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1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12_여자와 사내 아이_하늘에서 축출되는 용_대환난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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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2장....[585. 내주는 강한 성이요]  [586. 어느 민족 누구게나]


***Q의 진전된 계시로서 그분의 최종적 갈망은 성전의 최종적 궁극적 완성으로서 지성소 자체이면서 성전인 새 예루살렘을 갖게 되는 것인데, 거기서 Q은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안에 계실 것임,


***그대는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 일편단심인가, 유일하게 목숨까지 포함하여 내어드릴 만큼 절대적으로 사랑하며 친밀하게 내밀한 하나됨의 교통 안에서 살고 있는가를 매일 점검해 보라...대체적으로 볼 때, 분명히 어느정도 여지가 있는 바 상대적이긴 하지만, [과연 그대가 누구의 달력을 사용하며, 누구의 표지로 살고 있는가]를 보면 그대가 어디에 속한 자인지 알 수 있음을 명심하라..


[주여.저는 지금 당신의 말씀을 기도로 읽고자 합니다. ...엡6장 묵상하라..

주님을 간절히 구합니다. 생명의 빛을 비추소서.

주여, 오직 주님 뜻 깨달아 알며, 제한 받지 않으시는 살아 생동하는 영원한 생명말씀, 주님 말씀으로 적셔지고 점유되며 충만-변화되며 전 존재에 새겨지도록, 주님 말씀하시는 바 그 말씀으로 내 의견을 죽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마음의 심정과 생각과 지혜와 계시를 열어 공급해 주옵소서

주님의 정결케 하시는 보혈을 부으사 주께 합당하도록 열정적 갈망 가운데 사랑 드림으로 몰두하며 몰입되며 주님 열어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바로 그대로 깨달아 알도록 도우소서.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주님 자신의 호흡해 내신 바요,  하나님의 생명 충만한 기름부음의 말씀이라, 모든 차원과 우주를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유일한 분으로서 당신의 주권대로 안배하시며 이끌어 가시나이다.

주여, 다함없는 그 사랑의 열정으로 올인하심, 그 안아주심과 친절하심의 공급, 지고지선의 극진한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사 믿는 우리들마다에게 내어주시고, 자신을 그 영의 기름부음으로 공급하여 주셔서 우리의 생명 능력, 풍성-부요-충만이 되게 하심 통해 주님을 믿는 이마다 주님으로, 주님의 어떠하심으로 조성되게 하려 하심 이루소서.

하여 진정한 사내 아이요 초기의 이기는 자녀 되게 하시려는 바, 열어 보이사 공급해 주시는 말씀마다 한치의 오류도 없는 진리 말씀인 것을 인정하며 오늘 주님을 살아낼 바 나의 절대적 필요임을 인정하고 앙망합니다.  

바라오니, 나로 더 전진하게 하소서, 나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옵소서, 

바로 지금 오늘부터 더 새롭게,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음 통해 주님의 능력으로 서서 강건해지며,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풍성 깨닫고 감격함으로 감사하며 주님을 누리는 삶, 

주님이 그토록 바라시며 예비하신 그대로 합당하게 예비되고 변화되고 조성되고 깎여짐 감수함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함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계시록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 가능하다...]

.. 첫째 부분은 1-11장까지로서,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에 대한 완전한 일반적 개요를 보여주는 제시부인데, 1장에는 그리스도의 승천직후 하늘의 광경을 볼 수 있고, 11장에서는 영원한 왕국을 볼 수 있다.

...둘째 부분인 12-22까지에서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영원 미래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과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두번째 부분 시작이 <한 여자>로 시작되며 마침도 <한 여자>로 끝나고 있는 바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둘째부분은 실지로는  이 여자의 역사이다]   ::: 곧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아내요(21:9)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구약의 성도들 +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 신약의 성도들 모두로 구성되어 있음을 본다.

**계시록 둘째부분의 양 끝 사이에는, 21장과 22장에는 어린 양의 아내인 새 예루살렘이 있고, 19장과 20장에는 신부와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있다..20장에서의 신부는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사람들이기에 19장과 20장에서는 신부이고 21장, 22장에서는 아내이다.  

**한편 17장과 18장에서는 이 참된 여자의 모조품이자 예루살렘의 모조품인 음녀 큰 바벨론을 본다. 

<이제, 13장에서 16장까지를 요약해 보자>

**12장과 13장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3년 반 혹은 1260일이다. 13 : 5절에서 적그리스도가 3년 반, 또는1260일, 또는 마흔 두 달 동안 행동할 권세를 부여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2:6, 14절은 그 여자가 [뱀의 낯을 피하여] 1260일 혹은 한 때 두 때 반 때 동안 광야에서 양육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13장은 12장에 연속된 추가부분으로서 붉은 용이 여자를 핍박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 시기 동안에 짐승 곧 적 그리스도가 바다에서 나와서 성도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항하여 싸우는데 있어서 그 용과 하나될 것이다.

**14장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이 짐승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땅 위의 사람들에게는 그분의 백성을 핍박하는 적 그리스도를 따르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15장에서는 짐승과 그의 형상을 이기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 노래하고 주를 찬양하는 수 많은 성도들에 대한 이상을 본다. 

**16장은 하나님께서 짐승의 온 왕국을 멸하시려고 일곱 폭탄- 마지막 재앙의 일곱 대접-을 투하하실 때인 이 시기의 마지막 때를 다루고 있다. 이상의 내용들이 계시록의 둘째 부분에 대한 요약이다.


[우주적 교회, 곧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 건축함에 있어서 선결요건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은], 주 앞에선 참되게 그리스도를 믿는 단독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것만 받아들이기, 곧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칠 배나 강화된 그 영으로 주입받음 통해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과, 풍성-부요-충만-능력을 공급받아 그로 인해 살면서 그분으로 적셔지고-점유되고-충만케되고-변화되고 새겨짐 이루고,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그가 원하는대로 공교하게 정금 한달란트를 쳐서  정금등대를 만들어 내듯이, 또한 여러 조각의 기둥들을 서로 연결 시켜서 하나의 큰 기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요철부분을 만들어 연결시켜야 하기에 그렇게 만들어 하나의 건축을 위해 잘라내고 깎여 나가야 하는 부분이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땅에서 마땅히 겪게 하시는 바, 환난-곤고-핍박-기근-적신-위협-칼 등의 모든 고난으로 주어지는 바] 전지전능하시며 완전한 사랑-생명 그자체이시며 극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손의 다루심에 순복함 통해 자기를 온통 맡겨드림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결코 잊지 말자.

[큰 표적이 계시된 곳은 땅이 아니라 하늘!!, 하늘에 보이는 큰 표적, 하늘에 있기에 어둠이 아니라 빛 안에서!! 이미 완전히 해방된!!, 우주적이며 단체적인 한 여자!!.].

...이 여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유대인)들도 포함되는 바>, 예수의 간증을 가진 (신약의 믿는)이들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이다...또한 요셉의 꿈에서 해-달-열두 별과 요셉 자신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를 상징했기에 그 꿈의 원칙을 따라 여기서 해-달-열두 별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를 상징한다고 봐야 함 ...<몸을 두른>해는 신약시대에 있는(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믿는이들인 교회, 곧 그리스도는 머리-해요 우리는 몸-해인바) 하나님의 백성을, <발 아래의>달은(모세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율법아래 살았던 자들인) 구약시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여자의 머리에 면류관으로 쓰여 있는> 열두 별은 (아담부터 모세까지 살았던)족장들과 열두 사도들을 상징하는 바, 이 여자는 결국 모든 시대에 걸쳐 빛을 발하는 빛나는 우주적 교회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마다 그 자신의 성별에 무관하게 모두 주님 보시기엔 여성이다!!..오직 유일한 남성은 그리스도뿐!!,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뿐이다!!]

...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는 우리 모두는 여성이요 우리의 유일한 남편은 그리스도이시다.

[렘31: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사54: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호2:19, 20...*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신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고후11: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마9: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요3: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계12장은 반드시 창3장에 의해 해석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먼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먼저 자기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지 않는 그 누구도 결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룰 수 없기에 그대는 먼저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고 겸손히 이렇게 말씀드려야 함이 옳다.

[주여, 나는 남자가 아닙니다. 주여 당신만이 남자이시고 나는 여자요, 여성의 일부이기에 나는 응당 내 남편이신 당신을 내 머리로 삼고 당신을 순종함이 옳습니다]

창3장에서 작은뱀 한마리가 여자를 통해 슬며시 들어왔다..

간교한 자인 뱀은 그가 누구를 중독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사탄은 여자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쓰임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손상시키려고 들어왔었다. 

뱀이 여자를 손상시킨 후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시려고 개입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씨)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 :15)

창3:15에는 여자와 뱀과 씨가 있고, 계12장에는 더 큰 규모이긴 하지만 동일한 세가지 것들이 있다. 

여자는 지금 더욱 커졌고 뱀은 큰 용이 되었으며, 여자의 씨도 역시 사내 아이로 발전되었다.  

창3:15에서 처음 보여지는 이 적대감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다. 

뱀과 여자 사이에 적대감을 둔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계12장의 여자는 창3:15의 여자로 시작되었다. 

이 우주 안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크고 우주적이며 광채나는 한 여자를 보라.  

이 여자 앞에는 그녀를 대항하여 싸우고 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켜 버리려고 노리고 있는 용 한 마리가 있다. 

오늘날 우주 가운데서 오직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전쟁은 바로 여자인 하나님의 백성들과 용인 뱀 사이에 있는 전쟁이다. 지금 믿는 우리 모두는 여자의 가장 큰 부분이며, 우리 목전에는 용 한 마리가 있다.

창3장이 뱀이 어떻게 계12장의 용이 되었는가. 많이 먹어 삼킴으로써 그렇게 되었다.

아담 이래로 많은 이들이 먹힌 바 되었고 그 뱀은 지금도 우리를 삼키려고 애쓰고 있으나 결단코 우리는 먹히지 않을 것이요 오히려 그에게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우리가 흙에 속하고 땅에 속해 있는 한  뱀에게 먹이가 될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하늘에 속했다면 뱀은 우리를 삼킬 수 없다. 오늘 우리는 흙이나 땅에 속해 있지 않으며, 하늘에 속해 있고, 광채 나는 여자의 일부이다. 

우리 믿는이는 한사람 한사람마다 우주 가운데 여자와 용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에 대한 이상을 반드시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를 핍박하는 자마다 그 용과 하나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로마가톨릭은 용과 하나이다.

**12장의 여자의 영광을 감상해 보라..

그 여자는 시공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 천상적 빛 안에서 빛나고 있는데, 광채나는 달 위에 서 있으며, 광채 나는 별들 아래에 있으며 광채나는 해를 옷 입고 있기에 완전히 광채찬란한 빛에 싸여 있으며, 그 어떤 어둠 속에도 있지 않는 바, 그녀의 광채는 천상의 것, 하늘에 속한 것이다.

**(롬13: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즉 밤이 깊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님은 [요11:9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하고 계심을 기억하자... 즉, 성경의 진리는 항상 두 면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하고, 영적 측면에서 깨달음을 추구해야 하리라.. 양면(긍정적-부정적)과 양측(그대와 상대), 곧 절대성과 상대성을 반드시 고려해서 이해하는 탄력성을 결코 잊지말라.. 

참되게 믿는 우리는 보다 큰 낮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지금은 작은 낮에 살고 있는 바, 참되게 믿는이는 누구나, 밤중에 빛나는 별들이요(1:20), 동시에 낮의 해의 일부분임은 틀림 없다.

**17장을 보라.  일곱 개의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을 볼 수 있는데 용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의 머리와 뿔이다(12:3, 17:3). 

이 짐승 위에 자주 빛과 진홍 빛 옷을 입고 금-보석-진주로 치장한 한 여자가 앉아 있다(17:3-4).

변절한 로마 가톨릭은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로서 광채 나는 여자를 핍박함에 있어 용과 하나이다.  

회심하기 전의 다소의 사울은,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로 진실로 달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고, 주 예수님은 그들을 [뱀들]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었다(마23:33). 그들은 창3:15에 언급된 바와 같이 [뱀의 씨(후손)]이었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자, 사울은 회심했다!!

**종교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교회를 핍박하는 한 그대는 용의 일부이거나 적어도 용과 하나이다. 

고대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자기들이 용과 합력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그분의 경륜을 손상시키고 좌절시키려고 싸우고 있음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반드시 주의해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 

교회를 향한 그들의 태도가, 그들이 누구이며 또 지금 그들이 진실로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한다.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더라도 누구나 용과 하나이며, 하나님의 경륜에 대항하여 용의 편에서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교회나 성도를 비난하려는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 그것이 주로부터 온 것인지를 여쭈어 보고, 용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대적해야 한다!!... 

[사탄아,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예수님이름으로 너를 대적한다. 마땅히 있어야 할 바, 네 목적지인 무저갱으로, 불못으로 썩 꺼져 버려라.]

이른 바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 하는 어떤이들은 교회를 미워하며 교회가 붕괴되는 것을 몹시 보고싶어 하기도 하며, 교회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교회에 대해 악한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들은 실지로 교회를 반대하고 있으며 교회를 손상시키고 좌절시키려고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는 바, 이것은 용의 악한 영으로 인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용과 하나이다.  만일 그들이 용의 일부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들은 용의 편에 선 것이다. 

