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5장 :::사랑과 빛 안에 생활함...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의 네 번째 항목 [510.하나님의진리등대]
***Q의 경륜<뜻하심> 안에서의 그리스도, 그분의 몸인 교회는 유일무이의 살아 생동하는 단체적 우주적 유기체인 진리 그 자체요, 종교나 종교화<=우상 숭배이다!!>에 그 존재 의미를 가지도록 하지 않으셨음..그분은 진실로 그대의 모든 것이신 주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마다에게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신-접촉/누림/체득 가능한 생명-인격이심..Q의 뜻하심은 바로 이 생명-인격이 실지로 우리의 생명-인격이 되는, 절체절명의 문제로서 반드시 우리의 생명-인격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직접 접촉하는데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결코< 그 안에 생명은 사라져 버린> 종교의 껍데기화 한 형해의 영향이나 흔적들, 심지어는 그대가 직접 성경을 공부하고 궁구하며 얻어낸 <직간접적으로 얻어낸 결론들이라 해도> 이미 베풀어진 종교적 가르침들이란 <생명과 진리> 안에서 직접 주관적 체험 없이 그대로 따라 행하려 하다가는 정작 생명은 놓치고 주검만 만지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결코 시간을 구속함이 아닌 것이다..> 다만 오늘 레마의 말씀으로, 곧 항상 있는 객관적 말씀인 <로고스>로서가 아니리, 잠잠하지 않고 끊임 없이 지금 움직이며 말씀하고 계시는, 주관적이고도 즉각적인 말씀<레마>, 바로 이 레마야말로, 그분의 생생한 임재이심을, 그대의 살아계신 주님이시며 넘쳐 흐르도록 움직이며 운행하시는 생명이자 인격 그 자체로서 경험하도록 하라....마음을 집중하여 <주 예수님, 나의 예수님> 부름 안에서 그분을 경청하며 열어드리라. 바로 이 레마 누림을 그대의 절체절명의 최우선으로 삼고, <오직 생명-사랑 충만의 평강의 넘쳐 흐름>그 안에서 기존 지식들을 천천히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을 그 때, 거름망 통해 취사선택케 해 주시는 바 <주관적 체험적 생명>만 붙들라. 주 생명은 살아계시기에 그 경험적 측면에 있어서 그 느낌은<물론 항상 새로움이 생명의 특징이기에>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라
....오직 [영생하시는-제한 받지 않는-<모든 차원/영역의 만유까지 창조하여 품으시는> 창조주 Q,, 생명-인격이신 JC [친밀히 알고 사랑하며] 믿고 살며 누림...운행하며 움직이심으로써 지금 현재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그 영의 흐름, 레마의 말씀이 곧 그분의 임재이다!!
===[[생명과 인격]] ...생명은 어떤 존재의 역동적 삶의 움직임을 산출해 내도록 주장, 주도하는 근원 동기와 동력원인, 그 존재의 조성과 목적의 가장 깊은 원천이요, 인격은 그 존재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창조 되지 않은, 창조주이자 신성한 생명이신 주님은 비교할 수 없이 딜콤한 [지고지선 이루시는]관계적 인격이시다... 거듭난 믿는이의 생명은 [예전의 타락한 옛 생명, 제 소견에 좋은 대로 자행자지하는 혼생명, 또는 (주와 함께 그 위에 달린) 십자가로 처리된 천연적 생명이 아니요] 그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 신성한 생명,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요, 거듭난 그의 인격이란 [그리스도이신]그 영을 담는 그릇(담지자)의 됨됨이, 곧 거듭난 혼의 어떠함으로서, 그 자신의 미덕, (실은 그리스도의 어떠함)임을 기억하라.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산다[곧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함은 마음이 온통 주께로 향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움직임과 운행하심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동행하며 상호 교통하며, 그리스도 주님의 마음(지정의)의 패러다임, 그분 마음의 됨됨이와 씀씀이의 어떠함(미덕)이 그대의 내적 존재를 온통 채워 발휘되시게 함이다. :: 그러므로 마땅히 그분의 인격의 미덕인 성령의 열매를 따라 살라..[보라...그대는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그대의 영 안에 계신 주님이 그대의 주관적 그리스도이시니, 그대의 참 생명과 인격 되시도록 허락해 드림 통해 이름 부르며 교통 안에서 인도함 받으며 그분의 품에 안겨 품으심과 양육-분별과 적셔짐- 깨끗케 하심과 거룩하심<이것은 분별에 더하여 (외부의 누군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리스도 그분 자신에 그의 전 존재가 먹혀져 사라지고 그분만 남음을 의미)> 이루시도록 하며, 더 나아가 그대의 지정의의 혼 영역과 몸 구석구석에까지 그분으로 온전히 채우고 다스리시도록 해 드림이 바로 <내적 존재의 파쇄와 재건>이자 <참된 영적 자유 누림, 영의 해방>이요, 이 과정이 온전히 이루어질 그 때 비로소 <주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남이 된다.
[[Q의 부르심에 합당한 행함의 5단계 방면]]
.... 첫 번째 방면은 하나<하나됨>을 지키는 것이요,(이는 몸의 생활=교회 생활 위한 것)
.... 두 번째는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는 것이며(이것은 건축을 위한 것),
.... 세 번째는 일상적인 행함을 통제하기 위해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따른 생활의 표준인 모형 안에 놓여짐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움( = 고양된 원칙과 더불어 높은 표준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취함임),
.... 네 번째는 사랑과 빛 안에 있는 생활이요, 다섯 번째가 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으로 충만케 됨(Q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이다.
. ...이 다섯가지 항목들은 놀라운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이제, 이 내적 충만으로부터 순종-사랑-복종-돌봄-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교회 생활, 가정 생활, 사회 생활 등의 모든 속성들이 나온다.
**믿는 우리는 은혜(우리에게 도달하신 Q)이신 그리스도를 믿어 Q을 영접했고,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Q을 깨달았다. 그 다음에 우리는 사랑과 빛이신 Q을 누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사랑과 빛은 내적 요소요, 은혜와 진리는 외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사랑은 느낄 수 있는, Q의 내적 본질이고 빛은 볼 수 있는, Q의 표현된 요소이다. 엡5장의 계시에 따르면 사랑과 빛은 우리의 행함의 내적인 근원이어야 한다. ...새 사람으로서의 교회는 <은혜와 진리>의 문제이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는<사랑과 빛>의 문제임....4장에서는 은혜와 진리를 그 기본요소로 하는 새 사람에 초점을, 5장에서는 사랑과 빛은 그 기본 본질로 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은혜와 진리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사랑과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행동해야 함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생명-빛-진리의 인격이신>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Q께로부터 난<요1:13>, Q의 자녀마다 Q의 <신성한>생명(마5:48)과 본성<=신의 성품에 참예함..벧후1:4>을 가졌기에 [힙당한 (그리스도의) 믿음-소망-사랑으로 (중심 열어 알며-사랑함으로써) 젹셔짐으로 그분 안에 거하여 살아냄으로] Q을 본받는 자들 됨이 당연!!
.... 진리=(새 사람의 생활) 원칙=본/틀=모형 -->그리스도로 살기 배움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니, Q이 주 예수님 안에서 표현되고 계시될 때 그의 사랑은 은혜가 되고 그의 빛은 진리가 됨. 진리는 빛의 계시이며, 빛은 진리의 근원이듯, 사랑의 표현은 <그 극치는 목숨 내어줌의 대속>은혜, 은혜의 근원은 사랑<자비와 긍휼>..주 예수 안에서 은혜이신 Q을 영접하고 진리이신 그분을 깨달은 후에 우리는 <내적인 방 안에 계신>그분께 가서 그분의 사랑과 빛을 취하여 누림-적셔짐으로써 사랑과 빛은 은혜와 진리보다 더 깊다는 것 깨닫는다....내적으로 Q의 사랑을 느끼며 Q의 빛 비침을 봄으로써 그분의 사랑하는 본질과 빛나는 요소로 조성됨, 이것이 우리 행함의 내적 근원이 되어야 함>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교통 회복 위함)과 희생(죄로부터 구속을 위함)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마귀, 곧 육을 따름으로 Q을 배역함인>음행과 온갖 <세상 추종-방임인>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 (영적-육적)간음보다 더 인류를 손상시키는 것은 없으며, 탐욕은 욕심 가득한 통제 불가능한 정욕임
4. <언행심사를 (주님 생명의 사랑과 빛을 따라) 다스리되> 누추함(filthy:불결)과 어리석은(silly, 천박/경망스러운) 말이나 희롱의 말<마구잡이의/외설적인/역겨운(독한)/저속한 농담=이것은 결국 마귀 따라 말함이다!!>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오이다..내적인 직관적/주관적 앎=깨달음..cf.기노스코=객관적 앎>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란, 교회 생활 안의 Q의 왕국이 아니라, 장차 올 천년왕국 안에 있는 왕국의 나타남 =오직 이기는 자들만 참여 가능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무엇을 듣는가 깨어 주의하라...[온갖 사기-기만, 간교한]미혹과 유혹에서 벗어남 위해 듣는 귀의 분별력 사용하라...죄악된 자리를 피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더러움에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마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Q)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마치 사랑 안에서 친밀하고 부드럽고 섬세하며 신뢰 깊은 모녀 사이처럼!!...서로 판박이가 되어 함께 가치판단에 있어서 하나되어 같이 미워하며 같이 좋아함의, 깊은 하나됨을 지향하듯!!...아버지와 아들 간에도 얼마든지 그러할 수 있다.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빛의 열매의 본성...아버지>과 의로움<방법과 절차...아들이신 그리스도>과 진실함(참된 표현=진리...실제이신 그 영)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힘쓰고 애써 배워 체득함으로써 자연스러워지게 하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expose..빛 가운데로 드러냄)
.... 가능하면 직접 꾸짖는 것은 피함이 현명하겠지만, 꼭 책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어둠의 자녀들을 부드러이 꾸짖되 (먼저 주 앞에서 <자신의 생각-동기-느낌-의도에 있어서> 주 앞에서 돌아보아 회개하고, 정결함의 확신 안에서만 가능하다..자신의 불결로 오히려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대놓고 공박하거나 저주하지는 말라!!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는 간접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있는데, 오직 그 자리를 피하고, 그대는 주 안에서 반대정신으로 살아감 인해> 거듭난 새 사람의 완전함-도덕적 용기-신성한 성품을 입증함으로써, 곧 빛 가운데 드러냄이 가장 큰 책망함이 되게 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믿는이 그대가 책망 받는 경우, 그대는 책망자의 순수성에 대해 분별하려 애써서는 안되며, 다만 단순히 그 책망과 드러냄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 앞에[서 돌아보아 교정함이 지혜이다, 그리할 때 그대는 축복 안에 있게 되며 잠자는 데서 일어나게 되어 그리스도께서 비추심을 누릴 것이다. 믿는이에게 있어서는 책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전혀 달라야 하는데, 모든 책망이란 책망자의 생각-느낌-동기-의도의 순수/불순, 불결/정결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비췸인 것을 반드시 알고 돌아보아 기꺼이 단 마음으로 감사함으로써 교정 받아야 한다..그 안에 있는 축복 놓치지 말라..책망 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기를 배우라.<주여, 주님의 빛 비춤 인해 감사드리며 경배합니다.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시간을 구속함, redeeming the time,모든 가능한 기회를 붙잡음)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주님 뜻 앎이 시간을 구속함이 됨>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거듭난 혼의, 생각(지성)-감성-의지를, 성령 충만 받은바, 성령의 적셔짐 충만한, 그대의 영의 통제 아래 두도록 하라, 곧 성령과 충만한 하나됨 이룸 그 영 안에서 그대의 명 안에 충만하신 주님이 혼과 몸을 주도하게 하라 그대의 존재를 비추어 이끄시게 의지-순종하라)
.... ***플레도 엔 프뉴마 (영 안에 <성령으로> 충만함...엡5 :18) <==>플레도 프뉴마 하기오스(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4) ...<헬라어 원문을 따른> 회복역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영 안에서 충만 받으라..And do not be drunk with wine, in which is dissoluteness, but be filled in spirit,(5:18)>로서 in spirit을 "영 안에서"의 구절로 쓰고 있다. ((그 결과는 성령으로 촉촞히 적셔짐 인한 분명-명료하고 맑은 정신의 신중한 분별이다!!)) 반면에, 다른 번역들은 대개< "영으로", with (Holy) Spirit>로 번역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번역했다.((성령의 충만을 말할 때는 <오순절날 강림처럼, 마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며 강림하셨다> 그분의 강력한 임재로 감싸 부으심 통해 자아상실에 이르도록까지.. 의미한다고 본다)).. 충만 받음은, 거듭난 영 즉 Q의 영이 내주하시는, 성령과 연합한 하나됨 이룬, 새로운 사람의 영 안에서 우리 온 존재가 충만되고 통제됨을 의미한다.<그 사람의 영으로부터 속사람 전역으로 확장되어....결국 성령 충만으로도 번역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거듭난 그 사람의 통제하는 의지가 성령께 순복함과 동시에 굳세어야 함을 더 강조하려 한 듯 하다> 우리의 영은 비어 있는 상태로 있게 되어서는 절대 안되며(부정적 의미에서 말하자면...마12:42-45..에선 더 악한 귀신들 일곱이 들어와서 예전보다 형편이 더 심하게 악화될 수 있음을 언급하신다) Q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인해 생생한 체험 통해 체득된 바 <그분의 미덕들로> 충만되어야 한다.(3:19)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찬송을 말하기도 함, 즉 말로 표현해 보기도 함....이는 살아있는 방법으로 생동감 있게 찬송하려 함이니..(때때로 첫줄은 남성들이, 둘째 줄은 여성들이,,.이렇게 교호하여 말해도 좋다)
20. 범사에(희노애락의 모든 상황에 무관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서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반사반영하는 거울이자 그분의 공급통로된 지체들이기에 서로 서로, 상대방 안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경청함이 옳다.!!
===아내와 남편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하나인 아내와 남편...아내<교회>는 더 연약하고 더 쉽게 치우칠 수 있는 그릇임을 명심하고 남편은 먼저 사랑 안에서 너그러이 이해하고 참고 배려하며 복종하기를 실행하되,<지고지선 이루실 바> Q의 지혜를 신뢰하라..자기 목숨 내주면서라도 정성껏 죽기까지 돌보고 먼저 사랑하여 아내를 점흠티주름없이 영광스럽게 하라)
.... <거듭난 믿는 이로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는 일상 생활 관계의 한 측면으로서, [Q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 영 안에서 <성령으로>충만됨 여부의 문제, 곧 성령으로 내적 충만함 가운데서만 주께 합당한 결혼 생활이 가능해짐을 가리킨다.
