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수5.할례 행함+유월절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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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5장  [143.웬 말인가 날 위하여] [623.주님의시간에][543.어려운일당할때]....세상의유혹시험이...세상흔들리고...내가산을향하여눈을들리라...주님한분만으로나는만족해...주내소망은주더알기...바다같은주의사랑...내눈주의영광을보네...주음성외에는...내영혼의그윽히깊은데서..오직주의사랑에매여...주만바라볼찌라..주님보좌앞에나아가...주님과함께하는이고요한시간..마라나타주예수여..나의영혼이잠잠히...전능하신나의주하나님은

..., 구주와 함께 하나됨으로 죽어 장사되고 그 흔적/표징 지님의 영적 세례인 바, 영/마음의 할례!!...이로써 오로지 주 앙망-주목-응시-교통-사랑하며 참 믿음(곧, 주님 부어주신 믿음)으로써 유일무이한 참 생명 JC로 사는 자마다, 비로소 영적 전쟁 참여 자격 구비된 자로 여기심으로써 행할 바 구체적 지시를 하나하나 주고 계심.

....보라, 창세기에서 보여주셨던, 말씀 생명 빛 JC의 비추심이 먼저 있고 나서야 (빛과 어둠을 나누셨음==>궁창 위의 물/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심==>천하의 물을 한 곳에 모으사 뭍이 드러나게 하고 계심 :: 그분의 백성을 오게 하시려 마련하셨음)-->그 빛을 통해 그분을 얻고 살피는 자마다 깨닫는 바, 옛사람 그대로는 오직 지옥의 불쏘시개감일 뿐임을!! (전존재의 전적인 더러움-타락-절망 상황 깨닫게 하심따라, 주님께 여쭈며 그분의 오라 하심에 반응하여 주와 함께 주님의 십자가에 하나됨으로 자기의 옛사람 죽음 경험하고 장사지낸 바 되고, 부활생명의 성령[바람-불-생명강수]  받음의 십자가 표징 가지는 자 됨으로써, 거듭난 새 존재마다 새 유월절 JC를 먹고 살고 누리게 됨, 이로써 눈이 열려 임마누엘이시며 구원의 대장 JC의 인도-지시-동행을 참되게 알고 새로 주어진 여생 동안 새로운 하나됨 안에서 동행하는 삶 살 수 있다 하심.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살아계신 Q께서 정말로 그리하셨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묵상하고 그대 전존재가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새기고 실행하는 것을 연습하라)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할례 있는 자, 곧 그리스도로 사는, 거듭난 이로 하여금 할례베풂을 수행케 하심]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말씀하시는 그대로!]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이 땅에서 주님 약속대로 이루고 계심을 보며 참되게 누리는 기쁨조차도 분명히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다!!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15일)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16일)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 대장

13.  ○[다른이들은 할례의 상처가 아물고 있는 중에, 친히 여호수아가 정탐에 나섰다]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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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는 행위는 종이 주인에게 보여주는 절대 존경과 순종을 의미한다. 

모든 전쟁이란 여호와께 속한 바ㅡ 여호와의 전쟁에서 [그분의 백성이!!] 승리를 얻는 비결은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그분의 권위와 능력 앞에 참되고 진실하게!! 순복하며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참되게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손 아래서 겸손하게 행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 원하심 그대로 반드시!!] 높여주시는 분이시다(벧전5:6).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5:13-15)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는 믿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점령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스라엘백성들앞에는 견고한 여리고가 버티고 있었다. (1907년부터 있었던 여러 고고학자들의발굴작업에 따르면, 여리고성은 견고한 바윗돌 기초 위에 튼튼한 성벽을 세운 도시였다.) 여호수아는 그런 제반 문제들을 미리 직접 점검하기 위하여 여리고로 가까이 다가가 성 주변을 답사하려 나섰다. 

그러던 중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시점은 여리고성의 제반 방비 상태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가나안 정복의 책임을 맡은 지도자로서 앞으로 일전이 불가피한 여리고성을 직접 점검하는 일은 중요했을 것이다. 

더구나 여리고와 같이 견고한 성읍을 포위 공격해 본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로서는 여러 정황을 상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의 그런 행동은 적절한 일이었다. 

그러나 견고한 여리고성을 바라보면서 보면 볼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자신이 없어지고 위축된 그의 마음이 문제였다. 눈앞에 다가온 현실 문제 앞에서 그의 마음은 크게 억눌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리고의 견고함에 비하여 열악한 이스라엘의 ((제반))무기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로는 칼과 창과 활 정도였다. 그런 무기로는 여리고와  같이 견고한 성을 공략하기에 역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여리고성 공격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느낀 심리적 부담은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만나 그에게 던진 질문속에 잘 드러나 있다.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서 있었으나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그 낯선 이!!를 문득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여호수아의 반응을 유심히 보라...놀란 여호수아는 그 낯선 이에게 "너는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라고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그 전의 당사자는 오직 이스라엘과 여리고 백성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게 전제되어 있는 바, 이는 여리고와의 전쟁을 주도해야 할 사령관이 곧 여호수아 그 자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그런 전제 속에서는..여호와의 군대대장은 제삼자적 입장에 있을뿐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크게 잘못된 자세였다. 

여호와의 전쟁에서 주도권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 이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여호수아의 잘못된 자세를 고쳐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와 군대대장의 답변은 "아니다, 아니다" 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리고를  위해서 온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곧 이어 말하기를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서 왔다. 곧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하는 일은 여호수아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수행하시게 될 거룩한 전쟁임을 밝힌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와 맞서 싸울 진짜 지휘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거룩한 여호와 전쟁에 참여해야 할 [한 사람의] 군인일 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주도권이나 전쟁의 승리는 모두가 하나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만나 그분의 대답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을 비로소 깨달은!! 여호수아는 즉시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고, 하명하여 주시기를 말씀드렸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절대순종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다. 신을 벗는 행위는 종이 주인에게 보여주는 존경과 순종을 의미한다. 

여호와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비결은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을꿇고 그분의 권위와 능력 앞에 순복하며 따르는 것이다. 

참되게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손 아래서 겸손하게 행하면, 하나님은우 리를 높여주시는 분이시다(벧전5:6). 

여리고성 점령을 앞두고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자세를 고쳐 주었다. 비로소 여호수아는 더 이상 여리고성 점령의 부담에 억눌려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승리를 얻는 것이 그가 할일이었다. 그것이 가나안 정복을 성공적으로 이루는 비결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라...."신 벗기운 자"란...[말씀하시는 하나님 뜻대로 하기를 거절함] 하나님의 종으로서, 종의 마땅한 의무와 책임 다하기를 거절한 자((육을 따라 행한 자)) 됨을 의미한다... 결국 자기연민에 빠져서 예비하여 두신 축복 향유를 거절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한편, 진정한 의미에서 주께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그 열매 맺음의 "참 겸손 = 겸비"함 안에 주님 의지함 안에 머무르는 자에게는 주님은 새 생명 안의 부활한 자로 보고 계시며,  "새 신과 새 의복을 입혀주시고, 새 인장반지를 끼워주심으로써 높여주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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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5장

1.  And it came to pass,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ich were on the side of Jordan westward,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ich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Jordan from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until we were passed over, that their heart melted,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2.  At that time the LORD said unto Joshua, Make thee sharp knives, and circumcise again the children of Israel the second time.

