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27장 [447.태산을넘어험곡에가도] [487.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생생한 산 믿음으로 주와 하나된 이마다 마땅히 그렇게 여길 바)) 그리스도의 영, 곧 그 영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의 양심 곧, 말씀의 물과 생명의 보혈로 새로와진 영의 양심은 [유일무이한 신령한 그 산 돌이신 주께 나아와 주님 자신으로 새겨지고 조성되는] 신령한 산 돌들로 변화 받고 <하나님의 집 건축에 참여자들이자 그 재료들이 되었음을 알아야 함..> ====== 진흙(먼지)/도자기 -->시몬(짱돌)/베드로(반석)-->[열과 압력, 곧 시련과 고난을 [의와 영광의 소망 바라보며 일절 견딤과 오래참음으로](변화, 곧 성화-영화-구속 받은 부활의 몸(신령한 산 돌들이 됨 = Q의 아들들의 참 명분 얻음...구주 십자가 보혈 믿고 주와 함께 죽고-장사되고 부활한 바, 거듭난 이마다 [세상은 양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Q의 참생명 소유자들로서 Q의 참자녀들이니. <"아버지께서 내게주신 형제-자매"라 주께서 칭하고 계심> 살아있는 돌Living Stone이요, 모퉁이돌/관석이신 주님의 지체들로서 하늘의 시온성,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구성요소가 됨.. ==== [벧전2:4,5...(개역개정)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새번역)*4.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공동번역)*4.주님께로 가까이 오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을 받은 귀한 돌입니다. *5.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4 Come to Him [the risen Lord] as to a living Stone which men rejected and threw away, but which is choice and precious in the sight of God. 5 You [believers], like living stones, are [b]being built up into a spiritual house for a holy and dedicated priesthood, to offer spiritual sacrifices [that are] acceptable and pleasing to God through Jesus Christ..]
***스불론은 '여호와께서 베풀어 주신바 후한 선물로<사람이 보기에는 덤으로 얹어주신 것 같아서..값싸게 여기기 쉬운!!> 태어난 인생'이라는 뜻. 야곱의 첫 번째 부인인 레아가 낳은, 여섯 번째 아들 창35:23 .....레아가 그를 낳고 너무나 감격해서 이름을 짓기를 스불론이라고 붙였다. [창30: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다산의 기쁨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거함, 동거)이라 하였으며]...이처럼 우리 인생은 누구나 굉장히 '후한 선물'로 보내어진 존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몰라요. '후한 선물이다'.....별로 동감을 안되나보다, 몇 분만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데 우리 믿는이 각자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면 절대 안 되요. 굉장히 정말정말 귀한 사람들이예요. 상상할 수 없는 비싼 값-예수님짜리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왜냐하면 참생명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참생명은 그 어떤 값으로 살수가 없으니까요. 스불론은 평범하게 태어났고 <레아가 보기에는 후한 보너스!!, 단지 플러스 알파!> 평범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의 평범한 삶은 Q이 완전하시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섭리가운데 보냄 바 되어 있었다. 얼마나 철저한 섭리가운데 있었냐 ... 야곱이 이 예언을 하고 나서 450년 후에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서 땅을 분배받는데...놀라운 것은!! 그 땅을 분배받을 때 제비뽑기를 하게 되는데 450년전에 했던 이 예언의 말씀 바로 그대로 그 장소가 그의 소유로 선택되었다.. [창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근데 이 스불론 지경이 어디냐면 갈릴리부터 지중해까지에 이른다. (처음엔 <분배되어 실제로 머물렀던 곳은>갈릴리호수 서북부 인근이었다...그러나, 갈릴리바다에서 <물결 풍파 다룸을>배운 사람은 지중해까지, 그 곳에서 또 전세계 방방곡곡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깐 팔레스틴의 중부지역. 광활한 지역, 다시 말해서 450년전에 야곱이 죽으면서 예언했는데 놀랍게 평범한 스불론의 삶이 그대로 예언으로 그 후손들에게 이루어진 것...출애굽시에 스불론 지파는 장정만 5만7천4백명 이었는데(민수기 1:31) 40년 뒤에 이제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민수기 26:27) 보니까 6만5백명으로 늘어났다....그래서 6번째 아들이었지만 모세의 유언에는 4번째로 나오게 되며, "스불론은 해상 무역을 하여 번성하고 잇사갈은 집에 재산을 쌓는다...'는 예언을 주고 계심... 스불론은 해상 무역을 한다.. 이 스불론이 그 대외무역을 많이 해가지고 그 척박한 생산품이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 다른 지파들에게 해외에 아주 좋은 물품들을 풍요롭게 후한 선물로 배달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동시에 해외선교의 교두보이자 전진기지가 되고 있음))
===돌 위에 기록한 율법 ....모든 율법의 완성은 오직 새 영-새 마음- 새로운 육신인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의 자각으로 주님 영접-붙좇음-하나됨 그 안에서 가능하게 하신 바, 사랑의 계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함의 하나됨으로 살 때(참생명 그분께 믿어들어가 <풍성부요충만 그 자체이신 분을,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깨어 있어 주 이름 부르며, 영의 호흡인 기도로 여쭈고 들어 깨달으며 기쁨으로 아뢰고 찬양하고 이끌리며>교통하며 생생한 산 믿음으로, 사랑겨운 순종-동행함으로 걸을 때)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고 계심...오직 주께 마음 중심을 열어드리고, 그분이 공급하고 부어 넘치게 하시는 바로 그분의 사랑 -기쁨-평강 안에 전심으로 온통 적셔지고 점유되고 충만함으로 거하기를!!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에발 산에서 선포한 저주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아의 자녀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디나] [라헬의 자녀들...요셉, 베냐민]// [실바의 자녀들...갓, 아셀] [빌하의 자녀들...단, 납달리]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1. Then Moses and the elders of Israel charged the people, saying, "Keep all the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you today. 2. "So it shall be on the day when you shall cross the Jordan to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that you shall set up for yourself large stones, and coat them with lime 3. and write on them all the words of this law, when you cross over, in order that you may enter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s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s, promised you. 4. "So it shall be when you cross the Jordan, you shall set up on Mount Ebal, these stones, as I am commanding you today, and you shall coat them with lime. 5. "Moreover, you shall build there an altar to the LORD your God, an altar of stones; you shall not wield an iron [tool] on them. 6. "You shall build the altar of the LORD your God of uncut stones; and you shall offer on it burnt offerings to the LORD your God; 7. and you shall sacrifice peace offerings and eat there, and you shall rejoice before the LORD your God. 8. "And you shall write on the stones all the words of this law very distinctly." 9. Then Moses and the Levitical priests spoke to all Israel, saying, " Be silent and listen, O Israel! This day you have become a people for the LORD your God. 10. "You shall therefore obey the LORD your God, and do His commandments and His statutes which I command you today." 11. Moses also charged the people on that day, saying, 12. "When you cross the Jordan, these shall stand on Mount Gerizim to bless the people: Simeon, Levi, Judah, Issachar, Joseph, and Benjamin. 