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고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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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장  [337.내모든시험 무거운짐을] [341.십자가를내가지고]


===바울과 거짓 사도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바울의 참된 자랑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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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rinthians 11 Amplified Bible

==Paul Defends His Apostleship

1 I wish you would bear with me [while I indulge] in a little foolishness; but indeed you are bearing with me [as you read this]. 

2 I am jealous for you with a godly jealousy because I have promised you to one husband, to present you as a pure virgin to Christ. 

3 But I am afraid that, even as the serpent beguiled Eve by his cunning, your minds may be corrupted and led away from the simplicity of [your sincere and] pure devotion to Christ. 

4 For [you seem willing to allow it] if one comes and preaches another Jesus whom we have not preached, or if you receive a different spirit from the one you received, or a different gospel from the one you accepted. You tolerate all this beautifully [welcoming the deception]. 

5 Yet I consider myself in no way inferior to the [so-called] [a]super-apostles. 

6 But even if I am unskilled in speaking, yet I am not [untrained] in [b]knowledge [I know what I am talking about]; but we have made this evident to you in every way, in all things.

7 Or did I [perhaps] sin by humbling myself so that you might be exalted and honored, because I preached God’s gospel to you [c]free of charge? 

8 I robbed other churches by accepting [more than their share of] financial support for my ministry to you. 

9 And when I was with you and ran short [financially], I did not burden any of you; for what I needed was fully supplied by the brothers (Silas and Timothy) who came from Macedonia (the church at Philippi). So I kept myself from being a burden to you in any way, and will continue to do so. 

10 As the truth of Christ is in me, my boast [of independence] will not be silenced in the regions of Achaia (southern Greece). 

11 Why? Because I do not love you [or wish you well, or have regard for your welfare]? God knows [that I do]!

12 But what I am doing I will keep doing, [for I am determined to keep this independence] in order to cut off the claim of those who want an opportunity to be regarded just as we are in the things they brag about. 

13 For such men are counterfeit apostles, deceitful workers, masquerading as apostles of Christ. 

14 And no wonder, since Satan himself masquerades as an angel of light. 

15 So it is no great surprise if his servants also masquerade as servants of righteousness, but their end will correspond with their deeds.

16 I repeat then, let no one think that I am foolish; but even if you do, at least accept me as foolish, so that I too may boast a little. 

17 What I say in this confident boasting, I say not as the Lord would [with His authority], but foolishly. 

18 Since many boast [of worldly things and brag] about human accomplishments, I will boast too. 

19 [d]For you, being so wise, gladly tolerate and accept the foolish [like me]! 

20 For you tolerate it if anyone makes you his slave; or devours you and your possessions; or takes advantage of you; or acts presumptuously; or hits you in the face. 

21 To my shame, I must say, we have been too weak [in comparison to those pseudo-apostles who take advantage of you].  But in whatever anyone else dares to boast—I am speaking foolishly—I also dare to boast. 

22 Are they Hebrews? So am I. Are they Israelites? So am I. Are they descendants of Abraham? So am I. 

23 Are they [self-proclaimed] servants of Christ?—I am speaking as if I were out of my mind—I am more so [for I exceed them]; with far more labors, with far more imprisonments, beaten times without number, and often in danger of death. 

24 Five times I received from the Jews [e]thirty-nine lashes. 

25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stoned. Three times I was shipwrecked, a night and a day I have spent adrift on the sea; 

26 many times on journeys, [exposed to] danger from rivers, danger from bandits, danger from my own countrymen, danger from the Gentiles, danger in the city, danger in the wilderness, danger on the sea, danger among those posing as believers; 

27 in labor and hardship, often unable to sleep, in hunger and thirst, often [driven to] fasting [for lack of food], in cold and exposure [without adequate clothing]. 

28 Besides those external things, there is the daily [inescapable] pressure of my concern for all the churches. 

29 Who is weak, and I do not feel [his] weakness? Who is made to sin, and I am not on fire [with sorrow and concern]?

30 If I must boast, I will boast of the things that reveal my weakness [the things by which I am made weak in the eyes of my opponents]. 

31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He who is blessed and to be praised forevermore, knows that I am not lying. 

32 In Damascus the [f]governor (ethnarch) under [g]King Aretas guarded the city of Damascus in order to arrest me, 

33 and I was [actually] let down in a basket through a [h]window in the wall, and slipped through his fingers.

==Footnotes

2 Corinthians 11:5 This may be a sarcastic reference to the teachers of false doctrine (pseudo-apostles) who opposed Paul and tried to claim they had an association with the original twelve disciples.

2 Corinthians 11:6 Like the original Twelve, Paul received his knowledge of the gospel from the Lord.

2 Corinthians 11:7 Traveling philosophers and religious teachers (including the false apostles) customarily charged for their lectures. Paul’s reason for refusing support from this church is unclear.

2 Corinthians 11:19 The sarcastic tone of vv 19-21 reflects Paul’s extreme frustration with the Corinthian church.

2 Corinthians 11:24 OT law limited judicial scourging (whipping) to forty lashes. The Jews established a tradition of thirty-nine lashes to minimize the risk of making a mistake in the count and giving the guilty party more than forty.

