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C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성육신하여 오신, 대속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을 통해 <신성과 함께 참 인성을 얻으신> 만인의 구주-Q-대제사장이시요 차원의 제약 받지 않으신ㄴ 그영이 되사, 영접하는 이 곧, JC를 개인적인 구주와 Q로 진정 영접하여 하나됨으로 붙좇는 믿음과 그의 주님-주인-왕-머리로 삼고 친밀한 영적 교통과 직관으로 주님의 움직임과 운행하신-행하심따라 한걸음씩 동행하는 자 그의 도드 삼으신 분...구주의 부활 승천 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 곁에서, <몸소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사시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겪어 아시고 모든 시험 받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이기셨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여전히 유일무이한 중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시는 분을 바라볼지니.. <오직 모든 세대의 그 어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켜 주 이름 불러 영접하여 믿어들어감으로써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Q이 사람을 지으신 이후로 그토록 오래 참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병듦, 곧 무지무각-연약함에처해 있어서 그들이 스스로 무엇 하고 있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각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음에 대해 긍휼히 여기사 모든 자비하심으로써] 더 참아주시도록 간구하고 계심>으로 인해(공의의 Q, 그분의 쌓여진 진노 쏟아냄을 아드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 흘림의 공로를 보사 보류하시고 Q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더 오래참아주시도록..그리고 땅끝까지 모든 이들이 주님의 복음 듣도록 번파되기까지 기다려부시도록...이것이 주의 재림 지연의 유일한 ), 바로 그분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반쪽으로서 JC의 마음=곧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며 날마다 눈물 범벅이 되어 계신 사랑하는 분 구주 JC의 마음을 찢는 애통의 중보에 전존재 기울여 동참하는자, 바로 그분의 사랑하심과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그 자신이 경험하였고, 그분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에, 모든 것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려 그분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며, 막힘없이 교통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은혜에 동참함의 친밀한, 다함없는 기쁨으로 넘치며, 상황-환경-형편-처지에 괘념치 않고 일편단심 주와 하나됨으로 붙좇는자.....[마16: 24-28...*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이 때 바로 그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바대로...그분의 긍휼어린 마음으로 한반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적 실상과 [악이 악을 대하여 서로 권력투쟁하는 가운데 공멸에 빠져들기를 꾀하는] 사탄마귀의 궤계로 인한 영적 착시와 혼돈-염증을 불러 일으키는 현 실상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지고 중보/중재하도록 분별하며 합당하게 부르짖도록 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기도는 결코 사라지지않음..
##기억하라...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좋은 땅 가나안의 서쪽과 동쪽 경계로서 대해와 요단강, 북쪽 경계 이루는 유브라데 강들은 이제 주님의 부활 능력 안에서 이미 이겼음을 의미한다...그러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들인 애굽-에돔-염해는 인본주의(사탄체계인 세상을 의미하는 애굽)-물질주의(육신의 정욕을 의미하는 에돔)-쾌락주의(소돔과 고모라)를 의미하며 가나안 땅 안에조차도 멸절되어야 할 온갖 중독과 사로잡힘의 영적 질병이 만연한 상태임... 이교숭배(우상숭배)-사신숭배(초혼-영매-무당)-기복신앙(몰렉숭배-점쟁이-복술사-주술사)으로 물들어 있는 바, 이제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깨어나서 기도와 금식으로 영적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지금 모든 나라 족속 백성 방언, 곧 열방의 영적 상황이 그러하다.
[[믿는 이의 완전, 온전, 순전의 선순환, 그 시너지에 대한 느낌]]..주 안에 거함(요15:4-17)은 접붙임/붙좇음의 교통 살기..곧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먼저 Q, 말씀 청종, 주님 순종-동행함, 주님이 행함으로 보여주신 사랑 같이 (자기를 내어줌에 이르기까지) 서로 형제 사랑함 이룸, 이것이 JC 사랑함이니, 이로써 아버지께 사랑 받고, 주님 사랑 받음 되며, (아버지-아들-성령이 함께 오사) 그분의 형상의 실제 나타내심(요14:21,24-26) 이룸
살아 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진리를 믿고 붙들어 하나되고, 이제 주 이름 불러 주께 여쭈어 그 다음 행보를 인도받아 그분 임재 안에서 그대로 따라가기>을 실행함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함의 선순환 안으로 들어감 -->순전<보혈로 씻김>에서 <주님 알고 사랑함으로 부어주신 사랑 통해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랑하며 반응함의>온전으로, 이제 더 나아가 <무시로 하나님 임재 앞에서 행함의> 완전의 선순환 시너지 이룸.
...CORAM DEO SOLA FIDE, SOLA SCRIPTURA, SOLA Christos, SOLI DEO GLORIA
....완전 = 주님 말씀 전적 순복(청종...몸의 활동 돕게 하신 섬김이 역할 기능, 직분자의 구비 조건과 태도 완비 : 나는 죽고 구주 사심으로 살기..주가 준비하신 바로 그것을, 복음과 그분의 풍성을 그대로 살아내며 공급함)-
---온전 = (친히 내주하사 도우시며 위로-격려-세우시는 HS따라) 고난의 섭리 통해 연단된 JC 인격 그대로 닮는 성화---
---순전 = 날마다 회개/보혈에 씻긴, 자기 십자가 감당하며 주와 동행 이룸의 필수 요건
***인간의 연약함 = 영적 무지무각 + 미혹/오도됨 --> 인간의 절대무력함으로 인해 그 연약함의 당연한 귀결은 영적 사망(하나님으로부터 전존재적 단절...사탄의 손쉬운 먹이감으로 전락...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수단으로 전락함) -->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해를 위해 하나님이 인정-지명하여 세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면서(즉, 중보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현존 동시에 죄를 속하기에 합당한 희생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 중재하는 제사장이 필요함..
***우리 주 하나님, 말씀속에 계시며 말씀하시며 구원의 말씀을 부탁하신 아버지,
모든 인생과 피조세계의 창조주-주권자-통치자-모든 공급근원, 유일무이한 절대 필요충분-모든 풍성부요충만과 참 능력근원<절체절명에서조차> 그 자체이신 아버지여
...사모하며 앙망하오니, 더이상 제 마음으로 주님을 제한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무한하신, 본래 제한 받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의 무지함과 주관적 제한 안예서 제한 받으시는, 기꺼이 갈망하여 기다리면서 마음 문 열어 달라 노크하고 계시는, gentle하신 분이심))
참되게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의 영>을, <고난 통해 순종함 배우시고 온전케 되신 순종의 영을> 부어주소서...