중립적 위치란 있을 수 없다. 오직 두 편-여자 아니면 용-이 있을 뿐이다. 

그대는 어느편에, 누구에게 속했는가?... 

늘 조심하여 스스로를 성찰함 안에서 주께 여쭈며 앙망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여자와 사내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필요]
**먼저 아담으로부터 영세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체, 우주적 교회인 여자, 어린 양의 아내, 그리스도의 신부는  최우선적으로 전심으로 힘써 취해야 할 마땅한 행위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순결한 여자가 됨이 최우선적이다. 
그런 다음, 그 다음 단계로  사내 아이가 되어야 한다. 
계12장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가 이 여자를 통해서 사내 아이를 낳는 것임을 본다. 
그 여자는 하나님이 이 사내 아이-하나님이 그분의 적을 패배시키고 그분의 왕국을 가져오기 위해 사용하실 자-를 낳을 수 있는 수단이었으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을 이루시고 그분의 목적을 완수하시기 위해 이 사내아이를[여자가 아니다!!] 쓰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엄청나게 중요하고도 큰 문제이다. 
그분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는 개인적인 그리스도가 필요할 뿐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로서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인 여자가 필요하다.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우주적이며 단체적인 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될 수 있도록 그분의 적을 패배시키고 그분의 왕국을 가져 올 사내 아이를 필요로 하신다. 그러한 사내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우주적 교회로서 여자가 필요하시다.
[그 여자의 신분과 위치] 
사54장에서 하나님은 심지어 그분 자신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남편이라 말씀하신다.  <남편은 여자의 머리이다!!>
성경에 따르면, 여자가 합당한 아내가 되려면 반드시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미 전술한 바 그대로, 이 우주 가운데 유일한 남자는 하나님 뿐이다.  
우주적인 남자요 우주적인 남편이신 한 분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배필이다.  
그분의 아내로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그 분께 순종해야 한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요, 그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임을 반드시 기어해 두자..>
흔히 우리는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아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방법과 의향을 가지고 있다.  
흔히 우리는 그분의 뜻과 의향을 우리의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상 우리가 그분을 우리늬 남편으로 삼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지도 않음을 의미한다.
또한, 아내라면 수태하기 위해 자기 남편으로부터 그 무엇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은 여자가 남편을 위해서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속한 것을 받기 위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순종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계시한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하는 그 어느것도 자기 남편에게 속한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사실상 아내의 의무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기보다 그녀의 남편을 위해 무엇을 낳기 위해 자기 남편에게 속한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계12장에 있는 큰 표적에서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을 위해서 무엇을 행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음을 주의하라. 
그녀는 단지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남편을 위해 무엇을 낳기 위해 그녀의 남편에 의해 잉태되었다. 
교회의 의무는 주로 그리스도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의무는 그리스도께 속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로 인해 잉태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그 무엇을 낳기 위한 것이다. 
12장의 여자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로, 그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한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속한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와 잉태되어 그분을 위해 <사내 아이를> 낳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염원이자 믿는 우리의 염원을 완수하기 위해<사내 아이 산출>이 필요하고, 이 사내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께 속한 그 모든 것[곧 칠배나 강화된 그 영의 기름부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이상은 전적으로 오늘날 기독교 안에 결여되어 있는 극도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순종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의 관념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당한 여자로서 우리는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 속한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을 우리의 남편께 순종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잉태하게 될 것이고 무엇인가가 우리를 통해서 산출될 것이다.
[간음의 의미] 
간음이란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마 우리 중 어떤 이들을 포함하여 간음을 행하고 있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남편이심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른 수 많은 것에 순종할 때 간음을 범한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빛과 이상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에 이런 류의 간음이 만연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정결한 아내로서 당신은 자기 남편 외의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느것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남편 외에 다른 누구로부터 뭔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간음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를 보라! 매주, 매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외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교훈들과 교리들과 관례들과 형식들을 그저 무심코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된다. 
JC 외에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은, 심지어 그것이 선하고 성경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영적 간음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받아들여야 하고 오직 그분만이 우리로 잉태하게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사내 아이란 그리스도의 요소로 흠뻑 적셔진, 여자에 속한 소수로서, 여자의 강한 부분이다]

...사내 아이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사탄과 싸우며 결국 그를 이기는데, 그들은 가진 바 세 가지 것들, 곧 어린양의 피(구속하는 피-<모든 생각과 인식들을>덮어 보호하며 치료하는 효능 있는 피-싸워 이기는. 격퇴시키는 피), 그들의 증거하는 말, 죽기까지 자신의 혼 생명<혼목숨>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사탄을 이긴다.

...아담이후부터 지금의 교회시대까지 모든 시대에 걸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강한 부분으로서 죽기까지 자기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증언한 자로서,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하여 은밀하게, 대환난이 시작되기전에] 보좌로 들림받는 이기는 이들로서...여기에는 밤하늘의 별들로 묘사되는 모든 족장들도 함께 들어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함>, 미가엘이 이끄는 하늘의 군대와 함께 [마귀를 하늘에서 축출하기 위한] 하늘의 전쟁에 참여하여 마침내 마귀와 그의 수하들을 땅으로 내던지는 일에 참여하는 자들로서 그들의 특성은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어디로든지 따라가는 이들임.. 

...말씀과 그 안의 영으로 적셔지고 점유되고, 충만케 되어 <옛것은 신진대사적 변화를 통해 제거되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어떠함으로 변화 되고 새겨짐, 곧 체득한 바 감동-감격-감탄-감사 경배 찬양함으로, 매료되고-매혹되고 황홀한 열락 가운데 그분의 기름부음<곧 그 영의 움직이심>따라 자연스레 하나되어, 어린양의 인도하는데로 어디든지 따라가며 일편단심으로 행하면서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몸의 지체로서 자기를 내어주는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자들이 거기에 합당한 자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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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2:11.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1 And they overcame and conquered him because of the blood of the Lamb and because of the word of their testimony, for they did not love their life and renounce their faith even when faced with death. ]

----구속하는 어린 양의 피, 그의 보혈을 적용함으로써---

그 무엇을 하더라도 그 모든 일에 있어서 오직 어린양의 피를 적용함으로써 사역하도록 하라...어린 양 예수의 피가 전능의 능력이요, 만사 해결하는 능력 근원이다. 바로 그 피에 의해 사역하도록 하라.

체험적 측면에서, 양심에 빛 비춤이 있은 후 회개하고 씻는 보혈, 구속의 보혈, 그 모든 것을 이긴, 격퇴하여 이기며 주님을 누리며 동행하게 하는 영원한 효능의 보혈  능력을 따라 주의 피를 적용한다면, 당연히 평강이 회복됨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주님의 피를 적용한 후에도 여전히 정죄감이 남아 있게 된다면, 그것은 마귀의 참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이름으로 대적하라..이렇게 선포하라.. 

<마귀야 너를 예수이름으로 대적한다. 이제 그만 멈추고 무저갱으로 썩 꺼져라., 네 악한 계교가 드러났으니, 나는 더 이상 자백하기를 거절한다. 이것은 내 하나님이 내 양심에 비추시는 빛 비춤이 아니라 너 마귀, 곧 너의 참소일 따름이다. 나는 비록 온전하지는 못하나 구속하신 어린양의 그 피가 나의 온전함이시다, 나는 너를 이긴 형제들 중 하나이다. 내가 어린양의 피 아래 있고 그 피가 나의 온전함이니 너는 내게 관계할 어떤 여지도 없다. 내게서 떠나가거라.아멘>

---<마귀가  주님께 심판 받았음을 증거하는>나의 증거하는 말로 소리내어 대적함으로써---

피는 사실이요, 말은 전파임을 기억하라.

피는 우리 죄들이 사함 받았고 제해졌으며, 우리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사탄은 심판 받았고 그의 머리는 부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피를 적용할 때 이 모든 사실을 적용하는 것이다. 피를 적용한 후에 우리는 사탄에게 그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이것이 원수를 이기는 길이다.

나의 강건함은 나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피의 어떠함에 달려 있으니, 나의 어떠함을 보지 말라. 오직 피의 어떠함 만을 보고 그대로 선포하며 적용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라..

Q의 어린 양 구주의 십자가 보혈은 그 어떤 종류의 해충일지라도 박멸하는 만능의 살충제이다!!

<귀신들아, 너희는 너희 왕 사탄이 우리 주 JC께 완전히 패배했음을 상기해야 한다...너희들이 있어야 할 무저갱으로 썩 꺼져라>

<사탄아 너는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이미 심판 받았고 너는 이제 무저갱으로 가라, 너의 종착지는 불못이다...너는 잠시 네게 주는 메시지를 끝낼 때까지 여기 있어서 남아 있거라... 그 후에라야 너를 풀어주겠다....다시는 내게 오지말아라... 네가 다시 온다면 그만큼 더 길게 네게 설교하리라.>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은 최우선순위는 먼저 무엇보다 사탄이다!! 먼저 원수에게 주의 말씀 그대로 전하고 선포함이 곧, 우리의 증거하는 말이다!!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의 자아가 바로 사람의 혼 생명<혼 목숨>이다(마16:23-24)...혼 생명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흙이므로 사탄의 먹이가 되기에 알맞다.....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탄은 먹이인 흙이 없기에 굶어죽게 된다. 또한 우리 혼생명이 죽음에 넘겨질 때 사탄도 역시 죽임을 당한다. 이야말로 여자의 보다 강한 부분인 우리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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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적극적 의미에서 아내는 항상 남편을 대표하듯이....적합하고도 적절하게 남편을 대표하는 아내, 이런 충성스러운 아내는 잔실로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바 그 얼마나 큰 기쁨인지..> 창3장에서 사람이 타락한 이래로 Q의 백성들의 대표이자 또한 Q자신도 대표하고 있음....여자 앞에는 Q의 원수를 상징하는 용이 잇는 바<완전히 그 정체와 궤계가 탄로났고 이미 구주 십자가로 심판 받아 처리되어 모든 날카로웠던 이빨과 손발톱이 다 빠져버렸고 머리는 구주에 의해 깨뜨려져 있고 겨우 으르렁거릴 수 있을 뿐이로되, 그 으르렁거리는 마비시키는 힘이 아직도 여전하기는 하다> , 전세기에 걸쳐서 여자와 뱀, 곧 용 사이에 전쟁이 항상 계속되어 왔음..,이것이 우주 가운데 펼쳐진 이상의 참 상황임 ...그러므로, 여자의 강한 부분에 속한 모든 이들마다 사탄에게 말씀을 전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럴 때 그 전해지는 말씀이 사탄을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하며 전신을 마비되게 할 것이다... 전에 우리는 죄인들이었으나 지금은 영광스러운 여자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 여자가 그 얼마나 광채 찬란한 지를 보라. 그 여자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빛-해와 달과 별들의 빛-이다. ..이 영광스러운 여자 바로 앞에는 피를 흘리며 살해하는 용이 있다. 

우리는 그를 대항하여 싸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보이신 바 그 이상에 따르면, 온 여자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 속의 보다 강한 부분이 용을 대항하여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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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 건축에 있어서 하나님의 중요한 원칙!!, 

하나님은 먼저 양을 확보하시고, 이제 그 가운데서 질적 측면에서 합당한 것들만을 특별히 골라 선발해 내심에 주의하라!!...[마22: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하여 모두 강한 자라는 것은 아니며, 모두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강한 자, 이기는 자, 곧 <사내 아이>가 되는 요건은 절대적으로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즉,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더 많이 참여하느냐, 곧 주님을 얼마나 바라보느냐로 그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서둘러서 여자 안에서 성급하게 스스로 나오려 하지 말라...아무리 강해졌다 하더라도 자신을 여자로부터 분리시키지 말라...그결과는 유산일 뿐이다.....해산할 때가 오기까지 여자 안에 남아 있으라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에 합당하게, 소극적인 모든 것은 처리받아야 하며 더 기도하고 주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명 안에서 더 성장하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자라서 더욱 생명력이 충만함 안에서 오직 내주하시는 기름부음에 주의하면서 하나님의 갈망과 그분의 움직이심과 그분의 경륜에 온전히,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내어드림으로써 전진하며 더 강해져야 한다.

....사내 아이 안에 있다면, 정녕 그대는 <말씀을 아무리 많이> 먹고 마셔도 늘 목마르며 배고플 것이다. 진정 목마르고 배고프다면 한담과 무의미한 하찮은 말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꾸준히 애써 노력한다면> 사내 아이에 속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참되게 믿는이로서는 그의 일상에서 여자와 용, 곧 뱀을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아벨은 여자의 자손이요 여자의 부분이었고, 가인은 그를 핍박했던 바, 창3장에서 하와를 손상시켰던 그 뱀이 창4장에서는 가인 안으로 몰래 기어 들어와서 그를 뱀의 부분으로 만들었기에 아벨을 살해한 것은 가인이 아니라 사탄, 곧 뱀이었다.(요8 : 44)...이러한 구도가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여자의 부분이었던 예레미아와 엘리야, 그들을 반대했던 뱀의 부분들인 동시대 사람들, 여자의 씨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했던 <뱀의 씨요 부분이었던>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교회를 박해하고 잔해하는 다소의 사울은 뱀의 부분이었으나 주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회심하였던 바 여자의 부분이 되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뱀은 큰 용이 되었으며 그 여자를 핍박하는 데 있어서 모든 사단의 회당(2:9) 역시 용의 부분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사내 아이이다. 바로 우리 앞에 용이 있다. 심지어 말하고 있는 중에도 내 앞의 용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보다 강한 분을 가겼으므로(요일4:4)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용은 물을 토해낼런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물들을 삼켜버리기 위해 땅을 사용하실 것이다.(12:15-16). 사내 아이의 일부분의 첫 번째 사람은 아벨이었다. 모든 순교자들 역시 사내 아이의 일부분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모든 죽은 이기는 성도들은 <대환난 이전에 부활-휴거될 바>사내 아이에 포함된다.

