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4.하늘 보좌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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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4장...[310.아 하나님의 은혜로] [14.주우리하나님] [36.주예수이름높이어]


#[[딤후3장]]===마지막 가르침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그리스도의 표현이요,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분 자신이심, 모든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말씀 받은 그대로를 기록하였던 바, 성경이 또한 성령의 말씀 기록(딤후 3:15-17)임을 인정-고백함으로써, 내주하시는 성령께 내 마음 열어드림 통해 하나됨 믿음으로 실행하며, 성령에 감동된 바 내 영, 그 안으로 들어감...

 

“<무궁한 사랑의 주께서 베푸시는, Q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내 생명의 양식이요, 내 인생의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모든 원동력입니다.> 주님의 이상을 보이시며 말씀 밝혀주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시여, 오늘도 나를 감동시켜 주소서, 주님의 말씀 깨닫게 하옵소서.  심령의 문을 열어드리며 기대하며 간구하오니, 말씀하여 주옵소서. 듣고 보고 깨닫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종교개혁의 5 원리]]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S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의 성경적 근거

"오직 성경으로!"는 Q의 말씀인 성경의 탁월한 지위를 인정한다. 성경은 신자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다.

성경에서 “오직 성경으로!”의 교리가 가장 분명하게 언급되어 나타나는 곳은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신에서 복음을 굳게 붙잡고 사역에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굳게 서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디모데는 우유부단했고, 무기력했으며, 크게 낙심한 상태였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고 그를 외면했다.

따라서 바울은 처음 세 장에서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과 죄의 결과를 언급한 뒤 디모데에게 굳세게 견디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과 달리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라고 덧붙였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성경의 진리를 배운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디모데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이런 바울의 말에는 구약성경이 복음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믿는 믿음을 분명하게 나타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바울은 계속해서 16-17절에서 성경에 관한 교리를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중대한 내용의 말을 이어갔다. 

이 구절은 이후의 일을 미리 암시하는 의미로, 곧 신약성경의 나머지 계시와 정경의 완성을 염두에 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16절의 첫 부분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으로 번역된 헬라어 “데오프뉴스토스” (theopneustos)는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온 숨(호흡)”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바울은 “모든 성경”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물론 그 어떤 비평가도 성경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진리인지를 판별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아울러 성경의 어떤 부분이 적용하기에 가장 좋다거나 서둘러 복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권한도 우리에게 있지 않다.

바울의 말에는 ‘완전축자영감’의 교리가 암시되어 있다. 성경의 일부가 아닌 전체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숨”으로 기록되었다.

성경 저자의 생각이나 의도뿐 아니라 성경의 표현, 문체, 용어들 자체가 마지막 한 글자까지 모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숨”이다(이를 한글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 특히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를 가르친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해 우리의 그릇된 신념을 바로잡아 준다. 성경은 그런 교정을 통해 우리를 의로 교육한다. 한마디로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디모데후서 3장 17절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한다.

바울의 말에는 “디모데야, 사역을 할 때나 말씀을 전할 때나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이 곧 너의 무기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 무기를 충실하게 사용하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역자의 자질을 갖추거나 온전해지기 위해 신비로운 경험이나 신통한 은사 같은 것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17절은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만 있으면 사역을 할 준비가 된 상태라고 가르친다.

이 말씀의 논리는 분명하다.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비롯했다면 그것은 사실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했고, 또한 사실이라면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

이처럼 “오직 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탁월한 지위를 인정한다. 성경은 신자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권위다.


