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2장 (개요)
다니엘은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았다고 말했다(1:17).
우리는 여기서 해몽이 요셉을 바로의 궁에서 유명하게 했듯이 바벨론의 궁전에서 다니엘을 유명하게 만든 해몽의 탁월한 실례를 보게 된다.
본장은 하나의 역사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의 역사가 아니라 꿈과 해몽의 역사다.
바로 왕의 꿈과 그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설은 오직 풍년과 흉년,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이익에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꿈과 그에 대한 다니엘의 해몽은 네 왕국과 그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이해 관계 그리고 이들의 멸망 후 세계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과 관계되어 있다.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느부갓네살 왕이 잊어버린 꿈으로 크게 번민하며 박수와 술객들에게 꿈과 그 해석을 동시에 하도록 명령하나 감히 하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었다(1-11).
2. 바벨론의 모든 현자를 죽이라는 느부갓네살의 명령이 내려진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이 명령에 포함되었다(12-15).
3.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 은밀한 일이 그에게 나타나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께 감사한다(16-23).
4. 다니엘은 왕 앞에 나아가 그의 꿈을 알아 맞추고 그 꿈을 해석한다(24-45).
5. 느부갓네살은 이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다니엘을 크게 존귀케 하고 그의 친구들을 등용한다(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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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잊어버린 꿈(단 2:1-13)
이 이야기의 연대에는 해석상 큰 어려움이 있다.<정확한 연대가 언제인지에 대한 논란 제기됨> 이 일은 느부갓네살 통치 2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1절).
>1.그런데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통치 원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그는 왕 앞에 나가기 전 삼 년 간 개인 교사들 밑에서 교육을 받은 것 같다(1:5).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다른 소년들의 교육 기간은 삼 년으로 지정되었지만 다니엘은 너무 진도가 빨라 일 년이 되자 바로 정치에 참여케 되었을 것이기에.. 그래서 느부갓네살의 재위 이년에는 다니엘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을 것이다.
>2.흑자는 이것을 느부갓네살의 단독 통치 이년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이 때는 그가 자기 부왕과 공동 통치한 지 5,6년 되기 때문이다.
>3.또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다니엘과 그의 동무가 왕을 모신지 이 년 되는 해에 일어난 것으로 읽는다. 요셉이 해몽에 익숙해진 이 년 뒤 바로왕의 꿈을 해석했던 것처럼 다니엘도 그 기술을 터득한지 이 년이 지나서 해몽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4.나는 느부갓네살 재위 36년에 있은 애굽 정복 후 이 년 설보다 차라리 상기 (1,2,3의) 여러 견해를 더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에스겔서에서 보는 대로 애굽 정복 훨씬 전에 다니엘이 이미 지혜와 기도의 힘으로 유명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사 즉-요셉이 지혜와 기도로 탁월했다는-느부갓네살의 통치 초기에 놓여져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느부갓네살은 꿨다가 잊어버린 꿈 때문에 크게 번민하였다.
그는 꿈들(복수형에 주목)을 꾸었다. 그 꿈은 분명히 별개의 여러부분으로 된 꿈이거나 마치 많은 꿈처럼 그의 머리 속을 채운 꿈일 것이다.
솔로몬은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다" 고 말한다(전 5:7).느부갓네살의 이 꿈 자체는 여느 많은 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의 꿈속에도 이따금 이상한 일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이 꿈에서 받은 인상에는 특수한 데가 있었다.
그 꿈에는 그것이 신적 근원에서 나왔으며 예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명백히 해 주는 증거가 실려 있었다.
노동자는 잠을 달게 자며 절제하는 자는 뒤숭숭한 꿈을 꾸지 않고 잘 자는 반면 지극히 강대한 자들은 근심과 번민으로 선 잠을 면치 못한다는데 주목하자.
아니, 그들은 오히려 걱정과 심적 혼란을 겪기 쉽다.
부자는 넉넉한 소유에 대한 염려로 잠을 달게 자지 못하며 주정뱅이와 대식가는 그 꿈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것은 생리적 이유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자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서 그를 괴롭히는 자가 되셨다. 왜냐하면 영혼을 만드신 분은 인간의 마음을 칼로 찌르실 수 있기(눅 2:35)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주위에 파수병을 두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심령의 고뇌로부터 지킬 수 없었다. 떵떵거리고 으리으리하게 살면서도 그 마음이 불편한 자는 많다.
우리는 쾌락 속에사는 자들의 마음이 편한 줄로 생각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때로 그들의 집을 바라보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오히려 그들을 더 불쌍히 여기게 될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마음의 번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 세상의 모든 보물과 온갖 열락도 그에게 잠시 동안의 휴식을 주지 못했다.
하나님은 자기 안식처로서의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 곧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시 127:2).
Ⅱ. 느부갓네살은 술객과 점장이들에게 자기의 잊어버린 꿈을 말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다.
그들은 곧 왕 앞에서 그의 꿈을 고하게 하기 위해서 불림을 받는다(2절).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도 그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 일들은 많다.
그 일이 딱히 무엇이었는지는 말할 수는 없으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기억에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꿈은 그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다시 회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만약 그 꿈을 다시 한 번 듣는다면 곧 바로 알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더 큰 명예를 얻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조종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거나 어떤 일을 그 마음에 집어넣으심으로써 자기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술객들은 왕의 침실로 호출받은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그들에게 자기가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3절).
그들은 왕에게 아람 방언으로 말했다. 당시 아람 방언은 갈대아인의 말과 같았지만 지금은 아주 다르다.
이제부터 다니엘은 아람 방언이나 히브리어를 혼용한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 10장 11절 이하의 말씀처럼 갈대아인들에게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8장 이하는 유대인에 대한 위로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술객들은 답변에서 만수무강하다는 찬사로 왕에게 아첨하고 그 꿈을 말하면 해석하여 주겠다고 단언한다(4절).
그러나 왕은 그 꿈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꿈을 말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을 경우, 그들은 사깃군으로서 처형될 것이지만(5절). 그러나 만일 그들이 답변한다면 많은 보상을 줄 것도 약속했다(6절).
그리고 그들은 발람이 발락에게 했던 것처럼, 그가 자기들에게 큰 영광과 자기들이 사랑하던 불의의 삯(벧후 2:15)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일 그들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능력 부족 때문인 것이다.
섭리는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에 바벨론의 술객들은 옛적 애굽의 술객들처럼 수치로 혼비백산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나 바벨론에서 비난받고 천대 꾸러기가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신탁은 경쟁 상대를 유구무언으로 만듦으로써 칭송받고 존귀하게 되었다.
술객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유로 가지고 왕이 자기들에게 꿈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왕이 꿈을 말해 주는데도 그가 말한 꿈을 해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들 잘못이라고 주장한다(7절).
그러나 이 독단적인 권세자는 논리나 이성에 마이동풍이다.
왕은 노발대발하여 거친말을 퍼붓고 어떠한 분명한 이유도 없이, 그들이 그에게 말해 줄 수 있는 데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무능과 기술부족을 꾸짖는 대신에 그들이 왕을 모욕한다고 힐책한다.
