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5장 ...출32 하단을 참고하라
[전가, 전이]의 교의 말씀을 권능의 영광으로 증거하사 [참되다]하시는 분은 [시공차원을 초월하여 전지전능,영존영생충만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412.내영혼의 그윽히깊은데서]..너는 마음의노래가있느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아담과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표준새번역]제5장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은 사람의 삶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습니다. *7.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그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쳤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지배할 것이 아닙니까?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아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로 사람을 지배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 Romans 5 Amplified Bible ==Results of Justification *1.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justified [that is, acquitted of sin, declared blameless before God] by faith, [let us grasp the fact that] we have peace with God [and the joy of reconciliation with Him]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2. Through Him we also have access by faith into this [remarkable state of] grace in which we [firmly and safely and securely] stand. Let us rejoice in our [a]hope and the confident assurance of [experiencing and enjoying] the glory of [our great] God [the manifestation of His excellence and power]. *3. And not only this, but [with joy] let us exult in our sufferings and rejoice in our hardships, knowing that hardship (distress, pressure, trouble) produces patient endurance; *4. and endurance, proven character (spiritual maturity); and proven character, hope and confident assurance [of eternal salvation]. *5. Such hope [in God’s promises] never disappoints us, because God’s love has been abundantly poured out within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who was given to us. *6. While we were still helpless [powerless to provide for our salvation], at the right time Christ died [as a substitute] for the ungodly. *7. Now it is an extraordinary thing for one to willingly give his life even for an upright man, though perhaps for a good man [one who is noble and selfless and worthy] someone might even dare to die. *. But God clearly shows and proves His own love for us, by the fact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9. Therefore,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declared free of the guilt of sin] by His blood, [how much more certain is it that] we will be saved from the [b]wrath of God through Him. *10. For if while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it is much more certain, having been reconciled, that we will be saved [from the consequences of sin] by His life [that is, we will be saved because Christ lives today]. *11. Not only that, but we also rejoice in God [rejoicing in His love and perfection]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and enjoy our reconciliation [with God]. *12. Therefore, just as sin came into the world through one man, and death through sin, so death spread to all people [no one being able to stop it or escape its power], because they all sinned. *13. Sin was [committed] in the world before the Law [was given], but sin is not charged [against anyone] when there is no law [against it]. *14. Yet death ruled [over mankind] from Adam to Moses [the Lawgiver], even over those who had not sinned [c]as Adam did. Adam is a type of Him (Christ) who was to come [but in reverse—Adam brought destruction, Christ brought salvation]. *15. But the free gift [of God] is not like the trespass [because the gift of grace overwhelms the fall of man]. For if many died by one man’s trespass [Adam’s sin], much more [abundantly] did God’s grace and the gift [that comes] by the grace of the one Man, Jesus Christ, overflow to [benefit] the many. *16. Nor is the gift [of grace] like that which came through the one who sinned. For on the one hand the judgment [following the sin] resulted from one trespass and brought condemnation, but on the other hand the free gift resulted from many trespasses and brought justification [the release from sin’s penalty for those who believe]. *17. For if by the trespass of the one (Adam), death reigned through the one (Adam), much more surely will those who receive the abundance of grace and the free gift of righteousness reign in [eternal] life through the One, Jesus Christ. *18. So then as through one trespass [Adam’s sin] there resulted condemnation for all men, even so through one act of righteousness there resulted justification of life to [d]all men. *19. For just as through one man’s disobedience [his failure to hear, his carelessness] the many were made sinners, so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Man the many will be made righteous and acceptable to God and brought into right standing with Him. *20. But the Law came to increase and expand [the awareness of] the trespass [by defining and unmasking sin]. But where sin increased, [God’s remarkable, gracious gift of] grace [His unmerited favor] has surpassed it and increased all the more, *21. so that, as sin reigned in death, so also grace would reign through righteousness which brings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Footnotes