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4장 [449.예수따라가며]
===거짓말하는 자들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구주 JC의 모든 어떠하심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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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mothy 4 Amplified Bible
==Apostasy
1 But the [Holy] Spirit explicitly and unmistakably declares that in later times some will turn away from the faith[생동하는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paying attention instead to deceitful and seductive spirits and doctrines of demons,
2 [misled] by the hypocrisy of liars(거짓말장이, 위선자/외식자) whose consciences are seared as with a branding iron(그들의 양심이 마치 달군 철제인장으로 화인 맞아 손상받아 딱딱해짐처럼) [leaving them incapable of ethical functioning],
3 who forbid marriage and advocate abstaining from [certain kinds of] foods which God has created to be gratefully shared by those who believe and have [a clear] knowledge of the truth.[듣는 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붙들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과 영광의 소망 통해 복음말씀진리를 깨달음이 진정한 지식인 바, 그의 삶의 실행 통해 증진증대강화됨의 체득된 주관적 지혜까지에 도달하게 하심]
4 For everything God has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gratitude;
5 for it is sanctified [set apart, dedicated to God] by means of the word of God and prayer.
==A Good Minister’s Discipline
6 If you point out these instructions to the [a]brothers and sisters, you will be a good servant of Christ Jesus, constantly nourished [through study] on the words of the faith and of the good [Christian] doctrine which you have closely followed.
7 But have nothing to do with irreverent folklore and silly myths. On the other hand, discipline yourself for the purpose of godliness [keeping yourself spiritually fit][경건 =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심..곧, 내주하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광 충만, 그리스도로 살기]
8 For physical training is of some value, but godliness (spiritual training) is of value in everything and in every way, since it holds promise for the present life and for the life to come.
9 This is a faithful and trustworthy saying worthy of full acceptance and approval.
10 It is for this that we labor and strive [often called to account], because we have fixed our [confident] hope on the living God, who is the [b]Savior of all people, especially of those who believe [in Him, recognize Him as the Son of God, and accept Him as Savior and Lord].
11 Keep commanding and teaching these things.
12 Let no one look down on [you because of] your youth, but be an example and set a pattern for the believers in speech, in conduct, in love, in faith, and in [moral] purity.
13 Until I come, devote yourself to public reading [of Scripture], to preaching and to teaching [the sound doctrine of God’s word].
14 Do not neglect the spiritual gift within you, [that special endowment] which was intentionally bestowed on you [by the Holy Spirit] through prophetic utterance when the [c]elders laid their hands on you [at your ordination].
15 Practice and work hard on these things; be absorbed in them [completely occupied in your ministry], so that your progress will be evident to all.
16 Pay close attention to yourself [concentrate on your personal development] and to your teaching; persevere in these things [hold to them], for as you do this you will ensure salvation both for yourself and for those who hear you.
==Footnotes
1 Timothy 4:6 Lit brethren.
1 Timothy 4:10 God is the Savior of all mankind in the sense that Jesus’ sacrifice is sufficient for the entire world (1 John 2:2); however, personal faith is essential for salvation.
1 Timothy 4:14 Or presby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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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 (개요)
4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바울은 여기서 무서운 배교가 있을 것을 예언한다(1-3).
Ⅱ.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논한다(4,5).
Ⅲ. 디모데에게 여려 가지 지시를 한다. 즉 자기 자신의 품위를 잃지 말 것과 자신의 교훈이 사람들에게 무시되지 않게 할 것과 모든 사람들을 돌볼 것을 지시한다(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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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에 대한 예고(딤전 4:1-5)
위의 구절에서 후일 배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바울의 예언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이미 기독교 내에 배교가 있을 것을 내다 보고 있었다.
Ⅰ. 전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경건의 비밀을 요약한 것을 살펴 보았다.
