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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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3장  [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감독과 집사의 자격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경건의 비밀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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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mothy 3  Amplified Bible

==Overseers and Deacons

1 This is a faithful and trustworthy saying: if any man [eagerly] seeks the office of [a]overseer (bishop, superintendent), he desires an excellent task. 

2 Now an overseer must be blameless and beyond reproach, the husband of one wife, self-controlled, sensible, respectable, hospitable, able to teach, 

3 not addicted to wine, not [b]a bully nor quick-tempered and hot-headed, but gentle and considerate, free from the love of money [not greedy for wealth and its inherent power—financially ethical]. 

4 He must manage his own household well, keeping his children under control with all dignity [keeping them respectful and well-behaved] 

5 (for if a man does not know how to manage his own household, how will he take care of the church of God?). 

6 and He must not be a new convert, so that he will not [behave stupidly and] become conceited [by appointment to this high office] and fall into the [same] condemnation incurred by the devil [for his arrogance and pride]. 

7 And he must have a good reputation and be well thought of by those outside the church, so that he will not be discredited and fall into the devil’s trap.

8 [c]Deacons likewise must be men worthy of respect [honorable, financially ethical, of good character], not double-tongued [speakers of half-truths], not addicted to wine, not greedy for dishonest gain, 

9 but upholding and fully understanding the mystery [that is, the true doctrine] of the [Christian] faith with a clear conscience [resulting from behavior consistent with spiritual maturity]. 

10 These men must first be tested; then if they are found to be blameless and beyond reproach [in their Christian lives], let them serve as deacons. 

11 [d]Women must likewise be worthy of respect, not malicious gossips, but self-controlled, [thoroughly] trustworthy in all things. 

12 Deacons must be husbands of only one wife, and good managers of their children and their own households. 

13 For those who have served well as deacons gain a high standing [having a good reputation among the congregation], and great confidence in the faith which is [founded on and centered] in Christ Jesus.

14 I hope to come to you before long, but I am writing these instructions to you 

15 in case I am delayed, so that you will know how people ought to conduct themselves in the household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 

16 And great, we confess, is the mystery [the hidden truth] of godliness:  He (Jesus Christ) who was revealed in human flesh,  Was justified and vindicated in the Spirit,  Seen by angels,  Preached among the nations,  Believed on in the world,  Taken up in glory.

==Footnotes

1 Timothy 3:1 Or bishop.

1 Timothy 3:3 I.e. like a bully.

1 Timothy 3:8 Though the Greek word for “deacon” does not occur in Acts (only Paul uses it), it is generally thought that the origin of the office or ministry is found in Acts 6:1-6, where Luke reports that seven men were appointed to assist the church leaders in serving and ministering to members of the congregation. 

1 Timothy 3:11 In Greek, the same word is used for both woman and wife. This verse may refer specifically to either deacons’ wives or deaconesses, rather than the congregation i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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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3장 (개요)

바울은 3장에서 교회 직분 맡은 자들에 대해서 취급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취급한다.

Ⅰ. 감독의 직분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하여(1-7).

Ⅱ. 집사들의 자격(8-10)과 그들의 아내의 자격에 대하여(11). 집사에 대한 재교훈(12,13).

Ⅲ,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 그후에 교회에 대해 언급하고 교회에서 고백한 근본 진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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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의무(딤전 3:1-7)

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는 교회 치리에 관한 성서적 청사진과 목회자들을 위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성령께서 장로을 택하여 감독을 삼고 그들로 교회를 돌보게 하였는데, 디모데는 그 감독들을 돌보기 위해 에베소서에 남아 있는 복음 전도자였다.  

행 20장 28절에 교회를 돋보는 일은 장로들에게 위탁되었는데 그들을 감독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울과 헤어지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특히 바울이 더 이상 내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말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행 20:38).  

이제는 에베소 교회가 새로이 건설되어 그들이 교회를 돌보는 일 맡기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의 특성을 알 수가 있다. 목회자의 일은 감독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특정 회중들에게 지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1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보자.

Ⅰ. 복음 사역은 일(work)이다.  

감독의 직분을 영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선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직책이기 때문인 것이다.

1. 성서적인 감독의 직분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다.  

복음 사역은 국가 업무의 일분야는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목회자가 국가와 도구가 된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국가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복음 사역은 전적으로 교회의 관한 아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복음 사역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를 중에 가장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엡 4:8-11).

2. 감독의 직분은 부지런과 근면을 필요로 하는 직분이다.  

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큰 명예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사는 직책으로 설명한다.  

왜냐하면 사역자들은 자기 직분의 명예나 이익에 대해서 보다는 자기 맡은 바 책임(일)에 주의를 더 기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3. 복음 사역은 가장 선한 것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중대하고 선한 사업이다.  

복음 사역은 불멸하는 영혼의 삶과 행복 이외의 세상적인 어떤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음 사역은 선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한 삶을 제시함으로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사역은 인간의 눈을 뜨게 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세워진 직분이다(행 26:18).

4. 복음 사역은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그 직분에 대한 열렬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음 사역에 종사하기를 소망한다면 그는 먼저 그 직책을 통하여 하나님께 좀 더 큰 영광을 돌리고 인간들의 영혼에 가장 큰 선을 행하겠다는 진지한 각오가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목회자로 종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 영국 교회의 목회자로 헌신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Ⅱ. 이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여기 종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

1. 복음 사역자는 책망받을 것이 없어야 하며 어떠한 추문도 없어야 하며 또한 가능한 한 비난 잡힐 작은 어떤 점도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비난을 받게 되면 그의 사역이 손상을 입게 되고 그의 직분이 비난받기 때문이다.

2. 목회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한 여인에게 이혼장을 써 주고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거나 또는 그당시 이방인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고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많았던 여러 명의 아내를 한꺼번에 맞아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3. 복음 사역자는 교활한 사탄에 대하여 경계하여 주의하여야만 한다.  

복음 사역자는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자기에게 위탁된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며 그들을 통찰하며 또한 그들에게 선을 베풀 기회가 생기면 이를 놓치지 말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  복음 사역자는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므로" 경계하여야 한다(벧전 5:8).

4. 복음 사역자는 모든 행동에 있어야 또한 음식을 취하는데 있어서 근검 절제하고 정숙해야만 한다.  

절제와 근신은 종종 성경에서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서로 관계가 깊은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도 이르기를 "절제하고 근신하며"라고 하여 양자를 같이 언급하였다.

5. 복음 사역자는 선행을 하며 침착하며 견실하여야 하며 경박하고 헛되며 천박하지 않아야 한다.

6. 복음 사역자는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답게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의 형편에 따라서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7.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본문은 가르치는 감독에 대한 바울의 말씀이다.  복음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식을 타인들에게 전할 수 있고 또 일을 기쁘게 여겨야 하며 또한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야 하며 교육시킬 기회를 잘 이용할 줄 알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잘 알고 그 아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8. 술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을 수행할 때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는데 이는 과음하므로 율법을 속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레 10:8, 9).

9.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 사역자는 다투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든지 폭력을 써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움과 사랑과 정중함으로 대하여야 한다.  

주의 종은 싸우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딤후 2:24).

10. 복음 사역자는 부정한 이익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복음 사역자는 복음 사역을 세속적인 생각이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복음 사역자는 돈을 벌기 위하여 야비한 수단을 써서는 안 될 것이며 이 세상의 부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어서 물질을 초월하여 살아야 하며 또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11. 목회자는 인내하여 말다툼군의 되어서는 안 되며 부드러운 성격을 지녀야 한다.  

우리 영혼의 대목자장이시며 감독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하셨다.  

복음 사역자는 노하거나 말다툼을 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손을 들어 구타하지 말아야 하듯이 또한 그의 혀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혀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혀를 다스리라고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2. 탐욕하지 않아야 한다.  

탐욕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나쁜 것이다.  특히 복음 사역자는 탐욕을 품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사명이 탐욕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미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3. 복음 사역자는 자기의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라고 했다.  즉 그는 다른 가장들에게 좋은 가정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하며 또 가정을 잘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잘 돌볼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말씀하였다.  복음 사역자의 가정은 모든 다른 가정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복음 사역자는 자기의 자녀들을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하며 또한 복음 사역자의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의무인 것이다.  

본문에 보면 "큰 위엄을 자기고"자녀들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즉 아랫 사람들도 순종하게 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들에게 위엄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겁을 주어 순종에 하나는 것은 아니고 위엄으로 순종케 하여야 할 것이다.

14. 복음 사역자는 초신자여서는 안 된다.  

