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2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롬1.참 제자도. 제5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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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성육신하여 오신, 대속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을 통해 <신성과 함께 참 인성을 얻으신> 만인의 구주-Q-대제사장이시요 차원의 제약 받지 않으신ㄴ 그영이 되사, 영접하는 이 곧, JC를 개인적인 구주와 Q로 진정 영접하여 하나됨으로 붙좇는 믿음과 그의 주님-주인-왕-머리로 삼고 친밀한 영적 교통과 직관으로 주님의 움직임과 운행하신-행하심따라 한걸음씩 동행하는 자 그의 도드 삼으신 분...구주의 부활 승천 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 곁에서, <몸소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사시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겪어 아시고 모든 시험 받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이기셨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여전히 유일무이한 중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시는 분을 바라볼지니.. <오직 모든 세대의 그 어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켜 주 이름 불러 영접하여 믿어들어감으로써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Q이 사람을 지으신 이후로 그토록 오래 참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병듦, 곧 무지무각-연약함에처해 있어서 그들이 스스로 무엇 하고 있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각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음에 대해 긍휼히 여기사 모든 자비하심으로써] 더 참아주시도록 간구하고 계심>으로 인해(공의의 Q, 그분의 쌓여진 진노 쏟아냄을 아드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 흘림의 공로를 보사 보류하시고 Q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더 오래참아주시도록..그리고 땅끝까지 모든 이들이 주님의 복음 듣도록 번파되기까지 기다려부시도록...이것이 주의 재림 지연의 유일한 ), 바로 그분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반쪽으로서 JC의 마음=곧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며 날마다 눈물 범벅이 되어 계신 사랑하는 분 구주 JC의 마음을 찢는 애통의 중보에 전존재 기울여 동참하는자, 바로 그분의 사랑하심과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그 자신이 경험하였고, 그분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에, 모든 것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려 그분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며, 막힘없이 교통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은혜에 동참함의 친밀한, 다함없는 기쁨으로 넘치며, 상황-환경-형편-처지에 괘념치 않고 일편단심 주와 하나됨으로 붙좇는자.....[마16: 24-28...*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이 때 바로 그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바대로...그분의 긍휼어린 마음으로 한반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적 실상과 [악이 악을 대하여 서로 권력투쟁하는 가운데 공멸에 빠져들기를 꾀하는] 사탄마귀의 궤계로 인한 영적 착시와 혼돈-염증을 불러 일으키는 현 실상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지고 중보/중재하도록 분별하며 합당하게 부르짖도록 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기도는 결코 사라지지않음..

##기억하라...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좋은 땅 가나안의 서쪽과 동쪽 경계로서 대해와 요단강, 북쪽 경계 이루는 유브라데 강들은 이제 주님의 부활 능력 안에서 이미 이겼음을 의미한다...그러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들인 애굽-에돔-염해는 인본주의(사탄체계인 세상을 의미하는 애굽)-물질주의(육신의 정욕을 의미하는 에돔)-쾌락주의(소돔과 고모라)를 의미하며 가나안 땅 안에조차도 멸절되어야 할 온갖 중독과 사로잡힘의 영적 질병이 만연한 상태임... 이교숭배(우상숭배)-사신숭배(초혼-영매-무당)-기복신앙(몰렉숭배-점쟁이-복술사-주술사)으로 물들어 있는 바, 이제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깨어나서 기도와 금식으로 영적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지금 모든 나라 족속 백성 방언, 곧 열방의 영적 상황이 그러하다.


[[믿는 이의 완전, 온전, 순전의 선순환, 그 시너지에 대한 느낌]]..주 안에 거함(요15:4-17)은 접붙임/붙좇음의 교통 살기..곧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먼저 Q, 말씀 청종, 주님 순종-동행함, 주님이 행함으로 보여주신 사랑 같이 (자기를 내어줌에 이르기까지) 서로 형제 사랑함 이룸, 이것이 JC 사랑함이니, 이로써 아버지께 사랑 받고, 주님 사랑 받음 되며, (아버지-아들-성령이 함께 오사) 그분의 형상의 실제 나타내심(요14:21,24-26) 이룸 

살아 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진리를 믿고 붙들어 하나되고, 이제 주 이름 불러 주께 여쭈어 그 다음 행보를 인도받아 그분 임재 안에서 그대로 따라가기>을 실행함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함의 선순환 안으로 들어감 -->순전<보혈로 씻김>에서 <주님 알고 사랑함으로 부어주신 사랑 통해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랑하며 반응함의>온전으로, 이제 더 나아가 <무시로 하나님 임재 앞에서 행함의> 완전의 선순환 시너지 이룸.

...CORAM DEO  SOLA FIDE, SOLA SCRIPTURA, SOLA Christos, SOLI DEO GLORIA 

....완전 = 주님 말씀 전적 순복(청종...몸의 활동 돕게 하신 섬김이 역할 기능, 직분자의 구비 조건과 태도 완비 : 나는 죽고 구주 사심으로 살기..주가 준비하신 바로 그것을, 복음과 그분의 풍성을 그대로 살아내며 공급함)-

---온전 = (친히 내주하사 도우시며 위로-격려-세우시는 HS따라) 고난의 섭리 통해 연단된 JC 인격 그대로 닮는 성화---

---순전 = 날마다 회개/보혈에 씻긴, 자기 십자가 감당하며 주와 동행 이룸의 필수 요건


***인간의 연약함 = 영적 무지무각 + 미혹/오도됨 --> 인간의 절대무력함으로 인해 그 연약함의 당연한 귀결은 영적 사망(하나님으로부터 전존재적 단절...사탄의 손쉬운 먹이감으로 전락...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수단으로 전락함) -->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해를 위해 하나님이 인정-지명하여 세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면서(즉, 중보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현존 동시에 죄를 속하기에 합당한 희생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 중재하는  제사장이 필요함.. 


***우리 주 하나님, 말씀속에 계시며 말씀하시며 구원의 말씀을 부탁하신 아버지, 

모든 인생과 피조세계의 창조주-주권자-통치자-모든 공급근원, 유일무이한 절대 필요충분-모든 풍성부요충만과 참 능력근원<절체절명에서조차> 그 자체이신 아버지여

...사모하며 앙망하오니, 더이상  제 마음으로 주님을 제한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무한하신, 본래 제한 받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의 무지함과 주관적 제한 안예서 제한 받으시는, 기꺼이 갈망하여 기다리면서 마음 문 열어 달라 노크하고 계시는, gentle하신 분이심))

참되게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의 영>을, <고난 통해 순종함 배우시고 온전케 되신 순종의 영을> 부어주소서...

<하나님 경외함>이루신 그리스도의 <일향 미쁘신, 일편단심, 경건의 영을> 부어 주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말씀하시는 주 임재 앞에서 <완전한 경외함을 끝까지 견지하심으로> 경건함의 모본 보이신 JC 주님이시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아버지께 드리신 바 열정적인, 전존재 쏟아붓는 통곡과 눈물, 부르짖는 간구와 소원 기도(결코 포기함 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열정 공급하사)의 영, 바로 그 영을 오늘이라는 (각자에게 허락하신) 시간동안 주님 얼굴 구하며 주 이름 부르는 나와 모든 형제자매 성도들에게 부어주사 참되게 회복시켜 주소서, 

하여, 그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뜻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소서. 

주 이름 부르는 모든 성도마다에게, 고난통해 순종함 배우셔서 온전케 되시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얻고, [단체적 그리스도] 그 가운데에서 발견되도록 도우소서. 

오 주여, [진정한 참된 영광, 그리스도 빼어닮음, 그리스도의 형상 온전히 이룸,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리스도께 자원하여 구하는> 성도 각자의 몸에 채우게 하소서].


@@**새 예루살렘성...12가지생명열매 ::(신정열) + 성령9열매<사희화-오자양-충온절>..12기초석(신진사-의충열-자인양-절성온), .정금+보석+진주(신부,전사)

@@새 예루살렘성 12기초석들....벽옥(신실-하늘색) 남보석(참,정직-심청)  옥수(사랑-옅은 하늘색),   녹보석(녹색,,,의, 공의-정의) 홍마노(충성, 일심-심홍) 홍보석(열심-진홍),   황옥(자비-황녹)  녹옥(오래참음,인내-청녹) 담황옥(양선-연황)  비취옥(절제-연청녹)  청옥(성결-심자)  자수정(온유-청자)


@@생명...모든 생활 위한 모든 패러다임, 수한 주시고 피조물 유기체의 호흡과 모든 활동을 가능케 하는 힘과 능력의 근본과 원천인 창조자 주님 정언 명령 말씀, 얻고 그것으로  따라 살 바.. 

##**Q의 말씀-영, 영생의 생명-참 빛[여호와 경외함-지식-지혜-총명/명철-모략/재능의 근원]이신 Q 독생자**이신 분이 성육신 하여 오심..


@@**참 제자도 = (구주 영접한 자, 곧 칭의/거듭남/양자 됨 안으로 들어선 자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짐((방식 = 완전한 사랑-섬김-순종의 상호내재하심으로 하나 이신 TUQ, 즉 그리스도의 영이자 TUQ의 최종 완성, 믿는이의 거듭난 영에 내주하시는 (신성-인성의 mingle상태, 그분의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그 영, 그분과 붙좇는-결합한 하나 됨의 친밀한 믿음으로 주 이름 부름-앙망-교통-사랑 안에 거함-인도/이끄심에 순종-동행 통해 transformation+conformation(변형<성화-영화>-일치) 이루며 그분의 길을 걸음 + [복음 전파-생명 산출-양육-몸을 확장/증대하는 증인들의 ] 유기적 생명 공동체(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 교회)의 공동 생활 지향..

[마16:24, 25...*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ishes to follow Me [as My disciple], he must deny himself [set aside selfish interests], and take up his cross [expressing a willingness to endure whatever may come] and follow Me [believing in Me, conforming to My example in living and, if need be, suffering or perhaps dying because of faith in Me]. 25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in this world] will [eventually] lose it [through death], but whoever loses his life [in this world] for My sake will find it [that is, life with Me for all eternity]. ]

[눅9:23,2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3. And he said to them all,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the same shall save it.

.....‘아무든지’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며 그 누구도 제자의 삶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3가지 방법을 배움. 

---1. 자기를 부인하고 

:::: 이 장면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마16:15, 16절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물으심에 대해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직후, 주님의 십자가 죽음 최초 예고 말씀 바로 뒤에 제기한, 베드로의 만류에 대해 주님의 꾸지람 있고 난 직후에 나오고 있음(마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비록 그가  거듭난 믿는이라 해도, 그 언제라도 주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음, 곧 주님께서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물어보시기 전에는 전문성 가졌다 해도 자기 선호 취미 자랑 자기 의로움 주장 생각 의견 감정, 느낌이 비록 옳게 또는 일리가 있고 타당하게 여겨지더라도, 또는 그 어떤 긴박감이 엄습해 오거나, 섭섭하거나 삭막하거나 불안과 염려 초조함이 느껴지더라도(결코!! 자기의 느낌이나 감각, 감정, 그로 인해 형성되는 자기 소견에 휘둘려 함부로 말하거나 추측따라 먼저 행하지 않고  ::이것을 다윗은 고범죄presumptous sin라  하였음) "주여, 거듭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사셔야 합니다, 주님  말씀만  따르렵니다 주 보혈로 씻으소서, 주만 앙망-주목-응시-바라보오니 친히 말씀하소서 인도하시고 이끄소서" 하며, 고요히 신뢰함으로 "주님, 주 예수여,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 주 예수여" 주이름 부름으로써 그 모든 차원 영역, 만물/만유의 창조주시요 주 영광의 모든 풍성 부요 충만 누림 안에서 사랑 희락 화평이신, "붙좇는 믿음, 사랑의 하나 됨으로 상호 거함-상호 기업-상호 누림  안으로 오라" 하신 바로 그분으로 채움  받음, 늘 자기  의견-주장-느낌, 곧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주도권/주권을 주님-주인-유일한 남편-머리-왕께 드려 주로 주 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육체가 이미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식하고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

---2. 날마다

:::: 주 임재의 하나됨 생생하게 경험-체득함의 영원한 순간 되도록 기대하며 살기,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JC를 앎의 영생 누림 안에  머무르며 거하라, 이제 나아 가자 하심 따라 동행 이루라 --네오스 카이노스, 아나네오오, 쉼모르포스

.....한 번 부인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육체는 날마다 다시 살아나게 되어있으니. 오늘 부인해도 내일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부인해야 한다. 

성령을 받아서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요, 죽을 때까지 제자가 되어 져가는 것.... 이 삶이 진정 복된 삶이지만... 그러나 대다수가 다 자라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살다가 죽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형편이다... 광야에서 화석화 된 사람은 자라가기가 어렵기에,. 우리는 ‘날마다’ 자라가는 삶, 육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주님은  "이제 아버지께서 뜻하사 예비하여 두신 섭자가 대속과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음 위한 모든 것 이미 다 이루고 모든 짐 벗고 TUQ의 평강 안에 머물러 있으니, 내 멍에를(함께) 메고서 (나와 너는 결혼한 하나요), [너는 회개하고 회심한, 나의 이를 불러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한 자, 곧 이미 TUQ 안으로 믿어들어가 그의 영이 거듭난 자요 Q의 생명 말씀 양식 먹고 살며 Q의 모든 풍성부요를  그 언제라도 주 이름 부름으로써 누리도록 하신 자이니, 결혼한 바 한 몸, 그 하나 됨의 상호 붙좇는 믿음으로, [ "신실과  참" 그 자체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함께 멍에  메고 하나되어 걷기를)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또 나의 짐은 가볍단다" 말씀하셨다. 

(([극악하고 전혀 무익-무능-무력한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의 아낌 없는 희생의 사랑!!, 그분은 바로 나 자신을 대신하심임을 상상하라..기억하고 명심하라...의 가시면류관의 찌르는 고통/얼굴에 흐르는 피(느껴보라,,사사로운 생각 떠나가도록까지), 허리에 박혀 심장까지 관통하는 창 찔림 인해 흐르는 피와 물(완전한 죽음..이를 통해 산출된 여자인 그대를 생각해보라...삿된 생각 떠나도록), 십자가에 박혀 몸무게 때문에 찢겨진, 고통스러운 두 손바닥(새로운 존재로 섬김 다짐함 기억케 하는가>), 두 발목을 겹쳐 관통시킨 대못은 주와 하나됨, 2인 3각의 늘 새로운 걸음을 촉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8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ily burdened [by religious rituals that provide no peace], and I will give you rest [refreshing your souls with salvation].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llowing Me as My discipl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renewal, blessed quie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to bear] and My burden is light.”]

.....십자가는 말씀the Word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곧 십자가 죽음, 십자가에 못박힘이니, "자기 십자가, 제 십자가"라는 말은 각자가 지고 감의, 달려야 할 십자가가 있음을, 그의 옛사람은 처리되어야 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기에 바울은 "날마다 나는 죽노라" 말하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하나되어 그분의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과 죽음을-장사됨-부활을 경험하는 자로 여기고, 날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의 속에 살아계심 인하여 그분과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산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또한,‘자기 십자가’ 라는 것은 각자에게 주신 말씀이니,. 날마다 자기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면 된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너무 버겁고 무거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렵지 않으리니,. 성경은 분명히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일에 대해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내일의 십자가를 미리 오늘 지려 말지니. 내일의 십자가를 지면 오늘, 지금의 십자가를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로서 마음-생각-순종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닮음 

---1.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사랑을 닮아가도록 끊임없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에 이를 때까지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없는 채로 형식만으로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세상의 논리에 따라 살면 신앙생활에도 행복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며 나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생각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셨기 때문에 말씀 외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닮아있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본질은 항상 그대로이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성령을 통해 시간과 대상에 따라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순종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즉각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은 절대로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제자에게 있어서 순종이 곧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항상 우리를 향해 옵니다. 그 생각은 생명이며 평강입니다.(말2:4~5) 지금 순종하면 결과는 ‘행복, 생명, 평강’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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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다, 뒤따르다. 제자가 되다 (TUQ 간의 결속-섬김-교통-사랑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붙좇는 참 믿음의 내적 결속으로 하나 됨 이루고, 전존재로서 내주하시는 <과정 거치신>그리스도의 영(그 영, 그분의 성령)과 교통-앙망-주목-동행하여 사는) ...(히>할라크 = pursue, follow...그리스도의 참 제자로서, 결혼 또는 가장 강력한 결합의 섬김 안에 계신 TUQ상호간의 결속처럼, 그분과 완전한 하나 됨 이룬 자로서, 붙좇음의 참 믿음 통해 이룬 바 하나 되어 내주하고 계신  성령의 인도와 이끌림을 통하여 교통(사귐/교제/소통..제자의 새로운 존재 됨의 순전-온전-완전-순결-정직성및 그리스도 판박이 됨 이루심 위한, 상호 존재적 교환 통해 일편단심으로 그의 운명을 하나 되어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190, 아콜루데오...[아(함께) +켈류도스(길, 궁극 진리)])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Homer 이래)는 켈류도스(kevleuqo", 길)에서 유래했으며, 

(a)  문자적 의미로 '함께 가다, 동반하다, 뒤따라 가다, 따라가다'이며,  (b)  비유적 의미로는 '(추세나 의견)을 따르다, 동의하다, 순응하다'를 의미한다. 

(c)  스토아 철학자들은 아콜루데오를 종교적, 철학적 의미로 사용했다. 이 단어는 현자가 세상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자연 혹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철학적 삶의 기본 방향이다. 여기에서 따른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통합에 의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이면에는 이성적인 인간과 하나님과의 본유적 관계에 대한 헬라적 견해가 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주로 할라크의 역어로 5회,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6회 사용되었다.

(a)  아콜루데오에 상당하는 히브리어는 민 22:20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함께 가라"는 것 외에는 할라크 아하레(직역: 뒤따라 가다, 4회)로 나타난다.

- 삼상 25:42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사자를 따라가는 것, 왕상 19:20에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고 싶어한 것, 호 2:7에 이스라엘 백성이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가는 것, 사 45:14에 만방이 주를 따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b)  구약성경에서 할라크 아하레라는 표현은 특히 호세아, 예레미야, 신명기 기록에서 이교로의 변절을 경고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그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른 신(神)들을 따라가는 것은 백성의 기본 죄이며, 모든 재난(심판)의 원인이다(삿 2:12; 신 4:3; 신 6:14; 왕상 21:26; 렘 11:10). 

호세아에서 이 표현은 간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부를 따르고 남편을 잊어버렸다(호 1:2; 호 2:7; 호 2:13).

여호와를 따르는 것은 신명기에 나타나지만(신 1:36 등) 별다른 강조가 없다(왕상 18:21은 예외). 그 이유는 그것이 우상숭배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렘 2:2의 광야에서 여호와를 좇는 것(출 13:21-22)에 대한 언급에서 결혼에 대한 개념이 고려되고 있다. '하나님의 길로 걷는다'는 표현이 애호되고 있다(신 5:30 등).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는 신약성경에서 90회 중 복음서에 80여회, 사도행전에 3회, 바울서신에 1회, 요한계시록에 6회 나타난다.

(a)  신약성경에서 따른다는 개념은 하나님께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이 개념은 팔레스타인 용법에 의해 암시되지 않았으며 초기 기독교도 이 표현을 형성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전혀 새롭고 독특한 개념[새예루살렘성은 그안에 성전이 따로 없으며 빛이 필요하지 않으니, 하나님과 어린양이 친히 성전이자 빛이 되시기에(부활 생명이신 그 영은 공기보다 가벼우시고 제한 없으시니, 유기적 공동체의 모든 지체마다에 있어서 완전히 모든 구성 요소마다에 그분의 신성-인성의 성분으로 mingle(하나 됨)-conformation(일치)되어 계심), 진정한 임마누엘- 여호와 삼마-다바크(adhere to, cling to, attach to ::결합한 하나 됨)가 완전히 이루어짐이 나타난다..그러므로 성령으로 산다 함은 모든 차원과 영역의 창조주-주관자 그리스도, 곧 TUQ이신 그 영의 충만-인도-이끄심 따라 주 이름 부름으로 주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 공급 받으며 (코람 데오-솔라 피데-솔라 스크립투라-솔라 크리스토스-솔리 데오 글로리아 이루심) 녹아 든 하나 됨(mingle)으로 변형-일치-동행의 t생명 삶을 매 순간 영위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새 예루살렘, 곧 몸의 생활로 확장하여) 누린다 함이다 ]이 생도 관계를 뿌리로 하여 그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따른다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념에 익숙한 헬레니즘 영역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갔을 때조차도 아콜루데오라는 동사와 따른다는 개념 전체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실로 역사적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다른 종교적 용법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직에 엄격히 제한되어 사용된 아콜루데오의 특별한 용법은 통계상으로 분명하게 증명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단 한번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면 아콜루데인은 전적으로 사복음서에서만 발견된다. 

이 용어는 어느 정도는 외적으로 따르는 것을 함축하는데, 예컨대 막 3:7과 병행구절, 마 8:10과 병행구절에서 무리가 예수님을 좇는 것과 마 8:19에서 좁은 의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는다고 할 때이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는다(막 10:28; 막 1:18; 눅 5:11). 

그러나 이것은 아콜루데인의 모든 다른 관계들을 끊는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헌신을 의미함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 8:22),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눅 9:61).

제자는 랍비의 생도가 행하는 바와 같이 행하되, 외적으로는 랍비의 생도와 똑같으나 내적으로는 예수님께 결속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제자직의 의미를 여전히 가지면서 한편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내용과 표시를 획득한다.

이 용어의 신약성경의 용법의 배타성은 원시 기독교에게는 유일한 하나의 제자직만 있으며, 따라서 유일한 하나의 좇음, 즉 예수님과의 관계만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막 2:14과 병행구절에서 아콜루데이 모이, "나를 좇으라"는 요구는 곧 메시야의 요구이다.

(b)  아콜루데인(따르는 것)은 메시야를 좇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제자직은 본질적으로 영적 선물이다. 아콜루데인은 예수님 안에 제공된 구원에 참예함을 의미한다. 

눅 9:61 이하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만이 아콜루데인을 성취할 수 있다. 

막 10:17; 막 10:21 및 병행구에서 아콜루데이 모이는 "영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요 8:12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동일한 사상이 계 14:4에서도 나타난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c)  하지만 아콜루데인은 또한 예수님의 운명에 함께 하는 것을 암시한다. 

마 8:19 이하에서 아콜루데소 소이("좇으리이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이다. 

막 8:34과 병행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신다. 

요 12:25-26에서도 동일한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구절들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바는, 어떤 의미에서 아콜루데인은 예수님의 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구원을 누림으로 시작되는 메시야와 함께 하는 삶과 고난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믿는이에게 오셔서 친히 살아계시는...이것은 진실로 최고의 축복 그 지체이다!!] 그리스도의 영, 곧 과정 거치신TUQ의 최종 완성이신 그 영이 내주하여 살아 계심 인해 (세상이 감당 못할만큼의) 탁월하고도 분명한 제자로서의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명심하자..

