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1장 [214.나주의도움받고자]....손내밀어 그를 만져라 ....그는 나를 만졌네 내영혼을..[430.주와같이 길가는것] [461.십자가를 질수있나]
....[모세 율법 체계] : <<십계명(기초 율법)>> + <<율례 = 규례(십계명을 보충) + 법도(규례에 더하여 심판과 징계 내용 추가)>> .....이 또한 Q의 호흡하심이니..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라... 따라서 <주님 이름 불러 성령 따라 서로 사랑의 새 율법 준행함은> 그리스도를 호흡함이 되는 것임을 명심하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성경 속 언약의 적용 원칙.....(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해도) 자녀들은 항상 아버지 안에 포함되는 원칙이 작동됨!! ....[신명기가 보여주는 요점...이 요점들은 바울 서신에서도 동일하다] .....Q은 *1)사랑이 깊으심(마음) *2>의로우심(손) *3>신실하심(입) *4>축복/저주하심(눈..판단) .....반면에, 사람(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
.....그러나 JC
==>사랑 깊고 의로우시고 신실하시며 축복하시는 Q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스스로 무엇 하기를 결코 원치 않으시며(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시기에) 그분의 경륜, 그분의 길은 우리가 그 무엇을 자신에 의해 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며, 생명 공급이시기에, 우리는 매일 그분을 먹고 살아야 한다.(그리스도는 기꺼이 <날마다 새로이!!>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맛난 음식으로 먹도록 자신을 내어주신다....그리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고 섭취-흡수한 바 그 영양분은 바로 생명의 그 영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의 신실함이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의 몸-본체, 곧 실체이시다.(골2:17). 우리의 공급을 위하여 계시는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분을 말씀 안에서와 말씀에 의해서 접촉해야 한다. (초신자에 대해서는 주 보시기에 처음 믿는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때때로 초자연적인 기적-표적-기사를 보여주심으로써 q이신 그분 믿는 민음 안으로 들어 오도록 이끄시지만, 성숙은 오직 말씀 먹기 통해서 일어난다) .......성경은 단순히 역사와 이야기와 가르침에 대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리스도의 체현이다.(EMBODIMENT=구체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그분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으며, 이루고 계시며, 이루실 것이며, 이루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다 성경 안에 체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것은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다. 성경은 Q의 호흡, Q의 내쉼이므로 성경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호흡하는 것, 들이마시는 것이다. 거룩한 말씀 안에서 Q의 호흡을 들이마시기를 배우라. .......말씀이 멀리 있다고 생각지 말 것이며, 누가 하늘에 올라가 말씀을 모셔 내려오겠느냐, 또는 누가 바다를 건너가 말씀을 우리에게 모셔오겠는가 묻지 말아야 할 것이다.(신30:11-13, 롬10:6-7) 말씀이 아주 가까이 계시다. 말씀은 우리의 입과 우리의 마음에 계신 것이다(신30:14, 롬10:8)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성육신 안에서 이미 내려오셨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들이마실(숨 쉴) 호흡인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전15:45...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45 So it is written [in Scripture],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an individual);” the last Adam (Christ) became a life-giving spirit [restoring the dead to life].)>....(회복,REC)45.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이것은 그분이 말씀이실 뿐 아니라 그 영이심을 뜻한다.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 그 영을 받는 것인데, 이는 그분이 우리에게 이르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6:63...*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3 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conveys no benefit [it is of no account].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life [providing eternal life]. >...<회복.REC...63..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profits nothing; the words which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are life.>]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호흡을, 들이마시기를 배우라. 우리가 과정을 거치신 TUQ을 호흡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Q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고후13 :13) ..이렇게 성경을 들이마심으로써 말씀을 취할 때, 우리는 자신 안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그가 말하는 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였을 때, "모든 것"의 그 내용들은 8절에 이미 나와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전에 이러한 것들 중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을 모두 할 수 있었다.. [빌4:4-8...*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4. Rejoice in the Lord always [delight, take pleasure in Him]; again I will say, rejoice! 다시 거듭 거듭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환희와 기쁨 넘치며 즐거워 하십시다. *5. Let your gentle spirit [your graciousness, unselfishness, mercy, tolerance, and patience] be known to all people. The Lord is near.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여러분의 관대함(은혜끼침, 이타심, 자비, 참아줌, 인내)을 인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영).주님이 <호흡보다 의식보다 더>가까우십니다. *6. Do not be anxious or worried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every circumstance and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continue to make your [specific] requests known to God. 아무 것도 불안/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모든 환경과 상황 처지 형편에서든지)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필요를 주께 계속 알려드리십시요 *7. And the peace of God [that peace which reassures the heart, that peace]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that peace which] stands guard over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is yours]. 그리하면 모든 지각/이해를 초월하는(마음에 거듭 확신 주시고, 마음들과 생각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8. Finally 마지막으로, [b]believers, 믿는이들이여 whatever is true 참되며 진실하고(진), whatever is honorable and worthy of respect 영예롭고 존(경)할 만하며, whatever is right and confirmed by God’s word 올바르며(의) 하나님 말씀으로 확인되며, whatever is pure and wholesome 순전하고 완전하며(전), whatever is lovely and brings peace (사)랑스럽고 평안 끼치며, whatever is admirable and of good repute 흠모할 만하며 좋은 평판 받음(칭송); if there is any excellence, if there is anything worthy of praise 그 어떤 탁월함이나 칭송에 있어서든지(그 누군가가 치켜세움-인정하는 바가 타당함지를 점검함에 있어서 그 기준이 되는 것은 Q그분이 인정하시느냐의 여부이니!!) , think continually on these things [center your mind on them, and implant them in your heart]. 계속해서 이러하여야 함을 생각하라(생각을 거기에 두고, 그대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하라)]