***생각해보라. 여자가 사내 아이를 잉태한 기간은 어느덧 거의 6천여년이 흘렀다.  

사내 아이를 막 낳으려 하는 여자 앞에서 용이 된 뱀 한 마리가 서 있다. 

이 교활한 자는 수세기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을 손상시키려고 계속 싸워 왔다.  

그는 이것을 성취하려고 온갖 수단-유대교와 천주교를 포함해서-을 사용했다, 

Foxe는 그의 순교사에서 로마천주교가 로마제국보다 더 많은 성도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더 심해진 느낌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육적인 사람들이 영적인 사람들을 핍박한다고 바울은 말한다(갈4:29)   

육신적인 이들은 용은 하나이고 영적인 이들은 사내 아이를 밴 여자 안에 있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우리가 수 많은 반대와 싸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로 그 여자라는 표적이다.

만일 우리가 속에 강한 사내 아이를 밴 그 여자가 아니라면 반대가 있을 리 없다....동시에, 큰 의미로 볼 때, 실상 사내 아이는 모든 세대에 걸쳐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증거하되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순교하고> 부활한 이기는 자들임을 명심하라.

....당신이 이기는 자로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죽는다면 당신은 부활하여 사내 아이가 될 것이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 있는 이기는 자라면 14장에 나오는 첫 열매 가은데 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내 아이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 있는 이기는 자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에 부활하게 될, 죽은 모든 이기는 자들을 대표한다. 이 부활은 그들이 사내 아이로서 출산되는 것이리라.


===여자와 용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돋는 해는 JC, 구주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복음 상징..천년왕국에서는 칠 배나 더 밝아질 것..사30:26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를 옷 입은 한 여자[=Q의 백성들의 총체인 교회, 구약시대의 믿는이들을 포함하여, 신약의 구속된 Q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율법 상징.. 모세로부터 초림 그리스도까지의 기간...달의 존재는 그의 빛 근원인 해가 있음을 입증하는 표적이기에, 해가 도래할 것을 마땅히 대망했어야 했다.]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이스라엘 12지파들을 포함한 아담~모세에 이르는 족장들 시대]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사내 아이, man-child, male child]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 바다 짐승인 적 그리스도가 사탄의 화신인 증거..<13:1, 17ㅣ10-11>.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drag away] 땅에 던지더라[=fling to]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산출하니, <부활 통해 낳은 바 됨>..주 예수님은 부활 통해 Q의 맏아들로 태어나셨음..아담이후로 죽은 모든 이기는 성도의 <대환난 전>부활은 바로 사내 아이의 출산/산출됨이다!!]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실지적인 <광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양적 측면에서는 모든 불리한 환경 조건에도 불구하고 Q을 추구하며 만니기 위해 <삶의 부차적인 즐거움을 내려 놓고 Q을 추구함의,  고독하게 거하는 모든 곳마다 광야일진대, 거기에는 다바르 곧 Q의 말씀이 있는 곳,  Q 말씀, 말씀하시는 Q을 직대하며 그를 닮아감이 있는 곳을 의미함> ::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도, 큰 음녀 바벨론도 이미 거기에<말씀이 있는 곳인 광야에...계17:3>있었는데, 대환난기간인 1260일간 교회는 보호-양육받으나, 큰 음녀는 <음행의 포도주로 조종-지배-군림하여오던<구 위에 타고 있었던 바>열뿔과 적그리스도에 의해 갈갈이 찢겨 상하고 불에 태워지게 된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교회의 구원의 대장이신 JC의 표상]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참소자/비방자/원수.enemy<외부>]라고도 하고 사탄[=대적자. adversary <내부>]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Dragon=drag-on...<미혹하여>타락과 파멸 안으로 끌어 당기는 자]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그리고 움직임에 제한 받음]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초기의 이기는 자>가운데 있어서 살아 있는 채로 보좌로 들림 받도록 <합당한 성숙에 이르도록> 힘써 분발함으로써 예비되어야만 하리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Q의 구출하며 보호하시는 힘과 능력을 상징..신32:11]를 받아 광야 자기 곳[=Q이 마련하신 피난처...대표적인 곳이 미국이었다]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Q백성 멸절 위해 소집된 무수한 군대를 상징..그 대표적인 것은 2억의 마병대임..16:13, 14]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후3년반 동안 <땅을 진동시키는>많은 지진들이 있을 것을 의미..민16:31]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사내 아이를 제외한, 여자의 더 약한 부분들...이들은 혹독한 대환난을 그대로 겪으면서 참아내며 통과해야 한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유대인들]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신약의 믿는 이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그 짐승과 거짓선지자 소환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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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12   Amplified Bible

===The Woman, Israel

1 And a great sign [warning of an ominous and frightening future event] appeared in heaven: a [a]woman clothed with the sun, with the moon beneath her feet, and 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2 She was with child (the Messiah) and she cried out, being in labor and in pain to give birth.

===The Red Dragon, Satan

3 Then another sign [of warning] was seen in heaven: behold, a great fiery red dragon (Satan) with [b]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on his heads were seven royal crowns (diadems). 

4 And his tail swept [across the sky] and dragged away a third of the stars of heaven and flung them to the earth. And the dragon stood in front of the woman who was about to give birth, so that when she gave birth he might devour her child.

===The Male Child, Christ

5 And she gave birth to a Son, a male Child, who is destined to rule (shepherd) all the nations with a rod of iron; and her Child was [c]caught up to God and to His throne. 

6 Then the woman fled into the wilderness where she had a place prepared by God, so that she would be nourished there for a thousand two hundred and sixty days (forty-two months; three and one-half years).

===The Angel, Michael

7 And war broke out in heaven, Michael [the archangel] and his angels waging war with the dragon. The dragon and his angels fought, 

8 but they were not strong enough and did not prevail, and there was no longer a place found for them in heaven. 

9 And the great dragon was thrown down, the age-old serpent who is called the [d]devil and Satan, he who continually deceives and seduces the entire inhabited world; he was thrown down to the earth, and his angels were thrown down with him. 

10 Then I heard a loud voice in heaven, saying,   “Now the salvation, and the power, and the kingdom (dominion, reign) of our God, and the authority of His Christ have come; for the [e]accuser of our [believing] brothers and sisters has been thrown down [at last], he who accuses them and keeps bringing charges [of sinful behavior] against them before our God day and night. 

11 And they overcame and conquered him because of the blood of the Lamb and because of the word of their testimony, for they did not love their life and renounce their faith even when faced with death. 

12 Therefore rejoice, O heavens and you who dwell in them [in the presence of God]. Woe to the earth and the sea, because the devil has come down to you in great wrath, knowing that he has only a short time [remaining]!”

13 And when the dragon saw that he was thrown down to the earth, he persecuted the woman who had given birth to the male Child. 

14 But the two wings of the great eagle were given to the woman, so that she could fly into the wilderness to her place, where she was nourished for a time and times and half a time (three and one-half years), 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serpent (Satan). 

15 And the serpent hurled water like a river out of his mouth after the woman, so that he might cause her to be swept away with the flood. 

16 But the earth helped the woman, and the earth opened its mouth and swallowed up the river which the dragon had hurled out of his mouth. 

17 So the dragon was enraged with the woman, and he went off to wage war on the rest of her children (seed), those who keep and obey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holding firmly to it and bearing witness to Him].

===Footnotes

Revelation 12:1 The woman represents the nation of Israel. The sun refers to Jacob (also called Israel, the name divinely bestowed on Jacob at Peniel Gen 32:28), and the moon to Rachel, while the twelve stars refer to the twelve tribes of Israel, originating with the sons of Jacob and Rachel (Gen 37:9-11).

Revelation 12:3 The seven heads and ten horns correspond to the heads and horns of the beast in 17:3 ff, and to those of the beast in Dan 7:7 ff as well. Daniel’s description reveals that the ten horns are ten kings who temporarily reign with the Antichrist during the Great Tribulation (cf 17:12).

Revelation 12:5 This refers to the ascension of Christ to heaven following His death and resurrection.

Revelation 12:9 The Greek for devil is diabolos, which is actually a translation of Satan, a Hebrew word meaning “adversary” or “accuser.” The Greek word additionally carries with it the concept of “slanderer.” See note v 10. 

Revelation 12:10 This is the activity of Satan from which he has earned his name (see note v 9). The activity is most clearly seen in Job 1-2 and in Zech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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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2장 (개요)

본 장의 이야기와 다음 두 장에서 계속되는 일곱째 나팔 소리로부터 일곱 대접들이 쏟아지기까지에 대한 이야기는 장차 이루어질 사건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사건들의 반복이요 재현이라고 권위 있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장차 있을 일을 사도 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신 것과 같은 의도를 지닌 것으로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지난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과거의 사건이 어떠했는지를 분명히 깨닫도록 하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예언은 일치하며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성경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본 장에서 여인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 즉 교회와 적 그리스도간의 전쟁에 대한 사실이 설명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Ⅰ. 이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된 것으로 설명된다(1-11).

Ⅱ. 이 싸움이 광야로 이동된 경위가 설명된다(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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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용(1)(계 12:1-11)

우리는 여기서 이전의 예언 즉 "내가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으로 서로 원수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이 분명히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된다(창 3:15).

Ⅰ. 사단과 그의 일당들의 음모. 

그들의 계획은 여인(교회를 가리킴)의 자손들이 "태어나자 마자" 이를 잡아먹으므로 교회의 확장을 막으려는 것이다. 

본문은 교회와 사단의 모습을 가장 적절한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1. 교회의 상징적인 모습.

(1) 이 환상에서 교회는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자는 세상에서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도들의 어머니인 것이다.

(2) "태양을 입은 자"로 묘사되고 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있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옷입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관계 속에서 교회는 영예로운 권리와 특권을 가지게 되며 그의 빛을 받아 빛나게 된다.

(3) "그 발아래는 달이 있는 것"(1절)으로 묘사된다(달은 세상을 뜻한다). 

즉 교회는 이 세상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세상을 초연하여 영위된다. 교회의 희망과 중점적인 관심은 지상의 것들이 아니라 교회가 머리를 두고 있는 하늘에 있는 것들이다.

(4)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고 묘사되고 있다. 

열두 별의 면류관은 모든 참된 믿는 자들의 영광의 면류관인 열두 사도에 의해 전파된 복음의 교회를 뜻한다.

(5) "해산하고자" 아퍼서 부르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2절). 

교회는 임신중이다. 교회는 지금 그리스도의 거룩한 후손을 해산하기 위해 고통을 받고 있다. 

교회는 죄를 깨닫기 시작한 죄인들이 회개할 때를 바라며 또한 어린아이들이 출산되려면 어린이를 낳을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힘이 있어지기를 바라면서 또한 자신의 영혼의 고통을 보기를 바라며 있다.

2. 교회의 대적에 대한 상징.

(1) "한 큰 붉은 용"으로 묘사되고 있다(3절). 

용이라 함은 힘이 이기하고 무섭게 생긴 때문이요, 붉은 용이라 함은 불길같이 성급하며 잔혹하기 때문이다.

(2) "머리가 일곱"으로 묘사되고 있다(3절). 

이것은 사탄이 일곱 언덕(山)에 거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로마가 일곱 언덕 위에 세워졌던 것을 미루어보아 이 말씀은 이교적인 로마를 뜻하는 듯하다.

(3) "뿔이 열"로 묘사되고 있다(3절). 

이는 그의 나라가 열 개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뜻한다. 아우거스투스 씨자(Augustus Caesar) 시대에 로마 제국이 이같이 열 개의 지방으로 분활되어 있었다.

(4) "그 여러 머리에는 일곱 면류관이 있었다"고 묘사되고 있다(3절). 

이것은 17장 10절에서 일곱 왕으로 해석되고 있다.

(5)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 것"(4절)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목사들과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그 본래의 기독교 복음의 자리에서 떠나게 하고 그 주어진 직분과 특권으로부터 끌어내려 무능하고 나약하게 하여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6)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 서서 그녀가 해산하면 곧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4절).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싹트기 전에 제거하여 그의 성장과 계승됨을 세상에 금지하려고 항상 방심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Ⅱ. 교회를 대적하려는 사탄의 계획의 실패.

