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수7.아이성의 패전=만홀히 여김...아간!!, 진정한 주인, 엘로이<말씀 + 코람데오>= 길-진리-생명-전부이신 그분 말씀 따름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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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7장 ..그리스도의 몸, 그 지체됨을 기억함.정신차림-근신-오직 항기쉬기범감..[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280..천부여의지없어서][267.주의확실한약속의말씀듣고][539.너예수께조용히나가]....주여지난밤내꿈에뵈었으니..수고하고무거운짐진자들아..주앞에엎드려경배합니다..십자가를질수있나..내눈여소서..오나의자비로운주여...예수여오소서...내게강강은평화...주여나를평화의도구로...내맘속에있는참된이평화는(참생명주님은)...나의모습나의소유...주님마음내게주소서...내손을들고내입을열어..주여나의참소망을..모든상황속에서.....주를위한이곳에....나를지으신주님...나 가진재물 없으나 이시간<참사랑-참소망>주님께기도합니다, 영원한생명을주신주님께, 경건한맘으로기도합니다..진실한사랑을주여달라고..세상을구원하기위해..우리오늘눈물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누구든지나를 따라오려거든(눅14:27 마16:21-28)...자기를 부인하고-자기 십자가를 지고(=나는 날마다 죽노라,,내게 사는 이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눅14:26, 27..*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절대적 최우선 순위는 그리스도))]

[눅9:23, 24...*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16:24, 25...*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렘5:1..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겔22:30, 31..*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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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9:23-2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 이니라”]

[시147:10, 11..*10.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하페츠..take delight in)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하여 기뻐하지(=라차..). 아니하시고 *11.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차)...10.  He delighteth not in the strength of the horse: he taketh not pleasure in the legs of a man. 11.  The LORD taketh pleasure in them that fear him, in those that hope in his mercy....10 He does not delight in the strength (military power) of the horse, Nor does He take pleasure in the legs (strength) of a man. 11 The Lord favors those who fear and worship Him [with awe-inspired reverence and obedience], Those who wait for His mercy and lovingkindness.] 

[사42:1..."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delight=라차..마음에 꼭 들다/호의를 가지다/기뻐하고 즐거워하다/열납하다)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자기 목숨을 죽음에 내어 주어 되사오시는, 죽음보다/잔혹한 음부의 불길보다 더 강한, 그 어떤 많은 물로도 결코 끌 수 없는, 일편단심-일심의-올인하는 눈먼 사랑이시라....아가페-스톨게-필레오-야다, 그 사랑에 눈이 멀어) 질투하시는 남편-연인이신 여호와의 이름, 엘 카나]]..그분은 바람-꺼짐 없는 불꽃-생명샘의 강수!!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마다 이것을 누리게 하고 계신다]] 

...거듭난 참 믿음과 Q-그리스도를 참 앎(=영생)을 가진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우주적 교회 = 하늘의 시온/새 예루살렘...즉, 진정한 참사랑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결합한 하나됨과 일치-교통 누림 인한 기쁨과 즐거움 = 극락/큰 희락(수스)의 하나님 =.습3:17......하페츠(=바로 그 참 됨됨이의 매력에 매혹-매료되어 갈망하고 원하고 바라던 대로 얻다), 라차(=마음에 꼭 들다/저절로 미소지을만큼 호의를 가지다/흡족함으로 열납하다/기뻐하고 즐거워하다) ==>((내 사랑-내 기쁨 :: 아가파오-유도케오-이라 부르시며, 바로 그렇게 친히 그분 자신을 온통 내어주심 인해))사마흐(샤마흐::: 형통/지고지선 이룸/기대한 바 그대로-그 이상으로 더할 나위 없는 완전 충족감으로 고조되다)==>길(벅찬 감동으로 떨며 감사하며, 흥분되어 기쁨으로 가득차 외쳐 찬송하며(=라난) 소리질러 알게하며 길길이 뛰며 돌아다니다)==>알라츠(유일무이한 가치 있는 것을 획득함 인해 주체할 수 없는 격렬한 기쁨/감격으로 최고조로 들뜨다)==>수스(다함없는, 넘치는 극락의 영속적 기쁨의 환호-막춤의 찬송 함께 누림)


--Q의 사랑((아가파오))-기쁨((유도케오))이신 그리스도, 부활 생명 능력의 성령으로 오시어 내주하시는 그분따라 그분을 사는 이마다, 그분을 대적함 인해 그 어떤 자격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택하여 그분의 복음 전파하는 사도직을 맡겨주신 바 된 그분의 노예마다 Q의 기쁨이니, 그 어떤 경우라도 [그분안으로 믿어들어가 하나됨의 믿음 발휘함으로써, 이미 이기고 승리하신 주로 인해] 주 안에서 자랑하라, 기뻐하고(카이로...흔들림 없는 절대적 기쁨) 즐거워함(아갈리아오마이...다함 없는 Q의 기쁨-환대-축하 잔치 누림과 환호-찬송 발함) 가운데 그분의 하페츠를 이루시게 해 드림으로써 그분의 수스에 참여하라 --

[[JC는 아버지께서 원하심, 곧 ‘아버지의 기쁘신 뜻대로’ 되기를<이땅에서도 그분의 뜻 -원하심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 원하신다]]

마태복음 6장 10절 후반부를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뜻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 뜻은 무엇일까요? 헬라어로 ‘뜻’이라는 단어는 우리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히브리어로 읽으면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뜻’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단어로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원하다’라는 뜻을 가진 ‘하페츠(פץֵחָ‘(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이사야 53장 10절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의 원래 의미는 “그로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입니다. 

히브리어로 ‘원하다’는 ‘기뻐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원대로’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기쁘신대로’ 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으로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 나오는 ‘하늘에서 이룬 뜻’은 또 무엇일까요?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 7〜9절에 등장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전쟁에서 사랑이 아닌 미움, 진실이 아닌 거짓, 겸손이 아닌 교만, 온유가 아닌 강포와 폭력이 지배하던 사단의 군대들을 무찌르셨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요한계시록 12장 10절)라는 말씀대로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를 참소하던 자가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십자가의 희생으로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장 30절)라고 선언하시면서 이 땅의 권세를 회복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주기도문이 누가복음 11장에 다시 등장하는데 마태복음에서와는 다르게 매우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축약 버전인 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가만히 보면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앞부분에 나타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염원하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또한 우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용서하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사랑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하늘에서도 동시에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아름다운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수 가르쳐주신 이 주기도문이 우리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 이사야 53장 10절. 요한계시록 12장 7〜9절. 요한계시록 12장 10절. 요한복음 19장 30절. 누가복음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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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 11...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and a voice came out of the heavens: "You are My beloved Son, in You I am well-pleased."...11 and a [h]voice came out of heaven saying: “You are My beloved Son, in You I am well-pleased and del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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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다, 좋게 생각하다, …을 즐거워 하다....eujdokevw(2106, 유도케오) 

1. 고전 헬라어의 용법 

동사 유도케오(주전 3세기부터)는 유(eu\, 2095: 잘 well)와 도케오(dokevw, 1380: 생각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고전 헬라어에서는 '기뻐하거나 즐거워 하다, 선택하다, 동의하다, 찬성하다, 만족하다, 행복하다, 준비하다'를 의미한다. 수동형으로는 '성공하다', (아무의) '총애를 받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유도케오는 70인역본에서 60회 이상 나오며, 9개의 히브리 어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주로 라차(기뻐하다, 좋아하다, 즐기다, ~하기로 결정하다, 선택하다)를 번역하였다. 따라서 70인역본에서 유도케오는

(a)  '즐거워 하거나 기뻐하다'(시 44:4; 삼하 22:20; 시 147:11; 시 51:16; 대상 29:3; 에스라상 4:39; 시 102:15 등),

(b)  '선택하다'는 의미에서 '결정하다'(마카베오일서 10:47; 14:11).