.....(([신자의 믿음의 참됨 여부는 드러나는 바 사랑의 역사로 증명된다])) 

[갈5:5. 6.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5 For we [not relying on the Law but] through the [strength and power of the Holy] Spirit, by faith, are waiting [confidently]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the completion of our salvation]. [우리는 행위의 율법으로가 아니라 (네오스-카이노스-아나네오오-쉼모르포스..우리 영에 내주하시는, 참 인성-참 신성 가지신 그리스도의 영이, 곧) 그 영의 힘과 능력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의 완성 =..범사에 사랑안에서 진리를 행하여 그에게까지 자라난, 참 인성-참 신성 가진 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 안에 그대로 나타날 바 Q의 영광인) 의 확실한 소망 이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6 For [if we are] in Christ Jesus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but only faith activated and expressed and working through love.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TUQ과 하나 되어 있어서 그분 이름 부름 통해 사랑의 Q, 그분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한량없이 공급 받아 사는) 우리로서는 "(살갗에 그 흔적 남는 할례의)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오직 (거듭난 자의 참된) 믿음, 곧 사랑을 통하여 (사랑의 주님이 부어주시고 일깨워주시는 바, 그 사랑의 섬김 동기로) 자극/활성/작동-표현-역사하는 (이타적 사랑,. 곧 그리스도 예수의 보이신 바 , 그 사랑의 섬김, 곧 서로 종 노릇함으로 나타나는 바) 바로 그 참된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롬2:28,29.....*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 Q 소유 됨의 표시이자 "일편단심 주님 소유 된 인생으로서, [또한 거듭난 나의 소유로 자신의 모든 것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Q] Q으로 평생 살리라"의 삶 결단 = 구주 영접함 + 붙좇음attach to, adhere to, cling to, trust-rely on, confide, believe의 참된 믿음...이로써, <그리스도 예수,  포도나무 본체에 접붙임 받아 한 몸의 교통communion과 상호 교환exchange으로 사는 산 가지>로 사랑-감사-믿음으로 앙망-주목-의뢰하며 주 이름 부름-교통-동행 가능케 됨)는 마음(the heart..심령, 영의 양심)에 할지니(=새길지니) 영(the spirit)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8 왜냐하면 외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외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9 오직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할례는 마음에 있는 것이어서 영 안에는 있고 율법 조문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28.For he is not a Jew, which is one outwardly; neither is that circumcision,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29.But he is a Jew, which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that of the heart, in the spirit, and not in the letter; whose praise is not of men, but of God.--28 For he is not a [real] Jew who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true] circumcision something external and physical. 29 But he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true]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fulfillment of] the letter [of the Law]. Hi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d)  이 용어의 은유적 용법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다음의 고찰에 의해 드러난다.

전승은 확실히 본래부터 마 10:38; 눅 14:27과 같은 말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마 10:38,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 14:27,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다른 한편으로 전승은 예수님과 (이 땅에서, 육신 입은 자로서, 눈에 띄게) 함께 다닌다는 의미에서 아콜루데인을 행사하지 않는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매우 본래부터 나타낸다.  ....더욱 더 두드러진 것은 전승의 세번째 명백한 특징이다. 

즉 이 단어와 예수님의 역사(history)의 구체적인 활동이 너무나 강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다른 명사도 이 제자직의 개념에 일치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신약성경에는 단지 능동적인 표현만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이 용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행위이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아콜루데인이라는 용어가 복음서에서만 사용되고, 또 사복음서 모두에서 그 용법상 일치점이 있으며, 복음서들이 이 용어가 의미하는 관계를 역사상의 예수님에게 국한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신약성경의 서신들에서는 다른 표현들이 높임 받으신 퀴리오스(kuvrio", 2962: 주, 주님) 및 그의 프뉴마(pneu'ma, 4151: 영)와의 관련을 강조하는 데에 사용된다.

[마10:37, 38...*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계14:4...*4.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 용어가 예외적으로 복음서 외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계 14:4은 분명 마 10:38을 특정한 부류의 신자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 개념에 주어진 분명한 새로운 내용은 마찬가지로 사도 시대에 '따른다'는 묘사가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마가, 혹은 바울과 그의 집단(circle)의 경우처럼 스승과 제자(master-pupil) 관계에 친숙해 있었지만 어쨌든 다른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식의 표현을 피한다. (참조: G. Kittel; C. Blending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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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열매로 사는 그리스도인.(잠8:19-21)

[잠:19-21...*19, 내 열매는 금(金)이나 정금(正金)보다 나으며 내 소득(所得)은  천은(天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의(義)로운 길로 행(行)하며  공평(公平)한 길 가운데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財物)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 성도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영으로 의와 공의와 선을 행하신다.

지혜의 신(神) 성령 하나님께서 입술을 열어 가장 선한 것을 말씀하시기를 내 입은 진리(眞理)를 말하고 내 입은 악(惡)을 미워한다하셨으며 선(善. 히>토브. 헬>ἀϒαθός 아가도스.~ 아름다운 도덕의 실천. 선하신 하나님의 일)한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셨다.(잠8:6)

선이란 창세전에 택한 자들을 부르시고 중생의 씻음(십자가의 연합)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모든 것을 깨끗케 하시며 거룩케 된 성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것이다. (잠8:20.미6:8.롬5:5,8:28.엡1:4,2:10.딛1:15,3:5)

성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헬>παλαιός 팔라이오스.~ 초등학문. 옛 육신의 소욕)을 좇는 옛 사람(헬>παλαιὸς ἄνθρ-ωπος 팔라이오스 안드로포스.~ 예수 밖에 있는 자. 육신에 있는 자.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을 벗어버린 자다.(엡2:1-3,4:22)

★ 새 사람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보화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로 행한다.

성도는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고 하나님을 따라(히>라티프. 헬>ἀκο-λουθέω 아콜루데오. pursue.~ 주님을 좇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헬>καινὸς ἄνθρωπος 카이노스 안트로포스.~ 성령으로 중생한자)을 입은 자다.(엡2:10,4:24.딛3:5)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를 좇고 계명을 지켜 제 목숨을 부인해 그리스도와 친구(히>레아. 헬>Φίλος 필로스.~ 벗. 동료. 제 목숨을 버린 자)가 된 자이며 또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아 만난 자들이다. (삼상1:10-16.시42:1,2.잠8:17.눅9:23.요15:13,14,16:13)

베드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 말했으며. 예수님은 네가 자신을 부인하면 하늘에서 보화(헬>θησαυρός 데사우로스.~ 창고. 보물. 복음의 영광.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셨다.(마19:21.행2:38,3:19.고후4:7.골2:3)

★ 하나님 영광은 예수이고 금보다 귀한 반석이시며 우리 행위의 열매다.

바울은 어두움(히>호셰크. 헬>σκότος 스코토스.~ 악. 사망. 심판. 마귀의 속박)에 속한 자에게 빛으로 오신 주님은 그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고 이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것이라 말했다.(사14:17.요3:19,20.고후4:6,7)

지혜의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상급과 열매고 이는 금보다 귀한 반석(히>추르. 헬>πέτρα 페트라.~ 바위. 안전함. 하나님. 그리스도. 성도)을 주신 것이며 우리는 금이나 정금과 천은보다 나은 그리스도를 열매로 받은 것이다.(창15:1.잠8:19,11:30.요15:5)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그가 열매로 그리스도를 주시며 믿음의 결국 영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그의 사랑 예수의 선한 행사를 우리 행위에 나타내 주심으로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주신다.(잠8:19.요14:21.고후13:5.히6:10)

★ 하나님 소원, 우리 안에 예수(보화)의 열매를 맺고 영광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섭리는 우리가 무죄하고 의로우며 완전한 자로서 항상 넉넉히 이기고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보호하시며 합력하시고 우리에게 주의 일 곧 예수를 믿는 소원(所願)을 마음에 두고 행하게 하신다.(호8:5.요6:29.롬8:28-39.벧전1:5,벧후1:11) 

주님이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의로운 길과 인애와 공평과 정직과 모든 진리로 행하시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재물(財物. 히>하일. 헬>μαμωνᾶς 마모나스.~ 부. 풍요. 보화)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잠8:20,21.렘9:24.요14:16,16:13.롬8:4.히6:10)

재물이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보화  예수그리스도(말씀과 씨와 성령)이니, 그분을 참되게  얻고 종말의 때 천사들에 의하여 양(알곡)과 염소(가라지)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게 하신다.(마25:31-34)

★ 성도의 섬김은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를 섬겨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오른 편에 있는 양은 하나님을 주인 삼고 그의 사랑과 생명의 능력과 공급하시는 힘으로 지극히 작은 형제 눈에 티를 뽑아주고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며 사망당한 자를 구원해 허다한 죄를 덮어준 자들이다.(마25:35-40.눅6:42.약5:20.요일5:16)

예수님은 우리의 섬기는 예로 교훈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섬김(히>아바드. 헬>δουλϵύω 둘류오. διακονέω 디아코네오.~ 일하다. 봉사하다. 시중들다)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 말씀하셨다.(마20:28,25:40.막10:45)

하나님은 그의 사랑 예수를 우리 안에 소원으로 두고 의와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시며 행하시는 것은 우리로 그의 영의 행하심에 이끌려(히>보. 헬>ἀνάϒω 아나고.~ 성령의 인도를 받다)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롬8:14.빌2:13.딛2:11-14)

★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재물로 받고 천국 곳간을 채운다.

즉 성령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가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따라 그의 후사가 되게 하셨으며 우리를 하늘 보좌에 보물 되신 주님과 함께 앉히시고 그의 곳간 천국을 채우게 하신다.(엡2:6.골3:3)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하나님의 열매는 천국의 재물(보화. 보물) 생명나무 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니, 자신을 부인해 주님을 사랑한 자들은 그의 사랑 예수를 옷 입고 그가 의와 공평의 길을 가게 하심으로 우리로 보화, 재물을 채우게 하신다.(잠8:19-21.롬13:14.갈3:27).., (그분의 이름 부름으로써 이 땅에서부터 그분 영광의 풍성-부요-충만함 얻어 누리며....Q의 모든 풍성하심은 그리스도께 부요하심으로 주어졌고, 이로 인해 내주하시는 성령은 주 예수 이름 부르는 모든 이마다에게 Q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허락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여 찾아 만난 사람은 부귀가 있고 썩지 않은 장구한 재물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의 의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어 의의 길로 행하고 선과 공평의 길을 행하게 되며 재물을 얻어 천국 곳간을 채우는 충만한 삶을 열매로 살게 된다.(잠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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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안에 있는 빵을 올려놓는, 진설병 떡상 관리법(레24:5~9).

[레4:5-9((8, 9))...*8. 안식일 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8,.“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여호와 앞에”는 히브리어로“파님”인데“어딘가로 가기 위하여”을 뜻하는“파나”에서 유래한 것으로“얼굴을 ~쪽을 향하여, ~쪽을 바라보다, ~얼굴을 돌리다”을 뜻한다. 즉 여기서는 문자적인 뜻은“여호와의 면전에서”란 뜻이다.

---“항상 진설할지니”는 히브리어로“아라크”인데“정열하다, 한 줄로세우다, 제단 위에 나무를 올려놓다, 순서대로 놓다, 간검하다, 정리하다”을 뜻한다(4절) ...즉 한번 드려진 빵은 일주일 동안 여호와 앞에 진설되 었으며,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진설 되었던 그 빵을 교체할 때는 미리 새로운 빵을 준비한 후 제사장이 이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그 빵을 거두는 동시에 새로운 빵을 올려 놓았다. 그러므로 빵은 상위 항상 놓여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영원한”은 히브리어로“올람”인데“감추다, 숨기다”을 뜻하는“알람”에서 유래한 것으로“영원, 영구, 영원히, 고대, 영세, 영원무궁”을 뜻한다(출15:18), 

---“언약”은 히브리어로“베리트”인데 이 말은“잘게 자르다, 먹다”을 뜻하는“바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언약, 계약”을 말한다. 즉 자르고 분리한다는 개념이다. ......구약에 언약은 희생물을 둘로 자르고 그 사이를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감으로써, 만약 언약 파기 시에는 이 짐승 같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임을 서로 확인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결국 언약은 생명을 담보로 한 엄숙한 약속임을 알 수 있다......“언약”은 라틴어“테스타멘템Testamentum”이며 여기서 영어 “테스타먼드testament”가 나왔다. 히브리어 “베리트”, 헬라어 “디아데케”와 동일 어이다. 이 말은“유언, 계약”이라는 의미이다. (언약의 책, 계약의 책)(창9:9, 출6:4, 신5:2). 특히 히9:16~17에서는 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유언한 자(testator)가 죽어(death)야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듯 예수께서 언약을 말씀하신 것은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셨음을 설명한다. testament는 성서, 증거, 증명, 유언, 입증을 말하지만 흠정역 성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사용되었다.

① 상속 언약 testament(히9:16,17,20). ② 새 상속 언약 new testament(마26:28, 막14:24, 눅22:20,고전11:25,고후3:6, 히9:15). ③ 더 나은 상속 언약 better testament(히7:22,8:6).

......또 성경에서 사용한 covenant는 계약, 서약, 언약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④ 언약covenant(눅1:72,행3:25,7:8,롬9:4,갈3:15,17,4:24,11:27,엡2:12. 히8:9,10,13, 9:4,10:29, 13:20). ⑤ 새 언약new covenant(히8:8,13,12:24) ⑥ 첫 언약first covenant(히8:7, 9:1,18).

*9.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이 말은 여호와 앞에 차려놓았던 빵은 제사장과 그 가족의 몫으로 돌려졌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의 생계를 위한 음식이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교훈적으로 보여 준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사울의 박해를 피해 도피 중이던 다윗이 굶주린 자기 부하들에게 이 빵을 주어 먹도록 한 사실을 들 수 있다(삼상21:1~6). 그런데 이 사건은 후일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은 예수의 제자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이 비난할 때 예수께서 실례로 든 사건으로서, 복음의 참 정신을 설명하는데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있다(마12:1~8). 그러므로 율법의 참된 의미는 죄인들을 처벌이나 정죄가 우선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거룩한 곳”히브리어로“카도쉬”인데“거룩하다, 깨끗하다”을 뜻하는“카다쉬”에서 유래한 것으로“거룩한 곳”을 뜻한다. 즉“거룩한 곳은“회막 뜰”을 말한다(6:16).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화제”는 히브리어로“잇샤”인데, 비유적으로“하나님의 불, 하나님의 진노”을 뜻하는“에쉬”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에 태워서 드리는“희생물”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여호와께 드려지는 화제를 가리켜“여호와의 화제(1:9)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화제들을 하나님께서 받아 흠향하신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곧“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레3:16), 또는 하나님의 음식”(레21:6, 8, 17, 21, 22. 22:25),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음식”은 히브리어로“레헴”인데“먹다, 먹이다, 소모하다, 부식시키다”을 뜻하는“라함”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과 짐승들이 먹는“음식, 양식, 식물, 곡식”을 말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수사법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순종과 제물의 뿌려진 피를 보고서 그 예물을 기쁘게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번제의 경우,“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레1:9).

---“지극히 거룩함이라”는 히브리어로 “코데쉬”인데 “거룩하다, 깨끗하다”를 뜻하는 “카다쉬”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룩함, 거룩한 이름, 거룩한 것, 하나님께 받쳐지 물건, 성전에서 쓰이는 물건, 성지, 성결 신성하게 구별된 것” 등을 말한다,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영원한”은 히브리어로“올람”인데“감추다, 숨기다”을 뜻하는“알람”에서 유래한 것으로“영원, 영구, 영원히, 고대, 영세, 영원무궁”을 뜻한다.

---“규례”는 히브리어로 “호크”인데 “제한된 것, 지정된 것, 즉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모든 율법"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율법의 율례와 규례는 유대인에게 주신 법이지 오늘날 교회에게 주신 법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 임재 앞에서, 앙망-부름-동행  "코람데오"--오직 믿음으로 "솔라 피데"--오직 성경 말씀을, 말씀 따라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그리스도를 "솔라 크리스토스" --오직 Q의 영광(드러남) 감사하며"솔리 데오 글로리아")....즉, 음식 먹는 것이 생명 먹는 것임을 인정하고 합당한 깨달음과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거리낌 없는 상태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가르치셨다(마15:11).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고전10:23) [유익 가운데서 궁극적 유익은 "토브, Q의 지고지선, 절대적 선의 진복이신 Q 얻음"인 영적 유익이기에, 소금-빛인 믿는이에 대해 이웃(불신 세상)으로 하여금 오해-착각-폄훼하게 만들 수 있거나 형제를 넘어지게 할 가능성 있는 그 어떤 행동-발언은 그 언제라도 절제함으로써(현재 사회의 공동 유익 위한 불문율 존중함의 예의-정중-도덕의 범위를 인정함으로 = 이것은 상대적, 일시적 선에 해당된다!!) 질서 지키고 주께만 여쭈어 확인하되, 오직  "사랑-기쁨-평강 안에서 참된 것(진리)을 행함인지", 곧 (극히 작은 일이라도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 이름 불러 여쭈어 듣고, 큰 일에는 더욱 더 ) 주께 여쭈어 그분 인도 따라 최종 결정하되, 그 언제나 주 보시기에 합당함이 중요하다], 

또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묻지말고 필요한대로 사서 먹되, 파는이가 "우상 신전에 먼저 드려진 것이라" 먼저 말한다면, 파는이의 억측-오해-오도됨 막기 위해서 사 먹지 않을 것, 형제 중 (채소만 먹는) 믿음이 약한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비판-비난-자괴감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때와 장소따라) 고기를 먹지 않기로 개인적으로 결단함) 먹는 자에게는 악한 것이라(롬14:21)고 하셨다..[고전10:31...*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골3: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의복 점검 후 일단 성소에 들어가면 떡상->-등잔대-->향단 순서로 간검, 바르게 세심하게 정돈한 후 기도에 임하였다", 



[[로마서 서론]]...항상 살아 생동하는 [참생명, 영원생명의 말씀으로 살아감의 구원 위하시는 하나님의 패러다임, 그 관점에서 주를 인하여, 주를 살고 공급함]


성경을 비교해 보고 신앙의 선배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구약에서는 다윗의 시편들이, 신약에서는 바울의 서신들이 그 광도(光度)에 있어서 제일가는 별들이라고 보겠다. 

사실 모든 성경은 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배달된 편지이다. 그 중에도 특별한 서신들이 있는데 그게 바울 서신이다. 사도 가운데 사도요 그 누구보다도 수고가 많은 그였기 때문이다. 

그의 타고난 성품 역시 만만치 않았으니 잽싸고 예리한 통찰력, 풍부한 표현력, 열렬한 투지, 거칠 것 없는 결단력, 이 모든 것으로 해서 그는, 회개하기 이전엔 말할 수 없이 혹독한 박해자일 수 있었다. 

그러나 힘 센 사람의 무장이 풀려지고 그보다 더 힘 센 사람이 와서 사로잡고 노략물로서 그를 분배해 버리고 앞서 말한 성품을 성화시켜 주었을 때 그는 더 없이 능수능란하고 열렬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영혼 구원에 있어서 그보다 더한 적격자, 그보다 더한 성공자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의 서신 가운데 열네 편이 성경으로 남아 있다. 

그의 사역 중에 교훈과 책망에 필요한 더 많은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지만 Q의 영감에 따른 것이 아니라서 정경(正經)으로 받아 들려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지도 않다. 

바울이 세네카에게 여섯 통의 편지를, 세네카가 바울에게 여덟 통의 편지를 써보냈다는 얘기가 회자되기는 하지만(Sixt. Senens. Biblioth. Sanct. lib. ii) 지금은 그 자취조차도 없을 뿐 아니라 언뜻 듣기에도 공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의 편지들 중에서 로마서가 맨 먼저 나오는 것은 연대가 빨라서가 아니라 모든 서신 가운데 가장 길고 또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그 탁월성 때문이다. 

어쩌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위엄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이 로마서를 일주일에 두 번씩 읽었다. 

몇 구절을 종합해 보면 이 서신은 바울이 드로아로 가는 도중에 고린도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곧 주후 56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행 20:5, 6). 

는 로마 교우들에게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 뵈뵈를 추천하고 있는데(16장) 겐그리아는 고린도 지방에 속한 곳이다. 

그는 자기가 유숙하고 있는 집 사람, 가이오를 “집주인”이라고 부르는데(16:23) 이 사람은 고린도 사람으로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더베 사람 가이오와 다르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모은 헌금을 가지고 그리로 가는 길이었다.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본 서신에서 취급하고 있는 위대한 신비적 교리들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제기하고 있다(벧후 3:16).

본 서신의 내용은 첫 11장은 교리적이요 다음 5장은 실제적인 것으로 심판을 알려 주고 삶을 개혁하게 하는 것이다. 

((실은 그의 서신들을 꿰뚫고 흐르는, [비가견적인]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인 교회, 곧 몸의 생활에 있어서 그 현장인 일상 생활과 지역교회 안에서 몸의 지체된 성도가 (주 보시기에) 이 땅을 걷는 동안 (그의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살며, 그리스도를 살며, 그리스도와 함께, 의해, 통하여 산다고 말할 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교회 생활인가를 제시하고 있다고 봄이 옳다))

따라서 전반부에서 설명되어지는 진리를 가장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은 후반부에 처방으로 나와 있는 실천 조항에 따라 그대로 살아 가는 데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먼저 그의 가르침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요 7:17).

[요7:17, 18...*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17.If any man will do his will, he shall know of the doctrine, whether it be of God, or whether I speak of myself.  *18.He that speaketh of himself seeketh his own glory: but he that seeketh his glory that sent him, the same is true, and no unrighteousness is in him.]

1.교리적인 면

(1) 구원의 길에 관하여

① 칭의에 나타난 구원의 기초는 이방인이나 유대인 할 것 없이 모두 저주 아래 놓였으므로 이방인의 본성에 따른 행위일 수도(1장), 유대인의 율법에 따른 행위일 수도 없으며 “철두철미”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뿐이다(3:21-, 4장).

② 이 구원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의 영광(5장) b. 성화(6, 7장) c. 영화(8장)

(2)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한 것으로 선택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9장),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언급이 뒤따른다(10장, 11장). 

여기서 보자면 사도가 본장에서 취급하는 문제들이 당시에 이미 기정사실이었던 것 같다(벧후 1:12). 

곧 유대인들이 당황해 하던 두 가지 문제로 율법의 행위와 무관한 이신칭의와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문제가 그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두 문제를 명백히 변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 실제적인 면

(1)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권고(12장).

(2)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행동지침(13장).

(3)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서로가 지녀야 할 행동규칙(14장-, 15:14).

3. 결론

(1) 편지쓰는 이유(15:14-16) (2) 자신의 임무 설명(17-21절) (3) 방문 약속(22-29절) (4) 기도 요청(30-33절) (5) 개인적인 인사(16:1-16) (6)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경고(17-20절) (7) 동역자들의 안부(21-23절) (8) 축복과 찬양(24-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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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복음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의해 영접 된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믿고 불러 내신 Q과 결합한 하나 됨 이루어 그분의 아내요 신부로 산다. 

그러므로 복음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믿는 자들에 의해 영접 되는데, 우리가 그러하다. 

