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17장 ......< 제 2차 전도여행 >...**고린도에 18개월간 머물면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기록**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 :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 심방(행15:41)==> (행16:1)더베, 루스드라 : 1차 전도 여행때 세운 교회 심방,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동역자로 택함...브루기아-갈라디아-무시아==> (행16:8)드로아 : 마게도냐인의 요청(유럽 선교에 대한) 환상...사모드라게-네압볼리 ==> (행16:12)빌립보 : 자주장사 루디아와 그 집이 세례 받음. ...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 축출 ... 체포-고발-태장-투옥 수감, ...한밤중 옥중 기도-찬송 도중 지진으로 감옥문이 열리나 도망치지 않고 간수와 그 가족에게 복음 전함...암비볼리-아볼로니아-데살로니가 ==> (행17:1)데살로니가 : 마케도니아의 수도. 세 안식일 동안 회당에서 말씀 선포, 헬라인 전도, 바울이 머물던 야손의 집을 유대인들이 공격, 베뢰아로 피함 ==> (행17:11)베뢰아 :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라 기록됨. 많은 귀부인과 남자들이 믿게됨 유대인들을 피해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두고 아덴으로 이동==> (행17:16)아덴 : 매일 아고라에서 쾌락주의자(에피쿠리안)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토론. 아레오바고에서 복음 제시하나 큰 반응 얻지못함(철학적 변론의 한계) ==> (행18:1)고린도 : 아가야 지역의 수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남...실라와 디모데 합류... 유대인들의 대적-비방에 대해 복음전파 방향을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게 됨 선포 ...18개월 머물며 데살로니가 전후서 기록....아가야 총독으로 갈리오 부임시 유대인들의 대적-법정에 고소 -- 회당장 소스데네를 법정앞에서 집단구타 .. 브리스길라-아굴라 동행 ==> (행18:19) 에베소 : 귀환길에 들려 복음 전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남겨둠 ==> (행18:22)가이사랴 : 예루살렘교회의 안부를 물음 ==>안디옥 : 귀환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만왕의 왕-만주의 주, Q-사람이신 그리스도만을!!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세 안식일 동안 구약성경을 가지고 길고(몇시간 동안 심지어 반나절을 소비하여) 자세하게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예수의 영에 의해 통제되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제시-전달-사역함으로써] 강론했다 --강론했을 바, 그 메시지란...*이미 구약성경에 약속하신 그대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신 Q의 본체, JC께서 고난 받으실 필요가 있었음(JC의 고난이란 JC의 육신으로 오심 안에 JC의 이중신분-신성과 인성-을, 게다가 그분의 죽으심을 포함) **해를 받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부활)을, 곧 JC의 부활을 명백히 말함 = 신성 안에서 육신되신 그리스도에 관해 + 그분의 신성-인성, 인생, 고난, 죽음, 부활에 관해 강론했음 =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들어가 [지난날의 잘못 회개하고 부활하신 JC, 그분을 각자의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한 하나됨 이룸 통해, 성령께서 거듭난 믿는이 각자의 영혼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Q으로써 함께 사심-그분의 이름은 CJ-] 영원한 구원 얻음의 메시지....그 열매로, 이미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핼라인의 큰 무리와 [이미 Q을 추구하고 있던] 적지 않은 귀부인(leading women)들이 바울과 실라의 말씀 전파에 설득되어 믿고 그들의 믿음과 연결된 하나가 되었다(=형제가 됨)..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이 땅을]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이들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며 박해를 서슴지 않는 반대론자 유대인들은 마귀, 곧 악한 선동자에게서 받은 훈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유대교가 지방정치와 결탁하며, 심지어 그것을 사도들을 핍박하기 의해 간교허게 사용하고 있었음 ,..,유대 종교가 Q의 복음전파 경륜을 반대하기 위하여 Q의 원수인 사탄에 의해 강탈당한 상태임을 나타냄.....원칙적으로 오늘날도 상황은 똑 같은 유형인바, 종교는 땅에서의 Q의 순수한 움직임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세상 권력과 결탁한다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다 10. ○((그들이 잡혀 죽을 위험에 노출되었기에!!))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복음전파기회 븥잡기 위해!! --오히여 박해자 유대인의 요새 그 심장부 안으로 담대히 들어가고 있다)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유게네스(유(참된-좋은)-게네스(혈통-가족-자손) = 마음이 고상한, 편견 없는-잘 알아듣는, 열려진 마음의(open-minded), 도량 넓은, 친근함과 호의로 말씀 대하는...고귀한 혈통/문벌 좋은...마음이 바른 = 마음이 민첩한 = (참생명 얻는 근원적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는.....(히)가돌 = 큰, 위대한, . :::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일에 (있어서) 베뢰아 사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음을 주목해야 함... 여기서 말하는 베뢰어 사람은 일차적으로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이니, "그들의 마음이 이미[하나님 말씀으로 기경되어 적셔져] 열려있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편견없이 받아들였다" 하는 의미이다. ...그러했기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보다는!!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구원안으로 들어왔다.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상고한다는 말은 따져보고--연구해 보고-- "바로 그러하다"는 확신에 이르렀고(더 나아가 그 말씀으로 살기로 결정했다) 함이다......이 때에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에서 무엇을 따져보고, 무엇이 과연 그러한가를 연구했을까? 1)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는다는 바울의 강론의 내용이 맞는지? 2)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다는 바울의 말이 맞는지? 3) 바울이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가 맞는지?(행17: 3)를 연구했을것..... 베뢰아 사람들은 왜, 무엇때문에 이것을 따져보고, 과연 그러한가를 연구해야 했는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 39)”. 성경을 상고하는 궁극은 결국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어야함...예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성경공부란 잘못된 것이다.. . De Omnibus Dubitandum(데 옴니부스 두비탄둠) =: be suspicious of everything, doubt everything “모든 것을 의심하라(진리의 거름망이신 기록된 말씀 능력-부정한 모든 것 살라버리시며 빛 비추믕로써 드러내시는 분이신 성령의 인도와 그리스도 예수의 영의 통제 아래에 둠으로써)” 그러므로, 모든 설교를 솔라 스크립투라+ 주 임재 앞에서 의심해 보고 검증하라...모든 성경공부를 주 임재 앞에서 의심해 보고 검증하라 바로 믿기 위해서!!. 오직 조심할 것은!! 구원은 (피상적인) 성경공부나 설교로 얻는 것이 아니니...그것은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며!! 구속하심과 구원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참 믿음의 은혜로만 받는다. ...성경을 상고하기 위하여, 1) 편견에 물들기 전에 먼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성경을 한 두번 통독하라... 2) 성경의 기록시기에 따른 순서를 따져가며, 성경 각 권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점진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을 같이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성경을 한 절 한 절 읽어가며 균형잡힌 이해를 갖도록 마음-뜻-정성 기울이라.. .4) 더 깊이있는 공부를 위해..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라 ........**아나크리노. = 상고하다...상세히 고찰-심사숙고-분별하다........[고전2: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롬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행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분별하다의 헬라어는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 -- 자세하게 살펴보다 깊이 상고하다 조사하다의 의미... 아주 깊이를 뜻하는 <아나>와 분별하다 살펴보다를 뜻하는 <크리노>의 합성어...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는 분별하다와 결론내리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분별>... 그 말씀에 자신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것이 <결론내리다>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이 열려 있기에 분별할 수 있다, 들으려고 하기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이다...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분별하는 것인, 진실한 양마다 목자의 음성을 들을 것인데, 이는 성령께서 은혜 주시기에 가능한 것이다...영적인 마음 눈과 귀를 열어 주시기에 그 은혜로 듣고 깨달을 수 있다.