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19장 [324.예수 나를 오라 하네] [254. 내 주의 보혈은] [258. 샘물과 같은 보혈은]...예수님의보혈로..
여호와 이레(= 여호와 + 라아(흐) ::: YHWH께서 보이신다. ....모리야(= 마르예 + 예호와...YHWH의 이상을) 높은 곳(골고다 언덕 = 진<영문> 밖..13미터 높이 바위)의 십자가 죽음...창22장 참조
부정, 곧 불결함은 죄의 결과로 온, 사망으로[=주께로부터 생명 연결이 끊김] 인한 더러워짐임을 말한다... 이미 14700명의 사망한 시체가 여기저기 있었다. 백성들은 그들이 죽을 때 거기 함께 있었고, 죽은 이의 장막에 들어가야 하기도 했고, 그 시체 처리를 위해 만져야 했고 그로 인해 오염되었다. 이로 인해 남은 백성들은 모두 부정한 상태였기에, 사망의 영향과 부정을 처리하기 위해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이 필요했다.
***우슬초의 겸비.. .....[긍휼히 여김, <한 배에서 난 형제 자매로 여겨, 그들을 도와 일으킴 위해 교통-동참-분배/전이함> 그 마음의 태도에 있어서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의 겸비-온유- 마음의 눈높이를 같이 하여 함께 울고 슬퍼하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함이다!!... 이때 이해-관심-용납-용서-오래 참음/견딤/버팀-(주라 하심따라!!) 내어줌의 희생 감수가 뒤따라 일어날 것이요...그것을 상대방은 알아채게 될 것이요 그 탁월한 사랑의 아름다움에 마음 열고 주님 바라보게 될 것<이것이 거듭 되는 성령의 페인팅>,] 겸손이나 겸허, 둘로스의 겸비Humbling는 먼저, 상대방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겨> 먼저, 주님 임재 앞에서<주님의 자비하심에 남김없이 적셔짐 인해 상대방과 눈높이를 같이하여> 찬찬히 잘 살펴 이해와 통찰/공감/동감/동정/친절/부드러이/너그러이/참아 기다림/기회 제공-(주 안에서 HS의 깨닫게 하심 따라), 경청/이해-용납하고 도와 일으키기 위해 자기를 내어주어 <상대방이 주님으로 만족케 됨과 주와 하나 됨 회복에로의 용기와 담대함의 전망 얻을 수 있도록, 주님 손의 도구 되어 거듭 거듭!! 성령으로 페인팅 제공 위해> 최선 다해 최상으로 섬기는 세심함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땅의 티끌을 접촉하며 살기에(또한 주 임재의 성막은 땅 위에 세워졌음), 주님은 "내가 (땅의 티끌로 더럽혀진,,,,죽음 충만한) 땅 위 걷는 <섬김이의> 생활 중에 오염되고 더러워진 <참되게 믿고 거듭난 자> 너희 발을 <말씀의> 물로 씻겨주리라" 하셨던 말씀과 연결됨.. [요13:13-10...*3.(마지막 만찬)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붉은 암송아지의 재 .....[진영/영문 밖에서 번제로 잡아 드리는, 흠이 없고 멍에를 매어 본 적 없는 붉은 암송아지, 그 재는 샘물과 섞어서 더러움을 씻어 정결케 하는 정화수로 쓰였음...그 안에는 (참 인성 가지신 성육신하신 여호와, 왕중 왕이시면서 동시에 자기를 낮추어 종으로 오셔서 모든 이들을 위한 대속의 보혈 흘리신) 그리스도, 그분의 피와 새 언약 말씀/성령의 씻는 물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 ]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영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신 JC 표상) 4.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 .....백향목(높여진, 고귀한 인성의 왕)-우슬초(꽃말은 겸손, 가느다란 털 묶음처럼 생긴 꽃 모양으로 인해 피나 물을 머금어 뿌리는 도구로 적합했고 세세한 구석구석까지 닿는 세밀함/완전한 수용성의 겸비함...종)와 함께 홍색실(붉은 피, 곧 생명 내어드림의 자기 희생)...레14장, 나병환자 정결례에서도 반드시 사용함.. 7.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 ===시체를 만진 자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 1.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and Aaron, saying, 2. "This is the statute of the law which the LORD has commanded, saying, 'Speak to the sons of Israel that they bring you an unblemished red heifer in which is no defect, [and] on which a yoke has never been placed. 3. 'And you shall give it to Eleazar the priest, and it shall be brought outside the camp and be slaughtered in his presence. 4. 'Next Eleazar the priest shall take some of its blood with his finger, and sprinkle some of its blood toward the front of the tent of meeting seven times. 5. 'Then the heifer shall be burned in his sight; its hide and its flesh and its blood, with its refuse, shall be burned. 6. 'And the priest shall take cedar wood and hyssop and scarlet [material,] and cast it into the midst of the burning heifer. 7. 'The priest shall then wash his clothes and bathe his body in water, and afterward come into the camp, but the priest shall be unclean until evening. 8. 'The one who burns it shall also wash his clothes in water and bathe his body in water, and shall be unclean until evening. 9. 'Now a man who is clean shall gather up the ashes of the heifer and deposit them outside the camp in a clean place, and the congregation of the sons of Israel shall keep it as water to remove impurity; it is purification from sin. 10. 'And the one who gathers the ashes of the heifer shall wash his clothes and be unclean until evening; and it shall be a perpetual statute to the sons of Israel and to the alien who sojourns among them. 11. 'The one who touches the corpse of any person sha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2. 