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골2.Q의 비밀 JC,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시며, 오직 그분만이 그림자의 몸(실체)이요 실재요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실제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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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2장  [85.구주를 생각만해도] [94.주예수보다더귀한것은없네]


@@라메드...말씀 가르침/배움으로 인해  진리말씀으로 구별됨 이루다(그분을 빼어닮은자 만들다--실제로 그분 살도록 만들다..).. [[엘로힘=여호와=루하]] <엘로힘אֱלֹהִים 의>요드=생명 사역 <여호와 יהוה 의>바브=인격/본성의 연합(시작)  <루하 ךוח 의>바브=주님을 머리삼은바 (나는 완전히 처리되어 죽고, 발아한 생명으로서) 그분과 완전한 연합 완성으로 하나된 영원생명 ...에트(את...Q의 속성) 에쳄(עצם...아인-체데-멤 나무...Q의 생명나무와 똑같이 만드심) 미슈파트 מִשְׁפָּט.(멤-쉰-페이-테트) =사사기/판관기.. 주관하사 넣어주심의 사역(미슈)으로써 입을 열어 말함 그대로 새겨넣음 **임(알렙-멤으로 이루어진 단어 : 창1:1-1:2까지 그대로 넣어주심) ==> 벤-아담(Q 아들...인자)만드심...Q께 이끄시는 분 JC.. 에트-네페쉬!!...굴복된자라야 복되다..=바라크!!  견해와 의견의 차이...견해는 취소 가능(속상함 없음), 그러나, 의견은 의지/억지로 관철되도록 강력하게 고집/제의함이니 거절시 속상하게됨..(자의적으로 행함이다)


((하나님을 앎이 알레프, 생명나무, 그분을 먹고 소화-흡수-동화되는 것이 베이트(엘로힘이신 그분 자신과 하나로서, 성전됨) -그분만 따라가면(김멜 = 하나이신 JC 그분 자신을 살아감...주님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진리-생명, 그 지도/내비이심))!!, 오직 [매순간 직관/직감을 열어주심따라..주님 붙들어 하나됨/신뢰하고 감사하며 발휘하는 믿음으로!! 상호 거함이 구원 목적인바, 주님 보시는 헌신 개념은 = 카프-요드(키) [그분이 공급하신바 구원의 선물, 즉 해방-자유-기쁨을 더욱더 누림 배우며, 곧 그분의 주권 안에 거함/주님이 주관하시도록 나를 맡겨드림으로써 이끄시는 주와 매 걸음마다 같이함.....자의적인 일하기를 바라심이 아니라..(속박되어 부담되서는 결코 안됨)] 거듭난 내 마음 드림 = 이것이!! JC의 마음(양심 포함) 품음 , 이것을 헌신으로 보고 계심... 억지 회개 강요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이것이 그리스도를 사는 비결이다.. 

[["그리스도"]], 그 뜻은 *1)히4:25의 케리스토스 그 단어로 표현하고 있음..그 의미는 목표!!...영Q의 적용하심으로써 (주님 머리삼음 인해) 영의 사역으로 Q을 새겨넣은바 그분의  인격이 됨 인해 기초-->토대-->보좌에 이르게 하신다는 의미.. *2)"하-메시아"는 우리안에 계시는 영, 곧 기름부음의 운행이자 움직임 .. 얘슈아 하메시아...아마르(알레프)-->쉐마르(쉰)까지 이루어짐 인해 마침내 쉰의 생명삶에 도달함을 의미...이 과정에 작동되는 것이 기름부음/신선한 생명인바 그영의 기름부음이 친히 하나-머리 되어 살아가심으로써 날마다 더욱더 새롭게 하시며 생활 활동하고 계심


..[5...키  예히 레바브켐 키르바드 하-마쉬아흐 야후슈아 6..아세르 아크 키 하야 비데무트 하엘로힘 로 하샤브 로 하솰랄 헤요토 솨베 렐로힘 7.키 임-히페쉬트 에트-아체모 바이레바쉬 데무트 에베드 바예히 도메 리베네이 아담 바이마체 비트쿠나토 케벤 아담 8. 바아쉐펠 에트-니페쑈 바이카나 아드-마베트 아드-미타트  하첼리바 9.알 켄 하게비호 하엘로힘 메오드 바이텐 로 셈 나알레 알-콜-셈  10. 아세르 베셈  야후슈아 티케라 콜-베레크 아세르 바샤마임 우바아레츠 우미타하트 라아레츠  11. 베콜 라숀 토데 키 아돈 야후슈아  바마쉬아흐 라케보드 엘로힘 하아브 12. 라켄 하비바이 카아세르 쉐마이템 리 베콜 에트 켄 로 비흐요티 에첼르켐 빌르바드 엘라 오드 요테르 아타 케세아니 라호크 미켐 티그우 리트슈아트 니페쑈테이켐 베이르아 우비르아다]


===성도의 영광 ::: 믿는 우리는 (Q 영광의 충만<또한, Q의 중심과 전체>이신 그리스도, 그 비밀의 영광의 풍성을 <구주 안에서 표현과 충만, 곧 체현되어 나타내셨고, 그것의 도달은 은혜와 진리 충만 + 은혜위에 은혜로>느끼며 경험한) Q의 자녀-상속자-제사장/왕들,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동반자임을 기억하라Q의 풍성, 그 안에는..이루 다 표현하기가 불가능하지만, Q의 생명-본성-기름 부음과 만유를 포함한 영과 함께, 또한 칭의-거룩-성화-변화-안위 등등이 모두 포함된다...이것은 지금도 <공개적인 주의 재림 이전에도, 내주하심 인해> 누림 가능하다!!...오직 미혹된 자는 이 비밀의 이상을 , 그 누림을 빼앗기고 탈취당할 수 있기에, (빗겨 나갔었다 하더라도 회개함으로써) 단지 <영광의 소망 그 자체이신>그리스도 그분만을 주목함 통해 그 비밀로 되돌아가야 한다. (묶여 고정된 풍선은 진정 자유하며 자유롭다!!)....믿는 그대와 연합된 영<주 영, 그 영>을 따라 행하라(갈5:16, 25, 롬8:4)


....##바울은 그리스도의 탁월성의 충만, 그 계시의 여러 방면을 그분의 인격으로  여겼는데, 그 여러 방면들이란 다음과 같다. .....<그분은 성도들의 분깃-보이지 않는 Q의 형상-모든 피조물 중에서 먼저 나신 분-(교회인)몸의 머리-시작(beginning)-죽은 자들 중에서 먼저 나신 분-Q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분-(Q의 아들들이 나타남을 통해) 만물이 화목하게 되고 회복되기를 기뻐하는 분> ==>이 객관적인 계시는 <그리스도를 각 성도 안에 분배>하는 Q의 청지기 사역을 통해서 주관적인 방법으로((="한 사람 사람마다 개인적인 접근과 적용을 통해서, 실지적으로")) 우리 안으로 사역되어야만 Q말씀(주님 뜻) 온전히 이룰 수 있음

......이 주관적인 사역은 바울에게 특별히 열어 보여주신 계시를 통하여 완전케 된 Q의 말씀, 그 말씀을 따라 Q의 말씀을 완성/성취하는 사역으로서, 이를 통해 객관적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메시야-기름부음)가 되시는 것임.....이 목적 달성을 위해 바울은 성도들이 그들 안으로 사역되어진 그리스도를 실지로 Q의 분량의 자람과 비례적으로 예비하신 정도까지 충만히 자라나고,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누리며 그분의 원하시는 바로 그 뜻 그대로 생명 성숙함이 이루어지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로 세워지도록>  수고하고 분투하고 필사적으로 애썼다...(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체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각 사람의 마음이 분냄이나 갈등-속 상함-손상 안에 남아 있어서는 결코 안되는데, ((그  상태에서는 그리스도가 멀리 서 계시는 방관자처럼 여겨지게 되고,  원맘하는 마음과 마음의 냉담함을 야기하고, 그분 체험함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린다))...그러므로 <블평-불만-쓰디쓴 마음으로, 퉁명스러운 말 내 뱉기전에!!....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절대 감사의 발휘하는 산 믿음의 태도로> 재빨리 자신의 마음의 지향을 주께로 향하고(ordinate affection) <그러한 난감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해도!! 그 기간 내내 살아 있는 믿음 발휘함과 함께 일절 오래참음과 견딤을 배우는 시간으로 삼고>, "모든 불쾌함-분냄-갈등 상황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 다 아시는 주님은 지금 나의 주님과의 교통을 그 주구도 방해할 수 없음을 아오니, 이제 <"나만 바라보거라" 말씀하심으로써 주 앞에서 오히려 내마음을 안돈시켜주사, 유쾌하도록 만들어 주셔서 주님을 더 새로이 더 깊이 누리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마음을 주께로 전환시키고 공급해 주시는 주님의 안위함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함이 옳다..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how great a struggle)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지금 바울이 보기에는, 세상 철학과 헛된 속임수, 교묘한 말로 꾀임 받고  (대적에게)사로잡혀 마음의 평정 잃고 쉼 없이 마음에 갈등 가득함 인해 잊고 있는 바, 이미 그분을 믿음(영접함) 통해 받은 영의 참 할례인 세례 통해 (그분과 하나되어) 옛 사람이 죽고 부활한 새 사람으로서 그 안에서 행하며 뿌리박히며 세움 받아서, (깨닫게 하시는 바) 모든 통치자-권세<부활로> 이기시고 그들에게 모든 얽어매임으로부터  참 자유 가져다 주신 그분이 바로 모든 통치자-권세의 머리시요 그분 안에 있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심따라 충만케 됨을 누리게 하심과)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참된 지혜와 지식의 보화 추구하고 누리게 하심 위해 <사랑 안에서 상호간에, 또한 그분과 함께 하나로 짜여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듦-완전한 하나됨의 교통과 조화 이루게 하셨음, 그런데 그 진리의 참된 지혜와 지식에서 떠나 있는  상태))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comforted, encouraged =인도자의 굳센 믿음 + 믿는 바 그 영적 지식에 대해  확신함 가운데서 일편단심/일사각오로 주 앙망함 통해, 평정 잃어 갈등 중인 사람를 소중히 여기며 품고 (격려-위로-지지하며 진정-평정 회복 되도록) 기다려 줄 때, 그 성도는 소중히 여김 받고 있음 깨닫고, (마음의 감정이 편안케 된 바)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되어 열리게 됨...이때 이타적 사랑 안에서 하나됨이 가능케 된다.>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knit together확실한<=온전한 확신이 있는> 이해(= 각성-납득된 마음의 생각)의 모든 풍성<=부요>함과 하나님의<=원전에서는, Q의 경륜의 **여기서, 경륜은 분배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안으로 역사해 넣으시기를 원하신다.>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한 산 지식에 이르도록> 하려 함이니

....Q의 비밀인 그리스도그분은 믿는 이의 영에 계시는, 우리의 참 생명-인격이신, <그의 영광을, 실지로 주관적 체험 거쳐 체득 가능한 실제적인 분으로서> Q의 충만의 체현,embodiment이시요, 생명 주는 영이시며, 그의 (비밀한)몸이 바로 교회이다/교회는 Q의 충만이신 그리스도의 비밀이요, 그분의 몸이다. 성도들 각자가 교회의 지체이다...골2:9, 요6:63, 고전15:45하, 고후3:17, 요14:16-18, 딤후4:22, 빌3:11, 고후13:13, 엡3:4, 14-19, 골3:10

....유대교 규례/관습-이방 철학-신비주의/금욕주의 등 세상 사조들의 교회내 침투로 인해 성도들 간에 마음 상함-의견 충돌로 인한 불만 유발-서로에 대해 완고하게 됨의 악순환 발생...((‘마음 상함’이란 <마치 갑자기 이유 없이 따귀 맞은 것 같은>심리적 상처를 입는 것을 이르는데, 이로 인해 열등감-개인적인 모욕감 느껴 원한-원망-불평-분열을 불러오고,  자존감을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내면이 불안정해지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복수할 마음을 품게 되기에, 연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는 사람의 영을 크게 강조하지만, 골로새서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더 강조한다....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함은 마음과 더 크게 관련된다...대개 정신적 질병 문제의 근원은 돈과 성에 대한 욕심<정욕과 탐심>이 근원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개 야망과 갈망으로 표출되며, 성취되거나 합당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때 생각이 쉽게 공격 받을 수 있다.

....생각이 어떤 야망-갈망-목표에  사로잡혀(기울어져) 있다면, 생각 반응은 다소 간에 비정상적이 되어 다른 이들과의 관계 문제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예를 들면, 마음에 있는 어떤 문제 때문에 내 생각이 <거기에 골몰해져서> 공격 받고 있다면,  쉽게 취약해져서 다른 이들에게 기대하는 바(미소로 인사하기나 함께 하기에서 제외되는 경우)에 대한 감정 반응에 있어서 괴롭게(무시 당한 것 같은 속상함으로) 느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인도자는 마땅히 변함 없는 친절함으로 너그러이 품고 중보함 안에서 기다려 주어야 함.

....또한 [Q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문제에 있어서]성도는 <다시는 (미온적 태도로 인해) 흔들림 없도록>인도자와 <이타적 사랑 안에서> 하나되어 일심으로 함께 영혼몸의 전존재로(마음-혼-생각-힘 다해..막12:30) 주 사랑하며 따르기를 잘 배워 훈련-실행하기를 힘씀으로써 그분에 대한 충만한 지식을 얻어야 함.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 탁월한 절대적 가치는 가장 높아서 그 어떤 철학도 그리스도와 비교 불가하다...(골로새 그리스도인들은 믿고 영접한 바, 그분께 대한 온전한 <체험적> 확신을 갖지 못했고, 그 추구함이 상대적- 미온적이었기에 흔들렸다)...마태복음과 요한 복음, 히브리서(특히 요한복음과 히브리서)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었음을 친히 주께서 말씀하고 계셨다. 