3.  And Joshua made him sharp knives, and circumcised the children of Israel at the hill of the foreskins.

4.  And this is the cause why Joshua did circumcise: All the people that came out of Egypt, that were males, even all the men of war, died in the wilderness by the way, after they came out of Egypt.

5.  Now all the people that came out were circumcised: but all the people that were born in the wilderness by the way as they came forth out of Egypt, them they had not circumcised.

6.  For the children of Israel walked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till all the people that were men of war, which came out of Egypt, were consumed, because they obeyed not the voice of the LORD: unto whom the LORD sware that he would not show them the land, which the LORD sware unto their fathers that he would give us, a land that floweth with milk and honey.

7.  And their children, whom he raised up in their stead, them Joshua circumcised: for they were uncircumcised, because they had not circumcised them by the way.

8.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had done circumcising all the people, that they abode in their places in the camp, till they were whole.

9.  And the LORD said unto Joshua, This day have I rolled away the reproach of Egypt from off you. Wherefore the name of the place is called Gilgal unto this day.

10.  And the children of Israel encamped in Gilgal, and kept the passover on the fourteenth day of the month at even in the plains of Jericho.

11.  And they did eat of the old corn of the land on the morrow after the passover, unleavened cakes, and parched corn in the selfsame day.

12.  And the manna ceased on the morrow after they had eaten of the old corn of the land; neither had the children of Israel manna any more; but they did eat of the fruit of the land of Canaan that year.

13.  And it came to pass, when Joshua was by Jericho, that he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 and, behold, there stood a man over against him with his sword drawn in his hand: and Joshua went unto him, and said unto him, Art thou for us, or for our adversaries?

14.  And he said, Nay; but as captain of the host of the LORD am I now come. And Joshua fell on his face to the earth, and did worship, and said unto him, What saith my Lord unto his servant?

15.  And the captain of the LORD's host said unto Joshua, Loose thy shoe from off thy foot; for the place whereon thou standest is holy. And Joshua did so.

-----------Joshua 5  Amplified Bible

==Israel Is Circumcised

1 Now it happened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o were beyond the Jordan to the west,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o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the Jordan before the Israelites until they had crossed over, their hearts melted [in despair], and there was no [fighting] spirit in them any longer because of the Israelites [and what God had done for them].

2 At that time the Lord said to Joshua, “Make for yourself flint knives and circumcise the [new generation of the] sons of Israel as [was done] before.” 3 So Joshua made flint knives and circumcised the sons of Israel at [a]Gibeath-haaraloth. 4 This is the reason why Joshua circumcised them: all the people who came out of Egypt who were males, all the men of war, had died in the wilderness along the way after they left Egypt. 5 All the males who came out were circumcised, but all the males who were born in the wilderness on the way as they left Egypt had not been circumcised. 6 For the Israelites walked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until all the nation, that is, the men of war who came out of Egypt, died because they did not listen to the voice of the Lord; to them the Lord had sworn [an oath] that He would not let them see the land which He had promised to their fathers to give us, a land [of abundance] [b]flowing with milk and honey. 7 So it was their uncircumcised sons whom He raised up in their place, whom Joshua circumcised, because circumcision had not been performed on the way.

8 Then, when they had finished circumcising all [the males of] the nation, they stayed in their places in the camp until they were healed. 9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This day I have rolled away the reproach (derision, ridicule) of Egypt from you.” So the name of that place is called Gilgal (rolling) to this day.

10 While the Israelites camped at Gilgal they observed the Passover on the evening of the fourteenth day of the month on the desert plains of Jericho. 11 On the day after Passover, on that very day, they ate some of the produce of the land, unleavened bread, and roasted grain. 12 And the manna ceased on the day after they had eaten some of the produce of the land, so that the Israelites no longer had manna, but they ate some of the produce of the land of Canaan during that year.

13 Now when Joshua was by Jericho, he looked up, and behold, [c]a man was standing opposite him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and Joshua went to him and said to him, “Are you for us or for our adversaries?” 14 He said, “No; rather I have come now as captain of the army of the Lord.” Then Joshua fell with his face toward the earth and bowed down, and said to him, “What does my lord have to say to his servant?” 15 The captain of the Lord’s army said to Joshua, “Remove your sandals from your feet, because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set apart to the Lord).” And Joshua did so.

===Footnotes

Joshua 5:3 Hebrew for “the hill of the foreskins,” named for the event.

Joshua 5:6 This phrase referred to the abundant fertility of the land of Canaan. Milk (typically that of goats and sheep) was associated with abundance; “honey” referred mainly to syrups made from dates or grapes and was the epitome of sweetness. Bees’ honey was very rare and was considered the choicest of foods.

Joshua 5:13 Whether the divine messenger was an angel or the pre-incarnate Christ is not clear from the Hebrew text; however, the message of godly assistance and pending victory was made clear to Joshua by the 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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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5장 (개요)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을 건넜다. 그리고 그들 앞길을 열어 주어 행진하게 했던 물결은, 그들 뒤에서 다시 닫혀져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게 했다. 

이제 가나안에 발을 디디고 선 이상 가나안을 정복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본 장에서는 바로 이 이야기가 기술된다.

1. 이스라엘의 원수가 낙담하게 된 것(1).

2. 이스라엘을 격려해 주고 도와줄 일이 가나안 도착과 함께 일어남.

   (1) 할례의 언약이 갱신됨(2-9).

   (2) 유월절이 지켜짐(10).

   (3) 이스라엘 진영이 가나안 땅의 곡물로 양식을 먹음. 따라서 만나가 끊어짐(11, 12).

   (4)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친히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그를 격려하고 지도함(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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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민족적 할례(수 5: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쳤던 여리고 평야에 펼쳐진 수많은 이스라엘의 진들은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랴?”(민 23:10) 

오래도록 “광야에 있던 교회가 이제 광야로부터 나아와, 그 사랑하는 자에게 기대었고, 아침과 같이 나오며, 달처럼 어여쁘고, 태양처럼 밝으며, 깃발을 든 군대처럼 위용을 지니고 있도다.” 

이들이 원수의 눈에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던가는 1절에서 이야기되는 바와 같다. 

또한 애굽의 수치를 떨쳐 버린 이 이스라엘이 자기 친구들의 눈에 얼마나 아름답고 밝게 보였던가 하는 것은 그 다음 절에서 이야기되는 것과 같다.

Ⅰ.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요단을 통과하므로 가나안 족속들이 공포에 싸이게 되었다(1절). 

이스라엘이 요단을 통과한 소식은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그 소식은 가나안의 모든 왕과 나라에게는 기적이기보다는 경악이었다. 

바벨론이 함락되었을 때 “보발군이 달려 만나고 사자가 달려 만나서” 전국 방방곡곡에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한 것과 같다(렘 51:31).

우리는 여기서 이 소식이 이 땅의 왕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듣게 된다. 그들은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 

사실 백성들의 마음은 일반적으로 벌써 옛날에(라합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2:9) 기가 질려 있었으나 이들의 왕들은 이 때까지는 그런대로 상당한 사기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 따라서 많은 인구와 튼튼한 성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침입자들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희들끼리 다짐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을 건너게 되고 자기들 나라의 든든한 방어선이 뚫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분명히 이들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는 기적적인 일에 접하게 되었을 때 이 왕들도 역시 혼비백산하여, 과거의 주장을 포기하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1. 이들이 두려워하게 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 그 자체도 무시무시한 집단이려니와 그보다 더한 것은 절대 능력의 신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이었다. 

