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마28장
===살아나시다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경비병의 보고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제자들에게 할 일을 분부하시다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엑수시아....부활하사 그 어떤 제한도 더 이상 받지 않은 분, JC뜻대로 하실 수 있는 무제한적 자유]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보십시오,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behold, I am with you all the days until the consummation of the age......and lo, I am with you always [remaining with you perpetually—regardless of circumstance, and on every occasion], even to the end of th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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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8:18...바이-가쉬 야후슈아 비예다바르 알레이헴/엘로힘 레오메르 나탐 리 콜-쉴탄 베-샤마임 우-베-아레츠 ] ...[마28:19...베-아탐 레쿠 엘-콜-하고임 바-아쇼 탈미딤 우-테발르템 오탐 레솀-하-아브 베-하-벤 우-루아흐 하-코데쉬] ... [마28:20...베-라마드템 오탐 리-쉐모르 에트-콜-아쉬르 체비티 에트켐 베-힌네 아노키 이트켐 콜-하야밈 야드-케츠 하-올람 아멘]
[마28: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베-아탐 레쿠 엘-콜-하고임 바-아쇼 탈미딤 우-테발르템 오탐 레솀-하-아브 베-하-벤 우-루아흐 하-코데쉬] == Q 믿는자, 곧 제자된 엘로힘들로 하여금 [그 안에 계신 아버지-아드님 성령으로 완전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성숙케 하라... == ##베-아탐<바브, 알렙-타브-멤>--Q의 모든 속성 담긴 그릇 ##레쿠<라멛-카프-바브(중)..십자가 성령 붙좇이 하나나됨으로써 Q속성 그대로 Q과 영적 본질이 똑같아질바, 말씀으로 조성될지니(창1:1-계22장 마지막절까지모든 말씀그대로 이루시리니) >--가르침 그대로 수용/적용되고 영적 변화 이룸 ##엘-콜-하고임<알렙-라멛, 카프-라멛, 헤이-김멜-바브(상)-요드-멤...조성하시는Q, 성령 여호와-그 참생명-인격의 사람 되고 그분거처인바, Q말씀의 참제자=판박이 엘로힘-진복자(아쉐르)-생명가지 JC산출-확장인바 예루살렘/유다/사마리아/참된 아레츠(아드)들이여> = Q의 가르침괴 인도 받고, 성령의 호흡하심으로 사는, 엘로힘들 ##바-아쇼<바브, 아인-쉰-바브(상)> --Q의 영분배/부으심 받고 그분의 인격으로 창조함 받아 연결된자 ##탈미딤<타브-라멛-멤-요드-달렛-요드-멤>--가르침 받은 그대로, 완전한 복사판 이룬바, 구별됨의 사역 받아 완전케 된자 ##우-테발르템<바브(중), 테이트-베이트-라멛-타브-멤>--지혜의 풍성함으로 인도함 받아 완성된 그릇 ##오탐<알렙-타브-멤>--Q속성이 그대로 담겨진 그릇 ##레솀-하-아브<라멛-쉰-멤, 헤이, 알렙-베이트>--Q의 인도따라 부어주심 충만한 그릇안에 계신 아버지 ##베-하-벤<바브, 베이트-눈>--아드님 ##우-루아흐 하-코데쉬<바브, 레이시바브(중)-헤이트, 헤이, 코프-달렛-쉰> --성령
[고후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헤세드 하-아돈 야후슈아 하-마쉬아흐 베-아하비트 하-엘로힘 바-헤브라트 루아흐 하-코데쉬 임-콜르켐.아멘]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동행하심이 함께 하시기를..아멘 == ##헤세드<헤이트-싸멕-달렛...은혜> ##하-아돈<헤이, 알렙-달렛-바브(상)-눈...주님> ##야후슈아<요드-헤이-바브(중)-쉰-아인...예슈아> ##하-마쉬아흐 <헤이, 멤-쉰-요드-헤이트...메시아/기름부음> ##베-아하비트 <바브, 알렙-헤이-베이트-타브.....완전/온전한 사랑> ##하-엘로힘 <헤이, 알렙-라멛-헤이-요드-멤....엘로힘> ##베-헤브라트 <바브, 헤이트-베이트-레이시-타브...교통하심> ##루아흐<레이시-바브(중)-헤이트...Q의 영> ##하-코데쉬<헤이, 코프-달렛-쉰...거룩한> ##임<아인-멤...함께>-콜르켐<...동행...카프-라멛--카프-멤> ##아멘<알렙-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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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자에게 부여된 불가침의 자격/신분-권위/권한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통제/침범 불가능한 그의 행동의 자유'를 의미하는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
.....이는 성경에서 "특별히 특별한 권위를 받아 지닌 사람이 "그가 속한 바 그 나라 권한으로 그 나라 밖애서도 자유로이" 행동할 개인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다른 나라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그 나라의 권리 또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엑수시아ἐξουσία와 뒤나미스δύναμις...– 개역(개정)에서의 번역문제
[개역(개정)]판 신약에서 ‘권위’, ‘권세’, ‘권능’ 등의 원어를 살펴보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이거나 ‘뒤나미스δύναμις’인 경우가 많다. .
......그런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자격이나 권리 등의 뜻이고,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적인 힘이므로 이 두 낱말은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데 [개역(개정)]은 ‘권위’, ‘권능’, ‘권세’ 등을 일관성없이 사용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에 읽을 때 어려움이 있다.
......일차적인 원인은 번역자가 두 낱말의 의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데 있겠지만(신학적인 이유), 그 한자어들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불분명성도 그 못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어휘 자체의 문제)
.......한자 ‘權(권)’은 ‘자격’, ‘판단/판정’ 등의 뜻을 갖고 있어서 이 한 음절만으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를 나타낼 수 있다. [개역개정]에서는 달라졌지만 [개역]에서는 그 예들을 찾을 수 있다.
