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3.2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눅13.회개의열매(학살된갈릴리인.실로암망대붕괴사망자.무화과나무).안식일축귀치유.Q나라생명능력.구원영생좁은문_고난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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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3장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회개할 기회, 구원 영생 얻을 <절호의> 기회를 붙잡으라(라합처럼, 수로보니게여인처럼..오늘을 붙잡으라 ㅡ 후회없는 삶 살라. [: 내일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모든 일마다 오직 하나님의 지시하심과 그 공급하시는 지혜를 따라 하나님 뜻과 영광[영원한 생명 얻는 구원 누림과 공급으로써] 위하고, 그 구원의 공급 통로 되기를 구하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아버지Q]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JC]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안식일에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시다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병약의 영>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창세 이전 우주적 반역시 물에 덮여 죽은 생물의 영으로서, <무저갱이 그 거처요> <여기에서는 병약의 영은> 사탄의 종노릇함..하늘 향해 바로 서서 볼 수 없고 오직 사탄의 세상만 보도록 강요하고 억압하는 영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Dear Woman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아무런 부탁도 요구도 없었으나 주님이 자원하여 <사탄에 묶인 여인을> 치료해 주고 계신다.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사탄은 악한 영을 이용하여 여인을 억압하였고, 종교 규정을 Q의 역사보다 더 중히 여기는 종교적 회당장을 이용하여 Q의 택한 백성을 그의 압제 하에 계속 두려하였는데, Q이 정하신 바 진정한 의미의 안식일은(창2:3) 속박 아래 두지 않고 사람의 안식(치유)을 위하는 날임을 <주님은 [귀신을 내쫓음은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치유하심으로써> 드러내신다.....종교의 죽은 형식들과 잘못 변형된 안식일의 규정들을 지킬 의도가 없으심을, 오히려 <참된 희년의 축복으로 묶인 바 된 고통에서 풀려남으로 인한 자유 얻음>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심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시려 하고 계셨다.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택한 백성 중의 한사람임을 암시)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 

.....:::Q의 왕국은, ( 그 영적 의미의 실제 구현에 있어서 ) 포로된 자를 해방시켜 풀어 주고 <포로 귀환과 신성한 기업의 회복을 통한> Q 누림의 권리 회복하는 희년의 실제와 내용인데, 희년의 참된 본성을 잃은 상태임을 암시. 눅4-24장까지 줄곧 희년에 관해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이 희년, 곧 Q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도래케 되었고,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서 바로 그 생생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세기말 직전에 이르러  희년의 본성은 상실되기 시작한다.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전통적 견해는 긍정적 해석이 주류를 아룬다. 그러나, 기독교역사에서 그런 긍정적 발전은 없었다!!.  

.....(주님 마음에는) 고유한 종류적 특성대로 [음식을 내는 나물herb]로 자라지 않고 <창조의 법칙에서 너긋나, 본성과 기능이 바뀌어져 버렸음을 지적하시는 바>기형적으로 깊이 뿌리 내려 나무로 성장했으며, 공중의 새들(마귀들...기독교계의 사업들에 기숙하는 악한 사람들과 악한 영들)을 위한 거처로 자랐음을 말하고 계심..이것은 4세기 초 콘스탄틴 대제의 공인으로 교회를 세상과 혼합했을 때부터 발생했고, 이후 거짓신자들을 양산했으며 기독교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계가 되게 했고, 기독교 부대사업들이 가지로 번성하게 되었으며 외적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다.(이 특징은 계시록2,3장의 버가모교회와 흡사하다)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하나님의 나라 = 천국/하늘 왕국, 아버지의 나라.....그리스도의 왕국/메시아 왕국

21.  마치 여자가 가루[=소제물이신 JC..레2:1, 4-5, 11] 서 말[=충분한 식사에 필요한 양..창18 :6]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여기서의 누룩도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가르치지만..."온 땅에 퍼지는 복음의 능력") 사복음서에서 누룩은 적극적 의미가 아니라 항상 소극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교 계신다. 누룩은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악한 것들(고전5:6, 8)과 악한 교리들을 (마16:6, 11-12) 상징한다....교회는 누룩없는 떡이라야 한다(고전5:7-8). 그러나 6세기의 천주교는 많은 이교도적 실행들과 이단적 교리들과 악한 것들을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과 혼합시킴으로써 부풀게 했다....이는 두아디라 교회의 실상과 흡사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영의 가난함 + (능가하는 의, 그리스도의 의, 곧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의 재현으로서의 의)...의를 인하여/그리스도로 인하여  박해 받음  통해  소유하게 되는 천국과 천국에서의 큰 상 :: 그 천국의 두 방면 = 교회(생명과 은혜...사랑, 희락, 화평) + 하늘 왕국(훈육과 훈련...인내.자비, 양선, 충성/믿음, 겸손/온유 절제)