1. 그의 계획이 실패했다 함은 여자가 "아들"을 무사히 낳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콘스탄틴 대제로 보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이 아들을 그리스도와 방불한 강하고 연합된 참 믿는 자들의 무리 곧 그리스도 밑에서 "철장으로 열방을 다스리도록" 되어 있는 믿는 자들을 가르킨다고 본다. 

이 해석이 가장 타당성을 띠었다고 여겨지는데 여기서 "철장으로 열방을 다스린다" 함은 그들이 현재 그들의 말씀 전파와 모범적인 생활로 세상을 심판하여 마지막 큰 날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자가 됨을 의미한다.

2. 그들이 실패하였다 함은 이 아이가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본문에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5절)고 하였다. 

이 말은 이 아이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관심과 능력으로 적절히 보호하심을 닫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그 초창기로부터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가호 속에 성장해 오고 있다.

3. 그가 실패하였다 함은 그 아이는 물론 그의 어머니도 보호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본문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했다"(6절)고 하였다. 

그런데 이 광야는 그녀의 안전과 생계 유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 였다. 

교회는 숨겨진 상태에 있으며 또한 분산되어 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보호를 통해서 교회가 안전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회의 감추어진 은밀한 상태는 제한된 기간동안일 뿐 언제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Ⅲ. 용이 교회를 꺾으려는 계획이 실패되었을 뿐 아니라 그 계획은 그 자신에게도 치명타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아이를 삼켜 버리려는 계획은 하늘의 모든 권세들을 자기 적으로 삼는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7절)하였다. 하늘은 항상 교회의 편을 들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이 싸움의 발발 장소. "하늘" 곧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하늘을 교회로 봄은 교회가 곧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로 하늘의 가호아래 있고 또한 하늘과 같은 이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양편진의 구성. 

파당 한쪽에는 미가엘과 그의 부리는 사자들, 상대 쪽에는 왕과 그의 사자들이 있었다. 

즉 한편에는 약속된 큰 천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신실한 종들이, 다른 편에는 사단과 모든 그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수적으로는 후자편이, 외적인 힘의 우세는 전자의 편에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의 힘은 그들의 구원의 대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그 힘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3. 전쟁의 결과. 

본문에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8절)라고 했다. 

양자간에는 큰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승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게로 돌아가고 용과 그의 사자들은 패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추방을 당했다. 

이 말씀대로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마귀의 상징인 이방의 우상은 로마에서 축출되었었다.

4. 이 승리를 계기로 작곡되고 불리어진 승리의 노래(10,11절).

(1) 승리자가 받은 경배. 

이에 대해 본문에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10절)라고 하였다. 

이제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강하고 능력 있는 구세주이심을 나타내셨다. 

그는 그의 팔로 몸소 구원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나라는 크게 확장되고 굳게 설 것이다. 

교회의 구원과 능력은 모두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말미암는 것이다.

(2) 정복당한 원수의 정경.

① 원수의 나쁜 심보가 본문에 묘사된다. 

즉 그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본문에 묘사된다. 그 원수는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중상하는 자로 나타난다. 

그는 거짓이든 참이든 간에 형제들을 부단히 비난하고 모함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용을 참소하였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한 바 있다(슥 3:1). 

비록 마귀는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하고 싫어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주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고 참소할 재료거리를 그에게 제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우리는 죄를 지으면 즉시 주 앞에 나아가 우리 자신을 힐책하고 반성해야 하며 우리의 변호자이신 그리스도께 우리의 형편을 호소해야 한다.

② 그들의 절망과 패배당한 모습이 묘사된다. 

그와 그의 모든 참소자들은 추방을 당한다. 그의 기소는 폐기되고 참소자는 재판관의 분노를 사서 재판정에서 내쫓긴다.

(3) 승리를 얻게 된 비결.

① 하나님의 종들은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사단을 이길 수 있다. 

그의 피는 귀중한 보석금이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지닌 자 곧 사단"을 멸망시켰다.

하나님의 종들은 전쟁의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그들의 증거"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또 다른 말로 영원한 복음의 절대적인 능력을 전파하므로 사단을 이길 수 있다. 

이 말씀은 강하여서 하나님을 통해 그들의 본거지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종들은 고난 중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유지하므로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위해 생명을 바칠 필요가 없을 때는 죽음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생명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죽음 앞에 내놓았다. 

그들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은 보다 큰 다른 것에 대한 사랑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용기와 열심히 그들의 원수로 당혹하게 했고 많은 목격자들과 성도들에게는 영적 확신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 큰 승리를 있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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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용(2)(계 12:12-17)

본문에서도 계속 이 전쟁에 대하여 설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늘 또는 교회에서 있었던 싸움이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 후 다시 그 싸움은 장소를 옮겨 광야에서 계속되게 된다. 

이 광야는 교회가 자신의 은둔처로 삼은 곳으로 거기서 교회는 하나님과 구세주의 특별한 보호에 의하여 얼마 동안 안전을 누리게 된다.

Ⅰ. 마귀의 격분과 진노 때문에 세상 주민들 대부분이 재난과 역경을 받게 될 것이 경고되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마귀가 품고 있던 악의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 그 큰 힘은 꺾이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인류의 적이요 혐오할 자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대적하려는 그의 음모가 좌절되자 그는 최대한의 혼란을 세상에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12절)라고 말씀되었다. 

마귀의 분노가 더욱 극심해진 것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광야에 유배되어 [무저갱에]감금되어 있으므로 광야를 다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얼마 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분노하였다.

Ⅱ. 광야에 있는 교회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책략. 본문에 보면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13절)고 하였다. 

그 의미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베푸시는 가호,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두 날개 위에 그 여자를 태우시고 그녀를 위해 준비된 안전한 장소로 옮기셨다. 

거기서 그녀는 한동안 거하며 예언된 시기 동안 휴식을 취하였다(단 7:25).

2. 교회를 대적하려는 용의 계속적인 악의. 

교회가 은신해 있다고 해서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는 없었다. 

옛적에 낙원에서 유혹을 했던 교활한 옛 뱀 사탄이 광야까지 교회를 좇아와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였다"(15절). 

여기 15절 말씀은 이단과 죄악의 홍수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여겨져 오고 있다. 

이러한 죄악과 이교(異敎)는 아리우스(Arius), 네스토리우스(Nestorius), 펠라기우스(Pelagius) 그리고 이외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토하여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도 이러한 기세에 압도되어 떠내려갈 위기에 처하였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박해자들로부터 받는 위협보다 이단들로부터 받는 위협을 더 크게 받아 왔다. 그리고 이단들의 폭력과 교란은 모두 사단에게서 공급받은 것임이 분명하다.

3. 이 위험 속에서 교회에게 베풀어진 시기 적절한 도움. 

본문에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16절)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16절의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킨 땅"을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고드(Goths) 족과 반달(Vandals) 족의 무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의 침략은 아리우스 주위에 집착해 있던 당시 로마 황제들을 제압하고 교회멸절 행동을 제약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만일 이 전쟁이 없었더라면 아리우스 지지파 황제들은 이교도들이 했던 것 이상으로 정통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무서운 박해자들이 되었을 것이었다. 

이미 그 당시 그들은 이러한 박해의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의 포문을 여시어 박해의 홍수를 삼켜 버리게 하시므로 교회로 한동안의 휴식을 즐기게 하셨다. 

하나님은 종종 그의 언약에 대해 불평하는 자에게 분노의 검을 보내신다. 사람들이 새 신들을 택하면 전쟁의 위험이 문 앞에 대기하기 마련이다. 

내란은 흔히 외부로부터의 적의 침략에 의해 종식되는 법이다.

4. 보편적인 교회를 대적하려던 음모가 좌절되자 마귀는 개개인들과 개개 지역을 향해 그의 분노를 돌렸다. 

여자에 대한 그의 악의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시비를 벌리도록 스스로를 충동질하였다. 

어떤 이들은 17절의 마귀의 핍박의 대상을 알비조아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비조아파들은 처음에 디오클레시안(Dioclesian) 황제에 의하여 불모지와 산악 지대로 추방을 당했고 후에 여러 세대를 걸쳐 교황의 분노와 세력에 의해 잔학하게 살육 당했던 것이다. 

그들이 이같이 핍박당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지키기 때문이었다." 

