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민25.광야 여정에서 가장 큰 실패_음행과 우상숭배 범죄..핵심은 Q사랑하기=첫째 가는, 첫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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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5장....[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342. 너 시험을 당해]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354. 주를 앙모하는 자]

......민25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허물[곧 타락]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이 허물은 두가지 추한 것들, 즉 음행과 우상숭배로 구성된다.

......음행은 Q이 창조하신 <참되게 사는, 거듭난> 사람의 인격(이것은 더러운 오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영<인격의 자리..오직 Q의 생명과 본성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로 채워지기를 바라심>을 더럽힘이니!!)을 손상시켜 파멸케 하며, 우상 숭배는 Q의 신성한 인격을 모독한다.

......음행과 우상 숭배는 병행되는데 음행이 있는 곳에 우상 숭배가 있다.로마 천주교가 한 예로서 음행의 여자, 이세벨에 비유됨을 본다(계2:20). 

더 들어가 보면 천주교 안에 이미 <혼합적, 이교 신앙적> 우상 숭배가 들어 있으니, 예를 든다면 성 요사밧이란 성인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 추적해 들어가 보면 그 자신이 석가임이 드러난다.(펨버-대 예언들, Great Prophecies)

......비록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였음에도 줄구하고!!, 발람은 발락의 상담자와 고문으로서, <모압왕 발락은 결코 이스라엘을 정치-군사적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다고 보았기에>, 악한 의도를 가지고(민31:16)  Q의 거룩-완전-아름다운 백성들을 어떻게 간교하게 넘어지게 할 수 있을지를 ((곧 이스라엘의 모든 적극적 특징들의 기반인 여호와 신앙의 절대적 순결성을 더럽히고, (성공자라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자칫 취할 수 있는 연약한 부분<경계가 느슨해짐과 피로감, 자만에 빠져들기 쉬우며 주께 묻지 않는 경향성 있음>을 주목하고!!...<마치 뱀이 동산에서 그리 유혹했듯이...간교함과 유혹함으로 <조금의 틈을 보이면, 손-어깨-몸통이 들어가겠다 요구하는 법...자기 연민-색욕을 부추겨 ) 바알브올 숭배에 초청-참여케 함으로써...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백성과 참여하지 않은 백성들로 서로 원수 만드는 자중지란 통해 스스로 약화시켜 파멸에 이르게 할지를)) 발락에게 가르쳤고 바로 그것이 발락에 의해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여기서 바알 숭배에 빠져든 자마다 결국!! 모두 음행자였다), 먼저 싯딤 현장에 성전 창기들인 모압 여자들로 하여금 (음행의 신) 바알브올 숭배 축제를 열게 하고 그 자리에 그 여자들을 이스라엘 두령들에게 보내어 그들과 함께 백성들을 데리고 오도록 <먼저 그 여자들의 나긋나긋한 육적 매력을 발산하여 끌리도록 만들고!!> 한 다음, 함께 먹고 마시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한 다음 슬며시 바알브올에게 함께 경배하고 제사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고 동침하자고 꾀는 순서로 행했으리라..그것은 육신의 정욕<나태-느슨함-방탕과 색정-온갖 중독 탐닉>에 빠져들게 하는 사탄 체계로서의 세상이 흔히 쓰곤 하는 부추김의 전형이었다.  (모름지기  Q 경외하는 이마다 진정 깨어 있어서!! <요셉처럼> 도망쳐야 하리라.. 창기의 회칠한 무덤, 즉  "빼어난 미모" 밑에 숨어 있는 뱀독 가진 해골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리라...겉 보기에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유혹적인 춤을 추며 나긋나긋함으로 간장을 녹이는 그네들의 축제에 있어서 음행은 일상적 관행이자 다산과 풍성한 수확을 위한 것임을 넌지시 말하여, 여호와 신앙의 절대적 순결성의 방어기제를 상대화 하도록 정욕적 충동을 촉발시켜) 음행에 자연스레 빠져들도록 유도하고, 특별히 이스라엘 두령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층의 미디안 여인들을 배정해서 음행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이로써.."백성들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민25:1-3.상)"이 발생되고 있었다))

.....이는 다름 아니라 Q의 짝 된 이스라엘에게 간음케 하는 행위였음을, 그것은 니골라당의 행위임을 분명히 주님은 지적하고 계신다... 계2: 6, 14-17에서는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더 이상 죄와 허물은 없으며, 회개할 필요가 없다 ] 이라 주장함으로써 구원의 완성 개념을 상대화 함((...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더 이상 죄와 허물은 없으며, 회개할 필요가 없다 ] .세속에 물들어도 구원과 더 이상 상관 없고 육신의 정욕을 억제할 필요도 없고, 먹고 마시며 즐겨도 영만 순수하면 된다는 것)).

.....니골라는, 1.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자.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 중 하나(행 6:5). 2. 기독교 초기의 교회들에 의해 니골라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음. 3.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삼음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오용하여 육신의 죄악을 조장하게 하였음(갈 5:13).