.... :: 여기서 주님은 단지<구원 받는 것만이 아니라...완전한 완성에 이르는 넉넉한 구원과 겨우 구원  받음 등이 있을 수 있다> Q의 왕국, 곧 완전한 희년 안으로 <이 시대뿐만 아니라 오는 시대에서도<천년 왕국 시대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세에서까지도> 이어지는 Q 왕국의 완전한 누림 (= 해방/자유-기업 회복/누림의 안식) 안으로 들어 가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마7:13-20.<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천국 구원의 장애물)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거절하기>...*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3에서는 넓은 길-넓은 문을 택한 자가 대다수임을 말씀하신다., 넓은 길-넓은 문이란 세상 가치 추구하며 따라 멸망에 이르는 길을 뜻하며, 비록 상대적 소수가 천국 영생을 지향함의 좁은 문-좁은 길을 향하여 나아간다, 또한 그나마, <그 좁은 문에 들어감> 곧 구주 영접하고 숨 거두는 순간까지 <그 천국에 들어감=구원 받음>이 가능한 시간이란 단 한 번  <이 땅에 사는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간 이마다 시종일관 그분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처럼) 진정한  하나 됨의 생생한 상호 교통의 연합으로  따르는, 곧 주의 말씀 따라 그리스도의 성령, 말씀 가운데 사로잡혀 신성한 생명으로  [지고한  사랑의 율법 따라] 일편단심 그리스도의 삶의 재현 이루게 하시는 바 능가하는 의, 그리스도의 의, 하나님의 의를 살아내는 자라야 구원의 완성, 곧 영원한 천국 소유함에 이르게 됨을 말하고 계심

.....그러나, 일단 구주 영접하여 거듭남의 믿음으로 천국 안으로 들어갔다 해도 (마땅히 배제해야 할 자아와 육의 소욕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따라 행함과 거먼-자만-교만-오만-태만/게으름/변명과 느슨함/타협함을 떨쳐내지 않음 인해, 기만-착취 당하고도 착각-방심하는 바...특히 [이리-늑대-도적]같은 삯꾼 목자와 거짓선지자들의 잘못된 교훈에 따른 것인 경우가 많은데...) 교회 안의 천국 같은 그럴듯한 분위기와 문화적 멋내기/껍데기만 즐기면서 그분과 완전한 하나 됨 안으로 믿어 들어가 그분 자신으로 살아냄을 제한/거절하는 이에 대해, 재림 주님은 당신의 잔치 집 내소의 문을 닫아 걸고, "나는 너희를 결코 좋게 평가하지 않으며 칭찬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구원의 공도인 주와 하나 됨의 추구하는 삶을 배제한 것은 실지로 내게 대해 악을 행함에 다름 아니다. 나를 떠나라, (천년동안 나를 누리지 못하리니..) 밖에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선언하고 계심..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내게는 너희가 낯선자들이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너희를 결코 좋게 평가하지도, 인정하지 않으며, 너희를 결코 아무런 칭찬도 하지 않는다"라는 뜻)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주와 영적 하나 됨의 교통 통해 완전히 주를 닮아감 이룸은 없지만, 그래도)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유대인들이 실지로는 악을 행하고 있었음을 암시하심)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천년 왕국]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후회] 이를 갈리라[=자책].....구원에 대하여 질문하였는데, 주님은 오히려 새하늘과 새 땅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누림 그 전에 있게 되는, Q의 완전한 구원의 가장 즐거운 부분이 될 천년왕국에 관하여 대답하고 계신다.

29.  사람들이[=전혀 예상 못했던 이방인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구원 받은 이방인들]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이방의 믿는 이들보다 뒤에 주님을 믿는 유대인들] 있느니라 하시더라(롬11:25-26)

===선지자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아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AMP---Chap.13

===Call to Repent

1 Just at that time some people came who told Jesus about the [a]Galileans whose blood Pilate [the governor] had mixed with their sacrifices. 

2 Jesus replied to them, “Do you think that these Galileans were worse sinners than all other Galileans because they have suffered in this way? 

3 I tell you, no; but unless you repent [change your old way of thinking, turn from your sinful ways and live changed lives], you will all likewise perish. 

4 Or do you assume that [b]those eighteen on whom the tower in Siloam fell and killed were worse sinners than all the others who live in Jerusalem? 

5 I tell you, no; but unless you repent [change your old way of thinking, turn from your sinful ways and live changed lives], you will all likewise perish.”

===Parable of the Fig Tree

6 Then He began telling them this parable: “A certain man had a fig tree that had been planted in his vineyard; and he came looking for fruit on it, but did not find any; 

7 so he said to the vineyard-keeper, ‘For three years I have come looking for fruit on this fig tree and have found none. Cut it down! Why does it even use up the ground [depleting the soil and blocking the sunlight]?’ 

8 But he replied to him, ‘Let it alone, sir, [just] one more year until I dig around it and put in fertilizer; 

9 and if it bears fruit after this, fine; but if not, cut it down.’”

===Healing on the Sabbath

10 Now Jesus was teaching in one of the synagogues on the Sabbath. 

11 And there was a woman who for eighteen years had had an illness caused by a spirit (demon). She was bent double, and could not straighten up at all. 

