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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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2장  [331.영광을받으신만유의주여] [407.구주와함께나죽었으니] ....은혜아니면살아갈수가없네


[딤후2 :1-3]..

1.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웨_아타<바브_아인-타브-헤이>.. @베니<베이트-눈-요드> @히트_하제크<헤이_타브-헤이트-자인-코프> @바_헤쎄드<베이트_헤이트-싸멕-달렛> @아셰르<알렙-쉰(우)-레이시> @하_마쉬아흐<헤이_멤-쉰(우)-요드_헤이트> @야후슈아<요드-헤이_쉰(우)-아인>

2.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웨_에트-아셰르<바브_알렙-타브, 알렙-쉰(우)-레이시> @샤마_에타<쉰(우)-멤_아인-타브> @밈메니<멤-멤-눈-요드> @비_페네이<베이트_페이-눈-요드> @에딤<아인-달렛_요드-멤> @라빔<레이시-베이트_요드-멤> @타페키데누<타브_페이-코프_요드-달렛-눈-바브(중) *파카드<페이-코프-달렛..돌봄/방문/심사숙고하다> @비데이<베이트_요드-달렛-요드> @아나쉼<알렙-눈_쉰(우)_요드-멤> @네에마님<눈-알렙-멤-눈_요드-멤> @아셰르-헴<알렙-쉰(우)-레이시, 헤이_멤> @케셰림<카프-쉰(우)-레이시_요드-멤> @레_라메드<라멛_라멛-멤-레이시> @감<김멜-멤> @에트-하_아헤림<알렙-타브, 헤이_알렙-헤이트-레이시_요드-멤>

3.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웨_카벨<바브_코프-베이트-라멛> @하_라오트<헤이_레이시-아인-바브(상)-타브> @케_깁보르<카프_김멜-베이트-바브(상)-레이시> @하일<헤이트_요드-라멛> @베밀_헤메트<베이트-멤-라멛_헤이트-멤-타브> @야후슈아<요드-헤이_쉰(우)-아인> @하_마쉬아흐<헤이_멤-쉰(우)-요드_헤이트>

---Q의 집 = 성도 각자의 마음..질그릇=셸-헤레스//나무 그릇, 셸-에츠//케세프(은) 자하브(금)..준비 양상마다 다름...변화가능함..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우_베_바이트 가돌 로-켈레이 케쎄프 웨_자하브 비_르바드 엘라 감-셸-에츠 웨_셸-헤레스 우_메헴 레_카보드 우_메헴 레_비_자욘 -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웨_힌네 임-타하르 이쉬 에트-나페쑈 메멜레 이흐예 켈리 레_카보드 메_쿠다쉬 우_모일 레_아돈 무칸 레콜-마아세 토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복음진리, 하나님말씀, 곧 기독교의 교리와 교훈 위탁 :: 경기자, 농부....선두주자의 수고 :: 길이 참음 그 결과는 왕노릇 함)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은혜<카리스χάρις>와 기쁨<카라χαρά>의 영적 상관 관계

[롬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6: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빌4:4-9...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희락>의 헬라어는 <카라χαρά>...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평안하다 행복하다 평안하다의 의미... 순간적인 기쁨이 아닌 내면에서 계속 흘러 나오는 기쁨을 의미.... <은혜>를 의미하는 <카리스χάρις>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칠 때 마음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감정이 <카라 χαρά>,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면서 가졌던 그 <기쁨>... <에덴 동산>은 감격의 기쁨이 가득한 곳이었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

---<카라χαρά>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그 진리로 충만한 내면의 상태를 뜻한다...하나님의 생명 말씀에 대한 감격이 커서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즐거움을 의미

......보라!!, 카라[기쁨, 희락]의 근원은 카리스[(말씀-기도-찬양!!)주 JC의 임재 누림 = 넘치는 은혜...임마누엘...내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영원 부활생명 그리스도요 사공 초월하여 천지에 충만하신 권능의 주님, 여호와 하나님의 언제 어디서나 하나 되사 함께 하심 = 코아흐(뒤나미스)+오즈/마흐세(보혜사..파라클레토스)]요, 카리스를 경험할 때 유카리스테오[감사...누림-맛봄-넘침-공급-나눔]의 환호를 발하며 이 진정하고 참된 기쁨을 표현하게 되며, 그 기쁨은 바로 하나로 내주하시는 그분께서 친히 일하며 이끄심[=은사, 카리스마]인 것이니...

.....근원적 의미의, 주체못할, 영속적으로 솟구치는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 바 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아가면서 참되게 경험하여 믿고 살고 누리며 알아감의 친밀 그 자체가 은혜요 그 은혜를 누릴 때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바로 참 희락(기쁨과 즐거움)이다

.....그리스도, 곧 성령-물(말씀)-피(참사람=성육신-대속-정결-부활생명)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상황-처지-형편, 시공울 초월하여] <카라χαρά>로 충만한데,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씀(다바르, 로고스)을 사모하며, 말씀에 전존재를 열어드림으로써 말씀을 [아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을, 그분의 다함 없는 풍성-부요-충만을 맛보아 알며, 주님이면 다함 없고 늘 넘치는 만족-그분이면 충분함을 알게 되리니, 그분의 선하심-인자하심-거룩하심-의로우심-미쁘고 참되심을 경험하고 마음에 , 전존재에 그대로 새겨지도록 머물도록 하라, 그 맛보아 알게 됨의 노래와 춤, 고백적 표현이 은혜요, 은혜<카리스χάρις>가 풍성하게 흘러 넘침이 바로 감사<유카리스테오ευχαριστεω>....은혜와 감사가 풍성할 때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 표현 기쁨 <카라χαρά>인 것이다.... 은혜와 감사 그리고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흘러 넘칠 때 그리스도 그분께 속한, 아니 그분 자신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분이 부탁하신 그분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은사<χάρισμα>=선물로 나타남을 알게 되는 것이다....오늘도 사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부어 주실 그 기쁨을

카이로.."항상 기뻐함 살전5:18..(...카이로 = 기뻐하다 + 즐거워 하다... = 하페츠+라촌...[시공을 초월하여!!...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성장성숙한 아들들로 구성된 몸의 지체 얻으시려하는] 아버지의 기쁘신 뜻 이룸에 동참케 됨의 영광 누림을)이 당연하며 [하나 됨의 생명 호흡 기도 통해서  한없이 시공 초월하여 지속 공급하고 계시기에] 그리 할 수 있음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 능력이자 은사/선물인데"...구약시대부터 그토록 고대하고 대망해 오던 바 구주 성육신-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장사됨-부활 승천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성령강림과 내주하심으로써 거듭난 참 제자된 그리스도의 증인들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시공을 초월한  아버지의 뜻 이룸을 참되게 알고 경험하며 기뻐함이니, 곧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자 위로 부터 부어주시며 교통하시는 부활 생명이시요 다함없는 능력, 권능의 성령 누림의 은혜가 충만함을 매순간 감사함이다!! ((하나님의 카이로스 안에서 친히 주께서 이루어가고 계시는 뜻을 막을 자 아무도 없음을 알기에))  종말론적 기쁨[지금 맞고 있는 환경-상황-형편-처지가 [어느 누구도 몰라주며!!] 연속되는 고난-역경-핍박/박해..또는 체포-투옥-감금 상태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인정 받는 일꾼 ::주께서 아신다!! 오직 진리 말씀으로 충만-깨닫고 성령충만안에서 실행-의, 믿음, 사랑, 화평 따라 관용, 온유, 일절 오래참음으로 훈계-가르침

14.  ○너는 그들로[복음전파사역 위임 받는 충성된 자들]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위임자들의 사명-자세-참음과 축복..코람데오, 솔라피데, 솔라스크립투라, 솔리데오글로리아]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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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imothy 2  Amplified Bible

==Be Strong

1 So you, my son, be strong [constantly strengthened] and empowered in the grace that is [to be found only] in Christ Jesus. 