'That one shall purify himself from uncleanness with the water on the third day and on the seventh day, [and then] he shall be clean; but if he does not purify himself on the third day and on the seventh day, he shall not be clean. 13. 'Anyone who touches a corpse, the body of a man who has died, and does not purify himself, defiles the tabernacle of the LORD; and that person shall be cut off from Israel. Because the water for impurity was not sprinkled on him, he shall be unclean; his uncleanness is still on him. 14. 'This is the law when a man dies in a tent: everyone who comes into the tent and everyone who is in the tent sha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5. 'And every open vessel, which has no covering tied down on it, shall be unclean. 16. 'Also, anyone who in the open field touches one who has been slain with a sword or who has died [naturally,] or a human bone or a grave, shall be unclean for seven days. 17. 'Then for the unclean [person] they shall take some of the ashes of the burnt purification from sin and flowing water shall be added to them in a vessel. 18. 'And a clean person shall take hyssop and dip [it] in the water, and sprinkle [it] on the tent and on all the furnishings and on the persons who were there, and on the one who touched the bone or the one slain or the one dying [naturally] or the grave. 19. 'Then the clean [person] shall sprinkle on the unclean on the third day and on the seventh day; and on the seventh day he shall purify him from uncleanness, and he shall wash his clothes and bathe [himself] in water and shall be clean by evening. 20. 'But the man who is unclean and does not purify himself from uncleanness, that person shall be cut off from the midst of the assembly, because he has defiled the sanctuary of the LORD; the water for impurity has not been sprinkled on him, he is unclean. 21. 'So it shall be a perpetual statute for them. And he who sprinkles the water for impurity shall wash his clothes, and he who touches the water for impurity shall be unclean until evening. 22. 'Furthermore, anything that the unclean [person] touches shall be unclean; and the person who touches [it] shall be unclean until evening.' " ========= 민수기 19장 (개요) 본 장은 정결케 하는 물에 넣을 재(灰)의 준비와 처리법에 대한 것이다. 백성은 그 율법이 너무 엄하다고 불평을 했다. 율법은 그들에게 회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17:13). 이러한 불평에 응답하여, 그들 자신을 정결케 하여, 기회가 있을 때는 두려움 없이 기꺼이 나아올 수 있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1. 붉은 암송아지를 불에 태워서 그 재를 마련하는 법이 있다. 그 때에는 많은 의식도 따라 온다(1-10). 2. 그 사용법. (1) 그것은 사람이 시체와 접촉하여 생긴 오염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2) 재(그 중의 조금을 취하여)를 흐르는 물에 넣는다. 그것을 실행하는 자는 정결한 자라야 한다(17-22). 그리고 이러한 의식상의 정결법은 믿는 자의 양심을 죄에서 깨끗케 하는 일의 한 상징이요 모형이니, 사도의 증언과 같다(히 9:13, 14).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과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리는” 의식의 정결 효능이 비교되어 있다. ------------ 정결케 하는 재의 준비법(민 19:1-10) 여기에 보면 많은 암송아지를 엄숙히 태워서 재로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와 있다. 그 재는 보관해 두어야 했는데, 그것은 장식용이 아니라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쓰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율법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것은 복음처럼 아름답게 할 능력은 없고, 단지 깨끗하게만 할 수 있었다. 암송아지를 태우는 것은 속죄 제물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제단에서 실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수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과 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하고 정화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맺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도 평화를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제단에서 죽은 소와 염소뿐만 아니라 진 밖에서 죽은 암송아지와 같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Ⅰ. 그 암송아지는 다른 어떤 제물보다 더 주의 깊게 선택해야 된다(2절). 흠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점 없는 순결과 죄 없는 완전을 상징한다. 또한 붉은 암송아지라야 한다. 그런 색의 송아지는 진귀했기 때문에 더욱 돋보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송아지에 희거나 검은 털이 두 개만 있어도 안 된다.”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아담의 아들이었다. 