<하나님 경외함>이루신 그리스도의 <일향 미쁘신, 일편단심, 경건의 영을> 부어 주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말씀하시는 주 임재 앞에서 <완전한 경외함을 끝까지 견지하심으로> 경건함의 모본 보이신 JC 주님이시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아버지께 드리신 바 열정적인, 전존재 쏟아붓는 통곡과 눈물, 부르짖는 간구와 소원 기도(결코 포기함 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열정 공급하사)의 영, 바로 그 영을 오늘이라는 (각자에게 허락하신) 시간동안 주님 얼굴 구하며 주 이름 부르는 나와 모든 형제자매 성도들에게 부어주사 참되게 회복시켜 주소서,
하여, 그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뜻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소서.
주 이름 부르는 모든 성도마다에게, 고난통해 순종함 배우셔서 온전케 되시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얻고, [단체적 그리스도] 그 가운데에서 발견되도록 도우소서.
오 주여, [진정한 참된 영광, 그리스도 빼어닮음, 그리스도의 형상 온전히 이룸,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리스도께 자원하여 구하는> 성도 각자의 몸에 채우게 하소서].
@@**새 예루살렘성...12가지생명열매 ::(신정열) + 성령9열매<사희화-오자양-충온절>..12기초석(신진사-의충열-자인양-절성온), .정금+보석+진주(신부,전사)
@@새 예루살렘성 12기초석들....벽옥(신실-하늘색) 남보석(참,정직-심청) 옥수(사랑-옅은 하늘색), 녹보석(녹색,,,의, 공의-정의) 홍마노(충성, 일심-심홍) 홍보석(열심-진홍), 황옥(자비-황녹) 녹옥(오래참음,인내-청녹) 담황옥(양선-연황) 비취옥(절제-연청녹) 청옥(성결-심자) 자수정(온유-청자)
@@생명...모든 생활 위한 모든 패러다임, 수한 주시고 피조물 유기체의 호흡과 모든 활동을 가능케 하는 힘과 능력의 근본과 원천인 창조자 주님 정언 명령 말씀, 얻고 그것으로 따라 살 바..
##**Q의 말씀-영, 영생의 생명-참 빛[여호와 경외함-지식-지혜-총명/명철-모략/재능의 근원]이신 Q 독생자**이신 분이 성육신 하여 오심..
@@**참 제자도 = (구주 영접한 자, 곧 칭의/거듭남/양자 됨 안으로 들어선 자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짐((방식 = 완전한 사랑-섬김-순종의 상호내재하심으로 하나 이신 TUQ, 즉 그리스도의 영이자 TUQ의 최종 완성, 믿는이의 거듭난 영에 내주하시는 (신성-인성의 mingle상태, 그분의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그 영, 그분과 붙좇는-결합한 하나 됨의 친밀한 믿음으로 주 이름 부름-앙망-교통-사랑 안에 거함-인도/이끄심에 순종-동행 통해 transformation+conformation(변형<성화-영화>-일치) 이루며 그분의 길을 걸음 + [복음 전파-생명 산출-양육-몸을 확장/증대하는 증인들의 ] 유기적 생명 공동체(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 교회)의 공동 생활 지향..
[마16:24, 25...*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ishes to follow Me [as My disciple], he must deny himself [set aside selfish interests], and take up his cross [expressing a willingness to endure whatever may come] and follow Me [believing in Me, conforming to My example in living and, if need be, suffering or perhaps dying because of faith in Me]. 25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in this world] will [eventually] lose it [through death], but whoever loses his life [in this world] for My sake will find it [that is, life with Me for all eternity]. ]
[눅9:23,2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3. And he said to them all,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4.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the same shall save it.]
.....‘아무든지’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며 그 누구도 제자의 삶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3가지 방법을 배움.
---1. 자기를 부인하고
:::: 이 장면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마16:15, 16절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물으심에 대해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직후, 주님의 십자가 죽음 최초 예고 말씀 바로 뒤에 제기한, 베드로의 만류에 대해 주님의 꾸지람 있고 난 직후에 나오고 있음(마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비록 그가 거듭난 믿는이라 해도, 그 언제라도 주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음, 곧 주님께서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물어보시기 전에는 전문성 가졌다 해도 자기 선호 취미 자랑 자기 의로움 주장 생각 의견 감정, 느낌이 비록 옳게 또는 일리가 있고 타당하게 여겨지더라도, 또는 그 어떤 긴박감이 엄습해 오거나, 섭섭하거나 삭막하거나 불안과 염려 초조함이 느껴지더라도(결코!! 자기의 느낌이나 감각, 감정, 그로 인해 형성되는 자기 소견에 휘둘려 함부로 말하거나 추측따라 먼저 행하지 않고 ::이것을 다윗은 고범죄presumptous sin라 하였음) "주여, 거듭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사셔야 합니다, 주님 말씀만 따르렵니다 주 보혈로 씻으소서, 주만 앙망-주목-응시-바라보오니 친히 말씀하소서 인도하시고 이끄소서" 하며, 고요히 신뢰함으로 "주님, 주 예수여,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오 주 예수여" 주이름 부름으로써 그 모든 차원 영역, 만물/만유의 창조주시요 주 영광의 모든 풍성 부요 충만 누림 안에서 사랑 희락 화평이신, "붙좇는 믿음, 사랑의 하나 됨으로 상호 거함-상호 기업-상호 누림 안으로 오라" 하신 바로 그분으로 채움 받음, 늘 자기 의견-주장-느낌, 곧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주도권/주권을 주님-주인-유일한 남편-머리-왕께 드려 주로 주 되시게 해 드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육체가 이미 십자가에 죽었음을 인식하고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
---2. 날마다
:::: 주 임재의 하나됨 생생하게 경험-체득함의 영원한 순간 되도록 기대하며 살기,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JC를 앎의 영생 누림 안에 머무르며 거하라, 이제 나아 가자 하심 따라 동행 이루라 --네오스 카이노스, 아나네오오, 쉼모르포스
.....한 번 부인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육체는 날마다 다시 살아나게 되어있으니. 오늘 부인해도 내일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부인해야 한다.
성령을 받아서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것이 아니요, 죽을 때까지 제자가 되어 져가는 것.... 이 삶이 진정 복된 삶이지만... 그러나 대다수가 다 자라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살다가 죽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형편이다... 광야에서 화석화 된 사람은 자라가기가 어렵기에,. 우리는 ‘날마다’ 자라가는 삶, 육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주님은 "이제 아버지께서 뜻하사 예비하여 두신 섭자가 대속과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음 위한 모든 것 이미 다 이루고 모든 짐 벗고 TUQ의 평강 안에 머물러 있으니, 내 멍에를(함께) 메고서 (나와 너는 결혼한 하나요), [너는 회개하고 회심한, 나의 이를 불러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한 자, 곧 이미 TUQ 안으로 믿어들어가 그의 영이 거듭난 자요 Q의 생명 말씀 양식 먹고 살며 Q의 모든 풍성부요를 그 언제라도 주 이름 부름으로써 누리도록 하신 자이니, 결혼한 바 한 몸, 그 하나 됨의 상호 붙좇는 믿음으로, [ "신실과 참" 그 자체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함께 멍에 메고 하나되어 걷기를)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또 나의 짐은 가볍단다" 말씀하셨다.