12 When Jesus saw her, He called her over and said to her, “Woman, you are released from your illness.” 

13 Then He laid His hands on her; and immediately she stood erect again and she began glorifying and praising God. 

14 But the leader of the synagogue, indignant because Jesus had healed on the Sabbath, began saying to the crowd in response, “There are six days in which work ought to be done; so come on those days and be healed, and not on the Sabbath day.” 

15 But the Lord replied to him, “You hypocrites (play-actors, pretenders)! Does not each one of you on the Sabbath untie his ox or his donkey from the stall and lead it away to water it? 

16 And this woman, a daughter (descendant) of Abraham whom Satan has bound for eighteen long years, should she not have been released from this bond on the Sabbath day?” 

17 As He was saying this, all His opponents were being humiliated; and the entire crowd was rejoicing over all the glorious things that were being done by Him.

===Parables of Mustard Seed and Leaven

18 So this led Him to say, “What is the kingdom of God like? And to what shall I compare it? 

19 It is like a [c]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planted in his own garden; and it grew and became a tree, and the birds of the sky found shelter and nested in its branches.”

20 And again He said, “To what shall I compare the kingdom of God? 

21 It is like leaven, which a woman took and hid in three peck measures of flour until it was all leavened.”

===Teaching in the Villages

22 Jesus journeyed on through cities and villages, teaching and making His way toward Jerusalem. 

23 And someone asked Him, “Lord, will only a few be saved [from the penalties of the last judgment]?” And He said to them, 

24 “Strive to enter through the narrow door [force aside unbelief and the attractions of sin]; for many, I tell you, will try to enter [by their own works] and will not be able. 

25 Once the head of the house gets up and closes the door, and you begin to stand outside and knock on the door [again and again], saying, ‘Lord, open to us!’ then He will answer you, ‘I do not know where you are from [for you are not of My household].’ 

26 Then you will begin to say, ‘We ate and drank in Your presence, and You taught in our streets’; 

27 but He will say to you, ‘I do not know where you are from; depart from Me, all you evildoers!’ 

28 In that place there will be weeping [in sorrow and pain] and grinding of teeth [in distress and anger] when you see Abraham and Isaac and Jacob and all the prophets in the kingdom of God, but yourselves being thrown out and driven away. 

29 And people will come from east and west, and from north and south, and they will sit down [and feast at the table] in the kingdom of God. 

30 And behold, some are last who will be first, and some are first who will be last.”

31 At that very hour some Pharisees came up and said to Him, “Leave and go away from here, because Herod [Antipas] wants to kill You.” 

32 And He said to them, “Go and tell that fox [that sly, cowardly man], ‘Listen carefully: I cast out demons and perform healings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reach My goal.’ 

33 Nevertheless I must travel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day after that—for it cannot be that a prophet would die outside of Jerusalem. 

34 [d]O Jerusalem, Jerusalem, who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o death] those [messengers] who are sent to her [by God]! How often I have want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round Me], just as a hen gathers her young under her wings, but you were not willing! 

35 Listen carefully: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abandoned by God and destitute of His protection]; and I say to you, you will not see Me until the time comes when you say, ‘Blessed [to be celebrated with praise]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Footnotes

Luke 13:1 These evidently were Jews who had come to Jerusalem to offer sacrifices at the temple. They probably were identified, rightly or wrongly, as rebels whose goal it was to overthrow Roman domination. The graphic description suggests that they were executed outside the temple complex after they had offered their sacrifices.

Luke 13:4 No further details regarding this tragedy are recorded.

Luke 13:19 In ancient Israel the mustard seed was the smallest known seed, and in rabbinic teaching the mustard seed was used as an example of something very small (in the Talmud).

Luke 13:34 The nation of Israel person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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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3장 (개요)

본 장(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최근 빌라도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살된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고 하신 훈계의 말씀(1-5).

Ⅱ.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에 대한 비유. 

......이 말씀은 우리에서 앞에서 요구하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파멸당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듣게 된다(6-9).

Ⅲ. 안식일에 병들고 가난한 여인을 고치신 그리스도, 그는 이 행위의 정당성을 말씀하신다.

Ⅳ. 겨자씨와 가루 속에 뿌려진 누룩에 대한 비유의 말씀(18-22).

Ⅴ. 구원받을 자의 숫자에 대한 질문을 들으시고 그것에 대해 대답하심(23-30).

Ⅵ. 헤롯의 학정과 부패에 대한 질책의 말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씀(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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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갈릴리인 학살(눅 13:1-5)

Ⅰ. 최근에 일어났던 갈릴리인 몇 사람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그리스도 귀에 들렸다. 

"빌라도는 그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었다"(1절).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이것은 참으로 슬픈 소식이었다. 

이 사실은 이곳에 짤막하게 언급되었을 뿐 당시의 어떤 역사 기록에도 이 사실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요세푸스는 사마리아인들을 빌라도가 살해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기는 하다. 

---사마리아인들은 당파를 만든 어느 지도자의 지휘를 따라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이 있는 게르심산으로 떠들썩하게 올라갔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갈릴리인들의 학살과 같은 범주의 이야기로 볼 수는 없다. 