.......부르심을 입는다는 것은 [그의 이름 부르시는(call for) Q앞에 단독자로 나와서 만나자 하심이다] 부르심을 받았다 함은  거기서 아무 미련 없이 나와  (Q 아닌 것들은 거기 그대로 다 버려두고) 홀가분하게 홀로 나와 (부르신 분 Q을 신뢰하여 친히 이끌어가시는 그분과 함께 그분이 지시하는 곳으로 바로 그 곳으로) 떠나 간다는 것을 의미하며[이것을 불러내셨다 : call out로 쓴다], 또한  믿는다(believe in = be life into)는 것은 믿어 들어가서 믿는 분을 그의 생명 삼아 그분과 하나 되어 산다(그분의 어떠하심의 판박이인 그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짖다/외치다 call upon to....울부짖다, 울며 소리치다 cry out .... (이름) 부르다 call for......불러내다  call out...@@@ 

......참되게 믿는 것이란 어떻게 믿는 것인가...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은 Q에 의해 지음 받은 족속에서 불러내신 자였다. 지음 받은 족속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로 타락했으며 더 이상 Q과의 관계에는 소망이 없다고 보셨기에 하나님은 그 족속을 버리셨으며 그분의 영광으로 친히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사 그를 적셔주심으로(후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마지막 40일 금식 기간 동안 Q 영광으로 적셔짐 안에서 성막 식양을 전달 받게 된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불러내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Q의 지음을 받은 족속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족속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Q을 믿었다" 함은 영광으로 나타나 만나주시고 그분의 그 아름다운 영광으로 [여전히 죄성 가진, 타고난 죄인인 아브라함 그 자신을] 흠뻑 적셔주신 그 Q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시는 그분,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영생하시는 그분의 신실과 참되심을 신뢰하고 자기를 온통 맡겨 드리고 일심으로 붙좇음(attach to, adhere to, cling to,trust, rely on, confide in. believe in) + 말씀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 (에노스처럼) 올바르고 합당하게 주 이름 부르며 (에녹처럼, 노아처럼 친밀하게 앎 가운데)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믿는 우리 영 안에 오사 내주하시는 그 영을) 마음 열어 그분의 이름 부름으로써 온통 자신을 주시는 주님을, 그분의 사랑-기쁨-평강 가운데 머무르며 앙망-주목/응시-여쭈고 교통하며 제단 쌓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마다 24 시간 내내 동행하였다는 말이다...

......우리는 Q 외의 모든 것들, 즉 옛 창조, 세상, 사람의 족속, 우리 자신에서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는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그분 자신이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Q 자신이 아닌 모든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후에 믿었다. 믿는다는 것은 믿고 들어가서 하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왕-구주-주인-머리-남편이신 예수님 안으로 믿어 들어가 하나 됨의 친밀한 교통-동행-순종 가운데 (Q이 예비해 두신 그대로)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고, 우주적 한 새사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됨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되게 믿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은 진정 nothing, nobody!! 즉 소망 없고, 어쩔 도리도 전혀 없고, Q을 전혀 기쁘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고 시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려야 하고, 우리 자신을 끝내야 하며, 우리의 어떠함과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이것이 참되게 믿는 것이다.

-----로마서, 일명 제5 복음서------

.......사복음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의,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말씀이 육신이 되신 후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그들 곁에) 계셨지만 십자가와 부활 전에는 그리스도가 아직 그들 속에(부활 생명의 그 영으로서, 그들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계시지 않았다

[요7:37-39...*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로마서의 복음은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사 믿는 이의 영 안에 내주하여 계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하라., 

[부활하사 참되게 믿는 (거듭난) 우리 영 안에 내주하사 살아계시는, 과정 거치신 TUQ의 최종 완성인 그리스도의 영(그 영)으로 살아감의 복음, 즉 (날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말하는 복음]

롬8장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부활하신 후의 그리스도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의 그 영(성령)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 즉 그분의 부활 이전에는 제자들과 함께(우리 영 밖에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함의 믿음으로 거듭난 자로서] 우리 영 안에 들어와 내주하여 계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로마서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보다 더 깊고, 보다 더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즉, 로마서에서의 복음은 부활하신 후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인 것이다.

......만일 직접적으로 육안으로 그분을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사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만 있다면 우리의 복음은 너무나 객관적이 되고 말 것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다섯번 째의 복음, 곧 우리가 실지로 주관적으로 체험 가능한 그리스도의 주관적 복음이 로마서를 통해 주어졌다...

우리에게는 진정, 로마서의 체험 가능한 그리스도의 주관적 복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단순히 성육신 후부터 부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시던,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만이 아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더 높고 보다 주관적인 분이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의 그 영(생명 그 자체요, 생명을 주며, 지속적으로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요14, 15장에서 그리스도는 믿는이들 안에 계실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의 복음이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 곧 그를 믿는이들 안에 계신 주관적인 구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더 깊고 보다 주관적이다.


Q께는 [JC를 보내신]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최종 목적은 Q의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려는 것이요, 이를 통해 한 새 사람인 교회 곧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이자 새 예루살렘을 오게 하려하심이다. 

바로 이를 위해서는 구속과 생명 주는 것과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타락된 죄인인 우리들에게는 거듭나고, 변화되고, Q의 아들들로 완전히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 구속이 필요하고, 이 구속을 믿는 믿음 통해 얻는 바 구원, 곧 Q의 생명 얻음이 필요하며, Q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Q의 완전한 아들들이 될 것이다.

---Q에게는 외아들, 즉 독생하신 아들이 있다. 그러나 Q께서는 한 분의 아들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많은 아들들을 영광(= Q의 어떠하심의 완전한 나타나심) 안으로 이끌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Q께서는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해 독생자를 하나의 모형과 본으로 쓰셨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이전에 가지신 신성을 생명 씨앗 동면 상태로 그분의 육체 안에 두시고, 참 인성 획득을 위해 그 과정인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셨고, 33년 동안 사람으로서 법을 완전히 살아내셨으며, 점흠티주름-그 어떤 죄도 없으신 그분은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어린 양으로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대표적 구속 이루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통해서[이 부활은 또한 그분의 신성 가지신 아들이심의 참 확증이요], 이제 그분은 자신이 구주 되심을 믿는 모든 이들안에 과정 거치신 ((제한 받지 않으시는)) 그 영으로 오셔서 친히 살아계신다....((그 영의 상태라야 그리스도는  거듭난 영에 내주하심으로써 생명 공급을 하실 수 있으쎴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제한 받지 않으시는 그 영은 Q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시요 Q이시요, 생명과 빛이시며, 믿는이의 마음과 입술에 그 말씀이 [의식보다 호흡보다도 더] 가까이 계시기에 마음에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함으로써 구원 받게 된다....즉 우주 전체와 의식-무의식-잠재의식의 모든 차원과 영역을 제한 없이 관통하며 넘어서며 초월하고 두루 퍼져 계시며 활동하시는 상태이다. ((이것은 결코 범신론이 아닌 것이다))

이로써 [구주 믿는, 붙좇아 믿는, 믿어 들어가 그분을 생명 삼고 살아가는 이들마다에게, TUQ의 하나 되어 사랑으로 섬기며 순종하심처럼, TUQ과 하나 됨 이루사 완전한 상호 교통과 교환 통해 당신의 모든 어떠하심과 성취를 공급하시고 신진대사적 변화를 이루고 계심으로써 Q께 합당하지 않은 것들마다 하나하나 제거하사 믿는이들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Q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고 계신다!!....그 어느 날, 주 안에서 (살아 있을 때든지, 부활 후 재림 주 안에서든지....믿는이마다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그 신성을 얻게 하셨음을!!) 돌연히 깨닫고 발견하고 극도로 감격하게 되리라..]]

---Q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이 같은 과정을 거치셨으며 우리도 Q의 아들로 인정 받기 위해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깨닫는가?  

본래 그리스도는 Q의 외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이 Q의 독생하신 아들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 

육신이 된 Q의 아들 예수는 33년이란 시간을 거치신 후에 부활하심으로써 Q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Q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겸한 한 아들을  얻은 것이다. 

성육신 전에는 Q의 아들에게는 신성만 있었으나 성육신-죽음-장사 됨을 거쳐 부활하신 후 Q의 아들은 신성과 인성을 갖게 되었다, 오늘 Q의 아들에게는 신성과 인성 모두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사람의 아들들로 태어났으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Q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났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우리는 모두 Q의 아들들이다. 어느 의미에서 Q께는 딸이 없으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자매는 다 형제이다. 

믿는 우리 모두는 형제들이요 우리 모두는 Q의 아들들이다. Q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오셨기에 우리는 Q의 아들들인 것이다.(갈4:6) 

---Q의 독생하신 아들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처럼 이제 Q의 아들의 영이 우리 많은 육신들 속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의미에서 모두 예수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속으로는 Q의 아들이었지만 또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었다. 

우리도 또한 속으로는 Q의 자녀이지만 또한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아들로 인정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육신의 사람은 이윽고 거룩하게 하심과 변화와 영화롭게 하심으로 인정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거기서 그냥 멈추는 것 아니라  궁극적 목표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바울 서신서를 바탕으로 그 전망을 열어두신 바 계시록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곧 한 새 사람(그리스도는 머리시요 교회는 그분의 몸) 이루심을 예비해 두신 바 됭 아루어나가야 한다...., 성도 하나하나마다 (생명-경건-사랑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함 이루어 나가며 동시에) 그분의 지체로서, 서로 유기적 생명 공동체로서의 몸의 생활 훈련을 이 땅에서부터 연습-실행하도록 하자..[이미 예비해두신 바 그리스도로부터 공급 받고 통제 받음으로써 성령의 사랑-희락-화평-자비-양선-충성 안에서 온유-절제(질서-균형-조화-섬김)의 상호 섬김의 생명 원칙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감으로써 대적원수-사탄마귀를, 그리고 그의 체계인 세상을 이김의 전사됨-신부 됨을 살아감으로써 주만 바라보고 동행함으로 서로 도우며 은혜-평강 안에 머무르며 섬기기를 배워 능숙케 함으로써 Q의 궁극적 목표인 새 예루살렘을 지향하며 이 땅을 살아감이 그토록 중요하다.]...((먼저 그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런 연후에라야 [보좌에 앉혀진 존재로서의 자각 가지고 내주하시며 동시에 삼층천에 앉아 계신 주님 품에 안겨 내려다보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조명하심 따라] 이 땅을 사는 이로써 가정-사회-국가-열방에 대한 참된 시야-이해-추구 방향과 주님 뜻에 합한 (무엇을 구하기 원하시는지) 중보-중재자적 관점이 열리게 되며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Q 나라를 위해 올인함이 아니라 흔히 태어난 모국 위한 "애국 충정"의 기도를 더 강조함으로써 오도될 수 있음에 특히 세심한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본말전도-주객전도는 대적원수 사탄의 궤계이다!!..(그대가 정녕 파수하는 기도의 사명자로 부름 받았다고 생각된다면, 새삼스러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대가 파수하려 함이 누구를, 무엇을 위함인지 주께 여쭈며 (미래를 예측하며 말하는 이들에 동조하여 짐짓 추정-염려-근심은 세상 체계에 스스로 내어줌이 되며, 주님 주권 건드림-믿음에서 벗어남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마음 언행을 주의하며) 근본 동기를 살펴봐야 하리라.

---사랑 겨운, 오직 사랑의 동기에서, 올바른 순종을 위하여, 마음의 근본동기를 밝혀 주시기를주께 여쭈라--

구약 성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경험했던 바 처럼, 신약의 믿는이들인 우리들도 날마다 주 이름 부름으로써 주님의 풍성부요충만을 누리며, 참되게 믿어들어가서 하나 됨을 기뻐하시는, 바로 그 주님 붙좇는 믿음과 신뢰로, 사랑 겨운 순종의 하루하루 통해 우리의 지고지선의 진복, 곧 주님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의, 참 구원 이룸과 영생 복락 안에서 살아감의 주관적 경험-체득 통해 주와 동행함을 실행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생 광야 길 도상에서 경험하게 하여 두신 병고나 간고, (또는 환난-곤고-박해-기근-적신-위협-칼 등)에 대해서는 [주님으로부터의 분명한 뜻과 위로의 말씀에 대해서는 깊은 뜻 있음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시도록, 묵묵히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더라도]....간혹, ((제발!!...이제는 더 이상은!!)) 하며, 이 세상에서 발발하고 있는 전쟁과 그로 인한 불행이 없어지기를, 전쟁이 그치고 기근-온역이 종식 되고 지진-홍수-해일 등 자연 재해나 재앙들이 그치기를 (몸서리 치며) 구하게 하는 기도 인도자(??)의 종용에 무심코 따라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닌지.....깊은 깨달음이 아직 없었다면!! 유일무이한 지존자-주권자이신 주님 뜻과 그분의 모든 자비하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하는 이에게 열어주고 계신 영적 유익에 대해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주께 직접 여쭈어 보도록 하리라.. 불평-불만-불신에 차서 부르짖게 (당금의 환경-상황-형편-처지를 비관하는 편에 서도록 선동??)함에 대해 더 이상 그냥 (무심코!!)넘어가지는 말자!!... 오직 그대 자신의 깨달음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근본동기에 대해 분명한 말씀 조명이 스스로에게 아직까지는 없었다면!!)) 곰곰이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혹시 기도 인도자의 근본 동기가 주님의 깊은, 근본적 뜻을 헤아려 이룸에 둠 보다는 실은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에서 발출된 (자기 재물의 손해나 사적 이익 침해 가능성 예감을 따라) 자신을 바라봄, 즉 자기 연민의 발로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그 어떤 재해나 재앙들도 주님의 허락이 없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왜 그것들을 허용하고 계시는지...소돔과 고모라를 떠 올려 묵상해 보자...다만 주 보시기에 [소돔과 고모라의 불사름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가능성, 곧 주님이 찾고 계시던 그 10명의 의인들이었다면... 그대가 ((주님의 즉각적인 불심판을 막는 자[바로 세상과 타협하며 근근히 살아감이 아니라, 그 의인들 중 하나로 살기를 구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물론 바로 그 의인들의 깨달음 가운데서 전적으로 주님 신뢰하며 마음을 함께 하여 쉼 없이 중보하고 중재하는 기도 올려드림이 또한 같은 무게를 가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그 도시들은 그곳에  만연했던 동성애(분명히 정죄하고 계시며, 각자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는다고 선언하시지만) 때문에 불살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정말, 마음 아프시지만!!) 주님은 [흔들어 깨워 일어나, 주님 임재 앞에 나아와 서게--그럼으로써] 회개하도록 하거나 주 이름 불러 구원 받게 하시려는그분의 주권적 섭리, 간섭하심의 섭리를 통해 주께 돌아와야 할((구원 받기로 예정해 두신)) 이들마다 모두 절실히 ((임박한 심판을)) 깨닫고 주께로 돌이켜 영생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시기 위해 (오히려) 긍휼의 손을 여전히 펴심으로써 ((재해나 재앙을 허용하심으로써...녀기에 깨달음의 반전이 있는 것 아닐까?)) 애타게 부르시고 계신 것 아닐까....결국은 회개함이 그토록 중요하다.

....그분은 환난 중에도 [그 까닭을 겸손히 주께 여쭈어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마다 (비록, 개인적으로 환난 중에 있더라도 동일하심을 본다!!) 긍휼 베푸사 경감시키시며 도중에 바로 그 회개자 때문에 손을 거두시기도 하는 분임을 굳게 붙들자]...진정한 의미에서 ((먼저!!))주님 나라와 주님 뜻 이루어지도록 구함이 옳다..((그러므로 무엇에 대해, 어찌 기도할 지를 주께 나아가 여쭈어 보도록 하자!!)) 조심하라, 주님의 주권 침범 말고 오히려 주님의 주권 아래에서 겸손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Q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 온 율법의 완성.. 즐겨 순종하기==Q의 사랑을사모하는자(주만바라볼찌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II: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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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님의 기쁨]

1.나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II: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II

2.겸손히 내 마음을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케 씻어 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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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주 음성 외에는]

(1)주 음성외에는 참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후렴: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아멘

(2)나 주꼐 왔으니 복 주시 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 이기네

(3)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때 늘 계시옵소서 

(4)그 귀한 언약을 이루어 주시고 주 명령 따를때 늘 계시옵소서

[주 안에 우린 하나]

II: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 가리

주님 우리 안에 함께 하시니 형제 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내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II

==== exuberant(풍부-충만-넘침!!) love and joy!!

방금 지극한 다함없는 사랑하는 마음의 말을 배웠네요

내사랑 , 그대를 지금 보고 있는데도 더 보고 싶고 사랑의 뭉클한 감동 가운데 있는데도 더 깊이 사랑하고픈 , 그냥 그대 두 뺨 집고 뽀뽀하고  부비부비해도 여전히 더 뽀뽀하고   부비부비하고 싶고 꼭 껴안아 주고싶은 마음...

그렇다면....정녕 그러하다면 지금 주님 사랑하고 믿고  감사하며 주만 앙망-동행함으로만 24시간 사는 거듭난 믿는 이에겐, (옛나는 죽고)  주님과 사랑에 빠져 있는, 주님께 대한 마음이 그렇다면.... 지극한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은.??.. 그 얼마나 더 살 떨리고 간지날 정도로  더욱 더 그러하실까요

[습3:17...*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네 가운데 계신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 구원을 베푸시는 강하신 분이시라. /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 즐거워하시며 / 자신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실 것이요 / 너를 두고 환호하시며 크게 기뻐하시리라.’..*17.The LORD thy God in the midst of thee is mighty; he will save, he will rejoice over thee with joy; he will rest in his love, he will joy over thee with singing---.“The Lord your God is in your midst, A Warrior who saves. 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joy; He will be quiet in His love [making no mention of your past sins], 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shouts of joy.]

[롬2:28,29.....*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 Q 소유됨의 표시이자 "일편단심 주님 소유 된 인생으로서, [또한 거듭난 나의 소유로 자신의 모든 것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Q] Q으로 평생 살리라"의 삶 결단 = 구주 영접함+붙좇음의 참된 믿음...이로써, <그리스도 예수,  포도나무 본체에 접붙임 받아 한 몸의 교통과 상호 교환으로 사는 산 가지>로 사랑-감사-믿음으로 앙망-주목-의뢰하며주 이름 부름-교통-동행 가능케 됨)는 마음(the heart..심령, 영의 양심)에 할지니(=새길지니) 영(the spirit)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8 왜냐하면 외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외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9 오직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할례는 마음에 있는 것이어서 영 안에는 있고 율법 조문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28.For he is not a Jew, which is one outwardly; neither is that circumcision,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29.But he is a Jew, which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that of the heart, in the spirit, and not in the letter; whose praise is not of men, but of God.--28 For he is not a [real] Jew who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true] circumcision something external and physical. 29 But he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true]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fulfillment of] the letter [of the Law]. Hi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겔36: 24-28.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좋은 땅이신 그리스도 예수, 곧 TUQ, 그분의 수복된 성전이 세워져 있는 곳, 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인 우주적 교회(이는 새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성으로 이어짐)]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생명 강의 강수, 말씀의 씻는 물이자 죄 사함(대속) + 부활의 새 생명 주는 보혈)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루아흐..거듭난 사람의 영)을 너희 속에 두고(거듭남= 사람의 영을 새롭게 함 = 영의 할례...성령의 내주하심 위한 새로운 지성소 <직관-양심-영교 기능 가진> 영을 조성) 새 마음(레브...속사람, 내부 인간, 영혼 = 심령<영의 양심> + 생각-정신<지성+감성>-의지)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돌같이)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십자가에서 죄-죄성-옛자아-의문의 율법이 함께 처리되었음을 기억하고 놜마다 선포하라...새자아의 의지는 그 선택을 통해 죄성까지도, 그리고 옛자아까지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전에 사탄 지배로 인해 완고하고 돌처럼 굳어 있어 주께 복종하지 않았던 타락한 육체가 또한 새롭게 되는 바, 주께 패배한 사탄 지배가 종식되고 해방되었고, 거듭난 바 새롭게 하신 마음의 지배를 받는, 구주 영접-믿음 통해 거듭난 바 새롭게 된 존재의 영은 마음을 통해 육체를 다스림의 창조 질서를 회복...그러므로 옛자아를 통해 악순환 야기하는, 주께 대해 돌같이 고집하며 반대하는 완고한 죄성(육)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성령과 하나 된 바  성령 따르는 거듭난 영혼의 [육체에 대한 통제력 완전히 회복된] 새자아에 순복하는 의의 병기로 새롭게 하신 몸을 드릴 것인가 선택 결정하라)  27 내 영(루아흐, 과정 거치신 그리스도, TUQ의 최종 완성이신 그 영, the Spirit)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리고 나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들여 너희 자신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5 내가 너희 위에 정결한 물을 뿌리리니, 너희가 정결해질 것이다.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온갖 우상으로부터 나는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내가 또한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며, 너희 육신에서 돌 같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고기 같은(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27 내가 너희 안에 나의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내 율례대로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들을 지켜 준행할 것이다. 28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 거주할 것이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24 For I will take you from among the heathen, and gather you out of all countries, and will bring you into your own land.  25 Then will I sprinkle clean water upon you, and ye shall be clean: from all your filthiness, and from all your idols, will I cleanse you. 26 A new heart also will I give you, and a new spirit will I put within you: and I will take away the stony heart out of your flesh, and I will give you an heart of flesh.  27 And I will put my spirit within you, and cause you to walk in my statutes, and ye shall keep my judgments, and do them.  28 And ye shall dwell in the land that I gave to your fathers; and ye sha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24 For I will [a]take you from the nations and gather you from all the countries and bring you into your own land. 25 Then I will sprinkle clean water on you, and you will be clean; I will cleanse you from all your uncleanness and from all your idols. 26 Moreover, 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within you, and I will remove the heart of stone from your flesh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27 I will put my Spirit within you and cause you to walk in My statutes, and you will keep My ordinances and do them. 28 You will live in the land that I gave to your fathers; and you wi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롬13:8,-10...*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8 [b]Owe nothing to anyone except to [c]love and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for he who [unselfishly] loves his neighbor has fulfilled the [essence of the] law [relating to one’s fellowman]. 9 The commandment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any other commandment are summed up in this statemen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10 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it never hurts anyone]. Therefore [unselfish]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마22:34-40...(가장 큰 계명)..*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4 Now when the Pharisees heard that He had silenced (muzzled) the Sadducees, they gathered together. 35 One of them, a lawyer [an expert in Mosaic Law], asked Jesus a question, to test Him: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37 And Jesus replied to him,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The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at is, unselfishly seek the best or higher good for others].’ 40 The whole Law and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depend on these two commandments.”]