....[말씀의 빛 조명 아래서, 그 자신이 비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한 지식 추구]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는, 그분을 알고 깨닫는, 곧 참된 인식의 정도와 비례하는 법이다 (즉, 더 참되게 알고 인식할수록, 그만큼 더 참되게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이 열어주시는 데까지>우리는 계속해서 길이-너비-높이-깊이의 모든 차원에서 더욱 더 주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로 알 뿐 아니라 Q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서로 상호간에 마음이 고무되고 사랑 안에서 서로 하나로 연합하여, 충만한 확신이 있는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그분에 대한 충만한 지식에 이르도록 추구하여 알아가야 한다.. 

.....이 때, 동시에 무엇보다도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과 생각을 적셔주심 인해 내적 존재의 모든 부분이 <참되게 훈련되어>합당하게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바, 생각은 건전해지고-감정은 규제되며-의지는 복종적이 됨으로써 그분을 알아감에 대한 준비가 갖춤이 되며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영 안에 계신, <그 자신이 비밀이신 Q>, Q의 비밀인 그리스도<그리스도는 하늘 보좌에, 그리고 동시에 그대의 영 안에 살고 계신다>를 알기 위해 우리의 영을(영에는 양심-직감-교통의 기능들이 있다)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며, Q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영을 사용함, 이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을 열어드림으로써, 그 중심으로 전 존재 기울여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또한, 그대가 거듭난 사람으로서 주 예수를 참되게 믿는다면 절대적으로 그분을 사랑해야 하고,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갈망하며 기다리시는 그대로> 교회의 길을  택해야 마땅함의 <교회의 입장>에 대한 충만한 확,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충만한 지식(그 목적은 공급하기 위함이다)을 주께 구하여 시종일관 절대적으로 <흔들림 없이, 일사각오로, 주 성령을 따라> 주님의 열심으로 그 길로 행함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믿는 것(believe into)은 또한 영접하는(receive and welcome) 것, 이다> 그 안에서 행하되

....Q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생명 주는 것은 그 영이니(요6:62)..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고전6:17),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고후3ㅣ17)..그분 안에서 행하는 것 = 그 영을 좇아 행함..갈5:16>임.... 곧 살고, 행동하고, 처신하고, 우리의 존재를 그 안에서 갖는 것....곧 오늘날 좋은 땅은 우리 안에 거하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서 바로 그 영이심!! (롬, 고전후, 갈,빌..을 보라...확인할 수 있다)

....연합하여 하나된 그리스도, 곧 그 영에 우리의 생각을 두도록 하자..<롬8:6..*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For the mind set on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set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믿을 때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고후3:17)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 영 안에 거하여(딤후4:22),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범사에 깨어 기도함으로써> 영접한 그분을 삶에 적용하고 사용할 그 때, 성도 안에 뿌려진 씨앗(the seed)이신 그리스도는 (이 때 성도 그 자신도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과 인격 삼은, 생명력 충만한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음 통해 많은 열매 맺는 번식력을 가짐...또, 그리스도는 그분 안에 뿌리 박힐 바 우리의 유일한 흙, 땅의 흙임) 또한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힌 자인 성도의 분깃(땅의 수확)이 됨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건축 위함]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주관적인 그 믿음과 견고한 확신 안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참되게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한, 또한 저절로 교회 안에도 머물게 될 것이다....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초점-기초-입장-위치가 되셔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로 살아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옳고 성경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치 되는 것이라면 결코 허락해서는 안됨을 기억하라))

....믿음 안에 굳게 서는 방법은 <주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고 막힘 없는 교통 가운데 있을 때에만 가능하며> 감사함을 넘치게(exsuberant) 하는 것임...그러므로, 항기쉬기범감<살전5:16-18>을 기억하라...항상!! 과연 그대는 넘치는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지를 점검해 보라

....구약의 중심은, 좋은 땅에 지어진 도시, 그 안에 있는 성전임...곧, Q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이, 성전과 도시가 있는 좋은 땅이다!!

....<신8:7-10...*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아름다운 땅-골짜기-산, 시내-분천-샘(그 영), 밀-보리(대속과 부활 구주), 포도-무화과-석류-감람나무(성장성숙-산출의 그리스도), 꿀(삶의 생산 활동 통해 산출된, 맛보고 누림-영양분이신 그리스도), 돌-철-동(건축 재료이신 그리스도)....이 모든 것을 창조하사 있게 하시고, 쓰임새를 알게 하시며, 그 계시하시고 깨닫게 하신 대로 도모함 통해 그 안에 감추인 능과 힘을 나타내게 하시며, 서로 결합-연결하는 복합적 지식을 공급하심으로써, 그 효과를 누리게 하시는 분, 그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만유를 포함하시는 분, 더 나아가 만유의 실제이신 분<이 때 만유는 진정한, 유일한 참 실제이신 그분의 그림자이다....따라서 그리스도 누림이 어디서나 가능하다>을 볼 수 있어야 함... <그분 자체가 비밀(미스테리....시크릿이 아님)이신 풍성하신 하나님, 그분의 풍성(부요)은 충만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체현된 바 되었고, 이 충만함(이는 살아 생동하며 효능을 나타냄)을 그분과 하나된 우리에게 그대로 누리도록 내어주신 바 되셨음....성찬에 있어서도 성육신 이후 육체로서 영원 무궁히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음은 동일하다 !!...성찬식의 모든 요소에서 그리스도를, 그분이 친히 (고요히)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볼 수 있어야 넘치는 감사 드림의 삶 영위케 됨을 명심하라..

....***규례법에 수록된 항목들로서, 먹고 마시는 것은 (만족-활력 얻게 하는...매일의) 음식과 음료, 절기는<기쁨과 누림을 의미하는>연례 명절, 월삭은 <어둠 가운데서 빛으로 새롭게 시작함...월례적>, 안식일은 <완성과 안식...주간적>을 의미 ......이 모든 항목들과 율법 안의 의식들은 (마치 사람의 몸의 그림자 처럼) 복음 안에 있는 실제의 그림자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복음의 실제이다.)) 복음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적극적인 것)들은 주님께 속한 것이다....바로 이것에 대해서 골로새서는 Q의 경륜의 초점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관점을 좀 더 확장해 보자.... 일상 생활 환경에 있는 많은 것들 또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음식도 그림자이지 참 음식이 아니요(참 음식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또한 참 음료이시다. 우리가 입는 옷도 또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진실로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워주고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분, 그리스도는 참 옷이다) ... 또한 모든 일상 가운데서 모든 적극적인 것들마다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  그분은 우리의 <참> 호흡이시며 우리의 <참> 만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산에 따르면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통찰하기를 연습-훈련-실행하자)).. 교리나 의견은 (겉치레요 그림자이기에) 잊어버리고 오직 중요한 바, 그리스도만을 붙들라....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또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 따지고 들지 말라(시간 낭비다)....교회 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다만 한가지 요인, 하나의 동기, 하나의 요소, 하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가져야 한다. (그 외의 것은 아무래도 좋다....예를 들자면, 빵 먹는데, 손가락으로 목든지 포크로 먹든지, 젓가락으로 먹든지 그것을 먹고 만족하며 활력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엡4:6..*6.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보여주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시크릿<신비>, 보여주는 것을 보아도 <믿음으로 보는, 영적 눈이 닫혀져 있기에 깨달음이 없어서>모르는 것을 미스테리<비밀>라 함(마13:11-12).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모든 것이란 찬찬히  따져 들어가 보면 결국 (그리스도와 하나 된 믿는 이들을 <철학과 속임수를 통해> 미혹하여 혼동-혼란-혼돈케 함으로써 하나 되어 계신 주로 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하여 영혼을 탈취하고 멸절로 이끌어 가려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름일 뿐이다...거듭나기 전의 옛 사람에게는 사회 질서 유지 위해 필요했던 것이나 거듭난 이에게는 오히려  <차선책>조차 될 수 없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께서 참되게 알고 깨닫게 하신 바 그대로 믿는 이들이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각자의 머리요, 그 자신은 그분의 몸이기에)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그들의 중재자이자 Q으로서 누림의 상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율법 계명-규례 법조문과 (안식일을 포함한)의식 준수를 통한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과 의>를 강조하는 유대 종교에 대해서는 시대 경륜에 따라 십자가로 폐해졌음을 이미 보았다....(본래, Q은 그분을 믿고 사랑함의<경외함>이 최우선적으로 세워질 때라야 율법의 제반 조문들은 저절로 성취될 것을 아셨고, 결혼 기념의 언약으로 율법을 주신 바였음을 기억하라..그러나, 이제 신약 경륜 안에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과정을 거쳐>믿는 이의 영에 오셔서 친히 내주하고 계시기에, 그 영을 따라 살아감 통해 저절로 모든 계명은 이루어지게 하고 계신다.)

....천사 숭배하기를 강조하는 이단적 교사들은 성도들 자신이 Q을 직접적으로 경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겸손을 보여야 한다 강조하여 겸손과 천사 숭배라는 요소와 영역 안에서 그분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상을 탈취하였다.(오늘날 가톨릭의 병폐 또한 여전히 그러하다)

.....영지주의 추종자들은 보통, (믿는이들에게 대해서도 그것을 강조하는데), 육체는 타락-탐욕으로 추악하고, 영만 선하다는 이원론적 이분법을 극구 강조하면서 <극단적 금욕주의 행태를 취하여> 의도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곤 하였다.  

.....어떤 영지주의 이단에 속한 자들은, 사람이란 그 누구도 너무 비천해서 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사실적으로 믿고 영접한 자라 해도 여전히 아직은 정욕과 탐심의 악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 주장하며, (중재자 없이 Q을 직접 경배하려는 담대함은 교만의 표시이고, 그런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거룩하고 순수하신 Q을 직접적으로 경배할 수는 없다 하며) 자기 격하의 한 형태인 <일부러 겸손함 = 자기 비하 또는 자기 격하>인 겸손의 과시로, 그리고 또한 천사 숭배로 미혹되게 하였다. 

.....또한 신비주의((골로새서가 쓰일 당시 신비주의는 영지주의 + 금욕주의 + 천사 숭배 형태였음)) 그룹에 속한 어떤 이들은, 육체의 생각을 좇아 환상 보기를 추구하며, 그것을 자랑하며 현실 도피의 도피처로 삼는 몽상가들로서, 대부분 육체의 생각을 좇아서 보게 된 바....어떤 이들은 심지어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엑스터시(황홀경)에 들기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 (물론, 주님께서 친히 열어 보여주실 바, 주님의 뜻 따라 어찌 일하실 것인지에 대한 이상 보여주시기를 구함은 옳다) ..간혹 오순절파 중에도, 주님 자신이 아닌, <주님이 일깨워 Q의 일하심에 대한 격려로 보여 주시는 이상으로서의 Vision이 아닌> 환상 보기를 극도로 추구하고, 그 경험한 바 환상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며, 몰아지경에 들어가 입신하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는 우선 순위가 뒤바뀐,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9.  그 안에는 신성<=그리스도의 신격, Deity of Christ>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성육신 이후로 영원 무궁히>거하시고

....여기의 육체 =그리스도가 그분의 인성 안에서 입으신 물리적인 몸

10.  너희도 그 안에서 <너희와 연합한 하나 되신 그리스도께서 Q의 모든 충만이신 것처럼>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14, 15에 보여주시는 두 이단 처리됨의 근거임))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졌기에, 주님과 동일시 되며, 주님과 하나이다.

....그 결과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과 모든 소유가 우리에게 속하며 그분이 체험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가 된다. 더욱이 우리는 주님과 하나이므로, 우리는 주님이 이르시고 얻으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에 참여한다...그러므로 자신의 처지와 감정상태를 한탄하며 비관하지 말고 <그대가 거하는 바, 측량할 수 없는 풍성과 충만-온전함-완전함이신> 주님께로 눈을 돌리라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풍성-부요-충만하심이 이미 실지로 그대의 것임을 선포하라...기대하고-기다리며-그분의 인도따라 실행함 안에서 하루 하루 감사하라

<고전1: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But by His doing you are in Christ Jesus, who became to us wisdom from God, and righteousness and sanctification, and redemption,>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즉, 성육신하여 오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그분 안에서 거듭나서 이미 두 번째로 살고 있는 자들임...그러므로, 주님과 믿는 이 사이에서 중간에서 중개하는 중재자로서 천사를 숭배하는, 천사 숭배가 필요없음

....이미 그리스도의 할례<육적인 몸을 벗고-끝내고-폐기하여 던져버림, 이에서 더 나아가 Q의 역사를 믿음으로 주와 함께 일으키심 받아 거룩한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기에 구태여 <육신의 정욕과 탐욕을 끊으려 자기 몸을 가혹하게 다루며, 맛 없는 음식 골라 먹음의>금욕주의를 실행할 필요가 없다.

((Q의 구원 경륜..골2:13-15, 18, 20-22, 엡2:5, 15...Q의 구원 경륜에는 세 가지가 함께 포함됨....*첫째 방면. :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둘째 방면 : 의문의 율법을 폐하심 *셋째 방면 : 악한 천사의 권세를 벗겨버리심.))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율법을 못 박으셨을 뿐 아니라> Q과 그리스도가 <그분께 대해 불만 품고 그분의 일을 그만두게 하려 전쟁 일으켜 방해-대항하는, 떼거지로 몰려들어 달려들고 짓누르는, 성가신  악한 정사-권세들을 처리-정복하고 벗어버리시고, 승리하셨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부끄럼 당하게 하시기 위해>얼마나 바쁘게 움직이셨는지  기억하라...오늘날, Q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곧 임마누엘의> 목적은, [심판하시기 위함이나 죄를 처리하시기 위함이 아니고...이것들은 다 지나갔다] 오직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생명을 분배하심으로써 우리를 소생시키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는 Q의 참 아들 만들기 위함이다..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죄로 인해 영이>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거룩한 생명으로>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안식일 준수를 포함한 모든 규례로 이루어진 율법 조문들>으로 쓴 증서<=성문법>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이리하여 의문에 속한 계명인 율법을 폐하셨음....유대교 규례와  의식 준수 강요하는 이단을 처리하심]

15.  <악한 천사들인>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제하여 버리심으로] 드러내어<=발가벗겨 그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공개 수치를 당하도록 전시한다는 의미>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로써 천사 숭배 이단 역시 처리하심]

....[정사-권세-능력-어두움의 세상 주관자-하늘의 악한 영(사탄)], 이 모든 사탄과 그 악한 영적 체계의 존재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적대적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무장 해제 당하였다.....이것은 특히, 참되게 믿는이마다에게 주신, [확신-선포-주장-명령함으로써 실지로 작동되는] JC이름의 권세이다.