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깊은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니, 마음을 찢는 심령이 되게 될 것이요, 그리고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의로운 마음의 합당한 격분 :: 눈과 귀, 마음을 마취-중독시켜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생(그러나, 부활 예수 믿고 영접함 통해 성령 내주하심의 거듭남 통한 참생명 그리스도로 사는,하나님의 아들들에로의 변화가 절대 필요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바로 그 원흉인 사탄 체계, 곧 타락한 세상 프레임 덧씌움과 가스라이팅에 대해 분노함 = 시내산에서 황금송아지 숭배 사건에 대한 주님 느낌 = 이를 따라 처리 실행한 비느하스의 열심 = 아덴에서 우상 가득함을 보고 바울의 마음에 끓어오른 의로운 분노@@@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 Acts 17 Amplified Bible ===Paul at Thessalonica 1 Now after Paul and Silas had traveled through Amphipolis and Apollonia, they came to Thessalonica, where there was a synagogue of the Jews. 2 And Paul entered the synagogue, as was his [a]custom, and for three Sabbaths he engaged in discussion and friendly debate with them from the Scriptures, 3 explaining and pointing out [scriptural evidence] that it was necessary for the Christ to suffer and rise from the dead, and saying, “This Jesus, whom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4 And some of them were persuaded to believe and joined Paul and Silas, along with a large number of the God-fearing Greeks and many of the leading women. 5 But the [unbelieving] Jews became jealous, and taking along some thugs from [the lowlifes in] the market place, they formed a mob and set the city in an uproar; and then attacking Jason’s house tried to bring Paul and Silas out to the people. 6 But when they failed to find them, they dragged Jason and some brothers before the city authorities, shouting, “These men who have turned the world upside down have come here too; 7 and Jason has welcomed them [into his house and protected them]! And they all are saying things contrary to the decrees of Caesar, [actually] claiming that there is another king, Jesus.” 8 They stirred up the crowd and the city authorities who heard these things. 9 And when they had taken security (bail) from Jason and the others, they let them go. ===Paul at Berea 10 The brothers immediately sent Paul and Silas away by night to Berea; and when they arrived, they entered the Jewish synagogue. 11 Now these people were more noble and open-minded than those in Thessalonica, so they received the message [of salvation through faith in the Christ] with great eagerness, examining the Scriptures daily to see if these things were so. 12 As a result many of them became believers, together with a number of prominent Greek women and men. 13 But when the Jews of Thessalonica learned that the word of God [concerning eternal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had also been preached by Paul at Berea, they came there too, agitating and disturbing the crowds. 14 So at that time the brothers immediately sent Paul away to go as far as the sea; but Silas and Timothy remained there [at Berea]. 15 Those who escorted Paul brought him to Athens; and [after] receiving instructions [from Paul] for Silas and Timothy to join him as soon as possible, they left. ===Paul at Athens 16 Now while Paul was waiting for them at Athens, his spirit was greatly angered when he saw that the city was full of idols. 17 So he had discussions in the synagogue with the Jews and the God-fearing Gentiles, and in the market place day after day with any who happened to be there. 18 And some of the [b]Epicurean and Stoic philosophers began to engage in conversation with him. And some said, “What could this idle babbler [with his eclectic, scrap-heap learning] have in mind to say?” Others said, “He seems to be a proclaimer of strange deities”—because he was preaching the good news about Jesus and the resurrection. 19 They took him and brought him to the [c]Areopagus (Hill of Ares, the Greek god of war), saying, “May we know what this [strange] new teaching is which you are proclaiming? 20 For you are bringing some startling and strange things to our ears; so we want to know what they mean.” 21 (Now all the Athenians and the foreigners visiting there used to spend their [leisure] time in nothing other than telling or hearing something new.) ===Sermon on Mars Hill 22 So Paul, standing in the center of the Areopagus, said: “Men of Athens, I observe [with every turn I make throughout the city] that you are very religious and devout in all respects. 23 Now as I was going along and carefully looking at your objects of worship, I came to an altar with this inscription: ‘TO AN [d]UNKNOWN GOD.’ Therefore what you already worship as unknown, this I proclaim to you. 24 The God who created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 since He is Lord of heaven and earth, does not dwell in temples made with hands; 25 nor is He [e]served by human hands, as though He needed anything, because it is He who gives to all [people] life and breath and all things. 26 And He made from one man every nation of mankind to live on the face of the earth, having determined their appointed times and the boundaries of their lands and territories. 27 This was so that they would seek God, if perhaps they might grasp for Him and find Him, though He is not far from each one of us. 28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exist [that is, in Him we actually have our being], as even some of [f]your own poets have said, ‘For we also are His children.’ 29 So then, being God’s children, we should not think that the Divine Nature (deity) is like gold or silver or stone, an image formed by the art and imagination or skill of man. 30 Therefore God overlooked and disregarded the former ages of ignorance; but now He commands all people everywhere to repent [that is, to change their old way of thinking, to regret their past sins, and to seek God’s purpose for their lives], 31 because He has set a day when He will judge the inhabited world in righteousness by a Man whom He has appointed and destined for that task, and He has provided credible proof to everyone by raising Him from the dead.” 32 Now when they heard [the term] resurrection from the dead, [g]some mocked and sneered; but others said, “We will hear from you again about this matter.” 