Romans 5:2 In the NT the word “hope” expresses a cherished desire along with the confident assurance of obtaining that which is longed for. Romans 5:9 The “wrath of God,” with the definite article in Greek, anticipates the outpouring of God’s wrath on rebellious sinners in the tribulation period (cf Rev 6:16, 17). Romans 5:14 Lit in the likeness of Adam’s transgression. Romans 5:18 Salvation is available to all people who respond and place their personal trust in Christ. ---------- Romans 5 New King James Version ==Faith Triumphs in Trouble *1. Therefore, having been justified by faith, [a]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2. through whom also we have access by faith into this grace in which we stand, and rejoice in hope of the glory of God. *3. And not only that, but we also glory in tribulations, knowing that tribulation produces [b]perseverance; *4. and perseverance, [c]character; and character, hope. *5. Now hope does not disappoint, because 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i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ho was given to us. ==Christ in Our Place *6. For when we were still without strength, [d]in due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7. For scarcely for a righteous man will one die; yet perhaps for a good man someone would even dare to die. *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9. Much more then, having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we shall be saved from wrath through Him. *10. For if when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we shall be saved by His life. *11. And not only that, but we also rejoice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the reconciliation. ==Death in Adam, Life in Christ *12. Therefore, just as through one man sin entered the world, and death through sin, and thus death spread to all men, because all sinned— *13. (For until the law sin was in the world, but sin is not imputed[=산입/전가하다=여겨처리하다] when there is no law. *14. Nevertheless death reigned from Adam to Moses, even over those who had not sinned according to the likeness of the transgression of Adam, who is a type of Him who was to come. *15. But the free gift is not like the [e]offense. For if by the one man’s offense many died, much more the grace of God and the gift by the grace of the one Man, Jesus Christ, abounded to many. *16. And the gift is not like that which came through the one who sinned. For the judgment which came from one offense resulted in condemnation, but the free gift which came from many [f]offenses resulted in justification. *17. For if by the one man’s [g]offense death reigned through the one, much more those who receive abundance of grace and of the gift of righteousness will reign in life through the One, Jesus Christ.) *18. Therefore, as through [h]one man’s offense judgment came to all men, resulting in condemnation, even so through one[i] Man’s righteous act the free gift came to all men, resulting in justification of life. *19. For as by one man’s disobedience many were made sinners, so also by one Man’s obedience many will be made righteous. *20. Moreover the law entered that the offense might abound. But where sin abounded, grace abounded much more, *21. so that as sin reigned in death, even so grace might reign through righteousness to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Footnotes Romans 5:1 Some ancient mss. let us have Romans 5:3 endurance Romans 5:4 approved character Romans 5:6 at the right time Romans 5:15 trespass or false step Romans 5:16 trespasses Romans 5:17 trespass Romans 5:18 Or one trespass Romans 5:18 Or one righteous act ====== 로마서 5장 (개요) 사도는 자기의 요점인 이신칭의를 충분히 입증한 만큼 본장에서는 이 진리의 보다 세밀한 전개와 설명 그리고 그 적용을 펼치고 있다. Ⅰ. 칭의의 열매(1-5). Ⅱ. 칭의의 근원과 원천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6-21). ======== 칭의의 열매(2)(롬 5:1-5) 칭의의 귀한 혜택과 특권을 우리 모두 열심을 가지고 우리의 것으로 삼아 의롭게 되고 거기서 오는 위로를 우리 것으로 삼고 거기서 오는 의무 또한 우리 것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더할 수 없이 지극히 귀한 것이다. Ⅰ.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이 있다"(1절).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싸움을 부채질하는 가운데 소외감뿐 아니라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죄다.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계속 죄책아래 머무는 한 결단코 그와 평화로울 수 없으시다. 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서 주신 바, 구주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의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칭의, 곧 그리스도 자신의 의가 죄책을 근본적으로 없애주고 평화의 길을 터 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이 어찌나 큰지 이 장애물이 제거되는 순간 거기에는 평화가 곧바로 성립된다. 구주대속의 은혜를 붙드는, 바로 그 발휘되는(믿어 들어가는) 믿음만이 Q의 팔과 힘을 붙잡는 유일하게 허용된 수단이요, 하여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사 27:4, 5). 이 평화 속에는 적대감의 단순한 정지 상태 이상의 것이 담겨 있는 바 거기에는 우정과 사랑이 한량없이 담겨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호관계 원칙상, 하나님은 믿는 이 그 자신에게서도 그러하지만, 하나님 그분 자신에게도 믿는 이 자신은 철저한 원수이든가 절친한 친구이든가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후에 "하나님의 벗"(약 2:23)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것도 아브라함만의 것은 아님을 눈여겨 보도록 하자 .. 보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친구"라 부르셨었다(요 15:13-15). 