2 The things [the doctrine, the precepts, the admonitions, the sum of my ministry] which you have heard me teach [a]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entrust [as a treasure] to reliable and faithful men who will also be capable and qualified to teach others. 

3 Take with me your share of hardship [passing through the difficulties which you are called to endure], like a good soldier of Christ Jesus. 

4 No soldier in active service gets entangled in the [ordinary business] affairs of civilian life; [he avoids them] so that he may please the one who enlisted him to serve. 

5 And if anyone competes as an athlete [in competitive games], he is not crowned [with the wreath of victory] unless he competes according to the rules. 

6 The hard-working farmer [who labors to produce crops] ought to be the first to receive his share of the crops. 

7 Think over the things I am saying [grasp their application], for the Lord will grant you insight and understanding in everything.

8 Remember Jesus Christ [the ever-living Lord who has] risen from the dead, [as the prophesied King] descended from David [king of Israel], according to my gospel [the good news that I preach], 

9 for that [gospel] I am suffering even to [the point of] wearing chains like a criminal; but the word of God is not chained or imprisoned! 

10 For this reason I [am ready to] patiently endure all things for the sake of those who are the elect (God’s chosen ones), so that they too may obtain the salvation which is in Christ Jesus and with it the reward of eternal glory. 

11 This is a faithful and trustworthy saying:  If we died with Him, we will also live with Him;

12 If we endure, we will also reign with Him;  If we deny Him, He will also deny us; 

13 If we are faithless, He remains faithful [true to His word and His righteous character], for He cannot deny Himself.  

==An Unashamed Workman

14 Remind the people of these facts, and solemnly charge them in the presence of God to avoid petty controversy over words, which does no good, and [upsets and undermines and] ruins [the faith of] those who listen. 

15 Study and do your best to present yourself to God approved, a workman [tested by trial] who has no reason to be ashamed, accurately handling and skillfully teaching the word of truth. 

16 But avoid all irreverent babble and godless chatter [with its profane, empty words], for it will lead to further ungodliness, 

17 and their teaching will spread like gangrene. So it is with Hymenaeus and Philetus, 

18 who have deviated from the truth. They claim that the resurrection has already taken place, and they undermine the faith of some. 

19 Nevertheless, the firm foundation of God [which He has laid] stands [sure and unshaken despite attacks], bearing this seal: “The Lord knows those who are His,” and, “Let everyone who names the name of the Lord stand apart from wickedness and withdraw from wrongdoing.”

20 Now in a large house there are not only [b]vessels and objects of gold and silver, but also vessels and objects of wood and of earthenware, and some are for honorable (noble, good) use and some for dishonorable (ignoble, common). 

21 Therefore, if anyone cleanses himself from these things [which are dishonorable—disobedient, sinful], he will be a vessel for honor, sanctified [set apart for a special purpose and], useful to the Master, prepared for every good work. 

22 Run away from youthful lusts—pursue righteousness, faith, love, and peace with those [believers] who call on the Lord out of a pure heart. 

23 But have nothing to do with foolish and ignorant speculations [useless disputes over unedifying, stupid controversies], since you know that they produce strife and give birth to quarrels. 

24 The servant of the Lord must not participate in quarrels, but must be kind to everyone [even-tempered, preserving peace, and he must be], skilled in teaching, patient and tolerant when wronged. 

25 He must correct those who are in opposition with courtesy and gentleness in the hope that God may grant that they will repent and be led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accurately understanding and welcoming it], 

26 and that they may come to their senses and escape from the trap of the devil, having been held captive by him to do his will.

==Footnotes

2 Timothy 2:2 Lit through. 

2 Timothy 2:20 Like Rom 9:20-23, the analogy here has its roots in OT poetry (e.g. Ps 31:12; Prov 26:23) and prophecy (e.g. Is 45:9; Jer 18:2-6). Paul speaks of believers and unbelievers in Rom 9, but here he seems to be describing God’s household or family, in which all the vessels (containers, utensils) represent believers. While the objects in Rom 9:21 do not change, the vessels here are capable of changing their status and the use to which God puts them by keeping themselves from sinful behavior and influences (v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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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장 (개요)

본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많은 권고와 지시를 하였다. 이 말씀은 많은 복음 사역자와 성도들에게도 대단히 유익한 내용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서신은 디모데를 위해서 뿐 아니고 다른 모든 복음 사역자와 성도들을 위하여서도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Ⅰ.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격려한다.

Ⅱ. 디모데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이 자기 대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승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2).

Ⅲ.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직분을 성실과 인내로써 행하라고 권고하였다. 마치 군인이나 농부와 같이 자기 수고의 결과를 바라보고 나아갈 것을 권하였다(3-15).

Ⅳ. 디모데는 불경하고 헛된 말다툼을 피하여야만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악하고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16-18).

Ⅴ. 바울은 확고한 하나님의 기초에 대하여 언급한다(19-21)

Ⅵ. 디모데가 피해야만 할 것들. 그것은 젊음의 정욕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는 것이다. 또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지시되고 있다(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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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인내(딤후 2:1-7)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가 그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실과 인내를 가지도록 격려한다.  

본문에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1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열심을 내야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해 강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지라"는 본문의 말씀은 우선 은혜가 약해진다는 것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은혜의 진리가 있는 곳에서는 은혜의 힘에 의한 수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련이 증가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이 강해지고 우리의 결심이 강해지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점점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는 본문에 "은혜 속에서 강해지라"는 말은 우리 자신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된 말씀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즉 "강하라.  그러나 네 인간적인 능력이 강해지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해지라"는 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0절의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베드로가 주를 부인하기 보다는 차라리 주를 위하여 죽겠다는 약속하였을 때 그는 자신을 강함을 믿고 있었다.  

만일 그가 그 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하게 되었다면 그는 보다 더 믿음 위에 설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첫째,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요 1:17).  그 안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은혜가 풍성하게 있다.  

둘째, 우리는 이 은혜 가운데서 강하여져야 한다.  

내자신 안에서도 아니요 우리가 소유한 힘 안에서도 아니요, 또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 안에서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안에서 강하여지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 안에서 강하게 되는 방법이다.  

셋째,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고하는 것처럼 다정함과 사랑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라." 다음을 생각하여 보자.

Ⅰ. 디모데는 고난, 피흘리는 것까지도 받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복음 사역을 계승할 다른 사람들을 훈련하여야 했던 것이다(2절).  

디모데는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또 그들을 복음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그가 들은 바를 그들에게 위탁하여야 했다.  

또한 디모데는 그들을 복음 사역자로 임명하고 복음을 그들에게 위탁하여야 했으며 그렇게 하여 그가 들은 바를 전해 주어야 하였다.  

디모데가 목회자를 임명하는데 두 가지 사실을 유의하여야 했다.  