===하늘의 예배..하나님의 우주적 행정 : <서신서에서 Q 보좌는 긍휼-은혜의보좌, 계시록에서는 심판의 보좌> : 공중 사탄의 반역 행위들, 땅 위 인간들의 모든 타락한 행위들에 대한 적절한 보응의 심판을 집행 완성하게 됨..심판 집행 후에는 영원생명 공급처로서, 생명의 생수 근원지가 되고, 생명수 강가에 생명나무가 자라 영원토록 Q께서 구속하신자들의 공급이 될 것.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Q마음에 합한 자<야곱-에스겔-예수님-스데반-베드로-요한이 보았던 바로 그 문을 모든 믿는이>는 보게 될 것]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Q의 계획대로]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성령안에서 (= 성령과 하나된 <거듭난 이의>영 안에 믿음으로 머물 그 때에라야...엡3:5) 성령의 계시가 주어지며 보고 깨닫게 됨<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 주님을, 그대의 짧은 소견으로  제한하려 하지 말라>,...이는 생각 안에서 정신적으로 이해하는 혼 영역의 논리적-지성적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당신의 호흡을 불어 넣어 지으신 바>,차원을 초월한, 주 영이 내주하시는, 그분과 하나된  <성령에 감동된>영 안에서, 영적 감동 그 안에서 그대의 영으로 깨닫는 문제임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사랑 그 안에서, 이것을 늘 연습하라,,자연스러워지도록] 보라 하늘에 보좌<Q행정/심판의 중심>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하늘 보좌 중심의 위치 배열로는, <주의 보좌>, 그 주변에 <24장로들의 보좌>, 그 주위 사방(우-좌-전-후)에 <네 생물>, 보좌 앞에 <일곱 영>, 보좌 앞에 <유리바다>가 있음]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생명의 색, 매우 진귀한, 맑고 짙은 녹색으로 근원적 생명의 풍성함의, 전달 가능한 영광  상징..계21:11, 요17:22..새 예루살렘의 모습이기도 한 하나님의 모습임, 동시에 새 예루살렘 성의 벽의 색깔이요 첫번째 기초석이기도 함21:18-19>과 홍보석<=홍옥수구속의 색, 매우 진귀한 붉은 색, 타락한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의 Q 상징> 같고 또 무지개<노아 언약에 신실하신 Q>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땅위 생명의 풍성함 상징..언약을 세우시며, 언약에 신실하사 [땅과 그 거민을]심판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심으로써 여전히 남겨두실 일부의 생명 있음을 의미..에메랄드, 곧 비취옥> 같더라 :: Q은 영원 생명이시며 그 영원 생명이신 분으로부터 구속이 발출되어 완성됨을 의미. 구약의 대제사장 가슴의 흉패에 있는 첫째 보석은 홍보석, 마지막 보석은 벽옥임<출28:17- 20> : 구속된 백성마다 Q생명의 영광 안에서 최종 완결될 것 상징::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 **모든 제사장은 세마포 속바지, 긴 속옷, 허리띠, 두건을 기본적으로 착용....한편, 대제사장은 그 위에 겉옷, 에봇<조끼 역할..어깨받이와 판결흉패는 꼬인 금사슬로 연결되었고, 각각 에봇에 고정시켰음>, 어깨받이, 판결흉패(가슴받이..그 안에 우림<발광체>과 둠밈<온전/완전하게 하는 것..히브리어 22자 중 18자 만 포함시킴>을 넣었음), 두건 위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란>글을 새긴 띠<패>를 착용했음..출28장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이들은 천사들을 대표하는 우주적 제사장들임..12*2배로서 Q의 신성한 행정의 강화된 완전함을 의미하는 완전 수...주님 재림 이전에 이미 보좌에 앉아 있기에 천사들의 장로들이요, <가장 먼저 지음 받은 창조물로서-사탄도 그러했다->Q의 모든 창조물들의 대표들임...천년왕국 시작 전까지는 그들이 우주의 통치자요 왕적 제사장들임..이는 천년왕국에서는 합당한 성도들로 대치될 것..다윗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24반차로 나누어서 Q의 행정적 봉사를 수행하도록 하였었다.> 흰 옷을 입고[어린양의 구속의 피가 필요치 않는, 타고난 무죄성을 의미] 머리에 <왕 노릇하는 자의 상징>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 이 모두는 진노의 심판 진행을 의미]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 여기서 타오르며-빛 내며-관찰하고-살피며-심판하며 생명 공급-주입하여 변화시켜 교회를 산출하는 일곱 영은 궁극적으로 Q의 새 예루살렘 건축을 도래케 함 ::  한편, 구약의 등불 일곱은 장막이나 성전 안을 비추며 살피는 기능이 주가 되었었음(출25:37, 슥4:2).

6.  보좌 앞에 <모든 부정적인 것들마다 숨김없이 완전 분명 투명하게 드러내기에>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Q이 심판하신 모든 것을 수집하여 담는 곳으로서 [노아 <무지개..창9:25>언약 이후에는]그 안에 물이 아니라 불이 담겨 있음..창19:24, 계15:2..이는 장차 나중에 불못이 됨<계20:14, 단7:9-10>]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온 우주, 온 땅을 망라하는 네 극점을 상징..천사들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을 대표함> 있는데 앞뒤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도 어느 방향으로나 볼 수 있는, 극도로 투명하게 꿰뚫어 통찰하는>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보좌의  우-->좌-->전-->후로 이동하면서 관찰하고 있음 : 겔1장 각각 네 얼굴[사자 얼굴(우:사..들짐승 대표)-소 얼굴(좌:우..가축 대표) -사람 얼굴(전:인..인류 대표)-독수리 얼굴(후:독..조류 대표)]가진 생물임..보좌 앞에 요한이 위치..피조물 중 땅에 기는 파충류[그 머리는 Q의 원수 사탄의 상징인 뱀]와 [신천신지에서는 사라질 바 심판의 대상인..21:1]물속에 사는 어류와 양서류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음..송아지는 정결하고, 사자와 독수리는 정결치 못하나 구속 받음 통해 정결케 되었음..레11:3-8, 13-19, 사11:6-9, 행10:11-16..그리스도의 구속은 만물과 만유 모두를 위한 것임..골1:20, 히2:9))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네 생물 얼굴 형상은 겔1:5-10, 10:14-15의 케루빔과, 여섯 날개[눈과 다리를 각각 두날개로 가리며 동시에 두 날개로 날아다니는]로 보면 사6:2의 스랍과 같다...그들이 쉬지 않고 이르는 그대로 영생하시는, 거룩하신 분이 반드시 다시 오심을 스스로와 온 우주에 기억케 하기 위해 선포하며 경배하며, 영광-존귀-권능 돌리고 있음.. 구속을 감사하는 성도들마다 마땅히 이러한 눈들로 자신을 돌아보아 점검하며,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려야 한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TUQ]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구속하신 은혜와 그 구속을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창조에 대한 뜻과 목적 그대로 이루심 감사 찬양]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이것은 천년왕국에서는 24장로들이 왕적 제사장의 그 직책을 <성도들이 대신하게 되기에> 사임하게 될 것을 예표함...5장10절을 보라!!]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24장로들이 실지로 보고 듣고 경험-감상하며 대리 실행하는 바, Q의 다스리시는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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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4 Amplified Bible

===Scene in Heaven

1. After this I looked, and behold, [a]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first voice which I had heard, like the sound of a [war] trumpet speaking with me,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take place after these things.” 