(([극악하고 전혀 무익-무능-무력한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의 아낌 없는 희생의 사랑!!, 그분은 바로 나 자신을 대신하심임을 상상하라..기억하고 명심하라...주의 가시면류관의 찌르는 고통/얼굴에 흐르는 피(느껴보라,,사사로운 생각 떠나가도록까지), 허리에 박혀 심장까지 관통하는 창 찔림 인해 흐르는 피와 물(완전한 죽음..이를 통해 산출된 여자인 그대를 생각해보라...삿된 생각 떠나도록), 십자가에 박혀 몸무게 때문에 찢겨진, 고통스러운 두 손바닥(새로운 존재로 섬김 다짐함 기억케 하는가>), 두 발목을 겹쳐 관통시킨 대못은 주와 하나됨, 2인 3각의 늘 새로운 걸음을 촉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8 “Come to Me, all who are weary and heavily burdened [by religious rituals that provide no peace], and I will give you rest [refreshing your souls with salvation].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llowing Me as My discipl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renewal, blessed quie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to bear] and My burden is light.”]
.....십자가는 말씀the Word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곧 십자가 죽음, 십자가에 못박힘이니, "자기 십자가, 제 십자가"라는 말은 각자가 지고 감의, 달려야 할 십자가가 있음을, 그의 옛사람은 처리되어야 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기에 바울은 "날마다 나는 죽노라" 말하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하나되어 그분의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과 죽음을-장사됨-부활을 경험하는 자로 여기고, 날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의 속에 살아계심 인하여 그분과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산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또한,‘자기 십자가’ 라는 것은 각자에게 주신 말씀이니,. 날마다 자기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면 된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너무 버겁고 무거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렵지 않으리니,. 성경은 분명히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일에 대해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내일의 십자가를 미리 오늘 지려 말지니. 내일의 십자가를 지면 오늘, 지금의 십자가를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로서 마음-생각-순종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닮음
---1.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사랑을 닮아가도록 끊임없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에 이를 때까지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없는 채로 형식만으로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세상의 논리에 따라 살면 신앙생활에도 행복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며 나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생각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셨기 때문에 말씀 외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닮아있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본질은 항상 그대로이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성령을 통해 시간과 대상에 따라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순종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즉각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은 절대로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제자에게 있어서 순종이 곧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항상 우리를 향해 옵니다. 그 생각은 생명이며 평강입니다.(말2:4~5) 지금 순종하면 결과는 ‘행복, 생명, 평강’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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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다, 뒤따르다. 제자가 되다 (TUQ 간의 결속-섬김-교통-사랑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붙좇는 참 믿음의 내적 결속으로 하나 됨 이루고, 전존재로서 내주하시는 <과정 거치신>그리스도의 영(그 영, 그분의 성령)과 교통-앙망-주목-동행하여 사는) ...(히>할라크 = pursue, follow...그리스도의 참 제자로서, 결혼 또는 가장 강력한 결합의 섬김 안에 계신 TUQ상호간의 결속처럼, 그분과 완전한 하나 됨 이룬 자로서, 붙좇음의 참 믿음 통해 이룬 바 하나 되어 내주하고 계신 성령의 인도와 이끌림을 통하여 교통(사귐/교제/소통..제자의 새로운 존재 됨의 순전-온전-완전-순결-정직성및 그리스도 판박이 됨 이루심 위한, 상호 존재적 교환 통해 일편단심으로 그의 운명을 하나 되어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190, 아콜루데오...[아(함께) +켈류도스(길, 궁극 진리)])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Homer 이래)는 켈류도스(kevleuqo", 길)에서 유래했으며,
(a) 문자적 의미로 '함께 가다, 동반하다, 뒤따라 가다, 따라가다'이며, (b) 비유적 의미로는 '(추세나 의견)을 따르다, 동의하다, 순응하다'를 의미한다.
(c) 스토아 철학자들은 아콜루데오를 종교적, 철학적 의미로 사용했다. 이 단어는 현자가 세상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자연 혹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철학적 삶의 기본 방향이다. 여기에서 따른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통합에 의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이면에는 이성적인 인간과 하나님과의 본유적 관계에 대한 헬라적 견해가 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주로 할라크의 역어로 5회,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6회 사용되었다.
(a) 아콜루데오에 상당하는 히브리어는 민 22:20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함께 가라"는 것 외에는 할라크 아하레(직역: 뒤따라 가다, 4회)로 나타난다.
- 삼상 25:42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사자를 따라가는 것, 왕상 19:20에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고 싶어한 것, 호 2:7에 이스라엘 백성이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가는 것, 사 45:14에 만방이 주를 따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b) 구약성경에서 할라크 아하레라는 표현은 특히 호세아, 예레미야, 신명기 기록에서 이교로의 변절을 경고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그 독특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른 신(神)들을 따라가는 것은 백성의 기본 죄이며, 모든 재난(심판)의 원인이다(삿 2:12; 신 4:3; 신 6:14; 왕상 21:26; 렘 11:10).
호세아에서 이 표현은 간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정부를 따르고 남편을 잊어버렸다(호 1:2; 호 2:7; 호 2:13).
여호와를 따르는 것은 신명기에 나타나지만(신 1:36 등) 별다른 강조가 없다(왕상 18:21은 예외). 그 이유는 그것이 우상숭배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렘 2:2의 광야에서 여호와를 좇는 것(출 13:21-22)에 대한 언급에서 결혼에 대한 개념이 고려되고 있다. '하나님의 길로 걷는다'는 표현이 애호되고 있다(신 5:30 등).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아콜루데오는 신약성경에서 90회 중 복음서에 80여회, 사도행전에 3회, 바울서신에 1회, 요한계시록에 6회 나타난다.