따라서 오로지 Q으로만 [진정한 의미에서 참살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은 그 무엇보다도 Q을 자신의 친구로 삼는 일이며, 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은 결단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곧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위대한 중보자요 화해자요 양자 모두에게 손을 쓰는 위대한 축복의 날의 사람인 그분을 통해서 말이다. 범죄 이전의 아담은 순수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고 동행함의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죄된 인간마다마다에게는 길-진리-생명-빛 구주JC를 통하지 않고서는 Q을 생각한다는 건 그 어떤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는 우리의 화평,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거룩하시며, 측량 못할 극진한 사랑이신, 유일무이한 한량없이 다함없이 넘쳐나는 화평 - 화평의 하나님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엡 2:14). 즉, 평화를 가져오는 자일 뿐 아니라 이 평화의 본질이자 보유자이신 것이다(골 1:20). Ⅱ.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2절). 이것은 더더욱 귀한 특권이다. 곧 화평뿐 아니라 은혜까지 받는 것이다. 1. 성도들의 행복한 상태. 이것은 은혜의 상태이니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이 그대로 우리를 적시고, 점유-충만-변화-넘침-감상/음미-감동감격-감사-경배/찬양함의, 우리가 하나님과 참되게 일치하는 기쁨과 즐거워함의 바로 그러한 상태다. 하나님의 사랑과 형상을 가진 자란 [진실로 참되게] 바로 이 은혜의 상태에 머무는 사람이다. 이제 이 은혜에 [죄를 회개하고 구주 JC를 영접하고 믿는, 구주의 대속하는 보혈능력을 믿는] 우리가 접근(프로사고겐 - "안내받아")하게 되었으니 이 말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에게 원수"라는 말처럼 우리가 이 상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리 이 상태로 [지성소안으로 ..구주JC보혈을 힘입고 의지하여 그 보혈에 의해 이끌려...보혈은 구주의 손이다!!] 인도되었다는 걸 뜻한다. 우리 자력으로는 여기에 이를 수 없었으며 이 길에 놓인 장애물도 제거할 수 없었으나 손의 이끌림을 받은 것이다. 마치 눈먼 사람, 지체불구, 허약한 사람이 이끌리듯이, 또는 이방인이 특별히 제가를 얻어 임금을 알현하도록 안내되듯이 말이다. "우리가……들어감을 얻었으며"(프로사고겐 에스케카멘) 여기서 그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 은혜의 상태로 이끌려내진 자들을 두고 말하고 있다. 바울도 회개함 통해 이미 이 안내를 받아 가깝게 된 터였다. 바나바가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으며(행 9:27) 그는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었다"(8절). 그러나 실지로 이 은혜에로 손을 끌고 안내해 간 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였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가 원저자요, 원 동인이고, 믿음은 이 접근의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의 어떠한 공로를 감안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우리가 믿고 의자하며 자신을 내어 맡기는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힘을 얻는 것이다. 2. 성도들이 이 상태에 행복하게 계속 서 있음. "서 있는" 우리가 바로 거기에, 있을 뿐 아니라 서 있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죄책을 벗어버린 상태("우리가 심판 중에 서 있다, 시 1:5)를 의미한다. 처벌받는 사형수처럼 허리를 구부리거나 땅에 엎드릴 필요가 없이 우리의 권위와 명예가 심판주앞에서 인정 확보된상태로, 당당하게 서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또 우리의 전진을 의미하는 바, 서 있는 동안 우리는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획득한 것처럼 드러누워 있어서는 안되며 그리스도를 수종드는 종처럼 서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 말은 또 우리의 인내와 끈기(오래참음과 견딤)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확고하고 안전하게 서 있는 우리는 마치 원수의 세력에 압도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병사들처럼 끈기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속에 있다는 걸 암시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확고부동하게 서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늘의 법정은 높은 자리일수록 미끄러운 지상의 법정과 달라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이루실 줄"(빌 1:6)을 확신하는 가운데 겸손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 Ⅲ.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미리 바라봄으로써 소망/대망하고 기다리는 바..마침내 누림 그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 현재의 행복 이외에도 소망 중에 기다려지는 행복이 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성도들에게 옷 입혀 줄 영광이요 하나님을 뵈옵고 [그토록 대망하던 완전한 자유로 인해 기뻐 소리치며 환호하며 잔치자리에서처럼] 즐거워하는 것으로 일관되는 영광이다. 1. 현재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는 자들, 오직 이 사람들만이 이후에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중에 기다릴 수 있다. 은혜에 바탕을 둔 영광이 아니고서는 좋은 소망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은혜는 영광의 시작이요 영광의 담보이자 보증이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리라"(시 84:11) 2. 이후의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자야말로 현재 즐거워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하늘을 소망하는 자들이 그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건 당연한 의무이기도 한다. Ⅳ.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보라!! 하나님은 자녀들이 <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지고지선의 진복, 주하나님 누림의 복락을 참되게 경험하며 영생안에서 지속적으로 영원히 누리기를 원하신다!!.. ... 바로 그것을 위해 궁리끝에 개인과 공동체에 새롭게 하심의 일환으로 환난-고통(고난)의 때를 지나가면서 깨닫고 회개하는 기회를 주시려 함인 바, 인자하심의 섭리 베푸심인 것을 깨닫도록 하자.. ...3가지 형태의 고난이 있을 것이다... ^신앙과 무관하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재난/전염병-기근-전쟁((이는 오히려 믿는 이의 성장성숙성결을 톡진하며, 중단없는 성령의 권능을 힘입는 복음전도의 폭발-확산-영적 후사의 증다를 불러 일으키실 계기로 삼으실 것인데, 파수꾼으로서의 중보기도가 필요함을 일깨우는 바, 그 사명 다 감당하자..)) ^ 개인적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서도 ((처음엔 슬픔과 애통가운데 있게 되나, 이윽고 주께 묻고 그 뜻 깨달아 알고 회개-결단-동행함으로써 승리하게 하신다!... 자녀로서 인정하심이다...그 수준에 도달했다 여기심을 오히려 감사하라!)) 고난을 주시지만, 또는 ^의를 위한 고난도((박해/핍박 --기쁨과 즐거움, 담대함의 소망 충망!)) 있는 바, 결국 [이 두가지 모두,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이루게 한다]고난도 있음을 기억하자... 모든 고난중에서 그러해야 하나, 특히 ((개인적 슬픔과 애통의 때를 지나는)) 고난을 허락하심은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주님 대적하는 사단, 마귀의 주구된 세상 악인들처럼... 내어 버려 두심] 아니라 새롭게 일으키심의 참사랑의 발로임을 절대긍정-절대신뢰-절대기쁨의 믿음으로 껴안도록 하자, 그 어느때나 JC를 앙망하고 그 이름 부르며 이 때를 지나도록 하자] 우리의 환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우리의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는 환난이 누릴 바 영광의 도를 더하게 더 크게 더 의미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고후 4:17). 꼭 기억하자..이 얼마나 엄청난 성도들의 행복인가. "다만 이뿐 아니라" ...