] 검토하여 보았을 때, 타당한 자격 요건에 모두 부합되는지....그렇다면 진정 주께서 원하셔서!! 선교사나 목사, 곧 전임사역자로 따로 세우시려 함인지...주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 "합당한 목자로 사는 이로서, 주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께서 따로 세우시려 함 + 회중의 공식 임명이 필요한 사람인지" 또는, 친히 사명missio 주사 당신 이름의 모든 것으로 충만케 하시고 보내시는 바 사도ambassador of the Spirit이자 지역 교회의 이름을 가진, 동시에 유일무이한 하나, 곧 주님의 몸으로서 교회의 대표/대리자로 공식 직분을 부여하여 위임하기를 원하시는지....그렇다면 파송 교회의 모든 것을 기울여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그 사명자의 삶의 필요를 공급함은 당연하다고 봄))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ㅇ실루기아에 내려가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이 실루기아(Seleucia)로 내려간 것은 배를 타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안디옥은 내륙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실루기아를 외항(外港)으로 삼아야 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서쪽 약 2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B.C. 300년경 셀류시드(Seleucid) 왕조의 첫 왕 셀류쿠스(Seleucus) 1세 니카토르(Nicator)에 의해 개항되었다.
ㅇ구브로에 가서 - 이곳은 사울과 동행한 바나바의 고향이고(4:36) 안디옥 교회 구성원의 일부가 이곳 출신의 사람들이었다(11:20). 따라서 첫 선교지로 구브로(Cyprus)가 선택된 것은 바나바와 구브로 출신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ㅇ살라미 - 구브로섬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다. B.C. 58년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으로 인해 상업 도시로 커갔다. 그러나 A.D. 116년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ㅇ유대인의 여러회당에서 전할새 - 살라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회당도 여러 곳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있는 기회를 포착했다비록 그들은 이방인들의 사도로 전도 여행을 떠났지만 실제적으로 전도는 주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유대인들도 그들의 전도 대상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ㅇ요한을 수종자로 - 요한은 12:25에서 언급된 마가 요한을 가리킨다. 그는 아마 두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베푸는 일을 도왔을 가눙성이 있다(Alford). 왜냐하면 바울은 전도 여행시 몇 사람에게만 직접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고전 1:14-17). 또한 요한은 두사람의 여행 경비를 관리하는 등 전도 여행 중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ㅇ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 바나바와 사울의 일행은 살라미의 반대편 즉 구브로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인 바보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살라미로부터 약 180여km의 거리에 있다. 본래 바보(Paphos)는 두 군데가 있었다. 즉 한 군데는 옛 베니게의 도시이고  여기서 언급된 바보는 이곳으로부터 서북쪽 약 11km의 거리에 있는 로마령의 도시를 가리킨다.
ㅇ바예수(바르예수스) - '예수의 아들' 혹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유대식이름이다. 바예수는 총독 관저에서 일하는 유대인으로 그의 신분은 '거짓 선지자 박수'였다. 박수(마고스)는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불여진 점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인 그가 그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그의 행동에 미혹되었거나 아니면 총독이 그쁠 보호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를 율법에 따라(레20:6) 처벌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ㅇ총독 서기오 바울 - 서기오 바울(세르기오스 파울로스)에 대해서 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 더이상 알 수 없다. 그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 티베르강 관리자로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F.F. Bruce)도 있지만 정확한 인물 고증(考證)이 어렵다. 다만 누가의 묘사로 보아 지혜있고 유력한 통치자로 추측할 수 있다.
ㅇ지혜있는 사람 - '지혜있다'(쉬네토스)는 맡은 본래 신중하고 지성적이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이 말은 총독의 통치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아마 누가는 총독으로서 서기오 바울이 공명 정대하면서 분별력이 있는 정치를 한 것을 이 한 단어로 묘사한것 같다.                 
