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28장 ===멜리데 섬에 오르다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마리다-->말타or몰타 섬.<꿀>이란 뜻)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자꾸 실수+ 게으로다+ 되는 일 없어 보인다 + 보이스피싱/사기 당했다 => 불성실or무가치 ?? ==>무탈하게 벗어나고 Q영광의 임재따라 산다 **짐짓추정 금지!! --주님만 완전히 아시는바 그분의 뜻 이루실것:: 비록 (고백적살인죄인이라며) 황제에게 고소한 바 죄인으로서 호송중 + 독사에 물렸다..그러하다면]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독사의 독이 그를 어쩌지못한바]그를 신이라 하더라...[막16:15-18...15.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하나이신 임마누엘 CJ 영광의 임재 = 적극적/능동적 이김/극복/돌파 + 수동적 방패/보호/돌봄)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바울과 그 일행 276명이 그 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두 가지 기적을 통하여 주님 전할 기회를 가졌고, 섬 전체가 주께 돌아오게 되었고 보블리오는 몰타 교회의 초대 주교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주민의 약 98%가 복음화된 상태라 함.. ===바울이 로마로 가다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시실리섬 동쪽항구]수라구사[=시라큐스]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로마본토 남동끝단항구]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본토 중남부 항구도시]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이미 고린도에서 보낸 로마서를 통해 바울에 대해 알고 있던]그 곳[로마]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아판테시스-승리의 개선장군 입성식에 쓰인 단어..하늘 어린양 혼인잔치 참석때 상호갈망하여 오던바 주님께서 우리를, 우리가 주님을 바로 그렇게 뜨겁게 환영케 하실 것)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갈5:17-26..하나되어 함께 살며 인도-보호-동행하시는 CJ의 성령!!]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은, 복음 그 자체이신 CJ와, 삽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부활승천후 성령으로 오사 (내가 만난 그분이!!) 바로 내주하여 계시는 JC이심을 (듣고 믿는바) 로마에 사는 유대인 너희이기에, 바로 그 복음 전하기 위해 쇠사슬에 매인 죄수로서 땅끝 로마에 오게 되었다..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말씀이 (주 예수 이름 부름 인해 가난해진) 내 마음을 침 인해) 회개하고 돌이킴에 이름은/들리면 천국/구원 안들리면 심판/지옥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2년의 모든날들] 자기 셋집에[자기부담으로 얻은 셋집 :: 그의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소진하고 있음]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그가 믿는자든지 아니믿는자든지 구별없이 CJ의 열린마음으로 환영하여]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preching설교+proclaimg선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공개적으로-대담/용감)하게 거침(방해/제지)없이 가르치더라[=teaching가르침]......with all openness and boldness, unhindered and unrestrained. ...[딤후2:9..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 Acts 28 Amplified Bible ===Safe at Malta 1 After we were safe [on land], we found out that the island was called [a]Malta. 2 And the [b]natives showed us extraordinary kindness and hospitality; for they kindled a fire and welcomed us all, since it had begun to rain and was cold. 3 But when Paul had gathered a bundle of sticks and laid them on the fire, a [c]viper crawled out because of the heat and fastened itself on his hand. 4 When the natives saw the creature hanging from his hand, they began saying to one another, “Undoubtedly this man is a murderer, and though he has been saved from the sea, Justice [the avenging goddess] has not permitted him to live.” 5 Then Paul [simply] shook the creature off into the fire and suffered no ill effects. 6 But they stood watching and expecting him to swell up or suddenly drop dead. But after they had waited a long time and had seen nothing unusual happen to him, they changed their minds and began saying that he was a god. 7 In the vicinity of that place there were estates belonging to the leading man of the island, named Publius, who welcomed and entertained us hospitably for three days. 8 And it happened that the father of Publius was sick [in bed] with recurring attacks of fever and dysentery; and Paul went to him, and after he had prayed, he laid his hands on him and healed him. 9 After this occurred, the rest of the people on the island who had diseases were coming to him and being healed. 10 They also gave us many honors [gifts and courtesies expressing respect]; and when we were setting sail, they supplied us with all the things we needed. ===Paul Arrives at Rome 11 At the end of three months we set sail on a ship which had wintered at the island, an Alexandrian ship with the [d]Twin Brothers [Castor and Pollux] as its figurehead. 12 We landed at Syracuse [on Sicily] and stayed there three days. 13 From there we sailed around and arrived at Rhegium [on Italy’s southern tip]; and a day later a south wind came up, and on the second day we arrived at [e]Puteoli. 14 There we found some believers and were invited to stay with them for seven days. And so we came to Rome. 15 And the brothers and sisters, having heard news about us, came from as far away as the [f]Forum of Appius and [g]Three Inns to meet us. When Paul saw them, he thanked God and was encouraged. 16 When we entered Rome, Paul was allowed to stay by himself [in rented quarters] with the soldier who was guarding him. 17 Three days later he called together the leaders of the Jews; and when they had gathered, he said to them, “Kinsmen, though I have done nothing against our people or against the customs of our fathers, yet I was turned over as a prisoner from Jerusalem into the hands of the Romans. 18 After they had interrogated me, they were ready to release me because I was not guilty of any offense deserving death. 19 But when the Jews objected [to my release], I was forced to appeal to Caesar (Emperor Nero), not because I had any charge to make against my nation. 20 For this reason I have asked to see you and talk with you, since it is for the sake of the hope of Israel (the Messiah, the resurrection) that I am bound with this chain.” 21 They said to him, “We have not received [any] letters about you from Judea, nor have any of the [Jewish] brothers come here and reported or said anything bad about you. 22 But we would like to hear from you what your views are [that is, exactly what you believe]; for in regard to this sect (Christianity), we are fully aware that it is denounced everywhere.” 23 When they had set a day for Paul, they came to his lodging in large numbers. And he carefully explained [Christianity] to them from morning until evening, solemnly testifying about the kingdom of God and trying to persuade them concerning Jesus, both from the Law of Moses and from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24 Some were persuaded by what he said, but others would not believe. 