2 Corinthians 11:32 Perhaps also leader of the Jewish community.

2 Corinthians 11:32 King of the Nabatean Arabs from 9 b.c. to a.d. 40.

2 Corinthians 11:33 I.e. small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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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장 (개요)

이 장에서도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 가지는 바울의 명성을 무너뜨리려고 힘쓰는 거짓 사도들에 대해서 말한다. 거짓 사도들의 말에 상당히 동요되었던 것이다.

Ⅰ. 바울은 자기 추천에 대해서 사과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1-4).

Ⅱ. 바울은 아무런 보수 없이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였으나 사도들과 동등한 자격이 있음을 말한다(5-15).

Ⅲ. 자신을 변명하는 일에 또 하나의 서언을 말한다(16-21).

Ⅳ. 거짓 사도들보다 더 많은 바울의 자격과 수고와 고통을 말한다(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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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인 복음(고후 11:1-4)

여기에서 다음을 관찰하자.

1. 바울이 자기를 천거하는 일에 대한 사과이다. 바울은 자기 자랑에 대한 제목을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그는 이것을 어리석은 일이라 하였다. 그것이 필요하여서 하는 것이다.  좀 참아 줄 것을 요청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교만한 사람이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자랑을 싫어한다. 그러나 때로는 남의 유익을 위하거나 자기를 증거하기 위하여 필요하기도 한다.

2. 바울의 이유는 이러하다.

(1)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설득에 타락하지 않도록 함이다(2,3 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즉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바울의 사역을 무너뜨리는 거짓 사도의 말을 들으며 믿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한 남편에게 중매하였다." 즉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영혼의 중생은 주 예수에게 결혼하는 것이다. 그들을 "정결한 처녀로" 소개하기를 원했다. "이들을 미혹하게 한 것같이 거짓 교사의 거짓 교리로써 부패되지 않도록 원했다. 바울의 신령한 열심은 사랑과 공포의 혼합이다. 사역자들은 받은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관심를 가지고 두려워한다.

(2)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한 거짓 사도들에 대하여 증거한다. 한 예수 한 복음 한 성령이 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수단으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들이 바울의 신령한 열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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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전한 복음(고후 11:5-15)

앞 서론에 이어서 바울은 논술을 전개한다.

Ⅰ. 다른 사도들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5절). 이것을 바울은 매우 겸손하게 말한다. 

"나는 생각하노라." 그는 더 적극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다. 모든 사도에 있어서 사도직은 동등하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른 것과 같이 사도들은 서로 달랐다. 이들 별들은 그 영광에 있어서 서로 서로 달랐다. 바울은 참으로 첫째로 중요한 인물이 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겸허하게 말하고 개인의 부족을 고백하였다. 

"비록 말에는 졸하나" 다른 사람과 같이 우아한 표현은 할 수 없었다. 그의 키는 대단히 작았고 그의 목소리는 아주 가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말을 더듬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바울이 웅변의 규칙이나 설득의 기술을 모르는 것이 아니며 그들에게 분명히 나타냈던 것처럼 천국의 신비한 비밀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Ⅱ. 복음을 값없이 그들에게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거짓 사도들과 같다. 

이것을 대체적으로 언급하고 그들이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 생각해야 함을 보인다.

1. 바울은 그들에게 무료로 복음을 전했다(7-10절). 

바울은 전서에서 사도들이 생계비를 받을 합법성과 그들의 의무를 밝혔다. 

여기서는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그런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바울은 이 권리를 포기하였고 값없이 그들이 복음을 받도록 하며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손수 천막을 만들면서 일하여 자기를 낮추기로 하였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대신에 마게도냐로부터 공급을 받았다.

2.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행한 자기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음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을 거절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주고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책망받을 기회를 피하고자 함이었다. 

"기회를 찾는 자에게 비난할 기회를 끊어버리고자 함이었다." 어떠한 사람도 자신을 비난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유리하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자랑하는 자도 자기와 같이 발견되도록 하였다."(12절). 

거짓 사도들은 아마 부하여 무료로 복음을 전한 것 같다. 그리고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돈을 바라보고 일한다고 비난한 것 같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조금도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Ⅲ. 거짓 사도들은 "궤휼의 역군"이라 비난한다(13절).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와 같이 하여 사탄의 일군이나 "의의 사역자처럼" 보인다. 

사도들이 진리를 열심히 전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거짓을 열심히 전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천국을 세우려고 하나 이들은 그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구약에는 주의 선지자의 말과 옷을 입은 거짓 선지자가 있었다. 신약에는 여러 점에서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보이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위선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탄이 크게 역사하는 오늘이야 물론이다. 

"불순종의 자녀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사탄이다. 사탄은 여러 형태를 취하여 "광명의 천사처럼" 보이고 어두움의 왕국을 넓힌다. 그러나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15절). 결국은 그들이 거짓 일군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그들의 일은 파멸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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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사도의 관대함(고후 11:16-21)

여기서 바울의 자신을 입증하기 위하여 말해야 함을 변명한다.

1. 자기를 세우기 위하여 말해야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16절). 자신의 자랑을 자주 그리고 번번히 말하는 것은 현명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의 표시이며 어리석은 표이다. 그러나 바울은 말한다.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조금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더라도 나의 말에 관심을 가져라.

2. 바울도 자기가 말하는 것을 오용하지 않도록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17절). 우리의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주의 명령이 아니며 이것이 항상 필요한 것이 아님을 이해시킨다. 

주님의 본보기와 명령을 따라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고 우리를 위하신 것을 행해야 한다.