요단 강도 이들 앞에서 물러났다면 무엇이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보냐!

2.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공포를 집어넣어 절망케 했던 것이다. “내가 내 위엄(두려움, KJV)을 네 앞서 보내리라”(출 23:27).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악인들을 두렵게 하실 수 있거든(시 53:5), 하물며 이토록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 곳에서야 더욱더 그렇게 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영혼을 지으신 분은 자기가 원하실 때 자기 칼을 그 영혼에게 가까이 갖다 대실 수도 있으며 공포로 그 영혼을 죽이실 수도 있다.

Ⅱ. 이 일은 할례받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할 기회를 주었다. 

“그 때에”(2절), 즉 이들 주변의 나라가 경악 속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때는 원수의 나라 안에 있었다고 해도 안전했을지 모른다. 

원수들의 마음이 녹아내렸고 손이 결박당해 있었으므로 그들은 시므온과 레위가 “그들이 고통할 때에”(창 34:25) 세겜 족을 덮친 것과는 달리, 이 기회를 도저히 이용할 수가 없었다. 여호수아 혼자서는 이 때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두뇌로 이 때에 전반적인 할례를 명령했다면 그는 몰지각한 인간으로 낙인을 받았을는지도 모른다. 

일 그 자체가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이성의 안목에서 볼 때 이 때는 적합한 때가 못 되었고 또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일을 하도록 명령하셨다면 그것을 “혈육과 의논하지”(갈 1:16) 말아야 한다. 

이 일을 하도록 명령하신 분이 틀림없이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들을 지원해 주실 것이다.

1. 이 일괄적인 할례가 있었던 때.

(1)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할례를 받았다(5절). 

이들이 애굽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때는 틀림없이 난 지 8일 만에 율법에 따라 자녀들에게 할례를 베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압박을 받기 시작하고 특히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 할례 규례의 실행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대부분이 할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들을 위해서 일괄적인 할례가 베풀어져야 했다. 

이 할례가 베풀어지게 된 것은 라이트푸트 박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3일간의 어두움의 시기이거나 혹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일년 후 시내 산에서 엄숙하게 두 번째 유월절 양을 먹던 바로 직전일 것이다(민 9:2). 그것을 일괄적인 할례로 본다면 이번에 행하는 이 일괄적인 할례는 두 번째의 것이 될 것이다(2절). 

그러나 학자 마시우스(Masius)는 할례의 규례가 처음 생길 때 아브라함의 가족이 받은 할례를 일괄적인 할례로 본다(창 17:23). 

일괄적 할례의 첫 번째는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의 확증이었고, 이 두 번째는 이 약속의 성취에 대한 감사의 축제였다.

(2) 그러나 광야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 아래 있었다. 이 선언은 자주 반복되는 것이다(6절). 

그 세대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히 3:18, 표준새번역) 못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분노의 선언이 있은 그 운명적인 날 이후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태어나는 모든 남자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시지 않았던가?(창 17:9-14) 

이것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즉 첫 유월절 후에 곧 발표된 이 절기에 관한 영원한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도 할례받지 못한 사람은 이 절기에 참례할 수 없으며 이방인과 같이 간주하라고 그토록 강렬하게 선언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모세의 통치하에서 38년간이나 자녀들을 낳으면서 무할례 상태로 버려두었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런 큰 부작위는 막연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볼 수밖에 없다.

①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할례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생략되었다고 주장한다. 

할례는 원래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을 구분하기 위한 표지로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는 다른 민족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그들과 뒤섞일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할례를 주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②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는 할례의 개념을 의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시내 산에서 이루어진 언약에서는 할례에 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세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요 7:22) 생겨난 것으로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특별한 표지로 주어진 것이다(창 17:8).

③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동안에는 거처를 자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런 비정착 상태를 감안해서 하나님께서 이 규례의 준수를 간과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이 할례를 받은 후 고통을 느끼는 얼마 동안은 쉬어야 하며 이 때 마구 움직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그럴듯한 생각이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시는 분이지 희생을 원하시는 분은 아니다. 이 주장은 대체로 긍정할 만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이 만족할 만한 답변이 못 되는 것 같다. 

때로는 이들이 한곳에서 일 년 가까이 머무르기도 했고(민 9:22), 아이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이동을 하더라도 이들을 따뜻하게 잘 싸서 편안하게 나르면 해를 받지 않을 수도 있으며, 더욱이 이 일은 임신한 어머니나 해산한 어머니가 누워 쉬어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④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이런 현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계속적인 불신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표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할례는 우리가 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의 표지였다. 족장들이 자기들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이 아름다운 땅에 대한 소망의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온 군사들에 대해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하고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보지도 못할 것이라고(이런 선언은 6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선언에 대한 계속적인 기억을 위한 것으로 본다) “노하여 맹세”하셨을 때(히 4:3) 이 선고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할례는 금지되었다. 

이것으로 그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할례를 예로 삼았던 약속의 은덕을 절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 명확하게 표현되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며 언약을 파기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사 언약의 돌판을 파괴시켜 버리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선언에서는 이 일에 대한 법적인 금지가 나타나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수기 14장 33절에는 이 일에 대한 암시가 있는데,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을 질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자녀들은 할례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이 형벌의 선언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며 특별히 갈렙에 대해서는 “그가 밟는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신 1:36). 이것은 할례가 지니고 있던 바로 그 약속이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여기서 자기 가족에게가 아니라 전체 회중에게 할례를 명령한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 위대한 규례가 거의 40여 년간이나 이스라엘에게서 생략되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은 할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영속적인 의무도 아니며, 그것은 이토록 오래 연기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때가 차면 폐지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2. 이 일괄적인 할례를 하도록 여호수아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었다(2절). 왜 이런 명령이 지금 내려졌는가?

(1) 예표로 세워졌던 할례의 약속이 이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사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므로 이들의 조상들이 불신하고 그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 약속의 진리를 이들이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2) 38년간이나 할례가 연기되었던 그 위협의 기간이 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사 40:2). 그러므로 이제 언약의 표지가 다시 회복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일이 좀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이 일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야에 몇 달간 쉬고 있을 동안에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이 일이 모세의 애곡 30일 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이 일이 가나안 점령의 과정이 어느 정도 성취되고 거기서 거주지를 정하고 요새를 세우며 진영을 강화할 때까지 좀 더 연기되지 않았는가? 왜 이 일이 요단을 건넌 바로 그 이튿날 이루어져야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께서는 40년이 끝나고 이들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를 최적기로 보신 것이다. 그것은 인간 지혜의 주장들을 뒤엎으시는 지혜다.

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진영이 전쟁의 규례나 규율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 하셨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렇게 노출시킴으로써 이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크게 나타내셨다. 

그들이 행동해야 할 바로 그 때에 행동할 수 없게 만드심으로써 보여 주신 이 위대한 보호의 본보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자기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를 선포하는 것이 되었고, 반대로 적들에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 땅을 주시는 표시라는 의미까지 전달함으로 더욱더 공포를 증가시켰을 것이다.

②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부닥치는 위험에 맞서서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이들과의 언약을 더욱 확증시켜 주셨다. 

이로써 불문가지의 승리와 성공의 확증을 주며 약속의 땅에 대한 완전 소유의 확증을 주셨다.

