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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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5장  [216.성자의귀한몸]


===성도를 대하는 태도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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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mothy 5 Amplified Bible

==Honor Widows

1 Do not sharply reprimand an older man, but appeal to him as [you would to] a father, to younger men as brothers, 

2 to older women as mothers, to younger women as sisters, in all purity [being careful to maintain appropriate relationships].

3 Honor and help those widows who are truly widowed [alone, and without support]. 

4 But if a widow has children or grandchildren [who are adults], see to it that these first learn to show great respect to their own family [as their religious duty and natural obligation], and to compensate their parents or grandparents [for their upbringing]; for this is acceptable and pleasing in the sight of God. 

5 Now a woman who is really a widow and has been left [entirely] alone [without adequate income] trusts in God and continues in supplications and prayers night and day. 

6 Whereas she who lives for pleasure and self-indulgence is spiritually dead even while she still lives. 

7 Keep instructing [the people to do] these things as well, so that they may be blameless and beyond reproach. 

8 If anyone fails to provide for his own, and especially for those of his own family, he has denied the faith [by disregarding its precepts] and is worse than an unbeliever [who fulfills his obligation in these matters].

9 A widow is to be put on the list [to receive regular assistance] only if she is over sixty years of age, [having been] the wife of one man, 

10 and has a reputation for good deeds; [she is eligible] if she has brought up children, if she has shown hospitality to strangers, if she has washed the feet of the saints (God’s people), if she has assisted the distressed, and has devoted herself to doing good in every way. 

11 But refuse [to enroll the] younger widows, for when they feel their natural desires in disregard of Christ, they wish to marry again, 

12 and so they incur condemnation for having set aside their [a]previous pledge. 

13 Now at the same time, they also learn to be idle as they go from house to house; and not only idle, but also gossips and [b]busybodies [meddlers in things that do not concern them], talking about things they should not mention. 

14 So I want younger widows to get married, have children, manage their households, and not give opponents of the faith any occasion for slander. 

15 Some [widows] have already turned away [from the faith] to follow Satan. 

16 If any believing woman has [dependent] widows [in her household], [c]she must assist them [according to her ability]; and the church must not be burdened [with them], so that it may assist those who are truly widows [those who are all alone and are dependent].

==Concerning Elders

17 The elders who perform their leadership duties well are to be considered worthy of double honor (financial support), especially those who work hard at preaching and teaching [the word of Go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Christ]. 

18 For the Scripture says, “You shall not muzzle the ox while it is treading out the grain [to keep it from eating],” and, “The worker is worthy of his wages [he deserves fair compensation].” 

19 Do not accept an accusation against an elder unless it is based on [the testimony of at least] two or three witnesses. 

20 As for those [elders] who continue in sin, reprimand them in the presence of all [the congregation], so that the rest will be warned. 

21 I solemnly charge you in the presence of God and of Christ Jesus and of His chosen angels that you guard and keep these rules without bias, doing nothing out of favoritism. 

22 Do not hurry to lay hands on anyone [ordaining and approving someone for ministry or an office in the church, or in reinstating expelled offenders], and thereby share in the sins of others; keep yourself free from sin.

23 No longer [d]continue drinking [only] water, but use a little wine for the sake of your stomach and your frequent illnesses.

24 [e]The sins of some people are conspicuous, leading the way for them into judgment [so that they are clearly not qualified for ministry]; but the sins of others appear later [for they are hidden and follow behind them]. 

25 Likewise, good deeds are quite evident, and those which are otherwise cannot be hidden [indefinitely].

==Footnotes

1 Timothy 5:12 Lit first faith. In saying this, Paul indicates that young widows were being required to pledge a life of celibacy in service to God in order to be put on the list for assistance.

1 Timothy 5:13 Paul levels the same criticism against the people in 2 Thess 3:10, 11.

1 Timothy 5:16 This repeats the admonition given to the men in v 8.

1 Timothy 5:23 Timothy, whose mother was Jewish (Acts 16:1), may have voluntarily taken a lifelong vow to abstain from wine, as Nazirites (from the Hebrew “devoted” or “consecrated”) sometimes did (cf Samson, Judg 13:7). Evidently he never developed a tolerance for water, which was often contaminated and which, in the absence of wine, he would have to drink. 

1 Timothy 5:24 VV 24, 25 continue the advice given in v 22 regarding the selection of church 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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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 (개요)

5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디모데를 교훈한다.

Ⅰ. 징계의 방법(1,2).

Ⅱ. 젊은 과부와 나이 많은 과부 치리에 대한 교훈(3-16).

Ⅲ. 장로들 치리에 대한 교훈(17-19).

Ⅳ. 공개 책망에 대한 교훈(20).

Ⅴ. 직책 수행에 대한 교훈(21,22). 사람의 죄는 각 사람에 따라 그 나타나는 결과가 다름을 교훈하였다(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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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 방법에 대한 교훈(딤전 5:1-2)

위의 구절은 바울이 디모데와 그를 통하여 또다른 복음 사역자에게도 책망하는 일에 대한 규칙을 말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직분상 꾸짖는 사람이다.  징계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역자의 직무의 한 분야를 이루고 있다.  

복음 사역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책망하고 꾸짖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딤후 4:2).  

경계할 때는 책망받을 사람의 나이와 성품과 기타 조건에 따라서 요령있게 해야만 한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같이 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 "어떤 의심하는 자들은 긍휼히 여기라"(유 1:22)고 하였다.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늙은이, 즉 나이 많은 분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꾸짖을 때는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나이와 직위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즉 날카롭게 꾸짖거나 전제 군주와 같은 고압적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디모데 자신이 복음 전도자라 할지라도 그들을 아버지와 같이 대하여야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이끌어 주고 설득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2. 젊은이들은 형제와 같이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꾸짖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잘못의 드러내어 싸움을 일으키려는 욕망으로가 아니라 그들을 가장 사람으로 만들려는 의도로 책망해야 한다.  