3. 그들이 왜 바울이 잠간 자랑하는 것을 허락해야 하는가의 이유를 말한다. 즉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용납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즉 육의 특권과 외부의 유익과 업적이다. 

"나도 또한 자랑하노라"(18절).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자랑하기를 원치 않았다. 바울은 오히려 연약함을 자랑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어리석게 보이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용납하였다. 바울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 구나"(19절). 그러나 우스운 일이다. 

"너의 모든 지혜에도 불구하고 유대의 멍에로 속박되며 다른 사람이 너를 지배하게 하여 너를 삼키게 하며 종으로 삼게 하며 너를 다스리게 하며 빰까지 치게 하느냐(20절). 나를 비난하여도 용납하는구나"(21절). 

이와 같은 사정 아래서 바울의 자랑을 용납해야 하며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바울도 그러하리라"(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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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난과 충성(고후 11:22-33)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자격과 수고와 고난을 자랑하고 허영에서가 아니고 자기에게 감당할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설명한다. 

이 일에 있어서 자기를 비방하는 거짓 사도들보다 바울은 훨씬 뛰어났다.

Ⅰ. 바울은 그의 출생의 특권을 언급한다(22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은 유대인의 가족이며 그는 이스라엘인이며 야곱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씨이며 개종자가 아니다. 

이방인 기독교인에게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 말로 비춰 볼 때 유대인인 것 같다.

Ⅱ.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을 언급하며 일반적인 그리스도의 종 이상임을 말한다(23절). 

하나님께서 그를 충성되이 여겨 그에게 직분을 맡기셨다. 그는 그들에게 유용한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그들은 그의 사도된 증거를 충분히 보았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Ⅲ. 바울은 특히 그리스도를 위한 특별한 고난을 당한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자랑하는 것이며 "수고를 넘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매도 수없이 맞고 자주 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23절) 

다음을 주목하자. 바울이 자기가 특별한 사도임을 증명할 때에는 자기가 큰 고난을 당한 것을 말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며 이 때문에 유대인의 미움을 받았다. 그들은 모든 악을 그에게 행했다. 이방인에게도 어려움을 당했다. 

결박과 구속이 바울에게 익숙하였다. 바울이 의로움 때문에 공회에 잡힌 것인만큼 반대로 그들은 악한 관리였던 것이다. 

감옥과 처형대와 악인은 바울이 자주 만나는 것이었다. 유대인의 손에 들어갈 때에조차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다섯 번이나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었다."(24절) 사십의 매는 유대의 법이 가하는 최고였다(신 15:3). 그들은 넘지 않기 위하여 하나를 감하는 것이 상례였다. 바울이 동족에게 받은 동정이란 매 하나를 감하는 것 뿐이었다. 

이방인들로부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그 중의 하나가 빌립보에서이다(행 16:22). 

"한 번 돌로 맞고 죽었다고 여겨졌다"(행 14:19). 

그는 "세 번 파선하였다." 성경은 한 번만 언급하고 있다.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25절) 죄수로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일평생 변함없는 믿음의 용사였다. 바울은 개종 후에 하루도 고난을 당하지 않은 날이 없다. 

가는 곳마다 위험을 당하였다. 땅으로나 바다로 여행할 때에도 강도의 위험과 원수들의 위험 중에 있었다. 

동족인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며 복음을 받은 이방인들도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시내에나 광야에서도 위험을 당하였고 원수들 뿐만 아니라 형제라고 말하는 사람과 거짓 사도로부터 하여금 위험을 당하였다(26절). 

이외에 사역의 피로함과 고통을 당하고 바울은 부와 부요와 권력과 쾌락과 안락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여러 번 가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27절). 

당대의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가 마치 온 세상의 짐과 괴로움을 다 걸머진 것 같았다. 이것뿐만 아니다. "모든  교회에 대한 근심이" 그를 억눌렀다(28절). 

바울은 이것을 마지막 언급하였다. 모든 핍박보다도 교회의 중상이 더 힘들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29절) 

바울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약함이나 비방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바울의 괴로움을 더하게 했다]

그때까지 산 사람중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 예수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은 고난을 당하였음을 볼 때에 어찌 우리가 세상의 부귀나 낙을 원하겠는가? 

그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예롭게 생각했다. 자랑은 그에게 용납되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나의 원수들이 자랑해 보도록 만든다면 단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30절). 

다음을 주목하자. 의를 위한 고난은 가장 명예로운 일이다. 마지막 두 절에서 그의 고난의 하나를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구원하신  가장 현저한 사건이다. 