......니골라당의 사상, 1. 인간의 육신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2. 인간의 영혼은 육신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3. 인간의 구원에 육체는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육체가 짓는 죄는 정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4.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서 취소되지 않는 것이요, 더 이상 죄와 허물은 없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 .즉, 구원 이후 세속에 물들어도 구원과 더 이상 상관 없고 육신의 정욕을 억제할 필요도 없고, 먹고 마시며 즐겨도 영만 순수하면 된다는 것))....((......믿는 그 순간(구원받은 시간)을 강조하며, 그 이후로는 어떠한 죄도 없이 의로운 상태에 들어갔으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인간이라면 더 이상 죄의식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 또한 기도는 감사와 간구의 기도만 해야지, 회개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까지 나아감))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계 2:6...오직 네게((에베소 교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니골라 당의 사상(헬라철학적 영과 육의 이원론에 따라 <거듭난 이를 미혹/유혹 하여> 육체의 방종 허용하고 부추기는 실행]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2:15-17...*15,이와 같이 네게도((버가모 교회)) 니골라 당의 교훈[= 니코스-라오스, 성직자-평신도 차별 체계(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즉 기득권 방어 고수 수단)]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두 구절을 찬찬히 살펴보건데, 두 구절은 의도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육적 방종 행위 허용 주장에 대해> 정도를 벗어나 지나치게 경계하고 개인적 경건과 진리 수호를 더 많이 강조한 결과로 긍휼과 경건 사이의 불균형 상태임을 드러내심, 성령 따라 처음 사랑(Q 사랑과 형제 사랑...Q의 긍휼과 은혜를 받은 자마다 온유와 긍휼로 동시에 그분의 탁월한/능가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살기를 잃어버리기 까지에 이르렀음( +한편,  버가모 교회는 ((천주교 교권의.... 심지어 오늘날 기독교에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슬며시 그러한 교권 쳬계가 들어 와 퍼져 있다)) 교권 체계와 성직자-평신도 계급 분류 차별 제도 시행이 여기에 추가 되어 더욱 탐욕적 세속화-이권 추구-세맘몬 숭배가 가속되었음....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머리로부터 생명 공급과 말씀을 받아 몸 전체에 나누어 주는, 생명 공급을 위한 마디(영적!! 직분...은사)과 지체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몸에 있어서는, 본래 차별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상호 존중과 사랑으로 하나 됨의, 생명 안에 한 형제 자매인, 비가시적 유기적 생명 공동체이다!!]  중요한 핵심은 분명히 일치한다. 그것은 세속성이고 속물적 근성으로, 그들의 중심에는 존귀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욕망이 가득한 바, 그들은 물질 숭배자들이며 방탕한 삶을 이끄는 자들이다.

......사도 바울이 쓴, 모두 6장으로 된 에베소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엡 6:24). 이것을 볼 때 그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주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었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았고(엡 3:17),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졌으며(엡 4:2),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붙잡고(15절),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어 가고 있었고(16절), 사랑 안에서 행했고(엡 5: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30년 후에, 그들은 “행위”와 “수고”와 “인내”에 있어서 … 게다가 이에 더하여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서는 주님께 강한 책망을 받았다. 

.......만약 우리의 일이 주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주님에 대한 사랑의 교통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 모든 일은 우리와 주님 사이에 있는 사랑의 이야기여야 한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훗날 가장 근본적인 이 항목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또한 주님의 사랑스러운 신부임을 생각한다면(엡 5:24-33, 계 21:2, 9-10), 둘 사이의 사랑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일 아침 우리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주님과 교통을 가져야 하고, 사랑의 느낌이 있어야 하며, 그분에 대한 신혼 때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렘 2:2). 

더욱이 우리는 그분 앞에서 새로운 헌신이 있어야 하며, 새로운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 “주여 저는 제가 처음 당신을 사랑한 것같이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과 저는 신혼 때와 같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예레미야서에서 말한 신혼 때의 사랑이다. 

에베소에 보낸 서신에서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하여 그들과 주님 사이에 그 신혼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똑 같다.  

당신은 그분께 “주여,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어떠신지요? 저는 당신이 기뻐하는 바를 알기 원합니다. 당신의 명령이 아닌 곧 당신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명령이 아닌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원합니다. 주여,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주님의 종은 주님의 연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만약 아가서에서 나오는 술람미의 위치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1) 워치만 니는 에스겔 44장 11절과 15-16절을 근거로, <성전을 섬기는가 하나님을 섬기는가?>라는 글을 쓰고 있다.

..... 본문에서 11절은 성전 안에서 희생제물을 잡는 섬김을 말하고, 15-16절은 나 곧 여호와 자신을 섬기는 것을 말씀하는데, 후자는 오직 사독의 후손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처음 사랑은 위에서 “여호와 자신을 섬기는 것”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2) 위 에스겔 44장에서의 두 종류의 섬김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일”을 하는 노예가 밭에서 돌아와서 “내 저녁부터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너는 허리에 띠를 동여매고 시중을 들어라”는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는 신약에서의 사례(눅 17:7-8)와 유사하다. ..

.....복음 전파와 목양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것은 그분의 참 사랑,<사랑하는!!> 짝, 신부-아내> 됨이 더 중요하다!!) 즉, 주인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또 (사랑하기 까닭에) 그런 섬김에 기꺼이 자기를 내어드림이 맞고, 섬김 후에도 주께 돌아오면!! 더 사랑함 안으로 나아감이 자연스러운 귀결이어야 한다.

3) 안디옥 교회에서 “그들이 주님을 섬기며(minister to the Lord) 금식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들을 불러 일을 시키셨다”(행 13:1-2). ..

.....이 말씀 역시 주님을 위하여(for...그분 위해 어떤 일을 함)가 아니라 주님 자신을 섬김(to...사랑하는 주님께 자신을 온통 드림)을 말씀하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맡겨진 사역은 이러한 친밀한 섬김의 결과임을 알게 한다.

----요약하면,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첫째가는 사랑)은 “주님 앞에 서서” “주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주님을 위한 어떤 것이 <사랑하는 주님의 술람미로서 그분을 사랑함>, 이보다 우선이 될 때 우리는 주님 자신으로부터 “떨어진 것”이다(계 2:5, 갈 5:4). 