③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또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는” 모든 일에서 그 분의 사랑을 믿고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면(여기서는 할례의 피가 이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④ 이토록 오랫동안 폐지되었던 할례의 부활은, 광야에서 간과되어 왔던 다른 제도들의 준수도 부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하는 명령은, 모세가 이들에게 “요단 강을 건넌” 다음에는 “광야에서” 하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되며 보다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명령을(신 12:8) 기억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들이 들어가는 “땅에서” 지켜야 할 명령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신 6:1; 12:1).

⑤ 여기서 이야기되는 이 “두 번째의” 할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복음의 휴식에 들어가게 될 때 할례를 받는 영적 할례의 모형이다. 

피어슨(Pierson) 감독의 말에 따르면,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지시를 따라 행해진 이 할례는 율법에 명령된 육체의 할례와는 다른 할례, 즉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로 불리는 “마음의 할례”(롬 2:29)의 장본인인 참된 할례자로서의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3. 백성들은 이 명령에 순종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3절). 여호수아가 한 것이 아니라, 할례를 하도록 명령하고 그 실행을 보살폈다.

할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 의해서 행해져야 할 필요가 없었고 누구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실행되었을 것으로 본다. 

시내 산에서 백성을 계수할 때 20세 이하였고 그래서 죽음의 선고를 받지 않았던 모든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 의해서 나머지 백성들은 짧은 기일 내에 모두 할례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모세를 청종하듯이 여호수아에게도 청종할 것을 약속했다(1:17). 여기서 그들은 이 고통스러운 제도에 복종함으로써 자기들의 약속 이행을 실증했다. 그리고 할례 때문에 모세를 피의 남편으로 불렀던 십보라와는 달리, 이들은 여호수아를 피의 통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4.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해 할례가 이루어진 장소에 이름이 붙여졌다.

(1) “할례 산”이라 불렸다(3절). 

잘려 나간 포피를 한데 모아 흙으로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게 되었던 것 같다.

(2) 길갈이라고 불렸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치워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부터 굴러가게 하였다”(9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명예에 대해서 열심이시다. 하나님 자신의 명예가 거기에 너무나 크게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어떤 수치를 당하든 간에 그것은 틀림없이 굴러 떠나가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일어나는 모든 혀를 정죄하실 것이다.

① 이들의 할례는 애굽의 수치를 떨쳐 버리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육체에 언약의 징표를 지님으로써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로 태어나게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지낸 노예 신분의 수치가 제거되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 숭배에 더럽혀져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수치였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할례를 받고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헌신하기를 소망한 이상, 애굽을 사랑하던 수치에서 벗어났다.

② 이들의 가나안 무사 도착이 또한 애굽의 수치를 사라지게 해 버렸다. 

이 일은 애굽인들이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출 14:3)라고 하던 그 모욕적인 주장을 침묵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기나긴 광야의 방랑은 그들의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승리로 가나안에 들어온 이상 그 수치는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심으로써 자신을 영화롭게 하실 때 적들의 모욕을 침묵시키실 뿐만 아니라 이 모욕을 저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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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서의 첫 유월절(수 5:10-12)

가나안 사람들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또한 자기들의 대적 이스라엘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인들이 전장에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는 모든 종교적인 규례들이 면제된다고 생각하기가 쉽다(실제 이들은 그렇게 할 시간도 없고 생각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주님 명령하심 따른 행위도 하나씩 하나씩 펼쳐 나간다. 

따라서 후에 또 다른 여호수아에 대해서 이야기되는 바는 실제로 이 사실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즉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슥 3:8). 또한 여호수아는 실제로 올바른 방법을 취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마감도 잘 하게 된다.

Ⅰ. 율법에 지정된 때에 따라 “그 달 십사 일”에, 이들이 할례를 받은 바로 그 곳에서, 유월절이 엄숙하게 지켜졌다(10절). 

이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동안에는 이 규례를 지키는 데서 오는 유익과 안위를 거부당했고, 그것이 더욱 하나님의 싫어하심의 징표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선고가 취소되기를 구한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시 90:15),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때가 지나가게 한 후 다시 이들을 위로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이 기쁨의 규례가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니,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의 놀라운 사역들을 기념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은혜의 마무리는 그 은혜의 시작의 때를 마음에 기억나게 해 주어야 하며 한낮의 때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여명이 오기를 기다리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엄숙한 유월절은 바로 엄숙한 할례 이후에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회개할 때 그는 곧 “떡을 떼어” 나누게 되는 것이다(행 2:41, 42). 

그들은 유월절을 여리고 평지에서 지켰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들을 에워싸고 격분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어떤 동요도 일으킬 수 없었다. 

이와 같이 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킬 때는 자기들의 땅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의 보호를 받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시는 실례를 미리 보여 주셨다.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4). 그가 지금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 것이다(시 23:5).

Ⅱ. 이스라엘 진영이 “그 땅 소산”으로 양식을 삼게 되자, “만나가 그쳤다”(11, 12절). 

만나는 이들에게 필요할 때 베풀어진 놀라운 은혜였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 신분의 표시였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음식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비록 천사의 음식이라고 해도, 물론 가벼운 음식이라고 불평할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그 땅 소산을” 먹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것을 갖추게 된다.

1. 여리고 성 안으로 피난한 시골 백성들은 자기들의 곳간과 들판들과 거기 쌓인 모든 것을 버려둔 채 달아났다. 

이것은 많은 이스라엘 군대의 생계를 도와주었고, 또한 매우 때맞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1) 유월절 후에 이들은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했는데, 먹을 것이 만나밖에 없었을 때 그들의 양식이 없었더라면 규례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광야에서 이 절기가 일시 중단되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가나안 족속의 곳간에서 이 절기를 지키기에 풍부한 많은 묵은 곡식들을 찾아낸 것이다.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해서 쌓이며”(잠 13:22), 이것을 쌓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예비한 것이” 그렇게 될 줄(눅 12:20) 거의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유월절 안식 후 이 날에 이들은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야” 했다(레 23:10, 11).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실 땅에 들어갔을 때” 하도록 특별히 명령된 제사였다. 

이 일은 바로 그 때가 곡식들이 자라고 익어갈 무렵이었으므로 “그 해 그 땅의 열매”로 준비될 수 있었다(12절). 

이와 같이 해서 이들은 선한 청지기같이 곳간에서 묵은 곡식과 새 곡식을 잘 꾸려 내게 되었다(마 13:52).

이 아름다운 땅의 열매가 자기들의 손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곧 이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기회를 만들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하신 바에 따라서 이것들을 사용해서 예배를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고”(눅 11:41) 만족스러운 것들이었다. 

칼빈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여기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랑할 동안에도 매년 유월절을 지켰으며 무할례자들에게 유월절은 면제해 주었으나 다른 희생들은 드리도록 허락하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모스 5장 25절을 인용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죽음의 선고가 내린 후로는, 가나안에 들어올 때까지 어떤 제사도 드리지 않았으며 따라서 유월절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본다. 