....Q이 율법과 천사들을 (과거에는) 사용하셨으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경륜 안에는 천사들의 설 지위/자리가 전혀 없음...모든 믿는 자마다 (섬기는) 천사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 천사들은 Q의 구원 안에서 분깃이 없음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이루어진(그분이 친히 거치신 과정과 성취하신) 모든 것 하나하나마다 우리의 믿음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인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시기에 우리의 것으로 체험 가능하게 되었다(벧전1:3).....[거듭난, 참되게 믿는 이, JC이름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구태여 사탄 조직 체계를 반드시 철저히 분석하여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또한 믿는이마다에게 있어서도 JC와 하나되어 동시에!! 십자가로 이겼음을 참되게 믿고 붙든다면!!)) 아마도, 결코 두려움 없이!! 사탄 마귀 조직 체계와 작동 명령 하달 루트를 알아두는 것은, 세상과 불신자들에 대한 중보와 중재 기도를 위해서는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으리라고 보여진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전통-규례-절기-의식 들)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후에 땅에 임하시어 나타날 바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함(=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구약에서 제시된 그 모든 것들의 참 본체, 곧 실제적 몸(실체)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모든 절기, 의식과 의례의 본질과 본체이시며, 그의 몸인 교회 또한 그분의 참된 소유임)

....모든  적극적(긍정적)인 것들, 적극적 사람들의 실제(본질적 참 정체)이신 그리스도 ::: 참 태양, 참 공기, 참 음료, 참 음식, 참된 꽃, 참된 나무(--참 사과나무, 참 감람나무, 참 무화과 나무)//더 크신 솔로몬, 더 크신 요나, 모세 보다, 엘리야 보다 더 큰 이....바로 이 그리스도가 그림자들의 참 본체와 의미 되심을 깨닫게 하사 그분을 누리게 하신다.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volutary humility..이에 비해 그리스도의 참 겸손은 둘로스의 비하 humility로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함>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유대주의자/거짓교사-천사숭배자들...즉 사이비 이단)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그리스도> 붙들지<그안으로 믿어들어가 하나되어 그분의 공급하시는 생명과 모든  것으로 합당히 섬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직접..그 어떤 중개가 필요 없이>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율법과 천사들이 제거된 뒤에 남아 있는 모든 적극적인 것들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하늘들-태양-달-별-음식-음료 모두 그분의 그림자요 표상이며, 그리스도야말로 그림자의 몸이며 실체이시다.

....Q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붙듬 인해> 직접 머리와 그의 몸이 마디(몸의 공급 위함)와 힘줄(지체들을 연합시킴)로 공급(하심)을 얻고 연합하여 그 결과 Q의 증가로 자라기를 원하심.....Q의 경륜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통일함으로써  그리스도로 하여금 만물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요((그리스도의 이름 부름 안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만물 위에, 만유 안에서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시는 참 실체요 실제이신. 살아 생동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바로 그분을 기뻐하며 누림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신다))....<골3:10...*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바울의 계시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 몸을 보호하며 건축하는 것으로, 교회 생활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보존될 필요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보호 받고 건축될 것이다.

.....((물론, 주님의 인도하시는 한 방법으로서, 지금도 믿는이에게 베풀어 주시는 꿈-환상-직통 계시는 그 언제라도 있을 수 있지만 , 곰곰이 생각해 보라, 바울이 과연 자기의 본 환상때문에 오로지 거기에 빠져들어 갔었던가? 아니, 그는 가능한한 제3자적 입장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그 의미를 분명히 알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내세워 자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 더 주님 말씀 안에 머무르기를 힘썼다....또한, 분명히 해 둘 바는, 주 안의 믿는 이로서 다른 형제나 자매가 그대에 대해서 어떤 꿈을 꾸었다거나, 말씀의 직통 계시를 받았다거나, 환상을 통해 알게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가 보고들은 바 그 의미를 그 사람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 직접 주께 나아가 그 내용을 알게 해 주시도록 구함이 옳을 것이다.!!...바울은 그리했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고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언에 대해 바르게 판단하고 감수하며 나아감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 사람.

...<골3:10-11..새 사람((그 본질과 요소가 그리스도인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의문>에 순종하느냐 [=스스로를 의문화 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소비하고는> 없어지리라<=부패=파괴>)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Q의 경륜 안에는 절대적으로 오직 한 인격<그리스도>과 한 길<십자가>만 있으며,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공급해 주고 계심을 주의하라.....한 인격은 뛰어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시며, 한 길은 십자가이다.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한 분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그분은 Q이시며, 사람이시며,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적극적인(매일의 모든 삶에 활력과 만족 주며 그분에 이르기까지 성장 성숙케 하는) 것들의 실제이다. (이 때 적극적인 모든 것들은 실체<본질적-근원인 몸. 본체>이자 실제<표현과 체현>이신 그분의 그림자이다)  Q은 이 놀라운 분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의 구원이 되게 하셨다. 골로새서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 되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Q의 의도는 우리에게 수천 가지 항목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인격, 곧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자로 하여금 몸, 곧 실제이신 그분의 대치물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실제 대신 그림자를 취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한 인격인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이고 한 길인 십자가는 Q의 행정(경륜)의 중심이다. Q은 십자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십자가로 모든 것을 다루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주의 초점인 것과 같이 심자가는 Q의 행정의 중심이다.  Q은 십자가로써 우주 안의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처리하셨다. 그 뿐 아니라 Q은 여전히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 금욕주의에 대비됨을 분명히 볼 수 있고 또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육체의 방종을 억제하려고 몸을 심하게 다루고 학대하는 금욕주의의 여지가 전혀 없다. (오히려 참되게 믿는이들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항상 넘치는 기쁨으로 기뻐하는 참 자유인들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된 것들은 의문의 율법들과, 바로 세상의 모든 초등 학문들이었다. 그러하기에, 믿는 우리는 더 이상 그로 인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씀 먹음으로써, 그 영을 따라) 그리스도를 산다. 

....(의문의 율법은 Q이 주신 바로되 몽학 교사로서의 역할만을 할 수 있었기에, 이 마저 십자가에서 처리하셨고, 이에 더하여 세상의 모든 초등 학문들이란 소위 모든~이즘으로 명명되는, 타락한 인간이 고안해 낸, 사회/세상에서 실행된 초보적 원칙들로서, 세상은 영적 측면에서 볼 때 그 정체는 사탄의 도구인, 사탄을 위하는 체계이다).  

.....골2:14-15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그 때 Q과 그리스도는 함께 역사하고 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당하면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구속을 성취하기 위해 역사하고 계셨다. 그리고 Q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여 제 길(곧 생명의 십자가를 사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의문의 중서를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써 (지워) 도말하는 역사를 하셨다. 그 때, 악한 정사와 권세들은 Q과 그리스도가 행하고 계셨던 것을 방해하기 위해 몰려들어  이른바 선과 악의 대 쟁투가 <십자가 상에서> 치러졌으나, Q은 그들을 이기시고 <포로로 잡은> 그들의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적나라하게 벗겨 드러내어 전시하심으로써 그들을 극도로 부끄럽게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Q의 영원한, 중심적인, 유일한 길이 되었다. (따라서, 십자가는 생명이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최고-최상의 길과 방식이다).... 이렇게 교차로의 교차점을 반드시 지나가야만 목적지를 향해 멀리 갈 수 있다...새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까지 주님과의 동행 안에서 매일 매일 십자가를 통과하도록 하라

....기억하라. 한 새 사람인  교회, 그리고 교회의 모든 지체인 성도들, ("만유"라는 단어는 새 사람을 구성하는 지체들을 의미한다..골3:11) 오늘날, 그리스도는 <성육신-십자가-장사 지냄-부활-승천-강림의 모든 과정 거치신> 그 영으로서, 만유 안에-만유 위에 계시며, 만유를 포함하므로, 사실상 그분이 새 사람이시요, 동시에 몸된 교회와 지체인 성도들 각자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오직 그 영에 마음 중심을 열어드림으로써 그분이 그대의 영-혼-몸 전 존재를 적시며 내적 영역의 모든 곳을 남김 없이-막힘 없이 흐르며 역사하도록  허용해드림으로써 새롭게 창조함 받은 새 사람<엡4:24>이 오도록, 새롭게 하심을 받도록 하라<골3:10)...그 순서는 Q의 형상을 따라(형상은 그분의 표현과 충만을 말한다..골1:15) 충만한 지식에까지 <생각과 이해가>새로와 지고, 이로써 비례적으로 새롭고 확장되고 깊어진 <합당한 사랑의> 감정과 정서를 발휘하며,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을 따르며, 살고, 그분을 자라게하고, 산출하기러 결심하기에 이르러야 한다. 

.... 잠자리에 들 때 <영혼몸과 그에 속한 모든 것 곧, 지성(생각과 경험들)-감성(감정과 느낌)-의지 등을 다 포함하여..모든 문제들, 소극적-천연적인 것들, 되스러운 것들 등등>그대 자신의 모든 것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라..(십자가를 적용하는 것이란, 주 안에서 돌아봄 인해 발견된 바, 곧 참 생명 주님께 속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십자가 교차점에 서 계신 주께 처리하시도록 내어드리고 참되게 진리 안에서 죽었음/제해졌음을 선포함과 자신을 주께 맡겨드림이다) ....그리할 때마다 진정 경험하게 되리라.. (그 시간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얼마나 그 쉼이 달콤한지.....새 아침 기상 때, 부활 생명의 새 사람으로서 부활 안에서 상쾌함과 기쁨으로 깨어나고, 참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자 중심이신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생명 에너지 충만함을 누릴 수 있게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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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ssians 2  Amplified Bible

==You Are Built Up in Christ

1 For I want you to know how great a struggle I have for you and for those [believers] at [a]Laodicea, and for all who [like yourselves] have never seen me face to face. 

2 [For my hope is] that their hearts may be encouraged as they are knit together in [unselfish] [b]love, so that they may have all the riches that come from the full assurance of understanding [the joy of salvation], resulting in a true [and more intimate] knowledge of the [c]mystery of God, that is, Christ, 

3 in whom are hidde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regarding the word and purposes of God]. 

4 I say this so that no one will deceive you with persuasive [but thoroughly deceptive] arguments. 

5 For even though I am absent [from you] in body, nevertheless I am with you in spirit, [d]delighted to see your good discipline [as you stand shoulder to shoulder and form a solid front] and to see the stability of your faith in Christ [your steadfast reliance on Him and your unwavering confidence in His power, wisdom, and goodness].

6 Therefore as you have received Christ Jesus the Lord, walk in [union with] Him [reflecting His character in the things you do and say—living lives that lead others away from sin], 

7 having been deeply rooted [in Him] and now being continually built up in Him and [becoming increasingly more] established [e]in your faith, just as you were taught, and overflowing in it with gratitude.

8 See to it that no one takes you captive through philosophy and empty deception [pseudo-intellectual babble], according to the tradition [and musings] of mere men, following the [f]elementary principles of this world, rather than following [the truth—the teachings of] Christ. 

9 For in Him all the fullness of Deity (the Godhead) dwells in bodily form [completely expressing the divine essence of God]. 

10 And in Him you have been made complete [achieving spiritual stature through Christ], and He is the head over all rule and authority [of every angelic and earthly power]. 

11 In Him you were also circumcised with a circumcision not made with hands, but by the [spiritual] circumcision of Christ in the stripping off of the body of the flesh [the sinful carnal nature], 

12 having been buried with Him in baptism and raised with Him [to a new life] through [your] faith in the working of God, [as displayed] when He raised Christ from the dead. 

13 When you were dead in your sins and in the uncircumcision of your flesh (worldliness, manner of life), God made you alive together with Christ, having [freely] forgiven us all our sins, 

14 having canceled out the [g]certificate of debt consisting of [h]legal demands [which were in force] against us and which were hostile to us. And this certificate He has set aside and completely removed by nailing it to the cross. 

15 When He had disarmed the rulers and authorities [those supernatural forces of evil operating against us], He made a public example of them [exhibiting them as captives in His triumphal procession], having triumphed over them through [i]the cross.

16 Therefore let no one judge you in regard to food and drink or in regard to [the observance of] a festival or a new moon or a Sabbath day. 

17 Such things are only a shadow of what is to come and they have only symbolic value; but the substance [the reality of what is foreshadowed] belongs to Christ. 

18 Let no one defraud you of your prize [your freedom in Christ and your salvation] by insisting on mock humility and the worship of angels, going into detail about visions [he claims] he has seen [to justify his authority], puffed up [in conceit] by his unspiritual mind, 

19 and not holding fast to the head [of the body, Jesus Christ], from whom the entire body, supplied and knit together by its joints and ligaments, grows with the growth [that can come only] from God.

20 If you have died with Christ to the [j]elementary principles of the world, why, as if you were still living in the world, do you submit to rules and regulations, such as, 

21 “Do not handle [this], do not taste [that], do not [even] touch!”? 

22 (these things all perish with use)—in accordance with the commandments and teachings of men. 