(a) 신약성경에서 따른다는 개념은 하나님께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이 개념은 팔레스타인 용법에 의해 암시되지 않았으며 초기 기독교도 이 표현을 형성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전혀 새롭고 독특한 개념[새예루살렘성은 그안에 성전이 따로 없으며 빛이 필요하지 않으니, 하나님과 어린양이 친히 성전이자 빛이 되시기에(부활 생명이신 그 영은 공기보다 가벼우시고 제한 없으시니, 유기적 공동체의 모든 지체마다에 있어서 완전히 모든 구성 요소마다에 그분의 신성-인성의 성분으로 mingle(하나 됨)-conformation(일치)되어 계심), 진정한 임마누엘- 여호와 삼마-다바크(adhere to, cling to, attach to ::결합한 하나 됨)가 완전히 이루어짐이 나타난다..그러므로 성령으로 산다 함은 모든 차원과 영역의 창조주-주관자 그리스도, 곧 TUQ이신 그 영의 충만-인도-이끄심 따라 주 이름 부름으로 주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 공급 받으며 (코람 데오-솔라 피데-솔라 스크립투라-솔라 크리스토스-솔리 데오 글로리아 이루심) 녹아 든 하나 됨(mingle)으로 변형-일치-동행의 t생명 삶을 매 순간 영위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새 예루살렘, 곧 몸의 생활로 확장하여) 누린다 함이다 ]이 생도 관계를 뿌리로 하여 그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따른다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념에 익숙한 헬레니즘 영역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갔을 때조차도 아콜루데오라는 동사와 따른다는 개념 전체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실로 역사적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다른 종교적 용법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직에 엄격히 제한되어 사용된 아콜루데오의 특별한 용법은 통계상으로 분명하게 증명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단 한번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면 아콜루데인은 전적으로 사복음서에서만 발견된다.
이 용어는 어느 정도는 외적으로 따르는 것을 함축하는데, 예컨대 막 3:7과 병행구절, 마 8:10과 병행구절에서 무리가 예수님을 좇는 것과 마 8:19에서 좁은 의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는다고 할 때이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는다(막 10:28; 막 1:18; 눅 5:11).
그러나 이것은 아콜루데인의 모든 다른 관계들을 끊는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헌신을 의미함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 8:22),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눅 9:61).
제자는 랍비의 생도가 행하는 바와 같이 행하되, 외적으로는 랍비의 생도와 똑같으나 내적으로는 예수님께 결속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제자직의 의미를 여전히 가지면서 한편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내용과 표시를 획득한다.
이 용어의 신약성경의 용법의 배타성은 원시 기독교에게는 유일한 하나의 제자직만 있으며, 따라서 유일한 하나의 좇음, 즉 예수님과의 관계만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막 2:14과 병행구절에서 아콜루데이 모이, "나를 좇으라"는 요구는 곧 메시야의 요구이다.
(b) 아콜루데인(따르는 것)은 메시야를 좇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제자직은 본질적으로 영적 선물이다. 아콜루데인은 예수님 안에 제공된 구원에 참예함을 의미한다.
눅 9:61 이하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만이 아콜루데인을 성취할 수 있다.
막 10:17; 막 10:21 및 병행구에서 아콜루데이 모이는 "영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요 8:12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동일한 사상이 계 14:4에서도 나타난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c) 하지만 아콜루데인은 또한 예수님의 운명에 함께 하는 것을 암시한다.
마 8:19 이하에서 아콜루데소 소이("좇으리이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이다.
막 8:34과 병행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신다.
요 12:25-26에서도 동일한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구절들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바는, 어떤 의미에서 아콜루데인은 예수님의 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구원을 누림으로 시작되는 메시야와 함께 하는 삶과 고난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믿는이에게 오셔서 친히 살아계시는...이것은 진실로 최고의 축복 그 지체이다!!] 그리스도의 영, 곧 과정 거치신TUQ의 최종 완성이신 그 영이 내주하여 살아 계심 인해 (세상이 감당 못할만큼의) 탁월하고도 분명한 제자로서의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명심하자..
.....(([신자의 믿음의 참됨 여부는 드러나는 바 사랑의 역사로 증명된다]))
[갈5:5. 6.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5 For we [not relying on the Law but] through the [strength and power of the Holy] Spirit, by faith, are waiting [confidently]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the completion of our salvation]. [우리는 행위의 율법으로가 아니라 (네오스-카이노스-아나네오오-쉼모르포스..우리 영에 내주하시는, 참 인성-참 신성 가지신 그리스도의 영이, 곧) 그 영의 힘과 능력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의 완성 =..범사에 사랑안에서 진리를 행하여 그에게까지 자라난, 참 인성-참 신성 가진 그리스도의 몸 한 새 사람 안에 그대로 나타날 바 Q의 영광인) 의의 확실한 소망 이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6 For [if we are] in Christ Jesus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but only faith activated and expressed and working through love.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TUQ과 하나 되어 있어서 그분 이름 부름 통해 사랑의 Q, 그분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한량없이 공급 받아 사는) 우리로서는 "(살갗에 그 흔적 남는 할례의)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오직 (거듭난 자의 참된) 믿음, 곧 사랑을 통하여 (사랑의 주님이 부어주시고 일깨워주시는 바, 그 사랑의 섬김 동기로) 자극/활성/작동-표현-역사하는 (이타적 사랑,. 곧 그리스도 예수의 보이신 바 , 그 사랑의 섬김, 곧 서로 종 노릇함으로 나타나는 바) 바로 그 참된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롬2:28,29.....*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 Q 소유 됨의 표시이자 "일편단심 주님 소유 된 인생으로서, [또한 거듭난 나의 소유로 자신의 모든 것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Q] Q으로 평생 살리라"의 삶 결단 = 구주 영접함 + 붙좇음attach to, adhere to, cling to, trust-rely on, confide, believe의 참된 믿음...이로써, <그리스도 예수, 포도나무 본체에 접붙임 받아 한 몸의 교통communion과 상호 교환exchange으로 사는 산 가지>로 사랑-감사-믿음으로 앙망-주목-의뢰하며 주 이름 부름-교통-동행 가능케 됨)는 마음(the heart..심령, 영의 양심)에 할지니(=새길지니) 영(the spirit)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8 왜냐하면 외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외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9 오직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할례는 마음에 있는 것이어서 영 안에는 있고 율법 조문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d) 이 용어의 은유적 용법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다음의 고찰에 의해 드러난다.
전승은 확실히 본래부터 마 10:38; 눅 14:27과 같은 말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마 10:38,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 14:27,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다른 한편으로 전승은 예수님과 (이 땅에서, 육신 입은 자로서, 눈에 띄게) 함께 다닌다는 의미에서 아콜루데인을 행사하지 않는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매우 본래부터 나타낸다. ....더욱 더 두드러진 것은 전승의 세번째 명백한 특징이다.