2. At once I was in [special communication with] the Spirit; and behold, a throne stood in heaven, with One seated on the throne. 

3. And He who sat there appeared like [the crystalline sparkle of] [b]a jasper stone and [the fiery redness of] a sardius stone, and encircling the throne there was a rainbow that looked like [the color of an] emerald. 

4. Twenty-four [other] thrones surrounded the throne; and seated on these thrones were [c]twenty-four elders dressed in white clothing, with crowns of gold on their heads.

===The Throne and Worship of the Creator

5. From the throne came flashes of lightning and [rumbling] sounds and peals of thunder. Seven lamps of fire were burning in front of the throne, which are [d]the seven Spirits of God; 

6. and in front of the throne there was something like a sea or large expanse of glass, like [the clearest] crystal. In the center(보좌를 중심 으로, 빙 둘러서) and around the throne were four living [e]creatures who were full of eyes in front and behind [seeing everything and knowing everything that is around them]. 

7. [f]The first living creature was like a lion, the second creature like a calf (ox), the third creature had the face of a man, and the fourth creature was like a flying eagle. 

8.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each one of them having six wings, are full of eyes all over and within [underneath their wings]; and day and night they never stop saying,

“Holy, holy, holy [is the] Lord God, the Almighty [the Omnipotent, the Ruler of all], who was and who is and who is to come [the unchanging, eternal God].”

9. Whenever the living creatures give glory and honor and thanksgiving 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to Him who lives forever and ever, 

10. the twenty-four elders fall down before Him who sits on the throne, and they worship Him who lives forever and ever; and they throw down their crowns before the throne, saying,

11. “Worthy are You, our Lord and God, to receive the glory and the honor and the power; for You created all things, and because of Your will they exist, and were created and brought into being.”stones, while the sardius was a reddish stone. The gems are indicative of royalty.

***Revelation 4:4 The twenty-four elders may indicate the twelve tribes of Israel together with the twelve apostles, representing redeemed humanity. Others say the twenty-four may be an angelic order of worship akin to the Aaronic priests.

***Revelation 4:5 See note 1:4.

((Revelation 1:4 John and his brother James were among the first apostles chosen by Jesus, and were the sons of Zebedee and Salome. In addition to the Revelation, John wrote the Gospel and the three letters that bear his name.

Revelation 1:4 The Roman province of Asia (now western Turkey) was formed in 129 b.c.

Revelation 1:4 Like Paul, the apostle John takes the standard Jewish greeting of “Peace [Heb shalom] to you” and modifies it by adding grace, without which no one could obtain peace with God.

Revelation 1:4 A literal translation, perhaps referring to the perfect fullness of the ministry of the Holy Spirit.))

***Revelation 4:6 Some scholars identify these creatures as cherubim glorifying God and guarding the throne of heaven; others suggest the creatures represent God’s attributes (especially His omniscience and omnipresence). 

***Revelation 4:7 Jewish tradition suggests that during the exodus the four standards of the tribal triads depicted these images: the triad led by Judah, the lion; the triad led by Reuben, the man; the triad led by Ephraim, the ox; the triad led by Dan, the ea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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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4장 (개요)

본 장에서는 예언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여주는 서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1). 

그러므로 이 부분은 하늘 군대의 옹위를 받으시며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본 장에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가 발견한 것들을 두 가지로 소개한다.

Ⅰ. 그가 본 하늘의 광경들(1-7).

Ⅱ. 그가 들은 하늘의 찬양(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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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환상(계 4:1-8)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에게 보여 준 두 번째 환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일 후에"라는 말은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이후"라는 뜻도 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 기록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서 여러 교회에 보낸 이후에" 그가 또 다른 하나의 환상을 보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발견된 것들을 잘 음미하는 사람은 또 다른 환상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며, 전진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Ⅰ. 사도 요한은 이러한 환상을 볼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었다.

1. "하늘의 열린 문"에 대해 생각함으로 배울 것이 몇 가지 있다.

(1) 땅에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하늘에게 먼저 정해지고 결정된 것들이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의 모형을 그의 눈앞에 보여준 것이며, 그로 하여금 하늘의 거주자로서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드러내 놓고 알려 주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기까지 모든 것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시면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가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계시되어진 것 이상으로 아는 체도 말아야 한다.

2. "나팔 소리"가 난 것은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볼 수 있도록 [깨어 있는 명료한 마음이라야 바르게 이해하므로]준비시킨 것이며, 그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있을 일들을 볼 수 있도록 삼층천으로 초대받았다.

(1) 거기는 하늘지성소로 가는 거룩한 길이 있고, 거기는 믿음과 사랑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들어갈 수 있고, 거기는 죽을 때 그들의 영혼과 마지막 심판날에 그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는 한 길이 있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비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은밀한 비밀의 세계로 초대될 때까지 오직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 사도 요한이 계시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는 "그가 성령 안에 있었고,"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성령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전에도 그런 경험을 가진 바가 있다(1:10). 아마 그는 하나님의 감동에 압도되고 성령에 붙들린 바 되어 자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육신적인 요소들은 뽑아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가장 적합해진다. 육체는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장해가 되는 구름이요 휘장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필연적으로 여호와 앞에 서게 될 때에 우리는 육체를 잊어버려야 하며 기꺼이 육체를 낮추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이것이 환상을 볼 수 있는 "조건"이다.