다메섹에서 겪은 것으로 개종 직후이다. 이것이 사도행전 9장 24, 25절에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이상의 과장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지에 호소한다(31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가 당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이 선한 사람에 주어지는 큰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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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제 11장
=====11:1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말해온 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주장(3:1;5:12;10:12)에 모순되게도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려 한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전제 하에 고린도 교인들의 용납(容納)을 요청하고 있다. 
본문의 '용납하라'(* , 아네이케스데)에 대해서는 직설법으로 보는 견해와(Lietzmann, Martin) 명령법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Barrett)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이 동사가 실현 불가능한 소원을 나타내는 동사 '오펠론'(* ) 다음에 사용되어 부정사적 용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용납하기를 바란다'란 의미이다. 
아무튼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일을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사실 이것은 그의 표현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억지로 시킨 일이었다(12:11). 왜냐하면 유감스럽게도 고린도 교인들의 수준이 턱없이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현혹되는 정도였으므로(10:7) 그들에게 바른 것을 보여주고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바울 자신이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 반복되는 요청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업적과 권위를 예증하는 일을 결코 쉽게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게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1:2
@하나님의 열심으로...열심내노니 - '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젤로'(* )는 '열심'이라는 말보다는 '시기'나 '질투'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Farrar, Martin, Barrett).그리고 영역 성경 중 RSV, NIV 등도 '시기'나 '질투'로 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 구절시 내용이 하나님의 질투하심과 동일한 질투를 가지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침입해 들어온 적대자들을 대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혼인 관계의 유비(사50:1-2;54:1-8;62:5; 호 1-3장)를 고린도 교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관계의 유비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그의 적대자들에 대한 질투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바울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그에게 해롭게 행동하는데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오직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질투는 바울 자신이 애써 전도했던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유혹된 것에 대한 질투였다.
@정결한 처녀로 중매함이로다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 질투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기쁨과 고린도 교인들의 행복을 그들이 훼방했기 때문이며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에게 중매시킨 장본인으로서의 바울은 그 사실을 과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 구절의 '중매함이로다' 는 '약혼시켰다'(betrothed,RSV) 또는 '정혼시켰다'(공동번역)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바울은 순결한 처녀인 고린도 교인들을 오직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약혼시켰다(엡 5:27;요일 3:2, 3). 혹자는 여기서의 '약혼'이 실질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개종', '회심'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Farrar, Barrett), 엡 5:25-27을 참조할 때 어느 정도 타당한 해석이다. 그리스도와 약혼한 당사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은 순결을 계속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이스라엘이 이방의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며 오직 남편인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불신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한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에게만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 바울은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했던 행위를 뱀이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행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창3:13). 사단의 대리인인 뱀에 해당하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그곳의 교인들을 미혹하려 한다. 특히 여기서 '미혹한다'(* ,엑세파테센)란 표현은 '완전히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바울의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한다.
@너희 마음이...두려워하노라 - 사단의 대리인으로서의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감쪽같이 속여 그리스도를 저버리도록 유도하려 하기에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12:14;고전 4:15)그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면(4절)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불행을 뜻할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쏟아부은 바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과 아울러 고린도 교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일을 해야 했다(1절).
=====11:4
@누가 - 이들은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 즉 바울의 적대자임에 틀림없다. 본절만으로 이들이 정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들이 팔레스틴에서 온 자들로서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1) 이들이 유대인 이었다는 사실(11:22), (2) 열두 사도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예수 -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열 두 제자를 거느렸던 예수를 부인하고 또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본질에 관해 달리 해석하는 것을 가리키다. 가령 예수의 인성(人性)을 인정하지 않는 영지주의적 기독론, 즉 예수는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pneumatiker)또는 신적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Goudge).
@다른 영...다른 복음 - 이것은 '다른 예수'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다른'이란 말이 게속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갈 1:6-9 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대속의 도를 부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갈 1:4). 그리고 '다른 영'이 평강과 자유의 영(3:17;롬 14:17)에 반대되는 두려움과 종의 영( 롬 8:15;딤후 1:7)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Harris).
@잘 용납하는구나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행위에 대한 풍자적 비난일 수도 있고(Robertson),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의 말에 대해 잘 들어주는 관용을 보였던 만큼 바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관용을 보여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다(Barrett, Harris).
=====11:5
@지극히 큰 사도...생각하노라 -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다른 사도와 비교하려는 의도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비교해서 말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조금도 뒤지지 않기에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확실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어리석음을 용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Harris). 
한편 본문의 '지극히 큰 사도들'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학자들간에 두 가지 견해로 나뉘어진다. (1)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지칭한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Bruce, Hering, Harris) (2) 13,15절에 나오는 거짓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Lowery, Robertson,Farrar).
'지극히 큰 사도'가 거짓 사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바울은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볼트만(Bultmann)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하기 위하여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며 그 근거로 6절의 '말과 지식'에 관한 바울의 진술을 인용했다. 
