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1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23.주보시기에함당한선한양심의 바울_공회내자중지란.JC의 확증과격려.암살음모발각..가이사랴이송..벨릭스총독의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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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3장...투표시기에 그대의 한표를 주고자 하는이의 자격기준은 어떠한가 ??


@사람마다 독특한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유전자지도(게놈)이 있듯이 (거듭난 믿는이마다 존재적 편지이다) 주님은 그분의 계획하심따라 바울은 로마로 나아가 전할 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그 행적을 보이고 계셨다..

@[바울-예수님이 그러하셨듯]...무죄인 것이 밝혀진 그때임에도...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잊지말라..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를 못박은) 죄인이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소리치고 있으며, 예수님도 "너희 죄 내가 전가 받은 바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내가 죄인이다..나는 아직도 바로 그 일을 "기꺼이, 기쁘게" 하고 있다 -- "오직 내게 나아와서!! 깨닫는 죄마다 토설해버리거라, 내가 처리하마, 그리고 성령과 하나된!! 거듭난 참 믿는이의 생명충만한 삶 영위하거라" 하고 말씀하신다...((그대를 속이고 배신한 그 사람!!...그대로 하여금 주 앞에서 그대가 죄인됨 소스라치게 자각하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만든 그 사람이야말로!! 그 사람이야말로!! 그대에게는 무죄요, 참된 은인/의인임을 인정하라!!....죽기까지!!...[그대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외칠때!!, 그 때 주님은 ..둘 다 옳다...너희 각자 위해 내가 죄짐 모두 담당했단다 = 여전히 "내가 죄인이다!!.".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죄인임을 적어내려가는것이 성령의 편지이다...여자는 뼈요, 남자는 흙이다...재료가 좋은쪽이 항상 사과하고 회개해야 한다 - 그럼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남녀 불문하고!!) 구원받은 성도는 누구에게라도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그리할 때라야!! 최후에 보좌 앞 심판정에서 주님의 "너는 진실로 무죄다"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1.  [하나님께,나사렛 예수께 미친자]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아가도스" = 히)토브..거듭남 인해 선한(ajgaqov",  선, 행 23:1; 딤전 1:5; 딤전 1:19; 벧전 3:16; 벧전 3:21), /카다로스(kaqarov", 깨끗한-순결한-정결/청결한, 딤전 3:9; 딤후 1:3), /칼로스(kalov",선한-아름다운-고상한, 히 13:18), /아프로스코포스(ajprovskopo", 허물/거침/거리낌이 없는, 행 24:16), ::: 내주하시는 Q과 일치한, 곧 Q 임재 의식 안에서의 존재적 양식(선한 양심은 관계being의 문제)---생략되어 있음]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HS의 시민으로서 Q말씀에 합당히 일치되게 따르다] 하거늘..."I have lived my life before God with a perfectly good conscience until this very day.” 

.......@아테니조--열중하여 보다 look at interntly, ∼를 응시하다 gaze on, 관찰하다 observe.'열중하여 보다, 주시하다, 응시하다, 관찰하다'를 의미. 

(a)  아테니조는 '열중하여 보는 것'. 눅 4:20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고향의 회당에서 사 61장을 낭독할 때 모든 눈들이 '그에게 집중되었다'(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22:56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체포된 직후에 그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를 피하려고 애썼지만 한 하녀가 그를 열중하여 보았다: "한 비자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행 1:10에서 제자들이 주의 승천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이와 유사한 용법의 말이 행 3:12; 행 6:15; 행 7:55; 행 10:4; 행 11:6; 행 23:1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후 3:7과 고후 3:13에서 아테니조는 이스라엘인들이 결코 베일(veil)에 가려 숨겨져 있지 않는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어떻게 응시할 것인가를 묘사하고 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b)  아테니조는 3회에 걸쳐 기적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행 3:4; 행 13:9; 행 14:9). 눈의 만남이 치유와 저주에 관한 어떤 세속적, 랍비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어떤 특징이 있다 할지라도(SB Ⅱ 713이하) 그것은 여기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를 "똑바로"(straight at) 보고(행3:4), 그가 주목하기를 요구했다(Western MSD는 그 동사들을 역으로 사용하여 베드로 대신에 그 불구자에게 좀 더 강렬한 아테니조를 부여하고 있다). 6절에서 8절까지 계속되는 치유에서 눈의 만남(접촉)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행 4:9에서 바울은 그 앉은뱅이를 열중하여 보았으나 분명히 그가 믿음이 있는지 어떤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c)  행 13:9에서만 보는 것이 저주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7:55-56...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3:4-6..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주시하다의 헬라어는 <아테니조 ατενίζω>... 깊이 몰두하여 보는 모습을 의미... 뚫어지게 집중해서 보는 모습.....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영혼을 바라 보시는 그 시선이 <아테니조ατενίζω> 대충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쏟을 만큼 집중해서 보고 계심....하나님께서 그 시선을 한번도 떼신 적이 없으시며 항상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와 있으신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 나가고 계시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요, 그 한 사람을 하나님을 아주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바라 보고 계시는데, 그것이 <아테니조 ατενίζω>인 것...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도 똑같은 시선으로 하나님을 바라 봐 주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쳐다 보시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깊이 쳐다 보기를 원하시는데, 대충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서 온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바라 보시는 그 눈동자 안에 그 한 사람이 있는 것....[시17:8..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 @@마음의 중심 = 히> 킬야 = 헬>쉬네이도 :: 양심 :Q과 하나된 참된 존재로서의 "거듭난 내가" 함께 파악하는바 = 마음의 숨겨진 근본동기와 태도

....@@쉬네이데시스 = 의식 consciousness, 양심 conscience.

쉬네이도= 쉰(syn..함께)+에이도(보다) =(suneivdw, --함께보다,이해하다)에서 유래... '의식, 양심, 성실함'을 의미.

[시26: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7:9...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마음의 중심<킬야- הילכ!<.....히브리어 <킬야 הילכ<는 사람의 오장육부의 내장 기관을 의미 사람의 깊은 속마음과 생각을 의미.. 양심이 머무는 곳을 <킬야>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은밀한 생각을 <킬야 הילכ<라고 한다 ...<마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레바בהָּלִ<는 심장을 의미... 레바는 속 마음을 뜻한다... 반면 <양심>을 뜻하는 히브리어 <킬야 הילכ<는 콩팥을 의미... 마음 속에 숨겨진 동기와 태도를 의미한다 ...  하나님 앞에서 마음<레바בהָּלִ<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 속에 숨겨진 동기<킬야 הילכ<와 태도는 더 중요할 것이다 사람은 그 마음 중심의 태도를 모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정확하게 다 보고 계시니...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할지라도 그 마음 중심 속에 숨겨진 동기와 뜻은 다를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연단하시는 목적 중의 하나가 그 마음 중심을 하나님의 심령으로 채우시기 위해서, 그 마음 중심의 태도<킬야 הילכ<를 말씀으로 다듬기 위해서 인것... 아무도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고 기뻐하시기 때문...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니... 똑같은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다를 수 있다 똑같은 말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전혀 똑같지 않으실 수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 마음의 중심과 태도는 어떠할런지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예수당시 .최악의 인격모독은 입을 치는것(JC께서도 당하셨다) :: 겉만 보고 안하무인격으로 대하고 있다 -->그 다음은 뺨을 치는것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먼저 내 속에 있는 나의 "회칠한 담 살펴보고 회개하며 내 입을 칩니다..용서하소서/깨어나게 하소서"-->(함부로 도발하더라도!) (신자든 불신자든 상관없이!!) 형제에게 노하지말라 (오직 영 안에 머무르라) :: 복음전파 기회 놓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정해진 순서대로 분별함없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입 다물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영 안에 있어야만 HS 일깨우시는 바 그대로 깨닫는 그 즉시 잘못/실수를 인정 가능함...바로 그리할 때야말로 성령께서 역사하는 여지를 활짝 열어드리는 것이 됨..먼저 내 자신이 실행해야함 ... 무너진/왜곡된/화인맞은 양심을 고집스레 밀고 나가는한 전쟁-기근-온역-지진 등, 가시채 뒷발질하는 고통뿐이다!! ((COVID19, 러우전쟁...))

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이미 상황을 파악하여 알고 있는 그대로, 기지를 발휘하여??..무엇을/누구를 위해 외치고 있는것인가...로마행 위해 문득 깨닫게 하신바 발휘된 기지일 수는 있겠다].......((로마까지 가서 증언할 증인으로 예정해두신바)) 바울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대 자신 또한(( 주 안에서 예정해 놀으신 경륜대로 이끄실 바)) 성령의 편지요 향기임을 자각하는자로 보는 영적 시각이 열려야 하리라!!.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오도/거짓된 경건주의신봉자---부활의 참소망 모름)과 사두개인(현세적 쾌락주의신봉자--부활의 참소망 모름)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어쩌면!! 복음전파 호기 놓친 낭패감/괜한 두려움에 젖어 회개-애통하는]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Be encouraged!! = 힘내거라..끝까지 버텨 견뎌내고 마침내 이겨내야 한다 Be brave; for as you have solemnly and faithfully witnessed about Me at Jerusalem, so you must also testify at Rome]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엄숙/진지+신실하게]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마14:27..안심하라(=담대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다르세오) 용기를 가지다. 안심/침착/용감/강하고담대하다/기운내다

동사 다르세오(Homer 이래)는 다르소스(qarso", 2294: 용기)에서 유래했으며, '좋은 용기를 가지다, 무서워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야레(3372: 두려워하다, 경외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두려워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나타난다(창 35:17; 출 20:20; 욜 2:21). 굶어 죽게된 위기에 처해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행한 엘리야의 위로의 말이든(왕상 17:13) 혹은 이 백성들 또는 예루살렘에게 행한 선지자의 격려의 말이든 간에(습 3:16; 학 2:5; 슥 8:13; 슥 8:15) 위로와 용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생겨나며 하나님의 도움과 약속을 확신하는 소망에 기초하고 있다.

동사 다르세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

(a)  막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 바디메오의 동료들이 그에게 다르세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어 도와주시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b)  ①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좋은 용기를 가지라'고 권고하신다. 그가 주시는 것, 혹은 그 자신이 이러한 권고를 뒷받침한다. 예수님 자신의 주장이 이러한 권고 배후에 놓여 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자유케하시는 역사가 일어난다. 따라서 이 복음은 기쁨과 확신을 가져다 주니 근심 걱정을 몰아내며,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 가운데로 이끌어들인다.   ② 마 9:22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c)  행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옥에 갇힌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하셨다.  (d)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위협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런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담대할 수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죽음에서도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지 않았음을 아신다(요 19:28-요 19:30; 막 15:34). 그들의 담대함은 의심스러운 영혼 불멸론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고, 비법전수 및 신격화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승리적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다. 역사가 신화를 대신하며, 성취가 갈망을 대신한다.   (e)  마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병행구 막 6:50).

......[마14:26-30...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담대하다의 헬라어가 <타르세오θαρσέω>.. 강하고 담대하라의 뜻... 그런데 <타르세오θαρσέω>가 때때로 안심하라 평안하라의 뜻으로 사용된다... 갈릴리 호수에서 거친 풍랑이 일었을 때 제자들이 두려워 하는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바라 보시며 안심하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때 <타르세오θαρσέω>라고 표현하셨다 .. 모든 주권과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심하라고 말씀 하실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든 환경과 상황을 친히 주관하고 계심을 의미하고 있다 사람의 눈에 아무리 거센 풍파가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풍랑 뒤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중풍으로 고생했던 사람을 친구들이 들 것에 메어서 예수께 나아왔을 때 안심하라<타르세오θαρσέω>고 하셨다 .. 모든 질병의 치유의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보여주셨다 .. 질병으로 고통받는 영혼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그 치유의 능력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 ..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는 영혼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평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 ... 이 땅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때문 ... 모든 능력과 주권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바울을 죽이려는 간계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보라...주님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있으니..여전히 다루심이 필요한 인생이기에  결코 easy-going 아님에 주의하라 ---하나되어 함께 걸으시며 섭리하시며 능력주시는 Q 신뢰하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역사상 유일하게 노예였다가 총독이 된, 입지전적 인물]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루시아는 헬라인 이름..헬라인이었지만 글라우디오 황제때 돈을 주고 로마시민권 샀고, 그게 자랑스러워서 글리우디오 루시아로 개명했다]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우연히 바울의 신분이 로마인임을 알게된 것임을 숨김.. 자기에게 유리하게 비튼, 부분적 거짓임]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엔칼레오...롬8:)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무죄로 판단함]

........@@엔칼레오---로마서 8:33에서 ‘고발하다’라는 문구에 사용된 헬라어는 엔칼레오enkaleō. 그것은 두 개의 헬라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간단하게 ‘안에’를 의미하는 엔en과 ‘부르다’를 의미하는 칼레오kaleō.... 엔칼레오enkaleō는 문자 그대로 ‘부르다’ 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르다"’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법정에서 누군가에 대해 제기된 혐의를 나타내기 위해 법적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좋은 의미는 사도행전 19:38에서 사용된 것처럼 ‘고발하다’이다. “그러므로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장인들이 어떤 사람에 대해 고소를 하면 법정이 열리고 속주 총독이 있으니 그들이 서로에 대해 고발(엔칼레오enkaleō)을 하게 하라.” .... 로마서 8:33에 언급된 ‘책임’은 무엇인가? 한편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대한 비난을 의미한다. 분명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고발할 것이다. 반면에, ‘책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탄이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법정에 서게 하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법원이 소환장을 사용하는 방식과 같다. 어떤 사람이 법적 문제와 관련하여 기소될 경우, 법원은 피고인에게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하라는 서면 명령인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다.   사탄의 참소에 직면할 때 우리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고, 그분은 우리를 위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강하든, 약하든, 승리하든, 패배하든,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합당성이나 무가치함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의롭게 되었다! 우리는 담대하게 ‘사탄아, 너나 다른 누구도 다시는 나를 고발할 수 없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벨릭스 ::노예에서 총독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  '피의 대학살'을 통해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한 사건으로 악명 높아....((노예시절 착취당하면서 상전의 눈치보며 하루하루 분노감/복수심-열등감에서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한 피해망상적 심리로 살았던 결과..권력지향적 상납/아부근성+ 아래사람에게는 학대/쉽사리 화냄 + 잔인/폭력 성향..))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이 천부장과 백부장의 호위를 받으며 가이사랴(Caesarea)로 이송되고 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는 유대인의 폭동을 막고, 로마 시민권자 바울을 보호할 의도로 이송을 결정했다. 유대인 폭동은 당시 로마 정부의 중요한 문제였다. 천부장은 자신의 친서(親書)와 함께 총독 벨릭스(Felix)에게 보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총독 벨릭스(Felix)를 만났다. 벨릭스는 사도행전에만 등장하는 인물인데,(행23:24,26; 행24:3,22,24,25,27; 행25:14). 원래 글라우디오 황제 어머니 안토니아 집안의 노예였다고 전해지며, 그것이 자랑스러워서 그의 이름 앞에 안토니오를 넣어서 안토나오 벨릭스라 개명했다고 한다. 그는 노예에서 총독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 그의 출세는 글라우디오 황제(행18:2) 총애를 받았던 그의 형 팔라스(Pallas) 덕분.. 척 스윈돌은 팔라스(Pallas)가 글라우디오와 네로황제의 재무장관이었다고 고찰한다.