//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21; 개역개정은 ‘권한’) //
//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4-6; 개역개정은 ‘권리’) //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히 13:11; 개역개정은 ‘권한’) //
.........여기에 ‘힘’의 뜻을 갖는 ‘威(위)’, ‘勢(세)’, ‘能(능)’ 등이 붙어서 ‘권위’, ‘권세’, ‘권능’이 되었으니 이 낱말들은 출생부터 구별되어야 할 두 개념이 붙어 있는 말이다. 이런 낱말들을 사용하여서 구분하여 나타내야 할 말들의 대응어로 삼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요약하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에는 ‘권위’나 ‘권세’보다는 차라리 ‘권리’나 ‘권한’이 나아 보이고 아예 ‘자격/신분’으로 옮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정]역에서는 ‘권리’나 ‘권한’을 비교적 더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주된 의미로 ‘권능’이나 ‘권세’로 볼 수 있는데 어감상 오해의 소지가 좀 줄어들겠지만 이 역시 (dynamic, dynamite로 용례가 확장되고 있지만, 집중적-폭발적-기적적 능력)으로서의 공급 받는바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
>>1.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공급-부여해 주신바, 행동과 말에 있어서 참되게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바] 자격, 영역, 소속, 원천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제한 받지 않고 어떤 일/말을 할 수 있는 자격/신분이 있을 때 엑수시아가 있는 것이다. ......위에 보인 것처럼 ‘권리’나 ‘권한’으로 옮기는 것이 좋고 영어로는 authority, right, capacity 등이 적당하다. ‘권능’으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오역이라고 본다. 몇 본문들을 살펴본다. 본문은 모두 [개정개역]이다.
(본문1)//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 9:6) //.....여기 ‘권능’은 오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힘’이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병행본문은 ‘권세’로 옮겨서 좀 낫지만 두 경우 다 권리나 자격으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10) //
(본문2)//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9:8) //......본문1에서 마태복음의 이어지는 이 본문의 ‘권능’ 역시 마찬가지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본문3)//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이 본문도 마찬가지다. 얼른 생각하면 뒤나미스δύναμις가 어울릴 것 같은 자리인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가 사용되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축사와 신유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주신다.
===아래는 [엑수시아]를 ‘권위’ 또는 ‘권세’로 번역한 예들로, 다행히 문맥의 뜻을 붙들고 있다.
//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 //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 //
>>2.‘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로 나타난/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인 동력으로서] 공급하시는 바 근원적 힘이며, 그래서 어떤 상태나 위치를 변경시킬 수 있는, 표현하고 드러나게 하는, 크고 작은 실제 능력이다. 그런 뜻으로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힘이나 능력을 실제로 소유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존재나 인격을 가리킨다.
===‘권능’으로 자주 번역되지만 다른 낱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역은 (그 근원이시며 공급하시는 분의) power, might, strength, ability 등으로 옮기는데 복음서에서는 자주 (결과로서) miracle로 번역한다. .....뒤나미스의 유사/유의어로는 크라토스(개인 아니라 모여진, 대중-집단적 힘/세력/통치력/인권-...데모크라시가 유래됨) κράτος, ::: 이스퀴스(힘>능력...타고난 신체적 힘이나 전인적-개인적 힘/능력의 의미로 주로 사용) ἰσχύς, ::: 에네르기아(운동력, 활동력) ἐνέργεια 등이 있다.
(본문1)//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 ‘권세’는 애매한 번역이다. ‘능력’ 또는 ‘힘’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 가이사가 갖고 있는 힘이 실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갖고 계신 힘이 실제적이고 진짜 힘이라고 교회가 고백하는 것이 이 송영의 의미이다.
(본문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이 본문의 ‘능력’은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뜻을 잘 드러낸 번역이다. 뒤나미스는 실제로 작용하거나 작용할 수 있는 힘이다. 사두개인이 믿든 믿지 않든 부활의 능력이 아버지께 있다. 아버지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실제적인 능력이므로 부활도 실재다.
(본문3)//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이 ‘재능’ 역시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번역어이다. 대부분의 영역은 ability로 번역하였고 SLT는 power로 번역하였다.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는 그 달란트를 다룰 수 있는 ‘능력’따라 맡긴다.
(본문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권능’은 증인이 될 수 있는 ‘자격/권위’가 아니라 증인이 되는 ‘힘’이다. 제자가 될 자격/권위 – 엑수시아ἐξουσία – 는 주께로부터 받고 (그렇게 그리스도로 실제 살아 가는, 살아계신 그분의 삶 그대로 사는바 반사-반영-달구어진 담지자인 제자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실지로 사는자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담지자이기에, 늘 새오리 그 안에 담아주시며 전하라 하시는 그 복음 = 생명 말씀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넘겨줌, 그 능력이야말로 뒤나미스임] 증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받는다. 성령께서 주시는 증인 능력은 실제적인 능력이다.
......아래는 다소 다른 낱말이 사용된 경우들이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퓔레 = 대문/문. πύλη’)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
//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카텍수시아조=카타+엑수시아조..압제하다, 권세 부리다) κατεξουσιάζω’)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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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개요)
앞 장(章)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 흑암의 권세들과 교전하시고, 그들의 공격을 받으시고, 또한 그들을 맹렬하게 공격하신 것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승부는 막상막하인 것처럼 교전 당사자들 사이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드디어 승리는 적군 편으로 기울어졌으며, 우리의 챔피온은 그들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사로잡히게 하셨고 그의 영광을 원수의 손에 넘겨주셨다. 무덤 속에 계신 그리스도는 다곤의 신전 속에 있는 법궤와 같다. 흑암의 권세는 마음대로 세도를 부릴 것처럼 보여졌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깨어나셨다(시 78:61, 65).