[사1:18-20..(오라, 우리가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참 진리 이치로, 말씀을 따라, 잘 따져 판가름해 보자..올바른 회개와 죄 사함 위해)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아바..[먼저 Q의 사랑 받는 자로서의 확신 안에 머무르라]...원하고- 바라고-기도함으로, 사랑 겨워 기뻐 자원함으로 기꺼이]호흡 맞춤의 의미)순종하면 (그)땅의 (가장)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Let Us Reason”  *18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Says the Lord. “[a]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like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19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shall eat the best of the land; *20 But if you refuse and rebel, You shall be devoured by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갈2:20..*20.(날마다, 오늘도 선포하고 명심할 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죄의 종인 옛 자아)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거듭난 부활 생명의 새 자아, 새 영, 새 마음 가진)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그리스도의 종인 거듭난 새 자아인)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요15:5, 6.(([포도나무 본체에 붙어 있는 산 가지처럼 상호 교통/교환/신뢰/전적으로 의지함-그분의 모든 패러다임과 가치체계로만 적용하며 삶의] 붙좇는 = 거하는 믿음))..*5.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6.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히12:2..((바라보며 주목/앙망하며 순종/동행함 = [죄를 회개하고 구주로 영접하여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가 하나 된 이마다 거듭난 참 신자요 무궁한 사랑의 주께서 친히 그의 영에 내주하여 살고 계시니(엡3:17)] 인도하시며 이끄시는 주 예수를 온전히 믿음, 앙망-주목함, 친밀한 알아감 가운데  원하고 바라고 이름 불러 교통하며, 전적으로 거듭난 새 존재 중심을, 주께 맡겨드림으로 의지하며 순종-동행함))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엡3:16-20..*16...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요10:27-30..*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27 The sheep that are My own hear My voice and listen to M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28 And I give them eternal life, and they will never, ever [by any means] perish; and no one will ever snatch them out of My hand. 29 [i]My Father, who has given them to Me, is greater and mightier than all; and no one is able to snatch them out of the Father’s hand. 30 I and the Father are One [in essence and nature].”]
[요8:31, 32..43..*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1 So Jesus was saying to the Jews who had believed Him, “If you abide in My word [continually obeying My teachings and living in accordance with them, then] you are truly My disciples. *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2 And you will know the truth [regarding salvation],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from the penalty of sin].” ...*43.“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니라. 43 Why do you misunderstand what I am saying? It is because [your spiritual ears are deaf and] you are unable to hear [the truth of] My word.]
[계 2:11...*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 그대가 긍휼을 입은 그대로, 또한 다른 이에게 긍휼 베풀 기회 주시기를..., 어떻게 그들을 접촉하며 대하고 나눌지를 주께 먼저 여쭈어 접촉점과 그 시기를 구하며-무엇을(Q나라와 그 의) 어떻게 공급하기 원하시는지를 찾아 발견하고-주님 인도 하심 따라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려야 함.. <첫째, 무엇 주기를 원하시는지> 긍휼의 근원이신 주님 자신을 구하고-찾고-두드림으로써 안내자-인도자이신 성령 따라, <둘째, 어느 정도로, 어떻게 주어야 할 지> 그들에게 합당하도록 신중하게 분별함으로써 완급 조절하며, 가까이 나아가게 하심 따라 그들의 마음 문 두드리며, 오직 생명 원칙 따라 그 길 걷기를 배우라, 오직 주님으로 적셔지라

[고전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늘 그대 마음 중심이, Q의 영광 안에서 그 충만-완전까지 나타나신 바 되게) 하라....31 So then,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all to(to = toward = into = in + to) the glory of [our great] God.]

[마7:7, 8...*7. ○구하라(아이테오...ask..[보통은 물질적-물리적 생명인 비오스에 속한 것을 구한다는 의미]...일상적 필요를 약속 따라 공급해 주시도록.. ((**감히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약간 더 추구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Q나라와 Q의 의를 일상에서 "제테오" 하는 것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것...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Q나라와 Q의 의)자체이신 주님 자신을 온통 주시도록 "아이테오" 함으로써 누림이 옳다고 확신한다))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제테오...seek...[보통은 Q생명, 즉 영원한 생명, aionios zoe를] 찾고-세밀히 탐구하고 익혀 자기의 생명 삼음에 이르도록 추구하라/찾아낸 바 그대로 그대의 것으로 삼아 자연스럽고 숙달되게 하라, Q 나라와 그 의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크루오...knock....긍휼에 적셔지고 그가 인도하는 그대로 그분의 입과 손이 되어다가가서 접촉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받을 때까지 계속 깨어 기다리며!!]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아낼 때까지 계속!!]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열릴 때까지 계속!!..생명 문이시자 생명의 좁은 길이시요 진리-생명-빛이기에!!]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돌보아야 하되, 먼저 구함의 기도, [주여, 내게 먼저 길을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만일 길이 나타나 보여지지 않았다면  찾아야 한다....그럼에도 여전히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문을 두드려야 한다(이것은 그대가 찾는 이에게 그 사람 앞에 바짝 가까이 나아가 눈 높이를 깥이 하여 들여다 보며 경청함이다)....주님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충만케 하시며 영적 민감성을 더하사 주님의 뜻-계획-비전을 열어 보여 주실 주님을 찾기 위해 시간을 들여  머물러야 한다. 또한 다른이들을 접촉함에 있어서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그럴 때 문이 열릴 것이고 다른이들을 접촉하기 위한 바른 길이 주어질 것이며 우리의 접촉은 유익할 것이고 우리는 실수를 범하는 데서 구원 받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개들과 돼지들을 주의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추가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림에 대해 언급할 것이 있다... 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찾는 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간구하는 것이며 두드리는 것은 가장 가깝게 문에 다가서는 것이다 ((....7: 8절의 구하고 받는 것에 대한 문제는 왕국 백성이 왕국의 새 율법을 지키는 것에 관한 그들의 기도<먼저 Q나라와 Q의 의를 추구함에 대해 주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에 적용된다, 그들은 구하고 그것을 받을 것이다....찾고 찾아내는 것에 대한 문제는 마6 :33에 적용된다. 왕국 백성은 아버지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찾고 그것을 찾아 낼 것이다....두드리고 문이 열리는 것에 대한 문제는 마7:14에 적용된다. 좁은 문은 왕국 백성의 두드림으로 인해 그들에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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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테오[요구하다, 욕망하다]의 "구함"은 [물질적-물리적 생명인 비오스]에 대한, 일상적 필요를 따라 구함이다....비오스에 대한 염려를 내려 놓은 사람이 마땅히 구할 바는 비오스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생명인 조에(Q 생명, 영원한 생명인 aionios zoe)로서 이것을 구함의 단어는 제테오[ 세밀하게 탐구하다- 찾다- 추구하다]이다.

[마6: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제테오...목표는 오직 주님과 그분의 나라, 그분의 의, 곧 아버지께서 주시려는 그 나라...세밀히 (주께 여쭈며) 참되게 분별-탐구하여 찾고, 찾은 바 그대로 추구하여 경험하여 체득하고 누리라..seek, pursue)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의식주에 관한 일상적 필요를...즉, 이 세상 삶의 모든 필요를....그러므로, 반드시 분별할 필요가 있는 것은 [나라 위한 중보 기도]는 마땅한 순서는 Q 나라와 Q의 의를 이룸 위한 중보/중재 다음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Q은, 그분을 찾고 구하며 기도하는 자의 마음의 근본 동기를 참되게 아시며 그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시는 분임을 유의하라..우선 순위를 결코 바꾸지 말라!!) 너희에게 더하시리라...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눅12:29, 30...*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29.And seek not ye what ye shall eat, or what ye shall drink, neither be ye of doubtful mind.  *30.For all these things do the nations of the world seek after: and your Father knoweth that ye have need of these things. *31.But rather seek ye the kingdom of God;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32.Fear not, little flock; for it is your Father's good pleasure to give you the kingdom.]

[렘33:1-3...*1.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1.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Jeremiah the second time, while he was still confined in the court of the guard, saying,  *2."Thus says the LORD who made the earth, the LORD who formed it to establish it, the LORD is His name,  *3.'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I will tell you great and mighty things, which you do not know.']

[요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supreme and sovereign] God, and [in the same manner know] Jesus [as the] Christ whom You have sent.]

[눅17:20, 21...*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0 Now having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He replied, “The kingdom of God is not coming with signs to be observed or with a visible display; 21 nor will people say, ‘Look! Here it is!’ or, ‘There it is!’ For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because of My presence].”] 

[롬14:17...*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what one likes], but of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갈5:22-26...22. ((생명 원칙은, 사람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하며 추구하는, 곧 주리고 목말라 갈망하며 찾아 먹고 마시는] 그것으로 조성되며, 바로 먹고 소화분해흡수한 먹거리에서 얻는 바 그 양분이 에너지로 바뀌어 산다는 것!!))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그러나 그 영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인자와 선함과 신실함과.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long-suffering,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2 But the fruit of the Spirit [the result of His presence within us] is love [unselfish concern for others], joy, [inner] peace, patience [not the ability to wait, but how we act while waiting],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온유와 자제이니, 이런 것들을 반대할 율법이 없습니다. Meek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23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But they who are of Christ Jesus have crucified the flesh with its passions and its lusts.) 24 And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crucified the [l]sinful nature together with its passions and appetites.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주님의 상의 떡과 포도주로 표상된 바로 그 성령을, 말씀을  먹고 마신 바 그 생명을 전 존재의 근원적 활동력 삼아 기도와 찬송으로 호흡하고 섬김으로써 산다고 여기며 고백한다면) 또한 (육신, 곧 죄성과 세상에서 돌아섬으로 처리하고, 바로 그렇게 그 고백이 신실과 참 되도록)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가 그 영을 따라 산다면, 또한 그 영을 따라 행합시다. If we live by(and in) the Spirit, let us also walk by(and in) the Spirit.)  25 If we [claim to] live by (and in) the [Holy] Spirit, we must also walk by(and in) the Spirit [with personal integrity, godly character, and moral courage—our conduct empowered by(and in) the Holy Spirit].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헛된 영광을 구하려고 서로 다투거나 서로 시샘하지 맙시다.Let us not become vainglorious, provoking one another, envying one another.) 26 We must not become conceited, challenging or provoking one another, envying one another.].....모든 차원과 영역의 창조주-주관자 그리스도, 곧 TUQ이신 그 영의 충만-인도-이끄심 따라 주 이름 부름으로 주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공급 받으며 (코람 데오-솔라 피데-솔라 스크립투라-솔라 크리스토스-솔리 데오 글로리아 이루심) 녹아 든 하나 됨(mingle)으로 변형-일치-동행-교통의 생명 삶을 매 순간 영위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새 예루살렘, 곧 몸의 생활로 확장하여) 누린다 함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가장 먼저 최우선 선결 요건은 듣고 믿고 구주 영접함으로써 거듭남의 생명 얻음이요, 그 다음에라야 그분을 살 수 있게 됨...그분의 주 되심 인정하고 그분을 의지함으로써 (육체따라 세상 지향함의 곁길로 새지 않고) 바로 그분을 실지로 살고 있다 주장한다면] 또한 [바로 그렇게 언행일치로 나타낼 바!!, 실지로 인도하시는 그분과 함께, 그분 따라, 그분 향해서, 시종일관 일편단심으로, 일생동안 중단 없이 그분을 호흡함으로써 하나되어 계셔서 인도하시는]성령으로 행할지니(스토이케오 : 기본 원칙 삼아  살아 온 그대로, 그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잘 훈련된, 통제되고 정렬 상태의 흐트러짐 없는 질서정연한 군대 행진)

.... 거듭남 안에서 Q의 아들로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는 밖으로는 Q의 형상과 모양, 안으로는 Q의 생명과 성품을 가진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Q의 아들들로 거듭나게 하셨다.

.... Q의 경륜 안에 있는 Q의 목표는 거듭난 믿는이마다 새 창조를 살도록 함, 곧 새 창조의 삶의 기본 원칙은 TUQ과 하나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함인데, 범사에 거듭난 우리 안으로 넣어주신 Q의 생명-성품-성분-요소를 공급하시는 그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을 통해서 Q의 아들의 명분을 완성함에 있으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함의 분량의 충만에 이르는 교회, 곧 한 새사람-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전사를 이루고 계신다.


롬1장 ...[515눈을들어하늘보라] 눈을들어영광의왕을보라, 내눈주의영광을보네.괴로울때주님의얼굴보라.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바울은 사도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Q의 아들 JC에 관한 복음]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참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본래 [신성만 가지셨던] Q의 독생하신 아들께서 두 가지 과정을 거치셨다 *1)성육신을 통해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육신과 사람의 본성을 가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심으로써 (Q 아들 됨을 내려 놓으셨음 = 육신 안에 Q의 아들 됨, 곧 그분의 신성은 <마치 동면상태의 씨앗처럼> 감취어졌음) 육신, 즉 참 인성을 얻으셨고[이로 인해 Q을 우리에게 이끌어 오시고] *2)죽음과 부활을 거쳐서 (부활 안에서 사람의 본성, 즉 인성의 부분을 거룩하게 하시고 위로 올리사 거룩하게 변화시키셨으며(transformation-santification), 바로 이렇게 변화된 인성을 지금도 가지고 계시며) 부활 능력으로 [그 안에 감취었던 Q이 아들 됨의 능력이 <깨어나 발휘되어> 나타남으로써, 다시 태어나신...행13:33, 히1:5] Q의 아들로<본래 가지셨던 신성에 참 인성을 획득하심> 인정-선포되셨다[그분을 믿는 우리를 Q께로 이끄셨다].....[요12:2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피 흘림 있어야만 죄 사함을 이루는...히9:22> 구속 역사 이룸 위해 육신을 입으셔야만 했다. 그러나 구속만이 Q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고(이 구속을 위해 세상 죄 지고 가는 Q의 어린 양으로 비유되셨다..요1:29) 그분의 구속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얻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보라, 생명 주는 비둘기가 그분과 함께 하였다..요1:32-33)...따라서 그리스도의 과정의 첫단계는 구속을 위한 것이었으며, 둘째 단계는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이제 그분을 믿는 우리 속에는 우리의 생명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있다. Q의 아들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 되신다. Q의 이들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이 있다.*요일5:12)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헤세드(인자하심 ::: Q의 자비-긍휼-은혜,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Q의 <다함 없고 무한한> 언약적 사랑....낳으신 자녀를 불쌍히 여기사, 애타하심으로 친히 손 내밀어 도와 일으켜,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을 받아 <은혜 위에 은혜로> 누리도록 회복시키시고, 아들 JC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게 하심) ......보라, 복음 듣고 회개하여 구주 믿고 거듭남의 구원, 그 은혜(카리스) 받아 누림 인해 참되게 그 가치를 알고 내주하시 하나 되어 주관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며 감격-감사하는(카라) 자마다, 이제 그분의 제자요 증거자 됨의 영적 은사(카리스마) 받고 주께서 인도하고 이끄시는 곳, 곧 보내시는 곳에 영적 직분자로서 나아간다.

......은혜, 우리의 누림 위해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의 모든 것 되신  CJ안에 계시는Q !!..은혜의 결과는 [환경-상황-형편-처지에 굴하지 않는, 견고한 평화와 안전, 곧]평강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분 자체요, 그분의 생명이요 인격(어떠하심) 그자체이다!!..그분을 믿고 하나 되어 "주 예수" 이름 부르는 모든 자에게, Q은 <그 이름을 부르는 이에게 극도의 최선이 되도록>그분 영광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아낌 없이 부어주고 계신다....믿어 들어가 그분을 거듭난 존재인 그의 생명 삼고 상호 붗좇음-상호 거함-상호 소유/기업 됨-상호교통의, 결합한 하나 됨의 믿음의 실제를 참되게 체득하게 되며, 여기에서 진정 알아 가게 되는, 그의 참 생명 되신 그분의 어떠하심, 그 친절하심, 다함없는 선하심과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는  이마다 사랑에 빠져 감격-감사케 되어 저절로 삶의 주도권을 그분께 맡겨드리고 사랑 겨운 순종으로(완전히 주인-주님-신랑-머리 되심을 인정하며) 매걸음마다 인도하며 이끄시는 그분과 동행하게 됨으로써 그분의 장성하신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판박이가 되어가며, 그분의 바라시는대로 그 행복 안으로 다른이들을 초청하며 증거함의 증거자요, 몸의 지체로서 함께 살기를 실행한다..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에게 모든 것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Q)와 평강(=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내적 안식-위로-만족)이 있기를 원하노라

.....복음 전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3대 요건은 "그대의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 열심으로" --전파하는 그대 자신이 먼저 보혈로 씻김 받고, 정말 주께서 말하게 하고 계신 바 그 복음을[이는 그 자체가 존귀하고 보배롭고 사랑스러우신 CJ시니] 확신하며 감동 받음으로 자신의 구원에 대해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림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다지 다른 이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복음은 부르심을 입은 자(부르심 받고 Q자신이 아닌 모든 것들에서 나옴)와 믿는(=<자신을 청산하고 완전히 Q을 신뢰함의 그 신뢰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음, 즉> 예수님 안으로 믿어 들어가 그분과 하나 됨) 자들에 의해 영접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하심 따라 주께서 정하신 때에 [일어나 함께 가자] 부르심 받은 자, 불러내심 받은 자"마다 "믿는다" = 주관적으로 철저히, 절대적으로 믿어 들어가 (주 예수님을) 그대의 유일무이한 생명 삼고 그분과 상호 붙좇는 믿음으로 (결혼한 하나 됨 = 포도나무와 붙어 있는 산 가지....<전적으로 무지무각-무능무력한, Nothing-Nobody그 자체인> 자기를 청산하고 내어드림<자기 부인-자기 십자가 짐>+그분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공급받음...."믿어 들어가는 순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분 속으로 들어가는 나의 믿음으로 모두 끝났읍니다") 그분과 붙어 하나되어 동행함으로써 그분을 배우고 머리이신 그분에게까지 자라남...believe in = be life into...거듭난 자로되, 그 무엇이라도 먼저 앞서지 않고 주님이 인도하고 이끄시며 행하시는 그대로 붙좇아 따라감, 그 때 접촉하는 바, 영광스럽고도 지극히 친절-온유-겸손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주체할 수 없이 그냥 사랑에 빠져들게 됨)....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믿음의 순종으로 Q의 복음을 영접한다(1:5)....이 은혜시대에 이르러 Q께서 우리에게 주신 바 유일한 최우선하는 계명은 [예수님을 믿으라]이다!!...Q은 우리에게 이 계명 외에 그 어떤 계명도 지키기를 요구하ㅓ지 않으신다...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며,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를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정죄 받은 것이다.(요3:18)....오늘도 "예수님을 믿으라"는 유일한 절대적 계명이 있으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일한 죄가 있다.

......[갈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나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힘 통해 끝났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죽습니다...나는 내 구원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 나의 모든 것 되신 그분께서 이미 모든 것 해 주셨고 앞으로도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1:21..이제 내게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십니다... 빌1:29, 30.내게는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이 내게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해 그러합니다..]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그의 영은 이미 그의 영에 내주하여 계시며 그의 전 존재에 충만히 채우신 주 그리스도의 영이 증거하도록 주도하며 이끄시는 바 "예수 복음"으로 충만 점유 되어있음을 나타낸다!!) 내 심령으로(with my spirit..거듭난 영은 그가 섬기는 HS과 완전히 하나 되어 따르고 있기에 영에로 생각을 돌이킴은 곧 주 성령께 돌이켜 하나 됨이니, 주께서 친히 그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시며 기도하시도록 해 드림이다)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너희를 말하며

.....[요4: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 But the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 Father is seeking such to worship Him. 24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바울은 지금, 영 이외의 것들, 곧 (문자화 된 율법을 그대로 준행함으로 의롭다 함 얻는다는 패러다임따라) 율법의 의문-형식-교리에만 집착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있기에, 바울은 "나는 (구주 믿고 거듭난) 나의 영 안에서 Q을 섬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불신자에게, 또는 믿는자에게).복음 전하는 말씀전파자는 오직 그의 영과 하나 된 성령의 감동과 인도-움직이심-일하심따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즉 생명 주는 영이 거하시는 거듭난 영의 심령(=양심)의 정결함으로 말하여야 하고, [오직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살아 생동하심으로 인해 친히 전파자의 입술 통해 말씀하시도록!! ..진정한 참된 할례는 마음의 영에 있는 바...롬2:29] 영의 새로움(롬7:6) 안에서 ("성령 안에서"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음을 주의하라!!) [불타는...롬12:11] 영 안에서, 섬김이 중요하다....왜냐하면  영 이외의 것들, 즉 의문-형식-교리에 집착하는 옛생명, 곧 타락한 혼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참되게 믿는이의 거듭난 영이 그토록 중요하기에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람의 영에 대해 11번 말한다.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Q의 뜻, 그분 뜻 이룸 위한 Q의 미리 안배하심을 항상 최선으로 여겨 겸손히 신뢰하고 있음)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spititual gift, 은혜의 나타남)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impart upon=share with) 너희를 견고하게(establish)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영적 열매, 곧 성령의 열매...은혜의 나타남인 은사는 믿음의 상호 교통 통해 나눔-분배-전이 가능한 영적 선물로서,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강화-상호 격려/안위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함)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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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 아멘, 또는 알렙-멤-눈..아(에)무나...알렙-멤-바브(중)-눈-헤이.. = [ 뜻/의도-계획/작정 그대로....창조-만드시며-지으신바 그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과 참이신) 진리 말씀...그대로 이루니라-그대로 되니라....하신 그대로!!, 이미 다 이루셨으되!!, 한정된 시간 차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과정 가운데  친히 이루고/되어가게 하고 계시는바!!, 바로 그 영존/영생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생명-진리의 확장을 믿음이라 정의함... *민... 멤-눈.. = 만나 *임<목양/양육 = 알렙-멤 = 임>

@@차디크<의인>....체데-달렛-요드-코프...((하나님과 연합한 하나되어 영을 사는자로서...호흡마다 구별된/열린 마음의 교통 통해 Q을 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여기에 더하여 형제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이해하고!! [Q의 지혜를 따라 내어줌으로써] 돕는자 ..--예수는 그 기름부음따라서만 살았음 = Q의 움직이심 따라서만 살았음 ----

@@믿음은 들음<샤마...듣고 중심으로 아멘....함 통해 순종/청종-사랑의 동행>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야도, 요드-달렛-요드...지도/양육/목양하는위임의, 기름부음의 말씀> 말미암느니라..<롬10:17> .**Q 말씀 출입 = (영으로 깨닫게 하심따라 지도/보살핌/격려/훈도!!)...야도 = 위임-안수-자격부여 = 다바르(레마의, 기름부음의 말씀)  알렙-멤 = 임....말씀으로 양육함  <고전 13:14..믿음<아멘...알렙-멤-눈>에서 소망<카와/카베..코프-바브-헤이...(진리 말씀 들은바) 기대/희망>이 생기며, (믿음-소망은 내적 요소) 소망으로부터 사랑<아헤브..알렙-헤이-베이트....사랑이 싹트게 됨/자람/넘침> 행동하는 사랑이 표현/발출되어 나옴 <골1:4>  성도 = 카도쉼<코프-달렛-쉰-요드-멤>  :: 예수에 대해 들은바<아젠 ..알렙-자인-눈...안에서 싹트고 자라고 합당한 열매맺음...욥42:5> (직접 뵐)기대/소망 가지고 싹튼바 (직접 뵌바/또는 뵐 소망 가지고) 사랑을 발출하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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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בְּשׂוֹרָה”(베쇼라) --성전에 계신 Q께서 부어주신바 인격이 되신 영적 실제

