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12장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하나님과 동역하는 기도 (마태복음 6장 10절) : 기도는 주뜻 이룸 위한 참생명호흡이자 동역 .....[시공 초월하여 계시는 분, 하나님께서 그리하신바,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자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고 주와 함께 부활하였음을!!(죽은자는 말이 없다!!...그러므로 그대의 안팎의 대적이 나타나거든 하나하나마다에게 구주와 함께 옛사람이 처리된 바 그 십자가죽음-장사됨-부활을 적용하라!!), 이미 하나님이[초월적으로] 참되게 이루셨음을,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와 하나인 바, 십자가 죽음-장사지냄-부활승천하사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분의 부활 생명을 분배 받고 소유한, 곧 TUQ의 최종완성형이신 그 영=주 영 = JC의 영께서 거듭난 그의 영 안에 내주하사 결코 떠나지도-버리지도-포기하지도 않으심을 이루셨다!!] .....거듭난 자 되었음을 믿는이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로 거듭난 자(그 안에 부활생명의 성령이신 JC가 그의 거듭난 영에 내주하시는 바)요, 이제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거처로 내어드리고 주도하시도록 참 주인 되시게 해 드림따라 인도하시는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참 인성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에까지 이르도록[이것은 Q경외함의 사랑 + 형제사랑 안에서 믿음+순종으로 이루실바]신성에 참여함의 성화(sanctification)+영화(glorification) = 속사람의 변화(transformation) 가 거듭남과 함께 짝으로!! 구주 영접한 이마다에게 =구주 JC이름 믿는자에게=하나님의 자녀가 됨의 권세 받은 자에게 주어졌음을((이는 JC십자가로 동시에 이루신 바 새 존재의 당연한 귀결인데, 성령충만 받아 땅끝까지 [그리스도, 곧 복음의 실제이신 그분을 살며-살아내며-전파하는]증인됨으로 충만하신 그분의 넘쳐남을 막을자 없다)) 알고 있는가.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주로 주 되시게 함!!, 그대의 주님이자 주인 되시게, 유일한 남편-반쪽-머리 되시게 해 드림 문제일 뿐이다]..... .....사탄마귀-세상-옛사람-죄성은!! 그것을 용인할 수 없기에!!...모든 간교한 기만/속임-협박/박해/우겨쌈-조롱/비아냥/정죄감-미혹/유혹/현혹으로 방해할 것이다. .....어찌하든지 그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육신/죄성-세상(사탄체계)-사탄마귀의 가스라이팅에 대해, 오히려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걷는이의 남라마 매순간마다 이미 이긴이김/승리 구가함이 주어져 있으니!! 살아생동하는 발휘되는 산 믿음으로, 주님 이름의 권세로 하나됨의 기도로 그리스도를 살며-살아내며-공급하며-복음 전파하는 증인으로서 이 땅을 걷는 바, 주님의 이기신 그 이김/승리를 선포하고 끝까지 싸워 이김 아래서, 사랑의 주님께서 날마다 새로이 더 충만히 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진리 말씀따라 길-진리-생명이신 주님과 상호거함의 붙좇음-하나됨의 임재아래서 주님 의지하고 순종하며 한걸음 걸음 함께 걸어감이다. ----- 주기도에서 하나님을 위한 간구는 세 가지입니다. 당신의 이름(오노마 수), 당신의 나라(바실레이아 수), 당신의 뜻(셀레마 수)입니다. 여기서 당신의 뜻은 물론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내 뜻’을 관철시키려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도생활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것이 ‘내 뜻’에 모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우리는 ‘당신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주기도의 내용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보십시오. 그대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사실 이것은 우문입니다.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뜻은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지만 하나님이 뜻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그러므로 주기도를 드리는 우리가 먼저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12장 1절에서 이렇게 먼저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린 사람은 하나님이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기로 결단하고 주님께 자기 인생을 위탁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세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을 통해서, 둘째 기도를 통해서, 셋째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방법을 잘못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애쓰되, 하나님의 뜻을 정말 분별하고자 한다면 [성경에 제시된] 이미 나타난 뜻에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세밀한 뜻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담대하게 기도하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알았다면 그 다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담대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어떤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요청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해주세요” 하는 수준의 기도가 아니라 당당하고 담대하게 요청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 뜻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드러난 뜻입니다. 그러니 이루어 주십시오. 속히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큰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빌어 얻어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주님, 이 일을 하셔야 합니다.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여기 이곳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때 “너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막 11:24)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동역자의 기도활동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미 정해졌고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고 작은 뜻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에스겔서 36장 36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라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확증하신 후에, 다시 이런 말씀을 추가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이스라엘이 회복되게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정해져 있었지만, 그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9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드리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일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일하는 협력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동역자 의식’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은 놀랍게도 우리가 땅에서 기도로 일하면 하늘에서 또한 기대로 일해주실 것을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역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줄기차게 보여 줍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동역자들 이야기입니다. (1) 아말렉과의 전투 이야기(출애굽기 17장 8-13절) (2) 엘리야의 큰 비 이야기(왕상 18장 1절~ ) (3) 에스겔의 ‘그래도’이야기 (4) 시므온과 안나 이야기(누가복음 2장 21절~39절) (5)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기도(마태복음 26장 36절~46절) (6) 제자들의 성령을 기다리는 기도(사도행전 1장8절~2장) (7)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게 된 경위(사도행전 13장 1절~2절) .....영에 속한자, 하늘에 속한자, 거듭난 믿는이 참제자요 증인, 화목의 복음 증거 위한 그리스도의 대사여.... 바로 그대는 그대 안에 내주하여 계신 그리스도의 소금과 빛 되심 인해, 그분을 살아내는 사람이라....그대의 환경-상황-형편-처지(생노병사화복-빈부귀천-전기진역)에 상관없이 오늘 그대의 삶의 흐름과 주도권을 주님의 절대적 주권적 결정과 섭리하심에 다 맡겨드리고, 오늘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바로 그곳에서, 그것을, 주님과 함께 하도록 하는 삶, 지고지선의 진복-지복직관의 환희, 그분의 사랑에 잠겨 그분이 주님으로서 그대 안에서 사시도록 하라....하루 하루, 그대가 하는 모든 일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 되심이 중요하다.. 그대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하나되어 계셔서 이 땅에서 그대가 하도록 맡기신 일 다 마치면 그대를 하늘로 부르시리니..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라... 그대는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니..