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ㅇ엘루마 - 아람어 또는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6절에서 언급된 박수와 동의어다. 본래의 뜻은 요술장이 또는 마법사로 통한다. 그는 총독과 바나바 일행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반(反)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따라 총독 서기오 바울의 지혜는 더욱 돋보이게 된다. 즉 측근의 블경건한 술수를 물리치고 바나바와 사울 일행을 만남으로써 지혜있다는 누가의 묘사가 증명되는 셈이다.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 - 처음으로 바울(Paul)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후로는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라는 이름으로만 언급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바울이라는 이
름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 사울이 회개한 이후부터 새사람된 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Bengel, Olshausen, Meyer) 이는 주관적 추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바울이라는 이름을 본래부터 갖고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을 만난 이후부터 저자가 사울을 로마식 이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Zahn, Lightfoot, Ramsay, Knowling, Vincent).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 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있는 사람들이 있는데(1:23;12:25;13:1)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므로(22:28) 로마식 이름을 가졌을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바울이라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을 이제야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제 비로소 사울이 이방 선교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이방 지역에서는 로마식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이고 설교에도 도음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ㅇ성령이 충만하여 - 여기서 누가가 의도하는 바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모든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로 이끄는 것은 성령의 역사임을 말한다. (2) 거짓 선지자와 대결하는, 성령이 충만한 바울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제까지 앞세웠던 바나바로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바울로 옮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ㅇ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 - 바울은 엘루마에 대한 일차적인 공격으로서 엘루마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궤계'에 해당하는 혤라어 '돌로스' 는 '미끼로 잡다'의 '델로'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활', '간교', 또는 '올무', '미끼' 등의뜻으로 사용된다. 한마디로 사기꾼이라는 말이될 수 있다. 6절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언급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악행'이라는 말은 본래 경솔하거나 무절제한 행위를 의미한다(Robertson). 여기서는 부주의하고 반(反)신앙적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실족케하는 것을 의미한다.
ㅇ마귀의 지식 - 이와 같은 저주는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의 저주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요 8:44). 이 말은 엘루마에 대한 저주이면서 그의 악한 행실에 대한 폭로이다.
ㅇ주의 바른깊을 굽게 하기를 - 엘루마의 행위가 '주님의 길을 훼방'(공동 번역)하는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총독 서기오 바울과 바나바와 바울 일행의 만남이 주님의 뜻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ㅇ주의 손...소경이 되어 - 저주 또는 축복에 대한 묘사로 주의 손이 본서에서 언급되는데(11:21) 여기서는 성령의 일을 거스른 죄에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을 의미한다. 진노가 임한 결과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징벌은 구약성경에서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되었다(신 28:28,29).
ㅇ안개와 어두움 - 눈이 멀어진 상태를 점층적 표현으로 묘사한 듯 하다. 즉 엘루마의 눈은 안개처럼 희미하다가 어두움처럼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ㅇ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 엘루마가 완전히 실명(失明)하여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칭 선지자라 하여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갈길을 지시해 주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걸을 수도 없어 인도자를 찾는 엘루마의 모습은 거짓 선지자의 상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ㅇ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 본 구절은 총독 바울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에 대한 설명이다.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이 총독 바울의 회심(回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회심을 유발시킨 전체 동기는 아니다. 즉 기적적인 사건이 총독 바울의 회심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여기에만 강조점을 둘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엘루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만나고자 했다는점은 바울의 가르침이나 그에 관한 이야기에 이미 호의적인 입장에서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루마가 소경된 사건은 그가 회심하는 데 외형적 동기 부여의 기능을 갖고 있다.
ㅇ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 여기서 '주의 가르치심'은 총독 바울이 엘루마의 저주를 목격하면서 받은 교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주의 일을 훼방하고 사기와 악행을 일삼아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의 비참한 말로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함과 눙력을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ㅇ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 - 박수 엘루마의 사건 이후 누가는 여기서부터 바울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누가의 관점에서, 바울이 엘루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킴으로써 선교 사역에 있어서 지도자격으로 부상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ㅇ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 구브로 섬을 떠나 바울 일행이 두번째로 찾은 밤빌리아는 지중해 북단에 있는 소아시아의 남쯤 해안에 접한 지역이다. 해안의 길이가 120km이며 내륙쪽으로 폭이 48km 정도의 이 지역은 동편에는 길리기아, 서쪽에는 루기아, 북쪽에는 비시디아가 인접해 있다. 그리고 버가는 밤빌리아의 중심 도시로 해안에서 내륙쪽으로 13km정도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돌아오는 길에서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된다(14:25). 이곳에서의 바울 일행의 선교 행적에 관한 언급은 없다. 아마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 것이다.