그러나 캐제만(Kasemann)은 바울이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인데 반해 거짓 사도들은 사단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이 이미 첫번째 서신에서 자신과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비교한 적이 있으며(고전9:1;15:5-8, 10) 또한 갈 2:9에서 예루살렘의 기둥 같은 세 사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첫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11:6
@말에는 졸하나 - '졸하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디오테스'(* )는 '평범한'의 뜻으로 특별한 재주를 갖지 못하고 특별히 훈련받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 비해 보잘것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그래서 공동번역은 본문을 "나는 말재주는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 즉 수사학적 웅변술(雄辯術)이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적대자들의 기준이냐 아니면 고린도 교인들의 기준이냐 하는 점이다. 
혹자는 바울이 바로 앞절에서 자신의 '부족하지 않음'을 말해놓고 금방 하나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 고린도 교인들이 웅변술에 따라 사도들의 권위를 평가했던 것으로 본다(Harris, Barrett). 그런데 10:10을 참고할 때 자기가 지극히 큰 사도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외형적인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도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기시켰다. 
한편 본 구절은 지나친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며 사실과 관계없이 적대자들이 내린 결론을 단지 인정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 자신이 말로 사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고전 1:17;2:4) 사실상 달변(達辯)으로 청중을 사로잡으려 하는 거짓 사도들에 비해 뛰어난 언변을 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 바울은 자신이 능숙한 말솜씨를 가지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의 사도됨에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이란 외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사도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그가 참다운 지식을 소유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식'은 박학 다식(博學多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 지식'을 가리킨다. 
거짓사도들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박학 다식을 소유했으나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받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들의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지식을 소유한 것이다.
@우리가...나타내었노라- 바울이 참다운 자식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단지 자기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교회들에게 이미 나타내 보인 바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외적인 기준에 집착했기 때문에 바울이 지닌 지식의 본질 및 능력을 보지못한 데 있었다(10:7).
=====11:7
@나를 낮추어 - 이 표현은 포괄적인 의미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일반적인 태도, 즉 헌신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자세를(4:12) 나타내는 것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바울 자신이 복음 전파를 위해 사례비를 받지않은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복음을 값 없이 -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되 그 교회로부터 아무런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듣는 자들로부터 물질적인 생활을 위한 보조(補助)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어쩌면 권리일 수도 있다(신 25:4;눅 10:7).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물질적 지원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지않고 스스로 장막 만드는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했다(행 18:1-3;살전 2:9;살후 3:8). 
바울은 첫번째 서신에서 밝힌 바대로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 생활을 위한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다(고전 9:4-18). 그것은 순전히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바울이 내린 목회자적 판단이었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은 바울의 이런 자세를 공격의 소재로 삼았던 것 같다. 
본절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바울을 공격한 논리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즉 사도라면 그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로 생활비를 받아야 한다. 자신들이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데 비해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곧 그가 참다운 귄리를 지닌 사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선생들은 돈을 받고 가르침을 베풀었고 그런 문화에 익숙해 있던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논리에 쉽게 현혹(眩惑)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의 본질,즉 자기를 낮춰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알아야 했다. 
바울은 철저하게 이 복음을 따라 살았다. 그가 복음을 전하며 값을 받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대신 고린도 교인들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 자신은 육신적으로 빈곤하게 살더라도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울의 목회자적 관심이었다(4:12).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이러한 행위에서 드러나는 사도적 삶과 메서지의 본질을 정확하게 구별했어야 한다.
@죄를 지었느냐 -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11:8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탈취한 것 - 본절은 "나는 다른 교회들이 주는 삯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에게 봉사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교회들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을 도운 셈입니다"(공동번역)의 뜻이다. 
본문에서 요(料)는 헬라어 '와소니온'(*)의 번역인데 이는 '보수' 또는 '급료'를 뜻하는 말이다(고전 9:7). 그러나 바울이 '여러 교회들' 즉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9절)로부터 일정한 급료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아마 비정기적으로 그 교회들로 부터 후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 후원금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한 표현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마게도냐 교회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할 때(8:2), 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이 아마 그에게 마치 '탈취'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요를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들에 대해 암시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11:9
@부족하되...폐를 끼치기 않기 위하여 - 바울은 나름대로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행 18:3). 그러나 그는 복음 전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장막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했으므로 생활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생활비 보조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그의 수입이 넉넉하였기 때문도 아니요 그가 권리를 요구할 만한 사도가 아니어서도 아니다. 오직 그에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돕고자하는 마게도냐의 성도들이 지원해 준 후원금(後援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사도적 권위와 권리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사실 끝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너무도 비본질적인 것에 현혹되어 왜곡된 시각으로 바울의 사도됨을 평가하므로 불가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1절).
=====11:10
@그리스도의 진리...막히지 아니하리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려 하지 않은 자신의 처신이 오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것임을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것임을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서의 마땅한 권리인 생활비 보조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울이 자신의 청렴함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복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함이다. 아마 그는 물질의 부요가 복음 전도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약화시키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연약함에 처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 속에서 온전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12:9).