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셔서 아버지와의 교제 가운데 나아가신 주님 JC는 오직 아버지께서 보이시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일을 이루고 계셨다.... 그대가 언제-어디서 있든지 상관없이 오직 주님을 살라...주님의 우선순위를 따르라...20.310.363..사람 막대기-인생 채찍, 삼하7... 오늘뿐이요 내일은 내일이다-지금, 그대에게 맡기신, 그대만이 할 수 있는 바로 그일을 주 안에서 행하돠, 주께서 하시도록 하라-만나게 하시는 바로 그사람에게 집중하여 사랑으로 섬기라(주께 하듯, 주님 하시듯) ---[관계형 기도의 전형..."파파기도"...래리크랩]...."내마음, 그리스도의 집"..로버트 멍어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관계의 극치이다.” “기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한다.” “기도는 신자에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산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기도의 신학자 P. T. Forsyth의 주옥같은 기도의 교훈들이다. 기도할수록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입게 된다. 기도가 신자의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계속되는 기도생활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가? 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가? 한마디로 기도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실제로 직면하는 현실적 상황이다. 기도의 최우선 목적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와 맺고 싶어 하는 관계의 깊이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충만함을 내가 알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은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편히 쉬고 아버지와 더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것, 하나님과 함께 있어 아버지의 마음(사랑/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을 유의해 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1순위이고 우리가 구하는 것은 2순위이다. 관계가 청원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하는 강한 성향이 있다. 내 뜻, 내 소원을 앞세워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지기를 더 갈망한다. 그것에 더 만족한다. 기도의 패러다임이 관계중심이 아니라, 청원중심이라는 말이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체험하면서도 우리의 관심사는 여전히 자아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여기에 변화가 따르지 못함은 물론이고 기도란 언제나 우리가 ‘해야 하는’ 부담스럽고 짐스런 것이 될 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기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이 중심인 청원형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1차적 관심사가 되고 우리의 간청이 2차적 관심사가 되는 관계형 기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상담학자요, 성경교사인 래리 크랩이 파파기도(원제: The Papa Prayer)라는 새로운 기도법을 저술해서 한국에 소개되었다. 부제가 흥미롭다. “당신이 결코 해보지 못한 기도(The prayer you've never prayed.)" 그가 인생 말년에 경험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도가 바로 관계형 기도이다. ‘아빠’를 의미하는 영어의 PAPA로 요약되는 새로운 방식의 기도로서 이 기도는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초점을 두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기도로서 ‘해야 하는’ 기도가 아닌 ‘하고 싶은’ 기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결과 성부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신 예수님과 일치되는 변화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이 삶이 희생과 모험이 따르는 삶이지만 하나님 사랑의 거룩한 에너지에 이끌려 자유함 속에서 그 삶을 기꺼이 수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PAPA기도에서 제시하는 관계형 기도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서 제시하는 네 가지 단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는데 필수적인 원리로서, 1)우리가 신뢰하는 상대방 앞에서 자신에게 솔직/정직, 2)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진심으로 관심갖기, 3)관계를 해치는 것은 무엇이든 잘못을 인정하기, 4)상대와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존중하기이다. 이 원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1단계: 자신을 꾸밈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라(Present).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싶다면 하나님께 뭔가를 요청하기에 앞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긴장을 풀고 당신의 내면에 떠오르는 느낌, 생각, 현재의 내 모습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아무 것도 감추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지금 서 있는 현재 위치를 정직하게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라. 남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지 말라. 실패하고 넘어진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내어 놓으라. 하나님 앞에 진실하라. 이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2단계: 당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예의주시하라(Attend).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우리 자신 안에 형성된 잘못된 신관(神觀)이다. 그 그릇된 하나님 이미지가 바뀌지 않는 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기억하라. “나는 지금 누구한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의주시하라. 당신이 기도할 때 알게 모르게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동판매기, 비인격적인 힘, 엄한 아버지 아니면 웃음짓는 친구인가? 이런 이미지들은 실제의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하도록 우리의 기도를 왜곡시킨다. 우리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 계시록 1장의 부활하신 주님을 묵상하라. 그리고 복음서의 예수님과 시편을 자주 묵상하라. 3단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쏟아 놓으라(Purge).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그분의 영광이 내 영혼의 지성소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다. 왜 우리는 그 영광을 대면하지 못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가? 뭔가가 그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안에 있는 관계의 죄 때문이다.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서, 배우자나 친구들과 맺는 관계에서 하나님이 나를 대하시는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 모든 행동들이 관계의 죄다. 그 분의 사랑의 음성을 외면하고 사랑받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뭔가를 얻어내려는 모든 행동들이 관계적인 죄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아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듣기를 갈망한다면, 그분과 가까이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당신 자신을 ‘거룩함에 내던져야’ 한다. 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넘겨드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맺으시는 방법을 따라 타인중심으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겸손과 사랑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버지께 우리 자신을 거룩함에 내던질 때,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향하기 시작한다. 4단계: 하나님을 당신의 ‘1순위’로 여기고 나아가라(Approach). 이제 빈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리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의 빈 마음의 공간이 하나님 자신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 싶은 열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기 시작한다. 비록 그 삶이 모험과 희생의 대가를 요구할지라도 하나님 사랑의 거룩한 에너지가 그것을 향해 기꺼이 나아가게 한다. ---[사6: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샤를르 드 푸코... "나를 드리는 기도"))--- 아버지, 나를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든지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 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나님께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이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 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아멘.