23 These practices indeed have the appearance [that popularly passes as that] of wisdom in self-made religion and mock humility and severe treatment of the body (asceticism), but are of no value against sinful indulgence [because they do not honor God].

==Footnotes

Colossians 2:1 Along with Colossae, Laodicea was located in the valley of the Lycus River and is one of the seven churches mentioned in Rev 1-3.

Colossians 2:2 See note 1:4.

Colossians 2:2 See note 1:26.

Colossians 2:5 Lit rejoicing and seeing.

Colossians 2:7 Or by.

Colossians 2:8 Perhaps a reference to ancient philosophies based on the belief that only the material world is real.

Colossians 2:14 This term refers to a debtor’s handwritten note acknowledging the debt.

Colossians 2:14 I.e. the requirements found in the Mosaic Law which were violated. The debt is the punishment due for the violator’s sins. Gentiles were never directly liable to the Law, but as Paul explains in Rom 2:12-16, God holds them responsible for violating the principles of the Law that they acknowledge of their own volition.

Colossians 2:15 Lit it or Him. 

Colossians 2:20 See note v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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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장 (개요)

본문의 내용은 살펴 보자.

Ⅰ. 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1-5).

Ⅱ. 그는 그의 관심을 다시 반복해서 말한다(5).

Ⅲ. 그는 유대인들 가운데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4,6,7) 그리고 이방의 철학에 대하여(8-12) 그들에게 경고한다.

Ⅳ.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말한다(13-15). 그리고

Ⅴ. 그들은 유대교화 시키려는 교사들과 천사 숭배를 소개하려는 자들에 대한 경고로써 결론을 맺는다(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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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관심(골 2:1-3)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그와 개인적인 면식이 없는 이들 골로새 교인들과 다른 교회들에 대해 갖는 큰 관심을 살필 수 있다. 

사도는 결코 골로새에 들린 일이 없었고 그리고 거기에 세워진 교회는 그가 설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그 교회가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인 것처럼 그는 그 교회를 친절히 돌아보았다(1절). 

그러므로 그는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바울은 그 교회에 대한 염려로 노심초사하였다. 

그는 그들로 인하여 일종의 고뇌를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여 끊임없는 염려와 두려움-노심초사하는-을 가졌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고통을 맛보신 주님을 따라 역시 타인을 위하여 괴로워하였다.

2. 우리는 이처럼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며 그리고 함께 교제를 나누어 본 적도 없는 교회들과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도 믿음과 소망과 거룩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멀리 있다 할지라도 서로 위하여 생각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염려할 수는 있다. 

그리고 육체로는 결코 보지 못한 그러한 자들도 우리가 천국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을 소망해야 한다. 그러나

Ⅰ. 사도가 그들에게 소망을 둔 내용.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었다(2절). 그가 염려한 것은 바로 그들의 영적 안녕[평강]이었다. 

그는 그들이 건강-부요하게 되며, 즐겁게 되며, 잘 되고, 번성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마음에 위안을 받기를" 바랐다. 

영혼의 잘됨은 최선, 최상의 잘됨이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염려해야 할 내용임을 기억하자. 

본문에서 우리는 영혼의 잘됨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기록을 대하게 된다.

1.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과 아버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까지 자랄 때 그리고 우리가 예수와 같이 진리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고 명료하고, 규칙적인 지식을 갖게 될 때, 우리 영혼이 잘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비밀을 이해한다"는 말에서 "비밀"은 이전에는 감추어졌었으나 이제는 아버지와 그리스도에 관하여 알려진 것을 이해한다는 말이거나 혹은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복음 안에서 그것을 나타내신 바대로 앞서 언급되었던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의 교회로 불러내신 비밀을 이해한다는 말이다. 

또한 "이해한다"는 말은 우리가 기계적으로 그것을 되풀이한다거나 또는 우리가 교리 문답에 의해서 그것을 배운 것처럼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암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밀을 꿰뚫고 들어가, 그것의 의미와 계획을 [주님이 의미하신 바로 그대로] 참되고 생생하게 파악한다는 뜻의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위하여 힘써 수고해야 할 것이며 그리함으로써 영혼이 잘 될 수 있게 된다.

2. 우리의 믿음이 이 비밀에 대한 충분한 확신과 담대히 시인할 수 있는 데까지 자랄 때 영혼이 잘 되고 강건하며 번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 이러한 상태는 복음의 위대한 진리에 대해 추호라도 의심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신실한 말씀이자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말씀으로 최대의 신뢰로써 포옹하며 확신에 거하며 그 증거를 확신하는 상태이다.

(2) 그 진리를 거리낌 없이 긍정하며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회상할 때마다 진리의 적들의 위협이나 폭력 앞에서도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고백하며 우리의 주님과 우리의 거룩한 경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켜 확신에 이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본문에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라고 불리운다. 위대한 지식과 강한 믿음은 영혼을 부요하게 만든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한 것이며 그리고 참된 부유함을 소유한 상태인 것이다(눅 12:21; 16:11; 약 2:5).

3. 우리의 영혼의 잘됨은 우리 영혼에 위로[위안]가 풍성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들의 마음의 위로[위안...견고한 심지로 하나님 경외하며 신뢰함 인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평강..사26장]를 받게 하려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영혼이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찰 때(롬 15:13), 그리고 영혼의 외부의 어떠한 어려움도 어지럽힐 수 없는 그러한 만족을 갖게 되며 모든 다른 위로가 실패할 때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을 때 영혼이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합 3:17, 18).

4.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갖는 친교가 친밀하면 할수록 영혼은 더욱 더 부요해진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들이 "사랑 안에서 [먼저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앙망하며 생생하게 한량없는 사랑과 생명을 공급하시는 그로 충만함 받고 그를 통해, 그의 지시따라 상호간에 하나됨으로써] 연합하기를" 바랐다. 

거룩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서로 연합시킨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은 우리의 위안에 기여한다. 

우리의 믿음이 강할수록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따뜻할수록 그 연합과 위안은 더 풍성해지기에 그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그는 그리스도의 존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3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었느니라" 하였고 "모든 충만이 그의 안에 거한다"(골 1:19)고도 말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지혜와 지식의 보고"로 특별히 언급한다. 그리스도께는 한량없는 지혜의 충만함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인류에게 나타내실 수 있었다. 

지혜의 보고는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데 이는 바로 믿는 우리를 위하여서 준비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을 얻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간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쌓어 놓으신 무한한 영적 보배들을 쓸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의 안에 숨겨진 보고로부터 보화를 끌어내야만 한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다"(고전 1:24, 30).

Ⅱ. 그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반복되어 말씀된다(5절). 

그러므로 그는 다시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질서...이것은 군대의 훈련을 통한 정연함과 굳건한 상호하나됨으로써 일사불란하게 실전을 준비함을 의미한다]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말한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우리는 몸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과도 영 안에서는 함께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교제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질서있고 규모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결코 그를 보지 못했고, 그들과 같이 있지 않았지만 그가 그들 가운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선한 행위를 기뻐하노라고 말한다.

2. 그리스도인들의 규모 있음과 견고함은 사역자들에게는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질서와 그들의 규모 있는[잘 훈련된 군대처럼 지시따라 목표 향해 일사불란, 질서정연, 굳건한 협동, 협력으로 하나된] 행위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변함없는 추종을 볼 때 기뻐한다.

3.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굳어지면 그만큼 우리의 전 생활 안에 보다 좋은 질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며 행하기 때문이다(고후 5:7; 히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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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취하여야 할 영광된 경륜(1)(골 2:4-12)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속이는 자들을 경고한다(4절). 

그는  "내가 이것을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또 8절에서 "어떤 사람이 너희를 노략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복음의 원리를 그릇되게 하려는 자들의 유혹하는 달콤한 말들로부터 그들은 보존하기 위하여 그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계시의 완전함에 대하여 강조한다. 

다음의 사실을 주의하자.

1. 사탄이 영혼을 노략하는 방법은 영혼을 기만함으로써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들을 속이고 나아가 이 속임수를 통해 영혼을 죽인다. "그는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옛 뱀이다"(고후 11:3). 

그가 우리의 단점과 어리석음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는 우리를 속일 수 없다.

2. 영혼을 노략하고자 노리는 사탄의 대리자들이 유혹하는 말로 자신의 참 모습을 은폐한다는 사실이다. 

유혹하는 말들의 위험스러움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자들이 속이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는 자들의 아침에 의해서 그리고 악의 주관자들과 행악자들의 그럴 듯한 외모가 거짓 속임들에 의해서 파멸당했던가!  

"그들은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한다"(롬 16:18). 그러므로 "너희는 유혹하는 말을 경계해야 하며 너희를 악에로 유혹하려는 자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목적하는 것은 너희를 노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잠언에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잠 1:10)고 하였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라.

Ⅰ. 유혹자들을 저지할 수 있는 효과 높은 방파제(6,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으라"고 한다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을 주의하자.

1.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고백을 통해서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즉 그를 그리스도로서 교회의 위대한 예언자로서 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에 의하여 예언자로서 또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 예수를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로서 그리고 자신을 죄사함의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죄와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로서 그리고 우리가 복종하고, 또 예속되어야 하는 주님 즉 주권자 혹은 왕으로서 영접해야 한다. 

"그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를 승인한다는 말이며 또한 우리의 생의 모든 문제에 그를 따라 산다는 말이며 우리의 것을 위하여 그는 우리의 생의 목적과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2.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이 해야 할 과제는 "그의 안에서 행하는"것이다. 

즉 그들의 행위들을 그들의 구주께서 제시한 원리에 따라 일치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구주와 맺은 그들의 약속과 일치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거나 우리를 그의 것이라고 수긍하였다면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교제를 지속시켜야 한다.

3.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행할수록 우리는 "믿음 안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며 세워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생활이야말로 훌륭한 신앙을 나타내는 최선의 증거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안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그의 안에서 뿌리박히게 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굳게 그의 안에서 뿌리내리게 되면 그만큼 우리는 더 밀접히 그의 안에서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으라"고 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먼저 그의 안에서 뿌리를 박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활력있는, 발휘하는 적극적 능동적 믿음으로 그와 연합해야 하며 진심으로 그와의 계약을 수긍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안에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가 가르침을 받은 바대로"라고 하였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교의의 법칙에 따라"라는 뜻이다. 

훌륭한 교육은 우리가 굳게 세움을 입는데 훌륭한 효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한다"(7절). 

믿음에 굳게 서되 그 안에서 풍성해야 하며 그리고 그것을 더욱 더 증진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감사함으로 이를 넘치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위안과 유익함을 얻는 길을 주어진 은혜에 대하여 더욱 감사하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진보에 감사함을 더해야 하며 또 우리에게 자비로써 주어진 모든 특권들과 성취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Ⅱ.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실에 대한 정당한 경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8절)

우리의 이성적인 기능을 고귀하게 활용하게 하며 또한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철학이 있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우리를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며 그리고 그의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여 준다. 

그러나 반면에 극악무도한, 헛되고 속이는 철학이 있다.

이것은 신앙을 왜곡시키며 인간의 지혜를 들어 하나님의 지혜와 대립하게 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즐겁게 하면서 한편 그들의 믿음을 파멸시킨다. 

우리에게 소용도 없고 또한 우리와 관계되지도 않는 초월적인 것들에 대한 그럴듯한 호기심에 의한 사변과 말 장난을 공허하고 속임수로 가득찬 지식의 유희에 불과한 것들이 그것이다. 

사도는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아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 뜻은 이교의 학문은 물론 유대인의 현학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장로들의 유전과 그리고 세상의 초등 학문들, 복음의 세계에서는 초보이며 입문에 불과한 의식과 계율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반면 이방인들은 자기들은 철학 원리들을 기독교의 원리들과 혼합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양쪽 모두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졌다. 

자기 신앙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세상 길로 가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서 돌아선 자들이다. 

여기서 속이는 자들은 특히 유대인 교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결부시켜 지속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그리스도 복음과 경쟁하고 그것을 대적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제 사도는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보여준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림자에 불과했던 모든 의식적 율법의 실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1) 그때 그들이 세키나(Shechinah) 혹은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체험하고 영광으로 여겼다면 우리도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말한다.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의 보좌를 덮었던 구름 속에서 그룹들 사이에 계셨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의 본성에 참여하시고 그리고 우리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시며,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선포하신 구속자 구주 안에 거한다. 

하나님의 그의 안에서 육체로 거하셨다. 이 말은 영에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몸으로 거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그림자와는 상치되는 몸으로써 거하신다는 말이다. 신성의 충만함은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셨고 상징적으로 거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기 때문이다.

(2) 계약을 인친 것으로써 할례를 그들이 가졌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은 것이다"(11절) 

이 할례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중생의 사건에 의한 할례이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인 할례 또는 그리스도인의 할례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9)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마다에게 실지로 분배되는 것이다. 그것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이다." 

또한 그것은 어떤 피조물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복된 영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영으로 난 자다"(요 3:5). 

또한 그것은 "중생의 씻음"이며 "성령의 새롭게 함이다"(딛 3:5). 

뿐만 아니라 그것은 "육체의 죄의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즉 단순한 외적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부인하고 우리의 생활을 개혁하는 데에 있다. 

또한 그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감이다"(벧전 3:21). 

그리고 우리가 어떤 한 가지 특수한 죄를 제거하는 것으로써는 충분치 않고 우리가 전체 죄의 몸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죄의 몸은 멸하여졌다"(롬 6:6)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셨고 또한 우리가 그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육체의 죄의 몸을 벗어버리는" 놀라운 은혜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식적인 율법에 있어서 온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다(10절). 

유대인의 율법은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첫 언약이 무흠하였다면 둘째 것은 요구할 일이 없었으리라"(히 8:7)하였고 그리고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오는 자들은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히 10:1). 

그러나 그것의 모든 결점이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의 하나님의 뜻의 계시와 죄를 위한 온전한 희생에 의하여 보충되었다. 