"너희는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한다. " 이 비난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가!
만일 그들이 그의 꿈이 무엇인지 말하겠다고 나서서 가짜로 그를 기만했다면 그는 그들을 거짓말장이이며 망령된 말을 하는 자로 비난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의 약점을 정직하게 고백하는데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혈기를 부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분별한 것인지를 나타낼 뿐이다.
그의 이런 발언은 또 권세자들이 이성과 공정성을 무시하고 자기 성미대로 하는 것이 특권인 양 생각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술객들이 그에게 꿈을 말해 줄 것을 청했을 때, 그 요구가 아주 정당하고 이성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물쭈물하여 시간을 천연하려 한다고 말한다(8절). "때 변할때까지 기다리려 함이니라" (9절). 즉 꿈을 알려는 왕의 욕구가 사라져서(지금은 이렇게 달달 볶지만) 자기 꿈 이야기를 듣든 말든 무관심해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그가 자기 꿈을 완전히 잊어버려(그 꿈의 잔영이 완전히 사라져서 그가 딴 꿈을 제시해도 긴가 민가 할정도로) 그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그것이 왕의 꿈이라는 것을 믿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체없이 그 꿈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다음과 같이 변론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1. 세상에는 왕의 꿈을 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10절)는 변명이 그것이다.
그 꿈의 의미를 해석하는 규칙은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그들이 그 규칙을 적용할지 않을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
그러나 그 꿈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규칙은 없었다. 그들은 일할 어떤 근거가 없이는 일할 수 없다.
그들은 신이 인간들에게 자기 뜻을 보일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암 4:13). 왜냐하면 하나님은 멀리서도 우리 생각을 통촉하시며(시 139:2),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 생각이 어떠할지를 아시며 우리가 주의깊게 생각하기 전 우리 생각이 무엇인지도 아시고 우리가 잊어버린 생각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 신들" (11절) 뿐이다.
인간은 그들의 육체와 함께 거하는 존재이다. 아무리 지혜롭고 위대한 인간일지라도 육체의 휘장에 가리워져 있다.
육체는 영들과의 모든 교제를 방해하고 영의 능력과 작용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순전히 영적 존재인 신들은 인간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안다.
여기서 술객들의 무지한 실례를 주목하자. 신은 한 분밖에 없으며 무한하신 분도 한 분 뿐인데도 그들은 많은 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유식한 면도 주목하자. 그들은 영적 존재인 신이 있으며 신이 인간의 영과 그 모든 생각을 완전히 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잊어버린 꿈 내용을 거짓없이 말해낸더는>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나면서부터 갖는 본연지(本然知)가 그들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자연 속의 일들이 이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도 신의 전지함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일인 동시에 그들 자신에게는 정죄가 된다.
그들은 하늘에 신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게는 모든 심령이 열려있고 모든 소원이 알려져 있으며 그 어떤 비밀도 그에게는 숨길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기도와 찬송을 드리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어떤 왕도 세상에서 이런 일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려 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10절).
이것은 하나님의 신탁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시여된 반면 술사들이 헌신하고 가장 빈번히 접촉했던 자들은 백성이 아니라 바로 큰 왕과 권력자였음을 암시한다. 왕들과 권세자들은 자기 신하들에게 종종 터무니없는 일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까지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한 자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느부갓네살왕이 그 요구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 모든 생각은 허사였다. 격정이 왕좌에 있을 때면 이성은 발 밑에 짓밟히는 법이다.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였다" (12절).
이성으로 깨달음을 얻지 않으려는 자들이 이성적인 말에 진노하고 통분하며 공정치 못할 일을 우격다짐으로 맹렬히 실천한다는 것은 항용 있는 일이다.
Ⅲ. 바벨론의 모든 술객들에게 선고된 파멸.
그들을 처치할 법이 단 하나 있었다(9절). 그들은 예외나 구별없이 모두 정죄받았다. 명령이 발했으므로 그들은 예외나 구별없이 모두 정죄받았다.
명령이 발했으므로 그들은 모두 살륙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13절).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비록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예외가 아니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일반적으로 독단적 권력의 처사는 불공정하다.
느부갓네살의 폭군적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은 조리에 맞게 말을 하지 못하면서 극형 운운하며 자기를 섬기려고 하나 그럴 능력이 없다는 잘못뿐인 자들을 반역자로 몰아세운다.
2. 일반적으로 사칭자들에 대한 형벌은 공정하다.
느부갓네살이 비록 혹세 무민의 원흉들에게 대한 이 판결에서 아무리 옳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셨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던 그들은 이제 자기들이 할 수 있다고 자처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사형을 선고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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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에게 계시된 꿈(단 2:14-23)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 꿈과 그 꿈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 현자들을 불렀을 때, (그 어떤 사유로 인해) 다니엘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다(2절).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시험하여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십 배나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몹시 기뻐했었다.
그러나 왕은 그가 가장 필요할 때 그를 잊어버린 것이다. 격정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며 냉정하고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러나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였다.
술객들의 쩔쩔매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면 뛸수록 다니엘의 하나님께는 더욱 더 많은 영광이 돌아가게 될 터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른 현자들과 같이 왕의 자문을 받는 영광을 누리진 못했다.
오히려 법과 정의에 어긋나게도 그는 처형 준비를 위한 통지가 오기까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느부갓네살 같은 전제 군주 아래서 사는 자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러나 법과 정의의 보호 아래서 살며,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군주의 명령 아래 있지 않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이미 에스겔서에서 다니엘이 기도와 사려 깊음으로 유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귀족으로서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다 유력한 자였다.
그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유력한 자였고 분별력으로써 인간들에게도 유력한 자였다. 그는 이 두 가지가 다 뛰어났다.
이렇게 하여 그는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은혜와 선한 지혜를 얻었다(잠 13:1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사례를 보게 된다.
Ⅰ. 다니엘은 슬기로써 인간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 방법을 알았고 또 그들을 설득했다.
바벨론의 박사들을 죽이도록 명령 받은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다니엘을 체포하였을 때, 다니엘은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물었다(14절).
그는 핏대를 올려 왕을 부당하고 야만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거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더욱이 어떻게 항거할 것인가를 궁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물었다. "왕의 명령이 왜 이리 급하뇨?" (15절)
그리고 나머지 박사들이 느부갓네살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다니엘은 만약 자기에게 약간의 시간을 허락한다면 왕이 바라는 모든 만족을 줄 것이라고 한다(16절).
왕은 이제서야 다니엘을 일찍 부르지 못한 자기 실수를 깨닫고 다니엘의 성품을 회상하면서 심판을 일시 중지시켰다.
분노, 죽음의 사자나 다름없는 왕의 진노까지도 돌이키는 최선의 방법은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이며 큰 허물을 경하게 하는 것은 공손이다(전 10:4).
왕의 말은 권능이 있다고 하더라도(전 8:4) 거절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절은 왕의 명령을 취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흑자는 14절을 이렇게 읽기도 한다. "다니엘은 돌아와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으로 말미암아 명령 실행을 멈추었다."