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헤롯이 죽다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 Acts 12...Amplified Bible, Classic Edition 1 About that time Herod the king stretched forth his hands to afflict and oppress and torment some who belonged to the church (assembly). 2 And he killed James the brother of John with a sword; 3 And when he saw that it was pleasing to the Jews, he proceeded further and arrested Peter also. This was during the days of Unleavened Bread [the Passover week]. 4 And when he had seized [Peter], he put him in prison and delivered him to four squads of soldiers of four each to guard him, purposing after the Passover to bring him forth to the people. 5 So Peter was kept in prison, but fervent prayer for him was persistently made to God by the church (assembly). 6 The very night before Herod was about to bring him forth, Peter was sleeping between two soldiers, fastened with two chains, and sentries before the door were guarding the prison. 7 And suddenly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standing beside him], and a light shone in the place where he was. And the angel gently smote Peter on the side and awakened him, saying, Get up quickly! And the chains fell off his hands. 8 And the angel said to him, Tighten your belt and bind on your sandals. And he did so. And he said to him, Wrap your outer garment around you and follow me. 9 And [Peter] went out [along] following him, and he was not conscious that what was apparently being done by the angel was real, but thought he was seeing a vision. 10 When they had passed through the first guard and the second, they came to the iron gate which leads into the city. Of its own accord [the gate] swung open, and they went out and passed on through one street; and at once the angel left him. 11 Then Peter came to himself and said, Now I really know and am sure that the Lord has sent His angel and delivered me from the hand of Herod and from all that the Jewish people were expecting [to do to me]. 12 When he, at a glance, became aware of this [[a]comprehending all the elements of the case], he went to the house of Mary the mother of John, whose surname was Mark, where a large number were assembled together and were praying. 13 And when he knocked at the gate of the porch, a maid named Rhoda came to answer. 14 And recognizing Peter’s voice, in her joy she failed to open the gate, but ran in and told the people that Peter was standing before the porch gate. 15 They said to her, You are crazy! But she persistently and strongly and confidently affirmed that it was the truth. They said, It is his angel! 16 But meanwhile Peter continued knocking, and when they opened the gate and saw him, they were amazed. 17 But motioning to them with his hand to keep quiet and listen, he related to them how the Lord had delivered him out of the prison. And he said, Report all this to James [the Less] and to the brethren. Then he left and went to some other place. 18 Now as soon as it was day, there was no small disturbance among the soldiers over what had become of Peter. 19 And when Herod had looked for him and could not find him, he placed the guards on trial and commanded that they should be led away [to execution]. Then [Herod] went down from Judea to Caesarea and stayed on there. 20 Now [Herod] cherished bitter animosity and hostility for the people of Tyre and Sidon; and [their deputies] came to him in a united body, and having made Blastus the king’s chamberlain their friend, they asked for peace, because their country was nourished by and depended on the king’s [country] for food. 21 On an appointed day Herod arrayed himself in his royal robes, took his seat upon [his] throne, and addressed an oration to them. 22 And the assembled people shouted, It is the voice of a god, and not of a man! 23 And at once an angel of the Lord smote him and cut him down, because he did not give God the glory (the preeminence and kingly majesty that belong to Him as the supreme Ruler); and he was eaten by worms and died. 24 But the Word of the Lord [concerning the attainment through Christ of salvation in the kingdom of God] continued to grow and spread. 25 And Barnabas and Saul came back from Jerusalem when they had completed their mission, bringing with them John whose surname was Mark. ===Footnotes Acts 12:12 Marvin Vincent, Word Studies. ======= 사도행전 12장 (개요)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유대왕으로 통치하고 있던 헤롯 아그립바가 사도 야고보를 살해하고 베드로를 투옥시킨다(1-4). Ⅱ. 천사의 인도로 베드로가 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함. 이는 그를 위한 교회의 기도 덕분이었다(6-19). Ⅲ. 헤롯의 교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공의의 치리자인 천사가 그를 치신다(20-23). ---이 사건은 바나바와 사울이 안디옥 교회의 구제품을 전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거하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므로 끝 부분에서 우리는 그들이 안디옥으로 돌아옴에 대하여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야고보의 순교(행 12:1-4) 바울이 회심한 후 제사장들의 수하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박해하였다는 내용을 그동안 대할 수 없었다. 아마 사울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와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그들의 음모와 좌절이 다소 그들을 멈칫하게 한 것 같다. 또한 가말리엘이 "이 사람들을 버려두라. 그리고 그 결과가 어찌되는가 살피도록 하자"는 충고가 그들을 억제시킨 것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전혀 다른 방면에서 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직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여 박해를 자행하였다(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대개가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헤롯 아그리빠에 의한 것인데, 입장이 달랐다. 헤롯 아그리빠는 본래 에돔족 출신이었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것같이 보여진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모세가 전해 준 의식에 열성적이었고 그 의식에 대한 철저한 신봉가였다. 그는(헤롯 안티파스가 그랬던 것과 같이) 갈릴리의 분봉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글라디우스 황제의 위임을 받아 유대 총독의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였는데 이 사건이 일어난 때에도 그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본문에서 그가 행한 세 가지행위에 대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Ⅰ. 