13. "And for the curse, these shall stand on Mount Ebal: Reuben, Gad, Asher, Zebulun, Dan, and Naphtali. 14. "The Levites shall then answer and say to all the men of Israel with a loud voice, 15. 'Cursed is the man who makes an idol or a molten image, an abomination to the LORD, the work of the hands of the craftsman, and sets [ it] up in secret.' And all the people shall answer and say, 'Amen.' 16. 'Cursed is he who dishonors his father or mother.'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17. 'Cursed is he who moves his neighbor's boundary mark.'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18. 'Cursed is he who misleads a blind [person] on the road.'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19. 'Cursed is he who distorts the justice due an alien, orphan, and widow.'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0. 'Cursed is he who lies with his father's wife, because he has uncovered his father's skirt.'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1. 'Cursed is he who lies with any animal.'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2. 'Cursed is he who lies with his sister, the daughter of his father or of his mother.'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3. 'Cursed is he who lies with his mother-in-law.'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4. 'Cursed is he who strikes his neighbor in secret.'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5. 'Cursed is he who accepts a bribe to strike down an innocent person.'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26. 'Cursed is he who does not confirm the words of this law by doing them.'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 신명기 27장 (개요) 모세는 저들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나 그들 상호간의 의무를 백성 앞에 자세하게 제시했다. 그것도 총괄적인 실례나 세부적인 실례를 열거해 가면서 보여 주었다. 또한 저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26장의 마지막에서는 저들에게 계명과 언약의 의무를 지키라고 분부했고, 본 장에서는 외형적 방법에 관해 규명해 준다. 1. 그런 방법들은 저들이 율법을 생소한 일처럼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 기억을 돕기 위한 것이다. 저들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돌 위에 기록해야 했다(1-10). 2. 저들이 소홀한 일처럼 율법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저들의 감정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율법의 상벌인 축복과 저주를 온 이스라엘이 듣는 데서 엄숙히 선포하고, 백성들은 거기에 답하여 “아멘” 해야 했다(11-26). 만약 이같이 엄숙한 의식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저들을 하나님의 율법의 놀라우심으로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밖의 어떤 것으로도 저들을 감동시킬 수 없는 것이다. --------- 율법을 기록하라(신 27:1-10) 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일반적인 분부가 내려졌다. 저들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계명을 안다는 것 자체는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율법에 주어진 것은, 1. 강력한 권위로 명령된 것이다. “모세”는 각 지파의 지도자들인,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이 명령을 내리고(1절), 또다시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고했다(9절). 따라서 이 명령은 여수룬의 군왕 격이었던 모세와 그를 보좌하는 영적 지도자 및 현세적 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내렸던 것이다. 이것은 저들의 신앙공동체에 그렇게 수선을 피운 자가 늙어서 다 죽어 가는 모세 한 사람이나 종교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거기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레위인 제사장들의 단독적인 처사라고 백성들이 생각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존귀와 권세를 받은 자들로서, 모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생존해 있으면서, 이 세상에서 그의 대리인으로 있을 자들인 고로 “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것을” 명했던 것이다. 모세는 자기가 차지하던 영광 중 일부를 장로들에게 일임하고, 이 계명을 친히 그들과 공동으로 전달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바울 사도가 그의 서신에서 실루아노나 디모데와 함께 함을 나타낸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타인들과 이해 관계를 가지거나 그들을 자기 권세하에 두고 있는 자들은 그들 중에서 신앙을 진작시키고 장려하는 일에 그 이해 관계와 권세를 사용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비록 한 국가의 최고의 권력 기관이 그런 목적을 위해 매우 훌륭한 율법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하급 행정관들이나 사역자들이나 가장들이 자기들의 처소에서 그 직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다. 2. 아주 간곡하게 명령된 것이다. 저들은 백성들에게 극히 열성적으로 이 율법을 강조했다(9, 10절).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그것은 가장 고도의 주의와 조심을 요하며,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저들의 특권과 영광을 고한다.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주 여호와께서 너를 자기 소유로 인정하시고 이제 그 분이 오래 전에 네 하나님으로서 약속하셨던 바(창 17:7, 8) 가나안 땅을 너로 소유케 하려고 하신다. 만약 하나님이 때가 이르러서도 그것을 행하지 못하셨다면, 네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하셨을 터이었다(히 11:16). 이제 너는 영원히 그 분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라.” 특권은 의무 이행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백성은 마땅히 저들의 하나님께 지배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Ⅱ. 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대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아주 엄숙히 기록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것은 이 율법에 내포되어 있는 몇 가지 단서와 조건들하에서, 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그것을 소유하게 됐다는 징표로서 단 한 번 행해야 했다. 시내 산에서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언약의 인준식이 엄숙하게 베풀어졌던 바, 제단이 열두 기둥과 함께 세워졌고 언약의 책이 만들어졌다(출 24:4). 여기에서 지정된 의식은 그와 유사한 엄숙한 제전이었던 것이다. 1. 그들은 “이 율법의 말씀을” 기록해 둘 기념비를 세워야만 했다. (1) 기념비 그 자체는 그 위에 회칠을 하고 다듬지 않은 거친 돌로서 평범한 것이었다. 즉 닦아 연마한 대리석이나 설화 석고는 안 되었고, 또 놋쇠 판도 안 되었으며, 석회를 칠한 평범한 돌이어야 했다(2절). 호기심을 가진 자들이 상찬(賞讚)하도록 이 명령은 반복되며(4절), 또 그것을 기록하되 아주 정교하게 할 것이 아니라 달려가는 자라도 그것을 읽을 수 있도록(합 2:2) 아주 명백히 기록하라는 명령도 내려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기술로 꾸미거나 인간의 지혜로 짜낸 매혹적인 말로써 장식할 필요가 없다. (2) 그 비에 기명하는 일은 아주 중대한 일이었으니,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이란 표현이 3절과 8절에서 중복되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단지 신명기 26장 17, 18절에서 언급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으로만 생각한다. 