33 So Paul left them. 34 But some men joined him and believed; among them were Dionysius, [a judge] of the Council of Areopagus, and a woman named Damaris, and others with them. ===Footnotes Acts 17:2 Paul had earlier announced that he was turning to the Gentiles (13:46), but he nevertheless kept to his practice of speaking to Jews first while focusing primarily on Gentiles. Acts 17:18 These were among the leading philosophies of the day. Neither believed in a personal God; indeed, the Epicureans were confirmed atheists. Their goal was to get as much out of life as possible. The Stoics had a strong, fatalistic sense of duty, seeking to improve the inner man. Acts 17:19 Also known as Mars Hill, named for Mars, the Roman god of war. It was the place where the ancient Greek Areopagus Council convened and had varying powers in the course of its history. In Roman times it was where the supreme government of Athens met. Acts 17:23 While the philosophers had little or no regard for the old mythological gods of the Greeks, the temples to various deities remained and worship practices continued, at least as a formal tradition. The altar to the Unknown seems to have been constructed for the purpose of acknowledging any god who had been overlooked. Paul seized upon it as an opportunity to introduce the Greeks to Christ. Acts 17:25 Here Paul uses an unusual word which normally refers to healing. He was educated in classical Greek literature to some extent (see note v 28 and 22:3), and what he says here recalls earlier arguments by Plato (in his dialogues the Euthyphro and the Symposium) which should have struck a responsive chord in the listeners. In the dialogues, Plato represents Socrates as analyzing the nature of service to a god, and points out that the god can only receive actual benefit from service if he is in need or lacking something. Paul masterfully adapts himself to the thinking of the Athenians, demonstrating to them that the gods whom they serve with sacrifices and worship cannot really be gods at all, unless it is possible for a god to have faults or needs that have to be satisfied. This is also a good point for the Christian to bear in mind; believers are to serve God, but this is not a service that in any way actually benefits Him, because He is perfect and in no need of anything which man can supply. The same is true for the sacrificial system of the OT. While God is represented there as demanding sacrifices and sometimes enjoying their pleasant aromas, the sacrifices did not actually benefit Him. In reality they pointed ahead to the supreme sacrifice of Christ, which was the ultimate payment for mankind’s sins. Acts 17:28 Paul was probably exposed to Greek literature when he studied with Gamaliel, and quoting or paraphrasing a line from one of their poets would have surprised and kept the attention of the audience. See note 22:3. Acts 17:32 See note v 18. ======= 사도행전 17장 (개요) 이 장에서 우리는 바울의 여행과 그의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와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은 수난에 대한 설명을 대하게 된다. 바울은 책상 위의 촛불처럼 다만 하나의 방만을 비춘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 회전하는 태양과 같은 인물이었다. 바울은 마케도냐라고 하는 커다란 나라로 와 주도록 초청을 받았다(16:9). 그는 빌립보에서부터 그의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제일 처음 닿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활동을 대하게 된다. Ⅰ. 마게도냐의 또 다른 도시인 데살로니가에서의 그의 설교와 박해를 당함(1-9). Ⅱ. 베뢰아에서의 설교. 그 곳에서 그는 열성적인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박해를 받아 역시 그곳을 떠난다(10-15). Ⅲ. 그리스의 유명한 학문의 도시인 아덴에서의 논쟁(16-21). 그것은 다신교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던 그곳 사람들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그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려 하기 위해서 한 바울의 인간 본성의 종교심에 대한 강론(22-310). 거기서 거둔 복음의 성과(32-34). ======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행 17:1-9)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두 편의 편지는 그가 영감에 의해 쓴 최초의 편지들인데, 그 편지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특징을 잘 밝혀 준다. 또한 우리는 역사서인 본서에서 그곳 교회의 최초의 설립 과정에 대한 설명에 대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Ⅰ. 바울의 데살로니가 도착. 이 성은 마게도냐 지역의 수도로써 지금은 터키의 영토로 "살로니카"(Salondch)라고 불리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바울은 그가 빌립보에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단념하지도 않았으며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였다.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살전 2:2) 그가 당했던 반대와 박해가 오히려 그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를 동요시킬 수 없었다. 만약 높은 곳으로부터의 능력에 의해 활력을 얻지 못했었다면 그가 이룬 것만큼 그의 활동을 계속하고 또 그만한 고난을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단지 지나치기만 하였다." 암비볼리는 빌립보에 가까운 도시였고 아볼로니아는 데살로니가에 가까운 도시였다. 바울은 의심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지시 아래 행동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어느 장소는 지나쳐야 하고 어느 장소는 머물러 전도해야 한다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성령은 바람과 같이 그의 뜻하는 대로 행하신다). 아볼로니아는 일리루곤(Illyricum)에 속한 성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본문은 바울의 여행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즉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부터 두루 행하여 일리루곤까지"(롬 15:19) 복음을 설교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바로 바울이 거하였던 아볼로니아는 일리루곤의 경계선이었다. 바울이 이 도시를 통과했다고만 나와 있지만 우리는 바울 자신이 거기 오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가 후에 보내게 될 다른 사역자들이 그곳에 올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였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Ⅱ.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의 회당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 회당을 발견했다(1절). 이 사실은 바울이 앞서 언급된 다른 도시에서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려야 했던 한 가지 이유를 알려 준다. 왜냐하면 그 다른 도시들에 유대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는 유대 회당이 발견되었으므로 바울은 그곳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1.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고 그들이 그것을 거절한 후에야 이방인들을 향하는 것이 바울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설교하였다고 유대인들이 소요를 부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새로운 개종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고, 만약 그들이 거절한다면 그들은 사도들이 그 복음을 반갑게 받아들일 다른 사람들에게 거지고 가도 그들이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복음 전파를 시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시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었다. 2. 바울은 유대인들을 안식일에 그들의 회당에서 만났다. 그는 바로 그들의 장소에서 또 그들의 집회 시간에 그들을 찾아 감으로써 그는 그 장소와 시간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려 했다. 안식일, 그리고 그 엄숙한 집회는 그리스도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언제나 중요하다(시 84:10). 주의 날에 주의 집에 거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리스도도 그렇게 하였고 바울도 그렇게 하였으며 다른 모든 성도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계속 지켜온 전통적인 미덕이었다. 3. 바울은 "성령을 가지고 강론하였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바울과 일치하였다. 