그가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였다"(1절). 그가 손을 들었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의 손이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데 대하여서는 양심의 제재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런 구속을 떨쳐버리고 결사적으로 살의를 품고 그의 마수를 뻗치었다.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였다"는 말씀을 어떤 이는 이런 뜻으로 풀이한다. 즉 그가 관리들을 기용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실형을 가하기 위하여 이들을 체포하고 구금시켰다는 뜻이라고 본다. 이제 그가 점진적으로 그의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살펴 보자. 1. 먼저 그는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닌 자들로서 교회 중 몇 사람에게 손을 댔다. 그는 이렇게 처음에는 적게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바로 사도들에게까지 손을 댔다. 그는 교회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가 이들에게 고통을 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교회에 속했고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이었다. 2. 그는 처음에는 그들을 괴롭히기만 하려 하였다. 즉 그들을 때리고 투옥하고 벌금을 물게 하고 가택과 재난을 약탈하고 기타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그는 종래에는 더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수난받는 종들은 적은 고통을 통하여 단련을 닫고 후에 보다 큰 시련에 임하게 된다. 즉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 하겠다. Ⅱ. 그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2절).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순교자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라는 사실이다. 그를 이렇게 부른 것은 다른 야고보인 알패오의 아들이요] 요세의 형제 야고보와 그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전자를 "큰 야고보"라고도 하며 후자를 "작은 야고보"라고도 한다. 본문에서 순교의 관을 쓴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끼신 세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예수의 변화산에서의 변화하심과 그의 겟세마네에서의 고통의 증인들"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그는 순교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보아너게" - 번역하면 "우뢰의 아들"인데 - 이라고 불리운 자였다. 아마도 그는 능력있는 경고의 설교로써 헤롯과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공박하였다는 점에서 세례 요한이 또 다른 헤롯을 공박한 것과 비슷한 입장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공박으로 인하여 그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세베대의 아들 중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그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것이며 그가 받으려는 세례를 받으리라"고 한 사람의 하나였다(마 20:23)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들이 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그리스도의 우편에 앉히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온 민족들을 나의 제자로 삼으라"는 명을 받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사명을 다하기 전에 제거를 당하고 만 것은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은 형편이었다. 당시는 아벨을 통하여 세상에 사람들이 번식해야할 시기였으므로 아벨 한 사람의 죽음은 그 후 인간의 수효가 많았던 때의 많은 사람이 죽은 것과 비교될 수 있었다. 헤롯 아그리빠는 그가 사도 한 사람을 죽이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면 어째서 하나님이 이를 허용하셨는가? "성도들의 피" 더구나 사도들의 피를 "그가 귀하게 여기셨다면" 이에 상당한 가치없이 하나님이 피흘리게 하시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마도 그의 순교를 통해 주시려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이를 계기로 나머지 사도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더 이상 예루살렘에 거하지 말고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시려고 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정되었지만 그들이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라 할지라도, 그들 없이도 그의 사업을 이루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시고자 한 것이거나, 또한 한 사도가 순교함으로써 다른 사도들도 이러한 순교를 각오하고 이를 준비시키고자 하는 뜻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카톨릭 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 야고보가 이전에 스페인에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이를 증명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2. 그가 어떻게 죽음을 당하였는가. 그는 "칼로" 살해당하였다. 즉 그의 머리를 "칼로 쳐서" 처형한 것 같다. 칼로 교수형을 가하는 것은 로마인들에게는 도끼로 교수형을 가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유대인들 가운데는 교수형은 별로 이용되지 않았다. 다만 왕들이 사적인 급작스러운 처형을 구두로 명할 때 가장 신속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처형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 다른 헤롯이 사적으로 은밀하게 세례 요한을 처형하였듯이 이 헤롯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야고보를 처형한 것 같다. 스데반이 순교하였을 때와 같은 상세한 기록이 이 같은 대사도의 순교에 대하여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짤막한 언급을 통해서 첫 번째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 진리에 대한 자세가 확고부동하였으므로 그들을 죽여 이를 봉쇄하려고 했음을 충분히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도 요청될 때는 언제나 "죽음을 무릎쓰고 항거하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구약의 순교자들도 "칼로 처형당하였고"(히 11:37) 그리스도께서도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자기를 무장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사람의 칼이 우리에게 가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Ⅲ. 그는 가장 소문이 많이 난 베드로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다. 그는 베드로를 사도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여겼고 따라서 그를 죽이므로 영예를 얻고자 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그는 야고보를 교수형에 처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다." 피에 굶주린 자는 피를 보면 더욱 갈증을 느끼게 되며 따라서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박해의 수단도 더욱 악랄하게 된다. 일단 사람이 죄를 지으면 쉽게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지 않는다. 누구나 일단 그 속에 빠져들면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된다. - 즉 한 번 악을 행하면 곧 다른 악을 범하므로 빠져나올 길이 없게 된다. 죄악을 향하여 용감히 한 발자국 내디디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사단의 지배력이 강화되므로 사단의 다른 유혹에 빠진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진노하사 그들을 버려두시므로 그들은 더욱 악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죄는 시초에 근절시키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이다. 2. 그는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행하였다. 유대인들은 비록 헤롯을 선동하여 야고보를 직접 죽게 하지는 않았지만 후에 그의 죽음을 만족히 여겼기에 야고보의 피에 대한 죄가를 공동으로 지게 되었다. 사건 배후에는 종범(從犯)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박해당하는 것을 기뻐한 자들도 박해자로 취급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 학대받는 것을 기뻐하여 "우리도 같이 그 일에 참여할 것을!"이라고 외친다. 그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은밀히 속셈을 드러내었다. 잔인한 박해자들은 그들의 행한 일에 대하여 갈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용기를 얻어 더욱 계속 수행한다. 그들은 그들의 손길을 강하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양심의 소리를 말살시켜 버린다. 