본 장(章)에서 우리의 화평의 왕은 또 다시 전렬을 가다듬고 무덤에서 나오고 계시며, 정복자 아니 정복자 이상이신 그는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계시다. 법궤는 일개 죄수이지만 다곤은 그 앞에서 쓰러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누구도 거룩하신 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종교의 한 주요한 근원이 되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반드시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증거는 사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데 본 장(章)에 나오는 것은 그 중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보다 더욱 많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사실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면,
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천사의 증거(1-8).
Ⅱ. 그리스도께서 친히 여자들에게 나타나심(9, 10).
Ⅲ. 파수를 보고 있던 원수들의 보고(11-15).
Ⅳ.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또한 그가 그들에게 주신 사명(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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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시다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부활(1)(마 28:1-10)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 우리는 여기에서 그의 부활에 관하여 "천사"와 "그리스도" 자신이 증거 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만일 그 일이 그렇게 일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백성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즉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보았던 것처럼, 천사에 의해 돌이 굴러지고 그리스도의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났더라면 그 사실은 논쟁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마음을 열고 주를 앙망하며 그분의 놀라우신 지혜를 신뢰함으로써 이제 유한하고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친히 배려하셨음을 믿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로 하여금 "일어나신"(risen)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죽음에서 "일어나시는"(rise) 그분을 보게 하지는 않으신 무한하신 지혜에 대해 따지러 들지 말자.
그의 성육신이 신비였던 것처럼 이 "두 번째 성육신"(만일 우리가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즉 그리스도의 몸을 [차원을 초월하여 시공간의 제한을 넘어선,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의 빛으로 옷 입으신] 존귀한 신분으로 "새롭게 만든"이 부활도 신비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밀하게 행해졌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과 그가 "하신 말씀"에 의해 확인된 그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셨다(눅 24:6, 7 -44 ; 막 16:7) ; 막 16 : 7).
이 사실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한다. 내용별로 살펴본다면,
Ⅰ. "신실한 여자들"이 "무덤에 옴."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그들은 "언제"왔는가?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왔다(1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시간을 결정하고 있다.
(1) 주님은 그가 죽으신 지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
그 시간은 그가 종종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이었으며, 또한 그는 그 시간을 지키셨다.
그는 제 6일 저녁때에 장사되었고 다음주 첫날 새벽 아침에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그는 무덤에 약 36시간 내지 39시간 동안 머물러 계셨다.
그가 그렇게 오래 머물러 계셨던 것은 그가 실제로 그리고 참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머물러 계시지 않으신 것은 그로 하여금 "썩음을 보지"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삼일만에 살아나신 것은 선지자 요나의 모형에 부합하시고(마 12:40.....요나의 표적, 곧 부활의 주하나님, 하나님의 참생명,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심!!), "여호와께서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로다"(호 6:2)라는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
(2) 그는 "유대인의 안식일 이후에" 살아 나셨으며, 유대인의 안실일, 그것은 유월절─안식일(passover-sabbath)이었다.
그 날 종일을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것은 유대인의 절기와 의식적인 법의 다른 부분들을 폐지하시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의 백성들은 이러한 규례들을 지키지 말아야 하며, 그가 "무덤에 계실"때 하셨던 것 이상으로 유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엿새 되던 날"에 그의 일을 마치셨다. 그는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레 되는 날, 곧 유대인의 유월절-안식일에 그는 [무덤속에서] 휴식을 취하셨고, 다음 주 첫날에 말하자면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셨고 새로운 역사를 수행하셨다. 그러므로 "새 달"(new moon)이나 "유대교적인 안식일"과 관련하여 우리를 판단하지 말게 하자.
이러한 것들은 실로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다. 그 "본체"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또한 성도들이 무덤에 누워있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육체를 쉬는] 안식일임을 살펴 볼 수 있다(이와 같이 유대인의 안식일은 육체적으로 쉬는 날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에 "자신의 일에서부터 쉬었다"(욥 3:17).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기인되고 있다.
(3) 그는 "첫날"에 살아나셨다.
첫날에 하나님께서는 "빛이 흑암에서부터 빛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이 날에 세상의 빛이신 그는 무덤의 흑암에서부터 빛났다.
[구약의] 제 칠일 안식일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기에, 그것은 "주의 날"로 불리운(계 1:10) 제 일일 안식일에[곧 기독자의 안식일인 일요일 새벽] JC의 부활안에서 이제 다시 일어났으며, 그 이후로 신약 전체에서 이날 이외의 다른 날이 결코 [주간의 첫날, 독 주님의 날/주의 날]제일일 안식일외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신약 전체에서 이날 이외의 다른 날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또한 이 날은 종종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기독자들이 경건한 모임에서 모든 교회가 함께 기념, 준수하고 있다(요 20:19, 26; 행 20:7; 고전 16:2).
만일 이스라엘이 북방 나라로부터 구출된 사실이 애굽에서 구출된 사실에 대한 기억을 말소시켰다고 한다면(렘 23:7, 8), 하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속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역사의 영광을 무색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보라, 안식일은 창조 역사의 "완성"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창 2:1).
사람은 그의 반역에 의해 "완전하신" 역사를 깨뜨렸으며, 이 완전하신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고 "천지"가 다시 "끝나게"되고 그들 중의 무질서한 "무리"들이 새롭게 형성되고, 이 일이 행해진 날이 "복되고 거룩케 되어지며" 또한 그로 말미암아 제 칠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결코 완전히 교정되지 않았다.