즉 이 단어와 예수님의 역사(history)의 구체적인 활동이 너무나 강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다른 명사도 이 제자직의 개념에 일치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신약성경에는 단지 능동적인 표현만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이 용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행위이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아콜루데인이라는 용어가 복음서에서만 사용되고, 또 사복음서 모두에서 그 용법상 일치점이 있으며, 복음서들이 이 용어가 의미하는 관계를 역사상의 예수님에게 국한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신약성경의 서신들에서는 다른 표현들이 높임 받으신 퀴리오스(kuvrio", 2962: 주, 주님) 및 그의 프뉴마(pneu'ma, 4151: 영)와의 관련을 강조하는 데에 사용된다.
[마10:37, 38...*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계14:4...*4.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 용어가 예외적으로 복음서 외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계 14:4은 분명 마 10:38을 특정한 부류의 신자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여기서 그 개념에 주어진 분명한 새로운 내용은 마찬가지로 사도 시대에 '따른다'는 묘사가 예수님의 제자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사도행전은 바나바와 마가, 혹은 바울과 그의 집단(circle)의 경우처럼 스승과 제자(master-pupil) 관계에 친숙해 있었지만 어쨌든 다른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식의 표현을 피한다. (참조: G. Kittel; C. Blending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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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열매로 사는 그리스도인.(잠8:19-21)
[잠:19-21...*19, 내 열매는 금(金)이나 정금(正金)보다 나으며 내 소득(所得)은 천은(天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의(義)로운 길로 행(行)하며 공평(公平)한 길 가운데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財物)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 성도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영으로 의와 공의와 선을 행하신다.
지혜의 신(神) 성령 하나님께서 입술을 열어 가장 선한 것을 말씀하시기를 내 입은 진리(眞理)를 말하고 내 입은 악(惡)을 미워한다하셨으며 선(善. 히>토브. 헬>ἀϒαθός 아가도스.~ 아름다운 도덕의 실천. 선하신 하나님의 일)한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셨다.(잠8:6)
선이란 창세전에 택한 자들을 부르시고 중생의 씻음(십자가의 연합)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모든 것을 깨끗케 하시며 거룩케 된 성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것이다. (잠8:20.미6:8.롬5:5,8:28.엡1:4,2:10.딛1:15,3:5)
성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헬>παλαιός 팔라이오스.~ 초등학문. 옛 육신의 소욕)을 좇는 옛 사람(헬>παλαιὸς ἄνθρ-ωπος 팔라이오스 안드로포스.~ 예수 밖에 있는 자. 육신에 있는 자.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을 벗어버린 자다.(엡2:1-3,4:22)
★ 새 사람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보화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로 행한다.
성도는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고 하나님을 따라(히>라티프. 헬>ἀκο-λουθέω 아콜루데오. pursue.~ 주님을 좇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헬>καινὸς ἄνθρωπος 카이노스 안트로포스.~ 성령으로 중생한자)을 입은 자다.(엡2:10,4:24.딛3:5)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를 좇고 계명을 지켜 제 목숨을 부인해 그리스도와 친구(히>레아. 헬>Φίλος 필로스.~ 벗. 동료. 제 목숨을 버린 자)가 된 자이며 또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아 만난 자들이다. (삼상1:10-16.시42:1,2.잠8:17.눅9:23.요15:13,14,16:13)
베드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 말했으며. 예수님은 네가 자신을 부인하면 하늘에서 보화(헬>θησαυρός 데사우로스.~ 창고. 보물. 복음의 영광.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셨다.(마19:21.행2:38,3:19.고후4:7.골2:3)
★ 하나님 영광은 예수이고 금보다 귀한 반석이시며 우리 행위의 열매다.
바울은 어두움(히>호셰크. 헬>σκότος 스코토스.~ 악. 사망. 심판. 마귀의 속박)에 속한 자에게 빛으로 오신 주님은 그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고 이는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 것이라 말했다.(사14:17.요3:19,20.고후4:6,7)
지혜의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상급과 열매고 이는 금보다 귀한 반석(히>추르. 헬>πέτρα 페트라.~ 바위. 안전함. 하나님. 그리스도. 성도)을 주신 것이며 우리는 금이나 정금과 천은보다 나은 그리스도를 열매로 받은 것이다.(창15:1.잠8:19,11:30.요15:5)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그가 열매로 그리스도를 주시며 믿음의 결국 영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그의 사랑 예수의 선한 행사를 우리 행위에 나타내 주심으로 우리가 그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해주신다.(잠8:19.요14:21.고후13:5.히6:10)
★ 하나님 소원, 우리 안에 예수(보화)의 열매를 맺고 영광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섭리는 우리가 무죄하고 의로우며 완전한 자로서 항상 넉넉히 이기고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보호하시며 합력하시고 우리에게 주의 일 곧 예수를 믿는 소원(所願)을 마음에 두고 행하게 하신다.(호8:5.요6:29.롬8:28-39.벧전1:5,벧후1:11)
주님이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의로운 길과 인애와 공평과 정직과 모든 진리로 행하시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재물(財物. 히>하일. 헬>μαμωνᾶς 마모나스.~ 부. 풍요. 보화)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잠8:20,21.렘9:24.요14:16,16:13.롬8:4.히6:10)
재물이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보화 예수그리스도(말씀과 씨와 성령)이니, 그분을 참되게 얻고 종말의 때 천사들에 의하여 양(알곡)과 염소(가라지)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게 하신다.(마25:31-34)
★ 성도의 섬김은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를 섬겨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오른 편에 있는 양은 하나님을 주인 삼고 그의 사랑과 생명의 능력과 공급하시는 힘으로 지극히 작은 형제 눈에 티를 뽑아주고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며 사망당한 자를 구원해 허다한 죄를 덮어준 자들이다.(마25:35-40.눅6:42.약5:20.요일5:16)
예수님은 우리의 섬기는 예로 교훈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섬김(히>아바드. 헬>δουλϵύω 둘류오. διακονέω 디아코네오.~ 일하다. 봉사하다. 시중들다)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 말씀하셨다.(마20:28,25:40.막10:45)
하나님은 그의 사랑 예수를 우리 안에 소원으로 두고 의와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시며 행하시는 것은 우리로 그의 영의 행하심에 이끌려(히>보. 헬>ἀνάϒω 아나고.~ 성령의 인도를 받다)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롬8:14.빌2:13.딛2:11-14)
★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재물로 받고 천국 곳간을 채운다.