벨릭스의 입신양명 배경을 보자면, 유대 총독 벤티디우스 쿠마누스(Ventidius Cumanus)가 유대인의 미움을 샀는데. 설상가상으로 유대 지도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갈등을 겪자 로마에서 그를 불러 심문하는 중에 또 다른 죄목이 드러니서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를 해임하게 되고, 대제사장 아나니아 아들 요나단은 쿠마누스 후임으로 벨릭스(Marcus Antonius Felix)를 요청하여 벨릭스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했다. ... 벨릭스의 뜻은 ‘행복’이지만.. 그는 탐욕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벨릭스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려고 암살자까지 동원한 잔인한 인물’로 소개하였고 그는 탐욕의 화신이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가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둘렀다’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벨릭스는 악명 높은 총독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 후에 유대를 다스렸던 알비누스(Albinus)총독은 전임자 벨릭스가 뇌물을 받고 반란에 가담했던 죄수들까지 풀어주었다고 불평했으며... 남아있는 모든 역사자료들은 벨릭스의 부정부패에 대해 의견이 일치했다. 성경은 벨릭스가 바울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바울에게 뇌물을 기대하고 그를 계속 붙잡아 두었다고 기록한다(행24:26). 이는 벨릭스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고, 그의 인간 됨됨이를 잘 보여 주는 말씀이다. ... 벨릭스는 양심이 없는 기회주의자였다고 척 스윈돌은 강조하는데,. 벨릭스는 치안을 위한다며 강도로 분류된 400명을 함부로 죽였을뿐 아니라,. 아울러 벨릭스는 ‘시카리(Sicarii)라는 강도단을 사주하여 대제사장 요나단을 살해한 사건 배후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요나단 피살사건은 벨릭스가 총독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으니)... 노예 출신 벨릭스는 3명의 왕실 출신 여인들과 결혼했다. 폴란드 출신 죠니 펠릭사(Zony Feliksa)는 "벨릭스의 아내들(The wives of Felix)"이라는 논문에서 벨릭스의 세 아내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타키투스 자료를 인용하며 그의 둘째 아내는 이집트 톨레미왕조의 마지막 군주 클레오파트라-안토니오의 손녀(혹은 증손녀) 모레타니아의 드루실라(Drusilla of Mauretania)라고 소개하고 있다. 벨릭스 셋째 아내는 헤롯대제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동생 드루실라였다(행24:24). ...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했고 베드로를 투옥한 사람이고, 가이사랴 극장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연설을 하고 하나님 진노로 죽었다(행12장). 헤롯 아그립바1세는 세 딸을 두었는데 둘째 딸이 베니게, 막내가 드루실라이며, 드루실라의 언니 베니게가 친형제 아그립바 2세(행25:23)의 아내였으니.... 권력을 탐했던 헤롯 가문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를 볼 수 있다. ... 미모와 발랄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막내딸 드루실라는 어린 나이에 소아시아의 콤마게네(Commagene) 왕자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했고, 15세에 수리아의 작은 왕국 에메사(Emesa)의 아시수스(Azizus)왕과 결혼한 상태였으나,. 벨릭스는 결혼한 드루실라에 반해 그녀를 설득하여,. 드루실라는 결국 아시수수왕과 이혼하고 벨릭스의 셋째 부인이 되었다. (벨릭스가 유대총독으로 부임 전 사마리아 사령관 신분 시절에 드루실라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드루실라는 유대의 정세에 밝았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재판할 때에 드루실라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의 분쟁에 대해 잘 알았을 것이고, 아마도 바울에 대한 산헤드린 지도자들의 분노와 고소도 알았을 것이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남편 벨릭스에게 이런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 줬을 것이다(행24:22). 그래서, 벨릭스는 바울의 결백을 알고 있었다. ... 당시 벨릭스는 '피의 대학살'을 통해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한 사건으로 악명 높았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탐욕과 폭정을 일삼던 벨릭스는 결국 유대인 지도자들의 진정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어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당했다가 폼페이로 유배당했다. 성공회 지도자 F. W. 파라(Farrar)는 “벨릭스가 노예 중에 가장 사악했으며, 모든 시대에서 가장 악했으며, 모든 도시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었다.”라고 정리했다. (요세푸스는 드루실라와 벨릭스 사이에 아들 아그립바를 낳았다고 기록했다.)... 벨릭스, 드루실라 그리고 아들 아그립바는 별장의 도시 폼페이로 유배당했다. 경관, 맑은 공기, 그리고 좋은 시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양지였던 폼페이로 유배된 것도 형 덕분이었다. 그런데 폼페이 화산이 터졌고.. AD 79년 8월 24일에 벨릭스 일가족은 화산에 덮여 몰살당했다 ...벨릭스의 형 팔라스는 글라우디오 이후 네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다음에도 계속 영향력을 유지했고, 이 때문에 벨릭스는 로마로 소환된 이후에도 큰 벌을 면할 수 있었으며, 간신히 형벌은 면했지만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베수비오로 추방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머물다가 화산의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아래 결국 아들과 함께 매몰되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을 벨릭스 총독 앞에 세우다.....구원사역은 (언제 어디로...최종목적지에 이르도록) 환경-시간에 맞게 움직여야 함 ::: 십자가는 지혜요 구원의 지혜는 타이밍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예루살렘은 고지임)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2년의 안식년 누리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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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23 Amplified Bible

===Paul before the Council

1 Then Paul, looking intently at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said, “Kinsmen, I have lived my life before God with a perfectly good conscience until this very day.” 

2 [At this] the high priest [a]Ananias ordered those who stood beside him to strike Paul on the mouth. 

3 Then Paul said to him, “God is going to strike you, you [b]whitewashed wall! Do you actually sit to judge me according to the Law, and yet in violation of the Law order me to be struck?” 

4 But those who stood near Paul said, “Are you insulting the high priest of God?” 

5 Paul said, “I was not aware, brothers, that he was [c]high priest; for it is written, ‘You shall not speak evil of a ruler of your people.’”

6 But recognizing that one group were Sadducees and the other Pharisees, Paul began affirming loudly in the Council chamber, “Kinsmen, I am a Pharisee, a son of Pharisees; I am on trial for the hope and resurrection of the dead!” 

7 When he said this, an angry dispute erupted between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and the [whole crowded] assembly was divided [into two factions]. 

8 For the Sadducees say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a] resurrection, nor an angel, nor a spirit, but the Pharisees [speak out freely and] acknowledge [their belief in] them all. 

9 Then a great uproar occurred, and some of the scribes of the Pharisees’ party stood up and began to argue heatedly [in Paul’s favor], saying, “We find nothing wrong with this man; suppose a spirit or an angel has [really] spoken to him?” 

10 And as the dissension became even greater, the commander, fearing that Paul would be torn to pieces by them, ordered the troops to go down and forcibly take him from them, and bring him to the barracks.

11 On the following night the Lord stood near Paul and said, “Be brave; for as you have solemnly and faithfully witnessed about Me at Jerusalem, so you must also testify at Rome.”

===A Conspiracy to Kill Paul

12 Now when day came, the Jews formed a conspiracy and bound themselves under an oath (curse), saying that they would not eat or drink until they had killed Paul. 

13 There were more than forty [men] who formed this plot [and swore this oath]. 

14 They went to the chief priests and elders and said, “We have bound ourselves under a solemn oath not to taste anything [neither food nor drink] until we have killed Paul. 

15 So now you, along with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notify the commander to bring Paul down to you, as if you were going to investigate his case more thoroughly. But we are ready to kill him before he comes near [the place].”

16 But the son of Paul’s sister heard of their [planned] ambush, and he went to the barracks and told Paul. 

17 Then Paul, calling in one of the centurions, said, “Take this young man to the commander, for he has something to tell him.” 

18 So he took him and led him to the commander and said, “Paul the prisoner called for me and asked me to bring this young man to you, because he has something to tell you.” 

19 The commander took him by the hand and stepping aside, began to ask him privately, “What is it that you have to tell me?” 

20 And he said, “The Jews have agreed to ask you to bring Paul down to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tomorrow, as if they were going to interrogate him more thoroughly. 

21 But do not listen to them, for more than forty of them are lying in wait for him, and they have bound themselves with an oath not to eat or drink until they have killed him. Even now they are ready, just waiting for your promise.” 

22 So the commander let the young man leave, instructing him, “Do not tell anyone that you have given me this information.”

===Paul Moved to Caesarea Maritima

23 Then summoning two of the centurions, he said, “Have two hundred soldiers ready by the third hour of the night (9:00 p.m.) to go as far as [d]Caesarea, with seventy horsemen and two hundred [e]spearmen; 

24 also provide mounts for Paul to ride, and bring him safely to [f]Felix the governor.” 

25 And [after instructing the centurions] he wrote a letter to this effect:

26 “Claudius Lysias, to the most excellent governor Felix, greetings.

27 This man was seized [as a prisoner] by the Jews and was about to be killed by them, when I came upon him with the troops and rescued him, having learned that he was a Roman citizen. 

28 And wanting to know the exact charge which they were making against him, I brought him down to their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29 and I discovered that he was accused in regard to questions and issues in their Law, but [he was] under no accusation that would call for the penalty of death or [even] for imprisonment.

30 When I was told that there would be a plot against the man, I sent him to you immediately, also directing his accusers to bring their charges against him before you.”

31 So the soldiers, in compliance with their orders, took Paul and brought him to Antipatris during the night. 

32 And the next day, leaving the horsemen to go on with him, they returned to the barracks. 

33 When these [horsemen] reached Caesarea, they delivered the letter to the governor, and also presented Paul to him. 

34 After reading the letter, he asked which province Paul was from, and when he learned that he was from Cilicia [an imperial province], 

35 he said, “I will hear your case when your accusers have arrived,” giving orders that Paul be kept under guard in Herod’s Praetorium (the governor’s official residence).

===Footnotes

Acts 23:2 Ananias served as high priest from a.d. 47-59. He was a violent man who had close ties to Rome and was assassinated by his own people about a.d. 66.

Acts 23:3 Paul probably is referring to the outside wall of a tomb, which was considered ritually unclean and polluted. Tombs were usually whitewashed on the outside so that passers-by could see them more clearly and avoid contact with them.

Acts 23:5 Under Roman domination, high priests did not serve for life but were replaced from time to time. Paul had not been updated on the current status of the office.

Acts 23:23 Caesarea Maritima (Caesarea-on-the-Sea) was a coastal city built by Herod the Great. It was an important city, both politically and militarily, and its harbor was the largest on the eastern Mediterranean coast. It was the capital of Judea, and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prefects and procurators (governors) appointed by Rome. Both Pontius Pilate (prefect, a.d. 26-36) and Marcus Antonius Felix (procurator, a.d. 52-60) would have been based here during their respective terms of office.

Acts 23:23 Or slingers or bowmen.

 

Acts 23:24 Marcus Antonius Felix was appointed by Emperor Claudius and served as procurator (governor) of Judea from a.d. 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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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3장 (개요)

2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대제사장의 법정으로 가게 되었다. 

천부장은 이 사건을 폭도들로부터 옮겨 대법정으로 가져갔다(그것이 그에게는 이로운 일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바울의 적대자들이 난동을 부리면서 그를 적대하는 행위는 좀 가라앉았다고 하지만 그들의 바울을 해치려는 모의는 더욱 간교해졌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바울의 자기의 결백에 대한 주장과 대제사장에게 자신을 정중히 대해 줄 것을 요구함. 바울은 돌연히 격분하여 당당하게 이 사실을 대제사장에게 말하였다(1-5).

Ⅱ.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간의 견해차가 심한 것을 이용하여 바울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신중한 시도(6-9).

Ⅲ. 천부장은 때맞추어 그들의 손에서 바울을 구출함(10).

Ⅳ.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사 그를 위로하심. 