거기까지는 그들과 바울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받아들이기에 [상대적, 수동적 용인의 입장]그리스도를 배척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바울은 구약 성경을 받아들이기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만한 커다란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절대적, 적극적, 능동적 추구의 입장] 따라서 바울이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강론을 해야 하며 또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자신의 성경으로부터의 추론이 옳고 유대인들이 추론한 것이 그르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복음적 설교는 반드시 성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바울의 설교가 그러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성서를 근거하여 강론을 전개시켰기 때문이다. 성경을 우리들의 신앙의 기초요 신앙의 시금석으로 삼으며, 생활에 대한 계시의 원천으로 택해야 한다. 즉 성경에 근거하여 생활하고, 성경에 근거해 우리의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유대인들과 같이 성경에 열중하는 척하지만 잘못 해석하여 스스로 멸망에 빠져 들어가는 그러한 사람들을 성경으로 상대해야 한다. 무한 풍성 충만한 영광의 무게라는 측면에서 [필요조건인] 이성과 논리가 [필요충분조건인] 성경과 양립할 수는 결코 없다. 이성은 성경을 응용하고 설명하는 하나의 필요수단이 되어야만 한다. 4. 바울의 말씀. 강론을 "세 안식일에 걸쳐" 계속해서 했다. 비록 첫 번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확신시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안식일에라도 그들을 믿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왜냐하면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지식에 지식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할 것을 기다리신다. 그의 사역자들도 또한 그래야만 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첫 시간에 다 포도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첫 번째 부름에 응한 것도 아니었다. 또한 간수처럼 갑자기 모두 부름에 응하지도 않았다. 5. 바울의 설교와 논증의 취지. 그것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주장의 시종일관된 내용이었다(3절). 그는 먼저 그의 주제를 설명하고 뜻을 풀고 그것을 증명하였다. 그 내용은 그가 지키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알리도록 부탁받은 것이었다. 바울의 논쟁 방법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는 설교할 때 자기가 설교하려는 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고 또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바울이 그것의 진실성을 충분히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그는 이 가르침을 잘 아는 사람처럼 서두를 꺼낼 수 있었고 또 그것을 믿는 사람처럼 그것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1) 메시야가 "해를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그가 그렇게 되어야 함을 보여 주었다고 그는 말한다.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예수의 불명예스러운 죽음과 고난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생각해 온 메시야 사상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메시야가 죽고 부활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부정의 여지가 없이 규명하였다. 즉 비록 그가 고통을 받으셨지만 메시야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이기 때문에 그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고난을 받지 않으시고서는 온전케 되실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가 죽지 않았었더라면 결코 예수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주장한 것이기도 하다. 즉 그는 자신에 대하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고 하셨고 그러고 다시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26)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도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를 위한 구속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구원이 우리에게 적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그 예수가 바로 메시야임을 보여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고 당신들을 믿게 하려고 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구세주이며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요 오실 이(재림하실)이시다. 그러기에 너희가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말씀과 행하심으로(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의 자녀들에게 말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성경과 기적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메시야임을 효과적으로 증명하셨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① 복음 사역자들은 예수를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만 한다. 사역자들의 임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예수와 만나게 하는 것이다. ② 우리가 예수에 대하여 설교해야 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의해 구원을 받고 그에 의해 통치되기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Ⅲ. 그 곳에서의 바울의 설교의 성공(4절). 1. 몇몇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그리스도의 그의 말씀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 그들은 바울이나 실라를 단순히 친구나 동료로서만 사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맡김으로 자기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그들을 따르게 된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참되고 바른 주인의 소유물로써 그 종된 이들에게 자신을 맡긴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저희가 먼저 주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는 말씀의 뜻이다(고후 8:5). 그들은 바울과 실라에게 함께 연합하고 사귀며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동행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의 충실한 사역자들과 같이 사귐을 가지고 그들과 연합해야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경건한 그리스인들과 xhief women, 귀부인 중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곧 proselytes of the gate,성문의 개종자들이었다(유대인들이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칭하였다). 비록 모세의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우상 숭배와 부도덕한 생활을 거부하고 참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곧 경건한 헬라인들이었다(17:4). 이것은 마치 미국에서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한 인디안들을 "경건한 인디안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 교회당의 예배에 유대인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용인되었었는데, 이들 개종자들 가운데 제의법에 젖어 있는 철저한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귀부인들 중 적지 않는 사람들도 믿게 되었는데 그들은 열심과 신앙에 대한 이해심을 지닌 자들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귀부인들이 믿게 또한 사실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숙녀들과 다른 귀부인들에게 본이 되고 그들로 하여금 경건의 행사에 자신을 드리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앙의 절대적 능력에 복종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회심은 자신의 영혼에 이익이 되는 이외에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리스도에게는 큰 영광이 되는 일이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사도들이 데살로니가에서 이방인 우상 숭배자들에게 설교하였다는 사실에 관하여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그것들로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했으리라는 것을 틀림 없는 사실이다. 본문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 곳에 교회를 구성하였던 인원이 대부분 이방인 개종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곳의 교인들에게 "우상에게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이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살전 1:9). Ⅳ.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라가 받은 고통. 어느 곳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든지 그들은 박해를 받을 것을 각오하였다. 속박과 해함이 그들이 가는 성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 그들을 박해한 장본인들. 그들은 "사도들을 질시하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다(5절). 유대인들은 각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고질적인 적이었다. 특히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에 대하여서는 변절자로서 특별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분열되게 하셨는가 살펴 보기로 하자. 