교리를 지키고 예배 의식의 경건과 생활의 변화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함은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분노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은 세상 끝난 때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계속 그들을 사단의 박해에 노출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끝에야 비로소 "마지막 원수가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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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12장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한 여자가 있는데. - '큰 이적'(*, 세메이온 메가)에서 '이적'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메이온'은 '표징'(sign, NIV)을 뜻한다. 요한은 '큰 표징'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본절의 '한 여자'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나타낸다(Johnson). 
요한이 본 여자의 환상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 여자가 '마리아'를 의미한다고 본다(Ignatius, Plummer). 그러나 이 여자가 사단인 용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다는 것과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핍박받는다는 이야기가 본장에서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체적인 인물인 예수의 모친 마리아로 보기가 어렵다. (2) 혹자는 이 여자가 '유대민족' 또는 '유대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ffatt, Walvoord).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절의 두 별은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데(창 37:9-11),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황도대(zodiac, 21:13 주석참조)의 12궁을 열 두 지파로 보았으며 그들 지파의 깃발이 12궁의 이름과 일치하였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본문의 내용을 선명하게 해주며 최근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내증(內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큰 결점이다. 즉 메시야가 탄생한 후에도 용이 여자를 핍박한다는 사실이 곧 유대 민족에 대한 마귀의 공격을 언급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3) 혹자는 이 여자가 '교회'를 상징한다고 본다(Mounce, Johnson, Morris, Alford, Bengel, Charl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여자의 모습을 세 가지로 진술하고 있다.
@해를 입은. -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광, 혹은 광채(1:16)를 암시하기도 하며 빛을 입은 그녀의 품성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 이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으며(시72:5;89:37), 그녀의 통치성(統治性)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머리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 이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21:12)나 열 두 사도 (21:14), 혹은 그 둘을 모두 암시한 표현으로 왕권을 시사한다(Mounce).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 여인이 낳은 '아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여자를 유대교로 보고 아이를 기독교로 보아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연관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Walvoord, Moffatt). (2)혹자는 그리스도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unce, Ladd). (3) 혹자는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된 교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Charles, White).세 가지 견해 중 뒤의 두 가지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다. 성경에서 '여인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창 3:15;갈 4:4) 문맥상 아이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5, 10절). 또한 17절에서 여인이 또다른 자손 곧 성도들을 낳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에 '아이'는 그리스도는 물론 그의 지체된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는 자주 등장한다. 즉 그리스도의 철장 권세가 교회에게 전이되며(5절;2:26), 여인인 교회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생명을 낳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인내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낸다(히 6:7, Kiddle, Johnson).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 '또 다른 이적'은 1절에 언급된 '이적'과 같은 개념으로 '큰 붉은 용'을 가리킨다. 이 '큰 붉은 용'은 곧 사단이다(9절).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인 '큰 붉은 용'을 상징적으로 '라합'(욥26:12;사 51:9), '하마'(욥 40:15-24), '리워야단'(사 27:1) 등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용'을 수식하고 있는 '큰'은 사단의 굉장한 권세를 나타내며, '붉은'(*,퓌르로스)은 지옥과 피의 빛깔로(6:4) 사단의 살인하는 성격을 나타낸다(요 8:44,Mounce). 한편 용의 일곱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쓴 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용인 하에 세상을 지배하는 왕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3:1;19:12, Mounce,Hendriksen). 또한 '뿔'은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단의 거대한 파괴력을 나타낸다.
=====12: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 '하늘 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사단에게 굴복한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ilje,Johnson). (2) 혹자는 용의 추종 세력으로서 하나님께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Hughes,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벧후 2:4;유 1:6, 9). 용이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던진다는 것은 자신의 추종 세력 즉 [하늘의 천사들 중 1/3에 해당하는 타락 천사, 곧] 마귀들로 하여금 엄청난 세력으로 세상을 향해 [실은 교회 멸절을 위해] 공격하도록 하였음을 암시한다(8:7-12;9:15, 18).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 용이 아이를 삼키고자 한 것은 역사적으로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햄과 그 지경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남아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을 위시하여(마 2:16ff.) 예수의 생애 동안 그를 죽이려 시도했던 것(눅 4:28-30)을 포함하며 마침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사건을 상징하는 듯하다(Hughes, Johnson). 즉 사단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때까지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한다(Ladd).
=====12:5
@여자가 아들은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이라는 표현은 시 2:7-9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실 왕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신다(사 9:6). 이러한 왕 노릇은 그를 따르고 충성을 다한 그리스도인에게도 부여된다(2:27;19:15).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본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서 탄생과 승천에 대해서만 언급된다. 그리스도는 삼카려 하는 사탄의 위협속에서도 탄생하셨으며 승천하셔서 사단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성취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그의 지체된 교회도 이미 승리에 동참하였으며 장차 사탄으로부터 온전한 승리를 쟁취하고 들어 올려질 것이다.
=====12:6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견해는 여섯 가지이다. (1) 혹자는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초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을 피하기 위하여 A.D. 66년 벨라(Pella)로 탈출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하였다(Eusebius, Methodius). 벨라는 지금의 타바캇 파힐(Tabaqat Fahil)을 가리키는 곳으로 갈릴리 바다 남쪽약 32km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2) 혹자는 이 여자를 예수의 모친 마리아로 보아 이 도피가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 애굽으로 피난하셨던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clay). (3) 혹자는 교회가 핍박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순결한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Lilje). (4) 혹자는 핍박으로 인해 숨어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wete). (5) 혹자는 유대인들 중에서 일부가 보전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alvoord). (6) 혹자는 교회가 핍박을 피하여 보호와 훈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ird, Farrer, Ford, Johnson, Mounce). 여러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일천 이백 육십 일'이라는 기간은 핍박의 기간으로(11:2;13:5 주석 참조)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양육기간으로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성도들을 피난기켜 양육하며 핍박에 대항 할 수 있는 능력과 인내를 허락하신다(Mounce).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 미가엘과 용의 싸움에 대한 묘사는 용이 여자를 핍박하여 그녀로 하여금 광야로 피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Johnson). 유대 전승에 따르면 사단은 본래 천사였으나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고 시도하였으며 그 이유로 인해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함께 하늘에서 쫓겨나 공중에서 활동한다(위경 에녹 2서 29:4, 5). 이러한 사단 무리와의 전쟁은 천사장인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 전투에서 싸워 승리하는 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미가엘이라고 주장한다(Mounce). 그러나 10-12절로 이어지는 내용에서 보면 사단을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였다. 따라서 본절의 사단과의 싸움은 그리스도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전생애 즉 인간으로 오심과 사역, 그리고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되어 있다(13절;마 12:28, 29;눅 10:18;요12:31;행 10:38;딤후 1:10;요일 3:8, Johnson, Ladd)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 사단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의 권위에 대하여 도전해 왔었다. 그러나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하늘에서 그들의 처소를 박탈당하고 만다. 혹자에 의하면 이 사단과의 전투는 단기간에 걸친 전투라기보다는 장구한 세월 동안 싸워온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Hughes). 전투기간이 짧든 길든 간에 본절에 강조되어 언급된 것은 사단이 땅으로 내어 쫓긴 사실이다(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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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8)
^^ 존 밀턴의 ⌈실락원⌋에는 인간 창조 전에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서술하고 있다. 또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 14:12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는 말씀이 있다.  역시 선지서에서는 바벨론 왕의 몰락을 선언하고 있는데 그는 하늘의 새벽별에 비교할 만큼 지위와 명성이 높았었다. ....그러면 "내가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예수님이 바로 그때 실제로 보셨다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유적인 표현인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1> 예수님이 사단의 처음의 추락, 하늘에서 그의 배제를 보셨음을 의미한다는 해석.  *2>예수님이 광야 시험기간에 이긴 그의 승리에서 그가 사단의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해석. ...그러나 이런 해석은 문맥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핸드릭슨은 고데(Godet)의 표현을 빌어 너희들이 사단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내어 쫓는 동안 나는 그 주인(사단)의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1)  그래서 본문을 제자들과 그 후에 있을 선교적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핸드릭슨의 해석이 문맥과 일치한다고 보겠다. 겔던허이스도 여기서 왜 귀신이 제자들에게 복종했는지에 이유를 설명하신다고 하였다.2)  또 폴(M. Poole)도 같은 뜻에서 번개가 천둥을 수반하듯이 복음의 천둥이 마귀를 떨어뜨린 것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마귀는 역사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3)....특별히 여기서 하늘은 권세의 높음을 가리킨다고 볼 때 복음의 능력이 사단의 권세를 꺾고 무너뜨린 것을 비유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4)....사단의 추락에 대해 옛날 교부들은 성육신의 원인이나 70인의 성공적인 전도 또는 예수님의 광야의 시험의 승리나 십자가 등으로 보았다.  ..어떻게 보든 본문 말씀은 문자적으로 사실적 표현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실이었다. 사단의 파쇄는 십자가에서 일어났으며 제자들의 전도의 승리(불신자의 구원, 사단의 노예가 된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이 나간 것 등)가 그 사실을 확증해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긴 장래까지 선교를 통한 복음의 승리를 내다보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사단을 승리하실 것은 이미 창세기 3:15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길 것으로 예언되었으며 이제 그 예언이 실현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마 24:14)은 본문 말씀에 대한 선교적 차원에서의 해석을 지지하는 한 구절이라 하겠다. ...   주>   1. W. Hendriksen, The Gospel of Luke. pp.580-581    2. N. Geldenhuys,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p.302     3. Matthew Poole,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3. p.227     4. Leon Morris, Luke.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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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 '큰 용'의 다른 명칭인 '옛 뱀' 은 창 3:1 이하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타락하게 만든 뱀을 가리킨다. 또한 '큰 용'은 마귀 및 사단으로 나타난다. '사단'(* , 사타나스)은 원래 '대적'(對敵)이라는 뜻을 지니며 '마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는 참소자나 중상하는 자를 의미한다(욥 1:6-11;슥 3:1-10). 이들의 역할은 온 천하를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꾀어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하는 것이다(2:20;13;14;18:23;19:20;20:3, 8, 10;마 24:24;고후 11:3;딤전 2:14). 이러한 사단이 땅으로 내어 쫓기는 것은 종말의 시작을 암시한다(눅 10:18, Lije).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 '우리 하나님'의 헬라어 '투 데우 헤몬'(* )은 뒤에서 나오는 세 단어 '구원과 능력과 나라'를 모두 수식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가 역사 속에 실재로서 나타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과 지상 사역 그리고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단을 패배시키셨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권세와 통치하심에 참여하게 된다(5:9;시 2:8;마 28:18;요 17:2, Mounce, Johnson). 한편 사단의 결정적 패배에 대한 증거는 참소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쫓겨난 것이다. 사단은 참소자로서 성도들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였다(욥 1:6-12;2:1-5).