마치 라반과 야곱이 아무렇게나 던져 묻은 돌무더기를 언약의 증거물로 삼고 그 위에서 화목의 표시로 함께 먹었으며(창 31:46, 47), 또 여호수아가 세웠던 돌처럼(수 24:26) 이 돌무더기를 세워 증거를 삼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자들은 27장에 나오는 저주의 언약들이 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에발 산에 세워졌기 때문에(4절) 더욱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또 신명기 전체나 혹은 최소한 12장부터 26장 끝까지의 규례와 법도가 이 기념비에 적혀 있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몇몇 학자들처럼), 법궤 속에 간직되었던 은밀한 기록의 믿을 만한 복사판으로서 십계명만 이 비문에 적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방대한 양의 비문을 그 모든 쪽에 다 기록할 만큼 그 돌무더기가 컸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저들은 이것을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기록해야 했다. 모세는 “네가 들어가거든 기록하라”(3절), 즉 “너는 편안한 마음과 성공과 정착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들어가라. 그렇지 않으면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 그것을 네 가나안 입경의 조건으로 기록하고, 그것 외에 다른 조건에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라. 가나안은 약속으로 주어진 땅이니, 이것은 순종함으로 지켜야 할지니라”고 이른다. 2. 저들은 또한 제단을 쌓아야 했다. 석회 위에 쓰여진 율법의 말씀들로써 하나님이 저들에게 “말씀하셨고”, 저희는 제단과 그 위에 바친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저들 사이의 교제가 유지되었다. 말씀과 기도는 동행해야만 한다. 비록 저들이 장막에 있는 제단 이외에는 자의대로 어떤 제단도 쌓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나, 하나님의 명으로 특별한 경우에는 가했다. 이 경우와 비슷하게는 엘리야가 열두 개의 거친 돌로 임시 제단을 쌓았던 일이 있으며, 그는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 언약으로 돌이키게 했던 것이다(왕상 18:31, 32). (1) 이 제단은 돌로 쌓아야 했는데, 저들이 들에서 아무렇게나 주울 수 있는 돌이어야 했고, 바위에서 새로 깎은 것이어서는 안 되었다. 또 인위적으로 모나게 다듬은 것은 더더구나 불가했다. 즉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지니라”(5절). 우리의 제단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라서(단 2:34, 35)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건축자의 버린 돌”이셨으나(시 118:22),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아들여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 것이다. (2) 번제와 화목제가 이 제단 위에서 드려져야 했으니(6, 7절), 이로써 저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총을 얻기 위함이었다.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 곳에는 제단도 그 가까이 세워져야 했다. 이는 만약 속죄를 이루어 주는 위대한 희생 제물이 없다면, 우리가 범법 의식(意識)을 가지는 것만으로써는 율법이 우리에게 아무런 위안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제단은 에발 산 위에 세워졌는데, 거기서 각 지파들은 그 저주들에 응답하여 “아멘” 하며 서 있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갈 3:13). 구약성경에는 율법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는 저주도 곁들여 있으니, 만약 신약에서(구약과 같이 합본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늘 변치 않는 위로를 가져다 주는 제단을 그 율법 곁에 세워 주지 않았다면, 우리를 공포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할 만한 저주들인 것이다. (3) 그들은 그 곳에서 먹으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해야” 했다(7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했다. ① 그들은 그 언약에 동의를 표시했다. 왜냐하면 언약에 관계하는 당사자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김으로써 그 언약을 인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소작인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식탁인 그 제단에 참여했던 것이다. 저들은 그런 것을 인정하고 또 이 좋은 땅을 소유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토지세를 바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예비된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② 저들은 그 언약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것은 그들이 제단을 세우게 되었을 때, 곧 율법에 대한 하나의 구제 조항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그 규례를 가르치시며”,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약속의 자녀”로 인정을 받은 것은 저희에 대한 은총인 동시에 자비의 영원한 표징이었다. 이는 비록 이 의식이 거행될 당시에 가나안 전체가 그들의 수중에 완전 장악되지는 못하고 있었을지언정 그들이 기뻐할 만한 이유가 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거룩하심 가운데서 말씀하셨으니, “내가 뛰놀리라. 길르앗도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라(시 108:7, 8). 모두가 내 것이로다.” -------- 에발 산에서 선포된 저주(신 27:11-26) “모든 사람이 보고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율법이 기록됐을 때는 그 상벌 조항도 공포되어야 했는데, 저들이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의 엄숙성을 보다 더 고조시키기 위해 이에 대한 찬성을 신중히 선포해야 했다. 이것은 이미 저들에게 명령된 것이지만(11:29, 30), 여기서는 다소 갑작스레 시작되는 감이 있다(12절). 가나안에는 나중에 에브라임의 분깃(여호수아의 지파)으로 됐던 지역, 즉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인접해 있고 그 사이에 골짜기가 있는 그런 지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두 마주보는 산허리에 여섯 지파는 이쪽 산, 그리고 다른 여섯 지파는 저쪽 산으로 갈라서 전 지파가 정렬해 있었으니, 각 산기슭과 골짜기에 있는 저들이 너무나 가까이 서서 그들 사이에 있는 제사장의 말이 양 쪽 산기슭 곁에 있는 자에게 다 들릴 정도였다. 이 때 여기서 잠잠하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명했으며, 제사장들 중 한 사람이 혹은 아마 더 많은 제사장들이 서로 약간 떨어져서 이 다음에 나오는 저주들 중 하나를 큰 소리로 외치면, 에발 산 기슭과 중턱에 있는 모든 백성은 (더 멀리 떨어져 서 있던 자들은 가까이 서 있어서 그 소리가 들리는 자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아멘” 하고 응답했다. 그러고 나면 반대로 “이러이러한 일을 행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축복이 선포되었고, 그리심 산 기슭과 중턱에 서 있던 자들은 “아멘” 하고 응답했던 것이다. 이것은 저희를 율법의 축복과 저주, 약속과 위협으로 감동시키지 않을 수 없었으며, 저들을 모든 백성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저희 스스로가 적용하도록 가르치기도 했다. Ⅰ. 전체적으로 단 한 번 행하고 반복하지 않되 후손에게까지 전해질 이 의식에 관해 지켜야 할 일. 1. 하나님께서는, 만약 저들 스스로에게 일임해 놓는다면 야기될지도 모를 논쟁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서야 할 것과 어느 지파는 에발 산에 서야 할 것을 명하셨다(12, 13절). 축복하기 위해 지명된 여섯 지파들은 모든 자유하는 여인들의 자손이었으니, 이는 소망이 그런 자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갈 4:31). 여기에서 레위인은 다른 남은 자들 가운데 두도록 했다. 이는 사역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축복과 저주를 그들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과 믿음으로 그것에 “아멘” 하고 외칠 것을 가르치고자 함이다. 2. 축복에 아멘으로 응답할 지파들에 대해서는 저들이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서서”라고 일렀으되, 다른 한 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소유로 택하셨던 이 백성 중 하나라도 저주 아래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양, 백성이란 말이 없이 “저주하기 위하여 서고”라고 되어 있다. 또는 이 표현의 상이한 양식은, 아마도 한 복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개괄적으로 선포된 것은 단 하나, 축복 뿐이었을 것이며, “만약 그들이 순종만 한다면” 늘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축복에는 그리심 산에 섰던 지파들이 “아멘” 하고 응답을 해야 했다. “오! 이스라엘아! 너는 복되도다. 그리고 늘 네가 그러하기를 바라노라”라고. 그러나 그 후에는 저주의 문구가 일반적 법규의 예외 조항처럼 등장한다. 