또한 "그는 모든 정사와 능력의 머리가 되심이다"라고 하였다. 

구약의 제사장직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됨같이 구약 시대에 뛰어난 정사와 능력이었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스스로 매우 크게 평가하는 다윗 왕국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님이시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능력들 곧 인간과 천사들의 으뜸이 되신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고 하였다.

2. 우리는 사도의 모든 활동 속에서 그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보게 된다(12절). 

"너희가 세례로 장사한 바 되고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그와 함께 장사되고 동시에 일으키심을 받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세례에 의해서 상징된다. 

그렇다고 장사되고 일으키심을 받은 것을 표현하는 세례 의식 혹은 상징 안에 특별한 가시적인 무엇이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못박히심 이상의 것이 성만찬식에서 어떤 가시적인 형태를 띠고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말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라고 말한다. 

우리의 세례에 의해서 의미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다. 이때 세례는 계약의 인침이 되며 죄에 대한 우리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그 의미는 의로운 삶 또는 새로워진 생명의 인침이요, 그 책임이 부과됨을 뜻하게 된다. 

세례로써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시며 그리고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 보장된다. 

그리고 그의 은혜로 인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해 살며 혹은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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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취하여야 할 영광된 경륜(2)(골 2:13-15)

사도는 여기서 유대인들보다 우월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표현한다. 이 특권들이란 매우 놀라운 것이다. 특권은 다음과 같다.

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특권이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셨다"(13)

죄의 상태는 영적 죽음의 상태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은 죄 가운데서 죽은 것이다. 

몸의 죽음이란 몸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듯이 영혼의 죽음은 영혼이 하나님과 거룩한 은혜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몸이 죽는다는 것은 몸이 부패하고 썩는다는 뜻인 것과 같이 죄란 영혼의 부패와 타락을 뜻한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듯이 상습적인 죄인은 도덕적으로 무능력하다

비록 그가 타고난 힘 혹은 이성적인 피조물로서의 힘을 가질 수는 있을지라도, 그가 신적인 생명 혹은 새롭게 된 본성을 부여받을 때까지는 그는 영적인 힘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자들은 주로 "악의 한가운데 있는" 이방 세계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골로새 교인들도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었다"(엡 2:11, 12). 

그들의 무할례 때문에 그들은 죄 안에서 죽어 있었다. 본문에서 무할례는 영적인 무할례 또는 본성의 부패로 이해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은 이 율법 안에서 죽었고 그리고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율법 안에서 죽었다함은 유죄 판결을 받은 악인이 사형 선고 아래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같은 뜻에서 한 말이다. 

또한 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죄인들은 율법의 판결 아래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같은 자들이 것이다.(요 3:18). 

죽은 상태라 함은 우리 육체의 무할례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성결되지 못한 마음이 본문에서 할례받지 못한 마음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상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가운데서 죽은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자신을 드리심이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서 제거하며 그리고 죄의 세력과 지배를 부순 것이다. 

또한 "그와 함께 생명을 얻었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그와 연합함으로 그리고 그와 일치하여 생활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의 죽음이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영혼의 소생이었던 것이다.

Ⅱ. 그를 통하여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특권이다. 

 "그가 우리에게서 모든 죄를 사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소생을 뜻하는 말이다. 사면을 받는 것은 범죄자에게는 생명을 얻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물론 그의 부활에 은혜를 입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같이 그가 우리의 의인(義認)을 위하여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롬 4:25)

Ⅲ. 우리를 거스려 사망에 처하도록 거스리던 모든 세력과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사망에 처하는] 증서들이 우리 앞에서 제거되어지는 특권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거스리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셨다"(14절).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1. 죄의 책임을 지고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책임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셨다는 말이다. 

율법의 저주는 벨사살의 벽에 나타난 손으로 기록한 글자와 같이 우리를 정죄하는 증서다. 

율법은 그 모든 내용을 계속 지키지 않는 모든 사람을 저주한다. 이것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증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파멸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고 그리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했을 때" 이것은 제거되었다(갈 3:13). 

그는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 채무를 말소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의 아버지여, 저희의 저주를 내게로 돌리소서"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를 거스리는 심판을 취소하고 폐기하시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율법의 저주도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부패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의 십자가에 의하여 못박혔다. 

우리가 주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를 볼 때 우리는 우리를 거스리는 증서가 도말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 또는 증서를 도말하셨다는 말은 의식적인 율법을 도말하셨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즉 "의식을 기록한 증서" 또는 의식적 제도 또는 "의식으로 이루어진 계명의 율법"(엡 2:15)을 도말하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멍에요, 이방인들에게는 장벽이었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그것을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즉 율법에 대한 채무를 말소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그것이 더 이상 자기들을 구속하지 못함을 보고 만족할 수 있게 하셨다. 

실체가 나타나면 그림자는 물러난다. 그것은 없어질 것이요(고후 3:13) 그리고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인 것이다"(히 8:13). 

이러한 여러 말씀들은 약정을 취소하는 고대의 방식들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즉 고대에는 약정을 폐할 때는 그 문서를 십자로 긋든가 혹은 그 패에 못 구멍을 뚫어서 표시로 삼았던 것이다.

Ⅳ. 그는 우리를 위하여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고 영광스런 승리를 얻으셨다[믿는이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승리하신 그 분의 이기심]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도는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힌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15절)고 말하였다. 

율법의 저주가 우리를 정죄하는 것같이 사탄의 세력도 우리를 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우리를 위해 값을 치루심으로 그의 공의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심판의 집행자인 사탄의 손으로부터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는 이제 위를 사로잡았던 자들을 사로잡으셨다."  

지옥은 모든 세력들과 악마는 죽으신 구속자에 의해서 정복되었고 무장해제되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첫 약속에 이 사실이 표시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으심은 뱀에게는 그의 머리가 부서지는 치명타가 되었다(창 3:15). 

얼마나 장엄하게 구약 성서는 이 사실을 표현하였는가? 좀 거리를 두고서 이 큰 광경을 바라보자. 

구속자는 죽음으로써 세상을 정복했다. 그의 가시관이 월계관으로 바뀐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는 그들을 명하시고 악마의 세력을 부수시었다." 

그리고 악마를 정복하여 무력하게 했으며 그리고 패배한 "그의 세력들을 밝히 드러내셨다."  

즉 그들에게 수치를 주시고자 천사와 사람들에게 그들을 내보이시었다. 

악마의 왕국은 주 예수에 의해서 주어진 것과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그들을 수레 바퀴에 묶고서 개선하셨다. 

적을 수레 바퀴에 묶는 것은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의 승리를 표시하는 관례이었다. 

또한 본문에 그가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즉 그가 그의 십자가로써 그리고 그의 죽음에 의해서 승리하셨다는 말이며 혹은 어떤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듯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승리하셨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포도 압축기를 혼자 밟았고 그리고 그 백성들 중에서는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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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와 교훈(골 2:16-23)

사도는 본장을 마땅히 해야 할 의무에 대한 권고로 끝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권고를 그의 앞의 강론으로부터 이끌어낸다.

Ⅰ. 여기에 기독교를 유대교화하려는 교사들이나 혹은 의식적인 율법의 멍에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우려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16절). 

모세의 율법에서의 대부분의 의식들은 먹는 것들과 날들을 분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마서 14장에 나타나는 바에 의하면 그 구분들을 유지하기를 찬성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도는 그리스도가 와서 그가 의식적인 율법을 취소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는 "아무도 그일들을 너희에게 부과하지 않도록 하라. 이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부가시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셨으니 너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그는 말씀한다. 

그 이유는 이것들이 "장래 일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 이기 때문이다(17절). 그것들이 장래 일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것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것들이 이제는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본문에 "그러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다. 즉 거기서 그림자가 비롯된 실체인 몸이 왔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복음의 모형들과 그림자에 불과한 의식적인 의문들을 계속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리고 복음의 나라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표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 아래에서 갖게 된 유익이 그들이 율법 아래에서 가졌던 이점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명심하자. 

그들은 그림자를 가졌었으나 우리는 실체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Ⅱ. 그는 이방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로서 천사들을 숭배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을 조심할 것을 그들에게 경고한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8절). 

천사들의 중재를 부탁하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기에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같이 여겨져 그것은 겸손의 형태로 간주되기 쉬웠다. 

그러나 그것이 겸손을 나타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겸손함이지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한 겸손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용납될 수 없었고 또한 신빙성 있는 것도 못되었다. 그것은 마땅히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할 존귀를 취하여 피조물에게 돌리는 행위였었다. 

게다가 이 행위가 근거되어진 개념들은 다만 인간의 발상(發想)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며 신적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것은 인간 이성의 교만스런 자만의 결과로써 사람들로 충분한 지식과 근거가 없이 어줍잖게 사건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게 하는 이성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보지 못한 사물들에 억지로 참견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였다"(18절)고 하였다(역주: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추었던 천사들의 계열과 그들 각각의 직무들을 나타내려는 무리한 시도를 초래케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외양으로는 겸손의 모습은 있었다 할지라도 원리에 있어서는 실제로 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육적인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런 관념들은 발전시켰으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 보다 자기들이 더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좋아했다. 교만은 크고 많은 오류와 부패들 그리고 심지어 많은 악한 행위들의 근원이다. 이 교만은 그래도 겉으로는 겸손한 척 자신을 과시한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들이다"(19절), 그들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인 그리스도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자들이다. 

교회의 지체를 중의 어느 것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의 중개자로 나서려고 한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최대의 경멸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붙잡은 손을 놓을 때 그들은 그들 곁에 있는 아무 것이나 붙잡게 되며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게 된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19절)고 사도는 말하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통치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교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머리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몸의 여려 지체들이 머리와 연합하여 거기에서 생명과 영양을 공급받는 것같이 그들도 마디와 힘줄로 그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은 성장하는 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라게 하심으로 자란다."  새로운 사람은 자란다. 그리고 은혜의 본질은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돌발적인 방해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라게 하심"으로 자란다. 즉 성장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의 성장은 있어지게 된다. 

또는 이 성장이란 관례적인 히브리 사상에 있어서와 같이 크고 그리고 풍성한 자라남이라고도 하겠다. 

에베소서에서는 이 하나님의 자라나게 하심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엡 3:19) 사도는 기원하였다. 

이와 유사한 말씀으로써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입음으로 그 몸을 자라게 한다"(엡 4:15, 16)고 한 말씀이 있다.

Ⅲ. 이러한 말씀을 한 후 사도는 다시 그들을 경고한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20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너희가 의식적인 율법의 의문들에 대하여 죽었다면 왜 너희가 그것들에 순종하는가? 

그 의문들은 이런 것들이니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할 것이라"(21,22절)고 하였다. 

율법 아래서는 죽은 자의 몸에 손을 대거나 우상에게 드려졌던 어떤 것에 접촉한다거나 혹은 어떤 금하여진 음식을 맛보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고 말함으로, 이러한 규정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하였다. 

이것들은 그것들을 지탱할 본질적인 아무런 가치도 자체 안에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그것들을 접촉하거나 먹던 자들도 그것들이 멸망하고,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부패시킬 뿐으로 인간들이 정한 규정과 유전에 불과한 아무 권위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으로 나타나는 지혜의 모양에 불과한 것"(23절)이라고 말한다. 

유대주의적 혼합주의자,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준수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그들이 그 이웃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점에 있어서는 적어도 그들이 옳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지혜의 모양 또는 단순한 창안 그리고 가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먹을 것들을 금하고 그들의 육체적 쾌락과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몸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참된 경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되 신령과 진정으로 하고 의식적인 습관으로 하지 말 것과 그리스도의 매개만을 통해서 하고 어떤 천사들의 매개를 통해서 예배하지 말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세의 율법의 의식적인 준수에서 자유롭게 되며 그리고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웠던 종의 멍에로부터 놓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2. 의문들에 대한 순종이나 혹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대해 인간들이 정한 것들은 복음의 자유와 해방과는 상반되는 것이요 비난 받을 요소들이라는 사실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종의 멍에를 지우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요, 그리스도께 옛 계명을 폐기하셨는데도, 의문에 속한 계명의 또 다른 율법을 도입해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엡 2:5).