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 사역을 성취하시고 사단을 패배시켰기 때문에 사단의 고발은 더이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자연히 그의 활동 무대였던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눅 10:18).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본절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자들의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 성도들은 자신들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1:5), 나라와 제사장과 왕의 권세를 부여한(5:9, 10)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곧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였으며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끝까지 충성스럽게 증거함으로 사단을 이기었다. 한편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은 성도들이 순교하기까지 어린양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며 그에 대해 증거하였음을 시사한다. 성도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사단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가 심자가에 죽으심으로 승리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죽음으로써 사단을 이긴 것이다(1:9;6:9;14:12;20:4). 즉 사단이 성도들을 죽임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단을 격파하고 승리하는 순간이다(롬 8:35-37 주석 참조.Hughes).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 사단의 패배와 하늘로부터 쫓겨남은 두가지 현상을 일으킨다. 하나는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 즉, 천사들은 즐거워하게 된다(Ladd, Mounce). 여기서 '거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눈테스'(* )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 영원히 거주하는 것을 시사한다(Morris). 또 다른 하나는 땅과 바다가 화를 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최후의 심판이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사단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짐에 따라 그가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필사적인 활동으로 인해 교회는 전에 없는 극도의 핍박과 시련을 당하게 된다. 이때 성도들도 핍박을 당하게 되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단은 이미 패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Morris). 본문에서 요한은 성도들에게 사단이 최후 투쟁을 시도하는 이 기간에 굳건히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Mounce).
=====12:13
@용이 자기의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 본문은 다시 9절과 연결된다. 여인이 낳은 아이를 삼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4, 5절),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여 땅으로 내어 쫓긴 용은 이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게 된다. 여기서 '남자를 낳은 여자'는 '참이스라엘' 즉 혈통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배성이 된 영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Morris). 한편 '핍박하는 지라'의 헬라어 '에디와센'(* )은 문자적으로 '추격하다'라는 의미로 여인을 향한 용의 이러한 추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빠져나올 때 바로가 그 뒤를 추격해 온 것과 유사하다(출 14:8, Johnson, Mounce,Hughes). 이러한 사단의 추격은 교회가 당한 고난을 상기시킨다.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는 출 19:4의 반복이다(Hughes, Johnson). 여기서 '독수리의 날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한다(출 19:14;신 32:10, 11;사 40:3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에서 구출되어 시내 광야에 이른 것은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한 것으로 표현한 바와 같이 본문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일천 이백 육십 일'(6절), '마흔두달'(11:2)과 동일한 기간이다. 이 기간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폭정하에서 유대인들이 핍박받았던 3년 6개월과 일치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기간은 하늘 전쟁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난 사단이 분풀이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시간을 나타낸다.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 용은 바다의 짐승(욥 7:12;렘 51:34-42;겔 29:3-6), 악어(시 74:12-19;겔29:3) 등으로도 불려졌기 때문에 그 입에서 물을 토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물을 강같이 토한다'는 것은 홍수같은 것을 의미한다(Mounce). 
성경에서 홍수는 주로 심판과 환난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인데(시 69:15;90:5;사59:19;렘 46:7;단 9:26;암 9:5) 본절에서는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려고 저지르는 온갖 형태의 파괴를 상징한다. 이러한 '홍수'는 당시 유대인들이 초대교회를 말살하려고 했던 '핍박'이나(행 8:1-3, Preston, Hanson)혹은 마지막 때에 택함 받은 자들까지도 넘어지게 하는 '미혹'을 의미할 수도 있다(13:14;마 24:24;살후 2:9-11,Mounce).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 '땅이 ...강물을 삼키니'는 팔레스틴 땅이 주로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떤 큰 홍수가 일어난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 땅 위의 물을 모두 흡수하게 되는 지리적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출 15:12에 진술된 바와 같은 하나님의 보호를 시사한다. 애굽의 군대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을 해하고자 하는 사단의 수많은 궤계에서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이다.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모래 위에 섰더라. - '여자의 남은 자손'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남은 자손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lasson). (2) 혹자는 여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남은 자손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alvoord). (3) 혹자는 여자는 '팔레스틴의 교회'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남은 자손은 로마 제국 도처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4)혹자는 여자는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 전체'를 상징하는 반면 남은 자손은 신앙 공동체 중에서 사단의 핍박으로 인해 '순교당하는 개인으로서의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wete, Caird, Kiddle).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자체를 파멸시킬 수는 없으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성도 개개인들'은 핍박하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 개개인을 향한 사단의 공격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사단의 승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단이 예수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단이 성도 개개인을 핍박하고 순교시킬 수는 있으나 그것은 결국 성도들에게 궁극적인 믿음의 승리를 안겨주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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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의 유형들..시점, 당시 몸의 상태에 따른 분류]===
###1.삼층천 보좌<하늘에 있는 인자 앞, 하늘의 시온산,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앞>에로의 휴거
<1 >대환난 전 휴거
--1))사내 아이의 휴거(아담부터 <죽기까지 Q 말씀을 증거한 순교자들, [대 환난 닥치기 전에 하늘의 전쟁 참여 위해]부활 통해 (보좌 앞으로) 휴거..JC가 모델.....계12:5-6, 14, 17) ..하늘의 전쟁에 참여함.
--2))초기의 이기는 이들의 휴거(살아 있는 상태로, 흰옷 입고 종려가지 들고 있는, <보좌 앞으로> 휴거....계7:9,) ::마24:39-42....
@@@이기는 자들의 휴거 조건이란 [초기의 휴거를 위해 지불해야 할 요구와 대가를 의미하는데], 
오직, 정상적인 일상생활 가운데 최선 다해 성실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항기쉬기범감의>또한 모든 대화하거나 일하는 동안에도 기도하는, 살아 생동하는 영 안에서 힘써 주님께 하듯 섬기며 깨어 기도함으로써 합당한 성숙에 도달하도록, <모든 면에서 주 임재 앞에서 정리해 둠 통해>데려감에 대해 항상 예비되어야 하고, <새벽별을 기다리는 자 처럼>주님의 나타나심을 항상 사모함,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신실하게 끝까지 지킴으로써 예수의 간증이 됨(계3:10), 타락한 종교로서의 기독교 교리를 이겨내고 주님의 일들(Lord's works..그분이 이미 이루신 바들, 곧 부탁하신 아름다운 것들)을 [순전하게, 일편단심으로] 지켜야(계2:26) 함, 바로 그것이다..
<2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등장 직후) 대환난 도중,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수확의 첫열매인 이기는 이들 144000인의 휴거(14:1-5, 9-12)
<3 >대환난 끝 무렵의 휴거...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14:14-16)
--1))두 증인의 휴거(대환난 동안 예루살렘에서 증거를 마친 후 순교했다가 부활-<보좌에로의>휴거.....계11:12) 
--2))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겨낸<불 섞인 유리바다의 유리바닷가에 선> 성도들의 휴거(계15:2, 살전4:15, 17) =후기의 이기는 이들로서 <실지로 죽음의 바다를 경험한 자들일 가능성이 더 큼> <보좌에로의>휴거
###2.공중<곡간>에로의 [무르익은 열매로서의]휴거 
:: 대환난 끝 무렵, 7째 나팔 울림과 동시에 일어날 바, 믿는이들 대다수의 <공중에로의>휴거(잠자던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의 몸으로의, 또는 생존해 있던 성도들이 변형된 몸 입은 상태로의 휴거...살후2:1-4)...7째 나팔 울림 직후임을 기억한다면, 살아있는 성도로서 <몸의 변형을 입고>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은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며, 자기 형상의 우상을 성전에 세우고 경배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 곧 대환난의 대부분을 통과한 자들임을 의미함(살전4:15,16 고전15:23, 계10:7, 11:14-15)..... 이때, 이 시점의 생존해 있는 성도의 휴거의 조건은 [대환난을 거치면서 연단되고 충분히 익은<성숙한>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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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아이가 하늘로 휴거됨 인해서 비로소 하늘에서 <사탄을 축출하는>전쟁이 있게 된다
..기억할 것은 휴거는 단지 우리만을 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전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잊지말라, 사내 아이가 마귀를 하늘에서 내어쫓을 그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며 하나님의 왕국이 올 때에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과 영복을 극도로 누림이 뒤따른다.
하나님의 원수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아직 하늘에 있다. 이미 이 원수는 <구주의 십자가 죽으심-부활-승천으로 인해>심판 받았고 그에 대한 판결이 포고되었지만, 지난 19세기 동안 하나님은 그 분의 판결을 원수에게 집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갖지 못하셨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 받았다(요12:31, 16:11). 그 뒤를 이어서 이기는 믿는이들이 그 심판을 수행하고 그 판결을 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기는 믿는이들이 사탄을 대항하여 싸우는 싸움은 사실상 그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다!!. 마침내 그륻의 싸움을 통해 사탄은 하늘에서 내어쫒길 것이다(9절).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ㄱ여 정죄되고 심판받고 판결받은 원수에게 판결받은 그대로 네 갈길로 떠나라고 명령하겠는가? 천사들은 <그저 사탄과 같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그렇게 할 수 있는 지위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것을 성취하시길 원하신다. 이 사람은 하나의 머리-사람이신 예수-를 가지고 있다. 그분은 사내 아이의 머리시요, 모든 이기는 자의 선구자이시다. 하나님은  그 분의 판결을 사탄에게 집행할 그런 사란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람을 위해 장구한 세월을 기다려 오셨다. 비록 하나님이 아지은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하셨지만, 언젠가 그분은 갖게 되실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늘로 휴거되어야 한다..
우리자신의 행복에 그리 많이 관심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깨어 있어서 주의 할 것은 우리의 행복을 관심하는 것은 <바벨론 주의에서 파생한>바벨론 사람의 관념이자, 불교를 닮은 천주교의 관념임을 깨닫고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과 행복한 삶을 원한다. 우리는 죽을 때 천당 가길 원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종교란 다름 아닌 오로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요, 죽은 후 낙토에서 복락의 삶을 가지기 위한 것이다.] 바로 이런 <행복제일주의  기복 추구>사상은 그야말로 철저히 마귀적인 것인데도 이런 관념이 기독교 전체에 침투되어 있다. 아마 그대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영원한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과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들어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바로 그것은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가능케 되는데, 최우선의 선결요건이 성취되면 나머지는 지고지선의 사랑의 하나님이 알아서 영복가운데 있게 하신다.... 잊지말라, 사내 아이가 마귀를 하늘에서 내어쫓을 그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며 하나님의 왕국이 올 때에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과 영복누림이 뒤따른다.
***하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내 아이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다, 
곧 원수 마귀를 대항하여 싸워 이김 통해 하늘에서 축출시켜 내던져 버릴, 하나님의 백성 중 강한 부분인. 참된 영적 싸움을 죽기까지 싸울 줄 아는 사내 아이의 도착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미가엘과 천사들은 단지 경찰관일 뿐이지만, 우리는 집행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합법적 권위와 권와 자격을 갖춘, 하나님의 판결 집행관들이다.
***주님은 원수를 격퇴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셨다.
....우리의 할일은 먼저 일절 주께 집중하여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깨닫는 죄마다 돌아보아 철저히 회개함으로 기도하며 주 보혈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뜻 이루시도록, 주님 나라 임함과 주 뜻 이룸을 막고자 하는 사탄의 군주들[바사의 군주-헬라의 군주들]을 이기기 위해 기도하며, 오직 Q의 유익을 위해 싸우는 투사 미가엘이 올 수 있는 길이 열리도록 기도하고 [ 모세와 엘리야 두 증인들은 변화산에 나타나야 했고, 장차 대 환난 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두 증인으로 사용될 바, 모세의 시체 보존 위해 마귀와 싸웠다], 
....더 나아가 언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것을 사탄에게 전하라.... 
예전에는 자신의 성질(?) 때문에 괴로움 당할 때마다 먼저 그것을 자백했고 그런 다음 주께 죄사함을 간구했으며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마지막에는 결코 다시는 성질 부리지 않으리라 결심하기를 반복했다면..<핵심을 알아두자...그리함은 초점이 잘못 맞춰진 것이기에 백방이 무효였을 뿐, 괴로움과 자책, 정죄감은 더해만 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제는. 올바른 영적 이해를 따라  초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포착함 통해 깨뜨려야 함을 잊지말라.
....더 이상 속지 말라, 모든 문제의 근원인 사탄에게 초점을 맞추고 가라.
<살아 생동하는, 대속의 보혈 흘려 주신 주님과 그분의 말씀 믿는 믿음을 발휘하여 [지금 여기 땅에 있는 동안부터] 사탄에게 말씀 선포함의 싸움을 싸우라, 사탄은 이미 그대의 생각과 말을 그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 이상으로 그대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여 인지하고 있고 잘 알아듣고 있으니!!> 
이렇게 말씀을 전파하며 JC 이름으로 심판을 집행하라. 이것이 바로 엡6:12절의 생생한 체험이다!!.. 