우리는 “예외는 법칙을 확증해 준다”(exceptio firmat regulam)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은 축복받은 백성이지만, 본문에 언급된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특정 개인이 그들 중에 있다면 축복에 참여하거나 분깃을 얻는 일이 저들에게는 돌아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 주시기를 기꺼워하시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누구라도 저주 아래 있게 될 경우에 그것은 그의 자업자득으로서 그 자신의 머리 위에 돌아갈 것이었다. 3.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 즉 그 목적을 위해 임명된 자들은 축복과 아울러 저주를 선포하게 되어 있었다. 저들은 축복하도록 규정되었고(10:8), 제사장들은 이를 매일 행했던 것이다(민 6:23). 그러나 “저들은 귀중한 자와 사악한 자를 구별해야만 되었다.” 그들은 무분별하게 그 축복을 해서는 안 되었고, 축복받을 권리가 없는 자들 스스로가 무리들 틈에 낌으로써 축복에 참여하려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이를 선고해야 했다. 사역자들은 복음의 위로하심과 더불어 율법의 무서움도 설교해야 하며, 축복의 소망으로써 회중을 그들의 의무로 이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저주의 임박함을 전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의무를 지키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4. 저주는 여기에 명백히 표현되어 있지만, 축복은 그렇지 않다. 율법 아래 있는 한은 모두가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축복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위해 유보된 영광이었던 것이니, 그것은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롬 8:3)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참된 그리심 산 위에서 행하신 산상수훈에는 축복만이 나온다(마 5:3 이하). 5. 백성들은 매번의 저주마다 “아멘” 하고 외쳐야 했다. 축복에 대한 “아멘”의 의미는 우리가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백성들이 공중 기도에 “아멘”을 말할 것을 장려하는 격언이 있으니, 그것은 곧 “누구든지 축복해 주는 자에게 “아멘”으로 응답하는 자는 축복하는 자와 똑같으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저들이 어떻게 저주에 “아멘” 할 수 있었던 것일까? (1) 그것은 그 저주들의 진실성에 대한 저들의 신앙 고백이었다. 이는 이들 저주 및 그와 유사한 저주들이 어린아이와 바보들이나 놀라게 할 도깨비놀음이 아니라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으로 선포한 것이며, 그중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 그것은 이 저주의 공평무사함에 대한 승인이었다. 저들이 “아멘” 했을 때는, “그것이 그렇게 될 것은 확실하나이다”라고 실제로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공정하나이다” 하는 것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실족하여 저주 아래 놓이기에 족한 자다. (3) 그것은 “만일 우리가 언제든지 그런 사악한 행위를 하는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소서”라는 그들 스스로에 대한 저주로서, 그런 저주가 임할 사악한 행위들과는 일체 관계를 끊으라는 강력한 촉구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좇기”(느 10:29) 위해 저주(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엄숙한 맹세를 나타내는 한 표현법이기도 하다) 속으로 들어간 자들에 대해 읽는다. 그뿐 아니라 (박식한 패트릭 주교가 인용하듯이) 유대인들은 “모든 백성은 이 아멘을 말함으로써 저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도록 서로 묶여졌다. 이로써 각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자기 이웃이 이 율법을 범하지 못하게 방지하고, 범한 자들은 꾸짖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는 저들이 죄를 지음으로 저주를 부를까 두려워해서였다”고 말한다. Ⅱ. 저주가 선언된 특별한 죄악. 1. 제2계명을 범한 죄악이다. 그 제2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해 불타는 칼과 같은 이 말씀이 제일 먼저 발해진다(15절). 우상을 경배하는 자뿐 아니라 우상 숭배자들이 저들의 잡신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물건들을(그런 종류의 것들을) 만들거나 간직하는 자들도 저주를 받는다. 그것이 조각해서 만든 상이거나 주조로 부어 만든 상이거나 물론하고 모두가 매일반이다. 비록 그것을 공공연하게 세워 놓지 않고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다. 또 실제로는 그것을 경배하지 않았거나 예배를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해도, 관심을 갖고 늘 유혹의 대상이 되도록 그것을 보존해 두었던 자들도 마찬가지로 저주의 대상이 된다. 이것을 어기는 자는 사람의 형벌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제5계명을 범한 죄악이다(16절). 부모를 경홀히 여김은 너무나 극악한 죄악이어서, 하나님 자신을 만홀히 여기는 일 바로 다음에 두었던 것이다. 만약 사람이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기 부모를 모욕하면, 그는 재판관의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져야만 했다(출 21:15, 17). 그러나 그 자의 행동으로 그 마음까지 비추어 보는 일은 재판관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것은 심령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게 된 것이다. 자기 부모에 대해 냉소와 무례로 처신하는 자녀들은 저주받을 자들인 것이다. 3. 제8계명을 범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지계표를 옮기는” 부정직한 이웃에게(17절; 신 19:14 참조). (2) 부당한 권고를 하는 자에게. 그가 조언을 의뢰받았을 때, 그것이 그 친구의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그릇 가르쳐 주는 자를 말함이니, 이것이 곧 바른길을 가르쳐 준다는 구실로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것이요, 이것보다 더 야만적이고 배반적인 일은 없다(18절).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계명의 길로부터 유혹해 내어 범죄하도록 꾀는 자는 이 저주가 저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설명하셨던 것이다(마 15:14). (3) 불공평한 재판관에게. 그가 마땅히 보호하고 옹호해야 할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재판관을 이르는 것이다(19절). 이런 약자들은 가난하고 아는 이들이 없으므로(그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고 해서 손해날 것도 없고, 친절을 베푼다 해서 이득될 아무것도 없으므로), 재판관들은 저들의 권리와 형평에 어긋나게 그 반대편 사람을 편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재판관들에게 저주 있으라. 4. 제7계명을 범한 죄악이다. “자매나 계모, 장모”와의 근친상간은 저주받을 범죄다(20, 22, 23절). 이런 죄악들은 그 범한 자로 재판관의 칼날에 직면하게 할 뿐 아니라, 더욱 가공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드러내 놓게 하는 것이며, 수간(獸姦)도 마찬가지다(21절). 5. 제6계명을 범한 죄악이다. 두 가지의 극악한 살인 행위가 여기에 예시된다. (1) 암살이 그 하나이다. 그 이웃에게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주어서 정정당당한 대항자로서 공격을 하지 않고, 그 이웃이 자기를 해치는 자를 보지도 못할 때, 독약이나 혹은 그 외의 것으로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를 이르는 것이다(24절; 시 10:8, 9 참조). 비록 그런 은밀한 살인자들이 발각되지 않고 처벌을 당하지 않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저주가 꼭 그들에게 따를 것이다. (2) 합법이란 미명하에 자행되는 살인이 또 하나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모독이니, 이는 하나님의 법령을 가장 극악무도한 자를 비호하는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는 최악의 악행이니, 그의 생명과 아울러 그의 명예까지도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죄한 자”를 무고하거나, 유죄 판결하거나, 정죄하거나, “죽이려고” 뇌물이나 삯을 받는 자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25절; 시 15:5 참조). 6. 이 의식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 혹은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내리는 총괄적 저주로 끝을 맺는다(26절). 우리가 불순종하여 우리 속에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율법을 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인정하고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시 119:126). 바울 사도는 전통적인 해석을 따라서 이 말씀은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갈 3:10). 