따라서 우리는 매일 아침 그분께 나아가 그분께서 책망하시는 것(against, 카타, 2596)을 자백하고, 말씀을 통해 그분을 생명 나무로 먹음으로써(계 2:7), 그와 연합되는 “처음 행위(첫째가는 행위)”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묵상만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하는 어떤 영적인 봉사가 주님 자신보다 더 우리 존재를 사로잡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가 참된 위기요 즉시 회개해야 할 순간임을 깊이 깨닫게 한다. 에베소 교회가 불의한 일로 주님께 책망받은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뀐 상태 때문에 책망받은 것은 우리에게 큰 경고가 되고 있다.

......오 주님, 당신을 위한 봉사가 주님 자신을 사랑하기를 대치하지 않도록  일깨워 주소서.  오직 당신을 사랑함으로 당신과  더 깊이 연합하는 일이 최 우선의 관심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브올에서 생긴 일....[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 생의 자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와 하나 되어 내주하고 계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올인하는 삶 살 것인가.....신혼 때의 사랑, 일편단심-일심으로 주님만 사랑하는 술람미, <한 곳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비둘기의 단일한 시선 가지신> 성령의 그 사랑에 꽂혀 일평생 바로 그렇게 그분의 사랑의 열정으로 사는> 술람미의 사랑을 기억해 내도록 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회복하라

1.  이스라엘이 싯딤에(=아벨 싯딤...요단 건너편에 여리고가 위치함...여기는 싯딤 골짜기의 싯딤이 아니다.)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아벨" : 목초지,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의 목장이라는 의미...비옥한 지역 : 득의양양해서는 결코 안됨 <선 줄로 아는자 넘어질까 조심하라!!> 비느하스처럼 깨어 있도록 하자!!

[고전10:11-14...*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참고>횃불언약 배경...싯딤 골짜기 전투] 사해동남방 5왕국 (롯이 피했던 소알 성 외에는 소돔-고모라와 함께 아드마-스보임은 함께 불로 멸절 심판 받았음) : 세렛시내와 사해가 마주치는 인근의 소알(벨라), 그 위로 고모라와 소돔, 소알 밑으로는 아드마, 스보임이 위치하며 아드마-스보임 서쪽에 싯딤<역청> 골짜기가 위치...본래 엘람왕 그돌라오멜에게 12년간 복속되었던 사해 동남부 연안5개국이 동맹하여 반란 일으켰고 여기에서 엘람왕은 시날-엘라살-고임의 세 왕들과 연합하여 동방 4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싯딤 골짜기에서 접전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동방4개국 연합군은 이 때 먼저 가나안 6족속들을, 북에서부터 르바-수스-엠-호리-아말렉-아모리 족속까지 쳐서 승리 거둔 후였는데, 싯딤골짜기에서도 승리 거두게 된 것)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브올의 바알, :::음행의 신 바알)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바알브올'(Baal Peh_ore)은 '브올 지방의 바알'이라는 뜻. '바알'은 모압 지방 사람들이 섬기는 농경의 신이며 다산 신인데, 바알 숭배자들은 풍성한 생산을 기원하는 신앙을 가지고 바알 신을 섬겼다. 그들은 바알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 의식을 행했는데 그 의식은 바알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고 절을 하고 음행을 했다. 그 음행은 우상숭배자들과 신전 여인들과의 혼음이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거기에 가담한)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사사들,judges]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부화뇌동한 백성들까지도 포함하여 샅샅이 색출해 내고) 죽이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수령들의 교수형 집행, 바알브올에 부속된 백성 색출과 사형 집행, 동시에 백성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는 염병으로 급사하는 자들로 인해, 회개하며)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영생하시는 분, 말씀 그대로 이루시는 분, 시공의 제약이 없으신 분, 그분의 뜻과 장적하신 경륜 그대로 이루시는 분으로서, 주님이 보시는 바를 그의 입에 넣어주셔서 말하게 하신 바] 발람의 예언들에 있어서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관점은 전적으로 매우 적극적-긍정적이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질적 상황과 상태는 (극히 일부 사람들 외에는 거의 전부가) 극히 소극적-부정적이었고, 사실상 이스라엘 자녀들은 [마치 나실인으로 살아감의, 잔정 <영의 가난함>의 필요와 체험적 추구라고는 전혀 조금도 없었던...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각 아래 살아가는 영적 자녀로서의 본분은 망각한 채, 여전히,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내심 추구하는, 이중적 마음의!!] 음행과 우상 숭배의 백성들이었음을 드러내신다.

.....타락한 아담의 본성 안에서 우리는 음행과 우상 숭배의 백성들이요, 아담의 본성에 따르면 우리는 죽임 당하고 태양을 향해 목매달리기에만 적합하다...(보라, 발람과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보여주실 때에는 그토록 자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Q은 질투하시며, 그분의 질투는 우리를 향하신다. 그분의 타오르는 질투 속에서 그분은 아담의 본성에 속한 그 어떤 것도 묵과하거나 남겨두거나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그러므로 이의 해결과 처리 위해,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마다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승천 안에서 거듭남의 새 창조인 피조물인 성도마다, 하나 되사 내주하시는 그 영께 완전히 적셔짐-점유됨-충만-변화-그 영으로 넘쳐 절대적으로 주를 위해 살아감 통해 그리스도의 어떠함에 이르도록까지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동시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모든 거리낌 회개하며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보혈을 의지함 안에서 주께 대한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순결의 산 믿음으로 살도록 하신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

15.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더라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미디안인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

18.  이는 그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지휘관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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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의 사망은 40년 1월, 아론이 죽은 것은 40년 5월 1일(민 33:38절). 그리고 모세가 신명기의 설교를 시작한 것은 40년 11월 1일.... 그 사이의 시간은 6개월이고 그 사이에 [싯딤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임.. 발락이 발람을 매수하기 위해 사신들을 보내고 다시 가고 하는데 걸린 시간이 20일씩 네 번(두 번 왕복). 그러면 어림잡아 3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 또 와서 세 번 자리를 옮기며 저주를 획책하는데 걸린 시간도 1개월은 경과되었을 것...따라서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은 모세가 신명기 설교를 하기 두 달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봐야 한다...그러나 넓게 잡아도 아론의 죽음 이후 모압 평지에 머물렀던 시간이 불과 6개월인데, 그 사이에 소위 바알브올 음행 사건이 일어난 것.