3. 그러한 것들은 다만, 지혜의 모양만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복음의 약속들을 믿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참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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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제 2장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근처 루카스 평야에 있는 소아시아의 중요한 도시로 문화와 예술이 발달했고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도시이다. 바울은 이 도시에 자신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4:16 주석참조). 또한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라는 것은 바울이 직접 사역하지는 않았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로서 아마도 에바브라가 사역한 히에라볼리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Hendriksen, O'Brien).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힘쓰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나'(* )는 전투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바울이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를 위하여 벌인 전투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아고나'가 순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ohmeyer). (2) 혹자는 '아고나'가 믿음과 복음을 위한 투쟁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fitzner).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바울이 옥중에서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위하여 벌인 투쟁은 영적인 것으로서 중보 기도를 시사한다(O'Brien, Vaughan, Bruce). 당시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그리고 그 외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파괴하는 거짓 교훈들과 대적하는 상태였다. 그러기에 바울은 비록 자신이 설립하고 전도하지 않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로 영적 투쟁을 하고 있었다.
=====2:2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의 사도적 노고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인들 그리고 바울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임을 밝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 바울은 거짓 교훈들과 대적하여 투쟁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로 돕고 있음을 밝힘으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위안'은 슬픈 일을 당했거나 실의에 빠진 마음을 위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르지 못한 가르침에 의해 흔들리는 마음을 강하게 잡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힘을 얻어 거짓 교훈에 잘 대적하게 하기 위함이다(Vaughan).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 바울이 중보 기도를 통해 영적 투쟁을 하는 목적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이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교인들 모두가 온전히 서게 됨으로(3:14) 분열되지 않고 거짓 교훈에 강력하게 대항하게 하기 위함이다.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 '이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세오스'(*)는 통찰력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들이 통찰력을 가지고 거짓 교훈을 분별하여 대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온전히 서게 되기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였다(O'Brien, Hendriksen).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바울이 그들에게 간절히 원했던 궁극적인 목적이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 뮈스테이우 투 데우 크리스투'(* )에서 '투 뮈스테리우 투 데우'와 '크리스투'는 동격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비밀임을 시사한다(Vaughan, Bruce, O'Brien).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아는 것이 그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알리며 그것을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한다.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이 감추어져 있다. '지혜와 지식'은 같이 연결되어 나타난다(롬 11:33;고전 12:8). 
지혜는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통찰, 깨달음과] 이해를 가리키며 지식은 복음[진리]에 대한 [살아 생동하는 참생명 능력으로 발휘되어 나타나는, 참된]이해를 가리킨다(Carson). 
한편,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은 자신들이 초자연적 존재들과 연결되어서 타인보다 훨씬 우월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Vaughan). 그러한 거짓 교훈에 대해 바울은 모든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진술로 반박하며(4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참된]그리스도인들이 [성령안에서 말씀따라 추구하는 자마다] 알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감취어 있느니라'는 사람이 자력으로 찾아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드러나게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전에는 하나님의 비밀이었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이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밝히 드러났다(1:27;엡 1:9, Bruce).
=====2:4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 바울은 앞절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1-3절)이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인들 그리고 그 외에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려는 거짓 교사들을 대적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공교한 말'은 설득하려는 말로서 '속이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Vaughan, O'Brien, Lighfoot).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궤변을 진실처럼 가장하여 현혹시키고 있었다.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 너희와 함께 있어 - 본절은 비록 바울자신의 육신이 옥중에 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골로새 교인들과 같이 있을 수 없을지라도 영적으로는 그들이 당하는 고난에 동참하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로 애쓰고 있음을 시사한다.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 '규모'의 헬라어 '탁신'(* )은 군대에서 군인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짓된 진리로 교인들이 잘 훈련받은 군인들처럼 분열됨이나 흐트러짐 없이 강력하게 맞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굳은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레오마'(* )는 '확고하게 만들다'를 의미하는 '스테레오오'(*)에서 파생된 단어로 골로새 교인들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거짓교사들의 유혹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견실(堅實)하여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 중 소수만이 '공교한 말'에 현혹되어 그리스도를 버렸을 뿐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믿음을 견실하게 지키고 있음을 듣고 기뻐한다.
=====2:6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 본절은 골로새 교인들이 사도들과 같은 신앙의 선진들로부터 신앙의 내용을 전송받았음을 나타낸다. 골로새 교인들은 에바브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해 전송받았다(O'Brien). 골로새 교인들이 받아들인 기독교의 유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믿는 신앙이다.
@그 안에서 행하되 - '행하되'에 헬라어 '페리파테이테'(* )는 어떤 특별한 행위 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가리킨다(롬 14:15;고후 4:2;갈 5:16).
골로새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서 모든 미혹하는 것들을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살아 가야 한다.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 바울은 본절에서 신앙이 깊어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뿌리를 박으며'의 헬라어 '에르리조메노이'(* )는 식물을 비유한 것으로 완료형이다. 이 완료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되어진 것임을 시사한다(Vaughan). 골로새 교인들은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에 대한 신앙이 자리를 잡았다. 한편 '세움을 입어'의 헬라어 '에포이코도무메노이'(* )는 터위에 건물을 지어 올라가는 형상을 비유한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것은 이미 완료되어 뿌리를 박은 터 위에서 이제는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함을 시사한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서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교훈'은 에바브라가 전하여 준 것을 가리킨다(1:7). 골로새 교인들은 에바브라가 전하여 준 주 되신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가운데 머무를 뿐만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감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넘치게 하라'의 헬라어 '페릿슈온테스'(*)는 문자적으로 '강물이 제방을 넘쳐 흐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는 골로새 교인들의 감사 생활이 몸에 배어 일상화 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받은 교훈에 충실하고 믿음에 굳게 설 때 그들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치게 된다.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진리의 말씀인 복음과 대조 개념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골로새 교인들을 거짓 교훈으로 이탈시키려 하는 영지주의 철학을 가리킨다.
 '노략할까'의 헬라어 '쉴라고곤'(*)은 본래 전쟁에서 포로로 사로잡아 그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헛된 속임수와 철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O'Brien). 바울은 이러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한다.
@사람의 유전 - 이는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에게서 전해받은 유전인 사도적 전승(6절;1:7)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들이 꾸며낸 거짓 교훈을 가리킨다(막 7:8;벧전 1:18).
@세상의 초등학문 - '초등학문'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토이케이아'(*)는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과 마귀 혹은 종교적 지식의 미숙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O'Brien, 갈 4:3 주석참조)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훈에서 비롯된 '천사 숭배'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18절).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인들을 미혹한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거짓 영과 같은 것을 섬기는 데서 비롯된 우상숭배인 것이다.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 '신성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데오테토스'(*)는 고양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본질로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적절한 형상임을 시사한다(Meyer).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그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시다(1:19 주석참조).
@육체로 거하시고 - '거하시고'에 해당하는 '카토이케이'(* )는 현재 시상이다. 이 현재 시상은 '계속적으로 거주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성의 충만이 부활하시고 고양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Schweizer, O'Brien, Vaughan). 
한편 '육체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지 않았다는 가현설(假現設)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분명한 반박으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지니고 오셨음을 시사한다(Moule, 요 1:1,14).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즉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을 소유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성취된다(Carson, Vaughan, 요 1:16;엡 3:19).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어떤 것 즉 골로새 교인들이 당면한 거짓 교사들의 철학이나 모세의 율법 의식이나 이방인들이 섬기는 천사 숭배 같은 것들을 채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성의 충만하신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연합하시며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 본절은 바울이 천사 숭배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정사와 권세'는 당시 골로새 교회에 존재했던 거짓 교사들이 주장한 천사 계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Bruce). 그리스도는 이런 천사들의 '머리'가 되신다.
'머리'는 '통치'나 '다스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은 물론 천사들까지도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음을 시사한다(Vaughan, Bruce).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정사와 권세들'까지 창조하셨기 때문이다(1:16).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이다(창 17:10-14,23-27;출4:25;12:44-48;레 12:3). 구약에서 '육체적 할례'가 '마음의 할례'로 전이되어 윤리적 요소를 강조하였으나(신 10:16;렘 4:4;겔 44:7) '마음의 할례'가 '육체적 할례'를 대신하지 않았다(Bruce, O'Brien). 
바울도 본절에서 '손으로 행한 할례'가 '육체적 할례' 대신에 '손으로 행하지 않는 할례' 곧 '영적 할례'에 대해서 언급한다. 바울은 '영적 할례'를 두 가지로 정의한다.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본절의 '육적'에 '아우투'(* , '그의')를 삽입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le, Beasley-Murray).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셨을 때 즉 돌아가셨을 때 육적 몸이 벗겨진다. (2) 혹자는 본절이 세례와 관련된 것으로 세례를 통해 옛 본성 또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3:9;롬 6:6;7:24;갈 3:27, Lohse, O'Brien, Caird).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할례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킨다(Bruce, O'Brien). 그리스도께서 아기 때 받으신 할례는 예표에 불과하며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할례인 자신의 죽음심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적 할례를 시사한다(O'Brien, Schweizer).
=====2:12
본절은 앞서 언급한 '영적 할례'의 외적 표현이 세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다. 골로새 교인들이 경험한 세례는 단순한 의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동반한 것이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사실을 확신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갖고 있었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되며 죄의 종노릇에서 풀려나게 된다(롬 6:3).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다시 살리신 사실을 믿음으로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새 사람을 입으며 새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롬 6:4,11).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부활 사건이 미래에 일어날 일로 언급되었으나(3:1;엡 2:6) 본절에서 '쉬네게르데테'(* ,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는 부정과거로서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일임을 시사한다(Bruce).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 13-15절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이전의 인간은 죽은 상태이다. 이 죽음은 '범죄'와 '무할례'로 말미암은 것으로 '범죄'는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타락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의미하며(히6:6) '무할례'는 골로새 교인들이 과거에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던 상태였음을 시사한다(O'Brien, Carson). 이렇듯 골로새 교인들은 과거에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 과거 이방인으로서 무할례자였던 골로새 교인들은 이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11절)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진정한 할례당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현재 새 생명을 누리고 있다(12절).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 '사하시고'의 헬라어 '카리사메노스'(*)는 '카리스'(* , '은혜')에서 파생한 것으로 '은혜로 인정해 주다'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과거의 죄악이 사해졌다. 이러한 속죄는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Vaughan, Carson). 
한편 '너희'에서 '우리'로의 인칭 대명사 변화는 골로새 교인과 같이 유대인들은 물론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속죄 받았음을 시사한다(O'Brien).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 - '증서'의 헬라어 '케이로그라폰'(* )은 문자적으로 '손으로 쓴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세 가지로 해석된다. (1) 고소장(Scott). (2) 자술서(Barclay). (3) 채무증서(Bruce, Carson).  한편 '의문에서 쓴 증서'는 '규례나 율법적인 계명을 쓴 증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 범죄함으로 타락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죄의 결과를 규정함으로 대가를 치르어 형벌을 받아야 함을 선고하여서 인간을 공격한다(롬3:20).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괴롭히는 율법을 무효화시키셨다. 바울은 율법의 폐지를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1) '도말하시고'의 헬라어 '엑살레이프사스'(* )는 문자적으로 '문질러서 지우다'라는 의미로 증서에 기록된 내용들을 모두 지우고 새롭게 출발함을 뜻한다(O'Brien). (2)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의 헬라어 '에르켄 에크 투 메수 프로셀로사스 아우토 토 스타우로'(*)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사 제하여 버리시고'라는 의미이다.
'에르겐'은 완료형으로 율법을 제하신 효력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힘을 의미하여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제약이나 율법의 고발에 제한받지 않는다(Hendriksen, Carson, Bruce).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 '정사와 권세'는 적대적인 초자연적 존재들 즉 악한 천사들을 의미한다(10절;1:16;엡 6:12). 
한편 '벗어 버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뒤사메노스'(* )는 중간태이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정사와 권세의 옷을 벗어 버려 해방되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Lightfoot). 그러나 여기서의 중간태는 능동태 의미를 갖는 것으로(Robertson) 하나님께서 정사와 권세들의 세력을 쳐서 완전히 무장 해제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O'Brien, Vaughan).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드러내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데이그마티센'(* )은 '본보기로 보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정사와 권세들의 진정한 특성 즉 정체를 보여주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패배당해 무장 해제된 정사와 권세의 모습을 온 세상에 드러냄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심을 시사한다(Vaughan, O'Brien, Carson). 
한편 '승리하셨느니라'의 헬라어 '드리암뷰사스'(* )는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로마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적대 세력인 정사와 권세를 완전히 패배시켰음을 암시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정사와 권세들은 패배당하여 사로잡 포로가 되었고 그리스도인, 곧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승리자의 자리에 동참하게 된다.
=====2:16
@그러므로...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 '그러므로'는 앞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와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에의 참여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사실은 율법의 완전한 패배와 폐기를 의미한다. 
한편 '폄론하지'는 '판단하다'라는 의미로 율법이 완전히 폐기되었기 때문에 율법 규례의 준수 여부로 인해서 판단받아서는 안됨을 시사한다.
@먹고 마시는 것 - 이것은 단순히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음식에 대한 규정을 가리킨다기보다는(레 7:20-27;민 6:3) 골로새 교회의 거짓 교사들의 금욕주의적 경향을 나타낸다(막 7:19).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 본문은 유대인들의 성일(聖日)을 가리킨다. 이런 '성일'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특별한 날이며(LXX, 대상 23:31;대하 31:3;겔45:17) 율법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는 것으로 선택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O'Brien).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기시키셨기에 이러한 날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초등 학문에 불과한 것이다(갈 4:9-10).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날들의 준수 여부에 따라 판단받거나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거짓 교사들의 금욕주의와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다. 그러한 것들은 실체를 암시하는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상징하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히 8:5;10:1). 몸 즉 실체인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림자'들은 폐기되었다(NIV).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은 골로새 교회에 퍼져있던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고이다. '일부러 겸손함'은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켜며 '천사 숭배'는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영적 존재인 '천사'를 숭배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의 헛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 