Ⅱ. 다니엘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탄원과 감사로 하나님께 은총을 얻었다. 탄원과 감사는 기도의 기본 요소이다.
1.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그의 겸손한 탄원.
그는 왕의 꿈이 무엇이며 그 꿈의 해석을 보여 주시기를 탄원한다.
시간을 얻자, 나머지 박사들의 기술이나 그들의 책가운데 이용할 만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러 그들에게 가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는 혼자서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함이었다. 그는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한테서만 이 곧 은사를 기대했다.
(1) 그는 꿈과 그 해석의 발견을 위해 혼자서 기도하지 않고 자기 동무들도 기도하게 했다.
그는 그 일을 그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그가 줄곧 자기 흉금을 털어놓던 친구요 동료였다.
그는 그들에게 이 은밀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라고 요청했다(17,18절).
다니엘은 아마 그들 중 연장자였을 거이고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뛰어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들을 이 일에 동료로서 참여 시켰다.
Vis unita fortior-즉 뭉치면 힘은 더 커진다(에 4:1 참조). 기도의 친구는 귀중한 친구라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과 교제하여 은혜의 보좌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자들과 친숙하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타인에게서 기도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극히 크고 선한 자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 친구들에게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간청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친구들과 기도, 특히 친구들의 기도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내야만 한다.
(2) 그의 기도의 구체적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비를 겨냥했으며 의지하였다.
"그들은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긍흘히 여기시기를 구하게 하니라" (18절).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위에 계시며 우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존경과 충심을 마땅히 드려야 하는 하나님,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으로서 우러러보아야 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리 선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긍흘에 의한 은혜를 바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써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인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 은밀한 일에 대해 긍휼하심을 갈구했다.
우리가 염려하는 일이 무었이든지간에 그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우리를 괴롭히고 무섭게 하는 이런 저런 일에 대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한 가운데 당신께 자유스럽도록 허락하시고 우리의 궁핍과 무거운 짐을 소상히 아뢰도록 허락하신다.
은밀한 것은 우리 주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은밀한 일에 대한 자비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기적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믿음으로 그에게 기도할 수는 있다.
그들 모든 심령을 자기 장중에 소유하시며 기적 없이도 그의 섭리로써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입수하려면 그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의 영광과 우리의 이익이 되는 한 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숨기운 것도 어려운 것도 없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자.
(3)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간구는 절박한 위험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벨론의 다른 박사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선량하고 유용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는, 교회가 감옥 속의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듯(행 1:5),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해야 할 때임을 주목하자.
(4)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자기들이 구하던 자비를 허락받았다.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였다" (19절).
혹자는 다니엘이 자다가 느부갓네살과 꼭 같은 꿈을 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오히려 깨어서 기도에 힘쓰는 중에 이상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꿈과 해몽은 천사가 그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는 크게 만족을 얻었을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6)는 데 주목하자. 기도로써 알게 되는 신비와 비밀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기도는 천국의 장농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라고 하셨다.
2.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자 감사했다(19절).
그는 그 꿈을 왕에게 고하여 인정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본 이상이 바로 왕의 꿈이며 자기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자기 기도를 찬미로 바꾼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꿈과 해몽을 나타내 주실 것을 완전히 확신하는 가운데 기도를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는 가운데 찬미를 드렸다.
이 두 가지 일에서 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겨냥하였다. 그의 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의 찬미는 기록되어 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다니엘은 그가 배운 대단히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으로 하나님께 찬송의 영광을 드린다.
"영원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송축받고 찬양받을 영원성이 있다. 영원성은 변함없이 그리고 영원하게 그에게 있다. 그것은 영원무궁토록 축복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완전성이 찬양 제목이 되듯 찬양의 노래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1] 다니엘은 하나님께 있는 것에 대해 영광을 드린다.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하기에 합당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시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며 최선의 방법으로 꼭 행하시고 말 것이다.
그는 계획하고 궁리하는데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꼭 행하실 것이다.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다." 왕왕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힘 둘 다, 또는 지혜나 힘 그 어느 한쪽이 결여되어 있는 법이다.
[2] 그는 인간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는 모든 인간의 자손, 그리고 그들의 모든 행동과 사건에 대해 우주적인 영향과 작용을 미치신다.
때가 변하는가? 사태가 바뀌는가? 만사는 가변적인가? 때와 기한 그리고 그 모습을 변하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어떠한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서만 일어난다.
제거되고 폐위당하는 왕이 있는가? 왕들이 자기 권한을 포기하는가? 왕들을 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또한 왕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왕의 즉위와 폐위는 주의 주, 왕 중 왕이며 모든 권세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면류관 위 꽃과 같은 것이다.
지혜에 있어서 하인을 능가하는 자들이 있는가? 철학자나 정치가는 보통 수준보다 높은 사고를 하고 관조와 통찰력 있는 사람들인가?
현자들이 지혜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든 모르든 현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지혜를 스스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왜 우리가 지식을 자랑해서는 안 되는지, 왜 우리는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명예롭게 해야 하며 하나님을 아는 일을 우리 본분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이유가 된다.
[3] 다니엘은 특별히 이 꿈의 발견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그런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사실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는 모든 산 자의 눈에서 감춰져 있던,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신다" (22절).
아무도 알 수 없을 때, 무엇이 참된 지혜인가를 계시하는 분은 하나님이셨다(욥 28:27, 28).
자기 종 예언자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계시하시는 분도 그이시다. 하나님은 극히 은밀히 애써 숨긴 것도 완전히 식별하시고 간파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은밀한 일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전 12:14).
심판의 날에 진리는 분명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므로" (시 139:11, 12)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흑암 중에 행해지는 일을 아신다.
빛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은 빛에 거하신다(딤전 6:16). 그리고 우리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흑암을 자기 장막으로 삼으신다(삼하 22:10).
흑자는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신적 계시와 예언의 빛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의 아버지, 아니 모든 빛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하셨음을 인하여 찬송한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을 자기 열조의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비록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였지만, 조상들의 이름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롬 11:28)였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당신은 이것을 나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23절).
해몽을 자기 직업으로 삼고 있던 갈대아의 고명한 술객들에게 감추어져 있던 일이 애숭이 유대인 포로인 다니엘에게 계시되었다.
다니엘이 점하는 귀신을 경멸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영을 존귀케하려고 하셨다.
다니엘은 자신과 자기 친구들의 생명을 건지게 해준 그 이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이토록 감사하지 않았는가?
세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로운 자와 슬기로운 자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이 위대한 영혼의 구원을 알게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2) 다니엘은 이 감사에서 자기 친구들을 존중한다.
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주로 다니엘 자신의 기도 때문이였고 이상이 나타난 것도 그에게서였지만 그는 그들의 공동 보조를 사례한다(그 일은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이다). "주께서는 왕의 그 일을 우리에게 보이셨나이다" (홈정역).