유대인들 중 얼마는 복음을 믿고 또 믿지 않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한편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믿는 유대인들을 시기하고 미워하였다. 바울은 이곳 교회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복음 전도자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의와 분노를 말하면서 이로써 저희에게 "노하심이 끝까지 이르렀다"고 말하였다(살전 2:15, 16). 2. 박해의 도구로 쓰여진 자들. 유대인들은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고용했다. 그들은 이들을 뽑아 규합하여 사도들을 박해하도록 성을 선동하는 일을 맡겼다. 성내의 현명하고 착실한 사람들은 사도들을 존경하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였다. 사도들을 핍박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악습을 감염시키는 도시의 쓰레기들이며, 사악한 인간들의 무리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터툴리안(Tertullian)은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자들과 기독교의 적수 노릇을 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나쁜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즉 우리를 박해하는 박해자들은 거의 다 당신 자신이 이제껏 정죄해온 자들이기도 한 불의한 자, 불경건한 자, 악명 높은 자들이다(Apologia, cap. 5). 기독교을 증오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저자의 괴악한 사람들"로서 덕과 정의에 대하여 무감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신앙의 명예를 높여 주는 사실이다. 3. 사도들을 박해하는데 사용한 수단. (1) 그들은 "성을 소동케 하여"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함으로 모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이 달려 나오게 하였다. 그들이 폭동을 선동하자 곧 폭도들은 들고 일어났다. 여기서 과연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은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아니라 바로 복음의 적들이라는 사실이 나타난다. 또한 악마가 그의 계획을 수행하는 방법은 온 도시를 들끓게 하고 마치 물을 휘저어 고기들을 괴롭히듯이 사람들을 소요 속에 휘말리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2) 그들은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는데" 그곳은 바울 일행이 묵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이 바울 일행을 끌어내어 군중들 앞에 세우려는 계획에서였다. 그렇게 하여 군중들로 사도들에게 분을 품게 하고 그들 일행에게 폭행을 가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군중들에 의하여 사도들이 매맞아 죽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모든 진행 방법은 불법적인 것으로서, 만일 야손의 집을 수색하려 한다면 영장을 소지한 특정한 관리들에 의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법률은 "사람의 집은 그들의 성이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야손의 집을 습격하고, 또 그를 끌어내어 그의 가족을 공포에 떨게 그리하여 폭동적인 그들의 행동은 그들이 오직 박해하려는데 집착하여 광분하는 무리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만약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 죄과를 조사하고 또 그것을 심판하도롤 검사가 임명되는 법이지만, (이들 유대인들이 하고자 시도한 것처럼) 불량배들로 재판을 하고 형을 집행하게 하려고 한 것은 진리를 땅에 팽개쳐 버리는 짓이요, 노예를 말에 태우고 왕자를 조처럼 걷게 하는 짓이었다. 즉 공정은 몰아내고 광분을 재판석에 앉히는 것이었다. (3) 그들이 바울 일행을 붙잡지 못하자(원래 그들은 바울 일행을 체포하여 부랑자처럼 처벌하려고 했고 또 바울 일행을 나라를 정탐하러 온 첩자라고 군중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이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을 집에 데려다가 대접한 야손이라는 기독교로 개종한 선량한 유대인에게 잡아 그의 교우 중 몇 사람과 함께 성의 치리자 앞으로 끌고 갔다. 사실 급류 앞에서는 돌아가라는 충고를따라서, 더 미움을 받아 왔던 사도들은 피신하라는 충고를 받고 미리 피해 있었다. 그러나 사도의 친구들인 야손 일행은 이 박해의 폭풍을 사도들보다 감당하기가 용이하였으므로 기꺼이 폭도들에게 자신들을 맡겼다. 이들과 같이 "선한 사람을 위하여서는 대신 죽음을 당하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4) 그들은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치리자에게 고소했다. 그리고 그들을 관대하게 처벌해서는 안 되는 매우 위험한 인물들로 모함하였다. 그들이 야손에게 씌운 죄목은 그가 바울과 그의 일행들을 맞이하여 숨겨 주고 그들을 지지하여 그들의 사업을 도와 주었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보았기에 그들을 숨겨준 것이 반역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가 된다는 말인가! 그들은 두 가지의 음흉한 죄목을 사도들에게 씌웠는데 그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군중들이 사도 일행을 미워하고 또 치안관들이 사도들을 불쾌하게 생각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이었다. ① 우선 첫째는 사도들은 공안(公安)을 해치는 적으로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무질서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렀다"고 고소하였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옳다고 볼 수 있다. 즉 복음이 힘을 발휘하는 어느 곳, 어느 영혼에서든지 복음은 거기에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복음은 본래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고 물의 흐름을 역류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에 복음이 이르는 장소나 영혼은 세상이 놀랄만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도 있는 바, 세상에 대한 사랑이 뿌리 뽑히고 세상적 생활 방법이 속에서 거부되어자가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말을 통하여 뜻하고자 한 것은 이와는 전혀 상반되는 것으로 거짓된 것이었다. 그들은 복음 전도자들을 그들이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악을 저지르는 자들로 인식되게 하려고 하였다. 즉 복음 전도자들은 친밀한 사이를 이간시키고 이웃들을 분리시켜 남의 말을 하게 하고 모든 질서와 법률을 뒤집어 엎으려 하는 자들로 인식시키려 하였다. 복음 전도자들은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덕으로, 우상 숭배에서 진실한 살아계신 하나님에게로, 악의와 질투로부터 사랑과 평화로 전향시키려고 했는데 그들은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들이라는 고소를 당한 것이다. 사실 복음전도자들이 소란케 한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악마의 왕국일 뿐이었다. 원래 "성을 소란케 한 자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사도의 적들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죄를 사도들에게 씌우려 한 것이었다. 마치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질러 놓고 그 죄를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돌렸듯이 말이다. 보라,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들이 그 지방 안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비위를 거슬리는 사람들로 왜곡되어 불리워질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을 구태여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박해를 받은 바울이나 실라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폭도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에까지 그 악을 오염시키려고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분발하여 그들을 막아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② 복음 전도자들이 당국의 적들이며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로 또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그에 따르는 행동은 국가에 대해서 파괴적이고 그 법률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 모함하였다(7절).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라고 그들은 증언한다. 그 당시에는 아직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어떤 법 조항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사도들이 가이사의 권력을 대적하였다고 막연하게 말하였다. 복음 전도자들이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우리 구세주가 빌라도 앞에서 고소당하셨듯이 그는 유대인들만의 왕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베드로도 이방인들에게 행한 첫 설교에서 예수를 "만유의 주"라고 불렀다(10:36). 로마 정부는 공화국이었을 때나 후에 가이사에 의한 왕권 국가였을 때가 그들의 지배 아래 있는 어느 지방 총독이든지 스스로 왕이라는 칭호를 자칭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것을 금지하는 특별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는 왕이기는 하지만 지상의 왕이나 가이사의 경쟁자로서의 왕아 아니고 또한 그의 계율은 가이사의 법령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의 나라의 법을 정하신 예수 자신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는 통치자를 몰아내려 하거나 혹은 그들로부터 어떤 특권을 빼앗으려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그런 죄들을 사도들에게 돌리는 것은 그들 양심을 속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이사와 그의 정권을 상당히 위하는 것처럼 가장하였으나 사실은 가이사와 그의 정부를 미워하고 그와 그의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으며 또 현세의 왕으로서의 구세주가 오셔서 세상 나라들의 보좌를 뒤엎어 버리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그런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주 예수를 반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가이사의 적대자로서 또한 총독들과 그들의 관할 영토에 해로운 자로 모함하는 가장 악의에 찬 사람들이었다. (사실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이 왕국 안에 왕국을 세우려 했는데 그 세력은 가이사의 나라와 비견할 정도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나라를 능가하는 로마 교황의 나라와 같은 나라를 이루려고 꿈꾸고 있었던 것에 다름없었다.) 