@@계명 commandment hw:x]mi(4687, 미츠와) ..언약, 가르침 ..미츠와(명여)는 차와(hw:x; , 6680: 명령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계명, 명령 commandment'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80회 나온다. 미츠와는 토지 매입시의 계약 증서와 관련, 사용된다: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렘 32:11). 이 단어는 또한 생도에게 주는 교사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지혜 문헌에서 사용되었다(잠 2:1, 잠 3:1). 이 계명은 언약의 특별 조건으로서 보다 빈도 높게 사용된다. 출 24:12에서는 이 단어가 십계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계명을 뚜렷이 계시하심으로써 그것들을 온 백성이 향유할 수 있게 하신다. 아무도 계명을 찾기 위해 생애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 30:11). 그것들은 바로 곁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여호와를 찾기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는 인간에게 손을 내미셨다. 하나님의 계명은 순결하고(시 19:8, H9), 진실하며(시 119:151), 신실하고(시 119:86) 의롭다(시 119:172).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기쁨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복있는 자로 불린다(시 119:47, 시 112:1). 여호와의 계명은 생의 의미에 통찰력을 주는데 이는 가장 참된 의미의 삶을 영위하게 하기 위함이다(시 19:8 이하, H9 이하, 신 5:29, 신 6:2, 신 8:11).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며 자기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해준다(참조: 신 4:5 이하). 그 결과 계명에 순종하는 자는 종종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만일 계속하여 하나님의 계명에 충실했더라면 지도적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신 28:13). 다윗과 솔로몬 치하에서 누렸던 영화가 이러한 단언의 타당성을 입증해 준다. 이스라엘이 계명에 복종해야 될 이유는 하나님 그 자체와 관련된다(레 22:31). 바로 그의 본성으로써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며 바로 그의 위치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그를 섬겨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신 11:1). 이로써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숭배심(또는 경외심)을 보이며 그에게 부종한다(신 8:6, 신 13:4, H5).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그의 사랑(hesed)을 펴신다(신 5:10).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은 그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히브리인들은 의복의 가장자리에 술을 만들어 율법을 상기해야 했다(민 15:39).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마와 손목에 매며 집 문설주에 그 말씀을 기록해 놓아야 했다. 아비들은 그 말씀들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며 자주 이야기에 주어야 했다(신 6:6-9). 그리고 말씀은 율법책에 기록되어 보존되었다(신 30:10). 그러나 만일 계명을 단지 인간의 기록으로만 생각하여 기계적으로 답습한다면 그 계명은 어떤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사 29:13 이하). 인간은 부패하여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기 쉽고 한편으로는 계명을 매우 상세하게 해석하여 다른 것을 첨가하기 쉽다. 만일 다른 것을 추가할 경우 인간은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께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굳은 자만심에 빠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주어진 계명을 가감하지 말라고 선언하신다(신 12:32, H13:1, 참조: 신 5:32). 어느 계명이라도 어기게 되면 이것은 죄가 되며 속죄를 필요로 하게 된다(참조: 레 4장). 그러나 계명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민 15:31). 솔로몬이 말년에 계명을 따르지 못함으로써 왕국의 분열을 초래하였다(왕하 11:31-39, 왕하 14:8). 또한 계속된 여러 왕의 불순종 특히 므낫세의 불순종은 다윗 왕조의 종말을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기에도 이스라엘에 자비를 베풀었다(참조: 느 1:8 이하).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준 약속을 메시야를 통해 성취할 것이다. 포로기 이후에는 서기관 계급이 발달하였다. 그들은 계명에 능숙한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 주었던 것이다(스 7:11). 전도서 기자는 생의 의미에 관해 온갖 가능성을 탐구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참조: J. E. HARTLEY; BDB). -------- @@말, 일, 사건....rb;D;(1697, 다바르) 다바르(명남)는 '말, 말하는 것, 언어, 일(thing), 어떤 것이나 모든 것, 계명, 문제, 행동, 사건, 역사(history) 사업, 원인, 이유'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450회 나온다(창 11:1, 창 12:17, 창 15:1, 창 19:22, 창 20:8, 민 25:18 등).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시는 분’이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실 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의 삶과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도 ‘말하는 존재’이다.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말은 하나님과 사람의 공통점이긴 하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사람은 말로 끝나고, 말이 행동과 삶으로 열매를 맺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 곧 일하는 것이다.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 내용대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이를 나타내 주는 히브리어가 1)다바르이다. 1_다바르. 2.아마르 ‘말하다’는 뜻의 히브리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아마르’는 (피조물 사이의) 일반적인 언어행위를 가리킨다. (명사형 ‘이므라’..‘말, 말씀’) 둘째 ‘다바르’도 말을 하는 행위를 가리킴에 있어서 ‘아마르’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이 둘의 중요한 차이점은 ‘이므라’에 비해 ‘다바르’가 ‘(말해진 그대로 반드시-틀림없이 이루어짐의,...그러므로 권위가 인정된다!!!) 성취’에 강조점이 있다는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곧 ‘빛’이 생겨나 말씀하신 바를 이루신다(창 1:4). 그러므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빛’이라는 실체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실체이다. 이사야 55:10-11에서 “비나 눈이 하늘에서 내려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적시어 싹이 나게 하고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다바르)은 결코 헛되어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게” 된다. 사람의 말은 공허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은 뜻을 ‘이루는’ 능력이 있다. ((Q의 그 말씀 <신뢰함으로>붙들고 <중도 포기 말고> 기도-신뢰/긍정/기대-기쁨/앙망/감사하며 그 말씀 인도 따라 한 걸음씩 준행(순종-충성)할 때 반드시 이루심을 볼 것!)) 한번 선포된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그 말씀을 기록한 것(규례)는 반드시 사람이 지켜 행해야할 의무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2)아마르는 말하는 것을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라면, ‘다바르’는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의 내용을 성취하는 행위와 열매까지를 포함하는 단어라는 점이다. ===말의 힘 대통령의 말, 회사에서 과장이나 부장 등 상사의 말은 힘이 있다. 그 힘을 ‘권한’, 또는 ‘권위’라 한다. 이러한 권한이나 권위는 어떻게 해서 주어지는가? 왜 대통령의 말이 힘이 있고, 상급자의 지시가 권위가 있는가?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삶, 사람의 됨됨이와 상관 없이 힘이 있다. 이 힘을 우리는 ‘위임된 권위(권한)’라 한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위임을 받아 ‘대통령의 직’에 걸맞는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같은 내용을 말하지만, 직위가 높을수록, 특별히 행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말에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다. 이 모든 힘은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 힘은 5년의 직을 마치고 물러나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과거 전제왕권 시대에는 투표를 통해 공식적인 위임을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왕족이 국민들을 통치한다는 합의된 관습이 있었고, 그 관습이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관습적 위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위임받은 권한은 제약이 있다.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위임받은 자가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행하면 그 위임을 철회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그 경우에는 곧바로 물러나게 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을 설립하고, 조직을 정하면 그 직책에 맞는 한계와 권한이 있고,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힘은 그 직급에 비례한 힘을 갖게 된다. 여기서 아마르와 다바르의 차이점이 있다. 아마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과정, 입에서 나와 공표되는 내용 자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다바르는 단순히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책에 맞는 권한과 힘을 통해 말로 지시하고, 지시를 받은 상대가 이를 수행하여 어떤 ‘결과물’을 이루어 내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결과물’(일)은 ‘말’을 통해 지시할 때 이를 (듣는이가 순종하여...