ㅇ요한은...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예루살렘에서부터  바울과  바나바를 동행하여(12:25) 그들을 도우며 따라왔던(5절) 마가 요한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만 누가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 학자에따라 다음과 같이 추측이 다양하다. (1) 사전에 구브로까지만 동행하기로 함. (2) 사촌 바나바를 따라왔다가 바울이 선교의 주도권을 잡고 바나바가 소외된 데 대한 불만(Alexander), (3) 향수병, (4)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사이에는 타우루스 산맥이 가로지름...600km 넘게 이어지는 긴 산맥이며, 최고봉은 해발 3767m 높이의 크즐카야 봉]...건강문제+용기 부족으로?? 여행을 포기함(Lenski), (5) 바울이 풍토병에 걸려(고후12:7;갈 4:13, 14) 겁을 먹었음(Ramsay). 그러나 모두 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근 그가 열심당원이어ㅛ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후에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지게 되는 점으로 보아 바울은 요한의 귀향으로 크게 실망하고 상심한 듯하다(15:37-39).  
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ㅇ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 이곳은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되는 곳으로(11:27) 해발 약 1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오늘날의 터키 중남부 지방의 얄바크(Yalvach) 근처의 폐허 지역을 말하며 당시에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바울은3차전도 여행때에도 이곳을 들르게 된다(18:23).
ㅇ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 셀류쿠스 왕조 때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했으므로 유대인들을 위한 회당이 있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거행되는 예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구브로나 이곳에서도 바울 일행이 회당올 먼저 찾은것은 이방땅에서 동족에 대한 친밀감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방 선교 이전에 유대인에 대한 방문이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ㅇ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 회당의 예배 순서 중 한 부분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율법서는 모세 오경을 가리키며 선지자의 글은 예언서를 말한다. 1세기경의 회당 예배는 쉐마(신 6:4-9) 기도,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그리고 설교나 권면의 말씀과 축복의 순서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성경이 회당에서 낭독되었던 전통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시작되었으며 B.C. 163년부터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율법서 낭독을 금지하여 예언서만 낭독되었으나 마카비 혁명 때에 다시 율법서가 낭독되었다. 회당에서 성경은 히브리어로 낭독된 다음 다시 아람어나 코이네 헬라어로 통역되었다(Robertson).
ㅇ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 예배순서상 권면의 말씀을 할 차례가 되었는데 회당장은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어 설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당시 예배 중에 설교 또는 권면의 말씀을 담당할 대상을 회당장이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랍비나 방문자에게 설교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당장은 예배 전에 설교자를 선정해야지 예배 도중에는 할 수 없었다(Haenchen, Robertson). 그러나 여기서는 예외로 회당장이 예배 도중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게 되는데 아마도 바울과 바나바의 일행이 예배 시작과 더불어 회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미리 설교를 부탁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이를 통해서 블 때 회당장에 바울 일행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듣고, 그들에 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ㅇ권할말이 있거든 말하라 - 바울에게 설교를 요청하는 본문의 어투는 '만일'(에이)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조건적 제안으로서 상대방에게 공손하게 요청하는 말이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최대한 살려 "두 분께서 혹 격려할 말씀이 있거든 이 회중에 한 말씀 해주셨으며 좋겠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ㅇ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 회당장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바울은 곧바로 일어나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본래 회당  안에서의 설교는 관습적으로 앉아서 하는데(눅4:20) 바울은 일어서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교를 한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열정적인 웅변가로 보여지게 된다. 아마 누가는 바울을 헬라적인 연설가로 묘사하려 했을지도 모른다(Haenchen). 어쨌든 이러한 형태의 설교는 유대 회당의 전통과는 다른것이었음에 틀림없다.
ㅇ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 여기서부터 바울의 설교가 시작된다. 서두에서 누가는 설교를 듣는 청중이 누구인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학자에 따라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한다. (1) 이스라엘로 언급된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이다(Lenski, Robertson).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생에 의한 유대인 및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10:2의 '경건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을 가리킨다(Haenchen, Bruce, Neil).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이스라엘 사람에 포함된다. 따라서 (2)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ㅇ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 여기서부터 22절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요약으로 신앙 고백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설교의 형태는 7장에서 소개된 스데반의 설교와 그형식이 비슷하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스데반보다는 간략하다. 바울이 이스라엘을 구원시킨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방인 청중을 의식하여 언급한 듯하다(Lenski). 즉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출애굽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형태의 호칭은 당시 일반적인 것으로 보이며 70인역(LXX)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투였다(Laenchen).