곧 “붉은 흙”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아담의 옷과 피와 또 그의 원수의 피가 붉은 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 송아지는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것이라야 한다. 다른 제물에는 이런 조건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자발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내가 왔나이다”(시 40:7)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 분은 자신의 사랑의 줄 외에는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았다. 이 암송아지는 회중이 공동 부담으로 구입한다. 그들이 모두 그 송아지의 혜택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선조들은 그리스도와 관계되어 있다. Ⅱ. 그것을 태우는 데도 많은 의식이 수반된다. 그 집행은 아론이 아니라 엘르아살에게 맡겨졌는데, 그 까닭은 아론은 그와 같은 의식상 순결한 일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부적합할 뿐 아니라, “저녁까지” 부정한 채로(8절) 있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특히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것은 아론 다음으로 존엄을 지니고 있는 엘르아살이 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의 대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1. 암송아지는 부정한 것처럼 진 밖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의식법이 죄를 완전히 제거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실제로는 깨끗케 할 수 없으므로 그 일을 행하는 자들도 부정했다. 그들에게 붙은 오염이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모형에 응하여서,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시고 저주를 당하셨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히 13:12). 2. 엘르아살은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뿌렸다”(4절). 그것은 일종의 속죄 의식이다. 여호와 앞에 피를 뿌림은 모든 속죄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제단에서 이루어진 일은 아니지만, 성소를 향하여 행한 일이므로, 그 피 뿌림의 혜택과 실효성은 성소에 달려 있고 거기서 연유된 것임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제사장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진 보상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히 9:14, 영은 에인즈워드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도 불린다. 눅11:20)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다.” 말하자면 그 분은 죽으시사 자신의 피를 성소로 향해 뿌리신 것이다. 그 때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보상을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정결함이 얼마나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말해 준다. 이 피 뿌림의 효력이 그 재에 주입된다. 3. “온전히 불살라야” 했다(5절). 이것은 우리 주님이 번제물처럼 영과 육의 극한적 고난을 받으셨음을 상징했다. 제사장은, 그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동안 백향목, 우슬초, 그리고 홍색 실을 넣는다. 이것은 문둥병자를 깨끗케 할 때 쓰이는 것들이다(레 14:6, 7). 그래서 그 재가 송아지 재와 섞이게 했다. 그 재는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4. 암송아지의 재(물론 그것은 장작의 재와 정성껏 구별되어야 한다)는 정결한 자의 손으로 주의 깊게 모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을 빻아서 체로 쳐서, 필요한 때에 쓸 수 있도록 보관해 두었다(9절). 당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도 보관해 두었다. 이런 암송아지의 재는 여러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정결한 물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즉 그 재는 거의 천 년 동안도 쓸 수 있었다. 또 에스라 시대에 다른 암송아지를 잡아서 재를 만들 때까지는 그것이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전설에 의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런 암송아지를 잡은 기록이 없다는 사실에만 근거한 계산인 듯하다. 그것을 믿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후기 유대교 시대에는 많은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에스라 시대와 제2성전의 파괴 기간에도 여덟 번이나 그런 기록을 본다. 그런데 그 사이는 약 500년이다. 이 재는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쓸 것”이므로 보관하라고 했다. 이것은 의식법상의 정결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죄를 정결케 한 사건의 산 모형이 된다. 물과 혼합된 재들은 찌끼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라는 데서 그 효력을 갖는다. 그 효력의 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롬 10:4) 되셨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정결케 하는 물은 그와 같이 암송아지의 재로 만들어졌다. 그 암송아지의 피는 제단 앞에 뿌려졌다. 그리하여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깃들어 있는 효력이다.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의 피다(요일 1:7). (2) 그 재는 모든 사람이 쓰기에 넉넉했다. 필요할 때마다 각 개인이나 가정이 다시금 암송아지를 잡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쓰기에 넉넉했다. 심지어는 그들 중에 체류하는 타국인들도 쓸 수 있었다(10절). 마찬가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또한 넉넉하다. 모든 이스라엘인의 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도 풍족하다(요일 2:2). (3) 이제는 여러 세대를 걸쳐 낭비됨이 없이 잘 보관토록 했다. 재처럼 부패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 물질적 질료는 또 없다. 