즉 기독교로 처음 들어 온 사람이거나 기독교 진리를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복음 사역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들은 교만하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교만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가 함이요"(6절)라고 했다.  

사탄은 교만으로 타락하였으므로 우리는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죄는 바로 천사가 사탄으로 타락하게 된 죄이기 때문이다.

15. 복음 사역자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하며 감독이 되기 이전에 생활면에서도 책망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탄은 복음 사역자의 이전 생활의 결함을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빠뜨리는데 악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탄은 그리스도의 교훈이 과거가 좋지 않은 자에 의해 전파될 때 이점을 역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악평할 수 있게 때문이다.

Ⅲ. 복음 전하는 감독의 자격을 전반적으로 고찰하고 난 후의 우리의 소감.

1. 먼저 우리는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절규하게 된다(고후 2:16).  

즉 이것은 정말로 힘든 일인 것이다.  경건하고 사리를 잘 분별하며 열심이고 용기를 가지고 신실하며 자기 자신의 번뇌와 욕망과 열정을 극복하는 것이 복음 사역에 요구됨을 보게 된다.  즉 거룩한 경계심이 이 일에 필요한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좌절을 우리는 본문에서 맛보게 된다.

2. 그러나 또 한편 자격의 필수 조건이 너무나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신실하며 양심적인 복음 사역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지닌 한계성이란 얼마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 아무리 위대한 사역자라도 그들이 갖출 인품이나 품행을 다 갖추기는 진실로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복음 사역을 맡기시고 감당할 수 있게 하시며 또 신실하다고 여겨 주시는데 대하여 사역자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또한 교인들을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직책을 감당하게 하신 사역자를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할 것이다.

3. 모든 신실한 복음 사역자들의 용기를 복돋아 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볼지어다 이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만약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주께서는 우리로 우리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이며 평안히 어려움을 통과하게 하시고 또 우리의 불완전함을 자비롭게 용서하시며 또 우리의 충성에 대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으로 우리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벧전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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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자격(딤전 3:8-13)

위의 말씀은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집사들은 교회 안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관장하는 사람들이다.  

즉 복음 사역자들을 부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대책을 세워 주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다.  

복음 사역자들 또는 감독들이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는 한편 집사들은 식량을 공급하는 일을 하였다(행 6:2, 4).  

이 직책을 설정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6장 1절에서 7절까지에 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 

선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것은 집사들의 필수 조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 사역자들을 돕는 사람이며 공중 앞에 나서서 일해야 하며 또 그들이 하는 일은 신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사들은 "단정"하여야 한다.  모든 교인들이 단정하게 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에게는 더 필요한 것이다.  본문은 집사들에게 "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한 사람에게는 이것을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일구이언은 이중적인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수다장이와 중상 모략하는 자는 일구이언을 하는 자이다.  

또한 집사들은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술취한다는 것을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들에게는 더하다.  또한 술에 인박한 사람은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아니하며 많은 유혹에 대하여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집사들은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말씀되고 있다.  이것은 집사들에게는 특별히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의 돈을 다루도록 위임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집사들이 탐욕스럽다면 교회의 돈을 착복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될 것이며 모든 공중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돈을 자기 개인을 위하여 오용하려고 할 것이다.  

또 집사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심오한 진리를 가진 자라야 한다"(9절)고 했다.  

믿음의 심오한 진리는 깨끗한 양심가운데 가장 잘 지켜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은(진리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오류와 기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가장 강한 능력이 된다.  

만약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지킨다면(양심을 더럽혀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주의하여) 우리는 영혼 가운데 믿음의 심오한 진리를 간직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라"(10절)고 하였다.  공적인 책임을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된다. 

맡기기 전에 그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그들이 그 일을 맡기에 합당한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일을 맡기기 전에 그들의 판단의 정확성, 그리스도에 대한 열심, 그들의 생활에 무흠(無欠)함 등이 먼저 증명되어야 한다.  

집사들의 아내도 이와 같이 선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11절).  그들은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  

그들은 손해를 주거나 싸움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을 가져 오는 중상 모략자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들은 "절제하며 모든일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지나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복음 사역자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어느 한 가지라도 잘못을 범하면 복음 사역자 또는 감독에게 말한 것과 같이 집사들에게도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아내를 싫어하여 버리고 다른 여인과 결혼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집사들은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집사의 가정은 다른 가정의 본이 되어야 한다.  집사들이 이와 같이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은 비록 집사가 교회 안에서 좀 낮은 지위의 직분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함으로 좀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 살림(여기서는 식량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했다)을 잘 맡아하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 그 직을 떠나서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로 섬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는 집사에게 이러한 자격이 요청되는 것은 그가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므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집사의 직분을 잘 아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13절)고 하였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초대 교회에서는 성직에는 두 서열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집사와 감독"의 직이었다(빌 1:1).  

그러나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여러 다른 직분들도 생겼다.  

감독, 장로, 또한 목사의 직분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데 임무가 국한되어 있었으며 집사의 직분은 음식을 공급하는 일(교회 살림)에 국한되어 있었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cap 42,44)에서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또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즉 그는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감독직으로 인한 분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앞에 언급한 교회의 반열 즉 감독직과 집사직을 정하였다고 말하였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집사의 주된 직분은 설교를 하거나 세례를 주는 일이 아니라 교회 살림을 하는 것이었다.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행 8장0.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 21장 8절에서 그가 전도자라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며 복음 사역직에 속한 기타 일들까지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도 집사의 하는 일은 교회의 실질적인 일 즉 목회자들의 사례금을 정하고 또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인 것이다.

3. 비록 집사의 직분이 낮은 직분일지라도 여러 가지 자격이 매우 필요하였다.  즉 집사들은 반드시 단정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4. 집사가 교회의 직분을 맡거나 집사들에게 신용을 위임하기전에 인격이 갖추어져 있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 시험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라고 하였던 것이다.

5. 낮은 직분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것은 교회 안에서 높은 직분을 맡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고 하였다.

6. 성실과 정직은 믿음과 큰 담력을 얻게 하여 준다.  반면에 성실성과 정직성이 결핍되어 있을 때 사람은 소심하게 되며 자기 자신의 그림자에도 떨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악인은 좇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다(잠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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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비밀(딤전 3:14-16)

바울은 디모데에게 특별한 지시를 함으로써 3장을 마친다.  

바울은 곧 디모데에게 자기를 소망하고 디모데에게 좀 더 도움을 주고 그를 인도하여 줄 수 있기를 바랐고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가 잘 가꾸어지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볼 것을 소망하였다.  

그가 이같이 디모데에게 속히 자기를 바랐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간략하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혹시 오래 지체해야 되는 경우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을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고 전도자로서, 또 사도의 대리자로서 그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알도록 하기 위해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보냈던 것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Ⅰ. 하나님의 집에 고용된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 비난을 돌리지 않기 위하여 또한 그들이 불리움을 받은 그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 사역자들은 스스로 잘 행하여야 한다.  그들은 설교와 기도를 하는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복음 사역의 성패는 그들이 행하는 행실 여하에 의해 좌우된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은 사람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디모데는 얼마 동안 머물도록 지시받은 그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복음 전도자로서 사도의 대리자로서, 다른 교회에 가서 일하도록 임명을 받을 경우 그곳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도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네가 에베소 교회에서 이렇게 행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디모데에게 지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인 보편적인 교회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1.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자신 속에 생명이 있으며 그의 피조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신다.  하나님의 안에서 우리가 살며 움직이고 존재한다(행 17:25, 28).

2.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다.  

주께서는 거하시기 위해 시온을 택하셨다.  그는 "이 곳은 내 쉴 곳이니 여기서 내가 거하리라. 그 이유는 내가 그곳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한다.  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볼 수가 있다(시 63:2).

Ⅱ. 교회가 거짓 신들 즉 듣지 못하는 죽은 우상들과 정반대되는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

1.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써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된다.  

그 뜻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교회 그 자체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된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카톨릭 교도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곳일 뿐이다.  마치 교회란 게시판과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진리를 게시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선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사들과 세력의 천사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되는 것이다(엡 3:10)라고 하였다(역주 공동 번역 인용).

(2) 어떤 주석자들은 본문의 "하나님의 집"이란 말씀을 디모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한다.  

즉 디모데는 자신 뿐 아니라 복음 전도자로서 그외의 다른 모든 진실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유지하고 지키며 전하는 것이 그들의 맡은 바 직분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기둥같이 여기는 사도들"이라고 한 것이다(갈 2:9).