25 They disagreed among themselves and they began to leave after Paul had made one last statement: “The Holy Spirit rightly spoke through Isaiah the prophet to your fathers, saying, 26 ‘Go to this people and say, “You will keep on hearing, but will not understand, You will keep on seeing, but will not perceive; 27 “For the heart (the understanding, the soul) of this people has become dull (calloused), And with their ears they scarcely hear, And they have shut their eyes [to the truth]; Otherwise they might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return [to Me], And I would heal them.”’ :: 영혼의 거듭남/장성함, 그 분량(CJ에 이르도록) : 깨달음-치유-구속의 완전함 베푸시도록 앙망-주시-주목, 바라봄의 하나됨 28 Therefore let it be known to you that [this message of] the salvation of God has been sent to the Gentiles; they indeed will listen!” 29 [h][And when he had said these things, the Jews left, arguing among themselves.] 30 And Paul lived there for two full years [at his own expense] in his own rented lodging and welcomed all who came to him, 31 preaching and proclaiming the kingdom of God and teaching about the Lord Jesus Christ with all openness and boldness, unhindered and unrestrained. ===Footnotes Acts 28:1 Gr Melita, located about 60 miles south of Sicily and 600 miles west of Fair Havens, Crete. Acts 28:2 Gr barbaroi, referring to people who did not speak Greek. Acts 28:3 Probably a sand viper (vipera ammodytes), whose venom is deadly and fast-acting. Acts 28:11 I.e. sons of Zeus in Greek mythology. Acts 28:13 Located about 150 miles from Rome in the Bay of Naples, near Pompeii, this was Rome’s main seaport. Acts 28:15 About 43 miles from Rome. Acts 28:15 About 33 miles from Rome. Acts 28:29 Early mss do not contain this v. ====== 사도행전 28장 (개요) 우리가 앞으로도 그의 서신을 통하여서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 거룩한 역사서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에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복된 바울에 관한 기록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의 몇 장을 통하여 그가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재판을 받은 사실을 고찰했었다. 만일 우리가 그가 석방된 사실까지 본문에서 대할 수 있었다면 보다 기쁜 마음으로 본서를 놓을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렇지 못한 채로 애석하게 끝을 맺게 된다. 28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바울을 동정하고 동시에 그에게 축하를 보내며 본서를 끝맺게 된다. Ⅰ. 우리는 바울이 아무 것도 없이 조난을 당한 사람이 된 것을 동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를 축하하게 된다. 1. 바울은 곤경 속에서도 그의 하나님에 의해 유일하게 인정을 받아 독사에게 물렸으나 살 수 있었다(1-6).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섬 내(內)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줌으로 섬에 유익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특히 그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의 아버지의 병을 고친다(7-9). 2. 바울은 그 섬의 주민들로부터 대단히 존경을 받게 되었다(10). Ⅱ. 우리는 바울이 가련한 죄수 노릇을 하다가 범인이라는 명목으로 영장을 받고 로마로 호소되는 데 대하여 그를 동정하게 된다(11-16).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를 축하하게 된다. 1.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바울이 받은 존경에 대해 우리는 그를 경하하게 된다. 그들은 그를 만나러 멀리까지 환영 나왔던 것이다(15). 그를 책임맡은 경비 대장이 바울의 호의를 입은 사실에 대해 그를 경하하게 된다. 그는 바울을 독방에 거하게 하였고 일반 죄수들이 감옥에 그를 넣지 않았다(16). 2. 바울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과 자유로이 만날 수 있었으며 자기의 일을 자유로이 행할 수 있었던 사실에 대해 그를 경하하게 된다(17-22). 그리고 그가 일반 유대인에게 기독교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축하할 일인 것이다(23).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고 많은 사람들이 교화되었고 믿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을 전해들었으므로 핑계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바울은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였다(24-29). 3. 바울이 이 년 동안 자기의 집에 유하면서 자기를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 받았던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그를 경하하게 된다(30:31). ======= ===멜리데 섬에 오르다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바울의 로마 여행(4)(행 28:1-10) 그동안 바울은 여러 곳을 지나왔고 또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였었다. 바울은 항성이 아니고 유성(움직이는 별)이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아마도 폭풍을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상륙할 수 없었을 섬에 있게된 사실을 보게 된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이곳으로 오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리라. 폭풍우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거센 바람은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멜리데 섬에 분 폭풍은 그 섬 주민들에게 유익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그 바람이 가는 곳마다 그곳에 축복이 되는 바울을 석달 동안 그곳에 머물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 섬은 멜리데라고 부르는 곳으로 시실리와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여 있으며 길이는 이 십마일이고 폭은 십이 마일의 크기였다. 이 섬은 지중해 안에 있는 어떤 섬보다 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었다. 이 섬은 시실리에서도 육십 마일 떨어진 데 위치해 있었다. 그 섬은 말타(멜리데)의 기사들로 인하여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터어키가 기독교 국가들의 일부를 침략해 왔을 때 그들과 당당히 싸워 터어키군 군대가 전진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저지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이 섬의 주민들은 자기 섬의 해안에서 파선당하여 곤란에 처한 낯선 사람들을 친절히 영접하였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였다"(2절)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승객들 중 어느 한 사람의 목숨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듯이 그의 하시는 일 또한 완전하시다." 그들이 바다를 벗어났더라도 해안에 도달해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멸절되었다면 바다에서 살아 난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통하여 그들을 계속 돌보시었다. 우리가 인간의 손을 통하여 도움을 받았을 때도 우리는 그 도움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지만 그가 그것들로 우리의 도움이 되지 않게 하시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원하신다면 원수들끼리도 화평하게 만드실 수 있으며 낯선 이들을 친구로 만드시되 그것도 꼭 필요하고 진실한 친구로 즉 "역경 가운데" 도움을 줄 친구들로 삼으실 수 있는 것이다. 형제란 역경 가운데 서로 큰 도움이 되는데 낯선 자를 이러한 형제와 같은 친구로 변모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1.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이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베풀어 준 친절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자. 그들은 야만인이라고 불리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어나 관습에 있어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이외의 모든 사람은 야만인으로 취급하였다(이것은 다분히 교만에서 연유된 태도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 이외에도 문화 생활을 하는 민족들은 있었고 어느 의미에서는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보다 더 문명인들도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이 토인들은 야만인이라고 불리워졌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애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본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였다"고 했다. 