혹자는 그러한 평화, 그러한 은혜, 그러한 영광, 그리고 그러한 소망 중의 기쁨은 우리같이 (약간) 모자란 사람들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기엔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만 이뿐 아니라," 즐거워할 이유, 그리고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도다." ...특별히 [세상이 보기에는] 성도들의 행복에 정반대가 된다고도 볼 수 있는 바, 의를 위한 환난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우리의 행복은 이 환난중에서도 그의 심령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켜 하나님과 함께 하나됨으로 일치할 뿐 아니라 구주 믿는, 소망/앙망하는 믿음안에서 더욱 기뻐함으로 인도하심에 이끌려 이 환난에서 일어나고 넘어섬을 경험할 때 극락의 상태로 들어간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행 5:41). 문제가 이쯤 되자 사도는 그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우리가 환난을 자랑으로 여기는가? 왜 그런가? 환난은 여러 가지 연쇄반응을 일으킨 다음에 소망을 낳게 하는데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1. "환난은 인내를 이룬다." 환난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 환난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형언치 못할 강력한 은혜를 마침내 깨달아 알고, 체득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지체와 재질이 단련을 통해 발전되듯이 환난은 끝내 인내의 어떠함의 한계를 드러내시되, 연약-무력함을 절감하는, 그러나 주를 의뢰하는 우리를 친절과 온화/온유하심으로 점차로 점점 개선시켜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 개선시켜 가신다. 마치 강철이 불로 더 단단해지듯이 환난 그 자체가 유효원인은 아니지만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의지하며 주를 보라, 마침내 믿는 이마다 보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대식가의 입에서 고기를, 강자의 입에서 당분을 어떻게 덜어내시는가를 보면 그 일의 궁극이 어떠할 지를 알 수 있다. 인내를 이루는 그것은 기쁨 그 자체다. 왜냐하면 인내는 환난이 끼치는 해보다는 더 많은 유익을 가져 오기 때문이다. 환난 그 자체는 [세인들에게는 대개] 안달을 가져 오지만 그러나 일단 그것이 성도들에게서 성화의 옷을 덧입을 때 그것은 인내를 낳는 법이다. 2. "인내는 연단을(체험을, 흠정역...하나님과 자신의 어떠하심에 대한 깨달아 앎의 체험 + 영원히 잊지못할, 반복되는 감사찬송, 기림 통해 날마다 그분을 빼어닮아감 ) "(4절) 인내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며 밤중에 주시는 노래를 체험하게 한다. 참고 견디는 자들이야말로 아픔이 증대함에 따라서 더불어 증대하는 하나님의 위로를 더없이 크게 체험하게 된다. 곧 우리들 자신을 체험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우리가 자신의 성실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은 환난을 통해서일 뿐이다. 환난을 가리켜 시험이라고도 부른다. 인내는 시인(휘포모네 도키멘)을 낳는다. 마치 시험을 통과한 자가 인정을 받듯이 말이다. 이처럼 욥의 경우에도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그가 아직도 "순전하고 정직하다"(욥 2:3)는 인정을 낳은 것이다. 3. "연단은 소망을" 이처럼 연단을 받아 황금같이 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소망할 수 있게 격려를 받는다. 이 시험 또는 시련은 진정, 연단을 통해 이루실 바 [하나님의 사랑의 영의 부어지심 통한] 영광의 소망의 기초가 된다...더 나아가 좀 더 부연하자면, 기초가 됨과 동시에 [이제 비로소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그 예비하신 때에 이르렀다는] 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야말로 우리 소망의 지주다. 우리 자신에 대한 체험이야말로 우리 성실성을 증거하듯이 말이다. 4. 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이 소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망보다 더한 아픔이 또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약한 자들의 기대가 사라지면서 그들에게는 영원한 수치와 혼란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러나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게 될 것이다"(잠 10:28; 시 22:5; 71:1 참조). 다시 말해 소망이 우리의 받든 고통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비록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 취급을 받고 거리에 내버려진 진흙처럼 밟힘을 받아도" ...그러나 영광의 소망이 있기에 이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대의명분 곧 선하신 주님을 위한 것이요 좋은 소망을 상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소를 받고 있다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부은바 됨이니." 이 소망이 우릴 실망시키지 않을 것은 그것이 사랑의 영, 하나님의 위로의 영이신 성령으로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붓는 일은 복되신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곧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의식하는 것이요 동시에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을 당신에게로 이끄시는 걸 의식하는 것이다. 그의 사랑의 위대한 효과를 살펴 보자. 이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특별 은혜와 이에 대한 즐거운 향유다. 이 사랑은 마치 향기로운 기름처럼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것이요 단비로 영혼이 해갈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모든 위로와 성결 그리고 양자에 있어서의 인내의 근원은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 펼쳐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를 묶어 매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고후 5:14). 이처럼 우리는 사랑의 결속으로 이끌려 내어 거기에 붙잡혀 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그에 대한 소망이나 그를 위한 우리의 고난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롬 5:6-21) 사도가 여기서 증언하는 바, 주 예수의 죽음에 깔려 있는 칭의의 기초와 원천을 추적하여 따라가 보자, 그 강물의 줄기를 따라 계속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죽음이 있다. 이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흘러 넘치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물 덕분이다. 따라서 믿는 이 모두에게 부어진 Q 사랑을 확대하여 참되게 진술하고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십자가에 달리신 그가 위해 죽은 사람들(6-8절). 2. 그의 죽음의 귀한 열매(9-11절). 3. 첫째 아담의 죄와 죽음, 그리고 둘째 아담의 의와 생명사이의 병행성(12-21절) ##I.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돌아가실 때 우리가 처해 있던 상황. 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곧 우리는 슬픈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여기서 헤어날 길이 전혀 없었던,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요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대로 이러한 때에 "기약대로(이미 약속하신 바로 그대로)" 우리의 구원이 온 것이다. Q께서 도우시고 구원하는 시기는 구원 받을 자들이 소리지를 힘조차 없고, 스스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과 연약, 비참의 최저상태에 이르러 죽기만 기다리는 시점, [한편, 세상에는 마치 Q이 얼굴을 가리고 셰시거나, 아예 안계신 것처럼 죄악이 극도로 관영하여 극악무도해지고 참되게 믿는 자들을 조롱-비아냥-박해-약탈-멸시-천대함으로써 멸절당할 위협을 매일 느끼는 바로 그 때] 완전히 힘이 빠져 있을 때(we were without strength, 롬 5:6)이니 그래야 구주 Q의 능력과 은혜는 더욱 더 완전/온전/순전하게 확실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신 32:36.....*36.