이는 그 이상이 다니엘에게 나타났을 때 그가 그들과 함께 있었든지 아니면 그가 그 이상을 보고 나자 곧 그들에게 말했는지간에(유레카, 유레카:내가 발견했다, 내가 발견했다. 수학자 알키메데스의 말)기도를 협조한 친구들이 찬양으로도 자기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의 이 제휴는 다니엘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 자들에게 어울리는 태도이다.
사도 바울도 때때로 그의 편지의 서두에서 디모데와 다른 동역자와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영예를 주시든지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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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된 왕의 꿈(단 2:24-30)
여기에는 꿈을 선언하기 전에 다니엘이 취한 행동이 나오고 그런 뒤 꿈 해석이 시작된다.
Ⅰ. 다니엘은 즉시 바벨론의 현자들에게 대한 판결의 파기를 건의하였다(24절).
그는 급히 아리옥에게 가서 이제 그의 직무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바벨론의 박사들을 멸하지 말라."
개중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술객으로서 죽어 마땅한 자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여기서 그들이 정죄된 것은 죽을죄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죽이지 말며 부당하게 멸하지 말고 그들을 살려 주어 부끄럽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지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 쩔쩔 맸으므로 창피를 당해야 했다.
하나님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다 친절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며, 아무리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생명을 기꺼이 건져야 한다(마 5:45)는 데 주목하자. 선한 자는 공동의 이익이 된다.
배 안에 있었던 바울에게 하나님은 함께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맡기셨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 때문에 전부 생명을 건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의 모든 현자들은 다니엘 때문에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받은 은혜대로 그에게 갚지 않았다(단 3:8).
Ⅱ. 그는 큰 확신을 가지고 왕께 꿈과 그 해석을 말하겠다고 제의했다가 윤허를 얻었다(24,25절).
아리옥은 왕께 다니엘을 소개함으로써 환심을 사려는 희망에서 다니엘을 급히 왕에게 데리고 갔다.
아리옥은 왕의 꿈을 해석하도록 하기 위해 다니엘을 찾아 낸 사람은 자기라는 듯이 행세한다.
그러나 그가 다니엘을 찾아 낸 것은 실제에 있어서 왕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궁정지기의 본업은 어떻게 해서라도 제왕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들의 봉사가 왕에게 열납되도록 하는 데 있다.
Ⅲ. 다니엘은 되도록 술객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려고 궁리하였다.
왕은 그 일이 대담한 시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과연 그가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의심했다.
"네가 참으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겠느냐? 아니, 너 같은 애숭이가, 너 같은 백면서생이 네 선배들도 포기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느냐?"
다니엘이 이 일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될수록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은 더욱 더 많은 영광을 얻으실 터였다.
신적 계시를 전달하는 데에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택하시고 세상의 멸시받는 것들과 소망이 없는 것들을 이용하셔서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이는 능력이 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고전 1:27, 28).
다니엘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기회를 얻는다.
1. 느부갓네살이 크게 기대하던 점장이들과 술객들에게서 환멸을 느끼게 한다(27절).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나이다. 그것은 그들의 능력밖의 일이며, 그들의 기술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무력한 그들이 그 일을 하지 못한다고 진노하실게 아니라 그들이 이 일을 하지 못하므로 그들을 멸시하시고 쫓아내소서."
부르톤 선생은 그것을 이렇게 읽는다.
이 은밀한 것은 어떤 현인이나 점성술사나 마법사나 무당도 왕께 보일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왕은 더 이상 그들에게 묻지 마소서!
모든 피조물이 우리에게 만족을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덜 존중하게 되고 그들에 대한 기대도 작아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가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욥 38:11).
그러므로 우리는 욥이 자기 친구들에게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 (욥 16:2)라고 말해야 한다.
2. 그는 느부갓네살에게 자기가 섬기는 신 곧 유일하고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지식을 주입시킬 기회를 얻었다.
"비록 그들이 은밀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왕은 절망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28절).
피조물의 불충분성은 우리를 창조주의 완전한 충분성에로 향하게 한다.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행하실 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다.
그는 우리에게 그 일을 알려 주신다. 땅 위의 어떤 자도 그 일 특히 하나님의 은밀하신 구속사와 사랑의 계획을 알리거나 행할 수가 없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인 일이었다(골 1:26).
신적 계시는 인간의 이성이 우리를 아주 쩔쩔매게 할 때 우리를 구조해 주며 왕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난한 자들에게도 이를 알려 주신다.
이것은 이방의 어떤 철학자나 정치가도, 온갖 신탁과 점술로도 결코 우리에게 알려 준다고 할 수 없던 비밀의 계시이다(롬 16:25, 26 참조).
Ⅳ.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확신시킨다.
즉 그가 되찾으려고 애쓰는 꿈은, 다시 기억하거나 말할 필요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공상 놀이나 보통의 꿈이 아니라 실로 가치 있고 중대하여 물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 꿈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요, 상계로부터 그의 마음에 투사된 광선이 그러므로 이 하계의 큰 사건과 변혁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꿈속에서 왕에게 후일에 될 일들을 알리신 것이다(28절). 즉 만일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에서 세워질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알게 하신 것이다(히 1:1).
이 말씀은 29절에 또 나온다. "왕이 생각하던 것은 우리의 보통 꿈처럼 먼저번 있었던 일의 반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낮부터 몰두해 있었던 감정은 때때로 밤의 잠과 혼합된다." Omnia qua sensuvalvuntur vota diurna, Tempere sopita reddit amica quies)(클라우디안). "그러나 하나님이 왕에게 알게한 은밀한 것은 장래 일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장차 일어날 일들은 은밀한 것이며 하나님만이 그것을 나타내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장래 일에 대해 계시하는 것을 아주 진지하고 열심히 조사하며 숙고해야 한다. 특히 만물의 마지막과 종말에 관한 것은 더욱 그렇다.
혹자는 왕이 깨어있을 때 장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는 취침전 곧 이 꿈을 꾸기 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커가는 자기의 위명은 어떻게 되며 자기 나라는 어떻게 될지 곰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은 이런 생각에 대한 대답이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가 나타내시려는 일에 대해 사람들을 준비시키신다.
Ⅴ. 다니엘은 이 꿈을 자기 공으로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자기 지혜로 알아냈다고도 할 수 없음을 엄숙히 선언한다(30절).
"나로 말하면 이 은밀한 것은 내가 발견해낸 것이 아니라 내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그런 이상을 받도록 허락하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총애하고 존귀하게 하신자들은 아주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낮게 보고 자기 지혜와 자신의 귀중성에 대한 온갖 자부심을 버려야 마땅하다.
그래야 하나님 홀로 그들로 인한 모든 찬송을 받으실 수 있으시며 모는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값없으신 호의와 그들 안에 충만한 선한 역사의 덕분으로 돌려질 수 있다. 은밀한 일이 계시는 다니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1. 그의 백성을 위해서도 이 은밀한 일은 계시되었다.