Ⅱ. 그가 본 환상. 사도 요한이 본 이상스런 환상들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았다. 

그 보좌는 영광과 권세와 심판의 자리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그는 거기서 영광중에 거하시고 교회와 세상의 법이 되신다. 

땅위에 있는 모든 권세는 그 지배권이 하늘 보좌에 속해 있다.

2. 그는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 

그 보좌에 가득히 차서 조금도 여유가 없고,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들을 가지고 그 보좌를 묘사하더라도 그 참 모습을 묘사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3절), 어떤 형상으로도 그의 모습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초월적인 광채가 있었다.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가장 생생하고 다양한 빛깔로 비치는 투명한 벽으로 묘사했다. 

홍보석은 붉은 색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을 뜻한다. 

하나님은 세상 권세를 장악하시고 한번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은 결코 빼앗기지 아니하는 특성을 가지신 분이시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죄인을 멸할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고 구원을 연기할 수도 있다.

3.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둘러싼 보좌를 보았다"93절). 

무지개는 노아와 그의 후손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증표이며,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에게 베푸신 언약의 상징이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물로 맺은 영원한 언약이요 확실한 증표이기도 하다. 무지개는 녹보석처럼 보였다. 그 색깔은 맑은 녹색이었는데, 이는 새로운 언약이 가지고 있는 싱싱하고 생동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4. 보좌 둘레에 24 장로들이 앉아 있는 스물 네 개의 보좌들을 보았다. 

이 24장로는 신구약 시대의 모든 나라들의 전체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한다. 그리고 교회의 목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대표를 뜻한다. 

그들이 앉아 있는 것은 그들의 명예와 안식과 만족함을 나타내며, 보좌에 둘려 있다는 것은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들과 하나님 사이가 가깝다는 것, 그들이 하나님을 뵈오며 즐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들은 모두 성도의 의를 나타내는 "흰 옷을 입었으며,"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상징하는 "금 면류관을 섰다." 

이 말씀이 낮은 의미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인 지상의 복음적인 교회를 의미하며 높은 차원에서는 하늘나라에 있는 승리한 교회를 의미한다.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며, 그가 좋은 대로 교회를 이끄신다는 의지의 엄숙한 선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복음은 결코 율법에 못지 않는 영광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더욱 큰 영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6. 그는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다.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5절)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다채로운 선물과 은사를 뜻하며,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 모든 은사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마음대로 분배되어진다.

7. 그는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를 보았다. 

성전에는 물을 가득 담은 놋그릇(바다)이 있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갈 때 그 그릇에서 손을 씻도록 되어 있었다(이것을 일컬어 "바다"라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적인 교회에도 성결을 위한 바다 혹은 대야가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사람들을 모든 죄로부터 성결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담겨져 있다. 이 땅이나 혹은 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존전에 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그릇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씻어야 한다.

8. 그는 "네 생물"이 보좌와 24장로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복음의 사자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들이나 장로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고, 더욱이 그의 백성들 보다 그 수가 적기 때문이다. 

여기서 네 생물들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1)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현명함과 조심성과 용의주도함을 뜻한다.

(2) 그것들에게는 사자 같은 용맹과 황소 같은  근면과 수고가 있고, 사람 같은  분별력과 신중성이 있으며, 독수리가 그의 날개로 높이 하늘을 향해 나르는 것같이 숭고한 상상력과 지혜를 가지고 행동한다. 특별히 그 날개에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영혼의 상태를 잘 알고 종교적인 중요한 교리와 의무를 지키며, 백성의 영혼뿐만 아니라 자기의 영혼의 상태로 잘 살핀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3) 그들은 밤낮 둘러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24장로들은 앉아서 섬김을 받으며, 네 생물들은 서서 섬기고 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광경이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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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계 4:9-11)

우리는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본 장면들에 대해 상고해 보았다. 

이제는 그가 들은 찬양에 대해 고찰해 보자. 하늘에는 신령한 눈을 기쁘게 해주는 광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령한 귀를 매우 즐겁게 해 주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아름다운 장면과 소리를 지상에 있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해서도 맛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높은 하늘나라에서 완성될 교회에서는 늘 그러한 장면과 소리를 접하며 살게 될 것이다.

Ⅰ. 사도 요한은 교회의 사자들인 네 생물의 찬양 소리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선지자 이사야가 본 환상을 닮았다(사 6장).

1. 그들은 영원히 변함이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2. 그들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삼위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며, 영원하신 존재이시며, 보좌에 앉아 계셔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이시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광경 가운데서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에 대해 말하고 있다.

Ⅱ. 사도 요한은 24장로들이 경배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지상의 성도들이 목자의 인도를 받아 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10,11절).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의 경배의 대상은 목자들이 경배하는 대상과 같다. 

즉 그들의 경배의 대상은 "보좌에 앉으신 이" 다시 말해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의 같은 경배의 대상을 가진다. 비록 동격이거나 또는 보조격이라고 하여도 두 개의 대상을 예배하는 것은 그 예배를 혼란하게 하며, 또 예배자들을 갈라놓는다.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그 대상을 착각하거나 여러 신들을 예비하는 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노릇이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이 땅이나 하늘에 있는 교회의 예배를 받아 마땅한 분이시다.

2. 그들이 경배하는 태도를 보자.