그 하나는 그들의 신실성 또는 성실성이었다.

(즉 바울의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복음 사역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예와 인간의 영혼들의 잘됨과 구세주의 왕국의 이 땅에서의 실현을 진심으로 목적할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기라").  

다른 하나는 그들의 복음 사역자로서의 역리들[필수조건과 자세, 힘써야 할 이치들]이었다.  

사역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앞에서 참되게]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또한 [진리안에 있는 긍휼과 일절 오래참음으로] 남을 가르치기를 잘하고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디모데는 그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바울에게 들은 것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해야 했다.  

그 이외의 어떤 것,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가르침을 받아 디모데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준 것 이외에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해서는 안 되었다.

2. 그는 그에게 위탁된 신령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하므로 그들이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순수하고도 흠없이 전하도록 해야 했다.

3. 디모데가 이러한 것을 부탁할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사람이어야 했다.  즉 신용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했다.

4. 비록 신실하고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직분을 맡음에 있어서는 목회자인 디모데에 의하여 위임을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은 아무도 자신이 스스로 위임 받을 수 없으며 그 일에 이미 종사하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위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는 "고난을 받아야만 하였다"(3절).

1. 그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복음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의 깃발 아래서 주님을 위해 그의 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시기 때문이다(히 2:10).

2.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자신이 좋은 군사됨과 대장에게 신실함과 주님만을 위할 것을 입증해 보여야 하며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때"까지 싸움을 포기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롬 8:27).

3.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임을 보여 주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동안 고난을 받을 것을 예기하고 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참으며 자신을 고난에 숙달시키고 견디며 고난에 의해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Ⅲ. 그는 이 세상에 속한 일에 자신이 얽매여서는 안 되었다(4절).  

군인이 징병을 받았을 때는 자기의 직업을 떠나는데 이는 대장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자신을 바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생활을 위하여 직업에 종사하는 수밖에 없지만(우리는 마땅히 이 세상에서는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그렇다고 우리는 생활에 얽매여서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관심사들을 한쪽으로 밀어 버려서는 안 된 것이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하는 이는 이 세상에 매여서는 안 된다.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군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대장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주님께로부터 인정받은 일이다.  우리를 군사로 뽑아 주신 주님을 기쁘게 하는 길은 이 세상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거룩한 전쟁에 방해가 되는 그러한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Ⅳ. 영적인 전쟁을 해 나가는 사람은 법칙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전쟁의 법을 지켜야 함을 알아야 한다(5절).  그러므로 본문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부패를 극복하고 선한 일에 뛰어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야 규칙을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규칙을 잘 지켜지 않는 한 상 받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선을 행할 때에도 그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가를 주의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선을 행하고도 비방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그리스도인은 자기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욕망과 부패를 정복하는 것을 목적해야 한다.

2. 또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경기의 규칙에 따라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는 반드시 합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 그렇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를 얻고 또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Ⅴ. 그는 기쁜 마음으로 보상을 기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6절)고 하였다.  

이것은 야고보서 5장 7절과 비교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읽을 수도 있다.  "수고한 농부는 그 결실에도 참여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열매를 얻고자 한다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상급을 얻으려면 우리는 경주를 하여야 한다.  

더욱이 우리가 열매를 얻기 전에 농부처럼 부지런하며 인내하여 먼저 수고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는 약속된 것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히 10:36).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한 것을 다시 한 번 권한다.  그리고 디모데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7절)고 하였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에게 훈계한 것에 대하여 디모데가 깊이 생각할 것을 권고하였다.  

바울은 디모데를 일깨워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사고하는 힘은 회심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2. 바울은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고 하였다(7절).  

총명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가장 지식있는 사람도 더욱 더 이 은사를 필요로 한다.  

만약 말씀으로 계시하신 이가 우리 마음 속에 총명함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께서 총명을 그들에게 주시도록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우리가 말할 것을 생각하도록 권고하고 또 자극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고력은 우리가 듣고 읽은 바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실행하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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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사역자들에게 주는 격려의 말씀(딤후 2:8-13)

Ⅰ. 고난받는 디모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디모데에게 상기시킨다.  

이에 대하여 본문에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절)고 하였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신적 사명에 대한 위대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부활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신실하도록 만들어 주며 특히 복음을 인하여 고난받을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다.  

지금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기억하도록 하자.  다음을 명심하자.

1.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 

그분은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 당함을 개의치 아니하셨고 그리하셨으므로 지금은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히 12:2).

2. 예수 그리스도의 수육과 부활을 진심으로 믿고 올바로 생각하면 그것은 현생에서 모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Ⅱ. 디모데가 고난을 감연히 맞설 수 있도록 그에게 격려가 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고난의 본보기로써 바울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바울은 어떻게 고난을 당하였는가(9절).  

본문에 그는 "내가 죄인과 같이 고난을 받았으나"(9절)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들인 디모데가 아버지인 바울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울은 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죄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선을 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나쁜 대우를 받고 가장 선한 사람이 가장 최악의 대우를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가운데서도 사도에게 위로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권력자들의 박해가 목회자들로 침묵하게 하고 또 그들의 활동을 억누를 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양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힘에 의해 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이 사실은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묶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었다.  

왜냐하면 디모데에게 있어서는 자기 자유보다도, 또한 자신의 생명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씀이 결코 매이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 바울이 세상에서 받은 대우.  그것을 고난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는 "내가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그는 고난에로 부르심 받았고 또 그에게 고난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2) 세상이 그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해 내세운 구실.  그는 본문에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과 같이 고난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같이 유대인들도 예수님에 관하여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8:30)라고 하였던 것이다.

(3) 바울이 죄인처럼 고난을 받은 진정한 이유.  본문에 "복음을 인하여"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바울은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받은 것이다.  

바울은 사슬에 매인 바 되었고 그 후에 그는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였던 것이다(히 12:4).  

비록 복음 사역자들이 때때로 사슬에 매인 바 되는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을 것이다.

2. 바울이 즐거이 고난을 당한 이유.  그는 본문에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았다"고 하였다(10절).  다음을 유의하라.

(1) 선한 복음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교회에 좋은 것들을 가져다 주실 것이요, 또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모든 것이 유익되로록 하실 것을 기억하고 가장 힘든 봉사와 어려운 고난 가운에서도 용기를 내야 하며 또 용기를 얻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10절)고 하였다.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도 기꺼이 일하고 고난당해야 하는 것이다.

(2) 선택된 자는 구원을 얻기 위해 예정된 자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다"(살전 5:9)고 하였던 것이다.

(3)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는 구원의 근원이시고 구원의 구입자이시며 구원을 주시는 분이다. 

 또한 그 구원에는 영원한 영광이 동반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구원에 영원한 영광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4) 바울이 고난받은 것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해서였다.  즉 그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게 하기 위해서였다.

Ⅲ. 디모데가 용기를 얻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 세상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1.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와 그의 법도에 충실한 사람은 그들이 그것을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더라도 저 세상에서 그들의 희생의 대가를 확실히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1절)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의 쾌락과 유익과 명예를 무시하고 살았다면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에 의해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12절).  

다윗이 곤경 중에 있을 때 우리가 그와 함께 그의 고난에 참여하였던 자들은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와 함께 영광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다윗의 자손과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2. 우리가 주께 불성실하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우리는 멸망당할 것이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신다"(12절).  

즉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를 부인하면 주께서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마 10:33).  