그 날에 살아나신 바로 그분에 의하여(by), 그분을 위하여(for) 만물들은 처음에 창조되었고 지금 새롭게 창조되었다. [[JC를 믿는 우리는 JC안에서 거듭난/중생한 새로운 인류이다!!]]
(4) 주님께서는 그 날이 "되려는 미명에" 살아나셨다.
"셋째 날"이 되었다고 말해질 수 있는 시간, 즉 그의 부활을 위해 정해진 바로 그 시간에 그는 "살아나셨다."
그의 백성들에게서 물러가신 후 그는 적당한 "속도"로 돌아오고 계시며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짧게 줄이고" 계시다.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비록 잠시 동안 그들은 "그를 보지 못하게 될"것이지만 "잠시 후"에는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따라서 그는 가능한 그 잠시 동안의 기간을 준수하셨다(사 54:7, 8).
그리스도께는 새 날이 시작되려는 바로 그 무렵, 곧 "날이 새려는 미명에" 살아나셨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또 다시 비취었다(눅 1:78).
그의 수난은 밤에 시작되었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낮12시부터 오후3시까지] 해는 어두워졌었다. [오후3시경 운명하신] 그는 [어두워져 가는]저녁 미명에[유대인의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 무덤에 놓여졌었다.
그러나 그는 해가 막 떠오르는 찰나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왜냐하면 그는 "광명한 새벽별"(계 22:16), 즉 "참 빛"이시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이 기독자의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또한 "내가 이른 아침에 그를 찾으리라." 말한 다윗의 본보기를 따른 것이다.
2. 무덤에 왔던 자들은 누구인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인데, 그 두 여자는 주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전에 "십자가를 향해 앉았던" 것처럼 "무덤을 향하여 앉아 있었던 자들"이었다.
여전히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여전히 그를 갈망하여 찾고 있었다.
동정녀 마리아가 그들과 함께 있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그녀를 자기의 집에서 돌보았던 "사랑하는 제자"(요한)가 "그 무덤에 통곡하러 가려고 하는"것을 만류하였을 것이다.
그 여인들은[막달라 마리아,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 살로메, 요안나] 무덤안에까지 그리스도를 따라 들어가서 장사됨을 확인하였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무덤 "에"(to), 또한 무덤 "안에"(in)까지 따라 온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마다 "어두운 무덤 가운데 놓여져 있을"때 그가 그들을 동일하게 돌볼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음을 기억하라.
무덤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무덤 속에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과 무덤은 그들 사이에 있는 사랑의 줄을 약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3. 그들은 그 새벽 미명에,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다른 복음서 기자는 그들이 죽은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하여 왔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태는 그들 떠나 있는 동안 무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려고 왔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대제사장들이 거기에 파숫군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그것을 보려고 왔을 수도 있다.
그들이 간 것은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였던 주님을 또한 번 방문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자신들의 남은 정성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의 부활 약속말씀에 대해 어떤 생각도 전혀 없이 무덤에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전에 그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무덤을 찾는 것은 기독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며, 또한 그 무덤이 그들에게 친근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특별히 주 예수님의 무덤을 찾는 것이 그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죄가 매장되어버린 것과 우리의 성화에 대한 모본, 그리고 그 "흑암의 땅"에서까지 찬란히 빛나는 구속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증거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Ⅱ. 그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남(2-4절).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방법에 대한 기사를 찾아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알아야만 할 부활의 방법만이 여기에서 설명되고 있다.
1. "큰 지진"이 있었다.
그가 운명하셨을 때 "그를 받아들였던" 땅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살아나신 지금 "그를 단념하였던" 땅은 그가 존귀하게 되실 때 기뻐 뛰었다.
이 지진은 사망의 줄을 "풀고" 무덤의 쇠사슬을 "떨쳐버리며" 또한 "만국의 보배"를 소개하는 것처럼 진동하였다(학 2:6, 7). 그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표식"이었다. 이로써 "하늘이 즐거워할" 때 "땅"도 역시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유의되었다.
그것은 일반적 부활 때에 땅에 주어지게 될 "전조"였으며, 그 때 땅이 더 이상 "살인자들을 덮어두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산들과 섬들이 옮겨지게 될 것이다.
에스겔서의 기록을 보라,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할" 때에 골짜기에서는 "소리가 나고 움직였다"(겔 37:7).
지금 세워진 바 된 그리스도의 왕국은 땅을 진동시켰으며, "그것을 무섭게 흔들었다."
성결하게 되고 이로써 영적인 생명에로 일으킴을 받은 자들은 그것이 행해지는 동안 "두렵고 놀랐던" 바울처럼 자신의 가슴속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천사들은 종종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 때나 그가 시험받을 때, 그가 고민하실 때 종종 그를 보살폈다.
그러나 십자가 상에서는 그를 보살피는 천사를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버리셨을"때, 천사들은 그에게서 물러가 버렸다.
그러나 땅의 기초가 있기 이전에 그가 가지셨던 영광을 다시 찾으신 지금, 보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를 섬기고 있다."
3. 천사는 와서 돌을 문에서부터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 자신의 힘으로 능히 "그 돌을 굴려낼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가 천사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하심은, 그에게 전가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실 임무를 가지셨고 또한 그러한 전가된 죄 때문에 사로잡힌 바 되셨으므로 그는 [손수]감옥을 부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땅한 "법적인 해제(discharge)"를 하늘로부터 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그는 감옥을 부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수종드는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감옥문을 열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이 일은 만일 그가 "완전하신 대속"을 이루지 않으셨다면 결코 행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우리 대신 내어 줌을 당하셨으므로 그는 "또 다시 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살아나셨던"것이다.