그는 바울에게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어려움을 이기라고 격려하시고 그가 당할 일들을 그에게 전하신다(11).

Ⅴ. 바울을 결사코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잔인한 음모. 

그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그들의 동조자와 교사자로 끌어들임(12-15).

Ⅵ. 바울에 대한 이 음모의 사전 발견. 

이 사실을 바울이 사람을 통해 천부장에게 고하였다. 천부장은 바울에 대한 그들의 뿌리 깊은 원심을 알았으므로 그 정보를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16-22).

Ⅶ. 천부장의 바울의 신변 보호를 위한 배려. 

그는 그 음모의 실행을 저지시키고자 하였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힘센 호위병들을 딸려서 그를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이사랴로 호송하였다. 

가이사랴는 벨릭스 총독의 주둔자였다. 바울은 안전하게 거기 당도하였다(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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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바울의 두 번째의 자기 변명(1)(행 23:1-5)

바울이 그가 종종 경험하였듯이 이방인 재판관과 재판정 앞에 섰을 때 그의 문제는 기각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에 관하여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천부장이 만약 바울을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에 데려 가면 그들이 그 일을 정당하고 바르게 처리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볼 수 있다.

Ⅰ. 바울의 자기 결백에 대한 주장. 

대제사장이 그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또 천부장이 법정에서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떤 설명을 했는지는 본문에 없지만 다음과 같은 바울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1. 그는 담대하였다. 

바울을 이 엄숙한 분위기가 가득한 공회 그 앞에 섰을 때도 그는 침착성을 잃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젊은 날 자기가 이 명예로운 직책을 맡아야겠다는 꿈을 꾸었었다. 그들로부터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공문을 받고 보냄받은 이후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그들과 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약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그의 임무를 태만히 한 것에 대한 추궁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공회를 주목하였다." 스데반이 그들에게 끌려 왔을 때 그들은 스데반을 그 분위기로 압도해 버리고저 했었으나 스데반의 거룩한 믿음은 그를 담대하고 당당히 설 수 있게 했었다. 그 때, 스데반을 압도하고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으나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동요가 없었다"(6:15). 이제 바울이 그들 앞에 섰을 때 바울은 [오히려] 그들을 위압해 버리고자 마음 먹었지만 바울의 의도는 실패하였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험상궂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약속하신 바가 바울에게서 성취되었다(에 3:8, 9). 

즉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으니 그들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고 하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2. 바울은 떳떳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담대히 설 수 있었다. 즉, 결백한 양심은 최대의 철방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백한 양심을 지니도록 하라는 격언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비록 내가 치욕을 당하더라도 나는 나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나는 이 사실을 떳떳이 말할 수 있노라"고 하였다.

(1) 그는 항상 신앙대로 살고자 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결코 멋대로 살아 온 적이 없으며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을 택하여 사는 사람이었다. 

비록 회심하기 전에도 바울은 율법의 의(義)에 비추어 볼 때 흠잡을 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각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질 줄 모르는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바울은 다만 자기의 생의 목적에 입각하여 생활하였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2)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을 때도 그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며 그 일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그의 양심이 잘못 깨닫기는 하였지만 그는 자기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였던 것이다. 26장 9절을 참조하라.

(3) 바울은 자기의 회심 이후부터 즉 그가 대제사장을 섬기던 일을 버림으로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된 이후부터 본문에서 이야기 하려고 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나의 처음 사회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희들이 나를 변절자로 여기고, 너희가 섬기는 교회의 적이며 배신자로 여기던 때부터 내내 오늘까지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왔노라. 너희들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하나님께 무슨 일에도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이 설 수 있으며 또 정직하게 살아 왔노라"(히 3:18)고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의 의무를 다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바울에 대해 그렇게 화나게 한 이유가 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그의 모든 수고를 함에 있어서 특히 그 나라를 이방인 가운데 세우기 위하여 행한 모든 수고를 함에 있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였다. 정직한 사람의 특징을 다음에서 살펴 보자.

① 그는 자기 앞에 하나님을 앞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며 그의 감찰 아래서 산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산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내 앞에서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의로우리라"고 한다.

② 그는 자기가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 그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악한 것을 삼가고 선한 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③ 그는 누가 볼 때도 양심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진짜 양심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또한 그는 "모든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도" 양심적이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나는 나의 선한 양심에 따라 살아왔다. 나는 내 모든 생활을 양심의 지시와 지배에 따라 영위해 왔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④ 그는 위와 같은 생활을 계속해야 하며 그럴 양심을 보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내가 오늘날까지 그렇게 살아 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변화가 그에게 닥치든지 그는 한결같아야 하고 엄격히 양심을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좋은 양심을 지니고 살아 온 사람은 본문의 바울처럼 "주저없이 얼굴을 둘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양심이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욥이 자신의 흠없음을 지켰을 때 취하였던 태도처럼 바울 자신이 자기 양심에 대하여 증언할 수가 있었던 것처럼(그는 이 사실을 그의 기쁨으로 삼았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것이다.

Ⅱ.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난폭한 행위. 

아나니아는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에게 즉 법정을 관리하는 하속에게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다(2절). 즉 손이나 또는 막대기를 가지고 그의 입을 치라고 하였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예언된 것과 같이(막 5:1) 이와 같이 이 법정에서 대제사장의 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욕을 당하셨다. 

미가서에서 "그들이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고 예언되었던 것이다. 

본문에 보면 법정에서 그러한 명을 내렸던 것이고 또 그것은 명령대로 시행된 것으로 보여진다.

1. 대제사장은 바울에게 매우 분개하였다. 

어떤 사람은 바울이 법정에서 그렇게 대담하고 진실했기 때문에 즉 그가 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분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특별한 존칭이나 경어를 붙여 그를 높이지 않고 그들 모두를 일괄적으로 형제들이라고 친근한 어투로 자유로이 말하였기 때문에 그가 격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자기의 결백에 대한 주장은 그를 파멸시키고 또 가증한 인물로 취급하려는 자들을 자극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바울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자 대제사장은 바울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2. 대제사장은 화가 나서 바울을 모욕하기 위해 그를 치라고 명령하였다. 

또한 그가 그의 입술로 범죄하였다는 듯이 또는 입을 닥치라는 뜻으로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대제사장은 "바울이 지혜롭게 말하는 것을 답변할 수 없게 되자" 이 야만적이고 짐승적인 방법을 취하였던 것이다. 

이같이 시드기야는 미가를 때렸고(왕상 22:24), 바수훌은 예레미야를 때렸다(렘 20:2). 즉 그들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선한 사람에게 이러한 모욕이 주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또한 우리가 선을 행하고 선한 말을 하였다고 해서 이러한 모욕이 우리에게 주어지거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입을 구타당하는 사람들에게 "입맞춤"으로 보답하실 것이다(아 1:2). 

솔로몬은 말하였듯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바른 답변을 하는 사람들의 편을 더욱 지지해 주리라고 여길 수 있다(전 24:26).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Ⅲ. 대제사장에게 있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바울의 경고. 

그것은 그가 "재판석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다"(전 3:16). 위의 인용문은 뒤이어 나오는 17절의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즉 17절은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되어 있다. 

즉 솔로몬은 비록 재판석에서 악이 행해진다고 해도 이들이 결국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를 삼는다. 

바울도 그러한 심정으로 본문에서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3절)고 말하였다. 

바울은 죄된 분을 발하여 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제사장인 자기의 권리를 남용한 것을 경고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심에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또한 보복 정신으로가 아니라 선지자적 정신으로 그렇게 말하였다.

1. 바울은 대제사장의 본성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는 대제사장을 "회칠한 담"이라고 하였다. 

즉 "너는 위선자다. 너의 속에는 쓰레기와 온갖 더러운 것이 들어 있으나 겉으로는 석회를 칠하거나 또는 희게 단장하여 좋게 보이는 흙담이다"라고 한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회칠한 무덤과 바리새인을 비교하셔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성격의 비유이다(마 23:27). 

잘 반죽되지 않은 회를 칠하고 다니는 자들은 칠을 잘하여 자신을 깨끗하고 산뜻하게 보이게 하는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2. 바울은 그의 파멸을 예고한다. 

곧 "하나님께서 너를 치시리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쓰라린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예고한다. 

^^그로티우스는 대제사장이 그의 집무실을 떠난 후 곧 이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후 곧 죽었거나 관직을 박탈당했으리라고 간주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다른 사람이 그의 자리에 대신 앉은 것을 볼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은 것이라고 그로티우스는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신의 진노를 입어 삽시간에 생명이 떠났으리라고 여겨진다. 여로보암도 선지자를 대하여 손을 뻗었을 때 그의 손이 말라 비틀어졌었다.

3. 바울은 그의 파멸의 이유를 제시한다. 

"네가 교회의 최고법정의 우두머리로서 앉아서 네가 율법에 따라 나를 재판하고 또 율법에 의해 나를 저주하며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하려느냐. 너는 내 죄도 밝혀지기도 전에 나를 치라고 명령하였다. 그것은 율법에 위배되는 짓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태형을 받을 만한" 잘못이 없는 한 누구도 태형을 당할 수 없다(신 25:2)"는 것을 율법은 규정하고 있다. 

피고에게 자기를 방어할 기회를 주지 않거나 말도 들어봄이 없이 피고를 정죄하는 것은 인간의 법이나 하나님의 법이나, 자연법이나, 실정법에나, 다 같이 위배된다. 바울이 폭도들에 의해 폭행를 당했다면 그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 따라 재판하도록 임명된 대제사장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었다.

Ⅳ. 바울의 담대한 말에 대한 저희의 정죄(4절). 

바울의 말에 대하여 곁에 선 사람들이 [즉, 믿는 유대인기독자들]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고 힐난하였다. 

바울이 말한 것 때문에 그를 비난한 사람들은 믿는 유대인들이었으리라고 봄이 틀림 없겠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되, 여전히 율법에 대하여도, 동시에 대제사장의 영예에 대해서도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대제사장을 그렇게 칭하는 것을 불쾌히 여겨 바울의 말을 저지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위대한 정황에서 바울이 취한 대담한 행동. 

그는 그의 적들이 그를 힐난하고, 그의 친구들은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도와줄 수 없는 정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바울의 적들은 어떻게든지 바울의 행동에서 흠을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2.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외면적인 화려함이나 권세를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전이 하나님의 성전이고 아름다운 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도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경고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본문의 믿는 유대인들도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이며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록 그가 기독교에 대한 가장 악독한 적수였지만 그가 마땅히 당할 것을 바울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Ⅴ. 바울의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변명. 

그의 말이 믿음이 약한 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 또한 그로 인해 다른 일에 대하여서도 자기에게 대하여 편견을 가질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이들 유대인 기독자들도 비록 약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형제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라는 바울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고후 11:29). 

그의 확고한 결심은 약한 형제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자유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절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식물이 내 형제를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이다(고전 8:13). 

그래서 바울은 자유로이 대제사장에게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였지만 그의 말이 형제를 실족케 한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내가 실수하였더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그의 말이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케 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그의 말에 대해 용서를 구하거나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말에 실족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바울은 현재는 그들에게 더 좋은 말씀을 전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고 자기의 정당성을 말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1.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에게 사과한다. 

그는 말하면서 자기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를 전혀 생각지 못하였노라고 하였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서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고 하였다. 즉 다음과 같은 말이다. 

"당시 나는 그의 위치의 존엄성을 생각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에게 정중하게 말하였을 것이다." 

(나는) 바울이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절기에 성전에서 7일을 거하였고 그 동안 그가 대제사장을 못 보았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 있으면서……"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이미 그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가 그 사실을 미쳐 생각지 못하였다"고 만했다(역주: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휘트비(Whitby) 박사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선지자적 영감이 그에게 임하였으므로 그가 감동되어 그렇게 말하였고 또 성령께서 그가 율법이 두려워서 그러한 영감을 자제하지 못하도록 대제사장을 알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본다. 유대인들도 선지자들은 이사야 1장 10절과 23절의 내용과 같이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말을 그들의 통치자에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또는(휘트비 박사가 그로티우스나 랑트푸트의 말을 인용한 내용처럼) 바울이 자기가 한 말을 한 마디라도 취소하려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정당화하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바울의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나도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아나니아를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찬탈자이다. 그는 뇌물을 주고 불법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 한 랍비가 이르기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대제사장이 된 사람은 심판관이 될 수도 없고 존경받을 자격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바울이 말한 것으로 본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가 말한 것이 율법의 의무를 조금치라도 약화시키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에 씌여 있기를 즉 최대의 권위가 있는 율법에 씌여 있기를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한다. 

통치자의 영예를 존중해 주며 또한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의 잘못된 통치를 묵과하지 않는 것이 공익을 위하는 길이다. ((불법적으로 권죄를 찬탈했거나 선출되어 위임받은 관리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일, 곧 횡령-배임-착복-국리민복을 해치고 미풍양속과 기강질서를 해이케 하는 일들을 준엄하게 꾸짖는것이 맞다))

그러므로 [국민들의 총의로 결정한 바,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함이 옳기에]통치자나 재판관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욥의 시대에도 "왕에게 당신은 비루하다고 하거나 귀인들에게 당신은 악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이다(욥 34:18) (역주: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설사 우리가 선을 행하고도 그것으로 인하여 고통당할지라도 우리는 인내로 견뎌야만 한다(벧전 2:20). 고관들은 자기의 잘못에 대한 충고를 듣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 되며 또 양심있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 물정을 개탄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되어서도 안 된다. 

여하간 권력을 집행하는 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세심한 배려에 의해 영예나 존경을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들에게 통치자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특별히 존경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지 "권세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은 위험스러운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다(유 1:8). 