4. 이 사건으로 인하여 성내에 조성된 불안(8절). 그러므로 본문에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라고 기록되었다. 그들은 사도들이나 혹은 그들이 가르침에 대해 별로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또 그들이 국가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인식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기꺼이 묵인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소자들에 의해 가이사의 적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으므로 백성들과 읍장들은 로마 당국이 두려워서 그들의 기소를 인정하고 사도들을 억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당시 정권을 쥐고 있었던 크라디우스(claudius) 황제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소요에 대해서도 의심이 많고 극도로 소심한 인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 밑에 있는 관리들이 조금 위험스러운 것 같거나 의심의 여지가 있는 일들은 사사건건 그래서 경을 세우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제 선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진압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고통이 되었다. 5. 이 소란했던 사건의 종결. 그곳 지방 장관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을 기소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을 구금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도들은 도망하여 아미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야손과 그의 친구들을 보증을 받고 놓은 주는 수밖에 없었다(9절). 이곳의 관리들은 빌립보의 관리들처럼 그렇게 쉽게 사도들에 대하여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훨씬 더 신중했고 더 나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손과 그의 일행을 안전하게 보호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손과 그의 일행으로 선한 행동을 하도록 지원하였다. 또한 그들은 바울과 실라에 대해서도 보장해 주겠다고 하였다. 사도들이 나타날 경우에 그들에게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자기들을 부르라고 말하였다. 기독교를 박해한 사람들 중에는 짐승처럼 날뛰며 미치광이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듯 분별 있고 관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온건은 곧 덕인 것이다. --------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다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고귀한 베뢰아 사람들(행 17:10-15)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복음을 전하였다(10절). 그들은 멀리 데살로니가까지 나아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그들이 시작한 일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들 새로 세워진 전도자들에 대하여 통치자와 백성들은 그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품었던 것과 같은 엄청난 편견을 가지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므로 바울과 실라는 폭동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현재로는 그들이 그곳을 떠나라는 지시로 알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 도시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도시로 피하라"고 명하신 것은 단지 그들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다른 도시로 건너가 그 곳에 숨으라") 명령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그들의 일을 계속 수행하라고("다른 곳으로 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라") 명령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는 것 때문이었다. 이같이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악마는 자기가 쏜 화살에 얻어 맞는 것이다(역주: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온다는 말. 삼손의 수수께끼를 인용한 것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려는 계획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악마는 박해를 함으로 사도들이 그 이상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박해를 한 결과는 오히려 더욱 더 넓은 지역까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 되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바울과 실라에 대해서 교우들이 취한 배려. 교우들은 사도들에 대한 음모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즉시 아무도 모르게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이러한 사건은 젊은 개종자들에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들에게 미리 그러한 박해에 대하여 경고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즉 우리가 너희에게 처음 갔을 때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였다(살전 3:4). 만약 형제들이 사도들을 그대로 체류하라고 하였다면 사도들은 기꺼이 그곳에 머무르며 거센 폭동에 대항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은 사도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사도들의 도움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들은 사도들의 도움이 자기들 못지 않게 다른 곳에 있는 자기들의 친구들에게도 더 절실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밤에 바울과 실라를 보냈다." 그들은 마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은밀한 가운데 그 일을 했다. 2. 바울과 실라의 계속적 전도 활동. 비록 그들은 데살로니가로부터 도피하여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조금이라고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에서 도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뢰아에 이르렀을 때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내었다. 비록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악의에 가득 찬 그들의 적이었고 또 베뢰아의 유대인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짐작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도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그들의 경의를 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피해를 복수하려는 생각을 갖지도 않았고 그러한 일을 또 당할까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Ⅱ. 베뢰아의 유대인들의 좋은 성품(11절). 본문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었다"(11절)고 기록되어 있다. 베뢰아의 유대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의 회당에 모였던 유대인들보다는 더 열심히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복음에 대해 완고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심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까다롭게 굴거나 나쁜 감정을 갖지도 않았다. 그들은 ‘훨씬 더 고상하였고 교양이 있었다. 1. 그들은 보다 자유롭게 생각했고 또 신앙에 대해 개방적이었으며 조리있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고 설득력 있는 말은 수용하였다. 또 그들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이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생각에 어긋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훨씬 더 고상했다. 그들은 좋은 성품을 가졌다.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까다롭게 굴거나 악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의 힘에 의해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도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고 이런 점에서도 그들은 훨씬 고상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처럼 모든 사건의 원인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그것을 다룰 때 질투심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았고 그들은 항상 모든 일을 관대히 처리했고 공정하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조금도 감정에 이끌리거나 편파적으로 행동을 하는 일이 없이 그렇게 하였다. 