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For the LORD will vindicate His people, And will have compassion on His servants; When He sees that [their] strength is gone, And there is none [remaining,] bond or free. ). 하나님의 조력의 방법은 [데드 리프트 시점, 곧 마지막 관문에야] 드러난다. 2.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died for ungodly)" 곧 속수무책인 피조물이요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 천박하고 무용할 뿐 아니라 악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의 귀한 은총을 받기에는 더더구나 무가치한 자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경건치 않은 만큼, 이들은 자기들을 위해 죽어 줄 사람이, 죄를 대속하고 의를 끌어들여 줄 사람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것을 그는 전무후무한 사랑의 예라고 설명하고 있다(7, 8절). 여기에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들의 생각이나 길과는 다르다는 점이 드러난다(요 15:13, 14 절 참조...*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Greater love has no man)" (1) "의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쉽지 않고" 무고한 자, 부당하게 처벌 받는 자를 위해 죽어 주려는 자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을 보고 다들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겠지만 그러나 목숨을 걸고 위험을 안으려는 자는 없다. (2) 설혹 "선인을 위하여 죽는 자"는 있을 수 있다. 단지 의로운 사람보다 나은 유용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스스로 선하다는 자들이 남에게 무슨 유익을 끼치는 일도 없지만 쓸모가 있는 자들은 대개 사랑을 받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생명으로 바꾸려 드는"자들이 곧 이들의 보석이 되어 몸을 몸으로 때우려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바울도 이런 의미에서 보면 꽤 선한 사람 곧 유용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에게도 자기 목숨을 위해 목을 내 놓은 자들까지 있었던 것이다(16:4). 그러나 이렇게 하려는 자도 쉽진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모험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다. (3)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8절). 의롭지도 선하지도 않은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뿐 아니라 죄투성이요 험상 굳기 짝이 없는가 하면 없어져 봤자 아까울 것 없는 인물들이요 마땅히 죽어야 할 사형범들이기에 오히려 죽는 게 하나님의 공의를 풍성하게 드러낼 그러한 인물들을 위해서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여기서 통상 유대인들의 "의인,""자비한 자" 그리고 "악인"(사 57:1)하는 식의 구분법을 암시하고 있다고도 본다. 이제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자기 사랑을 입증하고 증거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확대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그의 사랑을 크게 드러내고 증대시켰으니 이론의 여지가 없게 할 뿐 아니라 경탄과 칭송의 대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제 내 피조물들은 내가 저들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될 터이니 전례 없는 사랑의 예를 보여 주겠노라" 하는 식이다.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추천하다, 흠정역). ...마치 상인들이 자기들의 상품을 전시함 통해 그걸 추천하듯이 말이다. 당신의 사랑을 이처럼 추천하신 이유는 성령을 통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당신의 사랑을 골고루 펼쳐 부으시려는 뜻에서이다. 더없이 열렬하고 호감이 가는 방향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하는 말은 우리가 언제까지고 죄인으로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는 얘기다. 어디에선가 변화가 일어나야 마땅했다. 그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우리 죄 가운데서가 아니라 우리 죄로부터 [완전히]구원하려는 뜻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위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아직 죄인이었다. (4) 아니 "우리는 원수였다"(10절). 범법자일 뿐 아니라 반역자요 배신자로서 정부에 무장 도발을 단행한 자들이었다. 더없이 극악하고 추악한 범법자가 아닐 수 없다. 육신의 마음은 하나님에게 원수일 뿐 아니라 적개심 그 자체다(8:7; 골 1:21). 이 적개심은 상호적인 것으로 하나님 편에서는 죄인을 증오하고 죄인 편에서는 하나님을 증오하는 식이다(슥 11:8). 그런데도 이런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셔야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비가 아닐 수 없으며 역리가 아닐 수 없다. 전에 없는 사랑의 표시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사랑을 흠모해하고 칭송하는 일을 우리는 영원까지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확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당신의 천국 법률조항에 우리더러 원수를 사랑하라는 항목을 넣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 수 없다. Ⅱ. 그의 죽음의 귀한 열매. 1. 칭의와 화해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첫 열매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고(9절)…… 그 아들의 죽음심으로 말미암아……화목하게 되었다(10절)." ::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죄가 면제되고 죄인이 의인으로 받아들여지며 분쟁은 끝나고 적개심도 말살되었으며 죄악도 도말되고 이제 남은 것은 영원한 의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성취되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필요한 모든 걸 성취하셨기에 우리는 [염려말라, 오직HS께서 끝까지 견고히 믿은 바를 성취하시나니...<그리스도께서 필요한 모든 갓을 성취하셨다, 어직 믿기만 하라!> 바로 그것을 깨달아 알고 영혼의 마음에 받아들여 내것 삼아 확고히 붙드는 바로 그 ]믿는 순간 실제로 칭의와 화목의 상태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은즉." 우리의 칭의가 그리스도의 보혈에 기인한다는 이유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 9:22). "피는 생명이다." 따라서 속죄에는 피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속죄 제물에 있어서 피뿌리는 일이야말로 그 제사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었다.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레 17:11). 2. 따라서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따른다.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9젊),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생명으로, 흠정역)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의 구원을 가로막는 것이 제거됨에 따라서 이 구원이 따르는 건 필연이다. 