(c)  어떤 것을 '원하다, 요구하다'(집회서 15:17), 어떤 일을 '하고자 하다'(삿 19:10, 삿 19:25; 삿 20:13). 어떤 일을 위하여 '호의를 가지다'(시 39:31, 하나님의 뜻에 대해).

(d)  '받아들이다, 동의하다, 묵종하다'(창 24:26; 창 24:48; 마카베오일서 11:29; 집회서 15:19)를 의미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유도케오는 신약성경에서 2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사람이 주어로 나오는 구절들에서, 

① 유도케오는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살후 2:12에서 악을 기뻐하는 자들을 묘사한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② 유도케오는 '선택하다'는 의미에서 '결정하다, 선호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롬 15:26이하에서 마게도냐의 회중들은 예루살렘의 모(母) 공동체를 위하여 모금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살전 3:1에서 바울은 홀로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결심하였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고후 5:8에서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을 더 나은 것(선호하다)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③ 유도케오는 '받아들이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고후 12:10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바울이 악, 모욕 등을 감수하는(달게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④ 유도케오는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살전 2:8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복음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b)  나머지 모든 구절에서 언급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결의, 선택에 관한 것이다.

① 하나님은 제사(히 10:6, 히 10:8; 참조: 시 40:6이하)나 뒤로 물러가는 사람(히 10:38; 참조: 합 2:4)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부를 암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써 바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기쁨을 얻은 분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

눅 12:32에서 유도케오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뜻을 나타낸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갈 1:15-갈 1:16에서 하나님의 결정(바울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는)은 바울에게 자립을 준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 반면에 고전 1:21에서 하나님의 결의(십자가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는 세상의 지혜와 대조된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골 10:5에 의하면 하나님은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에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골 1:19에서 하나님은 그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만물이 그를 통해 화해되어야 할 것을 결의하셨다. 

하나님의 결의는 계시(갈 1:15)와 전파(고전 1:21)를 수반하지만, 이 결의는 분명히 초시간적인 의미를 지닌다(눅 12:32과 골 1:19). 

②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목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병행절 막 1:11; 참조: 시 2:7; 사 42:1; 창 22:2; 벧후 1:17). 마 17:5에 따르면 이 목소리는 예수님이 변형되셨을 때에 똑같은 말을 하였다(참조: 마 12:18). 여기에서도 역시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며 결의였다. (참조: G.Schrenk; H.Bietenhard). → eujdokiva, 2107 유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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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ὐδοκέω (유도케오, 기뻐하다)에 대하여]]

[마3: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아가페스토스...친애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유도케오...최고 만족) 자라 하시니라]....주님으로 사는 이.. 주의 종/노예로서 그리스도를 사는 이마다 유도케시스이니, 주와 하나되어 그분으로 사는 자에 합당하게 (내 안의 주님께서 친히 그리 하시듯, 주님을 환대하듯이) 환대/선대하라!!

......동사 εὐδοκέω (유도케오)는 신약성경에 21번 나타난다. 이 단어는 εὐ(유..좋은, 선한)와 δοκέω(도케오...생각하다, 간주하다)로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좋게 생각하다’라는 말이 된다. ....이 동사는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기뻐하다 ...더 나아가 환영/환대/(귀히 여겨 기쁘게 대접하다)선대하다’ 라는 뜻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이 동사의 주어로서 하나님이 14번이나 언급되며, ‘하나님이 기뻐한다, 호감을 가지고 있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단어에서 파생된  헬라어 명사는 ‘기쁨, 만족’이라는 뜻을 지닌 εὐδόκησις(유도케시스)이다----

εὐδοκέω (유도케오)는 구약성경 70인역에서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뜻으로 사용되면서, 신약성경으로도 이어졌다. 

---첫째는 ‘기뻐하다’ ’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기쁨에 대해서 성경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시 147:11;전 9:7; 합 2:4; 말 2:17; 눅 12:32; 골 1:19; 히 10:6, 8). 

또한 사람의 즐거움이나 만족에 대해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창 33:10; 욥 14:5; 대상 29:3; 고후 12:10; 살후  2:12).

---둘째는 ‘선택하다’의 뜻으로 의지적 선택을 말한다(집회서 25:16). 

요단 강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고 말씀한다. 이 이사야42:1-3의 말씀은 마태복음 12:8에서 이사야서의 인용을 밝히며 다시 나타나고, 변화산에서도 하늘의 음성으로 반복된다(마 17:5). 마태복음은 3번이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호의적인 선택을 받은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다(호 아가페토스 무 에이스 혼 유도케센 헤 프쉬케 무, ὁἀγαπητός μου εἰς ὃν εὐδόκησεν ἡ ψυχή μου)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을 강조하였기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 장면이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를 입양하는 선택을 보여준다고 해서, 입양론적인 기독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단어에 부정어가 함께 사용되면, 거절의 뜻을 나타낸다. 

구약성경 하박국 2:4을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 10:38은 70인역을 인용하고 있기에, εὐδοκέω (유도케오)의 뜻을 ‘선택’의 의미로 사용한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여기에서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믿음이 약한 사람) 사람을 선택하기보다(거절하다, οὐκεὐδοκεῖ), 믿음으로 사는 의인을 선택한다(기뻐한다). 단순히 기쁨 이상의 하나님의 우호적인 선택(favor, goodwill)을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갈 1:15).

선택(choice)의 의미 속에는 의지적인 결심(decision)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고난의 사역에서도 자신의 우호적인 선택과 결심을 말한다: “우리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새번역, 고후 5:8). 육신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선택하고 그런 결심을 보여주는 바울이다(We would rather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바울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결심, 성도와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헌신의 결심도 보여준다(살전 2:8). 이 의지적인 결심을 보여주는 단어가εὐδοκέω (유도케오)라 할 수 있다(살전 2:8; 3:1).

---셋째, 동사 εὐδοκέω (유도케오)에는 동의(consent)와 인정(recognition)의 의미가 있다.

법이나 약속, 행동에 동의를 표하는 의미를 지녔다(토빗 5:17). ‘동의’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파생동사가 συνευδοκέω(수뉴도케오)가 신약성경에 나타난다(행 8:1; 22:20; 고전7:12, 13; 계 1:32). 사도행전 8장에서 박해자 청년 사울이 스데반 집사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긴 것은 산헤드린 공회의 처벌에 동의한 것이었다(συν-ευδοκέω, 수뉴도케오, agree with).