מה נאוו על הרים רגלי מבשר משמיע שלום מבשר טוב משמיע ישועה אמר לציון מלך אלהיך 

.(마-나우 알 헤하림 라글레 메밧세르 미쉬아 샬롬 베 밧세르 토브 미쉬아 예슈아 오멜 레치욘 말라크 엘로하이크)

...[사52:7] 이사야 52:7 ..“좋은 소식(מְבַשֵּׂר טוֹב)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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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멤-헤이> : 진리말씀의 실제 **나우<눈-알렙-바브-바브(중)>..확장되는 생명 하나님의 변화-영의 변화 **알-헤하림<아인-라멛, 헤이-헤이-레이시-요드-멤->분배하신바 가르침-영이신분의 영의 사역으로 완성된 그영으로 사역하신바 그릇 **라글레<레이시-김멜-라멛-요드>영이신분께서 성령으로 사역하산타난 가르침, 그 사역하심 **메밧세르<멤-베이트-쉰-레이시>진리말씀 거처께서 부어주심 인해 영을 나타내심 **마쉬미아<멤-쉰-멤-요드-아인>메시아/기름부음(그 안에 진리말씀 품으신) **샬롬<쉰-라멛-바브(상)-멤>부어주시며가르치심으로써 인격의 거처 만드심 =샬롬  **토브<테이트-바브(상)-베이트>지혜가 인격 되어 거하심 **예슈아<요드-쉰-바브(중)-헤이>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으로써 부어주심으로써 영의 변화가 나타난 실제 *오멜<아마르..알렙-멤-레이시>아버지-말씀-영의 나타남 **레치욘<라멛-체데-요드-바브(상)-눈>가르치심 인해 의;의사역으로 인격화 된 영의 확장 **말라크<멤-라멛-코프>..왕..진리Q께서 가르치심으로써 이루시고 나타낸바 됨 **엘로하이크<알렙-라멛-헤이-요드-코프> 하나님(엘로하이)께서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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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말씀의 실제 ... 확장되는 생명 하나님의 변화-영의 변화 ... 분배하신바 가르침-영이신 분의 영의 사역으로 완성된 그영으로 사역하신바 그릇(이라)  ... 진리말씀 거처께서 부어주심 인해 영을 나타내심 ... 메시아/기름부음(그 안에 진리말씀 품으신) ...부어주시며 가르치심으로써 인격의 거처 만드심(인바) ... 지혜가 인격 되어 거하심 ... (이는)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으로써 부어주심으로써 영의 변화가 나타난 실제 ... 아버지-말씀-영의 나타남(이니) ...가르치심 인해 의;의사역으로 인격화 된 영의 확장(이루시는바) ... 왕..진리Q께서 가르치심으로써 이루시고 나타낸바 됨 ... 하나님(엘로하이)께서 이루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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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2: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הנה עפלה לא ישרה נפשו בו וצדיק באמונתו יחיה׃  [힌네...] [우펠라...아팔] [로] [야쉬라...야사르] [나프쇼...네페쉬] [보] [베-차디크...체데크] [베-에무나토....에무나] [이흐예 ..여호와/야웨]  --- [보라, 뜻하신바 하나님이 여기 계시도다,,그의 뜻 보이시리니 참생명 삶이란] 분배하심대로 입을 열어 말씀하심따라 새겨지는것이니, 가르치심의 하나님.. (그분이야말로) 사역하심으로써 부어주시는바 영의 실제라,   참생명말씀으로 입을 열어 부어주사 변화시키심으로써 임하시나니.. 하나로 연합한 영의 사역하심따라 이루어진자(의인)은 그 거하는 바 믿음<아만-에메트-에무나...여호와를 믿음/여호와의 믿음>으로 온전케 되어 부활생명 여호와를 호흡하며 살도다..

......복음에는 [이미 항상 그 자리에 있으나 예전엔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Q의 의가 [그대가 믿어들어감으로 인해 <주님의 자극 따라> 분발-발휘되는 믿음으로 보는 영적 시력이 주어지는 순간 눈 앞에 환히 볼 수 있게 펼쳐져] 나타나서, (복음 안에서 그 복음을) 믿음에서 (더 나아가)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그 목적은 의인으로 하여금 그의 믿음으로 얻는 바 그 생명으로 살도록 하려 함이다. ((<산다live>는 헬라어 단어는 산다, 생명을 얻는다의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번역함이 옳다)) ...[합2:4하....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in the true God]. [갈3:11하..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for,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눅15장의 두 아들의 비유 중 1장18-32절은 탕자의 상태를, 2장은 큰 아들의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정죄 가운데 나타난 악의 근원 4 방면들::: 

*1>일반적인 사람들 (1:18-32) *2>특별히 스스로 의로운 사람들(2;1-16) *3>특정한 종교인들(2:17-3:8)  *4>모든 사람을 통틀어서(3:9-20) 

.....[만연된 죄악상의 밑바탕, 그 전개]

*1>불의로 진리를 막음 =진리는 실제요, 최고 근원 실제는 하나님이심, 곧 조물주를 무시하고 받아들이기를 거절함(=불의로 진리를 막음) =>이로 인해 지구촌 전역 각 나라에 죄악상이 만연-가득해짐 

*2>그들의 지식에 (지식 근원자이신 Q....그 어떤 지식도 먼저 근원자 Q의 조명과 열어주심 없이는 Q뜻 따라 참되고 바르게 추구하고 사용할 수 없다) Q 두기를 싫어함 :: 이것은 결국 근원적 진리이자 지식의 근거 상실을 초래(불가지론자의 오만[오만+소홀, 만홀히 여김]의 극치)...제멋대로 얻은 지식을 오남용-악용에로 이어져서 상호 학대-자멸-공멸에 이르는 결과를 낳게 됨 

*3>지고지선의 진복, 영생복락 허락하시는 Q을 합당하게 섬김으로써 영화롭게도, 감사-경배하지도 섬기지도 않음 ::: 이로 인해 그 정반대로 모든 악덕/생명 경시/성질 부림-부도덕/불륜-이혼/낙태 촉발케 됨 ----공동체 혼란 붕괴 현상.

*4>지고지선-영생구원복락의 진복, 절대 표준 되시는 Q을 우상(허망한 거짓-속임수)으로 대치. :: 보이는 우상에는 경배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찰나적인  개인의 영달과 자랑을 갈망케 함 통해 (결국,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에 빠져듦) 장래-지위/계급-목적 등 사익 추구, 독점 위해 그들끼리 만든 아성((보이지 않는 유리벽 같은 상대적 경쟁 우위 고착화 체계)) 우상을 만들어내어 Q을 대치케 함.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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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1 Amplified Bible

==The Gospel Exalted

*1. Paul, a [a]bond-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as an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set apart for [preaching] the [b]gospel of God [the good news of salvation], 

*2. which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sacred Scriptures— 

*3. [the good news] regarding His Son, who, as to the flesh [His human nature], was born a descendant of David [to fulfill the covenant promises], 

*4. and [as to His divine nature]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was openly designated to be the Son of God with power [in a triumphant and miraculous way]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Jesus Christ our Lord. 

*5. It is through Him that we have received grace and [our] apostleship to promote obedience to the faith and make disciples for His name’s sake among all the Gentiles, 

*6. and you also are among those who are called of Jesus Christ to belong to Him;

*7. [I am writing] to all who are beloved of God in Rome, called to be saints (God’s people) and set apart for a sanctified life, [that is, set apart for God and His purpose]: Grace to you and peace [inner calm and spiritual well-being] from God our Father and from the Lord Jesus Christ.

*8. First, I thank my God through Jesus Christ for all of you, because your faith [your trust and confidence in His power, wisdom, and goodness] is being proclaimed in all the world. 

*9. For God, whom I serve with my spirit by preaching the gospel of His Son, is my witness as to how continuously I mention you 

*10. in my prayers; always pleading that somehow, by God’s will, I may now at last come to you. 

*11. For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share with you some spiritual gift, to strengthen and establish you; 

*12. that is, that we may be mutually encouraged and comforted by each other’s faith, both yours and mine. 

*13. 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c]brothers and sisters, that many times I have planned to come to you, (and have been prevented so far) so that I may have some fruit [of my labors] among you, even as I have among the rest of the Gentiles. 

*14. I have a duty to perform and a debt to pay both to Greeks and to barbarians [the cultured and the uncultured], both to the wise and to the foolish. 

*15. So, for my part, I am ready and eager to preach the gospel also to you who are in Rome.

*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for it i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from His wrath and punishment] to everyone who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17. For in the gospel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both springing from faith and leading to faith [disclosed in a way that awakens more faith].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The just and upright shall live by faith.”

==Unbelief and Its Consequences

*18. For [God does not overlook sin and]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in their wickedness suppress and stifle the truth, 

*19. because that which is known about God is evident within them [in their inner consciousness], for God made it evident to them. 

*20. For eve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His invisible attributes, 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 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through His workmanship [all His creation, the wonderful things that He has made], so that they [who fail to believe and trust in Him] are without excuse and without defense. 

*21. For even though [d]they knew God [as the Creator], they did not [e]honor Him as God or give thanks [for His wondrous creation]. On the contrary, they became worthless in their thinking [godless, with pointless reasonings, and silly speculations], and their foolish heart was darkened. 2

*22. Claiming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23. and exchanged the glory and majesty and excellence of the immortal God for [f]an image [worthless idols] in the shape of mortal man and birds and four-footed animals and reptiles.

*24. Therefore God gave them over in the lusts of their own hearts to [sexual] impurity, so that their bodies would be dishonored among them [abandoning them to the degrading power of sin],  

*25. because [by choice] they exchanged the truth of God for a lie, and worshiped and served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who is blessed forever! Amen.

*26. For this reason God gave them over to degrading and vile passions; for their women exchanged the natural function for that which is unnatural [a function contrary to nature], 

*27.; and in the same way also the men turned away from the natural function of the woman and were consumed with their desire toward one another, men with men committing shameful acts and in return receiving in their own bodies the inevitable and appropriate penalty for their wrongdoing.

*28. And since they did not see fit to acknowledge God or consider Him worth knowing [as their Creator],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things which are improper and repulsive, 

*29. until they were filled (permeated, saturated) with every kind of unrighteousness, wickedness, greed, evil;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malice and mean-spiritedness. They are gossips [spreading rumors], 

*30. slanderers, haters of God, insolent, arrogant, boastful, inventors [of new forms] of evil, disobedient and disrespectful to parents, 

*31. without understanding, untrustworthy, unloving, unmerciful [without pity].  

*32. Although they know God’s righteous decree and His judgment,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deserve death, yet they not only do them, but they even [enthusiastically] approve and tolerate others who practice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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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개요)

본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Ⅰ. 전체 서신의 서론과 소개(1-16).

Ⅱ. 이방인들의 비참한 상태, 

그리고 여기서 시작되는 이 신청의 교리의 입증이(17-32) 제시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통상 편지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여기에는 아주 탁월하고 훌륭한 표현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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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로 임명 받음(롬 1:1-7)

이 항목에는 다음 네 가지 내용이 들어 있다.

Ⅰ.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다. 

그는 유대 율법 교사 곧 "랍비"로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시중을 드는 몸종으로서의 칭호를 영광으로 알고 즐거워하고 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여기서 그는 "부름 받은 자, 수소문 받은 자" 하는 뜻이 담겨진 자기 본명 사울을 가리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도로 삼으려고 찾으셨기 때문이다(행 9:15). 

그는 자기의 권위를 이 소명에 두고 있다. 곧 거짓 사도들처럼 보냄을 받지도 않았는데 돌아 다니는 그가 아니었다. 

‘클레토스 아포스톨로스’ - 즉 "한 사도로 부름을 받다." 

물론 자신은 이렇게 불러줄 만한 자격이 없다고 겸손해 했지만 그는 이게 바로 자기 이름인 것처럼 즐겨 사용하고 있다(고전 15:9).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리새인들의 이름에는 구별된다는 뜻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율법 연구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즉 율법을 위해 구별된 자들(아포리스메노이 에이스 톤 노몬)이라고 불러도 좋았을 것이다. 

물론 바울도 전에는 이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갈 1:15), "그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성령의 직접 지시로 안수를 받고(행 13:2, 3) 자신을 이 일에 몰두함으로써 연구제목이 바뀌어 복음을 위해 구별된 자(아포리스메노스 에이스 유앙게리온)  곧 복음 바리새인이 되었다. 

그는 철두철미 하나님의 복음에 몰두한 사람이었으며 이 복음은 하나님을 그 저자로 삼고 있으므로 그 기원과 내력은 신성하고 신의 인도로 된 것이다.

Ⅱ. 하나님의 복음을 언급해 높고 이에 대한 찬사를 덧붙이고 있다.

1. 복음의 역사성. 

이것은 "미리 약속되어져 " 있던 것(2절)이다.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기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구약의 여러 약속과 예언에 담겨져 있던 것이요 이 구약으로 말하자면 한 가지로 입을 모아 의의 태양을 맞아들이는 아침 햇살이 되는 복음을 두고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그저 구전으로서가 아니라 문헌으로 남아 내려 오고 있다.

2. 복음의 주제. 물론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3절, 4절). 

선지자들과 사도들 모두가 그분을 두고 증거하고 있으니 그분이야말로 성경이라는 밭에 숨겨진 귀한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게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는 식으로 온 명칭과 칭호를 다 동원하는 점이다. 

얼마나 좋아서 부르는 이름인가! 그리고 그는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에 맞는 사랑과 존귀를 그 이름에 빼놓지 않고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 인격에 두 가지 구별된 성품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그리스도의 인성.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3절) 

곧 요셉과 마찬가지로(눅 2:4) 다윗의 집안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말이다(눅 1:27). 

여기에 특별히 다윗의 이름이 언급되는 이유는 메시야, 그 중에도 특별히 그의 왕의 직분을 두고 그에게 미리 약속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삼하 7:12; 시 132:11; 눅 1:32, 33).

(2)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4절) 

곧 그는 영원 전부터, 아니 여기서 말하는 대로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육신으로는," 곧 인성은 "다윗의 자손"이었으나 "성결의 영으로는," 곧 신성은("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하는 말대로, 벧전 3:18; 고후 13:4 와 비교해 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는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에 있으니 이거야말로 결정적이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지자 요나의 표적을 들어 설명한 것은 최종적인 확신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마 12:39, 40) 이것도 못 믿는 사람은 천하없어도 아무 것도 못 믿을 사람이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 있는 두 성품을 얘기하고 있다.

3. 복음의 열매(5절). 

"그로 말미암아" 

곧 복음을 통해 들어나게 되고 알려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바울과 나머지 사역자들)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다시 말해 은혜로 사도가 되었다는 얘기다(엡 3:8). 사도들로 말하면 이들은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어 천신만고의 위태로운 생활을 하던 곧 "종일 죽임을 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 사도직을 은혜로 돌리며 반가워하고 잇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움과 위험이 수반되더라도 거기에 쓰여지는 걸 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 

이 사도직이 주어진 것은 "믿어 순종케" 하려는 데 있었다. 곧 사람들을 순종의 자리로 이끄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들이 받은 것은 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11:13) "모든 이방인" 가운데 이 순종을 낳게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여기 나타난 "믿어 순종"이라는 기독교 신앙 고백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어설픈 지식이나 제멋대로의 동의 또는 맹랑한 탁상공론에 있지 않고 오로지 이 순종에 달려 있다. 

이 "믿어 순종"이야말로 "믿음의 법"(3:27)에 대한 해답이다. 이 믿음의 행위는 곧 계시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지의 순종으로 나타난다. 

율법의 행위와 무관한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왈가왈부를 예상한 나머지 그는 기독교 정신을 이 순종이라는 한 마디로 못밖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멍에를 메고 계신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6절), 여러분 로마인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여러분보다 못한 명성과 재물을 가진 다른 이방인과 동일한 입장에 놓여 있다. 곧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복음의 구원은 만민 구원이다(유 3). 하나님에게는 사람의 겉 모양이 따로 없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곧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그리고 오직 이 사람들만이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Ⅲ. 이 편지의 수신인(7절)은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이다. 

로마에 있는 유대계 신자건 이방인 신자건, 높은 자건 낮은 자건, 매인 자건 자유로운 자건, 배운 자건 못 배운 자건 신앙을 고백하는 모두에게 띄워 보내는 편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다 하나로 만나기 마련이다. 

여기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1. 그리스도인의 특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있다. 

우리 모두는 이 사랑을 받고 있는 몸의 한 지체요 기뻐하는 자들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할 때 그의 풍성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얘기하는데 온 인류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과 참 신자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나눠 얘기할 수도 있다. 

지상에 보이는 신자들의 모든 교회에 대한 사랑은 이 중간에 온다고 말할 수 있겠다.

2. 그리스도인의 의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이다. 

성화를 통한 구원에로 부름을 받았다는 얘기다. ‘클레토이스 하기오스’(1:7) - 즉 "성자로 부름심을 입었다. 곧 글자 그대로 성자여야 한다. 

성자로 부름 받은 모든 자들이 고스란히 성자 그대로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성도로 부름 받은 자는 모름지기 이 이름대로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존귀와 특권이라고는 해도 마지막 큰 날에 가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Ⅳ. 사도의 축복(7절).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그의 서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용어로서 여기에는 본인의 너그러운 마음과 축복에 대한 권위가 담겨 있다. 

율법 시대의 제사장들이 백성을 축복하기로 되어 있듯이 복음의 사역자들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마찬가지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몇 가지를 간추려 생각해보자.

1. 은총의 기원. 

구약에서는 보통 "너희에게 평강이 있기를" 하는 식이었으나 이제 여기에는 은혜가 선행하고 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향하는 하나님의 은총 곧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로서 양자가 모두 참된 평화에 필요 불가결한 것들이다. 

모든 복음의 축복은 "은혜와 평강"이라는 이 두 마디에 담겨 있다. 

"평화" 곧 하나님과 평화, 우리 마음에 평화,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이웃과 평화, 이보다 더한 게 따로 있겠는가.

2. 이 은총의 근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모든 선한 것은

(1) 아버지로의 하나님에게서 온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소원과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는 입장에 서고 있는데 우리가 은혜와 평강을 얻고저 할 경우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한 모든 선한 것은

(2) 중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곧 이 모든 축복의 전달자요 관리인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의 충만한 가운데서 얻고 있으니 곧 그의 공로의 충만 가운데서 평화를, 그의 영의 충만 가운데서 은혜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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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우들에 대한 바울의 열정(롬 1:8-15)

Ⅰ. 그들에 대한 감사(8절). 

"첫째는 내가……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모든 일의 시작을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곧 모든 노래의 "알파와 오메가"를 하나님 찬양으로 삼아 만사에 감사를 드리는 게 마땅하다

- "나의 하나님," 

그는 기쁨과 승리에 젖어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감사에 있어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그분은 계약상 나의 것"이요 하고 말할 수 있으며 그의 자비 또한 우리의 것으로 만끽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임무와 행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찬송과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우정을 표시할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친구들에게서 얻는 모든 위로를 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피조물이 우리와 갖는 관계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들 로마 교우들 대다수는 바울과 직접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그들의 덕행을 두고 이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서너 명의 로마 교우들이 자기를 마중 나왔을 때(행 28:15)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일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의 넓은 사랑이 그 나래를 펴 "모든 사람을 인하여" 감사드리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일을 도와 준 사람들이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16:3, 6)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모두를 위한 감사이다

- "너희 믿음이……전파됨이라." 

바울은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어디를 가든 로마 교우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여기서 그들을 칭찬하는 것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남들이 그들에게 갖는 일반적인 성격과 기대어 맞도록 살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사람은 신앙이 좋다는 평판을 들을수록 더더욱 그걸 보존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챦은 바보짓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쓰러지"기 때문이다(전 10:1). 

- "온 세상에," 

곧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클로디우스의 칙령에 따라 사방에 흩어졌다가 이제 로마로 돌아온 그들이 온 로마 제국에 평판이 자자했다는 얘기다. 

어디를 가든 좋은 얘깃거리를 뒤에 남겨두고 다니는 그들의 소문이 온 교회에 퍼졌던 것같다. 이것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좋은 결과로서 그들이 박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유명해질 리도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일에 대한 아주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옛 신앙의 선배들처럼 이들 로마 교우들도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얻은" 셈이다(히 11:2). 

믿음 때문에 유명해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로마 교우들의 신앙이 이렇게 얘기되어지는 이유는 그 자체가 특출해서가 아니라 그 주위 환경에 비춰 뛰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는 언덕 위의 도시로서 거기서 이뤄지는 일은 누구나 다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있는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의 행동은,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남의 입에 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로마 교회는 왕성한 교회였으나 그 이후로 얼마나 그 황금이 빛을 잃어 퇴색하고 말았는가! 지금의 로마는 과거의 로마가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순결한 처녀"요 이를 데 없이 아름답던 로마 교회가 이제는 "제멋대로 행하며 타락한 나머지 이방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 결과("경건의 실제"라는 귀한 책에도 자그마치 26회나 지적되듯이) "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로마 사람들에게 "불리한" 편지로 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의 로마 교회는 과거의 공적을 추켜 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

Ⅱ. 그들을 위한 기도(9절). 

로마 교회가 당시 유명하고 왕성한 교회였지만 그러나 아직도 남들의 기도가 필요했다. 

그들이 "이미 얻었다" 하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울의 애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에게 베풀 수 있는 친절 가운데 하나는, 아니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은 자비로운 하나님께 기도로 그들을 칭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바울의 모범은 다음 두 가지다.

1. 한결같은 기도. 

"항상 쉬지 않고" 

남에게 시킬 뿐 아니라 몸소 그대로 실천하는 그였다(엡 6:18; 살전 5:17). 

이 말은 바울이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기도만 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이 귀한 임무를 꼭꼭 실천에 옮겼다는 얘기다.

2. 사랑의 기도.

 "……내 기도에 너희를 말하며," 

그들과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었지만 그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것도 성도를 전체를 두고 마구잡이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명확히 이들을 언급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특정한 교회나 지명을 두고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 알려 드린다는 것보다도 우리 자신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어서 여간 유익하지 않은 게 아니다. 

우리는 가장 관심을 가지고 위해 기도하는 친구들에게서 가장 큰 위로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기도에 대해서 그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을 두고 엄숙한 맹세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요 하나님과 자기 마음만이 아닌 것이기에 이런 얘기를 하게 된다.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하나님을 두고 우리의 성실과 지조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기도와 기도의 주제, 그리고 기도하는 태도에 대한 증인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라 하지 않는가(마 6:6).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겸손한 확신 가운데 그분에게 호소할 수 있지만 몸의 단련으로만 만족하는 위선자들은 이게 불가능하다. 

이 때 그의 특별한 기도는 그들을 한 번 찾아 볼 기회를 얻고저하는 것이었다(10절). 

"어떠하든지……구하노라." 