그들은 난파선의 승객들에게서 약탈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두려웁게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이 이러한 잘못을 많이 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이 기회를 그르이 자비를 행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상처입은 사람에게는 제사장과 레위인 보다도 더 좋은 이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게서 혹은 그리스도인에게서조차 여기서 설명한 토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인간애보다 더 나은 행동을 발견하게 된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하여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우리로 역경과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의 능력이 자라는 한 최대한으로 그들을 구조하고 원조하여 주게 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장막 문 앞에 앉아 나그네들을 영접한 아브라함같이"(히 13:2) 나그네를 대접해야 한다. 특히 본문의 토인들과 같이 고난에 처한 나그네들을 영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뜻에 이해서 우리가 길을 잃은 사람들을 자주 대하게 되는 곳에 살게 되었다면 그것을 우리의 불운으로 여기지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있기 때문이다." 2. 토인들이 베푼 친절의 특별한 실례들을 살펴 보자. 본문에 보면 "불을 피워 무리를 다 영접하더라"(2절)고 하였다. 즉 "그르이 우리를 위해 모닥불가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는 개의치 않고 우리 모두를 환영 하였다"는 말이다. 해안을 향하여 헤엄치고 또 부서진 배의 파편을 잡고 해안으로 오는 동안 그들은 몹시 젖었을 것을 쉽게 상상하게 된다. 아마 그들의 몸에 지닌 것 중 젖지 않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다에 빠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비까지 심하게 내려서 오늘은 밑의 물과 위의 물에 휩싸여 살 속까지 젖는 듯한 그런 형편에 처하였다. 또한 "그 비는 겨울 비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모닥불이 가장 필요하였다(왜냐하면 식사는 그들이 얼마 전 배 위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토인들은 즉시 그들을 위해 불을 피워 그들로 몸을 녹이고 옷도 말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때때로 가난한 가정에 음식이나 옷을 주는 것만큼 땔감을 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먹는 것 만큼이나 몸을 따스하게 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사나운 바깥 날씨 가운데서도 따뜻한 집과 잠자리와 옷에 따스한 불을 쬐면서 혹한을 모르고 지내는 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떠는 가를 생각하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와야만 할 것이다. Ⅱ. 바울은 독사에게 손을 물림으로써 또 다를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보고 토인들은 바울이 죄를 진 탓이라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바울은 낯선 무리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또 일행 가운데서 가장 대단치 않고 가장 하찮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별하시어 곧 주목할 만한 인물로 나타내신다. 1. 모닥불이 피어졌을 때 많은 일행이 같이 불의 혜택을 입게 하려고 불을 좀 더 돋구기 위하여 바울은 그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분주히 나뭇가지를 모았다(3절).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자유하였으며 그들 아직 누구보다도 위대하였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바울은 부지런하고 능동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하기를 즐겨하였고 결코 자신의 편안만을 도모하지 않았다. 바울은 겸손하고 자기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이고 달려들어 해치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심지어 모닥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뭇가지를 모으는 일까지 하였다. 죄 이외는 아무 거도 우리를 천박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가장 천한 직업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토인들은 상륙인들을 돕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기 몸이 젖고 또 추웠지만 불을 피우는 일을 토인에게만 맡겨 두지 않고 자진하여 그 일을 도왔다. 불을 쬐는 사람은 자기가 얻은 유익을 감사히 여겨 장작이라도 나르는 일을 도와야 할 것이다. 2. 나뭇가지는 오래 되고 마른 덤불이었는데 우연히도 그 속에 독사가 한 마리 있었다. 그 독사는 열을 받기까지는 죽은 듯이 있다가 뱀이 온기를 느끼게 되자 활기를 띠고 무심코 나뭇가지를 불 속에 던지고 있던 바울에게 덤벼들어 그의 손을 물었다(3절). 뱀이나 독이 있는 동물들은 일반적으로 마른 나뭇 가지에 많이 서식한다. 또한 그것들은 헌 담 속에서도 서식한다. 그러므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과도 같도다"(암 5:19)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담을 헐다가 뱀이 튀어 나와 놀라게 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담을 허는 자모든 뱀에게 물리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뱀인 푸른 풀밭에서도 발견되지만 또한 마른 잎새들 속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같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은 도처에 많이 흩어져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이래 많은 동물들이 인간을 해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도 언제 그것들로부터 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가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자비의 은총인지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기대한 일에서 해로움을 당하는 경우를 당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동기로 일을 하다가 또는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도중에 해를 입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바울이 그러하였다. 3. 토인들은 바울이 죄수의 형편인 것을 보고 그가 살인자라고 단정지었다. 그들은 그가 자기 나라의 법을 피하여 로마에 상소한 살인자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독사는 정의의 신에 의하여 피에 대한 보수자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만약 그들이 바울이 죄수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들도 바울을 도망자라고 간주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독사가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바울이 그것을 즉시 떨어버리지 못하고 그냥 물린 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 사람은 틀림 없이 살인자일 것이다. 그가 무고한 피를 흘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서 살아 나올 수 있었지만 복수의 신이 추적하여 살아나서 기뻐하고 있는 그를 물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자연 계시의 긍정적인 면. 그 사람들은 토인들이었다. 아마 그 토인들에게는 책은 물론 어떤 교육의 수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연 계시를 통하여 다음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① 그들은 자연 계시를 통해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모든 역사를 주재하시는 섭리가 있다는 것과 또한 모든 일이 우연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로 행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② 그들은 죄인들은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은 선한 일은 상 주시고 악한 일은 벌을 내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복수하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서운 죄악에 대해서는 불원간에 그 대가가 치루어 진다는 것을 알았다. 토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께서 "복수하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 하셨음을 믿고 있었다. ③ 토인들은 살인이 극악무도한 죄이며 이러한 죄는 오래가지 않아 처벌된다는 것과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자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그 피가 갚아지지 않는다면(이런 경우는 법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모든 불의의 보수자이신 하늘과 땅의 공의로우신 심판관이 그 피를 갚으실 것이라고 믿었다. 악을 행하고도 처벌받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야만인들을 통해서라도 정죄받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 야만인들은 학식은 없었으나 "악한 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그들에게 불운이 닥치리라.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에 대한 보수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는 그들이 여러 번 법을 피하여 왔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 악을 행한다 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또 "그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이 속히 닥치지 않는다고 해서" 더욱 대담하게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본문의 무지한 사람들을 통하여 범죄자는 바다의 보복은 피할 수 있지만 사람은 신의 공의를 벗어날 수 없고,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욥의 시대는 누구보다 "악인에게는 반드시 멸망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2) 자연 계시의 부정적인 면,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하나님의 특수 계시에 의하여 교정되어야 할 것들이다. 