^^어떤 학자들은 이 갈릴리인들을 "갈릴리의 유다"라고도 불리웠던(행 5:37) 유다 골로니다(Jadas Gaulonita)의 당에 속한 자들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는 시이저가 집권할 때 파직당해서 시이저에게 세금내는 것을 거부하였던 인물이다. 혹은 단지 갈릴리인이었다는 이유로 해서 빌라도는 그 당에 속한 자들로 보고 무자비하게 죽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반란자와 관계 있는 자들을 그의 힘으로는 색출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갈릴리는 헤롯의 통치 구역이었으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23장 12절에 볼 수 있는 빌라도와 헤롯 사이의 분쟁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살해된 갈릴리인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기록이 없고 다만 "어떤"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빌라도는 특히 몇몇 갈릴리인들에게 증오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그래서 요세푸스가 이 사실을 간과해 버린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보고된 내용을 보면 빌라도는 신전 마당에서 "그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것이 된다. 

그들은 빌라도의 학살을 두려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그것이 두려워 예루살렘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율법은 각자 제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지낼 것을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이 각자 가지고 온 제물을 죽일 때(이것은 제사장의 직무로 허락된 일이었다. 제사는 피를 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전혀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빌라도의 관리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제물의 피와 제사지낼 자들의 피를 한 데 섞은 것으로 본다. 

성전이나 제사의 성스런 작업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인간을 존중하지도 않는" 불의한 재판관의 흉악한 범죄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성례가 베풀어지고 안식처가 되었던 제단이 이제 분노와 죄악이 깃든 위험과 살육의 처소로 변하였다.

2. 하필이면 왜 "이 시각에" 그 얘기가 우리 주 예수님께 보고 되었을까.

(1) 사건의 성격으로 보아 그는 전에 이와 같은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그들이 애통해 하는 사건이었으므로 그 역시 이 얘기를 듣고 애통해 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갈릴리는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슬픈 섭리 사건도 우리는 신중히 여겨 그 교훈을 주께 여쭈어 배워야 하며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줌으로써 그들이 우리와 함께 느낀 바 되어 그로 인하여 좀 더 나은 상태로 변화되기를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또는 그리스도께서 앞서 하신 말씀, 즉 우리가 관속에서 넘겨져 (즉 사형당하여) 감옥에 던지움을 당하여 후회해도 늦을 그 시각이 닥치기 전에 미리 Q과 화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의 증거로써 이 사건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주님 정말 그렇습니다. 관속에서 넘겨져 전혀 예기치 못한 죽임을 당한 산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두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지요." 

Q의 말씀을 해석할 뿐아니라 그 말씀을 이루시는 Q의 섭리를 목격함으로 우리 자신이 힘을 얻게 됨은 참으로 유익한 일이다.

(3) 혹은 그 자신이 갈릴인이고 예언자이며 또한 고향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임을 아는 고로 그를 충동시켜 이 갈릴리인들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헤롯에게 할 것을 목적하였을지도 모른다. 

행여나 그들이 이와 같은 의도를 지니고 있었더라면 그것은 전혀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지금 "빌라도의 손에 넘겨져서" 그의 피를 흘려 그 피가 저희의 제물에 섞이게 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저희의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4) 혹은 이 얘기를 들려줌으로써 그리스도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가시는 길을 막아 보자 하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빌라도가 그를 보고 앞서 어떤 갈릴리인들에게 했던 식으로 그에게도 화를 내어 종교란 미명하에 반역을 꾸미는 압살롬과 같은 자들이라고 낙인을 찍어 그를 해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약간 누구러진 빌라도가 다시 진노를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가는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5) 그리스도의 대답을 살펴보면, 이 사실을 그리스도에게 보고하는 그들의 마음속엔 합당치못한 어떤 악의, 희생자들을 정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같다. 

즉 갈릴리인들을 죽인 빌라도도 불의한 자이지만 희생당한 그들도 남모르는 죄를 지은 자들임엔 틀림없다...

아니라면 어떻게 Q께서 빌라도가 그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이도록 버려 두셨겠는가. 

그런데, JC 보시기에는 이것은 대단히 주제넘은, 예배자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해 버리는 불쾌한 말이었다. 그들이 제물을 가지고 Q을 섬기는 도중에 살해를 당했는데도 그들을 순교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뚜렷한 증거도 없는데도, 행악자라고 낙인찍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근저에 깔린 것은 단지 그들이 자기들과 같은 당파나 학파에 속하지 않았고 자기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는 것일 것이리라. 

주님이 보시기에 실지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영광스런 본을 보인 그들의 운명을 "그들에게 내릴 Q의 당연한 심판"으로 돌리고 있는 바, 사실 그들은 Q의 심판이 자신들에게 내릴 것을 모르고 있었다.

Ⅱ. 보고를 들으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답.

1. 그는 이와 비슷한 다른 사건을 인용하셨다. 

그 사건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예기치 못한 참사를 당한 것이었다. 