주께서 마지막 날에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원히 불행하게 되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든 안믿든간에 이것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어 약속을 어길줄 모르는 분이시다"라고 하였다(13절)(역주: 공동번역 인용).  

주는 그의 약속도 틀림 없이 이행하시지만 멸망에 대한 경고의 말씀에도 틀림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는 하나라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적은 점이나 칭호도 빠뜨리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께 신실하다면 주는 우리에게 신실하게 대해 주실 것이며 우리가 주께 불성실하다면 주께서는 틀림 없이 심판으로 우리에게 갚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약속을 어길 줄 모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는 자기가 말씀하신 바 어떤 말이라도 감할 수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가 되시고 아멘이시며 충성된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다음을 유의 하라.

(1)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이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함께 죽는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그와 함께 죽는 것은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를 위한 우리의 고난 역시 그와 함께 통치하는 길(way)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고 하였던 것이다.

(2) 이 말씀은 신실한 말씀이며 그러기에 우리가 의지하고 또 믿어야 할 말씀인 것이다.

(3) 그러나 만약 우리가 두려움이나 수치로 인하여 혹은 어떤 세속적인 이익으로 인하여 주를 부인한다면, 주는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며 주님 자신이 잘못하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시듯이 심판도 마찬가지로 틀림 없이 이행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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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에 대한 경고(1)(딤후 2:14-18)

디모데에게 담대히 고난을 받도록 촉구하고 난 다음 바울은 이어서 디모데가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하였다.

Ⅰ.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믿음에로 교화시키는 일을 전념하라고 지시하였다.  

즉 디모데에게 저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들을 "생각나게 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목회자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역자들의 할 일은 교인들이 이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기억이 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다.  즉 그들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쟁을 벌이지 못하게 경고하는 것이"사역자의 일인 것이다.  

원래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보통 매우 적은 문제를 가지고 다툼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말다툼이란 하나님의 일에 대단히 파괴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아무 유익이 없는 말을 가지고 다투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신앙에서의 말다툼의 거의 무익한 것임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는 말다툼을 그렇게도 열심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다툼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에게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여 불신자들로 기독교의 대해 격분케 하고 증오하게 하며 그로 말미암아 진리까지 유실될 위험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말다툼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말다툼은 사람을 혼란시키고 멸망시키는 것외에 어떤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익할 뿐 아니라 매우 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주님 앞에서 그들을 권고할 때 먼저 자신의 행동으로 그것을 본보임으로 위엄을 잃지 말고 경고해야 하는 것이다.  

즉 사역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또한 그의 말씀으로 엄하게 경고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경고하는 대로 먼저 실행해야 말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 자신을 인정된 자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절)고 한 것이다.  

목회자가 주의할 것은 하나님께 자신들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명심하라.  

또한 주님에게 받으실 만하여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이같이 하기 위해 사역자들은 끊임없이 조심하고 근면하여야 한다. 그래서 "네 자신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목회자는 일군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일을 위해 수고를 하여야 한다.  

서투른 일군이나 불성실하고 게으른 일군은 부끄러워하여야 한다.  그러나 자기 직분에 전념하고 자기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사람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군이다.  

목회자로서, 그들의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을 창안해 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위임된 말씀을 올바로 분변하는 것이다.  

그는 말씀을 분변하여 멸망에 속한 자에게는 두려움을 위로를 받을 자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그는 때를 따라 모든 사람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마 24:45).  여기서 다음의 것을 생각해 보자.

1. 복음 사역자가 설교하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의 저자는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진리의 말씀은 올바로 분변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노력과 주의가 요구된다.  디모데는 이 일을 잘 행하기 위하여 힘써야 했다.

Ⅱ. 그는 목회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조심하여야 했다(16절).  

그는 오류를 조심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하였다.  

자기들의 박식과 명확한 논리를 자랑하는 이단자들은 자기들의 박식과 명확한 논리에 자신들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고 불렀다.  

사람이란, 일단 한 번 망령되고 헛된 말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들은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게 된다.  오류의 길은 내리막길인 것이다.  한 가지 잘못을 허용하게 되면 수만 가지의 잘못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법이다.  그러기에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다.  

교회 안에 한 가지 오류나 이설(異說)이 들어와 한 사람이 물들게 되면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며 한 가지 오류가 한 사람에 들어오면 그 오류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한다.  

바울은 최근에 이러한 경우에 처하게 되어 잘못된 교리에 빠진 사람들을 실례로 들고 있다.  그들은 "후메네오와 빌레도"였다. 

바울은 거짓 선생들의 이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같이 그들의 이름을 지적하므로 그들에게 씻겨지지 않을 불명예의 화인을 찍고 또 듣는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이 경고가 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에 관하여 그릇 되었도다"라고 했다.  즉 저희가 진리인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하여서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인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잘못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뱀과 뱀의 후손의 교활함을 보게 된다.  

그들은 부활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담하고 공공연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리의 교훈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하였다.  즉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을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신비적으로 또 비유적으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예수가 말한 부활은 단지 영적인 것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영적인 부활이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영적 부활이 있으므로 마지막 날에 몸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교란시켜 서로 대립시키는 잘못된 주장이었던 것이다.  

이 주장을 통해 그들은 "어떤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즉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믿음에서 떠나게 했다.  

그러나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미래의 상태는 없을 것이며 우리의 봉사와 고난에 대하여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보상도 없을 것이므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고전 15:19).  

내세에 대한 교리를 제거해버리는 교훈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교훈이다.  바울은 이러한 잘못들을 크게 반박하였다(고전 15:).  

그러므로 그러한 논쟁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디모데가 피해야 했던 불경스러운 것이요 공허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공허한 그림자이며 망령된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오류라는 것은 대단히 번식력이 강한 것이고 그러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즉 그것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 것이다."

3. 사람이 진리에 대하여 오류를 범하였을 때 그들은 항상 그럴 듯 한 허위로 가장하려고 노력한다.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부활을 부정하지는 않고 다만 부활이 이미 지나간 것인 양 말하였던 것이다.

4. 특별히 기독교의 초보적인 진리에 대해 범한 오류는 어떤 사람들의 믿음까지 무너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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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에 대한 경고(2)(딤후 2:19-21)

여기서 우리는 오류와 이단적인 요소가 교회를 크게 감염시킬 수 없고 또한 잘못되게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게 된다.

Ⅰ. 사람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비록 어떤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확고히 서 있는 것이다(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터는 곧 [진리를 참되게 믿고 견고히 서며, 그렇게 위임받은 진리를 공급하는 바]선택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터"란 망령된 자들이 비난하는 진리 자체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두움의 권세가 그리스도의 교훈을 총공격한다 할지라도 그 권세가 그것을 혼란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진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모든 풍파에도 그것은 굳게 서 있을 것이며, 또 견디어낼 것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굳게 서 있을 것이며, 또 견디어낼 것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즉 다시 말해서 구약과 신약의 교훈은 여전히 확고히 서 있다.  

이 성서의 교훈의 앞 뒤는 다음의 두 가지 말씀으로 인봉되고 있다.

1. 이 한편쪽에 인봉된 위에 새겨진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이다.  

즉 그 새겨진 내용의 말씀은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것이다(19절).  또한 자기 백성이 아닌 자들도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주께서는 결코 그 백성들을 잃지 않으실 것이다.  