이 하나님의 저주의 선언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다른 죄악을 범한 자들은 이런 저주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마지막 저주는 모든 죄악에 다 미치고 있다. 즉 이 저주는 율법이 금하는 바 악을 행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고 있는 바 선을 행치 않는 자에게까지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에 “아멘” 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지”(갈 3:13) 않으셨다면, 우리도 역시 이 저주 아래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꼭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존재들이고, 확실히 그 저주 아래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 ---호크마 ===27:1 모세가...장로들로 더불어...명하여 -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로 제도는 하나님의 뜻을 회중 전체에게 매우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통신 체계이기도 하였다(출 12:21-28). 한편 이러한 장로 제도에 관하여서는(21:1-9 강해,'성경에나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 - 이 말에 대해서는 세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본절 이후에 나오는 모세의 분부 곧 요단 강을 건넌 후 돌에 율법을 새기는 일과 제사를 드리는 일, 그리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일 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Lange). (2) 단지 27, 28장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만을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3) 돌에 율법을 새기는 것(2, 3절)을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하여 '온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Keil, Knobel, Schultz). 이 세 견해 중 어느 것을 택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본서 전체의 정황으로 보아 맨 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27:2 너희가 요단을 건너 -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이스라엘은 아직 모압 평지에 진치고 있었다(1:1, 5;34:1). 따라서 당시 백성들의 눈에 요단 강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초 '홍해'라고 하는 고비를 겪고서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듯이(출 14, 15장), 본절은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또 하나의 고비가 있음을 시사해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 - 이스라엘이 츨애굽한 때는 B.C. 1446년 아빕월(종교력 제 1월, 태양력 3-4월)이다(출 13:4). 그리고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최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는 B.C. 1405년 아빕월(일명 니산월)이다(수 4:19, 20). 따라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했던 기간은 약 40년 가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민 14:33, 34). 한편 여기서 '날'(* , 욤)은 '바로 그날'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때', '즈음', 연후'(창 2:4;민 3:1; 전 12:3) 등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Keil, Pulpit Commentary). 큰 돌들을 세우고 - 율법을 기록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큰 돌들이 많이 세우라는 뜻이다. 오늘날과 같은 책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돌에다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법을기록하여 여러 지방에 세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습관이 성행했었다(수7:26;8:29;24:26, 27; 삼상 7:12; 삼하 18:17).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02년 몰간(M.J. Morgan, 1857-1924,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이 수사(Susa)에서 발굴해 낸 함무라비 법전(Hammurabi's Code)이 있다. 아뭏든 팔레스틴에는 돌이 많았으므로, 그러한 돌비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석회를 바르라 - 이는 글자를 새기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석회(* , 시드)는 내구성(耐久性)이 강하지 못하니 이것을 발라서 만든 돌비는 후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수정된다(Keil, Lange). 아뭏든 돌이나 건축물의 외벽 따위에 석회를 발라 그 위에 각종 문양이나 글을 새기는 기법은 고대 애굽에서 성행하던 양식이었으므로(Hengstenberg),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체류 당시 이 기법(技法)을 배웠을 것이다. ===27:3 율법의 모든 말씀 - '율법의 모든 말씀'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다음 세 견해가 있다. 단순히 본장 15-26절에 언급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만을 가리킨다(Josephus, Masius, Clericus). 신명기 율법을 가리킨다(J. Gerhard, A.Osiander, Vater). 모세 율법 전부를 가리킨다(Keil, W.L. Alexader). 여기서 세번째 견해에 대한 유대 랍비들의 견해를 따르면, 모세 율법의 총 항목수는 613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많은 돌비에 여럿이 기록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것이다. 여하튼 중복된 모세 율법의 모든 조항까지 다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세 율법의 핵심되는 조항 전부를 다 기록했다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Pulpit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 p.431). 그 위에 기록하라 - 이는 혹자들(J.D Michaelis, Rosenm ller)의 주장처럼 돌 위에 먼저 율법을 기록한 후 석회를 바른 것이 아니다. 이는 돌에 먼저 석회를 바른 후 율법을 그 석회 위에 기록한 것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그래야만 글자를 새기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Thomson, Land & Book). 한편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이처럼 돌에다 석회를 바른 후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는 이 의식(儀式)이 지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는 광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이 분명히 임한다는 사실을 가시적(可視的)으로 포고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 의식은 향후 가나안 땅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 돌들 위에 새겨진 율법의 준수 여부에 따라 그 흥망 성쇠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실감있게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가나안 본토를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로서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나안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경에서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출 3:8; 민 13:27; 렘 11:5; 겔 20:6), 이 표현은 가나안의 별칭(別稱)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표현이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 '젖'은 우유나 버터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소나 양 등 가축들에게서 실제로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또한 '꿀'은 가나안의 토산품이 될 정도로 야산과 나무그리고 꽃 등에서 많이 채취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싯 14:8; 삼상 14:25; 대하31:5). 