이제 본 장에서는 적절하게도 불의의 비밀이 요약되고 있다. 본문은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리라고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말한 성령은 구약에 나오는 영이든지 아니면 신약의 예언자들 가운데서 역사한 성령을 말하는 것이든지 또는 이 양자를 다 염두에 두고 한 말인든지일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성령에 의해 예고되었듯이 본문의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도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순수하게 예배함으로부터 사람들이 배교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후일에" 또는 "마지막 날"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장차 교회에서 불법이 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미 이 불법의 비밀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떠나고"라고 했는데 이 말은 떠난 배교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배교하지는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최악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를 두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 1:3) 즉 복음의 굳은 교리를 믿는 믿음에서 떠날 것이다. 또한 본문에 그들이 "미혹케 하는 영을 좇으리라"하였는데 이 말은 성령을 좇는 것처럼 꾸미기는 하지만 진실되이 성령에 의하여 인도됨을 받지는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요일 4:1).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즉 이 말은 영들이 성령의 영을 가장한다고 해서 그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배교의 가장 큰 보기 중의 하나를 들면 사탄의 가르침과 사탄에 관한 가르침을 좇는 것이다.
즉 이 말씀은 불멸하시는 하나님과 죽은 인간 사이의 중간 계층으로써 성자들과 천사들을 경배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뜻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은 사실 이방인들이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로마 교회가 이러한 짓들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배교의 첫 단계인 것이다. 로마 교회가 하는 일을 보다 자세히 말한다면 그들은 순교자들의 유물을 사당에 모셔놓고 그것들에게 신적인 영광을 부여하고 제단을 설치하며 향을 피우며 신상을 만들고 교회 건물을 우상시하며 타계한 성도들의 영예를 찬양하고 또 그들의 공로에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탄 숭배는 이교주의의 재흥(再興)이며 첫 번째 짐승의 형상을 다시 숭배하는 것일 뿐이다.
2. 이러한 배교와 미혹을 증진시키고 전파하는 도구.
(1) 그 도구는 거짓을 말하는 자들의 위선이다.
그들은 사탄의 후예들로 이들은 거짓과 위선과 거짓된 기적을 행하는 체하여 미혹을 널리 퍼지게 할 것이다(2절). 그들은 이 일을 선을 가장한 위선에 의하여 자행할 것이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 같이 하난 실상은 주의 기름 부음 직분을 대적하여 싸우며 주께서 세우신 모든 직분을 타락시키며 훼손할 것이다.
이들은 "양심에 화신 맞은 자들이다." 그들은 처음에 가졌던 덕의 원리와 도덕적 정직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들이다.
만약 인간들이 그들의 양심에 화인을 맞지 않았다면 선을 행하지 않겠다고 하지 못할 것이요, 이단적인 신앙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적인 정신과 자비로운 마음을 결코 벗어 버리지 않을 것이요, 교회의 유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가장 야만적인 무자비함을 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이들 배교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결혼이 하나님의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금지하고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하여 결혼을 부끄러운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특징은 고기를 먹지 말도록 명하고 또 어떤 특별한 시기나 절기에 그러한 것을 먹지 말도록 금하여 마치 신앙의 좋고 나쁨이 이러한 일을 잘 지키느냐 못지키느냐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같이 함으로 인간의 양심 위에 서서 폭군 노릇을 하는 것이다.
3. 그 모든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후일에 일어날 배교를 보고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성령에 의하여 예언된 바이기 때문이다.
(2)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렇지 않다면 성령께서 멀리 앞의 사건까지 정확하게 미리 알 수 없을 것이다. 기분과 욕망에 좌우되는 우리에게 미래의 일은 불확실하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3) 성령의 예언과 이단의 신탁(信託) 사이의 차이점은 뚜렷하다.
성령은 확실히 말하는 반면에 이단의 신탁은 항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4) 그러한 배교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몇 사람에게만 있어진다고 생각할 때 위로를 받게 된다.
(5) 미혹자나 현혹자들은 성령을 빙자하여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그럴듯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이 세력이 우리 가운데서 그럴듯하게 역사하므로 성령께로부터 온 것으로 속고마는 것이다.
(6) 인간이 믿음으로부터 떠나 다른 것을 좇지 이전에 반드시 그들의 양심은 강퍅해지고 그러므로 화인을 맞게 된다.
(7)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 즉 성자나 천사나 사탄 숭배를 명령할 때는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 믿음으로부터 떠났다는 표시인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허용하신 것 즉 결혼이나 음식을 금지한다면 그 사람 또한 믿음에서 떠났다는 표인 것이다.
Ⅱ. 그들의 위선적인 금식에 대하여 언급한 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의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즐길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교훈을 언급하였다.