아무튼 이 선고 이후로(민 14장) 희생에 관한 율법이(민 15장), “너희가 내가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거든” 이렇게 이렇게 할지니라 하는 식으로 시작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2. 이들이 “그 땅의 묵은 곡식을”(KJV) 먹게 되자 곧 만나가 끊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1) 이것은 만나가 눈이나 우박과 같이 우연적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서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특별한 계획에 의해서 내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 내렸고, 필요로 하는 동안만 계속되다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2) 또한 이것은 식량이 일상적인 방법으로 얻어질 수 있을 때는 어떤 초자연적인 공급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공과에 따라서 이들을 다루셨다면 이들이 만나를 하찮은 음식으로 불렀을 때 중단시켜 버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필요로 하는 한, 비록 그들이 이 만나를 업신여겼어도 하나님은 계속 내려 주셨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만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비록 이들 중에 더러는 만나를 더 원했겠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중단시키셨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아버지이셔서 자녀들의 필요를 알고 은사로 채워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규례와 말씀은 영적 만나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광야에 사는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 비록 때로는 강제적이 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이 땅 위에 사는 한 이것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가 하늘의 가나안에 이르게 될 때 이 만나는 그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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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군대장관(수 5:13-15)

우리는 이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종종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보아왔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 그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읽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부닥치는 역경이 커지자, 거기에 비례해서 그에게 주어지는 격려도 커진다.

Ⅰ. 여호수아가 환상을 보는 은혜를 받은 때. 그것은 여호수아가 할례와 유월절을 아주 엄숙하게 지킨 바로 직후였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도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그 분의 거룩하신 규례들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지켜 나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여호수아가 이 환상을 본 장소. 그 곳은 “여리고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말하자면 그것은 “여리고”에서였다. 아직까지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믿음과 소망으로 혹은 생각과 기대에서 볼 때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마도 이 일은 여리고 도성 바로 가까운 여리고 들판이었다고 본다. 

이 사건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해 아주 단독적으로 위험에 대한 공포도 없이 나섰던 것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여호수아가 거기서 묵상과 기도 중에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따금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 혹은 여호수아는 거기서 여리고 도성을 살펴보며, 어떻게 이 도시를 공격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셔서 지시하실 때 어떻게 접견할 것인지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주신다. “법은 잠자는 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자를 도와준다”(Vigilantibus non dormientibus succrrit lex).

Ⅲ. 환상의 내용. 

여호수아도 사려 있고 사색적인 사람들이 늘 하는 것처럼, 눈을 아래로 주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까운 거리에서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주 놀라 눈을 치켜뜨게 되었고 여호수아의 묵상에 전환이 왔다(13절). 

그 환상은 여호수아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위풍당당한 인물로, 일단 주의를 기울이기에 알맞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다.

1. 우리는 그 분이 영원하신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과거에도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고 이따금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여호수아는 그 분에게 신적 존귀를 돌렸고, 그 분은 또한 그것을 수락했다. 피조된 천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분은 여호와로 불린다(6:2).

2. 그는 여기서 “칼을 빼어 손에 든” 군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장막에 있던 아브라함에게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전장에 있는 여호수아에게는 무사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그들의 신앙이 기대하고 갈망하는 바가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칼을 뽑아 드셨다.

(1) 그것은 여호수아가 참여하고 있는 전쟁을 인정해 주며, 그 전쟁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살육의 임무를 맡기셨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주권자가 칼을 뽑는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며 부하들도 역시 싸우라고 허락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칼을 뽑으실” 때 우리도 칼을 뽑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해 달게 하셨나이다”(시 60:4).

(2) 여호수아가 힘있게 전쟁을 수행해 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의 손에 뽑힌 칼은 그 분을 힘입어 용감하게 싸울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고 구원해 줄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 준다. 그 분의 칼은 사방으로 움직인다.

Ⅳ.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한 대담한 질문. 여호수아는 하인을 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이 질문은 만일 그가 자기들 편이라면 환영하고 적들의 편이라면 그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1. 여호수아의 큰 용기와 결심이다. 

그는 이 급작스럽게 나타난 모습에도 주춤하지 않았고, 그가 본 자의 용모에 틀림없이 나타났을 그 위엄과 용맹에도 겁먹지 않았다. 

그는 위대한 장군처럼 침착하게 그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내라고 명령하셨으며 이 사건에서 그는 실제로 그랬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그는 자기 백성 가운데서 은혜로 성취되게 하신다.

2. 그 백성과 그들의 처지에 대한 여호수아의 지극한 관심이다. 

여호수아는 너무나 열심히 자기 백성의 유익에 전념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친구와 적을 대뜸 구별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호수아가 그를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며”(삼상 17:26) 그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오는 골리앗과 같은 적으로 의심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때로는 우리를 크게 위해 주는 사람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하기가 쉽다.

그 질문은 명확하게 이스라엘 족속과 가나안 족속, 그리스도와 바알세불 사이의 한편을 강요한다. 그것은 중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우리를 반대하는 자다”(마 12:30).

Ⅴ. 환상으로 나타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설명한 말(14절). “너희의 적의 편이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너희들의 친구로서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군대 사령관으로 왔다.” 

옛날에 있었던 마하나임(창 32:2), 즉 2개의 군대가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하나는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된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이며 또 하나는 거기서 이들을 보호해 줄 천사의 군대였다. 

그 분은 바로 양 군대의 대장으로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고 천사의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를 돕도록 명령하신다. 

이 일에 비유해서 볼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으로(히 2:10, 한글 개역에는 “구원의 주”로 되어 있음) 불릴 수도 있으며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사 55:4) 일컬어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대장을 소유한 백성들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 군대를 열병하고 그들에게 새 힘을 주며 여리고를 점령하는 데 필요한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대장으로 오셨다.

Ⅵ.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았을 때 여호수아가 보인 큰 존경. 

여호수아는 이 분이 말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직감적인 암시에 의해서 이 분이 신적 인물이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1. 여호수아는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즉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절했다.” 

여호수아 자신도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위에 여호와의 군대의 대장으로서의 임무를 받은 이 낯선 사람에 대해서 전적으로 질투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 분의 주장을 논박하지 않고 도리어 기꺼이 자기의 사령관으로 이 분에게 복종했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도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겸허하고 경건해야 될 것이다.

2. 여호수아는 그에게 명령과 지시를 요청했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의 먼젓번 질문이 용감하고 군인다웠던 것만큼이나 지금 그의 질문은 경건하고 성자다운 것이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일을 다루어야 할 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절대로 여호수아의 위대성에 불명예가 될 수는 없었다. 

비록 면류관을 쓴 머리라고 해도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님의 보좌 앞에서는 아무리 그 머리를 낮추어도 지나침이 될 수가 없다(시 2:10, 11; 72:10, 11; 계 19:16).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여호수아가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가지는 관계는, 그리스도는 그의 주님이 되고 그는 그 분의 명령을 받는 종이며, 그리스도는 그의 대장이시고 그는 그 분의 분부하시는 바를 행하는 휘하의 졸병이다(마 8:9).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모든 순종의 근원은,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자신을 종으로 겸손하게 바치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시 16:2).

(2) 이런 관계를 이루는 질문이 있다. “나의 주여,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알려고 하는 간절한 열망과 그 뜻을 기꺼이 이행하려고 하는 결심과 각오를 내포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을 하급 장교로 세우고 명령을 받는다. 

이런 마음의 태도는 그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적격 인물이 됨을 보여 준다. 최선의 명령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또한 순종할 줄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Ⅶ. 이 신적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경외의 표시(15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것은 경외와 존경의 표시였다(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모자를 벗는 것으로 의미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으로서, 하나님의 임재가 계속되는 한 그 곳을 거룩하게, 그리고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지닌다는 표시였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리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밟는 땅까지도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도 이 신적 인물에 대해서 경외를 보여야 했고, 그 분이 서 있는 땅을 그의 더러운 발로서 밟아서는 안 되었다(전 5:1). 