거짓교사들은 인간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드리는 것은 교만한 것이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한 행위라고 주장하였다(Lightfoot, Bruce). 그래서 그들은 천사 숭배를 강요하였다. 
한편 '상을 빼았지'의 헬라어 '카타브라뷰에토'(* )는 '심판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브라뷰오'(* )에서 유래한 것으로 '...에 대해 불리한 판결을 하다' 혹은 '정죄하다'는 뜻을 갖는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거짓 교훈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정죄하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이다(Bruce, Hendriksen, Carson, Vaughan, O'Brein).
@저가 그 본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신비적인 체험에 근거하여서 그것을 자랑하였다(Bruce, Ramsay, Carson, Vaughan, O'Brien). 그들의 이러한 자랑은 '육체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육체의 마음'은 성령의 마음이나 생각과 반대되는 것으로(고전 2:14)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계시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이나 이성 혹은 욕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 골로새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망각한 자들로서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도리어 천사를 숭배하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 아니었다.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 몸은 곧 교회로서(엡 4:16) 교회의 구성원인 각 지체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긴밀히 연합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양육시킴으로 성장해 나간다(1:18,24;3:15;엡 1:22,23).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로 대치하여 자신들을 자랑하였다.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이다(11,12절). 그들은 옛 사람을 벗어버렸고 '세상의 초등 학문' 즉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의 구속에서 해방된 자들이다(8절;갈 4:3).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결별한 자들이며 새사람으로 태어난 자들이다.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 본절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현 위치를 자각, 파악하지 못하고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져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이다. 
'의문'은 하나님께서 이미 제하여 버리신 율법을 가리킨다(14절).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폐지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자처럼 거짓 교사의 미혹을 받아 율법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 본절은 '의문'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거짓 교사들은 세상적인 접촉과의 분리를 요구하며 외적인 금지 명령을 통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외적인 금욕을 통해서 내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할 때 만이 변화되며 성숙해져 갈 수 있다(Bruce, Caird). 
한편 세가지 금지명령 중 '붙잡지도'의 헬라어 '하프세'(* )에 대해 혹자는 성 생활에 관계된 것으로 보아 성 생활 금지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R.Leaney). 그러나 본서 내에서 성 생활을 금지시키는 내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하프세'를 성 생활과 관련시킬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성 생활과의 관계보다는 음식물과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O'Brien, Bruce).
=====2: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 본문의 괄호는 삽입구이다(Vaughan, Hendriksen, RSV). 본절은 앞서 언급된 음식물에 대한 금지 명령과 관계된 것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 썩어지는 것임을 뜻한다. 결국 '의문'이 요구하는 것들은 일시적이며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제한하거나 속박할 수 없다(Vaughan, Carson).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 본절은 사 29:13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사람의 계명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골로새 교인들을 현혹하는 각종 금욕주의적 금지명령들도 역시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8절).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 '자의적 숭배'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자기 생각대로 섬기는 것을 가리키고, '겸손'은 위선적인 겸손을 가리키며,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금욕주의를 의미한다(Bruce, Vaughan, Carson). 
의문에 쓰여져 있고 거짓 교사들이 요구하는 금지조항들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을 행하는 데는 탁월한 유익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항들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의 계명을 따른 행위에 불과하다.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 '육체'는 죄악된 본성을 가리킨다(갈 5:19-21). 또한 '좇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스모넨'(*)은 '만족' 혹은 '충만'이라는 의미로 '육체적인 탐닉'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절에서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이 요구했던 금지 조항들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 따라 나타나는 '육체적인 탐닉'을 제한하는 데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진술한다 (Vaughan, Moffatt, Bruce, Carson, NIV, RSV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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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비밀
두 종류의 비밀이 있다. 보여주지 않는 비밀과 보여주는 비밀이다. 
무슨 보여주는 그런 비밀도 있는가 하겠지만 그런 비밀이 *있*다. 
그런 비밀을 우리는 신비神祕라 일컫고 (가끔은 오의奧義 또는 비의秘義라 하기도 하고) 영자로는 mystery라 쓴다....여기에서 mysticism 신비주의란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그럼 보여 주지 않는 비밀은? 당연히 secret 이다. 
주민등록번호 등과 같은 개인정보, 로그인 암호, 유부남이나 유부녀의 애인, 아들은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고) 아버지만 아는 어머니의 여성성 등은 secret이고, 위대한 자연의 광대함과 심오함, 겉으로 보아서 알 수 없는 그 남자나 여자의 오묘한 마음 등은 mystery다.
secret의 본질은, 사실은, 막거나 가리거나 숨기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접근불가access denied’이다. 그리고 mystery의 별명은 ‘원더풀’이지만, 본질은 ‘이해불가 beyond understanding’이다. 인간의 무능력과 무지 無知 가 mystery의 한 축인 셈이다. secret은 깨고 싶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고 mystery는 알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보여주지 않는 비밀 – secret))
수많은 secret이 이 시대에 횡행하고 있지만 성경이 주목하는 secret은 오직 하나의 secret,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하나뿐이다. 이 secret의 목적은 그 열매를 보호하자는 것도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이 secret의 목적과 역할은 아담을 보호하고 아담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담의 으뜸 신분은 피조물이고, 버금 신분은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이며 버금딸림 신분은 왕인데 별명은 ‘참 좋았더라 very good’이다. 그런데, secret을 깬 아담은 ‘피조물됨’을 벗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죄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추가로 얻었고, 왕의 신분은 잃어버렸다.
##-아담의 선택
아담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가는 길과 그리로 가지 않는 길이다. 아담에게는 두 가지 먹거리가 있었다. 그 열매를 먹는 것과 그 열매는 먹지 않는 것이다. 그 두 길은 동시에 갈 수 없는 길이고 그 두 삶은 동시에 살 수 없는 삶이다.
아담 앞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었다. 하나는 금지된 것도 알아버리는 지식이고 하나는 금지된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식이다. 그 둘을 함께 알 수는 없다. 아담은 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나아갔고 뱉아 낼 수 없는 열매를 삼켰으며 금지된 것을 들여다 보았다.
비밀을 깨자 깨어진 것은 비밀이 아니라 관계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그리고, 모든 관계가 깨졌다. 금지된 것도 아는 신지식 advanced ideas 를 추구했지만 그가 얻은 새로운 지식은 부끄러움이었다.
주어진 빛 너머의 빛을 보고자 했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부끄러운 자신이었고, 선과 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리라 했더니 얻은 것은 하나님을 비롯하여 나 아닌 모든 타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었다. 아담은 secret을 풀고 죽음을 얻었다.
((보여주는 비밀 – mystery))
최고 최후의 mystery는 하나님이다(이하에서 그냥 비밀이라 하면 secret이 아니라 이 mystery를 말하는 것이다).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mystery인데(그래서 감취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아무리 펼쳐 보여주셔도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해 능력 안에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다 펼쳐 놓을 공간도 없다.
하나님이 mystery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즉 창조와 구원과 심판도 mystery이고, 그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mystery다.
mystery -하나님,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말씀 – 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그 둘은 mystery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과 말씀을, 즉 그 mystery를, 받아들인다는 뜻은 밑도 끝도 없는 하나님 앞에 고개와 마음을 숙인다는 뜻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secret을 지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 하신 말씀에는,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가 걸린 것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숙이는 표의 요구이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 이후에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판가름난다.
##비밀의 계시 – 어린 양의 죽음
하나님은 영원무궁히 비밀mystery로 남아 계시고 인간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신다(다보여 주실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다). 그것이 계시revelation이며 계시의 폭이다(계시의 폭이 하나님의 폭이 아니며 하나님의 폭이 계시의 폭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계심과 그 일하심 중에서 이 세계에 나타난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요, 계시 사건이다. 그리고 인간 이해 능력은 이 계시의 폭 안에 있다. 인간의 이해능력의 폭은 하나님의 계시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과 온 세계)의 생명도 그 안에 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사역인데 계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계시가 없으면 창조도 없고 (창조는 계시의 일환이다) 구원도 없고 심판도 없다. 계시가 창조로 나타났고, 구원과 심판도 계시를 따라서만 진행하고 성취된다.
아담의 불순종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창조에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아가지 않고, 창조에서 창조의 완성으로(그것을 무었으로 부르든)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하자 아담의 구원과 아담의 심판이 새로이 요청되었다. 아담의 구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담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아담의 창조가 실패로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요, 아담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기 때문이다.
구약 또는 성경 전체는 이 상호 배타적인 난제를 해소하시는 하나님의 사역/능력 즉 하나님의 깊은 mystery file이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mystery를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큰 얼개는 우리에게 누누히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셨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사람만 그것을 안다. 그것은 죄 없는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심판과 속죄와 구원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하시는 이 일의 기이함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 양의 죽음의 의미는 죄 없는 의인이 죄인의 죽음을 대신 감당하는 것이다. 대신 죽으면 덕분에 사는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하나님의 큰 나라는 이 방식으로 성취된다.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의 죽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큰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웃음- 이삭-은 꽃이 핀다. 요셉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야곱-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사망의 세계와 시간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결정적으로는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을 살린다. 구약은 이 하나님의 기이한 일 – 하나님의 큰 지혜 – 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증거하며, 어린 양의 피를 믿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구약은 이것을, 율법과 계명과 율례로, 역사로, 노래와 시로, 묵시와 예언으로,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으로 보여주었다.
##비밀의 계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 기이한 일하심 즉 구약에 나타난 비밀, 즉 구약의 계시는 장차 올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였다. 짐승의 죽음이 아담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동시에, 그 제물과 제사와 제사장이 다 임시적-시공의존적이었기 때문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친히 제물과 제사장과 제사를 다 준비하셔서 이 땅에 보내셨다. 이 하나님의 준비 – 여호와 이레 – 가 우리의 믿는 구주 예수시다.
그의 출신도 그의 출생도 죄가 개입되지 아니하였다. 여기까지는 아담과, 죄가 없이 났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남은 것은 순종이다.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죄 없이 죽으심으로 당신의 죽음이 값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예수의 죽음에서 진노를 멈추시고, 죽었던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구원을/창조를 이루셨다. 이 모든 일을 다 담당하신 예수를, 사도를 비롯한 신약 기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2:2)
##비유 – parables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의 깊은 것을 나타내시는 최고 최후의 계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사역은 하나님의 일과 사역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스스로를 계시하셔서 하나님의 mystery 즉 하나님의 재창조와 구원과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니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은 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셔서 이 비밀을 말씀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즉  mystery를 담은 이야기를 비유parable이라 하는데(metaphor, simile, metonymy, figurative, allegory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이 비유 역시 듣는 사람을 둘로 나누고, 나눌 뿐 아니라 나누어진 둘 사이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것이 비유의 목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유가 이런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비유가 담고 있는 내용 즉 하나님의 계시가 그런 기능과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in parables)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mystery)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10-16 …. 34)
##지혜의 잠언, 비유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1:7,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존중하여 따르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면 먹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나도 여호와와 같은 지식과 지위를 가지고 싶은 것을 부인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지혜다. 그리고 생명이다.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 외에는 달리 살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며,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그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 그 길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함께 은혜 얻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지혜이다. 짧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요, 길게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 서로 용서/용납하면서 –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이다. 잠언은 바로 이 이야기이다.
잠언proverbs은 히브리말로 마샬 משׁל(mashal) 인데, 시 49:4, 78:2; 겔 17:2, 20:49, 24:3 등에서, 한글로는 ‘비유’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proverb’ 또는 ‘parable’로 번역되었다. 이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고치면 παροιμία(paroimia) 또는 παραβολή(parobole)가 된다(라틴어로는 parabula가 된다). 바로 이 말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이다.
잠언과 율법서와 역사서와 시가와 묵시가 표현의 양식만 다르고 실상의 내용은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께서 ‘비유(=잠언)’가 아니면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어느 책이든지 공히,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일과, 구원을 이루셔서 의 없는 자들을 의의 나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은혜 입은 자들의 삶의 마땅한 방식을 이야기해 왔는데,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림자만 보면서 실상을 기다리던 모든 이의 소망을 다 채우셨다.
이 여호와 경외를, 즉 지혜를, 그리고 이웃 사랑을 예수 홀로 다 이루셨는데 그 이루신 곳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에서 여호와 경외와 이웃 사랑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마다 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성도의 지혜라 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22-24 ….. 30-31)
하나님(의 비밀mystery)은 깊은데/깊지만 , 우리의 왕이신 예수는 넉넉히 지혜로우셔서 하나님의 그 깊은 비밀을 다 살펴 아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비밀이 있으니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옛 아담과 같지 아니한 둘째 아담 예수께서, 높아지지 아니하고 낮아지심 – 순종 – 으로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받으셨는데, 우리는 그 예수 안에 있으니 예수는 하나님의 비밀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그리고 그 왕을 본받아 스스로 귀인이 되지 않는 것, 예수를 왕으로 섬겨 사는 것, 은혜 받은 백성들이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 즉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세상이 늘 보고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mystery다. 보여주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다. 성도마다 이 비밀을 가졌다. 당신은 나와 함께 이 비밀을 가졌는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잠 25:2-7; 참조 눅 14:7-11)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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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이르도록 은혜가 왕 노릇 == Great Reward At Christ's Excess
[은혜]란  우리의 분깃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바 되고 우리 영 안으로 분배된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 외에 어느 것도 우리에게 주려고 의도하지 않으심을 깨닫게 되리라...주님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말씀 안에서 볼 때,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것이 오직 분뇨일 뿐이요(빌3:8), 우리의 유일한 분깃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은혜란 우리의 참여와 누림을 위한 우리의 분깃이신 하나님이다.  
롬5:17에서 바울은 은혜 뿐만 아니라 은혜의 넘침을 받음에 대해 말한다. 은혜는 살아 있고 성장하기 때문에 넘친다. 
이 넘치는 은혜 역시 왕 노릇한다. 은혜는 생명 없는 요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이며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다.
로마서 5장 17절은, 『만일 한 사람의 범죄로 죽음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다면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함에 대해 말하는 성경 안의 유일한 구절이다. 17절에 이어서 21절은 『그것은 죄가 사망으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인하여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당신은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은혜가 왕 노릇한다는 관념은 갖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은혜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왕이다. 비록 본문에는 21절이 17절 뒤에 나오지만, 체험 안에서 그것은 17절 이전에 온다. 