율법 시대에서는 정하고 부정한 짐승 즉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 사이에 구별이 있었으나 이제 그 모든 것은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하고 부정하다는 구별을 하지 않아도 된다(행 10:15).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우리는 우리의 음식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음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서라도 그 음식을 이용해야만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그리스도인들 즉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을"특별히 고려하여 만드셨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계약에 의해 부여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이 권리를 그리스도인들 덕분으로 함께 누리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거절하여서는 안 되며 또 하나님께서 차이 두시지 않을 것을 우리 스스로 면밀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하고 또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사의 무한하심을 인식하면서 주신 것을 받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4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제의법에 의해 규정된 음식에 대한 규제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
특히 이 말씀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안 먹는 돼지 고기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을 우리가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때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5절). 우리가 피조물을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그것들은,
(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에게 허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사용할 자유를 우리에게 허용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허락하셨다.
이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 반면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거룩하게 쓸 것을 지시해 준다.
(2) 기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허용되었다.
기도는 음식을 정결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거나 계획할 때 기도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 안에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으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살림의 짐승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나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10, 11)라고 하셨다.
②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선하다는 사실이다.
찬양받으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그 지으신 것을 보셨을 때 모든 것들을 그가 보시기에 심히 좋았었던 것이다(창 1:31).
③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을 이용하도록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된다고 말씀하시었다(마 4:4). 따라서 먹을 문제는 논란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④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도에 의하여 모든 피조물을 성별시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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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대한 교훈(딤전 4:6-16)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대 선생들에 의한 유혹을 방지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분별력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좋은 목회자는 자기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데 부지런한 것을 말함이 아니라 "형제들이 받았고 또 들은 것을 깨우쳐 기억케 하는 일에 부지런한 복음 사역자가 훌륭한 사역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고 한 것이다(벧후 1:12).
또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고 편지를 쓴다"(벧후 3:1)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 유다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유다서 1:5)라고 하였다.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이 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로 다시 그 복음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잊기는 빨리 하고 배우는 것과 기억하는 데는 느리기 때문이다.
이같이 "성도들을 깨우치면 따르는 믿음의 원리와 참된 교훈으로 점점 자라게 될"것이라(6절)고 하였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복음 사역자 자신들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주의 교훈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더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도 믿음의 말씀 가운데서 양육되어야 한다.
2. 복음 사역자들이 지식과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형제들로 하여금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동안 우리 스스로가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3.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은 형제들이며 또 형제와 같이 대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라고 해서 하나님의 소유물의 주인 노릇을 할 수은 없기 때문이다.
Ⅰ.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와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7,8절)고 한다.
유대의 전통에 대해 어떤 이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즉 실천적인 신앙을 소유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여야 한다. 즉 경건에는 끊임없는 훈련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경건의 유익은 쉽게 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거나 혹은 잠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음식과 결혼으로부터 절제하거나 또 그와 같은 행동은 절제와 자기 부정에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나 경건에는 별 유익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죄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억제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체의 삶에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생과 내생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2. 경건을 통하여 얻는 이익은 주로 장래의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 주어진 약속은 현재와 관련하여 주어진 약속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앞으로 올 삶에 관련을 가진 약속이다.
구약 시대에는 약속이 대부분 세상적인 축복에 관한 것이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영적이며 영원한 축복이다. 만약 경건한 사람들이 금생에서 조금의 유익밖에 얻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 올 생애에 있어서는 많은 좋은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3. 사도 시대에도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디모데가 비록 뛰어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속된 것을 버리라는 충고의 말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4. 우리가 속된 것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스스로 경건을 훈련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악행을 그쳐야 할 뿐아니라 잘 행하기를 배워야 하며(사 1:16, 17) 경건을 연습하도록 하여야 한다.
5.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마지막에 잃은 자가 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경건은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육체의 연습으로 만족하는 자들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Ⅱ.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중에 어려움과 실망을 당할지라도 경건의 길로 나아가고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격려의 말씀.
