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6장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4.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7.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
Similitudes, Instructions
1 Like snow in summer and like rain in harvest, So honor is not fitting for a [shortsighted] [a]fool.
2 Like the sparrow in her wandering, like the swallow in her flying, So the curse without cause does not come and alight [on the undeserving].
3 A whip for the horse, a bridle for the donkey, And a rod for the backs of fools [who refuse to learn].
4 Do not answer [nor pretend to agree with the frivolous comments of] a [closed-minded] fool according to his folly, Otherwise you, even you, will be like him.
5 Answer [and correct the erroneous concepts of] a fool according to his folly, Otherwise he will be wise in his own eyes [if he thinks you agree with him].
6 He who sends a message by the hand of a fool Cuts off his own feet (sabotages himself) and drinks the violence [it brings on himself as a consequence].
7 Like the legs which are useless to the lame, So is a proverb in the mouth of a fool [who cannot learn from its wisdom].
8 Like one who [absurdly] binds a stone in a sling [making it impossible to throw], So is he who [absurdly] gives honor to a fool.
9 Like a thorn that goes [without being felt] into the hand of a drunken man, So is a proverb in the mouth of a fool [who remains unaffected by its wisdom].
10 Like a [careless] archer who [shoots arrows wildly and] wounds everyone, So is he who hires a fool or those who [by chance just] pass by.
11 Like a dog that returns to his vomit Is a fool who repeats his foolishness.
12 Do you see a man [who is unteachable and] wise in his own eyes and full of self-conceit? There is more hope for a fool than for him.
13 The lazy person [who is self-indulgent and relies on lame excuses] says, “There is a lion in the road! A lion is in the open square [and if I go outside to work I will be killed]!”
14 As the door turns on its hinges, So does the lazy person on his bed [never getting out of it].
15 The lazy person buries his hand in the dish [losing opportunity after opportunity]; It wearies him to bring it back to his mouth.
16 The lazy person is wiser in his own eyes Than seven [sensible] men who can give a discreet answer.
17 Like one who grabs a dog by the ears [and is likely to be bitten] Is he who, passing by, stops to meddle with a dispute that is none of his business.
18 Like a madman who throws Firebrands, arrows, and death,
19 So is the man who deceives his neighbor (acquaintance, friend) And then says, “Was I not joking?”
20 For lack of wood the fire goes out, And where there is no whisperer [who gossips], contention quiets down.
21 Like charcoal to hot embers and wood to fire, So is a contentious man to kindle strife.
22 The words of a whisperer (gossip) are like dainty morsels [to be greedily eaten]; They go down into the innermost chambers of the body [to be remembered and mused upon].
23 Like a [common] clay vessel covered with the silver dross [making it appear silver when it has no real value] Are burning lips [murmuring manipulative words] and a wicked heart.
24 He who hates, disguises it with his lips, But he stores up deceit in his heart.
25 When he speaks graciously and kindly [to conceal his malice], do not trust him, For seven abominations are in his heart.
26 Though his hatred covers itself with guile and deceit, His malevolence will be revealed openly before the assembly.
27 Whoever digs a pit [for another man’s feet] will fall into it, And he who rolls a stone [up a hill to do mischief], it will come back on him.
28 A lying tongue hates those it wounds and crushes, And a flattering mouth works ruin.
===========
미련한 자의 불명예(잠 26:1)
Ⅰ. 전혀 자격이 없고 부적당한 우매자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기지도 은혜도 갖지 못한 악인이 때로는 백성에게서 군주보다 더 애호를 받으며 갈채와 환호를 받는다. 솔로몬이 살핀 대로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도다"(전 10:6).
Ⅱ. 이런 일은 매우 불합리하며 온당하지 못하다. 그것은 여름에 눈오는 것처럼 모순되며, 자연과 계절의 운행에 큰 혼란이 일어난 것같이 나라의 큰 무질서가 된다. 아니, 그보다 "추수 때에 비오는 것"만치 해롭다. 수확기의 비는 추수하는 일군에게 방해가 되며 이제 막 거둬들일 소산물을 망쳐 놓는다. 악한 자가 권세를 잡으면 흔히 자기 권력을 남용하여 덕을 막고 악을 조장하는데, 이것은 악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의 부족과 악을 혐오할 만한 은혜의 결핍 때문이다.
-------------
까닭없는 저주(잠 26:2)
Ⅰ. 격노의 어리석음.