책망받을 사람을 책망하기는 하되 책망은 마음을 써서 부드러움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3. 나이 많은 여인이 꾸짖음을 받아야 할 경우가 생겼을 때는 어머니를 대하듯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호세야 2장 2절에 "너희 어미에게 간청하고 간청하라"고 하였다(역주: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4. 젊은 여인을 꾸짖을 때는 "자매에게 대하듯 일절 깨끗함으로"대하여야 한다.  

디모데가 이 세상과 육신과 정욕에 대해 그렇게 금욕적인 사람 이였는데도 이와 같은 주의가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훨씬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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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들에 관한 지시(딤전 5:3-16)

본문에서는 교회에 속하여 있고 교회가 부양하고 있는 많은 수의 과부들에 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하고 있다.  

먼저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3절)고 하였다.  그들을 경대하라는 것은 그들을 도와주고, 직분을 주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 당시 교회에는 과부들이 종사하는 직분이 있었는데 그 직책은 집사들의 지시에 의하여 병든 자와 나이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최초의 교회가 형성되던 때 과부들을 돌보아 주었던 것을 직접 읽어볼 수 있는데(행 6:1) 그곳에 보면 헬라파 교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받는 데서 제외되는 것을 보고 히브리 사람들을 원망했다고 하였다.  

과부들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은 참과부를 경대하여 그들을 돌보아 주고 존경과 친절함으로 구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Ⅰ. 열락을 좋아하는 방종한 과부가 아니라 경건하고 헌신한 과부들만을 교회가 구제하도록 명하였다(5,6절).  

홀로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자라야 참과부로 인정되며 교회의 부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홀로 된 의무요 또 위안인 것임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끔 의지할 것이 없는 그러한 곤경을 당하도록 그의 백성들에게 시련을 내리신다. 

그런데 이는 주님을 더 신뢰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과부는 외로운 신분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라"(렘 49:11)라고 하였고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들을 기뻐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과부들은 "기도를 계속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기도는"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길이 되는 것이다.  

안나는 참과부였는데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눅 2:37) "금식하며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봉사하였던 여자였다."  

그러나 연락으로 살거나 방종하게 사는 여자는 참 과부가 아니다(6절).  쾌락을 탐하는 과부는 과부가 아니며 교회의 도움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러한 여자들은 교회의 살아있는 일원(一員)이 아니라 교회 안에 시체와 같고 또는 교회를 망신케 하는 일원(一員)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좀더 넓게 적용시켜 보자.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아 있으나 허물과 죄로 죽어 있도록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들은 목적이 없이 이 세상에는 사는 자들이요 인생의 참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로서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것이다.

Ⅱ. 바울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과부들의 생계를 교회가 돌보지 아니하도록 또다른 규칙을 세워 주었다.  

이것은 여러 번 언급되었다(4절),  "만약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즉 그들에게 자녀들이나 가까운 연관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그 과부들을 도와 주고 교회에 짐이 되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16절).  교인들은 먼저 가정에서 그리고 자기의 가족에게 신앙의 덕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아 드림으로써 나타내는 효를 본문에서는 신앙의 행위로 취급하였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아무리 부모를 공경한다 할지라도 부모들이 자녀들을 돌보아 주고 갖은 고생을 한 것에 비해서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녀들은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자녀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 것이다.  

만약 부모를 돌보아야만 하며 자녀가 부모를 봉양할 능력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봉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가련한 부모들을 봉양하는 것보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것이 더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일이라고 가르쳤다(마 15:5).  

그러나 "번제나 희생을 드리는 것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더욱 하나님께 용납받을 말한 일이다"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다시 말하기를 "만약 누구든지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라고 하였다(8절).  

만약 어떤 남자나 여인이나 자기에게 속한 불쌍한 가족이나 친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다섯 번째 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그는 중히 여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자와 더욱이 자기의 몸의 일부와도 같은 자기 아내나 자녀들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하는 자인 것이다.  

만약 자기의 가족을 돌보는 수고를 게을리 한다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가 된다.  

가난한 친척을 돌볼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사람이 그 친척을 돌보고 교회의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한 가지 이유는(16절) 교회가 구제받지 않을 사람은 구제하고 더 많은 참과부를 구제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정작 구제받을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구제의 본연의 목적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구제를 베풀어 부는 대상을 선택함에 있어서 조심성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동정받기에 적합한 사람이 제외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받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Ⅲ. 바울은 교회의 구제를 받을 만한 과부들의 특징에 관하여 지시하였다.  

즉 60세 이하여서도 아니 되며 남편과 이혼을 하였거나 이혼하였다가 다시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남편의 아내였으며, 가정의 주부로서 자녀를 양육하고 나그네를 대접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능력이 있을 때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한 사람은 늙어서 힘이 없을 때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여기 주부들이 행하기에 적절한 선행의 몇 가지 실례가 열거되어 있다.  먼저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라고 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녀를 출산하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어린이는 여호와의 뜻에 의하여 출산되는 것이지 사람이 잘나서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니다).  

자녀의 출산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에, 이 말씀은 여인이 자신의 자녀를 낳지 못하였어도(남의 자녀라도) "자녀를 양육하며"이란 말씀이라 하겠다.  

또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10절)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여행 중에 있을 때 그들을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들의 친구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환영을 표하는 한 방법이 된다.  

혹은 "환란당한 자를 구제하며"라고 하였다.  