그러므로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라"(전 10:20)고 한 것이다.[오직 기도할 뿐이라.!!]

- ---이미 주신, 주시는 말씀에 비추어 바른길, 곧 공의와정직을 권하며, 합당하게 존중하며, [중보-간구-도고와 예언 선포로 일깨우며 대적함으로써]섬김통해 다스리는 왕적 제사장인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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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의 두 번째의 자기 변명(2)(행 23:6-11)

"의롭게 사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하여 "의인들을 모든 고통에서 건져 주신다." 

바울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그가 겪었던 박해 가운데서 이 진리를 경험하였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 3:1)고 고백하였다. 

이제 바울은 자기를 구해 주신 주께서 지금도 그를 구해 주시고 앞으로도 구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본문에서는 군중들의 소란 가운데서 바울을 건져내셨던 그 분이 이제 바울을 장로들 가운데서 구하여 주신다.

Ⅰ. 바울의 사려 기고 현명한 처사가 그를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하였고 또 그의 피신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바울이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고 또 가장 가치를 둔 것은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점이었다. 

다른 세상의 모든 영예를 그는 멸시하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가 누리는 영예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필요할 때는 때때로 자기가 소유한 다른 영예들을 활용하였고 그것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전 장에서는 그의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이 천부장에게 난동자로 간주되어 채찍을 맞게 된 지경에서 그를 구해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가 바리새인이라는 사실이 산헤드린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예배에 대한 배반자라고 정죄당할 지경에서 그를 구해 주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옳은 일이나 또한 그것이 기독자릐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모든 합법적인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그 고난을 제거하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또한 잘못된 일은 아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취한 훌륭한 계책은 그의 재판자들의 분열을 조장하여 자신에 대하여 저희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편의 부류의 무리들로 그를 더욱 증오하게 하므로 그 반대 부류는 오히려 그를 위하도록 그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1. 대법정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인지하였다. 바울은 오랜 동안 그들 가운데서 살았던 관계로 그들 대부분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 가운데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섞여 있음을 알았다(6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한 부분은 사두개인들이고, 다른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았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파는 서로 대등한 숫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평소에 그들은 서로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재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비교적 조화를 이루어 업무를 처리했었다.

(1) 바리새인들은 고집쟁이였으며 의식을 지키는데 매우 열심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율법 뿐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데도 열심이었다. 

또한 그들은 교회의 권위를 지키는데 대단히 열심이었고 교회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때때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영계(靈界)와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의 생에 대한 유대 교회의 신앙을 고수하는 정통파였었다.

(2) 사두개인은 자연신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성경과 신의 계시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은 훌륭한 역사서나 율법서 정도로 인정하였으나 다른 구약의 책들은 거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태복음 22장 23절을 참조하라. 이들 사두개인들에 대해서 본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주어지고 있다.

①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였다." 

그들은 몸이 다시 사는 것 뿐 아니라 미래의 보상과 심판도 부정하였다.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도, 영원한 형벌에 대한 공포도 그리고 죽음 저편에서의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며" 교만한 자를 행복한 자로 여기는 것을 그들의 신조로 삼았다(말 3:4, 15).

② 그들은 천사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물질 이외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자신도 육체를 지니셨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의 각 기관을 지니셨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구약의 천사에 관한 구절에 대하여 읽으면서 그들은 천사들을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마다 만들어 보내시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천사들이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재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그들은 천사들을 전통적으로 생각해 오던 것과는 다른 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그것은 단지 육체의 기질이거나 생기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에서 분리된 상태에서 영혼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고 인간의 영혼과 짐승의 영혼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 사상가들로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야비하고 불합리하고 비굴한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부패하고 사악한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직을 가지고 또 산헤드린 회원이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재능과 부를 지니고 있었고 당국에 야합하여 공직을 얻고 또 그것을 유지하였다. 

그렇지만 사두개인들은 이단자로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들은 에피큐리안들과 동질에 속하는 무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에서 제외된 무리들이었고 사람들은 그들에 대하여 영벌을 받으라는 저주의 기도를 하였다. 

^^윗시우스(Witsius)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현대 유태인들이 하는 저주의 기도를 가말리엘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가말리엘이 사두개인들에 대하여 그러한 저주의 기도문을 작성했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평소에 사두개인들에게 "악한 자들이여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저주하였다. 여하간에 사두개인들과 같이 신성모독적인 사람들이 유대 교회의 지도자들로 있었으니 당시 유대 교회가 얼마나 타락하고 비참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의 의견 차이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은 사두개인들의 편을 거부하고 바리새인 편에 서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6절). 

그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으로 양육을 받았노라. 나는 날 때부터 바리새인이다. 즉 나는 바리새인의 아들이요 또 나의 아버지도 바리새인이기에 태어났노라. 이같이 나는 바리새인이기에 죽은 자의 부활을 소망하며 또 솔직히 말하건데 문제가 발단된 전후 사정을 살펴 보면 내가 부활을 믿는 것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가장 적대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의 전통과 그들의 율법을 실제로는 지키지 않으며 겉치레만 하는 타락한 태도를 공격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사두개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가장 적대하였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예수로 말미암은 죽은 자의 부활을 설교했기 때문이었다"(4:1, 2).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향하여 분이 가득하였다"(5:17). 그때도 사도들이 복음에 의해 주어지는 영생 불사를 설교했기 때문이었다.

(1)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임을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그가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두개인들 보다는 그들이 낫다는 뜻에서였다. 

바리새주의가 기독교와는 대치되므로 바울은 바리새주의의 반대편에 섰고 또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하여 세워진 그들의 전승(이 전승은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상충되는 것이었다)을 배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바리새주의와 사두개주의가 대립하게 되자 그는 바리새파를 택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속에 나쁜 것도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바리새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소망한 사실에 대해 그들과 보조를 같이 했고 또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자처하였다.

[[세상에 대한 <공직자의 선거 등, 국민으로서 반드시 행사해야 할,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취사선택의>태도에 있어서 취할 바를 생각해 보라, 절대선을 취할 수 없을 때는 상대적 차선을 취함이 옳다!!]]

(2)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박해받는 진정한 이유는 그가 부활에 대한 소망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사두개인들이 대중들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같이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를 대적하도록 폭도들을 은밀히 선동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군중을 선동한 구실은 바울이 이 부활소망에 대해서 설교한다는 것이었고 사실상 그가 부활의 소망에 대해 설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소환을 받아 심문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후에 그가 주장하였던 대로(24:15; 26:6, 7) 죽은 자의 부활이 그들에게 문제가 되었다고 그가 말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바울은 장로들의 전승을 공격하였고(그의 주님 또한 그러셨었다) 또 그것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고 바로 이점에서 바울은 바리새인들과 일치하고 있었다.

3. 죽는 자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말은 법정 안에서 분쟁을 일으켰다. 

아마도 대제사장은(그가 5장 17절에서 취하였던 것처럼) 사두개인 편에 섰던 것 같다(이 사실은 2절에서 그가 바울에게 노여워한 사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태도는 바리새인들로 더욱 경계하게 하였다. 그 결과(7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왜냐하면 바울의 말은 사두개인들로 더욱 격렬히 그를 기소하게 하였고 한편 바리새인들은 그를 기소하려는 태도가 더욱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군중들 또한 두 파로 갈라져 버렸다." 그들 사이에는 다툼과 분쟁이 일어났다. 그들의 자파(自派)에 대한 열심히 바울은 제쳐 놓고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들끼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바울을 적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의 정신적인 불일치는 그들로 일치한 행동을 취할 수 없게 하였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바울을 향하여 외쳤었지만 이제는 서로를 대적하여 큰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9절). 

그곳에 참석한 여러 계층의 유대인들 모두 무섭게 흥분하였기 때문에 장내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같이 소란스러운 방법에 의하여 그들이 믿는 원칙을 고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조그마한 유익도 되지 않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노를 자초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연한 이론에 의해 논적을 설득시킬 수는 있으나 감정이 격한 말로는 상대를 설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4. 바리새인은 이 때문에 바울의 편을 들었다(누가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9절). 

그들은 "다투어  말하기를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성전에서 정중하고 경건한 태도로 행동했었고 성전 예배에도 참석하였다. 

물론 그가 성전에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의 그러한 태도는 그가 항간에서 얘기되는 것처럼 성전에 대한 적대자는 아니라는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훌륭한 변명을 했고 또 자신이 규모있게 양심적으로 생활할 뿐 아니라 신앙의 주된 원리에 있어서도 정통적임을 선언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바울에게서 "그를 죽이거나 구속할 이유를"발견치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혹 영이나 천사가 저더러 예수에 관하여 말하라고 하였고 또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이면 우리가 그를 완전 신임할 수 있으리 만큼 만족한 증거는 그에 대하여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공연히 우리가 하나님과 대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전에 그 자신이 바리새인이었던 가말리엘도 이와 같이 주장하였었다(5:39).

(1) 이제 여기서 복음의 영광이 적대자들에게도 밝히 들어나게 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복음의 순수함과 뛰어난 점을 고백하도록 진리의 전능은 복음을 박해하는 자에게도 강하게 미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죽게 내 주어 버렸지만 그리스도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아 내지 못했고 베스도는 바울을 감옥에 잡아 두었지만 바울에게서 어떠한 죄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바울이 지금 그가 하는 일을 하도록 천사로부터 하늘의 위임을 받을 수도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 그들은 장로의 입장에서 대제사장과 합세하여 바울을 기소하였다(24:1). 

그들은 자기들도 가지고 있고 또 때로는 인정하기도 하는 진실에 대하여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하여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라고 말하신 것이다(요 15:24).

(2) 그럼에도 불구하여 우리는 바리새인 중에 몇몇은 바울이 자신의 양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그도 저 세상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였으므로 적어도 전보다는 바울에 대하여 보다 나은 견해를 갖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로들의 전승에 대한 그들의 열심(바울은 이것과는 결별하였다)이 바울로 인하여 보다 크고 본질적인 신앙의 문제에 대한 열심히 비약하게 되었다는 것(바리새인들의 이 근본 신앙 원리는 바울도 아직 지키고 있었다)은 그들에게는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만약 바울이 진심으로 사두개인들을 적대하는 자기들의 입장에 동조하고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닌다면 설사 바울이 제의법을 버렸다고 해도 그를 용서 못할 것까지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다만 바울이 하나님께서 천사나 영을 통하여 그에게 주신 빛을 따라 생활하면 되는 것이라고 관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을 박해하기는커녕 그를 변호하고 보호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로마 교회 내에 있는 [박해에 혈안이 된] 바리새인들은(로마 교회의 교황청을 말하는 것임) 유대교의 바리새인들 보다 한결 극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사람이 다른 기독교 신앙의 모든 조항에 대해서는 신실하고 열심이라 하더라도 만일 그가 로마 교회의 권위 아래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그를 정죄하여 그가 죽기까지 박해를 하기 때문이다.

Ⅱ. 천부장의 염려와 조치는 바울을 좀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불화의 불씨를 던지자(이 불씨는 그들로 싸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써 천부장은 바리새인들로부터 바울에 대한 정당한 증언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바울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식의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즉 바리새인들은 그를 자유롭게 하려 하고 한편 사두개인들은 다니엘을 사자울에 던져 넣었듯이 바울을 백성들의 손에 넘겨 죽이거나 자신들 손으로 죽이고자 하였다. 그것을 본 천부장은 그가 전에 하였듯이(21:32; 22:24) 자기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구해 내었다.

1. 이제 본문에서 바울이 처한 위험을 살펴 보자. 

바울은 자기의 적대자들과 옹호자들 사이에서 두 쪽이 나고 말듯한 형국에 처하게 되었다. 

한 쪽은 그를 죽음에서 끌어내려 했고 다른 한 쪽은 그를 죽음에 몰아 넣으려 하였다. 

이러한 격렬한 사태는 바울과 같이 뛰어나고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자칫하면 겪게 되기 쉬운 것이다. 

뛰어나고 널리 알려진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사랑을 받는 동시 다른 부류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바울의 구원. 

"천부장은 군사를 명하여 상층에서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그가 회의를 소집한 장소인 성전 회의소를 벗어나 "영문" 또는 안토니아 탐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천부장 자신이 바울의 변명의 정당성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Ⅲ. 그러나 그를 구출하는데 무엇보다 크게 기여한 것은 신의 보호였다. 

천부장은 바울을 악인들의 손에서 구해 내였다. 그러나 아직도 천부장은 그를 가두어 두고 있었고 아직 바울을 어떻게 처리할까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진실로 그 성은 바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었으나 동시에 그를 가두는 장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성은 바울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었으나 동시에 바울로 하여금 더욱 더 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사도들이나 선지자들 중 어느 누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울에게 왔다는 구절을 발견할 수 없다. 

아마도 그들이 용기가 없었거나 또는 허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날 밤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문제와 또한 자신에게 처한 역경을 어떻게 변화시켜 보다 유익한 일에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잠을 못이루었을 것이다. 

바울이 염려하고 있는 때 주 예수께서 바울을 방문하셨다. 그 일은 한밤중에 일어났지만 그것은 매우 필요했던 방문이었던 것이다(11절). 

"주께서 바울 곁으로 오셨다." 

주께서는 바울이 누운 침상이 초라한 침상이었지만 그의 침상 곁으로 오셔서 그가 지금 이 밤에 바울에게 나타나 보이셨던 것과 다름없이 낮 동안에도 종일 그와 함께 하셨음을 보여 주셨다. 