그렇다고 이 표현이 결코 1차적인 자연 조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가나안 땅은 일부 비옥한 지대를 제외하고는, 사실 물이 넉넉하지 못하고 기온차가 심하며 곳곳에 불모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 표현은 그 땅의 언약적 위치를 드러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복스럽고 살기 좋은 땅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임하는 곳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표현은 하늘 가나안, 즉 성도들이 훗날 죽음을 통과하여 영생을 누릴 신천 신지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니 - 이 부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부분이다. 일찍이 B.C. 2,000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었다(창 12:7). 그런데 B.C. 1,400년경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 정복함으로써 (수 12장), 이 약속은 약 600년 만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한편 이러한 당신의 신실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하고 친히 언급하신 적이 있다. ===27:4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 에발 산(Mt. Ebal)은 이스라엘이 저주를 선포하도록 되어 있는 산이다(13절). 그런대 율법을 기록할 돌비와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단(5, 6절)을 이 저주의 표상인 에발 산에 세우도록 한 이유는 아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초래될 저주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며 죄와 저주가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속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Keil). '에발 산'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11:29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사마리아 사본(Samaritan Codex)은 여기 '에발 산'을 '그리심 산'으로 대체시켜 놓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성산(聖山)인 '그리심 산'을 부각시킬 목적에서 자의로 변경시킨 것일 뿐 고대의 여타 모든 히브리 사본에는 '에발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Gesenius, Verschuir). 석회를 바를 것이며 - 2절 주석 참조. ===27:5,6 단 곧 돌단을 쌓되 - 율법을 새긴 돌비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에 대한 상징이라 본다면, 제단을 쌓는 것은 인간이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Matthew Henry).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지니라 -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내 준다. 자연석(自然石) 그대로 제단을 쌓으라는 뜻으로, 이는 곧외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신경을 쓰는 일 없이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함을 교훈해 준다. 철연장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준(準)무기이다. 따라서 그같은 부정한 도구로써 구원의 단이 될 여호와의 거룩한 제단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유사한 규례는 출 20:25에도 나와 있으니 그곳 주석도 참조하라.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번제는 죄의 속죄 및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와 그분께 대한 온전한 헌신, 봉사를 상징하는 제사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먼저 이같은 제사를 드리는 것은, 곧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가나안(7:23-26)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가나안에서의 모든 죄악을 제거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결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 것인을 다짐하는 의미를 지닌다. ===27:7 또 화목제를 드리고 - '화목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과 인간 간의 상호 화목과 친교를 간구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화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먼저 이러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못 의미깊은 일이다. 즉 이는 곧 이스라엘이 그제서라도 광야의 어려움을 딛고서 끝내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을 의미한다(3절). 거기서 먹으며...즐거워하라 - '화목제'(和睦祭)는 번제와 달리 희생물의 기름진 부분만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레 3:3-5), 나머지는 제사장과 경배자가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기쁨을 나누는 제사이다(레 7:15-17, 30-34). 화목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부분을 참조하라. ===27:8 마치 2절의 말씀을 4절에서 다시 확인시키듯, 3절의 말씀을 본절이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명백히 기록할지니라 - 여기서 '명백히'는 '뚜렷하게 새기다'는 뜻의 '바아르'(* )와 '자세히'란 뜻의 '야타브'(* )가 합쳐진 말로, 누구나 알아볼 수있게 뚜렷하게 기록하라는 강조적 의미이다. 이처럼 율법을 기록하라는 말이 3절에이어 재차 그리고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음은 돌비에 새겨진 율법을 백성들이 그대로심비(心碑)에 새겨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Hengstenbery). ===27:9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 1~8절까지의 모세의 지시는 '장로들'(1절)이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였으나, 본절 이하의 전달 사항은 '제사장들'이 맡았음에 유의해야한다. 당시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집전할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10:8;21:5;민 6:23-27). 아마 이러한 까닭에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일에는 제사장들이 동참하게 된 것 같다. 잠잠히 들으라 - '잠잠히'에 해당하는 '사카트'(* )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기 위하여 조용히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모세는 이 말을 하면서 40년간에걸친 이스라엘의 불신앙적 거역사건들을 염두에 둔뜻하다(민11:1-9;12:1-16;16:1-35).즉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방자하고 분요하기 짝이 없었으며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 매우 강퍅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같은 지난 과오를 벗어 버리고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말씀 앞에서 조용히 삼가 겸손해질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자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미 출애굽 초 시내 산에서의 일이었다(출 19:5, 6). 따라서본절은 이제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정식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껏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아 오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26:18,19). ===27:10 여호와의 말씀 - '말씀'(words)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원어는 '다바르'(* )이다(1:1;출 19:7;34:28;수 8:34;시 119:9). 그러나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콜'(* )은 '글'(word)보다는 '소리'(voice)라는 뜻이 강하다(KJV, RSV). 그러므로우리는 본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서 친근히 말쏨하시는 하나님의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복종하여(* , 솨마) - 원뜻은 지식적으로 '알아듣다', '경천하다', '이해하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순종하다'(30:2)란 뜻이 파생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게 해 준다. 명령과 규례 - '명령', '규례', '법도' 등과 같은 말은 대개 두 단어 이상이 한 구절에 동시에 사용되어 뜻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10:13;창 26:5;민 9:3;대하 7:17;스 7:10). 그러나 본절의 두 단어를 굳이 구분한다면, '명령'에 해당하는 '차와'(* )는 십계명과 같이 의무 이행이 강조되는'핵심적인 지시 사항'을 의미한다(5:31). 