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0장 [458.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327.주님 주실 화평]
**받은 바, 그 말씀을 따라 가는 자인가, 아니면 사람을 따라 가는 자인가....
[창12:4.상.]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So Abram departed, as the LORD had spoken unto him; and Lot went with him..
**그대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의 종인가, 어떤 사람인가...동행하는 자로 하여금 [단독자로서 직접!!] [그대가 바로 그렇게 살듯이]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도록 적절한 때를 따라 권하고, 돌보며, 세우며,격려함으로써 이끌되 동행하는 자 그 자신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믿고 살고 누림 통해 실지로 JC로 사는 자 됨이 중요하다.......사람이나 환경-상황을 신뢰함이 아니라 그안에서 말씀하사 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JC를 보고 듣고 발견하여 따르는 것이 [진정한 명철, insight, 그 속사람과 근본동기, 길과 행위, 선택 자리를 분별함]이요 세상 형통(easy-going)가운데라도 영적형통(투브, 하나님 임재와 하나된 연합의 하루하루) 본체이신 참생명JC없이는 스치는 바람처럼 허망무상한 것임을 기억하라.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변호하다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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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rinthians 10 Amplified Bible
==Paul Describes Himself
1 Now I, Paul, urge you by the gentleness and graciousness of Christ—I who am meek [so they say] when with you face to face, but bold [outspoken and fearless] toward you when absent!
2 I ask that when I do come I will not be driven to the boldness that I intend to show toward those few who regard us as if we walked according to the flesh [like men without the Spirit].
3 For though we walk in the flesh [as mortal men], we are not carrying on our [spiritual] warfare according to the flesh and using the weapons of man.
4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physical [weapons of flesh and blood]. Our weapons are divinely powerful for the destruction of fortresses.
5 We are destroying sophisticated arguments and every exalted and proud thing that sets itself up against the [true] knowledge of God, and we are taking every thought and purpose captive to the obedience of Christ,
6 being ready to punish every act of disobedience, when your own obedience [as a church] is complete.
7 You are looking [only] at the outward appearance of things. If anyone is confident that he is Christ’s, he should reflect and consider this, that just as he is Christ’s, so too are we.
8 For even though I boast rather freely about the authority the Lord gave us for building you up and not for destroying you, I will not be ashamed [of the truth],
9 nor do I want to seem to be trying to frighten you with my letters;
10 for they say, “His letters are weighty and forceful and impressive, but his [a]personal presence is unimpressive and his speech contemptible [of no account].”
11 Let such people realize that what we say by word in letters when we are absent, is the same as what we are in action when present.
12 We do not have the audacity to put ourselves in the same class or compare ourselves with some who [supply testimonials to] commend themselves. When they measure themselves by themselves and compare themselves with themselves, they lack wisdom and behave like fools.
13 We, on the other hand, will not boast beyond our proper limit, but [will keep] within the [b]limits of our commission (territory, authority) which God has granted to us as a measure, which reaches and includes even you.
14 We are not overstepping the limits of our province, as if we did not [legitimately] reach to you, for we were the [very] first to come even as far as you with the good news of Christ.
15 We do not go beyond our proper limit, boasting in the work of other men, but we have the hope that as your faith [in Christ and His divine power] continues to grow, our field among you may be greatly expanded [but still within the limits of our commission],
16 so that we may preach the gospel even in the lands beyond you, but not to boast in work already accomplished in another one’s field of activity.
17 However, “Let him who boasts boast in the Lord.” 18 For it is not he who commends and praises himself who is approved [by God], but it is 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and praises.
==Footnotes
2 Corinthians 10:10 Among the Greeks, a speaker’s presence and delivery were as important as his message, as the orator Demosthenes made clear when he said that the three most important elements of a speech are delivery, delivery, and delivery. However, Paul did not follow these rules because the message of salvation does not need to be presented with fanfare in order to reach the hearts of the audience.