① 우리 자신이 진리를 따르는 일에 근면히 하고 핍박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어떤 비싼 대가를 치루는 한이 있어도 진리는 구입해야 하며 진리를 알기 위하여 어떤 수고도 아껴서는 안 될 것이다.

② 진리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진리를 사되 그것을 팔지 말라"(잠 23:23)고 한 것처럼 어떤 이유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남에게 넘겨 주지 말자.

③ 조심스럽게 진리를 전파하며 안전하게 변질되지 않게 그것을 후대에 전해 주도록 해야 하겠다.

④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써의 기능을 못하게 될 때 우리는 교회를 떠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보다는 진리가 더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교회에 남앙 있을 의무가 없는 것이다.

2. 교회와 복음 사역자들이 터와 기둥 노릇을 해야 할 진리는 경건의 비밀이다.  

즉 교회와 복음 사역자들이 지키고 수호해야 하는 진리는 "경건의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16절)라고 본문에서 말하였다.  

카메로(Camero)라는 학자는 이 말씀을 바로 앞의 말씀과 합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크도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 비밀이 교회의 기둥과 터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1) 기독교는 이성이나 인간의 본성의 힘에 의해서 발견될 수 없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비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과는 상반되지는 않을지라도 이성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비밀인데 철학이나 사색의 비밀이 아니라 경건의 비밀이다.  즉 기독교는 경건의 증진시키는 종교인 것이다.  

이 까닭에 기독교는 모든 이방인들의 신비를 초월한다.  기독교는 또한 닫혀지거나 인봉된 비밀이 아니라 계시된 비밀이다.  

그리고 이 기독교의 진리가 지금 부분적으로 계시되어졌다고 하여 기독교가 비밀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경건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이시다.  

본문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여섯 가지의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  이 여섯 가지가 또한 경건의 비밀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①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신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라고 하였다.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이시며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영원한 말씀이신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도 성인신하신 자기 아들 속에서 자신을 보이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을 입으셨다고 하였던 것이다(요 1:14).

② 그는 "성령에 의하여 그 본성이 의로우심을 입증받으셨다."  

그는 죄인과 같이 욕을 당하시고 악인처럼 죽임을 당하셨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셨고 그리하여 주께서는 그가 담당할 수밖에 없으셨던 모든 중상 모략의 누명을 벗으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 대신 죄를 담당하셨고 우리의 범죄를 지시고 욕을 당하시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심으로 성령에 의해 의롭게 되셨다.  즉 그의 부활은 그의 희생이 하나님께 받아드려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같이 그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 죽으셨고 이제 또한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살아나녔던 것이다(롬 4:25).  그는 육신으로는 죽음에 내어 준 바 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벧전 3:18).

③ 그는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였다(히 1:6).  천사들이 그의 수욕과 시험받으심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때에 그의 시중을 들었다.  이 사실은 그의 영예를 높여 주는 것이었다.  

또한 이 사실은 그가 하늘 나라에서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실 만큼 강력한 권세를 지니시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모든 천사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④ 그는 또한 "만국에서 전파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속자요 구세주로서 제공되어지셨다는 사실은 경건의 비밀의 위대한 부분이다. 

 이전에는 구원이 유대인들의 것이었으나 그러한 장벽이 제거되고 이방인들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에게 "내가 너를 이방인의 빛으로 세웠다"(행 13:47)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⑤ 그는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다." 

그는 헛되이 전파되지 아니하셨다.  유대인들에게서 배척당한 복음을 많은 이방인들은 받아들였던 것이다.  죄악 가운데 묻혀 있었던 세상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위에서 처형된 그분을 그들의 구제주로서 받아들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도 믿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불가능하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세상에 의해 믿은 바 되셨던 것이다.

⑥ 그는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다." 즉 승천하셨다.  

이것은 물론 주께서 이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기 이전 일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사실이 경건의 비밀 중 맨 마지막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승천이 주님께서 가장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되기 때문이며 또한 승천이라는 말은 그의 하늘로 올리우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심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 승천이라는 말에 그가 하늘 나라에 영원히 거하시면서 우리를 중제하시며 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다는 것까지 포함된 뜻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울이 다음 장에서 다룰 배교에 대한 내용과 그의 승천이 연관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승천에 대한 내용을 맨 나중에 기록한 것이기도 하였다.  