.... 바울이 결혼 생활 권면에 있어서 먼저 아내를 다루고 있는 것은, 이는 창3장의 하와처럼, 아내들이 남편보다 더 쉽게 선을 벗어나기 때문이요, 같은 원칙으로 자녀들을 부모보다 먼저, 종들을 상전보다 먼저 다루고 있다. 생각해 보라, 자녀-부모의 관계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부모보다는 자녀들에 의해 야기되는데, 자녀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지만 실행면에서 보면 대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선선히) 순종함을 볼 수 있으 며, 이는 아내들과 남편들의 관계에서도 대개 그러함을 볼 수 있다....벧전 3:7에서는<아내들은 연약한 질그릇>이라고 말한다....따라서, 바울은 엡5장에서 먼저, 보다 약한 편인 아내들, 자녀들, 종들을 말하여 돌보고 있다. 명심하라, 강한 편에 있는 사람들은 약한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당키 어려운 요구나 무거운 짐을 홀로 지도록 부과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고 돌보며 짐을 나눠 함께 짊어져 주어야 한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동정하며 사랑하기에) 순종하는 바, 남편들이 먼저 순종하는 법을 모른다면 화목한 결혼 생활이란 없을 것이요,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 신약성경에서 결혼생활을 말하면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다루는 몇 군데의 구절들에서 몇 가지 공통된 원칙들을 발견했는데...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것과, 사용된 단어가 "순복" 또는 "복종"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종 또는 순복"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subject to, submissive to...무릎 꿇고 엎드림(순복함이란 #앙망하는 바, 주 임재 앞에서 주께 하듯, 성령 인도하심 따름으로 사랑과 빛의 섬김 이루기# )"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엡6:1과, 종과 상전과의 관계를 다루는 엡6:5에서 언급된 "순종"(obey, be obedient to...내미는 손 붙잡음)이라는 단어와 분명한 구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순복"과 "순종"...이 두개의 비슷한 단어에 대한 합당한 인식이 성공적인 결혼생활 안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느껴져서, 제가 가지고 있던 영영사전(Macmillan 2002년판으로써 비교적 인정받는 사전임)을 뒤져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각 단어들을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머리/권위에 대해 무릎 꿇고 엎드림>복종,Subject : Under the authority and control of a government, country ...순복<(속뜻은)영혼 구원을 염두에 둠>,Submission : the action of accepting that someone has defeated you or has power over you
*<이끄는 손에 순순히 따라감>순종,Obey : to do what a law or person says you must do
**순종(Q 신뢰함으로써, 정하신 질서를 따라감)subject = sub(under) + ject(throw, out) **순복(보냄 받은 자의 자각 마음에 간직하고서 권위/머리 됨에 복종함)submit(=sub(under) + mit(=send) **복종, obey : 공적 권위/머리됨의, 제도적 법도를 따름 다시 쉽게 우리말로 얘기해보자면....
순복(Submission)은...무릎 꿇고 엎드려 복종하지만(subject)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보냄 받은 자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 끝까지 견지함의 문제이며, 순종(Obey..이끄는 손에 순순히 끌려 감)은 외적인 행위 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아내들에게 <믿지 않는>자기 남편에게 "순복"할 것을 요구하셨지, 반드시 "순종" 하라고 한 것은 아님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세상적인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할 때 아내된 자매들은 남편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반드시 순복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믿지 않는 남편을 가진 한 자매가 있었는데,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기에 합당한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주의 종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보, 당신이 좋아하시는 영화를 제가 함께 보는 것은 제 안에 계신 주님이 매우 불편해 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영화관까지 모셔다 드린 후 당신이 다 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을 순종하지는 않았지만 순복의 영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자매의 남편이 이러한 교통에 도움을 받아 머지않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디도서 2:5과 벧전 3:1에서 우리는 분명한 또 하나의 원칙을 볼수 있는데, 자매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에서 합당하게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들이 악한 자들에게 훼방을 받게 되며, 믿지 않은 남편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아내된 자매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지식과 언변으로는 남편을 얻을 수 없으나, 그 아내의 행위, 즉 남편을 순복하는 태도, 경외하는 태도를 가진 생활방식(The manner of life)에 의하여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얻을 수 있다가 아니라 얻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기 가족을 얻는 것이 쉽지않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남편을 순복하는 것은 무거운 머리가 몸 위에 붙어 있고 많은 것들을 지시하지만 몸은 자연스럽게 그 요구에 순종하며 머리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남편된 자들은 아내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강제로>요구하거나 이용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머리삼지 않는 남편을 머리삼고 순복한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며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내 몸에 붙어있는 머리의 중량이 나에게 느껴진다면 하루라도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볼때 상당 기간 동안 저도 이러한 잘못된 머리였음을 요즘 들어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팔순이 훨씬 넘으신 시아버지과 함께 살고 있는 제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사역 안에서 공급되는 건강한 말씀에 의하여 조금씩 제자신이 합당한 남편으로 조정되어 가고 있음을 인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딛2:5...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신중하게 하고 순결하게 하고 집안일을 잘하게 하며 선하게 하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to be sensible, pure, makers of a home [where God is honored], good-natured, being subject to their own husbands, so that the word of God will not be dishonored....To be of a sober mind, pure, workers at home, good, subject to their own husbands, that the word of God would not be blasphemed.>
<벧전3: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마찬가지로 아내 여러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에 불순종하는 남편들일지라도, 그들은 말씀이 아닌 아내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서 얻어질 것입니다...In the same way, you wives, be [a]submissive to your own husbands [subordinate, not as inferior, but out of respect for the responsibilities entrusted to husbands and their accountability to God, and so partnering with them] so that even if some do not obey the word [of God], they may be won over [to Christ] without discussion by the godly lives of their wives,...In like manner, wives, be subject to your own husbands, that even if any disobey the word, they will be gained without the word through the manner of life of their wives,>
......((믿는 아내를 <전적으로 사랑하기>, 믿는 남편 <복종+순종>, 믿지 않는 남편<순복>을, 믿지 않는 아내에게<순교적 희생의 사랑>을 적용하기..목표는 영혼 구원과 몸의 건축임))
....남편은 <아내에 대해 (사랑의 은혜로) 냉기를 녹이며 부드럽고 포근하며, 다정하게 어루만져 소중히 보듬어 돌봐 주는>영적 양육자, 아내는 물질적 몸 양육자로서의 고유 역할을 담당
22. ○아내들이여 <남의 남편과 비교 말고, 그녀의 남편은 주님을 대표하는 것이기에>[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남의 아내와 비교 말고>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Q-사람, 곧 인성 가지신]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순교함의 자리에 <희생으로>내어주심] 같이 하라...육신 입으신 구속주, 그리스도의 단계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여기서의 말씀은 항상 있는 말씀인 로고스,logos가 아니라 잠잠하지 않고-끊임 없이 현재적으로 말씀하시는-즉각적인 말씀인 레마,rhema를 의미함...그리스도를 그의 생명과 인격으로 취하는 사람은 <침묵하며 잠자코 있을 수 없는 바> 말씀하시는 그분 따라 그분에 의해 강제로 말할 수 밖에 없다!!..요6:63...그분의 임재는 지금 그분의 말씀하심에 있다..<주여, 말씀하소서, 내가 경청하고 또 그 말씀대로 전하리이다> 그분께 돌이켜 그분으로 말씀하시게 하고, 그분이 넣어주시는 말씀을 말하라...그리스도의 말씀하심이 곧 그 영이니, 그 때 깨끗케 하심과 거룩케 하심,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심 체험한다.] ....생명 주는 영, 그리스도의 단계
.... [객관적 진리 말씀의 주관적 체험화 = 하늘에 계신 객관적 그리스도 뿐 아니라 영 안에 내주하시는 주관적 그리스도 체험 회복!!..갈2:20]...성경 말씀 안으로 들어가되<사랑하는 주께서 그대를 흔들어 깨어나게 해 주셔서 그분을 알되, 더욱 더 친밀히 알도록 해 주시며, 말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그대를 지금 만나주시도록 말씀드리고 기다리라....말씀하시는 그 영 그리스도의 움직임과 운행하심에 전존재 맡겨드리고 말하기를 배우라> 성경 안에 계시된 그리스도, 그분은 잠잠하지 않고 끊임없이 지금도 생생하게, 즉각적인 말씀으로 임재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고 기대하고 그분의 마음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 깨닫게 하시는 바를 말하게 하심따라 말함으로써 동시에 그분께 감사하며 사랑한다 고백하며 올려드리라...결코 객관적인 말씀 지식 알기를 주관적 그리스도 체험보다 더 귀히 여김으로써 또 하나의 우상숭배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신부 맞는 신랑의 단계
....[골3:4...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4. When Christ, who is our life, is revealed, then you also will be revealed with Him in glory. = When Christ our life is manifested, then you also will be manifested with Him in glory...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골1:27하..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which is Christ in you, the hope of glory. = which is Christ in you, the hope of glory,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영광의 소망(골1:27)이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로서, 우리 속에는 생명과 인격일 뿐 아니라 영광의 소망이시다... 보라,, 그분을 그대의 주관적인 생명-인격으로 취하고 친히 주님으로 사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참되게 누릴 때에만 그분의 영광을 알게 되며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변화되듯이, 그리스도께서 기회마다 포착하시어 우리를 점차로 먹어들어가면서(먹혀짐-삼켜짐) 동시에 그 대신에 신성한 참 생명이신 그분의 영광으로 적심-확장되심으로 인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데> 이 영광의 적셔짐-점유-확장-충만이 넘쳐나서 외부로 저절로 드러나는바<이는 마치 싹 틈에 비유할 수 있을 것> 빛 비췸이 우리 속에서부터 나타남 인해 주님은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히 적셔짐으로써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바 우리 속에서부터 나아오시는 그리스도((삿된 모든 것은 거침없이 태워버리시는((용광로보다 더 뜨거우시지만)) 다함없는 사랑의 열정의 온기를 가지신)) 이분은 냉냉했던 우리를 ((Q영광으로 빛나는, [그분을 닮은] 달군 쇠로)) 만드신다!!]가 되신다.(롬8장) ...이 때 밖에서 오시는 재림 주 그리스도는 신부인 영광스러운 교회를 자기 앞에 세우시리라.
.... <주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 머무실 그 때에도,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모든 의식-행습-규례>따라 제사장들은 번제단에 제물 드리고, 분향단에 향을 피웠고, 촛대에 불을 밝히고 있었으나, Q은 그 시간에 성전에 계시지 않고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마리아-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셔서 Q의 <그리스도 분배>경륜을, Q말씀 나눔 통해 수행하고 계신 주 예수님 안에 계셨음을 잊지말고, 다만 오늘날 모든 성도마다 지역교회마다 진실로 주님의 임재 누림의 경륜 안에 있어야 함을 명심하라..
.... 주님의 갈망, Q의 경륜 안에 두신 그분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영광스런 교회>를 얻으심에 있다. 그 외의 다른 특징, 즉 영적인(영성 충만한)교회, (하늘에 속한) 교회, 심지어 (승리하는) 교회를 찾고 계시는 것이 아님을 알라. (Q의 참 갈망하시는. 그분의 <그리스도 분배를 통한 영광스러운 교회>외에 곁길오 나아가게 하는 그것은 바로 종교인데, 부분적으로는 참되나 부분적으로는 거짓된 교묘한 혼합이자 속임수이다) ...영광이란 Q의 표현, 그분의 나타남 자체요 교리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그 어떤 도덕과 행위의 산물이 결코 아니요, 절대적으로 다르다., Q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거룩케 하심-깨끗케 하심-양육하심-소중히 품으심을 통해서이다. 이는 <주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바로써> 믿는 우리가 개인적-실제적 방법으로 이런 것들을 체험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충만한 그분의 영광 인해 영광스럽게 된다. 영성-은사-승리나 그 밖의 다른 영향력을 추구하는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그븐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얻으실 수 있도록 영광으로 충만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승리하려고 힘쓸 필요가 없다. 승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만 <우리가 생명-인격 삼은 분, 우리 속에 있는 영광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내적 비춤만을 주목하고 바로 그분으로 사노라면> 어느덧 자연히 어떠한 의식적인 분투-추구-노력 없이도 승리하였음을 볼 것이다.
.... 끊임 없이 흘러 항상 새로운, 즉각적인 말씀<레마>가 바로 운행하며 움직이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요, <우리 마음에 거처를 정하신> 그분의 임재는 Q의 영광인데,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Q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요, 이제는 그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보고 반사함 통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주 영에 의함인데>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됨을 가져온다)
[고후4:6..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For God, who said, "Light shall shine out of darkness," is the One who has shone in our hearts to give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Because the God who said, Out of darkness light shall shine, is the One who shined in our hearts to illuminate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Jesus Christ. 왜냐하면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빛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밝히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18. 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just as from the Lord, the Spirit. = 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nd reflecting like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even as from the Lord Spirit.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결혼 생활은 [은혜와 진리보다 더 깊은] 충만한 사랑과 빛(더 이상 시비 가림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주님 임재의 자연스러움따라)으로 가득한 결혼 생활, 섬세함-밝고 친근함이 그 특징이다!!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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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hesians 5 Amplified Bible
==Be Imitators of God
1 Therefore become imitators of God [copy Him and follow His example], as well-beloved children [imitate their father];
2 and walk continually in love [that is, value one another—practice empathy and compassion, unselfishly seeking the best for others], just as Christ also loved you and gave Himself up for us, an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slain for you, so that it became] a sweet fragrance.
3 But sexual immorality and all [moral] impurity [indecent, offensive behavior] or greed must not even be hinted at among you, as is proper among saints [for as believers our way of life, whether in public or in private, reflects the validity of our faith].
4 Let there be no filthiness and silly talk, or coarse [obscene or vulgar] joking, because such things are not appropriate [for believers]; but instead speak of your thankfulness [to God].
5 For be sure of this: no immoral, impure, or greedy person—for that one is [in effect] an idolater—has any inheritance in the kingdom of Christ and God [for such a person places a higher value on something other than God].
6 Let no one deceive you with empty arguments [that encourage you to sin], for because of these things the wrath of God comes upon the sons of disobedience [those who habitually sin].
7 So do not participate or even associate with them [in the rebelliousness of sin].
8 For once you were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live as those who are native-born to the Light]
9 (for the fruit [the effect, the resul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
10 trying to learn [by experience] what is pleasing to the Lord [and letting your lifestyles be examples of what is most acceptable to Him—your behavior expressing gratitude to God for your salvation].
11 Do not participate in the worthless and unproductive deeds of darkness, but instead expose them [by exemplifying personal integrity, moral courage, and godly character];
12 for it is disgraceful even to mention the things that such people practice in secret.
13 But all things become visible when they are exposed by the light [of God’s precepts], for [a]it is light that makes everything visible.
14 For this reason He says, “Awake, sleeper, And arise from the dead, And Christ will shine [as dawn] upon you and give you light.”
15 Therefore see that you walk carefully [living life with honor, purpose, and courage; shunning those who tolerate and enable evil], not as the unwise, but as wise [sensible, intelligent, discerning people],
16 [b]making the very most of your time [on earth, recognizing and taking advantage of each opportunity and using it with wisdom and diligence], because the days are [filled with] evil.
17 Therefore do not be foolish and thoughtless, but understand and firmly grasp what the will of the Lord is.
18 Do not get drunk with wine, for that is wickedness (corruption, stupidity), but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constantly guided by Him.
19 [c]Speak to one another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offering praise by] singing and making melody with your heart to the Lord;
20 always giving thanks to God the Father for all things,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21 being subject to one another out of reverence for Christ.
==Marriage Like Christ and the Church
22 Wives, be subject [d]to your own husbands, as [a service] to the Lord.
23 For the husband is head of the wife, as Christ is head of the church, Himself being the Savior of the body.
24 But as the church is subject to Christ, so also wives should be subject to their husbands in everything [respecting both their position as protector and their responsibility to God as head of the house].