반면 '규례'에 해당하는 '호크'(* )는수행할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은 '법규'를 의미한다(4:1). ===27:11-13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그곳 세겜 땅 북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기 6지파씩 양편 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를 각기 선포하는 의식인데, 수 8:30-35에서 그대로 실행되었다. 한편, 그리심산과 에발 산이 왜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각각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27:12 요단을 건넌 후에 - 2, 3, 4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네번째 언급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그만큼 요단(Jordan)을 건너는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을 시사해준다. 시므온과...베냐민 - 모두 야곱의 정부인(正婦人)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후손이다(창 29:31-30:24;35:16-18). 그러나 그중 레아의 막내 아들인 스불론의 지파와 서모(庶母) 빌하를 범하였던 장자 르우벤(창 35:22)의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축복하기 위하여 - 야곱의 정부인에게서 난 아들들이 이처럼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맡은 것에 대하여 카일(Keil)은 '적자(嫡子)가 서자(庶子)보다 신분이 높고, 축복이 저주보다 품격이 높은 만큼 적자가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33). 그리심 산 - 사마리아 성읍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벨 엣 투르'(Jebel et Tur)이다. 남북으로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리심 산(Mt. Gerizim)이 축복을 선포하는 산으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27:13 르우벤...납달리 - 전술한 것처럼 르우벤과 스불론 외에는 모두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와 실바의 후손이다(창 29:31-30:34). 르우벤과 스불론이 여기에 속하게 된 이유는 아마 르우벤은 서모 간통 사건으로 인한 장자권 박탈 때문이었을 것이고(창35:22;49:4;대상 5:1), 스불론은 레아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창 35:23)이었을 것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 혹자들은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을 축복받은 지파들로,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을 저주받은 지파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에발 산에 서게 될 지파들 중에도 단, 아셀, 납달리 지파처럼 야곱의 축복을 받은 지파들이 있으며 그리심 산에 서게 된 지파들 중에도 시므온,레위와 같이 야곱의 저주를 받은 지파도 있기 때문이다(창 49:1-27). 따라서 축복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저주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을 각기 상징할 뿐으로 이해함이 좋다. 한편 에발 산(Mt. Ebal)이 특별히 저주를선포하는 장소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27:14 레위 사람 - 여기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약궤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앙 부분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달 받아 양편에 갈라 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레위 제사장'(9절;수 8:33)을 가리킨다(Delitzsch, Lange, Alexander, Wycliffe) 큰 소리로...이르기를 - 혹자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양편 산 중턱에 운집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들릴 수 있었겠는가라는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한 정밀 조사 결과 양쪽 산의 음향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여러 사람이 외칠 경우 충분히 들려진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Stanley, Syria & Palestine;Tristram,Land of Israel ;Hastings, Bonar, E.G. Kraeling). ===27:15 장색 - 각양 물건을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자(craftsman)를 가리킨다. 당시 이들은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로 많은 이익을 보곤 하였다(행 19:24). 가증하니 - 23:18 주석 참조. 은밀히 세우는 자 - 십계명 중 제 2계명(5:8-10;출 20:4-6)을 은밀히 범하는 자를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은밀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사테르'(* )는 '은밀한 장소에'(KJV, in a secret place)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은밀한장소'로 꼽을 만한 곳은 어디이겠는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골방이나 비밀 장소를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는 역시 사람의 마음 속을 꼽아야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자기 마음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다. 모든 백성은...아멘 할지니라 - '아멘'(amen)이란 말은 본래 '확실하다', '신실하다'는 뜻의 '아만'(* )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장이나 대화의 끝에서 사용될 때'과연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보다 자세한내용은 본장 11-26절 강해, '아멘 연구'를 참조하라. ===27:16 경홀히 여기는(* , 칼라) - 원뜻은 '가볍다'로, 곧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비천히 여기는 것(잠 12:9), 절하(切下) 평가하거나 모독을 주는 것(사 16:14), 그리고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이처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하는 짓거리이다(21: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권면하였다. 출 20:12 주석 참조.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아루르) - 기본형은 '아라르'(* )로 '버림을 받다'란 뜻이다. 즉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임을 잘 증거해 준다(Calvin). ===27:17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지계표'(地界標;KJV,landmark;NIV,boundary stone)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나 푯말을 뜻한다(창 31:51,52). 따라서 이러한 지계표를 마음대로 옮기거나 없애 버리는 것은 타인의 재산권에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이다. 한편 성경 뿐 아니라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도 지계표를침해하는 행위를 큰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매우 엄격하게 다스렸다.19:14 주석 참조. ===27: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 고대 근동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풍토(風土)로 인하여 의외로 소경이 많았다. 즉 고온 건조한 기후와 쉴 새 없이 이는 먼지, 그리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및 가난으로 인한 영양 실조 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실명(失明)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러한 소경을 일부러 괴롭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따라서 본절이 의미하려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역본 Living Bible은 본절을 '소경을 이용하여 그 이(利)를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Cursed is he who takes advantage of a blind man)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웃을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아뭏든 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장애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불의한 이(利)를 취하거나 또는 그들을 괴롭히며 실족케 하는 일 따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조항임에는 틀림없다(레 19:14;롬 15:1). 