.... 따라서 이 사건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마지막 훈련의 광야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기에 징계가 무척 가혹하였다. 

어쩌면 바알브올 사건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을 유혹의 전초전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31장18절 말씀을 보면 “이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지휘관의 달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핵심은 두 가지로서,. 하나는 속임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혹했다는 것이다. 고스비는 '간교한 자'라는 뜻인데,  미디안 5 개 종족 연합체 왕국, 그 중에서 수르 족의 공주인 이 여인은 이름 그대로 육체를 미끼로 하여 선민이요 지파 리더의 아들인 시므리를 배교케 하였다.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고, 수르는 한 조상을 중심으로 하여 다섯 갈래로 갈라진 미디안 왕국들 중 하나의 왕(31:8)이었다. 그런데 일국의 공주였던 그의 딸 고스비가 이스라엘인과의 음행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후일 미디안 왕들의 처절한 심판을 고려해 볼 때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려는 수르의 의도적 획책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고 했고 뒤에는 미디안 여자 고스비의 이름이 언급되고 미디안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사건은 처음부터 발락과 한패 였던 미디안이 공모한 사건이며 본질은 속임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속임수의 진정한 배후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발람이었다. 민수기 31:8절과 16절 말씀은 발람은 자기 곳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고 언급하는바, 발락과 미디안 족속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음행하도록 속임수를 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불의의 삯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배후는 발람과 발락, 그리고 미디안 족장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을 하나로 묶으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는 이 땅은 모든 유혹의 세력들인 것이요 이런 유혹의 세력들은 시대를 달리하며 얼굴을 바꾸었을 뿐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각양각색의 얼굴을 하고 우리 각자에게 가장 연약한 부분을 틈타서 우리를 넘어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알브올 사건의 핵심은 발람의 유혹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선을 돌려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징계하신 수위가 아주 강하였기에 이만 사천 명이 염병으로 죽었다. 시체가 강을 이루고 산을 이룬 것이다.

..... 이 사건의 핵심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이 유혹에 넘어가 음행했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음행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축제에 참여하고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절을 했고 거기서 성전 창기들과 음행하고 그 우상에게 절한 음식을 먹고 거기서 성전 창기들과 음행한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격에 있는 시므리라는 사람은 백주 대낮에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행동이 말해주는 것은 그 당시 분위기가 이런 상황을 허용할 만했다는 것이니, 영적으로 완전히 나타해지고 음행이 보편화된 것이었다. --이미 광야 생활 마지막 해이고, 이제 곧 가나안 정복이 시작될 시점인데,. 그런데 이들은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했다. 모압과 미디안 여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음행하고 범죄한 것은 발람의 책임이 아니라, 근본적 측면으로 볼 때 오로지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책임인 것이었다.

.....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는 이 사건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보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모세에게 명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밝은 대낮에 그들의 두령을, 재판관들에게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잡아 태양을 향해 목을 매달으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세가 재판관들에게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와 음행의 연고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백성 가운데 염병이 돌았고, 그 염병으로 인해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다(9절). 

---한창 염병이 돌고 있을 때 백성들은 회막문 앞에서 울었으니,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시므온 지파에 속한 종족의 한 족장인 시므리가 미디안 종족의 한 두령의 딸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 행음을 했고,. 이 모습을 본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장막에 따라가 두 남녀를 배를 꿰뚫어 죽였으니, 그 사건을 고스비 사건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고스비 사건 직후에 백성 가운데 돌던 염병이 그쳤다. 모압 여인들과 행음 사건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온 백성이 울 때에도 풀리지 않았는데 비느하스의 행동으로 인해 풀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라고 말씀히셨다. 마치 향로를 들고 염병의 현장으로 달렸던 아론이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 대해 언약하기를 그 후손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의분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미디안<5왕국> 정복 전쟁에도 비느하스로 하여금 성소 기물을 가지고 1만2천명의 균사들과 함께 나아가게 하시고, 를 거두게 하여 주고 계셨다!!))

비느하스가 엘르아살을 이어 대제사장이 되고 그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정신, 죄에 대하여 미워하는 정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신은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성전 봉사자들로 선택받은 이유와 같은 것이다. 성막 봉사를 전담할 지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레위 지파가 선택된 것은 야곱의 축복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창49:7), 직접적인 계기는 레위 지파가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사람이 교수형을 당하고 염병으로 죽어갔으니... 이 사건을 바알브올 사건이라고 한다. 브올에 있는 바알을 숭배했다는 의미에서 따온 말이다.