특히 제단에 드려지는 제병(祭餠)위에 그리스도께서 임하여 계신다고 주장함으로(역주: 카톨릭교에 대한 공박 특히 성만찬을 통해 포도주와 떡이 예수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로마교의 교리를 반박하고 있는 것임) 예수께서 하늘에 거하심을 부정하는 이단들을 경고하는 의미로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첫째, 육신으로 나타나신 그는 하나님이시되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이시며 그 직책상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본질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이 신비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참으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자녀들이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셨다"고 하였다(히 2:14).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모든 범죄한 육체를 따라서 육체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태에서부터 거룩하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의 시작부터 끝까지 즉 그의 태어나심부터 승천 때까지 경건의 비밀로 가득차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넷째, 그리스도께서 대단히 큰 비밀이시므로 우리는 오히려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건하게 그를 믿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공연히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상상으로 추론하거나 어떻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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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제 3장
=====3:1
@미쁘다 이 말이여 - 2장에서 공중 예배의 지침을 말한 바울은 본장에서 직분을 맡을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미쁘다 이 말이여'에 대해서 혹자는 2장과 연결된 것으로 보나(Lock, Chrysostom)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2장에 언급된 여자들의 태도에 대한 교훈은 이런 표현을 쓸 정도로 강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Calvin). 또 한 이런 표현은 바울이 인용구의 앞에 사용하였다(1:15;딤후 2:11). 따라서 본문은 바로 다음 구절 이하의 내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Hervey). 본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1:15주석을 참조하라.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 '감독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코페스'(* )는 '내려 다 보다', '돌보다', '감독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에피스코페오'(* )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단어는 벧전 2:25에서 '양떼를 돌보는 사람'으로 쓰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 되었다. 본절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Calvin). 초대 교회 당시에 감독이 되는 것은 온전한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었던 만큼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스런일이 되었기에 '선한 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을 통칭한다.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 감독의 직분 자체가 선한것이기에 감독은 특별한 자격 조건을 필요로 한다. 바울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품성으로 15개 조항을 열거하고있다. 
그 첫번째 자격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들고있는데, '책망할 것이 없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필렘프톤'(* )은 '공격을 받지 않는'이란 뜻으로 레슬링 선수나 권투선수가 공격하는 선수에게 몸을 노출시키지 않는데서 유래되었다(Hervey). 본절에서 이 말은 감독의 신령한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비행(非行)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되며 -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한번 결혼한 후의 재혼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rnard, Tertullian, Moffatt). 이러한 주장은 초대교부 시대부터 한번 결혼한 이후 독신자가 되어버린 성직자들의 재혼을 금지시킨 관례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들의 금욕주의를 내세웠던 예에서 영향을 입은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목회자는 꼭 결혼한 자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며 재혼을 금지하는 내용도 아니다. 이것은 다만 일부 일처제(monogamy)와, 감독은 자기아내에게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Earle, Calvin, Scott). 사도 바울은 결혼 상대가 죽었을 경우 재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롬 7:2, 3;고전 7:9).
@절제하며 - 감독의 세번째 조건은 '절제'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온'(* )은 본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란 의미를 가지며 후에 '온전한', '신중한'등의 광범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Earle). 이와같은 원어의 의미를 염두에 둘 때 감독은 술이나 다른 육적인 쾌락을 삼가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시사한다(Hervey).
@근신하며 - '소프로나'(* )는 '건전한 정신의', '자제하는', '차분한'의 의미를 가진다(딛 1:8;2:2, 5). 감독은 갑작스런 충동으로 좌지우지(左之右之) 아니하고 매사에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discreet, JB).
@아담하며 - 헬라어 '코스미온'(* )은 '질서 있는', '예의 바른', '명
예로운'(respectable, NIV)이란 뜻이다. 이 말은 사람의 행위에 있어서 도가 지나치지 않고 점잖으며 정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로크세논'(* )은 '나그네를 사랑하는'이란 뜻이다(딛 1: 8;벧전 4:9). 1세기에 여행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이교(異敎) 분위기에 싸인 여관을 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룻밤을 유숙할 그리스도인 가정을 찾아다니곤 했다. 이로 말미암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신자들이 서로 알게 되고 우애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와 같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미덕이었다(Earle).
@가르치기를 잘하며 - 일곱번째 자격인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 디다크티콘)은 수다스러운 혀로 달변하는 것을 의미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시켜 영적으로 가르칠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Earle, Calvin). 이는 또한 불신자를 전도하고 자신이 맡은 양떼를 말씀으로 잘 양육할 능력을 말한다(마 9:35).
=====3: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술을 즐기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로이논'(*)은 '술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하는 '파로이니오스'(*)의 후기 단어이다(Robertson).
감독은 무절제하게 술을 즐기며, 술을 통해서 마음의 안위와 쾌락을 누리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
@구타하지 아니하며 - 이는 성질이 급하여 폭력을 즐겨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주장만 일삼는 언어의 폭력까지를 포함한다.
@오직 관용하며 - '관용하며'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피에이케'(* )는 정확히 번역하기 힘든 단어로 '호의적인', '친절한', '참을성 있는', '동정심 많은', '관대한', '다정한'등의 의미를 갖는다(Simpson). 혹자는 이 단어를 '친절한 분별력'으로 번역하였다(Matthew Arnold). 따라서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어떤 손해나 아픔이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다투지 아니하며 - 이 말은 본절과 딛 3:2에만 나온다. 이것은 '관용'과 통하는 말이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지 아니하고 타인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 이 말은 부정적인 태도로 치부(致富)하지 않으며(딤전3:8), 재물을 모으는 것을 생의 첫번째 목표로 삼지않는 자를 가리킨다(Barnes).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 감독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가정의 흘륭한 가장(家長)이 되어 자녀들을 복종시켜야 한다.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스타메논'(* )은 '앞에 서다' 또는 '앞에 두다'를 뜻하는 동사 '프로이스테미'(* )의 현재 분사로 '앞서서 행하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감독이 모든 일에 자녀들의 모범이 될 때에 자녀들은 신뢰를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며 예의 범절을 지킬 수 있다. 이는 또한 감독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있어서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자녀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에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단정함'(* , 셈노테토스)은 '방탕'과 반대되는 말로서 행동이 정숙하고 기품과 규모가 있는 것을 말한다(Calvin).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께 교회를 돌아보리요) - 본절에 괄호가 있는 것은 이 구절이 앞절을 설명하는 삽입구임을 암시한다. 가정은 사회집단의 최소단위이다. 이 최소 단위를 잘 다스릴 수 없는자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잘 돌볼 수 없다. 
한편 '교회'의 헬라어 '엑클레시아스'(* )는 '엑칼레오'(* , '불러낸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본래 '정규로 소집된 시민의 정치적 집회'를 의미하였으나 점차 이스라엘의 종교적 집회에도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을 가리키게 되었다. 따라서 이는 건물을 가리키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교회는 가정과 유사점이 많다. 복음의 사역자에 대한 권위가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비슷하고 그리스도의 피로모인 형제와 자매가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큰 가정이라 할 수 있다(Barnes).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 '새로 입교한 자'의 헬라어 '네오퓌톤'(*) 은 '새롭게 씨를 뿌린'이란 뜻으로 최근에 개종하여 교회가 받아들인 자를 가리킨다(Earle). 바울이 새로 입교한 자들에게 감독직을 맡기지 말라고 한 이유는 새 신자에게 그와 같은 중직(重職)을 맡길 경우 오만과 야심에 곧장 휩쓸리기 때문이다.
@교만하여져서 - '교만하여져서'로 번역된 헬라어 '튀포데이스'(* )의 문자적 의미는 '연기에 싸이다'이다. 확실한 소명의식이나 지휘 능력이 없는 새로운 개종자는 갑자기 확보된 지위에 의하여 교만의 연기에 싸이기쉽다. 그 자만심은 높은 지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며, 그 결과 타락의 길로 가게 할 가능성이 많다(Guthrie, Scott).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본 구절은 난해한 구절이다. 여기서 '마귀'에 해당하는 '디아볼루'(* )를 '사단'으로 볼 것인가 '중상모략자'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1) '사단'으로 볼 경우에는 '마귀가 당할 정죄'의 뜻이다. 이는 사단이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으나(창 1장) 자신의 교만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자만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교만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심판을 받게 된다(Earle, Calvin, Chrysostom, Ellicott, Alford, Guthrie). (2) '중상모략자'로 보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세움을 받은 자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마귀가 가져오는 정죄, 즉 마귀가 놓은 올무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마귀를 주격 소유격으로 보는 이론이다. 그러나 '정죄'라는 단어가 '중상모략'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성경상의 표현으로 보아 마귀가 정죄의 올무를 놓는다는 의미보다는 마귀가 정죄를 받는다는 전자의 의미가 타당하다(창 3:15;사 14:12;슥 3:2;마 4:10;롬 16:20).
=====3:7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 감독의 열다섯번째 자격을 언급하는 본절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교회가 필요없는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한 요구 사항이었다.