바울은 8절에 말하기를 "경건은 범사에 유의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경건을 통해 얻는 이익이 과연 경건을 통해 잃는 것을 보충하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잃은 것이 얻는 것보다 더 많다면 그것은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바울의 믿음직한 말이 또 다시 나와 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신앙의 사역을 하는 중에 우리가 한 모든 수고와 일어버려진 것들은 충분히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잃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소망을 두기 때문이다"(10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경건한 사람들은 수고를 해야 하며 비난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일을 행하나 동시에 나쁜 일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힘써 일하는 것과 고난받는 것은 이 세상에 살동안 인간으로서 또한 성도로서 당연히 당하게 되는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2. 하나님을 섬기고 또 신앙의 사역을 위해 수고하고 또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은 이 수고와 수치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지 않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노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실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자기를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특별히 우리의 섬기는 것과 그를 위하여 당하는 고통 중에도 구세주께서 우리를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해 본다.
(1)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통하여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사람들의 자녀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며 어떤 사람도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죽음을 원치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타락한 천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모든 사람의 구세주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같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신다면 그를 찾고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는 더욱 놀라웁게 상 주시리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에 대해 이 같은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거듭난 새 피조물들을 위하여는 더욱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민의 구세주이시지만 특별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또 그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구원은 그들의 봉사와 수고에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인의 삶은 노력과 수고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한다"고 하였다.
② 현생에서 우리가 가장 좋은 수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행과 우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③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이고 믿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자리로 이끌어 주시는 만인의 보편적 구주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특한 면에 있어서 진실한 신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일반 구원과 특별 구원이 있는 것이다.
Ⅲ. 바울은 디모데에 대한 훈계로 4장을 끝맺었다.
1. 바울이 지금 그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것들은 명하고 가르치도록 훈계함."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형제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건에 이르기 위해 연습하도록 명하고 또 그들에게 경건의 유익을 가르치라. 또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임을 가르치라"고 하였다.
2. 디모데가 비록 젊다고 하여도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위엄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훈계함. 본문에 "누구든지 네가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누구든지 그의 젊음을 멸시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말이다. 만약 사람이 젊더라도 허영에 빠지지 않고 또 미련을 떨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의 젊음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
3. 좋은 본을 보임으로써 그의 교훈을 확고히 하도록 훈계함. 그러므로 본문에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의 생활로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한쪽으로 세워 놓은 탑을 다른 손으로 허물어 버리게 되는 결과가 된다. 남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말과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언행은 덕스러워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활은 엄격해야 하는데 이 또한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은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착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역주: 한글 개역에는 없음). 즉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과 영적 예배에 본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믿음에 본이 되어야 한다." 즉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정절" 또는 "순결"에도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바울은 디모데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명하였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3절). 비록 디모데가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연구 역시 버려서는 안 되었다. 또한 이 말씀은 디모데에게 회중 앞에서 성경을 일고 해석하라는 말로도 볼 수 있겠다. 즉 성경을 풀어서 그 교훈과 교리를 알려 주고 또 디모데는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복음 사역자들은 그들이 배운 것과 행하도록 명령받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명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성도들이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마 28:20).
(2) 복음 사역자들이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는 가장 최선의 길은 자기가 명령받은 것을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 사역자로서 그러한 일을 가르치지 않거나 성도들에게 선한 본보기가 되지 아니하고 자기가 가르친 교훈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다면 그들이 업신여김 받는 것을 당연하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는 그무리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3)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가장 잘 성취한 목회자들도 계속 공부하는데 뜻을 두고 또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 부여된 일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해야 한다.
5. 바울은 디모데에게 태만을 경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네 속에 있는 은사를 조심 없이 말며"(14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은사를 소홀히 한다면 그 은사는 시들어 버릴 것이다. 이 말은 그가 받은 직책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혹은 그 직책을 위해 위로부터 부여된 능력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일 것이다. 만일 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안수(직책 수여)를 뜻하는 말일 것이고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특별한 능력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의 것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은사가 본문에 보면 "안수를 통해"주어진 것이라고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책 수여에 대한 성서적인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당시의 직책수여는 안수로 말마암아 즉 장로회에서의 안수를 통해 수여되는 것이었다. 디모데도 사람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하였다는 말씀을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보게 되는데 이때 디모데에게 수여된 것을 특별한 하늘로부터의 은사였고 그가 직책을 수여 받을 때는 장로회의 안수에 의하여서였던 것이다.
(1) 목회자의 직책은 은사인데 곧 그리스도의 은사임을 잊지 말자. 그리스도의 승천하셨을 때 인간을 위하여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은사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목자로 또는 교사로 삼으셨다(엡 4:8, 11). 이러한 은사는 그가 교회에 베푸신 배려 깊은 은사였다.