.....고스비 사건 직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미디안을 정복하라고 명하셨다.(31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것은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모압과 연합하여 바알브올 사건을 주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범죄 하게 했고 고스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범죄 하게 했기 때문이었다(18절). 그리고 31장에서 비디안 정복이 이루어질 때 발람도 그 전투에서 죽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한편 바알브올 사건을 일으킨 모압 족속에 대해서는 정복 명령이 없는데.... 모압 족속에게 긍휼을 베푼 것은 본문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마 하나님이 에돔 족속에 대하심과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후손이기 때문에 형제 족속이라는 것인데, 에돔 족속이 손해를 주었지만 같은 이삭의 아들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게 한 것이었다. 모압 족속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다. 롯이 소돔성에서 멸망하게 되었을 때도 아브라함이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하여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모압 족속이 정복당하는 것을 이스라엘이 기뻐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모압 족속에게 긍휼을 베푼 것으로 여기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은혜가 영원한 것은 아니니, 지속적으로 범죄한 백성에게 심판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바알브올 사건과 고스비 사건이 발람의 책임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고 계신다. 유혹하는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를 미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유혹들에 날마다 이겨나가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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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ile Israel remained at Shittim, the people began to play the harlot with the daughters of Moab.

2.  For they invited the people to the sacrifices of their gods, and the people ate and bowed down to their gods.

3.  So Israel joined themselves to Baal of Peor, and the LORD was angry against Israel.

4.  And the LORD said to Moses, "Take all the leaders of the people and execute them in broad daylight before the LORD, so that the fierce anger of the LORD may turn away from Israel."

5.  So Moses said to the judges of Israel, "Each of you slay his men who have joined themselves to Baal of Peor."

6.  Then behold, one of the sons of Israel came and brought to his relatives a Midianite woman, in the sight of Moses and in the sight of all the congregation of the sons of Israel, while they were weeping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7.  When Phinehas the son of Eleazar, the son of Aaron the priest, saw it, he arose from the midst of the congregation, and took a spear in his hand;

8.  and he went after the man of Israel into the tent, and pierced both of them through, the man of Israel and the woman, through the body. So the plague on the sons of Israel was checked.

9.  And those who died by the plague were 240000.

10.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11.  "Phinehas the son of Eleazar, the son of Aaron the priest, has turned away My wrath from the sons of Israel, in that he was jealous with My jealousy among them, so that I did not destroy the sons of Israel in My jealousy.

12.  "Therefore say, 'Behold, I give him My covenant of peace;

13.  and it shall be for him and his descendants after him, a covenant of a perpetual priesthood, because he was jealous for his God, and made atonement for the sons of Israel. '"

14.  Now the name of the slain man of Israel who was slain with the Midianite woman, was Zimri the son of Salu, a leader of a father's household among the Simeonites.

15.  And the name of the Midianite woman who was slain was Cozbi the daughter of Zur, who was head of the people of a father's household in Midian.

16.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17.  "Be hostile to the Midianites and strike them; 

18.  for they have been hostile to you with their tricks, with which they have deceived you in the affair of Peor, and in the affair of Cozbi, the daughter of the leader of Midian, their sister who was slain on the day of the plague because of Pe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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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5장 (개요)

발람의 저주를 피한 이스라엘은 그러나 발람의 조언으로 인해 커다란 손상과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 

발람은 발락을 떠나기 전에 그에게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시킬 수 있는 계책을 일러 준 것 같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는 발람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모압의 딸들로 술수를 써서 이스라엘이 스스로 멸망케 할지어다.” 

인간을 가장 잘 매혹하는 것은 그 자신의 욕정이다. 본 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1. 이스라엘의 죄. 그들은 모압의 딸들의 꾐에 빠져 음행과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다(1-3).

2.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들의 손에 의해서(4, 5),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 주시는 형벌을 받았다(9).

3. 경건한 열심에 불타오른 비느하스가 음행의 죄를 범한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였다(6, 8, 14, 15).

4.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의 열심을 칭찬하셨다(10-13).

5. 최초의 여인과 그녀를 꾀었던 뱀 사이에 적대 관계를 설정해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과 그들을 유혹한 미디안 사람들 사이에 영원한 적대 관계가 설정되었다(16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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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여인들과의 음행(민 25:1-5)

Ⅰ. 이스라엘은 모압과 미디안 사람의 딸들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음행과 함께 영적인 음행의 죄도 범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기” 때문이다(3절). 

전부는 아닐지라도, 또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 올가미에 걸렸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를 고찰해 보자.

1. 발락은 발람의 조언을 듣고,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았다”(계 2:14). 

우리를 죄짓게 하는 자는 우리의 최대 원수다. 왜냐하면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발락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과 싸웠다면, 이스라엘은 용감하게 능히 그들을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락이 그들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내어 우상 숭배의 잔치로 그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뿌리째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정복당했다. 발락의 칼에 쓰러지지 않는 자들이 이제 그가 보낸 매춘부에 의해 쓰러지게 되었다. 

우리는 엄한 얼굴을 하고 달려드는 폭력보다도 웃으면서 달려드는 매혹술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모압의 딸들이 그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정복했다. 

하와가 최초로 범죄한 이래, 여자들은 비록 약하기는 해도, 많은 사람의 올가미가 되었다. 그렇다, 

많은 강한 남자들이 이방 여인의 입술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잠 7:26) 솔로몬이 증명해 주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올무가 되고 그물이 되었던 것이다(전 7:26).

3. 음행과 우상 숭배는 언제나 함께 있다. 

음행하는 자들은 여자들과 음탕한 데 빠지므로 양심이 마비되고 타락하여 거기에 만족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 앞에 쉽사리 절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곧 음행과 우상 숭배는 언제나 같이 있는 것이므로 바알브올의 예배에는 언제나 부정한 것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정숙의 울타리를 무너뜨린 자들은 경건의 기반으로도 이를 붙잡아 맬 수 없으며, 육체의 정욕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힌 자들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데 대해서 하등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4.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그 제물을 바친,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먹음으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0:20). 