(1)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매우 겸손하고, 경건하고, 외경하는 태도를 취했다.

(2) 그들은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졌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거룩함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렸다. 땅에서 그들에게 주신 면류관과 그리고 하늘에서 그들에게 주신 명예와 축복의 면류관을 돌려 드렸다. 그들이 받은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나타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의 영광보다 무한히 더 영광스러운 것임을 알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곧 그들의 영광임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3. 그들이 경배하는 말을 보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11절).

(1) 그들은 "우리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감히 피조물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는가? 

"당신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2)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축복이나 찬양을 받기에는 너무 지고하신 분이심을 넌지시 나타내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지고하신 분이시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자격도 없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4.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근거와 이유가 세 가지이다.

(1)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제일 원인이시다. 

찬양은 오직 만물의 창조자에게만 돌려야 한다. 피조물은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 하나님은 만물의 보호자이시다. 

그가 만물을 보호하시는 것은 계속적인 창조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에 의해 여전히 지음받고 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지탱되는 것들은 종교적인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사물들이 할 일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만물의 최후의 원인이시다.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와 기쁘신 뜻대로 만물을 지으셨다. 보조 창조자 같은 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다른 존재의 섭리나 능력을 빌어서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만일 그런 보조 창조자가 있다면 그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기쁘신 뜻대로 만물을 지으신 것과 같이, 그의 기쁨을 위해서도 만물을 만드셨다. 이는 만물을 그의 기쁘신 뜻대로 다루며, 만물들로부터 여러 방법으로 영광을 받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죽기를 즐겨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이 살아서 회개하기를 원하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잠 16:4). 

그런데 종교적인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근거로 해서 볼 때,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되셔야만 한다. 

아버지와 성령과 하나가 되며 똑같이 예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해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나타내 주는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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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4장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 '이 일 후에'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가 종결된 바로 직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ohnson). (2)혹자는 장면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묵시 문학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orris, Beasley-Murray, 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또한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7:1,9; 15:5; 18:1; 19:1) '내가 보았다' 혹은 '내가 들었다'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환상을 통한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낸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본서에서 '하늘'은 12:12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수로 사용되었다(3:12; 6:13; 12:7; 21:1). 그 의미는 다양하나 본문의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처소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한 곳을 의미한다(Morris). 한편 '열린 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라 에네 오그메네'(* )는 완료 분사형으로 문이 이미 열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며 환상을 통해 요한이 보게 될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문'은 본서에서 언급되는 '하나님 나라의 문'(3:8) 또는 '마음의 문'(3:2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문'을 나타낸다(Ladd, Mounce, Swtet). 따라서 본문의 '문'은 문 자체보다 천상의 광경을 보여 주기 위한 것과 계시를 전달받는 자가 분명하게 경험했음을 부각시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겔1:1; 마3:16; 막1:10; 요1:51; 행7:56; 10:11).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 본문은 1:10에서 들었던 음성을 요한이 다시 들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 음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포네'(* )에 정관사 '헤'가 있어 이전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harles,Stier). (2)혹자는 '천사'라고 주장한다(Bousset, Plummer).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리로 올라오라'는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산으로 올라오라는 명령과 흡사한 것으로 (출19:24)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휴거의 상징이 아니라(Johnson, Ford, Walvoord) 환상 중에 더욱 분명한 계시를 전달받기 위해 계시 전달자가 초대 되었음을 시사한다(고후12:2, Hughes). 한편 '마땅히 될 일'은 요한에게 계속 보여줄 환상이 미래에 일어나지만 그 계시의 내용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약속임을 시사한다(1:19,Morris, Lenski, Hughes).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데오스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는 문자적으로 '즉시 성령 안에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1:10) 천사으로 인도되어 새로워진 요한의 상태를 묘사한다(겔8:1-4; 11:1, Moffatt, Plummer, Ford). 이는 요한이 3장까지는 계시의음성을 들었으나 이제는 직접 계시에 참여함으로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음을 시사한다(요14:26; 고후12:2,3, Weiss, Swete).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보좌'는 간혹 하나님께서 하늘을 보좌로 삼으신 것을 묘사하기도 하며(사66:1; 마5:34; 23:22),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천상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나(왕상8:27), 본문에서는 영광과 심판을 동반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낸다(왕상22:19; 사6:1; 겔1:26;단7:9; 외경 I Enoch 18:14,19; Levi5:1; Moses4:2, Ford). 한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5절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다음 장에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타나 1장과 유사하게 삼위 하나님에 대한 진술의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1:4-6).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심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권세 그리고 통치하심이 완전한 것임을 나타내신다(Greijdanus, Lenski).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 '모양'의 헬라어 '호라세이'(*)는 문자적으로 '보이는 것'이란 의미로 개역성경의 '모양'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나은 번역이다. 왜냐하면 '모양'의 경우 하나님을 마치 물질적인 측면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9:17; 겔1:5,26). 한편 본절에 언급되는 3개의 보석 중 '벽옥'과 '홍보석'은 현재 어떤 종류의 보석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홍보석'은 사데에서 주로 생산되며 진홍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보석은 분명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일진대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벽옥과 홍보석이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이는 보석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출28:17-20) 이스라엘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Walvoord, Morris).(2)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위엄, 거룩, 순결을 상징하며, 홍보석은 심판과 진노를 상징한다고 본다(Plummer, Mounce). (3)혹자는 벽옥이 하나님의 청결을, 홍보석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Barclay). 이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Johnson, Mounce).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무지개'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녹보석에서 빛나는 일종의 무지개와 같은 후광으로 본다(Ladd). (2)혹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나 영광스런 권능과 의로움으로 해석한다(Lenski). (3)혹자는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광채로 본다(겔 1:27, 28, Johnson). (4)혹자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약속하시는 것으로 본다(창9:12,13, Morris, Caird). 이 가운데 마지막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한편 '녹보석'에 대해서 혹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나(Ladd)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1:19, Morris, Mounce).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 '이십사 장로'에 대한 견해는 다양한다. (1)혹자는 구약의 열 두 족장과 신약의 열 두 사도가 합쳐진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21:12-14, Vincent, Plummer, Alford, Weiss). (2)혹자는 종말 때에 일어날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alvoord). (3)혹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Hendriksen, Swete, Wette). (4)혹자는 구약의 이십 사 제사장 반열을 나타낸다고 본다(대상21:1-19, Hilgenfeld). (5)혹자는 천상의 천사들을 가리키거나 혹은 찬사장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pitta, Reuss). (6)혹자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나(Clarke, Rist) 유대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본다(Wordsworth). (7)혹자는 바벧론 신전의 이십 사 성좌에해당하는 유대 인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Beasley-Murray). 이런한 다양한 견해 중 어느 하나가 정확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단지 여러 사실을 종합해 볼 때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며 찬양하는 일에 종사하는 영적 존재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5:8,14; 11:16,17; 19:1-5, Charles, Mounce, Johnson, Stonehouse). 한편 본문의 '이십 사'라는 숫자는 본서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완전성과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12'의 곱절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상징한다.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흰 옷'은 성도나 찬사가 입고 있는 것으로 의와 청결을 상징한다(3:18; 7:14, Morris). 또한 금 면류관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파누스 크뤼수스'(* )는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승리의 화관으로(2:10)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의 존귀와 승리를 상징한다(Trench).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쓴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4:5