그의 동포들은 가난과 고통 중에 있었다. 또 그 동무들은 기도로써 이 꿈을 발견하는 데 조력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에게 그 해석을 알리는 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건지며 은총을 입으며 중용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 포로 중에 있는 모든 유대백성의 형편이 보다 호전되도록 하기 위해 이 은밀한 일은 알려졌다.
겸손한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또 자기들에 의해 행하시는 일이 그들 자신보다 남들을 위한 것이라고 기꺼이 생각한다는 데 주목하자.
2. 그의 왕을 위해서, 흑자는 앞 절을 이런 의미로 해석한다.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을 내게 나타내심은 내 지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므로 왕으로 이전에 생각하던 일에 대한 만족스런 대답을 얻으며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그 지시를 받게 하려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다니엘에게 나타내신 것은 그로 왕에게 알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선지자들이 받는 것은 주기 위해서이며 그들이 얻은 발견은 속에 감춰두라는 것이 아니라 관계있는 자들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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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단 2:31-45)
다니엘은 여기서 느부갓네살 왕을 완전히 만족시킨다.
왕은 양육과 교육으로 이 가난한 선지자에게 친절을 베풀었었다.
그는 왕의 비용으로 부양되었고 왕궁에서 기용되었으며 포로의 땅이 그에게는 기용되었으며 포로의 땅이 그에게는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편안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왕은 자기가 들인 비용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풍부한 보상을 받는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한 것은 아닐지라도 왕은 그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선지자의 보상을 받았다. 그것은 선지자만이 줄 수 있는 보상이었다.
이 부유하고 강대한 군주는 이제 그에게 기꺼이 신세를 지려고 한다.
Ⅰ. 꿈 자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히 45장).
느부갓네살은 동상 찬미자였을 것이며 그의 왕궁과 정원은 동상들로 장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상 숭배자였다.
보라! 그 앞에는 한 큰 신상이 높여 있었다. 이것은 그가 그토록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공경했던 우상이 어떤 것인지를 그에게 암시해 줄지도 모른다.
우상들은 꿈과 같은 존재였던 때문이다. 공상의 피조물은 공상을 즐겁게 했을 것이다.
그는 상상력에 의해 눈을 감고 적당한 형태를 머리 속에 그려보며 비용과 조각가의 수고없이 자기 마음껏 그 조각을 미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상은 입상이었다. 그 신상은 마치 산 사람처럼 "왕의 앞에 서 있었다. 이 신상은 여러 나라를 상징하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여러 나라는 우방국에게는 훌륭한 나라로 보였으므로 그 신상의 광채는 특심하였다."
또 그 나라들은 적국에게는 가공할 만한 존재였고 그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포감을 심어 주었으므로 그 모양은 심히 두려웠다. 용모와 자세가 다 두려웠다.
그러나 이 신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신상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이 여러 가지라는 것이다.
즉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극히 비싸고 오래가는 금속)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금 다음가는 금속)이요, 배와 넙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놋과 철은 보다 기본적 금속이다)이요, 마지막으로 그 발은 일부는 철이요 일부는 진흙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사가 어떤지 유의하자. 우리가 세상을 살면 살수록 세상사는 더욱 몰가치하게 나타난다.
인생을 보더라도 청춘은 정금으로 된 머리와 같다. 그러나 장성하면 할수록 존중할 만한가치는 더욱 떨어진다.
노령은 반진흙이나 다름없다. 그때는 살아 있으면서도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 역사도 마찬가지다. 후기 시대는 타락/쇠락한다.
또한 교회나 종교 개척 초년은 정금 머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얼마는 철, 얼마는 진흙인 시대에 살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위선자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식자의 행위는 그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는 정금이지만 그의 발은 철과 진흙이다. 위선자는 자기 의무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의 환상 속에서 왕들이 네 마리의 짐승으로 묘사된다(7장)는 데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아래로부터 보는 지혜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 왕들은 이로써 땅의 것이 되고 육욕적이 되며 독재 세력으로 변하고 사람보다 짐승의 성질을 더 많이 가졌다. 그래서 그 환상은 그의 사물관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교 군주인 느부갓네살에게는 이것이 화려하고 즐거운 인간의 형상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 왕국과 그 영광의 찬미자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그는 다시 보고 싶어 안절부절하였다.
그러나 이 신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꿈의 다음 장면은 그 신상이 가루가 되어 없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채석된 돌을 보았다. 이 돌은 신상의 발 위에 떨어져 철과 진흙으로 된 그 발을 쳐서 부숴뜨렸다.
그 신상이 넘어질 것은 정한 이치다. 그래서 금과 은과 놋과 철은 산산조각이 났고 너무나 박살이 나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에서 떠낸 돌 자체는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 하나님께서 약하고 가능성 없는 것으로도 얼마나 큰 효과를 불러일으키시는지 주목하자.
하나님의 원하실 때는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게 될 것이다(사 60:22).
이 신상의 파괴는 아맘때가 이르면 세상에서 우상 숭배가 철폐될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방인의 우상은 이 신상처럼 은과 금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그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할 것이다(렘 10:11; 사 2:18 참조).
그리고 우상숭배를 파괴하는 세력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신상을 쳐서 부숴뜨리고 태산을 이룬 이 돌처럼 자기 재산을 크게 하고 높일 첩경에 있게 된다.
Ⅱ. 이 꿈의 해석이 나온다. 이 꿈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해석을 하나님으로부터 취해야 마땅하다.
1. 이 신상은 계속적으로 열방을 지배하고 유대 교회의 사정에 영향을 끼칠 지상의 여러 왕국을 나타냈다.
네 왕국이 네 개의 신상으로 표현되지 않고 단 하나의 신상으로 나타난 것은 그 모두가 마찬가지였고 한 가지 정신, 한 특성을 가지며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교회를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이한 네 나라에 자리 바꿈만 했을 뿐 동일한 권세였다.
먼저 나타나는 두 나라는 유대 동쪽에, 나중 나타나는 두 나라는 유대 서쪽에 위치했다.
(1) 정금 머리는 그 때 출현한 갈대아 제국을 상징했다(37,38절).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다. 왕은 세계의 왕이십니다. 많은 왕과 나라들이 왕께 조공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
또는 "지상의 왕들 중 최고의 왕이십시다" (종 중 종이 가장 비천한 종이듯). "왕은 여타 모든 왕을 무색케 하십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출세를 자기 정략이나 강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왕에게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신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큰 권세를 행사하면서 굳건 그리하여 서있고 찬연히 빛나며 강력한 군대로 전제 권력을 행하는 왕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통치자라도 위로부터 오는 권세 이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못가진다는 데 주목하자.
하늘의 하나님, 그가 지배할 영역이 제시된다(38절).
인생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는 세계 만방의 지배자였고 그 모두를 지배했으며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지배했다.
그는 그들의 모든 가축 곧 그들이 소유하던 가축뿐만 아니라 ferae-naturoe - 즉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까지도 지배하였다. 그는 삼림과 숲과 사냥터도 지배했다.
그의 허락없이는 아무도 사냥하지 못했다.