[ 너 속이며 참소하는 자 사탄 마귀야, 너는 나를 수년동안 아니 무척 오랫동안 속여 왔다. 그러나, 이제 참된 말씀과 메시지를 듣고 깨달은 바 나의 영안이 열려졌으므로 나는 더 이상 무관심하지도 속지도 않겠노라. 사탄아, 아직 가지 말고 잠자코 듣거라,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 네가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노라,....너는 하나님의 원수일 뿐 아니라 나의 원수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나는 주님을 위해 절대적일 것이며, 네 말은 결코 청종하지 않을 것이다. 사탄아 너는 이미 구주의 십자가에서 못박혔다. 너의 정체가 명백히 드러났고 네 궤계는 완전히 노출되었으니, 너 속이며 참소하며 번거롭게 하는 간교한 자야, 이제는... 네 갈길로, 무저갱으로 가 버려라 네 종착지는 불못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내게 오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다시 네가 와서 나를 속이려 든다면 그리할수록 그만큼 더욱더 무척 오랜 시간동안 내게서 설교말씀을 더 많이 듣게 될 것을 각오하라. 오늘은 네가 설교말씀을 이 땅에서 듣지만, 다음번에는 하늘에서, 그리고 그 다음엔 다시 땅에서, 그리고 아마도 최소한 네번째 설교를 듣게 된 다음에는 너는 불못에 있게 될 것이다. 적어도 너는 네번 이상 내게서 설교말씀을 듣게 되리라, 이제 사라져 버려라, 썩 꺼지거라. 예수이름으로. 아멘]
..... 바로 이렇게 땅 위에서 끝까지 목숨 걸고 싸워 이기기를 배우라, 
그 능숙함을 체득한 자마다 하늘로 올라가서 사내 아이로서 [마귀를 하늘에서 축출하는 싸움을 싸우게 될 것이요 또. 구주와 함께 싸우러 다시 땅에 오게 될 터인데 그때에도 사탄마귀를 만나게 되면 [너 아직까지도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너에게 또 설교해야겠다...이제는 네가 무저갱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그런 다음 천년왕국 후에 인류를 선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드려는 사탄에게 이렇게 말하게되리라..[사탄아, 우리말을 들어라,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설교이다. 이제 너는 네가 가야할 종착지인 불못으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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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황무지 rB;d]mi(4057, 미드바르) 
미드바르(명남)는 다바르(rb'D; , 1696)에서 유래했으며, '광야, 황무지'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70회 나온다.
(a)  미드바르는 일반적으로 세 유형의 지역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목초지(수 2:22, 시 65:12, 렘 23:10);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땅(신 32:10, 욥 38:26, 잠 21:19, 렘 9:1); ***오아시스 혹은 도시와 읍이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넓은 지역, 
유다의 광야에는 그 안에 적어도 6개의 도시가 있었다. 요르단의 광야(충적의 평야)에는 도시들이 존재하며 시내 광야에는 그 지역 안에 많은 오아시스들이 있다. 
미드바르는 또한 비유적으로 사용된다(호 2:5, 렘 2:31).
(b)  미드바르로 불리우는 가장 넓은 지역은 시내, 네겝, 요단 골짜기와 아라비아 광야이다.
특별한 광야 지방은 다음과 같다: ***브엘세바(창 21:14); 바란(창 21:21, 민 10:12, 민 12:16, 민 13:3, 민 13:26, 삼상 25:1); ***신(출 16:1, 출 17:1, 민 33:11, 민 33:12); *
***시내(민 1:19 등, 출 19:1, 출 19:2, 레 7:38); *** 신 Zin(민 13:21 등, 신 32:51, 수 15:1); ***벧아웬(수 18:12); 유다(삿 1:16, 시 63의 제목); *** 십(삼상 23:14, 삼상 23:24, 삼상 26:2); 마온(삼상 23:24, 삼상 23:25); *** 기브온(삼하 2:24); 다메섹(왕상 19:15); ***  에돔(왕하 3:8); *** 여루엘(대하 20:16); *** 수르(출 15:22, 출 16:1, 민 1:19 등);***  에담(민 33:8); 그데못(신 2:26);*** 드고아(대하 20:20); 가데스(시 29:8);***   애굽(겔 20:35).
(c)  이 광야는 가끔 포도, 샘, 물 웅덩이, 강, 즐거이 쉴만한 장소 등이 없다는 뜻의 부정적 의미로 묘사되며, 혹은 주목할만한 진술, 즉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시 78:19)라고 묘사된다.
「참고 - 미드바르는 70인역본의 용법에서 에레모스(2048)로 번역되었다. 
에레모스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헤로도투스에서부터 나타나며, 본래 '버림받음, 포기'를 뜻하며, 따라서 '적막하거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은 지역'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 다음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황무지, 광야'를 의미하게 되었다. 
고대 세계에서 광야는 물과 식물이 없으므로, 주민이 살 수 없는 땅일 뿐만 아니라 또한 황폐하게 되어 주민이 이동한 지역, 버려진 혹은 목초지, 즉 유기된 지역이다.
 고대 그레코 로마 세계에서 외딴 곳에서 신의 계시를 기다렸으며(e. g. Eur., Bacch. 874ff), 또한 귀신들의 거주지로서 광야를 무서워 했다(예를 들면, Lucian, Vitorum Auction 9).
(a)  70인역본에서 에레모스는 총 345회 나타나는 히브리어 미드바라(황야, 광야, 수목 없는 대 초원, 풀 없는 땅을 의미하기도 함, 창 37:22)의 역어로 241회 사용되었다. 
또한 에레모스는 히브리어 어근 하레브(황량하게 되다, 황폐하게 되다)의 파생어들의 역어로 32회, 히브리어 샤멘(설득하게 되다, 유린당하다, 황폐하게 되다)과 이 단어의 파생어의 역어로 25회, 네게브(메마른 땅)의 역어로 10회 사용되고 있다. 에레모스의 사용 중 120회는 모세오경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109회 증거됨)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방랑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역시 시편(21회), 이사야(45회), 예레미아(28회)와 에스겔(38회)에서 에레모스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b)  산과 물과 같이 구약성경에서 광야는 거룩한 곳의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즉, 광야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곳이며, 그러나 또한 귀신들의 거주지이며 이들은 불결한 것과 병과 죽음으로 인간들을 위협하고 있다.
① "거룩한 곳" 즉 광야에 주어지는 긍정적인 가치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현현과 관계되는 수많은 기사에 의하여 나타나게 된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할 때 광야에서 천사가 음식으로 엘리야를 강건하게 하였다(왕상 19:4-6), 호렙(출 3:1이하; 황상 19:11-18)과 시내 (출 19)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심은 산에서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도 현현하셨다.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의 유랑(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참조: 신 8:2)은 특별히 하나님과 밀착되는 시간으로 간주되고 있다(호 9:10; 참조: 호 11:1; 호 12:10[호 12:9]; 호 13:4 이하); 특히 이러한 것은 시편,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에서 나타난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 민족의 불충실: 시 78[77]:17, 시 78[77]:40; 시 95[94]:7-11; 시 106[105]:13-33; 겔 20; 참조: 민 13 이하)을 배경으로 하는 권고적 언급들은 비교적 많은 지면을 차지 하고 있다(예를 들면, 시 78[77]:15, 시 78[77]:19, 시 78[77]:40, 시 78[77]:52; 시 95[94]:8; 시 106[105]:7-12; 사 48:21; 사 63:13; 렘 2:6; 겔 20:10-26; 겔 20:36).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소망은 또한 광야와 연관된 생각과 관계되고 있다(사 40:3; 렘 31[38]:2; 겔 34:25; 호 2:16-25). 여호와의 밀접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자마다 어는 시대나 레갑 족속처럼 황량한 환경을 만들어 생활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 기원은 엘리야 시대의 예언적 부흥 운동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집 대신에 천막에서 살았다(렘 35:7; 렘 35:9이하). 적어도 일년에 한번 모든 유대인들은 "천막"의 장막절을 기념할 때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한 것처럼 "천막"에서 생활한다(레 23:34-36, 레 23:42 이하: 신 16:13-17).
② 동시에 광야는 매우 위험한 곳이며 하나님과 분리된 곳이며 귀신 세력들이 있는 곳이다(신 8:15; 참조: 민 21:4-9; 사 30:6). 
경작지와 광야의 차이는 가나안 땅과 애굽의 땅의 대조와 같다. 즉, "애굽"은 특히(귀신이 사는) 광야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토빗 8:3; 참조, 겔 20:36과 마 2:15; 또한 참조: 호 11:1).
여호와의 무서운 동풍은 인간의 말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바람 처럼 광야에서 일어난다(호 13:15). 
속죄 염소는 귀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졌다(레 16:10, 레 16:21 이하). 
광야의 귀신들은 바벨론(사 3:21 이하)과 에돔(Edom),(사 34:13-15)의 파멸을 손에 쥐고 있다. 당시의 황폐함과 참혹함은 유린(황폐)으로 보여졌으며(예를 들면, 사 1:7; 사 54:3; 렘 2:15; 겔 19:13), 미래의 성읍들과 땅의 멸망은 적막한 유린 형태로 위협을 받고 있다(예를 들면, 사 5:9; 렘 4:26이하; 겔 5:14). 특히 물이 말라 사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사 37:25; 사 44:27; 사 51:10; 렘 51[28]:36; 겔 29:10; 겔 30:12).
귀신 신앙자의 조건을 근거로 하면 광야는 정확하게 에스겔 26:19이하의 "큰 물"과 마찬가지로 지하 세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영원히 …황적한 곳" 겔 26:20JB). 
우리는 여호와께서 광야에 거하는 귀신들을 처벌하시는 것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민 21:4-9) 그 때 여호와께서는 최종적으로 단 한번에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국문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계신다(겔 20:35). 
물론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광야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사실이다(참조, 겔 34:25; 호 2:16; 상기 2(a)참조).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만 광야가 영구히 제거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광야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며, 물은 광야에 넘칠 것이며 길은 개통될 것이며, 황폐되었던 성읍들은 재건될 것이다(사 32:15; 사 35:15; 특별히 후에 쓰인 이사야서에서 예를 들면, 사 41:18; 사 43:19f; 사 58:12; 사 61:4; 사 62:4; 렘 33[40]:10-12; 겔 36:10, 겔 36:33 이하; 겔 38:8, 겔 38:12; 단 9:27; 참조: 호 14:5-10).
 이 문맥에는 사 40:3과 같은 한 구절이 속한다. 그곳에서 광야를 통해 길들이 트일 것이며(사 43:19), 여호와께서 주되심이 밝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시 광야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실지라도, 광야는 여전히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적대시 하는 장소 즉, 악한 귀신의 장소이다. 자신의 적과 자기 백성들의 적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는 또한 광야를 제압하신 승리이다.
3. 성서 이후의 유대교
성서 이후의 유대교는 호세아의 황폐 예표설의 범위 내에서 연구하였을 때 광야로부터 유대인의 구속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SB I 85-88에서 랍비들의 증거).
이러한 뜻은 메시야께서 광야에서 오신다는 혼란의 이유가 되었다(Josephus, War 2, 258-63). 에세네파(Essenes)는 종말에 자기들이 쿰란의 광야로 옮겨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이유는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했으며(참조, 1QS 8, 12이하; 9:19f.),
이와 같은 것은 세례(침례)요한에게도 적용된다(Josephus, Ant. 18, 116-119). 이와 비슷하게 이사야(사 2:8-11)의 순교에 의하면 선지자들 곧 이사야, 미가와 다른 선지자들은 "황폐한 산"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유대교가 메시야를 광야와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호 2:16; 12:10; 욥 30:4과 사 40:3과 같은 성구에 집착하는 것이며, 사 40:3은 세례(침례)요한과 마찬가지로 쿰란과도 관계 있다. 성전 파괴 후에 유대인들은 어려움 없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광야로"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하였는데(Josephus, War)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특별히 광야에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귀신들은 역시 광야에서 살고 있다. 베헤모트(Behemoth, 참조: 욥 40:15-24)는 에녹일서 60:8에 의하면 광야 귀신이다. 형벌을 받고 있는 악한 귀신들은 광야로 보내지는데 그곳을 거처로 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토빗 8:3; 에녹일서 10:4; 참조: 마 12:43. 병행구 눅 11:24). 광야 귀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고도의 신학적 - 종말론적 관심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쿰란 종파의 계속적으로 시행한 반 마귀적인 세정식에서, 기도와 금식으로(반 마귀적인) 정결을 위하여 싸운 이사야 순교 2:8이하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세상과 분리에서 보여진다. 광야에서 수도자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기 위하여 악한 영들과 투쟁한다.
4. 신약성경의 용법.
에레모스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타나며, '광야'를 뜻한다.
(a)   광야에 대한 신약성경의 평가는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평가와 같다. 
변함 없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간의 방랑 생활은 하나님의 역사적 활동의 중요한 사실로서 생각되며(요 3:14; 요 6:31, 요 6:49; 행 7:30이하; 행 13:18; 고후 10:5; 히 3:8, 히 3:17),
광야에서 종말적인 운동이 시작된다는 사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마 24:26; 행 21:38).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묵시(계 12:6, 계 12:14)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대가 광야에서 열려진다는 지대한 관심에서 설명되어 지지 않으면 안되며 동시에 메시야가 광야에서 올 것이라는 기대를 입증하여 준다(참조: 마 2:15; 호 11:1).
(b)  세례(침례)요한은 광야에 숨어 살았으며, 유대광야에서 효과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유대 광야"는 삿 1:16에서 "아랏 남방"으로 표기되었다. 여리고에서 남쪽으로, 곧 사해의 서북 쪽에 있는 울퉁불퉁한 여러 지역들 - 십 황무지(삼상 23:14, 삼상 23:15), 마온 황무지(삼상 23:24), 엔게디 황무지(삼상 24:1), 여루엘 들(대하 20:16), 드고아 들(대하 20:20)을 통틀어 지칭한다. 이 모든 지역은 유다 영토에 속한다.
(c)  유대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들은 광야와 산에서 은거하였는데 그 이유는 수도자들에게 그곳이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며(Mare. 사 2:8-11), 그러므로 히 11:38은 구약 선지자들과 수도자들이 광야, 산, 토굴에서 은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광야의 방랑자들과 구약성경의 광야 거주민을 새 이스라엘과 관련시켜 보면 새 이스라엘을 방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원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히 3이하; 히 11:8-10; 히 12:18-24; 참조: 고전 10:1-13; 참조: E. Kasemann).
(d)  예수님의 의미가 선지자와 메시야로 묘사되는, 한 광야는 그 지역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시대의 지도자 모습에 대한 선지자적 해석에서 모세와 닮은 것으로 나타나셨으나(행 3:22 이하; 행 7:37; 참조: 신 18:15), 그러나 물론 원형으로 모세를 능가한다(참조: 히 3:1-6).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공관복음의 이야기는 초원과 외딴곳에 사는 사람들, 즉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선포한 메시야적 영광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으며(눅 2:8-14), 애굽으로 피신가는 것으로(마 2:13-15, 마 2:19-21) 애굽의 광야로부터 메시야가 오셨다고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호 11:1에 대한 마 2:15의 메시야 해석; 토빗에서 애굽은 광야를 의미). 
예수님께서 사람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은 광야에서 일어났으며(마 4:1-1 병행구 막 1:12 이하, 눅 4:1-13; → 유혹하다 tempt), 예수님께서 이적으로(참조: 왕하 4:42-44 엘리야와 더불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먹이신 것도 광야에서 일어났다(마 14:13 병행구 막 6:32; 또한 눅 9:12; 마 15:33 병행구 막 8:4). 여러 번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어 기도하셨고 금식하셨으며(마 4:1이하 병행구 눅 4:1 이하; 참조: 막 1:35, 막 1:45 병행구 눅 4:42; 눅 5:16), 특별히 하나님과 가깝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마귀들의 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다(막 1:12이하 병행구). 
광야는 여전히 환상을 보기에 적합한 장소이다(계 17:3; 참조: 행 8:26). 바울이 아라비아 사막을 찾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갈 1:17). 그렇지만 단순히 적대자의 압제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참조: 왕상 19:3 이하; 그리고 계 12:6).
(e)  광야 세대의 죄와 허물(위의 구약성경 그를 참조)이 언급되어 있는 곳에서는 사막이 부정적으로만 기록된다(행 7:41-43; 고전 10:5; 히 3:8, 행 3:17). 사막에는 악마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후 11:26; 참조: 눅 15:4). 왜냐하면 그 곳에는 귀신(마 12:43 병행구. 눅 11:24, 막 1:12이하)과 귀신들린 자들(눅 8:29)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론적인(aetiological) 악마 전설은 사막 지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행 1:18-20; 참조: 시 69:26[그 밖에, 마 27:3-10]; 참조: Papias, Frag. 3).(참조: W. L. Liefeld; G. Kittel). 