그들의 고상함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1)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기꺼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들어있는 뜻을 곧 이해했다. 그들은 결코 밝은 빛을 피하려고 눈을 감아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루디아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을 경청하였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를 매우 즐거워했다. 그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논쟁하려 하지 않았고 오류를 찾고자 하지도 않았으며 또 그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에게서 어떤 약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모든 말씀을 잘 받아들였고 또 그것에 대한 공정한 해석을 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도 "그들은 데살로니가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었다." ------------- [[너그러운, 마음이 트이고 개방적인, [참생명 얻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하여, 잘 배우며 <참으로 그러한가 자기 스스로 말씀을 찾아 상고하는 베레아 사람들> **베뢰아...행.17:10-15]]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만년설이 뒤덮인 올림포스 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드넓은 평원과 운하가 있는 풍요로운 도시. 그곳 지명 이름의 뜻은 '물이 풍부한 우물터', 곧 '대운하'를 의미. 더욱이 그곳은 버미누스(Bermius) 산자락 끝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펠라(Pella) 근처의 도시인데, 펠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귀기울여 열린 마음으로 오늘 새롭게 부어주실 주님의 은혜, 늘 새로우므 오직 늘 새로움으로 주님 이름 부르도록 일깨워 주소서. 다만, 영안을 열어주소서, 주님 만나 주소서....편견과 선입견을 내려 놓습니다. 제 마음을 만져 주소서, 오직 새롭게 주님을 새로이 경험하도록 영적 감수성을 민감케 하소서. 오직 이것만 있으면 족합니다. 주님이면 됩니다, 늘 새로우신 주님, 날마다 새로이 확대-증대시켜주시는 주님의 말씀의 생생한 새로움이여. ------------- 그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이방인 개종자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보조를 같이 하였다. 이들 데살로니가의 이방인들에 대하여는 "그들이 성령의 기쁨과 함께 말씀을 받아들이고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섰다"(살전 1:6-9)고 기록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된 고상함이라고 하겠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수없이 자랑했고 그들 자신이 출신이 좋고 더 이상 좋은 가문에서 태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문에서 참으로 고상하고 교양있게 자라난 사람이란 복음을 가장 잘 받아들이려 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되고 또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대단히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말씀되고 있다. 그런 사람이 가장 고귀한 사람, 내가 말한다면 신사다운 사람인 것이다. 덕과 경건이야말로 참된 고귀한 것이요, 참된 영예이다. 이것들 없이 족보나 화려한 직함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2)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 것이나 진리로 받아들이고 또 그런 것을 맹신한다는 뜻에서의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이 성경에 근거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자기가 이야기한 것의 증거를 구약에서 찾아 증명하였기 때문에 그들도 그들의 성경에 의뢰하여 그가 언급한 부분을 찾아 보고 본문을 읽어 보고 그 요점과 대의를 생각해 보고 또 그것을 성경의 다른 부분과 비교해 보고 그 부분에 관한 바울의 설명이 진실한가, 꾸밈없이 자연적인가, 그 성서에 근거한 그의 논증이 납득할 만한 것인가를 시험해 보고 그에 따라서 결정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①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떤 면밀한 조사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진리를 주장하는 우리들은 사람들이 먼저 아무런 편견이나 편파심 없이 그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검사하려고만 한다면 그들이 그 후에 "이러한 것은 옳치 못하다"고 말할까 보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② 신약은 구약에 의해 그 진실성이 시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인 그들이 공정한 입장에서 신약을 본다면 신약을 받아들여야 하는 충분한 근거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이 신약 속에서 완전하고 정확하게 성취된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③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요 5:39). 그리고 그들은 성경 속에 있는 진리를 찾아 내기 위해 그 의미를 잘못 깨달아 과오에 빠지고 또는 그 과오에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 성경을 정성을 들여 상고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그 성경 안에 내포된 모든 진리를 발견해 내고 성경의 겉면만 보고 피상적인 지식만 알아 거기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까이 알기 위하여 성서를 상고해야 한다. ④ 성경을 읽는 일은 우리의 매일의 과제라는 사실이다. 이전에 "안식일에 유대 회당에서 말씀을 들었던 자들은" 안식일에 말씀을 듣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지 않고 그 주간의 매일 성경을 읽고 또 연구해서 이전의 안식일에 그들이 들었던 말씀을 더욱 확실히 자기 것으로 삼고 또 다가올 안식일에 들을 말씀에 대해 준비를 하였다. ⑤ 성경에서 그들의 삶을 예견하며 그것을 그들이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그것을 늘 참고하는 사람은 정말 고결한 사람이며 더욱 고결해질 수 있는 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며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이 고상한 생각으로 채워지게 되며 그들은 고결한 생활 원리를 정하고 고상한 목적과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더 신사적이다"고 본문에 말씀된 것이다. Ⅲ. 베뢰아에서 행한 복음의 전파가 가져 온 훌륭한 성과. 그것은 대성공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대한 성과가 손쉽게 이루어졌다(12절). 1. 그곳 유대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불과 몇 사람만이 믿었다(4절). 그러나 유대인들이 편파적인 마음을 갖지 않고 말씀을 들은 베뢰아에서는 데살로니가에서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하나님은 은혜의 길을 처음부터 열심히 모색하려 하는 사람들 특히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리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더욱이 희랍인들 즉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헬라의 귀부인들과" "적지 않은 수효의 남자들"이었다. 이들 남자들도 귀부인들과 함께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들도 상류 계급의 인사들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런 후에 그들은 그들의 남편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느냐?"(고전 7:16)이라고 말씀되어 있다. Ⅳ. 베뢰아에서 일어난 바울과 실라에 대한 박해. 이박해로 인해 바울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났다. 1.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에서도 또 사건을 일으켰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베뢰아에서도 전파되는 줄을 눈치챘다."(왜냐하면 질투와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눈치도 빠른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자기들처럼 기독교에 대해 결사적으로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래서 그들이 베뢰아에 온 것이다. 즉 거기서도 세상을 뒤집어 엎고,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그곳 사람들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대항케 하려고 온 것이다. 마치 그들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이곳 저곳으로 다니라는 위탁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듯이 흑암의 왕자로부터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복음을 대적하라는 위임을 받은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예로써 우리는 이전에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로 와서 그곳 사람들로 하여금 사도들에게 대항하도록 한 것을 볼 수 있다(14:19). 이 사람이 앞잡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주의 사업에 대항하려고 얼마나 날뛰었는가 보라! 이것은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뱀의 자식들이 품은 적의의 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해자들이 자기들 고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들의 박해의 손길을 타지방까지 뻗친 사실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이 소동으로 바울은 아덴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스도가 이미 켜놓은 성스러운 불은 끄려는 자들의 손길에 의해 그들은 더 넓게 더 빨리 그 불을 파급시키게 되었다. 바울은 베뢰아에 오래 머물렀고 또 복음도 큰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그곳에 교인들이 존재하고 또한 지각있는 활동적인 인물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들이 바울을 보살핀 사실에 의해서도 입증한다. 