ㅇ우리 조상들을...백성을 높여 - 본절에서 '조상들'과 '그 백성'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은 시문학에서는 병행 대구법(parallelism)을 사용해서 그 구절의 의미를 강조하거나 명확하게 하곤 했다. 만일 본절이 그러한 형식을 취했다면 두 용어는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여 역사적인 흐름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면 '조상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아들을 칭하는 의미이며 '족장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 내용과 본절의 바울 설교를 비교해 볼 때 '족장들'로 해석하는 편이 무난하다.
ㅇ큰 권능으로 - 에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표현인 '큰 권능'은 70인역(LXX)역에서 영향받은 어투로(Robertson) 출 6:1, 6;신5:15;시 136:12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ㅇ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 본 구절은 광야 4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참으시고'로 번역된 혤라어 본문은 사본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 '에트로포포레센':공동번역 및 많은 영역 성경이 이 용어를 따라 '참으시고'로 번역했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 많은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참으신 사실을 부각시켜 준다. (2) '에트로포포레센':영역 성경 중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이 번역을 취하며 몇몇 대문자 사본 및 소문자 사본, 그리고 번역본들이 이 용어를 선택한다. 이는 '돌보다'는 의미로 신 1:31의 70인역(LXX)에 따른 것이다. 몇몇 학자들이 (해석을 지지하지만(Holtzmann, Zahn, Bruce)어떤 학자들은 이 두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Haenchen, Marshall, 아사노 중이찌). 사본상으로 '참으시고'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돌보시고'가 더 어울리기에 어느 하나를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신 1:31의 히브리어 본문은 70인역의 '돌보시다'란 의미보다 '참으시다'의 의미에 더 가깝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7'에트로포포래센'이 더 적합하다.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
ㅇ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정착하게 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요약한 본문은 신 7:1과 연관이 있다. 신 7:1에서 그 일곱 족속이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로 언급되어 있다.
ㅇ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 '기업으로 주다'에 사용된 동사 '카타클레로노메오'는 70인역(LXX)에서는 종종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본절에서만 언급된다. 그 뜻은 '몫을 따라 분배하다'란 의미로 유산 상속과도 관계가 있다. 본절에서 이 동사는 각 지파가 받을 분깃에 따라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에 대해 적용되었다.
ㅇ약 사백 오십 년간 - 여기서 450년이라는 기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계산한 것인지 이해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특히 사본에 따라 본 구절의 위치가 다르다. (1) 개역성경처럼 20절에 언급되는 '그후'란 표현 앞에 본구절을둔다(A,B,C). 이 경우450년은 사사 시대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2) 20절의 '그후' 다음에 450년을 둘 때 애굽에서 탈출한 후 광야생활부터 사사 시대까지 포함하여 450년이 된다. 첫번째 견해를 취할 경우 애굽에서400년, 광야에서 40년, 가나안 정복 기간 10년을합친 450년을 뜻한다(Bauernfeind, Lenski, Bruce, Knowling, Weiss, 아사노 중이찌). 그러나 실제로 광야 40년과 사사 시대는 사무엘 이전까지 약 37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사로 앉으면서 활동한 기간이 다윗왕까지 이어지는 70여 년간으로 계산할 경우 450여년이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450여 년은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정착하여 왕을 세우기까지의 기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므로 (2)를 따르는 편이 무난하다.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ㅇ그 후에 - 앞절이 가나안 정복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므로 '그 후'란 가나안 정복 이후 사사 시대를 뜻한다.
ㅇ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이스라엘을 이끌어 갔던 지도자들을 요약하여 언급하고있다. 가나안 정복 후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이 기간은 가나안 정복 전쟁(B.C. 1405)에서부터 사무엘이 그의 사역을 마치기까지(B.C. 1017) 약 400여 년이다.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ㅇ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 사사 시대가 끌나고 왕정 국가 시대가 언급되고 있다. 왕정 국가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사무엘이 너무 늙었다는 이유와 함께 다른 열방들의 왕권 통치에 대한 부러움예서 시작되었다(삼상8:5). 사실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며 신정 시대(神政時代)를 폐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ㅇ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은 들어주셨으나 호 13:11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이 분노하여 왕권을 허락했다고 언급되고 있다. 즉 왕권에 대한 요구는 부당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사울의 통치는 40년간(B.C. 1050-1010) 계속 되었는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함과 동시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죽음으로써 그의 통치는 끝나게 된다(삼상 31:1-6). 본 구절에서 언급되는 사울의통치 기간 40년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으므로 다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추측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Haenchen, Lenski).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ㅇ폐(廢)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 바울은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사울왕을 '폐하시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표현(호 13:11)임을 보여준다. 이는 왕정국가가 성립되었어도 하나님 개입이 계속 되었음을 말해 준다. 아마도 바울은 18절의 표현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참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려는 듯하다.