광야..e[rhmo"(2048, 에레모스) 
버림받은 abandoned, 고독한 solitary, 황막한 desolate, 황폐한 deserted.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에레모스는 헤로도투스에서부터 나타나며, 본래 '버림받음, 포기'를 뜻하며, 따라서 '적막하거나 사람이 별로 살지 않은 지역'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 다음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황무지, 광야'를 의미하게 되었다. 고대 세계에서 광야는 물과 식물이 없으므로, 주민이 살 수 없는 땅일 뿐만 아니라 또한 황폐하게 되어 주민이 이동한 지역, 버려진 혹은 목초지, 즉 유기된 지역이다. 고대 그레코 로마 세계에서 외딴 곳에서 신의 계시를 기다렸으며(e. g. Eur., Bacch. 874ff), 또한 귀신들의 거주지로서 광야를 무서워 했다(예를 들면, Lucian, Vitorum Auction 9).
2. 70인역본의 용법. 
(a)  70인역본에서 에레모스는 총 345회 나타나는 히브리어 미드바라(황야, 광야, 수목 없는 대 초원, 풀 없는 땅을 의미하기도 함, 창 37:22)의 역어로 241회 사용되었다. 또한 에레모스는 히브리어 어근 하레브(황량하게 되다, 황폐하게 되다)의 파생어들의 역어로 32회, 히브리어 샤멘(설득하게 되다, 유린당하다, 황폐하게 되다)과 이 단어의 파생어의 역어로 25회, 네게브(메마른 땅)의 역어로 10회 사용되고 있다. 에레모스의 사용 중 120회는 모세오경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109회 증거됨)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방랑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역시 시편(21회), 이사야(45회), 예레미아(28회)와 에스겔(38회)에서 에레모스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b)  산과 물과 같이 구약성경에서 광야는 거룩한 곳의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즉, 광야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곳이며, 그러나 또한 귀신들의 거주지이며 이들은 불결한 것과 병과 죽음으로 인간들을 위협하고 있다.
① "거룩한 곳" 즉 광야에 주어지는 긍정적인 가치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현현과 관계되는 수많은 기사에 의하여 나타나게 된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할 때 광야에서 천사가 음식으로 엘리야를 강건하게 하였다(왕상 19:4-6), 호렙(출 3:1이하; 황상 19:11-18)과 시내 (출 19)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심은 산에서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도 현현하셨다.
이스라엘의 40년간 광야의 유랑(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참조: 신 8:2)은 특별히 하나님과 밀착되는 시간으로 간주되고 있다(호 9:10; 참조: 호 11:1; 호 12:10[호 12:9]; 호 13:4 이하); 특히 이러한 것은 시편,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에서 나타난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 민족의 불충실: 시 78[77]:17, 시 78[77]:40; 시 95[94]:7-11; 시 106[105]:13-33; 겔 20; 참조: 민 13 이하)을 배경으로 하는 권고적 언급들은 비교적 많은 지면을 차지 하고 있다(예를 들면, 시 78[77]:15, 시 78[77]:19, 시 78[77]:40, 시 78[77]:52; 시 95[94]:8; 시 106[105]:7-12; 사 48:21; 사 63:13; 렘 2:6; 겔 20:10-26; 겔 20:36).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소망은 또한 광야와 연관된 생각과 관계되고 있다(사 40:3; 렘 31[38]:2; 겔 34:25; 호 2:16-25). 여호와의 밀접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자마다 어는 시대나 레갑 족속처럼 황량한 환경을 만들어 생활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 기원은 엘리야 시대의 예언적 부흥 운동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집 대신에 천막에서 살았다(렘 35:7; 렘 35:9이하). 적어도 일년에 한번 모든 유대인들은 "천막"의 장막절을 기념할 때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한 것처럼 "천막"에서 생활한다(레 23:34-36, 레 23:42 이하: 신 16:13-17).
② 동시에 광야는 매우 위험한 곳이며 하나님과 분리된 곳이며 귀신 세력들이 있는 곳이다(신 8:15; 참조: 민 21:4-9; 사 30:6). 경작지와 광야의 차이는 가나안 땅과 애굽의 땅의 대조와 같다. 즉, "애굽"은 특히(귀신이 사는) 광야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토빗 8:3; 참조, 겔 20:36과 마 2:15; 또한 참조: 호 11:1). 여호와의 무서운 동풍은 인간의 말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바람 처럼 광야에서 일어난다(호 13:15). 속죄 염소는 귀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졌다(레 16:10, 레 16:21 이하). 광야의 귀신들은 바벨론(사 3:21 이하)과 에돔(Edom),(사 34:13-15)의 파멸을 손에 쥐고 있다. 당시의 황폐함과 참혹함은 유린(황폐)으로 보여졌으며(예를 들면, 사 1:7; 사 54:3; 렘 2:15; 겔 19:13), 미래의 성읍들과 땅의 멸망은 적막한 유린 형태로 위협을 받고 있다(예를 들면, 사 5:9; 렘 4:26이하; 겔 5:14). 특히 물이 말라 사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사 37:25; 사 44:27; 사 51:10; 렘 51[28]:36; 겔 29:10; 겔 30:12).
귀신 신앙자의 조건을 근거로 하면 광야는 정확하게 에스겔 26:19이하의 "큰 물"과 마찬가지로 지하 세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영원히 …황적한 곳" 겔 26:20JB). 우리는 여호와께서 광야에 거하는 귀신들을 처벌하시는 것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민 21:4-9) 그 때 여호와께서는 최종적으로 단 한번에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국문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계신다(겔 20:35). 물론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광야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사실이다(참조, 겔 34:25; 호 2:16; 상기 2(a)참조).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만 광야가 영구히 제거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광야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될 것이며, 물은 광야에 넘칠 것이며 길은 개통될 것이며, 황폐되었던 성읍들은 재건될 것이다(사 32:15; 사 35:15; 특별히 후에 쓰인 이사야서에서 예를 들면, 사 41:18; 사 43:19f; 사 58:12; 사 61:4; 사 62:4; 렘 33[40]:10-12; 겔 36:10, 겔 36:33 이하; 겔 38:8, 겔 38:12; 단 9:27; 참조: 호 14:5-10). 이 문맥에는 사 40:3과 같은 한 구절이 속한다. 그곳에서 광야를 통해 길들이 트일 것이며(사 43:19), 여호와께서 주되심이 밝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시 광야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실지라도, 광야는 여전히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님을 적대시 하는 장소 즉, 악한 귀신의 장소이다. 자신의 적과 자기 백성들의 적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는 또한 광야를 제압하신 승리이다.
3. 성서 이후의 유대교 
성서 이후의 유대교는 호세아의 황폐 예표설의 범위 내에서 연구하였을 때 광야로부터 유대인의 구속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SB I 85-88에서 랍비들의 증거). 이러한 뜻은 메시야께서 광야에서 오신다는 혼란의 이유가 되었다(Josephus, War 2, 258-63). 에세네파(Essenes)는 종말에 자기들이 쿰란의 광야로 옮겨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러한 이유는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생각했으며(참조, 1QS 8, 12이하; 9:19f.), 이와 같은 것은 세례(침례)요한에게도 적용된다(Josephus, Ant. 18, 116-119). 이와 비슷하게 이사야(사 2:8-11)의 순교에 의하면 선지자들 곧 이사야, 미가와 다른 선지자들은 "황폐한 산"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유대교가 메시야를 광야와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호 2:16; 12:10; 욥 30:4과 사 40:3과 같은 성구에 집착하는 것이며, 사 40:3은 세례(침례)요한과 마찬가지로 쿰란과도 관계 있다. 성전 파괴 후에 유대인들은 어려움 없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광야로"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하였는데(Josephus, War)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특별히 광야에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귀신들은 역시 광야에서 살고 있다. 베헤모트(Behemoth, 참조: 욥 40:15-24)는 에녹일서 60:8에 의하면 광야 귀신이다. 형벌을 받고 있는 악한 귀신들은 광야로 보내지는데 그곳을 거처로 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토빗 8:3; 에녹일서 10:4; 참조: 마 12:43. 병행구 눅 11:24). 광야 귀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고도의 신학적 - 종말론적 관심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쿰란 종파의 계속적으로 시행한 반 마귀적인 세정식에서, 기도와 금식으로(반 마귀적인) 정결을 위하여 싸운 이사야 순교 2:8이하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세상과 분리에서 보여진다. 광야에서 수도자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기 위하여 악한 영들과 투쟁한다.
4. 신약성경의 용법. 
에레모스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타나며, '광야'를 뜻한다.
(a)  광야에 대한 신약성경의 평가는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평가와 같다. 변함 없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간의 방랑 생활은 하나님의 역사적 활동의 중요한 사실로서 생각되며(요 3:14; 요 6:31, 요 6:49; 행 7:30이하; 행 13:18; 고후 10:5; 히 3:8, 히 3:17), 광야에서 종말적인 운동이 시작된다는 사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마 24:26; 행 21:38).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묵시(계 12:6, 계 12:14)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대가 광야에서 열려진다는 지대한 관심에서 설명되어 지지 않으면 안되며 동시에 메시야가 광야에서 올 것이라는 기대를 입증하여 준다(참조: 마 2:15; 호 11:1).
(b)  세례(침례)요한은 광야에 숨어 살았으며, 유대광야에서 효과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유대 광야"는 삿 1:16에서 "아랏 남방"으로 표기되었다. 여리고에서 남쪽으로, 곧 사해의 서북 쪽에 있는 울퉁불퉁한 여러 지역들 - 십 황무지(삼상 23:14, 삼상 23:15), 마온 황무지(삼상 23:24), 엔게디 황무지(삼상 24:1), 여루엘 들(대하 20:16), 드고아 들(대하 20:20)을 통틀어 지칭한다. 이 모든 지역은 유다 영토에 속한다.
(c)  유대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선지자들은 광야와 산에서 은거하였는데 그 이유는 수도자들에게 그곳이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며(Mare. 사 2:8-11), 그러므로 히 11:38은 구약 선지자들과 수도자들이 광야, 산, 토굴에서 은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광야의 방랑자들과 구약성경의 광야 거주민을 새 이스라엘과 관련시켜 보면 새 이스라엘을 방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원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히 3이하; 히 11:8-10; 히 12:18-24; 참조: 고전 10:1-13; 참조: E. Kasemann).
(d)  예수님의 의미가 선지자와 메시야로 묘사되는, 한 광야는 그 지역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시대의 지도자 모습에 대한 선지자적 해석에서 모세와 닮은 것으로 나타나셨으나(행 3:22 이하; 행 7:37; 참조: 신 18:15), 그러나 물론 원형으로 모세를 능가한다(참조: 히 3:1-6).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공관복음의 이야기는 초원과 외딴곳에 사는 사람들, 즉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선포한 메시야적 영광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으며(눅 2:8-14), 애굽으로 피신가는 것으로(마 2:13-15, 마 2:19-21) 애굽의 광야로부터 메시야가 오셨다고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호 11:1에 대한 마 2:15의 메시야 해석; 토빗에서 애굽은 광야를 의미). 예수님께서 사람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은 광야에서 일어났으며(마 4:1-1 병행구 막 1:12 이하, 눅 4:1-13; → 유혹하다 tempt), 예수님께서 이적으로(참조: 왕하 4:42-44 엘리야와 더불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먹이신 것도 광야에서 일어났다(마 14:13 병행구 막 6:32; 또한 눅 9:12; 마 15:33 병행구 막 8:4). 여러 번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어 기도하셨고 금식하셨으며(마 4:1이하 병행구 눅 4:1 이하; 참조: 막 1:35, 막 1:45 병행구 눅 4:42; 눅 5:16), 특별히 하나님과 가깝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마귀들의 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다(막 1:12이하 병행구). 광야는 여전히 환상을 보기에 적합한 장소이다(계 17:3; 참조: 행 8:26). 바울이 아라비아 사막을 찾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갈 1:17). 그렇지만 단순히 적대자의 압제를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참조: 왕상 19:3 이하; 그리고 계 12:6).
(e)  광야 세대의 죄와 허물(위의 구약성경 그를 참조)이 언급되어 있는 곳에서는 사막이 부정적으로만 기록된다(행 7:41-43; 고전 10:5; 히 3:8, 행 3:17). 사막에는 악마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후 11:26; 참조: 눅 15:4). 왜냐하면 그 곳에는 귀신(마 12:43 병행구. 눅 11:24, 막 1:12이하)과 귀신들린 자들(눅 8:29)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론적인(aetiological) 악마 전설은 사막 지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행 1:18-20; 참조: 시 69:26[그 밖에, 마 27:3-10]; 참조: Papias, Frag. 3).(참조: W. L. Liefeld; G. Kittel). 
===@@광야로 나아감(마가복음 1:12-15).....광야는 하나님 말씀이 임하는 곳...그러나, 그대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은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그리고,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경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음성을 들려주신 후, 어떻게 그를 광야로 몰고 가시는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나, 의문이 든다. 
사랑하는 아들인데, 다른 좋은 곳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광야인가?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Midbar)이다. 이는 히브리어의 ‘미mi’와 ‘다바르dabar’의 합성어이다. 
히브리어로 ‘다바르(dabar)’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단어를 더 보자. 히브리어로 성전은 미크다쉬(Mikdash)이다. 
이는 히브리어의 ‘미mi’와 ‘거룩’을 뜻하는 ‘카도쉬(kadosh)’의 합성어이다. 
즉, 히브리어에서 어떠한 단어 앞에 ‘미mi’자가 붙으면, 그 단어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뜻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거룩함(카도쉬)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성전(미크다쉬)이고,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이 임하는 곳이 광야(미드바르)인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광야의 개념과 고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광야의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광야로 나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요,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이다.
출애굽기서에 보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힘든 인생을 살았다. 
노예로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인생을 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노예의 신세를 벗어나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된 것은 그들이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이다.   개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의 인생을 보면 알 수 있다. 
모세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것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나일 강에서 건짐을 받은 모세는 왕궁에서 성장한다. 모세는 자라나면서 자기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의식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왕궁 밖에서 불의한 장면을 목격한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과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위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인다. “그렇게 하면 너한테 칭찬 받을 거라 생각했어.”  그 다음 날, 모세는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는 것을 목격한다. 그래서 모세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모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런 나도 죽이려느느냐?” 
이 말을 듣고, 모세는 결국 두려움에 사려 잡혀, 왕궁에서 빠져나와 광야로 도망친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그가 왕궁에서 왕의 교육을 받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망자 신세로, 미디언 광야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양을 치고 있을 때, 광야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이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다윗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같은 것을 목격한다. 
블레셋의 위협 때문에 세워진 왕 사울은 여느 때와 같이 블레셋과 대치 상황에 있었다. 
그런데, 블레셋 진영에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가 버티고 있어서, 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울은 백방으로 적장과 싸워 이길 이스라엘의 장수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도 거인 골리앗과 상대하겠다는 장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심부름을 갔던 목동 소년 다윗이 사울 왕에게 나아가 적장 골리앗과 싸우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내어주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평소에 즐겨 쓰던 물매와 돌 다섯개를 주워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선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렇게 외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 47).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린다. 
그런데, 다윗은 그러한 것을 무슨 군사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다윗은 평소 ‘광야’에서 양을 치며, 곰과 사자가 덤빌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물매로 그들을 물리쳤고, 광야에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배웠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즉,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키웠다. 그리고, 광야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영적으로 가장 혼탁한 시대를 살았던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지켜내기 위하여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피비린내 나는 대결 뒤에, 이세벨의 살해 위협 소식을 듣고 도망치던 엘리야는 자신이 감당하고 있던 사명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도망치던 중간에 탈진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한다. “자기 자신이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그렇게 죽기를 간구하던 엘리야를 하나님은 어루만져 살리신 후,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게 하여, 결국 엘리야는 광야 깊은 한 곳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침체에서 회복하여 새로운 사명을 받고 세상으로 나시 나온다.
모세가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왕궁 교육 때문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다윗이 아무도 이기지 못했던 골리앗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군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영적 침체에 빠져 죽기를 간구할 정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여 모든 인류의 구원의 소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나온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광야는 물리적 장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유대인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다. 
즉, 신앙의 선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광야로 나가거나, 광야로 불러내어졌다.
우리는 자녀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마땅하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온갖 좋은 곳을 다 구경 시켜주고, 좋은 곳을 다 데리고 간다. 할 수 있거든, 더 많이 하시라. 그러나, 우리가 광야의 영성으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이들을 ‘광야’로 보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자녀들이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중요한 삶의 문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도서관에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구한다 해도 풀지 못한다. 
광야로 나가, 적막한 가운데, 오직 하나님을 만나야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
현대인들의 삶이 불안하고 힘든 이유는 삶 속에서 광야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땅히 존재해야 할 광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려한 불빛의 도시만이 자리 잡고 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는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바벨에 세워진 성읍과 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지혜로 살아가겠다고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들의 교만을 고발한다.  실제로 도시의 삶 자체는 먹고 사는 데만 몰두하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광야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도시의 문화가 그것을 잘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부활절을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광야로 나가야 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절기이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리스도의 이 선포가 진지하게 들린다면, 성령께 간구하라.
 “나를 광야로 데려가 주세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새창조의 역사가 삶 가운데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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