헤롯이 행한 일에 유대인들도 동조하게 되자 헤롯에게 이 사실은 큰 힘이 되었다. 이유는 "그가 유대인들이 이를 기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빌라도가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그리스도를 정죄하였던 것처럼 헤롯자신은 그가 박해를 하지 않아서 유대인들이 불쾌하게 생각한다 하여도 그것이 그에게 두려움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함으로 유대인들을 기쁘게 해 주려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이익을 주므로 다른 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불쾌히 여기는 것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그를 생각하였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마음을 쏟는 사람들은 쉽게 사탄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자. 3. 헤롯이 베드로를 잡으려 하던 시기가 언급되고 있다. "때는 무교절이라." 때는 유월절로서 이 때에 그들의 전형적인 구속을 기념하므로 그들은 영적인 해방을 얻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을 가장하여 가장 심하게 율법을 거스렸으며 "무교절일에" 그들은 "추악과 악행의 옛 누룩"으로 이 날을 더럽혔다.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왔고" 또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에 대하여 서로 불평을 털어 놓았으므로 이 때에는 어느 때보다 더 분위기가 험악하였다. 4. 베드로의 투옥이 설명되고 있다(4절). 헤롯은 베드로를 잡아 아마도 그를 문초하고 싶은 "옥에다 그를 가두었다." 어떤 이는 이 옥이 몇 년 전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갇혔다가 천사의 인도로 탈출한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5:18). 베드로는 "넷 씩인 네 패의 군사" 즉 열 여섯 명의 군사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한 번에 네 명씩 그를 지켰고 그러므로 그는 도망갈 수도 없었고 그의 친구들도 그를 구출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베드로를 단단히 붙잡아 놓았다고 생각하였다. 5. 헤롯의 계획은 그를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라는 것이었다. (1) 그는 베드로를 구경거리로 삼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는 야고보를 은밀히 처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백성들은 이 사실을 불평하였던 바, 그들이 불평한 것은 공중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서 야고보를 죽게 한 것이 부당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그가 처형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을 누릴 권리를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제 백성들의 이런 의중을 안 헤롯은 베드로가 결박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줌으로 그들에게 만족을 주려하였고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하여 주려했다. 그는 백성들을 기쁘게 할 수 있게 된 것을 만족히 여겼다. 백성들 또한 그가 그들을 기쁘게 해 주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만족히 여길 것인가! (2) 그는 이 일을 "부활절 후에" - ‘메타 파스카’(12:4) - 즉 유월절 후에 행하려고 하였다(AV에는 부활절 후에로 번역되어 있음, 역자 주). 본문은 [분명히!] 유월절 후에라고 읽는 것이 바르다. 왜냐하면 pavsca 란 단어는 항상 유월절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대신에 부활절을 빗대어 소개하려 하는 이들은 우리 기독교를 유대교와 혼합시키려는 의도에 말려들 수 있음을 주의하자. 우리는 신약 성서에서 이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 헤롯은 유월절이 끝날 때까지는 베드로를 치죄하지 않으려 하였다. 혹시 베드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백성들 가운데 있으므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절기의 관례에 따라 그에 대한 석방을 요구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명절의 열기가 가시고 성이 한산해질 때 베드로를 공개 재판하여 처형함으로써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계획이 완료되어 백성이나 헤롯왕이나 다 같이 명절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이 야만스러운 오락을 그들은 즐기고자 하였다. ---------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베드로의 투옥과 그의 석방(행 12:5-19) 베드로가 옥에서 노여나는 모습이 본문에서 설명되고 있다. 이로써 베드로에 대한 헤롯의 음모는 좌절되었고 베드로의 생명은 더욱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보존되었으며 이 유혈의 격류에 제동이 가해졌다. Ⅰ. 그의 석방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는 데서 찬양할 만한 것이었다(5절). "베드로는" 대단한 감시 아래 "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므로 무력으로든 은밀한 방법으로든지 그를 탈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다." 진실로 기도와 눈물로 주께 부르짖음은 교회의 강력한 호소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회는 교회의 적들에 대항하여 싸울 뿐만 아니라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교역자을 위해서도 싸워야 한다. 교회는 기도와 눈물로 싸워야 한다. 1. 베드로의 재판이 지연됨으로써 그들에게는 기도할 시간이 주어졌다. 아마도 야고보는 급하게 사적으로 서둘러서 처형되었으므로 그를 위하여 기도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셨으므로 그들에게 기도할 여유가 없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그들이 간구하여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야고보는 그들의 신앙을 돕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 드려져야만 했기에 그를 위한 기도가 제재를 받고 방해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위하여 더 살아야 했기 때문에 헤롯이 형집행을 연기함으로써 그를 위한 기도가 고무되었고 또 기도할 수 있는 시간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헤롯은 그가 놓여나도록 주께서 정하셨다는 사실을 결코 생각지 못하였다. 2.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들은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으로써 어떻게든지 헤롯의 목적한 바가 좌절되고 사자의 아가리에서 어린 양이 구출되기를 바랐다. 야고보의 죽음이 그들에게 경고가 되었기에, 그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서 베드로를 위하여 대단히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계속 공격을 당하여 부서진다면 결국 원수가 완전히 끝장내려고 달려들지나 않을까 그들은 두려워하였다. 스데반이 사라지고 야고보가 사라졌다. 이제 그들이 베드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움직여나갔고 슬픔에 슬픔을 더하게 하였다(빌 2:27).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죽음과 고통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여도 이들의 생명과 자유와 평온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임을 기억하자. 그들이 급박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그들을 위하여 힘써 기도할 것을 하나님은 때때로 요구하신다. 3. "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그것은 ‘프로슈케 에크테노스’(12:5) - 즉 간절한 기도였다. 그리스도께서 고통 중에 기도하실 때도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하였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됨이 많다.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음이니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말을 그들이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는 말로 생각한다. 이 견해는 옳다고 보여진다. "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전력을 다한 기도였다. 그들은 공중 집회에서 그의 석방을 위하여 기도하였다("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아마 개인집에서 모인 것 같다). 또한 집에 돌아가서는 가정에서 이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또한 다락방에 물러가서 거기서도 이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조를 짜서 돌아가며 그를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였다(12절). 공적인 어려움과 위험의 시기는 교회가 기도해야할 때 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하지만 이럴 때는 특별히 기도해야 한다. Ⅱ. 이 석방을 특별히 찬양할 또 다른 이유는 에스더 9장 1, 2절의 말씀과 같이 "왕의 명령이 집행될 시기가 가까워졌을 때에" 그의 석방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가 석방되던 때를 생각하여 보자. 1. 이때는 바로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 내려고 계획을 세운 전날 밤이었다. 이 사실은 그의 친구들에게는 더욱 큰 위로가 되었고 그의 적들에게는 더 큰 패배를 주었다. 