ㅇ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 삼상 13:14과 시 89:20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왕가(王家) 의 정통성을 신적인 권위로 세우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음에 합한'이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속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인물임을 부각시킨다.
ㅇ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 다윗에게 거는 하나님의 기대는 23절에서 언급되는 메시야 탄생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다윗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구속사를 이스라엘 백성이 대망하던 메시야에게로 초점을 맞추어 진행시키고 있다.                
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ㅇ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삼하 7:12에서 볼 수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언약을 맺는 형식을(창 15:1-21) 취하지 않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주어졌다. 그렇지만 언약 맺음에 있어서 수반되는 축복과 저주, 충성과 복종의 조항이 언급되므로 삼하 7장을 '다윗 언약의 장'이라 부른다. 아무튼 바울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면서 다윗 언약을 상기시켜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왕통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였다.
ㅇ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이 말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안에서 성취되었음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본 구절은 약간의 오해가 발생될 수 있다. 즉 본절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소명자로서의  바울과도 모순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메시야 사상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은,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는 다윗 왕국을 강건하게 복원시키는 정치적 인물임을 믿었다(삼하7:12-16).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해 다앙한 예언이 있다. 즉 수난의 '종'(사 42:1-7;49:1-7;50:4-9;52:13-53)또는 '인자'(단  7:13), '왕'으로서의 메시야와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슥 4:11-14)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한 메시야에게 다양한 상(像)이 복합적으로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으나 유대인들은 굳이 일부분만을 취하여 메시야를 정치적인 즉 이스라엘에 국한된 메시야로  한정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말한 것은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메시야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예언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구주임을 권위있게 증언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국한시키는 말로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ㅇ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 바울은 예수의 메시야됨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세례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세례 요한을 예수의 권위를 보증하는 데 이용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으며 이러한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18:25;눅 3:7-15). 따라서 바울은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증거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청중들에게 이러한 세례 요한의 활동을 회상시켜 그의 말에서 예수의 권위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는 이 사실이 예수의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25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ㅇ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 이 말은 딤후 4:7에서도 나오는데 헬라적 어투로서 바울의 독특한 어법이다(Haenchen). 본 구절은 요한이 예수에 대한 증거 사역을 다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ㅇ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 바울이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언급한 의도는 이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 즉 요한 자신이 메시야임을 직접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본문은 눅 3:15, 16과 요 1:19-27의 내용으로 당시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믿었던 유대인들이 많았음을 반증함과 동시에 요한이 대중들로부터 대단한 신뢰와 인기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신뢰하는 요한이 직접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 예수가 참 메시야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 자신은 그 증언을 위한 사명자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를 메시야로 확증하고자 한다.                 
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ㅇ형제들 - 청중들을 부르는 이 말은 회당 안에 모인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 및 회당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청중을 다시 부름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설교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ㅇ아브라함의 후예 - 이 말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도 의미한다. 이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 본 구절은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인들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도 16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본 구절을 헬라어 본문에 따라 직역하면 '이 구원의 말쏨이 우리에개 보내졌거늘'이란 의미가 된다. 개역성경은 주어를 하나님으로 전제해서 보내신 주체(主體)인 하나님을 강조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었다. 본절부터가 바울의 설교에 있어서' 본론 부분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구원의 말씀이 강조되어야 한다. 한편 '우리에게'란 표현은 어떤 사본에서는 '너희에게'로 언급되어 있다. 본절의 구원의 말쏨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차별없이 주어졌음을 볼 때 '우리에게'가 무난하다.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ㅇ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 - 바울은 예수를 처형했던 주범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의 견해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이 이스라엘 종교.정치 지도자들임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눅23:1-25). 
ㅇ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 15절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그들은 예배때마다 예언서를 읽지만 예언서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구셰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바울의 지적은 유대 지도자들의 무지함을 강조하며 또한 예수의 처형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밝히는것이다.