패트릭 주교의 말대로, 이와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영속적인 효험을 상징해 주기에 아주 적합하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모든 시대를 걸쳐서 그들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다. (4) 이 재는 이스라엘의 불결을 깨끗케 해 주는 것이므로 보물처럼 보관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도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샘물로서 우리를 위해 보존되었으니, 우리는 거기에서 믿음에 의해서 날마다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한다(슥 13:1 참고). 5. 이 예식에 참예한 모든 사람은 그 의식으로 인하여 의식법상으로 불결해진다. 엘르아살은 그 피를 뿌린 일을 했을 뿐인데도 역시 부정해진다(7절).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부정하리라”(8절). 그리고 “재를 거둔 자도” 부정하다(10절).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에 동참한 모든 사람은 그것 때문에 죄를 지었다. 그를 배신한 자, 핍박한 자들, 재판한 자, 처형한 자들,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행 2:23) 이루어진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죄가 된다. 그러나 한편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아마 모두가 자기들을 죄짓게 했던 바로 그 피의 공로로 다시 죄 씻음을 받았을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율법적 예배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고 보며, 또 그것은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음을 말해 준다고 본다. 남을 정결케 하기 위한 일을 준비한 자들까지도 그 준비한 일로 인하여 죄로 불결해졌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솔로몬도 이해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즉 한 가지 사물이 정한 자는 부정하게 만들고 부정한 자는 정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패트릭 주교의 말대로 죄를 위해서 드려지는 모든 희생 제물은 그 사실 때문에 부정해진다는 것, 즉 인간의 죄가 그 제물 위에 옮겨져 있으므로 부정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상할 것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에게 옮겨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바 되었다고 했다(고후 5:21). ---------- 재의 사용법(민 19:11-22) 정결케 하기 위해 마련한 재의 사용법과 적용법이 나와 있다. 그 재를 보관한 것은 꺼내어 쓰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어느 한 장소에 넣어 두기로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밀집하여 진을 치고 있었던 연고다. 그러나 아마 나중에는 그 재들을 조금씩 나누어서 각 마을에 배치해 두었을 것이다. 날마다 그것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Ⅰ. 이 재로 정결케 하는 의식이 필요한 때. 본문에는 시체나 시체의 유골이나 무덤, 또는 시체가 있는 집이나 천막에 접촉한 자로 인하여 생기는 의식법상의 부정함 외에는 언급이 없다(11, 14-10절). 내 생각으로는 무수한 의식법 중에서 가장 부담을 많이 주는 율법의 하나였을 것이다. 부정한 짐승의 시체나 의식법상으로 가장 중대한 부정에 처한 산 사람을 만진 자는 “저녁까지”만 부정하다. 그러므로 보통 물로 씻으면 된다. 그러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간 자는 7일 동안이나 부정하다고 했고, 정결한 물로 두 번 정결케 해야 한다. 그 물은 어려움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는 구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부정이 깨끗케 되기 전에는, 성소에 가까이하면 죽임을 당한다. 1. 이것은 특이한 일로서, 생각할 점이 있다. (1) 사람이 일단 죽으면 누군가 몇 사람은 불가불 이러한 오염에 접촉되게 마련이다. 시체에 염을 하고, 씻기고, 싸매고, 나르고, 매장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타락하고 부패한 상황 속에 살고 있으면서 죄가 없는 자는 없다는 사실을 의미해 준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쳐 가야 할 이 썩을 세상으로 인하여 더러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날마다 죄를 짓는다. 그러나 우리가 죄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죄란 조금도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 줄 수는 없다. (2) 시체를 정중히 돌보고 매장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일 뿐 아니라 좋은 일이다. 죽은 자를 위해서나 유가족의 위안을 위해서나 친절한 행위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부정에 접하게 된다. 이 사실은 죄의 오염이 우리들이 하는 가장 좋은 일에도 섞여 있고 붙어 다닌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우리는 선행을 하는 중에도 종종 실수하기가 일쑤다. (3) 자기 집에서 개인적으로 할 때에도 역시 같은 오염에 물들게 된다. 패트릭 주교가 관찰한 바대로, 이 사실은 하나님은 은밀히 행한 일도 알고 계시므로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존전에 숨겨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4) 또 이러한 오염을 접하고서도 본인이 그것을 모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무덤에 접촉된 경우 따위이다. 우리 구주께서도 그런 일을 말씀하셨다.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눅 11:44). 이런 사실은 몰라서 지은 죄로도 양심이 불결해진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누가 자기의 잘못을 알리요?” 그러고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은밀한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소서.” 2. 왜 율법은 시체를 그토록 더러운 것으로 보았는가? (1) 죽음이란 죄로 인하여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죄의 권세로 다스리는 “죄의 삯”(롬 6:23)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다른 생물들의 죽음과는 다른 의미를 인간에게 준다. 