그는 우리의 빛을 지불하기 위하여 죽으셨으며 또한 우리의 채무가 소멸되었다는 증서를 주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의 죄의 ''돌"은 우리 주 예수님의 무덤문에 "굴러져" 있었다(큰 돌을 굴리는 것은 "범죄"를 나타내는 것이다. 삼상 14:33).
그러나 그 신적 공의가 만족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천사는 그 돌을 굴려버리라는 사명을 받았다.
천사는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그 무덤으로부터 "돌을 치웠던" 자들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천사는 그의 해방에 대한 하늘의 승낙과 그로 말미암은 하늘의 기쁨을 암시하였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바벨론과 같이 "그의 죄수들의 감옥을 열어 주지" 않으려고 그 돌을 인봉하였다. 왜냐하면 이 때는 "그들의 때"였기 때문이다.
"약탈한 물건을 전능자에게서 탈취할 수 있느냐?"
그러나 사망과 흑암의 모든 권세는 빛과 생명의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는 비록 그것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인봉"(역주:아마 그들은 산헤드린 공의회의 인을 쳤을 것이다)이었지만, "그 인봉을 깨뜨릴" 권세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비록 그들이 그렇게 큰 권력자의 모임 그 자체였고 무덤입구의 돌에 찍힌 인은 그 권력을 표상했지만, 천사는 "[인봉된] 그 돌을 굴러내 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권능자의 속박들은 제거되고 있다. " 천사가 "돌을 굴러내 버리고" 그 위에 앉은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장애물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승리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천사는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또 다시 무덤에 놓여있는 돌을 굴리기 위하여 지옥의 모든 권세들에게 도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원수들의 반대에 대항하여 그의 휴식의 보좌와 심판의 자리를 일으켜 세우고 계시다. "여호와께서는 홍수 위에 앉아 계신다."
천사는 마치, 원수들의 "사나운" 파숫꾼들을 놀라게 하면서 무덤을 지키는 파숫꾼처럼 앉아 있었다.
그는 여자들을 기다리면서 앉아 있었고 그들에게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4. 그의 "형상은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다"(3절).
이것은 "색깔의 차이"를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세상의 영광들"의 볼 수 있는(visible) 현현이었으며, 이것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찬란하고 눈부신"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수직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마치 "번개 불"과 같았다. "그는 번개를 번득이사 그들을 흩으신다"(시 144:6).
그의 옷이 "흰" 것은 순결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승리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하늘의 궁전은 "깊은 슬픔에 잠겼으며" 이것은 "해가 어두워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나셨을 때 그들은 또다시 "찬미의 옷"을 입었다. 이 천사의 영광은 지금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변화하실 때 그에 대해 표현되었던 것과 동일한 묘사이기 때문이다(마 17:2).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셨을 때 그는 그 영광의 베일을 벗으셨다.
그것은 성도들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이 되는 부활 시에 나타나게 될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5. "수직하던 자들은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4절).
그들은 "군인들"로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담대한 자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천사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무서워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심판하려고 일어나셨을 때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는 탈취를 당하게 되었다"(시 76:5, 9).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친구들에게는 즐거움이 되지만, 그의 원수들에게는 두려움과 혼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떨었다." 이 말은 2절에서 “지진”이라는 말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다. "땅"이 흔들릴 때에, 거기에서 살고 있는 이러한 "땅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흔들렸다." 한편 위에 있는 일들에서 자신의 행복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비록 땅이 옮겨진다고 할지라도 두려움이 없게 된다."
수직하던 자들은 그들이 지키던 자가 살아났을 때 또한 그들이 파수를 보던 자들이 그와 함께 일어나게 되었을 때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자신들의 임무가 실패로 돌아 간 것을 알고는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무덤에 있는 죽은 사람을 지키도록" 이 곳에 배치되었다. 이 일은 분명히 전에 자신들이 맡았던 일들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일이 그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여 곧 무서워 "떨며 죽은 자"와 같이 되어 버릴 연약한 마음을 가진 겁쟁이들에게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감히 얼굴을 바라볼 수 없는 "전능한 천사"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을 알았을 때 심히 놀라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들을 "두렵게"함으로써 그들을 "쳐부수신다"(시 9:20).
Ⅲ. 이 천사가 여자들에게 전한 소식(5-7절).
1. 그는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5절).
특별히 조용하고 쓸쓸하게 무덤 가까이 이른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무덤에 앉아 있는 천사를 그들이 본다는 것은 실로 여자인 그들에게는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천사는 즉시 그들을 "무서워 말라"는 말로 안심시키고 있다.
그 수직하던 자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자와 같이 되었지만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시온에 있는 죄인들로 하여금 무서워하게 하라.
왜냐하면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의 신실한 자손들은 "무서워하지 말라." '선을 행하는" 사라의 딸들은 어찌하여 "놀라 무서워하느냐?"(벧전 3:6). "너희는 무서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을 듣고 놀라지 말라. 이는 너희가 전에 너희 주님이 살아나리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듣고 무서워하지 말라. 이는 그의 부활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떤 해를 가하거나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할까봐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무서워 말라. 이는 너희가 예수를 찾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문에 너희가 친구들임을 알고 있다."
"내가 온 것은 너희를 놀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예수를 찾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그를 부지런히 찾으면 "그를 찾게 될" 것이며 또한 그가 그들의 "인자하신 보상자"이심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열심히 찾는 그 믿음을 하늘은 살피시고 유의하신다. "나는 너희가 예수를 찾는 줄 아노라."