"실로암 망대"가 넘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 사고로 열 여덟 명의 사람이 그 밑에 깔려 죽고 말았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 망대는 벳새다 샘 근처에 있는 "실로암 샘"과 붙어 있는 것으로 그 망대의 "입구"는 "샘" 옆에 있었고, 그곳엔 "병약한 무리"들이 앉아서 "물의 동함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었는데(요 5:3) 그때 망대가 무너져서 깔려 죽은 자들이었거나 혹은 성전 예배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씻을 샘물을 푸러 온 자들이었다. 

성전은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깔려 죽은 자들이 누구였든 간에 이 사건 역시 슬픈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안타까운 얘기는 종종 듣게 된다. 왜냐하면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임하면 거기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전 9:12). 안전을 위해 세운 망대가 때로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의 말을 듣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악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또한 이것을 기화로 고통받는 자들은 당연히 그들이 고통을 받아야 할 큰죄를 지었다고 하여 질책하지 말 것을 주의하셨다. 

"너희는 제사 지내는 중에 죽임을 당한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2, 3절)." 

아마 그리스도에게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한 자들은 [바리새파나 사두개인들로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며 이처럼 갈릴리 사람들을 모욕할 자료만 있다면 모욕하기를 즐겨하던 자들이었으리라....그래서 그리스도는 그들의 의도를 묵살할 만한 사건, 즉 "예루살렘 사람"들에 대한 사건으로 응수 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너희 생각엔 실로암 연못가에서 치료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이 망대가 넘어지는 바람에 죽임을 당했다고 유독 그들만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 가운데 Q께 범죄한 자들이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마다 겪는 바, 그 고난의 경중만으로는 그 사람의 죄의 유무경중를 결코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법칙이 우리에게 유불리에 상관없이 그 법칙 자체를 잊지 말고 주님잎에서는 누구나 전적 타락으로 인한 고개들 수 업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함이 마땅함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이세상을 사는 동안 제 아무리 경건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Q의 지고지선, 최선-최상의 은혜, 곧 JC영광에의 참여함을 주시려 많은 사람들이 불에 단련되는 금과 같이 시련을 당하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 없어지는 찌꺼기나 쓰레기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욥의 친구들이 욥을 꾸짖듯 남보다 특히 고통받는 자들을 책망하여 슬픔을 더하게 만드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로운 자의 세대"를 저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시 73:14). 

남을 심판하는 입장이라면 우리 역시 심판 받을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또한 "미래의 것에 대해선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모두에게 같은 것으로 오기 때문이다(전 9:1, 2). 

그리고 "박해받는 자들," [제단에 거하는 레위인들이나 대제사장들이 아니라] 위로 받지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자들, 무엇보다 갈릴리인들은 "악하디 악한 죄인들"이고 반면에 "박해하는 자들," 권력과 명예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 무엇보다도 빌라도 같은 인물들을 세상에서는 선하디 선한 성인(聖人)으로 간주하기 쉬운 법이다. 

그러기에, 남을 책망할 때엔 그대로 자신이 책망을 받는다는 입장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3. 이 이야기를 계기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5절)."

(1) 이 말씀은 우리도 우리의 죄의 대가대로 벌을 받았더라면 그들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거룩한 사업을 이루지 못한 죄로 이미 오래 전에 Q의 정의의 심판에 의해 우리의 피가 제물에 섞여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도 "죄인"일뿐 아니라 그들보다 나을 것 없는 큰 죄인으로서 그들이 고난받은 것 못지 않게 회개해야 할 큰 죄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남을 책망하는 것을 삼가게 된다.

(2) 따라서 모두 "회개"해야 하며 그 동안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더 이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벌하시는 Q의 심판은 큰소리로 우리를 회개하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그의 막중한 책임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계시는가 알 수 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회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하셨던 것이다."

(3) 이 회개야말로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며 가장 확실한 길이다. 

"너희가 이젠 처참한 지경에 이르지 않으리니 아무도 너를 심판치 못하리라."

(4)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전에 죽은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망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떤 주석가는 "이와 같이"란 말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유대 백성, 특히 예루살렘에 임할 멸망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한다. 

조금후에, 예루살렘멸망 그 당시에 그들은, 유월절에 침습한 로마군인들에게 결국 멸망당했으며 갈릴리 사람들처럼 "그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과 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내려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것처럼 예루살렘 혹은 다른 도시에 있던 유대인들은 무너져 내리는 성벽과 건물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너무 지나치게 과장시킨 것이라고 할 수는 있다.) 

어쨌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망한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으로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신 JC께서는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회개하라고 요구하신다. 

이처럼 그는 우리 앞에 죽음과 생명, 선과 악을 제시하시며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하신다.

(5) 남을 심판하는 일에 적극적이고 무자비했던 자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받게 될 멸망의 벌은 어떤 것보다 준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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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눅 13:6-9)

이 비유는 앞서 하신 말씀,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듯 너희도 거듭나지 못하면 멸망 받으리라"는 말씀을 보충하려는 의도에서 들려졌다.

Ⅰ. 이 비유는 우선 유대 민족과 나라와 관련되어 있다. 