아니, 우리가 원수였을 적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화목케 하셨다면 우리가 의롭게 되고 화목케 된 지금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건 "더욱 더" 확실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원수를 친구로 삼는 더 큰 일을 해 내신 분께서 보다 더 작은 일 곧 친구된 우리를 친구로서 대하시고 친절하게 대하는 건 더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는 10절에서도 다시 한 번 "더욱 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기초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까지 깊숙히 판 그분은 분명히 이 기초 위에 건물을 짓고 마실 것이다. "우리가 진노하심에서" 곧 지옥과 저주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지옥불이란 하나님의 진노요 "다가 올 진노"(살전 1:10)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 큰 날에 신자들의 최종적인 칭의와 사면은 여기서 말하는 진노에서의 구원이니 이것이야말로 은혜의 역사의 완성이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화목되었으며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생명[살으심]은 육신에 있을 때의 생명이 아니라 죽으신 후에 다시 얻은 부활 생명 곧 하늘의 생명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14:9 참조). "그가 전에는 죽어 있었으나 이제는 살아 계시도다"(계 1:18). 우리의 화목은 낮추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의 구원은 높혀진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뤄졌다. 죽어 가신 예수께서 죄를 만족시키고 적개심을 없애며 우리를 구원 가능케 함으로써 그 기초를 놓으셨으니 이렇게 해서 경계의 벽이 무너지고 속량이 성취되며 권리 박탈이 거꾸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완성한 것은 [그 자신이 영원생명이로되 죄인대신 죽었던 바,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심이라"(히 7:25). 당신의 말씀과 영으로 마침내 우리를 유효하게 부르시며 변화시키고 하나님에게 화목케 하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를 상대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고 성취하여 존귀케 된 상태에서의 그리스도다(4:25; 8:34 참조). 죽으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유산을 남겨 주신 유언자요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이것을 지불하는 유언집행자이시다. 이제 문제는 간단하다. 우리의 구원을 사시려고 자기 전부를 내 주신 분이 그것을 적용하는 수고를 마다하실 리가 없다. 3. 이 모든 것은 또 더 나은 특권(further privilege)으로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Our joy in God"을 산출한다(11절).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And not only this, but we also exult in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we have now received the reconciliation.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재앙의 날에 즐거움과 소망이다"(렘 17:17). "우리는 화목케 되어 진노에서 구원 받은 자들이다." "죄악이 우리의 파멸일 수 없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거기에는 계속적인 은총의 물결이 있다. 우리가 그저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그것도 승승장구하게 승리감에 도취되어서 들어가는 것이다. 그저 [소망의, 안전한]항구에 들어서는 게 아니라 모든 돛을 다 올리고 당당하게(!!!..환호하는 천군천사들, 한없는 기쁨으로 맞아주시는 하나님...승리자의 영광을 만끽함으로 누리면서, 그토록 갈망하던 주님 품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위로와 소망의 머릿돌이자 대들보요, 알파와 오메가며, 우리의 "구원일 뿐 아니라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노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고 그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달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이루신 바 속량(=화목)의 덕분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복음 시대에 곧 이 세상에서조차도 "화목을 얻고 누리게"(속량, 흠정역) 되었기 떄문이다. 이 속량은 율법 시대에 여러 가지 모양의 제사로 상징되어 오던 바요 하늘 나라에서 가질 행복의 담보물이기도 하다. 참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속량을 받는다.(받아들여 음미/감상하며실지로 누린다) 이 속량을 얻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만족에 입각해서 칭의 가운데 하나님에게 실제로 화목케 되는 것이다. "속량을 얻는다"는 말은 다음 두 가지 뜻이 있다. (1) 이것은 이 속량을 기쁘게 받아들임, 곧 전존재로 환영하고 영원한 지혜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보혈을 통해 죄많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데 사용한 그 방법을 찬성하며 동의하는 것이요 또 복음의 방법에 의해 복음적인 면에서 기꺼이 구원을 받아들여 그안에 거하며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2)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갖는 기쁨의 근원과 기초인 이 속량의 위로를 실지로 받아들임(누림!! ...이것이 극락의 찬송과 기림이다!!...너는 마음에 노래가 있느냐...내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가락이..주 내소망은주더알기..사랑의주예수님이 내오른손붙잡고...사랑해요목소리높여..)이다. 따라서 이렇게 될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요. 이 "속량을 받아들이는"것이 된다. 그 속량을 정말, 실지로 개인적 최고의 영광과 "자랑으로 여기는 것"(카우코메노이, 5:11)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 속량을 받아들이셨다(마 3:17; 17:5; 28:2). 문제는 우리만 받아들이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Ⅲ. 첫째 아담에 의한 죄와 죽음이 둘째 아담에 의한 의와 생명으로 대조되고 있다. 이것은 여기서 사도가 펴고 있는 진리를 분명하게 설명하는데 유효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천거하고 참된 신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더욱 유효하다. 왜냐하면 이 대조에서 우리는 우리의 타락과 회복에 들어있는 연관성 곧 유사성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첫째 아담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을 때의 힘보다 둘째 아담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 때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자. 1. 그의 강론의 기초로 깔려 있는 일반적인 진리 -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14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하여 그리스도를 가리켜 "마지막 아담"이란 말을 쓰고 있다(고전 15:45, 22 절 참조). 아담은 이런 점에서 곧 그가 하나님과 본인 사이의 언약이라는 계약에 있어서와 이 계약의 최종 단계까지 대표자이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상대로 일처리를 하셨으며 아담은 공공의 아버지로서 곧 모든 자기 후손의 원인, 근원 및 대표로서 행동하였다. 따라서 그가 그 상태에서 곧 우리를 위한 대리인으로서 행한 것은 우리는 그와 함께 행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에게 오는 영향은 그와 함께 우리에게도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대표자로서 곧 모든 선택받은 자들의 머리로서 행하셨으며 하나님을 상대로 이들을 위해 곧 그들의 아버지, 원인, 근원 및 대표로서 일처리를 하신 것이다. 곧 죽으시고 살으시고 장막 속으로 들어가신 모든 일이 이들을 대표로 하신 일이다. 아담이 실패하였을 때 우리는 그와 함께 실패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을 때 그는 우리를 위해 대표로 성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투포스 투 멜론토스) 곧 아담의 약속 불이행을 보수하러 오시는 자의 표상인 것이다. 2. 이 대조의 상세한 면 (1) 어떻게 대표자로서의 아담이 자기 모든 후손에게 죄와 죽음을 전달하게 되었는가(12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들어왔다." 온 세상이 지금 죄와 죽음의 홍수에 밀려 다니며 각종 죄악과 재앙 천지다. 