우리에게 대적하는 자가 누구이던지 주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주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면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노리는 자들을 우리가 담대히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시면" 아무 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담대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는 "바울아 담대하라. 낙심하지 말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슬퍼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신실한 그의 종들이 언제나 용기백배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아마도 바울은 전날 법정에서 자기가 말한 것을 돌이켜 보며 과연 자기가 말을 잘 한 것인지 근심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행위를 인정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바울을 안심시키신다. 

또는 아마도 바울은 자기의 동료들이 찾아 오지 않아서 마음이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동료들을 대신하여 바울에게 "바울아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2. 그리스도는 특이한 말씀으로 바울을 격려하신다.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말이 무슨 위로의 말이 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말씀은 "네가 나로 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이제 더욱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하리라"는 뜻의 말씀이 아니냐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그를 격려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 말씀이 격려가 되는 이유는,

(1) 구주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지금까지 행한 일이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사실을 바울에게 이해시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시련을 당한 것은 그의 잘못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그가 전에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에(비록 지금까지 그가 그 잘못을 속죄하는 뜻에서 자기를 돌보지 않고 수고를 했다 할지라도) 그 잘못 때문에 그가 고난을 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주의 일을 계속 하고자 고난을 당해 온 것임을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인정해 주시고] 알리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이 그의 증언을 다 마치지 못하였다는 것과 또 그가 갇혀 있다고 해도 아주 쓸모 없는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과 사람의 영혼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낙심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직 너의 일을 마치지 아니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3) 바울은 로마에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특별한 꿈을 지녔던 것처럼 보인다. 

로마에는 이미 복음이 전해져 있었고 교회가 세워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로마의 여행을 원하였으며 로마로 갈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말했던 것이다(19:21). 그러기에 또한 바울은 얼마 전에 로마 사람들에게 "자기가 곧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편지했던 것이다(롬 1:11). 

그러나 이제 바울이 감독에 갇히게 됨으로써 자기 계획이 어긋나 버렸으며 그러므로 로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노라고 그는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로마로 가게 될 것을 말씀하시므로 그를 만족하게 하시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에 가려한 것이 그리스도를 존귀롭게 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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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죽이려는 간계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바울을 벨릭스 총독 앞에 세우다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바울을 없이 하려는 음모(행 23:12-35)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의 생명을 해하려는 음모의 전말에 대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즉 어떻게 그 음모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발각되었고 또 어떻게 그들의 음모가 분쇄되었는가가 기록되고 있다.

Ⅰ. 이 음모의 동기. 

유대인들은 소란을 일으키거나 법적 절차를 통해서는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암살이라는 야만적인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유대인들은 기회만 허용되면 바울을 갑자기 덮쳐서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이 선한 사람을 대적하려는 그들의 극악함은 상당하였으므로 하나의 시도가 실패하자 또 다른 수단을 동원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바울의 암살 음모를 꾸민 자들.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 극심한 분노를 품고 있었던 "어떤 유대인들"이었다(12절). 이 음모에 참가한 자들은 "사십 명이 넘었다"(13절).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주여 나를 해치려는 자들이 어찌도 이리 많은지요"라고 탄식했던 것이다.

2. 그 암살 계획이 이루어진 시기. 

그것은 "동이 트자마자" 곧 이루어졌다. "사탄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 차" 그들은 밤중에 그럴 생각들을 하였고 날이 새자마자 그 일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저들의 행동은 선지가 미가가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날이 밝으면 그것을 행하며" 함정을 판다고 예언한 것과 일치하는 행동이었다(미 2:11). 

밤중에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사 그를 보호하여 주셨다. 그러나 날이 밝으니 바울을 죽이고자 맹세한 사십 명의 무리가 모여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리스도를 앞설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5)"고 하신 것이다.

3. 음모의 내용. 

이 사람들은 "당을 지었다." 아마도 그들은 음모의 모임을 "거룩한" 동맹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힘을 규합해 바울을 죽이는 일을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인도적인 정신과 체면을 완전히 내동댕이치고 피의 음모에 참가하는 일에 쉽사리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는 것과 더군다나 예루살렘에서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하여 "공평이 기거하더니 지금은 살인자들 뿐이도다"(사 1:21)라고 한탄한 말씀이 이 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바울을 해하려는 이러한 끔찍스러운 음모를 세우기까지 이르렀다면 그들이 얼마나 바울을 나쁘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이 확실히 밝혀진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과 자기들의 종교에 대해 가장 악한 사람이고 그 시대에 화를 불러오는 염병과 같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성격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반대였던 것이다. 

죄의 주장과 사악함이 아무리 세더라도 전리와 정의의 법도는 더욱 강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이 법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4. 그들의 결의의 확고부동함. 

그들은 이번에야 말로 그 누구도 자기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또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물도 안 마시고 먹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러한 저희의 맹세는 사실 저희들 자신과 그들의 영혼, 또 가족에 대해 스스로 행한 가장 무서운 저주였다. 

저희의 사악함이 어떠했는가를 능히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자기들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가능한 한 그들에게 선을 베풀려고 했던 순수하고 유익한 훌륭한 인물을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가인의 길을 따르는 행위요 자신들이 "태초부터 살인자였던 그들의 조상 악마의 자식들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행하려는 일이 사소한 일인 것처럼 과감히 다음과 같이 행동하였다.

(1) 그들은 이 일을 실행하고 말겠다고 맹세했다. 

악한 일을 하려는 성향을 지니거나 또는 그것을 행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은 죄된 일이다. 그러나 악한 것을 실행할 것을 서원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이것은 악마와 계약을 하는 것이다. 또한 어둠의 왕자에게 충성할 것을 서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원은 회개할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회개에 대한 하나의 도전의 행위인 것이다.

(2) 그들은 이 일을 위해 당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에 대한 저주를 확보해 놓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자기들의 일에 끌어들이므로 그들의 영혼까지 저주받게 하였다.

(3) 그 무리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독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단시간 내에 수행해 내기 위해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음식을 안 먹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위였다. 적어도 그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하고자 하는 일이 아무리 합법적인 선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일을 한다는 말을 할 때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주께서 허락하신다면"이라는 말을 반드시 붙여야만 한다.

(4)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영혼과 육체를 멸시하였다. 

그들은 이 필사적인 계획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자신들에게 저주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하므로 자기들의 영혼을 경멸하였다(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올무에 그들은 자신을 얽매이었는가! 만일 그들이 이 일을 자행했다면 틀림 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그 일을 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저주해 주실 것을 소망했다). 

또한 그들은 결코 합법적인 것도 아니요 또 결국은 이루워지지도 못할 일을 계획하고서 그 일이 성취되기까지는 생명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 얽어매므로 자신의 몸까지 경멸하였다(간악한 죄인들은 자기의 영과 육을 동시에 파멸시킨다.). 

그들이 만일 이러이러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자기들을 저주하시고 악마가 자기를 잡아갈 것이라고 한 말은 악마들의 언어인 것이다. 

"그들이 저주를 좋아하였으므로 그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떤 이들이 이 저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바울을 죽였다면 아간의 죄가 전 민족에게 시련을 주었듯이 전 민족적인 자주로 나타날 것이고 만일 그들이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바울에 대한 저주가 그들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5) 그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관철시키려고 대단히 열심이었다. 

또한 그 일을 이루어지기까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음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치 "다윗을 향해 미친 듯이 날뛰며 그를 해하기로 서원한" 그의 적들과 같았고(시 102:8) 뿐만 아니라 "우리가 너의 살을 먹는다 해도 만족함이 없으리라"(욥 31:31)(역주:한글 개역과 틀림)고 욥의 적에게 말한 욥의 하인들과도 같았다. 

박해자들에 대하여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떡먹듯이 먹어 치운다"는 말씀이 전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굶주린 자에게 있어서 고기와 다름없는 것이다(시 14:4).

5.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 시도한 방법. 

그들은 바울이 영문 안에 있었으므로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바울은 그 성에서 로마 정부의 특별한 보호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그를 다른 사람들의 경우처럼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수감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남들에게 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를 수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시켜 총독에게 바울을 한 번 더 심문하려고 하니 그를 공회소로 인도하라고 요구하도록 계책을 세웠다(즉 그들이 그에게 몇 가지 질문할 것과 말할 것이 있으니 그를 보내 달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바울이 성에서 공회로 가는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죽여 버림으로써 모든 논쟁을 끝내려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음모의 내막이었다(14, 15절). 

이런 계획을 세우려고 저희는 온종일을 소비하고 저녁 무렵에 그들은 산헤드린 회의의 간부들에게 찾아 갔다.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숨기고 다른 구실을 대서 대제사장들로 바울을 데려 오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 악한 계획이 허락될 것이 확실하다고 여겼으므로 "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음"을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없이 말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서약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인지조차 제사장에게 묻지도 아니하고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피를 흘린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침 식사를 들 계획이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그들의 계획에 찬성할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줄 것이고 바울을 죽이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되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이 천부장에게 가서 "바울에 관해서 좀 더 확실히 알고 싶은 것이 있다"(사실 그들의 의도는 전혀 다른 데 있었는데)라고 거짓을 말해 줄 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대제사장에게 이와 같은 일을 요청할 수 있었다니 그들이 대제사장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시된 그 계획이 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첫말로 그 계획을 수락했다. 그들은 조그만치도 놀라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들은 무리들의 악한 음모에 대하여 그들을 꾸짖는 대신에(그들이 무리들을 꾸짖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제안을 지지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 암살 음모는 자기들이 미워하는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하여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마치 암살 음모에 선봉이나 되는 듯이 그 죄를 저지르는 데 참여하였다.

Ⅱ. 이 음모가 발각된 경위. 

우리는 이 음모자들이 이 음모를 기필코 성사시키겠다는 서약은 했지만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했다는 말씀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유대인들은 비밀의 서약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거나(그들은 모든 사람이 그 회의 내용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는 그 음모가 폭로되거나 알려진다고 해도자기들의 그 음모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이 밝히 드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도록 섭리하고 계셨다.

1. 그 계획이 바울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경위(16절). 

그 사실을 바울에게 전달해 준 사람은 바울의 "생질"이었다. 아마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 유대인들이 서로 말하는 것을 엿들었는지 그 당에 있던 어떤 이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것인지는 본문에 전해 주고 있지 않지만 하여튼 바울의 생질은 그 유대인들이 "매복하여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바울의 생질은 성내의 영문으로 들어가 자기가 들은 것을 얘기하였다." 아마 그는 그의 삼촌을 도웁고 그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바울에게 자유로이 출입하도록 당국의 허용을 받는 것같이 여겨진다. 

하나님은 "어두움의 은밀한 일을 밝히 드러내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록 어둠의 일을 만들어낸 자들이 주께로부터 그 일을 깊이 묻어 감추려 할지라도(전 10:20). "공중의 새로 그 소리를 전하게 하시든지" 음모자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누설케 하시든지 하여 그 일을 밝혀 내신다.

2. 바울에게 말한 그 청년이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경위. 

이 부분은 특별하게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일을 기록한 사람이 이 서간이 신중하고도 성공적으로 처리된 것을 목격한 목격자요 또 이 일을 기록하는 것이 그에게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 바울은 신중하고 평온하게 행동하였으므로 그가 갇힌 영내에서 평판이 좋았다. 

그러므로 비록 백부장은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수하에 군사가 있었으며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부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부릴 수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도 바울의 청은 들어 주었다(17절). 

바울은 이제 백부장을 청하여 이 젊은이를 천부장에게 소개해 주어 그로 하여금 천부장에게 당국의 명예에 관계되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게 하라고 부탁하였다.

(2) 백부장은 그의 청을 쾌히 승낙하였다(18절). 

그는 다른 군사를 시켜서 데려가게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그를 천부장에게 데리고 가서 천부장에게 이 젊은이가 그에게  볼 일이 있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이같이 하여 바울에 대한 존경을 표명하였다. 그는 천부장에게 "죄수 바울이(이것이 당시 바울에게 붙여진 명칭이었다)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으니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말하였다. 

가련한 죄수들의 청을 들어 주는 것은 그들에게 물질을 주는 것만큼이나 자선적인 행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병들었고 감옥에 있으나 당신은 나를 위해서 심부름을 해 주었다"라는 말은 "나는 병들고 감옥에 있으나 그대가 내게 와서 나를 방문해 주고 나를 위로해 주었오"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친숙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 백부장은 작은 성의를 베풀므로 바울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이런 경우를 당할 때 그렇게 할 것을 교훈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너는 벙어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 31:8)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죄인이 된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없는 자들은 그를 선한 말로나마 위로해야 할 것이다.

(3) 천부장은 겸손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그 정보를 들었다(19절). 

천부장은 마치 형제나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바울의 조카의 손을 잡았다. 

그가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이 청년으로 당황하지 않게 하려는 뜻에서였고 또 자신이 그의 말을 잘 경청하리라는 뜻에서였다. 

본문에 천부장이 청년의 손을 잡은 사실이 언급된 것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천한 사람이 혹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용건으로 왔을 때 이를 비천한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뜻에서인 것이다. 즉 그들에게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도 겸손히 대하라"는 교훈으로 기록한 것이다. 

로마의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에게 베푼 이 친절은 천부장의 덕을 더욱 높혀 준다. 사실 겸손과 자비를 베푼다고 해서 자신의 인격이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다. 

천부장은 그의 말을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바울의 조카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하였다.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내가 바울을 도울 수 있는지 말해 보라"고 물었다. 

천부장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많은 책임을 느낀 것 같다. 왜냐하면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의 특권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결박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에 대해 그는 자기가 분에 넘치는 것을 하였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그는 자기 실수를 기꺼이 보상하려고 하였다.