25 Husbands, love your wives [seek the highest good for her and surround her with a caring, unselfish love], just as Christ also loved the church and gave Himself up for her,
26 so that He might sanctify the church, having cleansed her by the washing of water with the word [of God],
27 so that [in turn] He might present the church to Himself in glorious splendor, without spot or wrinkle or any such thing; but that she would be holy [set apart for God] and blameless.
28 Even so husbands should and are morally obligated to love their own wives as [being in a sense] their own bodies. He who loves his own wife loves himself.
29 For no one ever hated his own body, but [instead] he nourishes and protects and cherishes it, just as Christ does the church,
30 because we are members (parts) of His body.
31 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be joined [and be faithfully devoted] to his wife, and the two shall become [e]one flesh.
32 This mystery [of two becoming one] is great; but I am speaking with reference to [the relationship of] Christ and the church.
33 However, each man among you [without exception] is to love his wife as his very own self [with behavior worthy of respect and esteem, always seeking the best for her with an attitude of lovingkindness], and the wife [must see to it] that she respects and delights in her husband [that she notices him and prefers him and treats him with loving concern, treasuring him, honoring him, and holding him dear].
==Footnotes
Ephesians 5:13 Paul, who was privileged to study under the brilliant Gamaliel (Acts 22:3), is probably speaking from the viewpoint of ancient Greek science. Even the philosopher Plato maintained that vision essentially is the process of light forming an image of an object it touches and conveying that image to the eyes. So Paul may mean that what is actually seen is an image composed of light (like the photographic process), and since light is always reliable and its physical properties are constant, nothing exposed to light escapes being revealed. Spiritually speaking, to the extent that a believer functions as Light (v 8), he will expose the sins of unbelievers simply by his presence, just as it is the nature of light to expose whatever it touches.
Ephesians 5:16 The Greek word in this verse means “buy up at the market place.” Opportunity is regarded as a commodity to be used by believers.
Ephesians 5:19 The Greeks had a tradition of holding drinking parties (called, in the singular, a symposium) where the object was to sing the praises of the pagan gods while becoming drunk. Perhaps with this tradition in mind, Paul instructs believers to “be filled” instead with the Holy Spirit and to sing meaningful praises to God.
Ephesians 5:22 The wife to her husband, not to men in general; not as inferior to him, nor in violation of her Christian ethics, but honoring her husband as protector and head of the home, respecting the responsibility of his position and his accountability to God.
Ephesians 5:31 The bond between husband and wife supersedes all other relationships.
---recovery.V..----
Ep 5:1Be therefor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
Ep 5:2And walk in love, even as Christ also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n offering and a sacrifice to God for a sweet-smelling savor.
Ep 5:3But fornication and all uncleanness or greediness, let it not even be named among you, as is fitting for saints,
Ep 5:4And obscenity and foolish talking or sly, filthy jesting, which are not becoming, but rather the giving of thanks.
Ep 5:5For this you realize, knowing that every fornicator or unclean person or greedy person (who is an idolater) has no inheritance in the kingdom of Christ and of God.
Ep 5:6Let no one deceive you with vain words, for because of these things the wrath of God is coming upon the sons of disobedience.
Ep 5:7Therefore do not be partakers with them;
Ep 5:8For you were once darkness but are now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Ep 5:9(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
Ep 5:10Proving what is well pleasing to the Lord.
Ep 5:11And do not participate in the unfruitful works of darkness, but rather even reprove them.
Ep 5:12For the things which are done by them in secret it is shameful even to speak of.
Ep 5:13But all things which are reproved are made manifest by the light; for everything that makes manifest is light.
Ep 5:14Therefore He says, Awake, sleeper, and arise from the dead, and Christ will shine on you.
Ep 5:15Look therefore carefully how you walk, not as unwise, but as wise,
Ep 5:16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Ep 5:17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will of the Lord is.
Ep 5:18And do not be drunk with wine, in which is dissoluteness, but be filled in spirit,
Ep 5:19Speaking to one another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psalming with your heart to the Lord,
Ep 5:20Giving thanks at all times for all things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o our God and Father,
Ep 5:21Being subject to one another in the fear of Christ:
Ep 5:22Wives, be subject to your own husbands as to the Lord;
Ep 5:23For a husband is head of the wife as also Christ is Head of the church, He Himself being the Savior of the Body.
Ep 5:24But as the church is subject to Christ, so also let the wives be subject to their husbands in everything.
Ep 5:25Husbands, love your wives even as Christ also loved the church and gave Himself up for her
Ep 5:26That He might sanctify her, cleansing her by the washing of the water in the word,
Ep 5:27That He might present the church to Himself glorious, not having spot or wrinkle or any such things, but that she would be holy and without blemish.
Ep 5:28In the same way the husbands also ought to love their own wives as their own bodies; he who loves his own wife loves himself.
Ep 5:29For no one ever hated his own flesh, but nourishes and cherishes it, even as Christ also the church,
Ep 5:30Because we are members of His Body.
Ep 5:31For this cause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shall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 two shall be one flesh.
Ep 5:32This mystery is great, but I speak with regard to Christ and the church.
Ep 5:33Nevertheless you also, each one of you, in the same way love your own wife as yourself; and the wife should fear her 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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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 (개요)
우리는 앞 장의 끝부분에서 몇 가지 중요한 권고를 읽었다. 이 권고는 본장에서도 계속된다.
Ⅰ. 상호간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권고가 주어진다(1,2).
Ⅱ. 모든 더러운 행동을 반박하고 이러한 죄에 대한 치료의 방안이 제시된다. 그리고 몇 개의 경고가 주어지고 다른 의무들이 권고된다(3-20).
Ⅲ. 사도는 피차 복종할 의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할 것을 21절부터 다음 장 앞 부분까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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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랑(엡 5:1-2)
위에서 우리는 상호간의 사랑 또는 그리스도인의 자비에 대한 권고를 대하게 된다.
사도는 앞 장에서 이에 관하여 설명 하였고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하였다.
따라서 본장 서두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전 장에서 말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그것과 본문에 포함한 내용을 연결되어 주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셨으므로 너희는 하나님을 따른 자가 되며 하나님을 배우는 자가 되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경건한 사람은 그들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바 대로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본을 스스로 따르고 그의 형상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르신 것이 실제적인 믿음에 큰 영예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심 같이 거룩하여야 하며 그가 자비하신 바와 같이 자비해야 하며 그가 완전하심 같이 완전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그의 선하심이야 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은혜에 있어서 특별히 그의 사랑하심과 그의 용서하시는 선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는자 또는 닮으려는 자가 되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고로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도 그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사도는 그의 이름을 선하심이 풍성하시며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이라고 선포 하였다. 또한 그는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그들의 양친에게 사랑을 받는) 어린이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얼굴의 윤곽이나 특징에 있어서 또한 그들의 마음의 성품이나 기질에 있어서 양친을 닮듯이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말로 볼 수 있다.
또는 그들의 하늘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그러하듯이 그를 본받으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자녀들이 그들이 특별히 부모의 사랑을 받을 때 무엇이 선인가에 대하여 그들의 부모를 모방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특성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으려는 것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신 점에 있어서 넉넉하심을 닮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으려는 자들만이 그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에 이어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2절)는 말씀이 연속된다. 이러한 하나님을 본받으려는 은혜는 우리의 전체 언행을 지배하며 영향을 준다.
그런데 하나님을 본받는 것을 곧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을 뜻한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원칙이 된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지시해 준다.
우리는 서로 우리 사랑의 신실함의 증거를 보이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2절)라고 하신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분이며 그에게서 우리는 가장 자유롭게 관대한 사랑의 실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랑에 공동 참여자요 그 사랑의 위로에 동참자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위대한 속죄의 희생이 되었다. 그는 자기를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또는 그는 율법의 희생 제도에 기록된 대로 제물 또는 희생이 되시되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화목제가 되셨다. 이로써 그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
어떤 이들은 속죄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의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그와는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하여 자신을 드리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을 받아들이시고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셨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하나님께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며 그것을 조심스럽게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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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에 대한 경고(엡 5:3-20)
위에서는 모든 종류의 불결에 대한 경고와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책과 논증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다시 몇 가지 다른 경고를 첨가하고 또 몇 가지 의무를 행할 것을 권고하였다.
거룩한 사랑을 지속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더러운 욕망이 제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피하라"고 하였다.
"간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지르는 일"이다.
"온갖 더러운 것"이란 그 이 외에 다른 모든 추한 욕망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흔히 성행하고 있는 일들이었다.
또한 "탐심"을 피하라고 하였다. 이 탐욕을 어떤 이들은 성결한 성경에서 두 번 다시 언급해서는 안되는 부자연한 욕망과 대한 탐욕이라고 해석하였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좀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여서 소유하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이나 부에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애착으로써 그것은 영적인 간음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이 탐욕에 의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낯선자의 품에 안기게 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을 간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너희 간음하는 자들아 세상과 더불어 짝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이러한 죄는 반드시 두려워하고 혐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리지 말라. 또 승인하지도 말며 혐오하는 마음을 없이 하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세상을 버렸으며 하나님께 헌납된 사람들인 성도 즉 거룩한 백성들의 마땅한 바이기 때문이다"(3절).
바울은 악행이 증가되는 것을 경고하였을 뿐 아니라 그 악행을 가벼이 취급하게 되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함을 경고하였다.
또한 "누추함"을 버리라고 하였는데(4절) 이 뜻은 모두 방탕하고 제격에 맞지 않는 몸가짐이나 행동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겠다.
또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음탕하고 음란한 이야기나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어리석고 경솔함으로 가득 찬 헛된 이야기와 듣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말을 일컫는다.
또한 "희롱의 말"을 버리라고 하였다. 이는 헬라어로 ‘유트라펠리아’(2160)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이 말을 "대화의 유희"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악의 없는 상대를 격분시키지 않는 농담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사도가 그것까지 금지하였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주석가는 바울의 이 말씀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욕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행동 또는 다른 사람을 어리석게 보이도록 만드는 행동에 대하여 경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나쁜 짓이다. 그러나 즐거운 대화라고 해도 그 속에 외설적이고 추잡한 내용이 담긴 대화라면 그것도 금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장 29절에선 사도가 "더러운 말" 또는 음탕하고 육욕적인 즐거움에 관한 말을 한 것도 본문과 같은 의도로써 말한 것이라 하겠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이는 마땅치 아니하다"고 경고하였다. 이 말에는 물론 마땅치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요소가 담겨 있었다. 그런 말들은 유익을 주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듣는 사람에게 해가 되고 독이 되기 때문이다.
본문이 뜻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땅치 않으며 그들의 신앙 고백과 성품에도 적당치 않을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즐기는 동시에 현명해야 한다.
사도는 또한 "돌이켜 감사하라"고 덧붙였다. 그
리스도인들은 음란과 더러운 환락으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그에 대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히 기억하고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찬송하고 영광 돌림으로써 마음으로부터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인자하심과 은총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은혜와 선하심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기쁨과 활력을 주고 그는 즐겁게 한다.
하몬드(Hammond) 박사는 ‘유카리스티아’(2169)(감사하는 말)는 보편적인 바울이 금지하였던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로써 은혜롭고 경건하고 신앙적인 말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헛되고 죄된 것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닌 한 우리의 기쁨은 그리스도인다움을 나타내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인간들에게서 선하고 경건한 표현이 더욱 풍부하여진다면 악하고 마땅치 않은 말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축복과 저주, 음란과 감사의 말이 한입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Ⅰ. 더러운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바울은 다음의 몇 가지 그래야 되는 근거를 제시하고 또 그 죄에 대한 치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1. 사도가 제시한 더러운 죄를 짓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
(1) 이러한 죄들은 우리로 하늘 나라에 가지 못하게 하는 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하여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고 있듯이"(5절)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의하여 이미 증거된 것이므로 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탐욕하는 자"란 말을 어떤 이는 이방인과 우상 숭배자의 확실한 증거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악한 욕망에 스스로 탐닉해 들어가는 음란한 방탕자로 이해한다.
또 다른 이는 이 말씀을 일반적인 뜻으로 해석한다. 즉 탐욕하시는 자는 곧 우상 숭배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영적인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
쾌락주의자는 자기의 배를 신으로 섬기듯이 탐욕하는 자는 돈으로 신을 삼아 그것을 사랑하며 세상적인 물질에 희망과 신뢰와 기쁨을 두는 자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소망과 믿음은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여 보존하여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탐욕하는 자는 하나님 대신에 돈을 섬긴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되고 있다.
이 나라는 그가 또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나라이라는 말로 볼 수 있으며 또는 본래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중재로서의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수여하신 나라를 뜻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 나라는 그 고귀하고 영광스러움과 충만함과 풍성함 때문에 여기서 하나의 왕국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의 성도들과 종들이 기업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의 욕망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은혜의 나라에 속할 수도 영광의 나라에 가게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하고 제외시키는 여러 가지 죄를 경계하는 데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 이러한 죄는 그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를 범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권고한다(16절). 즉 "아무도 너희에게 그러한 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허용되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처럼 혹은 너희가 그런 죄를 저질러도 면죄받을 수 있거나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것처럼 아첨하지 못하도록 하라. 이 모든 말은 헛된 말이다"는 뜻의 말씀이다.
한담하며 다니는 자는 자신과 타인들을 속이는 자들임을 명심하자. 이같이 사탄은 우리의 최초의 조상에게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는 헛된 말로 그들을 속였다. 이러한 말들은 진실로 헛된 말들이다. 왜냐하면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을 불쌍하게도 속아 넘어가서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게 됨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겠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믿지 않고 복음에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이다. 불순종에게 자신을 맡긴 모든 완고한 죄인들마다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불순종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교의 관습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죄는 어릴 적부터 존재하여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타락한 길로 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의 죄 때문에 이러한 자들에게 임한다.
주님의 진노는 때대로 이 세상에서 임하기도 하며 더욱 특별히 앞으로 올 세상에서 주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게 될 그러한 죄를 좋아해서 되겠는가?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7절)고 하신다.
즉 "그들이 저지르는 죄에 참여하지 말라. 그래야만 너희가 그들이 받을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러한 자들과 같이 죄된 방법으로 살며 그들의 죄에 대한 유혹과 간원에 응낙하거나 동의할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저지르는 죄를 추켜 주며 죄를 신속히 저지르도록 부추기며 우리의 힘이 자라는 한 그들의 죄를 막거나 저지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의 죄에 대한 동참자가 되는 것이다.
(3)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죄인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뜻은 이렇다. "그러한 길은 현재의 너희의 처지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이방인이며 회개하지 않았을 동안은 너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 너희는 크나큰 변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인들이 처해 있었던 대단한 어두움을 표현한다. 그들은 복된 성령의 은혜와 조명의 밖에서, 또는 결핍된 가운데서 교훈의 빛을 잃고 악하고 타락된 삶을 살았다.
죄의 상태의 어둠의 상태임 기억하자.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죄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영혼 안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되었다. 즉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구원의 빛을 받게 되었다.
"이제"라 함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인 지금"을 말함이다.
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였다. 히브리인들은 변증에 따르면 빛의 자녀들은 빛의 상태 안에 있는 자들이며 지식과 거룩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러한 자들이 되었으니 너희의 언행을 너희의 처지와 특권에 적합하도록 하며 너희가 즐기는 특권과 지식에 의하여 지게 된 책임을 따라 살라"는 말이다.