@보좌로부터 번개과 음성과 뇌성이 나고. - '보좌로부터'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중심성을 나타낸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현상들은 본서에서 성전과 연관되어 나타나(11:19, Johnson, Ford) 위엄과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장엄한 임재와 성도들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출19:16; 욥37:14; 시29:3; 겔1:13).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 '일곱 영'은 충만히 임재한 성령을 가리킨다(1:4, bengel, Plummer, Vincent, Ladd). 이와 비교된'등불'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파데스'(* )는 '촛대'를 의미하는 '뤼크니아이'(* , 1:20)와는 달리 '횃불'을 의미한다(겔1:13; 슥4:12). 이는 창조의 보존과 유지에 관여하는 성령의 다양한 사역과 속성을 암시한다(1:4; 3:1).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 '수정'의 헬라어 '크뤼스탈로'(*)는 원래 '얼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투명한 결정체를 가리키며(출24:10; 욥37:8; 겔1:22), '유리'(* , 휘알리네)는 본래 '빗방울'을 나타낸다. 이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맑은 속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여기서 '유리 바다'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악을 잡아 가두는 곳'으로 해석한다(Caird). (2)혹자는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피'로 해석한다(Hendriksen). (3)혹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상징'한다고 본다(Lenski). (4)혹자는 '보좌에서 베푸신 넓고 빛나는 장면의 장엄성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지는 모든 고난, 역사, 섭리 진행 과정과 그 의미 등]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히4:13, Johnson, Mounce).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 하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 '가운데'로 번역된 헬라어 '엔 메소'(*)는 '중앙'이란 의미가 아니라 '가까이에'라는 의미이며, '주위에'의 헬라어 '퀴클로'(* )는 단지 장소를 나타내는 여격이다. 따라서 본문은 보좌를 중심하여 서로가 마주보거나, 그 주위를 둘러선 광경을 나타낸다(겔1:12, Brewer).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 본문은 이사야서의 스랍과 에스겔의 그룹들 가운데서 선지자가 본 네 생물의 형상을 반영한 것이다(사6:2; 겔1:5-25; 10:1-22). 차이점은 본서의 네 생물이 각각 하나의 얼굴과 여섯 날개를 가진 반면 에스겔서의 네 생물은 각각에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것이다. 여기서 네 생물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혹자는 초대 교회 때부터 사복음서를 의미했다고 주장한다(Irenaeus,Augustine, Jerome). (2)혹자는 신약 시대의 4명의 사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otius). (3)혹자는 이스라엘의 네 진영을 의미한다고 본다(민2:2, Clark, Scott). (4)혹자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Plummer, Alford). (5)혹자는 생명과 지능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기괴한 상징으로 해석한다(Moffatt). (6)혹자는 장로나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천상의 영적 존재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8절; 11:15, Mounce, Beckwith, Johnson). 이 견해들 가운데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영적 존재들로서 네 생물이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8절). 한편 '눈이 가득하더라'는 무한한 지적 능력과 통찰력 및 지혜를 상징한다(겔1:18; 10:12, Beckwith, Johnson).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 사도 요한이 본 네 생물의 형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겔1:4,6,10,14에서 언급된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네 생물의 모습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1)혹자는 이 네 생물들이 피조물의 대표자로서 사자는 용기를, 송아지는 힘을, 사람은 지혜를, 독수리는 속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Swete). (2)혹자는 네 생물의 신분이 하나님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자는 '왕권'을(왕상7:29; 10:20; 대하9:18,19), 송아지는 '힘'을(왕상7:25), 사람은 '영성'을(창1:27), 독수리는 '신속한 행동'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피조물의 대표적인 네 생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피조물의 섬김과 경배를 시사한다(Ford, Mounce). 한편 초대 교부들은 네 생물의 모습을 신약 성경의 사복음서와 연결지어 해석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본장 주제강해 '네 생물에 대하여'를 참조하기 바란다.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 사6:2에서처럼 네 생물들이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본래 '날개'는 속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Ford)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신속하게 성취함을 상징한다(시18:10; 겔10:16;,Mounce, Lenski). 한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 네 생물들은 쉬지 않고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하다'라고 세 번 언급하는 것은 히브리식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이며(사6:3), 유대교와 초대 교회에서는 삼위 일체와 관련하여 예배에서 의식상의 표현으로 나타났다(Mounce, Ford). 이러한 거룩에 대한 최상의 표현은 어떤 것에도 존재의 기반을 갖지 않으시고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함의 속성을 시사한다(출3:14, Johnson, Ford, Lenski). 한편 '전능하신 이여'는 1:8에서 이미 언급된 하나님의 칭호로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시사한다(창18:14,렘32:27; 마19:26, R.Martin). 또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란 칭호도 이미 언급된 것으로(1:8)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하나님 칭호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처럼 시,공의 제한을 초월한 자임을 강조하며 섭리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한 찬양의 내용들은 피조물들이 영원토록 본질적으로 찬양해야 할 것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피조물의 사명을 암시한다(시148:1-14).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