"왕은 금머리이다. 왕과 왕의 아들과 손자는 칠십년 간 통치할 것입니다" (렘 25:9, 11 특히 렘 27:5-7 과 비교).
당시에 세상에는 스키타이 왕국<=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과 같은 다른 강국이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을 지배하던 나라는 바벨론 왕국이었다.
그 나라는 지혜나 절대적 권력이나 탁월성 때문에 정금 머리라고 불리우며 그 재물때문에도 그렇게 불리운다(사 14:4). 바벨론은 황금 도성이었다.
어떤 이는 이 왕국이 니므롯에게서 비롯하여 열다섯 왕을 내었으며 1,600년 이상 계속했다고 계산한다.
그러나 여기에 기술된 대로 생각해 보자면 니므롯의 바벨론이란 지극히 규모가 작았고 느부갓네살처럼 광대한 영토와 권력을 그토록 오래 보유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은 느부갓네살과 에월므로닥과 벨사살만 이 정금 머리에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영화롭고 높은 보좌를 두고서 아마 기왕의 다른 어느 왕보다도 더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재위 45년간 통치했고 에월므로닥은 23년, 벨사살은 3년을 통치했다. 바벨론은 그들의 수도였고 다니엘은 칠십 년 간 이들과 현장에 같이 있었다.
(2) 은으로 된 가슴과 팔들은 메대와 바사 왕국을 상징한다.
이들의 왕은 전자보다 못하다고 언급되고 있다.
"왕의 후에 왕보다 못한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그들은 왕보다 부하지 못하고 강력하지도 못할 것이며 왕보다 승승장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39절).
이 왕국은 메대인 다리오와 바사인 고레스가 각각 연합하여 건설하였기에 가슴에서 만나는 두 팔로 표현하였다.
고레스는 바사인 아버지와 메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떤 이는 이 두 번째 왕국의 존속기간을 130년으로 계산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204년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전자의 계산이 성서의 연대기와 가장 잘 부합한다.
(3)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창건한 헬라 왕국을 상징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최후의 바사왕 다리오 코도만누스를 정복하였다. 놋으로 된 이 세 번째 왕국은 통치 규모나 부에 있어서 바사 왕국보다 못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자기 대에는 무력으로 그 왕국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가 온 세계를 정복했다고 자랑하였고 달리 정복할 세계가 없다 해서 주저앉아 통곡했기 때문이다.
(4) 철로 된 종아리와 발은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
혹자는 이것이 말기 헬라 제국인 수리아 제국과 애굽 제국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수리아 제국은 셀류키스의 자손인셀류키드(Ssleucid)가, 애굽 제국은 톨레매우스 라구스의 자손인 라기드(Lagid)가 통치하였다. 이 두 왕국을 신상의 두 종아리와 발로 해석하는 자들은 그로티우스와 유니우스 그리고 브루톤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목하는 것은 로마 제국이라는 견해가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원한 복음의 선포로 그리스도 왕국이 세상에 세워진 것이 로마제국 시대였고 로마가 한창 번영을 구가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로마는 철처럼 강했고(40절) 수세기 동안 로마와 분쟁하던 나라는 여지없이 압도당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로마는 희랍 제국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뜨렸고 나중에는 유다 나라를 멸망시켰다.
로마제국은 말기에 이르자 쇠약해져서 열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니 이것은 흡사 발가락과 같았다. 이들 중 일부는 약하기가 철 같았다(42절).
제국의 강화를 위해 이 여러 나라를 연합하고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베풀어졌지만 허사였다. "그들은 피차에 합하지 아니하니라."
로마 제국은 오랫동안 통치권을 원로원과 민회, 귀족과 평민간에 분배하였지만 그들은 완전히 유착하지는 못했다.
마리우스와 실라, 시저와 폼페이 간의 투쟁으로 내전이 있었고 이들의 파당은 마치 철과 진흙같았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로마의 몰락기을 가리킨다고 한다.
야만족들이 대거 침입하자 로마 제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강화책으로 왕족간에 인척을 맺었지만 그런 정략 결혼도 소기의 효과 그러나 거두지 못하고 로마 멸망의 날은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2. 사람의 손으로 채취되지 않은 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상징한다.
이 나라는 로마 시대에 세상에 세워질 것이다. 세상에서 사탄 왕국의 폐허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 왕국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인간적 권력이나 정략으로 세워지거나 유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세우는 데는 보이는 손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신이 보이지 않게 이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이것은 자기들의 손으로 뜨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었다. 그러나 그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1) 복음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그리스도는 그 왕국의 유일하고도 최고의 통치자시다. 그는 자기 말씀과 성령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신다. 그는 그 나라를 보호하시며 그 나라의 법과 질서를 부여하신다. 그는 이 나라 백성에게서 충성과 찬사를 받으신다.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에 세워져 있는 나라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2) 이 나라를 세우실 분은 하나님의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께 심판하실 권세를 주시고 그를 시온의 거룩한 왕으로 세우시며 즐거운 백성으로 그에게 기꺼이 복종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 나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왕왕 천국이라고 표현된다. 그 나라의 원형은 위에 있으며 그 나라의 경향은 상향적이다.
(3) 그 나라는 열왕의 때 곧 넷째 나라의 여러 왕들의 때에 세워질 터였다.
복음서 기자는 특히 이 점에 주목하여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온 세상이 다 호적하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태어났다고 한다(눅 2:1).
이것은 로마 제국이 지상에서 공전절후/전후후무의 대제국이었음을 분명히 암시한다.
이들 여러 왕들이 서로 분쟁하며, 각자가 온갖 투쟁으로 자기 이득을 노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사업을 수행하시고 자기 계획을 성취하실 것이다.
열왕들은 전부가 그리스도읜 나라를 대항하는 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열왕을 무시한 채 세워질 것이다.
(4) 나라는 쇠할 줄 모르며 멸망당할 위험도 없고 승계나 전복이나 혁명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처럼 외세의 침략으로 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불과 검도 그 나라를 황폐시키지 못할 것이다. 세상과 음부의 연합 세력도 그 나라의 임금에게서 백성을, 그 나라의 백성에게서 임금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 나라는 지상의 나라처럼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후계자가 없는 왕이시듯(그리스도 자신이 영원히 왕노릇하실 것이므로)그의 나라도 혁명이 없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실은 유대인에게서 탈취되어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이다(마 21:43). 그것은 메시아의 나라요 기독교회/복음교회이다. 기독교회는 여전히 동일하다.
기독교회는 도전도 많이 받았지만 반석 위에 고정되어 있고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한다.
(5) 그 나라는 모든 반대 세력을 쳐부수는 나라이다.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신상을 쳐서 부숴뜨릴 것처럼 그 나라는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할 것이다" (44.45절).
그리스도의 왕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닳아 없어지게 할 것이며 그들보다 오래 지속할 것이며 세상 모든 나라가 제 자신의 무게로 침몰하며 그들의 장소가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을기억하지 못할 만큼 황폐될 때도 이 나라는 번성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적하는 모든 나라는 철장으로 질그릇 깨어지듯 할 것이다(시 2:9).