비록 어떤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주께서는 의인의 길은 아신다고 말씀하신다(시 1:6).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의 믿음은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2. 또 다른 편쪽인 인봉 위에 새겨진 말씀은 우리의 의무에 대해 선포되고 있다.  

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 지어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위로의 특권을 바라는 자들은 자기의 의무를 영념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면 우리는 부정한 것을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주께서는 우리를 버리실 것이다.  

주께서는 최후 심판날에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다음을 명심하자.

(1) 교회 안에 어떤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터는 굳게 서며 주의 목적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자기의 백성들을 가지고 계시고 누가 자기의 백성인지를 아신다.

(3)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이름에 의해 불리움을 받은 자들은 마땅히 부정한 것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딛 2:14).

Ⅱ.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비록 믿음이 무너뜨려진 어떤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아직도 자신의 순수성을 지키고 복음을 굳게 붙잡은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20절).  

그러므로 본문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20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든 것이 있는 큰 집이라 할 수 있다.  

예컨데, 큰 집에는 그릇 뿐 아니라 가구 중에는 가치가 큰, [용도에 쓰임에 합당하게 늘 준비된]귀한 것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가치가 너무 적어 나무와 질그릇처럼 [아무 용도로라도] 마구 쓰이는 기구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도 이와 같다.  

교회 내에도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과 같이 [어쩌면 사람들의 눈에는 겉보기에는] 신앙이 시원치 않아 보이는 자들도 있다. 그것들은 [일견보기엔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는 그릇들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의 보시는 판단이다!!....사람들이 그렇게 여긴다 하더라도 그 심령을 관찰하시는 주님은 그렇게 여기지 않으신다... 사람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어 보여도 주님께는] 모든 그릇이 다 무가치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 곳, 그 중에는 주님이 쓰시기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귀한 그릇들인 "금 그릇과 은 그릇"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나쁜 행실로 말미암아 실망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면에 좋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보시기에!!  쓰임에 합당하게 늘 회개함으로 보혈에 씻어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써 준비되어 있는] 귀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견해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하여야 한다.  즉 우리 주인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성별되어야 한다.  다음을 명심하자.

1. 교회 안에는 [주와 하나되어 친밀히 동행함/주님 마음과 심정 알아드림으로 준비된 여부에 따라서, 주께서!!]

귀히 쓰는 그릇들과 천히 쓰는 그릇들이 있다.  긍휼의 그릇도 있고 진노의 그릇도 있는 것이다(롬 9:22, 23).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부정한 생각과 사악한 생활로 인하여 교회에 불명예를 가져 오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들의 본받을 만한 생활로 인하여 교회에 영광이 되고 명예가 된다. [[그러나, 주의 은혜로 변화된 사도바울을 꼭 기억하라!!, 결코 그 그릇을 짐짓 추정함으로써 정죄하고 포기해 버리지는 말라!!]]

2. 누구든지 귀한 그릇이 되고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전에 이러한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3. 모든 그릇은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의 주인을 봉사하는데 헌신해야 하며 그의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되어야 한다.

4. 마음의 성화는 모든 선행을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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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에 관한 경고(딤후 2:22-26)

Ⅰ.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권고하였다.  

디모데가 경건하고 선한 인간이었고 또 이 세상에 대해 금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경고를 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그런 것으로부터 깨끗이 하기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다하라"고 명하였던 것이다.  

육신의 정욕은 청년 시절에 가장 왕성하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주의 깊게 육의 정욕을 경계해야 한다. 

 정욕 앞에는 아무리 선한 사람도 큰 소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젊은이의 정욕을 피할 수 있는 탁월한 처방을 기록하고 있다.  

즉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는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청년의 정욕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장래가 총망되는 젊은일지라도 그것으로 위험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정욕은 영혼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2:11).

2. 우리의 은혜의 충만함은 정욕을 가라앉게 할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향하여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수록 우리는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와 믿음과 사랑은 젊음의 정욕을 제거하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거룩한 사랑은 불순한 정욕을 무마해 준다.  

그러기에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사귀며, 또는 사랑하며 화평을 좇으라"고 하였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성도의 교제는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의 나쁜 일들과의 교제를 끊게 하여 준다.  여기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언급된다.  

곧 그리스도인 "깨끗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부른다는 말은 곧 기도를 말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는 기도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가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 기도는 용납되지 못하며 또 성공적인 기도가 되지 못한다.

Ⅱ.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도록 주의를 주었다.  

그러한 것들은 무익하며 말다툼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에 깊이 들어가서 그 속에 빠지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 자신은 스스로 현명한 지식인이라고 자처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것들이 범하는 잘못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인과 복음 사역자들 사이에 다툼과 언쟁을 야기시킨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논쟁을 피하라고 자주 또 진지하게 경고 한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일이다.  

이 말씀은 신앙이란 교묘한 논쟁을 일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을 믿고 행하는데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러기에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24절)라고 말씀했다.  주님께서는 다투거나 외치시지 않으셨다(마 12:19).  

그는 다투시기 보다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부드러움과 친절함을 본이 되셨다.  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그의 종들에게 잘못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주의 종은 반드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 하여야 하며" 또 이를 통하여 그가 자신이 설교하고 전파하는 거룩한 종교의 능력있는 명령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또 "마땅히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24절) 하였다.  

다투거나 난폭하고 그 집을 잘 부리는 사람은 가르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역자는 반드시 자기에게 주어지는 해를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도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한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참아주고 너그러운 마음, 저들의 구원을 바라는 일절 온유함으로]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가르침은 오류에 빠진 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는 좋은 도구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 대적자들의 영혼을 구해 준다는 구실 아래 우리로 그들의 육신을 죽이라고 명하지는 않는다(역주: 구교에서 예전에 영혼을 구한다는 구실 아래 배교자들을 처형한 사실을 저자는 공박한다).

2. 우리는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온유함으로 훈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셨기 때문이다(마 11:29).  온유야말로 주의 종이 지녀야 할 품성이다(24절).  

그러므로 본문에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24절)라고 말씀하였다.  

이것이 진리를 빛나게 또 능력있게 전달하는 방법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다.

3.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가르칠 때 사역자들은 그들을 돌이키는 것을 목적 삼아야 한다.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25절).  다음을 명심하자.

(1)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이 돌이키는 경우에 참으로 드물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단념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멋대로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진리를 알게 하실까"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3) 우리에게 진리를 대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은혜를 베푸사 그것을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계속 진리를 거역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또 그와 같이 입으로도 시인하는 것은(롬 10:9, 10)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인 것이다.  이 도움 때문에 죄인들은 사탄의 올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다음을 유의하라.

① 죄인의 비참성.  

그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혀 악마의 종노릇을 한다"(26절).  그들은 가장 악한 주인의 노예가 되어 지낸다.  

그리고 이 악마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인 것이다(엡 2:2).  그들은 올무에 걸려 있는데 그 중에도 가장 나쁜 올무에 걸려 있다.  

왜냐하면 그 올무는 사탄의 올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물에 걸린 고기와 같으며 덫에 걸린 새와 같다.  

더욱이 그들은 창세기 9장 25절에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저주받았던 함의 저주 아래 있으며 또한 노예이며 하인이었던 함의 노예인 것이다.

② 회개한 자들의 행복. 