즉 성령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가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따라 그의 후사가 되게 하셨으며 우리를 하늘 보좌에 보물 되신 주님과 함께 앉히시고 그의 곳간 천국을 채우게 하신다.(엡2:6.골3:3)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하나님의 열매는 천국의 재물(보화. 보물) 생명나무 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니, 자신을 부인해 주님을 사랑한 자들은 그의 사랑 예수를 옷 입고 그가 의와 공평의 길을 가게 하심으로 우리로 보화, 재물을 채우게 하신다.(잠8:19-21.롬13:14.갈3:27).., (그분의 이름 부름으로써 이 땅에서부터 그분 영광의 풍성-부요-충만함 얻어 누리며....Q의 모든 풍성하심은 그리스도께 부요하심으로 주어졌고, 이로 인해 내주하시는 성령은 주 예수 이름 부르는 모든 이마다에게 Q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허락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여 찾아 만난 사람은 부귀가 있고 썩지 않은 장구한 재물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의 의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어 의의 길로 행하고 선과 공평의 길을 행하게 되며 재물을 얻어 천국 곳간을 채우는 충만한 삶을 열매로 살게 된다.(잠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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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안에 있는 빵을 올려놓는, 진설병 떡상 관리법(레24:5~9).
[레4:5-9((8, 9))...*8. 안식일 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8,.“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여호와 앞에”는 히브리어로“파님”인데“어딘가로 가기 위하여”을 뜻하는“파나”에서 유래한 것으로“얼굴을 ~쪽을 향하여, ~쪽을 바라보다, ~얼굴을 돌리다”을 뜻한다. 즉 여기서는 문자적인 뜻은“여호와의 면전에서”란 뜻이다.
---“항상 진설할지니”는 히브리어로“아라크”인데“정열하다, 한 줄로세우다, 제단 위에 나무를 올려놓다, 순서대로 놓다, 간검하다, 정리하다”을 뜻한다(4절) ...즉 한번 드려진 빵은 일주일 동안 여호와 앞에 진설되 었으며,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진설 되었던 그 빵을 교체할 때는 미리 새로운 빵을 준비한 후 제사장이 이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그 빵을 거두는 동시에 새로운 빵을 올려 놓았다. 그러므로 빵은 상위 항상 놓여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영원한”은 히브리어로“올람”인데“감추다, 숨기다”을 뜻하는“알람”에서 유래한 것으로“영원, 영구, 영원히, 고대, 영세, 영원무궁”을 뜻한다(출15:18),
---“언약”은 히브리어로“베리트”인데 이 말은“잘게 자르다, 먹다”을 뜻하는“바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언약, 계약”을 말한다. 즉 자르고 분리한다는 개념이다. ......구약에 언약은 희생물을 둘로 자르고 그 사이를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감으로써, 만약 언약 파기 시에는 이 짐승 같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임을 서로 확인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결국 언약은 생명을 담보로 한 엄숙한 약속임을 알 수 있다......“언약”은 라틴어“테스타멘템Testamentum”이며 여기서 영어 “테스타먼드testament”가 나왔다. 히브리어 “베리트”, 헬라어 “디아데케”와 동일 어이다. 이 말은“유언, 계약”이라는 의미이다. (언약의 책, 계약의 책)(창9:9, 출6:4, 신5:2). 특히 히9:16~17에서는 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유언한 자(testator)가 죽어(death)야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듯 예수께서 언약을 말씀하신 것은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셨음을 설명한다. testament는 성서, 증거, 증명, 유언, 입증을 말하지만 흠정역 성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사용되었다.
① 상속 언약 testament(히9:16,17,20). ② 새 상속 언약 new testament(마26:28, 막14:24, 눅22:20,고전11:25,고후3:6, 히9:15). ③ 더 나은 상속 언약 better testament(히7:22,8:6).
......또 성경에서 사용한 covenant는 계약, 서약, 언약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④ 언약covenant(눅1:72,행3:25,7:8,롬9:4,갈3:15,17,4:24,11:27,엡2:12. 히8:9,10,13, 9:4,10:29, 13:20). ⑤ 새 언약new covenant(히8:8,13,12:24) ⑥ 첫 언약first covenant(히8:7, 9:1,18).
*9.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이 떡을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이 말은 여호와 앞에 차려놓았던 빵은 제사장과 그 가족의 몫으로 돌려졌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의 생계를 위한 음식이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교훈적으로 보여 준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사울의 박해를 피해 도피 중이던 다윗이 굶주린 자기 부하들에게 이 빵을 주어 먹도록 한 사실을 들 수 있다(삼상21:1~6). 그런데 이 사건은 후일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은 예수의 제자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이 비난할 때 예수께서 실례로 든 사건으로서, 복음의 참 정신을 설명하는데 적용되고 있음을 볼 수있다(마12:1~8). 그러므로 율법의 참된 의미는 죄인들을 처벌이나 정죄가 우선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근본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거룩한 곳”히브리어로“카도쉬”인데“거룩하다, 깨끗하다”을 뜻하는“카다쉬”에서 유래한 것으로“거룩한 곳”을 뜻한다. 즉“거룩한 곳은“회막 뜰”을 말한다(6:16).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화제”는 히브리어로“잇샤”인데, 비유적으로“하나님의 불, 하나님의 진노”을 뜻하는“에쉬”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에 태워서 드리는“희생물”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여호와께 드려지는 화제를 가리켜“여호와의 화제(1:9)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화제들을 하나님께서 받아 흠향하신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곧“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레3:16), 또는 하나님의 음식”(레21:6, 8, 17, 21, 22. 22:25),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음식”은 히브리어로“레헴”인데“먹다, 먹이다, 소모하다, 부식시키다”을 뜻하는“라함”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과 짐승들이 먹는“음식, 양식, 식물, 곡식”을 말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수사법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순종과 제물의 뿌려진 피를 보고서 그 예물을 기쁘게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번제의 경우,“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레1:9).
---“지극히 거룩함이라”는 히브리어로 “코데쉬”인데 “거룩하다, 깨끗하다”를 뜻하는 “카다쉬”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룩함, 거룩한 이름, 거룩한 것, 하나님께 받쳐지 물건, 성전에서 쓰이는 물건, 성지, 성결 신성하게 구별된 것” 등을 말한다,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영원한”은 히브리어로“올람”인데“감추다, 숨기다”을 뜻하는“알람”에서 유래한 것으로“영원, 영구, 영원히, 고대, 영세, 영원무궁”을 뜻한다.