또한 분명하게 이러한 말씀과 같이 "선한 말과 위로하는 말씀으로"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구나."
천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칭찬하기보다는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만 여전히 그를 찾는구나,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호의를 간직하고 있구나."
여기에서 유의할 것..., 참된 신자들은 "비록"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지라도 그를 사랑하고 찾으며 또한 그가 그렇게 못박히셨기 "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찾는다는 사실이다.
2. 천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사실에 대해 확증하고 있다."
그 말은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하였다(6절).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다"는 말은 만일 거기에 "살아나셨다"는 말이 첨가되지 않았다면 그를 찾는 자들에게 좋은 소식은 되지 못할 것이다.
주목하라. "그가 살아나셨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곳에서 그를 찾는 것은 실망케 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위로 가운데서 그를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는 살아나셨다."
우리는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경청하지 말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기에도" 계시지 않고 "저기에도"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을 때는 그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살아나신" 자이신 그를 찾아야만 한다.
(1) 그에 대해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를 찾아서는 안 된다.
"육체를 따라 그리스도를 안 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를 더 이상 그렇게 알지 아니한다(고후 5:16).
그가 육신을 가지셨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육신은 이제 "영광스럽게 된 몸"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그림을 만드는 자(역주:천주교처럼)들은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가 그와 함께 교제하는 것은 그의 말씀 안에 있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롬 10:6-9).
(2) 우리는 큰 "존경심"과 "겸손한 마음," 그리고 그의 영광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를 찾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들어올리셨으며 그에게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무릎과 모든 영혼은 "그 앞에 꿇어야만" 한다.
(3) 우리는 그를, 하늘에 속한 마음 곧 "천적(天的)인 마음"을 가지고 찾아야만 한다.
이 세상에 우리의 집을 만들려고 하면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할 때, 우리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여기에 두지 말고 "역시 일어나서 위에 있는 것들을 찾도록 하자"(골 3:1-3; 빌 3:20).
천사는 이 여자들의 신앙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어 두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① "그의 말씀"은 이제 "성취되었으며," 그들은 이것을 "기억해야만"한다.
즉 "그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천사는 이것을 신앙의 적절한 목적으로 단언하고 있다.
"그는 전에 그가 살아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너희는 그가 진리 그 자체이심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대할 수 있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가 너희에게 장차 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믿기를 주저하고 있느냐?"
그리스도의 말씀은 "현재의 고난"이나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이거나 간에 우리의 기대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결코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억한다면,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덜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이미 받은 것 이외의 다른 복음을 그가 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를 입증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② 그들은 지금 "빈 무덤"을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너희가 들었던 바와 너희가 본 바를 함께 놓고 비교해 보라. 그러면 너희는 믿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은 것을 보면서 그가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고 있다. 너희는 그가 살아나셨다는 사실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와서 그 곳을 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은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가 거기에서 도적질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그가 살아나셨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하라... 와서 신앙의 눈으로 "주님의 누우셨던 곳을 보는"것은 우리에게 퍽 유용하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자신을 낮추신 그의 사랑의 표식을 살펴 보라.
그는 얼마나 "쉽게 그 자리(누우신 곳)"를 만드셨고 또한 우리를 위해 거기에 누우심으로써 얼마나 "영광스럽게" 되셨는가를 살펴 보라.
우리가 누워야만 할 무덤을 바라볼 때, 그것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하여 주님이 누우셨던 무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수리아 사본에는 "우리의 주님"이 누우셨던 곳이라고 되어 있다. 천사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를 "그들의"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들은" "그에게서 이름이 명령되기" 때문이다.
3. 천사는 "그들에게 그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7절).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라."
그들은 무덤을 보고 천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있는 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임무가 부여되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었다"(왕하 7:9).
비록 그들이 위로에 대한 "선(先) 점유권," 즉 그것을 "처음 맛본 자"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해 "점유권"을 가져서는 안 되며 문둥병자(왕하 7:9) 이상으로 자신들의 안일만을 도모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말하러 가야만 한다."
주의할 것..., 우리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즐기는 것에 앞서 다른 사람에 대해 공적으로 유용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1)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맨 처음으로 "그 소식을 들어야"만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당황하게 될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들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의 성도들의 즐거움을 기대하고 계신다.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라."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든지 간에 그들은 너희의 보고를 믿을 것이다.
① 이는 현재 슬픔 가운데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때는 그들에게 있어서 슬픔과 두려움에 가득 찬 실망의 때였다. 그들은 "그들의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게 될 것인가 !
② 이는 그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더욱 질문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먼저 전해진 것은 그들이 사로잡혀 있었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그들을 일깨우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를 찾게 하고, 그가 그들에게 나타날 것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인 암시는 보다 밀접한 탐구를 조장시킨다. 그들은 이제 그에 대하여 듣게 될 것이지만, 머지 않아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점진적"으로 나타내고 계시다.
(2) "그 여자들"은 그 소식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 파송되고 있으며, 따라서, 말하자면 "사도들 중의 사도들"로 임명되고 있다.
이것은 십자가와 무덤에까지 꾸준하게 그를 따라간 그들에게 대해 주어진 영예와 보상임과 동시에 그를 버린 제자들에게 대한 책망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연약한 것들을 택하시고 계시며, 또한 "흙으로 만든" 질그릇에 뿐만 아니라 "연약한" 그릇에도 보배를 담아두신다.
"여자"가 악한 천사의 꾀임에 빠져 "먼저 죄에 빠진 것"(딤전 2:14)처럼, 이 여자들은 선한 천사의 명령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범죄로부터 구원되었다는 것을 먼저 믿게 되었다.