흥분은 사람으로 하여금 "까닭없는 저주"를 남발하게 만든다. 사람을 오인하거나 사실을 오해하고, 좋은 것을 나쁘다 하거나 악한 것을 선하다고, 선을 행한 사람들을 나쁜 일을 행한 악인이라고 억측하여 저주를 한다. 미련한 자에게 벼슬을 주어 보라. 그러면 그는 옳든 그르든 자기가 싫어하는 모든 자에게 벽력같이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악인이 세도가 당당할 때는 저주나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것을 자기들의 특권인양 착각한다. 그러나 이런 저주는 가장 무력한 악의의 표현이며 자기들의 악함뿐만 아니라 미련함도 나타내는 것이다.
Ⅱ. 결백한 자의 안전.
이유없이 저주받은 자는 맹렬한 성이 난 자에게 저주를 받았든지 엄숙한 파문에 의해 저주를 받았든지 간에, 자기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가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하듯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한 저주도 이와 같이 무력하였다(삼상 17:43). 그런 악담은 참새나 제비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다. 제 둥지로 돌아올 때까지는 그 새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저주도 마침내 그 악담을 발설한 자의 머리 위로 돌아올 것이다.
----------
악인의 말(잠 26:3)
Ⅰ. 악인의 "말"과 "나귀"에 비유되고 있다.
그들은 너무나 짐승과 흡사하여 전혀 이성에 따르지 않으며 너무나 제 멋대로여서 완력과 공포에 의하지 않고서는 다룰 수가 없다. 죄는 이렇게까지 인간을 격하시켜 버렸다. 인간을 짐승 취급해야 할 정도로 미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들나귀 새끼와 같다." 그러나 어떤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이성적 인간이 되는 반면, 또 어떤 자는 죄의 관습으로 인해 강퍅케 되어 말이나 노새처럼(시 32:9) 더욱 더 망난이가 되어간다.
Ⅱ. 그러한 자들을 알맞게 다루라는 지시가 오고 있다. 군주는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대신(1절) 그에게 수치를 입혀야 한다. 그 손에 권세를 쥐어 주는 대신 권세를 행사하여야 한다. 길들이지 않은 "말"에게는 교정을 위한 "채찍"이 필요하고 "노새"에게는 길을 벗어나려할 때 제지하고 또 바른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자갈"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신앙과 이성의 안내과 억제 하에 있지 않으려는 악인에게는 채찍을 하고 자갈을 물려야 한다. 엄하게 책망받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따끔한 맛을 보아야하고 더 이상 범죄치 않도록 제지를 당해야 한다.
----------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잠 26:4-5)
여기서는 성서의 표현 양식이 얼마나 고상하며 확실한가글 살펴보라. 본문은 언뜻 보아 모순된 표현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지혜로운 자라 하더라도 우매한 자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지혜는 그런 자를 다루는 데에 크게 필요하다. 즉 어느 때 침묵을 지키며 어느 때 대답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 적절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Ⅰ. 지혜로운 자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할 만큼 자기의 분별심을 우매자의 비논리에 동화시키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다. "그가 자랑한다고 너 또한 자랑하는 마음에서 대답하지 말라. 그가 욕설을 퍼붓고 화난 조로 말하더라도 욕설로 응수하거나 성내어 말하지 말라. 그가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너도 뒤질세라 딴 거짓말을 둘러대지 말라. 그가 네 친구를 헐뜯더라도 너는 그의 친구를 비방하지 말라. 그가 희롱하더라도 너는 그가 쓰는 말로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데 너와 그가 같을까 하노라. 너로 말할 것 같으면 보다 훌륭한 일들을 알고 있으며 보다 분별심이 많고 보다 선한 교육을 받은 자가 아니냐!"
Ⅱ.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미련한 자에게 깨달음을 심어 주기 위해 자기 지혜를 사용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즉 우매한 자의 말을 주의해 들어서 잘하면 선한 효과가 나올 가망성이 엿보인다든지, 푀소한 미련한 자 자신이나 남에게 더 이상 악을 끼치지 않도록 예방할 희망이 있을 때가 있다. "네 침묵이 네 주장의 불충함이나 네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표시라고 간주될 우려가 있거든 그에게 대답하라. 네 말이 바로 ad hominem-즉 그 사람에게 대한 대답이 되게 하라. 그를 그 자신의 무기로 쳐부수라. 그리하면 ad rem-즉 요령있는 대답이 될 것이다. 그가 논쟁 비슷한 말을 꺼내면 그에 응수하고 네 대답을 그의 경우에 맞추라. 네가 그에게 대답하지 않음으로 해서 네가 그의 말에 대꾸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대답해 주라. 두렵건데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승리를 자랑할까 하노라." 이와 같이 지혜의 자녀들은 지혜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눅 7:35).