---“규례”는 히브리어로 “호크”인데 “제한된 것, 지정된 것, 즉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모든 율법"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율법의 율례와 규례는 유대인에게 주신 법이지 오늘날 교회에게 주신 법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 임재 앞에서, 앙망-부름-동행 "코람데오"--오직 믿음으로 "솔라 피데"--오직 성경 말씀을, 말씀 따라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그리스도를 "솔라 크리스토스" --오직 Q의 영광(드러남) 감사하며"솔리 데오 글로리아")....즉, 음식 먹는 것이 생명 먹는 것임을 인정하고 합당한 깨달음과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거리낌 없는 상태로" 먹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가르치셨다(마15:11).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고전10:23) [유익 가운데서 궁극적 유익은 "토브, Q의 지고지선, 절대적 선의 진복이신 Q 얻음"인 영적 유익이기에, 소금-빛인 믿는이에 대해 이웃(불신 세상)으로 하여금 오해-착각-폄훼하게 만들 수 있거나 형제를 넘어지게 할 가능성 있는 그 어떤 행동-발언은 그 언제라도 절제함으로써(현재 사회의 공동 유익 위한 불문율 존중함의 예의-정중-도덕의 범위를 인정함으로 = 이것은 상대적, 일시적 선에 해당된다!!) 질서 지키고 주께만 여쭈어 확인하되, 오직 "사랑-기쁨-평강 안에서 참된 것(진리)을 행함인지", 곧 (극히 작은 일이라도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 이름 불러 여쭈어 듣고, 큰 일에는 더욱 더 ) 주께 여쭈어 그분 인도 따라 최종 결정하되, 그 언제나 주 보시기에 합당함이 중요하다],
또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묻지말고 필요한대로 사서 먹되, 파는이가 "우상 신전에 먼저 드려진 것이라" 먼저 말한다면, 파는이의 억측-오해-오도됨 막기 위해서 사 먹지 않을 것, 형제 중 (채소만 먹는) 믿음이 약한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비판-비난-자괴감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때와 장소따라) 고기를 먹지 않기로 개인적으로 결단함) 먹는 자에게는 악한 것이라(롬14:21)고 하셨다..[고전10:31...*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골3: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의복 점검 후 일단 성소에 들어가면 떡상->-등잔대-->향단 순서로 간검, 바르게 세심하게 정돈한 후 기도에 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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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복음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의해 영접 된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믿고 불러 내신 Q과 결합한 하나 됨 이루어 그분의 아내요 신부로 산다.
그러므로 복음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믿는 자들에 의해 영접 되는데, 우리가 그러하다.
.......부르심을 입는다는 것은 [그의 이름 부르시는(call for) Q앞에 단독자로 나와서 만나자 하심이다] 부르심을 받았다 함은 거기서 아무 미련 없이 나와 (Q 아닌 것들은 거기 그대로 다 버려두고) 홀가분하게 홀로 나와 (부르신 분 Q을 신뢰하여 친히 이끌어가시는 그분과 함께 그분이 지시하는 곳으로 바로 그 곳으로) 떠나 간다는 것을 의미하며[이것을 불러내셨다 : call out로 쓴다], 또한 믿는다(believe in = be life into)는 것은 믿어 들어가서 믿는 분을 그의 생명 삼아 그분과 하나 되어 산다(그분의 어떠하심의 판박이인 그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짖다/외치다 call upon to....울부짖다, 울며 소리치다 cry out .... (이름) 부르다 call for......불러내다 call out...@@@
......참되게 믿는 것이란 어떻게 믿는 것인가...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은 Q에 의해 지음 받은 족속에서 불러내신 자였다. 지음 받은 족속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로 타락했으며 더 이상 Q과의 관계에는 소망이 없다고 보셨기에 하나님은 그 족속을 버리셨으며 그분의 영광으로 친히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사 그를 적셔주심으로(후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마지막 40일 금식 기간 동안 Q 영광으로 적셔짐 안에서 성막 식양을 전달 받게 된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불러내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Q의 지음을 받은 족속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족속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Q을 믿었다" 함은 영광으로 나타나 만나주시고 그분의 그 아름다운 영광으로 [여전히 죄성 가진, 타고난 죄인인 아브라함 그 자신을] 흠뻑 적셔주신 그 Q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시는 그분,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영생하시는 그분의 신실과 참되심을 신뢰하고 자기를 온통 맡겨 드리고 일심으로 붙좇음(attach to, adhere to, cling to,trust, rely on, confide in. believe in) + 말씀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 (에노스처럼) 올바르고 합당하게 주 이름 부르며 (에녹처럼, 노아처럼 친밀하게 앎 가운데)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믿는 우리 영 안에 오사 내주하시는 그 영을) 마음 열어 그분의 이름 부름으로써 온통 자신을 주시는 주님을, 그분의 사랑-기쁨-평강 가운데 머무르며 앙망-주목/응시-여쭈고 교통하며 제단 쌓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마다 24 시간 내내 동행하였다는 말이다...
......우리는 Q 외의 모든 것들, 즉 옛 창조, 세상, 사람의 족속, 우리 자신에서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는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그분 자신이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Q 자신이 아닌 모든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후에 믿었다. 믿는다는 것은 믿고 들어가서 하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왕-구주-주인-머리-남편이신 예수님 안으로 믿어 들어가 하나 됨의 친밀한 교통-동행-순종 가운데 (Q이 예비해 두신 그대로)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고, 우주적 한 새사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됨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되게 믿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은 진정 nothing, nobody!! 즉 소망 없고, 어쩔 도리도 전혀 없고, Q을 전혀 기쁘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고 시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려야 하고, 우리 자신을 끝내야 하며, 우리의 어떠함과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이것이 참되게 믿는 것이다.
-----로마서, 일명 제5 복음서------
.......사복음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의,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말씀이 육신이 되신 후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그들 곁에) 계셨지만 십자가와 부활 전에는 그리스도가 아직 그들 속에(부활 생명의 그 영으로서, 그들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계시지 않았다.
[요7:37-39...*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로마서의 복음은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활하사 믿는 이의 영 안에 내주하여 계신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명심하라.,
[부활하사 참되게 믿는 (거듭난) 우리 영 안에 내주하사 살아계시는, 과정 거치신 TUQ의 최종 완성인 그리스도의 영(그 영)으로 살아감의 복음, 즉 (날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말하는 복음]
롬8장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부활하신 후의 그리스도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의 그 영(성령)이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 즉 그분의 부활 이전에는 제자들과 함께(우리 영 밖에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함의 믿음으로 거듭난 자로서] 우리 영 안에 들어와 내주하여 계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로마서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보다 더 깊고, 보다 더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즉, 로마서에서의 복음은 부활하신 후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인 것이다.
......만일 직접적으로 육안으로 그분을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사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만 있다면 우리의 복음은 너무나 객관적이 되고 말 것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다섯번 째의 복음, 곧 우리가 실지로 주관적으로 체험 가능한 그리스도의 주관적 복음이 로마서를 통해 주어졌다...
우리에게는 진정, 로마서의 체험 가능한 그리스도의 주관적 복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단순히 성육신 후부터 부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시던,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만이 아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더 높고 보다 주관적인 분이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의 그 영(생명 그 자체요, 생명을 주며, 지속적으로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요14, 15장에서 그리스도는 믿는이들 안에 계실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의 복음이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 곧 그를 믿는이들 안에 계신 주관적인 구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더 깊고 보다 주관적이다.