이는 이와 같이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이것은 그들의 영원한 칭송이다) 그들의 성(sex)에 대한 비난을 없애도록 하기 위함이다.
(3) 그들은 이 심부름을 "빨리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왜 서둘러야만 했던가? 그 소식이 시들해지거나 아무 때라도 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제자들, 그들은 지금 슬픔 가운데 빠져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서둘러서 이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 주려고 하였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하여 자신을 낮추고 있었을 때 가브리엘 천사는 위로의 소식을 가지고 "빨리" 날아가도록 명령을 받았다(단 9:21).
우리는 언제나 준비를 갖추고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라) 나아가야만 한다.
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시 119:60).
② 우리의 형제들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하여 또한 고통을 당하는 자와 같은 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하여.
좋은 소식, 복된 것을 지금 주기를 지체하지 말라. "가서 다시 오라. 그러면 내일 내가 주리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빨리 주라.
(4) 그 여자들은 "갈릴리에서 그를 뵈오리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에게 (몸소) 나타나셨다. 이것은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반적인 약속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80내지 100마일 떨어진 갈릴리로 지정되었었다.
① 이는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못하고(아마도 올라올 수 없었던). 갈릴리에 머물러 있었던 그의 제자들에게 대한 "친절"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고 그 곳으로 가려고 하셨다. "나는 네 행위와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거하는 곳을 아시며, 그 곳에 방문하실 것이다.
주목하라... 그리스도의 승귀(exaltation)가 매우 중요하다 하더라도 JC는 그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제자들 중 그 하나라도 결코 잊지 아니하시며 또한 많은 은혜의 방편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는 그들에게 손수 찾아가셔서 기꺼이 은혜스럽게 "자신을 나타내실"것이다.
② 이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면서" 감히 대중 앞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았던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제자들의 연약함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부활후에 함께 만날 장소로 갈릴리를 택하신 이유였으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두려움을 아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또한 가장 위험이 적은 곳을 지정하셨다.
마지막으로 천사는 엄숙하게 자신이 그들에게 말했던 것이 진리임을 확증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너희는 그것을 확증할 수 있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느니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견고하게 되었다"(히 2:2).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율법을 수여하실 때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그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복음 시대에 그러한 전달 방법을 철폐하려고 하셨으므로(왜냐하면 "하나님이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며[역주:히 2:5 참조], 또한 그들을 복음 전파자로 임명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 천사는 "지금"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시키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으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실을 세상에 전하도록 그들 손에 내맡기었다(고후 4:7).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고 말할 때 그는 마치 그들이 이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로 말미암아 비난을 받게 되는 것과는 자신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것을 그들에게 내맡기고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임무를 다 수행하였다. 즉 나는 신실하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제 너희는 그것을 들어다 보며, 또한 위험할 때에 그것을 믿어라. 너희가 그것을 듣던지 또는 멀리하던지 간에 나는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주목하라..., 자신의 임무를 신실하게 이행한 하나님의 사자들은 그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에 대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행 20:26, 27).
Ⅳ. 그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무덤을 떠남"(8절).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1. 그들은 어떤 마음과 기분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떠났다." 즉 같은 시각에 같은 마음에 무서움과 기쁨이 엇갈린 이상야릇한 마음을 가지고 떠났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는 말을 들은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덤 속으로 인도되고 그 천사를 보고 그것에 관하여 그들과 더불어 말한 것은 무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너무도 "좋은" 것임으로 진실이 아니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기쁨이며," "큰 기쁨"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즉 그것은 그들의 큰 "무서움"이었다고 말해지지는 않고 있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거룩한 두려움은 기쁨을 수반하고 있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는 자는 그를 "즐거움"으로 섬긴다.
(2) 영적인 기쁨인 두려워 떠는 것과 혼합되어 있다(시 2:11).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완전한 사랑과 즐거움뿐이다.
2. 그들은 어떻게 서둘렀는가?
"그들은 달려갔다." 그 무서움과 기쁨은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민첩하게 하였다.
그 천사는 그들에게 "빨리 갈" 것을 명령하였으며 그들은 "달려갔다."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자는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좋은 소식으로 "마음이 부풀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의 길로 급히 달려나가야"만 한다.
3. 그들은 어떤 임무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들은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뛰어갔다.
그것이 그들에게 즐거운 소식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으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동일한 위로를 가지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달려나갔다.
주의하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늘과 더불어 가졌던 그들의 아름다운 교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앞장을 서야만 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 행하시고" 말씀하셨던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은 오른손에 가지고 있는 연고와 같이 그것을 노출시키게 될 때 그 연고가 발라진 소마다 향기를 내게 될 것이다.
삼손은 꿀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그의 부모에게 가지고 갔다.
Ⅴ. 그리스도께서 천사의 증거를 확증시키시려고 그 여자들에게 나타나심(9, 10절).
이 열심 있는 선한 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그 소식을 맨 처음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처음으로 보았다.
천사는 그리스도를 보려고 하는 자들에게 갈리리로 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이르기 전에, "여기에서도" 그들은 살아계셔서 그들을 보고 있는 "그를 찾았다."
주목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종종 그의 말씀보다 더 나으며 결코 더 나쁘지는 않으시다.
종종 그의 백성들의 신앙적인 기대를 원하시지만 결코 실망하지는 않으신다. 여기에 보면,
1.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들에게 나타나심.
"그들이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셨다."
주목하라...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가 의무를 수행할 때에 은혜스럽게 찾아와 만나 주시며,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상봉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며 "그들이 일찍이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아 6:12).
유의하라...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그들에게 접근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깊은 곳으로 내려 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또는 "하늘로 올라 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승천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가까이" 계셨으며 또한 여전히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다."