------------
미련한 자의 해(잠 26:6-9)
우리에게 지혜를 권하는 동시에 우리를 자극하여 지혜를 획득하는 수단이 되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사용하게 하기 위해, 솔로몬은 여기서 우매자가 아무 일에도 알맞지 아니함을 보여 주고 있다. 미련한 자들은 생각도 계획도 전혀 하지 않는 얼빠진 자들이거나 아니면 생각이나 계획을 올바르게 하는 적이 없는 악인들이다.
Ⅰ. 그들은 어떤 일을 맡기기에 적합치 않으며 심부름 보내기도 마땅치 않은 자들이다(6절). 그런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한다는 것은 주의력과 조심성이 없는 자의 편에 전언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너무나 희희덕거리고 자신의 쾌락에 정신이 팔려서 진지한 일에는 마음을 쏟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부탁받은 전갈의 절반은 잊어먹고 그나마 나머지 절반도 서툴게 전달하여 그 말은 실수투성이가 된다. 이런 자를 보내는 자는 자기의 전갈이 잘못 전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차라리 "자기의 발을 베어버리는" 것이, 즉 그를 보내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자를 보내는 자는 "해를 받느니라." 일을 잘 처리하기는커녕 그를 속이고 악용하는 자를 부리는 자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솔로몬의 말에서는 악한과 미련한 자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미련한 자를 일군으로 부리는 자는 많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인데, 사람들은 그 사자를 보고 주인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Ⅱ. 미련한 자들은 명예를 지니기에도 부적합하다.
1절에서는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미련한 자에게 명예를 주는 것이란 보석이나 저울추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인 돌을 돌무더기에다 던져버려 아무 쓸모없이 매장시켜 버리는 짓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돌에다 자색 옷을 입히는" 것처럼 엉터리없는 짓이다(그렇게 해독하는 자도 있음). 뿐만 아니라 그것은 위험한 짓이다. "물매에 매단" 돌처럼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 쉬운 것이다. 이와 같이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미친 자의 손에 칼을 쥐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영예로 어떤 화를 입힐지 알 수 없으며, 그는 자기에게 영예를 쥐어 준 자들까지도 해칠지 모르는 것이다.
Ⅲ. 그들은 지혜로운 말씀을 전달하기에 적합치 않다. 이런 자들은 설사 지혜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또 약간은 지혜에 대해 말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일처리를 떠맡겨서는 안된다. 지혜의 말이라 하더라도 미련한 자가 전달하고 적용할 때는(누가보아도 그가 그 지혜로운 말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말씀의 진가와 유용성이 상실되고 만다. "미련한 자의 입에 있는 잠언은" 이미 잠언이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 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경건하게 말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운운하는 자는 자신과 자기 말을 욕되게 할 뿐이다. "저는 저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느니라"(또는 같지 않다). 이 때문에 그들의 걸음 걸이는 보기 흉하다. 마찬가지로 우매한 자가 경구를 말하려고 나서며 충고를 하려 드는 것이나, 또 행실은 늘 말과 모순되며 거짓을 드러내는 자가 말은 경건하게 하려는 것도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좋은 말은 그를 치켜 세우지만 그의 악한 생활은 그를 끌어내리고 만다. 즉 그의 "다리는 같지 아니하다"(패트릭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혜의 잠언이 미련한 자에게 어울리지 않음은 절룸발이가 춤추는 것과 같다. 다리를 저는 자의 절뚝거림은 그가 날쌘자처럼 보이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자의 우매함은 그가 지혜로운 자처럼 보이려고 할 때 가장 우스꽝스럽게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는 자는 자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좋듯이 어리석은 자나 악한 자는 자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2. 그는 가시나 어떤 예리한 물건을 손에 든 취한처럼 이로써 자신과 남에게 해를 입히게 될 뿐이다. 자기 손에 든 흉기를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다. 말은 잘하면서도 그 생활 태도는 엉망인 자들은 자기들의 훌륭한 말로 자신의 저주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며 남들은 그의 언행불일치로 말미암아 더우 강퍅하게 될 것이다.
흑자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죄인의 가슴을 따끔하게 찌를 것으로 생각되는 극히 예리한 말이라도 미련한 자에게는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한다. 비록 그 자신의 입으로 이 말을 한다고 해도 그는 아무런 감동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술취한 자와 손등이 가시에 긁혀도 이를 느끼지 못하며 이를 불평하지 않는 것과 같다(23:35).