Q께는 [JC를 보내신]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최종 목적은 Q의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려는 것이요, 이를 통해 한 새 사람인 교회 곧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이자 새 예루살렘을 오게 하려하심이다.
바로 이를 위해서는 구속과 생명 주는 것과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타락된 죄인인 우리들에게는 거듭나고, 변화되고, Q의 아들들로 완전히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 구속이 필요하고, 이 구속을 믿는 믿음 통해 얻는 바 구원, 곧 Q의 생명 얻음이 필요하며, Q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Q의 완전한 아들들이 될 것이다.
---Q에게는 외아들, 즉 독생하신 아들이 있다. 그러나 Q께서는 한 분의 아들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많은 아들들을 영광(= Q의 어떠하심의 완전한 나타나심) 안으로 이끌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Q께서는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해 독생자를 하나의 모형과 본으로 쓰셨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이전에 가지신 신성을 생명 씨앗 동면 상태로 그분의 육체 안에 두시고, 참 인성 획득을 위해 그 과정인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셨고, 33년 동안 사람으로서 율법을 완전히 살아내셨으며, 점흠티주름-그 어떤 죄도 없으신 그분은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어린 양으로서)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대표적 구속 이루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통해서[이 부활은 또한 그분의 신성 가지신 아들이심의 참 확증이요], 이제 그분은 자신이 구주 되심을 믿는 모든 이들안에 과정 거치신 ((제한 받지 않으시는)) 그 영으로 오셔서 친히 살아계신다....((그 영의 상태라야 그리스도는 거듭난 영에 내주하심으로써 생명 공급을 하실 수 있으쎴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제한 받지 않으시는 그 영은 Q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시요 Q이시요, 생명과 빛이시며, 믿는이의 마음과 입술에 그 말씀이 [의식보다 호흡보다도 더] 가까이 계시기에 마음에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함으로써 구원 받게 된다....즉 우주 전체와 의식-무의식-잠재의식의 모든 차원과 영역을 제한 없이 관통하며 넘어서며 초월하고 두루 퍼져 계시며 활동하시는 상태이다. ((이것은 결코 범신론이 아닌 것이다))
이로써 [구주 믿는, 붙좇아 믿는, 믿어 들어가 그분을 생명 삼고 살아가는 이들마다에게, TUQ의 하나 되어 사랑으로 섬기며 순종하심처럼, TUQ과 하나 됨 이루사 완전한 상호 교통과 교환 통해 당신의 모든 어떠하심과 성취를 공급하시고 신진대사적 변화를 이루고 계심으로써 Q께 합당하지 않은 것들마다 하나하나 제거하사 믿는이들을 거룩하게 하심으로 Q의 신성에 참여하게 하고 계신다!!....그 어느 날, 주 안에서 (살아 있을 때든지, 부활 후 재림 주 안에서든지....믿는이마다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그 신성을 얻게 하셨음을!!) 돌연히 깨닫고 발견하고 극도로 감격하게 되리라..]]
---Q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이 같은 과정을 거치셨으며 우리도 Q의 아들로 인정 받기 위해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깨닫는가?
본래 그리스도는 Q의 외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이 Q의 독생하신 아들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
육신이 된 Q의 아들 예수는 33년이란 시간을 거치신 후에 부활하심으로써 Q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Q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겸한 한 아들을 얻은 것이다.
성육신 전에는 Q의 아들에게는 신성만 있었으나 성육신-죽음-장사 됨을 거쳐 부활하신 후 Q의 아들은 신성과 인성을 갖게 되었다, 오늘 Q의 아들에게는 신성과 인성 모두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사람의 아들들로 태어났으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Q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났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우리는 모두 Q의 아들들이다. 어느 의미에서 Q께는 딸이 없으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자매는 다 형제이다.
믿는 우리 모두는 형제들이요 우리 모두는 Q의 아들들이다. Q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우리 속에 오셨기에 우리는 Q의 아들들인 것이다.(갈4:6)
---Q의 독생하신 아들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처럼 이제 Q의 아들의 영이 우리 많은 육신들 속에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의미에서 모두 예수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속으로는 Q의 아들이었지만 또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었다.
우리도 또한 속으로는 Q의 자녀이지만 또한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아들로 인정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육신의 사람은 이윽고 거룩하게 하심과 변화와 영화롭게 하심으로 인정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거기서 그냥 멈추는 것 아니라 궁극적 목표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바울 서신서를 바탕으로 그 전망을 열어두신 바 계시록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곧 한 새 사람(그리스도는 머리시요 교회는 그분의 몸) 이루심을 예비해 두신 바 됭 아루어나가야 한다...., 성도 하나하나마다 (생명-경건-사랑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함 이루어 나가며 동시에) 그분의 지체로서, 서로 유기적 생명 공동체로서의 몸의 생활 훈련을 이 땅에서부터 연습-실행하도록 하자..[이미 예비해두신 바 그리스도로부터 공급 받고 통제 받음으로써 성령의 사랑-희락-화평-자비-양선-충성 안에서 온유-절제(질서-균형-조화-섬김)의 상호 섬김의 생명 원칙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감으로써 대적원수-사탄마귀를, 그리고 그의 체계인 세상을 이김의 전사됨-신부 됨을 살아감으로써 주만 바라보고 동행함으로 서로 도우며 은혜-평강 안에 머무르며 섬기기를 배워 능숙케 함으로써 Q의 궁극적 목표인 새 예루살렘을 지향하며 이 땅을 살아감이 그토록 중요하다.]...((먼저 그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런 연후에라야 [보좌에 앉혀진 존재로서의 자각 가지고 내주하시며 동시에 삼층천에 앉아 계신 주님 품에 안겨 내려다보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조명하심 따라] 이 땅을 사는 이로써 가정-사회-국가-열방에 대한 참된 시야-이해-추구 방향과 주님 뜻에 합한 (무엇을 구하기 원하시는지) 중보-중재자적 관점이 열리게 되며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Q 나라를 위해 올인함이 아니라 흔히 태어난 모국 위한 "애국 충정"의 기도를 더 강조함으로써 오도될 수 있음에 특히 세심한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본말전도-주객전도는 대적원수 사탄의 궤계이다!!..(그대가 정녕 파수하는 기도의 사명자로 부름 받았다고 생각된다면, 새삼스러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대가 파수하려 함이 누구를, 무엇을 위함인지 주께 여쭈며 (미래를 예측하며 말하는 이들에 동조하여 짐짓 추정-염려-근심은 세상 체계에 스스로 내어줌이 되며, 주님 주권 건드림-믿음에서 벗어남이 될 수 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