아마 교인들 중 헤롯과 이해 관계가 있던 사람이거나 또는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몇 명이 베드로의 석방을 위하여 애를 쓴 것 같다. 그렇지만 헤롯은 베드로를 죽이려고 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전혀 승산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를 잡아내려고 하는" 날이 내일로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님이 잡히실 때에 그랬던 것처럼 매우 조급하였다. 이때에 하나님은 베드로가 피하도록 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건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 다른 아무런 방법도 남아있지 않을 때 도우신다(신 32:36).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태가 악화될수록 전망도 또한 밝아진다"는 격언이 유래된 것이다. 이삭이 제단에 결박되고 칼이 손에 들려지고 이삭을 죽이려고 손이 높이 들렸을 때 "여호와이래 - 주께서 준비하셨다." 2. 이 때는 그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그가 부스럭거리기만 하여도 그들이 알 정도였다. 게다가 옥문이 잠기고 빗장이 걸린 것도 사실이었고, 보다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켰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구출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죄수를 지키기 위하여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되었다. 틀림 없이 헤롯도 빌라도처럼 "힘자라는 대로 곧게 지키라"(마 27:65)고 부하였을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하심을 보여 주신다. 3. 이 때는 베드로가 "군사 틈에서 곤하게 잠이 들어 있을 때였다." (1) 그는 위엄을 앞에 놓고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비록 사태가 긴박하였고 도주할 구체적인 방안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태연하였다. 그는 죽기 일보 직전에 당도하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안히 파숫군들이 깨어서 지키고 있는 때에 적들 틈에 누워자고 있었다. 선한 동기 때문에 고난을 겪으며 또 고난당할 양심의 거리낌도 없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련을 주신 것은 이로써 그에게 큰 영광을 돌리는 길이기 때문임을 확신히였으므로 그는 태평하였다. "의로 판단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고 그의 영혼은 안연히 거하였다." 하나님은 비록 옥 속에서 두 군사들 틈에 그가 있었지만 그에게 잠을 주신다. 이와 같이 그는 그가 사랑하는 자들에게 행하신다. (2) 그는 자기가 석방될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구원을 바라서 이쪽 저쪽 돌아보며 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워 자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석방되게 되자 그는 깜짝 놀랐다. 이와 같이 교회도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고 시편 126편 1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Ⅲ. 그의 석방이 찬양받을 만한 또 다른 이유는 그를 구할 목적으로 "하늘에서 주의 사자가 파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다. 이 때문에 그의 탈출은 가능하였고 또 보장되었다. 이 천사가 그를 풀어준 것은 합법적이었다. 그리고 천사는 베드로에게 그 권리를 사용하도록 도와 주었다. 1. "주의 사자가 그에게 임하였다"하였다. 즉 본문에 ‘에페스테(2186)’란 말은 천사가 "그의 곁에 섰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포기된 것과 같이 보였지마는 그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 즉 "주님은 그를 생각하셨다." 옥문과 파숫군이 그와 그의 벗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하나님의 사자들과 그의 사이까지 가로막지는 못하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신다"(시 34:7). "그러므로 적의 군대가 그들을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시 27:3).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에 있든지 또 아무리 에워싸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하늘로 향한 길이 열려 있다. 아무 것도 그들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지는 못한다. 2. "광채가 옥 속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곳은 어두운 곳이었고 또 밤이었지만 베드로는 갈 길을 명백히 알아 볼 수 있었다. 구약에서는 천사들이 나타났어도 "빛이 그들 주변을 비추었다"는 사실은 발견할 수 없다고 어떤 사람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어둠의 시대였고 천사들의 영광도 가리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천사들이 나타남을 말할 때는 그들이 빛 속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에 의하여 천상계가 밝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베드로에게 착고를 채운 군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다윗이 와서 사울의 창과 물통을 가져가도 모르고 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설령 그들이 깨어 있었다 하여도 천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 죽은 사람처럼 되고 말았으리라.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이 그와 같았었다. 3.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그를 깨웠다. 그는 너무 곤하게 잠이 들었으므로 그에게 빛이 비쳤는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잠을 깨도록 부드럽게 그를 건드린 것이었다고 보겠다. 제 아무리 훌륭한 백성이라도 위험한 시기에 잠이 들 수 있는 바, 말씀의 빛에 의하여도 깨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어야 할 때, 강하게 옆구리를 걷어차이게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냥 잠들어 있는 것보다 그렇게라도 일어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치면서 하신말씀은 "급히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한 것은 그의 지연으로 천사가 손실을 당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베드로로 하여금 잠에 빠져들어 가지 말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릴 때"(삼하 5:24) " 다윗은 급히 일어나서 분발해야만 하였던 것이다. 4. "쇠사슬이 그의 손에서 벗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그가 도망을 못가도록 확고하게 하려고 그에게 수갑을 채웠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결박을 풀어 주셨다." 수갑이 그의 손에서 벗겨질 때 삼손이 삼 밧줄을 끊어버리듯 쉽게 벗겨졌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이 쇠사슬은 군사들 중의 한 사람이 성보(聖寶)로써 보존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 쇠사슬에 의하여 어떤 기적들이 일어났고 전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이 베드로의 쇠사슬을 기념하여 매년 8월 1일을 절기로 지킨다. 그들은 이 날을 베드로의 투옥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유월절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이 쇠사슬로 세계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기 위하여 베드로의 쇠사슬을 사랑하는 것 같다.) 5. 천사는 베드로에게 즉시 옷을 입고 그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순종하였다(8, 9절). 베드로는 잠에서 깨어나 어찌할 줄을 몰랐고 다만 천사의 지시대로 따랐을 뿐이다. (1) 그는 허리띠를 띠어야 했다. 옷을 입고 잘 때에는 허리띠를 끄르고 잔다. 그러므로 잠을 깼을 때는 먼저 허리띠를 매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2) 그는 걷기 좋도록 "신을 신어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야 한다." (3) 그는 또한 겉옷을 입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천사를 따랐다. 그는 하늘에서 온 사자가 그를 지켜 주고 안내해 주었으므로 큰 용기를 얻어 기쁨으로 갈 수 있었다. 그는 "나가서 따라갔다." 영적인 감금 상태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던 나라에서 나올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분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서 따라갔다." 다만 그들이 천사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나갈 때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으나 그는 "그가 환상을 보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이 환상이었다면 그가 환상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환상이었다 해도 이것은 천상의 환상인 것이 명백하였고 또 이를 증거해 주는 일들이 많이 따라서 일어났으므로 이 일이 사실로 일어난 것인지 환상 중에 이루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126편 1절에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기록되었다. 