-------------
미련한 자의 고용에 대한 경고(잠 26:10)
이 말씀의 번역은 원문과 난외주에서 달리 해독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를 따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Ⅰ. 선하신 하나님의 공평하심(우리 성경과는 다름:역주). "주인" 또는 "주"(Rab의 의미), 혹은 우리가 읽은 대로 "크신 하나님은" 태초에 "온갖 것을 만드셨고" 아직도 그들을 무한하신 지혜로 다스리고 계신다. 그는 각 사람에게 자기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미련한 자에게 보응"하시되 "적은 채찍으로 하신다." 미련한 자는 무지로 인해 죄를 짓고 "자기 주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자에게 보응하시되 많은 채찍으로 하신다." 범죄자는 건방지게 고자세로 죄를 짓고 "자기 주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려 아니하기" 때문이다.
흑자는 이 말씀을 우매자가 죄인에게도 공통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선하심으로 본다. 그는 그들에게도 공히 "햇빛을 비취게" 하시며 "비를 내리게" 하시는 것이다.
Ⅱ. 악한 통치자의 불의(난외주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우리 성서에는 없음). "장인이 모든 자를 근심하게 하나니, 그는 미련한 자를 고용하며 죄인도 고용함이라."
악인이 자력으로나 자기 밑에 부리고 있는 미련한 자와 무뢰배의 도움으로 권세를 잡게 되면 그의 지배를 받는 모든 자는 슬픔을 당하게 되며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들과 권세있는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삶이 그들의 지배 하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영위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
미련한 자의 죄(잠 26:11)
다음 사실을 살피자.
Ⅰ. 죄는 아주 가증한 것이며, 때로는 죄인 자신에게까지 매우 증오스러운 것이 된다. 그의 양심이 눈을 뜨게 되거나 자기 죄의 따끔한 맛을 느끼게 될 때 그는 그 죄에 염증을 내어 토해내게 한다. 이럴 때에는 그도 죄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며 기꺼이 죄와 헤어지려는 듯이 보인다. 죄는 그 자체가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죄인에겐 개가 토해낸 것보다 더욱 메스꺼운 것이 될 것이다(시 36:2)
Ⅱ.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은 다시 그 죄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개는 자기 위해 고통을 가져다 주는 음식을 토해냄으로써 편안을 얻으나, 그리고 난 뒤에는 다시 가서 그 토해낸 것을 핥아먹는다. 이와 같이 자기 죄를 깨닫기만 하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은 그 죄가 자기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가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그 죄를 짓게 된다. 사도는 "의의 도를 안 후" 다시 "져버리는" 자들에게 이 잠언 말씀을 적용시키고 있다(벧후 2:21).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자기 입에서 토해내실" 것이다(계 3:16).
-------------
미련한 자의 자만심(잠 26:12)
Ⅰ. 상상할 수 있는 영적인 질병. 그것은 자만심이다. "너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많이 본다. 그들은 있으나 마나 한 약간의 견식을 가지고도 그것을 자랑하며, 실제보다 과대평가 하고 어떤 자기 이웃 사람들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줄로 생각하며 또 자기들의 지식을 족하게 여긴다. 따라서 더 이상의 지식은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기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제 의견을 고집하게 되고 독선적이 되며 비판적으로 된다. 그가 자기의 지식을 이용하는 모든 것은 그를 으쓱대게 한다. 또한 경건한 신앙인을 지혜자로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인처럼 경건한 모습을 조금 보이고서 실제로는 악한 자기들의 영적인 상태를 선한 것처럼 나타내고 있는 자들의 특성을 묘사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계 3:17).
Ⅱ. 이 질병의 위험성. 이 병은 어떤 점에서 절망적이다. 이런자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인정하는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로운 자였고 또 지혜의 교사였다. 그는 자기의 문하생들에게서 이런 점을 직접 관찰하였던 것이다.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고 가르침을 받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한테서 그는 가장 곤혹을 느끼고, 또 그런 자에게 대한 지혜의 전수작업이 가장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기에 "지혜있는 자로 생각되는 자는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교만한 바리새인보다 세리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다(마 21:32). 자신이 지혜롭고 경건하다고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망상 때문에 많은 자가 참 지혜와 참 경건으로부터 차단되고 있다(요 9:40, 41).
------------
게으른 자의 두려움(잠 26:13)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하면 우리는 그가 할 일 없이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한다. 빈둥빈둥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려 하는 자들보다 더 자신의 미련함을 노출시키는 자는 없다. 사람이 어리석음 때문에 게을러지듯 그 게으름은 또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Ⅰ. "게으른 자"가 실제로 두려우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길과 거리, 일해야 할 장소와 가야할 노정이다. 그는 일을 싫어하며 걱정과 수고를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하기 싫어한다.