(2)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디모데의 직분이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장로들이 손을 얹어 안수하는 것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이다(그의 특별한 능력은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디모데의 직분은 이런 방법을 통해 수여된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장로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하는 정도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울이 디모데의 직책 서임에 관여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안수함으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딤후 1:6). 직책 수여의 안수에 관여하였다 해도 장로들은 제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문에 장로회의 안수에 대하여 특별히 기록한 것을 볼 때 장로들이 세습적인 직책 서임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명백한 것이다.
6.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직분을 부여받았으니 그 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하였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 디모데는 현명한 지성인이었는데도 더욱 지식을 얻어야 했고 또 자신의 지식의 진보를 나타내야 했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목회자는 명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위임된 임무와 불사의 영혼의 가치와 귀중함에 대해 그리고 또 마지막 날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목회자들은 위의 일들에 전심전력하여야 하며 이것들을 그들의 당면 과제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본문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3) 이같이 전심전력할 때 그들의 진보가 모든 일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들이 지식과 은혜 또다른 모든 것들에서 자라가는 방법인 것이다.
7.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조심하기를 강조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 즉 네가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을 삼가 생각하고 이일은 계속하라. 즉 네가 받은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을 구하고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다음을 유의하라.
(1) 복음 사역자들은 구원 사역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2) 복음 사역자들은 먼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네 자신을 먼저 구하고 그 후에 너에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라."
(3) 설교에 있어서 목회자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자기의 영혼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4)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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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제 4장
=====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 본장에서 바울은 이단에 대한 경계를 명하고 있다.
1-5절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금욕주의에 대한 교훈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거짓 예배가 하나님의 참된 예배를 더럽히고 있는것을 경계시키고, 이것이 성령에 의한 예언임을 밝히고 있다(Guthrie).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기르침을 좇으리라 - '후일'(* ,휘스테로이스 카이로이스)은 묵시 문학적으로 '말세'(막 13:5-37 ; 딤후 3:1)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장래'를 의미한다. 즉 이것은 어떤 특정한 시간에 실현되는 임박성을 가리킨다(Earle).
'...에서 떠나'의 헬라어 '아포스테손타이'(* )는 '버리다', '취소하다'의 뜻으로(desert, JB) '마음이 변하다', '배교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기 때문에 배교자들이 생긴다.
한편 '미혹케하는 영'(* ,프뉴마신 플라노이스)은 '거짓말하는 영'을 가리킨다(왕상 22:22). 이 말은 방황을 뜻하는 '플라네'(* )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방황하게 하다', '길을 헤매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귀신'이라는 말은 KJV과 NEB에서는 '악마'(devi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서는 '다이모니온'(*, '귀신')과 '디아볼로스'(* , '마귀')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마 12:24 ; 막 5:8, 9). '귀신'은 복수로 사용되었고 '마귀'는 단수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4:2
@자기 양심이 화인맞아서 - 이는 믿음에서 떠난 자의 상태를 말한다. '화인맞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카우스테리아스메논'(* )은 문자적으로 '인두로 도장을 찍은'이란 뜻이다. 이 말은 노예 매매시 주인이 노예에게 신체 부위에 불로 지져서 자기 소유를 표시했던 사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이 부위는 점차 딱딱해져서 감각(感覺)이 없어지게 된다. 즉 양심이 화인맞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감각이 무디어진 자들이다(엡 4:19). 이처럼 그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여 진리를 구별할 수 없게 하는 그들의 소유자는 사단이다(Lock).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 - 이 말은 '마귀들로부터 조종받는 사람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Guthrie, Calvin). 사단은 사람들을 꼬여 하나님 위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4: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 에베소 교회의 이단들은 금욕주의자였다.
그들은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한 것이며, 육적인 것은 악에 물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혼인을 불쾌하게 여겼고 몇몇 음식을 먹지 않았던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다(롬 14:1, 2, Scott).