그들은 사냥군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와 같이 올무로부터 벗어난 자들이다.  올무는 부서지고 그들은 거기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위험이 클수록 해방도 커지는 것이다.  죄인들이 회개했을 때 이전에 사탄의 종이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뜻이 주 예수의 뜻으로 변할 것이다.  선하신 주께서는 우리를 모든 올무로부터 자유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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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제 2장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 '아들아'는 바울이 영적인 아버지로서 디모데를 자녀처럼 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1:2).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란 호칭을 사용해서 다정스럽게 부른 후 1-7절에서 아들로서 행해야 할 디모데의 행동 방침을 권면한다. 
한편 '그러므로'는 앞장의 후반부, 즉 아시아의 성도들의 배반과 오네시보로의 충성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된 권면임을 나타낸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 '네가'의 헬라어 '수'(* )는 강조형 대명사로 디모데 개인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강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뒤나무'(* )는 '...에게 권능을 부여하다', '활력을 불어 넣다'의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자신의 여러 서신들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좀더 강하고 담대해지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1:6-8;행 9:22;롬 4:20;엡 6:10;빌 4:13;딤전 1:12), 디모데는 믿음이 신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유약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딤전 5:23).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은혜' 앞에 전치사 '엔'(*, '...안에')이 있는 것은 디모데가 강건해지는 것이 개인적인 능력이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Guthrie).
=====2:2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 '내게 들은 바'는 복음의 진리가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로 계승되고 있음을 나타낸다(1:13). 
한편 '많은 증인 앞에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 이것은 디모데가 안수 받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때 참석한 자들이 디모데의 직무가 바울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고 본다(Lock). (2) 바울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였으며 디모데는 그러한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교사가 되었다. 디모데가 교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때 그 가르침이 바울의 것과 일치하는가의 여부(與否)를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증거 한다는 것이다(Hendriksen, Lenski). 두 해석 중에서는 후자가 타당하다.
@충성된 사람들에게...가르칠 수 있으리라 -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자신이 들은 것을 타인에게 부탁해서 그들도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디모데가 부탁할 사람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1) 충성된 사람 - '충성된'의 헬라어 '피스토이스'(* )는 '믿음직한', '진실한'이란 의미로 디모데가 부탁할 사람은 신실하고 진실된 사람이어야 했다.
(2)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수 있으리라'의 헬라어 '히카노이'(*)는 '유능한' 혹은 '자격을 갖춘'을 의미하는 것으로 디모데가 들은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 바울이 군대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한 예가 그의 서신에 자주 등장한다(롬 6:13;7:23;고전 9:7;고후 6:7;엡 6:11-18). 
'군사'라는 비유는 바울이 목회자에게 사용한 것으로(빌 2:25;몬 1:2) 혹자는 '종'이라고도 해석한다(Robertson).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용어는 2세기에 와서 '그리스도인'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Scott). 
'군사'는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많은 반대와 핍박을 견디며 악을 대적하며 싸우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은 바울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디모데 역시 당하게 될 핍박을 예측하고 그에게 미리 충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Guthrie).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 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 여기서 '생활'에 해당하는 헬라어 '비우'(* )는 '일', '직업',사업' 등을 뜻하는 말로 일상적인 삶이나 세상적인 일을 가리킨다. 
군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전심 전력(全心全力)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적이고 세상적인 일을 과감히 포기해야만 한다. 
특별히 디모데는 목회자로 부름받아 자신의 사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야 했다(마 6:33).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 본절은 군사로서 부름을 받은 목적을 나타낸다. 
군사가 상관을 기쁘게 하는 것을 제일 목적으로 삼는 것처럼 디모데도 자신을 군사로 모집한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하며 복음을 선포함으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그의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2:5
바울은 본절에서 '운동 선수'의 비유를 들어 권면한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 '경기하는'의 헬라어 '아들레'(*)는 70인역과 신약 성경에서 이 곳에만 나타난다. 
이것은 '경쟁'을 뜻하는 헬라어'아들로스'(* )에서 파생된 말로 '분투하다' 혹은 '경쟁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법대로'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절의 '법'이 '경기의 규칙'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uthrie, Hendriksen). 그래서 운동선수는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혹은 경기 결과를 무효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혹자는 '법대로'가 '경기를 위한 준비'를 말하는 것으로 운동선수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훈련 과정과 체중조절 같은 준비 규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 Hanson, Lock). 두 가지 견해중 전자가 타당하다. 디모데는 자신의 사역이나 생애를 살아감에 있어서 복음을 따라 행해야 한다.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면류관'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두 가지이다. (1) '디아데마'(* ). 이것은 왕들이 쓰는 왕관을 의미한다(계 12:3;13:1;19:12). (2) '스테파노스'(* ).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의미한다. 본절에 나타난 '면류관'은 두 가지 중 후자에 해당 된다. 운동 선수가 법대로 경기에 임할 때 승리의 월계관을 받을 수 있듯이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가르침과 복음을 따라 행할때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권면한다.
=====2:6
바울은 본절에서 '농부'의 비유를 들어 권면한다.
@수고하는 농부가 - '수고하는'의 헬라어 '코피온타'(* )는 '힘들여 고생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농부처럼 디모데가 복음의 열매를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을 시사한다(잠 20:4;24:30,31).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 본절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있다. 
첫째,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로서 바울이 행한 것처럼 자신도 물질적인 보상(報償)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본절은 그런 디모데에게 복음의 일꾼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거절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전 9:10-14, Guthrie). 
둘째,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영적인 사역에 최선을 다하게 될 때 자신이 먼저 그 영적인 열매 즉 사랑과 믿음과 소망 등의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눅 15:10;롬 1:13, Lenski, Hendriksen).
=====2: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 '내 말하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금까지 가르쳐 온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Easton)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비유(4-6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Earle, Hendriksen, Lenski). 
한편 '생각하라'의 헬라어 '노에이'(* )는 '이해하다', '숙고하다'라는 의미로 디모데가 바울의 비유들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 '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신'(*)은 '이해력' 또는 '분별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절은 디모데가 바울이 권면한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셔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의미이다.
=====2:8
@나의 복음과 같이 - 바울이 본절에서 '나의 복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도로서 부름을 받은 자신이(1:11) 전하는 복음은 계시에 의해서 받은 것이며(갈 1:12) 디모데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신자들이 받아들여서 이미 알고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Lenski,Hendriksen). 
한편 '...과 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는 '...에 의하여'라는 의미로 디모데가 기억해야 될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이 전하여 준 복음에 의해서 알게 된 것임을 시사한다.
@다윗의 씨로 -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은 뿌리깊은 유대인의 신앙이었다(삼하 7:12,13;시 89:28;132:17;행 2:30;롬 1:3). 
'다윗의 씨'는 그리스도의 육적인 혈통을 강조한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나타낸다(롬 1:3;빌 2:7,Earle, Robertson).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다(고전 15:20-25). 또한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 자신의 신성(神性)을 분명히 드러내셨다(Earle).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 바울은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주로 '그리스도 예수'라고 부르는 반면에 본절에서 만은 그 순서를 바꾸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먼저 디모데의 관심을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께로 돌리기 위함이며(갈 3:13;4:4,5),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로 인정받았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행 2:36;롬 1:4;빌 2:5-11).