두 가지 점에서 이 토인들의 인식은 불완전했다. ① 모든 악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 점이 잘못된 생각이었다. 즉 보수하시는 신은 살인자들과 같이 악명 높은 죄인들을 결코 오래 살려 두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죄인들이 "함정에서 나오면 올무에 걸린 것이고"(렘 48:43, 44) "사자를 피하면 곰을 만날 것이요"(암 5:9) 익사 직전에 구조되면 독사가 그들을 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살인자들과 같은 악한자일지라도 "오래 살 수 있으며 또한 권력까지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보복의 날, 격노의 날이 저 세상에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몇몇 사람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처벌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살아 가는데 이는 심판이 장차 있을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② 인생의 여정에서 크게 괴로움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실로암에서 탑에 깔려 죽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한 것같이 뱀에게 물린 사람을 보자. 곧 그를 살인자라고 단정해 버렸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처지를 판단할 때 범한 실수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의 특수 계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밝은 이해를 제시하여 준다. 즉 모든 일들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때로는 선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강하게 하고 개량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대단한 고난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4. 바울이 손에서 독사를 떨어버렸을 때도 토인들은 하나님의 복수가 자기들의 생각을 증명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바울이 독의 힘 때문에 "몸이 부어 올라" 죽는지"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알았다. 사람들은 한 번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생각이 아무리 부당한 것일지라도 끝까지 그것을 고집하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의 까다로운 판단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심으로 확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 토인들이 바울이 몸이 부어서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 자신이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덤벼들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반대로 그들은 신이 섭리하는 데 따라 맡기려 했고 그 섭리의 결과를 다만 주시하고자 하기만 하였다. Ⅲ. 위험과 사람들의 부당한 판단을 벗어나게 된 바울. 바울의 손에 달라 붙었던 뱀은 그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칭찬받을 만하고 존경할 만한 영광스러운 것임이 증명되었다. 1. 바울이 그 일로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몸을 움찔거리지도 않았고 펄쩍 뛰지도 않았고 우리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것같이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뱀을 던져 버리지도 않았다. 바울은 사람들이 그가 독사에게 물린 것을 보고 말을 할 때까지였다. 이 같은 그의 태도는 이러한 급박한 일을 당한 어떤 사람도 지닐 수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하신 도움에 의하여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막 16:18). "그들이 독사를 보았으리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었으므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정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태도인 것이다. 2. 바울은 아무 동요도 없이 또한 어려움도 없이 "독사를 불 속에 떨어버렸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또는 독사를 떼어내기 위해 특별한 수단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여 뱀은 불 속에서 타 죽었으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총의 능력 안에서 신도들은 사탄의 유혹을 거룩한 결단으로 떨쳐버리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여호와께서 너를 벌하시리라"라고 말하여야 한다. 사탄이 성도들에게 달려들지라도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며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 못하는 것이다"(요일 5:18). 우리가 양심이 떳떳하므로 인간들의 비난과 질책을 무시할 수 있을 때 또한 거룩한 경멸의 태도로 그 비난을 대할 수 있을 때 우리도 바울처럼 "독사를 불 속에 던져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난과 책망이란 우리가 그것을 무심코 들어 넘길 수 있다면 또는 그 비난으로 우리 의무 수행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다면 또는 그것으로 격분되어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다면 해될 것이 없는 것이다. 3. 바울에게 아무런 나쁜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독사에 물렸으니 이제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바울로 하여금 토인들에게 훌륭한 인물로 인정받도록 만드시고 또 그들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삼고자 하셨다. 그 일이 있는 후에 멜리데 섬은 아일랜드 섬 이상으로 독충이 없는 섬이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비록 천주교의 필자들은 이 사실이 틀림 없는 이 사실이 틀림 없는 사실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러한 주장의 확실한 증거는 보지 못했다. 4. 토인들은 전에 바울은 비난한 정도 이상으로 이제 그를 높혔다. 토인들은 마음을 돌리고 바울을 죽지 않는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토인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오래 물고있었는데도 죽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의 의견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그것은 바람따라 변모되며 극에서 극으로 흐르는 것이다. 대중들이란 "바울과 바나바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려 하다가 변하여 그들을 돌로 치려고도 하였고" 본문에서의 대중들은 바울을 살인자라고 정죄하다고 신으로 그를 떠받들었던 것이다. Ⅳ. 바울에 의해 열병에 걸려 있던 보블리오 부친과 기타 질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 이 기적들과 병행하여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이고 또 이 기적은 그리스도 가르침을 확증해 주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보블리오라는 이 섬의 제일 높은 사람"이 조난당한 사람들을 친절하게 접대함. 보블리오는 멜리데 섬에서 상당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를 그 섬의 통치자였다고 생각한다. 보블리오는 "바울 일행을 영접하고 사울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많은 재산을 지닌 자에게 넓은 마음도 주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은 우두머리요, 가장 부유한 사람이요, 선한 일에도 부자인 그런 사람이었다. 2. "보블리오 부친의 질병." 그는 "열병과 이질을 앓고 있었다." 흔히 열병과 이질은 합병증으로 잘 발생하며 그런 경우 그 병은 대단히 치명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를 통해 바로 이 때에 그를 앓게 하셨고 바울로 하여금 보블리오가 베푼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치료하게 하셨다. 기적에 의한 그 사람의 치유는 바울에 대한 보블리오의 친절에 대한 특별한 답례가 되었다. 보블리오는 선지자로서 바울을 영접하였고 그로 인하여 선지자의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3. 바울이 행한 치료. 바울이 보블리오 부친이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집 사람들은 바울이 병을 고치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에게 병고쳐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비록 자신이 의술에 의해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아니었지만 기적으로 그를 치료랄 수 있는 사도의 신분으로 그에게 들어 갔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였다. 그러자 즉시 그가 나았던 것이다. 보블리오의 부친은 노인이었으나 곧 건강을 회복하였다. 또한 그가 노인인데도 생명이 연장된 것은 그에게 큰 자비가 베풀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4. 여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치료. 보블리오는 부친의 치유를 보고 다른 병든 자들이 바울에게 와서 치료받았다. 그가 쉽고도 효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하였으므로 많은 환자들이 몰려왔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병을 고쳐서 그들을 보냈다. 바울은 자신이 우연히 그 섬에 당도하여 기회만 주어지면 떠날 이방인이니까 그들의 청을 거절해도 관계 없다고 생각지 않았다. 선한 사람은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선을 행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여겼다. 