=====11:11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애정의 결핍을 증명하는 결과가 된다는 오해가 생겼음이 분명하다.
=====11: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함이로라 - 바울이 오해를 받아가면서까지 대가를 거부한 것은 거짓 사도들과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바울처럼 고린도교인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도라고 주장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본절은 거짓 사도들이 내심으로 바울도 자신들처럼 복음의 삯을 받기를 바랐고 또한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도 바울처럼 복음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전심 전력(全心全力)하는 사도로 인정되리라고 믿었음을 암시해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그렇거니와(10절 주석 참조), 거짓 사도들에게 그들 스스로 합리화시킬 기회를 주지않기 위해서도 고린도 교인들의 재정 지원을 사양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11:13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 - '거짓 사도'라는 말은 당시에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적대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본다(Robertson). 바울의 적대자들이 '거짓 사도'인 까닭은 그들이 복음과 그리스도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희생보다는 보수를 탐하는 자들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참사도를 가짜라고 매도하는 거짓된 행위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속여서 참사도인 바울의 사도성과 그의 능력을 의심하게 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 거짓 사도들은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해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하는 사단과 다름이 없다(3, 4, 14절). 
바울이 이토록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 자신을 거짓 사도들이 부정했기에 그들이 바울 자신과 동일한 복음과 성령을 받지 않은 것으로 vks단했기 때문이다.
=====11:14
@사단도...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사람들이 보기에 뛰어난 웅변술로 인해 참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양의 탈을 쓴 이리인 경우는 초대 교회 당시뿐 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기에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울이 거짓 사도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사단과 광명의 천사'란 단어를 등장시킨 것은 뱀과 하와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는 것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묵시 문학 작품 중 모세의 묵시록 17:1에는 하와의 회상이 나오는데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올라갔을 때 사단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천사처럼 찬송을 불렀다.'고 되어있다. 또한 다른 작품 중 아담과 하와의 생애 9:1에는 '사단은 분노해서 빛의 천사로 변장해서 티그리스강의 하와에게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암시된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거짓 사도를 단순히 그의 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시키는 자로 규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거짓 사도들의 기원이 사단에게 있다는 것이다.
=====11:15
@사단의 일꾼...의의 일꾼 - 사단이 천사로 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사단의 일꾼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도'(13절)로 가장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 행세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과 메시지는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의 삯, 즉 보수를 탐하는 자들이며 믿음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며 또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자들이다(4절).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바울은 자신이 어떠한 사심도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파했으며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종이 되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신실(信實)한 행위를 한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4:5). 즉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 사역했던 것이다. 반면 거짓 사도들은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행실에 있어서도 사단의 종이라는 사실이 결국에는 폭로될 것이었다.
=====11:16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 바울은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앞에서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다(10:12;11:1).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사도직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정당한 업적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 
본절은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진술(1-6절)한 이후 잠시 다른 주제를 다루다가(7-15절) 다시 본절의 주제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일을 결코 쉽게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한 1절과 모순되게도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설득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1)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자랑은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사도들의 거짓된 자기 자랑을 폭로하여 결과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적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2)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지라도 그 자랑은 자신의 지혜와 권위를 스스로 과시(誇示)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고린도 교회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만일 그러하더라도...받으라 - 바울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불가불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차원에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1:17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 바울은 불가피하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서 자랑을 하지만 그것은 주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도적인 것도 아님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 거짓 사도들의 자기 자랑이 어리석으며 그것에 현혹되는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석은 것처럼 바울도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신을 자랑한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서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어리석은 자와 동일하게 자랑을 하자면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업적이 있다(22-33절).
=====11:18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 본절은 혈통(22절),업적(10:13-16), 외적인 권위의 표징(3:1)과 같은 것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를 과시하고 인정받기 위한 것들이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어서 그동안 고린도 교회 앞에서 자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도가 취할 행동이 아니며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상황의 요청에 따라서 자신의 업적을 과장됨 없이 자랑하겠다고 선언한다.
=====11:19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 어떤 주석학자도 본절의 '지혜로운 자'라는 표현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풍자적 표현으로 사실상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간접적으로 꼬집는 것이다. 이로 보아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지혜있는 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11:20
@종을 삼거나 - 이 표현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상전으로 행세하며 그들을 노예나 종으로 부렸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갈 2:4;5:1의 내용과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자유를 빼앗아 율법의 종 노릇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다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잡아 먹거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스디에이'(* )는 '삼키다'(막 12:40)란 의미가 있는데 이는 마치 기생(寄生)하는 동물처럼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피와 땀의 결과를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거짓 사도들은 실제로 바울이 씨를 뿌려놓은 곳에 와서 그 결실을 가로채는 자들이었다.