신약에는 동사 εὐδοκέω의 명사형 εὐδοκία(유도키아)가 9번 나오는데, 70인역에는 52번 나온다. 이 단어는 특별히 유대문학과 크리스천 저술에만 등장한다. 

예수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말하며 εὐδοκία(유도키아)를 사용하였다(마 11:26; 눅 10:21). 

하나님의 선한 뜻(goodwill)을 말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도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빌 2:13; 살후 1:11). 

비록 바울은  εὐδοκία(유도키아)를 인간의 선한 뜻에도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롬 10:1; 빌 1:11),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선한 뜻에 대하여 이 단어를 절대적으로 사용하였다(엡 1:5,9). 그래서 70인역은 εὐδοκία(유도키아)를 히브리어 וןֹרצָ)라쫀)의 번역어로 사용하였다. 

이 히브리어는 주로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기쁨과 뜻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신약성경은 인간의 구원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한 뜻과 의지를 강조하며, “은혜로운 뜻”(새번역 마 11:26; 눅10:21), “기쁘신 뜻”(엡 1:5, 9)을 지칭하기 위해 εὐδοκία(유도키아)를 사용했다. ....인간의 뜻과 지혜, 의지로 되지 않는 인간의 구원이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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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뻐하다, 기뻐하다..indefinite and everlasting, ultimate, exuberant joy...שׂוּשׂ 7797 [sûws](7797, 수스) ...주 하나님의!!, 억제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주 예수님을 그렇게 기뻐하심처럼!!)..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완치되어 건강 얻은 송아지가 부르며 노래하며 뛰놀듯!!....[말4:1, 2, ...*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수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크게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 exult, 기뻐하다 rejoic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7회 나온다.

(a)  이 단어는 신명기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모세의 경고에 사용되었다(신 28:63과 신 30:9에 각각 2회, 모두 4회). 3회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율법에 순종할 때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었으며, 1회는 불순종할 때 그들을 멸망시키기를 기뻐하신다고 경고한다.

신 28:63에서 "기왕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로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여기에서 수스는 의인들에게 복을 내리고 악인들을 형벌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신 30:9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이스라엘이 그에게 다시 돌아올 때 "여호와께서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한다.

(b)  이 단어는 선지서들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시고(사 62:5, 사 65:19, 습 3:17) 그들에게 기쁨으로 복 주신다(렘 32:41).

(c)  이 단어는 시편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묘사한다. 

시 70:4에서 "주를 찾는 모든 자로...기뻐하고 즐거워 하게 하시며"라고 표현한다. 

시 119편에서 기자는 큰 기쁨 중에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한다: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 하나이다"(시 119:162). 

마찬가지로 선지서에서도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에 대해 즐거워한다고 표현하였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사 65:19, 사 66:14). (참조: BDB; 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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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다/즐거워 하다...(2654, 하페츠(חָפֵץ)) ..(타고난대로, 육신의 죄성이 이끄는 대로 나르시소스적 자기연민에 휘둘림으로써) 선호-취미-기호따라, 이끌리다, 탐하다, 바라다 --> 여기에서 전환하고 돌이켜서!! (성령으로 거듭난이마다) 고개들어 십자가 영광의 주 바라봄으로!! 그분의 기쁨 그 자체가 됨으로 인해, 하마드-하샤크- 라차를 거쳐 넘어서서 하나님의 다함 없는 큰 기쁨인 "수스...indefinite-everlasting-ultimate-exuberant joy/pleasure"를 생생하게-함께 누리며 참예함의,  "길" 곧 "카이로" + "아갈리오마이" (Q의 기뻐하시는 생명 -영생의 그 기쁨과 즐거움) 에 참여함으로 살게 하신다!

1. 하페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한다. ::: 기본적인 의미는 '어떤 것에 대해 큰 호의를 느끼다'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유사한 어근들, 즉 하마드, 하샤크, 그리고 라차와 구별되며, 그 이유는 이 어근들이 감정적인 것을 별로 함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마드와 하샤크는 일반적으로 '바라다' desire로 번역되며 라차는 필요나 승인의 판단에 의거한 호의를 '수락하다' accept를 의미한다. 

하페츠는 그 객체가 그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으로써 호의를 갖도록 유혹하며, 주체는 그것이 탐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그것에 매혹당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어느 정도 이와 비슷한 네 번째 어근 '길'은 훨씬 더 큰 감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에서 주체는 즐거워 하는 태도와 행동으로 자기의 기쁨을 표현한다.

구약성경에서 하페츠는 75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감정적인 기쁨을 경험하다'를 의미한다.

....이런 기쁨은 인간도 느낄 수 있고 하나님도 느낄 수 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이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기뻐"했다: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치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 아비 집에 가장 존귀함일러라"(창 34:19).

아하수에로 왕의 미인선발 대회에 참가한 경쟁자들은 왕이 한번 보고 난 후 그들을 기뻐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게 다시 가지 못했다: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저를 기뻐하여 그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에 2:14).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것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사울왕이 자기 딸 미갈을 다윗과 결혼시키려고, 종에게 지시하기를, 다윗에게 가서 왕이 그를 "기뻐"한다고 전하라고 하였다: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삼상 18:22).

이 기쁨은 사건과 일에 대해서 경험될 수 있다. 

요압이 다윗에게, 왜 인구조사를 하려고 하는가, 왜 군사들을 모으려고 하는가(파카드를 보라), 즉 왜 그것을 기뻐하는가를 물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 24:3). 

이 단어는 또한 어떤 활동에 대해 기뻐하는 백성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에 6:6).

이 단어의 또 다른 용법은 독립적인 의미로 나온다. 

예를 들면, 아가서에 되풀이하여 나오는 표현,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 깨우지 말찌니라"에서 그렇게 나온다(아 2:7, 아 3:5, 아 8:4).

이 단어는 어떤 백성들을 기뻐하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구원의 노래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자기를 구출해 주셨다고 말한다(삼하 22:20). 스바 여왕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기뻐하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송축하였다(왕상 10:9).

하나님은 인간들의 선행에 대해 이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사 56:4)과 "자비"와 "하나님을 아는 것"(호 6:6), 그리고 "진리"(시 51:8)를 기뻐하신다.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신다(시 115:3, 시 135:6).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여호와의 천사가 자기 자신과 아내에게 나타났으므로, 그들이 죽을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기를 "기뻐"하셨더라면 그들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대답했다(삿 13:23).