곧 겸손히 동역하여 순종-충성-준행/섬김으로써)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 이 경우 ‘다바르’는 말하는 행위뿐 아니라 그 말로 인해 실행되고 열매를 맺는 일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지칭하게 된다. 이렇게 [말 = 결과]의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말이 곧 일이고, 일은 말 혹은 지시를 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속성 하나님의 권위는 위임된 권위가 아니다. 누구의 위임이나 추인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합의된 권한을 획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힘으로 그 말씀의 내용이 성취가 된다. 이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3_데바르아도나이. 1) 선포된 말씀 말씀을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 ‘다바르’가 여호와와 결합되어 사용된 3)데바르 아도나이, 곧 ‘여호와의 말씀’(the Word of the Lord)이란 표현이 구약성경에 259회나 사용되었다. 이는 주로 선지서에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의 ‘공식’처럼 사용한 말이다. 즉, 선지자가 전하는 말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호 1:1, 욜 1:1, 욘 1:1, 암 1:1, 미 1:1, 습 1:1, 학 1:1, 말 1:1). 시편 119:130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주의 말씀’(다바르)은 “열어서 우둔한 자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주의 말씀을 연다는 것은 ‘언어/말’ 속에 포장된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를 꺼내어 증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언어’를 통해 말씀의 형태로 계시하시는 분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생명, 능력, 지혜, 창조 등의 모든 속성은 ‘말’이라는 언어의 보자기에 싸여서 전달되기에 극히 일부만 그 실체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우둔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그 말씀 속에 있는 진정한 의미와 생명의 능력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입을 ‘열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선포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한번 그 말씀의 보자기를 벗겨내고, 껍질을 벗겨내어 이면의 뜻을 깨닫게 해주신다(롬 2:29). 언어의 형태로 포장된 말씀의 실체를 열 때 그것은 마치 빛이 비취는 것과 같아 우둔한 자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기록된 말씀 - ‘글’, ‘행적’, ‘사적’ ‘다바르’는 선지자나 하나님의 종들의 입을 통하여 선포된 말씀일 뿐 아니라 그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기록하여 대대로 지켜야할 규범으로 정하셨다. ① 역대상 29:29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다윗 왕의 시종 행적(다바르)”이 ‘기록된 말씀’이다. 그런데 이 ‘기록된 말씀’이 생겨나게 된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다윗 왕의 ‘명령’(말)이 있고, 그 명령(말)을 받아 신하들이 정책을 실행하는 실천이 있게 되고, 실행한 그 일을 기록할 때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여러 사람의 글에 실리게 된다. 따라서 성취된 모든 ‘일’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다바르)이 있고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성취된 ‘일’(다바르)이 있게 되고, 그 이후에 그 내용을 책에 기록함으로써 ‘기록된’ 말씀이 된다. 이 세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가 히브리어 ‘다바르’이다. ② 역대하 13:22 “아비야의 남은 사적(다바르)과 그 행위와 그 말은(다바르)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에 기록되니라” 위 구절에서 ‘사적’과 ‘말’이 모두 히브리어 ‘다바르’이다. 아비야가 선포한 ‘말’(다바르)과 ‘행적’(다바르)이 잇도의 주석책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지도록 보존한 것이다. 역대하 9:29 에서 “솔로몬의 행적(다바르)은 ... 선지자 나단의 글(다바르)과...”라고 함으로서 ‘행적’과 ‘글’이 둘 다 ‘다바르’로 쓰였다. ③ 열왕기상 14:29 에서도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다바르)과 무릇 그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다바르')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다. 3) 성취된 말씀 - ‘일’, ‘기사’ ① 창세기 20:8에서 아비멜렉은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다바르)을 다 ‘말하여’(다바르)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 하였더라”고 하였다. 아비멜렉이 신복들을 불러 말한 ‘그 일’은 창세기 20:6-7에서 하나님이 꿈에 그에게 이르신 ‘말씀’(다바르)이다. 그 말씀의 내용은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다바르’는 말하는 것과 말한 것의 성취를 뜻하는 ‘일’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아직 아비멜렉의 가족을 죽이는 ‘일’(다바르)을 행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다바르)하신 것 자체(선포)가 이미 말씀의 ‘성취’(다바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신복들이 심히 두려워 한 것이다. 이처럼 히브리어 ‘다바르’는 단순히 입에서 선포된 ‘말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성취’까지를 포함하는 단어이다. 4_보내신 모든 말씀 5_명하신 모든 이적. ② 출애굽기 4:28에서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여 4)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5)명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고하니라”라는 말씀에서도 ‘다바르’는 ‘말씀과 이적’이라는 두 가지 뜻을 나타내준다. 이 구절의 특이한 점은 ‘말씀’(다바르)을 보내고, ‘이적’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 ‘말씀’을 ‘명하고’, ‘이적’을 ‘보내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서로 바꿔서 표현한 것은 이 둘이 하나의 동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곧 ‘이적’이기에 말씀을 ‘보낸’ 것은 곧 이적을 보낸 것과 같다. 따라서 ‘말씀’과 ‘이적’은 사실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이적이고, 이적은 곧 하나님의 명령(말씀)하신 바대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이 선포되면 그대로 순종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는 생활을 하여서 삶 속에서 ‘열매’(다바르)를 맺어야 한다. ③ 시편 119:9에 나오는 ‘청년’은 이와같은 삶을 살아가는 참 성도를 가리킨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다바르)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이 구절에서 주의 ‘말씀’이 ‘다바르’이다. 영어성경(NIV)에는 “By living according to your word”(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서)로 그 의미를 제대로 살려서 번역하였다. 주의 ‘말씀’(다바르)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거룩한 행실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내 삶 속에서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성육신 하신 말씀 이는 말씀이 선포나 기록된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육신과 삶 자체로 체화되어 임하신 가장 강력한 형태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경우는 단 한 번의 유일무이한 말씀의 형태, 가장 강력한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의 모든 언어과정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요, 권위가 있으며, 힘이 있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분의 말씀은 성경을 인용하거나 설교할 때만 말씀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그분의 입을 통해 발화(發話)된 모든 언어는 곧 말씀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그 권위는 역시 누구에게 위임된 권한이 아니라 스스로의 권위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창조의 능력, 치유의 능력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볼 때,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단어이다. 말만 많고 행함과 열매가 없는 사람의 말과 달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성취가 되기 때문에 말씀이 곧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을 받은 성도들 또한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하면 곧 성취되는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 ------ @@말씀 (Word) : <구약>‘다바르’(dabar) <신약>‘로고스’(logos), ‘레마’(rhema), ‘글롯사’(glossa) ===말씀 (Word) 구약에서의 말씀: 구약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르(dabar)는 연설(잠 12:25), 일반 언어(창 11:1), 대화(렘 38:24) 등을 뜻하고 있다. 