또한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였다(10절). 즉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찾고 시험하며 너 자신을 주의 뜻에 적합하게 함으로써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였음을 나타내도록 하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두려워하고 물어보며 그러한 목적으로 성경을 연구하여 그런 모든 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해야 할 것을 명심하자.
2. 바울은 그러한 죄를 피하는 묘법을 설명하였다.
(1) 만약 우리가 육적인 욕망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들이 빛을 받았으며 또한 성령에 의하여 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열매는 선을 행하게 하고 자비를 베풀게 하는 "착함"이며 우리가 행하는 바 안에서 "의로움"이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틀림없이 행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신앙은 선과 의이기 때문이다.
선함과 의로움 안에서 또 그것들과 더불어 진리는 존재해야만 하며 또는 마음의 성실성과 정직성 안에 또한 그것과 더불어 진리를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죄와 죄인들과의 교제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11절).
죄된 행실은 어둠의 행위이다. 죄의 행위는 무지의 어두움에서 나오고 은폐할 수 있는 어두움을 찾으며, 사람들을 지옥의 어둠에 인도한다.
이러한 어둠을 찾으며, 사람들을 지옥의 어두움에 인도한다. 이러한 어둠의 행위들을 "열매없는 일"이다.
어둠의 일을 오래 계속해 보아야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죄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코 잃는 것에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행위도 회개하지 않은 죄인의 철저한 파멸과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열매없는 일들과 사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즉 우리가 스스로 죄된 일을 행하기 않을 것은 물론이며,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과 상관하여서도 안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공범이 되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 죄에 대한 추천, 상담 동의, 은폐 등등의 행위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참여하였다면 우리는 그들이 받을 징벌에도 참여할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죄인과 교제하였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그들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한 가장 큰 위험 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다.
그들과 교제하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는 그런 자들을 꾸짖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과 함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신중하게 그리고 우리의 위치를 지키면서 반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로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적절한 때에 요령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 생활의 경건함과 신앙적인 대화에 의하여 그들의 죄를 경책할 것이다.
"그들의 죄를 책망하되 그 반대되는 행실을 많이 보여 줌으로 그리하라."
경책해야 할 이유는 "이러한 일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때문이다"(12절). 이러한 행위들은 너무나 추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꾸짖는 길 이외에는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며, 더구나 그러한 사람들과 교제한다는 것은 더욱 부끄러움만 안겨 줄 뿐인 것이다.
또한 저들의 죄를 사도는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12절)이라고 말한다.
사도는 이로써 이방인들의 우상 섬김과 그들의 무서운 비밀스러운 행위에 관하여 언급한 것 같이 보인다.
이방인들의 우상 섬김은 혐오스러운 악독으로 가득차 있고 죽음의 고통을 각오하지 않고는 그 일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선한 인간은 많은 사악한 인간들이 행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들을 말하는 것도 부끄러이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러나 악한 자들의 사악함이 표면에 들어날 때는 선한 사람들은 그것을 책망하여야 한다.
그러한 책망을 하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모든 것은 폭로되면 빛을 받아 드러나기 때문이다"(13절)(공동 번역인용).
이 말씀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어두움의 열매 없는 일들을 공개하라. 너희는 이 어두움의 일들을 책망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두움의 일들을 죄인 자신에게 신실한 책망자로서의 너의 입을 통하여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교리의 빛에 의하여 있는 그대로의 진상을 보여 주어라. 또는 너희 생활의 거룩함에 의하여, 발산되는 교훈적인 빛에 의하여, 그리고 "너희의 모범적 행실에 의하여 그들의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을 그대로 보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과 그리스도인들의 대화 가운데서 나타나는 말씀의 본은 그 죄인들에게 그들의 죄와 악함을 깨닫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말씀은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13절)는 말씀으로 계속 되고 있다.
이 말씀은 이전에 어둠의 가운데서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들어내는 것이 바로 빛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빛인" 빛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로 그들의 죄를 발견하게 하고 이 세상을 비추는 빛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악함과 위험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들어서 이러한 의무를 더욱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14절). 즉 "이것을 행함으로써 너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본을 따르게 그들을 죽음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도록 하시어 그들로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게 하시었던 것이다."
그 다음 "주께서는 이사야 60장 1절 상세히 표현된 주의 말씀과 같이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또는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주의 사역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죄인들을 부리고 계신다는 뜻이라고도 하겠다.
그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말씀 한다. 이사야 60장 1절과 같은 말씀이 본문에서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들이 비참한 안락과 어리석음에 대하여 깨닫게 하여 준다. 또한 죄인들이 자기들의 위험에 대하여 얼마나 무감각하여 천성적으로 영적인 행동과 감정에 얼마나 부적합한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어 일어나라고 부르실 때 그 말씀의 뜻은 죄인들이 회개함으로 자기의 죄를 벗어버리고 거룩한 순종의 길로 들어서라는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내게 비취시리라"하신 말씀 또는 "그리스도께서 너를 밝히시고 네 위에서 빛나시리라"하신 말씀 또는 "그리스도께서 너를 밝히시고 네 위에서 빛나시리라" 하신 은혜로운 약속에 의하여 그들이 자기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하고 시도하도록 용기를 주시고자 하는데 그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비취시리라"는 말씀의 뜻을 "주께서 너를 지식과 거룩성과 위로의 자리로 인도하시고, 주의 은혜로 도우시며 너의 마음에 즐거움과 자리도 인도하시고, 주의 은혜로 도우시며 너의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으로 활력을 주시며 종내에는 영원한 영광으로 상을 주시리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죄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들을 죄로부터 돌이켜 회개시키도록 노력할 때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위대한 목적인 바 이를 행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내게 비취시리라"는 말씀을 죄인들과 성도들에 대한 부르심으로 이해한다. 즉 죄인들에게는 회개하여 돌아서게 하고 성도들에게는 그 맡은 바 의무를 다하도록 격려하여 주는 말씀이라고 본다.
죄인들은 그들의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영적인 무감각 상태에서 깨어 나야 한다.
(3) 죄를 극복하는 또 다른 대책이 신중하게 경고되고 있다. "그런즉"(15절)이란 말은 즉시 뒤따라서 말하여지는 내용을 기대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만약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고자 한다면 너희는 맡은 바 의무를 성실히 감당해야 하며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진실로 다른 사람을 책망할 수 있기에 합당한 사람이란 스스로 신중하고 조심성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또는 "그런즉"이란 말씀은 앞에 이미 언급하였던 것과 또 다른 여러 가지 죄에 대한 예방이나 치료책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의도가 바로 사도의 의도하였던 바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극도의 신중함과 조심성 없이는 마음과 생활에 순결함과 거룩성을 지속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곧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 하여"(15절)라는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우리의 맡은 바 규칙과 자주 의논하여, 거룩한 말씀(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명령을 자주 생각하기 위하여 올바른 길을 정확하고 빈틈없이 가라는 뜻이다.
또 "지혜없는 자같이 말고"(15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며 자기의 의무에 대한 지각이나 자기의 영혼이 귀중함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며 태만하고, 게으르며, 부주의한 어리석은 자처럼 죄에 빠져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라"고 하신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은 것처럼 행하라는 말이다. 신중한 행함은 참된 지혜의 결과이며 그 반대의 행동은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다음 "세월을 아끼라"(16절)로 하였다. 직역한다면 "기회를 사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상거래나 고역을 하기 위하여 부지런하게 시기 적절한 때를 관찰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는 상인들이나 장삿군들로부터 비롯된 비유이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지혜 중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유혹을 경계하고 아직 능력이 있는 동안 선을 행하고 죄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특별한 사명으로 자기에게 삼으려고 하며 최고의 목적을 위하여 시간을 좋은 반려자로 삼으려고 하며 최고의 목적을 위하여 시간을 쓰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들은 현재의 은혜의 때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용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선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재능이다. 따라서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용되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의 낭비이며 상실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앞으로를 위하여 우리의 의무를 배로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상실된 시간을 보충하여야 한다. 그 이유로써 본문은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이 시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악함 때문이라는 말이거나 또는 "너희가 살고 있는 그 세월이 고난스럽고 위험스러운 시기라"는 뜻일 것이다. 오히려 후자의 뜻이 더 타당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바울이 이런 말씀을 쓴 것은 박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마다 위험에 처하여 있다고 하겠다. 세월이 악할 때 우리가 시간을 아껴야 할 더욱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 때가 얼마나 빨리 더 악해질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대가 악하다고 불평하기를 잘한다. 그러나 이 악한 세월을 인식함으로 그들이 때를 아끼기 위하여 분발하게 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17절)고 말하였다. 즉 세월이 악하기 떄문에 너희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너희 영혼에 관하여 태만하지 말라. 연구하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것을 너의 의무로 삼으라"는 말이다. 우리의 의무를 모르고 우리 영혼에 태만한 것은 대단히 큰 어리석음의 증거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주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Ⅱ. 다음으로 나오는 구절에서 바울은 몇 가지 특수한 죄에 대하여 경고하고 몇 가지의 의무를 강조하였다.
1. 그는 폭주(暴酒)의 죄에 대하여 경고한다.
그러므로 "술취하지 말라"(18절)고 하였다. 이것은 이방인들 가운데 상당히 흔한 죄였다. 특별히 이방인들은 그들의 신들의 축제 때에 특히 박카스의 제전 때 더욱 술취하였다. 그때에 이방인들은 술에 취하여 몸이 불탈 지경까지 도달하였고 이에 수반하여 모든 괴상한 욕망이 뒤따랐다.
그러므로 바울은 "술은 먹되 만취하지 말라"고 한다. ‘아소티아’(810)-즉 사치 또는 방탕을 나타낸다. 술취함은 생활의 정숙과 순결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모든 종류의 방탕을 일으킬 뿐이며 인간들에게 악한 관능과 천한 범행만을 심어 줄 뿐이다.
술취함은 그것만으로 죄가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인간으로 하여금 이외의 다른 여러 가지 죄에 빠지게 하는 죄임을 기억하자. 술취함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죄이며, 영적인 생활에 대단히 큰 장애가 된다.
바울은 모든 이러한 무절제와 방종은 세월을 아끼라는 충고를 통해 그가 제시하고 자란 엄격하고 신중한 삶과 반대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였다.
2. 술로 취하는 대신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것"을 사도는 그들에게 권면한다.
술로 취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과는 같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앞의 죄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바울의 권고의 의미는 인간들로 성령의 풍부한 은사를 받도록 노력하게 하려는 것이요 관능적인 인간들이 자기의 술잔에서 얻기를 기대하는 그러한 크나큰 기쁨과 능력과 용기를 성령이 그들의 영혼에 가득 채우게 하시기를 바라서였다.
성령은 은사를 얻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이 죄될 수는 없다. 우리는 약간의 성령을 받고 만족하여서는 안 되며 성령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경건한 행동을 하며, 그에 합당한 표현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더 나아가서,
3. "주를 찬송하라"고 권고하였다(19절).
주정뱅이는 음탕하고 타락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방인들은 박카스 축제에서 그들이 술의 신이라고 부르는 박카스를 위하여 찬양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기쁨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들은 집회에서 상호간의 교화를 위하여 이 찬양으로 회답하게 된다.
본문에 "시"라고 한 것은 다윗이나 또 그와 같은 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도록 지어진 것을 말한다.
"찬미"는 스가랴나 시므온의 찬미와 같이 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도록 지어진 것을 말한다.
"찬미"는 스가랴나 시므온의 찬미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찬미만에 국한된 작품들을 말한다. 또한 "신령한 노래"는 여러 가지를 다 함축하고 있는 말로써 교리적 예언적 자료들이 다 여기 들어간다.
(1) 복음은 시편과 찬미를 노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시와 찬미는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며 그의 영광을 위하여 지정된 것이다.
(2) 기독교가 타락한 환락을 적대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기독교는 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 즐거움과 환희를 누릴 것을 권하며 이러한 기쁨을 적절히 표현할 것을 권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뻐하며 환희의 찬미를 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들은 "노래하며 마음 속에서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목소리로써 뿐만 아니라 내적인 감사함에서 노래하며 이러한 그들의 음악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듯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그 노래를 그가 받으실 것이다(우리가 노래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는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찬미가 주를 기쁘게 할 것이다.
4. "감사" 바울이 권고한 또 다른 의무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시편 등을 노래할 의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항상 노래는 못한다 할지라도 "언제나 감사하는 생활"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감사할 이유가 없게 되기를 원하지 않듯이 또한 이러한 의무를 회피하려고 해도 안 된다. 우리는 생애 동안 항상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감사해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재 즐기고 있는 영적인 축복이나 앞으로 바라는 영원한 축복에 대하여 감사할 뿐만 아니라(전자의 것을 우리가 이미 소유하였고 후자의 것은 우리가 소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도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위로가 안기어질 때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화시키는 고난에 대하여서도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과 직접 관련된 것에 대하여 감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의 사실들에 대하여서도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와 찬송과 신령한 예배를 드리며, 또 이러한 우리의 봉헌이 그를 힙입어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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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된 자들과 아내된 자들의 상호 의무(엡 5:21-33)
위의 구절에서 바울은 서로 의무를 감당할 것을 권고함으로 그의 교훈을 시작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무의 일반적인 근거로 그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였다(21절).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거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품성에 대한 본보기였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또 각자의 선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정하여 주신 모든 의무를 감당할 마을을 지녀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란 그를 위하여 그리고 그를 의식함으로 또는 이 행동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두러워한다는 사실을 보증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다.
상호간의 겸손과 섬김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관계에서 생기는 의무가 좀더 잘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22절부터 끝절까지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의무에 관하여 언급한다. 바울은 이 문제를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리하여 아내의 복종의 실례로서 교회를 말하고, 남편의 사랑의 예로는 그리스도를 들었다.
Ⅰ. 아내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주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22절),
이러한 복종은 남편에 대한 존경과 순종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위엄에 순종하여 이일을 행해야 한다. 또는 이 말씀은 비교적인 용법으로 이해해서 "너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전자의 해석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에게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에게 복종하고 그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후자의 해석을 통하여는 하나님께서는 그에 관한 의무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주장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의무도 주장하고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사도는 아내들이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차지한 위치를 염두에 두고 하신 비유이다. 머리는 이성과 지혜와 지식이 담긴 곳이며 직각과 정서의 샘이 되는 곳으로 우리 몸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뛰어난 기관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 남자에게 명령하고 다스릴 권리를 주셨다. 그리고 이 관계에 대한 최초의 법에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데 이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들어온 죄의 영향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여자보다 우월하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같이" 여자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부여해 주신 우월성과 머리됨을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권위와 유사성이 있다. 또한 바울은 덧붙이기를 그가 "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교회를 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또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하시기 위하여 교회 위에서 역사한다.