실로 율법은 그러한 약자들의 약점을 악용하는 죄악에 대해서는 보다 혹독한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 레 19:14 주석 참조.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 - 가난하며 약한 자, 그리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구약 시대의 3대 약자들이다(14:29;16:11, 14;24:21;26:12, 13).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억울케 하다'에 해당하는 '나타'(* )는 '비틀다', '굽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으로, 정당한 판결을 내리지 아니하고 힘 있는 자를 두호(斗護)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이미 24:17에서도 엄금했던 바, 실로 하나님께서는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를하수(河水)같이' 흘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암5:24)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7:20 계모와 구합하는 자 - '구합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 )는 성(性) 관계를 갖기 위해 '잠자리를 같이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모'에 해당하는 '에쉐트 아비'(* )는 '아버지의 여자'란 뜻이다. 따라서 비단 이는 계모 뿐 아니라 아버지의 첩과도 성 행위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 영역본 RSV는 이를 '아버지의 여자를 벌거벗겼으니'로, NIV는 '아버지의 침소를 더럽혔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은'그녀는 그의 아버지에게 속하였으니'로 번역하고 있으며, 공동 번역은 '아비의 이불자락을 들치고'로 의역하고 있다. 아뭏든 이처럼 아버지의 침소, 아버지의 여자를 넘보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패역(悖逆)이니, 저주를 면할 길 없다(22:30). 레 18:8 주석참조. ===27:21 짐승과 교합하는 자 - 동성애, 근친 상관 등과 더불어 변태적인 성 행위 중의 하나인 수간(獸姦)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수간자(獸姦者)는 근친 상간자 및 남색자(男色者)와 더불어 땅을 더럽히는 추악한 성범죄자로서 아스라엘 사회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출 22:19;레 20:15, 16). 성경은 결코 생리적인 성적 욕망이나 충동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性)의 창조자로서 하나님께서는 성을 인간들이 누릴 수있는 지극한 기쁨으로 간주하셨다(잠 5:18;전 9:9;요 3:29). 이것은 창조시 아담의 독처(獨處)를 좋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여 준 사실(창2:18, 22)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바로 이 남녀 창조 사건에서도 분명히 예시되었듯이 남녀간의 성적 욕망은 일부 일처의 신성한 결혼 제도에 의해서만 충족되어야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요 비밀이었다. 여기서 '비밀'이라고 한 것은훗날 사도 바울이 설파했듯이 신랑과 신부의 한몸 되는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순결한 일체성'을 상징하고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22:13-30;엡 5:31, 32).따라서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질서가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그리스도와교회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일부 일처의 결혼 제도를 떠난 모든 성(性) 남용은, 더욱이 수간, 근친 상간, 동성애(同性愛) 등 타락한 인간의 어그러진 심성(心性)에기인하고 있는(롬 1:26, 27) 모든 변태적(變態的)인 성행위는 단순한 도덕적 범죄의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죄에까지 이르는 추악한 성범죄 행위인 것이다. 특히 고대 이방의 문란하고 타락한 제사 의식이나 설화 등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수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하등 동물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극악한 소행이므로 거룩한 공동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결단코 용납될수 없었다. 따라서 성경은 일관성 있게 이러한 모든 성범죄를 보다 엄격히, 그리고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는 성(性)의 타락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가나안 족속의 멸절 그리고 로마의 패망 등을 거울삼아 성(性)개방 풍조로 인해 성(性)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심지어 상품화시키는 타락한 세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빛된 자녀답게 고결하고 아름다운 성(性) 윤리관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레 18:23;20:15, 16 주석 참조). ===27:22,23 자매...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누이는 항렬상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이다.따라서 그러한 누이를 범하는 것은 우생학적(優生學的) 폐단은 차치하고라도, 곧 자기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짓이나 마찬가지 행위이므로 저주를 면할 길 없다. 레 18:9주석 참조.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성경은 자신의 장모와 성 관계를 갖는 파렴치한에대하여서는 그들 모두를 반드시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18:17;20:14 주석 참조. ===27:24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 과실치사(過失致死)가 아닌 한, 그 어떠한 살인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정당시킬 수 없다. 특히 암살(暗殺) 행위는 더욱 그러한데,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상대방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하는 도발 행위이기 때문이다. 죄를 은폐하려는 의도하에서 저지르는 계획적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출 20:13;민 35:16-21 주석 참조. ===27: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 살인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 행위는곧 인간의 값어치를 추잡한 뇌물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의 눈을 피해 그같은 죄를 자행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피할 수 없기에 저주를 면할 길 없다. 출 23:7, 8 주석 참조. ===27:26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 사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란 아무도 없다(롬 3: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그리고 성군(聖君) 다윗도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던 죄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짐짓 범죄치 아니하려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창 6:9>. 아멘(* , Amen) - 이 말의 어원(語源)인 '아만'은 본래 어떤 대상을 '지지하다' 혹은 '신임하다'란 뜻이었다. 여기서부터 이 말은 기도나 찬양 및 선언이 종결되어지는 종지부나 끝맺음에서 '진실로 그렇습니다' 또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동의나 소원의 뜻을 가진 '아멘'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아멘'이란 말은 단순한 종결(終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곧 어떤 선포나 찬양 그리고 기도 등을 지지하거나 확인 또는 시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나의삶 속에 적용시키겠다는 결단의 의지(意志)까지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한편 신약 시대에 '아멘'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강조 용법('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헬라어로 '아멘 아멘'이다)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바울 사도에 의해서는 축복과 찬양(Doxology)의 결미어(結尾語)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 서신에서 이 말을 인격화시켜 존재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다(계 3:14). 이 모든 배경하에서 '아멘'을 복창(復唱)하던 일은 유대인들의 습관이 되어 왔으며, 또한 그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기독교 공동체에 전달되어져 오늘날까지이어져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