그는 희랍인 뿐만 아니라 야만인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고 여겼고 또 그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바울은 이 섬 사람들이 자기에게 베풀어 준 적절한 쉴 곳과 음식에 대하여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신세진 것을 갚고자 하였다. 그들이 바울을 영접함으로 오히려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나그네를 영접하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어떤 이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게도 되며 그리스도의 사도를 대접하게도 되는 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곤경에 빠진 그의 백성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보답하는 것을 지연시키지 않으신다. 바울은 이 치료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리고 멜리데 섬 사람들은 확신과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어떤 어민(漁民)들도 그들의 해안에 표류한 난파선을 통하여 이 멜리데섬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므로 받은 혜택 만큼 많은 것을 얻은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Ⅴ. 이 토인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베푼 친절에 대하여, 특히 그가 기독교를 전해 준 데 대하여 풍성하게 보답하였다. 그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 사역자들에게 매우 친절하였다. 아마 바울의 동역자들은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통해 바울을 도왔을 것이다(10절). 1. 본문에 보면 섬 사람들이 "후한 예로 그들을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최상의 존경심을 그들에게 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도의 일행들을 영광되게 하신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바울 일행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여겼다. 그들은 아무리 사도 일행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아마 이 섬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그들의 섬으로 자유로이 활동하게 하고 그들 일행을 그들의 사회의 일원으로 대우하였던 것 같다. 신실한 복음을 전도하는 자들은 이중의 존경을 받는다. 특히 그들이 그들의 전도에 성공했을 때 그러한 것이다. 2. 본문에 보면 "떠날 때에 그들이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고 하였다. 즉 그들은 생필품들을 배에 실었다. 바울은 여기서는 노동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멜리데 사람들이 베푼 친절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치료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그는 이 능력을 거저 받았으므로 또한 거져 주었다) 자신과 또 함께 있는 자들이 필요로 하는 구제품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섬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수확하였으므로 저희에게 쓸 것을 공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전 9:1). ----------- ===바울이 로마로 가다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하다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로마에 도착한 바울(1)(행 28:11-16) 위의 구절에는 로마까지의 바울의 여정과 그가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 이제까지 바울은 거칠고 험한 여행을 하였고 이제 겨우 죽음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폭풍이 가라앉은 후의 그의 여행의 남은 과정은 순탄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그들은 멜리데 섬을 떠났다. 그들에게 멜리데 섬은 좋은 휴식처였다. 그러나 그 섬이 그들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들은 원기가 회복되자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나야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나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실망을 겪는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 가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들의 출발에 대해 다음사실이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 1. 그들이 출발한 시기. "석달 후에" 즉 겨울의 3달이 지난 후 그들은 출발했다. 그들에게는 의무가 주어져 있었으나 위험한 철(계절)에 출항하는 것보다 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다. 바울은 선원들에게 겨울 날씨에 항해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하였었다. 전에 그들은 바울의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몸소 겪은 어려움과 위험을 통하여서 그의 경고가 참됨을 깨달았으므로 새삼스러이 바울이 그것을 경고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은 값비싼 보상을 치루고 나서야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경험은 어리석은 자들의 여주인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는 경험으로 배울 때까지는 결코 깨닫지 못하게 때문이다. 2. 그들이 타게 된 배. 그 배는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출항한 배였다(27:6). 이 배는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난 배로써" 훌륭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하는 일의 결과란 얼마나 서로 다른가를 생각해 보자. 여기 알렉산드리아를 출항하여 똑같이 이달리야로 향하는 배가 두 척이 있다. 이 배들은 두 척 다 멜리데 섬에 오게 되었으나 한 척은 난파되고 다른 한 척은 안전하였다. 우리는 종종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 나가는 동안 어떤 때는 은혜를 베풀어 번영하게 하신다. 이런 때는 무슨 사업이고 시작하면 잘 된다. 그러나 어떤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일이 엇갈리게 만드신다. 이런 때는 무슨 일에 손을 대면 그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같이 인생사란 다양한 것이므로 우리는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 배의 기호에 대하여 전해 준다. 그것은 아마 배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그 기호는 "디오스구로"라는 것이었다. 디오스구로란 보잘 것 없는 이방의 신의 명칭으로 시인들은 이 신을 바다의 신으로 항해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폭풍을 다스린다고 조작하였다. 이 신의 이름은 배의 앞 부분에 새기워졌다. 따라서 배도 자연 그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나는 본서의 저자가 이 배의 이름을 기록한 것도 이 배의 이름이 이달리야와 이집트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기 때문에 이 이름을 기록하여 본서의 내용의 진실성을 더욱 확실하게 밝히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각한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누가가 이런 조건들을 자세히 서술하여 준 이유를 당시 승객들의 미신적인 생각을 나타내려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들은 그런 이름을 가진 배를 타는 것이 먼저 번 배보다 훨씬 안전하리라고 기대하였다는 것이다. Ⅱ. 그들은 이달리야 도착 및 로마로의 육로 여행 계속. 1. 그들은 처음에 시실리 섬의 가장 큰 도시인 수라구사에 도착했었다. 거기서 그 배는 사흘을 머물렀다. 아마 거기서 그들은 교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배는 장사를 위해 항해를 하는 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가 자주 들었고 또 보기를 원하였던 여러 곳들을 보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대단한 고도(古都)요 유명한 곳인 수라구사를 본 것은 그에게 큰 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곳에 그리스도인은 없었던 것 같다. 2. 그들은 수라구사에서 레기온으로 왔다. 레기온은 이달리야의 도시로서 시실리 섬의 메시나 맞은 편에 위치하여 있었다. 그곳은 칼라브리아 왕국 또는 나폴리 왕국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레기온에서 하루를 보냈다. 로마 교회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당시에 설교를 했을 때 물고기들까지 그의 설교를 들으려 해변가로 몰려 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 전설에 의하면 거기서 그는 돌기둥에다 촛불을 점화시켰다고 하며(돌 기둥에 불을 붙였다는 말) 이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이 진실된 것임을 믿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 여행하던 동료의 한 사람인 스데반을 이곳의 주교를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모든 일이 그날 하루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그들이 해안에 정박한 것 같지는 않고 단지 항로 중에 닻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3. 그들은 게리온에서 보디올로 갔다. 보디올은 오늘날 포촐라나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나폴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 바울이 탄 알렉산드리아 배는 보디올이 목적지였다. 그러므로 거기서 바울은 로마로 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하여서 육로로 남은 길을 여행하였다. 