=====2:9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 '죄인'의 헬라어 '카쿠르고스'(* )는 '범인'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범죄자와 똑같이 대우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사회법을 어긴 범죄자처럼 취급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행 20:23;23:29;26:31;골 4:18;몬 1:13) 그 결과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으며 만방에 전파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바울이 감옥안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의미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복음 전파가 계속 될 것임을 시사한다(4:17;사 40:8;55:11;빌 1:12-14, Hendriksen, Guthrie, Earle).
=====2:10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 여기서 '택하신 자'는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하였으나 앞으로 구원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은 잠정적인 그리스도인(all the potential Christian)을 가리킨다(Scott, Guthrie, Earle).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믿음이나 선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신 7:7,8;사 48:11;단 9:19;호 14:4;롬 :8;9:11-13;고전1:27,28;4:7;엡1:4;2:8;요일 4:10,19).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바울 자신과 그 선택하신 자들을 위라시는 성령따라]복음을 전하였고 그에 따르는 환난과 핍박을 기꺼이 감수하고 인내하였다(엡 3:1;빌 2:17).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 본절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환난을 참는 이유이다. 
바울의 전도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데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성취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것이며(1:9) 구원의 완성은 마지막 날에 '영원한 영광과 함께' 성취된다(고후 4:17;벧전 5:10). 
'영원한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이며 궁극적인 목표이다(Earle, Guthrie).
=====2:11
@미쁘다 이 말이여 - '이 말이여'가 가리키는 것은 11-13절에 기록된 4개의 대구(對句)이다. 
11-13절에 기록된 이 말씀은 글의 운율적(韻律的)인 특성으로 보아 초대 교회의 찬송중의 하나였음이 틀림없다(White , Scott, Earle). 
한편 '미쁘다'의 헬라어'피스토스'(* )는 '신뢰할 만하다'란 의미로(trustworthy, NIV), 이후에 진술된 4개의 대구가 진실된 것임을 찬양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 본절은 롬 6:3-8에서 세례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혹자는 11-13절의 내용을 특별히 초대교회에서 세례받을 때 불려지던 찬송으로 추측한다(Scott). 
여기서 '죽었으면'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삶을 영위하면서 갖는 자기 부정(self-denial)의 삶을 가리킨다(Scott). 
이런 삶은 죄에 대해 옛 사람이 죽은 것뿐 아니라(Gealy, Lock)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Hendriksen, Bernard).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된다. 
이것은 미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 현재에서도] 하나님에 대해 살아났음을 시사한다(롬 6:8,11, Earle).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 '참으면'의 헬라어 '휘포메노멘'(*)은 '참다', '견디다'를 의미하는 '휘포메노'(* )의 현재 시제로 참는 행위의 계속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현재에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 끝까지 견뎌내는 것을 시사한다. 
인내로 모든 고난을 이길 때 모든 환난과 핍박에서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마 10:22)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왕 노릇함'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ott). (2) 혹자는 현재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누리게 되는 왕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삼중직 즉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권리를 회복하고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두가지 견해는 둘 다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 본절은 마 10:33;눅 9:26과 병행(竝行)된다. 이것은 황제 숭배나 우상 숭배 문제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당하게 될 핍박에 대비한 진술로서(Lenski) 상황에 따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게 될 때 최후 심판 날에 그리스도로부터 버림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됨을 시사한다(벧후 2:1;유 1:4).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아피스투멘'(* )은 '만일 우리가 믿지 않을지라도'(if we believe not, KJV)라는 의미보다는 '만일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if we are faithless, NIV)라는 의미이다(Guthrie, Earle).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신실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신실하시다. 
'미쁘시니'는 앞서 언급된 '미쁨이 없을지라도'와 대조적인 것으로 어떤 상황에서라도 신실하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리킨다(Lenski).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하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자들에게도 변함없이 신실하여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말씀에 신실하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시인하는 자를 시인하실 것이며 자신을 부인하는 자를 부인하신다는 말씀(마 10:32-38)에 대하여 신실하심을 시사한다.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약속하시고 선포하신 말씀에 비해 신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Hendriksen).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그러실 수 없다. 
바울은 본절에서 부정적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2:14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 '저희'는 2절에서 언급된 '충성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이 일'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시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2) 혹자는 1-13절, 그중에서도 특히 8-13을 직접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바울이 가리키는 '이 일'이 너무 광범위하며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충성되고 타인을 가르칠 만한 사람들에게 숙지시키라고 권면한다.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 여기서 말다툼은 '신화와 족보'로 인해서 생겨난 것으로(딤전 1:4;4:7) 당시 교회 내에 침투해 있는 이단들의 가르침과 변론을 의미한다(딤전 6:3-10).
바울은 당시 디모데가 시무하던 에베소 교회 내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계속해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교회의 분열(分裂)을 조장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고전 15:12;갈 2:20) 그러한 변론이나 논쟁들을 하나님앞에서 금할 것을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 본절은 말다툼을 금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이유는 이단들의 헛된 가르침과 논쟁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파멸의 길로 치닫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 '진리의 말씀'은 어떤 특정한 말씀이나 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가르침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Scott). 
한편 '옳게 분변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르도토문타'(* )는 '바른'을 뜻하는 '오르도스'(* )와 '자르다'를 의미하는 '템노'(* )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바르게 자르다'를 의미한다.  '오르도토문타'는 잠 3:6과 10:15(LXX)에서 '곧은 길을 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숙련된 기능공이 연장을 사용하여 똑바로 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석하면서 이단의 거짓 교리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도록 적용하고 가르치는 것을 시사한다(Scott, Guthrie).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인정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몬'(* )은 문자적으로 '시험을 거친 후 받아들여지는'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임무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애쓰라고 명령한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애써야 할 것은 말씀을 잘 분석하고 이해해서 거짓 교리를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양들을 잘 보호하며 인도하는 것이다(Guthrie).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 '망령되고 헛된 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14절) 디모데가 사역한 에베소에 팽배했던 이단들의 거짓 교리로서 헛된 신화와 족보를 가리킨다(딤전 1:4;4:7). 
바울은 이같은 거짓 교리를 버리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버리라'의 헬라어 '페리이스타소'(* )는 '피하라'는 의미로 이단의 거짓 교리에 대처하는 방법을 암시한다. 그 방법은 이단의 거짓 교리가 대적해야할 가치가 없기 때문에 지혜롭게 회피하는 것이다(Guthrie, Hendriksen).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 본절에서 '저희'는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이단들을 가리킨다(Hendriksen, Lenski, Earle, Alford). 
그들의 가르침과 행위는 날마다 무가치하고 경건치 않은 타락의 길로 치닫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피하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 '독한 창질'은 살을 썩게 하는 악성종기이다. 
또한 '썩어져 감'의 헬라어 '노멘 헥세이'(* )는 문자적으로 '풀을 먹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은 악성종기가 피부에 번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단들의 가르침이나 말들이 부지 불식간(不知不識間)에 퍼져나가 잠식하는 것을 암시한다.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 빌레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후메내오는 딤전 1:20에 언급된, 진리에서 떠나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된 자를 가리킨다. 
이 두사람은 에베소에 있던 이단자들로서 그리스도께서 실제 육으로 오셔서 부활하신 역사를 부정하고 영적인 부활을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이었다(Earle, Hendriksen).이들은 출교당하기 전까지 교회 내에서 복음을 훼방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사단의 길로 가게 하였다(딤전 1:20).
=====2:18
본절은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비롯한 이단자들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다.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후메내오와 빌레도 등 에베소 교회내에 있었던 이단들은 영의 부활은 인정하나 육체의 부활은 부인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二元論), 즉 영적인 것은 선하며 물질적인 육체는 악한 것이라는 그릇된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선한 영은 부활하며 물질적인 몸은 악하므로 부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영지주의의 거짓 사상은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12-20, Lenski, Guthrie). 