결국 본문의 요지는 피부가 능력이 있을 때 이러한 모든 선한 일을 행했으면 이제 그녀가 힘이 없을 때 그녀를 쉽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인 것이다.  

궁핍할 때에 자비를 입은 자는 자기가 풍성할 때에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Ⅳ. 바울을 신빙할 만한 점이 없는 과부들을 참과부의 서열에 들여 놓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11절).  

이에 대해 본문은 "젊은 과부를 거절하라"고 했다.  그들은 교회에서의 맡은 일에 싫증을 낼 것이며 그들이 행하여만 하는 규칙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집가고자 하여 그들의 처음 가졌던 믿음을 저버릴 것이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계시록 2장 4절에서 읽어 볼 수 있고 처음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은 여기 본문에서 읽어 볼 수 있다.  

즉 처음 믿음이란 선행을 하기로 교회에 맹세하고 교회는 그것들을 신임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 믿음이란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서약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항목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도 바울은 만약 그들이 서약한 것을 깨뜨릴 염려가 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젊은 과부들은 결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휘트비 박사는 "만약 이 처음 믿음이 교회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서약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처음 믿음이라고 불리울 수 없다"고 잘 지적하고 있다.  

또 본문은 젊은 과부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나면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한다"(13절)고 지적하였다.  

게으른 사람은 단지 게으른 것으로만 그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은 망령된 폄론을 배우게 되고 일을 만들며 이웃간에 불화를 만들고 형제간에 불화를 조성한다.

교회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위엄있게 처신하지 못하므로 집사직을 맡길 수 없는 사람이라면(또는 교회의 구제받을 과부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면) 본문은 그들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낳도록 하라"(14절)고 권하였다.  

만약 주부가 가사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망령된 폄론을 한다면 15절에 나타나는 대로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비난하는 기회를 주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배워야 한다.

1. 초대 교회에서는 가난한 과부를 돌보고 그들을 위하여 양식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는 최선을 다하여 초대 교회의 좋은 본을 받아야 한다.

2. 교회의 구제의 분배에 있어서는 가장 필요하고 가장 자격있는 사람들에게 공적(公的)으로 나누어 주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대 교회는 자기를 돌볼 만한 친척이 있는 과부들과 선한 행실의 증거가 없는 자나 일락으로 사는 피부들을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11절).

3. 교회의 공신력과 신앙의 신빙성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교회의 높은 직분을 받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집사직과 같이)낮은 성격의 직책을 맡거나 교회의 구제를 받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만약 제직들이 행동을 조심해서 하지 않고 폄론이나 하며 일만 만들고 다니면 교회를 싫어하는 자들에게 비난의 꼬투리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교회는 성도들도 하여금 가난한 교우들을 돌보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난한 과부를 도와주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나 조카나 손자 등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곤란한 이웃들을 부유한 이웃 사람들이 돌보지 아니하므로 교회가 그들을 돌보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부유한 이웃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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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에 관한 지시(딤전 5:17-25)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지시되고 있다.

Ⅰ. 복음 사역자들을 돕는 일에 관한 지시.  

잘 다스리는 자들은 돌보아야져야 한다(17절),  그러므로 "잘 다스리는 장소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즉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수고함으로 더 존경할 자로 알라는 말씀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과 사람을 치리하는 일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다 같은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되었다.  

어떤 주석자는 사도 바울의 "잘 다스리는 장로"라는 말씀은 말씀을 가르치지는 않고 교회를 다스리는 일만을 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말씀과 성례를 집행하는 문제는 관여하지 않고 교회 처리만을 주로 맡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본문을 보면 그런 견해가 타당성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단순히 다스리기만 하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보았겠느냐 하는 데는 조금 의아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세례를 베푸는 것보다도 복음 전하는 일을 우위에 두었고 따라서 그가 복음 전하는 일을 교회 처리하는 일보다 월등한 것으로 여겼으리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교회 치리자들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언급하였으면서 복음 전도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이상스러운 일인 것이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이 초대 교회에서는 가르치고 다스리는 사람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스리고 가르치고 하였던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 말씀과 가르침에 힘을 쓴 사람들을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목회자의 할 일.  

그것은 주로 두 가지로 구성된다.  즉 잘 다스리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는 그 두 가지 일이 장로들이 맡은 바 주된 직분이었다.

2. 게으르지 않고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에 수고한 자들이 의당 받을 존경.  

그들은 배나 존경할 만한 자들인 것이다.  즉 그들은 존중되어야 하고 또 생계비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을 부양하도록 하는데 관한 명령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이 구절은 복음 사역자를 부양하는 일이 모세의 율법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 준다.  

즉 그 내용은 "타작 마당에서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 25:4)는 것이었다.  

타작 마당에서 일하는 짐승에게는(유대인들은 짐승을 부려서 탈곡하는 일을 하였다) 그것들이 일하는 동안 곡식을 먹는 것을 금하지 않았는데 이는 곡식을 먹고 일을 더욱 잘하게 하기 위하여서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의 생계를 충분히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시 이르기를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마 10:10).  

이같이 복음 사역자가 그 수고의 대가를 받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배울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나 복음 아래에서나 자기의 사역자들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황소를 돌보시는데 하물며 주의 종을 돌보시지 않을 것인가? 

황소는 오직 썩을 양식만을 위하여 곡식을 떨지만 목회자는 영원히 지속하는 생명의 양식을 탈곡하는 것이다.

(2)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이 생계 문제로 염려하지 않도록 적절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살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례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보수를 받는 것처럼 목회자들도 당연히 보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 사역자들을 굶주리게 하거나 충분할 정도의 생활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는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그들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Ⅱ. 목회자들에 대한 송사에 관한 지시.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다"(19절).  