@사로잡거나 - 이 말은 미끼를 던져 함정에 빠뜨리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수사학적 달변(6절)으로 교인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만들려고 하였다(3절).
@자고하다 하거나 - 이 말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넓은 의미에서 가짜 복음을 가지고(4절)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행세하며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킨 것이 무시하는 행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좁은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이의(異議)를 제기할 때 무시당한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빰을 칠지라도...용납하는도다 - 이것이 은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빰을 친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을 용납한 결과로써 그들에게 당한 무시와 수모의 극치를 보여준다. 
플루머(Plummer)의 표현대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을 짓밟고 착취하는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인내와 동정심을 가지고 바울에게는 완고하게 하는 아이러니(irony)를 보여주었다.
=====11:21
@우리가 약한 것같이...말하노라 -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주장하며 비록 허위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행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한 자였다. 그는 이 약함을 스스로 시인한다. 그러나 이 인간적 약함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약함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12:9-10).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은 오히려 강한 자이다. 또한 누가 정말 강한 사도인가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23-27절).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나도 담대하리라 -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어리석은 자의 수준에서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한편 본문의 '누가'로 표현된 인물들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 혹자는 이들을 단지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않고 이들의 배후에서 이들에게 권위를 부여해준 사람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거나(Barrett),더 구체적으로 '지극히 큰 사도들' 즉 예루살렘의 열 두 사도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본다(Lowery). 그러나 여기서는 거짓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11:22
@히브리인이냐...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 본문의 '히브리인'이 뜻하는 바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유대인으로서의 혈통(血統)의 순수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바울은 자신이 혈통상으로 완전한 유대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Barrett). (2) 언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모국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아니라 모국어인 아람어를 할 줄 아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Bruce, Martin, Harris). 그런데 본절 전체가 혈통상의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 자신의 유대인됨을 강조하므로 첫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한편 '히브리인'이 인종적인 측면에서 진술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인'은 종교적인 맥락에서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Barrett).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서, 보호의 대상으로,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을 의미한다(롬 9:4).
@아브라함의 씨 - 바울은 태어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빌 3:5). 하나님의 백성이나 종이 되는 것이 더 이상 육의 혈통으로 나는 것은 아니지만(롬 9:6-13) 유대인 거짓 사도들이 주장하는 기준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그들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즉 그는 혈통상으로 순수한 언약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며 또한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이 자신의 유대인됨을 강조적으로 반복한 것은 바울의 대적자들 즉 거짓 사도들이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었음을 암시한다.
=====11:23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 여기서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공동번역)라는 표현은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말함에 있어서 거짓 사도들과 달리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편 혹자는 본문이 적대자들의 사도됨을 긍정해 주는 것이라고 보아 이들은 13절 이하의 거짓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보기에 결국 바울은 이중의 적대자들과 싸웠다고 한다(Barrett). 하지만 그러한 해석보다는 본절을, 적대자들과 고린도 교인들이 주장하고 인정하는 것을 백번 양보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더라도 바울 자신은 더욱 확실하고 뛰어난 사도임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 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그의 행적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한 사도 행전에도 충분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에 의하면 바울이 옥에 갇힌 횟수는 모두 일곱 번에 달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클레멘트 1서 5:6)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투옥은 빌립보에서 있었던 것이었다(행 16:23-30).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매를 맞은 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절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에 대해서는 1:8,9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바울이 열거하는 그의 업적은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업적이 승리의 사례가 아니라 패배와 고난의 사례라는 점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도(道)와 일치하는 것이며 인간의 약함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과도 일치되는 것이다(11:30;12:5, 9, 10).
=====11:24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 죄수에게 매를 때리되 사십대에 한해서 때리게 하는 형벌은 신 25:1-3에 의거한 유대인들의 태형집행 관습이었다. 그런데 서른 아홉대를 때린것은 때린 횟수를 잘못 계산하여 사십을 넘기게 되는 잘못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11:25
@세 번 태장 - 태장(笞杖)이란 로마시민에게는 금지된 로마식 태형으로 채찍 끝에 납을 매달아 치는 무서운 형벌이며 이 태장을 맞는 중에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행16:22, 37).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벌을 받았다는 것은 선교적 목적을 위해 로마 시민의 권리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로마 관리들이 죄수된 자의 신분을 먼저 물어보는 법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행 16:37, 38).
@한 번 돌로 맞고 - 이것은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해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행14:5, 19).
@세 번 파선...일 주야를 깊음에서 -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증거가 될만한 구절을 찾을 수 없다. 예수의 행적이 그러했듯이 바울의 행적도 모두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행 27:14-44에 바울이 탄 배가 파선(破船)한 사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그 사건은 본 서신을 기록한 후의 일이었다. 한편 본절에서 배가 파선되어 일주일을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은 살 소망마저 끊어진 상황을 회상했던 1:8과 연결될 수 있다.
=====11:26
@여러 번 여행에 - 여행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도이포리아이스'(*)는 해상 여행과 구별되는 육로 여행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 바울의 육로 선교 여행은 때로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 당시 반쯤 말라있던 강물이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급류로 변해 여행자에게 큰 위험이 되기도 했다. 바울도 아마 이런 위험을 당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당시의 헬라와 아시아의 산악 지방에는 산적들에 의한 약탈 행위가 있었는데 아무런 호위 병력도 없이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은 이런 위협까지도 각오해야 했다.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 - 바울은 선교를 함에 있어서 유대인 동족들로부터는 배교자로 낙인 찍혀 죽음의 위협을 당했고(행 9:23, 29;14:19;18:12) 이방인의 토착종교인들로부터는 훼방자로 죽임을 당할 뻔 했다(행 16:16-40;19:23-41). 아마 바울은 이런 역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나가면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4:8,9) 신앙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 - 시내의 위험이라 함은 에베소, 빌립보, 베뢰아 등의 도시에서 당한 환난과 핍박을 가리킨다(행 16:21;19:27). 광야의 위험이라 함은 비시디아의 버가와 안디옥 사이에 있는 험악한 광야를 통과할 때 또는 안디옥에서 루스드라와 더베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지날 때 있을 수 있는 추위와 뜨거움과 배고픔등의 위험 그리고 갈라디아의 도시들에 이르기 위해 다루스산맥을 넘어가는 지역에서의 위험등을 가리킨다.