2 Corinthians 10:13 I.e. ministry to the Gen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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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0장 (개요)
거짓 사도로 인한 적대적 방해와 반대를 경험한 것이 고린도에서보다 더 심한 곳이 없었다. 그곳에 그는 많은 원수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위험을 당하고 원수를 만나며 위선적인 형제들을 만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령한 바울조차도 그러했다.
그는 비록 모든 행동에 있어서 흠이 없고 해치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나 겸손하고 봉사했으나 그에게 원한을 품고 시기하며 그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넘어지게 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 언급하며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해시킨다.
Ⅰ. 이 장에서 바울은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전도의 능력을 말하고 복종치 않는 자들을 벌하라고 말한다(1-6).
Ⅱ.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그의 사도임을 밝힌다(7-11).
Ⅲ. 거짓 선지자들의 행동을 피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한다(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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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온유함과 엄격함(고후 10:1-6)
Ⅰ.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한다. 바울은 엄하게 대하지 않기를 원했다.
1. 바울은 대단히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말한다.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1절)
우리는 이 서신의 서론에서 디모데를 대동시킴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말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난했지만 이 중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생각하고 겸손하고 온유함을 보인다.
이 그리스도의 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바란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가 어떠한 사람에게 거칠고 엄하게 대하고 싶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 일절 오래참으심을 생각해야 한다.
그가 육신으로 계실 때에 어떻게 행하시고 불쌍한 영혼을 어떻게 영접했는지 생각해 보자. 바울도 얼마나 겸손하게 말하는가.
"대면하면 겸비하고" 비록 원수들이 나쁘게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면서 말했지만 바울은 자신을 (또한 연약한 자임을 인정하면서)낮추어 생각하고 겸손하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결점을 깨닫고 [스스로 주앞에서 인정하며 회개하고] 남들이 그 결점 때문에 비난하여도 [주를 바람으로써]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2. 엄하게 될 경우가 되지 않도록 바울은 원한다(2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육체대로 행하며 육의 계획과 세상의 방법대로 행동하며 목회한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자들을 처벌할 권리를 [함부로 경홀히] 행사하지 않도록 바란다.
이 육체의 방법은 바울이 버린 것이며 복음에 어긋나며 사도의 계획이 결코 아니었다.
Ⅱ. 그는 복음의 능력과 비방자를 처벌할 능력를 주장했다.
1. 그의 전도의 능력을 말한다(3,5절). 다음을 관찰하자.
(1) 사역의 일은 육체의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목표를 가지고 영적 원수와 싸우는 영적인 싸움이다.
비록 사역자들이 육체 중 에서 행하고 혹은 몸 안에서 살지만, 일상의 일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행동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일과 싸움에 있어서는 육으로 행하거나 육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면 안 된다. 이 육은 감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장사되어야 한다. 죽어지고 억제되어야 한다.
(2) 복음의 교리와 교회의 훈련은 이 싸움의 무기이다.
이 무기는 육에 속한, 육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외부적인 힘은 복음의 방법이 아니다.
진리의 능력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하는 강력한 설득력이다.
양심으로 박해에 대항하는 것이다. 양심은 하나님께만 책임을 가진다. 사람은 무력이 아니고 하나님과 자기의 의무에 설복되어야 한다.
우리의 [싸우는 바] 싸움의 무기는 [영에 속한, 믿음-소망-사랑과 하나님의 진리말씀인 바] 힘이 있고 강력하며 정당하고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담대하다.
진리의 증거는 확신을 주며 설득력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제도이며 축복이다. 모든 반대는 그의 승리의 복음 앞에 거꾸러진다.
다음을 관찰할 수 있다.
① 죄의 권세와 인간의 마음에 있는 사탄에 사로잡혀 복음을 반대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무너진다,
무지와 편견과 정욕이 어떤 인간에 있어서는 사탄의 보루이다.
헛된 생각과 육적인 억측과 꼬리 무는 붙잡힌 생각과 교만한 마음이 어떤 영혼에 있어서는 사탄의 성곽이다. 즉 "하나님이 아는 것을 대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악마는 사람들이 복음에 순종하는 것을 막고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여 자기의 소유로 만든다.