본문은 장로들이 무슨 죄가 있어 송사를 할 필요가 있을 때의 성서적인 절차 방법을 말해 주고 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먼저 소송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불확실하게 떠다니는 소문이 아니고 확실한 증인이 있는 소송이어야만 한다.  더욱이 부당한 재판 방법에 의해 그를 재판해서도 안 된다.  

현대적인 소송절차에 의하면 죄의 유무에 따라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바울의 권고에 따르면 장로에 대해서는 반드시 먼저 "고소"가 있어야만 한다고 하였다.

2. 이 소송은 두세 사람의 확실한 증인이 없이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송사는 증인들이 직접 참석해서 증거해야 접수가 된다.  즉 피고와 원고가 맞대면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위신이 관계되는 문제는 특별히 조심히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명예를 손상하는 일이나 비난하는 일을 하기 전에 정확히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만 비난하는 일을 하기 전에 정확히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만 하며 추측으로 비난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죄한 사람은 모든 사람 앞에 꾸짖으라"(20절)고 했다.  

즉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그들의 체면을 염려 할 필요없이 공중 앞에서 그들을 꾸짖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 앞에 죄를 지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는 것은 상처난 자리를 다 반창고로 바르는 것과 같으며 이러한 책망은 범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고 하였다.  

다음 사항을 명심하자.

(1) 공공연한 추문을 일으킨 죄인들은 공중 앞에서 꾸짖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공중에 대한 것이며, 또 많은 사람 앞에서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또는 적어도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 꾸짖음 공적(公的)이어야 하며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야 한다.

(2) 공적(公的)인 책망은 책망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외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인 것이다.  즉 그들도 두려워하게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에서는 범죄한 사람은 공적으로 처벌하라고 명령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든 이스라엘의 이를 보고 두려워하고 더 이상 악을 행치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Ⅲ. 복음 사역자 임명에 관한 지시(22절).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

본문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성직을 수여하는 일에 대한 권고의 말씀으로 보여진다.  

즉 성직 수임은 그 당해자의 받은 은사나 은혜를 시험해 보지 않고 또 그들이 능력이나 자격을 시험해 보지 않고 경솔하고 분별없이 행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보인다.  

또 어떤 해석자는 이 구절을 죄에 대한 사면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누구에게든지 조급하게 안수하지 말라"는 말을 책망받는 사람의 회개와 성실함이 증명될 때까지는 교회의 징계를 사면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본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란 말을 "교회가 내린 책망을 쉽게 용서하여 준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죄를 대담하게 행하도록 선동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로 죄를 감행하게 하는 것이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죄를 자신이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즉 본문은 다음과 같은 뜻인 것이다.  "순결을 보존하라.  당신 자신이 그 같은 죄를 짖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남의 죄를 어떤 길로도 협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같이 볼 때 본문에 대해서는 위의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경솔히 성직자들을 세우거나 또는 교회의 견책을 받은 사람에 대한 성급한 용서를 조심하라는 점이다.  

이런 뜻에서 본문에는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2. 무슨 일이고 경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에 같이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3. 만일 우리가 흠없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흠없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정결케 하고 보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또한 우리 자신의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Ⅳ. 사면에 관한 지시(24,25절).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명백해서 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드러나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난다." 

목회자들은 그들이 당면하는 여러 가지 범죄자와 범죄의 경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대단한 지혜를 필요로 한다.  

어떤 사람의 죄는 너무도 평범하고 명백하면서 은밀히 찾지 않아도 찾아 낼 수 있다.  그들은 교회가 책망하는데 아무런 논쟁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의 죄는 재판 전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난다."  즉 그들의 악은 당장에 드러나지 않고, 그 일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한 연후에야 드러난다는 말이다.  

또는 본문은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대로 "어떤 사람들의 죄는 견책을 받은 후에도 계속된다.  그들은 책망을 받고도 회개하지 아니한다.  그런 사람은 결코 사면될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회개한 증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즉 "착한 행실도 속히 드러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아니한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행실은 쉽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회개하지 않은 죄는 결국 알려지는 것이므로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를 용서하지 말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죄에는 은닉된 죄와 드러난 죄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의 죄는 미리 밝히 들어나므로 금방 심판에 붙여지고 어떤 사람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나는 것이다.

2. 교회에서 죄인들을 다룰 때에는 특별히 구분하여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역주: 여기서는 교회법을 특별히 어긴 특수 죄인을 뜻하고 있다).

3. 교회의 견책을 받을 결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그 일로 인하여 겸손하여지며 회개하게 되고 따라서 개전의 빛이 밝히 들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4. 중죄는 숨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 숨겨진 일들을 밝히 들어내시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밝혀 들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Ⅴ. 디모데 자신의 문제에 관한 지시.

1.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하여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라"(21절)고 하였다.  

목회자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고 또 다른 세속적인 이해 관계 때문에 이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자.  

바울은 충심으로 디모데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편벽된 일을 경계하라"고 명하였다.  

목회자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수행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해 또 그 일들을 어떻게 행하였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고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목회자들이 세속적인 수단에 의해 사역을 편벽되이 한다면 그들에게 화가 주어질 것이다.

2. 바울은 디모데에게 건강을 유의하라고 명하였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23절).  디모데는 세상 쾌락에 대해 금욕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물을 마시고 술 같은 것은 마시지 않았다.  또한 그는 건강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가 위장의 건강을 돕고 신체의 허약함을 회복하기 위하여 포도주를 쓸 것을 권하였다.  

여기 "조금씩 쓰라"고 한 점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들은 많은 술을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마셔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포도주를 주셨음을 기억하자.