에. - 본절은 앞절에서 네 생물들이 찬양한 내용의 반복이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는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대한 찬양이며, '세세토록 사시는 이'는 8절의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 중 '장차 오실 자'에 대한 강조와는 달리 하나님 자체의 본질적 영원성을 나타낸다. 한편 '돌릴 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탄 도수신'(*)은 연속적인 반복의 개념보다는 '그들이 돌릴 때마다'라는 간헐적인 때를 의미한다. 이는 영적 존재인 네 생물의 주요 임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 본문은 네 생물들이 찬양할 때에 하늘의 영적 존재들인 장로들도 함께 찬양함을 묘사한다. 여기서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드리는 절대적 경외와 존경을 나타낸다.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 본문 역시 절대적 권위와 위엄을 가지신 이에게 복종과 경배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본문의 '면류관'은 영적 존재인 이십사 장로들이 승리하여 받은 화관으로 영광과 승리와 존귀를 나타낸다(4절; 2:10). 따라서 본문은 이십 사 장로들이 소유한 모든 영광과 승리도 모두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을 시사한다(시33:6-9; 102:25; 빌2:10,11, Johnson).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 본문의 찬양 칭호는 당시의 황제에 대한 절대권을 표시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환상 속에서 이십 사 장로들이 드리는 찬양 호칭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주가 되심을 명백히 한다.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 이십 사 장로들의 두번째 찬양내용은 9절에서와 같이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것에 대한 찬양이다. 단지 9절에서의 '감사'가 '능력'으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증거하는 창조의 능력을 가리킨다.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 헬라어 본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 , '때문에')가 있어 본문이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유를 나타낸다. 여기서 '지으신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사스'(* )는 히브리어 '바라'(* ,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창1:1)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를 나타낸다. 이는 본문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대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임을 나타낸다(골1:16; 시148:5, Mounce, Lenski). 이처럼 창조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의 감사의 기초가 된다(Bengel).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주의 뜻대로 있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토 델레마 수 에산'(*)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뜻을 위해 있었고'라는 의미로 이는 창조 목적을 나타낸다. 즉,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있었고'의 헬라어 '에산'은 미완료 시제로 만물의 창조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만물의 현상이 하나님께 그 존재 기반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Alford, Johnson). 한편 '지으심을 받았나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스데산'(* )은 부정과거 시상으로 만물의 존재가 하나님에게서 시작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만물이 존재하고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Johnson, 고전8:6; 골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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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cherub bWrK](3742, 케루브)
케루브(명남)는 천사와 같은 계열의 존재들, '그룹'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1회 나온다.
(a)  이 단어는 부분적으로는 사람, 부분적으로는 동물로 표시되는 천사와 같은 존재의 다양한 표상에 관한 지칭이다.
이 단어는 보통 '그룹들'(cherubim)이라는 복수형으로 사용된다.
이 단어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아카드어의 동족어 동사는 '축복하다, 찬양하다,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CAD).
그룹의 특성 중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숭배인데, 아마 이러한 기원이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들은 때때로 스랍 또는 불타는 것(사 6:2-6)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날개달린 천국의 전달자인데,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받들어 지키고 있다(시 80:1, 시 99:1, 사 37:16). 그들의 신속하게 날음은 바람에 비유된다(삼하 22:11, 시 8:10).
그룹은 잃어버린 낙원 동산을 지키는 천사로서 처음 언급된다. 그들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다(창 3:24).
다음으로, 그룹들은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덮고 있는 순금으로 된 날개 달린 모습으로 나타난다(출 25:20).
또한 이들은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휘장과 지성소를 분리시키는 휘장을 장식하여(출 26:1, 출 26:13, 출 26:3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천군 천사들을 상징하였다(삼상 4:4, 삼하 6:2, 왕상 19:15, 대상 13:6).
---여기에서 그들이 얼굴, 사람 모양,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들의 모습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출 25:22에서 하나님이 두 그룹(mibbin) 사이의(밉빈[mibbin]) 속죄단 위(메일[me'al])에서 사람과 말씀하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민 7:89).