2. 하페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몸을 구부리다 bend down'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욥 40:17에서 1회 나온다: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포프(Pope)는 욥 40:17(AB)에서 "활 모양으로 구부려져 있는 것"이 꼬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참조: L. J. WOOD;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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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9: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묵상기도에 대한 이해를 더 깊고 풍요롭게 해 주는 두 개의 히브리어가 있다.  바로 하가haga와 시아흐siach이다 영어 성경은 보통 이 두 단어를 다 묵상하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히브리어는 중얼거리다 신음 소리를 내다 속삭이다 숙고하다 반복해서 말하다 깊이 생각하다 그리고 비둘기같이 슬피운다(사 59:11)까지 아주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보통 이 두 단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조용한 묵상을 나타낸다.   특별히 토라 즉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경우에는 소리내어 읖조리는 것을 포함한다(수 1: 8)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이 구절은 묵상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담긴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순종이다.  이는 세상 도처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이 실천하는 다양한 형태의 묵상과는 뚜렷이 대조되는 모습이다 . ...**진정으로 집중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는 우리 내면의 삶에 유용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에는 무엇에든지 의지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확고한 결단이다-- 토마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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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시게, 계신다는 것, 보상...살아 생동하는, 생생하게 발휘되는 믿음이야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 ]]

[히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11:6) -But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be well pleasing to Him, for he who comes forward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ose who diligently seek Him. ..-χωρις δε πιστεως αδυνατον ευαρεστησαι πιστευσαι γαρ δει τον προσερχομενον τω θεω οτι εστιν και τοις εκζητουσιν αυτον μισθαποδοτης γινεται

기쁘게 하다(please)로 번역된 헬라어 ευαρεστεω [euaresteo ; 유아레스토]는 '선한, 좋은, 훌륭한, 참된'을 뜻하는 접두어 ευ [eu ; 유]와 '즐겁고 기뻐서 흥분하다'라는 뜻의 어간 αρεσκω [aresko ; 아레스코]가 합성된 동사형 단어로 너무 기뻐서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태라는 의미가 포함된 단어. 하나님을(완전한 사랑!! 자신을 온통 열어 내어주심으로 안아주시는 분) 이토록 흥분시켜드리며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들어가 TUQ과 결합한 하나됨의, 말씀이신 그분 붙좇는, 그리고 일러주심에 참되게 사랑으로 반응하여 그대로 주의-존숭-절대 감사하며 순종-동행함의) 믿음이라는 것.

골1:10은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여기에서 '기쁘게 하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아레스코의 여성 명사형 단어 αρεσκεια [areskeia ; 아레스케이아].... 즉 아레스케이아는 우리가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일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뜻하는 단어...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두 가지 항목을 믿어야 한다고 하신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다'<즉, 유일무이한, 영원무궁불변의, 제한받지 아니하시는, 영존하시는 영생의 하나님, 여호와(야웨)>이시라는 사실과 둘째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영어의 be 동사는 '이다, 되다, 있다'로 번역되니,.  헬라어와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여서, '나' 다음에 be 동사가 사용되면 '나는 ..이다, 나는 ..이 되다, 나는 (..에) 있다'라는 뜻으로 각각 번역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헬라어 성경 원문에 있는 εστι [esti ; 에스티]라는 동사형 단어도 '하나님께서 계신다'라는 뜻과 '하나님은 ..이다'라는 뜻으로 함께 번역될 수 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다'이신 분으로 더 누리고 있는 편이다.. 제가 배 고플 때 이미 내주하사 연합한 하나되신 하나님께서는 양식이시며, 제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이시며, 제가 슬픔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격려 그 자체이시기 때문,. 그러므로 우리는 '..이다'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항목인 보상해 주시는 분(rewarder of great reward..창15:1(1-7..믿음은, 신뢰하고 의지하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바 그것을 그대로 받아 누림이다!!)을 보라)으로 번역된 μισθαποδοτης [misthapodotes ; 미스다포도테이스]는 '일에 대한 삯, 보상, 급료'라는 뜻의 남성 명사형 단어 μισθος [misthos ; 미스도스]와 '주다, 수여하다, 내어주다'의 뜻을 가진 αποδιδωμι [apodidomi ; 아포디도미]가 합성된 여성 명사형 단어로 '(마땅한 필요 다 채워 넘치도록 주심의) 보상, 또는 보상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헬라어 어원으로 본 '보상'은 우리가 일 한만큼 얻는 분깃을 말하는 것이니, 일하지 않았다면 보상은 없다. 또한 주인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해도 보상은 없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더라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행위가 우리에게 없다면 보상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전3:15는 "그 일이 불타 버린 사람은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에 그분은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상을 주실 것이요 그리고 그 보상은 오는 왕국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보상을 얻기 위해 분투했으며 심지어 모세도 보상을 바라보았다(히11:26).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들'에게 보상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부지런히 찾다(diligently seek)'로 번역된 εκζητεω [ekzeteo ; 에크제테오]는 '극도의'라는 뜻의 접두어 εκ [ek ; 에크]와 '찾다'라는 뜻의 어간 ζητεω [zeteo ; 제테오]가 합성된 동사형 단어이다.

골3:1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다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라고 하신다.. 여기에서 추구하다(seek)로 번역된 헬라어가 바로 제테오인데,. 제테오는 그냥 구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것을 찾고 얻기 위해 생각하고, 요청하고, 끊임없이 구하러 다니는 것, 그리고 마침내 얻는 것을 말한다.

요5:30은 .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듣는대로 심판하므로 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구한다고 하신 그 '구하다' 역시 제테오이다...

주님께서는 항상 미명에 산에 가셔서, 혹은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보내신 분이신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셨다. 그리고 구하고 또 구하셨고, 하나님께 요청하고 또 요청하셨다. 단 한 번도 주님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시고 선택하신 적이 없었으니!! 바로 이것이 제테오이다....보냄을 받으신 분인 주 예수님께서 보내신 분의 뜻을 구하고 또 구하셨듯이 우리 역시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한다. 그 제테오에 극도로라는 듯의 접두어 에크가 붙었다. 그러니 에크제테오는 얼마나 필사적으로 구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지 알 수 있다. '..이다'이신 하나님과 극도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보상이 되시며 보상해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믿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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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ὐάρεστον...(유아레스토스)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εὐάρεστον...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εὐάρεστος.(유아레스토스)..롬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εὐάρεστοι..(유아레스토스).고후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εὐάρεστον...엡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εὐάρεστον...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εὐάρεστόν...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εὐαρέστους..딛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εὐάρεστον...히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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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5:16-18..*16.[내게 오라 초청함 인해 믿어들어가서 하나됨 이루어 임마누엘 주님 안에 하나되어 거함 이루신 바, 오직 그  믿음 안에서]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정신 차리고(거듭난 영의, 타작-도정된 알곡으로 신전의식 가짐) 근신함과(참되고 진실한 거듭난 마음으로 주님 하심처럼 말하게 하심따라 신중히 말함) 깨어 있는(대적의 움직임을 경계-파수-망보고-지켜보고 언제든지 대적할 수 있게 함)  마음으로 성령으로 호흡함, 곧 성령과 하나됨으로] 기도하라 *18.[상황변화에 상관없이ㅡ 모든 상황 속에서..임마누엘 주님을 누림으로써 지속적으로]범사에 감사하라(감사에서 감사로나아가며 감사위에 감사를 더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6.  Rejoice always;    17.  pray without ceasing;   18.  in everything give thank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16 Rejoice always and delight in your faith; 17 be unceasing and persistent in prayer; 18 in every situation [no matter what the circumstances] be thankful and continually give thanks to God; for this is the will of God for you in Christ Jesus..]