Ⅱ. 그가 공상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며 무엇이 두렵다고 주장하는가? 그것은 "길에 있는 사자"이다. 그는 세상 일이나 신앙의 일에 부지런히 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길에 사자가 있다"는 변명을 내세운다(이것은 못난 변명으로서 차라리 아무구실도 붙이지 않는 것만 못하다). 즉 게으른 자는 으레 그런 일에는 자기로서 감당할 수 없는 난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한다. 사자는 삼림과 사막에 가끔 출몰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는 낮시간에는 굴에 숨어 있다(시 104:22, 23). 그러나 게으른 자는 "사자가 거리에 있다"고 공상할 뿐 아니라 공상하는 것처럼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자는 길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생각 속에만 있을 따름이며, 그가 가상으로 그리는 만큼 흉포하지도 않은 사자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가상적인 난관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우리의 실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전 11:4).
-------------
게으른 자의 안일함(잠 26:14)
우리는 자기 일을 두려워하는 게으른 자를 보았는데 여기서는 자기 안일을 사랑하는 겡른 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침상에서 한쪽으로 누워있다가 그쪽이 싫증나면 또 딴 쪽으로 돌아눕는다. 해는 중천에 떴고 문이 움직이듯 일을 해야할 시간인데도 그는 여전히 침상에 누워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소홀해지며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게으른 자의 특징을 살펴 보자.
Ⅰ. 그는 자기 침상에서 빠져나오기를 좋아하지 않고 "문짝이 돌쩌귀에 달려있듯" 잠자리에 매달려 있는 듯이 보이는 자이다. 신체적인 편만을 너무 추구하면 그것은 많은 여적 질병을 몰고 오는 슬픈 요인이 된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결국 죽음을 사랑한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Ⅱ. 그는 자기 일에 매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이리저리 조금씩 힘을 써보다가 그대로 눕고 만다. 결국 그는 자기가 있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게으른 신앙인들은 그 신앙 생활에 있어서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왔다갔다 한다. 세상과 육체는 그들이 매달려있는 두 개의 돌쩌귀다. 이 두 돌쩌귀를 통해 그들은 외면적인 봉사의 길에서 움직이고 의무의 길로 나아가며 맷돌을 끄는 말처럼 맴돈다. 그러한 그들은 아무런 유익도 기반도 구축하지 못하며 천국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지도 못한다. 즉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나 보다 나아지지 않는 성도는 다 이런 게으름장이인 것이다.
-------------
게으른 자의 손실(잠 26:15)
그 게으름뱅이는 이제 야단법석 끝에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그대로 누워있는편이 더 나을 뻔하였다. 그가 해야 할 일을 매우 불성실하고 서툴게 하기 때문이다.
Ⅰ. 자기 게으름에 대한 구실. 그는 춥다고 하여 "자기 손을 그품에 감추느니라"(우리 성서:"그 손을 그릇에 넣느니라)" 그의 따뜻한 잠자리 다음으로 따뜻한 것은 그의 품인 것이다. 혹은 구걸을 업으로 삼고 있는 불구자들처럼 다리를 저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무엇인가로 손이 아플지도 모른다. 그는 이것을 전날의 고된 일 때문에 손에 물집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대체로 그의 일에 대한 기피증을 암시한다. 그는 노력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일에 익숙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안일 속에 움추리고 앉아서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 의무를 행하려들지 않는 자들에게 공통된 것은 자기들이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내세우는 것이다. "내가 땅을 팔 힘이 없구나"(눅 16:3).
Ⅱ. 게으름으로 인해 그가 입는 손실. 이 사람 자신이 바로 그 피해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굶주리고 있기 때문이다. "손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그는 자기 배를 불릴 마음도 없고, 손을 머리만큼 들어올리는 일조차 굉장히 힘든 일이기라도 하는 듯이 겁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우아한 과장법으로서 극히 큰 이득을 위해 가장 작은 고생도 참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며 그의 죄가 바로 그의 벌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신앙의 일에 게으른 자들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조금도 수고하려 들지 않으며,약속된 축복을 기도로 집어오기만 하면 될텐데도 기도의 수고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
게으른 자의 기만(잠 26:16)
Ⅰ. 자기 게으름의 불합리성과 어리석음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일복 사람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이 일곱 사람은 "선히 대답"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선히 대답"할 수 있다(원뜻:"이유를 대답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면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대답할 수 있음은 선한 자의 지혜인 것이다(벧전 3:15). 우리가 행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그 "이유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일에 대한 반대가 있을 때 그 반대의 오류성을 하나하나 지적할 만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일에 대한 명분만큼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 생활로 수고하는 자는 그에 대한 이유를 잘 대답할 수 있다. 그는 자기가 선하신 주인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의 수고가헛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이런 지혜로운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 일곱이 들 수 있는 모든 이유를 나열하면서 이 게으른 자에게 부지런하라고 설득해본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들과 그들이 내세우는 모든 이유에 대해 자신의 판단이 충분히 대답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Ⅱ. 이런 자만심과 그의 게으름과의 관계.