(4) 바울의 조카는 천부장에게 자기가 맡았던 심부름을 다음과 같이 신속하고 멋지게 전했다(20, 21). 

"유대인들이(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교사한 유대인들이 누구누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의 적들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삼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다) 내일 바울을 데리고 공회로 내려 오기를 당신께 청하고자 하였으니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이는 영문에서 공회까지 멀지 않으므로 당신이 호위없이 삼촌을 보낼 것이라는 계산 하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진실을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로 서원한 자 사십 여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내가 그들의 음모를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한다.

(5) 천부장은 비밀을 지키라는 당부를 하여 젊은이를 보냈다.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2절).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해서 다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로 의논한 일에 대하여 책임지지 못하는 자들은 사업에 고용하기에는 적당치 못한 자들이다. 

만약 천부장이 바울의 생질에게서 그 음모에 관하여 이미 들어 알고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알려진다면 아마도 그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바울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부장은 "비밀을 지키라"고 하였다.

Ⅲ. 그 음모가 분쇄된 경위. 

천부장은 유태인들이 바울을 해하려는 사악한 음모가 얼마나 깊고 무자비한 것인가를 깨닫고 또한 바울에게 해를 가하려는 계획에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또한 천부장 자신이 이 일에 휘말려들어 동조자가 될 위험에 처한 것을 깨닫고 그들의 손이 미치기 전에 신속히 바울을 보내고자 결심하였다. 

천부장은 그 정보를 듣고 이들 유대인들의 비열함과 잔인함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원한이 이 정도라면 아무리 든든히 감시를 하더라도 바울을 영문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 결국 유대인들에게 그를 해하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를 염려하게 되었다. 

즉 그들은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의 목적을 달성시킬지 모를 일이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보초를 때려 눕히든가 성에 불을 질러 그를 빼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천부장은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가능하면 바울을 보호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바울에게서 암살되어야 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의 대제사장들은 바울의 암살 음모에 관해서 들었을 때 그 일을 지지하고 협조하였다. 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 

그러나 로마의 천부장이 암살 음모를 들었을 때 그는 단지 정의와 인간애를 수호하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음모를 저지하고 그 일을 막고자 하였다.

1. 천부장은 자기 휘하의 로마 군인들을 상당수 동원하여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급속히 호송하라고 명령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총독이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회의보다는 바울을 공정하게 다룰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2. (나는) 천부장이 바울을 석방하여 바울 자신이 [스스로] 자기 안전을 도모하도록 지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그의 직무를 태만히 한 것이라고 간주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바울을 죄인으로서 다룰 법적인 조건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천부장 자신도 "그를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인정하였다(29절). 

또한 천부장은 바울의 생명의 안전을 지킬 뿐 아니라 그의 자유를 보장해 줄 의무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부장은 그 일을 행하므로 바울을 미워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몹시 격노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또 다른 이유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바울이 특별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를 죄수로 하여 자기의 보호 아래 둔다는 사실에 대해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또한 그가 바울을 호송하는데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화려한 시위를 한 것도 이러한 자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호송에는 두 명의 백부장과 수백 명의 군사가 동원되었다(23, 24절). 

이 백부장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는 군인이었으리라 짐작되는 군사 이백 명을 거느리고 가이사랴까지 가기 위해 준비하였다. 이외에 "말 칠십 마리와 이백 명의 창군도 함께 하였다. 

어떤 이는 이들 병사가 천부장의 호위병들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군사들이 기병이었는지 보병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보병들로서 그들은 말을 지키기 위한 창병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사실을 생각할 때 유대 민족을 로마의 치하에 두신 하나님의 처사가 얼마나 정당하셨는가를 깨닫게 된다. 

본문에서도 유대인들이 악한 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들 로마 군사 일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동료들이 바울을 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면 모든 군사가 동원된다고 해도 바울을 구출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천사가 바울을 구출하려 했다면 현재보다 10배의 병력이 그를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전에도 종종 하셨듯이 그러한 방법으로 바울을 놓으시기를 원하셨다면 그 누구도 그 일을 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1) 천부장은 이 무지막지한 유대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친절함과 의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 아니라 이럴 권위를 과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 엄중한 행렬을 계획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에 많은 사람이 참가했는가를 들은 천부장은 그들의 계획을 분쇄시키려면 많은 군사가 동원되어야 한다고 생각던 것이다.

(2) 이로써(즉 많은 병력으로 그를 호위시키심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격려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호우를 수행시키심으로 바울을 그의 적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에스라가 하였던 것 이상으로 이러한 호위를 바라지 않았다(스 8:22).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충족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위가 수행된 것은 오직 천부장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굉장한 행렬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매인 바 된 사실"을 널리 선포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빌 1:13) 바울이 더욱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의 매임은 전에 그의 매일 것을 예언한 그 예언자들에게 영예가 되어졌다. 또한 "주를 믿는 형제들이 그의 매임으로 더욱 담대하여졌으므로" 이를 믿는 형제들에게도 그의 매임은 유익이 되었다. 

그들은 바울이 로마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그가 유대 조국에 대한 반역자로서가 아니라 애국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위대한 전도자는 죄수의 신분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비굴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그의 적들은 그를 증오하고 또 그의 동료들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때 로마의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던 것이다.

① 천부장은 호송되는 바울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는 "말을 준비하여 바울을 태우라"고 명하였다. 만약 유대의 박해자들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호송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면 그들은 바울을 걷게 하거나 마차나 수레로 바울을 끌고 가든지 한 사람의 기병 뒤에 태워 호송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비록 그의 죄수로 있었지만 천부장은 바울을 신사로 대접하여 그가 도망가리라는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바울에게 타고 갈 좋은 말을 제공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가 부하들에게 바울이 타고 갈 말 한 필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고 여러 마리의 말을 준비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역주:한글 개역에는 복수로 표시되지 않았음) 어쩌면 지위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그가 탄 말 앞에 또 한 마리의 말이 길을 인도하듯이 그러한 대우를 바울에게 하였거나 아니면 바울로 그가 탄 말이 싫어지면 다른 말을 탈 수 있도록 한 것같이 보인다. 또는(어떤 주석가들이 생각하듯이) 바울의 동료나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그와 함께 여행하며 그를 보살피게 하려고 천부장이 바울에게 말을 여러 필 제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② 천부장은 호송 도중의 바울의 안전을 배려하였다. 

로마 군인들이 천부장에게서 받은 명령은 "바울을 무사히 총독 벨릭스에게 넘겨 주도롤 하라"는 것이었다. 

군사적인 일에 관하여서는 천부장이 최고의 상관이었으나 유대인들에 대한 민사적인 일에 있어서는 벨릭스가 최고의 책임자였다. 

이제 이 총독에게 바울은 인도되었다. 로마의 역사가들은 벨릭스에 대하여 많은 사실을 전해 주고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벨릭스는 천민 출신이었으나 자수성가하여 유다의 총독까지 되었다고 역사가 타키투스는(His Hist.) 말한다. 그는 왕권에 아첨하여 권력을 얻었고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잔혹함과 야만성을 드러내었다. 

이제 가련한 바울은 이러한 자의 재판을 받도록 넘겨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제사장 아나니아"보다는 한결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같이 죄수가 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 동안 그는 마땅히 군왕처럼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천부장은 바울을 더 안전히 호송하게 위하여서 밤이 된 후 세 기에 출발하라고 명령하였다. 

어떤 이는 이 구절을 해가 진 후 세 시간 지나서라고 설명한다. 그때는 오순절 축제가 끝난 뒤이므로 (그 때는 삼복 더위의 여름이었다) 천부장은 그들로 서늘한 밤에 행군하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는 자정이 넘어 세 시 즉 새벽 세 시 경으로 본문을 이해한다.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보다 전날 앞서 떠나게 하므로 바울의 적들이 훼방을 놓기 전에 예루살렘을 빠져나가게 하므로 바울의 적들이 훼방을 놓기 전에 예루살렘을 빠져나가게 하려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여 군중의 소요를 막고 닭 좇던 개와 같이 헛물을 켜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천부장은 이 지방 총독인 "벨릭스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에 대해 더 신경 쓰기를 피하고 모든 것을 총독에게 맡겨 버렸다. 이 편지는 이 구절에  요약 되어 삽입되어 있다(25절). 

아마도 역사가였던 누가가 바울이 호송될 때 함께 동행하여 가서 벨릭스에게 그 편지의 사본을 얻어낸 것으로 보여진다. 이 서신에서 다음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1) 천부장이 총독에게 보낸 인사말(26절). 

그는 벨릭스를 "총독 벨릭스 각하"라고 불렀다. 물론 이 칭호는 벨릭스에 대한 존칭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 다음 천부장은 그의 안부를 묻고 그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였다.

(2) 천부장이 바울에 대하여 총독에게 한 공정하고 정당한 설명.

① 그는 바울이 유대인들이 불쾌히 여기는 사람이었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되었다"고 본문에서 말하였다. 

아마도 벨릭스 자신이 유대인의 성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를 미워하였다 해서 그가 바울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27절).

② 그는 바울이 로마 사람이므로 그를 보호했노라고 기록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를 구해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로써 로마 총독에게 자기가 로마 시민을 위해서 한 행동을 은근히 선전하였다.

③ 그가 바울을 송사할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과 유대인들이 그를 그렇게 미워하며 악 감정을 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노라고 기록한다. 

그는 자신이 이 일을 해결하고자 취한 조치를 설명한다. 즉 그가 이 원인을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그를 데리고 내려 간 것"과(28절) 유대인들의 불평이나 바울의 자백을 통해서 이러한 소동의 원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소동의 원인이 "그들의 율법 문제로(29절)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에 대한 것임"을 알았노라고 하였다(6절). 

천부장은 재치있는 사람이었고 정의감과 인도적 정신을 그의 지침으로 삼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천부장은 내세에 대해서 그리고 내세에서 있을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경시하는 투로 말하였다. 그는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서 사두개인만 반대하고 또 바리새인들과 바울은 입장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유대인들의 율법 문제인 것 뿐이요"라고 가볍게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야말로 전 인류가 관심을 가져야 할 관심사였던 것이다. 또는 천부장의 이 말은 "이 문제는 그들의 교의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였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에게 시비를 하는 것은 그가 그들의 제의법의 명예와 또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의무감을 감소시킨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문제는 언급할 만한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로마인은 자기들이 점령한 민족의 국민이 그들 고유의 종교를 믿는 것을 허락했고 로마의 종교를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안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종교적 이유 때문에 그들끼리 서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④ 그가 이같이 사건을 조사하여 알고 보니 바울을 죽이거나 결박해야 할 조건이 아무 것도 없으며 나아가서 바울을 논박할 아무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기록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사악함을 통하여 자기들을 세계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자기들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하고 그들의 나라를 모독하였다. 또한 그들은 교회와 율법과 성전을 불명예스럽게 하였다. 또한 자기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식으로 바울을 향하여 난동을 부렸다. 사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죄야말로 "죽이거나 결박할"죄였던 것이다.

(3) 벨릭스에게 바울의 사건을 넘긴 이유에 대한 천부장의 설명(30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인들이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이 사람을 당신께 곧 보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송사를 듣고 정당한 판결을 내려 줄 가장 적절한 분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소자들도 곧 바울을 좇아 가서 그들이 그를 대적하는 이유를 말할 것입니다. 내가 군인이면서 재판관 노릇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아 당신께 의뢰하니 선처를 바랍니다."

5. 그래서 바울은 가이사랴로 호송되었다. 

군인들은 바울을 한밤중에 무사히 빼내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거나 마시지도 않겠다는 암살자들을 떨쳐 버렸다. 그들은 바울을 치려는 악한 서원을 행한 것으로 인해 이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만일 그 맹세와 실망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들 중 어떤 자가 굶어 죽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동정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안디바드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17마일 떨어진 곳으로 가이사랴까지의 중간 지점이었다(31절). 

거기서 "이백 명의 보병과 이백 명의 창병은"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들의 성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바울이 위험 지대를 벗어났으므로 그렇게 강력한 호위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병들은 가이사랴까지 바울을 호송하였다. 또한 마병들이 호위한 것은 신속하게 바울을 호송하게 위해서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자신들의 수고를 덜 뿐만 아니라 천부장에 대한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였다. 

주인의 명에 따라 충실히 복종할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은 모든 남의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다.

6. 바울은 한 사람의 죄수로서 벨릭스에게 인도되었다(33절). 

관리들은 편지와 함께 바울을 벨릭스에게 양도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하였다. 

바울은 어느 곳을 가든지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과 사귀고 친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곳의 제자들과 친해지기를 사모하였다. 그럼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통받게 하시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마련해 주시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제자들에 대하여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를 쳐서 증거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막 13:9). 

총독은 죄수에게 그가 어느 지방 출신이냐고 물어 그가 길리기아 사람인 줄을 알았다(34절).

(1) 총독은 바울에게 신속한 재판을 약속한다(35).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양쪽의 말을 듣고 판단하리라"고 말한다.

(2) 총독은 바울을 감금하라고 명했다. 