그것은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시 106:28). 

그것은 우상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영웅이 죽었을 때 그 주검이 신격화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5.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그 죄가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다. 

그 곳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요,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곳이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잔치에서 풍성한 식탁을 대할 터인데, 그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써 지금까지 그들이 충실히 믿어 오던 하나님을 극단으로 배반하고, 은혜를 잊어버렸으며 속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Ⅱ. 이러한 죄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노엽게 여기셨다. 

이스라엘의 음행은 발람의 모든 사술로도 이룩하지 못했던 일,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시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하나님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다”(사 63:10). 

이처럼 많은 사람, 아니 이처럼 많은 왕이 죄를 범함으로 그 죄가 국가적인 죄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온 회중에게 진노하셨다.

1. 염병이 즉시 발생했다. 

우리는 염병이 그쳤다는 말(8절)과 염병으로 인해 죽은 자의 숫자(9절)는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염병의 시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3절)는 말씀에 “재앙(염병)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시 106:29)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염병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죄에 대해 알맞은 형벌이다. 

한 사람이 걸리면 또 다른 사람이 뒤따라 걸린다. 염병은 물론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자에게 단단히 달라붙는다. 그 자는 즉시 그 금지된 열락의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물으셨던 것같이 언제나 그런 죄인들에게 염병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그 말씀은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17).

2. 백성들의 두령들을 잡아 재판자들의 손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왜냐하면 오직 그 길만이 염병을 물리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4절). “백성들의 두령들을 잡으라”고 했다(백성들 중의 일부가 이스라엘 진영을 떠나 우상 숭배를 위해 모압 땅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나머지 백성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희생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우선 재판자들이 그들을 칼로 치고,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그들의 지도자가 그들의 음행과 우상 숭배 때문에 그들의 지위에 상관없이 준엄한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죄의 무서움과 그들을 항한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죄를 범한 지도자들이 심판의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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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느하스의 열심(민 25:6-15)

여기에서는 악과 정의 사이의 대담하고도 단호한 투쟁의 기록이 눈에 띈다. 물론 정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Ⅰ.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었던 시므리의 악덕은 가장 뻔뻔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악덕은 모세와 많은 이스라엘의 선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의 한 창녀를 공공연히 데리고 올 정도였다(그 창녀는 그 자신처럼 높은 신분을 가진, 미디안 백성 중 한 종족의 두령의 딸이었다). 

시므리는 그 창녀와 함께 모압의 신들을 예배하러 간 것만으로도 이미 지나친 처사인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 일이 끝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기 위해 그 창녀를 이스라엘 진영으로까지 데리고 왔다. 

그는 그 창녀가 자기의 친구인 것과 어느 이스라엘의 딸들보다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을 공적으로 시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데리고 공공연히 “막에 들어갔다”(8절). 

막이라는 말은 곧 음탕한 짓을 하기 좋은 그런 은밀한 방이나 장소를 말한다. 

이처럼 그는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사 3:9),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있었다. 이 모든 환경은 그의 죄를 더욱 현저하게 만들었으며, 더욱 더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1. 그의 행동은 민족적인 정의에 대해 모욕하는 것이며 반항하는 것이었다. 

재판자들은 죄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간섭을 받지 않으며, 감히 자기에게 손을 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두려움을 내버렸으며,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라고 명하신 이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롬 13:3, 4).

2. 그의 행동은 민족적인 신앙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이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성실한 회중들은 “회막 문에서 울었다”(25:6). 그것은 그러한 염병이 시작되게 한 그 죄를 탄식하는 울음이었다. 

그들은 근심하며 엄숙한 집회를 열고, 입구와 제단 사이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나가기를 간청하며 울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시므리가 창녀를 데리고 그들을 희롱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죄를 없애려는 데 반해, 자기는 그것을 더욱 채우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Ⅱ. 비느하스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 

그는 시므리의 오만한 행동을 보고, 거룩한 의분을 느껴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창 혹은 칼을 들고 그 음행 죄를 범하는 자들을 좇아 그들의 천막에 들어가, 그들을 함께 꿰뚫어 놓았다(7, 8절). 

비느하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는 쉽다. 그가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의 언약을 받은 것을 보아서, 그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로 바알브올에 부속된 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이스라엘 재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은 죄를 미워하는 데 너무 열심이었던 나머지, 죄인들을 사사로이 죽였다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 변명의 구실을 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런 사람들은 마땅히 정해진 법의 판가름을 받아야 한다. 

공적인 행정관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는 자”이다(롬 13:4). 

어떤 사사로운 개인도 그의 직무를 대신 행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면에서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열심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1. 하나님은 염병을 즉시로 그치게 하셨다(8절). 

백성들의 눈물과 기도는 이런 정의의 행동이 실현되기까지는 아무런 효력을 가져오지 못했다. 

만일 행정관이 죄를 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공의는 아간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수 7:13).

2.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명예를 높여 주셨다. 

비느하스는 재판자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뿐인데도, 그가 죄에 대해서 특별히 열심을 내어 반항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위해 일했다. 

또한 다른 사사들이 시므리의 높은 지위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는 감히 용기를 내어 이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히 그의 행위를 기쁘게 여기셨으며,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정하셨다”(시 106:31).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때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만일 시므리의 친척들이 그 때문에 그에게 원한을 품으며, 그의 친구들이 그가 너무 성급하게 서둘렀다고 비난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해 주시는데 그것들이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좋은 일에는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한다.

(1) 이 일로 말미암아 비느하스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 나라 최고의 애국자요 또 최고의 벗으로 지칭되었다. 