이렇게 자부심을 갖는 자가 누구보다도 "게으른 자"이다.
1. 자기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는 게으름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가 자기가 이미 충분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혜를 얻기 위해 고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성취해 놓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생각은 우리의 발전에 큰 암초가 되는 것이다.
2. 게으름은 자기 만족의 원인이 된다.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과 지혜의 법칙을 비교해 보려고 애쓴다면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은 자만심의 본고장에 있게 되는 것이다.
3. 자기의 게으름을 지혜로 오인하는 자는 몹시 얼이 빠진 자이다. 그는 자신을 과대 평가하며 가능한 모든 안일을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지혜란 또 신앙 생활에 있어서 꼭 해야만 하는 것 이상은 절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피하는 것이며, 가만히 앉아서 딴 사람이 무엇을 하나 살펴 보다가 그들을 흠잡는 일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자기의 치욕이 될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그러하나 게으름뱅이 한테서는 바랄 것이 없다(12절).
-------------
간섭에 대한 경고(잠 26:17)
Ⅰ. 여기서는 "우리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일을 규탄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일에서도 성급히 분쟁해서는 안 된다면(25:8) 딴 사람의 일로는 더 더욱 그럴 것이다. 특히 본문의 경우는 우리가 하등 관계도 없고 관련도 없는 사람의 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는 자일 뿐이다. 우리가 다투고 있는 자들을 화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라면 설사 양 당사자로부터 감정을 사는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흥분해있는 동안은 화평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걸핏하면 남의 일에 참견하고 딴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어가 편든다는 것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시험에 밀어 넣는 일이다. "누가" 나를 "재판"관으로 세웠냐?" 싸움을 시작한 그들 스스로가 해결짓게 하라.
Ⅱ. 자칫하면 위험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일을 금하라고 주의하고 있다. 그것은 으르릉거리는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다. 그러면 그 개는 네게 덤벼들어 물 것이다. 너는 차라리 가만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그 개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으며 만약 네가 상처를 입고 창피를 당한 채 물러서게 된다 해도 그것은 네 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 귀를 잡는"자는 놓아 주자니 그 개가 자기에게 뛰어오를 것이고 그대로 잡고 있자니 손이 꽉 차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누구든지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일에만 힘쓸"것이며, 시끄럽게 싸우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웃에 속이는 자(잠 26:18-19)
Ⅰ. 자기 이웃을 예사로 속이는 자들은 얼마나 해로운 존재인가! 그들은 "횃불을 던지며살을 쏘아서 죽이는 미친 사람"처럼 속임수로써 아주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교활하고 음흉한 자들로서 그들은 이런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실은 "미친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서 고의로 죄를 짓는 자보다 더 큰 미치광이는 없다. 그는 맹렬히 노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악의로 속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여기서 말하는 "미친 사람"이다. 그는 실제로 있어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죽인다." 그는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화를 입힌다. 기만과 허위는 횃불처럼 타오르며, 화살처럼 멀리서도 살인을 하는 것이다.
Ⅱ. 사람들이 자기의 악행에 대한 변명으로 흔히 내세우는 말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그들은 장난으로 그래 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의 악행에 대해 책망을 받으면 "내가 희롱하였노라"는 말로써 그 일을 얼버무리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로써 장난하며 예리한 연장으로 희롱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로 판명될 것이다. 헐뜯기를 좋아하지 않고 희롱하지 못하는 자들은 칭찬을 받을 터이나(스스로 "지혜로운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을 용납하는구나." 고후 11:19, 20) 어떤 면으로든지 자기 이웃을 모욕하고 기만하며, 거래에서 속이고 그들에게 거짓말하거나 그들에 대한 거짓말을 지어내며, 그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명예를 손상시키고 난 뒤에 장난으로 그랬다는 말로 변명하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확실히 정죄를 당할 것이다. "내가 희롱하였노라." 희롱으로 죄를 지은 자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나니 그러지 않으면 그의 죄는 자기를 파멸시키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너무나 값비싼 것이어서 장난으로 팔 수가 없다. 우리 이웃의 명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농삼아 거짓말하고 비방하다가 급기야는 진심으로 거짓말하고 중상모략하는 일을 배우게 되며, 또 남에게도 가르치게 된다. 명랑한 마음으로 꾸며 말하 농담의 악의로 전파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자신을 즐겁게 하려고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다면 자신을 부하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아주 없어지며"(렘 7:28) 사람들은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게"된다(렘 9:5). 사람들이 거짓말은 악마에게서 나오며 지옥불에 이르는 것인 줄을 깊이 생각한다면 그 거짓말 놀음은 확실히 흥히 깨어질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살을 쏘아 죽이는"것이 된다.