꼭같은 방법으로 남편은 자기의 아내에게 위로와 보호를 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또한 그러므로 아내는 즐거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24절)는 말씀이 뒤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범사"라 함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에 일치하는 한에서의 모든 일 그리고 남편들이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Ⅱ. 반면에 남편의 의무는 아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25절).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자기 우월성과 머리됨의 주장은 권리의 남용이 되기 때문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특권을 남편들이 누리려면 상대적으로 그들을 자신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아내를 위하여 요구되는 특별한 사랑이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로 든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이 교회의 결점과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고 순결하며 뜨겁고 끊임없는 애정으로 가득찬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 사랑의 위대성은 교회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내어 주신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복종이 아내에게 본이 된 바와 같이 여기서는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남편의 사랑의 본보기로 언급되고 있음을 명심하자. 그러한 본보기를 각자에게 제시하고 또 각자에게 요구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불평할 이유를 없애려는데 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아내를 위하여 요구하신 사랑은 그가 자기에 대하여 아내에게 요구한 복종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또한 전술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하나님께서 아내의 받은 몫으로 정하신 남편의 사랑에 대한 풍부한 보상이 될 것이다.
사도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한 후 이를 부연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이유까지 설명한다. 즉 그것은 교회를 이 세상에서 성화시키고 다음 세상에서 영광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26절)라고 기록되었다. 즉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의 지체들에게 거룩함이 도리를 주시고 그들을 죄의 책임과 그 감염, 또한 지배에서 구원하시고자 함이었다는 말이다.
이 일을 이룰 수 있는 도구는 정해진 성례전 특히 세례의 씻음과 복음의 전달과 받아들임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27절)"라고 말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바울이 여기서 성결을 위해서 손을 씻는 유대인들의 특별한 배려를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몸의 일부라도 물에 잠기지 않을까보아 세심한 주의를 하였고 몸의 한 구석에라도 더러움이나 오점이 남아 있을까보아 주의하였다.
그러나 라이트푸트 박사와 달리 또 다른 이들은 바울의 옷이 세탁업자의 손을 거쳐서 나와 얼룩과 주름이 제거된 사실을 비하여 본문을 기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여하간 "그가 자기 앞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란 말씀은 심판날에 그가 교회를 완전히 일치되게 하사 지식이나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한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 앞에 서게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더러움이나 오점이 남아 있지 않게 하시고 그가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보시기에 좋은 것만을 교회에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라 하셨는데 이는 조그마한 죄라도 거기 남아 있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모든 교회를 영화롭게 하심을 교회를 성결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에 거룩함을 받은 자들만이 앞으로도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사도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지라"(28절)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과 더불어 한 몸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약으로 한 몸이 되었다는 뜻에서). 이것이 왜 남편이 충심으로, 열렬한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이 사실은 다음의 보충 설명으로 강조된다. 누구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는다(자기가 아무리 기형이고 불완전하더라도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29절). 오히려 "몸을 양육하고 보호한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고 사랑하며, 부지런히 여러 가지 풍부하고 유익한 것을 공급한다.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자기 몸을 돌본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풍성하게 양육하며, 교회를 위하여 유익한 것과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여 주시며, 교회의 영원한 행복과 복지를 위하여 도움이 되는 것으로 공급하여 주시듯이 자기 몸을 돌본다. 이같이 남자는 그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그가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은 "우리는 그 몸의 지체 곧 그의 살과 뼈이기 때문이다"고 바울은 말한다(30절). 바울은 이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주의 교회를 키우시고 풍성히 하시는 이유로 든다. 다시 말하여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까닭이다. 또는 본문은 "우리는 그 몸에서 나온 소속원들이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가 소유한 모든 은혜와 영광은 이브가 그 남편에게서 취하여진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의 몸과 살과 뼈의 지체들이라"고 여러 가지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주: 한글 개역에는 "그 몸의 지체"라고만 되어 있다) 어떤 이가 말하듯이 성경은 복합적인 대상을 표현할 때 여러 가지를 분류하여 표현하는 것을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세상을 하늘과 땅으로 말하고 한 날을 아침과 저녁이라고 부르듯이 여기서는 사람을 몸, 육체, 뼈로 세분하여 언급하였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므로"(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하나이듯이 남편과 아내도 하나이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게" 마련이다. 이것은 이브가 아담을 돕기 위한 반려자로 아담에게 주어졌을 때 아담이 한 말을 바울이 인용한 말이다. 창세기 2장 24절을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한 남자가 결혼하면 다른 친족관계는 취소된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다만 부부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를 끊는 한이 있어도 그의 아내와의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는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라"고 또한 말씀하였다. 즉 결혼에 의한 몸이 된다는 말이다.
"이 비밀은 큰 비밀이다"(32절). 사도가 인용한 아담의 말은 결혼에 대한 말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결합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합일에 비추어 볼 때 역시 숨겨진 비의가 있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 사이의 결혼에 의한 결합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결합의 유형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의 결합이 이러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모형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33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의무에 관하여 간략히 요약함으로써 바울은 5장을 끝맺었다. "그러나(결혼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숨겨진 비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을 너희를 향한 문자적인 뜻 그대로 받아들여)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는 것같이 신실하고, 특별하며, 독특한 사랑으로 아내에게 대하라는 말로 본장을 끝맺는다.
경외란 사랑과 귀하게 여김이란 복합적인 뜻이 있다. 경외란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는 배려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태도이다. 즉 경외하는 태도는 상태를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태도다. 아내들이 이같이 남편으로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마땅히 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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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제 5장
=====5:1
@그러므로 - 혹자는 '그러므로'가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4:1, 17;5:15, Lenski). 그러나 '그러므로'는 앞서 언급한 내용(4:25-32)의 결론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Bruce, Wood, Lincoln, Hendriksen). 왜냐하면 문맥상 1, 2절은 앞의 내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되고 -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근거가 된다(Meyer, Mitt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자녀이기 때문에(1:5)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마5:44-48; 벧전 2:21).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닮아야하는 성품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할 사랑의 모범은 그리스도 자신이다(Wood). 바울은 '같이'의 헬라어 '카도스'(* )를 사용하여 모방의 기준을 나타내고 있다(4:32). '카도스'는 그리스도인이 닮아 지녀야 할 사랑이 개인의 주관적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객관적 기준인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안에서 현시된 것이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경험한 사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를 위하여'의 헬라어 '휘페르 헤몬'(* )에서 '휘페르'는 무엇을 대리하여 행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Wood).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고 있다(LXX, 시 39:7; 히 10:5). '제물과 생축'에 대해서 혹자는 '제물'이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행하신 순종을 가리키며, '생축'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그러나 '제물과 생축'은 이사일의(二詞一意)로 모든 종류의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Lincoln). 한편 '향기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는 70인역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 많이 나타나며(창 8:21; 출29:18, 25, 41; 레 1:9, 13, 17) 신약성경 빌 4:18에서도 나타난다(Robertson,Bruce).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며 화해의 한 방편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시사한다(Wood).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5:3
@음행과...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살고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생활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권면한다.
@음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네이아'(* )는 합법적인 결혼 생활 이외에 빚어지는 모든 성적 부도덕을 지칭한다(마 5:32; 고전 5:1).
@더러운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다르시아'(* )는 세속적인 존재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윤리적, 종교적으로 추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탐욕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오넥시아'(* )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악들은 생각지도말고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권면한다.
=====5:4
@누추함과...마땅치 아니하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대해서 권면한다. 여기에 사용된 세 가지 악은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누추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크로테스'(* )는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말'과 같은 의미이다(골 3:8).
@어리석은 말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모롤로기아'(* )는 죄악의 성향(性向)을 지닌 좋지 못한 말로서 바보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리들을 가리킨다.
@희롱의 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트라펠리아'(* )는 본래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좋은 의미였으나 본절에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크게 위배되기 때문이다(Calvin).
@감사하는 말을 하라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최선의 태도는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훈계하고 있다(Foulkes).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유카리스티아'(* )는 '유'(* , '좋은')와 '카리스'(*, 은혜)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혹자는 '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하나(Calvin) 이런 경우로 사용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Mitton). 오히려 '유카리스티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말이 항상 흘러넘쳐야 한다(18절;골 2:7;3:15).
=====5: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이스테 기노스콘테스'(* )는 현재 명령법 또는 현재 직설법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전자의 경우로 보면 '이것에 대해 확신하라'(Be very sure of this, NEB, RSV)로 해석되며 후자의 경우로 보면 '너희가 이것을 안다'(this you know, KJV, NIV, Foulkes, Bruce)로 해석된다.이 두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Hendriksen).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본절에서 열거된 죄악의 범주들, 곧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본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탐욕을 우상 숭배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골 3:5). 우상 숭배자는 절제할 수 없는 탐욕으로 인하여 자신을 우상화하여 앞서 언급한 죄악을 범하는 자이다. 결국 이러한 자들은 어느 누구라도 다가올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수 없다(Wood).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헬라어는 '엔 테 바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이 데우'(* )로서 '크리스투'(* , '그리스도의')와 '데우'(* , '하나님')가 하나의 관사인 '투'(* )에 의해 수식된다. 이것은 '크리스투'의 나라와 '데우'의 나라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Caird, Gnilka).
=====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의 '누구든지'에 대해 혹자는 영지주의자라고 주장한다(Foulkes, Barth, Mitton, Abbott).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대상은 일반적인 거짓 교사들이다(Wood, Lincoln). 왜냐하면 바울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허망한 생각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가르침을 받은 진리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헛된 말을 경계함으로 죄악에 빠져 타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Hendriksen).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이를 인하여'는 속이고자 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기보다 앞절들에서 언급한 죄악을 시사한다고 본다(3-5절, Wood). 한편 '임하나니'의 헬라어 '에르케타이'(* )는 현재 시상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불순종의 아들들에게(2:2) 하나님의 진노가 현재와 미래에 임함을 시사한다(Abbott, Barth, Lincoln, Foulkes, Wood). 즉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된다.
=====5: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말라 - 본절은 3절에서부터 시작된 훈계를 결과적으로 마무리해 주고 있다(Wood, Lincoln).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추악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하여 행동해서는 안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Blaikie).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고 있다(2:1-3). 그들은 과거에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불신앙 상태에 있었으며 공중 권세 잡은자의 추종자였다(2:1, 2). 그러나 이제는 챰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9)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져냄을 받았으며 빛의 자녀가 되었다(골1:12, 13). 그러기에 에베소 교인들은 이제 '세상의 빛'(마 5:14)으로서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 가운데 드러내야만 한다(Hendriksen). 바울은 과거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의 생활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함으로 그들이 생활이나 행위면에서 불신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Calvin).
=====5:9
@빛의 열매는...있느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 열매로 증거되어야 함을 언급한다. 변화된 삶의 열매들은 세 가지이다.
@착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도쉬네'(* )는 일종의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하고 도덕적인 성품을 의미한다(Wood).
@의로움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쉬네'(* )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공정(公正)하고 올바른 행위를 의미한다.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4:24) '의로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생활의 열매이다(빌1:11; 히 12:11).
@진실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이아'(* )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한다(4:25; 요일 3:18). 이상 세 가지 빛의 열매들은 악의 결과로(4:31) 나타나는 어두움에 반대되는 것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형있게 나타나며 하나님의 참된 자녀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약 2:19).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알아보라는 의미이다(Hendriksen).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로 번역된 헬라어 '도키마존테스'(*)는 금속의 질을 판명할 때 쓰이는 단어로 실험을 통해서 무엇을 '실증하다', '규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일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롬 12:2).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할 뿐만 아니라(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두움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바울의 경고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죄악된 생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참예하지 말라'는 경고에서 그치지 않고 '책망하라'는 강한 경고를 한다. '책망하라'의 헬라어 '엘렝케테'(* )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혹자는 책망의 대상을 사람으로 생각하여 '납득시키다' 또는 '꾸짖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Halter). (2) 혹자는 책망의 대상을 어두움의 죄악으로 생각하여 '드러내어 폭로하다', '고발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Foulkes).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Wood).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속한 자들과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며 자신들을 죄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고전 13:6).
=====5: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 바울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에 대해 3-5절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며 탐욕이 가득차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 '은밀히 행하는'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가 심히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임을 암시한다.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죄악을 책망하며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드러낼때, 빛의 열매들은 어두움에 속한자들을 조명하여 어두움의 행위의 실체를 폭로하게 된다. 즉 빛의 자녀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맺는 열매를 통해서 어두움에 속한 자의 죄악을 드러냄으로 어두움에 속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위의 실체를 보게 하고 빛에 대해 응답하게 한다(Wood, Schlier).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하셨느니라 - 본절은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사 9:2;26:19;51:17;52:1;60:1 등과 연관된다. 이런 인용 구절은 초대 교회의 세례식(洗禮式) 찬송이다(Bruce, Foulkes, Wood, Lincoln). 이 세례식 찬송은 세 가지 비유로 이루어져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 '잠자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즉 어두움에 속한 자를 의미한다(Mitton). 한편 '깨어서'의 헬라어 '에게이레'(* )는 영적 부활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상태를 가리킨다(Lincoln, Wood).
@죽은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 '죽은 자들'은 앞서 언급한 '잠자는 자'와, '일어나라'는 '깨어서'와 병행된 것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 '비취시리라'의 헬라어 '에피파우세이'(*)는 천체 즉 해와 달을 떠서 빛을 발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LXX, 욥 25:5)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심을 뜻한다(요 1:9).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을 체험함을 보여준다(사 60:1; 행 12:6-11). 한편 본문은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변화가 인간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시사한다(Hendriksen).
=====5:15
개역성경에는 '블레페테'(* , '살피라')가 생략되어 있다. '블레페테'는 '자세히 주의하여'에 연결되는 말로, 이어지는 권면의 중요성과 긴박성(緊迫性)을 시사한다(Lincoln).
@그런즉 - 이것은 본절의 권면이 11절까지의 권면과 연관된 새로운 권면임을 나타낸다(Wood, Lincoln).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 본절의 '어떻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스'(*)의 위치가 사본에 따라 다르다. (1) 어떤 사본에서는 '아크리보스 포스 페리파테이테'(* ,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하여')로 되어 있다. (2) 어떤 본문에서는 '포스 아크리보스 페리파테이테'(*,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할지를')로 되어 있다(Textus Receptus). 두 가지 경우 중 전자의 경우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절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깊게 살피라'로 해석된다(Look carefully how you walk, RSV,KJV, NIV, Foulkes, Hendriksen).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 바울은 앞에서 빛과 어두움을 대조시킨 반면 본절에서는 지혜 있는 자와 지혜 없는 자를 대조시킨다. '지혜 없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포이'(* )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한다(Blaikie). 이것은 성도로서 꼭 알고 행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킨다. 한편 '지혜있는 자'의 삶은 조심스럽게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삶이다(Lincoln).