Q께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의 곁에 있게 하셨으며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사랑하셔서 그를 알고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그들로부터 이에 합당한 의무와 복종으로 보답을 기다리셨다. 

이것이 그를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열매"로 간주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Q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은 자기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선택됨에 충성을 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을 하였다. 

여기에 대해 Q께선 당연히 그들을 포기하시고 그들과 관계를 끊고 그들의 특권을 압수하시며 그들을 돌보며 축복하시는 일을 거두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런 찰나 그리스도께서 중재로 나서, 옛날 모세가 한 것처럼 그들에게 더 큰 Q의 자비와 회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시어 은혜를 베푸셨다. 

그들 가운데 그의 사도들을 보내어 회개하도록 권고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려고 다시 얼마 동안 두고 보시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회개"하고 열매를 맺게된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참으로 다행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유대 민족은 계속 회개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지속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파멸만이 남았을 뿐이다. 

세례 요한이 그들에게 예고한 대로(마 3:10) 그들은 약 40년 후 멸망하여 불 속에 던지어지고 말았다. 

이 비유는 이와 같은 사실을 보충하는 것이다.

Ⅱ.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하여 보다 중요한 교훈을 하시려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은혜의 덕을 누리며 눈에 보이는 교회의 특권을 소유한 자들을 깨우쳐 저들로 평온한 마음과 성실한 생활로 그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이끌기 위하신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요구되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이 무화과 나무가 얻은 유익. 

그 무화과 나무는 포도원, 보다 비옥한 땅에 심겨졌다. 그리고 길가에서 자라는 다른 무화과나무(마 21:19)와는 달리 포도원(포도 나무를 위한 땅)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옮겨 심고 가Rn는데 보다 큰 주의가 깃들여졌을 것이다. 

이 무화과나무는 "한 사람"의 소유로써 그는 그 나무를 가꾸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Q의 교회도 보통 다른 것과 비교되는 "그의 포도밭"임을 유의하자(사 5:1, 2). 

믿는 우리 각자는 세례를 통하여 그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인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안에서 자리와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특권이며 행복이다. 이것은 특별한 은총이다. 

그는 "다른 민족도 이처럼 사랑하시지" 않았다.

2. 주인의 기대.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다." 

당연히 구할 자격이 있었다. 그는 남을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왔다. 그가 얼마나 열매를 얻기 원하는가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으로 오셨다. 열매를 구하고 "자기 백성," 곧 유대인들에게 오셨다. 

하늘의 Q께선 그의 포도원에 심겨진 자들로부터 "열매"를 요구하시며 기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는 복음을 "즐기는" 자들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며 그들이 그 복음에 따라 "사는가" 지켜보고 계신다. 

그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은혜를 과연 즐길 자격이 있는가 지켜보고 계신다. 

"주여, 주여"라고 울부짖는 "잎"들만으로는 안 된다. 시작이 잘되고 장래성이 보이는 "꽃"으로도 안 된다.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의 생각, 말과 행동이 복음, 빛과 사랑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3. 주인의 실망. 

그는 "얻지 못한지라." 

전혀 한 개도 얻을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나 그 받은 특권에 합당한 목적을 이루며 살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것은 Q에겐 실망이며 그 은혜의 영에겐 슬픔일 수밖에 없다.

(1) 주인은 여기서 포도원지기에게 열매 없음을 불평하고 있다. 

"열매를 구하러 내가 왔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하나도 얻지 못했노라. 포도를 구했으나 들포도 밖에 얻을 것이 없도다." 

Q께서는 이와 같은 세대를 보시고 슬퍼하신다.

(2) 주인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더욱 화를 낸다.

①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그것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는 결코 많은 열매를 구한 것이 아니라 다만 열매맺기를 기대하였는데 그 기대가 그처럼 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삼년을" 매년 "급히" 달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유대민족에게 적용시킨다면Q께선 포로시대 이전에 한 번, 그리고 포로시대 이후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자신의 복음 전파에 한번 찾아 오셨다는 것이 된다. 

혹은 이 삼년이 현재 끝을 맺어가고 있는 그리스도의 공생애(共生涯) 3년에 비교된다. 

어쨌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Q께서 이와 같이 복음을 누리면서도 그 열매를 맺지 못한 자들에게 그 화를 참고 계시는가 일러주고 있다. 

Q께선 지금까지 삼년씩 몇 차례나 "열매를 구하러"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가 하나도 얻지 못했고"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열매를 얻지 못하셨던 적이 있었는가!

② 이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못 맺을 뿐 아니라 나무 때문에 손해도 생겼다. 그 나무는 "땅만 버렸다." 

그 나무는 과실을 맺는 나무들이 들어설 자리를 차지해서 그 주위에 있는 나무들에게 해독을 끼치고 있었다. 

"선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그 나쁜 행실을 남에게 보임으로 남에게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까지 슬프게 하고 용기를 저하시킨다. 행실이 못된 자들에겐 도움이 되고 더욱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러므로 그 나무가 높고 길고 덩치가 큰 나무일수록, 그 나무 수명이 길면 길수록 그 땅이 받는 해는 더욱 클 것이다.