그리스도의 왕국에 복종하는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뿌리를 박는 한 독재와 수상 숭배 그리고 수치스런 모든 일이 근절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능력을 멸하시고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날이 오고 있다. 그 때에는 이 예언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고전 15:24, 25).
우리 구주께서 자신을 유대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비유하시면서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리라" (마 21:44)고 하셨을 때는 바로 이것을 암시하신 것 같다.
(6) 그 왕국은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들 세상 왕국은 주변 모든 나라를 부숴뜨렸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제 차례가 되면 마찬가지로 멸망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다른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 자체는 영원히 설 것이다.
그의 보좌는 천국의 날과 같으며 그의 자손과 그의 백성은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할 뿐만 아니라 무변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사와 평강의 더함은 무궁할 것이다(사 9:7). 주께서는 영원히 왕노릇하실 것이다. 시간의 끝까지 뿐만 아니라 시간과 날들이 더 이상 없게 될 때도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것이다(고전 15:28).
Ⅲ. 다니엘은 이렇게 꿈을 해석하여 느부갓네살을 만족시켰다.
왕은 그의 꿈 해석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그의 해석은 너무도 완벽하여 왕은 질문할 것도 없었고 그 해석은 너무도 명백하여 왕은 반대할 수도 없었다.
다니엘은 다음에 대한 엄숙한 확언으로 말을 모두 끝마친다.
1. 이 꿈은 하나님께서 유래했다는 것.
"크신 하나님께서 장래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술객들의 신들은 이 일을 할 수 없었나이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존중심을 피력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큰 왕의 마음속에 자기와 동일한 신관을 불어넣기 위해 크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충분한 확증은 오래 전 이사야가 우상 숭배자들, 특히 바벨론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역설한 대 논증에 나타나 있다(사 41:23).
그는 그들이 숭배하던 신들에게 "장래사를 보여서 너희의 신됨을 우리에게 알리라" 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는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신다" 는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했다(사 46:10).
2. 이 꿈에 의해 예고된 일들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확실하다는 것.
이 일들을 알리신 분은 바로 이 일들을 계획하고 결정한 분이시며 그는 섭리로써 그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뜻이 완전히 설 것이며 변개되지 않을 것이어서 그 꿈과 해석이 참되고 확실하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하나님께서 알리신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는 신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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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을 존귀케 하는 왕(단 2:46-49)
느부갓네살은 자기 왕국의 영속화를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가 다니엘에게 격노할 줄로 예기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국의 몰락을 예고하고 전혀 다른 성질의 나라가 영원한 왕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때문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예언을 모독이라고 분개하긴 커녕 신탁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1.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하나의 작은 신으로 볼 정도였다.
물론 그는 다니엘이 인간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다니엘이 자기의 꿈과 그 해석 즉 자기의 은밀한 영상과 장래사에 대한 놀라운 발견을 말했기 때문에 왕은 확실히 자기이 찬양을 받을 만한 어떤 신성이 다니엘 속에 기거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는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였다(46절).
왕들은 신적 능력을 다소 소유한다고 해서 왕들에게는 끓어 엎드려 절하는 것이 그 나라의 풍습이 었다(내가 말하기를 너희를 신들이라 하였다. 시 82:6).
그런데 남들에게서 그런 숭배를 받던 이 왕이 다니엘에게 그 같은 절을 한 것이다.
그는 다니엘이 신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경이감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다니엘이 인간이며 자기가 왕이란 사실까지도 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신적 계시를 이토록 돋보이게 하며 존귀하게 만드셨다. 즉 교만한 제왕에게 신의 계시를 단 한 번 일변시킴으로써 그토록 큰 존경을 얻어내신 것이다.
그는 다니엘에게 경배하고 나서 그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명령했으며 동시에 향을 피우라고 명했다.
이 점에서는 그의 행위가 옳다고 할 수 없지만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경배하려고 한 것이나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한 것을 생각하면 다소 변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고 있진 않으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이런 공경을 거절하면서 베드로처럼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다" (행 10:26)고 하거나 아니면 요한에게 말한 천사처럼 "삼가 그리하지 말라" (계 19:10)고 했을 것같다. 왜냐하면 왕이 명령하긴 했지만(원뜻은 "말했다" 이다)그에게 예물이 봉납되었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그에게 예물을 드리라" 고 말했다.
왕이 대답했다는 그 다음 말씀(47절)에는 다니엘이 어떤 말을 해서 왕의 시선과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랑을 품지 않은 자들도 말씀의 사역자들에게는 큰 공경을 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며 그의 말을 달게 들었지만 자기 죄 중에서 계속 행했던 것이다(막 6:20).
2. 그는 즉시 다니엘의 하나님이 위대하고 참된 신이며 살아계신 유일의 신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다니엘이 예배받기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그는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라" 고 고백하면서(47절) 하나님을 경배했을 것이다(다니엘이 지시한 대로 경배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모든 신들 중에서 위엄과 통치권이 뛰어난 신으로 인정했다.
그는 모든 왕의 주재시다. 왕들도 그 권력을 그에게서 얻으며 그에게 책임을 진다. 그는 은밀한 것을 발견하시는 자이자 나타내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는 극히 은밀한 비밀도 보시며 또 나타내실 수도 있다. 그가 나타내신 것은 전부 은밀한 것이었고 그 외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었다(고전 2:10).
3. 그는 다니엘을 중용하고 큰 자로 삼았다(48절).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자기와 교제하자 실로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드셨으니 그것은 느부갓네살의 중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를 높였으므로 왕도 그를 높인 것이다.
재물이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가? 왕은 다니엘에게 귀한 선물을 많이 주었다. 다니엘은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재물은 포로된 동포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기능을 더 크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이 선물들은 그의 선한 봉사의 댓가였다.
그는 술객처럼 보상을 노리지도 않았고 발람처럼 삯을 흥정한 것도 아니었다.
권세가 한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가? 왕은 다니엘을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였다.
틀림없이 그는 이로 인해 다른 여러 도에 대해서도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또 왕은 그를 바벨론 모든 박사의 우두머리로 삼고 대학의 총장으로 삼았다. 그는 자기가 이처럼 능가한 모든 술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들은 왕이 원하는 일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니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미련한 자가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된다는 것은 적절하다(잠 11:29).
왕은 다니엘이 이 은밀한 것을 능히 나타낼 수 있음을 보고 그를 이토록 중용하였다.
신의 계시를 받고 그것에 정통하며 다니엘처럼 하늘 나라에 대한 조예를 스스로 드러내는 자를 발탁하여 중용하는 것은 통치자의 지혜라는 점을 주목하자.
요셉도 다니엘처럼 꿈의 해석 때문에 애굽 왕에게 중용되었다. 애굽 왕은 바벨론 왕처럼 요셉을 사브낫바네아 즉 비밀의 계시자라고 불렀다(창 41:45 참조)
그러므로 은밀한 것을 나타냄으로써 왕에게 선한 봉사를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들의 출세 과정이 같다고 할 수 있다.