②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하는 정복이 능력을 보라. 이 사탄의 성곽은 복음에 의하여 무너진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파괴된다.
다음을 주목하자. 영혼의 중생은 사탄 정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2. 불순종자를 특별한 방법으로 벌할 수 있는 바울의 권리가 주장된다(6절).
[JC로부터 보냄받은]사도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수상이며 그의 군대의 사령관이다.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권세와 권력을 지금 가지고 있다. 바울은 개인적인 복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의 처벌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비록 사도가 온유와 겸손을 보였지만 그의 권위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순종하는 자를 칭찬하나 다른 사람은 심한 책망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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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 보는 판단(고후 10:7-11)
이 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멸시하고 판단하고 악평하는 반대에 대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설명한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7절). 이것이 사물이나 사람을 평가하는 올바른 방법이며 나와 나의 원수들을 구별하는 바른 규칙이겠는가?"
외모에 있어서는 바울은 미천하였다. 그의 경쟁자들과 같이 풍채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평가가 아니다.
아마 어떤 사람이 외모와 힘을 자랑한 것 같다. 그러나 거짓 외모가 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있다. 은혜가 없으면서 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에 관해서 두 가지 일을 말한다.
Ⅰ.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관계.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다"(7절).
아마 바울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와 종으로서의 관계를 자랑한 것 같다. 이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올바른 토론에 있어서는 타당한 주장을 인정해야 하며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그리스도에게 속해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자랑하더라도 우리도 그리스도에 속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랑의 양보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부정당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속해 있고 주님께서 받아주시기에 용납된다. [그러기에] 서로 많은 다른 점이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다 같이 [상대방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부정하면 안 된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우리가 역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우리는 같은 신앙 고백을 하고 같은 규칙을 지키며 같은 기초 위에 서 있고 같은 유업을 소망한다.
Ⅱ. 그리스도를 받은 사도로서의 권위. 이것을 먼저 언급했다(6절). 다시 사실임을 강조하면서 말한다. "주께서 그것을 주시었다."
그것은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이다. 이것은 바울이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다(8절).다음을 관찰하자.
1. 그의 권위의 성질. "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세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의 권위의 목적이다. 바울과 모든 사도들이 가진 특수 권위의 목적이었다.
2. 바울이 그의 권위를 말하는 주의. [위협하는 꾸지람이나 적대적] 호언으로써 그들을 놀라 떨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성난 어조로써 하는 것도 아니다(9절).
이리하여 바울에게 향하는 반대를 막는 것이다(10절). 순종하는 자를 놀라게 함도 아니고 불순종자들에게 행위로써 할 수 없는 것을 편지로 쓰지도 않았다.
그의 원수들이 이것을 알기를 원했다(11절). 사도의 권위로써 참 권위를 나타내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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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고후 10:12-18)
Ⅰ. 바울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거짓 사도들이 한 것처럼 그러한 규칙으로 행동하기를 거절했다(12절).
거짓사도들은 스스로 자기를 추천하는 잘못된 방법을 취하였다.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며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거짓사도들은 자기 자신의 업적을 생각하고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의 은혜와 은사와 권위와 능력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월한 자와 비교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우리의 은혜와 은사를 감사하여야 하나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만이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속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결심하자.
Ⅱ. 바울은 자기 행동에 대한 보다 좋은 규칙을 세웠다. 즉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라"(13절).
그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권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으며, 그에게 위탁된 일과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 [함부로]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남의 한계를 [자기것처럼] 자랑하는 법이다."
바울의 결심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었다. 물론 바울은 여러 곳에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였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했다.((주님 말씀하시면...주님 뜻이 아니면..))
Ⅲ. 그는 이 규칙에 의하여 행동했다.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14절)
특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러하였다. 사도의 권위로써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바울은 다른 사람의 노력을 [자기 것으로] 자랑하지 않았다(15절).
Ⅳ. 바울은 이 규칙을 잘 지켰다. 바울의 소망은 그들의 믿음이 증가되며 그들의 범위를 넘어서 아가야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했다.