4. 그 나무에 내릴 심판. "찍어 버리라." 

그는 이 말씀을 "포도원지기"인 그리스도께 분부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심판권을 위임받으셨다. 

뿐만 아니라 Q의 이름으로 이와 같은 심판을 내릴 수 있는 목회자들에게도 그 심판권은 위임되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그 바랄 것이 "찍어 버리움"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열매를 내지 못하는 포도밭은 울타리를 헐고 아무나 들어오도록 버려 두는 것처럼(사 5:5, 6) 포도원에 있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도 포도원 밖으로 뽑혀 버리울 것이다(요 15:6). 

믿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내렸던 심판처럼(사 6:9-10) 이 심판은 Q의 심판이며 특히 영적인 심판이다. 

죽음으로 찍히며 지옥의 불 속에 던져진다. 

그러는 것이 마땅하니 "왜 땅까지 못쓰게 할 것인가?"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이 포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5. 과원지기의 중재. 

그리스도는 크신 중보자이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중재하신다. 목회자들도 중보자들이다. 

포도원을 "돌보는" 그들은 그 포도원을 위하여 "중재"해야만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Q의 말씀"과 "기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그가 기도한 내용. 그것은 집행 유예이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그의 기도는 "주인이여, 찍어 버려서는 안됩니다"가 아니라 "주인이여, 지금 찍어버리지 마소서. 주인이여 과원지기를 쫓아내지 마소서, 이슬을 거두지 마소서,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리지 마소서"이다.

①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얼마쯤 두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옛날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화해하기까지 120년이 걸린 것처럼 아직 "회개의 은총"은 입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회개할 여유"를 두는 것이 자비이다.

②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즉시 찍혀 버리두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께 달려있는 것이다. 

그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찍어 버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주여, 그대로 두소서"하고 간구 하신다. 

만물을 지탱시키시는 분은 바로 이 분이시다.

③ 열매 맺지 못한 나무의 집행을 유예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힘입어 우리도 Q께 기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주인이여, 그들을 그대로 두소서. 얼마 동안 심판을 유예하소서. 잠시 동안만 더 그들에게 여유를 주시고 은혜를 입기까지 기다리소서." 

이리하여 우리에게 진노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④ 그러나 자비의 유예 기간도 잠시 동안뿐이다. 

"주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1년이란 기간은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시험해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Q께서 오랫동안 참으셨다. 조금 더 참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는 해보지만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⑤ 우리를 위하여 남이 기도함으로 이 "유예"는 가능할지 모르나 "용서"만은 남의 기도로 안 된다. 

우리 자신의 믿음, 회개와 기도로써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는 용서란 있을 수 없다.

(2) 만약 그의 말대로 유예해 주신다면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약속은 이러하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① 보편적으로 기도할 때엔 늘 우리의 수고할 바를 첨부하여야 한다. 

과원지기의 의도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주인이여, 아무래도 제가 맡은 일에 충실치 못한 듯 하옵니다. 그러나 금년에도 그대로 두어 주신다면 열매가 풍성히 맺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할 때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임무를 행하겠다는 겸허한 약속과 아울러 Q의 은총을 구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여 Q을 능욕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② 특히 우리 자신이나 남을 위해서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할 때엔 그 은총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그 기도대로 살아야 한다. 

포도원의 과원지기는 "자기의" 할 일에 충성을 다 하였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은 각자 맡은 바 일에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땅 주위를 "파고" 그곳에 "거름을 주었다." 열매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위에 있는 땅을 갈아엎는"식으로 율법의 엄중함을 깨달아 "각성시키고" 나무에 거름을 주듯 싸매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복음의 약속된 바를 들려 줌으로 힘을 북돋워 주워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시도되어야 한다. 전자는 후자를 위한 준비이며 서로 부족함을 보충해 준다.

(3) 유예의 조건.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지요. 일 년만 더 해보도록 하지요.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9절) 열매맺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니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 열매를 맺을 희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 속에 주인은 또다시 참게 되고 과원지기는 또다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며 다행히도 기대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주인이나 과원지기나 모두 그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어니와"란 단어는 원본엔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은 지극히 충격적이다. "만일 실과가 열면!" 이 말은 만약 그대로 된다면 얼마나 주인과 과원지기가 기뻐할 것인지 그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실과가 열린다면 기뻐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소유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어니와"란 표현[영어로는 "잘 되었다"( well)란 단어]만큼 그 기쁨을 잘 나타내는 것도 없다. 

열매맺지 못하던 종교 신앙인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회개하고 치유를 받아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그야말로 "만사가 잘 되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Q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니 그에게 "영광이 돌려졌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손엔 더 힘이 생기고 그처럼 회개하는 자들이 생김으로 그들은 기쁨을 얻고 짧으나마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해 하늘에서도 기쁨이 있을 것이며 땅은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더욱 옥토가 되어 포도원은 더 아름다워지고 더 풍성한 과수들이 들어차게 될 것이다. 

나무 자신으로 봐서도 참으로 "잘 된" 일이다. 