'외인'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외부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를 필요로하는 것은 바울이 가졌던 관심으로 여러 곳에 나타난다(고전 10:32;골 4:5;살전 4:12). 교회 지도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할 때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벧전 2:12).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감독이 세상사람들에게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모범적으로 행동하여 인정받으라는 것이다(Calvin).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외부인으로부터 선한 증거를 얻지 못한 사람은 쉽게 비방을 받게 된다. '비방'이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이다. 
'마귀의 올무'를 혹자는 '마귀가 잡힌 덫' 즉 '교만'으로 해석한다(Earle, Guthrie). 그러나 여기서는 마귀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설치하여 놓은 올가미로 해석해야 옳다. 마귀는 환난을 통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잡으려고 올무를 설치한다(벧전5:8). '올무'에 해당하는 혤라어 '파기나'(* )는 '붙들어 매다'를 뜻하는  '페그뉘미'(* )에서 나온 단어로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눅21:34), '함정'(름 11:9)을 뜻한다(Robertson).
=====3:8
@집사들도 단정하고 - 본절부터 13절까지는 집사의 자격에 대한 기술이다. 집사의 자격요건은 앞서 언급한 감독의 자격 요건과 흡사하다. 이는 초대 교회의 집사들이 장차 감독이 될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집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누스'(* )는 '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식사때 시중드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Josephus). 그런데 이 말이 초대교회에서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의 의미로 발전하였다. '집사'라는 표현은 행 6장에서 최초로 나온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가난하고 불우한 교인들을 물질적으로 돌보는 구제 사업을 맡을 일곱 집사를 선택하였다(행 6:1-6). 집사직은 제도화되기 전까지 두 측면에서 언급되었는데, 첫째는 교회의 영적 생활과 재정업무를 돌보던 사람에게 사용되었고(빌 1:1) 둘째는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봉사하는 자 모두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엡6:21). 이처럼 집사는 군림하는 자가 아님 돌보고 섬기는 일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다(Earle). '단정하고'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 '일구 이언'의 헬라어 '딜로구스'(*)는 '두 번'을 뜻하는 부사 '디스'(* )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 )의 합성어로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하고 저 사람에게는 다른 말을 하는 이중적인 언행(言行)을 의미한다(Hervey, Earle). 결국 이말은 '불성실하다'는 개념을 가진다. 집사는 공명 정대(公明正大)하며 성실한 언행을 가져야한다.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 '많은 술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는'의 뜻으로 술에 탐닉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 '더러운 이를 탐하지'의 헬라어 '아이스크로케르데이스'(* )는 '부끄러운'을 뜻하는 '아이스크로스'(*, 엡 5:12)와 '유익'을 뜻하는 '케르도스'(* , 빌 1:21)의 합성어로 '비열한 수단으로 사소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부정으로 취한 것은 항상 더러운 것이다. 또한 정당한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것은 더러운 것에 포함된다(Robertson). 본문은 앞서 언급한 초대교회 집사직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분배할 구제품을 횡령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남기려고 이리저리 유용하는 행위등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 같다(Scott).
=====3:9
@깨끗한 양심 - 이상과 같이 그리스도를위하여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깨끗한 앙심을 가진 자이다. '깨끗한 양심'은 '선한 양심'과 같은 의미로(1:5,19)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앙심이다(히 10:22). 혹자는 이를 '보석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상자'에 비유하였다(Lock).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 - '비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스테리온'(* ))은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공개되거나 선택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비밀'은 '성령에의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이다. 따라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지식을 소유한 자'이다(Calvin).
=====3:10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 '시험하다'의 헬라어 '도키마제스도산'(*)은 '금속을 시험하다'를 뜻하는 '도키마조'(* )의 명령형이다. 추천된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집사로 임명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기간을 설정해 놓고 합격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실성과 구원에 관한 확고한 믿음의 도리를 가졌는지를 시험하라는 것이다. 8,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집사가 될 사람을 판단할 때는 떠돌아다니는 풍문(風聞)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교회 전체를 통한 조화나 관찰을 거쳐야한다. 이 시험은 세 단계를 갖는데, 그것은 시험과 시험에 대한 증명, 그리고 시험의 결과에대한 인정이다. 여기서는 이 세 단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Earle).
=====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 '여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귀나이카스'(*)는 '여자' 또는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여자들'이 어느 집단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집사들의 아내라는 주장(NIV, KJV, Earle, Moffatt, Jeremias, Easton, Weiss). 즉 전후 문맥상 8-10절, 12, 13절이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집사의 아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2) 일반적인 여자라는 주장. 이 주장은 8-12절의 문맥상 합당하지 않다. (3)여집사라는 주장(Bernard, Lock, Robertson, White, Alford, Ellicott, Chrysostom).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여자들'을 감독이나 집사처럼 교회에서 특별한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자들로 이해한다. 다만 여기서 여집사의 자격 요건에 대해 분리된 문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여집사가 제2의 직분이라는 차별 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세번째 주장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참소하지 말며 - '참소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루스'(*)는 '비방하는', '거짓으로 고발하는'의 뜻이다. 특별히 목회 서신에만 나타나는 이 말(딤후 3:3;딛 2:3)은 초대 교회에 요구되는 사항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역시 필요한 경고이다(Earle).
@절제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우스'(* )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 모든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모든일에 충성된 자'는 포괄적인 필요조건이다.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여받은 직분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혹자는 '모든일에 충성된 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로 해석하였다(Moffatt).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 이제 집사에게도 감독과 마찬가지로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남편된 책임과 자녀를 잘 다스려야 할 것이요구된다. 
'다스리는'(* , 프로이스타메노이)것은 글자 그대로 '머리가 되는것'이다. 롬 12:8과 살전 5:12에서는 이 단어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에게 쓰였다.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 '아름다운 지위'는 교회에서 직분을 훌륭하게 감당했을 때 얻게 되는 첫번째 결과이다. 
'집사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디아코네산테스'(* )는 여자 집사(롬 16:1)와 바울 자신과 바울의 동역자들에게도 사용되었다(고전 3:5;고후 3:6;6:4;11:23;엡 3:7;골 1:23). 그러므로 '디아코니아'(* )는 일반적인 봉사의 직분를 칭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집사직분을 잘한'으로 번역하기보다는 '직분을 한'으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Lenski, Hendriksen). 
한편 '지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드몬'(* )은 '가다'를 뜻하는 동사 '바이노'(* )에서 나온 단어이다. 칠십인역(LXX)에서는 '밉탄'(* , 삼상 5:5)이란 말을 '바드몬'으로 번역하였는데 원래 이 말은 '문지방'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복수로 사용될 경우에는 '계단을 오르는 걸음'이란 뜻을가진다(Robertson, Earle). 이 말은 교회에서의 직위 승진을 시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교회에서 성실히 직분을 감당했을 때 사람들에게 높은 평판을 얻게 되고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에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들에게 오는 두 번째 결과이다.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된다. 
'담력'(* , 파르레시안)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담대한 것을 말한다(Hervey). 이 담력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연결되는 것은 담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데서 비롯됨을 보여준다(Lenski).
=====3: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것은 - '이것'은 2:1-3:13에 기록된 내용을 가리킨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 교회에 가기를 원했으나(1:3) 지체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목회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전에 디모데에게 직접 이러한 지침들을 전하지않고 서신으로 전한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혹자는 디모데가 너무 미성숙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Easton). 그러나 이것은 정당한 이유라고 볼 수 없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의도에서 이 지침들을 서신으로 전했을 것이다. 첫째, 본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 말로써 충고하였던 것을 더 확실하게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바울이 디모데에게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고 수신자인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디모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하여 서신을 기록하였다. 셋째,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지침들을 전달하고자 하였다(Guthrie)
=====3:15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 본절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 역할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몇 사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헬라어 사본에서 '행하여야'라는 동사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이 동사의 주어는 일반적인 사람이나 디모데가 포함될 수있다. 비록 본 동사('알게 하려')의 주어가 디모데이나 앞의 구절에서 열거되었던 지침들을 살펴보면 문맥상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Guthrie). 