바울은 보디올에서 형제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이곳에 기독교의 복음을 누가 전하여 주었는지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도 복음의 감화력은 놀라웁게 역사하였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장소에 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그의 백성들을 두시는 것이다. (1) 보디올에는 적은 수의 형제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찾아 냈다. 그 형제들이 바울의 소식을 먼저 들었는지 바울이 그들을 찾아 알아냈든지 하였을 것이다. 여하간 그들은 직관적으로 함께 모일 수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형제들은 서로 형제들을 찾아야 하고 이국땅에서 동포들을 만날 것처럼 서로 교제를 가져야 한다. (2) 그곳의 형제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칠 일 동안 머물도록 청하였다. 이 말은 그들이 바울의 일행에게 한 주일(主日)만이라도 함께 있으면서 예배를 주관해 달라고 청한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언제 다시 보디올에서 바울을 볼 수 있을 것인지 기약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에게 강요하여 머물게 하므로 그의 설교를 듣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바울을 호송하던 백부장도 보디올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볼겸해서 바울에게 칠일 동안 머무를 것을 허락했던 것 같다. 4. 그들은 보디올에서 로마로 향하였다. 그들이 보도로 여행했는지 혹은(23:24 에서처럼) 말을 타고 여행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여튼 그들은 로마로 가야만 하였으며 이제 그들은 마지막 여정을 앞에 두고 있었다. Ⅲ.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바울에 대한 환영. 바울이 보디올에 도착하였을 때 바울이 그곳에 머무를 기간과 로마로 향한 날짜가 보디올에 있는 형제들에 의하여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저희의 수고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영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로마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에 대하여 대단한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명성을 익히 들어 왔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유용하게 쓰신다는 것과 또 그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그들의 영적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은 그의 고난에 대해서 들었고 또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고난 가운데서 보호하셨는가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을 만나 보기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영광된 수호자인 그에게 가능한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바울은 몇 해 전에 그들에게 긴 서신을 써 보냈었다. 이것이 "로마서"로써 그의 가장 뛰어난 서신이다. 그 서신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유익한 많은 교훈을 그들에게 주었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은 이제 바울에게 본문과 같은 경의를 표하였던 것이다. 본문에 보면 그들은 "그를 맞으러 갔다"고 하였다. 바울이 죄수에 불과하였지만 대사나 재판관이 공식 입성을 하거나 하는 것처럼 예의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에서 51마일 떨어진 "압비오 저자"까지 바울을 맞으러 갔으며 어떤 사람은 로마에서 28마일 떨어진(어떤 이들은 33마일 떨어진 곳이라고 본다) 삼관이라는 곳까지 나갔다. 로마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바울이 죄수라고 그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그를 맞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두 배의 존경을 표하였으며 바울에게 정성스런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2. 그들의 영접을 통하여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다. 이제 바울은 로마 가까이에 까지 가게 되었다. 아마도 보디올에서 바울은 현재 황제로 있는 네로의 성격이 어떻게 또 그가 점점 난폭한 노릇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이로 인하여 그는 자기가 황제에게 상소한 일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우울한 생각을 가졌고 또 상고 결과에 대해서도 염려하였다. 그는 점차 로마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곳은 전에 그가 결코 와보지 못한 것이었고 그를 아는 사람이나 또 그가 아는 사람이 몇 명 안 되는 곳이었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런 모든 생각으로 그는 점점 침울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 그는 로마에서 그를 영접하려고 나온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이 하였다. (1)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바울이 그들이 베푼 예우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가 그들의 이 친절을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거듭해서 그들에게 말하였으리라고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만일 우리에게 우리 친구들이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렇게 하게 하신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을 지니게 하시고 또 그렇게 하도록 그들의 몸을 움직이신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구들의 친절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물론 바울은 멜리데 섬 토인들의 예우와 친절에 대하여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었다. 그러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에게 베푼 경건한 보살핌에 대해서는 더욱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바울은 로마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제국의 수도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들이 외국에 나가서 혹은 낯선 곳에 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들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마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세상에 악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반면에 훌륭한 인간들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하기 훨씬 이전에 그들에 대한 소식만을 듣고 그들에 대하여 감사하였었다(롬 1:8). 그는 거기서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그들을 보고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아마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교제해 논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세련되고 고상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정중하고 교양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 바울은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그들을 만남으로 인해 그에게는 새로운 원기가 주어졌고 그의 정신이 새로워졌으며 그의 우울증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바울은 비록 죄수였으나 전에 예루살렘을 자유의 몸으로 들어갔던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마음으로 로마에 들어갔다. 그는 로마에 자기를 아껴 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그가 친구로서 대화하고 의논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바울이 갇혀 있는 동안 지루함을 덜어 주고 네로 황제 앞에 설 때 두려움을 없애 줄 것을 그는 믿었다. 하늘 나라를 향하여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또한 그의 고통에 함께 참여할 동료 여행자들을 만난다는 것이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수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드리는 여러 엄숙한 예배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될 뿐 아니라 용기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직자들에게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성직자들이 모욕을 당하여 고난을 당할 때 형제들이 격려해 주는 것은 그들의 고난과 섬김을 더욱 잘 감당하게 해 주는 모든 힘이 될 것이다. 본문에 의하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재로는 바울을 존경하고 또 바울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앞으로도 많은 할 것을 기대하며 위로를 받았으나 바울이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할 때 그들이 바울을 실망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사실은 바울의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도다"(딤후 4:16)라는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타고 사오십 마일을 달려서 바울을 영접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변호하고 그를 위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법정에 출두하여 황제의 노여움과 다른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노여움까지 감수해야 할 입장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발뺌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위기가 막상 닥치자 그들이 바울을 영접하려고 로마를 떠났던 것처럼 후에는 바울을 멀리 하기 위하여 로마를 떠났던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인간에게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우리 주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주께서 주신 약속에서 우리가 얻는 용기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위로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찬사를 기대한 사실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되시나 인간들은 거짓된 자들인 것이다." Ⅳ. 