즉 그를 헤롯궁의 재판소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하라고 명하였다. 이 재판소는 지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헤롯궁이라고 한 궁전의 일부분이었다. 거기서 바울은 총독의 관저에서 근무하는 높은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사귐의 기회를 통하여 그의 최대의 목적인 복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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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도행전 23장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ㅇ공회를 주목하여 - 공회가 시작되자 제일 먼저 바울에게 변론의 기회를 준 것인지 아니면 먼저 공의회회원들로부터 바울에 대한 비난과 고소가 있은 다음 바울에게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본절에서의 바울의 변론 직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과 그것에 대하여 바울이 즉각 강경(强勁)하게 맞서는 것을 볼 때, 바울의 변론에 앞서 그에 대한 여러가지 고소가(21:28)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마 바울에게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누가가 유대인들의 고소장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Howard Marshall). 바울에 대한 고소는 그가 율법과 하나님을  거역하였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21:28). 여하튼 바울은 공의회의  증언대에 섰고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들 앞에 조금도 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변론에  임하고 있다. 이 사실은 '주목하여'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테니사스'는 '노려보며'의 의미를 지니며 담대하게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바울의 이런 담대하고 강한 태도는 3절에서도 잘 나타난다.

ㅇ형제들아 - 22:1의 '부형들'과는 또다른 표현인 '형제들'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공의회와 같은 공식석상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반적인 인사말이었다(Lenski). 공의회에서는 회원들을 존중해 주는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4:8).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바울이 이런 호칭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두가지의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는 이 모임이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비공식 모임이었으리라는 추측이나 설득력이 약하다. 둘째는 이 모임이 공식적인  모임이기는 하였으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양심을 가졌으므로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부당하게 굴복할 수없음을 도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추측이다. 그럼으로써 바울이 어설픈 권위나 무력에 의해 굴복되지 않는다는 결의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ㅇ양심을 따라...섬겼노라 - 이 '양심'은 '선한 양심'(good conscience, RSV)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바울의 이 선언적인 진술은 전날 자신에게 덮어 씌워진 고발에 대해(21:28) 무죄함을 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적어도 율법의 기준으로 볼때 바울 자신은 흠 없음을 의미하고 (빌 3:6)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명한 자의식(自意識)과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복음의 빛에서 볼 때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이나 자신의 의가 율법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에서 난 것임을 고백한 내용과 모순되지 않는다(빌 3:9). '섬겼노라'(페폴리튜마이)는 '시민으로서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책대로 살다'는 의미의 동사'폴리튜오'의 완료형으로서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음과 또 복음의 원리에 따라 생활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ㅇ아나니아 - 이 사람은  네데배우스(Nedebaeus)의 아들 아나니아(Ananiah)로 48년에서 58년까지 대제사장으로 군림했으며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했다.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는 분반 제사장들로부터 십분의 일 세(稅)를 몰수하여 재산을 축적했고 로마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렇듯 아나니아는 탐욕적이고 술수에 능한자였으며 그의 친로마 정책으로 인하여 유대인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66년에 로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아나니아의 집은 국수주의자들에 의해 방화되었으며 아나니아는 헤롯 대왕의 궁전으로 피신하여 궁전 뜰에 있는 도수관 속에 숨어있다가 그의 형 히스기아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Jos. Wars II, 426).

ㅇ곁에 섰는 사람들...입을 치라 -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나니아는 바울의 당당한 태도에 즉각적으로 흥분했다. '곁에 섰는 사람들'(*, 토이스 파레스토신 아우토)이 누구였는가에 대해서는 산헤드린 의원들이라고 보는 견해와(Lenski) 그곳에 있던 시중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Haenchen), 눅 19:24와 요 18:22의 예를 볼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예수께서도 뺨을 맞은 일이 있었지만(요 18:22).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뺨이나 입을 때리는 행위는 사람의 인격을 극도로 모독하는 표현인 것을 생각할 때 바울의 한 마디 말에 대해 사리를 따져보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입을 치라 명하는 아나니아의 행위는 그의 폭력적(暴力的) 성격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여실히 드러난다.

3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ㅇ회칠한 담이여...치시리로다 -바울은 아나니아의 불법적이고도 인격 모독적인 행위에 대해 조금도 굴하지 않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회칠한 담이여'라는 표현은,일찍이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회칠한 무덤이여'(마 23:27)라고 맹렬히  질책한 것을 연상시키는데, 이 둘은 모두 위선자에 대한 질책의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회칠한 무덤'이 겉은 깨끗한 것 같으나 속은 썩어빠진 상태를 뜻한다면, '회칠한 담'은 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못해 흔들거리면서도 겉에 흰 회를 칠해서 튼튼한 것처럼 꾸미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단지 아나니아의 위선을 질책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그에게 저주를  선언하기까지에 이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는 형식이 율법에 기록된 저주 방식이기 때문이다(신 28:22). 혹자는 바울의 이말을 단순히 관용적인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으로 보기도 한다(Jacquier). 아나니아가 66년에 살해당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견해도 일리가 있다.

ㅇ율법대로...율법을 어기고 - 바울은 아나니아의 위선을 풍자적 대조법을 사용하여 지적하고 있다. 법대로 판단한다고 하는 자가 법을 어기고 있으니 얼마나 우수운 꼴인가! 재판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며(레 19:15),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형벌이 집행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도 정치 않는 상태에서 바울의 인격을 모독하는 처벌을 명하였으니 그것은 명백히 율법을 어긴 행위였다.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ㅇ하나님의 대제사장을...욕하느냐 -유대 사회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자로서 대단한 권위와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감히 대제사장의 권위에 맞설 수 없었다(신 17:12). 이런 종교적 풍토 속에서 살고 있던 그들로서는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맞서는 것이, 그 내용에 관계없이 제사장을 욕되게 하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일찍이 예수께서 대제사장에게 당당하게 대답한 것이 불손한 행위로 간주되어 매를 맞으신 사실을 생각한다면(요18:22), 바울의 저주 선언은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5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ㅇ형제들아...알지 못하였노라 -본절에서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이 자신의 입을 치라고 명한 자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정말로 몰랐는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고 있으면서도 빈정되는 말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자를 대제사장으로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말했다고 본다(Zahn). 그러나 '형제들아'라는 정중한 어투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출 22:28), 그리고 그의 신앙적 인격으로 보아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참이라고 봄이 무난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울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알아보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1) 바울의 눈에는 질환(疾患)이 있었는데(갈 4:13, 14), 이 눈질환으로 인해 시력이 약했기 때문에 누가 대제사장 직책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본다(Chrysostom). (3) 바울이 자신의 변증에 너무나 열중했기 대문에 자기의 입을 치라고 명한 사람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Bengel). (4) 지금 모인 공의회는 정기적인 산헤드린의 모임이 아니라 로마 관리에 의해 긴급히 소집된 회의이므로 대제사장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옷을 입지 않았고 공식 좌석에도 앉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본다(Bruce). 이가운데(3), (4)의 견해가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무난하다.

ㅇ관원을 비방치 말라 - 이 말은 출 22:28을 인용한 것으로 바울이 저주를 선언한 인물이 대제사장인 것을 정말로 몰랐으며 또한 그가 율법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율법에 충실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이다.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ㅇ사두개인 -이들은 당시 상당한 종교적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그 기원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때 유명했던 대제사장 사독에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사두개인들이 구체적인 집단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스모니안 시대 때(B.C. 166-63) 부터이다. 이들은 순수 유대적 전통만을 고수하고 이방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는데,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전승 문서들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고, 죽은 자의 부활이라든가 영적 세계, 천사와 마귀 등도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라 하여 배격하였다.  이들은 철저히 현세 지향적이고 친로마적이고 체제 유지적인 귀족 집단이었으므로  민중들의 생활과는 유리(遊離)되어 있었다.

ㅇ바리새인 - 이들 역시 사두개파와 쌍벽을 이루던 종교적 귀족 집단이었다. 에스라로부터 시작된 유대주의에 충성하는 한 부류가 마카비 시대 때 생겨났는데, 이들은 '하시딤', '하시디안'으로 불리어진 경건 집단 바리새파였다. 이들은 사두개파와 달리 모세 오경 외에도 각종 구전, 전승을 동일하게 권위있는 정경으로 취급하였고,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 천사나 마귀와 같은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였다. 이들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권만을 인정하는 그들의 신앙에 배치된다고 보아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율법과 선조들의 전통에 충실함으로써 이스라엘을 개혁하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ㅇ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 사과의 뜻이 담겨 있는 바울의 변론(5절)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바울에 대한 적대 행위가 더욱 노골화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 아무 대책없이 자신을 내맡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산헤드린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양자 사이에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던 바울은 이를 이용하여 논쟁(論爭)을 불러 일으켰다. 바울이 이렇게 한 행동에 대해 혹자는 노련한 수를 쓴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Preuschen), 마 10:16에 언급된 소위 뱀 같이 지혜로운 행동이었다고 보기도 하는 반면(Nestle), 상대방을 분열시키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다고 보기도 한다(Farrar)너무 근시안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바울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고, 또한 그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11절). 자기가 감당해야 할 막대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희생을 대책없이 감내하려 드는 것은 도리어책임성이 결여된 행동일 뿐이다. 지금 바울이 취한 행동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그가 장차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넓은 안목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더욱이 지금 일어난 사건이 그의 로마행의 한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옮길 수 있으며(공동 번역), 이는 예수의 부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부활 소망이다(고전 15:16-58). 단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부활을 믿는 것이지만 바울의 부활 신앙이 예수의 부활에 근거한 반면 바리새인들의 부활 신앙은 예수와 관계없이 전승되어온 신앙에 근거했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차이점을 갖는다.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ㅇ다툼이 생겨 - 바울의 발언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다툼'(스타시스)은 '놓다', 또는 '두다'의 뜻을 갖는 '히스테미'에서 온 단어로 '세움'을 뜻한다. 즉 서로 다른 입장을 옳다고 주장하면서 맞세우는 것이다. 이 두 종파는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들 간에 대립되는 신학적 노선에 있어서는 첨예한 분열상(分裂相)을 드러내었다. 이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기회만 있으면 논쟁을 일삼는 소위 비신앙적 신학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ㅇ부활도...천사도...영도 없다. -   사두개인들은 합리적이고 현세지향적이며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다. 특히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복음서에서도 예수와 부딪히는 주제로 등장한다(마 22:23).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부활, 천사, 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주제들은 두 집단이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부분이었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신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감정적 대립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 이상으로 격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견해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ㅇ역사의 지배 원리 - 바리새인 : 역사는 신적 목적을 가지며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바리새인의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였으며 역사 자체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ㅇ천사론 - 바리새인 : 천사와 마귀의 계층이 있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천사도 없고 마귀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ㅇ자유 의지와 결정론 - 바리새인 : 자유 의지나 또는 하나님의 주권만으로는 다른 일(사람)의 운명을 취소할 수 없다는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두개인 : 자유 의지란 궁급적으로 역사 과정의 한 결정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ㅇ사회적 활동 - 바리새인 : 인간 평등을 주장하면사 다방면에 걸쳐  순수한 민족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사두개인 : 자신들의 이해 득실(利害得失)에 민감하여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였다.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쌔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 하여

ㅇ훤화 -   헬라어 '크라우게'는 '비명을 지르다', '울부짖다'란 뜻의 '크라조'에서 유래한 말로 큰 외침이나 고함 소리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의 논쟁이 매우 격렬해졌음을 시사한다.