이외에 생각(겔 38:10), 약속(왕상 2:4), 위협(왕상 12:15), 위임과 명령(창 24:33), 규칙과 규정(에 9:31), 명령(왕상 13:1), 교훈(시 50:17), 제시와 의논(민 31:16), 요청과 소원(삼하 14:15), 정보와 소식(창 37:14), 거절(에 1:17) 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또한 ‘ …은 이러하니라’의 특별한 상황에 대한 절차를 설명할 때(신 15:2)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출 16:16). 이렇듯 다양하게 쓰인 히브리어 ‘다바르’(dabar)는 하나님께서 자기 모습과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섭리대로 역사를 이끄시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약 240여회나 쓰였으며, 행동언어(창 1:3; 시 33:6)로 표현되었고 진리와 신뢰성이 담겨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는 말씀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아브라함(창 22:1), 야곱(창 46:2), 모세(출 3:4), 사무엘(삼상 3:1),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났다. 한편 시편 119편은 말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 주는데, 여기서 말씀은 율법, 법, 법도, 계명, 율례 등 다양한 명칭으로 사용되었고 의미상 동의어로 쓰여졌다. 신약에서의 말씀: 신약에서 말씀과 관련된 헬라어는 ‘로고스’(logos), ‘레마’(rhema), ‘글롯사’(glossa) 등이 있다. 로고스는 진술(마 5:37), 말이나 언사(마 12:32; 눅 20:20), 질문(마 21:24), 명령(눅 4:36), 보고나 소문(행 11:22; 눅 5:15), 강화(마 15:12), 기록된 말(행 1:1), 성경의 말씀(고전 15:54), 선포나 가르침(눅 4:32; 요 4:41), 말씀이신 예수(요 1:1, 14)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에 대한 선포와 이미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온 세상 통치의 계시에 대한 예고였다.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사자(messenger)의 공식 문구를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내가 진실로(amen) 너희에게 이르노니’(막 3:28; 9:41)와 같은 아멘(amen) 공식어를 사용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지는 신적 확신과 권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은 행하심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 즉 치유기사들에서 병고침은 예수님의 말씀(막 2:11)과 명령의 말씀(막 9:25)에 뒤이어 이루어져 이적이 말씀의 외적인 표현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이 회중에게 선포한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고전 14:36; 고후 2:17), 도(살전 1:6), 주의 말씀(살전 1:8),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살전 2:13)이라 했고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고전 15:3-5). 히브리서에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말한다(히 1:1-4).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올리워지시고(히 1:5 이하) 종말론적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다는 사실(히 1:7 이하)에 기초한 약속의 말씀이다(히 7:28).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실행된다고 했다(요 3:34; 14:24).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이 말씀으로 칭해졌는데(요 1:1, 14) 이는 예수님 자신이 로고스, 즉 신적 계시자이자 구속자이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로고스 개념이 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요한일서 1장 1절과 요한계시록 19장 13절에서도 발견된다. 로고스(logos)가 기독교의 선포 전체를 지향하는 말인 반면, 레마(rhema)는 개별적인 말 혹은 발언과 결부되어(마 12:36) 케리그마적인 특징을 띠며 말씀에 대한 성취가 뒤따른다(눅 1:37; 5:5-8).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많이 사용되었다. 글롯사(glossa...방언.)는 대개 몸의 지체인 혀(눅 16:24; 계 16:10)를 가리키는데, 신약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구원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표적으로 간주되었다(행 2:16-21과 욜 2:28-32, 고전 14:21과 사 28:11 이하 등). 또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권능을 알리고 제자들에게 임한 불의 혀(행 2-3장)로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나타내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빌 2:11) 일도 혀를 통해 이루어졌다. 신약에서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기초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의 권위를 넘어서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이 곧 말씀이 되셨다. 따라서 말씀은 사도들의 선포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선포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고 있다.
[신30:11-14...*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amp). .11 “For this commandment which I am commanding you today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nor is it [c]out of reach. 12 It is not [a secret hidden] in heaven,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go up to heaven for us and bring it to us, so that we may hear it and obey it?’ 13 Nor is it beyond the sea,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cross the sea for us and bring it to us, so that we may hear it and obey it?’ 14 But the word is very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so that you may obey it.(회복) *11.내가 오늘 그대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그대에게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12.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그대는 ‘누가 우리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어 준행하게 할 것인가?’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13.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는 것도 아니니, 그대는 ‘누가 우리를 위해 바다를 건너가서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어 준행하게 할 것인가?’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4.그 말씀은 바로 그대에게 아주 가까이, 곧 그대의 입에 있으며 또 그대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그대가 준행할 수 있습니다..(Rec).*11.For this commandment which I am commanding you today, it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nor is it distant. *12.It is not in heaven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ascend to heaven for us and bring it to us to make us hear it and do it? *13.Nor is it across the sea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go across the sea for us and bring it to us to make us hear it and do it? *14.But the word is very near to you, even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that you may do it.] .......11절의 <명령, the commandment>는 [율법]계명으로서의 명령이요 지금은 말씀(the Word)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데, 12,13절에 이르게 되면 그 명령이 이제는 Q의 호흡으로서 Q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4절에서는 계속하여 "그 말씀(the Word)이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네 마음에 있기에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고 하신다....신명기는 율법을 Q의 살아 있는, 생생한 말씀으로, Q의 호흡하심으로 간주한다. ........신명기 30:11-14, 이 부분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깊이 있게 파헤친)) 롬10:6-10, 특히6-8절의 바울의 인용과 해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신 30:11-14 부분의 구절들을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특히 성육신 안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죽음 후 그분의 부활 안에서 음부로부터 나오신 그리스도께 적용하고 있었다. [롬10 : 6-10(6-8)..*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amp) 6 But the righteousness based on faith [which produces a right relationship with Him] says the following: “Do not say in your heart, ‘Who will ascend into Heaven?’ that is, to bring Christ down; 7 or, ‘Who will descend into the abyss?’ that is, to bring Christ up from the dead [as if we had to be saved by our own efforts, doing the impossible].” 8 But what does it say? “The word is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that is, the word [the message, the basis] of faith which we preach— 9 because if you acknowledge and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recognizing His power, authority, and majesty as Go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with the heart a person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resulting in his justification [that is, being made righteous—being freed of the guilt of sin and made acceptable to God]; and with the mouth he acknowledges and confesses [his faith openly], resulting in and confirming [his] salvation.] ......롬10:6은 신30:12를 해석한 것인데, 언뜻 보기에는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에 관한 언급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12절의 그 명령, 즉 하나님의 계명이란 무엇인가? Q의 계명은 Q의 말씀이요!! 성경 전체는 Q의 말씀, 말씀이신 Q이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한다.(요1:1)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 있는 유일한 말씀, 참 말씀이시다. 어떤 다른 말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 >>롬10:6을 보면, 바울이 이해한 바로는 그 명령을(말씀을) 모셔 내려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는 것이다. 신30:12절에서 좀 더 심오하게 표현된 것에 관한 바울의 관점에 따르면, 이 구절의 [그 명령]은 말씀을 뜻하고, 그 말씀은 Q의 말씀이며, Q의 말씀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모셔 내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모셔 내리는 것이다. >>롬10:7에서 바울은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신30:13절에서는 바다에 대해 말하는데 반해 바울은 음부(Abyss..= 무저갱...이곳은 죽음과 어두움의 마귀세력의 본거지 영역이다)에 관해 말한다. 실제로 바다는 음부의 입이다. 계9장은 적그리스도가 음부에서 나올 것을 가리키고, 계13은 적그리스도가 바다에서 나올 것이라고도 말하는 바, 이것은 (바다는 음부의 입이기에) 그가 바다, 즉 음부에서 나온다 함이요 (음부로 가는 것은 죽는 것임을 말한다.) ....롬10:7에서의 요점은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이 있는] 음부에서 올라오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올라오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에 음부로 가셨으며,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곳에서 나오셨음을 의미한다. >>롬10:8에서 바울은 "그러면 무었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보라, 이제 드디어!! 주 오실 때까지 붙들고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계시가 주어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입에 있는 말씀은 유일무이한 참 호흡, Q의 호흡이신,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이다!! 이는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이다.(고전15:45.하) [고전15:45..*45.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새번)*45.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amp) *45. So it is written [in Scripture],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an individual);” the last Adam (Christ) became a life-giving spirit [restoring the dead to life]. (Rec) *45.So al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마4:4...*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amp) 4 But Jesus replied,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comes out of the mouth of God.’”....(회복)4.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rec)4.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through the mouth of God.”] [딤후3:16, 17...*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AMP).16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given by divine inspiration] and is profitable for instruction, for conviction [of sin], for correction [of error and restoration to obedience], for training in righteousness [learning to live in conformity to God’s will, both publicly and privately—behaving honorably with personal integrity and moral courage]; 17 so that the [a]man of God may be complete and proficient, outfitted and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회복)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가르치고 가책받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17.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며, 온갖 선한 일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되게 합니다....(rec) 16.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profitable for teaching, for conviction,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17.that the man of God may be complete, ful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모든 성경, Q의 말씀은 Q의 호흡하심으로(=감동으로) 된 것<딤후3:16>]....말씀하시는 Q에 의해 내쉬어진 호흡이시며,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이제 유일무이한 참 호흡이시요 동시에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계시기에,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육신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거기로부터 부활하사 부활 안에서 거룩한 호흡인 생명 주는 영이 되신 분] 그리스도가 그들의 입과 그들의 마음에 있다<계신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매일의 음식, 우리의 생명 양식이심을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다 ..... 결국 신명기 안의 모든 말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바란다.. 그리스도는 [Q의 다시 말씀하심, 즉 되풀이 된 Q의 말씀하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 전체가 한 권의 신명기이며, 성경 전체가 신명기 안에 들어 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고지선의 진복, 좋은 땅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과 의이신.분..하기에, ((때때로 곁길로 나가려 하는 때마다, <안 된다>하시는 분))으로서, 여기에는 그분의 다함 없는 친밀-달콤-충만한 사랑과 함께, 그분의 통치적 다스림/행정이 있게 된다> Q의 모든 풍성을 날마다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당신 안에 품어 보존하시며, 우리로 Q을 사랑하고 그분을 합당하게 두려워 하며, Q이 다스리심에 복종케 하시며 Q의 민감한 감정에 주의하며 Q의 임재 안에 사는 사람들로 만드시는 분이심 .....((개인적 적용))..모든 차원과 영역의 창조주시요, 영혼몸의 구속주이신 분이요, 모든 만물(만유)의 조성자요 에너지 공급 근원의 운행자이시다.. 그분은 (통치/다스림의 범위는 가시적/비가시적 영역, 무의식-의식-잠재의식까지도 다 포함하신다) 유일무이한, 살리는!! 생명 말씀이시니,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을 사는 이들마다 마땅한 바는 (혈기-탐심-정욕 따라, 즉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따라 추구함의) [대적에게 속임-기만 당함 그 자체인] 우울-자기 연민으로 사는 것 아니라, (온 누리에 충만한 분이시지만, 겸손히 자신을 감추고 계신 분, 그분께!!...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 발휘함 통해 그대의 오감과 오성을 열어드리며) 마음의 지향과 시선을 (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가까이, 그대 존재 전 영역에 완전히 녹아들어 하나 되어 계신 분이신) 주께 돌림으로써!! <생명 주는 영이신> 그분의 마음과 심정으로 적셔지고 충만케 하신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분 앞에서 (입에 넣어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말하며, 그분을 공급하며 그분을 반사-반영함의 삶 살기가 중요하다!!..주여 내가 아니라 주님이 (거듭난) 나를 통해 친히 사시옵소서!!