로마의 감옥에 구금된 바울(16절). 이제 바울의 여행은 끝이 났다. 1.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죄수의 신분이었다. 바울은 로마를 보기 원했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하자 그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간수장에게로 인도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간수장이 허락하지 않는 한 로마를 구경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왕관을 쓰고 승리의 기쁨에 취하여 로마로 입성하였던가. 그러나 그들은 진실로 그 세대의 악질 염병과 같은 자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기 한 선한 사람이 불쌍한 죄수처럼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입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진실로 그 세대의 가장 커다란 축복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자만을 벗어버리라는 충분한 교훈이 되고 있다. 2. 그러나 바울은 몇 가지 혜택을 누리었다. 그는 죄수였으나 중범은 아니었고 그리하여 일반 감옥에 수감되지 않았다. 바울은 형제들이 자기를 위해 마련해 준 편한 개인의 숙소에서 혼자 기거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는 군인 한 사람이 바울의 경비로 배정되었다. 아마 그 군인은 바울에게 공손했으며 죄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바울에게 허용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군인이 본래 나쁜 성품의 사람이었더라도 바울처럼 예의 바르고 정중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홀로 기거하도록 허락을 받으므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 보다는 자기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형제들과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는 일에 더욱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갇힌 자들에게 그를 지키는 자들을 통하여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은 곧 위로가 된다(시 106:46). 마치 요셉이 간수장에게 잘 보였고(창 39:21) 여호야긴이 바벨론 왕의 눈에 잘 보였듯이(왕하 25:27, 28)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속박으로부터 즉시 풀어 주시지는 않더라도 그가 만일 그들을 안심시키고 그 속에서도 편안하게 하신다면 그들은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로마에 도착한 바울(2)(행 28:17-22) 바울은 죄수로서 로마로 호송되었다. 그가 호송되는 데는 많은 경비가 들었고 또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 아무도 그를 기소하거나 그에게 죄를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해명해야만 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우두머리에게 자신의 입장을 알렸다. 그때는 글라우디오가 칙령을 내려 모든 유대인을 추방하고 로마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포고한 후 오래 되지 않은 때였다. 그 칙령은 그가 죽을 때까지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 칙령 포고 후 5년이 지나자 많은 유대인들이 장사를 구실로 하여 로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에서 그들의 회당이나 공공예배처를 짓도록 허락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본문의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 중에서 뛰어난 인물들이었고 또한 유대 교회에서도 두드러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지도자들이 자기를 바르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서 또 바울과 그들간에 우호적인 이해 관계 성립되기를 바라서 그들을 "청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Ⅰ. 바울이 지도자들에게 말한 내용 및 자신의 사건에 대하여 그들에게 그가 설명한 내용.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정중히 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여러분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들로부터 한 형제로서 대우받게 되기를 바랐다. 또한 그렇게 그들을 부름으로 자기로 그들의 형제로 여기며 또한 자신이 그들에게 진리만을 말하고자 함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이 진리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다 한 동포요 한 형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 바울은 자신이 무죄하며 그가 유대인들이 자기에 대하여 악의를 품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유대 민족에게 아무 것도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으며 유대 민족의 종교와 자유에 유익하지 않는 어떠한 일을 행하지도 않았으며 현재 유대인의 가련한 상태에 더 큰 아픔을 주지도 않았다. 내가 그러지 아니한 것을 그들은 안다. 나는 신앙을 폐하거나 유대교를 거슬림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유대 조상의 유전을 강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유전들이 그들을 위해 작정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조상의 유전을 배척하라고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을 따라서 그 유전을 스스로도 지켰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종교의 관습에 따라 행하는 것을 결코 비난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하여 이유없이 품는 적의에 대해서 그들을 비난하였다(갈 2:12). 바울은 유대 민족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 했다는 것을 양심상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2. 바울은 정중하게 자신이 당한 유대인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불평을 토로하였다. 그는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해를 가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서 내어 준 바 되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는 만일 로마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유대인들은 법이나 재판을 거치지 않고 자기를 죽여 버렸을 것임을 말했다. 어떻든 유대인들은 통치자인 벨릭스 앞에서 바울을 죄인이라고 고소를 했다. 그리고 바울의 유죄 판결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죄수로서 로마인들의 손에 넘겼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의 법에 의하여 공정한 판결을 받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노라고 하였다. 3. 바울은 로마의 총독들이 자신에 대하여 판결한 결과를 설명하였다(18절). 그들은 바울을 심문하고 바울의 주장을 듣고 바울의 반대자들의 증언과 또 바울 자신의 변호를 들었다. 천부장이 그를 심문하였고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가 모두 바울을 심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에게서 사형을 당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다. 다만 바울이 정직하고 온유하여 양심적이며 선한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어떤 흠도 그에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에게 사형을 선고하므로 유대인을 만족시키는 일을 결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은 바울을 석방하여 자신의 일에 계속 종사하게 하려 하였고 그를 저지하고자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바울의 얘기를 듣고 바울의 교리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을 신중하게 심문한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무죄로 선언하였고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그를 정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에게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에 대하여 편견을 지닌 사람들은 이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한 사람들 뿐이었다. 바울은 이 모든 사실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말하였다. 4. 비울은 자신이 로마에 상고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일 뿐이고 반소(反訴)하거나 원고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말하였다(19절). 그는 "유대인들이 반대하므로" 즉 그들이 그를 처형당하게 할 수 없게 되자 최소한 그를 평생 동안 감옥에서 지내게 하기 위하여 소송 정지 신청을 냈으므로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노라"고 하였다. 