=====5:16
@세월을 아끼라 - '아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고라조메노이'(*)는 '도로 사다' '속량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율법으로부터의 구속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갈 3:13;4:5). 또한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론'(* )은 '중요한 시기' 또는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로(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그에 따르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권면이다(갈 6:9, 10).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본절은 15절 내용의 반복이다. '어리석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프로네스'(* )는 15절에서 '지혜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소포이'(* )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지각없이 행동하는 우매함이나 바보스러움을 가리킨다(Wood).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소극적이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며 적극적으로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15절의 '지혜 있는 자'에 대한 정의이다(Calvin). '이해하라'의 헬라어 '쉬니에테'(* )는 '어떤 것에 마음을 기울여 파악한다' 혹은 '노력을 쏟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이 세상을 살면서 주의 뜻을 잘 분별하고 주의 뜻대로 삶을 영위하여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시사한다(9, 10절; 롬 12:2).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바울은 본절에서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로 잠 23:29-35을 인용하여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당시 술 취하는 일은 불신자 세계에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초대 교회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딤전 3:3; 딛 1:7;2:3, Wood, Foulkes, Hendriksen). 술 취함은 단순히 그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생활이 무절제하게 되고 방탕하기 쉽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방탕'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티아'(* )는 술 취함의 현상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는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했다(Wood). 이것은 신약성경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 방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눅 15:13).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자로서 생활하려면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 곧 어리석음의 일을 금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 리고 '성령 세례'와는 다르다(1:13;4:30; 요 3:5;14:16; 롬 8:9; 고전 3:16).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세례는 단회적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구원의 때뿐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행 4:8, 31;6:3, 5;9:17;13:9, 52) 그리스도인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행 10:38; 11:24; 살전 1:5; 벧전 4:11, Lincoln). 즉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성령께서(롬 8:9; 고전 12:3) 그리스도인을 온전히 지배하며 인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충만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루스데'(* )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함축한다. (1) '현재 시제'는 성령 충만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채워져야 함을 시사한다(Lincoln). (2)'수동태'는 성령 충만이 인위적(人爲的) 체험이 아니라(갈 3:2, 5) 성령에 의해서 체험됨을 시사한다(Wood). (3) '명령형'은 성령 충만이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Wood).
=====5:19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얻게 된 기쁨을 찬양과 찬미의 열매로 맺었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찬양의 종류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살모이스'(* )는 구약성경 시편뿐 아니라 시편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 그 형태를 간직한 일반적인 찬양 노래들을 가리킨다(눅 1:46-55, 68-79;2:29-32;20:42;24:44; 행 1:20;13:33).
@찬미 - 이로 번역된 헬라어 '휨노이스'(* )는 신이나 영웅을 찬양할 때 부르던 노래를 의미했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당시에 초대 교회 내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doxology)을 가리킨다(막 14:26).
@신령한 노래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는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성령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어진 찬송을 가리킨다.
@서로 화답하며...노래하며 찬송하며 - 바울은 세 개의 분사를 사용해 앞서 언급한 찬양을 '부르는 것'에 대해 묘사한다. 이 세 가지 분사는 서로 중복된것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찬양함을 시사한다(Hendriksen).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항상'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감사는 모든 생명과 삶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Wood, Foulkes).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본절이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절이 앞서 언급된 성령충만의 생활에 연결된다고 주장한다(Lenski, Hendriksen). 왜냐하면 '복종하라'의 헬라어 '휘포탓소메노이'(*)가 분사로서 19, 20절에서 언급된 네 개의 분사와 일맥상통하기때문이다. (2) 혹자는 본절이 22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단락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Mitton, RSV, NEB). 왜냐하면 권고의 문맥에서 분사는 독립적인 동사나 명령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본절은 문법적으로는 20절에 연결되어야 하며 내용상으로는 다음 단락에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하다(Wood). '휘포탓소메노이'는 고대 군사 용어로서 본래 '...아래 정렬하라'는 의미이나 본절에서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위치로인해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따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 한편 상호간의 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이루어져야 한다. '경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 )는 '존경'보다 더 강한 의미로(Barth) '경의'나 '의무감'을 뜻한다(Lincoln).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강요나 위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상호 복종해야 한다.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헬라어 본문에는 '복종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나타나지 않으나 앞절의 '복종하라'와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Wood, Foulkes). 본절은 상호 복종하라는 명령중 아내의 의무에 대한 것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나타낸다(고전 11:3;골 3:18; 벧전 3:1).
이 명령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종속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기준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로 제시한다. 이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께 자율적(自律的)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주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권위에 따르며 순종해야 함을 의미한다.
=====5:23
@이는 - 이것은 본절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임을 뜻한다(Lincoln).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다 -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됨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팔레'(* )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2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Lincoln,Wood, Bruce, Foulkes).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함을 뜻하며 남편이 아내의 보호자임을 나타낸다(Wood, Foulkes, Bruce).
=====5:24
@그러나 - 이것은 앞의 내용을 역행하는 접속사가 아니라 앞의 내용을 계속해서 잇는 순행 접속사로 사용되었다(Wood).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바울은 앞절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함을 전제로 보호자가 됨을 시사한 후 본절에서 아내의 의무에 대해 강조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복종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골 3:18). 이 복종은 단지 명령에 대한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Hendriksen, 요일 4:19). 한편 '복종할지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탓세타이'(* )는 질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여자의 열등함으로 인한 종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질서에 대한 순응(順應)임을 시사한다(고전 11:3-12; 딤전 2:11-13).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하라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사랑'이다.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파테'(* )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킨다(Foulkes). 또한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무조건적이며 자기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 예증으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술한다(Wood, Foulkes).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목적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거룩하게 하시고'의 헬라어 '하기아세'(*)는 '분리시킨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을 뜻한다(벧전 2:9).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깨끗하게 함'으로 가능해진다. '깨끗하게 하사'의 헬라어 '카다리사스'(* )는 부정과거로서 문자적으로는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계속적 경험보다는 단회적 경험을 나타낸다(Foulkes). 논리적으로 볼 때 '거룩하게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함'이 우선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깨끗하게 함'과 '거룩하게 함'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Wood, Foulkes, Robinson). 또한 '하기아세'와 '카다리사스'는 모두가 부정과거로서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임을 시사한다(고전 1:2; 딤후 2:21). 한편 '카다리사스'와 '하기아세'의 과정을 이루기 위한 매개체(媒介體)는 '물로 씻음'과 '말씀'이다. 첫째로 '물로 씻음'은 물세례를 시사한다(히 10:22, Wood, Foulkes, Lincoln). 둘째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티'(* )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레마티'가 '물로 씻음'과 연관되어서 세례의식 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앙 고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Wood, Westcott, Mitton). (2) 혹자는 '레마티'가 '깨끗하게 하사'와 연결되어서 '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요 15:3;17:17, Lincoln, Foulkes).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세우다'의 헬라어 '파리스테세'(* )는 신약성경에서 신부를 신랑 앞에 내세우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고후 11:2). 신랑이신 그리스도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이며(1:18)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이다(3:21). 한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때라고 주장한다(Meyer, Hendriksen, Bruce, Barth, Wood). (2) 혹자는 31절에서 현재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몸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Schlier).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것이다(1:4).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노력이나 공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서 성취되어진다(23절, Wood, Foulkes).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 바울은 예증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되돌아와 본주제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Wood). '이와 같이...할지니'의 헬라어 '후토스 오페일루신'(*)은 25절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즉 남편은 자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Lincoln, Foulkes).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본절은 창 2:24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Bruce, Lincoln). 남편과 아내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 바울은 본절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비교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Calvin). 여기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크트레페이 카이 달페이'(*)는 문자적으로 '성숙하기까지 따뜻하게 감싼다'라는 의미로서(Wood)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며 보호하며 돌보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모습으로서 남편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여 성숙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처럼 깊은 영적 차원으로의 성숙을 요구하신다(고전 6:15-17).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모임인 교회를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몸인 아내를 잘 인도하여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4:11, 12, 25).
=====5:31
@이러므로 - 이것은 인용구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창 2:24에 있는 인용구 그 자체이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본절은 구약성경 창 2:24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결혼의 신비를 나타낸다(Foulkes). '합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콜레데세타이'(*)는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붙게 될 것이다'를 의미한다(Wood, Bruce).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룬다(고전 6:17).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이 비밀'은 앞절에서 인용한 창 2:24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Bruce),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가리킨다. '비밀'(* , 뮈스테리온)은 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괄(包括)한다(1:9;3:3,4, 9;6:19). 비록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언급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며 놀라운 것임을 시사한다(Bruce, Wood).
=====5:33
@그러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렌'(* )은 반의 접속사이나 본절에서는 '이제' 혹은 '여하튼'이란 의미로 이제까지 논해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서술하고자 함을 나타낸다(Lincoln, Bruce, Calvin).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결론적인 권면은 '사랑'과 '경외'이다. 여기서 '경외하라'는 말의 헬라어 '포베타이'(* )는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21절)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의무를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22절).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 대해 경외함으로 복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게 사랑을 베풀어야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숙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25-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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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으로 지속적으로 충만케 됨 유지하라))==
..<행2:1-4.......1 오순절이 되자, 그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Ac 2:1 And as the day of Pentecost was being fulfilled, they were all together in the same place. 2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 전체를 가득 채웠고, Ac 2:2 And suddenly there was a sound out of heaven, as of a rushing violent wind, and it filled the whol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3 불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분배되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렸다. Ac 2:3 And there appeared to them tongues as of fire, which were distributed; and it sat on each one of them; 4 그러자 그들이 성령으로 모두 충일되었고, 그 영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것에 따라 갖가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Ac 2:4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different tongues, even as the Spirit gave to them to speak forth.>
<엡5:18....18 술 취하지 마십시오.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방탕하게 합니다. 다만 영 안에서 충만해지십시오.Ep 5:18 And do not be drunk with wine, in which is dissoluteness, but be filled in spirit,>
===영 안에서 충만됨(거듭난 사람의 영 안에서 <성령께서> 충만해지시게 함>의 의미
사람의 영은 사람의 몸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장 18절은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그대의 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이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풍성이 실재하는 실제 누림으로 체득화 된 충만 그 자체가 되심처럼>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되도록 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은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영이신>생명주시는 영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영 안에서 충만되는<= 성령으로 충만 받는다는> 것은 본질적인 영으로 충만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영은 생명 주시는 그 영이십니다. 이 영은 곧 요한 복음 14장 17절에서 말한 그리스도를 실재화하는 실재의 영<동시에 실제, 곧 진리>의 영입니다.
에베소서 3잘 17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처를 정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영께서 우리 영 안에서 우리 온 존재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그다음 TUQ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을 점유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체험적으로 영 안에서 TUQ의 최종 완결인 본질적인 영으로 충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TUQ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로 온전히 점유되고 그분께 얻어지며 그분의 거처가 됩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온전히 TUQ로 충만되고 점유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의미입니다.
===영 안에서 충만되는 길
---철저하게 기도하고 죄를 자백함
어떻게 해야 우리가 TUQ으로 충만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철저한 기도와 죄의 자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새롭게 헌신하는 것이 좋지만 가장 귀한 것은 분주함 가운데서 시간을 내어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철저히 죄를 자백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여러분은 주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소서, 당신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지만 구원받은 날부터 오늘까지 저는 이렇게 철저히 죄를 자백하러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철저히 죄를 처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저의 모든 죄를 당신 앞에서 철저히 자백하지 원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자 하오니 저를 비추어 주소서.”
기도할 때 어떤 느낌을 찾으려 하지 말고, 주님의 영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순서에 따라 기도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 속에 있는 느낌을 따라 혹은 여러분의 기억에 따라 하나씩 주님께 죄를 자백하면 됩니다. 더 이상 자백할 것이 없고 느낌에서나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질 정도로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여러분은 속에서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로 충만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온종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말하는 것을 훈련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다만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만 행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에 많은 것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훈련해야 합니다.
아침에 먼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침대를 정리한 후 온종일 주님을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도 없을 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 당신 앞에 있으면 주 예수님을 말해야 합니다. 결국 당신은 주 예수님을 호흡하고, 주 예수님을 말하게 되어 삼일 하나님인 그 영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정상적인 생활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비결
---그 영을 소멸하지 않음
성령으로 충만된 후에 그 충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잇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영은 우리의 영을 불타게 하고 또한 우리의 은사를 불 일 듯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지 않음
둘째로, 우리는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는 것은 성령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그분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근심하시게 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까요? 이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기쁨이 없는 것은 여러분이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근심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한다는 것은 여러분 안에서 성령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자매들은 자신의 온 존재가 상쾌하고 가벼우며 참으로 기쁘다고 느낄 정도로 기도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이것은 그녀들 안에서 성령께서 기뻐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지 말라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을 근심하게 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성령에 순종함
셋째로, 긍정적인 것을 이루는 면에서 여러분은 성령에 순종해야 한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5장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곧, 성령은 사람들이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순종은 우리가 성령을 누리는 길이자 조건입니다. 로마서 8장 4절은 또한 우리가 육체를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충만되는 길이며 성령의 충만 안에 우리 자신을 지키는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연구해야 할 뿐 아니라 더욱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이것들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말라>...그분으로 (진정한 그대의 주인이자 주님인 바, 그분을 제한하지 말라) 그대의 주 되시게 해 드리라, 주 되심 따라 순중하고 그분을 추구하라-------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성령께서 그 마음 속에 들어가서 불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불이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3가지 방편(열심히 말씀 읽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면서), 전 존재 열어드림으로써 은혜를<믿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내주하시며, 움직이며 운행하시는 그리스도 자신> 은혜로써 받아 평강과 감사로((항기쉬기범감 안에서) 하나되어 일치-동행하면,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불이 커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에 무관심하거나 <자행자지함으로써> 은혜를 거절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이 점점 약해지다가, 최악의 경우 성령의 불이 꺼질 수도 있습니다.
■ 1. 우리가 성령님의 인격을 무시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소멸).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각 지(생각), 정(감정), 의지를 가진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기쁨, 슬픔, 만족감, 분노, 수치심, 근심, 탄식, 답답함, 질투 등 모든 감정을 느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계속 멸시하고 무시한다면, 성령님은 슬퍼하시고 분노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점점 말씀이 없어지고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엔 성령의 불이 꺼진 것(성령이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부재감).
▶여러분, 성령님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1)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항상 의식하십시오. “내가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면, 성령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를 기뻐하실까, 슬퍼하실까?”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성령님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2) 바리새인처럼, 성령이 행하시는 일과 능력을 의심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마12:31)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오늘날에도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음을 믿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성령님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 특별한 영적인 능력과 은사(성령의 9가지 은사, 고전12장)를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또, “너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 성령께서는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과 인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일하시는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 오묘한 지혜, 놀라운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여러가지 은사와 능력을 <주 뜻 이룸 위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 2. 우리가 예언을 멸시하면,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20절)
예언은 성경말씀을 의미합니다(벧후1:21). 성령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와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말씀을 하찮게 생각하고, 읽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거절함으로써 성령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가르쳐 주셨음에도,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배우십시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고,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21,22절). 그것이 성령의 인격을 존중하고,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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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성령 충만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이끌리는 삶을 말합니다. (사실 성령 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성령의 은사나 기적 행함 또는 열광적인 기도의 몰입이나 황홀경의 체험 등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이제 성령 충만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단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상태만 가지고는 우리를 충만히 다스리지 못하십니다. 우리들 자신의 욕망과 편견 등으로 가득 찬 영혼으로는 결코 성령 충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우리의 영혼이 붙잡히게 될 때 성령 충만의 상태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성령에 충만할 때 우리의 삶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와 복종의 영으로 넘치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8-21).
성령 충만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뜻으로 늘 영혼이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곧 성령 충만의 상태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대개의 크리스천들이 관념상으로는 성령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비록 성령 충만을 구하고 있지만 이를 얻지 못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많은 기도를 드렸을지라도, 실제로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인 복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 성령 충만을 구하고 계시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과연 내가 성령께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온전한 복종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시다면 이제는 마음의 태도를 회개하여 주님께 대한 복종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 성령 충만을 받았으나 현재는 충만한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주 쓰러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과연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성령께 복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그 부분을 새롭게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난 이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히 우리의 영혼을 통치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 신자의 삶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 분은 인격을 지니고 인격적인 관계를 우리와 맺기 원하십니다.