ㅇ서기관이...가로되...혹 영이나 혹 천사 -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논쟁 가운데 누가는 몇 사람의 바리새인이 말한 바울에 대한 변론을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서기관은 율법 전문가를 가리키는데 바리새인이 대부분이었다. 바리새인들의 말인즉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고 할 때 그것이 다메섹에서의 체험을 말하는 것인지(22:6-10), 아니면 그후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22:17-21)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한편 바울을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몇몇 바리새인은 본문에 등장하는 자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의 변호성 발언도 바울에 대한 지속적 지지의 입장을 나타낸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이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어도 관대한 입장을 지닌 자들이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중 다수는 그생활 양식에 있어 다른 유대인들과 별로 상충(相沖)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ㅇ큰 분쟁이 생기니...빼앗아 가지고 -   급기야는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험악해지고 말았다. '찢겨질까'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서가파스데'는 '깨뜨려 버리다', '산산조각을 내다'는 뜻의 '디아스파오'의 제1부정 과거형으로서 천부장이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바울의 신상에 큰 위험이 있었을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빼앗아'라는 표현도 사두개인들이 바울을 붙잡고 폭력을 가하려 했기 때문에 강제로 떼내어 데려가야만 했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묘사한다.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ㅇ주께서...담대하라...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께서는 일찍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같은 말로 위로했었다(1:18;요 16:33 참조).이제껏 바울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환상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16:9;18:9;22:17;27:23, 24) 그 상황이 지금처럼("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가깝게 느껴지도록 묘사된 경우는 없었다. 이는 현재 시점의 긴박성을 시사한다. 그는 일찍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에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운 바 있고(19:21)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이미 각오한 바 있었지만(20:23;21:10-13),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자 그의 심정은 적잖이 당혹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고 로마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공해 주셨다. 22:21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말씀이 여기서는 '로마'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로마로 가는 것은 단순한 바울의 바램이 아니라 주님이 부여해 준 사명(使命)임이 분명하게 제시되며 지금 그에게 매우 가깝게 감지되는 격려의 말씀은 이후 2년간에 걸친 로마 전도 여행에서 많은 위험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ㅇ당을 지어 맹세하되...마시지도 아니하겠다 -   합법적인 재판을 통하여 바울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단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해할 암살단을 구성하였다. 아마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이 집단 안에는 앞에서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몄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21:27-29).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단식 서약은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삼상 14:24). 이 맹세의 본래적 형식은 '만일...하면 내가(우리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였으리라 본다(Haenchen). 그런데 만일 이들이 실제로 바울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맹세를 위하여 굶주려 죽어야 했을까? 당시에는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네 가지 경우가 랍비에 의해 허용되었다고 하는데, '선동에 의한 맹세', '과장된 맹세', '잘못된 맹세', '억업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맹세'가 그것이다. 아마이들 중에는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두개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만약의 경우 빠져나갈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어찡든 이들의 맹세는 바울을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준다.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ㅇ이같이 동맹한 자가 -   무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을 죽이겠다고 동맹하였다. 여기서 '동맹'(쉬노모시안)은 '함께 맹세하다'는 뜻의 '쉬놈뉘미'에서 온 말로 이집단의 강한 결집력(結集力)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살벌한 맹세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바울의 굳은 결심을 돌려좋을 수는 없었다(11절).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ㅇ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무리들에게 일단 문제가 되는 것은 안토니오 성 안에서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바울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마침내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리라는 계획이었다. 본문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한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이다. 본문에 서기관 즉 율법학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바울을 옹호했던 바리새인들을(9절) 염두에 둔 암살단이 그들의 계획에 대해 보다 확실한 지지를 보내리라 판단한 자들에게로 갔음을 시사한다.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ㅇ바울을...데리고 내려오게 -   바울을 죽이려는 자들이 세운 계획은 상당한 실현 가능성을 지녔다. 천부장도 자초지종을 알고자 하였고(22:30) 전날의 공의회에서는 소란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조사할수 없었으므로 공회가 천부장에게 재심을 요구한다면 천부장이 이를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로마 군대가 바울을 공의회에 출석시키기 위해 성에서 데리고 내려올 때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법이나 절차에 상관없이 오직 바울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바울을 죽이고 난 후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든 개의치 않겠다는 식의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한편 이들이 바울을 산헤드린에서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죽이려 한것은 기습(奇襲)하기에 용이함도 있었겠지만 산헤드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보기도 한다(Haenchen).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ㅇ바울의 생질이...고한지라 -   바울에 대한 친척관계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우리는 여기서 최소한 바울에 게는 출가한 누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바울과 누이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생질 사이에 관계에 대해 두 가지로 추측한다. (1) 바울 집안이 바리새인이었으므로(6절), 바울의 누이는 바리새인과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고 남편이 예루살렘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며,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할 때 그 누이의 집에서 머물렀을 것이라고 본다(Lenski). 그렇다면 본문의 생질은 예루살렘에서 나고 예루살렘에서 자랐을 것이다. (2) 바울의 누이는 다소에서 살았고 다만 그의 아들을 삼촌 바울이 공부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 율법 공부를 시키기 위해 유학 보냈을 것이라고 본다(Bruce). 두 가지 모두 추측일 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생질이 다행스럽게도 바울을 해치려는 자들의 암살 계획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그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음모자들이 자만과 자신감에 가득찬 나머지 계획의 비밀을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는 어떤 바리새인이 바울의 생질에게 알려 주었다고도 본다(Vincent). 바울의 생질은 정보를 입수하자 곧바로 영문 안으로 찾아가 바울을 면회한다. 바울에게는 아직 아무런 구체적 혐의가 없고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므로 면회가 자유롭게 허용되었을 것이다.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ㅇ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인도하라 -   백부장은 백명 가량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인데, 바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듯 백부장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최고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한편 어떤 학자는 바울이 백부장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는 누가의 기록에 대해 의구심을 표한다(Haenchen). 그러나 이는 바울의 위치을 격상시켜 보이고자 하는 누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성(緊迫性)에 따른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Howard Marshall).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ㅇ죄수 바울이 -   백부장은 바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여 그대로 따라 주었다. 그런데 그는 바울을 '죄수'(데스미오스)라고 부른다. 아직 유죄 판결도 받지 않은 상태인 바울을 '죄수'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렌스키(Lenski)의 말대로 이 용어가 감금되어 있는 자를 가리킨다면 그리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세 종류로 되어 있었다. (1) 공중 감옥(custodia publica)은 보통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대개 어두운 지하실이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갇혔던 옥이 이에 해당하는 듯하다(16:24). (2) 자유 감옥(Custodia libera)은 상류층 죄수를 가두가는 곳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3) 군영 감옥(custodia Militaris)에서는 군사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손과 죄수의 한 손을 함께 묶어 감시하게 한다. 지금 바울이 같힌 곳이 바로 이 군영 옥이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ㅇ손을 잡고 물러가서 -   천부장은 백부장을 통해 바울의 말을 전해듣는 순간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라고 직감했는지 바울의 생질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물었다. 여기서 천부장의 친절한 행동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광분해 있는 유대인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예수께서 수난을 당할 때에도 이방인 빌라도의 우호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유대인들의 피의 요구는 가히 광적이었다(눅 23:13-23).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ㅇ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   바울의 생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용상 15절의 것과 일치한다. 여기서 '유대인들'이란 직접적으로 음모에 가담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누가가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 행위로 인해 바울이 이방 선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조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유대인들'이라는 표현은 은연중에 이스라엘 전체를 지시하는 셈이다.

21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 여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ㅇ좇지 마옵소서 -   여기서 '좇다'의 헬라어 '페이스데스'는 '설복하다', '감언으로 속이다'는 뜻인 '페이도'의 제 1부정 과거 수동태 가정법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무리들이 무슨 이유를 들어 바울의 재심을 요청한다 하더리도 설득당하거나 속임을 당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ㅇ숨어서...허락만 기다리나이다 - '숨어서'(에네드류우신)는 16절의 '매복'과 같은 어원에서 왔으며 '안'(in)을 뜻하는 '엔'과 '자리'를 뜻하는 '헤드라'의 합성어로 '잠복' 또는 '복병'을 가리킨다. 바울의 생질은 음모자들이 천부장의 승락만을 기다린다고 첨가함으로써 천부장의 권위를 높여주는 동시에 그의 책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ㅇ경계하되...이르지 말라 -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순수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전날의 소동으로 미루어 보건대(9, 10절), 유대인들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천부장은 친절하게도 둘 사이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경계시킨다. 이렇게 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바울의 생질이 음모자들의 계획을 천부장에게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의 신변(身邊)에 위험이 닥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음모자들이 자기들의 계획이 드러난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방법을 새로이 계획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날밤에 바울을 호송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바울은 또 한번의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는 주님에 그에게 두신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11절).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ㅇ밤 제 삼시에 -   현대적 시간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저녁 9시를 가리킨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집요함과 폭력성을 익히 잘 알던 터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것이다. 그래서 당장 그날 밤 음모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울을 빼돌리려 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 데 호위 병력을 무려 사백 칠십명이나 동원하는 것은 천부장이 이 일을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했던가를 말해준다. 물론 천부장의 이러한 조치가 바울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로마 시민이 자기의 관할 구역에서 무고한 희생을 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바울로서는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ㅇ총독 벧릭스 -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려 한 것은(23절), 총독이 주재하고 있는 그곳에서 바울을 정식으로 재판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총독 벧릭스는 본래 노예였으나 글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모친 안토니아(Antonia)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를 안토니우스 벧릭스(Antonius Felix)라고 불렀다. 그의 형제 팔라스(Pallas)역시 같은 노예였으나 그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되었고 그의 총애를 받는 총신(寵臣)이 되기까지 하였다. 벧릭스는 그의 형제 팔라스의 도움으로 글라우디우스 황제에 의해 A.D. 52년에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A.D. 58년 까지 자리를 지켰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벧릭스는 잔인하고 음탕하며 노예의 정신으로 왕의 권력을 행사하였다고 한다(Tacitus, History,V.P). 그의 음탕함은 결혼을 세 여자와 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한 여인은 안토니아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였고, 또 한 여인은 헤롯 아그립바 I세의 딸 드루실라(Drusilla)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ㅇ짐승을 준비하라 -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90km 정도 되는 거리였으므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탈 것을 이용해야 했다. 여기서 '짐승'(크테네)은 전쟁용 말이 아닌 일반 운송용 나귀나 말을 가리킨다.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ㅇ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   이 표현은 대략적인 내용을 적는다는 뜻으로, 누가가 루시아의 편지를 입수하여 그 전체를 축자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대략의 중심내용만을 기록하였음을 말해준다. 루시아가 이 편지를 벧릭스에게 쓰는 것은 로마법에 의한 절차를 보여준다. 로마법에 의하면 하급 관리가 상급자에게 어떤 사건에 대하여 보고할 때에는 서면(書面)에 기록된 진술서를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ㅇ글라우디오 루시아 -   천부장의 이름이 여기서 밝혀진다. 이름의 전반부는 로마식이고 후반부는 헬라식인데, 이는 루시아가 헬라인으로서 글라우디오 치하에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였음을 암시한다(22:28 주석참조).

ㅇ각하 - 헬라어 '크라티스토스'는 '강한', '고귀한'을 뜻하는 '크라튀스'의 최상급으로, '가장 숭고한', '지존하신'의 의미이나 이 말은 본래 로마의 원로원 의원 다음 서열에 속하는 기사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ㅇ문안하노이다 - 벧릭스에게 보내는 루시아의 사건 진술서는 당시의 전형적인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다. (1) 발신인의 이름을 먼저 밝히고, (2) 다음에 수신인의 이름을 적고, (3) 이어서 문안을 하는 말로 내용을 써나가는 형식이 그것인데, 성서 가운데 히브리서와 요한 일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신들이 이 형식을 따르고 있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ㅇ이 사람이...구원하여다가 -   루시아는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질 경우를 우려한 나머지 보고 내용을 아전 인수(我田引水)격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지닌 것을 안 것은 이미 바울을 체포하고 채찍질을 명한 이후였지만 보고 내용에는 이 사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21:33;22:24).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로마 당국이 바울의 로마시민권을 처음부터 존중해 주었다는 것이다(Haenchen).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ㅇ알고자 하여 -   유대인들이 바울을 붙든 것은 단순히 사형(私刑)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적(公的)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기 위함이었다(21:27-32). 따라서 그들은 로마 당국의 허가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결박한 것은 군중들의 소요 사태를 일단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21:32, 33). 만일의 사태로 인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초래될지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가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ㅇ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 -   이런 일은 이미 예전에 갈리오 총독 때에도 있었던 일로 총독 갈리오는 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소송이 로마 법정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을 거부하였었다(18:15). 여기서도 천부장루시아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별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은 율법에 관한 문제일 뿐 형사 처벌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루시아가 바울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의미한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ㅇ해하려는 간계 -   40여명의 단식 맹세자들의 음모를 가리킨다(12, 13, 20, 21절). 

ㅇ 송사하는 사람들도...하였나이다 - 천부장이 이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준 때는 바울을 호송하는 군인들이 안전한 지대로 빠져나간 후였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기 위해 누가가 본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넣었다고 이해하지만(Haeanchen) 근거가 회박한 견해이다.

31 보병이 명을 받은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ㅇ보병이...안디바드리에 이르러 -   안디바드리(Antipatris)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사이에 있는 도시로 본래의 이름은 카바르 - 사바(Kaphar-Saba)였는데, 헤롯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후 그의 부친 안티바터(Antipater)의 이름을 따서 이처럼 명명했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않는데, 학자들은 예루살렘  북서쪽 유대 구릉의 끝에 있는 현재의 라스엘-아인(Rasel-Ain)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까지가56km 이상이라고 볼 때 밤새 이 먼 거리를 로마의 보병들이 바울을 호위하여 걸었다면, 비록 밤의 기온이 선선하여 걷기에는 힘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당한 강행군(强行軍)을 한 셈이다.

32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 가니라

ㅇ마병으로...돌아가니라 -   바울은 안디바드리까지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추격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더이상 중무장한 군대의 호위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홀가분하게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으므로 마병을 제외한 나머지 군대는 철수하게 했다.

33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ㅇ가이사랴에 들어가서...그 앞에 세우니 -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의 39km를 기병들에 의해 바울은 무사히 호송되어 루시아가 보낸 편지와 함께(26-30절) 벧릭스에게 직접 인도되었다. '세우니'의 헬라어 '파레스테산'은 재판정 앞에 출두시킨다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이다(롬 14:10).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줄 알고

ㅇ어느 영지 사람이냐 -   벧릭스는 일종의 예비 심문(preliminary interrogation)을 행하고 있다. '영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르케이아'는 '지배한다', '통치한다'는 뜻의 '아르코'에 '위에'(upon)를 뜻하는 전치사 '에피'가  붙은 말로 통치권이 미치는 곳이란 뜻이다. '어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아스'가 '어떤 종류의' 영지, 즉 황제의 영지인지, 원로원의 영지인지를 묻는 것으로 보는 견해와(Wendt, Robertson) 황제의 직할지인가 아니면 지방 총독의 속주인가를 묻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Haenchen, Bruce), 후자가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출신지를 묻는 이유는 바울의 출신지에 따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바울의 출신지가 지방 총독의 관할권이라면 그를 그 지역의 총독에게 보내 재판을 받게 할 수도 있었다(본서 서론, '로마의 행정 및 군대 제도' 참조).

35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ㅇ너를 송사하는 사람들...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이었으므로 벧릭스는 자기가 재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서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 '헤롯 궁'은 본래 헤롯 대왕(B.C. 37~A.D. 4)이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가이사랴에 크게 지은 궁전이었는데 후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 및 본영으로 사용되었다. 총독의 관저로 사용될 때의 명칭은 '브라이도리온'이다(막 15:16). 대개의 고대 궁전이 그러하듯이 헤롯 궁도 요새의 역할을 하고 재판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지하에는 감옥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울을 이 지하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는지 아니면 따로 방을 하나주어 그곳에 머무르게 하면서 감시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고 재판도 받지 않은 상태이고 루시아의 편지 내용이 바울의 무죄를 암시하였으므로(29절) 벧릭스는 바울을 죄수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바울은 가벼운 구금(拘禁)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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