[좋은 땅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물] 그 땅은 물이 많아서 좋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다. 먹지 않고도 여러 날을 견딜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거의 단 하루도 지낼 수 없다. ==원천, 샘, 시내 신명기는 그 땅의 물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명기에 사용된 서로 다른 용어들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는 시내로 가득한 땅을 의미하는 ‘시내가 흐르는 땅’이며, 다른 하나는 ‘샘이 솟으며 원천이 있는 땅’(신 8:7)이다. 원천과 샘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있는가? 다비(J. N. Darby)가 번역한 성경에는 ‘샘과 깊은 물의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의 우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우물에는 언제나 원천이 있다. 밑바닥, 즉 우물 바닥에는 그 우물을 물로 채워 주는 원천이 있게 마련이다. 물은 그 원천으로부터 나와 우물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우물은 ‘샘’, 즉 ‘깊은 물’이 된다. 그다음에 이 깊은 물로부터 시내가 흘러 나간다. 먼저 원천이 있고, 그다음에 샘인 깊은 물이 있고, 그다음에는 시내가 있다. 원천, 깊은 물, 이러한 여러 종류의 물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은 그분께서 주시는 물은 우리 속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솟구쳐 오르는 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러 종류의 물은 그리스도의 생명 공급의 다양한 방면의 예표들이다. 우리의 공급이 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여러 가지 종류의 물과 같다. 또한 요한복음 7장에서 주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은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생수이신 그리스도의 생명 공급이다. 속사람이 메마르고 목마를 때 주님께 와서 그분을 접촉하면 소생된다. 주님을 계속 접촉하면 적셔질 뿐 아니라, 가득 채워지고 물로 충만된다. 그럴 때 형제나 자매를 만나게 되면 즉시, “할렐루야!”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시내이다. 그럴 때 우리는 찬송을 부르며 집회에 올 것이며 생생하게 살아서 올 것이다. 집회에 와서는 즉시 찬양이나 기도를 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바로 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시내와 같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원천이 있고, 샘이 있고, 시내가 있다. 원천은 근원이요, 샘은 저장소요, 시내는 흘러나옴이다. 우리에게는 근원이 있고, 저장소가 있고, 흘러나옴이 있다. 좋은 땅에는 하나의 시내가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시내나 강이 있다. 또한 많은 원천과 많은 샘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때로 고통과 시험으로 에워싸여 있을 때 주님을 접촉하면 그분으로부터 무언가를 받는다. 시험 가운데에서 주님을 원천으로, 샘으로, 시내로 체험한다. 이것은 어떠한 원천이며, 어떠한 샘이며, 어떠한 시내인가? 거기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때로 주님을 기쁨의 원천으로, 때로는 평강의 원천으로, 때로는 위로의 원천으로 체험한다. 때로는 사랑의 샘으로, 은혜의 샘으로, 빛의 샘으로 주님을 체험한다. 또 다른 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인내의 시내이시요, 겸손의 시내이시요, 관용의 시내이시다. ==골짜기와 산 신명기를 볼 때 이 물은 골짜기와 산에서부터 흐르고 있다. 골짜기와 산이 없다면 물은 결코 흐르지 못할 것이다. 모든 땅이 평평하다면 물은 결코 흐르지 못할 것이다. 골짜기와 산은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6장 8절부터 10절까지에서 바울은 대조되는 많은 것들, 즉 많은 산과 골짜기를 언급하고 있다. “영광과 모욕, 악평과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혹시키는 사람들 같으나 진실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것 같으나,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것 같으나 죽지 않고,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영광은 산이다. 모욕은 골짜기이다. 악평은 골짜기이며, 호평은 산이다. 슬퍼하는 것은 골짜기요, 항상 기뻐하는 것은 산이다. 가난한 것은 또 하나의 골짜기요,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것은 높은 산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미혹시키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미혹시키는 자 같으나 진실했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는 법이다. 이 구절에는 적어도 아홉 개의 짝, 즉 아홉 개의 골짜기와 아홉 개의 산이 있다. 이것들이 바로 물이 흐를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산과 골짜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즉 생활이 평범하기만 하다면 우리 속에는 아무런 물도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속에는 더욱더 많은 흐름이 있을 것이다. 낮추어지면 질수록, 우리에 대한 악한 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물은 더욱더 많이 흐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슬픔을 주실 때마다 그다음에는 기쁨이 따라올 것이라고 확신하라.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골짜기요, 산이다. 모든 골짜기는 십자가의 체험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의 체험이다. 또한 모든 산은 주님의 부활의 체험이다. 골짜기는 십자가이다. 산은 부활이다. 항상 어떤 고통, 즉 골짜기를 체험할 뿐 아니라 언제나 산, 즉 부활을 체험해야 한다. 골짜기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산이 있다. 십자가의 죽음을 누릴 때마다 부활도 누릴 것이다. 생수는 이 모든 체험들로부터 흘러나온다. 신명기 8장 7절에 있는 말씀을 더욱 상고해 보자. 그 구절은 시내가 “골짜기와 산에 … 흐르고”라고 되어 있다. ‘산과 골짜기에’라고 하지 않고 ‘골짜기와 산에’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는 골짜기요, 그다음이 산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흐르는 물을 접촉하는 첫째 장소는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시내를 그 시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시내가 산에서부터 솟아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시내는 골짜기에 있지만, 샘은 산에 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을 적시는 물이 여러분 속에서부터 흘러나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골짜기에 있어야 한다. 만일 고통과 시험의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 내보낼 것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평화롭거나 행복한 때에는 그러한 것을 체험할 수 없다. 그것은 슬픈 날들 속에서, 병든 나날 속에서, 고통의 나날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를 체험한다면, 사람들을 적실 수 있는 살아 있는 흐름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모든 죽음의 상황은 소생하게 하는 물을 많이 흘려 내보낼 수 있게 한다.
[신명기]라는 말은 "다시 말씀된, 두 번째로 (deutero) + 계명/율법..노모스(nomia)"란 말이지만, ****성경66권 전체를 믿는이 각자는 <신명기>로 참되게 주의 깊게 읽으며 [성령께서 읽은 바를 잘 알아듣도록] 늘 새로이 깨우쳐 주시기를 구함.. ****위치상,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의 결론 부분으로서의 신명기이기도 함. :: 모세오경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전체적 영적 의미를 정리함 ****이미 있는 그 말씀에 어떤 것이 첨가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님 .... 보라, 계22:18-19[*18.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의 말씀에 의하면, 성경에 있는 것에 추가하여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조셉 스미스의 말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요 이단적이다
***[Q을 믿는 것에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려야 하지만, Q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에 관련해서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해 봐야 한다...과거를 회상함에 있어서 반드시 합당한 보는 눈, 곧 올바르게 피악-점검함에 필수적인 지배하고 주도해야만 하는 중요 사상은]...*1)Q의 사랑 깊은 마음과 의로운 통치적 다루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행하기를 굳게 붙듬, *2)Q의 축복은 그 사람의 순종과 그 신실함을 <철저히 배우고 실행할 것을> 요구함, *3)사람의 마음이 Q을 떠날 때 심각한 비극을, 곧 저주를 초래함 ::: 합당한 회상의 결론은, 우리가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우리의 신뢰를 절대적으로 Q께만 두도록 하게 할 것.. ***결코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은....오늘날 믿는 우리의 지파 분류를 구태여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교회]요, 주 보시기에 왕적 제사장들임을 기억하라!! .....(물론 레위인은 내 것이라 하셨지만) 제사장직분이 포함된 레위 지파만을 Q의 거처-제사장 무리-군대 삼으신 것이 결코 아니었고,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3중 신분을 [공통적으로] 가진 이들이었음을 잊지말라!!...이들은 함께 <호렙에서> 율법의 지식으로 장비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성막(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과 언약궤(그리스도의 예표)에 관한 계시를 본 후, 이스라엘 자손은 땅 위에 Q의 거처인 성막을 건축하는데 참여하고 있었다(출36-38) .....여기에 더하여 Q을 섬기는 제사장 무리를 건축하는 것이 동시에 있었다(출28-30장). Q께 합당한 봉사는 오직 Q을 섬기도록 특별히 훈련 받은 한 무리의 제사장들에 의해서만 드려져야 했음을 볼 수 있다. <결코 오도되거나 오해-착각하지 말라...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들을 친히 돌보심과 보호에서 나온 배려였음을 반드시 기억하라!!....제사장 가문이 아니더라도 (고핫 자손인 사무엘처럼!!..유다 지파이신 주 예수님 처럼) 나실인 제도를 통해서 제사장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드릴 수도 있었다..> ......Q과 여행하며 싸우기 위한 Q의 군대로 편성됨 (즉, 그분의 거처요, 그분께 봉사하는 무리요, 제사장 같은 <특별한 영적>군대로 편성됨이 필요했음) ....(능숙하게 일사불란한 순종의 싸움 감당하도록) 훈련 받고 능숙하고 온전케 됨 통해 합당하게 장비(구비)되는 것이 오늘날도 너무 중요하다....영적 미숙아로 남아있게 된다면 Q과 함께 여행할 수 없게 된다.