[살전5:19-23...*19.(기도는 생명 호흡이니, 생명 교통/교제의 생명 샘이신 주 영의 역사와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따름  안에서 성령으로 기도함으로 늘 깨어 주 앙망함으로 넘치도록 공급하시는 바]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주를 향해 깨어 있는 마음에 채워주사 타오르게 하시는 주님의 감동된 말씀인 바, 지체들에게 마음을 열고 교통 안에서 세워나가기 위해 주시는 즉각적인 발화=주님 말씀하심인 신언]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그 말씀 듣는 이마다 그것에 대해 직접 주께 나아가 그 말씀을 여쭙고 그분으로부터 직접 확인할 바, 그분의 조명하심 아래서 자신의 마음을 비추며 헤아려 튜닝함으로써, 감사 또는 회개에 이르게 하시는 바,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림 통해 몸을 세우되]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그리함으로써]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19.  Do not quench the Spirit;   20.  do not despise prophetic utterances.   21.  But examine everything [carefully]; hold fast to that which is good;   22.  abstain from every form of evil.   23.  Now may the God of peace  Himself sanctify you entirely; and may your spirit and soul and body be preserved complete, without blame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24.  Faithful is He who calls you, and He also will bring it to pass.  ..... 19 Do not quench [subdue, or be unresponsive to the working and guidance of] the [Holy] Spirit. 20 Do not scorn or reject gifts of prophecy or prophecies [spoken revelations—words of instruction or exhortation or warning]. 21 But test [d]all things carefully [so you can recognize what is good]. Hold firmly to that which is good. 22 Abstain from every form of evil [withdraw and keep away from it].  23 Now may the God of peace Himself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that is, separate you from profane and vulgar things, make you pure and whole and undamaged—consecrated to Him—set apart for His purpose]; and may your spirit and soul and body be kept complete and [be found]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24 Faithful and absolutely trustworthy is He who is calling you [to Himself for your salvation], and He will do it [He will fulfill His call by making you holy, guarding you, watching over you, and protecting you as His own].]


@@기뻐하다 be glad, 즐거워 하다 rejoice. ....caivrw(5463, 카이로)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이로(Homer이래로)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하며,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기뻐하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명령법은 인사말로 자주 나타난다. 즉 카이레(단수)와 카이레테(복수)는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Hail!라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카이레는 무엇보다 신들에게 대한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서신의 서두에서 부정사 형태인 카이레인이 가끔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동사 레게이가 보충되어야 한다(참조: Funk § 480). 즉 "…문안을 [드리다]"([…says] greetings!). 똑같은 관용 어구가 축배를 들 때도 사용되며(즉, "건강을 빌면서!" good health!) 헤어질 때도 사용된다(즉 "안녕히 계십시오[가십시오]!" Farewell!).

2. 70인역본의 용법 

카이로는 70인역본에서 약 80여회 나오며, 주로 '기뻐하다, 기쁘다'를 뜻하는 길, 사마흐, 시스와 '기쁨, 즐거움'을 뜻하는 사메아흐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카이로는 신약성경에 74회 나오며, 이 동사와 명사 카라(carav, 5479)는 특히,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 완성 및 그리스도 안에 존재함과 그리스도 안의 소망을 언급한 곳에 현저히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선포인 신약성경 메시지 전체가 기쁨의 메시지(→복음 Gospel)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a)  카이로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부정사 카이레인을 써서 인사한 경우는 행 15:23; 행 23:26; 약 1:1의 편지의 서두에서만 나타난다. 요이 1:10에서 신자들은 이단에 속한 자들에게 카이레인을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여기서 수신자들은 이단 교리를 전하는 자들의 악한 행위에 완전히 연루되지 않도록, 그들을 영접하지도 인사하지도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마 28:9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친숙한 일상적 인사말 카이레테를 사용하여 제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마 26:49에서 배반자 유다는 예수님께 인사했다: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안녕과 행복을 소원하는 그 인사의 이면에는 무서운 음모를 감추고 있다.

마 27:29에서는 예수님께 대하여 유대인의 왕(이스라엘)이라고 조롱적 인사를 던지고 있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들이 이렇게 인사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그 말을 하였으나, 주님이 당연히 받으셔야 할 인사였으니만큼, 그 속에는 하나의 반어적(反語的)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눅 1:28에서 마리아는 카이레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잇따른 메시지에 놀랐다.

(b)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은 기쁨을 가져왔다. 카이로는 잃어 버린 것을 찾았을 때(눅 15:5이하; 마 18:13),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았을 때(눅 10:20), 구세주의 선구자가 났을 때(눅 1:14), 그의 탄생의 별을 보았을 때(마 2:10),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눅 13:17; 눅 19:6), 기뻐하는 것을 표현한다.

눅 19:37이하(참조: 눅 18:43)에서 예수님께서 입성할 때의 사람들의 분위기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 제자들의 분위기처럼 기쁨의 분위기였다: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마 5:12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핍박을 받을 때도 기뻐해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이 하나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그를 뒤따르는 자들의 길이 고난과 핍박에 이르게 된다 할지라도, 기쁨에 찬 구원의 확신은 상실되지 않아야 한다(눅 6:23).

눅 22:5에서 유다가 당국자들과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합의했을 때 그들이 기뻐했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눅 23:8에서 수난의 때에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보고 기뻐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c)  사도행전에서는 교회의 불가항력적, 전세계적 확장에 대한 기쁨이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먼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과 핍박을 받음에 대한 사도 Apostle들의 기쁨이 있다(행 5:41; 마 5:11이하). 박해가 복음의 승리적 진행을 정지시킬 수 없다. 이방인을 끌어 모은데 대한 기쁨도 있다(행 11:23; 행 13:48; 행 15:3).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세례(침례)를 받았을 때, 거기에 해당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행 8:8, 행 8:39; 행 15:31).

(d)  요한의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충만한 기쁨이다. 

요 3;29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신랑" 즉 약속된 하늘의 진리의 계시자로 인하여 지금 기쁨이 충만해 있다(참조: 마 9:14이하, 병행구, 막 2:18이하; 눅 5:33이하). 종말론적 시간은 이미 도래하였다. 요 4:35 전후 문맥을 보면 이 때는 계속적인 파종과 수확기가 병존하는 시기이고(요 4:35이하),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을 이미 성취하고 계신다(요 4:34). 요 8:56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아브라함도, 수확이 시작되는 이 때를 보며 즐거워 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여기에서 카이로는 기다리는 기쁨이고 아갈라오마이는 성취된 기쁨이다.

요 16:20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죽음을 자기의 제자들이 기뻐해야 한다고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죽음은 승리요 발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슬픔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부활이 그 슬픔을 기쁨으로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요 14:27이하에서 기쁨을 평화와 연결시키는 것은 기쁨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만들어 낸다.

요 11:15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때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셨다.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요이 1:4; 요삼 1:3에서 사도 요한은 믿음의 형제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기뻐했다.

계 11:10에서 카이로는 악한 즐거움을 나타낸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계 19:7에서 성도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즐거워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e)  바울 서신들은 기독교인의 기쁨은 슬픔과 고통과 근심 가운데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 의미를 증거하고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은 사실은 이 기쁨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① 이러한 기쁨의 원천은 단순한 지상적, 인간적 기쁨 너머에 있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이며, 따라서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계속하여 기쁨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고, 그 기쁨을 표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빌 3:1; 빌 4:4; 빌 4:10; 롬 12:12; 고후 6:10).