21절에 따르면, 은혜는 영생에 이르도록 왕 노릇 하는데, 그것은  은혜의 왕 노릇이 영생을 낳음을 뜻한다. 
우리가 왕 노릇하게 되는 것은 이 영생 안에서이다.
승리와 이김에 관한 그리스도인 서적들은 많이 있으나,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에 관해 말하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천년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것에 관해 많은 책들이  저술되었다. 
그러나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은 장래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장래에 왕이 되는 것에 대한 약속들로 만족 할 수는 없다. 오늘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기를 갈망한다. 
5장 17절에서 바울은 천년 왕국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만일 이 문맥을 따라 이 구절들을 살펴 본다면, 바울이 우리의 현재 일상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을 찬양하자! 오늘도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들이 될 수 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문제를 더 탐구하기 전에 우리는 요한복음과 로마서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서는 요한복음의 연속이다. 요1:4절은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말하고, 같은 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 은혜와 실제가 충만하더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16절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첫 장에는 생명과 은혜가 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은 죄와 사망과 같은 소극적인 것들을 말하고 있다. 24절은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망 안에 남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34절에서 주님은 죄의 종이 되는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6절에서 주님은 자유케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죄와 사망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 즉 살아 계신 실제인 분에 의해 자유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는 생명, 은혜, 생명의 풍성, 죄, 사망, 예속(노예 상태),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됨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사항들이 로마서에서도 발견되는데, 여기에서 그것들에 관한 진리가 더욱 발전된다. 
요한복음과 로마서 둘 다 동일한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고 심지어 몇가지 동일한 용어까지도 사용하지만, 요한복음은 은혜의 왕 노릇이나 생명 안에서의 왕 노릇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로마서에서는 은혜와 생명에 관하여 <왕 노릇 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요한복음에서 다룬 것을 능가하는 괄목할 만한 발전이다. 
요한복음은 풍성하고 깊으며 생명의 풍성에 대해 말하지만 은혜의 왕 노릇이나 생명의 왕 노릇에 관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은혜 안에서, 또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자였기 때문에 로마서에서 그러한 것들을 말할 수 있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해서 천년 왕국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로마서 5장에서 우리는 은혜가 왕 노릇한다는 것과 은혜의 넘침을 받는 이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은혜가 영생에 이르도록 왕 노릇 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수 있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왕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것을 복종시키고 그 위에서 지배하는 것이다. 
또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통치권이나 왕국을 갖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승리하고 이기는 삶일 뿐만 아니라 왕의 삶, 즉 왕 노릇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왕들이 될 수 있다. 
==세 가지 대적들==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왕으로서 우리는, 이 때 반드시 다스려야 할 대적들은 자아 속에 거처를 정하는 죄-사망-사탄..<대개 혈기 부림과 통제 불능, 미워하고 능욕하며 저주함 등 소극적의 형태로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스려야 한다.....왕 노릇 함의 대상은 당신의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들이 결코 아니다....이것들이 정복되면, 우리의 성질과 자아조차 아름답게 될 것이다...우리는 우리 가족들이나 교회 안의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섬기는> 종들이지만, 죄-사망-사탄에 대해서는 왕들이다...롬8:2절에는 두 가지 대적들, 곧 죄와 사망이 있고, 16:20에는 사탄이 나온다..))
<막7:20-23....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20.  And He was saying, "That which proceeds out of the man, that is what defiles the man.  21.  "For from within, out of the heart of men, proceed the evil thoughts, fornications, thefts, murders, adulteries,  22.  deeds of coveting [and] wickedness, [as well as] deceit, sensuality, envy, slander, pride [and] foolishness.  23.  "All these evil things proceed from within and defile th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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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 대적]]
<롬5:12....*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Therefore just as through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through sin, death; and thus death passed on to all men because all have sinned >
만일 우리가 이런 이해를 가졌다면, 우리는 죄와 악의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죄가 우리 속에서 잠자고 있을 때 그것은 단지 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율법을 지킴으로 선을 행하려고 결심할 때마다 죄는 일어나서 악이 된다. 
악은 우리 속에서 활동하는 죄이다. 내주하는 죄가 활동하게 될 때마다 죄는 우리와 함께하는 악이 된다. 
죄는 내주하는 것이지만, 악은 현재 함께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 안에 거주하는 사탄이지만, 악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사탄이다. 그러므로 죄와 악이 다 사탄 자신이다. 
사탄이 우리 안에 거할 때에는 죄이고, 우리 안에서 활동할 때에는 악이다. 사탄과 죄와 악은 세 단계 안에 있는 한 가지를 나타낸다.
로마서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해 사망이 왔으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죄가 죽음을 갖고 왔음을 계시한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따르면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는 마귀이다. 이 두 구절은 죄와 사망이 사탄과 관계있음을 지적한다. 
사탄과 죄와 사망은 하나님의 세 대적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은 사망을 마지막 원수라고 말한다. :::: 이것을 이김은 형제를 사랑함 + 영에 둔 생각(영의 생각 =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함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에게는 유일한 대적, 사탄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 후에 죄와 사망 역시 그분의 대적들이 되었다.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나는 사망을 장래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사망을 오늘날 현재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일서 3장 14절이 밝혀 주는 바와 같이 우리는 오늘 사망 안에 있을 수 있다.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이 구절은 그의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의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지금 사망 안에 거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생명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 사망 안에 있다. 로마서 8장 6절 역시 우리가 오늘 사망 안에 있을 수 있음을 입증한다. 
<롬8:6..*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 Now the mind of the flesh is death [both now and forever—because it pursues sin]; but the mind of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the spiritual well-being that comes from walking with God—both now and forever]; ...6.  For to be carnally minded is death; but to be spiritually minded is life and peace....『육신에 둔 생각은 사망이요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 (롬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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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 번제물을 죽인 곳에서 속죄 제물을 죽임
속죄 제물은 번제물을 죽인 곳에서 죽여야 했다(레 6:25). 이것은 속죄제가 번제에 근거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점-흠-티-주름 없으신, 그러므로 유일한 만족이신) 그분의 번제 되심에 근거하여 (죄된)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심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시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번제물이 되셔야 함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의 누림이 있어야 한다.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려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을 수 없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회개했으며 우리가 죄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는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기 전까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없다.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번제물은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을 대표할 수 있도록 그분에 의해 창조된 인류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위하지 않으며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곰곰이 뒤돌아 본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 그분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위하지는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진정, 이것을 참되게 깨닫고 <그분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하며 그리스도께 나아가 친히 주장하시도록 맡겨드림 통해 경험한 바>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취해야 한다.
<진실로>우리가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때라야만 우리는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죄가 얼마나 많은가를 깨닫게 된다면, <더 나아가> 우리는 미움이 죄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천연적>사랑도 죄임을 알게 될 것이다. 
윤리적으로 본다면, 다른이들을 미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다른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다른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받음직한 것이고 다른이들을 미워하는 것은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호라,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사람들을 미워하고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해 사람들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위해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다른이들을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하는 모든 것, 즉 그것이 도덕적이든 도덕적이지 않든, 선하든 악하든, 사랑에 속한 문제이든 미움에 속한 문제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죄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하는 한, 그것은 죄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위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표현과 그분의 대표가 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온종일>그분과 독립되어 산다. 
우리가 다른이들을 미워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적이며, 우리가 다른이들을 사랑할 때도 역시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실 때 우리의 미움과 사랑은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움이나 사랑은 모두 우리의 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에서 나온 것이며, 이 둘 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에서 나온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는 사탄을 상징한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것이 사탄에 속한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은 사탄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이 둘 다 사탄에 속한 것이다. 
우리가 선하든 악하든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죄가 (타락한 죄의 몸 안에 집어넣은 바, 사탄/마귀 자신의 분신이자 <더 간교하고 지독한> 정화인 육신flesh의 욕동<일명, 죄의 법, 죄된 옛 습관>을 부추겨 성령의 생각을 대적케 함으로써) 사탄의 권세를 잡기 위한 싸움과 관련지어 이용됨을 다시 한 번 더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의 이름과 지위와 이득과 자존심을 위해-다른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류의 <당연한 듯 보이는, 천연적> 사랑은 권세를 갖기 위해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저의 자존심을 위하고, 저의 이름을 위하고, 저의 승진을 위하고, 저의 유익을 위하고, 저의 이익을 위하여 어떤 것을 행하는 것에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권세를 잡기 위해 하나님과 싸우는 것에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과 승진을 위해 다른이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사탄에게 속한 것이며, 육신 안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죄이다. 
육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죄이며, 우리의 육신 안의 모든 죄는 사탄이며, 사탄이 행한 모든 것은 권세를 잡기 위한 싸움이다.
어떤이들은 그리스도인의 부모로서 자녀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은 <주 보시기에> 어떠한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도 육신 안에 있을 수 있다. 신약은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주를 위해 !!!) 자녀들을 양육하라고 우리에게 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장래를 위해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다. 이것은 죄이다.
교회 생활 안에서조차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선한 어떤 것을 행할지 모르나, 깊은 속에 감추인 우리의 의도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죄이다. 
예를 들어, 간증하거나 기도하는 중에 우리는 모든이들이 우리에게 「아멘」 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높고 영적인 기도를 드리려고 하나, 그렇게 하는 우리의 목적이 「아멘」을 많이 받으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이다. 
우리는 이것으로, 우리의 기도 속에서조차도 권세를 잡기 위해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 있음을 본다.
우리는 영적인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감추인 동기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외관상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이 돋보이려고 하는 자들에 관해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마 6:1). 
구제에 관한 말씀을 주시면서 그분은,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3절)고 하셨으며, 이어서 기도에 관하여,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5절)고 말씀하신다.
금식에 관하여서는,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의를 행하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데 있어서조차도 하나님과의 싸움이 있음을 보이고 계심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은 그분이 보시기에 죄이다. 
자신을 위해 그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전혀 여지를 드리지 않으며, 대신 모든 여지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취하는 것은 아주 깊은 것이다. 속죄 제물을 체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님을 우리의 번제물로 체험하는 것과 관련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악한가를 더 알게 될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감출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바울은 자신에 관하여 그런 깨달음을 가졌다. 주님을 추구할 때, 그는 자신 안에 선한 것이 전혀 없음을 보았다.
ⅩⅠ. 제사장들의 봉사를 위해 속죄 제물에 이어 번제물이 따름
제사장들의 봉사를 위해, 속죄 제물에 이어 번제물이 따른다(레 16:3, 5). 
이것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인 우리는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린 후, 그리스도를 번제물로 취해 하나님의 만족이신 그분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한면으로 속죄 제물은 번제물에 근거한다. 또 한면으로, 번제물은 속죄 제물에 이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번제물이신 주 예수님을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는 우리가 죄가 있음을 더 깨닫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전보다 더 깊이 그분을 속죄 제물로서 취하게 되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번제물로 더 누리게 한다. 
때문에 번제물은 속죄 제물에 대한 우리의 누림 앞에 있는 동시에 또한 그 누림 뒤에 있다.
우리 자신을 철저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느 정도, 심지어 상당한 정도로 하나님을 위할지 모르나, 여전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우리 자신을 위한 여지를 남겨 둔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거룩한 것과 영적인 것과 하나님의 봉사를 접촉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속죄 제물을 가져가야 한다. 이것은 구약의 예표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어떤 것을 할 때마다, 심지어 가장 거룩한 것을 할 때에도, 그들에게는 속죄 제물이 필요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속죄 제물이 필요한데 이는 우리가 깨끗하지 않고, 정결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누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는가?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속죄 제물이 필요하며, 주님을 위해 말하는 데 있어서조차도 우리의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취해야 하며, 그분 안에 우리 자신을 감추고 그분의 보혈로 우리 자신을 덮도록 그분께 구해야 한다.
먼저,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에 우리를 매혹시켜 <하나님의 절대 만족이신, 아름다우신> 그리스도를 <깨닫고> 사랑하고, 그분을 취하고, 그분을 누리게 하신다. 
그분을 번제물로 취하고 누릴 때<누리고 경험한 그리스도를 번제물로 드릴 때>, 우리의 죄가 드러나며 우리는 그분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본다
이 때 속죄제 드림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교회 생활 안에서 다른이들은 우리를 귀하게 여길지 모르나, 우리는 속에서부터 우리가 선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주는 것처럼 보이나,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우리 안에 보류하는 것이 있다.
번제이시고 소제이신 주님을 누림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속죄 제물로 취하고 그런 다음 그분을 속건 제물로 취한다. 이것이 우리가 요한 일서의 한 장에서 본 것이다. 
우리가 신성한 교통 안에서 삼일 하나님을 누릴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여전히 죄가 거하며 외적으로 죄들을 범했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 우리는 보혈의 정결케 함을 받는다. 이것은 순환된다.  우리가 정결케 될수록, 우리는 TUQ과의 교통 안으로 더 들어가게 된다. 
즉, 우리가 이러한 교통을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는 더 빛 비춤 받으며, 빛 비춤 받을수록 우리는 죄가 있으며, 죄 자체임을 더 깨닫게 된다. 
이러한 순환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자아<개인적 옛자아의 습관=죄의 법-육신의 욕동>에서 해방되고 구원된다
<자기 신뢰를 내려놓는다...그럼으로써 육신의 욕동이 작동될 여지가 없게 된다>
사실상 우리는 죄와 육신과 사탄과 세상과 세상의 임금과 권세를 잡기 위한 싸움으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된다. 
그리스도를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와 하나님과의 권세를 잡기 위한 싸움은 줄어든다. 결국 우리는 그분에게 절대적으로 드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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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께 대한 반역자 사탄/마귀 자체가 죄요, 죄는 악행으로 표출된다...그러므로 사탄=죄-악이다...사탄은 타락한 죄의 몸마다에 자신의 정화이자 더 간교한<모든 사람 안에서 생존 위해 자연스레 일어나는, 천연적 자아의 욕동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더 간교하다>자신의 분신인 육신을 주입시켜두었다. (육신 그 자체는 몸의 구속, 곧 영화가 완성됨으로써 멸절될 것) 하여, 그 싸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음은 성령께 순종하려 하지만) 성령의 생각을 <슬며시!!> 거스리는 육신의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육신의 소리를 따라 행하개 되면 그 결과는 <사망>이어서, 하나님과의 생명과 평안-사랑의 교통이 끊겨졌음의 <극도로 삭막하고 허망한 느낌>에 처하게 된다!!....이 느낌은 선택의지를 발후;하여 주 이름 부르고 자복-회개하여 십자가 보혈을 적용하면 다시 교통이 재개되지만 한동안 씁쓸한 느낌이 남이 있을 수 있게 되며(신뢰로 기다리면 사라짐!!), 계속 육신의 욕동 따라 부추김 받아 의지가 육신에게 굴복되어버리게 되면 본격적으로 죄악-사탄이 작동하고 점유할 공간과 여지를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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