내적 경외의 외적 표현과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경외는 우리가 엄숙한 율례를 따라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마다 언제나 요청되는 바이다. 

패트릭 주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 모세를 보내실 때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명령도 바로 이런 명령이라는 사실을 주목한다(출 3:5). 하나님은 이 명령을 통해서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여호수아와도 친히 함께해 주겠다고 한(1:5) 최근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확증시켜 주신다. 

모세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을 때 그 땅을 거룩하게 했고, 여호수아도 그렇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리고 성의 함락에 관해 여호수아에게 전하려고 하셨던 지시들을 받으라고 준비시킨다.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이스라엘이 이 성을 소유하도록 돕기 위해서 지금 오신 것이다.

===호크마====

=====5: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가나안 사람 - 여기 '아모리 사람'(the Amorites)과 '가나안 사람'(the Canaanites)은 요단 강 서편의 모든 가나안 거민(30:10;신 7:1)을 대표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모리 사람은 산지에 살고 있던 족속이며, 가나안 사람은 평지에 살고 있던 족속이기 때문이다(Keil). 그리고 '요단 서편'은 문자적으로 ' 요단 건너편 서쪽'(beyond the Jordan to the west, KJV)으로, 이 말은 여기에 기록된 '아모리 사람'과 2:10에 나타나있는 요단 동편의 아모리 사람을 구별지어 준다(Woudstra). 민 32:19 주석 참조. 한편 가나안 여러 족속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 부분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이 건널 때까지...말리시고"이다. 하기에 개역 성경의 '우리들'이란 번역은 '그들을'고쳐 생각함이 좋다.

마음이 녹았고...정신을 잃었더라 -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은 과거 출애굽 사건과 요단 두편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전멸 사건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미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는데(2:9-11), 이에 덧붙여 요단 강 도하(渡河) 사건은 심적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그들에게 더 큰 충격을 가하는 치명타적 사건 이었다. 한편 '마음이 녹다', '정신을 잃다'에 관한 내용은 2:11 주석을 참조하라.

=====5:2

그 때에 - 즉 요단 강을 도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를 가리킨다(Keil). 

이 때는 가나안 거민들이 심히 낙담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곧장 공격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격에 앞서 먼저 할례의 성결(聖潔)을 명하셨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 '부싯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 )는 '단단한 돌', '반석', '바위'를 뜻한다. B.C. 13-15세기 당시에는 청동(靑銅, bronze) 제품들이 돌로 만든 기구들을 대신하여 널리 퍼져갔고, 그후 곧 철(鐵)이 청동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 할례 의식에 청동이나 철 대신 돌을 사용한 것은 고대 관습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출 4:25; Blair, Clarke, Keil).

다시 할례를 행하라 - 여기서 '행하라'의 히브리어 '슈브'(* )는 '돌아가다', '돌이키다'란 뜻으로, 이 명령은 이미 받았던 할례를 한번 더 반복해서 받으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Blair, Clarke). 40년 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 그 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4, 5절). 따라서 이 명령은 가나안에 도착한 새 세대에서 주어진것으로, 곧 '이전에 조상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받은것 같이 너희 후손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시 할례를 받으라'(Keil). 또는 '이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할례받은 백성으로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라'(Blair)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광야 생활 40년 동안 시행 하지 않았던 할례 의식을 이제 재시행하라는 뜻이다. 한편 '할례'(割禮, circumcision)는 사내아이가 태어난지 8일 만에 생식기의 포피(包皮) 맨 끝 부분을 잘라내는 포경(包莖) 제거 의식으로,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표지(標識)였다(창 17:9-14). '할례'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창 17:1-14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부분을 참조하라.

=====5:3

할례산 - 이 말은 '언덕'(hill; KJV, NTV, RSV, 공동번역)을 뜻하는 '기브아'( * )와 '포피'(包皮)를 뜻하는 '아를라'(* )의 합성어로, 곧 할례를 실시한 후 베어낸 포피(양피)를 이곳에 묻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Keil).

할례를 행하니라 - 약 40년 동안 유보되었던 할례 의식이 재시행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는 새로이 회복되었다.

=====5:4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 본절은 할례를 재시행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상술하고 있다. 애굽에서 나온...남자 곧 모든 군사 - '나오다'의 히브리어 '야차'(* )는 구약 성경에서 신학적 주요 관심인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다(출 3:10;6:13, 26;13:3, 9, 14, 16;20:2;신 4:37). 그리고 여기서 '남자'는 군사와 동격어로서, 20세 이상된 남자로 싸움(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가리킨다(민 1:2, 3; 14:29).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 즉 출애굽 제 2년째 해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민 13:31-33)로 말미암아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다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38년 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만 사실을 가리킨다(민 14:29-35;신 2:14-16).

=====5:5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 출애굽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모두 할례를 받았다(출 12:43-51). 그러나 이러한 할례 의식이 중단된 때는 출애굽 제 2년째 되던 해인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3:1-14:38)때였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정면 거부한 중대한 '언약 파기 사건'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언약의 징표'인 할례는 더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세대(즉 그 사건 당시 20세 이상된 세대)는 그 불순종의 징벌로 광야 38년 유리 생활 동안 죽어갔고, 그 후세대(즉 당시 20세 미만된 자들과 광야 38년 기간 동안에 태어난 자들, 곧 노중에서 난자)는 아비의 죄를 더불어 지고(민 14: 33) '할례 없이' 광야 38년 동안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Keil, Calvin, Hengstenberg, Matthew Henry).

=====5:6

청종치 아니하므로 -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적으로 배척하고 거부했다는 말로 하나님을 싫어한 이스라엘의 패역(悖逆) 정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열조에게 맹세하여 - '열조'(列粗)는 '조상', '선조', '아버지'의 뜻을가진 '아브'(* )의 복수형으로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가리킨다(민 11:12;신 1:8).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가나안을 가리키는 별칭이다(출 3:8, 17; 레 20:24; 민 13:27; 14:8; 신 6:3). 실제로 가나안 지방은 목축하기에 적합했고 야생 꿀도 많았다(삿 14:8; 삼상 14:26; 마 3:4). 신 11:9 주석 참조.

다 멸절하기까지 - '멸절하다'의 히브리어 '타맘'(* )은 '완성하다', '끝내다', '완전히 멸망시키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 1세대(가데스 바네아 사건 당시 20세 이상 된 자들)가 모두 죽게 되기까지를 뜻한다.

=====5: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 - 여기서 '대'(代)는 '타하트'(* )로서, '...의아래', '...대신'이란 뜻이다. 그리고 '잇게 하다'의 히브리어 '쿰'(* )은 들어올리다', '세우다', '단단하게 고정시키다', '임명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이 문구는 축어적(逐語的)으로 '하나님이 그들 대신에 일으켜 세우신 자손'(KJV, RSV)이란 뜻이다.