바울은 그의 임무나 다른 사람의 선을 넘은 적이 없다.
Ⅴ. 바울은 자기의 자랑을 너무 한 것같이 자기를 억제한다.
그의 원수들의 부당한 비난과 생각이 바울의 자랑의 말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나쁜 방법이 바울이 지켜 온 바, 옳은 방법을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너무 자랑하였을까 염려한다. 두 가지 일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1.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17절).
만약 우리가 좋은 규칙으로써 선한 일을 하였다면 모든 영광과 칭찬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특히 목사들은 자기들의 사역에 영광을 누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성공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2.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18절).
모든 아첨 중에서 자기 아첨이 가장 나쁘고 자기 칭찬도 그만큼 나쁘다. 자기 자랑은 교만 만큼 헛되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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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제 10장
=====10:1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 - 공동번역이나 RSV에는 주어 '나 바울'이란 표현이 문장 맨 앞에 나와있다. 그것은 이 부분이 강조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여 말을 시작하는 경우는 갈 5:2와 살전 2:18 뿐인데 이 두 부분에서는 바울의 강하고 확신에 찬 진술이 이어진다.
한편 본 구절은 바울이 자신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타낸 표현이 아니라 바울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이 그에 대해 비난한 내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바울은 멀리 떨어져있어 편지를 쓸 때는 담대하고 강한 어조로 말하지만 막상 얼굴을 대면하고 있을 때는 비굴하고 우유 부단하다는 비난을 받았는데(10절; 고전 2:3), 본문에서 바울은 이에 대해 해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 바울이 사람들과 마주 대할 때 자신의 태도 및 요구를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비굴한 사람이라는 평은 사실 바울의 온유와 관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이 온유(溫柔)와 관용(寬容)은 그리스도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온유한 자로 소개하셨을 뿐 아니라(마 11:29)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5:5).
혹자는 예수에게 있어서 '온유함'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에서 생겨나는 힘으로 영적인 차원의 것이라고 보았다(Lowery). 또 혹자는 '온유함'을 기독교의 특징적인 덕목 또는 은사로 여겼다(Barrett, 갈 5:23;6:1; 골3:12).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든지 간에 이 온유함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한 태도로 나타난다. 바울 자신의 삶이 예수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때 그는 예수를 본받아 '온유함'과 '관용'의 덕목으로 규정되는 삶을 살고자 했고 인내와 용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바로 이러한 그의 삶이 적대자들에 의해 오해된 것이다.
=====10:2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 - 여기서 드러나는 바 바울에게 가해진 또 하나의 악의적 모함은 그가 세상적인 가치 기준과 동기에 따라 행동하며 이기적인 욕망과 육체에 따라 행한다는 것이었다(1:17;2:17;3:5;4:2;7:2).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유하고 관대하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그에 대해 터무니없는 악선전을 하여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담대(膽大)하게[=강경하게] 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만큼은 그렇게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로 하여금 강경한 태도로 대하는 일이 없도록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 잘못을 고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0:3
@육체에 있어 - '육체에 있어'(* , 엔 사르키)라는 표현은 바울이 육체에 종속되어 있다거나 육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 참된 기독자란 삶의 모든 행동과 행위의 근본 동기와 원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기 때문이다(롬 8:9).