인간의 죽음은 저주다. 그것은 율법이 내린 형벌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더러움은 곧 죄의 더러움을 의미한다. (2) 율법은 죽음을 정복하거나 폐하거나 그 죽음의 성질을 변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생명을 가져오고 불멸의 법을 가져와서 보다 나은 소망을 죽음에 준다. 우리 구주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었으므로, 죽음이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파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은 몸이라 하여 더 이상 불결하지 않다. 그러나 “율법은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할 수 없다”는(히 10:1)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교회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에는, 시체로 인해 생긴 오염이 그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죽음을 불안스럽게 생각케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은 죽음을 이긴 승리를 노래할 수 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더럽게 할 네 능력이 어디 있느냐? Ⅱ. 재를 사용한 방법. 1. 재를 조금 가져다가 샘물 한 잔에 섞는다. 그러면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물을 본문에서는 “정결케 하는 물”(KJV에는 “분리의 물”이라고 되어 있음)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부정으로 인하여 성소와 분리된 자들에게 뿌리는 물이기 때문이다. 암송아지의 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상징하듯이, 흐르는 물은 성령의 권능과 은총을 상징한다. 성령은 생수의 강으로 비유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가 깨끗케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성령”(고전 6:11; 벧전 1:2)으로 말미암아 씻김 받는다. 즉 거룩케 되고 의롭게 된다고 했다. 성령의 은혜와 감화력에 순복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 유익을 기대하는 자들은 오직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결합해 놓으신 것을 우리가 분리할 수 없고, 흐르는 물에 섞여 있는 재가 아닌 다른 재로는 우리가 깨끗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2. 우슬초 가지로 그 물을 찍어서 뿌리면 정결하게 된다(18절). 이것을 두고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시 51:7). 믿음이란 우슬초 가지다. 믿음이 양심에 뿌려지면 그 마음이 정결케 된다. 한꺼번에 여러 번 뿌렸을 것이다. 재가 섞인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 물을 여러 번 뿌렸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의도대로는, 몇 방울만 떨어져도 그 사람은 정하게 된다. 뿌리는 데 쓰는 정결의 물에 비유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을 “뿌린 피”라고 했다(히 12:24).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에서 깨끗케 된다(히 10:22). 즉 우리의 죄책감에서 발생한 부정함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통해 “많은 민족들에게 뿌릴 것”(한글 개역에는 “열방을 놀랠 것”이라고 되어 있음)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사 52:15). 3. 부정한 사람은 “제삼 일과 제칠 일에” 이 물의 뿌림을 받아야 한다(12-19절). 아마 날수 계산은 그가 시체에 가까이한 끝 날부터 했을 것이다. 계속 오염에 접해야만 하는 동안을 정결의 날수로 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체가 매장되어 더 이상 거기에 개입할 필요가 없을 때, 그 때는 자기의 날수를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덕을 우리 영혼의 위안으로 삼는 때, 그 때에만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죽음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엡 5:11) 않게 된다. 뿌림의 반복은 나아만이 “일곱 번” 씻었듯이 우리도 종종 회개와 신앙의 행실을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필수적이어서 잘 해야 할 일은 자주 하는 것이 좋다. 4. 그 오염은 단지 의식법상의 부정일 뿐이지만, 지정된 정결법을 빼먹는 것은 도덕적 죄가 되고 만다.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끊쳐질 것이니라”(20절).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제도를 경멸하는 것은 위험한 일임을 알아야겠다. 가벼운 상처라도 버려두면 치명상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시시한 죄라고 부르는 죄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큰 죄인들이 회개하여 자비를 받는 그런 때에도, 우리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 부정은 우리와 하나님을 분리시킨다. 우리가 부정하고도 자신을 징계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과 구별될 것이다. 치명상을 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치료법을 무시하는 바로 그것이다. 5. 또한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자, 만지는 자, 부정한 자를 만진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게 된다. 즉 그 날은 종일토록 성소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21, 22절). 이로써 하나님은 이러한 제 의식이 불완전한 것임을 알려 주셨고, 그 의식이 저들의 양심을 완전히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므로, 메시아를 기리도록 하셨다. 메시아는 시간이 차면 영원한 성령에 의하여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즉 죽은 자와 같이 더러운 죄로부터의 정결이다. 히 9:14). 그리하여 우리는 산 제사로써 살아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소로 나아갈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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