ㅇ응하게 하였도다 - 결국 예수의 불법적인 처형도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이미 제시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히는 바울의 설교는 3:18에서 언급되는 베드로의 설교와 일치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와 바울은 신학적으로 동일성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이 두 설교가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자신의 신학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Haenchen).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나 바울의 설교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여 초대 교회 시대에 있어서 케리그마가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했음을 보여준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ㅇ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 본 구절은 예수의 무죄함을 강조한다. 이는 눅 23:14, 15에서 언급된 빌라도의 무죄 선언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의 무죄 선언과 눅 23:14, 15에서의 무죄 선언의 주체를 구분하고있다(Haenchen). 즉 그는 눅 23:14, 15에서는 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무죄함을 입증한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에 대한 무죄 선언은 재판 과정에서나 신학적으로나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ㅇ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 바울은 예수의 재판과 처형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바의 성취로 이해하며 예수 사건을 전체 구속사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ㅇ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재확인하면서 부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즉 장사지내고 무덤에 돌어갔다는 점이 예수의 죽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바울은 믿는 듯하다. 여기서 '십자가'라는 말 대신 '나무'라고 언급한 것은 신 21:23에서 언급된 예언과 일치시키려는 바울의 의도로 보여진다. 한편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복음서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지않았다. 이는 바울의 관심이 예수의 완전한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구속사적 의의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30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ㅇ하나님이...저를 살리신지라 - 부활신앙에 대한 고백은 초대 교회에서 이미 공통된 교리로 고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15;4:10). 그리고 예수를 부활하게 한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죄와 처형을 하나님께서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보증하셨음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게 정당한 것으로 용납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ㅇ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 - 본 구절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와 동행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복음서에서도 증언하는 부활 목격자는 매우 다양하다. 즉 마태는 예수의 부활 현현(顯現)의 장소를 갈릴리로 제한시켜 언급하고 있으며(마 28:7, 10, 16) 마가 역시 마태와 동일하다. 요한은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각각 부활 현현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요 20장;21:2, 14). 또한 누가는 엠마오 도상에서 두 제자가 예수의 부활 현현을 목격했으며(눅 24:18) 예루살렘에 있던 열 한사도와 그 외의 추종자들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눅 24:33). 이와 같이 각 복음서마다 부활 현현의 장소와  대상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고전 15:6에서는 열 두사도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 전반에 걸친 부활 현현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할 때 본문의 의미는 불특정한 같릴리 출신인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10:39-41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처럼 사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Haenchen, Bruce).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다메섹 경험을(9:1-8)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고전 15:6에서 언급한 500명의 목격에 관한 언급도 없다는 점에서 본문의 내용은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묘사된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언급된 바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출신의 예수 추종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ㅇ여러 날 - 여기서 언급한 부활 현현의 기간은 1:3에서 언급된 400일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Haenchen, Robertson, Beyer).
ㅇ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산증인임을 언급하는데 바울 자신이 그 증언자에 포함되는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2절에서 본절의 증인들과 구분하여 '우리도'라고 바울 자신과 바나바를 언급한 점으로 보아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목격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한다(10:39-41).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ㅇ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 이 약속은 23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한다. 바울은 롬 4:13과 갈 3:16에서도 같은 형태의 진술을 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따라 오셔서 사역했음을 밝혔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ㅇ우리 자녀들에게 - 몇몇 사본들에는(A,B,C,D 등) 약속이 성취된 세대가 '우리의 자녀들'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본에서는(C,E,P 등)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언급되었다. 본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세대에 대한 것이므로 '우리 자녀들에게'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바울은 지금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대의 세대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대부분의 영역처럼 '그들의 자녀된 우리에게'로 해석되는 것이 무난하다.
ㅇ너는 내 아들이라 - 시 2:7을 인용한 본문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의 대관식(戴冠式)때 사용되던 시로서 이스라엘 왕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과 부자(父子)의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이 시편의 말씀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바울의 독특한 인용이 아니다. 사실 복음서에서도(막1:11; 눅 3:22) 예수가 메시야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때 본문과 갈은 내용을 인용하고있다(Bruce).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도 시 2:7을 예수에 대해 적용시켜 인용하였다(히1:5). 이는 시 2:7이 비록 왕의 대관식에서 많이 사용된 구절일지라도 유대인의 전통에서 그 구절을 메시야와 연관시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다윗의 가문에서 나온 왕권적인 권리를 가진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다고 믿었던것이다.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ㅇ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 바울은 예수가 죽어서 썩지 않고 부활할 것이라는 구약적 근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다윗의 가문에서 부활할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구약적 증거로 칠십인(LXX)역의 이사야 55:3을 들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의도는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27).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를 유대교 전통과 분리된 이단이 아니라 유대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임을 강변하고있다. 즉 본절은 당시 전통적인 유대교 앞에 소수종교로서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끈질긴 설득이다.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ㅇ또 다른 편에 - 이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들째 편(시 2:7)과 구분되는 시편을 뜻한다. 여기서 바울은 시 16:10 근거로 구약적인 부활 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더욱 심도있게 진술하고 있다.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ㅇ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 바울은 22절에서 언급했던 다윗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의 부활과 다윗의 죽음을 대조시켜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조했다.