(1) 인간들이 자기의 몸을 주의 깊이 돌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육체를 자기의 주인처럼 섬겨도 안 될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가장 유의하도록 몸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2) 포도주는 병들고 허약한 사람에게 좋은 치료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위장 장애가 있거나 허약한 체질에 좋다.  그래서 잠언서에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잠 31:6)라고 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에서 들어야 하며 일에 방해가 되거나 건강에 해롭도록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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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제 5장
=====5: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 '늙은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레스뷔테로'(*)는 다른 곳에서 교회의 직책을 나타내는 '장로'(elder,presbyter)로 사용되었으나(17, 19절 ; 딛 1:5) 여기서는 문자적인 의미가 그대로 적용되어 '노인'(older man, NIV)을 뜻한다. 
또한 '꾸짖지'의 헬라어 '에피플렉세스'(*)는 본래 '주먹으로 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말로써 때리다'는 뜻으로 공격적인 심한 질책을 나타낸다. 
디모데는 비록 연소하였으나(4:12),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했다. 
그럴 경우 바울은 온유한 태도로 권할 것을 충고하였다. 
'권하되'의 헬라어 '파라칼레이'(* )는 '올 것을 요구하다', '충고하다', '위로하다'의 뜻으로 자신에게 오게 하여 충고하며 위로하는 따뜻한 권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면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해 지녀야 할 태도로서 2절까지 이어진다.
@아비에게 하듯 하며 - 연장자를 권면할 때에는 모든 예의와 겸손함을 갖추고 신중히 해야 함을 말한다. 
인간적인 예의 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이며 특별히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이다(레 19:32).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 '형제'(* , 아델푸스)라는 말속에는 기독교의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Hendriksen). 
또한 교회 내에서 누구를 불문하고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교회의 구성상태를 가장 적합하게 나타내는 말이다(고전 12:26, 27).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한 형제이며 따라서 서로간에 분열과 반목(反目)을 피하고 선을 이뤄야 한다.
=====5:2
@늙은 여자 - 이것은 1절의 '늙은이'와 서로 짝을 이루는 말로서 그 말이 '장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노인'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 '깨끗함'(* ,하그네이아)은 '성적 순결'을 뜻하는 말로 바울이 디모데가 젊은 여자를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적 욕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Lenski).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성적인 순결뿐만 아니라 마음과 육체를 통틀어 아무 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Guthrie).
=====5:3
@참과부인 과부 - '참과부'에서 '참'에 해당하는 헬라어 '온토스'(* )는 '실제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참과부'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Guthrie, Hanson). 
당시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과 더불어, 일부 다처제(一夫多妻制)의 성행으로 인해 남편에게 버려져 혼자된 여인들도 많았으며 당시 교회는 이들을 돕는데 적극 참여하였다(행 6:1). 성경에서는 이곳뿐 아니라 과부를 보살펴 줄 것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으며(신 10:18 ; 24:17 ; 시 68:5). 특별히 하나님은 그들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였다(사 1:17). 
신약성경에서도 과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막 12:42, 43 ; 눅 7:11-17 ;18:3-5). 
더욱이 초대 교회안에 집사 제도가 생기게 된 큰 원인으로서 과부를 보살피는 일을 들 수 있다(행 6:1-6). 
그런데 때로는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기에(행 6:1) 교회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경대하라 - 헬라어 '티마'(* )는 '존경하다'의 뜻으로 명사 '티메'(*)에서 파생되었다. 
'티메'는 '가치' 혹은 '값'을 의미하며 영어의 '사례금'(honorarium)은 이에서 파생되었다. 
혹자는 본 구절에서 과부들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들이 받아야 할 연금(pension)을 바울이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Scott). 
따라서 본 구절은 과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경하라는 의미와 아울러 그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5:4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 본절의 '과부'는 '참과부'가 아닌 자들로서 자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손자'의 헬라어 '에크고나'(*)는 칠십인역(LXX)에서는 자주 언급되나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온다. 
KJV에서는 이 단어를 '조카'(nephew)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17세기 이전의 용법으로 그 당시에는 '조카'가 일반적으로 '손자'를 뜻하는 말이었다(Guthrie).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톤'(*)은 '첫째로'(first of all, NIV)라는 의미의 부사이다. 
이것은 집안에서 효를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야 할 중요한 일임을 나타낸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 '부모'의 헬라어 '프로고노이스'(*)는 부모 이상의 조상들을 포함한다. 
또한 '보답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이바스 아포디도나이'(* )의 문자적인 뜻은 '되돌려 줄 것을 주다'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보상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Scott). 
특히 '되돌려 주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아포디도나이'는 현재 능동 부정사로서 되돌려 주는 행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5:5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 - '외로운'에 해당하는 '메모노메네'(*)는 '모노스'(* , '홀로')의 완료 수동 분사로 '홀로 남겨진'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참과부'의 특성으로서 돌보아 줄 자녀나 친척도 없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어린 자녀를 둔 과부도 여기에 포함시킨다(Lenski).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바울은 참과부의 또 다른 자격을 제시한다. 
그것은 육신적으로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참과부의 실례는 눅 2:36, 37에 성전에서 주야(晝夜)로 금식하며 기도한 과부 안나를 들 수 있다.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 - '일락을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파탈로사'(*)는 '방탕하게 살다'의 뜻이다. 
당시에는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였으며 고용의 기회도 거의 없었던 때이므로 많은 과부들은 매춘(賣春)등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혹자는 바울이 '스파탈로사'를 사용한 것은 당시 생활이 궁핍했던 과부들이 매춘의 유혹을 받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Guthrie).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것을 뜻한다(Lenski).
=====5: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 '또한'(* , 카이)은 본절이 6절과 연결됨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이것을'(* , 타우타,'이것들')이 6절에만 국한(局限)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3-4절의 내용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Hendriksen). 