빌 1:15이하; 빌 1:18에서 바울은 동기에 상관하지 않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였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놀라운 비이기적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어떤 자들이 그들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전파하고 있는 것을 알았으나 이 전도자들의 동기에 상관없이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믿음과 그것의 결과적 기쁨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에, 좋지 못한 동기에 의해 그리스도가 전파된 때 조차도, 바울은 확신과 기쁨을 지닐 수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운 사역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빌 1:15-18).

②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기쁨을 들립시스(고통, 고난, 박해, 환난)와 직접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바울이 편지를 기록할 때, 들립시스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후 2:4), 엔 퀴리오, 즉 "주 안에" 있는 기쁨인(빌 3:1) 자기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눠 갖도록 하기 위해(고후 2:3) 썼다고 하였다. 고린도인들의 삶은 수동적 자포자기 상태 또는 사망을 낳는 세상 근심(고후 7:9이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결한 믿음의 기쁨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했다. 바울은 그들을 이전에 엄히 책망했었으나, 그의 권면이 결국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다시 안심하게 되었다(고후 7:13).

③ 바울은 빌립보서를 쓸 때 감옥에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자기의 재판의 결과를 알 수 없었고, 분명히 외로움을 느끼었을 것이다(빌 2:20이하). 그리고 충성스런 복음 전파도 위기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빌 1:15이하; 빌 2:21). 또 다시 들립시스가 있었으며(골 1:24), 이것이 근심의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계속적인 기쁨의 근거 역시 있었다. 즉 그것은 빌립보인들이 복음에 참여함으로 인한 감사(빌 1:5)와 그리스도가 계속 전파됨으로 인한 기쁨이었다(빌 1:18). 그리스도와 복음에 의해 속박을 당한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기뻐하라고(빌 2;17이하), 또 염려를 버리라고(빌 4:6), 나아가서는 성령의 교제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비록 바울에게 근심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고, 그가 곧 죽게 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그의 몸에서 존귀하게 되는 한(빌 1:20),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이처럼 빌립보서의 기쁨은 계속적이고 "도전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쓰는" 기쁨이다(K.Barth).(참조: 빌 2:17; 빌 4:4).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은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지칠 줄 모르는 기도를 통해 생성된다(빌 4:6; 참조: 살전 5:16; 골 1:11). 그것은 복음의 세계적 확산에서(살전 3:9; 골 2:5), 그리고 복음을 전한 교회들의 왕성한 성장에게 그 힘을 얻는다(빌 4:10; 참조: 살전 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주 안에서의 기쁨이다(빌 4:4).

④ 벧전 4:13에서 카이로는 고난과 영광에 관련되어 나타난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롬 12:15에서 관용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타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한편 고전 7:30; 고후 6:10에서 카이로는 우리에게, 현재의 기쁨과 슬픔은 이 생(生)에만 속할 뿐이며 우리의 궁극적 몫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참조: H.Conzelmann; E.Beyreuther; G.Finken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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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11, 122...**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카이로) 즐거워하라(=아갈리아오마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크게 기뻐하다....ajgalliavw(21, 아갈리아오마이) 

1.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아갈리아오마이와 그 명사형 아갈리아시스는 70인역본, 신약성경 및 이들에 의 존하고 있는 유대와 기독교 저술가들의 저서에만 발견된다. 

이 단어들은 세속 헬라어 아갈로와 아갈로마이 (호머 이래)에서 비릇된 후기 어형들이다. 

아갈로는 `숭배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 영광스럽게하다'(Plato,  Aristotle ). 아갈로마이는 어떤 것을 '과시(자랑)하다'(Herodotus), `즐기다, 어떤 것에서 기쁨을 맛보다'(Homer), '황홀해하다, 크게 기뻐하다'(Herodotus)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 전체를 사로잡는, 인간의 근본적 기쁨의 감정이다. 그리고 아갈로마이는 제의적, 아마도 황홀한 축제적 기쁨이다(Eur.Ba.157; Tro. 452).

신약성경에는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뜻하고 그 특성을 표현하는 세 개의 주요 단어들이 있다. ^^카이로는 신체적 안락과 안녕이 기쁨의 토대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 동사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헤질 때 주고 받는 인사로 사용한다. 이러한 인사는 건강 및 안녕을 바라는 표현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이 자기에게 있어 주기를 바란다. ^^유프라이노는 기쁨의 주관적 강정을 가리킨다. ^^아갈리아오마이는 기쁨과 만족의 외적 표현 및 공적 예배에서 맛보는 환희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몹시(크게) 기뻐하다, 기뻐날뛰다'를 의미한다.

2. 70인 역본과 유대교의 용법 

(a)  70인 역본에서 아갈리아오마이와 아갈리아시스는, 길(기뻐하다, 기뻐함) 과 라난(기뻐 소리지르다)의 역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축하하고 찬양하는 제의적 축제의 기쁨을 가리킨다(예:시32:11). 이 단어들의 의미는 곧 공적 예배의 범주를 넘어 확대되었다. 

아갈리아오마이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기뻐하는 공동적, 개인적 태도 둘다 표현하게 되었다(참조: 시9:l4; l6:9; 21:l; 31:7; 35:27; 92:4).

이 기쁨은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 체험에 대한 표현이며, 나아가서는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대해 주실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이미 보증하신 것으로 믿는 것이다(참조: 합3:18).

공적 예배의 기본 행위는 그대로 존속하지만 하니님의 전능한 행위에 대한 말없는 증거들. 즉 하늘과 땅과 산과 섬들과 같은 피조 세계까지도 기쁨에 싸여있으며, 이것들 모두 기쁨에 동참하거나 기뻐하리는 부름을 받고 있다(시l9:5; 89:12; 96:11; 97편 등). 하나님 자신도 이 기쁨에 동참하신다(사65:19). 바벨론 포로 기간과 그 후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비참한 상황에서 조차도 일어니게 되는, 자기 하니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쁨은, 궁극적 구원에 대한 예견적 감사와 메시야에 대한 기쁨을 포함하는데까지 확대되었다(사61장). 히브리인들의 감사와 찬양의 태도가 가장 심원한 표현에까지 도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말론적 영항에서 였다. 마침내 아갈리아오마이는 종말론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제의적 축제의 전형이 되는 마지막 때의 기쁨을 의미한다(참조:시96:11이하; 97:8; 126:2,5; 사25:9).

(b)  과거와 현재와 종말론적 미매에 있어서의 하니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지극히 큰 기쁨은 그후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와 랍비 신학과 랍비들의 유대주의 신앙의 특색을 이루게 되었다(SB Ⅳ 2, 85 이하). 유대인의 전(全)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기쁨은 이처럼 `하늘의 어떤 함창단의 선율과도 같은 유대 백성의 극적인 역사'를 수반하였으며, 예배식에서 그들의 신앙 생활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E. Stauffer, Jerusalem  und Rom, 1957. l02).