이 근원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면 본성의 타락이라는 걸 알 수 있고 그게 어느 사이에 들어왔는가를 살펴보면 아담의 첫째 죄악 때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에 의한" 것이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우리의 뿌리와 근원으로서의 최초 인간이었다(설령 그 이전에 인간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무죄하였을 것이다). ① 그에 의해서 "죄가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하고 선언하신 그 때(창 1:31) 세상에는 죄가 없었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그때부터 비로소 죄가 등장한다. 전에는 사탄을 위시한 많은 천사들이 그들의 충성을 내팽개치고 그들의 최초 영역을 떠났을 때 이 천사들의 세계에 죄가 들어갔었지만, 이 인간 세상에는 아담이 죄 짓기 전까지만 해도 죄의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담의 범죄사건으로, 죄는 이제 죽이고 파괴하는 원수와 훔치고 약탈해 가는 도둑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정말 끔찍한 입장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난 후에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되었으며 전반적으로 본성이 타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때문에"가 아니라 "그 안에서"(in whom...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읽는게 좋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고전 1:22)라는 말이 있듯이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죄가 아담에 의해서 세상에 들어왔다는 말은 그와 함께 모두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세상 법률 어디를 보나 대표자의 행위는 곧 그가 대표하는 집단에게 돌아가는 것이요 한 집단이 하는 행위는 그 구성원 각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담은 대표자로서 행동하였다. 곧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섭리 그리고 그것도 자연적인 필연성에 입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연법칙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기타 피조물이 자신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자연 법칙을 세우셨기 떄문이다. 따라서 공동 저수지처럼 아담 안에 모든 인간 본성이 저장되어 있었으며 그에게서부터 모든 물이 물길을 따라 그의 후손에게 전달되게 되어 오고 있다. 왜냐하면 온 인류는 "한 혈통"(행 17:26)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서고 넘어짐에 따라 이 본성이 드러나 보여지기 마련인데 그가 죄를 지어 넘어지는 순간 이 본성은 죄악스럽고 타락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②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사망은 죄의 삯이기 때문이다. 죄가 일단 끝나는 곳에는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죄가 들어올 때는 죽음도 함께 들어왔다. 죽음이 여기에 제시된 이유는 죄가 수반하는 모든 불행을 대표하는 의미에서다. 곧 현세적이거나 영원한 죽음이 다 그것이다. 만약에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가 있었다(창 2:17). ③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마치 형사범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듯이 모든 인간에게 "내려졌다"(디엘덴, passed through). 이것은 마치 전염병이 온 시가지를 휩쓸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예외가 없는 보편적인 운명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내려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입증하는 재앙의 예를 낱낱이 열거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14절). 사도 바울은 여기서 사망을 막강한 군주로서 묘사하고 있으니 그의 왕권은 그지없이 절대적이요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것이다. 그 홀에서 벗어나는 자 그 누구인가. 그것은 이 지상의 그 어느 권력, 권위, 지배보다도 더 오래 오래 살아 남을 왕권이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그 어떤 지배도 받지 않던 벨리알의 자손들도 이것만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죄와 죽음을 가져다 준 아담의 덕이다. 그 사람 좋은 분의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보면서 우리는 "오 아담이여! 그대는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하고 물어볼 만도 하다. 이점을 더욱 명백히 하기 위해서 그는 죄가 모세 율법과 함께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 "이전에도 세상에 있었다"는 점을 들어 얘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만이 유일한 인생의 규범은 아닌 셈이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규범이 있었는데 이게 어겨졌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율법에 불순종한다 해서 저주받는 게 아니듯이 거기에 순종한다 해서 의롭게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율법 이전에 이 세상에 죄가 있었다는 걸 증거하는 것으로는 가인의 살인, 옛 세상의 배도, 및 소돔의 죄악을 들 수 있겠다. 여기서 그의 의도하는 바는 곧 이전에도 [불문법으로서] 율법이 있었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원죄란 하나님의 율법[불문법]에 대한 불일치요 실제적인 죄란 율법[성문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는 이런 저런 율법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로 그는 "사망이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왕노릇하였다"는(14절) 점을 얘기하고 있다. 죄가 사망의 보좌를 구축해 놓지 않았던들 사망이 그처럼 판칠 수 없었다는 건 확실한 얘기다. 이 말은 율법 이전에도 죄가 있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요 그것은 다름 아닌 원죄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죄는 하나도 짓지 않은 그러한 사람들 곧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담처럼 살아보지도 못한 자들, 즉 실제적으로 죄도 지어 보지 못하고 죽어간 영아들에게도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기에 사망이 그들을 상대로 왕노릇하였다는 얘기다. 이 사망의 왕노릇이란 말은 어린 아이들까지 휩쓸어 앗아가 홍수나 소돔의 멸망같이 과격하고 엄청난 심판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적으로는 범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죄를 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와 의에 위배되기 때문에 어린 것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참혹하게 병에 걸려 죽거나 재앙을 받아 죽거나 기타 이유로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원죄의 위대한 증거다. (2) 이것과 비슷하게 어떻게 대표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영적 후손인 모든 참 신자들에게 의와 생명을 전달하게 되었는가. 이와 함께 사도는 여기에 들어 있는 유사성을 보여 줄 뿐 아니라 그리스께서 가져오는 은혜와 사랑은 아담이 가져온 죄와 진노를 "넘어서" "더욱 더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① 유사성. 이점은 18, 19절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첫째, "한 사람의 범죄와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고 그 결가ㅗ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내려 정죄받게 되었다." 1. 아담의 죄는 불순종, 그것도 간단하고 분명한 명령에의 불순종이었다. 그것도 단련의 성격을 띈 명령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행한 일이 악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일이[불순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체로서는 작은 죄 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다른 여러 죄악에로의 문을 열었다는 데 있다.((이것을 조심하라, 또 조심하고 경각심 가지고 JC이름으로 물리치라!!)) 2. 