베드로가 그런 심정이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것이 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였다. 6. 그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안전히 위험에서 벗어났다(10절). 파숫군들이 통로마다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옥에서 나왔을 때 이들을 통과하여야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들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이 닫혀져서 그랬는지 또는 그들의 손이 묶였는지 그들의 정신이 나갔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천사와 베드로는 "첫째와 둘째 파수를 무사히 지났다." 이들 파숫군들은 유대 교회의 파숫군들을 상징하고 있다. 기록되기를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하였다(롬 11:8). 또한 "그의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라 하였다(사 56:10).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철문을 통과해야 하였다. 만일 그 앞에 서 있다가 파숫군들이 제 정신을 찾으면 바로 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다시 사로잡기를 바랐듯이 그들이 죄수들을 다시 잡아 가둘 것이 분명했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문까지 전진하였고 그러자 이스라엘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이 "문이 그들을 위하여 열렸다." 그들은 문을 열려고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문은 "저절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열렸다. 그러므로 고레스왕에게 상징적으로 약속되었던 말씀이 성취되었다(사 45:1, 2). "내가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또한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으리라"한 말씀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철문은 저절로 다시 닫힌 것 같고 그러므로 어떤 파숫군도 베드로를 추적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구원을 베푸실 때 그 앞길에 이겨내기 어려운 장애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철문까지라도 저절로 열렸다. 이 철문을 벗어남으로 그는 감옥을 완전히 떠나 시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문이 성 안에 있던 문이었는지 또는 성 밖으로 통하는 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을 통과하자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본문의 베드로의 석방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흔히 죄수를 자유롭게 석방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복음은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감옥 밖으로 인도까지 해 준다." 영혼이 회개함으로써 구원은 임하는데 이에 대하여 스가랴 9장 11절에는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에 주의 사자가 그렇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에는 옥 속을 밝게 비추사 이해의 눈을 뜨게 하신다. 그리고는 잠자는 죄인의 옆구리를 치시므로 양심을 일깨우신다. 또한 손에서 쇠사슬을 풀어 주시므로 인간의 뜻을 새롭게 하시며 그런 다음 "허리띠를 띠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여러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사탄과 또한 첫째 둘째 파숫군인 그의 종자들의 방해 또한 패역한 세대 등의 난관이 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구출해야 한다. 그러면 종국에는 철문이 우리를 향하여 열릴 것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포로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로 인도될 것이다. 7. 이 모든 일이 끝나자 "천사는 곧 떠났고" 그는 혼자 남았다. 그는 적들로부터의 위험에서 벗어났고 그러므로 지켜 줄 사람이 필요 없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또 어떻게 친구를 찾아갈지 그는 잘 알았다. 그러므로 이제 안내자도 필요 없었고 따라서 하늘의 수호자요 안내자인 천사는 그를 떠나갔다. 평범한 수단으로도 해결될 문제에 기적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베드로에게 그를 지키는 파숫군을 통과할 필요도 또 철문을 통과할 필요도 없게 되었으므로 이제 평상시에도 따르는 보이지 않는 천사의 가호만 있어도 충분하였다. 천사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주변에 거하여 그들을 구해 준다. Ⅳ. 그의 석방이 찬양할 만한 것이었음을 살펴 보았으니 아제 이 사실이 그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명되었는지를 알아 보자. 또한 이 사실이 어떻게 놀라운 일로써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알아 보자.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베드로는 제 정신을 찾게 되자 스스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11절). 잠에서 금방 깨어난 사람에게 이상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그는 당장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가 어디 있는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꿈인지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가 "정신이 나자" 즉 완전히 잠에서 깨자 그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는 말한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알았도다. 내가 이 일이 참이며 환상으로 인한 망상이 아님을 알았도다. 내가 이제야 주 예수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심을 알고 기뻐하노라. 천사들은 주님에게 속하였으니 그들이 그의 명을 수행한 것이로다. 그가 나를 꼼짝 못하게 가둔 줄 알고 있는 헤롯의 손에서 나를 건지셨고 그러므로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셨도다. 유대인들은 이 베드로가 다음 날이면 교수형을 당하리라고 분명히 믿고 있으리라. 또한 나의 목을 치는 것은 일격에 전 기독교의 목을 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으리라고 바랄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중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유대 백성이 대단히 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자신을 돌이켜 봄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어떠한 큰 일을 행하셨는가 하는 "진리를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 사실을 믿으려하지도 않았다. 이와 같이 영적인 속박에서 구속받은 영혼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진리는 체험하였어도 그 구체적인 증거는 없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정말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내내 꿈 속에 잠겨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곧 보내시는 보혜사가 임하시면" 그는 그들에게 얼마나 축복된 변화가 안겨졌는지 또 그들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 상태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해 주신다. 2. 베드로가 교우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전후 사실을 전하였다. 본문에서는 이 사실이 특별히 설명되고 있으며 또한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1) 그는 전후 사정을 "깨달았다." 즉 그가 얼마나 급박한 위험에 직면했었으며 그가 놓여난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면 이제 그는 무엇을 해야할까? 석방된 것을 어떻게 선용할 수 있는가. 다음에 그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지혜를 사용할 여지를 남겨 놓으신다. 그리고 그가 비록 자기가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여 완성시키시겠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가 그 일을 고려해 보기를 바라신다. (2) 그는 한 교우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그곳은 그가 있던 곳에서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집은 바나바의 자매요, 요한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이었다. 