'혼인을 금하는' 풍습은 엣세네파(Essenes)에서 시작하여 테라퓨테파(Therapeutae)에서 유행하였는데(Josephus, Philo), 이것이 발전하여 영지주의자(Gnostics)들의 교리가 되었다. 이러한 교리는 1세기에 교회에 들어와서 2세기 경까지 교회에 두루 퍼졌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쾌락을 죄로 규정하였고, 성결(聖潔)하게 되는 것은 금욕을 통해서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창 1:10, 12, 18, 21, 25, 31). 따라서 억지로 행하는 금욕주의와 금식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배치(背馳)된다.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 특정한 음식을 금지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레 11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불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다(갈 5:1-6). 따라서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막7:5 ; 롬 13:14 ; 딛 1:15).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않는다(롬 1:21).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본절은 앞절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1장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창 1:10, 12, 18, 21, 25).
@'지으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스마'(* )는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 '크티조'(* )에서 유래한 단어로 '창조된 피조물'을 뜻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다고 표현한다. 사실 인류에게 아무 쓸모 없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Hendriksen). 따라서 본문은 '만일 감사함으로 받으면'으로 조건적 분사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버릴 것이 없다'는 원인,결과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Scott).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 결혼을 창조자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일용할 양식과 마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전제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그것을 거룩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혹자는 '말씀과 기도'가 음식물 자체를 거룩하게 한다고 하나(Simpson)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그것보다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는 행위에 있어서 결코 세상 사람들처럼 쾌락과 만족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전10:31).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 '이것'(* , 타우타)은 1-5절의 내용을 지시한다. '형제'(* , 아델포이스)는 교회 안에 소속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벧전 2:17 ; 5:9).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의 형제들이요, 영적 식구들이다. 바울이 여기서 이 말을 한 것은 결코 권위를 나타내려고 함이 아니라 이단 세력으로부터 에베소 교인들을 보호하려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Hendriksen).
한편 '깨우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티데메노스'(*)는 '아래에 놓다'를 뜻하는 '휘포티데미'(* )에서 유래한 말로 '제시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point, NIV). 이때 본절은 '만일 네가 이것들을 제시한다면 그들의 행위에 대한 기초가 되므로 너는 이것들을 명(命)하라'는 뜻이다(Scott).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 '일꾼'(* , 디아코노스)은 3:8, 12에서 '집사'라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자들을 일컫는다(Robertson, Lenski). 혹자는 이 말이 '집사'라는 용어로 정착(定着)되기 전에 바울이 디모데를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나(Hervey) 정확한 근거가 없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 '믿음의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참된 복음의 말씀이며, '선한 교훈'은 거짓 교훈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훈들을 말한다. '네가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콜루데카스'(*)는 '옆에서 바싹 따르다', '어떤 일에 열중하다'라는 의미이다. '양육을 받으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트레포메노스'(*)는 '기르다'를 뜻하는 동사 '엔트레포'(* )에서 나온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서 받아 온 믿음의 양육으로 인해 신실한 하나님의 선한 일꾼된 디모데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Calvin).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망령'(* , 베벨루스)에 대해서는 1:9 주석을 참조하라.
'허탄한 신화'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라오데이스 뮈두스'(* )는 늙은 노파가 어린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old wives' tales, NIV, JB, Scott). 즉 본절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이단들이 주장하는 끝없는 족보와 신화를 나타낸다(딤전 1:4). 바울은 유대인의 신화와 족보를 이렇게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디모데에게 이런 것들을 내버리라고 권고한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경건'(* , 유세베이안)
은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마음을 뜻한다(Calvin). 이런 경건(敬虔)의 연습은 8절의 '육체의 연습'과 대조를 이룬다.
'연습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귐나조'(* )는 '벌거벗은'을 뜻하는 '귐노스'(* )에서 유래한 말로 '벌거벗고 운동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당시 헬라에는 '달리기'와 '격투' 등의 경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옷을 벗고 경기에 임하였다(Josephus). 따라서 이 비유가 운동 경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 비유에 금욕주의적 훈련도 포함된다고 말한다(Earle).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 '육체의 연습'이란 고대의 운동 경기자들이 경기에 나가기 전에 부지런히 훈련하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것은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외식적인 신앙 행위 즉 철야 기도, 금식 기도 등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습은 엣세네파에서 중요시하던 규칙이었다(Calvin). 그런데 이러한 것은 잠시 동안 유익이 된다. '약간의'에 해당하는 '프로스 올리곤'(*)은 시간의 길이를 뜻하는 '얼마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경건한 삶을 사는 자는 금생(今生)에 하나님과 더불어 삶으로써 은혜가 넘치는 평화스러운 삶을 살며(시34:1, 2), 내생(來生)에 있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막 10:30). 이러한 삶은 잠시 동안만 유익을 주는 육체적 삶과 달리 항상 유익을 준다. 이처럼 경건의 축복을 말하는 본절은 자신이 처한 세상 환경에 관계없이 가장 풍족한 삶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실존(實存)을 잘 말해준다(Guthrie).