그들은 데살로니가로부터 사도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이 와 있다는 것과 또 사람들로 바울을 대적하게 하기 위하여 분주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염려하여 지체치 않고 "곧 바울을 내보냈다." 바울은 먼저 보낸 것은 그들이 가장 못마땅히 여기고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정도로 사태가 무마되어 실라와 디모데는 그곳에 머물게 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미 두꺼운 얼음은 깨뜨려 놓았으므로 바울을 내세우지 않아도 실라와 디모데만으로 일을 수행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였다. 그는 바다로 나가는 길을 통하여 베뢰아를 떠났다. 이는 만약 유대인들이 바울을 추적하려고 묻는다고 해도 그가 바다 쪽으로 갔으므로 아주 멀리 갔을 것이라고 생각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실제로는 육로로 아덴까지 갔다. 그러나 그것이 떳떳지 못한 위장 전술이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바울은 이 지방에 낯선 나그네요 또한 수많은 적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를 지키고 인도하는 자로서 그들이 나선 것이다)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렀다"(17:15)고 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영혼을 감화시켜 그에게 그 유명한 도시로 가도록 지시하셨다. 예전에 아덴이 스파르타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을 때는 힘과 지배력으로 그곳은 유명했고 나중에는 학문의 도시로 유명했다. 그곳은 학자들의 회합 장소였다.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왜냐하면 많은 것을 배운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자기 지식을 과시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곳은 모든 곳으로부터의 학문이 집결된 대학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므로 좀더 낫게 복음의 빛을 밝히게 하기 위해 바울은 이곳으로 보냄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침돌이요 이들 희랍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줄 알았지만 그는 아덴의 철학자들과 맞대면하여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3.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에게 자기를 따라 아덴으로 오라고 명령했다"(15절). 그것은 바울이 그곳 아덴에서 무엇인가 선을 행할 수 있는 좋은 전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또는 그가 아덴에는 아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없으면 고독하고 울적해서 그랬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그렇게 서둘러서 오라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를 명하여 데살로니가에 가서 그곳 교회의 소식을 알아 오에 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디모데를 보낸 것은 너희를 굳게 하기 위하여서이라"(살전 3:1, 2)는 말씀에 근거하여서이다. -------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에서의 바울(1)(행 17:16-21) 고대인들의 지식을 많이 알고 그것을 사랑하는 학자라면, 아덴에 바울이 있었듯이 거기 그가 있어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많은 의문나는 점을 물을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덴 사람들은 아직 알 수 없는 의문나는 점들에 대한 적극적 혹심으로 가득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 자신이 학자였고 박식한 활동적인 인물이긴 했지만 철학적 또는 학문적 탐구를 아덴에서 그가 해야 할 일로 결코 여기지 않았다. 그러한 학문을 [전혀 의미없는 공허하고]헛된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미 그 수준은 한참 넘어서 있었던 바, 그가 마음먹고 있는 일, 그가 목적하고 있었던 것은 (골 2:8) 오직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그들의 어지러운 신앙을 바로잡고, 우상 숭배와 그들 안에 깃든 사탄에 대한 숭배에서 돌이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진실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숭배하게끔 하는 일이었다." Ⅰ. 아덴 사람들의 지독한 무지와 미신에 대하여 바울의 영혼이 받은 인상(16절).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본문에 나타난 그 도시의 모습. 이 곳은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이방인 작가들의 아덴에 대한 설명과 일치한다. 그들은 아덴에 그리스의 다른 모든 지방의 우상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었고 그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배나 축제를 열었음을 전해 준다. 무엇이든지 신기한 신이 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신을 위해 사원을 세우고 제단을 쌓았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그들의 사람 수효 만큼의 많은 신을 숭배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이 도시는 오랜 동안 치유불가능한 정도로 계속 우상에 빠져 있었고, 기독교를 신앙하는 황제들의 경건한 칙령으로도 그 우상을 섬기는 일을 뿌리 뽑을 수 없었고, 고트족의 침략이 있을 까지 계속 그러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고트족의 침략으로 아테네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이제는 그런 우상의 잔존물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이 되었다. 인간의 지식이 번창하는 곳에 우상 역시 풍성하였다는 것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사도는 이 우상 숭배가 불합리하고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므로 그들을 가리켜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었다"고 하였던 것이요(롬 1:22), 또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었다(고전 1:21). 그들은 다신교와 우상 숭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 만한 이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가장하는 자들이 우상에 대하여 가장 큰 노예 노릇을 하였던 것인 바, 자연 종교만으로는 결코 안 되고 거기에 신의 계시, 곧 그리스도 신앙이 반드시 있어야 비로소 생명과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다. 2. 이러한 광경이 바울을 노하게 함.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공적으로 타나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그것은 말씀이 두 세 사람의 증인의 말을 통하여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에 그의 속에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 바울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영광이 우상에게 돌리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이 사탄에게 예속되어 그의 뜻대로 좌우되는 것을 연민의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들 범죄자들을 볼 때 마음이 슬펐고, 안타까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또한, 사람들을 끝없는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끌고 있는 이방 성직자들, 게다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알면서도 이 우상에 반대하는 말 한 마디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흐름 속에 휩싸여 들어가 버리는 철학자들을 보자 거룩한 분노가 치밀었다. Ⅱ. 바울이 그들의 우상에 대앙한 증언과 그들을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려는 그의 노력. 바울은 휫시우스(Witsius)가 말한 것처럼 열심히 지나쳐서 그들의 사원에 뛰어들어가 우상들을 단에서 끌어내리고 그들의 제단을 파괴하고 혹은 그들 성직자들에게 정면으로 대들거나, 거리를 뛰어다니며 "당신들은 모두 악마의 노예요'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비록 그들이 악마의 노예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예의를 벗어남이 없이 자기의 한계를 떠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한 사람답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1. 바울은 "유대인들의 회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비록 그리스도교에는 적이었으나 우상 숭배와는 거리가 멀었었고 또 그들 가운데는 경건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변론할 기회를 주었다(17절). 그는 유대인들과 같이 토론하며 사리가 분명하게 논리를 추구하였고 또한 그들이 메시야를 기대하면서도 어째서 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는가에 대해 그들에게 질문하였다. 거기서 바울은 우상은 저버리고 유대인의 회당에 참석하는 경건한 사람들은 만났다. 바울은 그들과 이야기하여 단지 교회의 현관에 불과한 유대인의 회당에서 기독교 교회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였다. 2. 바울은 신앙 문제에 대하여 자기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하였다. 그는 (17:17)시장에서 거리에서, 또는 상가에서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매일매일 변론하였으며, 그는 이방이나 결코 유대인의 회당을 출입하지 않는 자들과 사귀었다. 열성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의 상대방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일 주일에 한 번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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