===또한 성령 충만이란 성령과 친밀히 교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피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8-10).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멀리 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온 것은 죄악과 수치와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인간의 영혼은 부패한 죄성을 유전(遺傳)으로 온 인류에게 이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어진 교제의 다리를 다시 잇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죄인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신앙의 경륜이 오랜 분들만이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신자라 할지라도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 나누기를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성령 충만한 상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회복이란 바로 주님과의 끊어진 교제를 다시 잇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에 대해 ]]
.....유행을 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지거나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교회 안의 어떤 실행은 성도들에게 유행을 타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동안 뭔가가 이뤄지는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거나 흐지부지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깬 후에 주님 앞에 나아가 잠잠히 그분을 앙망할 때, 문득 지난주 누렸던 아래 말씀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깊은 속에서 아래 말씀은 새해에도 계속해야 할 일로 제 마음 안에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모두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또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고전 12:13)."
위 말씀은 우리가 모두 한 몸 안에 있는 자가 되었으니(주님의 몸의 지체들이 되었으니), 한 영을 (계속) 마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 영을 마시라’(drink one Spirit)는 말씀은 적지 않은 분들에게 매우 낯설 수 있습니다.
즉 영(Spirit)은 곧 하나님이신데, 이러한 영을 마신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한 영을 마신다는 말은 위에서 보듯이 분명한 성경 용어임에도, 정작 영을 강조하는 한국 교계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한 성경 교사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각주를 달고 있습니다.
"그 영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은 그 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또 우리가 그분 안에서 <그분께 주권을 넘겨드림으로써>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 영을 마시는 것은 그 영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 존재가 그분으로 적셔지는 것이다. 이 두 과정에 의해 우리는 그 영과 연합된다. 그 영 안에서 침례를 받는 것은 연합의 시작으로서, 한 번 만에 영원히 이루어졌다. 그 영을 마시는 것은 연합의 지속이요, 연합의 성취이며, 영구적이고 영원한 것이다. 이렇게 연합되려면, 우리는 계속 주님을 불러야 하고, 생수의 원천이신 그분에게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야 한다(사 12:3-4, 요 4:10,14)(고전 12:13, 각주 5)."
아침에 영을 마시는 문제를 묵상하며 관련 구절들을 추구한 결과, 이 일은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평생 계속해야 할 일임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묵상하면서 제 안에 정리된 내용들을 조금 더 나누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영(물)을 마시라는 권면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영(혹은 물)을 마시라는 권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대표적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다. 내가 생명수의 샘을 목마른 사람에게 주어 거저 마시도록 하겠다”(계 21:6).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생명수를 거저 받아 마시십시오”(계 22:17).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요 4:14).
“모두 똑같은 영적인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영적인 반석에서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습니다”(고전 10:4).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사 55:1).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2. 어떤 물을 마시는가:
.....개역 성경은 위 본문을 “한 성령”을 마시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과 영어 성경에는 ‘성’(聖, 하기오스, Holy)에 해당하는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냥 ‘한 영’(one Spirit)을 마신다는 말입니다.
--이 한 영은 사도 바울이 말한 ‘영적인 물”(spiritual drink)(고전 10:4), 혹은 주님께서 명절 끝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십시오.”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the Spirit)”이라고 말씀하신 그 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마실 그 영이 그 당시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요 7:37-39).
따라서 우리는 이 영을, 한 번도 존재하지 않으신 적이 없는 제 3격 성령님과 동일시 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 영(요 7:39)은 많은 신학자가 침묵하거나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난해 구절에 해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온 설명은 이 영을 ‘생명 주는 영’,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한다면, 1)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2격)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1, 3격이 포함된 신격 전체이십니다(골 2:9). 2) 그분의 육신(인성)은 부활 후에 영광스럽게, 즉 다시 죽지 않게 되셨습니다(눅 24:26, 고전 15:43, 계 1:18). 3) 그러므로 이 영은 성부, 성자, 성령(삼위 전체)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그분의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영, 즉 관유(출 30:23-25)로 예표된 < 예수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Jesus Christ)>(빌 1:19)이십니다. 구약에서 관유는 복합된 재료들로 만들어졌습니다.
3. 어떻게 한 영을 마시나:
..... 많은 분들이 소위 성령 충만 받으려고 기도원 가고, 금식하고, 성경 읽고, 죄들을 자백하거나, 방언의 은사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행사같은 이런 실행과 달리, 위 본문이 말하는 ‘영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듯이 일상적이고 반복된 어떤 것입니다.
참고로 이사야 12장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함’, 2) ‘그분의 이름을 부름’, 3) ‘그분의 행하심을 선포함’(복음 전파), 4) ‘여호와를 찬송함’을 열거하고 있습니다(3-5절). --경험에 따르자면, 이 중에서 가장 도움 되는 것은 매 순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소리내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주 예수님’ 혹은 ‘주 예수여’라고 입으로 고백할 때, 문득 죄지은 일이 생각나 자백하거나, 말씀이 보고 싶어지거나, 짧은 찬송이 생각나거나, 누군가를 방문할 생각이 날 때가 많았습니다.
아침에 다시 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문제를 깊이 묵상할 때,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을 두고 설교할 때 요엘서를 길게 인용한 후에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결론지은 것(행 2:16-21),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박해하러 다닐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행 9:14, 21),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에 “각처에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을 포함시킨 것이 추가로 생각났습니다(고전 1:2).
이런 모든 묵상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분은 특정 교단 교인이 아니라 주님의 한 몸의 지체들(고전 12:12-27)이라는 사실과, 주님의 이름을 불러 한 영을 마시는 일(딤후 2:22, 고전 12:13)은 몸의 지체들이 지금까지 실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실행하게 될 영적인 생존 방식이자 특권임을 깊이 누렸습니다.
<오 주 예수님, 한때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를 구속하여 불러내사 당신의 몸의 지체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 몸의 지체로서 주님의 이름 불러서 한 영을 마시는 일을 새해에도 계속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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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 교회를 깨끗케 하심과 거룩케 하심>
1.아담과 하와에서 예표되었듯이(창), 교회가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과 본성을 갖게 하셨기에 그리스도의 배필이 될 수 있었음
... .그리스도는 교회를 성장하도록 공급-양육-돌봄으로써 소중히 품으심 : 아담은 이미 성장-성숙한 사람으로 창조되었지만,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기에<=건축 과정 거침으로써 성장 성숙에 도달하도록 하셨음을 의미> 먼저 아담으로부터 생명과 본성을 받았고, 여자로 만들어져 가면서 성장해 가고 있었음<이 성장 과정에 있어서는 양육과 소중히 품음<마치 바람과 태양이 서로 협력하여 편안케 함처럼>이 반드시 필요함, 즉 이미 존재하는 생명이 그 장성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그 생명에게 공급하고 돌보는 것과 관계됨>
2.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이처럼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말함.. 그리스도가 그리하신 목적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교회를 그분께 합당한 배필로서 자기 앞에 영광스럽게 세우시려 함인데, 이를 위해서 교회를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려(=성화 과정 거침) 하사 그렇게 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 과거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현재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장차 자신의 만족을 위한 배필로서 교회를 자신 앞에 세우실 것..그러므로 사랑하심은 거룩케 하심을 위한 것이요, 거룩케 하심은 세우심을 위한 것이다
..... 보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은 <교회 출현 위한> 구속과 생명 분배를 위한 것으로서, 요19:34에 의하면 창에 찔린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바 , 피는 <죄 사함의>구속을 위한 것이요 물은 교회를 출현케 하는 <성령의>생명 분배를 위한 것이다.
.....교회의 출현에 이어 거룩케 함이 필요하다. 이 성화 과정에는 적셔짐-변화-성장-건축이 그 안에 포함된다. 거룩케 하심 안에는 분별이 포함되지만, 그 주된 측면은 (그분의 모든 것, 모든 영광으로 임하여 부어주심 통한) 적셔짐 강력한 부으심-움직임-운행하심의 임재를 soaking이란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모세가 시내산에서 [2번째의 40일 금식 중보기도 기간 중, 주님 임재로 흠뻑 적셔졌던 장면이야말로 soaking의 전형일 것이다...한편, .soaking을 구하는 기도를 "집중기도"로 말하기도 한다>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데, 그 적셔짐은 변화-성장-건축을 수반한다. 분별-적셔짐-변화-성장-건축, 이 모든 면을 갖고 있는 그러한 성화 과정을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신장] 분량에끼지 완전하고 온전하게 되어 그리스도 앞에 세우심(present =드림) 됨인, 창2장에서 하와로 예표된 것의 실제가 된다. 즉, 교회의 출현-->거룩하고 온전-완전케 됨-->티나 주름 잡힌 것 없이 영광스러운 교회로 그리스도께 드려짐이 교회 산출의 세 단계인 것이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건축되어 아담을 위해 예비된 후, 그녀가 나온 근원인 아담 앞에 세워졌듯이, 교회는 그 근원이신 그리스도 앞에 세워질 것인데, 이 세워짐은 Q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 행해질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드리는 자이자 받는 자도 되실 것이다.
.... 그리스도의 돌보심, 곧 환경의 외적 조절인 <소중히 품으심>과, 내적인 생명 공급인 양육이 점점 무르익어 가며 꾸준히 지속될 때, 믿는이는 주님의 분별하심에 마음 열어드림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그 목적이 분명한, 사랑의 열심을 따라> 그리스도는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 교회를 깨끗하게 하심으로써 거룩케 하신다.
.... 그분이 자신을 교회에게 주심은 교회를 단지 통속적인 데서부터 자신에게로 분별할 뿐 아니라 자신의 배필이 될 수 있도록 그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적셔지도록 하심으로써 거룩케 하려 하심이다. 생각해 보라...우리 중에는 단지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통해서 주께로 분별되어진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고, 반대로 오히려 대부분은 교회 집회들 안에서 받은 도움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나와 Q께로 분별되어졌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별되기 위해 양육되고 소중히 품어져야 한다. 분별될 때 또한 적셔지게 된다. 양육함은 적셔짐을 또한 가져온다. 더 나아가 집회들 안에 있는 분위기 안에 소중이 품어질수록 더욱 우리는 세상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게 된다. 소중히 품어짐으로 우리는 세상 것들에 대한 입맛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향해 냉담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소중히 품어짐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적셔지게 하며, 이 적셔짐은 자연히 변화를 낳는다.,(본인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이들은 당신의 생명과 생활속의 변화를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다)
......변화는 가르침이나 교정 또는 징계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양육과 소중히 품음을 통해 온다.
그대가 신실하게 집회에 나와 양육되고 소중히 품어진다면 자연히 세상으로부터 분별되고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적셔질 것이요, 곧이어 성장과 변화와 건축이 있을 것인데, 이것이 신부가 그리스도를 위해 예비되는 길이다..
결국, 신부가 온전-완전케 되며 그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까지 성장하게 될것이요, 주님은 오셔서 이 예비된 신부를 그분 자신 앞에 세우시리라.
....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있는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말씀 안에 있는 물>은 흐르는 물로 예표된 Q의 생명 흐름(출17:6, 고전10:4, 요7:38-39, 계21:6, 22:1, 17)이다..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는 우리 죄를 씻어 주지만(요일1:7, 계7:14) 반면에 생명의 믈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인(27), 옛사람이 가진 천연적 생명의 흠들을 씻으시는데, 교회를 거룩하게 하실 때 주님은 먼저 그분의 피로 우리 죄들을 씻으시고(히13:12), 다음에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의 천연적인 흠들을 씻으신다, 즉, 교회가 거룩하고 흠없이 되기 위해 우리는 그러한 씻는 과정 속에 있다... 창2장의 하와는 아직 타락하지 않았으므로 깨끗케 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그녀는 아무 섞임이 없이 순수했지만, 우리는 오늘날 타락으로 인해 <자연을 포함한 만유도 함께 고통 받는 상태요> 오염되고 더럽혀졌기 때문에 많은 티나 주름잡힌 것들이 깨끗케 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육과 자아와 옛사람과 천연적 생명 등 우리 속의 많은 것들이 일소되어야 한다.
.... 주님의 양육하심과 소중히 품으심은 항상 그분의 깨끗케 하심으로 이어지는데, 이 깨끗케 하심으로 인해 <영적 신진대사 과정 안에 있는> 우리 존재 내의 <제반 세균들이 처리되고 소극적인 것들은 배설됨 인해 우리는 건강하고도 강건해진다. ... 특히 집회 안에서 이 깨끗케 하심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속에서 발생하기에, 교회 집회 안에서 양육되고 소중히 품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깨끗하게 된다. ... 깨끗케 하심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받는 영양 공급 그 지체임을 명심하라. 영양 공급이 그치면 깨끗케하심도 그친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공급 섭취를 날마다 계속 지속한다면 우리 속으로 섭취한 성분들이 우리를 내적으로 깨끗이 씻어 낡고, 죽고, 더러운 것들을 날마다 내어 보낼 것이다.
..... 깨끗케 하는 것은 거룩케 하는 것이요 생명의 물로 씻어 깨끗케 하는 것은 말씀 안에서이다. 이는 말씀 안에 생명의 물이 있음을 가리키는데, 이는 번제단과 장막 사이에 있는 물두멍으로 예표된다(출38:8, 40:7) 28절의 "씻음"의 헬라어는 <70인 역애서는> 물두멍을 의미하는데, 구약의 제사장들은 <물두멍에서> 땅의 더러움으로부터 자신들을 씻었다(출30:18-21) 이제, 그 물의 씻음은 더러운데서 부지불식간에 묻은 우리의 불결을 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안에 있는 물두멍에 의해 깨끗케 된다. [그런데, 이 물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아니라 우리를 씻는 물, 소극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물이다]
.....기억하라, 매우 실제적 의미에서 Q의 말씀이 바로 물두멍이다. 구약에 따르면 Q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장막 안에서 번제단 위의 피로써 자신들의 죄들을 처리해야 했으며 물두멍에서 씻음으로써 자신들의 더러움을 처리해야만 했다. 여기서의 바울의 관념은 교회가 Q의 말씀 안에 있는 <참된> 물두멍에 의해 깨끗케 된다는 것이리라. ... 구약에서는 제사장들이 먼저 번제단에 간 다음 물두멍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먼저 구원받고 구속되고 의롭게 되기 위해 십자가로 간 다음, 깨끗케 되기 위해 말씀으로 나아가는 바,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아니, 더러워진 느낌이 있을 때는 그 언제라도 망설임없이> 성경을 대하여 말씀 안에 있는 물두멍에 의해 씻음으로써<세상과의 접촉에서 쌓인 더러움으로부터> 깨끗케 되어야 한다.