4. 그는 다니엘을 위하여 또 그의 선례와 요청을 따라 그 친구들을 등용했다(49절).
다니엘 자신은 추밀원 주재자와 대법원장 그리고 국무총리로서 왕궁에 있었다. 아마 궁내 대신까지 겸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선한 자답게 친구들을 위해 자기 세력을 이용하여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에게 관직을 얻어 주었다.
기도로 다니엘을 도왔던 그들은 그의 존귀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다니엘은 그들의 협조를 이토록 은혜로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등용은 요직과 격무에 들러싸인 다니엘에게 큰 의지와 도움이 될 터였다.
이처럼 바벨론에서 출세한 이들 경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와있는 동포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커졌으며 여러 가지 선한 직분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틀림없이 그들은 이런 일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 백성을 환란으로 몰아넣으시기 전 그 생활이 편안하도록 예비시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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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 꿈
===1-30절, 죽음의 위기를 피함
[1-6절] 느부갓네살이 위(位)에 있은 지 2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왕이 그 꿈을 자기에게 고하게 하려고 명하여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매 그들이 들어와서 왕의 앞에 선지라.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있은 지 2년이라는 말은 햇수로는 3년째의 시작이라는 뜻 같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3년간 교육을 받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갈대아 술사들은 아람어로 왕에게 말했고 그래서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는 아람어이다. 아람어는 바벨론과 그 주위 나라들에서 쓰였던 언어이었다. 왕의 요청은 참으로 희한하고 무리하였다.
[7-13절]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얻으려, 끌려] 함이로다.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악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칙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다른 사람의 꿈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느부갓네살 왕은 포학한 군주였음이 드러났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죽임 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그들은 아마 왕에게 발탁되어 왕을 섬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큰 위기를 맞았다.
[14-16절] 왕의 시위대 장관[오늘날의 경호실장]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다니엘은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으며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고 말하며 들어가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한 담대한 제안이었다.
[17-19절]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異像)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엘라흐 쉐마이야 )[하늘의 하나님](2:19, 37, 44)을 찬송하니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기도뿐임을 알고 합심하여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는 살아계신다. 그는 그 은밀한 것을 밤에 이상(異像)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다. 다니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20-23절]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다니엘이 밤에 이상 중에 본 그 은밀한 것은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에게 알게 하신 것이었다.
[24-26절] 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말했고, 아리옥은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 고하기를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그 꿈을 해석할 자를 얻었다고 말했다.
[27-30절]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異像)은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다니엘은 왕이 물으신 그 은밀한 것은 어떤 술사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나타내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 장래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신 것이라고 증거하였고, 또 그가 그것을 안 것은 그의 지혜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왕에게 알리시기 위해 알게 하신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에게는 때때로 위기가 찾아온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도 그러했다. 그들은 왕의 발탁을 받아 왕을 섬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다. 세상의 삶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고난은 성도의 삶의 정상적 과정이다.
둘째로, 성도는 위기 때에 기도해야 한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합심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기도는 위기를 대처하는 성도의 바른 방법이다. 시편 50:15,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또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힘이 있다. 주께서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마 18:19). 우리는 위기를 당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자신을 나타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증거해야 한다.
다니엘은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또 그는 왕 앞에서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은밀한 것을 나타내셨다고 증거하였다. 옛날에 요셉도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 오직 하나님만 증거하며 하나님께서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이라고 말했다(창 41:16, 25, 32).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우리 자신을 나타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증거해야 한다.
===31-49절, 꿈과 그 해석을 말함
[31-33절]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순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한 큰 신상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신상의 머리는 순금, 가슴과 팔들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그 종아리는 철,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다.
[34-39절]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떠낸, 채석된]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큰 산, 거대한 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우리가](KJV, NASB, NIV)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그 신상의 금 머리는 바벨론 나라의 왕 느부갓네살 자신을 가리킨다. 또 바벨론 나라 다음에, 은 가슴과 팔로 상징된, 왕만 못한 다른 나라는 메대와 파사 제국을 가리키며,<20) 루터, 칼빈, 헹스텐베르크, 카일과 델리취, 루폴드, E. J. 영 등의 견해> 또 놋 배와 넓적다리로 상징된 셋째 나라는 헬라 제국을 가리킨다고 본다.
[40-43절]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넷째 나라는 로마 제국을 가리켰다고 본다. 로마 제국은 철 같은 강대한 제국이었다.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았듯이, 그 나라는 나누일 것이며, 또 철과 진흙이 섞였듯이 그 나라의 얼마는 튼튼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하며, 또 그들은 다른 인종들과 서로 섞여 피차에 합하지 아니할 것이다.
[44-45절]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이제 중요한 내용이 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신 꿈은 단지 사람들에게 세계사의 펼쳐짐을 열람시키려는 데 있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온 세계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한 계획을 보이시고 그것을 이루실 그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데 있었다. ‘이 열왕의 때’ 즉 로마 제국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세우실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하며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않으며 도리어 이 모든 나라들을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다. 또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채석된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의 나라들을 부서뜨릴 것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채석된 돌”에 의해 설립될 나라이며 그 영토는 세계적이고 그 기간은 영원할 것이다. 이 나라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신약 교회를 가리켰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채석된 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분명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그를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채석된 돌”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신성(神性)과 동정녀 탄생을 가리켰다. 마태복음 21:44에 보면, 주께서는 자신을 돌이라고 하시며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고 말씀하셨다.
돌이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상 전체를 부서뜨린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세계에 임할 것을 보인다. 로마 시대에,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마 4:17).
신약교회는 확실히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하였고(골 1:13),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불렀다(벧전 2:9). 사도 요한도 주 예수께서 성도들을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증거하였다(계 1:6).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힘있게 시작되었고 장차 그의 재림(再臨)으로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이다. 신약시대의 구원 운동은 온 세상에 미칠 것이며(행 1:8; 눅 24:47) 오늘날 우리는 그것의 실현을 보고 있다.
천국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될 때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마 24:14). 본문의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만 국한시키는 해석(세대주의적 해석)은 옳지 않다고 본다.
[46-49절]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수장 首長]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청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스라엘 나라를 정복했던 바벨론 나라의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신하 다니엘에게 절하고 그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든 신의 신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이와 같이 증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온 세상의 대주재시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다.
느부갓네살 왕은 약속대로 다니엘을 높였고 귀한 선물을 많이 주었다. 또 그는 다니엘을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였고 바벨론 모든 박사의 수장(首長)을 삼았다. 또 그는 다니엘의 요청대로 그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다.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섭리자이시다. 개인도, 국가도, 세계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만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신약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며 그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이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그의 택하신 자들이 다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
셋째로, 다니엘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이었다.
그의 꿈 해석은 그와 그 친구들의 기도 응답의 결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일이었다. 기도는 죽음의 위기를 극복케 했고 세상의 왕을 굴복시켰고 이방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존귀함까지 얻게 하였다. 범사에 기도하는 자는 승리적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