그가 “나의 노를 돌이켜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기” 때문이다(11절).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하심을 기쁘게 나타내신 것은 그만큼 그의 진노를 돌이키게 하는 데 수고한 사람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백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리고 우리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악인의 악을 끊는” 데 공헌할 수 있다(시 7:9).

(2) 제사장 직분이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상속되도록 언약이 내려졌다. 

그것은 전부터 그에게 주어지기로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더욱 확증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위로와 명예까지 곁들여졌다. 이것은 그의 경건한 열심에 대한 보상이었다(12, 13절). 

여기서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이라고 일컬어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약성경이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며, “영원히 온전케 되신”(히 7:28)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까지 연결될 만큼 완전하고 영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평화의 언약”을 통해 주어졌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곧 장수와 부귀를 약속하는 일반적인 언약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제사장의 언약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도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었다는 말씀이 있고(말 2:5),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진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봉사에 대해서 어떤 보상이 주어졌는가 보자. 

정의를 실천함으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다”(13절). 

그러므로 그와 그의 후손들은 제사를 통해서 속죄를 가져오게 하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언약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종들은 다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것이 아니라,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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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사람에 대한 복수(민 25:16-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염병으로 벌하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들의 잘못을 채찍으로 고쳐 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안 사람들이 염병으로 죽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저주를 그들에게 내리셨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채찍으로 그들을 벌하시지 않고, 원수의 칼로 그들을 벌하셨다.

Ⅰ. 모세는 비록 온유한 사람이며 복수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17절). 

우리도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비록 우리의 오른 눈이며 또 오른손이든지 간에 그렇게 해야 한다(마 5:29, 30).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작용해서 이룩되는 거룩한 분노와 보복이다(고후 2:7).

Ⅱ. 이러한 보복을 꾸미도록 하는 이유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했기” 때문이다(18절).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은 육체의 가시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음행으로 꾀어 잘못을 저지르게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들과 싸운 아말렉 사람들처럼(출 17:14), 길이 기억되고 준엄하게 징벌되어야 하는 잘못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짓게 하는 사탄의 일을 행하는 자들을 길이 기억하시며, 더욱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는 자들을 더 잘 기억하신다. 

이와 관련된 명령이 더 많이 주어진 것을 다음에(31:2) 찾아볼 수 있다.

***호크마***

..브돌의 복술가 발람은 발락의 요청에 따라 무려 4차에 걸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했으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해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22-24장).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의 외부 세력에 의한 파괴 공작이 아닌 내부의 분란과 타락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부러 일으킴으로써 끝내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려는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서 이스라엘을 성적으로 타락시키는 동시에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스라엘이  싯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모압 여자들의 유혹을 받아 음행하여, 음란한 제사에 깊이  빠져든 사실과 그에 해한 하나님의 징계 명령(1-5절)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의분에 못이겨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장면(6-9절)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비느하스의 후손에게 대대로 제사장 직분을 맡기실 것을 약속하신 장면(10-13절)    처형당한  대표적인 두 인물 소개(14,15절) 및  하나님께서 미디안 정복을 명하신  장면(16-18절)  등이 열거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타락을 주도한 자들은  모압이었으며  그들과 동맹한 미디안 사람들이 그 일에 협조하였다. 그러므로 훗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미디안 다섯 왕과 그들의 남자들, 그리고 발람을 죽이게 하심으로(31:1,7,8)  하나님과 그 백성을 해치는 무리들의 최후가 어떠함을 보이셨다.

  이처럼 본장은 비록 거룩한 백성이라 허더라도 항상 범죄의 가능성이 있으며,  육체적 범죄와 영적인 범죄는 긴밀한 상관 관게가 있다는 사실과 타락한 자와  타락케  한 자는 모두 하나님의 준엄하신 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특히 본장의 주관심사는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이방인들의 부패한  행위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이 가르친 바 영육간의 악행을 그대로 수용하여 범죄하고 만 선민  이스라엘의 죄악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타락한 문화와 세상을  질타하기에 앞서 그러한 악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바로 우리 성도들의 허물을 더 크고 무겁게 취급하실 것이다.

   1. 바알브올에 부속된 자들(25:1-5)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던 선민 이스라엘을 발락과 발람의 저주로부터 온전히 지켜주셨다(22-24장).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이스라엘은 그러한 하나님을 떠나 음란과 우상 숭배의 죄악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즉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 싯딤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발람의 꾀에  의해(31:16)  그들 중 얼마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며 난잡한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게  된다(1,2절).

이에 여호와께서는 극도의 분노를 발하시고(3절) 음란 의식에 참여한 두령들을 공개적으로 목매달게 하셨다(4,5절). 또한 일반 백성들에게는 치명적인 염병으로 징벌하셨다(8,9절).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있으면 대망의 약속의 땅을 밟게 될 것인데도  쾌락의 잔치에 미혹됨으로써 결국 멸망의 원인이 간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다(고전10:8). 실로 그들은 음란 행위를 통해 육체적인 간음과, 우상 숭배를 통해 영적  간음을 동시에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육체와 영혼은 불가분의 관계로서,  바로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전인격의 순결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 음란에 대한 성경적 견해. 성경에서는 종종 음란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죄악이라 가르치고 있다(고전 6:15,18). 따라서 늘  음행은  피하라고 경고한다. 실로 죄악 중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대항하여 직접 싸워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이 음란의 죄처럼 아예 피하는 것이 최상책인 것도 있다. 왜냐하면 타락한  본성을 소유한 인간은 그 누구도 음행의 유혹에 자신할 만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性)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매우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었지만 인간이 타락하므로서 거룩한 성 의식(히 13:4)을 죄로 말미암는 육체의 정욕으로(롬 13:14) 남용하기 시작했고(창 6:1-3)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락한 성 의지를 지니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간파하고 음란의 죄를 떨쳐버리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결혼을 추천하였다(고전 7:5-10). 이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이다(창 2:18,21-25;마 19:6;딤전 4:3). 물론 독신으로 살면서 성령을  따라 유체의 소욕을 제어하고(롬 8:4-6;벧전 2:11),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롬 8:13) 음란의 죄를 피할 수도 있다. 이 둘은 각자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선택할 일이다.