무슨 일이건 우리는 일단 그걸 하나님께 기도로 아뢸 필요가 있다. "우리의 때가 그의 손에 달려 있고" 우리의 모든 처사가 그의 처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떠하든지"라는 표현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실망해 오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도 그는 그걸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있으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좋은 길 얻기를"(하나님의 뜻으로 순조로운 여행을) 하는 표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과 희망에 "주님의 뜻이면"(약 4:15) 하는 단서를 잊지 말고 붙여야 한다. 우리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조로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의 원하시는 대로 편안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Ⅲ. 그들을 만나고 싶은 욕망과 그 이유(11-15절). 

너무도 많이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였기에 그는 그들과 좀 더 잘 사귀어 보기를 원하고 있다. 

맹랑한 교인들이 참된 목자들에게 슬픔이 되나 알찬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에게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가 "내가 여러 번……가고자(하였으나)……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절)하는 것은 마땅한 얘기다. 

만사의 계획은 인간에게 달렸지만 그 일 처리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다른 일로 방해를 받고 있었는데 그건 로마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의 일로서 그 일이 그에게는 더 급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바울은 자기에게 가장 즐거운 일을 우선으로 삼은 게 아니라(그랬더라면 당장 로마로 갔을 것이다) 가장 절실한 문제를 먼저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자신들의 욕심보다는 양무리의 영혼에게 필요한 것을 언제든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아닐 수 없다.

1. 그들을 굳게 서게 하려고(11절)

 "너희에게 나눠 주어," 

그가 받은 것은 남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젖먹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고 서두는 젖가슴인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파 하는, 곧 말씀을 전하고저하는 바울의 생각과 마음에 비길 수 있겠는가. 

훌륭한 설교는 훌륭한 선물로서 그것이 영적일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그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놓고도 그들이 견고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위로는 가지가 무성할 뿐 아니라 아래로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제아무리 독실한 성도라도 요새같이 뒤흔들리는 세상에서는 더욱더 견고하게 서 있을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견고케 서는 데는 영적 은혜가 큰 효험이 있다.

2. 자신이 위로를 받으려고(12절). 

그들이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만 해도 기쁜데 직접 만나 본다는 건 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다른 사역자들의 수고의 열매를 두고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곧 우리 상호의 믿음과 진실에서 위로를 얻을 줄 아는 그였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진실한 목회자로 믿고 목회자는 교인들을 진실한 교인으로 믿는 가운데 서로 통하는 교회는 위로가 넘치기 마련이다. 

또한 믿음의 상호 작용은 사랑으로 -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는 가운데서 곧 자신들의 믿음을 서로 교환하는 가운데서 위로를 얻었다. 

우리들의 영적 상태의 이모저모를 서로 비교 검토해 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이다.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13절), 

그들이 굳게 서는 것이 곧 자신의 유익이었으니 그게 곧 그에게는 풍성한 수확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바울의 사역에 임하는 자세는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대가는 그만큼 더 풍성하게 된다는 식이었다.

3.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임무를 다 하려고(14절). "내가 빚진 자라."

(1) 자신이 받아 누리는 그것으로 해서 이미 그는 빚진 자였다. 

그에게 자질을 주신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게 하려는 뜻에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큰 것을 사모할 때 명심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가 받아 누리는 온갖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빚진 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주님의 상품을 맡아 지키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2) 자신의 직분이 그를 빚진 자로 만들었다. ....복음말씀 사역자들은 어떤 특권을 주장, 생각하기보다는 [자격없는 죄인 괴수에게 맡겨주신 은햬를 감사함안에서!!]  무한한 보물 복음진리말씀을 맡고 그 가치 그대로 가감없이 은혜의 주님이 예비하신 이들에게 값없이 공급하고 나누어 주고 그 가치를 깨닫게 하는 무한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둘로스됨따라 행해야 한다.!!...하나님의 주권과 뜻과 택정하심을 제한하지 말라..하나님은 오늘날도 필요하다 여기시는대로 여전히 주권적 은혜로 사도와 선지자를 세우실 수있음에 주의하라!!...오직 말씀을 사모하며 올인하여 말씀안에 거하라.

그는 사도일 뿐 아니라 채무자였다. 곧 이 일로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그로서 이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바울로 말하면 그는 자신의 자질을 십분 활용하여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충실히 자기 일을 감당하였지만 이 모든 걸 회고하면서 자신을 빚진 자로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 무익한 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곧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빚진 자였다. 

헬라인들은 자기들만이 지혜를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으며 나머지 세상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취급했는데 어떻게 보면 자기들처럼 학문과 기술에 뛰어나지 못한 그들이라서 당연한 처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이 양자에게 모두 빚진 자로 곧 이쪽 저쪽 모두에게 능력껏 봉사해야 할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그의 설교나 서신을 통해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그들이 알아 듣는 말을 해가며 모두에게 다 유익을 끼치는 가운데 자신의 빚을 거뜬히 갚고 있다. 

루스드라에서 평범한 루가오니아인들에게 전한 그의 설교와(행 14:15 이하) 아덴에서 고상한 철인들을 상대로 한 설교(행 17:22 이하)를 비교해 보면 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양자에게 다 빚진 자로서 각자의 몫을 다 채워 준 셈이다. 평범한 설교자이지만 지혜있는 자에게 빚진 자의 위치에서는 이들은 철두철미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다(고전 2:6).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로마에……복음 전하기를 원"했다(15절). 

기독교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위태로운 곳이지만 그는 로마에서의 위험을 무릅 쓸 "각오가 서 있었다"(프로뒤몬) 

이 단어는 단단한 마음의 준비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가 이 일을 내다 보며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있다. 

그의 하는 일은 더러운 이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일이었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서성대는 마음씨야말로 고결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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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에 대한 바울의 강론(롬 1:16-18)

바울은 본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그의 주제인 칭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며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방 세계의 비참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의 수사적 변화는 아주 적절한 것으로 마치 웅변가의 그것과 같다. 

로마로 말하면 스스로 지혜있다는 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배척을 받고 있는 곳인데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기에 그는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있다. 

바울같은 사람 정도면 복음을 부끄러워할 만도 하다. 특별히 그것이 나무에 매달린 자의 복음이요, 그 내용으로 말하면 너무 평범한 것이라서 학자들 간에 거들떠 볼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그 복음을 고백한다는 자들이 모두 천박하고 볼품없는 사람들이요 가는 곳곳마다 반대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바울이야말로 복음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은 신자일 뿐 아니라 복음에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닌 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복음의 우월성과 본질을 간파한 담대한 신앙 고백의 이유가 본 주제의 서론을 장식하고 있다.

Ⅰ. 주제(16, 17절). 

복음의 우월성은 그것이 우리에게 계시해 준 다는 점에 있다.

1. 복음의 목적은 믿는 자의 구원. 

그것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이 육의 눈에는 제 아무리 천박해 보이고 추태롭게 보여도 바울이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복음이야말로 "구원의 길"(행 16:17)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며 구원이 우리에게 양도되어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는 위대한 승낙이다. 그러나

(1)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 능력이 없이는  복음은 한갖 사문(死文)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치유하는 데 있어 말씀에 능력이 동반되었듯이 복음의 계시는 곧 "여호와의 팔"(사 53:1)의 계시이다.

(2) 그것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믿음만이 우리를 복음의 구원과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요 그밖에 사람들에게는 감취어진 것이다. 아무리 잘 처방된 약이라도 환자가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 

-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맨 먼저 대접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나 사도들의 경우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너희에게 먼저"(행 3:26)였으나 그들의 거절로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고 만다(행 13:46).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일한 입장에 서 있으니 곧 양자가 동일하게 구원자 없이 비참한 상태인가 하면, 양자 모두가 동일하게 구언자에게 언제고 환영받는 존재이다(골 3:11). 

이러한 이론은 지금까지 선민으로 자처하면서 이방 세계를 멸시해 오던 유대인에게서는 뜻밖의 얘기였다. 

그러나 대망의 메시야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일 뿐 아니라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다.

2. 그 방법으로 계시된 신자의 칭의(17절). 

"복음에는" 

곧 바울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다. 

우리의 비참과 멸망은 우리 죄악의 소득이요 결과인 만큼 우리가 구원의 길을 모색하려면 칭의의 길을 먼저 알아야하는데 복음이 바로 이 일을 해 주고 있다. 

복음이 의의 길을 터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요 우리는 죄많은 죄인인 만큼 그분 앞에 나서려면 우리가 걸치고 나타날 수 있는 의가 있어야 마땅한데 이 의가 왕되신 메시야게서 드러나고(단 9:24), "복음에 나타나"있다. 

곧 이 "의"는 우리의 죄악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화해와 영접의 은혜로운 방편이다. 

이 복음의 의를 가리켜

(1) 하나님의 의라고 부른다.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요, 하나님의 인준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딱 잘라 말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행위의 공로에서 연유하는 온갖 의에 대한 구실을 배제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대속에서 오는 하나님되시는 그리스도의 의, 바로 그것일 뿐이다.

(2) 그것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곧 계시하는 하나님의 성실(faithfulness)로부터 받아들이는 인간의 믿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타락 이전의 아담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과 교통으로부터 중보자에게 의지하는 믿음과 이에 따르는 하나님과의 교통에 이르기까지 하는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는 우리가 의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는 첫 번 믿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에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바로 세례문답 강령에도 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여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또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접붙이는 믿음으로부터 우리의 원둥치가 되는 그에게서 우리의 공로를 취하는 믿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식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두 의미가 다음에 나타나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라는 말에는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이 있다는 말이요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에는 우리를 지탱하는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시작이나 과정에 있어서 믿음이 전부다. 

또 반대로 "믿음에서 행위로"하는 식일 수도 없다. 

마치 믿음으로 의로운 상태에 놓이고 행위로 말미암아 그 상태에 계속 머무는 것처럼 말이다. 철두철미하게 "영광으로부터 영광에 이르"듯이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는 것이다(고후 3:18). 

그것은 증대하는 믿음이요, 계속 나아가는 믿음이요, 인내하는 믿음이니 이 믿음은 전진하여 나아가는 가운데 불신앙의 뿌리를 잠식해 버리고 마는 믿음이다. 

이것이 새롭고 신기한 이론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그는 신약에 종종 인용되는 유명한 구약 성구를 인용하고 있다(합 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입은 인간은 이 믿음을 통해 은혜와 영광의 생활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때 하박국 선지자는 조망대 위에 올라가 특별한 계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1절) 이 계시는 외관상 지연되는 것 같지만 때가 차면 약속된 메시야가 틀림 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내용이 었다. 

이것이 거기서는 "묵시"(환상)로 불리지만, 다른 데서는 "약속"으로 불리운다. 

또한 과거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장래에도 "의인은 믿음에 의해서 살 것이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복음의 의가 바로 이것이니 곧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믿음으로부터 이미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의 믿음에 이르는 의다.

Ⅱ. 이 주제의 증명.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아 할 것없이 하나님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의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어느 쪽도 떳떳이 내세울 자신들의 의가 없다는 것이다. 

칭의는 믿음이 아니면 행위를 통해서라야 하는데 바울은 그것이 행위로는 불가능한 이유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행위를 들어가며 설명한 뒤에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20, 28). 

사도는 유능한 외과의사가 상처를 싸매기 전에 환부를 샅샅이 뒤지듯이 먼저 죄와 진노 문제를 확신시켜 놓은 다음에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복음은 더욱 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저주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볼 수 있어야 의롭게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다는 걸 알게 된다. 

전반적으로(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있다. 

자연의 빛과 율법의 빛 모두가 죄에서부터 죄에 이르는 하나님의 진노를 들어내 보여 주고 있다. 

복음이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는 의를 들어내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따르는 대조법이 흥미롭다.

1. 인간의 죄악성 묘사. 

그는 이것을 "경건치 않음과 불의"라는 큼직한 두 가지로 간추리고 있으니 곧 첫째 돌판의 율법에 대한 불경건과 둘째 돌판의 율법에 대한 불의다.

2. 이 죄악성의 근원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데 있다. 

곧 하나님의 존재와 선악간의 차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었다. 곧 다 알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레 악행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이들은 진리를 포로나 죄수마냥 감금하여 이것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자들이다. 그렇게 안하면 도리어 진리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겠기 때문이다. 

불의하고 사악한 마음은 좋은 진리가 묻혀 있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믿음과 사랑으로써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는 일이야말로 모든 신앙의 뿌리요(딤후 1:13) 그것을 불의로 막는 일은 모든 죄악의 뿌리가 아닐 수 없다.

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하나님의 진노가……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기록된 말씀에나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 행사되고 있으니 이 심판은 난 데 없이 땅에서 솟아난 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무슨 제2의 원인 때문도 아니요, 하늘에서부터 계시되어진 것이다. 또는 "하늘로부터의 분노가 계시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우리들 인간의 분노가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분노"인 만큼 더더욱 참혹하고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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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우월성(롬 1:19-32)

본장의 이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는 특별히 이방 세계들 두고 본 바를 적용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Ⅰ. 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었던 방법. 

그들이 야곱과 이스라엘처럼 그의 율법을(시 147:20)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에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다"(행 14:17).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19, 20절)

1. 그들이 명백히 알고 있던 것.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엔 아우토이스, 그들 중에) 보임이라." 

그들 가운데 하나님 지식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곧 절대자 누멘(Numen,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던 자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가 다 아는대로 피타고라스나 플라톤,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는 이미 하나님 지식이 익혀 알려져 있다. 

"알 만한 것"이라는 말에는 알려질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존재가 부분적으로 이해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다. 

우리가 찾아 나선다고 해서 그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욥 11:7-9). 

유한한 인간들이 무한한 존재를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더불어 사는 우리의 위대한 목적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로서 넘나들어 볼 수 없지만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 것이다(신 29:29).

2. 그들이 이것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자연적인 일반 지식은 "빛들의 아버지"요 자연의 하나님이신 그분 자신에 의해서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다. 

신(神)의식과 신에 대한 태도는 인간 본성에 타고난 것이기에 인간과 금수의 차이를 이성보다 이 신 의식과 태도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잇다.

3.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 그들이 가졌던 신지식과 생각이 확증되었는가.

 다름 아닌 창조의 섭리를 통해서이다(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1)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물론 하나님이 감각의 대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만물을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만물에는 역력히 드러나 있다.

 그는 은밀하게 일하시지만(욥 23:8, 9; 시 139:15; 전 11:5) 그가 만드신 바는 나타내 보여 주시며 우리는 거기서 그의 능력과 신성 그리고 그밖에 자연의 빛으로 알 수 있는 기타 속성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이 자연의 빛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알 수는 없지만(어떤 이들은 플라톤의 글에서 이걸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러나 우상 숭배와 신성을 구별할 정도의 신성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진리를 그들이 불의로 가로막았다.

(2) 그들이 알 수 있던 방법. 

"그 만드신 만물에," 

곧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우연히 그렇게 질서정연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따라서 꼭 제일 원인이나 이성적 동인(動因)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만물을 통해서이다. 

이때 제일 원인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능력의 하나님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시 19:1; 사 40:26; 행 17:24). 

원래 명장(明匠)은 그 일 솜씨를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다. 

만물의 다양성, 무수함, 질서, 아름다움, 조화, 특성, 기능, 그리고 합목적성, 이 모든 것은 창조주와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해서 어두움에 빛이 비치게 되었다. 

그것도 "창세로부터," 이 말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① 그 하나는 이 능력과 신성이 거기로부터 추출된다고 생각되어지는 주체로 볼 수 있다. 

이 진리를 증명하는 데는 온 세상의 피조물(크티시스 코스무)을 다 들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피조물은 인간을 두고 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가장 뛰어난 피조물(크티시스 카이 엑소켄)이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그저[크티시스]로만 표현되어 있다. 

인간 신체의 형태와 구조, 특별히 인간 영혼의 우월한 능력과 기능은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이 창조주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② 또는 이것을 알게 된 연대로 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세상의 창조와 그 연대를 같이 한다. 이런 의미로 성경에서는 창세기로부터(아포 크티세오스 코스무, 1:20)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잇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여러 개념은 최근에 와서야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어 온 오래된 진리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길이야말로 태초 이후로 있어 온 탄탄대로이다. 

진리는 이미 오류의 기선을 지른지 오래다.

Ⅱ.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범하는 터무니 없는 우상 숭배(21-23, 25절). 

성서의 빛을 가진 유대인들 마저도 얼마나 우상 숭배에 젖어 있었던가 하는 걸 생각한다면 이방인들의 경우에 있어서 자연적인 신인식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상한 노릇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육감의 구렁텅이에 빠져 든 타락한 인간상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1. 그들의 우상 숭배의 내적 원인(21, 22절).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며 또 알고 있었으면 그분을, 오직 그분만을 섬겨야 마땅하다는 게 분명한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무런 핑계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타인에 비해 더 많이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핑계가 있을 수 없는 것은 매일반이다. 그들의 잘못은 이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 

그분에 대한 열정과 경외가 자신들의 신(新) 지식과 어깨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은 천상천하에 무한자가 그분뿐이므로 그분만을 영화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영광돌리지 않고 잡다한 신전을 세웠다. 그분에게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영적인 예배로 그분을 섬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여러 모양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전혀 영광돌리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분을 피조물로 경배하는 것은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독하는 처사이다.

(2) 그들은 "감사치도 아니하고," 전반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받는 은총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몰랐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몰지각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그분에게서 멀어져 가는 죄악이다.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기꺼이 계시해 주신 타고난 신지식에 대해서 감사치 않았다. 

신지식과 은혜의 수단을 발전시켜 나가지 않는 것도 이것들을 달가와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게 마땅하다.

(3)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있어서 그들의 사유에 있어서"(엔 토이스 디알로기스모이스), 곧 실체 추론에 있어서 "허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반 지식은 풍부했지만(19절) 이것을 개별적인 상황에 응용하는 지혜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개념, 세계 창조, 인류의 기원, 그리고 최고선 등이 모든 것에 있어서 평범한 진리를 저버리고 천태만상의 공상을 가지고 갑론을박하게 되었다. 

이상의 모든 것에 대한 여러 학파의 수다한 의견과 가설은 거의가 헛된 상상에 불과하다. 

일단 진리가 내팽겨 쳐지면 수다한 잘못이 "무한정하게"(in infinitum) 증대하기 마련이다.

(4) 그리고 그들의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 마음의 우매와 사악은 이지적 능력과 기능을 흐리고 어둡게 한다. 의지와 마음의 타락과 부패만큼 이해력을 멍들게 하고 삐뚤어지게 하는 것도 없다.

(5)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었다(22절). 

이 얘기는 철인들이나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들릴 것이다. 

가장 왕성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 자기들의 틀에 하나님 개념을 짜 맞추려다 더 없이 터무니없고 엉뚱한 기만에 빠지고 말았으니, 이거야말로 자신들의 교만과 기만의 당연한 벌이 아닐 수 없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진짜 바보들은 가장 뛰어난 지식을 자랑하는 가장 세련된 민족들이었다. 야만인들은 해와 달을 경배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우상 숭배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교양을 갖추었다는 에집트인들은 황소와 양파를, 지혜에 뛰어난 희랍인들은 질병과 인간의 병마를, 가장 문명을 자랑하는 로마인들은 원귀(寃鬼)를 경배하였다. 

오늘날도 미개한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천둥을 경배하고 영리한 중국인들은 귀신을 섬기고 있다. 

이처럼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고전 1:21) 지혜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더욱 우매를 악화하듯이 지혜있다고 거만하게 굴며 속이는 것은 더 없는 우매를 조장할 뿐이다. 

따라서 기독교로 개종한 철인들이 없으며 바울의 전도가 유식한 아테네 사람들에게서처럼 비방과 조롱을 산 일도 없다(행 17:18-32) - 스스로 지혜있다하나 스스로 "속아"(파스콘테스 에이 나이, 1:22)지나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평범한 진리로는 만족을 못하고 자기들은 그 위에서 논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2. 그들의 우상 숭배의 외면적 행동(23-25절).

(1) 하나님 모양을 새긴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고 있으니(23절)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바꾸어"놓고 말았다(시 106:20; 렘 2:11 비교). 

그들은 가장 추악한 짐승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므로 인간에게 최대의 영광을 베풀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인간의 모양으로 만들어 하나님에게 최대의 치욕을 돌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엄히 경계하시던 본 뜻이요(신 4:15 이하), 이것이 바로 사도가 아덴 사람들의 우매를 지적해서 말한 그것이다(행 17:29). (사 40:18; 44:10 이하 비교) 

이것이 곧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처사이다(25절).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치욕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그의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우상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에게 육체가 있는 것으로 거짓 꾸며대기 때문이다(렘 13:14; 호 7:1). 이 우상은 "거짓 스승"이다(합 2:18).

(2) 피조물에게 신의 영광을 돌리고 있으니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조물주를 제쳐 놓고,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기"(파라 톤 크티산타, 1:25)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초월자 신(Numen)이 있었으나 피조물을 경배하므로 결국에 가서는 그를 욕되게 한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조물주 "이상으로" 별, 영웅, 귀신을 더 섬겼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다거나 감히 예배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결국 피조물을 섬겼다는 데 죄가 있지만 그 죄가 더 중요한 것은 조물주 이상으로 피조물을 섬겼다는데 있다. 

이것이 이방 세계 전반의 죄악상이요 이것이 그들의 법률과 국가체제에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따라서 그들 중에 신지식을 가지고 있던 지혜자들마저도 어리석게 다신론과 우상 숭배에 빠져 들고 말았으니 그들의 나머지 이웃 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네카는 지금은 없어지고만 그의 '미신론'이라는 저서에서(어거스틴의 [신국]6권 10장에 있는대로) 이방 종교의 엄청난 부도덕과 불신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여러 가지 예를 드는 가운데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지혜자는 당연히 법으로 제정된 걸로 알고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또 그는 이런 말을 한다. "고대 종교가 이렇게 집대성한 많은 무리의 신들을 우리가 경배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보다는 이들을 경배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이런 핀잔을 주고 있다. "그는 자기가 부당하다고 비난한 것을 경배하였으며 그는 자기가 부당하다고 증명한 것을 실행하였으며 오류 투성이라고 욕한 것을 경배하고 있다"고. 

내가 여기서 이 말을 인용하는 것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사도의 말을 이보다 더 잘 말해 주는게 없겠기 때문이다.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 행한 모독을 지적하는 가운데 사도는 스스로 하나님을 칭송하고 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하실 이로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려지는 걸 듣거나 볼 때는 그때마다 하나님을 칭송하고 그에게 영광돌리는 기회를 삼도록 하는게 마땅하다. "영원히 찬송하실 이로다." 

그의 이름에 어떠한 욕이 들려지건 말건,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분은 지금도 영광을 받고 계시며 영원히 영광 받으실 것이다.

Ⅲ. 이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것은 현세적인 심판이 아니라(우상 숭배에 젖은 나라가 세계 정복한 예는 많다) 영적인 심판으로 이들을 더없이 무분별하고 부자연스러운 쾌락에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다. 

곧 그가 그들을 "내어 버려 두셨다"(파레도켄 아우투스)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24, 26, 28절). 모든 심판 가운데서 영적인 심판만큼 더없이 쓰라리고 두려운 것도 없다.

1. 누가 그들을 내어 버렸는가. 

그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당연한 벌로써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가운데 이들을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고삐 풀린 말이 되어 제멋대로 놀게 내팽개쳐 두신 것이다. 