------------
다툼에 대한 경고(잠 26:20-22)
분쟁은 불과 같다. 심령을 강려시키며 모든 선한 것들을 태워버리고 가정과 사회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 분쟁이다. 다툼의 불씨를 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해로운 결과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본문은 분쟁이 흔히 어떻게 불붙으며 어떻게 활활 타오르는지를 묘사해 주고 있다.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희애햐 한다.
Ⅰ. '말장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다툼의 불에다 기름을 먹이는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가연성 문질로 불길을 퍼뜨리는 자들이다. 그들이 다니면서 퍼뜨리는 얘기는 곧 불덩이리이다. 교묘한 말로 남을 헐뜯고 비밀을 누설시키며, 남의 말과 행동을 그릇되게 표현함으로써 친척이나 이웃간에 시기하도록 하고 서로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며, 그들 사이에 불화를 심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는 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그러면 기름이 다 떨어질 때 불이 꺼지듯 분쟁도 틀림 없이 종식될 것이다. 즉 분쟁 당사자들은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이며 좋은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상기시키는 일이 없게 되어 얼마 안 있어서 묵은 얘기들을 깨끗이 잊게 될 것이며, 쌍방은 다 자기들이 공동의 적에게 얼마나 속아왔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수군대는 자와 뒤에서 헌담하는 자들은 용납할 수 없는 선동자들이다. 이 점을 묘사하기 위해 그가 앞서 한 말씀을(18:8) 되풀이해서 얘기하고 있다(22절).
즉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상처와 같다"(우리 성경:"별식과 같다"). 이것은 깊고 위독한 상처이며 급소를 다친 상처와 같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여 사람의 명예를 다치게 만들며, 아마 그 상처는 치료할 길이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약효가 탁월한 고약으로도(이런 약은 구하기도 힘든 것이다) 넓게 패인 그 상처를 충분히 아물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듣는 자가, 마땅히 이웃에 대해품고 있어야 할 사랑과 자비심에 상처를 입히며 우정과 기독교인의 교제에 치명적익 일격을 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를 막론하고 우리 자신이 말장이가 되어서는 안되며, 어떤 나쁜 역할도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추호도 말장이들에게 역성을 들지 말아야 한다.
Ⅱ. 편벽되고 성미 급한 자들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흠잡기 좋아하고 만사가 극히 나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며 조그만 꼬투리만 잡혀도 싸우려 드는 자들이다. 그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여 화를 낼 때는 급하고 격하며 열화같다. 이들은 "다툼을 좋아하는 자"라서 "시비를 일으키느니라"(21절). 우리는 이런 자들과 관계를 적게 맺으면 맺을수록 좋다. 다투기 좋아하는 자들과 다툼을 피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약한 마음의 폐해(잠 26:23)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Ⅰ. "불타는 입술"(우리 성서:"온유한 입술")에 나타나는 "악한 마음."
이 마음은 맹렬하고 격정적이며 난폭한 말을 토해낸다. 악의에 불타며 자기의 말을 듣는 자거나 그 말의 대상이 되는 자를 핍박한다. 나쁜 말과 나쁜 뜻은 깨진 "토기" 조각과 그에 "입힌 은"이 함께 굴러다니듯 부합된다. 질그릇이 깨어져 그 위에 입힌 은이 따로 떨어진 이상 이들은 쓰레기통에 내버려야 마땅하다.
Ⅱ. "불타는 입술"로 자신을 위장하는 “악한 마음.” 이것은 사랑과 우정을 열렬히 고백하여 자신의 악함을 위장하는 마음이며 심지어 아첨으로 해를 가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은찌꺼기"(원문의 뜻은 은찌꺼기가 입혀진 토기의 깨진 조각임), 또는 "은을 낮게 입한 토기"와 같다. 심약한 자는 그것이 마치 다소 귀중한 것인 줄로 속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곧 그 속임수를 간파하게 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에 나오는 성귀와 일치하고 있다.