**삼위일체 Q이 우리에게 오심의 실제....아버지는 그 영이신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오심...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분의 영이신 그 영으로서 오심....이것은 그 영이 우리에게 오실 때 아버지와 아들도 또한 오심을 의미함...요한복음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셨을 때 아들은 혼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오셨음을 계시한다(요8;29, 16:32하) 더 나아가 아들이 그 영을 보내셨을 때, 그분은 그분 자신이신 그 영을 보내셨던 것이요(요15:26, 14:26)..그러므로 그 영이 오실 때는 아버지와 아들도 오시는 것임. **[성경에 있는 계시의 기초인 삼위일체 속성] .....거룩한 삼위일체 속성에 대해 중요한 원칙을 알아두라.. 이 원칙은 근원이신 아버지에 관련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나 한 겹이고, 과정이신 아들에 관련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나 두 겹이며, TUQ의 호흡이요 완성이요 총체이신 그 영에 관련 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나 셰 겹이라는 것이니.....Q께 속한 그 어떤 속성이든, 아버지와는 한 겹이요, 아들과는 두 겹이요, 그 영과는 세 겹인 [삼중성]을 고후13:13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으로 분명히 말하고 있다....보라, 사랑은 은혜의 근원이며 은혜는 사랑으로부터의 표출됨이자 표현이다. 교통은 사랑의 체현인 은혜가 전달됨이다... 즉, Q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고, Q의 사랑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령의 교통하심 안에서 전달됨이니, 이것으로부터 TUQ의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이를 때에는 삼중의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신명기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리스도나 그 영을 명백히 언급하지는 않고 있는데....그러나, 신명기에는 그리스도의 동의어들이 나타나 있는데, 그것들은 "말씀, 율법, 계명, 증거, 규례와 법도들이다. .......우리는 (그냥 무심코 피상적으로 느끼기에는) 신명기 안에 있는 말씀은 율법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울은 그것을 <믿음의 말씀, 곧 그리스도>로 간주한다. [이 "간주함 = 여김..reckon"은 성경에서 무척 중요한데,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으로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영원불변의, 영원 이후에까지 이르는) 신실하심 그 자체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진실로 진실로"라 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믿음이자 <주님 신뢰함으로 그 말씀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훈들림 없이> 내딛노라면 마침내!! 반드시 이루심의, 생생하게 발휘되는 참된 믿음임!!] 계명과 증가와 규례와 법도는 말씀이며, 그 말씀은 믿음의 말씀인 것이다. ...롬10:8에서 바울은 [믿음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신명기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을 그리스도로 해석하며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암시한다. (우리의 입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으므로 그리스도이신 이 말씀은 그 영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성경적인 그리스도, 롬10장에 있는 신명기의 해석에서 계시된 그리스도이다. [롬10;6-10...*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9.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신30:11-14...*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와 로마서에서 계시된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성육신 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이 분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으며, 부활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부름으로써 호흡할 수 있는 <생명 그 자체인> 공기이신,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이제, 그분은 사람들이 그분을 부르기를 기다리시면서 어디에나 계신다....<호흡보다 의식 보다도 (우리 존재에 녹아들어 완전한 하나 되심 인해) 더 가까이 계심.....(빌4:5..*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Let your moderation be known unto all men. The Lord is at hand..)>, 창조주시요 모든 차원과 영역을 넘어서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자기를 아낌 없이 내어 주시는 분이시니,.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맨처음 부를 때 우리는 생명이신 그분을 받으며 우리가 계속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 공급과 힘과 모든 것이 되신다.. 롬10:12, 13에서는[ *12...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바로 이 새로운 관점으로 신명기를 대할 때, 신명기는 그야말로 전성경의 농축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 머문 시기는 대략 11개월이 넘는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 시내산에 율법 언약을 세우고(24:1-11 출24:1-11), 십계명 등 율법 규례(20:1; 출20:1; 23:33 출23:33)와 성막 규례를 받아(출25-39장) 그 이듬해 1월 1일에 성막을 지었다(40:1-33 출40:1-33). 그 이후 회막에서 하나님께 레위기 말씀을 받았으며(1:1 레1:1), 출애굽 제2년 2월 1일에 민수기의 처음 말씀을 받았다(1:1 민1:1).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행군하기에 앞서 준비 과정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주님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세대에 대한 죄벌로서, 2+38년 = 40년 광야 생활 기간에 대해] 주님은 출애굽하여 시내산을 거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한 시점까지를 2년으로 보시고,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서 홍해 길로 회정하여 광야로 들어가 세렛시내에 도달케 하는 시점까지를 38년으로 보고 (말씀하고) 계셨다.