은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인간에게 빚진 게 없는 그로서는 자기 원하는 대로 은혜를 줄 수도 거둘 수도 있다. 

이렇게 내어 버려 두는 게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이냐 소극적인 행동이냐 하는 문제는 학자들이 따질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핟. 곧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자신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고 강력하게 그들을 기만하며 그들 앞에 사탄을 풀어 놓으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거침돌을 놓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악의 장본인일 수 없고 오직 이 일에 있어서 무한히 의롭고 거룩하심은, 물론 이 포기에 따라 더 극악한 죄악이 따르지만 포기하도록 한 잘못은 사특한 인간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가 고집불통이어서 처방대로 따르지 않고 장본인에게 해로운 걸 고의적으로 먹고 행한다면 이 때 의사가 그 환자를 절망적인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둔다해서 욕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에 따라 오는 모든 증세도 의사 책임이 아니요, 병 그 자체와 환자의 어리석음과 고집에 그 책임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2. 버림 받은 곳.

(1) "더러움과 부끄러운 욕심"(24, 26, 27절).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 보여 주는 자연적인 빛이 주는 보다 정교하고 순수한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은 인간성을 보여 주는 더 조잡하고 빤히 들여다 보이는 감정도 상실하기 마련이다. 존귀한 인간이지만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멸망하는 짐승"보다 더 악독한 것이다(시 49:20).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모독하도록 내버려지고 만 것이다 .

자기 자신의 정욕의 노예로 전락된 노예보다 더 불쌍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자들은 마치 애굽인들처럼 포악한 군주의 손에 붙여지고 만다(사 19:4). 

그들의 더러움과 사악한 욕심의 특별한 예는 자연의 빛에 비춰 봐도 더 없이 명백한 부자연스런 정욕으로 솔론이나 제노같이 현인으로 통하는 자들도 저지르고 만 죄다. 

하나님께서 지옥불을 하늘에서 퍼붓게끔 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처절한 죄악이 이방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실천되었을 뿐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마 사도는 우상을 경배하는 가운데 행해지던 추악한 짓들을 두고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더러운 신들에 대한 더러운 예배가 아닐 수 없다. 불결한 영은 그러한 봉사를 즐거워하기 마련이다. 

이방 우상이 부활되어 귀신들 대신에 성화된 성도(곧 성자)들을 채워 넣고 있었던 로마 교회에도 이처럼 동일한 가증한 일들이 자행되고 교황의 재가를 받고 몇몇 추기경들은 이런 짓을 정당화하고 그대로 따르자고 한다는 얘길 듣고 있다. [똘레랑스라 명명하면서...]

그러한 죄는 동일한 영적 죄에 대한 동일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 있는 죄악이 그 엄청난 심각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라. 얼마나 가증스럽고 추악한 인간인가! 

주여,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는 다윗의 말마따나 제 스스로 내버려졌을 때 인간은 얼마나 추악한가! 

인간성의 존귀와 품위를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약의 은사를 우리가 맛본 게 그 얼마이던가! 

이게 아니었더라면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받은 인간은 악마보다 조금 못한 자리로 진즉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이다. 

온 지구상의 심판관은 언제고 공정하며 죄악과 그 처벌이 고르게 일처리를 하신다.

(2) "상실한 마음"

①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했다." 

그들의 몰이해는 자신들의 고의적인 마음과 의지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 지식을 갖지 않은 것은 그들이 그걸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향락에 무관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알려들지도 행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게 바로 육적인 마음의 기질적 특성이다.  자신들의 향락만이 최고 유일의 목적인 것이다. 화사하게 내리쬐는 햇살마냥 [하나님에 대해 깨달아 알게 되는] 신지식이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데도 우리들의 지식창고에 하나님칸은 빼버리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전능자여, 우리를 떠나소서"하는 자들이다(욥 21:14). 

신지식이란 자신들의 욕정과 정반대 되는 것이기에 그걸 마음에 두길 꺼려하고 잇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 가운데("저희 마음에" 해당하는 항목)(엔 에피그노세이, 1:28)에 있어서 (그노시스, 1108)와 (에피그노시스, 1922)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노시스는 그저 "지식"(앎)이란 뜻이요 에피그노시스는 "승인..깨닫고 인정함"이란 뜻을 갖는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를 인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② 진리를 부정하는 그들의 고의적인 마음에 해당하는 벌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더없이 처참한 죄악 속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여기서 말하는 "상실한 마음"(에이스 아도키몬 눈, 1:28)이다. 곧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리판단력에 제거된 상태이니 도덕적으로 오른손과 왼손도 구별할 수 없게 된 지경이다. 

죄악의 진로의 종착역이 어디며 마침내 죄인이 빠지는 구렁텅이가 어디인가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육신을 불태우는 욕정의 직행 코스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음심이 가득한 눈은 범죄를 그칠 물 모른다"(벧후 2:14). 

이 상실한 마음이 바로 커튼 쳐진 양심이요 감각 없는 양심이다(엡 4:19). 

우리의 판단이 일단 죄악과 일치해 버리면 이때 우리는 지옥의 문제에 가가 서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지만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내어버려두심으로써!!]

이처럼 고의적으로 완고하게 고집했던 바  굳어버리고 냉냉한 마음은 마땅히 천벌, 곧 굳은 마음이 마땅한 심판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곧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끔 내어버려 두시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사소한 죄목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극악한 죄를 두고 말하고 있다. 이 죄들은 인간 성정에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로 자연의 빛과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는 여기에 이방인들이 상실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진 상태에서 저지르는 이상야릇한 죄목들을 들춰 내고 있다. 

그처럼 가증할 수가 없고 자연의 도리와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상실한 마음만은 이 죄악과 어깨를 같이 하고 있다. 

당시 도덕의식이 더없이 타락했던 로마 역사를 보면 여기 지목된 죄목들이 당시 시대를 휩쓸고 있었던 것 같다. 

자그마치 스물 세 종류의 죄목과 군상들이 여기 언급되고 있다(29-31절).

바로 이곳이 악마의 자리이니 그의 이름은 군대요 이는 그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해야 할 때는 온 세상이 개혁을 필요로 하는 바로 이때였다. 

맨 먼저 첫 번째 돌에 새겨진 계명에 대한 죄악을 들 수 있으니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바로 여기에 악마의 제 모습이 들어나 있으니 죄는 죄의 모양을 그대로 갖추는 것이다. 

이성적인 피조물이 최고선을 싫어하며 의존하는 피조물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멀리 하다니 감히 상상할 수 있는 노릇인가?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다. 어떠한 죄든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증오가 도사려 있는 것이다. 오직 그 정도에 따라서 남달리 더 공공연하게 하나님께 원수 노릇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로써 그들은 하나님 자신과 겨루는 나머지 마땅히 그의 보좌 앞에 바쳐야 할 면류관을 스스로 자기 머리에 쓰는 자들이다.

다음으로는 두 번째 돌에 새겨진 계명에 대한 죄를 보자. 

이것이 특별히 언급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그들이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불의에 대한 항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것이 맨 먼저 언급되는 이유는 모든 되는 그 자체가 불의이기 때문이다. 

곧 마땅한 일을 하지 않고 보류하며 올바른 일을 곡해하는 일이다. 

다섯째 계명에 대한 죄를 보자. 이들은 "부모를 거역하는 자"일 뿐 아니라 "무정한 자"(아쉬네투스, 801) 곧 자기 자녀들에게도 매정하고 잔인했다는 얘기다. 

한쪽일에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다른 쪽 일에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는 마땅히 무정한 부모를 두기 마련이요 그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여섯째 계명에 대한 것은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악독, 능욕, 무자비"로 서, 이 모두가 우리의 형제에 대한 증오 곧 마음의 살인에 대한 표현이다. 

일곱째 계명에 대한 것은 "추악"(간음)으로 앞서 불의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있다. 

여덟째 계명에 대한 것으로는 "불의"와 "탐욕"이요 , 아홉째 계명에 대한 것은 "사기, 수근수근하는 자, 비방하는 자, 배약하는 자"이니 중상 모략이다. 

여기에 "악을 도모하는 자"와 "우매한 자"라는 일반 원칙이 들어 있다. 

곧 악한 일에는 재주꾼이지만 선한 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나쁜 일을 꾸며대는 데 있어 신중하고 약은 죄인일수록 그 죄는 그만큼 더 크기 마련이다. 

그릇된 일을 저지르는 데는 그처럼 빠르면서 하나님에 대해선 우매하다니 정말로 철천지 바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원죄를 생각할 때 바로 여기에 우리가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누구의 마음에건 본래부터 이러한 모든 죄의 씨와 알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그는 이 모든 죄가 악화된 결말을 보여 주고 있다(32절).

1. 그들은 "하나님의 정하심(심판)을 알고 있었다."

(1) 곧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게 아니라 자신이 의롭기 때문에 그의 공의가 뭘 요구하며 어느 것이 옳다고 인정하시는가 하는 문제다.

(2) 그들은 그 처벌도 알고 있었다. 

곧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걸 "알고 있던 자들이다. 

다름 아닌 영원한 죽음이 여기에 따른다는 걸 그들의 양심은 똑바로 지적해 주건만 그들은 이 외골길로 거침없이 치닫고 말았다. 

알면서 지은 죄, 특별히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약 4:17) 지은 죄의 결과는 무섭다. 

칼날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만용이다. 

이미 마음이 굳어져 있으며 죄구렁텅이에 발이 고정되어 있다는 얘기다.

2. 이들은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하는 자들이다. 

본인이 당하는 시험에 못이겨 더러운 식욕을 한껏 채우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남들의 죄를 보고 기뻐하는 짓은 죄악 그 자체를 위한 죄악을 사랑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건 바로 악마의 왕국과 그 이익을 위해 연합전선을 펴는 처사다(쉬뉴도큐신, 1:32). 

곧 자신들이 죄를 범할 뿐 아니라 그걸 변호하고 정당화하며 남들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게 북돋아 주는 것이다. 

타인의 죄와 동조하고 그걸 흐뭇해 하는 가운데 우리의 죄악의 짐은 더더욱 무거워 가기 마련이다.

이제 이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그처럼 죄로 타락해 있던 이방 세계가 자신들의 어떠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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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3: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그 마음에 생각하는 그대로 사람도 그런즉....For as he thinks in his heart, so is he [in behavior—one who manipulates].]....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인격적 인간 됨됨이는 (지금) 그의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그 자체라는 의미....***마음 heart = ((영spirit))(양심consience=심령.,heart>직관-영교) ((혼soul))[[생각, thoughts, mind>지성, intellect]] + 정서(느낌+감정)emotion + 의지will(뜻>믿음-지향성)...여기에 (타인에 대한) 태도가 더해지면 됨됨이(인품)이라 함

....**직관 (Intuition) -- '판단 또는 추리' 등의 사유 작용 없이,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함  **교통(코이노니아, communion...fellowship-participation-impartation)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바 사랑과 평강 기쁨 안에서 성도간의 깊은 영적 사귐’, 우주적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인도와 이끌림 따라 자동적으로 이루는 성도의 ‘거룩한 교제’“


==Q사랑하기에 대해==

이 우주적인 한 쌍의 사람들인 남편 아담과 아내 하와는 같은 근원에 속해야 함을 계시한다.. 

Q께서는 한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아담에게서 나온 갈비뼈 하나로 하와를 지으셨고 그들은 하나의 생활을 가졌다. 

아담은 남편으로서 그리스도의 예표, 하와는 아내로서 교회의 예표..이는 엡5장에서 아담과 하와로 예표된 한 쌍, 그리스도와 교회를 볼 수 있음..

이 한 쌍은 우주적 비밀이다. 온 우주적 비밀은 하나님과 그의 택하신 자들이 하나의 쌍이 된다는 사실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인 우리와 하나님은 하나의 근원, 하나의 본질과 하나의 생명을 갖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며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나왔음을, 즉 남편과 아내는 근원도 같고 본질도 같고 생명도 같음을, 아담의 본질과 생명은 또한 하와의 본질과 생명이요 이 한 쌍은 분명히 하나의 생활을 하였다.  즉 그들은 함께 살았으니, 하와는 아담 곁에서 아담과 같이, 아담은 하와 곁에서 하와와 같이 살았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하나의 생활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혹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으며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서 살고 계신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자신을 남편으로 말씀하셨으며 자기 백성을 그의 아내로 말씀하셨다(사54:5, 62:5, 렘2:2, 3:1, 14, 31:32, 겔16:8, 23:5 호2:7, 19).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되기를 갈망하셨으며 자기 백성들을 아내로 삼기를 원하셨다. 선지자들은 여러 번 하나님을 남편으로 말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의 아내로 말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 언제든지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대하여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생각하며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결혼한 형제라면 당신은 아내에게서 이런 것을 바라겠는가?....경배자가 아니라 나를 껴안고 입 맞추어 주는 사랑스러운 아내로서 친밀함의 사랑 나눔을 더 원치 않겠는가?) 

물론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전능한 하나님이시요, 그리고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경배해야 하며, 많은 성경 구절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제사에 싫증이 났고 너희의 제물에 진력이 났다. 나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나는 너희의 남편이 되고 너희는 나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결혼 생활을 원한다. 나는 쓸쓸하다. 나에게는 아내로서 너희가 필요하다. 나는 내가 택한 백성들이 나의 아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아가서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아가서에서 우리는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발견하는데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 오 내게 입맞주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구나" ..보라, 그 즉시 사랑하는 남자가 곁에 왔을 때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3자인 "그 남자"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내게는 둘도 없는 짝인 도드, "당신"으로 바뀐다(아1:2-3)  "당신의 이름은 달콤하며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나를 이끌어주셔요. 나를 가르치려 마시고 다만  나를 이끌어 주셔요. (내게는 목사나 설교자, 장로나 사도가 필요 없고) 나를 이끌어 줄 도드("나의 유일한 사랑, 연인. 당신")로서, 당신만이 필요합니다. 나를 이끌어 주셔요. 우리가 당신을 따라 달려가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Q이 교회로부터 진정 듣기를 원하는 말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신명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모세가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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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에서 나타나는 진정한 결혼 생활 통해 정녕 배워야 할 바란 무엇인가? .... 그 비밀이란, 아내(교회)는 남편(주님)을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생활 그 자체로, 또한 자기의 인격으로 삼아야 함을 일러준다,...주님을 사모하는 자가 거치게 되는 바, 생명 성장의 여러 단계의 특징을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다 

.....*1)바로의 병거의 준마(아1:9) : 말은 힘 세고 팔팔하며 성격이 강하고 목표 지향적, 뚜렷한 목적을 달성 위해 전력 추구한다.

.... *2)향기롭고 아름답고 꽃이 피는 백합화(아2:2)  : <아직 동행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으나>여기에 이르러서는 자기 의지-감정-개성은 없어져 버리고 다만 사랑하는 이의 누림이 되기를 원할 따름이다...

....*3)연기 기둥(아3:6), (제자리에 박힌) 대리석 기둥이 아니라 (남편이 이끄는 대로 어디든지 함께 가는) 연기 기둥, "내 의지는 남편의 마음에 있고, 내 감정은 그이 속에 있으며, 내 생각은 그의 머리 속에 있습니다.나는 단지 그분을 순종하는, 그분이 가자 하면 어디든지 따라가고 서라 하면 서는 [나 자신의 생각-감정-의지를 버리기를 배운] 연기 기둥입니다"  

....*4) 사랑하는 이를 메고 나아가는 연(1인승 가마...아3:9)....이제 자신의 개성은 사라져 버리고, 그녀의 유일무이한 연인이신 그리스도 주님 자신이, 그분을 태우는 1인승 가마가 된 그 여자 안에서 인격이 되심....곧, 그녀는 ㄱ 사랑하는 님의 인도 따라 어디든지 나아가는, 보배를 그 안에 담은 질그릇... 

....*5)사랑하는 사람이 만족하는, 열매들과 귀한 것들을 자라게 하는 동산이 됨(아4:12-13) ..

....*6)자신의 개성은 없지만 속에는 그리스도의 강한 인격을 가진 도시(아6:4), 즉 새 예루살렘(계21:2)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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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나타난 사랑 이야기] 

......*1)사복음서에서 신랑으로 오신 예수를 분명히 묘사함(마9:15, 막2:19, 눅5:34, 요3:29)...요한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요한을 떠나 예수를 따름을 보고 그의 제자들 중 몇몇이 염려한 것에 대해 요한이 그들에게 분명히 밝힘(요3:30...염려 말라, 그리스도는 신부를 취하러 오신 신랑이시니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신부는, 즉 신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확장이다!! 

.....*2)서신서에 나타난 남편과 아내 (:: 엡5:25-32, 고후11:2)...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근원적 측면, 본질적 측면, 생명에서,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여야 한다.

.....*3)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그의 벡성들의 결혼 ....그리스도는 결혼식을 갖는 분(계19:7)....어린양 그리스도께서 혼인잔치를 즐기심(19장)...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아내가 됨을 계시함(계21:2,9)....계21, 22장에서는 온 성경의 최종적 완성은 이 우주적인 부부, 즉 남편과 아내임을 보게 됨

[우주적인 부부와 우주적인 사랑]

....성경은 이 한 쌍의 두 사람이 한 육체가 된다고 말씀하신다.(창2:24, 엡5:31)..아담과 하와는 한 육체였고, 그들이 한 육체였기에 또한 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택하신 백성들은 우주적으로 하나의 단체적 사람이요, 남편이신 그리스도는 머리이며(엡4:15), 아내인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엡1:22-23), 결국 이 두 사람은 한 사람, 곧 만유를 포함한, 우주적인, 단체적 사람이다. 엡5장에서 교회는 아내로, 엡1장에서는그리스도의 몸으로 제시되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내이자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남편이자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우주적이고 단체적인 사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핵심이다. 핵심은 오직 한 쌍의 부부요, 한 사람이다. 남편이신TUQ와 아내인 그의 백성들이 한 쌍의 부부가 되는 것, 즉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온 성경의 중심적인 계시이다. 부부라는 면에서 중요한 점은 사랑이며, 사람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점은 생명이다. 

한 쌍의 부부로서 그리스도와 교회는 사랑의 관계를 가지며, 하나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는 생명의 관계를 갖는다.

[예언으로서의 구약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예표, 비유, 그림자들)]

.....*1)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들(눅24:27, 44. 요5:39)

.....*2)예표, 비유, 그림자들로 나타나 있는, 감추어진 교회(엡3:3-6)는 두 가지 형태였음

........*가)그리스도로 예표된 남자의 아내 (하와<엡5:31, 32>, 이삭의 아내 리브가<창24>, 룻<룻4>, 아가서의 술람미<아6:13..술람미는 솔로몬의 여성 명사임> 

........*나>성막과 성전

[구약의 성취인 신약, 신약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와 교회]

.....*1)복음서에 나타난 개인적인 그리스도의 방면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적어도 60가지 이상의 항목들으로보게 되며, 그중 마태복음에서는 적어도 30가지 이상의 항목들로, 요한복음에서는 20-30가지 항목들로 제시되고 있다...

.....*2)사도행전에 나타난 단체적인 그리스도(개인적인 그리스도의 단체적 확장) 

.....*3)로마서에 나타난 단체적 그리스도의 완전한 정의(단체적 그리스도 이룸의 그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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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 know, 이해하다 understand.....ginwvskw(1097, 기노스코) ..(히)야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기노스코(Homer 이래)는 기본 어근 그노(gnw)에서 형성된 단어이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사물이나 사람 또는 상황을 감각으로, 특히 시각으로 '알아차리다, 지각하다, 인식하다'를 의미한다. 

호머(Homer, Od.)애서 보는 것과 기노스코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험의 세계에서 그렇게 인지되었던 것을 마음 속에 지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또한 '경험하다, 배우다, 알게 되다'를 의미한다. 즉 경험된 것이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 알려진다.

(b)  이 단어는 '구별하다' distinguish를 의미한다. 

그 유사한 것이나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한 경험이나 인지가 이런 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Homer, Il).

(c)  이 단어는 '인격적으로 알다'(Heracl., Frag.), '이해하다'(Homer, Od.), '알다'(친밀함이 인격적 지식을 가져온다). 

'~와 알고 지내다, ~와 친하다, 숙달되다, 노련하다'(Plato, Rep.)를 의미한다.

(d)  이 단어는 '결정하다, 판단하다'(Democr. Fr., Demosth).

(e)  형사 법원이나 민사 법원의 판결은 주어진 사실의 비중에 의거하여 내려지기 때문에 이 판결들은 기노스코의 수동형으로 표현되어 '재판을 받다, 판결을 받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f)  이 단어는 "아는 사이나 친밀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육체적으로) '알다', 즉 '~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다'라는 헬라 용법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마도 이 용법의 배후에는 헬라어 아닌 다른 언어에서 차용한 단어의 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근이 라틴어 기그네레([아이를]  낳다)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 왔다(참조: H. Leisgang, Die Gnosis).

(g)  이 단어는 '확인하다, 입증하다, 확증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철학적 지식의 목적은 보는 것인데 이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이 세상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영원하고도 실질적인 것을 보는 것이다. 

이 확인은 원래 관찰로 말미암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노스코는 '통찰력을 얻다, 알아차리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통찰력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종교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Herach., Frag. 5).(참조: E. D. Schmitz; Bultmann).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기노스코는 70인역본에서 약 800회 이상 나오며, 히브리어 야다(알다)와 그 어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라아(보다), 하자(보다), 샤마(듣다) 등 13개 단어의 역어로도 사용되었다. 헬라의 일반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에서도 지식은 감각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미 알려진 것은 감각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 자체는 그렇게 알려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듣는 것(듣다)과 보는 것(보다)에 관한 동사가 아는 것에 관한 동사와 병행되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예: 출 16:6 이하; 신 33:9; 삼상 14:38; 사 41:20). 

이것으로 우리는 70인역본이 라아(삿 2:7)와 하자(사 26:11)와 샤마(느 4:15)의 역어로 기노스코를 사용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헬라와 히브리 사상에서 아는 것에 관한 개념들은 대체로 일치하며 이 두 경우에 감각을 통하여 얻는 경험이 기본적인 것이다.

(a)  70인역본에서 야다/ 기노스코는 '알아채다, 인지하다, 경험하다, 관찰하다'를 의미한다(예: 창 3:7; 창 41:31; 삿 16:20; 전 8:5; 사 47:8; 호 5:3).

(b)  야다/ 기노스코는 '구별하다' distinguish를 의미한다. 

"선악을 아는 것"(창 3:5; 창 3:22)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이다. 

좋고 흉한 것을 구별하는 것은 필요하다(삼상 19:36). 어린 아이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지 못하며(욘 4:11) 또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한다(사 7:15). 

후자의 구절의 문맥과 사 8:4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언명은 이 언급이, 어린 아이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할 줄 모른다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좋고 흉한 것, 좌우와 같은 것에 대해 관찰하는 것은 결국 그것들을 구별하는 것이 된다.

(c)  야다/ 기노스코는 '배워서 알다' know by learning라는 의미를 지닌다(잠 30:3).

(d)  이 분사는 사냥(창 25:27), 학문(사 29:11-13), 애곡(암 5:16), 바다를 항해하는 일(대하 8:18),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삼상 16:16)에 능함을 묘사하는 어구에 나온다.