2.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인사.
평안하뇨.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옛 "영어의 인사하는 형"을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평안하뇨"의 뜻이 바로 그것이며 또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히브리의 인사에 해당되는 헬라의 인사하는 형이 여기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1) 주님께서 그의 승귀의 신분에 들어가신 때에까지 우리와 우리의 행복에 대하여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는 비록 존귀하게 되셨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로하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2)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교제를 가지실 때 사용하셨던 자유스러운 태도와 고상한 친근감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들을 "친구들"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의 의미는 "너희는 기뻐하라"이다. 그들은 "무서움"과 "기쁨"에 싸여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의도는 그들의 기쁨을 고무시키며("너희는 기뻐하라." 9절) 또한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시기("무서워 말라." 10절) 위함이었다.
기억하라. JC도께서 원하시는 뜻은 그의 백성들이 매우 즐거워하는 백성이 되며 또한 그의 부활이 그들에게 풍성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3. 그 여자들이 주님에게 드린 사랑에 넘치는 존경.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와 같이 그들은,
(1) 주님을 위하여(for)가지고 있었던 "존경과 영예"를 표시하였다.
그들은 그의 발아래 엎드려 존경의 자세를 취하였으며 또한 지금은 존귀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를 겸손과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하였다."
(2) 주님께 대하여(to) 가지고 있었던 "사랑"과 "호의"를 표시하였다.
그들은 그를 "붙잡았으며" 또한 "그를 놓지 않았다"(아 3:4). "주 예수님의 발"은 그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것이었는가!(사 52:7).
(3) 그의 부활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지금 그들이 "즐거움에 도취"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복음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해야만 하며, "경외"함으로 그의 발에 엎드려야만 하며, 믿음으로 그를 "붙잡아야"만 하며, 사랑과 즐거움으로 그를 우리의 마음에 가까이 모셔야만 한다.
4.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심(10절).
우리는 그들이 주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환영하는 마음과 존경심을 충분히 나타내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도 천사가 말했던 것 이상은 아니었다(5, 7절). 왜냐하면 그는 "그의 종의 말을 응하게 하실 것이기"(사 44:26)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방법은 그들이 전에 "그의 천사들," 즉 사역자들로부터 들은 동일한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 볼 것은,
(1) 주님께서는 그들이 두려움을 어떻게 책망하고 계시는가.
"무서워 말라."
그들은 그의 부활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하여 듣고 보았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죽은 자가 살아났으므로 어떠한 해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소식은 비록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참되고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그이 백성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함이시며 또한 그 사실은 그들의 두려움을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그는 어떻게 그들의 메시지를 되풀이하고 계시는가?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갈 채비를 하라고 말하라. 거기에서 그들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에 어떤 교제가 있다고 하면 "그 만남을 약속하시는" 분은 바로 그이시며 또한 그는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영예를 상실하였다. 그 성은 "소란"하였기 때문에 그는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시고 계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함께 가자"(아 7:11).
그러나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그가 그의 제자들을 "그의 형제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가서 "내 형제들," 즉 그와 가까이 있었던 그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든 사람들(왜냐하면 그들로 모두 그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마 12:50)에게 말하라.
주님께서는 여기에서와 요한복음 둘째 장 17절 이외에는 그가 부활하실 때까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신 적이 없으셨다.
그는 부활하심으로써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며, 또한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그의 형제"로 선포되었다.
"죽은 자로부터 처음으로 살아나셨으므로 많은 형제들 중의 맏형"이 되셨으며, 그의 부활의 형상 가운데 함께 심기워진 모든 자들의 "맏 형"도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죽으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그의 제자들과 지속적으로 또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다.
그들이 그에게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내 형제들에게 가라"고 사랑스러운 칭호를 붙이고 있다.
이는 그의 존귀한 신분을 얻는 것에 대하여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리이다"는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들은 수치스럽게도 그가 고난을 받을 때 그를 "버렸다."
그러나 그가 이를 용서하고 잊어버릴 수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시기 위하여 그는 계속적으로 그들을 "만나려고" 의도하시며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두가 "그의 형제"이므로 그들도 서로가 "형제"이었으며 또한 형제로서 사랑해야만 한다.
그들을 그의 형제로 인정하심으로써 그는 그들에게 큰 존귀를 더하셨으며, 동시에 그 존귀 가운데서 겸손의 실례를 보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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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의 보고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그리스도의 부활(2)(마 28:11-15)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더욱 증거해 주는, 파수보던 원수들의 고백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증거를 더욱 확고히 해 주는 두 가지 고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그들(파수꾼들)은 "목격자"였으며 또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부활의 영광을 직접 보았다. 또 한 가지는 그들은 그의 부활을 저지하고 방해하도록 그 곳에 배치되었던 "원수들"이었다.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Ⅰ. 이 증거는 어떻게 대제사장들에게 "고해졌는가"(11절).
그 여자들이 "제자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게"될 소식을 가지고 그에게 "가고 있을 때," 그 군병들은 "대제사장의 얼굴을 부끄럽게 할" 동일한 소식을 그들에게로 가지고 갔다.
주요한 직책을 맡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그들을 채용했던 자들에게 그들을 실망케 할 보고를 드렸다.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였다."
즉 지진이 일어난 일,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낸 일,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서 살아서 나온 일들을 낱낱이 고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자 요나의 "표적"은 가장 명백하고 확고하게 대제사장에게 보고되었다. 그와 같이 죄책감을 깨닫게 하는 마지막 수단이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우리는 그 사실이 얼마나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였고 또한 유대의 원수들과 같이 얼마나 그들을 "낙담시켰는가"(느 6:16)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마땅히 이제는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