즉 참과부를 존경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줄 것과(3절), 자녀들이나 손자들은 과부인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봉양(奉養)할 것과(4절)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참과부로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별할 것(5, 6절) 등을 포함한다.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 '자기 친족'(*, 톤 이디온)은 구체적인 범주를 정하기는 어려우나 '자기 가족'(*, 오이케이온)은 '직계 가족'을 의미한다(Guthrie). 
'돌아보지'의 헬라어 '프로노에이'(* )는 문자적으로 '미리 생각하다', '준비하다', '공급하다'의 뜻을 갖는다.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혹자는 기독교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인데 자기의 직계가족조차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못한 자로서 전혀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본 구절을 해석한다(Scott). 
또한 여기에서의 '믿음'은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고백되는 신앙 고백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하여 '믿음을 배반한 것'을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Lenski).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일반 성도 전체를 향한 교훈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신앙 고백이 어떻든 간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할 만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를 무시하는 자이므로 정죄받아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5: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 '명부에 올릴'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레게스도'(*)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당시의 과부들에 대한 물질적 원조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나타낸다. 
명부에 이름이 올라 제도적으로 생계를 보장받은 과부들은 특별한 자격을 구비(具備)한 자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Ellicott, Robertson, Scott). 또한 혹자는 당시 과부 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Bernard, Hendriksen), 이성간의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 남자들이 하기 곤란한 일들을 이들 과부들이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Hendriksen).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 나이를 육십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재혼할 의도나 재혼할 가능성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Lenski). 
또한 노령으로 인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규정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 본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고대에는 과부들에게 특별한 정절(貞節)을 요구하여 재혼을 삼가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거로 눅 2:36, 37의 과부 안나가 84년 동안 재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한 남편 외에는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Scott, Guthrie). (2) 혹자는 바울이 14절에서 젊은 과부에게 다시 시집갈 것을 권면하면서 본절에서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만을 참과부의 명단에 올리라는 것은 모순이 되므로 (1) 의 견해에 반대한다(Hendriksen). 여기서는 (2) 의 견해가 전후 문맥상 타당성을 가진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은 결혼 생활중에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관계가 없던 자로 결혼 생활에 충실했던 자를 뜻한다.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 과부의 명단에 올려 구제해야 할 참과부의 조건으로는 구체적 선행이 제시된다.
@자녀를 양육하며 - 본절은 문자적 의미보다는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녔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바울이 참다운 모성애를 실천하는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Lenski). 
또 다른 견해로는 명부에 등록된 과부의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는 주장이 있다(Scott). 여기서는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 같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 초대 교회에서는 나그네를 접대하는 일이 하나의 공식적인 일이었으므로 이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한 과부의 실례로서 사르밧의 과부(왕상 17:9), 수넴 여자(왕하 4:8-11), 루디아(행 16:40) 등을 들 수 있다.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 이것은 종이나 하는 천한 일로서 여기서는 이웃과 나그네를 위한 겸손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Hendriksen). 
이러한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통해 가르치신 바이다(요 13:14).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 '환난'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은 박해를 가리킨다(살전 1:6 ; 살후 1:4).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콜루데센'(* )은 '추구하다', '헌신하다'의 뜻이다. 
결국 '선한 일을 좇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한 양심과 신앙을 갖는다기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5:11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 '젊은 과부'는 60세 이하의 과부들을 지칭한다. 바울이 이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일단 명부에 이름이 오른 과부는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는데 젊은 과부는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 '정욕으로'의 헬라어 '카타스트레니아소신'(* )은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Robertson). 젊은 과부가 남편을 원하여 재혼하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나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 과부의 명부에 이름이 오르기 위하여 그들은 다시 재혼하지 않고 평생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을 것이다(Robertson, Rocke). 혹자에 의하면 후대에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배우자'(the spouse of christ)라고 불렀다고 한다(Hanson). 
따라서 본절의 '처음 믿음'(*, 텐 프로텐 피스틴)이란 '젊은 과부들의 처음 서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저버렸으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데테산'(* )의 문자적인 뜻은 계약이나 법률 따위를 '폐기하다', '위반하다', '따로 떼어두다' 등이다.
결국 이 말은 젊은 과부가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파기(破棄)한다는 의미이다.
@심판을 받느니라 - '심판'(* , 크리마)은 KJV에서 '저주'(damnation)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심판'(judgment, NIV)으로 해석하여 그들의 잘못을 책망받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Guthrie).
=====5:13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 '게으름을 익혀'에 해당하는 '아르가이 만다누신'(*)을 혹자는 '게으름을 배워 게으름뱅이들이 되었다'로 번역하여 젊은 과부들의 게으름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인 습관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운 것임을 나타낸다(Scott).
@집집에 돌아다니고 - 이것은 (1) 명부에 올라 있는 과부들의 임무 중에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신앙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악용(惡用)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Earle, Guthrie), (2) 그들이 가정에 매이지 않은 홀몸으로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행해진 쓸데없는 방문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1)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 '망령된 폄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뤼아로이'(* )는 혹자에 의하면 '음식 등이 끓어 거품이 오르다'를 의미하는 '플뤼오'(* )에서 파생된 말로서(Robertson), '쓸데없는 말을 경박하게 늘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을 만들며'의 헬라어 '페리에르고이'(* )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들에 간섭하기 좋아한다'는 의미이다(Earle). 그러나 혹자는 이 단어가 행 19:19의 '마술을 행하던'의 헬라어 '페리에르가'(* )와 동일한 단어이므로 본절의 '일을 만들며'는 '마술적인 행위'를 나타낸다고 보며, '마땅히 아니할 말' 역시 '마술의 주문'(呪文)이라고 주장하나(Hanson) 일반적인 견해는 아니다. 