이런 이단 사상은 당시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을 무너뜨려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결정적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단사상에 대적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일꾼이 되라고 권면한다.
=====2:19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 '견고한 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를 가리킨다(Scott). (2)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의미한다(Calvin). (3)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Bouma). (4) 교회를 가리킨다(Gealy, Lenski, White). (5)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엡 2:20;계 21:14), 혹은 더 넓은 의미로서 교회(딤전 3:5)와 진리 자체를 가리킨다(Bernard, Earle, Lock). (6) 하나님을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입증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가리킨다(Hanson). 이런 다양한 견해들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며((1), (2))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나 혹은 교회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3)-(4)).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본절은 교회 내에 이단 사상이 들어와 일부 교인들을 넘어지게 한다 할지라도 교회가 하나님 안에 굳게 서 있음을 시사한다.
@인침이 있어 - '인침'은 '봉인'(封印), '보증의 표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인침'의 행위는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이단 사상에 의해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굳게 서 있을수 있다(엡 1:13;4:30).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 본절은 민 16:5의 인용이다. 
'아신다'의 헬라어 '에그노'(* )는 남녀 사이의 성(性)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전인격적인 이해를 시사한다(창 4:1;마 1:25).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교제를 나누며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요 16:13;롬 2:4;계 7:17)자기 백성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이단 사상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굳게 설 수 있다.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 본문은 바울이 민16:27과 사 26:13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불의에서 떠나야 함을 시사한다. 
에베소 교회 내에 있던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비롯한 영지주의자들은 입으로 주를 불렀지만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불의 가운데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입으로 주를 부를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不義)에서 떠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드러내야 한다.
=====2:20
@큰 집에는 - '큰 집'에 대해 혹자는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그러나 이것은 가시적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Hendriksen, Lenski, Earle).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 바울은 그릇의 종류를 다양하게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안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바울은 다양한 그릇을 기능별로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본절을 롬 9:21-23과 상관된 것으로 보아 '귀히 쓰는 그릇'은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롬 9:23)이며 '천히 쓰는 그릇'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2) 하나님의 교회 내에 귀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과 천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이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Earle).
=====2:21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 '깨끗하게'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악한 생각이나 행위를 버리고 내면적인 정결을 이루라는 의미라고 한다(Scott). (2) 혹자는 앞서 언급한 후메내오나 빌레도와 같은 거짓 교사들의 행위나 가르침을 피하여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Hendriksen, Guthrie, Lock,Bernar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앞서 언급된 영지주의 이단 사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 바울은 본절에서 '귀히 쓰는 그릇'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1) 거룩하고 - 이것은 구약 시대의 정결한 제물과 관계된 것으로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께 순수하고 온전하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전 15:33;살후 3:14).
(2)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 '주인'은 큰 집에 쓰이는 모든 그릇들 가운데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을 결정하는 분이다(Lenski). 
귀히 쓰이는 그릇은 주인이 흡족한 마음으로 쓰는 그릇이며 '합당하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의미를 지닌다(살후 1:11).
(3)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 귀히 쓰는 그릇은 선한 일을 행하며 모든 이에게 유익을 끼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릇이다.
=====2:22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가 버려야 할 것을 언급한다. 
'청년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性的)인 욕망뿐만 아니라 지나친 식욕, 지식욕, 명예욕 등[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가리키는 것으로 후에 언급할 '의', '믿음', '사랑','화평'과 반대된다(Hendriksen, Guthrie, Scott).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덕목을 언급한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는 마음의 상태를,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겸손하고 전적인 신뢰를, '사랑'은 원수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는 형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화평'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간의 평화롭고 완전한 상호 이해를 의미한다(마 5:9;요 13:34;롬 12:18). 
한편 디모데가 이런 덕목을 추구할 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에서 '깨끗한 마음'은 '불의에서 떠남'(19절), '자기를 깨끗하게 함'(21절)과 같은 것으로 내면의 인격이 정결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 본절의 권면은 목회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16절;딤전 1:4;4:7;딛 3:9). 
'어리석고'의 헬라어 '모라스'(* )는 '둔한' 혹은 '지각이 없는'을 의미하며 '무식한'의 헬라어 '아파이듀투스'(*)는 '교육을 받지 못한'을 의미한다. 
이런 지각이 없고 무식한 변론은 앞서 언급한 이단들의 허탄한 족보와 신화에 대한 논쟁을 가리킨다(14절). 
디모데는 이러한 변론에 휘말려서는 안되며 단호히 배격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인해 교회의 분열과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2: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 '주의 종'은 일반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특별히 교사를 의미한다(Earle). 
진리를 유지하고 가르치는 교사들은 다툼이 없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 주의 종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해야 한다. 
'온유'는 예수가 지니셨던 마음으로(마 11:29....너그러움, 참아주고, 온화함으로 경청하며 소망가운데 품고 헤아려 기도해 주는 마음), 복음을 가르치며 전하는 교사들이 닮고 배워야 하며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가르치기를 잘하며 -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사 42:1-4).
@참으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넥시카콘'(* )은 '아네코'(*, '참다')와 '카콘'(* , '악')의 합성어로서 '악이나 고난을 견디다'를 의미한다(히 12:1-3;약 1:2;벧전 2:20-25).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 '거역하는 자'는 잘못된 교리에 빠져 '주의 종'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대하는 이단자들(Bernard, Guthrie)이나 신앙이 미숙한자(Ellicott)를 가리킨다. 
교사들은 이렇게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 온유함으로 징계해야 한다. '징계할지니'는 심판이나 정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하는 자들이 진리의 길에 들어서도록 [진리를 말하되, 부드러우나 참되고 진실하게, 동시에 분명하게] 권면하고 지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 본절은 교사들이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로 징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회개함'의 헬라어 '메타노이안'(*)은 후회나 뉘우친다는 개념 이상의 것으로 사상이나 인격의 근본적(根本的)인 전환을 의미한다. 
교사들이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징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 교훈을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2:26
@저희로 깨어 - '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네프소신'(*)은 '맑은 정신을 회복하다'라는 의미로서 앞서 언급된 '회개함'과 상관성을 갖는다. 
본문은 '거역하는 자들'이 현재의 자신의 모습 즉 사단 아래 종노릇하고 있음을 깨달아 [스스로 결단함 통해 회개하고]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함을 암시한다.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 맑은 정신을 갖지 못할 때 '마귀의 올무'에 빠지게 된다(딤전 3:7). 
'마귀의 올무에 빠진 자들'은 앞서 언급된 '거역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덫에 걸린 새나 짐승처럼 믿음 생활에서 실패한 자들을 시사한다(Scott). 
교사들이 그들을 온유함으로 징계할 때 그들은 정신을 차려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수 있다. 
'사로잡힌 바 되어'의 헬라어 '에조그레메노이'(*)는 사냥에 사용되는 용어로서 '야생 동물을 산 채로 포획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교사들로부터 온유한 징계를 받은 거역하는 자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깨달은 후에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감을 시사한다(Scott). 
바울은 이런 기회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주기 위해 교사들이 온유함으로 그들을 징계할 것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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