(c)  랍비 유대교와는 대조적으로, 쿰란 공동체에서는 구원의 날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찬송과 기도를 통해(특히 감사 두루마리[1QH]와 공동체 규정[1QS]의 끝 부분[10:1l]에서) 자비로써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비밀들(Secrets )에 대한 통찰력을 부여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였다.

3. 신약성경과 초대 교회의 용법 

신약성경에서 아갈리아오마이는 11회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신약성경에서도 70인 역본의 용법과 같이 사용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즉 구약성경에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계속하여 도와 주셨고 또 지금도 여전히 돕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확고한 신뢰로부터 지극한 기쁨이 일어난다. 메시야 도래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지막 구원 행위로써 모든 궁핍과 고통을 제거하실 것이다.

반면 신약성경에서는 이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 구원 시대를 지금 이미 열어놓으셨고,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이 구원을 영광스럽게 완성하실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알리아-( )의 주제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행위는 기쁨의 주제이다.

(a)  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 전에도 기쁨에 관한 기사가 있다. 주의 선구자가 태어났을 때 사가랴는 기뻐 노래하였으며(누가1:14), 엘리사벳의 태 속에 있는 아이조차도 기쁨에 동참하였다(누가1:44). 예수께서는 세례(침례) 요한의 빛 가운데서 잠시 즐거워하였던 경건한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언급하셨다(요한5:35). 찬양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자기가 하니님의 구원 목표에서의 한 위치를 부여받았다는 사실로 기뻐하였다(누가1:47).

(b)  예수께서는 구원을 친히 가져오신 분으로서, 인간들에게 기뻐하라고 요청하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이 기쁨에 동참하셨다. 팔복은 다음과 같은 권고로 끝을 맺는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5:l2; 참조: 누가6:23) 구원의 때가 가까왔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영적으로 기뻐하셨다(누가10:21).

그러나 동시에 이 구원이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나고, 구원에는 심판도 포함되기 때문에 지혜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졌다(누가 10:21; 참조: 마태11:25). 아브라함(온전하게된 의인들 중의 한 사람, 히브리(12:23)도 구원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인한 마지막 날의 택함받은 자로 자신들을 간주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장래의 재림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았으며, 또한 다윗의 기쁨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행전2:26; 베드로가 시편16:10을 인용한 부분).

(c)  빌립보의 간수도 온 가족과 더불어 기뻐하였다(에칼리아사토). 그도 역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믿음과 세례(침례)를 통하여 마지막 날의 구원받은 공동체에 소속되었기 때문이다(행전16:34).

(d)  떡을 나누는, 종교 의식시의 식사에서 초대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찬미하였다. 그들은 기쁨으로 찬미하였다. 그들은 기쁨으로(엔 아갈리아세) 성찬 예식을 거행하였다(행전2:46; 참조: J.Jeremiasa the Eucharistric  Words of Jeeus, 1966, 254).

(e)  베드로전서에서는 마지막 날의 고난에 개의치 말라고 교회에 권고하고 있다. 왜냐히면, 세상 끝날에 나타날 기쁨과 견주어 볼 때, 고난은 증요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벧전1:6,8; 4:13).

(f)  요한계시록에서 세상 끝날에 다음과 같이 외치는 한 음성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라고 신자들을 권고하고 있다(계시록19:7).

...바울 서신에는 이 단어(아갈리오마이)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복음 전도자로서 그는 오히려 아갈리오마이를 누림 안에서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이미 뛰어넘어) 때때로 카우카스다이([(나는 이미 죽고!!) 진정한 참기쁨, 곧 Q과 그리스도 예수의 기쁨과 즐거움의 본체요 근원이신 예수, 그분을 살며 누리며 늘 그분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바로 그분을 살아내며 전파함이란 의미에서!!] 자랑하다.....카우카오마이)를 그 대신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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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kaucavomai(2744, 카우카오마이) ..자랑하다 to boast..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롬 5:11; 빌 3:3); 혹은 갈 6: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은 유일하게 적합한 자랑의 형태이다. 이 자랑은 "(이렇게) 모든 자기 자랑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K. L. Schmidt)

.... 기독교인의 자랑에는 사도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행위와 (복음 전파-생명 산출/양육/돌봄/섬김의, 섬기는 자로서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에 대한 합당한 권위 주심에 대한 [이 또한 주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이 항상 있어여 한다] 감사-긍지-자랑도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예를 들면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고후 11:12 이하). 자기에게 주어진 엑수시아(권위)를 자랑하기도 하였다(고후 10:8; 참조: 롬 15:17). 그는 또한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각 교회를 자랑하고 있다(고후 7:14; 살후 1:4)....[기독교인은 각사람마다 진실로 주 안에서!! 자기의 연약함만을 자랑할 수 있음을 반드시 잘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기에서 분명해지기 때문이다(고후 11:30; 고후 12:5; 고후 12:9; 롬 5:3). 롬 5:2에서 바울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라고 한다.(참조: R. Bultmann; H -C. Hahn). 

(g)  과거를 포함하며 또한 미래를 가리키는 축제적인 기쁨(festive  joy)는 이처 럼 신약 교회와 교회에 소속된 기독교인 개개인의 독특한 자세가 되었다. 

...마치 종말의 잔치(eschatological banquet,; 참조: 계시록19:7-9) 때와도 같이, 교회의 공적 예배는 기쁨으로 층만해 있었다. 

기쁨은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원을 통해 경험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현재에 겅험하며 미래에도 경험하리라 확신한다. 

...이와같이 바라볼 때 현재의 고난도 감소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통이 우리를 무겁게 압박할 때조차도 우리에게는 역설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쁨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부활하시고 지금 현재 살아 계시며 장자 오실 주님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모든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신약의 이러한 아가리아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종말론적 기쁨을 표현한다.(E.Beyreuther; Bul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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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다(rejoice)

즐거워하는 것, 즉 마음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감정적인 기쁨을 경험하는 것은 사람이나 하나님, 사건이나 사물을 통해 가능하였다.

이 단어는 특정한 백성을 기뻐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되었다. 다윗은 그의 구원의 노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를 구원해 주셨다고 말한다(삼하22:20). 시바의 여왕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를 구원해 주셨다고 말한다(삼하22:20). 시바의 여왕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였다(왕상10:9).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그의 율법이 준수되는 것을 기뻐하시며(사56:4), 또한 자신이 기뻐하시는 행위들을 하신다(시115:3;135:6).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려워 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의 기도에 귀기울여 달라고 기도하였다(느1:11).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은총이나 호의(신33:16;시5:12;사60:10), 하나님의 열납하심(출28:38;레1:3), 인간과 하나님의 바람이나 뜻(대하15:15)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낮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기뻐해야 하며(빌4:4;살전5:16), 그로 인한 고난과 굶주림도 기뻐하면서(고후12:10;벧전1:8) 범사에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한다.

==기쁨(joy)

히브리어로, 외적 표현을 뜻하는 '심하'(동사형 '사마흐')와 보통 덜 사용되는 '길'(동사와 명사)이다. 헬라어로, 강렬한 기쁨을 의미하는 '카라'(동사형 '카이로')와 '아갈리아시스'(70인역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히브리어 '심하'에 상응함)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기쁨은 신자 개인과 교회 공동체적인 일관된 표시이다. 그것으 하나의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기초되어지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하나의 기질이다(시16:11;빌4:4;롬15:13). 그것은 땅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특징지워주고(벧전1:8), 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종말론적인 즐거움을 예시한다(참고. 계19:7).