다만 그 말을 '속된 세상안에서'(공동번역, 고전 5:10), 또는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상황 안에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이 비신앙인들 혹은 가짜 신앙인들과 다른점은 그가 육의 제한성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바울이 싸움을 하는데 있어 자기 중심적인 동기나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권세(權勢)를 확립하기 위하여 싸우지 않음을 뜻한다.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강력이라 - 앞절에서 말할 바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바울이 싸우기 위해 지닌 무기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파괴하는 강력한 것이다(엡 6:11-17).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육체에 속한 병기 즉 세상적 학문, 인간적인 영향력, 권위있는 추천서(3:1),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사학적 달변(고전 2:1) 등 인간적인 것들을 가지고 맞서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병기 곧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온유하고 관대한 [또한 친절과 겸손, 온화한] 예수의 성품을 가지고 대응(對應)한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계시, 곧 자비-은혜-노하기를 더디함-인자와 진실이 무궁함의 성품, 하나님 지식-하나님 경외함-지혜-총명[명철]을 주시며- 가르치사 일깨우며 깨닫고 깨우쳐 자원 헌신함의 즐거움 안에 살도록 인도하시며 [걸음걸음마다] 이루시는 지략/도략-기름부음으로 늘 충만케 하시는 재능과 권능의 성령님을 신뢰하며, 그 무엇보다도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희락 안에 실제적인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기쁨-사랑 충만함 누림안에서 사랑-희락-화평-일절 오래참음-자비(긍휼과 친절)-양선(지고지선의 하나님을 공급함..선대)-충성(영과 진리로 말씀과 성령따라 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믿음으로 올인 : 순전/온전/완전/진실-신실-앙망/신뢰하는 절대적/적극적/능동적/자원하는 믿음)-온유(겸손/겸비-용서-중보-배려,온화, 친절, 관용)-절제(날마다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의 패러다임/뜻과 어떠하심, 생각과 심정 알아드리며, 옛사람과 죄를 대적함으로써 십자가죽음 적용함)의 성령 열매를 공급함]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바울의 무기는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전능으로 덧입혀질 때 그 어떤 대적도 당할 수 없게 된다(고전 2:4, 5).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 본문에서 '이론'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기스무스'(*)는 하나님과 분리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생각과 도모(圖謀), 사고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히 본문에서 이 [이론]이란 단어는 '허황된 이론'이나 '궤변'을 뜻한다. 그렇다고 보면, 바울이 지금 공격의 초점으로 삼는 자들은 고린도 교인들이라기 보다는 외부에서 침입한 거짓 사도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 본 구절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공동번역)을 의미한다.
이 교만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이고(롬 12:16)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롬 1:18-23). 그리고 교만의 가장 치명적인 불행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복종케 하니 -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에마'(* )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빌 4:7),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2:11;3:14;11:3). 여기서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공동번역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계략'으로 번역하여, 본절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위압적(威壓的) 권능이 암시되어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로잡아'(* , 아이크말로티존테스)는 '전쟁 포로'를 가리키는 헬라어의 명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를 '복종케 하니'와 합하여 '전쟁 포로로 삼아 강제적으로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본절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하나님의 무기를 가지고 임하는 싸움의 최종적 목적은 자신의 유익이나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써 적대자들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을 따르려는 바울의 태도가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다 함은 육체의 병기를 가지고(4절) 육체의 방식으로(3절) 싸우는 자들이 상대를 완전히 파탄(破綻)시키는 것과 달리 선한 목적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구원으로 이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0: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 - 여기서 '너희'는 고린도 교인들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 구절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대리자인 바울에게 복종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모든 복종치 않는 것 - 이 말에 해당되는 자들은 외부에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이나 끝까지 이들에게 동조하는 고린도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복종치 않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것인가 ? 혹자는
이것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바울 사이에 맺어진 선교 영역에 대한 약속(갈 2:1-9)에 불복종하고 자신들이 침범해서는 안될 사도 바울의 선교 영역에 침입한 것이라고 본다(Barrett). 이것은 당시 초대 교회의 상황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5절과의 관계에서 볼 때 선교 영역에 관한 합의에 대한 불복종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에 대한 불복종이 더 강조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바울이 본절의 진술을 하게 된 배경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일단의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바울 사이에 합의된 바 있는 선교 영역의 구분을 무시하고 바울의 선교지인 고린도에 침입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언동을 하였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왜곡시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5절). 그리고 어느 정도는 고린도교인들이 이들에게 동조하였을 것이며,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인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본절은 고린도 교회의 사정이 디도가 그곳을 다녀가 바울에게 보고할 때에 비해 그리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임을 말해준다(8-9장).