=====4: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 이 관용적 표현은 1:15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 말이 8절의 경건과 관련된 것인지, 10절과 관련된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당시 10절보다 8절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 때문에 전자를 따르고 있다(Hendriksen, Scott, Robertson). 그러나 경건의 주제를 다루는 8절보다 소망의 하나님을 언급하는 10절이 더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또 10절 초두에 나오는 '이를 위하여'가 8절의 '경건'을 말하고 있으므로 후자가 타당할 것이다(Earle, Guthrie). NIV는 후자가 타당하다는 견해에 따라 10절 초두, 즉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을 괄호로 묶고 있다.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 바울은 앞에서 인용한 말씀, 즉 경건이 주는 유익과 약속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여러 동역자들의 노력의 근거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복음 때문에 현재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은 그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교제가 있고, 장차 즐겁고 복된 날을 소망하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 있다.
'수고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코피오멘'(*)는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다'의 뜻을 가진다. 또한 '진력하는'의 헬라어 동사 '아고니조메다'(* )는 운동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싸울 때 사용되는 말이다. 바울이 이 단어들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수고와 고생을 참아냈던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과 박해도 감내(堪耐)하라는 권고의 의미이다(고전 4:9-13 ; 고후 11:23-27 ; 딤후 3:11, Hervey).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 이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진력(盡力)한 이유이다.
경건은 현재를 살아가는 삶뿐만 아니라 장차 영원한 삶을 확실히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현재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과 교리를 위하여 힘을 다한 수고가 썩어져 없어질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흔들림이 없이 자신이 맡은 책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할 수 있다(고후 4:16-18 ; 벧전 1:3, 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더욱 깊게 하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의 조건이 된다.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 본절에 나타난 사상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2: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주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하다(Lenski). 또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지키시고 보살펴주신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주장도 있다(Hendriksen).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은 '믿는 자들의'라는 문구를 첨가함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지만(Calvin),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의지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White). 자신의 완고한 불신앙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4: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쳐라 - '명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레'(*)는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명령어였다. 예수께서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실 때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 10:5 ; 15:35 ; 막 8:6 ; 눅 8:29 ;9:21). 그리고 바울 사도는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살전 4:11 ; 살후 3:4, 6). 본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실한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권위(權威)를 가지고 교회를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Guthrie). '이것들'은 바울이 6-10절에서 말한 모든 것을 지시한다. '가르치라'(* ,디다스케)는 현재 명령법으로 '계속하여 가르치라'는 것을 의미한다.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 '연소함'(* ,네오테토스)이란 '젊음'을 뜻하는 '네오스'(* )에서 온 말로서 유대 사회에서 군대를 갈 만큼 자란 나이에서부터 40세까지 달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용하였다(Lock). 많은 학자들은 디모데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推測)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연소함'은 장로들이나 교인들 틈에서 경륜이 적은 디모데가 상대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기에 어려운 점을 의미하는 것이지 나이에 대한 연소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Guthrie).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연륜과 경륜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연소함을 행동의 진지함으로 보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장로들과 나이 많은 교인들에게 연소함으로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서 권위를 지니라는 말이다(Calvin).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의 권위는 외부적인 치장이나 장식, 그리고 연령으로 오는것이 아니고 진정한 가르침과 거룩한 생활에서 오는 것이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 '말'이란 공개적인 연설뿐만 아니라 사적인 대화까지도 포함한다. '행실'(*, 아나스트로페)은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또한 다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세 가지 '사랑', '믿음', '정절'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적인 성품이며, 이것들도 결국 타인과 관계된 생활과 연결된다. '사랑'은 말과 행위로 표현되고 '믿음'은 사랑에 근거를 둔다. '정절'의 헬라어 '하그네이아'(* )는 '순결한 양심을 지키다'라는 뜻을 가지는 헬라어 동사 '하그뉴오'(* )에서 유래된 말로, 생활에 있어서 죄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철저한 순결을 의미한다(5:2, Robertson).