1.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쁨. 기쁨은 이스라엘 국가 전체와 종교 생활에 관계된다. 그리고 그것은 축제나 제사 그리고 왕위 제관식에서 소란스런 말이나 떠들썩한 흥분으로 특별하게 표현된다(신12:6이하;삼상18:6;왕상1:39이하). 자발적인 기쁨은 시편 여러곳에 나타난 특징인데 그것은 크게 성전에 모였던 공동예배(시42:4;81:1-4)와 개인적인 찬양(시16:8이하;43:4)의 표시이다. 이사야는 단순히 의식적인 말(참고. 시126편)이 아닌 다른 말로 기쁨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으로나(우주적인 즐거움이라는 말로) 다가올 메시야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쁨을 연상했다(사49:13;61:10이하). 결과적으로 후기 유대주의에서는 기쁨이 종말적인 본문에 있어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2. 신약성경에 나타난 기쁨. 공관복음에서는 다양한 형식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선포에 관련된 기쁨의 표시를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구주의 탄생(눅2:10)에서, 승리의 입성(막11:9이하;눅19:37)에서, 부활 기사(마28:8) 이후에서 나타나 있다. 4복음서에서 이 기쁨을 전달하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다(요15:11;16:24). 그리고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 사이의 깊은 교제의 결과가 된다(참고. 16:22). 사도행전에서 기쁨은 초대교회의 생활을 표시한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행13:52)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기적들(8:8), 그리고 이방인들이 회심한 사실과 보고(15:3)에서 오며 그것은 또한 성도의 애찬의 특징이기도 하다(2:46). 바울은 '카라'라는 말을 세 가지 용례들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 믿음의 진보를 보일 때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과 특히 그가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들의 믿음의 진보는 기쁨의 원인이었다. 그는 실제로 '우리의 기쁨'(살전2:19이하. 참고. 빌2:2)으로 그것을 설명한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역설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통과 심지어 슬픔의 결과일 수 있다(골1:24;고후6:10. 참고. 벧전4:13;히10:34). 그것은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쁨은 실제 성령의 은사(갈5:22)이며 그럼으로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인 어떤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에서 생겨난다. 사랑은 바울의 성령의 열매의 목록들 중에 사랑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러나 그것은 죄로 인해 빼앗길 수 있는 은사이므로 모든 신자들은 매일 주님과 통행하고 그와 그의 구원에 대한 지식으로 매일 즐거움을 경험함으로 그리스도의 기쁨을 공유하도록 요청받는다(살전5:16;빌3:1;4:4;벧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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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다 to boast.....kaucavomai(2744, 카우카오마이)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우카오마이(Sappho. 이래)는 '자랑하다, 뽐내다, 자랑으로 여기다'를 의미하며, 보통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이나 풍자 작가들의 저서에서 자랑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카우카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32회 나오며, '자랑하는 것'을 나타내는 여러 히브리 단어들을 번역한다. 70인역본에서 자랑에 대한 비판적 격언이 나온다(왕 20:11; 잠 25:14). 부를 자랑하는 것은 부를 의뢰하는 것이다(사 49:6).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이 있을 수 없다(삿 7:2).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랑할 수 있다(렘 9:23-24). 의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자랑할 것이다(시 5:11). 집회서 39:8에서는 율법을 자랑하는 것을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카우카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야고보서에 2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카우카오마이를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한다. 바울은 공적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유대인의 교리를 공박하는 동시에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율법 성취에 근거한 인간의 자기 자랑의 습관을 반박하였다.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자랑은 하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참조: 롬 3:27). 이런 사실은 엡 2:8 이하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것에 대해 슐랏터(A. Schlatter)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영광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석한다. 롬 2:23에 보면 율법에 근거한 인간의 자랑이 무가치하다고 한다.

유대 사상과 달리, 바울도 역시 개종하는데 따르는 자랑을 거부하였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 6:13).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들의 소피아(지혜, 고전 1:29; 고전 3:21)를 자랑하는 헬라인들의 자기 과신을 강하게 논박하였다. 이 모든 형태의 육적인 자랑(고후 11:18; 빌 3:3 이하)에는 이방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 유대인에 대해 가지는 오만한 태도(참조: 롬 11:17 이하) 및 허위적인 자랑(고전 4:7; 고후 5:12; 고후 12:6)과 같은 것 까지도 포함된다. 이런 자랑은 악 즉 의롭지 못한 자랑의 범주에 든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참조: 고전 5:6). 그리고 이런 자랑은 렘 9:24을 인용한 고전 1:31의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후 10:17 이하)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적절한 자랑의 한 형태와 모순된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롬 5:11; 빌 3:3); 혹은 갈 6: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기뻐하는 것은 유일하게 적합한 자랑의 형태이다. 이 자랑은 "(이렇게) 모든 자기 자랑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K. L. Schmidt). 기독교인의 자랑에는 사도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행위와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에 대한 자랑도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예를 들면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고후 11:12 이하). 자기에게 주어진 엑수시아(권위)를 자랑하기도 하였다(고후 10:8; 참조: 롬 15:17). 그는 또한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각 교회를 자랑하고 있다(고후 7:14; 살후 1:4).

기독교인은 진실로 자기의 연약함만을 자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기에서 분명해지기 때문이다(고후 11:30; 고후 12:5; 고후 12:9; 롬 5:3). 롬 5:2에서 바울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라고 한다. (참조: R. Bultmann; H -C. 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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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6:10-14----
[사66:10-14..*10.예루살렘(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을 사랑하는(샤마흐...기뻐하다+즐거워하다)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길...기뻐하다>즐거워하다)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아헤브..사랑하다-좋아하다-<참된 의미에서>집착하다-서로 결합한 하나로서 거하다)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마소스...주체 못할 극도의 넘치는 기쁨의 찬송과 외침으로 주께 영광 돌림)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수스)  *11.너희가 (젖이 풍성한 유방을 가진 하나님 여호와, 엘샤다이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카보드..풍부-다량-부-영예-영광 나타내심)의 풍성함(지즈...생동하는 생명의 풍성-부요-충만)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아나그..부드럽고/유순하고-고상하며-곱고/우아하며 아름답고-절대적으로 기뻐하다)  *1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샬롬)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샤아..귀엽게 보시며 누리시는 주로 인해 염려 사라지고 만족하며 기쁘고 즐거워 주님 무릎에서 장난치며 주님 누리고 서로 받아줌) 것이라  *13.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나함...후회하며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너희가 이를 보고(라아...비라보고 조사하여 보아 확실히 알다) 마음이 기뻐서(수스) 너희 뼈가 연한 풀(새로 돋은, 생명 충일한, 어리고 연한 풀)의 무성함(파라흐...싹터 봉오리를 맺음)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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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쁨을 얻으려고 온 힘을 다하나 세상의 기쁨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고 영원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누릴 기쁨과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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