=====10:7
@외모만 보는도다 - 이에 대해 공동번역은 '여러분은 사실을 똑바로 보십시오'로 의역했다. 즉 본문은 바울의 의모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바울의 행위에 대한 적대자들의 근시안적 판단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외모'는 외형적인 것으로(5:12) 천거서(3:1), 수사학적 언변(11:6), 권위에 찬 태도(11:20), 환상을 보는 것과 같은 신비적 체험(12:1-7)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있다(Harris).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징표(徵表)들에 쉽게 현혹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그러한 외부적인 요소들에 현혹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빈디쉬(Windisch)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 단순히 그리스도인됨을 의미할 수 있다. (2) 역사적인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리킬 수 있다. (3) 사도적 신분을 가리킬 수 있다. (4) 천적(天的)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주의적이고 영지주의적인 관계를 가리킬 수 있다. 이 가운데 첫번째 견해에 의해서 절의 요지를 파악하면, 바울의 적대자가 틀림없는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우리도(물론 바울을 가리킨다) 그에 뒤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바울의 적대자가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확신에 찬 선전을 했다면 그것은 은연중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대해 적대자들이 논한 적이 없다. 따라서 첫번째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연합에 대한 것도 아니기에 네번째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특수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도의 권위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린도에 들어온 적대자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야말로 권위있는 사도라는 것을 과시했으며 그에 비해 바울은 권위있는 사도가 아니라고 말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암시를 주었을 것이다.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부끄럽지 아니하리라 - 진정한 권위는 성도들을 망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양육(養育)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진정으로 주님께 받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적대자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자랑하자면 아무리 지나쳐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1:6;11:21-23). 하나님의 진리만을 전하였고(2:17), 항상 공평하게 행하였으며(11:1-15),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인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다(7:3).
만약 누가 사도라고 자처하면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자신의 권세를 내세운다면 그 사람은 결코 사도가 아니다. 도리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고전 3:17).
=====10:9
@편지들로...않게 함이니 - 본절은 앞절과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본문의 뜻은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위협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앞에서(8절)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고 말한것과 본절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 이것은 바울이 보낸 편지에 대해, 그가 편지를 쓸 때는 강하고 담대한 것 같으나 만나서 말할 때는 유약하기 짝이 없다는 비난이 있었다는 10절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
아마 그 편지는 '가슴아픈 방문' 후에 쓴 '준엄한 편지'였을 것이고 그 편지에 대해서조차 적대자들은 바울이 면전(面前)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편지로 위협하려 한다고 악선전 하였을 것이며,. 혹시 이런 비난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바울은 미리 해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는 사도로서의 권위가 있으나 편지를 통해 위협하는 것과 갈은 방식으로 그 권위가 행사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결코 그는 그런 식으로 권위를 행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권위는 성도를 세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위해서는 행사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10:10
@그 편지들은...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 바울이 위협용 편지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랐던 그 편지는 곧 '준엄한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편지를 쓸때의 상황이 그랬던 만큼 그 내용이 매우 강한 어조로 쓰여졌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바울이 편지를 쓸 때나 그렇게 강하게 말할 뿐 직접 만나보면 그의 외모가 약해보일 뿐더러 말도 시원치 않다는 악선전을 하였다.
본문의 표현대로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바울의 풍채가 나약해 보였음을 말하는데 실제로 바울은 고질적이고 만성적 질병을 갖고 있었다(12:7; 갈 4:13-14) 또한 초대 기독교 전승(傳承)에 따르면 바울은 병을 갖고 있는 것 외에도 외모가 그리 보기에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한 예로 2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울과 데클라 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작은 키와 왜소한 체형, 'O'자형 다리와 양쪽 다 찌부러진 눈썹, 그리고 매부리 코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이 얼마만큼의 사실성을 지녔는지 분명치 않으나 바울의 외양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런 외부적인 것들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없었겠으나,그것이 바울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과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는 부족한 말솜씨(11:6) 등과 연결되어 그의 사도적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한 악선전의 재료로 사용되기에는 충분했다.