(e)  야다/ 기노스코는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을 아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창 29:5; 출 1:8; 삼하 3:25). 푸알 분사형은 '친척'(왕하 10:11 등)과 '아는 사람'(욥 19:14; 룻 2:1 등)을 지칭한다.

(f)  야다/ 기노스코는 '관계하다, 관심을 가지다'(시 1:6; 시 37:18; 시 119:79), '~와 관계를 맺고 싶다'(예: 신 33:9). 

신학적인 문맥에서 자주 이 단어가 적절한 지식을 얻지 못해서 결국 관심의 결여를 초래하고 마는 것에 대한 문제로 나온다(예: 렘 8:7; 시 95:10).

(g)  야다/ 기노스코는 '성적 관계를 가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고 하는 유명한 완곡 어법과 그 병행구들(창 4:1; 창 19:8; 민 31:17; 민 31:35; 삿 11:39; 삿 21:11; 왕상 1:4; 삼상 1:19)에서 남녀 쌍방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남색(창 19:5; 삿 19:22)이나 강간(삿 19:25)과 같은 성적 도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h)  야다/ 기노스코는 '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맺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대면하여 모세를 아신다(출 33:17; 신 34:10).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렘 1:5) 어떤 민족을(암 3:2) 아실 때 하나님께서 그를 선정하시거나 선택하신다(참조: 민 16:5 70인역본). 

선택으로 이해되는 이 지식은 은혜롭고 자애로운 것이지만 이것은 인격적인 응답을 요구한다.

(i)  야다/ 기노스코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지식 외에도, 다른 신들을 아는 것이든(신 13:3; 신 13:7; 신 13:14) 여호와를 아는 것이든(삼상 2:12; 삼상 3:7) 간에,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렘 10:25) 선지자들에 의하면,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렘 4:22). 

애굽의 재앙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애굽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 보내졌다(출 10:2 등). 

그는 그가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사 60:16) 그들을 파멸시키시고(겔 6:7) 회복시키실 것이다. 

특히 선지자 에스겔은 위협할 때,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는 어구를 사용한다(겔 6:7; 겔 6:10; 겔 6:13; 겔 6:14; 겔 7:4; 겔 7:9;겔 7:27 등).

(j)  요약하면 희랍인들이 초연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사물의 형이상학적 본질에 사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구약성경은 지식을 끊임없이 인격적인 만남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과 창조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보고서, 우리가 이 언급들을 존재론적 추론으로 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믿음의 선포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역사적 과거와 약속된 미래 즉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 지상의 영역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찾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배와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과 요구를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참조: E. D. Schmitz; Bultmann).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기노스코는 신약성경에서 22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기노스코의 용법은 헬라의 용법과 구약성경의 용법과 매우 유사하다.

(a)  '느끼다, 간파하다'(막 5:29; 눅 8:46),

(b)  '주목하다, 알아 차리다'(막 8:17; 막 12:12; 마 26:10; 고후 2:4; 요 5:42; 요 8:27),

(c)  '인정하다, 인지하다' recognize(눅 7:39; 마 12:15; 마 22:18; 갈 3:7; 약 2:20; 요 4:1; 요 5:6; 요 6:15),

(d)  '듣다, (들어서)알다'(막 5:43; 막 15:45; 눅 9:11; 행 17:13; 행 17:19; 빌 1:12; 빌 2:19; 요 11:57; 요 12:9; 마 10:26과 병행구; 행 9:24; 빌 4:5).

(e)  '확증하다, 확실히 하다, 확인하다' confirm(막 6:38; 막 13:28 이하; 눅 1:18; 고전 4:19; 고후 13:6; 요 4:53; 요 7:51).

(f)  ① 알아채고 있다(의식)라는 의미에서 '알다' know(마 24:50와 병행구; 눅 2:43; 눅 16:4; 히 10:34; 계 3:3; 요 2:24 이하; 요 7:27; 요일 3:20).

② 또한 익히 앎이나 아는 사이라는 의미에서 '알다'(마 25:24; 눅 12:47 이하; 눅 16:15; 행 1:7; 롬 2:18; 롬 7:1; 고전 5:16; 요 1:48; 요 7:49).

③ 그리고 이해라는 의미에서 '알다'(눅 18:34; 행 8:30; 고전 14:9; 요 3:10).

(g)  '구별하다, 분별하다' distinguish를 의미한다.

고전 14: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h)  '~하는 방법을 알다' know how to.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i)  경험을 통하여 '알다, 깨닫다' find out(요 13:58; 요 15:18; 요 19:4; 요일 2:3; 요일 2:5).

(j)  '~와 관계를 맺다' ① 마 1:25; 눅 1:34에서 성적인 관계에 대해 사용되었다.

② 마 7:23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와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다. ③ 고후 5:21에서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가 죄에 대해 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이란 선언이 범죄 행위와 반어법을 나타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④ 롬 7:7에서도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라는 문구는 '율법이 없었다면 인간인 나는 죄와 본질적인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의역할 수 있다.  ⑤ 고후 5:16에서 '~와 관계가 있다, ~와 관계를 맺다, 개인적으로 알다'를 나타낸다. 이 구절의 의미는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된다. 상반절에는 오이다멘("우리가 아노니")이 나오며, 하반절에는 기노스코가 에그노카멘("우리가 알았노니")과 기노스코멘("우리가 아노니")의 형태로 나온다.

(k)  고전 5:11-21에서 바울은 자기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며 사도직을 공격하는 적대자들과의 논쟁에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바울에게는 사도라고 확증할만한 눈에 보이는 영적인 특성, 예를 들면 무아지경의 현상들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고전 5:13). 

그들은 그를 자기 자신만을 칭찬하는 '허풍선이'라고 비난했던 것 같다. 

바울은 고전 5:11("우리가 ... 사람을 권하노니")과 고전 5:12("우리가 ...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에서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바울의 변호 중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그래서 상상된, 눈에 보이는 영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언급도 부분적으로 들어있다(고전 5:14 이하).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본 성령과 능력의 분명한 증거에 따라서 지금부터-모든 가치의 전도, 즉 시대의 전환점을 의미하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 이후로-"우리가 ...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못하노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전 5:14). 

이것이 얼마나 명백한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 바울은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 수 있는 언명을 고전 5:16 하반절에 삽입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즉 그와 그렇게 관계하지 않고 오직 우리가 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만 관계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주이시며, 그가 주님이시라는 것은 외면상으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과 사도라고 하는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것 외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판단과 일반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준에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직 새로운 피조물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외적 현상에 의한(엔 프로소포, 고전 5:12) 판단을 포함하여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 5:17). 이 논쟁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고후 5:16에서 그가 지상의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았다는 것을 확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역사적 예수님의 의미와 관계를 띠고 있지 않은 것이다.

(l)  기노스코는 '인정하다, 알아주다'를 의미한다.

① 고전 4:19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가 갈 때 교만한 자의 말이나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② 계 3:9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높임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이방인?) 기독 교회에 와 보면 부활하신 이가 그들을 사랑하심을 인정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3). 이렇게 하심으로서 그는 유대인의 종말론적 소망을 뒤짚어 놓으셨다(참조: E. Lohmeyer).

③ 롬 7:1에서 "법을 아는", 롬 2:18; 행 22:14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와 같은 문구들은 단순히 이론적인 지식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어 인간의 순종을 요구한다는 것에 대한 인지를 암시한다.

④ 요 7:29에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한 바리새인들의 말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잘 다듬어진 랍비 학자들의 비웃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참조: SBⅡ 494-521).  이것은 일반 백성들이 실제로 율법을 알아 율법에 순종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추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기록하면서 요한은 여기서 율법이 바로 그들 자신을 지적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비꼬는 것이다(참조: 요 7:42; 요 5:29 이하; 요 11:49 이하). 요 7:51에서는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⑤ 롬 1:21에서 하나님을 알았던 자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졌다는 말은 헬라 사상의 견지에서 모순된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들의 허망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결과다(참조: 지혜서 13:1).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찬미와 감사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부한 이교도들은 이 지식을 단순한 지적인 활동으로 격하시켰으며 그들이 지혜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상 어리석음일 뿐이었다(롬 1:22 이하). 

이교도들이 분명히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은 핑계할 수 없게 되었다(갈 4:9; 요 1:10; 고전 1:21; 갈 4:8).

⑥ 엡 5:5; 약 1:3; 약 5:20 등에서 지식에 관한 명령과 권유는 이 은사를 붙잡아 변화하는 생활 상황에서 이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⑦ 눅 10:11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인정해야 한다. 

행 2:36에서 "이스라엘의 집"은 오순절 사건에 비추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 24:43의 비유에 나오는 명령문도 참조하라.

⑧ 고후 8:9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즉 "부요하게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을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이것을 리쯔만(Lietzmann)이 해석한 것처럼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관대하심의 본이시다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H. Lietzmann, An die Korinther).

(m)  기노스코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시는 지식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딤후 2:19(민 16:5을 인용함),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똑같이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 

이 지식은 영원히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유효한 것이며 죄와 불순종에 대한 승리이다. 롬 10:2은 이에 대한 일종의 상대 구절이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유대인의 열심을 인정하긴 하지만 이것이 카타 에피그노신("[참된] 지식을 좋은 것")은 아니다(참조: Arndt, 291).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보다 깊이 통찰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지식은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지식과 인지이다"(E. Gaugher, Der Brief an die Romer).

(n)  기노스코는 어떤 구절에서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① 마 13:11(참조: 막 4:11TR)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천국의 비밀"에 관한 감추어진 지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지식이 그들을 그 외의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비유의 권위 있는 해석가가 되게 했다.

롬 6:6에서는 신학적인 진리에 관한 지식, 예를 들면 세례에 관한 특별한 가르침에 대한 지식까지도 삶으로 나타내는 순종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지식의 명백한 목적은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에 있는 것이다.( R. Bultmann; E. D. Schmitz).

※ 영지주의와 논쟁에서 나타난 용법 등.

신약성경 시대에는 자기들이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전 1:18-2:16; 고전 13:12 이하; 골 2:8; 딤전 4:7; 딤전 6:20).

신약성경 기자들은 자주 사도적 케뤼그마(khvrugma, 2782: 선포, 전도)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순례 설교자들과 충돌하곤 했다. 

디모데는 이른바 거짓된 지식(그노시스)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도록 명백히 경고받고 있다(참조: 딤전 6:20).

계 2:24에는 "사단의 깊은 것"을 배웠다고 주장했던 적대자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 기자는 풍자적이면서 올바른 비평적인 판단을 가지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배웠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에 항변했던 것 같다(E. Lohmeyer).

(a)  바울 서신.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주장하는 지식은 이처럼 바울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 

이것은 고전 15:34과 비교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아그노시안 ... 데우)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바울은 그가 지식으로 이해한 것을 설명하라는 강요를 받은 것이다. 

그는 지식을 이미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오직 수동적으로만 표현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았다(갈 4:9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이라는 어구를 첨가시킴으로서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사상을 시정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이러한 것은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이전의 어떤 능동적인 이해와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다(고전 8:3). 하나님에 대한 완전하고도 참된 지식은 오히려 종말론적 약속과 기대의 일부이다(고전 13:12). 

바울은 육을 입고 지상에 오신 존재를 간단히 무시해 버림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알려진 것과 인간이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일치시키는 영지주의자들의 에스카톤(목적)에 대한 환상적 기대를 완전히 거부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를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을 전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노스데나이(하나님에 의해 알려진 것)는 선택을 포함하고 있다(참조: G. Bornkamm). 

제 아무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서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서 전달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주신 영이다(참조: 고후 4:6). 

에스카톤 이전에는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빌 3:10; 참조: 골 2:1 이하). 

그러나 그리스도는 신학적인 사색을 통해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에 의해서 만나지게 될 때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될 때 알려진다(빌 3:8).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된다. 이러한 고백이 없는 곳에서 지식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전 14:38).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 Love은 하나님에 의해 아시는 바가 되는 것이다(고전 8:3).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복종과, 죄의 주권으로부터의 해방(참조: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0, 참조: 롬 6:3)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는데 열심히 봉사하는 곳에서 구체화되는데, 한편으로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의 약속된 부활에 이르려한다(빌 3:10). 참된 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도의 증거를 통해 어느 곳에서나 나타내셨던 지식이다(고후 2:14). 

이것은 최종적으로 완성된 지식은 아니다. 지금 이 지식은 단편적일 뿐이지만(고전 13:12) 완성을 기대한다. 

바울이 몬 1:6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지식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영지주의자들은 교만하여 이 지식에 대한 어떠한 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풍자적으로 요구했다(고전 14:37). 

이 모든 점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의 논법이 본질적으로 구약성경적 지식 개념의 범위 안에 머물러 있음이 분명하다. 

동시에 그는 이 개념을 종말론적으로 확대하여 완성시켰다.

(b)  요한의 기록.

지식이 예수님과 요한 자신의, 그리고 요 10:14 이하에서는 예수님(아들)과 하나님(아버지) 사이의 상호 내적인 친교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영지주의적 배경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불트만(R. Bultmann)이 그의 저서(The Gospel of John, 1971, 380 이하)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것이 헬라의 신비주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셈족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을 친교로 묘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알고 있는 자, 즉 지식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사자와 완전한 초월자로 알려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동등성에 의거한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적 대조는 세상이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진리의 영"(요 14:17)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언명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미움을 받은 것은(요 15:18; 요 16:2)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제거할 수 없는 구별의 결과로 이해되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마찬가지로 계시의 목소리도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인식되어질 수 없다(참조: 요 8:42-43).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며, 영생과도 동일시되었다(요 17:3). 

구원을 가지고 오는 이 지식은 외부로부터의 부르심, 즉 이해력, 말하자면 진리 되신 분을 아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도래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참조: 요 5:20).

지식에 관한 요한의 언어와 요한의 견해가 영지주의의 용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만약 우리가 기독교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자들과 이 메시지를 반대한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표현하는 형태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의 목적은 영지주의자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영지주의자와 직면하여 자기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그를 공박했다. 이것이 복음을 신화로 만들거나 요한을 영지주의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었으나(참조: 요 1:18), 하나님은 그의 보내심을 받은 자, 즉 그 아들에게서 알려지게 될 것이다(눅 10:22). 

그는 육체가 되셨던 로고스(말씀)이시다(참조: 요 1:14; 요일 1:1-4).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 14:9; 요 12:45). 

그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도 알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그를 이미 알았고 또한 보았기 때문이다(요 14:7). 

따라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행해질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교제가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교제에 상당하기 때문이다(요 10:15). 

이 두 가지 수준의 교제는 기노스코로 표현된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람들 사이에 나누는 교제는 서로를 아는 지식에 의해서 효과적인 교제가 되지만, 이 교제가 영지주의에서와 같이 인간을 신격화시키거나 인간을 이 세상과 역사에서 완전히 제거시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한에게 있어서 지식은 한 분이신 하나님과 역사적인 통로를 통해서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그 형태를 취한다. 

자기 아들을 보내심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요 17:23; 참조: 요일 4:19 이하)과 세상에 대한(참조: 요 3:16)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아들은 자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척도에 따라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다(참조: 요 15:9; 요 17:26). 

따라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지식은 역사의 영역 안에서 사랑으로 표현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아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입증하셨듯이(요 14:31), 그를 아는 자도 하나님의 명령, 무엇보다도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요일 4:7 이하; 요일 2:7-11) 명령을 지킴으로서(요일 2:3 이하), 또한 죄를 짓지 아니함으로써(요일 3:6), 자기의 지식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노스코는 두 가지로 적용된다. 

첫째로, 이 지식은 아들의 보내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을 의미하며(요 17:8; 요일 3:6), 둘째로는 선포된 메시지에 복종하는 것으로도 묘사되는 이 지식에 기초한 사랑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요일 4:6). 

이러한 지식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영원한 생명 Life이 되었는데(요 17:3)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에서 유래된 역사 속에 있는 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요한의 개념은 영지주의의 개념과 고의적인 정반대적인 것으로 두드러진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믿음과 지식을 똑같은 수준 위에 두는 것도 적어도 지식과 대조시켜 믿음을 낮게 평가한 영지주의에 대한 논박의 일부분이다. 

요 17:3이 영생을 지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지만 요 3:36은 믿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베드로의 고백에 관한 요한의 견해에서(요 6:69) 우리는 믿음을 지식에 종속하는 제일 첫 단계로 보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요일 4:16에서는 이 순서가 "알고 믿었노니"로 되어 있다. 오직 자기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영지주의의 자기 만족은 형제 사랑(요 13:35)과 단합(요 17:21 이하)에서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는 반대된다. 

더욱이 이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들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세상이 믿게 되고 또한 이 계시가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될 때에만 달성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주(창조)와 구원에 대한 영지주의의 이원론을 요한이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영지주의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이원론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이원론은 우주적인 타락 이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지주의의 견해에 따르면 우주는 완전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구원 받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에게 있어서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참조: 요 1:1 이하; 요일 2:14).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증오로 표현되는 알지 못하는 것은 나타난 계시를 믿지 않는 결과이며(요 8:42 이하) 이것은 결과적으로 죄를 초래한다(참조: E. Kasemann). 

"만약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이 지식을 심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는데 관심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들으려고 할 뿐, 새로운 것을 들어 그들이 전에 알고 있던 모든 것과 그와 아울러 이런 지식의 상태 곧 자기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이해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왜 들을 수 없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영역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것과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점에 대한 이해 부족을 나타내어 줄 뿐이다"(R. Bultmann). 

지식과 믿음에로의 부름은 이렇게 세상을 위해서도 남아 있다. 아들을 보내심으로 나타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실제적인 것으로 나타나서 실재의 새로운 차원을 연 것이다. 

요한의 어휘가 영지주의와 명백히 유사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의 주제는 영지주의의 신화적 사변보다는 구약성경의 전승에 나오는 지식의 개념과 훨씬 더 가깝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참조: E. D. Schm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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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 . 디카이오쉬네 테우(δικαιοσύνη θεού) :: 율법 행위나 윤리적 행위나 종교적 행위에 의한 인간의 의와 구별됨....여기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1) 하나님의 본성으로서의 의(롬 10:3, 사 5:16, 45:23, 24, 46:13, 51:5, 신 32:4, 시 71:15-16, 119:142)라는 설(J. Calvin, J. Barmby), (2) 하나님의 본성이 구원에서 나타난 것,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롬 4:13, 10:6, 10, 사 45:25, 51:5, 시 98:2, 빌 3:9, 히 11:7)이라는 설 (3) (1)설과 (2)설의 종합, 즉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구원 역사라는 설(롬 3:21, 22, 26, 사 51:5) 등이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시 14:1-3과 53:1-3의 인용)는 말씀을 볼 때, 인간을 의롭다고 하실 분은 “영원한 의의 본성”(시 119:142)을 지니신 하나님밖에 없으므로 (3)을 취해야 함.. 이 점은 계속되는 표현으로도 뒷받침 된다.
---“나타나서”는 아포칼뤼프테타이(ἀποκαλύπτεται)로서 ‘둘러씌웠던 보자기를 벗긴다’는 뜻으로 숨겨져 있는 것을 밝히 드러낸다는 말. “현재형이 의미가 있다. 말씀의 설교에서 되는 현재적 실현을 지시한다. 물론, 그리스도의 속죄 사실의 놀라운 실현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져 있다. 복음 없이는 감춰져 있던 것이 복음 안에서 종말론적으로 계시되었다”(전경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란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과 족장들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이해되었다(히 11장). 그러나 그 충분한 방법과 방식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뤄지기까지는 계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의 에크(ἐκ)는 대개 ‘출처’를, 에이스(εἰς)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믿음에서(으로부터) 믿음으로(에)’로 보아야 할 것... 이 표현에 대해 (1) 구약성경의 믿음에서 신약성경의 믿음으로, (2) 낮은 믿음에서 높은 믿음으로(M. Luther, “Malancthon, Shaff”2)), (3) 복음을 받는 믿음에서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는 믿음으로, (4) 고백하는 믿음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믿음으로(Augustine), (5)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거기에 응답하는 우리의 믿음으로(“Ambrose”, K. Barth), (6) 믿음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에게(E. F. Harrison, p. 52), (7) 강조적인 의미에서 처음도 그리고 마지막도 믿음뿐, 즉 ‘하나님의 의’에 응답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등의 견해가 있다. 본서나 갈라디아서 등의 바울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믿음’의 관계를 보아 (7)설을 취함이 옳다....((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생생하게 발휘되는 믿음 -- 내주하시는 분께 감응된, 사랑의 그리스도께서 움직이고 운행하심따라 자극 받고 반응함의, 하나 된 동기로 발동-작동-증강-역사하는 사랑으로 나타나는 , 오직 Q의 사랑 붙좇음-교통-상호 교환을 통해 알며-사랑하며-누리며-섬기며-나타낼 바 사랑의 믿음]으로 말하고 싶다)) ....케제만(E. Ka\"seman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표현이 셈어적이요 수사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Lietzmann, J. Weiss, Ridderbos)은 “악에서 악으로”(ἐκ κακών εἰς κακά:렘 9:3), “죽음에서 죽음으로”(ἐκ θανάτου εἰς θάνατον: 고후 2:16), “영광에서 영광으로”(ἀπό δόξης εἰς δόξαν: 고후 3:18) 등에서 드러난다. ·이 어법은 그 위치상 주어는 될 수 없고, 또한 사실상 동사와 연결될 수도 없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앞의 말들과는 다만 간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의 의미에서 ‘깨뜨려지지 않은 연속성’ (Fridrihsen)을 분명히 드러낸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새로운 세계의 차원’(Stuhlmacher)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님의 의의 계시는 복음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오직 믿음의 영역에서만 실현된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바울 자신은 빌립보서 3:9에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설명하였다. 즉, {율법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의롭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신 것이다”(R. C. H. Lenski).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칭의의 사상적 배경은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법적인 의미를 갖는다(출 23:7, 사 5:23). 다이스만(A. Deissmann)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소를 당한 인간에 대한 고소가 취하된다. 그는 정죄가 아니라 자유로 판정된다. 이러한 무죄 석방이 바울의 칭의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칭의란 죄가 없는 자에 대한 무죄 석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으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M. Luther).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다(롬 3:12, 22, 26). “이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즉 생명에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J. S. Stewart).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 혹은 선포한 의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J. S. Stewart, J. Knox, H. A. A. Kennedy). 이 선물은 과거에 주어진 것이거나 미래에 주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다는 무죄 선포도 현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칭의의 완전한 소유는 미래의 영역에 놓여진다. 이 점에 대해서 다이스만(A. Deissmann)은 “우리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사상에서 현재적 소유의 의식과 미래의 충분한 소유의 기대 사이의 역동적 긴장을 본다.”라고 하였다.}1)
---바울은 이제까지 해 온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하박국 2:4을 인용하여,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하였다(참조: 갈 3:8-9). 이 예언의 말씀은 갈라디아서 3:11과 히브리서 10:38에도 인용되었는데, 본래는 이스라엘 민족이 갈대아인들의 침략으로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 예언의 말씀을 근거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재 확증한 것이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의 생활의 유일한 원리와 방법은 자신의 의지나 이성이나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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