한편 '하나님의 집'(*,오이코 데우)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러러보는 그리스도인 전체의 가족'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지상에 있는 보편적 교리를 가리킨다. 교리를 집이라고 일컬은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되는 가족들을 소유하고 계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Earle, Lenski).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 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계셔서 주관하시는 하나임의 소유이다. 바울이 이처럼 교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한 것은 교회를 돌보는 사람들이 지킬 거국하고 흠없는 생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Hervey).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 여기서 '기둥'은 '터'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지주(支柱)의 개념을 갖는다. 그리고 본문 전체를 볼때 '기둥'과 '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되는 '진리'의 확실성과 견고성을 강조한다. 혹자는 본문을 '하나님께서 각지역 교회의 신앙의 증인들을 사용하사 교인들의 삶의 터전 위에 진리를 강화시켜 나가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Lock).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 이 구절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찬양이다. 
'경건'의 헬라어 '유세베이아스'(* )는 원래 '영혼의 자질이나 상태'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삶 속에 나타난 경건을 의미한다(Hendriksen). 곧 예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참되게 헌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경건의 본질이다. 이 경건은 비밀로 언급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지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Lock).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 이제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6행으로 찬송한다. 이 6행의 찬송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영광스러운 승천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행하던 찬양의 형태로서 풍부한 운율과 의식적(儀式的)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는 그리스도의 비하(卑下)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 이처럼 저주를 받아 연약해진 인간의 육신을 스스로 입으셨으므로, 이를 통하여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명백히 드러났다(요 1:1-14;고후 8:9;빌 2:5-11).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 앞에서 예수의 인성(人性)을 묘사한 반면 본문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언급한다. 예수는 비록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으나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말씀과 그가 행하신 기적들의 근거였고 사망을 이기신 그의 부활을 통하여 절정적(絶頂的)으로 증거되었다(Simpson).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 예수는 그의 모든 생애를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대표적으로 그의 탄생(눅 2:12-14), 사단의 시험(마 4:11), 부활(마 28:2-7;막 16:5-8;요 20:12,13). 그리고 승천시에(행 1:9-11)천사들이 예수 곁에 등장하였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의 의미는 부활에서 나타내 보이신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Hendriksen, Lenski).
한편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자들의 구속에도 관심을 갖고있다(벧전1:12).
@만국에서 전파 되시고 -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8-20). 인간의 연약함과 질고를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낮아지사 고난의 생애를 보내신 그리스도는 이제 세상의 구주로서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만국'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 )은 글자 그대로 '민족들'을 의미하지만(the nations, NIV),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이방인 뿐만아니라 '천하 만민'을 가리킨다(Robertson).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 이제 세상 가운데 전파되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들여 지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역사를 말한다. 참된 복음의 권세는 그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를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다 준다.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언급이다.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행 1:9). 지상에서의 사역을 승리로 종결지으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빌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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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칼럼]] 교회 직분의 기원
::: 집사, 장로, 감독의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
(들어가는 말)
현 한국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목사, 감독의 직분은 일종의 ‘계급’처럼 이해 되는 경우가 많다. 집사에서 권사로, 권사에서 장로로 임직되는 것을 마치 ‘진급’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아는 어떤 권사 한사람은 여러 번 장로 선거에서 떨어지자, 장로보다 더 높은 계급(?)인 ‘목사‘직으로 ’특진‘하겠다고 하면서 어떤 이상한 야간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목사가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교회 역사에서 어떤 기간 동안 교회 직분을 ‘계급’혹은 위계질서(hierarchy)로 정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그런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교단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는데, 성경정신이나 개신교 신학에서 볼 때, 교회 직분은 결코 ‘계급’이 아니며, ‘은사’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처음 시작한 사역에서,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과연 ‘직분’제가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그리고 시대와 환경과 사회체제가 바뀌었다고 해도 , 그 ‘처음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초 예수의 공동체에서 12제자는 ‘직분’이었나?
기원 1세기 초반의 예수의 활동이나 그의 사역에 대하여는 신약성서 외에 다른 자료에서는 별로 찾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역사가 요세푸스, 타시투스(Tacitus), 플리니(Pliny)등의 기록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주.1) .
분명한 것은 예수는 '교회’를 창설하거나 어떤 조직을 만들지는 않았다. 예수의 사역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의 순회전도자 혹은 혜성같이 나타난 예언자 같은 종류로 보였을 것이다.(마13:57,막8:28,마21:11, 눅24:19, 요4:19, 6:14, 7:40, 9:17)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하여,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세례 요한의 환생, 또는 선지자중 에 하나라고 사람들이생각하고 있다’라고 제자들은 대답을 한 것이다.(마16:13-14)
대부분 예언자들의 사역에서 보듯이, 예수에게도 그를 따르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들을 ‘믿는 자들’이나 ‘제자’로 부르지 않고, 단순히 ‘무리’ (crowds)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는 그런 ‘무리’를 조직화 하거나 또는 그 속에 어떤 직분이나 리더쉽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다. 12명의 제자들의 위치는, 예수의 최초 공동체에서는 , 직분 혹은 리더쉽의 자리는 아니었다. 최초에는 다만 예수의 ‘메시야’ 즉 이스라엘의 왕 됨을 기대하고 따라다녔던(마20:20-21, 행1:6 참조) 갈릴리 어부출신이나 세리 등 하층민이거나 그저 평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저 ‘제자’들이었다.
예수가 떠난 후, 첫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교회가 시작이 되었다. 어느 조직이나 모임이 생기면 그것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의 자리가 필요하게 된다. 자연히 예수가 택하였고, 그에게서 훈련받은 ‘12제자’가 ‘사도’라는 명칭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행정적, 권위적 혹은 제왕적 지도자들이 아니라, 그때 ‘한번만’ 있었던 특수한 ‘사도’라는, ‘즉 보냄 받은 자’(apostolos)라는 ‘은사직’의 ‘직분자’들이었다.
==최초로 시작된 ‘직분’, ‘일곱’ (the Seven) 사역자.
시간이 지나면서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사도가 아닌 일반 신자들 중에서 최초의 ‘직분’제가 시작이 되었다. (행 6:1-6).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것인데(행 6:4) 교인수가 증가하게 되자 교회 내에 자연히 교인 관리, 봉사하는 일 등 행정적인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구제하는 일로 히브리파 신자와 헬라파 교인들 사이에 어떤 갈등 혹은 불평 까지 생기게 되었다(주 2). 그래서 사도들은 신자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듣는 사람’ (행 6:3)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을 도와 구제하는 일과 기타 봉사하는 일을 맡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 조직과 행정 및 직분제도의 원시적인 시작이었다. 한데 그때 사도들이 안수하여 세운 ‘일곱’이 과연 어떤 ‘직분’의 성격이었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우선 그들은 최초의 ‘집사’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그들을 세운 목적이, 사도들을 도와, 교회의 구제하는 일을 돕도록 한 것을 유추해 볼 때 그들의 직무가 집사의 직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사도행전기자가 언급한 ‘음식 베푸는 일’ (행6:2)의 히랍어 표현, ‘식탁(table)을 섬긴다’에 나오는 단어, 헬라어는 diakonein(동사)인데, 이것의 명사형 diakonos는 ‘집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약 어디에도 그들을 ‘집사’라고 표현한곳은 없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에 장로와 함께 ‘집사’의 직이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그 ‘일곱’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기도 하고, 담대하게 말씀전하는 일을 행하였다.(행 6:8-7:60) 또 한사람은 ‘전도자 빌립’(Philip the Evangelist)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마리아 등에서 전도하며 병도 고치고, 이방전도에 공헌했다.(행8:4-7) 그리고 세례도 베풀었다.(행8:36-39) 그 ‘일곱’을 최초의 장로들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행 11:30에서, 안디옥 교회가 ‘구제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보냈다고 했는데, 그 ‘일곱’이 구제와 관련된 예루살렘교회의 장로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곱은 대부분 헬라파 유대인들로 보이는데, 예루살렘교회에 ‘헬라파’장로들이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에 대하여 교부 크리소스톰은 ‘그 일곱’은 최초의 집사이고 또 장로이다. 그러나 집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때 예루살렘 교회의 특별한 상황에서 요구된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던, 그리고 그때에만 존재했던, 선택된 사명자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집사직분의 시작이었건, 최초의 장로들이었건, 혹은 단순한 봉사자였건, 교회가 최초로, 성도들 가운데서, ‘직분자’들을 선택하고, 기도와 안수라는 형식으로 임명하기 시작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데 교회가 최초로 세운 그 ‘일곱’, 교회역사에서 시작된 최초의 ‘직분’인 그들 역시 어떤 행정적인 혹은 ‘계급’적인 직책이 아니고, 다만 ‘섬기는 자’의 ‘은사 직’을 받은 사람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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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 역사가 Tacitus: 110년경, 네로황제에 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 고문 등을 기록하고 있다.
• Babylonian Talmud: (Sanh.43a): 'Jeshu ha-Nostri' 에 대한 언급이 있 다. ‘그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길 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이스라엘은 그 사람을 유월절 저녁에 매달았다.’
• 로마의 집정관, Pliny (61-113 ad.)는 크리스쳔 죄수들을 조사하면서, 과연 이 새로운 종파가 위험하고도 악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황제에게 그 당시 크리쳔들이 행하는 관례 등을 보고하는 글을 올렸었다.