여기서 '마땅히 아니할 말'이란 교회에 덕이 안 되는 해로운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모두 게으름을 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 중의 일부는 신앙 생활과 자신의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있지 못하고 쉽게 남의 말이나 교회 전체의 문란을 초래하는 악담을 하고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집집마다 하여 교회 내에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5:14
@그러므로 젊은이는 - 본절이 접속사 '그러므로'(* , 운)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서 바울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11절의 '젊은 과부'(* , 네오테라스 케라스)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젊은이'(* , 네오테라스)는 '젊은 과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시집가서 - 바울은 여기서 젊은 과부들에게 재혼할 것을 권면하였는데 이것은 고전7:25-29의 내용에서 결혼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26)고 한 말과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1) 혹자는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와는 달리 지금 본 서신을 쓸 때에는 그의 인생의 말년으로 '임박한 파루시아'에 대한 신념을 포기[상대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Scott). (2) 이와는 다른 견해로 본절의 '젊은이'는 이미 자제심(自制心)을 잃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Guthrie). 두 견해 중 (1)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왜냐하면 후대 교회, 즉 2, 3세기의 교회에서는 금욕주의의 결과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였으나 바울은 금욕주의에 반대(4:3)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자 사명이라할 수 있는 출산하는 일과 집안을 관할하는 일을 바울은 적극 추천하였다. 
혹자는 '집을 다스리고'(* , 오이코데스포테인)라는 말에서 아내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영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Liddon).
@대적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케이메노'(* )는 '반대자', '대항자'의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Hendriksen, Earle). 
그러나 '대적' 앞에 관사 '토'(* )가 붙었다고 하여 이 단어가 '마귀'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Lenski). 
그런데 후자의 경우도 마귀가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해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두 견해가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훼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이도리아스'(* )는 '욕하다', '매도하다', '조롱하다'의 강한 뜻을 갖는 말로서 젊은 과부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수 있는 비난에 대한 바울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기회'의 헬라어 '아포르멘'(*)은 '진격 기지'를 뜻하는 군사 용어로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롬 7:8, 11 ; 고후 5:12 ; 11:12 ; 갈 5:13). 
그는 늘 교회가 외부 세계로부터 악평의 대상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해 왔는데 그 당시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성도들의 사랑과 변화된 생활이었다(약 2:7, 8 ; 벧전 2:12 ; 4:4, 14, 15).
=====5:15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 '사단'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대적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1절의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Lenski). 그러나 혹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를 남용하여 젊은 과부들이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Scott, Guthrie). 따라서 본 구절은 젊은 과부 중에 일부는 이미 '처음 믿음'(12절)을 저버리고 여러 부도덕한 행위에 빠져 교회에 물의(物議)를 일으켰음을 나타내며, 아울러 믿음의 생활을 떠난 자는 반드시 사단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5:16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 '믿는 여자'(* , 피스테)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앞의 8절에서 '누구든지...돌보지 아니하면'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믿는 여자'로 국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런데 몇몇 후기 헬라어 사본들에서 '피스토스'(* , '믿는 남자')를 첨가시켜 '피스토스에 피스테'(* , '믿는 남자와 믿는 여자')로 표기하고 있으며 흠정역(KJV)도 이에 준해 '남자나 여자'로 번역하고 있다. 심프슨(Simpson)이나 거스리(Guthrie)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2) 그러나 대부분의 본문 비평가들(Alford, Ellicott, Speaker, Moffat)은 보다 짧은 본문인 '피스테'만을 택하고 있다. 혹자는 몇몇 사본에서 '믿는 남자'를 삽입시킨 것은 필사자(筆寫者)들이 바울의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여기서의 '믿는 여자'란 신자가 아닌 남편을 둔 여자 교인이거나, 개인적인 경쟁력을 갖춘 과부나 미혼녀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3) 또다른 견해로는 '믿는 여자'가 14절에서 언급한 '젊은 과부'를 가리키는 말로서 비록 그들이 교회에서 공식적인 일은 맡지 못하였으나 가정에 소속되어 다른 과부를 도움으로써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일을 하도록 바울이 권면한 것으로 본다 (Scott). 
이상과 같이 '믿는 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친척 중에 과부가 있는 자로서 친척 과부를 돌보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여자가 자기 친척 과부를 도와줌으로써, 교회는 아무 연고가 없어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참과부'를 도울 수 있었다.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 '다스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스토테스'(*)는 교회의 감독권을 시사하며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管掌)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장로'의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는 딛 1:7에 나오는 '에피스코폰'(* , '감독')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혹자는 이에 대해 교회의 행정적인 임무를 강조할때는 '감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나이든 어른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강조할 때는 '장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Hendriksen).
@배나 존경해 자로 알되 - '존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메스'(* )는 원래 '가치', '가격'을 의미하는 말로서 '보상'으로 번역되거나(White) '사례금'으로 번역될 수 있다(Liddon).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여기서는 물질적인 '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고 정신적인 '존경'(honor)만을 주장한다(Lenski). (2) 물질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를 함께 수용하는 견해도 있다(Hendriksen).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배'의 헬라어 '디플레스'(* )에 대하여 몇 가지 주장이 있다. (1) 존경과 보상의 이중적인 의미. (2) 과부들보다 두 배의 존경과 보수(Calvin, Rocke). 
그러나 일반적인 견해는 숫자적인 의미보다는 장로들에대한 특별한 존경심과 풍족한 물질적인 공급을 뜻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Guthrie, Scott).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혹자는 '전도와 가르치는 일'로 해석한다(Robertson). 