길에서는...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 40년(보다 정확히는 38년, 민 14:34 주석 참조) 동안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지 못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광야 40년 동안 왜 할례를 행치 못했을까?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된다. 즉 (1)광야 생활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다른 민족과 구별된 상태였기 때문에 구태여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견해. (2)시내 산 언약에서 할례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할례는 본래 가나안 언약에 대한 표징이므로(창 17:10) 광야기간 동안에는 할례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견해. (3)광야 생활 동안에는 자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일정한 휴식을 요하는 할례가 시행될 수 없었다는 견해 등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그러나 우리는 광야 기간 동안 할례가 금지된 이유를 성경 본문(4-7절)의 맥락속에서 충실히 찾아야 한다. 즉 그 이유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4:26-35) 때문이었다. 곧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이 정면 거부하고 배척한 패역한 사건으로서, 그결과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그 패역한 세대로부터 거두어 들인 사건이다. 아울러 그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그들의 자손들에게까지 짊어지운 사건이다(민 14:33). 그러나 동시에 그 시한을 '출애굽 제 1세대(당시 20세 이상된 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소멸되기까지'로 한정하신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광야 생활 동안'에는 가나안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행치 못했던 것이다(Keil, Matthew Henry, Hengstenberg, Calvin). 5절 주석 참조.

=====5:8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 여기서 '필하매'는 4:1의 '마치매'와 같은 단어로, 문자적으로 '끝미쳤을 때에'를 뜻한다. 

한편 여기서 카일(Keil)은 당시 할례를 받은 수효를 대략 70만명 가량으로 보고 있는데, 그 산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난 지 8일 이상 된 남자를 할례 대상으로 삼을 때(창 17:12) 이스라엘 전체 인구(20세 이상 된 성인 남자만 601,730명이므로, 전체 인구는 도합 200만명 가량으로 추정될 수 있음 - 민 26:51) 중 남자는 100만명으로 산출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4:29)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자는 출애굽 때 이미 할례를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5절) 이들의 비율(약 1/3 - 1/3.5)을 빼면 길갈에서 할례를 받을 대상자는 대략 70만명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효는 나머지 30만명의 어른들(요단 강 도하시 이들의 나이는 38세로부터 58세까지로 구성되어 있었다)에 의해 하루 동안에 할례를 다 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 p. 58).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 여기서 '진'(陣)의 히브리어 '마하네'(* )는 '진을 치다'(encamp)를 뜻하는 '하나'(* )에서 유래한 말로,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지파나 군대를 일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친 울타리를 뜻한다(민 1:47-2:34; 10:11-28 ). 그리고 '처하여'의 히브리어 '야솨브'(* )는 '앉다', '머루르다'라는 뜻으로 영역본 RSV, NTV는 '머무르다'(remain)로 번역하였다.

낫기를 기다릴 때에 - 직역하면 '나을 때까지'이다. 여기서 '낫다'의 히브리어 '하야'(* )는 '소생할'(창 45:27; 욥 14:14), '회복하다'(왕하 1:2; 8:8)란 듯으로(Keil), 이 문구는 할례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머칠동안 장막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고 나면 베어 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심한 활동을 할수가 없기 때문이다(창 34:25).

=====5:9

애굽의 수치 - 여기서 '수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즉 (1)애굽에서의 노예 신분으로서 이스라엘이 당한 수모를 가리킨다는 견해(Bright)와 (2)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기 백성들을 죽이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조롱하던 애굽인들의 모욕적인 생각이나 언사(출 32:12;민 14:13-16;신 9:28)를 가리킨다는 견해(Keil), (3)그리고 위의 2가지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Campbell, Woudstra, Maxwell, Matthew Henry, Fay)등이 있다. 그런데 영역본들(KJV, NTV, RSV)은 이를 '비난', '힐책'이란 뜻이 강한 'reproach'로 번역함으로써 카일(Keil)의 견해를 강화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양자를 모두 포함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굴러가게 하였다 - 애굽의 속박 생활로 인한 모멸, 혹은 출애굽을 하고서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조롱하던 애굽인들의 비난을 멀리 굴려 버렸다는 뜻이다. 즉 요단 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 길갈에서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러한 모든 모멸, 수치, 비난, 힐책 등을 멀리 내어버렸다는 뜻이다(Calvin, Keil, Lange).

길갈 - 4:19 주석 참조.

=====5:10

그 달 십 사실 저녁에 - 출애굽의 구속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 행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빕월 십 사일 저녁(출 12:6, 18; 레 23:5; 민 28:16; 신 16:6)하루 밤 사이에 지켜 지는 행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유월절의 밤을 포함하여 향후 7일간 지켜지는 절기 행사를 '무교절'이라 한다. 그러나 이 두 절기, 곧 유월절과 무교절은 한 가지 사건을 기념하는 두 행사이기 때문에 엄밀히 구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경은 이 두 절기를 구분없이 사용하고 있다(출 12:15-20). 한편 여기서 '저녁에'의 히브리어 '바에레브'(* )는 '황혼이 지는 때에'란 뜻이다.

히브리인들은 그날 황혼 때부터 다음날 황혼까지를 하루로 보았다

여리고 평지 - 요단 강 서쪽의 대초원 지대를 가리킨다(Woudstra).

유월절을 지켰고 -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길갈에서 지킨 유월절은 세번째로 지켜진 셈이 된다. 즉 첫번째는 애굽에서 출애굽 직전에 지켰고(출 12:3-28), 두번째는 시내 광야에서 시내 산을 떠나기 직전에 지켰다(민 9:1-5). 그후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4:26-35)이 일어났고, 그후로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 저주의 38년 기간 동안에는 할례없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유월절 역시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L. Wood, Keil). 왜냐하면 할례는 유월절 예식의 참여를 위한 전제 예식이었기 때문이다(출 12:48; Woudstra). 그러나 저주의 기간이 지나고, 요단 도하 후 길갈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이제 그들은 언약 백성으로서 근 40년간 유보되었던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유월절 예식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부분을 참조하라.

=====5:11

유월절 이튿 날 - 10절에 따르면 유월절이 아빕월 14일이므로, 이날은 아빕월 15일이다(민 33:3). 

그리고 레위기 23:6에 의하면 이날부터 무교절이 시작되어 칠 일 동안 계속된다(Woudstra).

그 땅 소산 -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곳과 12절 두 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곧 '가나안 땅에서 소출된 식물'을 뜻한다(Keil).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도하할 당시는 보리 추수기였다(3:15). 그리고 여호수아서 저자는 그것이 '무교병'과 '볶은 곡식'임을 뒤이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무교병과 볶은 곡식 -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먹은 식물인데, '무교병'(無敎餠)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뜻하는 말로서 유월절 규례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이며 (출 12:8) ,'볶은 곡식'은 '볶다' ,'굽다',를 뜻하는 칼라(* )에서 유래된 말로서 ,원문에는 '곡식'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레 2:14 주석참조.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 '만나'(Manna)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할 때 그들에게 주어진 광야의 음식이요, 하늘의 음식이었다(출 16:15 주석 참조).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 사는 땅'(출 16:35) 가나안에 이르러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이상 만나의 이적이 베풀어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곡식을 먹자마자 만나가 그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주석가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1)만나는 결코 우연적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에 의해 주어졌다는 점, (2)자연적인 방식으로 곡식이 주어지게 되면, 만나와 같은 초자연적이고 이적적인 식량을 받을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Ma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Joshua).