=====10:11
@이런 사람은...알라 -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악선전하는 자들은 바울이 결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떨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언제나 온유하고 관대한 면에서(1절)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편지로 쓴 말에 대해서는 만났을 때에도 그대로 실행할 것이다(6절;13:2, 10).
=====10:12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없노라 - 본문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이 자찬(自讚)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아마 자기들을 내세우기 위한 추천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적대자들은 추천서의 권위에 의존하여 자기들이 진정한 사도임을 과시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만 바울은 스스로를 추천하지도 않고 추천서에 의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3:1;5:12). 적대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도라고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도이다(갈 1:1). 그들은 비교를 통해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로서...헤아리고...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 사실 적대자들이 만든 표준이나 척도 즉 인간적인 지혜, 사도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위압적인 태도, 수사학적인 웅변술 등은 당시에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는 것이었다(Barrett)). 그러나 바울은 그런 기준들을 이미 오래 전에 하찮은 것으로 버렸다(4:5; 고전 2:1-5). 바울이 보기에 그런 척도들은 천박한 것이었고 그 척도를 가지고 자신을 추정하고 과시하는 것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10:13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 - 바울은 적대자들의 자랑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의 영역을 무시한 것이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노노스'(* )는 '길이를 재는 막대기', '줄자'라는 뜻인데 규범이나 표준의 의미로도 쓰이고(갈 6:16), 일정하게 한정된 영역을 가리키기도 한다(10:14-16). 본절에서 이 말은 후자의 의미이며 바울이 여기서 문제삼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 영역의 준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고(행 9:15; 롬 1:5;15:18), 그에게 이방(異邦)을 선교영역으로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합의된 바 있다(갈 2:9). 이런 한계에 입각하여 바울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롬 15:20). 바울이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계를 지키면서 행한 것이었다
=====10:14
@미치지 못할 자로서...이른 것이라 - 본절에는 두 가지 요점이 제시되어 있는데 첫째는 바울이 고린도에 갈 자격이 있고 고린도는 바울이 정당하게 선교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고린도에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바울 자신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남의 선교 영역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참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11:4).
=====10:15
@남의 수고를 가지고...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 바울은 결코 남이 수고한 것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롬 15:20).
고린도 교회는 다른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때 바울이 최초로 복음을 전하여 설립되었기에 고린도에 교인들이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였다.그러나 적대자들은 남의 선교 영역에 들어와서 바울의 업적이 자기들의 것인 양 자랑하였다.
@믿음이 더할수록...바라노라 - 바울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여 믿음을 갖게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의 선교영역이 더욱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롬 15:23, 24), 그것과 더불어 복음으로 말미암는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원했다. 이로써 그는 자기에 대한 성도들의 존경도 심화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선교 영역을 준수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16절).
=====10:16
@너희 지경을 넘어 - 본문의 의미는 고린도 지역을 넘어 로마와 서바나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복음을 증거하려 한다는 것이다(행 19:21; 롬 15:19, 22-24). 그 지역들은 남의 선교 영역이 아니며 그 누구도 복음을 증거하지 않은 불모지(不毛地)였다.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 본절은 고전 1:31에서와 같이 렘 9:22-24를 인용한 것인데, 그 내용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바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을 자랑치 말고 하나님 아는 것을 자랑하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자신을 자랑하기 보다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누구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참된 사도라면 그는 자기를 자랑하기보다는 자기를 통해 섭리하신 주님을 자랑할 것이다(공동번역, RSV). 바울은 적대자들의 허위적 자랑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정당화 하였지만 그는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다. 이런점에서 본절은 바울이 자랑하는 자가 된 것은 주를 더 자랑하기 위함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 본절 '자랑'에 관한 주제의 핵심이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진정으로 자신을 통해 인정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을 자랑하는 행위가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결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12절).
참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사도는 자신이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아(5:10) 자중하는 자이며 사람들로부터 안정받기보다는(마 6:2 ,6, 16)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이다(고전4:5; 롬 2:29).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 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똑바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기준에 의해 바울과 적대자들 중 누가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도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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