즉 부임한 총독들이 모두 유대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을 석방하여 주지 않고자 함으로 부득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던 것이다. 총독들의 이러한 태도가 그로 하여금 더 높은 권력자에게 지지를 호소할 수밖에 없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상고하게 된 목적의 전부였다. 바울은 자기의 민족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하여 상고했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소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의 이웃을 비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고소하는 일 특히 자기의 동포를 고소한다는 일이 결코 즐거운 일일 수는 없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중간 입장에 서 있었지 그들을 해하고자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당시 로마 당국은 유대 민족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당국은 유대인들을 파벌심이 강하고 반란을 자주 일으키고 불평이 가득 차 있으며 위험스러운 민족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창한 언변을 가지고 로마의 시민이었으며 자신이 유대인에게 해를 입은 당사자였던 바울이 로마 황제로 하여금 유대민족에 대하여 격노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런 행위는 하려 하지 않았다. 바울은 결코 일을 악화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유익한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5. 바울은 자기가 고난을 당한 바른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고난의 이유를 밝힌 것은 로마의 유대인들로 그를 기소한 자들과 합세하여 그를 고소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로 그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그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20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하므로 너희를 청한 것은 너희와 쟁론하려 해서가 아니다. 나는 로마 정부를 충동하여 그들로 너희를 박해하게 하려는 의사는 조금도 없다. 다만 나의 동적으로 또 너희를 계속 친교를 맺을 사람들로 알고 만나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하여 더불어 대화하고자 함이라. 왜냐하면 내가 이 소망으로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다닐 때 수감자라는 표시를 지니고 다녔으며 또는 그를 지키는 병사의 감시 아래 다녔던 것 같다. (1) 그가 매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또 그들의 소망해 온 메시야가 왔다고 전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메시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사실에는 모든 유대인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를 대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메시야를 전하였고 그가 오신 것을 증거하였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가 오실 것으로 소망하고 있으나 그 모든 이미 오셨으므로 그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끝날 것이다. 나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그 안에서 함께 기뻐하자고 전하노라"라고 하였다. (2) 그가 매인 이유는 그가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설교하였기 때문이었노라고 설명한다. 이것 또한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활구주가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여러 번 말하였다(23:6; 24:15; 26:6, 7).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메시야가 너희로 지금도 로마의 멍에에서 자유하게 해 주고 또 그가 너희를 위대하게 하고 번창하게 하리라고 기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꽉 메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저희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장차 주어질 것을 바라도록 권고하고 또 그들에게 유업을 보증해 주실 오신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메시야가 외적인 권능과 장엄함으로 오시리라는 기대를 가지지 말라고 권고하였다고 내게 화를 내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영적이고 영원한 축복을 너희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저희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바로 그가 그와 같이 한다는 것 때문이다. 즉 내가 너희로 이스라엘 백성이 품고 있는 있는 망상이 베끼려 하고 이 세상적인 메시야 개념이 지닌 잘못을 밝히며 너희를 이스라엘의 참되고 진실한 소망에로 인도하려 하며 조상들에게 하신 모든 약속들의 참뜻 즉 거룩과 사랑의 영적인 왕국은 사람들의 마음에 세워진다는 것과 죽은 자들이 얻을 기쁨의 부활과 내세에서의 생명을 보증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Ⅱ.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답변. 1.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의 한 말에 대하여 그들이 이렇다 하게 반박할 내용이 없음을 시인한다. 또한 자기들이 황제 앞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인으로 출두하라는 글이나 명령을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은 적도 없었음을 시인한다(21절). 그들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유대에게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즉 너희를 기소하라는 지시를 받은 일이 없고) 최근의 유대에서 로마에 온 "형제 중에"(유대 나라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그 곳에 자주 왕래하였다)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좇아 가서 그를 해하려고 했던 유대인들이(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잔인하고도 뿌리 깊은 분노를 품고 있었다). 바울을 대적하기 위하여 로마에까지 따라 와 여기서 그를 정죄하려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본문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고 사실은 그를 기소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감히 그것을 시인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황제가 역대 황제들처럼 그들을 로마에서 몰아 내지는 않았으나 그들을 탐탁히 여기지 않고 있던 터에 그들이 공연히 나서서 황제의 분노를 살까보아 나서서 기소하려 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말이 진실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비로소 바울은 자신이 황제에게 호소하므로 유대의 유대인들이 감히 로마까지 따라 오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이 세운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을 이제 로마의 유대인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취하였던 정책이기도 배우다. 그리고 그 정책이 그를 구하였다. 다윗은 "불레셋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니라"(삼상 27:1)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그대로 적중하였다(4절). 즉 이르기를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바울 또한 황제에게 상고하므로 그러한 목적을 관철시켰다. 그는 로마로 피하였다. 이 곳은 그들이 손을 뻗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로마로 가는 것을 보고 "갈테면 가거라. 오히려 잘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2.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가르침과 그가 그토록 많은 반대 세력에 맞서서 힘써 선포하려고 하였던 기독교에 대하여 상세히 알고 싶어하고 있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본문에서 "우리가 너의 (22절)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라. 즉 너의 견해가 어떠한 것이고 또 네가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또 네가 고토록 신뢰하고 위하여 열심인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노라. 왜냐하면 기독교에 대하여 별로 전해들은 지식은 없지만 우리는 이 종교가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기독교에 대해서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한 자들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롬 2:17).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에 관하여 아는 것은 "이 종교가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다"는 사실 오직 그것 뿐이었다. 그들은 이같이 기독교를 악평하고 또 헐뜯으려 하였다. (1)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종파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참된 기독교는 전 인류의 공통 관심사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단들이 흔히 유래한 근원인 편협한 이론이나 사적 이익에 대한 관심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는 이단 종파가 하는 것처럼 세속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구하는 것은 영적인 데 있고 영원한 데 있다. 게다가 기독교는 모든 인류를 하나고 묶으려는 속성을 지녔으며 이단 종파들이 하듯이 인류를 분열케 하며 의견이 대립되게 하지 않는다. (2) 그들은 기독교가 어디서든지 반대 받는다고 말하였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