=====5:13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 -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할례와 유월절이라는 종교 의식을 집행하고 난 다음, 이제 가나안 정복을 수행하기 위해 여리고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그는 여리고 공략 작전에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그의 앞에 하늘의 메신저(the Messenger)가 나타났던 것이다.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 종교 의식을 끝내고 여리고로 향해 가던 여호수아 앞에 칼을 빼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서 '한 사람'은 14절에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편, 이와같이 길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것은 발람의 경우 에서도 발견된다(민 22:23). 그러나 발람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의 잘못된 행동을 시정토록 하기 위함이었던데 반해,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여리고 전투를 앞둔 그를 더욱 위로 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군대를 돕기 위하여 당당하게 칼을 빼들고 무장한 채 나타났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해 준다. 한편 여기서 카일(Keil)은 이와같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칼을 손에 들고 나타난 현상은 결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어떤 비현실적 환상이 아니라, 실지로 있었던 객관적이고 외적인 현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장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면하며 말을 하고 있는 사실을 들었다(Keil & Delitzsch, Vol. II. p. 63).

우리를 위하느냐 ...대적을 위하느냐 - 여리고 전투를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위풍당당한 장관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군대 지휘자로서의 여호수아가 물을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다(Knobel).

=====5:14

여호와의 군대 - 호프만(Hofmann)은 이 군대를 이스라엘 군대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비록 출 12:41에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의 군대를 여호와의 군대라고 지칭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수 명사로서의 여호와의 군대나 군사로 지칭한 곳은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일(Keil)은 이와 같은 호프만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는 '하늘의 만군'(왕상 22:19), '천군'(시 103:21), (하늘의)'사자'(시 148:2)등을 뜻한다고 하였다(Keil & Delitzsch, op. cit. p. 62).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 여호수아는 전 이스라엘을 지휘하는 군대 장관이었지만, 그러나 하늘 만군의 군대장관 앞에서 그는 땅에 엎드려 그를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난 것은 여호수아에게 실로 큰 힘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성전(聖戰)으로서, 이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 앞에 스스럼 없이 경배를 드렸던 것이다.

=====5:15

여호와의 군대 장관 - 구약 시대에 간혹 육신(肉身)을 덧입고 사람의 형상으로 당신의 종들을 찾아오셨던 제 2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창 16:7; 18:1; 32 :24, 30: 출 3:2, 4). 자세한 내용은 5:13-15강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보라. 그리고 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 부분도 참조하라.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 여기서 '신'(shoes, RSV ; sandals, NTV)은 '거룩'과 상반되는 세상의 온갖 죄악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장소에 신을 신고 서 있을 수 없었다. 출 3:5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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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단 강을 도하한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서기 앞서 다시 한번 기본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성군(聖軍)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를 다지고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장은 크게 길갈에서 할례를 받음(1 - 9절),  유월절을 지킴(10 - 12절),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남(13 -1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요단 강을 도하한 후(3, 4장) 가나안 땅에 진입하자마자 여호수아응 그 땅을 정복하고 그곳의 거민을 쫓아내기 위한 준비를 곧바로 착수하게 된다. 그  준비로서  그는 율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1:7 - 18)무엇보다도 먼저 율법 준수부터 시행하고자 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40년 동안 마땅히 지켜야 할 율법의 상당수를 지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특별히 두 가지의 율법을 지키려 했는데 그것은 곧 할례 의식과 유월절 의식이었다.  이 두 의식이 율법에 설명된 대로 실시되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다.  그분께서 직접 군대 장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족속들을 쫓아내어 주실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6장에서부터 시작되어 12장에서 종결되고 13장에서부터는 정복한 가나안 땅의 분배에 대해서 기술되기 시작한다.

1. 할례 시행(5:1-9)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 도하 후 길갈에서 할례를 받는 장면이다.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모든 왕들은 이스라엘의 요단 강 도하 소식을 듣고 겁에 질리게 된다(1절).  

그들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주시해 왔으며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쉽게 건널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요단 강까지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쉽게 건너게 되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가나안 족속이 무서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한다(2-9절).  

그 중 2, 3절은 하나님의 분부를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할례를 실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4-9절은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할례를 받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주지하다시피 '할례'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나타내는 의식이다<창 17:1-14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그런데 가나안 성읍들을 향해 돌진해야 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할례를 요구하신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제 이에 대하여서는 바로 뒤이어 나오는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요단 강 도하 후의 할례의 의의(意義) - 이스라엘이 할례를 행한 때는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이므로(4절) 일견 할례를 행하기에는  적절한  때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왜 하필이면 지금 행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잇다.  과거 할례의 고통으로 인해 몰살당했던 세겜족의 경우처럼(창 34:15-25)  이스라엘이 지금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아무리 가나안 거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더라도 이 소시까을 듣고 그들이 기습을 해오면 큰 피해를 입을 공산(公算)이 컸다.   차라리 요단 강 도하 전에 이 일이 시행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지금 시행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가나안 땅, 이 땅은 아브라함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땅이었다<출 3:16-22 강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바로 이러한 땅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 주는 외적인 표시인데(창 17:10-14), 가나안에 들어간 그들로서는 반드시 성별된 민족임을 인식해야만 했다.

 물론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 부적격자인 듯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군대를 총지휘하는 장군이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도 적어도 자신의 병력보다 몇 배로 우세한 병력을 가진 적을 앞에 두고 백성들에게 할례를 시행한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우리의 인간적 생각과는 달리 가나안 정복 전투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무엇보다 먼저 정립되어 있어야 함을 알고 있다.  

즉 여호수아가 두려워했던 것은 가나안 족속의 병력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할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당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였던  것이다.

2. 유월절 준수와 가나안의 첫 소산(5:1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한 데 이어 유월절을 지키며(10절), 애굽을 탈출한 지 40년만에 처음으로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는 장면이다(11절).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먹었던 만나가 더 이상 하늘로부터 내리지 않은 데 대한 기록이다(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진입하자마자 두 가지 의식을 행하였는데, 첫번째는  앞에서 설명되었던 할례 의식이며, 두번째는 본문에 설명되어  있는  유월절  의식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의 하나로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출 12:14 ; 21:24, 27).  

그러나 그들은 출애굽  이듬해에 시내 산에서 두번째의 유월절을 지킨(민 9:1-14) 후로는 한번도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는데, 요단 강을 건넌 지금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다.

 이 유월절 의식을 지키는 것은 할례 의식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축제  행위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을 했던 일을 기념하는 이 유월절 축제를 지키면서, 애굽 군대를 물리치고 기적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보호해 주셨던 그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도 함께 하여 가나안 군대도 능히 물리칠 것을 확신하였다.  

아마 인간적으로 볼 때는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듯 해 보이는 이러한 할례 의식과 유월절  의식은  오히려 요단 강 도하의 기적으로 압도당한 가나안 족속들의 기세를 더욱 꺽어버리는 역설적인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부터 먹기 시작한 만나는(출 16:15)  40년이  지난 해의 정월 17일에 이르러 중단되었다(11, 12절).  

험난하고 메마른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의 소출을 대하게 된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초자연적인 음식 공급 방법이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나가 그친 사실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맹목적 의뢰를 용납하시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Q께서는 이적을 통해서라도 이루어 주시지만 그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각자 열심과 성의있는  노력으로  해결하길  요구하신다.  

 (2)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양으로 채워 주신다(마 6:8 ; 빌 4:19).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에게 향하신 Q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혜롭게 분별하여 Q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받은 바 달란트를 썩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마 25:24-26).

3. 여호와의 군대 장관(5:13-15)

   할례 시행(1-9절), 유월절 준수(10-12절)등과 같은 일련의 의식들을  거행함으로써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한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길갈에서부터 여리고 부근에 이르렀을 때 발생한 일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 칼을 손에 빼어 들고 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나게 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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