이제는 찍혀 버리우지 않을 뿐 아니라 "Q의 축복"까지 받게 될 것이다(히 6:7). 

이젠 그 몸이 "청결해져"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Q이 그의 신랑이기 때문이다(요 15:2)." 

그리하여 끝 날에 가서는 이 땅 위의 포도원에서 하늘의 낙원으로 옮겨 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는 또 다른 조건도 첨부되어 있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①Q께서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열매맺지 못하는 신앙인에 대해서 그렇게 무한정으로 참고 계실 분은 아니다. 

그의 참는 것도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니 그의 인내를 악용한 자에겐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진노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열매맺지 못한 나무들은 마침내 "찍혀" "불 속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다.

② Q께서 오래 "기다리시면 기다리실 수록" 그들에 대한 그의 기대는 클 것이며 그들이 당할 멸망도 클 것이다. 

그 나무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그에 대한 대가를 청구하시며, "찍어 버릴" 때 그 당하는 고난은 실로 슬프고 저주스러운 것이리라.

③ 찍어 버리는 행위 자체도 역시 하실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일인 것이다. 

이것은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한 말씀을 보아 알 수 있다. "땅을 버리니 네가 그것을 찍어 버리라." 

그러나 과원지기의 대답은 "아닙니다. 그 일은 마지막 날에 당신께서 하실 일입니다. 제 손으로 하게 하지 마소서."

④ 지금은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를 위해 중재를 서고 고생을 하는 자들도 끝까지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해 결국 찍어 버려 두게 될 때엔 그 찍힘을 보며 만족하고 그 나무를 위해 다시는 간구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Q의 심판이 임하는 날엔 가장 친한 친구들도 마지못해 정의의 심판 결과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심판을 찬양하며 환영하게 될 것이다(계 15: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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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의 무화과나무 (누가복음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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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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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올리브나 대추야자나무와 함께 팔레스틴 지역에 자라는 과일나무들 중에 대표적인 나무들입니다. 

포도나무는 달콤한 열매는 물론 갈증 날때 시원하게 마시는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사랑을 받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에 비해 그 가치가 한참 떨어지는 흔한 나무입니다.  

팔레스틴의 무화과나무는  정성스럽게 가꾸지 않아도 어디서나 잘 자라고 많이 열릴 때는 일년에 다섯 번까지 열매를 딸 수 있을 정도로 왕성한 생산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사실상 그해에 땅만 버리고 귀중한 물만 낭비하는 쓸모없는 나무로 인식됩니다.  

그 나무 아니고도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는 얼마든지 널려있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처럼 열매 없는 나무는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등장한 포도원의 무화과나무는 속된 표현으로 엄청난 행운을 누리는 나무이며 영적인 표현으로는 무한한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농부 중에 그 어떤 사람도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어 귀중한 물을 소비하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돌보는 바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포도원에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주인은 그 무화과나무를 얼른 뿌리채 뽑아 버리거나 잘라 불태우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냥 두면 다른 포도나무에 손해를 끼치고 이웃 사람들에게 게으르고 어리석은 농부로 낙인 찍혀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 비유는 유대인의 율법과 농사법의 배경을 이해하고 들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성경지리 역사를 연구하는 어느 목사님이 복음서에 나타난 유대적 문화 배경을 설명한 책을 썼는데 오늘 읽은 비유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자료를 제공합니다.  

오늘 본문해석의 중요한 아이디어는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였고 앞으로도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말씀드릴 때 이 책의 설명을 자주 인용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먼저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히브리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유대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떤 포도나무 과수원 주인이 자신의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말로 시작했을 때,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세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어?  라고 반응했을 겁니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너그럽다 못하여 판단력이 부족한 바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바보도 없지만 삼 년씩 찾아왔는데도 열매 하나를 얻지 못하고 있는 주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하며 예수님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마음으로 비웃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리는 주인은 삼 년씩이나 찾아왔는데 매번 허탕만 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도끼로 찍혀 불에 던지우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무화과나무가 행운아가 아니면 주인이 바보든가 둘 중의 하나라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행운과 은혜를 누리는 사람일까요? 

첫째는 그때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며, 다음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제목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의 무화과나무라> 라는 제목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고 사는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라면 ‘농사의 기본도 모르는 어리석은 포도원 주인’이라고 비웃는 투로 제목을 붙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말씀의 중심은 길이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라 해야 맞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이런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죄인들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의 마음이 한 없이 너그럽고 그 기다림이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이 기막히고 놀랍습니다.  

그런데!!, 과수원 주인이 열매를 얻으러 삼 년을 찾아왔다는 부분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유실수를 심는 법과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는 것에 대한 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레19:23) 라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이 법을 따른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심고 몇년 뒤에 열매를 얻으려고 과수원에 찾아갔을까요?  4년째?  아닙니다.  

4년째 열리는 열매는,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3년이 지난 뒤 열리는 첫 열매였습니다. 

유대인의 신앙습관 속에 모든 생축의 첫 새끼들과 나무들의 처음 난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레19:24; 민3:13, 8:17). 

그러므로 포도밭 주인은 4년째에도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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