먼저 바울은 육대인들이 갖고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을 재확인하고있다. 즉 22절에서 는 다윗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에게 용납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낼 사람으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도 역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여 다윗을 높이고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곧이어 다윗의 죽움과 썩어짐을 예수의 부활과 대조시켜 썩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유효했음을 강조한다. 한편 '섬기다'란 동사의 목적어로 사용된 '하나님의 뜻을 좇아'란 구절은 전치사 없이 여격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라고 번역될 수 있다(Robertson, Alford, Haenchen).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윗이 그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던 사람'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다윗의 업적과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22절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비록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음을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며 하나님에의해 맡겨진 사명을 잘 수행했을지라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약속은 성취의 여지를 남겨두고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예수와 연관지어 35절에 이어 다시 한번 더 언급함으로써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대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했다.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ㅇ하나님의 살리신 이 -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본 구절은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다윗의 유한한 생명과 예수의 영원한 생명을 대조시켜 하나님의 궁극적 뜻이 예수를 통해서 성취됨을 주장한다.
ㅇ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은 36절의 '썩음을 당하였으되'라는 말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다윗과 예수를 극명하게 구분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교 전통에 붙잡혀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윗보다 예수가 위대함을 논증해 보임으로써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선입관이나 잘못된 의식을 바꾸고자 했던 것같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ㅇ이 사람을 힘 입어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를 의미하여 어떤 결과의 유래(由來)를 나타낸다. 그것은 '죄사함의 선언'을 한 이가 예수임을 의미한다.
ㅇ죄사함 - 바울이 예수의 부활을 '죄사함'과 곧바로 연결시킨 것은 약간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 죄사함의 근거가 되는 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것 같다. 한편 바울이 '죄사함'을 복음의 핵심으로 선포한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죄'의 문제가 신앙의 억압적 요소로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遺傳)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했으며 그 중 하나라도 범하게 되면 죄인으로 판명되므로 죄문제로 인해 항상 억압당하는 신앙 생활을 했다. 그렇기때문에 바울의 예수에 의한 죄사함의 선포는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예수를 만남으로써 체험했던 사실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초대교회의 교리의 핵심이었다.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ㅇ모세의 율법으로...의롭다 하심을 - 본 구절은 바울 서신과 일치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으므로 본장에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본서의 저자인 누가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본 설교가 누가의 필치에 의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부활'과 '의의 선포'같은 내용은 바울의 독특한 신학을 형성하는 골격이 되므로 전체적인 내용은 분명히 설교자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일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쳤던 유대인듸의 삶을 지적하면서 의롭게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1) 사람이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과 (2) 예수를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ㅇ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 경고를 주기위해 41절에서 합 1:5를 인용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삼가라'는 말은 41절의 인용구절 중'멸시하는'과 연관되어 '멸시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놀라고 망하라'는 표현과 연관되어 '놀라고 망할까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지 확정할 수 없다.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ㅇ일렀으되 - 이 말은 앞절에서 언급했듯이 '선지자들'이 한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으로 예언서에서 발췌된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구절은 합 1:5로서 70인역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되었다. 히브리 본문에서 이 구절은 갈대아 사람의 등장에 대한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Haenchen). 그러나 바울은 이문구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배타적으로 우월감에 빠진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인해 버림받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인도될 것임을 예고하였다.               
42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ㅇ저희가 나갈새 - 본 구절은 바울이 설교를 마치고 회당에서 퇴장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다. 문맥상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 후 곧바로 퇴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예배 도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했을 가능성은 희밖하다.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교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예배를 마치기 전, 즉 자신의 설교만 마치고 퇴장한 것(Meyer, Knowling)이 아니라 예배를 마친 다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퇴장했으나 누가가 그 과정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Haenchen).  