그녀의 집은 제자들의 사적인 집회를 위해서 자주 이용되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녀의 집이 커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때문이든지 그의 집이 좋은 은닉처이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그녀가 자기 집을 제공하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 섰기 때문이든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여하튼 오벳에돔의 집이 법궤로 인하여 축복을 받았듯이 그녀의 집도 틀림 없이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려 그 집을 작은 성소로 삼아야 한다. (3) 거기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한밤중이었는데 내일이면 재판을 받게 될 베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① 그들은 그들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뜻에서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그들은 한 번 하나님께 베드로의 사정을 아뢰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복하여 간구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쉬지 말고 항상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긍휼을 기다리는 한 그 긍휼을 얻기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해야만 한다. ② 이제 사태가 더욱 급박해져서 다음 날이면 문제가 결판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전보다 더욱 기도에 힘썼던 것 같다. 그의 석방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사무칠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하시려고 작정하셨다는 것은 좋은 예표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너희가 내 앞에서 헛되이 구하리라"고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았다. ③ 그들은 이 경우를 당하여 기도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만약 그들이 정부에 발각되면 그들은 처벌받을 것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 함께 기도하심을 강조하셨으므로 그렇게 하였다(마 18:19, 20). 또한 역대하 20장 4, 에스더 4장 1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기도하는 백성들은 언제나 기도로써 그들의 힘을 단합해야 한다. ④ 기도하려고 모인 사람의 수효가 많았다. 방에 빈틈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인 것 같다. 그들은 연도(蓮禱)를 하기도 하고 또 한 사람이 기도하면 대중이 따라서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들 중에 교역자들이 없었더라도 기도의 방법을 아는 기독교인들이 여러 명 있었다. 이들은 적절하게 기도할 줄 알았고 또 그들과 기도에 합세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기도할 만큼 열이 붙을 때까지 오랫 동안 계속 기도할 줄도 알았다. 이 때는 다른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밤중이었다. 이 사실을 예로 들더라도 그들의 진지한 자세와 열성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사적으로 모여서 기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별히 위태한 시기에 그렇다. 이런 기도 집회를 소홀히 여기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 ⑤ 베드로는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기도가 즉시 응답된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베드로가 놓여나 너희에게 돌아오기를 바라서 기도하는가! 여기 그가 있노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이사야 65장 24절에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은 것이라" 하셨으며 다니엘 9장 20, 21절에는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는 동안" 그의 기도에 대한 화평의 응답으로 천사가 하나님으로부터 그에게 보냄을 받았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하신 말씀을 잊지 말자. (4)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맞아들이기까지 는 많은 수고가 따랐다(13-16절). 베드로는 그들을 잠에서 깨우려는 목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는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봉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만약 교우들이 감옥으로 면회를 와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용인되었다면 그는 이 모임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이 집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이 사실을 기억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도 많은 교우들이 함께 모여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① "한 계집아이가 듣고 나왔다." 이 계집아이는 밀고자들이나 아닐까 두려웠으므로 거기 있는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 또 그들이 온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하기까지는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이 계집아이가 가족 중 한 사람이었는지 교인 중 하나였는지 또는 종인지 딸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녀는 교인들 가운데 알려져 있던 것 같으며 같은 나이 또래에 비하여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한 것같이 보인다. ② 그녀는 베드로의 음성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주 그가 기도하고 전도하며 설교하는 것을 즐겁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밖의 추운 데서 곧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대신에 "기뻐하여 문을 미쳐 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때로는 너무도 친구를 사랑하므로 오히려 그에게 불친절한 일을 행할 때가 있다. ③ 그녀는 달려 들어갔다. 아마 그들이 함께 모인 다락방으로 간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그 사람이 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속을까 두려워서 문을 열 엄두는 못냈지만 문 밖에 있는 것이 베드로가 확실하다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베드로가 거기 있다고 말하였을 때 그들은 "네가 미쳤다. 그는 감옥에 있는데 그럴 리가 없어"라고 말하였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 모든 것에 대하여 오히려 믿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속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도 "너무 기뻐서 믿으려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틀림 없는 그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그러면 그의 천사라"고 말하였다(15절). 그의 천사라고 한 말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밖에 있는 사람은 베드로가 보낸 사자라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베드로란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a[ggelo"란 단어를 단순히 "사자"란 뜻을 지닌다고 본다. a[ggelo"란 단어는 요한의 보낸 자에 대하여서도 사용되었고(눅 7:24, 27) 그리스도의 보낸 자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다(눅 9:52). 계집아이가 그를 베드로라고 믿은 것은 그의 음성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밖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베드로라고 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고 한다. 즉 "그는 베드로가 보낸 심부름 온 사람인데 네가 마치 베드로처럼 착각하는구나"라고 그녀에게 말한다. 하몬드 박사(Dr. Hammond)는 이것이 이 문제 이해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밖에 있는 "베드로의 형체와 음성을 지니고 그의 모양을 갖고" 서 있는 그의 "수호 천사"거나 또는 다른 천사일거라는 견해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베드로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전조로서 천사가 나타난 것이라고 상상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민속 신앙에서도 그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때때로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그들의 수호천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영은 용모나 옷 입은 것까지 겉 사람과 똑 같다고 한다. 이 영들은 본인이 있지 않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것을 그들을 지키는 수호하는 영 즉 그들의 천사라고 부른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이것이 그들의 기도가 거부되었다는 불길한 징조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베드로의 유령이 "이것으로 족한 줄 알라. 베드로는 죽어야만 되니 그 문제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구하지 말라"고 말하러 온 것처럼 생각했다. 만일 우리가 본문을 이렇게 이해하면 그것은 다만 이들 교인들이 사람이 죽기 조금 전에 그 사람의 수호영이 나타난다는 견해를 가졌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어떤 다른 이들은 그들이 이 사람을 하늘에서 온 천사로 여겼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알리려 온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또 어째서 그들이 천사가 베드로의 음성과 모습을 지니고 나타난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었는가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