..... 혹자는 <성경 말씀 매일 읽기>에 대해<비록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매일 성경 읽기 실행 중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다 잊어버린다>고 실망해서 그만두고 싶다 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계속하라....그 효과란 버드나무 바구니에서 쌀 씻기에 비유할 수 있는데, 여러번 바구니 안에 쌀을 담아서 물 통 안에서 씻으면서 바구니를 들어 올릴 때마다 물은 다 빠져나가지만 바구니와 쌀은 더욱 더 곱게 씻겨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곧 우리는 깨끗케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 26절의 씻음은 죄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티(spots)나 주름(wrikles)잡힌 것들<즉 결점들, blemishes>을 처리한다. 티란 천연적인 생명애서 나온 어떤 것들이며 주름잡힌 것들이란 늙음을 상징한다. 오직 생명의 물만이 그러한 결점들을 생명의 변화에 의해 내적인 신진대사로 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씻음은 전적으로 생명과 생명의 양육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제 용기를 내어 모든 결점과 늙음에서부터 유기적으로, 또 신진대사로 씻어질 수 잇도록 <양육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양육하는 생명 성분>을 받아들이기 위해 말씀을 접촉하자.. 그러한 씻음에 의해 교회는 거룩하고<그리스도로 적셔지고 배어들어 변화됨> 흠이 없고<결점 없고 천연적 생명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없음> 온전케 되고 영광스럽게 될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에게 영광스러운(Q의 표현이 된)) 교회를 드리실 것이다. ((영광이란, Q의 표현이자, 나타나심이다))
.... [티나 주름은 피부 생리적<천연적> 노화현상으로서, 자가 치유-균형 조절-회복 능력 저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주름은 피부 탄력성 유지 관련 천연 보습 인자들(히알루론산, 콜라겐)의 감소 + 피부 속 탄력 유지 섬유인 엘라스틴 변형 현상이 중복 발현되어 표피로 올라온 것 **티(=후천적 색점/기미....대부분 그 기전은 를 막는 멜라닌 색소가 과다 생성되어 표피로 올라온 것...UVA의 진피층 투과 증가는 피부 수분 손실 + 탄력 유지 섬유(엘라스틴) 손상 야기케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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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과 순종이라는 의미]]
====복종과 순종에 대해 성경적 의미를 찾고자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한글 단어로 살펴본 바로는 ‘복종은 머리 됨 즉 권위에 (엎드려) 굴복하여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순종은 하나님의 이끄시는 손 즉 말씀하시는 그분의 의(義)를 자각-인정-신뢰-의지하고 (순순히)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종은 권위, 권세에 대한 경외함과 경배함이며 순종은 질서에 대한 믿음과 의지와 따름입니다.
③ 머리와 손을 따르는 것은 복종과 순종임
하나님께서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능력인 오른손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순종을 ‘순순히 따르는 것’을 의미라고 하고 복종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무조건 억지로라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順從)이란 말에서 순(順) 자는 사전에 ‘순할 순’, ‘좇을 순’ 자인데 ‘순하다’, ‘온순하다’라는 뜻과 ‘좇다’, ‘도리에 따르다’, ‘거역하지 않다’, ‘기뻐하다’, ‘차례, 차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사전에 종(從) 자는 ‘좇을 종’ 자로 ‘좇다’, ‘따르다’, ‘복종하다’, ‘맡기다’, ‘듣다’, ‘나아가다’ 등의 뜻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순종(順從)이란 말의 사전상의 의미는 ‘순순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복(順服)이란 말은 사전 상 의미로 볼 때 ‘순순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순종(順從)과 복종(服從)은 일반적인 사전 상 의미와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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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머리와 손에 관한 중요한 주제를 명백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단어들을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래의 구절들은 ‘복종’과 ‘순종’을 함께 기록했습니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Remind them to be subject to rulers, to authorities, to be obedient, to be ready unto every good work,>(디도서 3:1)
===((복종, subject, --submissive<순복...영혼구원을 고려함>))위 구절에서 ‘복종하라’고 번역한 단어는 원어로 ὑποτάσω[휘포탓소]인데 ‘아래에 정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subject로 번역했는데 subject는 ‘sub(아래에) ject(던져진)’이란 뜻에서 형용사로 ‘지배를 받는’, ‘복종하는’, ‘종속하는’이라는 의미로 쓰이며 명사로서 군주의 지배를 받는 사람 ‘백성’, ‘신하’, ‘피지배자’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subjection은 ‘정복’, ‘복종’이란 뜻입니다.
===((순종, obey))또한 위 구절에서 ‘순종하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πειδαρχέω[페이다르케오]인데 ‘확신을 가지다’, ‘믿다’, ‘설득하다’, ‘신뢰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인 πείδω[페이도]와 ‘지배하다’, ‘다스리다’, ‘시작하다’라는 뜻인 ἄρχω[아르코]라는 단어의 합하여 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뜻은 ‘권위에 순복하다’, ‘순종하다’, ‘듣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obey로 번역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Obey the ones leading you and submit to them, for they watch over your souls as those who will render an account, that they may do this with joy and not groaning; for this would be unprofitable to you..>(히브리서 13:17)
........위 구절에서 ‘순종하라’는 위에서 설명한 πείδω[페이도]라는 단어이며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obey로 번역했습니다.
........위 구절에서 ‘복종하라’는 [휘페이코]인데 ‘아래’라는 ὑπό[휘포]와 εἴχω[에이코]라는 ‘항복하다’, ‘굴복하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 subject 유사한 단어로 submit로 번역했고 ‘복종시키다’, ‘따르게 하다’, ‘굴복하다’, ‘항복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영어 명사 submission은 ‘복종’, ‘항복’, ‘굴복’, ‘순종’이라는 뜻입니다.
........한글개역성경에서 ‘복종하다’로 많이 번역된 헬라어는 ὑποτάσω[휘포탓소]입니다(로마서 10:3; 고린도전서 14:34; 15:28; 16:16; 에베소서 1:22; 5:21,24; 빌립보서 3:21; 골로새서 3:18; 디도서 3:1; 히브리서 2:5,8; 12:9). 이 단어는 ‘순복하다’라는 말로도 번역했습니다(야고보서 4:7; 베드로전서 2:13,18; 3:1,22; 5:5).
........한글개역성경에서는 ‘복종하다’로 번역된 ὑπακούω[휘파쿠오]는 ‘순종하다’로도 번역되었습니다(마태복음 8:27; 마가복음 1:27; 4:41; 누가복음 8:25; 17:6; 로마서 1:5; 5:19; 6:12,17; 10:16; 에베소서 6:1,5; 골로새서 3:20,22; 데살로니가후서 3:14; 히브리서 5:8,9; 11:8; 베드로전서 1:14; 2:22). 따라서 성경번역자들은 복종하는 것이나 순종하는 것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한글개역성경에 ‘순종하다’라는 말로 번역된 것이 영어성경(KJV)에는 주로 obey(명사로 obedience)라는 단어로 번역된 것도 별 차이가 없음을 보여줍니다(마가복음 1:27; 4:41; 누가복음 17:6; 사도행전 5:29; 로마서 1:5; 5:19; 6:12,16; 고린도후서 2:9; 에베소서 6:1,5; 골로새서 3:22; 데살로니가후서 3:14; 히브리서 5:8; 베드로전서 4:17…).
..........또한 한글개역성경에 ‘복종하다’로 번역된 말도 같은 영어성경에서는 obey(명사로 obedience)로도 번역되었습니다(사도행전 6:7; 7:39; 고린도전서 14:34; 고린도후서 10:5,6; 빌립보서 2:8; 데살로니가후서 1:8; 디도서 2:5…).
...........참고삼아 믿음은 행함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고 강조했고 개혁자들이 오해를 일으켰던 야고보서에서 ‘순종하다’(야고보서 3:3)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πείδω[페이도]라는 단어이며 ‘확신을 가지다’, ‘믿다’, ‘설득하다’, ‘신뢰하다’ 등의 뜻을 갖는 것을 이미 설명했습니다.
복종과 순종에 대해 성경적 의미를 찾고자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한글 단어로 살펴본 바로는 ‘복종은 머리 즉 권세에 굴복하여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순종은 하나님의 손 즉 그분의 의(義)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따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종은 권위, 권세에 대한 경외함과 경배함이며 순종은 질서에 대한 믿음과 의지와 따름입니다.
=====>*** 제도권 안에 사는,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자세 = 복종 안에서 순복 견지함 = Q의 지혜를 신뢰하고, 주 뜻 이룸 위해 중보하며 동행함 ****
==
==주님께 subject<복종 : 머리되심의 절대 권위 인정하여 무릎꿇고 경배함> + obey<순종.....인도자 되심 인정하고 그분의 손의 이끄심따라 동행함>이 합당함
절대 권위는 오직 Q이십니다..모든 권위<권세는> <이를 위임하거나 허락하신> 주로부터 옵니다..
....위임 권위는 Q이 <친히 부르셔서 위임하신 권위...모세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아론이나 미리암은 그것을 오해했었지요>입니다.
사탄의 권세조차도 <주 하나님 허용하심 없이> 그냥 탈취한 것은 아니기에 예수님은 그 권세에 대해서는 구태여 공박하지 않고 계십니다.
....한편, 세상 권세는 (사람들은 권력 투쟁 결과 얻었다고 폄하하지만...Q이 <긍정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우리의 고요하고 평안한 가운데 신앙 생활 할 수 있도록!!> 이 때에 한하여!! 허락하신) 대리 권위입니다. (믿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위에 두신 위임 권세나 대리 권세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함이 옳을까?..하는 문제는 주 보시기에는 주님 뜻에 번적으로 복종-순종, 또는 순복하느냐, 곧 <반역> 여부에 대한 문제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이 권위들을 이해하고 반응함에 있어서 필수 전제 조건은 무엇보다도 영존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Q의 초월적 지혜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이것은 전쟁-기근-지진-역병을 겪는 와중에서도 동일한 태도로, "[내가 다시한번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리라]하신 선하신 주님!!, 오직 이 상황을 있게 하신 주님의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특히 창세전에 택정한 모든 자마다 회개하고 구원 받아 주관적인 생명-인격이신 그리스도 앎의 그분의 몸 안으로 이끄시는] 지고지선하신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구하며, [주여 지금 나는 이 때 무엇을, 어찌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여쭙는 것이 마땅합니다..) .. 불신자인 세상 사람들의 <제 멋대로!! 반역하는> 반응 그대로 <휩쓸려!!>따라 가서는 절대 안되지요.. 주님이 뭐라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지 친히-개인적으로-더 나아가 교회적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보기에는 느부갓네살은 분명히 악한 권세였으나> 그렇게 주관적-객관적으로 경험된다 해도 예레미아는 <순종하여 그 곳에서 주님의 예비하신 때까지 평안히 살면서 오히려 번영해야 함>을 말했으며, 다윗은 사울을 해할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음에도 <주님 마음을 따라!!>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사울 왕 해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subject to.."복종하라"는 말이지만, 그 속 내용은 실지로는 submissive to, "순복하라"는 말로 느껴집니다..(("영혼구원 위해 보냄 받은자 됨을 자각하는 가운데 주님의 절대적 머리되심을 생각하여 복종하되, 복종하는 자된 그의 마음 중심에는 주님 소유된 기업이자 백성 됨에 대한 자각으로 "주께 하듯, 주 섬기듯" "주님 인도따라" 항상 선으로 행하라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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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수시아ἐξουσία와 뒤나미스δύναμις]]
[개역(개정)]판 신약에서 ‘권위’, ‘권세’, ‘권능’ 등의 원어를 살펴보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이거나 ‘뒤나미스δύναμις’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자격이나 권리 등의 뜻이고,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적인 힘이므로 이 두 낱말은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데 [개역(개정)]은 ‘권위’, ‘권능’, ‘권세’ 등을 일관성없이 사용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에 읽을 때 어려움이 있다.
일차적인 원인은 번역자가 두 낱말의 의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데 있겠지만(신학적인 이유), 그 한자어들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불분명성도 그 못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어휘 자체의 문제).
한자 ‘權(권)’은 ‘자격’, ‘판단/판정’ 등의 뜻을 갖고 있어서 이 한 음절만으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를 나타낼 수 있다. [개역개정]에서는 달라졌지만 [개역]에서는 그 예들을 찾을 수 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21; 개역개정은 ‘권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4-6; 개역개정은 ‘권리’)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히 13:11; 개역개정은 ‘권한’) ]
여기에 ‘힘’의 뜻을 갖는 ‘威(위)’, ‘勢(세)’, ‘能(능)’ 등이 붙어서 ‘권위’, ‘권세’, ‘권능’이 되었으니 이 낱말들은 출생부터 구별되어야 할 두 개념이 붙어 있는 말이다. 이런 낱말들을 사용하여서 구분하여 나타내야 할 말들의 대응어로 삼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요약하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에는 ‘권위’나 ‘권세’보다는 차라리 ‘권리’나 ‘권한’이 나아 보이고 아예 ‘자격’으로 옮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정]역에서는 ‘권리’나 ‘권한’을 비교적 더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주 대응어는 ‘권능’이나 ‘권세’로 볼 수 있는데 어감상 오해의 소지가 좀 줄어들겠지만 이 역시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1.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자격, 영역, 소속, 원천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어떤 일/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때 엑수시아가 있는 것이다. 위에 보인 것처럼 ‘권리’나 ‘권한’으로 옮기는 것이 좋고 영어로는 authority, right, capacity 등이 적당하다. 엑수시아를 ‘권능’으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오역이라고 본다. 몇 본문들을 살펴본다. 본문은 모두 [개정개역]이다.
(본문1)[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 9:6)]
여기 ‘권능’은 오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힘’이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병행본문은 ‘권세’로 옮겨서 좀 낫지만 두 경우 다 권리나 자격으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10)]
(본문2)[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9:8)]
본문1에서 마태복음의 이어지는 이 본문의 ‘권능’ 역시 마찬가지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본문3)[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이 본문도 마찬가지다. 얼른 생각하면 뒤나미스δύναμις가 어울릴 것 같은 자리인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가 사용되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축사와 신유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주신다. 아래는 ‘권위’ 또는 ‘권세’로 번역한 예들이다. 다행히 문맥이 뜻을 붙들고 있다.
[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 >
2.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로 나타난/나타나는 힘이며, 그래서 어떤 상태나 위치를 변경시킬 수 있는 크고 작은 능력이다. 그런 뜻으로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힘이나 능력을 실제로 소유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존재나 인격을 가리킨다. ‘권능’으로 자주 번역되지만 다른 낱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역은 power, might, strength, ability 등으로 옮기는데 복음서에서는 자주 miracle로 번역한다. 유의어로는 κράτος, ἰσχύς, ἐνέργεια 등이 있는데 다른 기회로 미룬다.
(본문1)//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 ‘권세’는 애매한 번역이다. ‘능력’ 또는 ‘힘’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 가이사가 갖고 있는 힘이 실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갖고 계신 힘이 실제적이고 진짜 힘이라고 교회가 고백하는 것이 이 송영의 의미이다.
(본문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
이 본문의 ‘능력’은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뜻을 잘 드러낸 번역이다. 뒤나미스는 실제로 작용하거나 작용할 수 있는 힘이다. 사두개인이 믿든 믿지 않든 부활의 능력이 아버지께 있다. 아버지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실제적인 능력이므로 부활도 실재다.
(본문3) [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
이 ‘재능’ 역시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번역어이다. 대부분의 영역은 ability로 번역하였고 SLT는 power로 번역하였다.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는 그 달란트를 다룰 수 있는 ‘능력’따라 맡긴다.
(본문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
이 ‘권능’은 증인이 될 수 있는 ‘자격/권위’가 아니라 증인이 되는 ‘힘’이다. 제자가 될 자격/권위 – 엑수시아ἐξουσία – 는 주께로부터 받고 제자가 증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받는다. 성령께서 주시는 증인 능력은 실제적인 능력이다.
아래는 다소 다른 낱말이 사용된 경우들이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 πύλη’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κατεξουσιάζω’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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