ㅇ사람들이 청하되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 47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안식일의 설교가 있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2) 바울의 설교가 유대인들로부터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얻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유대교인들 중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이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ㅇ폐회한 후에 - 예배의 종료(終了)를 알리는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폐회의 암시와 부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즉 앞절에서 이미 예배의 종료가 함축적으로 언급되었다면 또다시언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절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퇴장할 때가 예배 도중이었을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도중에 퇴장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42절 주석) 본절은 예배 종료를 알리는 말이라기보다는 본절에서 언급되는 사건이 예배가 패회된 이후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ㅇ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 - 16절주석 참조.
ㅇ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 본 구절은 42절에서 언급된 바울의 설교를 다시 듣기로 간청한 것과 맞물려 이방 지역의 유대인 공둥체에서 기독교의 새로은 공동체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ㅇ온 성이 거의 다...모이니 - 이 같은 묘사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당시 온 성의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일 수 있을 정도의 회당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Bauernfeind). 누가가 이처럼 과장법을 사용한 것은 바울을 성공적인 설교가로 묘사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Haenchen). 하여튼 본절에서 누가가 진술하고자 하는 요지는 바울의 설교가 성공적이어서 비시디아 안디옥 온 성이 떠들썩했으며 더욱 많은 무리가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회당으로 몰려왔다는 사실이다.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ㅇ유대인들이 - 이들은 회당의 구성원들로 바리새파의 유전을 철저히 추종하는 유대인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회당의 핵심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가 자기 공동체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에 대해 무조건 비방하는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은 새로이 형성되는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있다.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ㅇ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 유대인들의 비방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가 응답함에 있어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진술을 권위있게 묘사하기 위해 '담대히 말하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 말의 헬라어 '파르레시아사메노이    는 '자유릅게 말하다' 또는 '숨김없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대답이 매우 확신에 찬 것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호소력이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ㅇ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 이 말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이는 유대인들 자신이 자처(自處)한 것이므로 복음을 전해 받지 못하는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언급은 바울 자신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비방하는 자들이 자신을 반(反) 유대적인 교리를 전파하는 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ㅇ주께서...명하시되 - 바울은 다시 자신의 이방 선교의 정당성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선포하여 그 사역의 신적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선포하는 내용도 인간의 지혜나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그토록 섬기던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자신을 비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ㅇ내가...구원하게 하리라 - 이 인용구는 사 42:6;49:6에서 발췌된 것이다. 이 이사야서의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바울과 바나바예게 하신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바울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예언하신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9:15) 이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 적절히 적용될 수 있다 하겠다. 즉 바울은 사 42:6;49:6에 예언된 내용을 전파하는 자로 자신들이 선택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구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ㅇ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 여기서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들은 이방인들의 기쁨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45절에서 언급된 유대인들의 반응과는 매우 대조되고있다. 본절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ㅇ작정된 자 - '작정(作定)된'으로 번역된 '테탁메노이'는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작정'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과거 완료는 과거를 시점으로 어떤 사건이 그 과거 이전에 완료되어 그 시점까지 영향을 미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작정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버리지않고 모든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ㅇ주의 말씀이 퍼지니라 - '퍼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페레토'   는 미완료 과거로 '계속 퍼지고 있었다'를 의미한다. 이는 주의 말씀이 점점 널리 퍼져가는것을 묘사한다. 그런데 누가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믿게 된 자들의 부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고 있다. 아마 이 부류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ㅇ경건한 귀부인들 -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의 설교가 육대교 회당 중심의 공동체에 위협을 주고 았다고 판단되자 그들을 추방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을 이용했다. 여기서 언급된 귀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짐작된다.
ㅇ그 성내 유력자들 - 이들은 앞에 언급된 '경건한 귀부인들'의 남편(William Neil)일 수 있으며 아니면 단순히 그 성읍에서 지도적인 인물로서 육대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ㅇ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 추방당하는 바울과 바나바는 제자들에게 명령했던 예수의 말씀(마 10:14)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러한 풍속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위로서 이방인들의 지역으로부터 나올 때 행한다.
ㅇ이고니온 -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으로부터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약 120km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고니온(Iconium)으로 떠나게 된다. 이 곳 역시 B.C. 25년경 갈라디아가 로마의 한 도(道)로 복속될 때 로마에 합병되었다(F.F. Bruce).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ㅇ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비시디아 안디옥의 거주자들을 가리킨다. 누가는 그들에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로서 그 지역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과 동일한 성령을 받았음을 보여줌과 동시에(2:4;4:31;10:44) 기독교 공동체가 융성해 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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