(주.2.)이것은 2천년간 교회 역사에 계속 있어왔던 갈등 및 분쟁의 최초 사건이다. 여기서 갈등의 원인은 단순한 ‘구제’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그룹내에서의 ‘파워(power)’문제였다. 아람어를 사용하며 예루살렘 지역에 뿌리를 가 진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류’행세를 했고, 헬라말을 사용하는 그룹을 무시하거나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가 ‘분파’의 원인이 될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같이 다인종 사회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들 이 있을 때,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언어 때문에 오해와 분파가 생길수도 있 음를 보여주는 첫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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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 장로, 감독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 ‘장로’(πρεσβυτερος) 직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형태의 조직과 직분제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사건 이후, 믿는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날마다 모이고, 떡을 떼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고 전하고 있다.(행2:42-47) 따라서 그렇게 자라가고 있는 ‘모임체’를 이끌어갈 지도체계나 직분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12사도’들이 단독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사도들을 도와 일할 ‘일곱’명의 봉사자들이 선출 되었다. 하지만 그 ‘일곱’은 ‘임시적’인 직분이었지 항구적인 교회 직분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에 그 ‘일곱’중에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 등에서 활동한 것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후에 그 ‘일곱’직분은 흩어지거나 해산된 것으로 본다.
한데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항상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천국복음 전파였으므로, 사도들은 항상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자연히 교회에 정착하여 교회를 다스릴 고정된 ‘직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당시 이스라엘 커뮤니티에 있었던 ‘장로’제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유대인들의 커뮤니티에는 ‘장로들의 회’가 있었다.
회당에서 장로들은 예배 인도자는 아니지만, 행정 및 재판과 체벌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는 의장인 대제사장을 제외하고 70명의 장로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것은 모세의 ‘70인 장로’(민 11;16-25, 출24:1)전통에 그 유래가 있다. 물론 형태나 기능에서는 같지 않지만,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부 유대 커뮤니티의 제도를 따른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제가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또한 어떤 절차로 ‘장로’를 세웠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그랬듯이, 교회에서도 연령과 신앙이 높고, 존경받는 ‘연장자’를 장로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유대사회에 흔히 있었던 제비뽑기나 무슨 선출 과정을 통해서 임직된 직분은 아니었던것 같다.
하지만, 사도행전 및 바울의 서신에서, 그것이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40(AD) 년대에 교회의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임무를 가진 ‘장로’직분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시작된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장로들에게 목회적 책임은 없었던 것 같다.
바울이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때(AD37-40경) 거기에는 ‘사도’들만 있었고 ‘장로’란 직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행9:26-30, 갈1:18-19). 그런데 그후 안디옥 교회가 구제금을 모금하여 보낼때, 바나바와 바울이 그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행11:29-30).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에도(행21:17) 거기에 야고보와 ‘장로’들이 등장하고 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조직 운영 체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단서 하나를 사도행전 15장에서 찾을수 있다.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신자들의 할례문제로 논쟁이 발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 등을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을 때, 거기 ‘사도와 장로’들이 있어서 그들의 영접을 받았다. 곧이어 ‘사도와 장로’들로 구성된 ‘교회 총회’가 공식적으로 모여, 토론 끝에 해결책을 결정했다.(행15:1-21).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에 있었던 ‘공의회’(Council)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 그때 교회운영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사안이 생겼을때, 사도와 장로들이 함께 모여 의론하며 결정을 하는 ‘협의체’ 혹은 ‘자문회의’ 같은 것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회의에서 야고보가 의장의 위치에 있었는데 물론 그도 ‘장로’였을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모교회로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지도아래, 다른 지방의 신생교회들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우위적’ 위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행8:14, 11:22, 15:22등 참조)
이와같이 예루살렘교회에 시작된 ‘장로’직분은, 그 후에 나타나게 되는 바울의 이방교회에서의 ‘장로직분같은 목회자는 아니었다. 유대인 회당에서와 같이 교회 운영에 중요한 사항등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데 사도행전은 ’일곱 사역자‘ 선출 과정은 자세히 기록하면서, ‘장로’에 대한 선출이나 역할,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또 ‘일곱’의 이름이나, 혹은 여러 사역자들의 이름들이 거론되면서도, 장로 직에 있던 사람의 이름은 전혀 없다. 이런점을 유추해 본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장로’직은 어떤 행정적 ‘파워’를 가진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이 아니고, 다만 그때 교회 안에 있던 '어르신‘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교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요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와 관련하여,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즉 야고보의 교회 내에서의 특별한 위치이다.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기사가 누가의 기록(사도행전)어느 부분과 일치되는지는 논란이 많고, 또 서로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바울 자신이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갈 1:20)라고 말한것처럼, 바울의 보고에 신빙성을 둔다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로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는, 첫 번 방문때 바울은 다른 사도들은 보지 못하고 베드로와 야고보만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갈1:18-19). 한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와 같은 반열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1)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14년후’(갈 2:1), 두 번째로 보이는 예루살렘
방문 보고에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유명한자들’ 및 ‘교회의 기둥’으로, 야고보, 게바, 요한을 언급하고 있다.(갈2:6-9). 특히 그 ‘기둥’명단 순서에서 야고보를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사도들은 때때로 순회전도차 외부로 나가는 일이 많므로, 야고보가 항상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교회를 지키는 실제적 예루살렘교회의 ’수장‘노릇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야고보 당시에는 아직 ‘감독’이란 직분이 등장하지 않았고, 그래서 야고보는 ‘감독’이라 불린 적은 없지만, 그의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수위적’(primus inter pares)위치나 직무를 보면, 그는 그 당시, 하나의 예루살렘 지역 ‘주재감독’(Resident Bishop)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바울의 선교교회에서의 ‘장로’(πρεσβυτερος) 직분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는(갈2:8) 바울은 열정적으로 각 지역에 다니며 교회들을 세워 나갔다. 자연히 그 공동체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들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우선 그가 세운 교회들을 위해, 각 교회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웠다.(행14:23)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누가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하면, 바울이 선교여행시 처음 장로들을 임명했는데, 과연 새로 시작한 지역의 개체교회내에 자도자적 위치에서 ‘사역’을 담당할만한 일꾼들이 있었겠느냐는 것 이다. 그래서 선교 현지에서 발탁하여 임명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에 있었던 장로들을 초청해 와서 임명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보고에서 회중이 함께 ‘금식과 기도하며’ 장로들을 선택한 것을 보면, 바울이 세운 지역, 개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서 신실한 사람들을 택하여 세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임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때 바울의 교회에서 ‘장로’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신약에서 ‘장로’에 관련하여 언급된 내용들을 볼때,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는, 장로들이 새로 세워진 신앙 공동체를 이끌며 말씀 사역 등 일종의 ‘목회적 사역’을 한 것으로 본다.(행20:27-32, 딤전5:17-18, 딛1:5 등 참조)
한데 바울의 편지들에는, 목회서신(2)을 제외하고 10개 서신에서, ‘장로’(πρεσβυτερος)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해서 그의 선교초기에는 바울이 각교회에 장로들을 정규적으로 임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누가의 제3차 바울 전도 여행 기록(AD 약 54-58년경)에 의하면 그때 이미 에베소에 여러명의 ‘장로’ 사역자들이 존재해 있었던 것을 보면(행20:17), 바울은 선교지마다 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들을 세웠음이 확실하다.
바울의 서신에서 장로라는 직분명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10개 서신), ‘장로’직을 암시하는 내용들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그의 편지들에서,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전16:16), 혹은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극진히 존경하라”(살전 5:12-13)고 말한 그 대상은 그때 교회를 지도하고 있던 ‘장로’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직분과 은사를 열거한 곳에서도 ‘관리하는 일’(administration, 고후12:28), ‘지도하는 일’(leadership, 롬12:8)의 은사는, 장로와 관련된 업무를 지칭한 것으로 볼수 있다.
바울의 대부분 편지에서 ‘장로’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초대교회가 조직이나 직분이 분명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았고 ‘직제’보다 ‘은사’에 치중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또한 처음 바울은 그가 세운 각 지역 교회에, 필요에 의해서, 유대 커뮤니티 전통인 ‘장로’라는 호칭으로 ‘지도자’들을 임명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용어가 이방교회의 지도자 호칭으로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직명 사용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 교회에서는 ‘장로’대신에 다른 용어의 직분 명칭이, 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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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Jerome (De uiris illustribus, 2) 에 의하면, ‘히브리인의 복음’에 “주께서 세마포를 제사장의 종에게 준 후에, 야고보에게 갔으며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의 만남은 ‘사도’됨의 한 조건인데, 고전 15장에 나오는 명단 중에 야고보의 이름이 나와 있다(고전15:7).
주(2). 목회서신의 저자를 바울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전통적이나, 문체, 신학, 서신이 보여주는 그때의 상황 등을 살펴 볼 때 바울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 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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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 장로, 감독의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3)