솔로몬의 성전에서 그룹은 장식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솔로몬 성전의 강조점은 날개를 성소의 넓이만큼 펼친 그룹의 크기에 있었다(왕상 6:23-29, 왕상 7:29, 대하 3:10-13).
예언자들 중에서 에스겔만이 이 단어를 언급한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던 황금 그룹들은 버림을 당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원하는 바를 수행하는 살아있는 그룹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었으니 이는 그의 보좌의 위치를 성전으로부터 옮긴 것이다(겔 10장, 참조: 겔 1:5이하).
에스겔서에서 그룹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호위하고 있다(겔 28:14-16 RSV).
(b)  후기 유대교는 에스겔서의 병거 보좌를 상당히 명상하였으나 이 명상은 랍비들에 의해 훼방을 당했으며, 병거가 나오는 에스겔서의 장들을 예배시에 사용하는 것은 미쉬나(Mishnah)에서 금지 당했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그룹들을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선 천군들로 간주하였고, 랍비들은 그룹들은 외형상 소년들과 같은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필로는 그 이름이 지식과 통찰에 관련된 것이라고 하고, 요세푸스는 날개달린 생물이라고 언급한다.
마법의 파피루스에서는 마법의 효과를 얻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이 이름을 사용한다.
(c)  신약성경에서 케루빔은 히 9:5에 한번 나타난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영광의 그룹들"이라는 문구는 지성소를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요한계시록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룹과 스랍을 암시하는(계 4:6-8) 특유한 표현으로 보좌 위에 앉으신 이를 예배하는 생물들을 묘사한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있든지 지상에 있든지 간에 특별히 하나님의 보좌와 관계가 있다.
이들은 보좌를 호위하며 보좌하여 서 있으며 또한 자신들이 예배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신속한 전달자로서 활동한다.
할데만(I. M. Haldeman)은 언약궤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하는데 그 까닭은 속죄소(2435)가 특별히 우리 주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심"(롬 3:25)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화목의 수단 혹은 화목의 장소를 의미하는 같은 말을 발견한다. 화목의 장소는 십자가요, 그 방법은 그리스도의 피였으므로 그 단어의 두 가지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 집중된다.
"영광의 그룹들"(하나님의 임재)이 "속죄소"를 덮었으므로(히 9:5), 그 속죄소는 언약궤를 덮어 완전하게 하였다(그것은 꽉 짜여져 정확하게 맞은 언약궤의 뚜껑이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심령은 속죄소 아래에서만 그 완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속죄소"는 "영광의 그룹들"을 이루고 있는 구조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과 심령의 연합을 뜻하며 거룩한 날개의 그늘 밑으로 심령을 인도하는 것을 뜻한다.
이 연합은 속죄소와의 완전한 연합을 말하는 것이므로 심령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그늘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일치됨과 동시에 완전히 예속됨으로 오는 것이다(R. S. Taylor). (참조: J. G. Balawh; E. Loh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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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랍 불뱀,  #r;c;(8314, 사라프)
사라프(명남)는 사라프(#r'c; , 8313)에서 유래했으며, (a) '불뱀(맹독의 뱀) fiery serpent', (b) '스랍 seraph'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회 나온다.
1. 사라프(불뱀)는 광야의 독사에 대해서 3회(민 21:6, 민 21:8, 신 8:15), 상징적으로는 위협적인 위험한 뱀의 뜻으로 두 번 사용된다(사 14:29, 사 30:6).
광야의 뱀들은 이스라엘의 불평을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사용된 자연 현상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만든 놋뱀을 통한 치유 행위는 그것이 예표하였던 그 대상과 같이 기적적인 것이었다(요 3:14).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자기가 들려질 것에 대해 언급하실 때 그는 사실상 그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들린다'는 표현은 예수님 당시 널리 이해되고 있었던, 십자가의 죽음을 뜻하는 완곡어법이었다(요 12:32).
이사야서에서 KJV는 "the fiery flying serpents"(나는 불뱀)라고 번역했는데, BDB가 제시한 바와 같은 신화적 용은 아니다.
이러한 뱀들에 "불"뱀이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독이 침입했을 때의 불타는 듯한 고통에서 연유한 것이며 '난다'는 표현은 의심할 여지없이, 믿을 수 없이 빠른 뱀의 공격을 언급한 것이다(NIV: "darting venomous serpent" 돌진하는 독사들)(R. L. Harris).
2. 사라프(스랍)는 사 6:2, 사 6:6에서 사용되었다.
이 스랍들은 천사적 피조물로서 성전에 장식된 그룹들이나 에스겔의 후기 환상 중에 나오는 그룹들과 확실히 유사한 면이 있다.
계 4장의 "생물"(NIV: "living creatures")은 사 6장과 겔 1장의 요소들을 겸하고 있다.
이 생물들은 BDB가 말한 대로 "뱀들의 몸을 가진 원래 신화적으로 상상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문맥 내에 뱀들의 몸을 시사해 주는 요소는 전혀 없다. 더구나 그들은 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다(사 6:2).
이 천사적 존재들은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밝게 빛났으며, 이것은 천상 궁전의 순결과 권능을 상징하였다. 그들은 밝게 빛나는 외모로 묘사된 케루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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