--------------
감정이 가증한 자(잠 26:24-26)
사람들이 우정을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불평할 만한 일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만큼 사랑이 없으며 약속하는 만큼 자기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통탄할 것은 우정을 고백하는 일에 악한 계획이 내제되고 우정을 극히 악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경우이다. 이 일은 여기에서 흔히 있는 일로서 묘사되고 있다(24절). 자기 이웃에게 "감정있는 자는" 그에게 해를 끼치려고 꾀하면서도 "입술로는 꾸미고" 존경심을 품고 있고, 기꺼이 봉사하려는 듯이 처신하며, 가인이 아벨에게 "내 아우는 평안하뇨?"하고 묻듯이 친절히 얘기한다. 요압도 아마사에게 이같이 행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의 악의가 의심을 받지 않고 경계당하지 않음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보다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 이 사람은 "속에는 궤휼을 품느니라." 즉 그는 유리한 시기에 자기 이웃을 잡을 때까지는 해를 입히려는 악의를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악의에는 옛뱀의 간교한 원한과 독액에 못지 않은 간교함이 들어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받는 경고는 다음과 같다.
Ⅰ. 가장된 우정에 속을 만큼 어리석지 말 것.
사람이 "좋은 말"을 할 때 신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네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너무 선뜻 "믿지 말라."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 즉 우리를 해하려는 아주 많은 계획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이름다운 말로써 이런 악한 계획을 감추려고 열심히 애를 쓰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악의를 품고 있으면서도 유혹할 때는 하와에게 한 것 같이 좋은 말만 한다. 그러나 그를 신용하는 것은 미친 것이니,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 하나가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온다.
Ⅱ. 우정을 고백하면서 속일 정도로 악하게 되지 말 것.
잠시 동안은 그럴 듯하게 속일 수 있으나 그것은 청천백일하에 밝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6절). 궤휼로 그 감정을 감추는 자는 이제나 저제나 그 본색이 탄로날 것이며,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 수치와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사람을 얄밉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랑은 최상의 갑주이지만 동시에 최악의 외투가 되기도 하여, 위선자들이 분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합은 이 위장된 사랑의 외투를 걸치고 있다가 망하였던 것이다.
-------------
함정을 파는 자(잠 26:27)
다음 사실을 살피자.
Ⅰ. 사람들은 남에게 화를 입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들을 우정을 고백하여 자신의 저의를 위장시키기 위해 자신을 압박하였듯이, 이제는 그 흉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주 많은 애를 쓴다. 그것은 "함정을 파는 일"이요 "돌을 둘리는 일"이다. 그만큼 고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혈기와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고생쯤은 아랑곳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Ⅱ. 이로써 사람들은 자신에게 화를 예비하게 된다. 난폭한 행동은 자신의 머리 위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팠던 함정에 빠질 것이며 자기가 굴린 돌에 치이게 될 것이다(시 7:15, 16; 9:15, 16).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지혜있다하는 "그들 자신의 교묘함"으로 뿐만 아니라 잔인함으로도 그들을 잡으실 것이다. 그것은 음모자의 숙명이다. 하만은 그 자신이 준비한 교수대에 목을 매었던 것이다. nec lex est justior ulla Quam necis artifices arte perire sua-즉 멸망을 도모하는 자가 자신의 꾀로 멸망당한다는 것보다 공정한 법은 없다.
------------
중상과 아첨(잠 26:28)
경중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운 거짓말이 두 가지 나온다.
Ⅰ. 중상하는 거짓말.
거짓말을 하는 자는 자기 말의 피해자를 공공연하게 미워한다.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느니라."
그는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중상과 비방으로 해를 입힌다. 그렇게 해야 무방비 상태에 있는 그들을 은밀히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그들에게 피해를 입혀서 자신의 원수로 삼았기 때문에 미워한다. 이 거짓말하는 자의 악한 짓은 공공연하고 명백하다. 그는 해를 입히고 미워하여, 그 점을 자인하고 또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Ⅱ. 아첨하는 거짓말.
이 거짓말을 하는 자가 상대방의 파멸을 은밀히 도모한다. 전자의 경우에서는 피해가 명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방어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거의 눈치를 챌 수 없으므로, 자기에게 던져지는 칭찬과 찬사에 현혹되어 자신의 패망에 자기를 내어 주고 만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라면 선전포고하면서 덤비는 중상모략하는 자보다 입맞춤으로 죽음을 예고하는 아첨군을 더 두려워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