==집사(διακονος)직의 기원
공식 직분 명으로 ‘집사’(διακονος)직이 신약에 등장하는 것은(빌1:1을 제외하고) 목회서신에서다. ‘집사’의 히랍어 διακονος 의 본래 의미는 종, 일꾼, 섬기는 자(servant), 조수, 협조자(helper)등이다. 신약 초기교회에서는 공식 직분으로 ‘집사’가 있지는 않았다. 하나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봉사자’들은, 비록 그들을 집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어도, 교회 역사상 최초의 ‘집사’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의 주요 임무가 사도들을 도와 ‘구제’하는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주.1)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집사직분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교회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돕고 구제하는 일을 담당했던 ‘봉사자’들이 있었다. (주.2)
이 διακονος가 ‘집사’ 직 용어와 관련되어 처음 등장하는 곳은 로마서 16:1에서 바울이 뵈뵈의 호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되어진 ‘διακονος’가 교회의 ‘집사’직분을 말하는 것일까? (주.3)
이 단어가 바울의 초기 교회에서 ‘직분’명으로 나타난 경우는 없다.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빌립보서 1:1절과 목회서신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직분으로 언급된 곳은 없다. 한데 바울은 자신을 ‘사역자’ 혹은 ‘일꾼’이라고 부를때 때때로 이 ‘διακονος’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전 3:5, 고후3:6; 6:4, 11: 23, 골1:23,25, 엡3:7 등)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롬15:8, 갈 2:17)
아볼로(고전 3:5), 두기고(엡6:21), 에바브라(골1:7), 디모데(살전3:2, 딤전4:6) 그리고 심지어 사탄의 사자에게도(고후 11:15), 정부 관리를 지칭할 때도 이 단어를 썼다.(롬16:1) 따라서 바울이 뵈뵈를 교회의 ‘diakonos’라고 부른 것은 교회의 공식 직분으로 호칭했다기보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 혹은 ‘일꾼’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빌1:1에 나타나는 ‘집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미 말한대로 빌립보서가 쓰여질 연대(약 53-4년경)에는 교회에 아직 '집사'라는 공식 직분이 있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연대에 쓰여진 바울의 다른 어떤 서신에도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왜 빌립보서에는 ‘집사’들이 ‘수신인’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빌립보서는 특별히 바울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성원을 한 교회이다.(빌4:15-18). 한데 그런 물질적 후원의 업무를 직접적으로 당당했던 ‘봉사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업무를 맡은 봉사자를 나중에 공식적 직분으로 ‘집사’라고 했으므로, 그 임무를 감당했던 봉사자들과 그것을 감독했던 장로들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수신자’ 리스트에 특별히 ‘감독과 집사’를 추가한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따라서 빌 1:1의 ‘집사’직 언급은, 후대에 쓰여졌다고 주장되는 목회서신과 비슷한 시기의 어떤 편집자에 의한 편집의 산물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목회서신에는 좀 발전된 교회 직분제가 나타난다. 장로와 함께 감독, 집사가 공식 직제명으로 등장된다.(딤전 3:8-13) 특히 집사를 선택할 때의 ‘자격’에 대한 상세한 언급을 한 후, ‘시험’을 통해서(딤전3:10) 자격자를 골라 임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교회 직제가 제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빌1:1절에서처럼, ‘감독’ 직분 다음에 ‘집사’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도 유의할 일이다. 이것은 후에 등장하게 되는 교회 위계제도(hierarchy)의 원시적 모형으로 볼수도 있다. 집사들은 ‘장로-감독’의 직무를 도와서, 혹은 그들의 지도 아래서 구제 등 교회 행정, 관리, 재정에 관계된 일을 맡아 봉사하는 업무를 담당했을 것이다.(주.4)
하지만, 이것을 가리켜, 신약교회 시대에 이미 교회 내에 상하 위계질서 같은 ‘계급’적인 직분제도가 있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신약교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성직자’제도나 ‘평신도’라는 개념은 없었다. 누구나 받은 은사에 따라 봉사하였다. 따라서 장로직이나 집사직이 상하적 ‘계급’ 직책이 아니고, 교회 일을 서로 나누어서 수행하던 일종의 ‘업무분담’ 같은 형식으로 보아야 한다. 집사직을 받은 사람이 어느 일정 기간 지나서 장로가 되는 것 같은(마치 계급이 올라가는것 같은) 제도는 없었다.
==신약교회의 특정 직분들 - 은사(χαρισμα)적인 사역자들-
바울 서신에서 직분 혹은 사역에 관한 리스트가, 특히 성령의 은사와 연결하여, 언급된 부분이 세 곳에서 발견된다.(고전12:8-11, 롬12:6-8, 엡4:11-12) 우선 50년대 중반에 쓰여젔을 것으로 보이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먼저 세가지 직분명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사도’와 ‘예언자’와 ‘교사’이다. 그것도 ‘첫째’, ‘둘째’, ‘세째’로 순서를 정했다.(고전12:28-30) 물론 그것이 꼭 어떤 위계질서나 서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직분들의 ‘중요성’의 순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언자’(προφητης)는 대체로 ‘사도’ 다음으로 나타난다. 에베소서의 사역자 리스트에서도 사도 다음이다.(엡4:11),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았고, 또 그 당시 아직 그가 방문해 보지 않아, 그 교회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을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의 은사 리스트에는 제일 먼저 언급 되어 있다.(롬12:6) 이와 같이 바울의 교회에서 ‘예언자’의 사역은 사도 다음으로 비중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도 ‘예언자’로 불었다.(행 13:1).
바울의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역을 했는지 또 그 예언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특히 예언의 은사를 행하는 성도들이 많았던 고린도교회(행19:5-7) 성도들에게 바울이 권면한 교훈들을 보면, 예언은 예배시에 사용된 것 같으며(고전11:4-5, 14:28-31), 방언 같은 은사와는 달리 무아지경이나 황홀경이 아닌 ‘똑똑한 의식’으로 전달되었다.(고전 14:19) 그 내용은 영감에 찬 교훈, 훈계, 위로, 격려, 권면 및 때로는 ‘질책’등으로써, 결과적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 내포돼 있었다.(고전 14:3-5, 12, 22-25, 26 참조) 그래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더 중요한 은사로 말하기도 했다.(고전14:4-5, 19)
예언은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전12:26-31) 고린도교회의 예를 보면, 예배 참석자중 누구든지 ‘계시’를 받은 사람이 예언을 말했다.(고전 14:30)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거짓 예언’을 말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남용 내지 오용하는 자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폐해가 이미 초대교회에서 있었다. 그래서 영에 대한 ‘분별’ 은사가 강조되기도 한 것이다.(고전 12:10, 롬12:2, 빌1:9-10, I요4:1) 사도들의 시대가 지난 후, ‘사도, 예언자, 교사’의 순위를 자랑했던 ‘예언자’는 점차 사라지게 되고,(주. 5) ‘예언’은 성서 내에 있는 예언으로 국한하게 되었다.(주.6)
세 번째 은사직분은 ‘교사’(διδασκαλος)인데, 교사가 바울의 선교교회에서 어떤 성격의 직분이었는지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교사’(선생)(διδασκαλος)라고 하였으며(마23:8, 26:18, 요13:13 등) 항상 이 칭호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칭호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교회에서도 ‘가르치는 자(롬12:7), ‘지혜와 지식의 말씀’(고전 12:8)으로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사역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교사들은 기독교 진리의 해설자, 교육자, 전달자, 양육자들이었다.
한데 바울의 편지에서 ‘교사’는 때때로 ‘예언자’와 결부되어 나오기도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예언자와 교사’로 불렸다.(행13:1등) 그것은 예언자나 교사가 다같이 당시 교회에서 사도와 함께 중요한 사역자임과 동시에 또한 다 같은 말씀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대체로 ‘순회’적 사역을 했으나 ‘교사’는 개체교회의 고정된 사역자들이었다.
‘교사와 ‘목사’가 함께 나오는 경우도 있다.(엡4:11) ‘목사’(ποιμην)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목자’로 번역되지만, 사역과 관련해서는 에베소서에 단 한번 ‘목사’(pastor)' 나오는데, 어떤 직분이었는지는 역시 분명치 않다. 하지만 목사와 교사가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동일한 직분의 명칭으로 생각된다. ‘교사’는 순회하는 자가 아니고 개체교회에 정착해 있으면서 가르치고, 때로는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도 했을 것임으로 ‘목사’(pastpr)로 호칭되기도 했을 것이다. 바울 당시의 교회에서는 직분제도가 완전히 정착이 되어 있지도 않았고, 사역의 업무구분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던 때 임으로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바울의 교회에서 당시 ‘목사’라는 직분이 따로 있었다는 어떤 근거도 신약이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에베소서의 ‘은사’적 사역자 리스트에 ‘전도자(ευαγγελιστης)가 있다. 그들은 그 이름 그대로 전도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사도들도 전도자였다. 다른 점은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언자들이고, ‘전도자’들은 부활하신 주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도들의 전한 말씀을 받아서 전파한 제2차 증언자들이다. 신약에 ‘전도자’라는 호칭이 개인적 이름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두명 나오는데 그것은 빌립(행21:8) 과 디모데(딤후4:5)의 경우이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초기교회, 바울의 선교교회에 있었던 교회의‘직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한데 그것을 현대교회의 ‘직분’ 개념과 연결해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당시 초대교회 내에는 ‘직분’이란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 공식적인 직제 구조가 조직화 되거나 통일되어 있지도 않았다. 누구나 받은 ‘은사’대로 ‘사역’에 동참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직분의 명칭이나 성격도 분명치 않으며, 따라서 교회마다 비공식적인 명칭들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수고하는 자들, 돕는 자들, 동반자들, 섬기는 자들, 사자들, 일꾼들 같은 명칭들이 각 교회에서 쓰여 지기도 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 등의 ‘직분’명 으로 보이는 칭호들이 나열되어 있으나(엡4:11), 다른 교회에서는 ‘전도자’나 ‘목사’같은 직분 명칭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명칭들이 꼭 제도화된 직분명이라기 보다 그때 활동하고 있던 성도들의 ‘사역’ 내용이나 ‘활동’의 성격 같은 것이라고 해석해야 될 것이다. 그래서 안디옥교회 같은 데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지자와 교사’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행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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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6:2절의 ‘음식 베푸는 일’에서 사용된 히랍어 διακονειν τραπεζαις는 ‘식탁에서 섬기는 것을 의미 한다.
2) 롬12:7의 은사 리스트에서 ‘섬기는 일’은 διακονια 이다. ‘구제하는 자’도 나온다. 고전 12:28절의 은사 리스트에는 ‘도와주는 것’(αντιλημφις)이 있다. 모두 ‘집사’직분에 해당되는 말이다.
3) 롬 16:1의 ‘διακονος'를, 한글 성경은 모두 ‘일꾼’으로 번역하고 있고 ‘집사’로 주를 달고 있다. 영어성경은 대체로 servant 로 번역하고, deacon 또는 deaconess 의 주를 달고 있으나, NRSV등은 deacon으로 번역하고 ‘minister'의 주를 달기도 했다.
4) 딤전3:9-10에, 집사의 자격으로,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을 것’, ’깨끗한 양심‘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들의 업무가 교회의 재정이나 구제 등 물질에 관계된 일을 수행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디디케(Didache)에 의하면(11:7) 2세기 중반까지도 예언자의 활동이 있었다.
6.)디다케, 순교자 저스틴, 유세비우스 등은 모두 거짓 예언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몬타누스주의(2세기)가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전승과 다른, 새로운 예언적 통찰을 주장하자, 교회는 ‘예언’에 대해서, 성서에 있는 예언만 참된 예언임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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