한편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포스'(* )는 '상처를 내다'는 뜻인 '튀프포'(* )로부터 나온 단어로서 어떤 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식' '모델', '본보기'라는 뜻이다(빌 3:17 ; 살전 1:7 ; 살후 3:9).
바울은 본절에서 디모데가 비록 젊은 사람이었지만 경험(經驗)이 충분한 인생을 산 사람처럼 말과 행실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보살펴줌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직한 행동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4:13
@내가 이를 때까지 - 본문은 내용상 3:14의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와 일치한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 없는 중에 디모데가 대리자의 직무를 수행하여 공중 예배에 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 '읽는 것'은 공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성경과 개역성경에서는 그냥 '읽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NIV에서는 '성경'(Scripture)이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초대 교회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모든 공적 예배에서 성경을 공식적으로 낭독(朗讀)하였다(눅 4:16 ; 행 3:15 ; 고후 3:14). 본절에서는 율법서와 선지서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과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는 것을 말하고 있다(골 4:16, Hendriksen). '권하는 것'은 교리와 도덕에 어긋남이 없게 하기 위하여 충고하고 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눅 4:16-30) '그릇된 사상에 미혹되지 않고 확고한 믿음 위에 설 수 있도록 해석하고 권유하는 것'을 뜻한다.
=====4:14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 없이 말며 - 본절은 디모데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헛되게 묻어두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은사'의 헬라어 '카리스마토스'(*)는 '카리스'(* , '은혜')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성령으로 부여받는 모든 영적 은혜와 능력을 의미한다(눅 7:42 ; 행 27:24 ; 롬 8:32). 본절의 '은사'는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수(按手)를 통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Hervey). 이러한 의미에서 혹자는 본절의 '은사'는 '직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Scott), 적절한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은사는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고, 안수는 초대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자에게 행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Lenski, Calvin).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반적인 은사의 의미와 직분의 의미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조심 없이(* , 메 아멜레이)는 '멸시하여 소홀히 여긴다'는 뜻이다.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목회자라는 위치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성별된 것이므로 소홀히 여기거나 헛되게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 - 디모데가 안수를 받은 것이 언제, 어디서, 행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때에 루스드라에서 일어났던 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때 안수를 행하던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덧입혀짐으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은사가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endriksen). 또 혹자는 이 안수 의식이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떠날 때에 거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Lock).
'장로회'는 장로들의 단체, 즉 교회의 공회를 가리킨다. 장로회는 점차 성례전을 행하는 단체로 직제화(職制化)되었다. 아마 바울도 이 장로회의 일원이었을 것이다(딤후 1:6).
'안수'(* , 에피데세오스 톤 케이론)는 고대로부터 유대 사회에 내려온 관습으로서 권위나 축복, 능력 등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그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회에서 실시되었다. 따라서 디모데는 인간의 의식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인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 '모든 일'이란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수행해나가야 할 일을 가리킨다. '전심'의 헬라어 '멜레타'(* )는 문자적으로는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실시하다', '경작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 '진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코페'(* )는 '똑바로 나아가다', '발전하다'를 뜻하는 '프로코프트'(*)에서 나온 단어이다. 바울의 관심은 디모데의 진보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디모데의 진보가 교회 내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접촉하는 모든 외인들에게까지 드러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구원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 이 말은 '네 자신과 가르침에 유의하라'는 뜻이다. 이는 디모데가 스스로 조심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삼가'(* , 에페케)는 '주의하다'를 뜻하는 동사 '에페코'(* )에서 온 말로서 시상이 현재 명령법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자신을' 뜻하는 여격 '세아우톤'(* )과 합성되어 그 의미가 '너 자신에게 관심을 계속해서 가져라'는 뜻을 나타낸다.
한편 '가르침'은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doctrine, KJV). 따라서 본절의 '가르침'은 공적(公的)인 가르침으로 보아야 한다(Lenski). '계속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메네'(* )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의 옆에 계속 머물러 있다'라는 뜻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곳에 계속 머물러 내가 지시한 일들을 계속해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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