  한편 신약 성경에서 음란을 철저히 경계하는 이유는 성도의 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며(고전 6:19),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엡 1:23)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고전 6:15). 따라서 음란으로 몸을 더럽히는  행위는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악행이며(고전 3:16,17) 그리스도의 지체를 창기의 지체로 변절 시키는 범죄로 간주된다(고전 6:15). 이런 사실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조되는 바로써 거기서는 특별히 육체적 음란과 영적 간음을 긴밀히  연관시켜  음란의 죄를 곧 하나님을 배신하는 반역의 죄로 취급하고 있다(겔  16:26;23:8,27;호  4;12).

이처럼 신 구약을 통틀어 음란의 죄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이며, 그분의 거룩성을 더럽히고 거룩한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신성 모독(神性冒瀆)의 추한 죄로서 반드시  피해야만 할 악행이라 단정되고 있다.

  오늘의 문명과 문화를 부패시키는 가장 핵심적 요소가 이 음란의 문제, 곧  성(sex)의 타락이라는 사실을 우리 성도들은 직시하여야 한다. 이 음란은 처음은 꿀처럼 달지만 나중은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만다(잠 5:2-6). 따라서 성도들은 이 땅의  찰나적이고 쾌락적인 성 문화에 대해 경계하며 하나님이 본래 세워 주신 남녀간의 사랑의 법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것인지를 건전한 가정 생활과 경건한 삶을 통하여 타락한 세상 앞에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다<창 19:1-11 강해, 성 범죄의 제 유형>.

  * 공개적으로 처형된 두령들. 하나님께서는 바알브올의 범죄에 연루된 자들 중에 일반 백성들과 지도자급 인사인 두령들을 서로 다른 처형 방법으로 처단하셨다. 즉 일반 백성들은 염병으로 죽어가게 하셨으나(8,9절) 두령들은 공중 앞에 끌어내어  공개적으로 목매달아 죽게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두령들에 대한  징벌을  가중시킴으로써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이셨다.

  사실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에 비해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더 준엄한  경고 및 계시를 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범죄는 일반 백성의  그것보다 더 무겁게 다뤄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야고보 선생은  "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고 경고한  바  있다.

  더불어 지도자 된 두령이 더 큰 형벌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곧 일반 백성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두령은 자기 뿐  아니라  타인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한 위험성으로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고 경고하셨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더욱 자신을 근신하며 항상 깨어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출32:21-24 강해, 선민의 지도자로서 미흡했던 아론>.

   2. 비느하스의 공의로운 열심(25:6-18)

  이스라엘은 발람의 술책으로 인해 음행과 바알브올에 복속되었고,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극열히 분노하시며 그들을 징벌하라 엄명하셨다(1-5절). 본문은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 수행의 일환으로 열심을 다해 범죄한 자들을 척결(剔決)하는 공의에 찬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사건을 엮어 가고 있다.

  즉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음행 죄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백성 중 하나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진 안으로 들어오는 사악한 범죄가 기술되어 있다(6절). 그 두 남녀의 죄악의 정도가 너무 지나쳤기에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14,15절). 이에 제사장 가문의 비느하스가 공의의 칼을 뽑아 그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으며, 그 결과로 수많은 백성의 생명을 앗아간 염병을 그치게 할 수 있었다(7-9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거룩한 열심을 인정하시고 그의 후손들에게 영영히 제사장 직임을 맡기시는  영광을  수여하셨다(10-13절).

곁들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려는 사악한 모압인의 계획에 동조한 미디안을 전멸시키도록 명하셨다(16-18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비록 많은 백성이 당신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에  심취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비느하스의 의로운 열심으로 인해 당신의 분노를  진정시키시고 이스라엘을 향해 선한 경륜을 계속적으로 펼쳐가셨다. 이로써 한 인간의 의로운  행동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머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주는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셨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 사건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났다(롬 5:18). 또한 본문은 인류의 역사와 안녕(安寧)은 수많은  죄악의  무리에 의해 진행되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엮어져 간다는 진리를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다.

  *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당신만을 섬기지 않고 우상에게 눈길을 돌릴 때 극렬히 질투하신다. 이런 질투는 역설적인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는 만큼 그 질투하시는 농도는 짙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질투는 당신의 이중적 속성 곧 사랑과 공의를 함축한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이중적 속성은  그분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 잠언 기자는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잠 20:28)고 표현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공의가 빠져버린 사랑의 실현을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위의 보좌는 공의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기 때문이다(잠언 16:12). 만약 하나님께서  공의를 굽게 하여 죄악을 묵과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와 타협하는  분으로서  그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즉 그 같은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죽음의 길로 치닫게 내버려 두는 방임(放任)이라 할 수 밖에 없으니 누가 하나님을 가리켜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겠는가?

  아뭏든 본문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당신의 백성들에 대해 공의를 집행하시는  거룩한 모습을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11절)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질투'란 죄에 대한 당신의 공의를 나타내시는 표현의 한 수단이며, 또한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극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출 20:5).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에 찬 하나님의 질투에는 반드시 그  대상인 인간의 뼈저린 아픔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되 그 인간의 허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물으신다. 이것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질투심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폐단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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