**[[중장 보병의 하루 평균 보행 거리는 대략15km(30리)로 보고 있음]]... 그러므로 라암셋에서 시내산까지 240K이므로, ((중장 보병 속도로)), 대략15-16일 길로 보면 될 것,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264km이므로, ((중장 보병 속도로)), 대략18일길.....신1:2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 11일길이라고 말하고 있다.((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보행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이동 거리는 중장 보병 보행속도와 달리 하루 24km정도였음을 의미)). 가데스에서 세렛골짜기까지는 130km, ((대략 최소 5-최대 8일길)) **출애굽의 여정 ((가데스 바네아 중심으로)) ....애굽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2년으로 여김.[유월절에 라암셋 출발로부터 시내산까지 45일(제1년 3월1일 도착..이동 거리 240km....시내 광야에서 11개월 정도 머무름) ---시내산을 출발하여(제2년 2월20일) 가데스바네아(릿마)까지는 아마도 최소 85-90일 정도 소요되었다고 추정함..(거기서 40일간 정탐하고 정탐꾼들이 복귀하였을 시점이 포도 수확 절정기로서 성서 유대력으로 6월말-7월(티슈리월)초 즈음일 것 : 그렇다면 시내산에서 릿마까지 이동 기간은 (제2년 2월20일 출발임) 약 85~90일 소요되었을 것(성서력 5월 중순 경에 도착)....본래 11일 소요되는 길이므로 <지체되지 않았었다면>제2년 3월1일이면 도착 가능했었을 것...(가나안 정탐 기간을 제외해 보면)그럴 경우, 두번 째 칠칠절(율법 수여일)을 지키고 가나안에서 새 생활 개시할 수 있었을 것...이것이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11일 길(264km)"이라는)기록 남긴 이유일 것.], ==>그 후, 가데스바네아에서 세렛시내(에돔과 모압의 경계로, 이예아바림으로 불림..보통 5-6일 걸리는 길)까지 방황기간이 38년이니 (아론은 제40년5월1일에 호르산에서 죽게 됨), 도합40년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음... ....가데스바네아에서 호르산-->호르마를 거쳐 아랏과 헤브론, 베들레헴을 포함한 유대 산지로 행하여 하맛어귀 르홉까지 이르렀음...가데스는 브엘세바까지는 80Km(3-4일)거리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는 약 320km정도, 실제로 (우회하여) 행진한 거리는 약 640km정도... 직선거리 320km라면 부지런히 걸어서 한 달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음]] (신 1: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정상적이라면 11일 걸리는 길(264km : <부지런한 걸음>하루 24km 보행 가능??) ::: 실제로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바네아 도착까지 걸린 기간은 85~90일!!<즉 성서력 5월 중순경>이었다고 보는 근거임..(모세가 느낀 바) Q 마음 가운데 있었던 계획은, 제2년 2월20일에 출발하여(별다른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11일 후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게 되고, (그러면 3월1일이니, 시내산 도착 당시와 같은 준비를 거쳐서) 적어도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셨던 것 아닐까.).. ::: [[말씀 Q/Q 말씀을 (제시-지도-키움-자람-세움-공급-영광]]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130km로서 보통 5-6일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 에시온게벨까지의 홍해 길을 따라 세일 산지를 두루 돌며 38년간 방황케 하셨음...세일 산지는 세일 산을 중심으로 즉, 사해 동남부에서 에시온게벨에 이르는 세일 산맥의 서쪽 광야, 즉 아라바 광야 지역으로 (북쪽은 왕의 대로, 서쪽에는 홍해 길, 동쪽은 세일 산맥) 대부분이 에돔 영역에 속함, 가장 높은 산은 (아론이 죽은) 호르산임...
======신명기 구조===== 제1설교(1:1-4:44)==:과거 회고1, 2 제2설교(4:44-12:1) ==(십계명 해석) 12:1-27:1(율법 해석) 제3설교(27:1-31:1) ==(축복과 저주) (리더십 교체) ------- ==첫번 째 설교 첫 설교에서는 이스라엘이 시내(호렙) 산에서부터 모압 평지에 이를 때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한다. 출애굽 첫 세대가 약속의 땅 문턱까지 갔지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광야를 유랑하다가 죽은 사실, 다음 세대가 요단 동편 족속들을 평정하고 약속의 땅 바로 앞 모압 평지에 진을 친 일, 세 지파가 요단 동편 땅에 자리 잡은 것까지를 회고한다(민수기의 요약).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간청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두번 째 설교 새 세대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출애굽 첫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실패했다. 다음 세대는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새 세대에게 설명한다. 시내 산에서 만난 하나님은 구름 속 불 가운데 계신 무서운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모세가 40년 동안 하나님을 겪어보니,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식들에게도 끊임없이 가르치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아예 몸에 붙이고 문설주에도 기록하라고 명한다(신 6:4-9). 그리고 순종할 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신 7-11장).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이 율법 모음의 배열순서는 언뜻 보기에 난삽해 보인다. 그런데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십계명의 각 계명과 관련 있는 율법을 묶어서 정리했음을 알 수 있다. 모세가 모든 율법을 십계명의 정신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규정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19-21장에 나오는 살인, 전쟁, 시체에 관한 율법들은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인 것이다. ==세번 째 설교 세 번째 설교는 율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모세의 명령을 담고 있다. 모세는 두 가지 의식을 명령한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돌에 율법을 새길 것과 온 백성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나누어 올라가 율법 어긴 자를 저주하는 의식을 가지라고 명한다. 이스라엘 모든 회중이 함께 신앙을 다짐하는 집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설교의 결론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선택지 중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고 생명을 취할 것인가, 불순종하여 저주 받고 사망에 이를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질문으로 모세는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리더십의 전환 모세는 백성에게 가르친 율법을 기록하여 제사장에게 전한다. 그리고 백성들이 잊지 않도록 안식년마다 백성에게 낭독해주라고 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노래를 지어 가르치라고 하신다.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회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다. 이 모든 일을 마친 후 모세는 느보 산에 올라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본 다음 조상에게로 돌아간다. =========
===서론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다바르...Q의입의 호흡하심이신 그리스도(로고스)]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신명기 말씀의 근거가 되었던 <출애굽 1세대들에게 들려주었던>말씀 선포가 38년 전에 신1:1절에 등장하는 장소에서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아라바 광야, 바란(바란 광야의 한 지역으로 추정), 하세롯을 꼭지 삼아 상호 연결한 삼각형 지대)),, 이 때의 말씀을 근거로 모세는 요단 동편의 모압 땅에서 2세대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선포한 것이요, 이것이 저자에 의해 신명기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출애굽 후 1년 반 정도가 지났을 때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바란 광야)로 가는 중간에 모세는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율법)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38년을 더 방황한 후 (출애굽 2세대) 때가 되어 요단 동편을 점령하였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압 땅에서 38년 전에 1세대에게 선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2세대에게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율법)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다바르...성경은 Q의 영의 감동 충만케 하심 받은 이들로(이들은 주님의 이름-성품-영광을 참되게 알고 있었다!!), <주님이 직접, 신실하신 Q의 입으로> 말씀하여 깨닫게 하사 듣는 말씀 그대로 전하며 가르치게 하시고, 또한 <전해 들은 Q의 말씀> 그것을<그 말씀과 깨닫게 하시는 바를, 주께 확인 받고> 기록하게 하심]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모세가 수령을 세우다 9. ○그 때에 내가 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