본 구절은 교회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장로들과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장로들이 초대 교회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아마 오늘날의 '목사'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 본 구절은 신 25:4로부터 인용된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타작방법은 곡식단을 풀어 타작마당에 펴 놓고 그 위를 소가 지나가게 하거나 소가 끄는 타작 기구가 지나가게 하였다. 
그때 주인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일하는 동안 그 곡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였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 본 구절은 눅 10:7의 인용이다. 마 10:10에도 동일한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후자에서는 '먹을 것'(*, 테스 트로페스)으로 나온 반면 여기서는 '삯'(*, 투 미스두)으로 기록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바울은 누가복음을 인용하였다고 본다. 특히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 그와 함께 있었다(골 4:14 ; 몬 1:24). 또한 혹자는 누가복음이 그때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고 바울이 그것을 인용하였거나 그것에 대한 자료를 인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Hendriksen). 
결국 본절의 요지는 일하는 짐승에게도 충분한 곡식을 제공하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고전 9:9, 14).
=====5: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 모세 율법에 의하면 두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죄를 판결(判決)할 수 있었다(신 19:15 ; 민 35:30). 
이와 같은 규정은 초대 교회에서도 적용되었다(고후 13:1). 특히 장로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교회 안과 밖에서 늘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악의(惡意)와 근거없는 비난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두 세 명의 증인이 요구되었다.
=====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 '범죄한 자들'은 장로들을 가리킨다(19절). 
'모든 사람 앞에'로 번역된 헬라어 '에노피온 판톤'(*)은 '모든 장로들 앞에'를 뜻할 수도 있고(Earle), 혹은 '온 교회 앞에'를 뜻할 수도 있다(Guthrie). 
일단 장로의 범죄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에 대한 징계를 공개적으로 행하여야 했다.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 이와 같은 표현은 예배 의식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에 언급된 것은 이 세 존재가 최후 심판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상에서 기인한다(눅 9:26 ; 계 14:10). 특히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란 말은 바울 특유의 표현으로 자기 처소를 떠난 타락한 천사들(계 18:1 ; 19:17 ; 20:1 ; 21:9)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내가 엄히 명하노니 - 헬라어 '디아마르튀로마이'(*)는 '엄숙히 단언하다', '엄숙히 선언하다'의 뜻을 갖는 강의 복합어로서 교회 지도자들의 징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명령은 바울 개인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하는 엄숙한 것이었다.
@편벽되이 하지 말며 - '편벽'(偏僻)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클리신'(*)은 '저울을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다'는 뜻의 동사 '프로스클리노'(* )에서 파생된 말로 '편애'(favoritism, NIV)로 번역될 수 있다. 즉 디모데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개인적인 편견이나 편애를 철저히 배제하고, 사랑과 의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을 하여야 했다.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 본절의 '안수'(* , 에피티데이)가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1) 타락한 장로들을 다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의식으로서의 안수이다(Rocke, White, Robertson). 
(2) 장로를 비롯한 다른 성직을 임명하는 의식으로서 행해진 것이다(Earle, Kelly, Theodoret). 
(3) 본절은 장로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 것으로서 장로를 임명할 때 행한 공개적인 의식 이었다(Lenski). 
위 의견들 중에 두번째 것이 가장 지배적이다.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기기위해 안수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품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중직자들의 과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 '간섭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네이'(*)는 '함께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의 뜻을 갖는다. 이에 대해 (1)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타락한 일부 장로들이 짓는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한 것으로 보는 견해(Lenski)와 (2) 어떤 사람을 안수하여 장로로 임명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보증하는 것이 되므로,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공동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Earle). 문맥상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바울은 본절을 통해 안수의 중요성을 디모데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5:23
@물만 마시지 말고...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금욕주의적인 계율이 있었다. 
즉 나실인 서약자는 포도주나 포도로 만든 것을 먹지 않았으며(민6:1-21), 레갑인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렘 35:5-8). 
따라서 디모데는 이러한 유대 계율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22절에서 바울이 요구한 대로 자신의 정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Scott). 
그 결과 그는 나름대로 금기(禁忌) 사항을 마련해 두고 오직 물만 마시고 포도주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근동 지방의 물들은 대개 병균들로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끓이지 않고 계속 마실 경우 이질이나 위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의 '비위'(* , 스토마콘)는 '위장'을 뜻한다. 즉 디모데는 위장병과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바울은 그의 질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였다. 한편 당시의 포도주는 도수가 약하였고 특히 유대인들 사이에서 사용된 포도주는 흔히 물이 섞인 포도주였다(Earle).
=====5: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 바울은 본절에서 다시 17절 이후에서 그가 다루어 왔던 문제로 돌아가 장로의 임직(任職)뿐만 아니라 교회의 규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혹자는 23절에 기록된 대로 디모데가 병약하였으므로 교회를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 미비한 점이 있었을 것으로 가정한 바울이 처리에 도움이 되는 말을 디모데에게 한 것으로 생각한다(Alford).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 '밝히'의 헬라어 '프로델로이'(* )는 '이미 알려진' 혹은 '명백한'이란 뜻으로서 그들의 죄는 판단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 명백한 죄들이다. 
또한 '좇나니'의 헬라어 '에파콜루두신'(* )은 '뒤를 따라 가다'의 뜻으로 '어떤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죄임을 나타낸다(Hendriksen). 
그러나 이것 역시 앞의 '밝히 드러난 죄'의 전철(前轍)을 밟아 밝혀지게 된다.
=====5: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하라는 의미로 본 구절을 쓴 것으로 본다(Alford). 즉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은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본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이므로 경솔한 판단을 삼가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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