죄의 해독성은 너무도 강력하고 광범위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담의 죄의 죄책이 지금까지 그렇게도 도도히 그리고 면면히 흘러왔을 리 없다. 3.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 여기서 "많은"이란 범죄한 한 사람과 대조적으로 쓰인 말이다. "죄인으로 만들어졌다"(카테스타데산, 5:19)는 말은 우리가 사법적인 행위에 의해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다. 율법의 정론에 따라 우리가 죄인으로 제쳐지고 만 것이다. 4.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자들 모두를 정죄하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 죄의 확정 판결을 받았으니 정죄받는게 당연하다. 한 가정에 내려지는 권리박탈처럼 온 인류가 그러한 형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하늘 법정에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심판이 내려져 있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판정이 번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심판을 받아 몰락할 수밖에 없다. 둘째, "마찬가지로 '한 사람'(곧 이 한 사람은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시다)의 의와 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되고" 그 결과 "값없이 주시는 은사가 모두에게 임하게 되었다." 이 진리가 얼마나 중요하던지 사도가 반복하고 또 반복해가면서 강조하는 것을 엿볼수 있어야겠다. 1. 그리스도의 의의 특성과 그 도입 경위. 그것은 그의 순종에 의한 것이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이 우리가 멸망하게 하였듯이 둘쨰 아담의 순종은 우리를 구원한다. 곧 그분이 모든 의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영혼을 우리의 죄에 대한 제물로 삼는 중보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이 율법에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한 의를 이루셨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가 그의 은총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2. 그 열매. (1) "값없이 주시는 은사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곧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제공되었다는 얘기다. 성취된 구원은 "일반 구원"이다. 초청은 전반적이요 그 제공도 거저다. 누구든 오는 사람은 이 생명의 물을 거져 마시는 것이다. 이 거저 주신 은사는 모든 신자에게 곧 그들이 믿는 순간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칭의는 죽음을 면제케할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격을 구비케 한다. (2)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이다." 이 많은 사람이란 한 사람에 대조되는 말로서 온 세상에 흩어져 있지만 한 데로 모으면 무지막지하게 많은 은혜에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이" 마치 특허증에 따른 것마냥 의롭다고 "여겨질 것이다"(카타스타데손타이, 5:19). 아담에 의한 우리의 멸망과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회복이라는 반명제는 이 정도로 해 두자. ② 그리스도께서 가져 오는 은혜와 사랑이 아담이 가져 오는 죄와 진노를 훨씬 능가한다는 점. 이것을 그는 15-17절에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부요함을 확대하여 보여주며 아담의 죄가 저지른 크나큰 상처를 보고서 엄청난 치유가 가능할까 하고 실망할지도 모를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의 표현은 좀 까다로워 보이지만 다음 몇 가지를 살펴 볼 수 있다. 1. 만약 죄책과 진노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은혜와 사랑은 더욱 더 그러하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전가된 죄책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전가된 의를 보고 구원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인 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넘쳤으리라."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모든 속성 가운데 특별히 그의 영광이요 그 근원(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 대해 가지는 그의 은총)은 바로 이 은혜다. 따라서 이 선물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지상의 사람의 죄에 그만한 능력과 효과가 있어서 우리를 정죄할 정도라면 하늘로부터 오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는 더욱 더 큰 능력과 효과를 발휘하는 가운데 우리를 의롭게 하고 구원하고도 남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우리를 구원하는 그 "한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다. 물론 아담이 뿌리는 독은 예수 그리스도가 뿌리는 해독제만큼 강력할 수 없으니 곧 후자가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다. 3. 우리가 정죄를 받게 된 것은 아담의 단 한 가지 범죄뿐이다. "심판은 한 사람(하나, 흠정역) 곧 한 범죄를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다"(엑스 헤노스 에이스 카타크리마)(16,17절 참조).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을"뿐이다. 은혜와 의의 물결은 죄책의 물결보다 더욱 더 깊고 넓다. 왜냐하면 이 의는 한 범죄의 죄책을 없앨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범죄 곧 모두의 죄책을 도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범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4.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이 사망의 왕노릇에 종지부가 찍혀질 뿐 아니라 신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혜택을 받는 것이다(17절). 그리스도의 의 가운데서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면 특허장을 가질 뿐 아니라 존귀의 특허권을 가지며 우리의 쇠고랑으로부터 풀려날 뿐 아니라 요셉처럼 버금 수레에 올라타 하나님에게 왕과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곧 용서를 받을 뿐 아니라 특혜를 받는 것이다(계 1:5, 6; 5:9, 10 참조). 우리는 JC와 그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상실한 것보다 더 풍성하고 위대한 특권에의 자격을 부여 받고 거기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붕대가 상처보다 훨씬 넓으며 곪아 들어가는 상처보다 치유가 더욱 더 강력한 것이다. Ⅳ. 마지막 두 절에서 그는 "그러면 율법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반론(갈 3:19)을 예상한 듯하다.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다." 죄 그 자체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계명을 잡고 늘어질 소질이 다분하다. 그 죄의 넘치는 죄악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돋보기는 희미한 점들을 발견할 뿐이지 그것들이 원인이 될 수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마치 어두운 방에 더 밝은 빛이 들어오면 전에 보이지 않던 먼지와 찌꺼기가 밝히 드러나듯이 계명이 세상에 들어오자, 죄가 소생한 것이다. 마치 이 햇빛의 들어옴은 치료에 필요한 상처를 탐색하는 것과 같다. 이 "범죄," 아니 "그 범죄"(토 파라프토마), 아담의 그 죄, 우리에게 미치는 그 영향의 확대, 우리 속에 있는 타락의 영향, 이 모든 것은 율법이 들어오자마자 이미 드러나 보이던 그 범죄를 더욱 더 풍성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다. 2. "은혜가 더욱 더 넘치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곧 율법의 각종 공포로 말미암아 복음의 위로를 그만큼 더 감미롭게 하려는 뜻에서다. 죄악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풍성하게 판을 치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신앙에로 개종한 자들에게는 은혜가 더욱 더 넘쳐 그 많은 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