@바다의 위험 - 이는 앞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파선의 위험을 가리킨다(25절).
@거짓 형제 중의 위험 - 거짓 형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과도 구별되는 자들로 아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과도 연관이 있는 유대적 기독교인들이라고 본다(Barrett, Bruce, Harris). 그런데 혹자는 단순히 기독교내에 있는 배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Tasker, Martin) 또 어떤 학자는 이들이 바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권위자들(가령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바울에 대해 나쁘게 고자질했을 것이라고 본다(Hering). 그러나 바울이 배교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갈 2:4을 참조해 볼 때 거짓 형제란 유대적 기독교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들에 의해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11:27
@수고하며 애쓰고 - 이 두 단어는 중노동을 나타내는 말인데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 육체의 심한 노동으로도 몹시 피곤한 생활을 했다(살후 3:8).
@여러 번 자지 못하고 - 육신의 병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일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외부의 위험 때문인지 분명치 않다. 아무튼 그가 의도적으로 자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고자 해도 잠을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은 육신으로 감당하기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음에 틀림없다.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 주린 것과 목마른 것은 광야의 위험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의 굶주림이 자발적인 금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그가 복음을 선포하고 그 권리로 얻을 수 있는 재정 보조를 마다했기 때문에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굶주림에 처했을 것이다.
@춥고 헐벗었노라 - 이는 바울의 재정적인 빈약함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삶은 참으로 자신은 가난해지지만 다른 사람들은 부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었다.
=====11:28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 - 늘 바울의 마음에 고통이 되는 것은 자신의 생(生)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오직 목회적 관심, 즉 교회에 관한 염려였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로부터 들려오는 분쟁과 타락의 소식을 들은 때마다 그것의 해결을 위해 고심했으며(행 20:29,30), 교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애썼다(롬 14:1;고전 9:22).
=====11:29
@약하면...약하지 아니하며 - 바울이 당한 고난은 교회 밖에서 오는 것(23-27절)과 교회 안에서 오는 것의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오는 고난은 근본적으로 그의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짓 사도의 가르침에 현혹된 것이나 바울 자신에 대한 사도적 권위에 대한 도전 등도 결국 이러한 고난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오는 고난은 23-27절에 언급된 것들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에서의 핵심적인 단어는 '약해지다'(* , 아스데네이)라는 말인데, 바울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Barrett). (1) 이 말은 율법과 조문(條文)에 매여 믿음이나 양심이 약해진 사람에 대해서 사용된다(롬4:19;14:1-2;고전 8:11,12). (2) 이 말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힘이 약하고 허약한 사람을 가리킨다(11:21;12:10;13:3,4,9;롬 8:3). 그런데 이 두 가지 의미 가운데 본문에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굳이 연관을 시키자면 전자와 관련될 수 있겠으나 본절의 약함은 율법이나 조문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신앙과 믿음이 연약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신앙이 강건하지 못하고 연약한 성도들에 대해서 결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해서 동정하고 함께 아파하는 입장을 취하였다(고전 8:13;9:22). 본절은 바울의 이런 기본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본다. 한편 바울의 이런 태도는 그의 유기체적(有機體的) 교회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엡 1:22,23). 즉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된 교회의 특징이다.
@실족하게 되면...애타하지 않더냐 - 여기서 '실족'은 '죄에 빠진 것'(공동번역)이나 '걸려 넘어져 믿음을 잃게 된 것'(Barrett)을 가리킨다. 그리고 '애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퓌로오'(* )는 '불'을 뜻하는 '퓌르'(* )에서 나온 말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심정이 가장 안타까울 때 쓰는 말이 '속이 불타오른다'라는 표현임을 생각할 때(렘 20:9) 바울의 이 말은 그의 사도적 인격에 깊이 내재해있는 목회자적 열정을 잘 나타내 준다고 본다.
=====11:30
@부득불 자랑할진대...약한 것을 - 바울은 비록 자신에 대한 자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자랑했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간적인 자랑을 해야하는(16-27절) '어리석음'을 멈추고 다시 본질적인 주제로 돌아왔다. 바울이 말하는 약함이란 육체의 풍모나 신체적인 면에 있어서의 허약함, 세상적인 것을 가지지 못한 약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의 여정을 걸어야했던 것 등이라고 본다(11:23-27;사 53:4). 그리고 이러한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말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인간적인 면에서 약하면 약할수록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기에 그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의미이다 (1:8-10;3:5;4:7,10,11;12:5,9,10).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의심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고 (1:12-14) 그가 한 말에 대해서 그들이 계속 의심하려고 한다면 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경험한 사건들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의 말이나 행우에 대한 진실성을 호소하는 수단 중 가장 강하게 되었다.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 - 이 말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라는 유대교의 찬양문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유대인들이 조상 대대로 섬겨온 그 하나님이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주 예수의 아버지와 동격으로 사용되어(갈 4:4) 유대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리고 엡 1:3;벧전 1:3에서도 같은 표현이 사용된 점을 미루어 보아 당시에 그러한 찬양문이 기독교인의 예배나 기도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Barrett).
=====11:32
@아레다 왕- 나바데아(Nabataea)를 다스렸던 왕이었다. 이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다스렸다는 표현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다메섹은 B.C 63년부터 A.D. 34년 까지 로마의 영토에 편입(編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Harris). 그러나 A.D. 34-62년 사이에 로마의 황제였던 갈리굴라(Galigula A.D. 37-41)와 클라우디오(Cludius A.D.41-54)의 동전이 다메섹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고고학적 결과를 가지고 아레다가 다메섹을 통치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추측을 부정한다. 그래서 혹자는 다메섹이 이중의 통치를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아레다'가 로마의 봉신(封臣)으로서 다메섹을 통치했다는 것이다(Tommsan). 또 어떤 학자들은 다메섹이 여전히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 있었으나 다메섹에는 나바데아인들의 반자치 구역으로 허용된 영역이 있었고 바울이 당한 사건은 거기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Bruce, Tasker, Hughes, Meyer, Harris).
@방백 - 이는 지방의 '행정 장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혹자는 행 9:23, 24을 근거로 이 행정 장관이 유대인 출신으로 다메섹의 유대인을 담당했던 사람이었고 그 휘하(麾下)의 경비병들도 유대인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 한다(Hughes). 그러나 바울이 정확한 묘사를 하지 않았으며 역사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기에 단정할 수 없다.
@잡으려고 - 이것은 행 9:23-25에 나오는 사건을 말하는데 본 구절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단순히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행 9:24).
=====11:33
@광주리를 타고 벗어났노라 -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바울로서는 그 사건이 그다지 명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 체험을 고백하는 것은 이미 바울 자신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광주리를 타고 들창 밖으로 몰래 도망해야 하는 것은 바울의 약함과 비천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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