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1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26.바울의변명..아그리빠에게전도..아그리빠의 무죄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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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6장

===바울이 변명하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바 메시야 개념은 오로지 이방나라들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파라다이스를 가져다 줄 [기복적-육적-정치적 메시야]로서...이런 기대에완전히 반하는 바, [비록 하나님께서 보내셨다 하더라도!!...그 비천한 지역 나사렛 출신의 청년 예수!!, 분명히 CJ께서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부려서 오히려 정치적 이유를 달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바였기에!!, 대속 구주 나사렛 예수를 믿고 그들의 구주로 결코 영접할 수 없었음...

.......바울자신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 예수... 오직 그분의 ((약속하신바)) 성령으로 살아가기를 배움 인해 깨닫게 된바] JC오심 인해 그리스도안에서 사는 그의 패러다임은  기복--->팔복으로, 세속사-->구속사... 율법-->복음으로 전환되었고 바울에게 나타나 이름 불러주신(소명) 그분께서 주신 사명따라 복음전파자가 되었으며 그분의 경륜따라 로마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내>힘과 방법으로만 살아가려는 어리석음<모로스- μωρός>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잠14:18....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고전3:18-20....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미련한의 헬라어는 <모로스 μωρός>... <모로스 μωρός>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뜻한다,,,  세상적인 미련함이 아니라, 다가올 영원의 시간에 대해서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 모습을 <모로스 μωρός>라고 함이니...곧,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마다 깨닫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가는 인생이기에!! 모든 인생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함께 하셔야 한다는것... 자신의 힘으로 결코 참되게 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과 방법만으로 살아 가려고 하는 것이 <모로스 μωρός>인것..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을 지혜롭게 살며 영원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헬라어 <프로니모스 φρόνιμος>의 슬기로움일진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탁월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없다면 그것이 <모로스 μωρός>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리석음 (foolishness) : 모리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어리석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모리아'라는 단어는  어리석은, 신앙심이 없는, 불신하는, 부주의한, 바보, 얼간이'의 뜻을 가진 형용사 '모로스'에서 파생된 명사로 '어리석음, 불합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로스'라는 단어는 '비밀, 신비, 감춰진 것'이라는 뜻의  '뮈스테리온'의 어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이 단어 또한 '입을 다물다'라는 '뮈오'의 파생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 없는, 무분별한, 우둔한, 어리석은, 생각이나 이해력이 없는  무모하게 행동하는, 무지한, 자기중심적인, 지혜롭지 못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압흐론'이라는 단어와 의미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런 의미에서 '모리아'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바, '어리석음' 때문에!!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결코 알지 못하는바!!, 주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도구로써 전도의 '미련한 것'(모리아) 방법을 쓰고 계신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고전1:21) 그러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불신 이방인에게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는 사실이 감춰져 있어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기에 단지 미련한 것(모리아)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23,24)

---**제사장의 요제(각인의 심령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 거제(부활승천안에 계신 그리스도)**공급하기 위해 성령 부어주심 원하는 바, 구하는대로 부어주실 주님!!..모든 믿는이마다에게는 이미 열린 하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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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주신동산에##....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모하는 내 주님께 

** 땅 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땅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 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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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 43:18-21, 44:21-23; 행 16:25-34; 마 9:9-17).....인생의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Choice)을 해야 된다. 그 올바른 선택은 그리스도(Christ)--.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가 되시어 여러분들의 인생의 결과(End)가 지고지선의 , 지복직관의 축복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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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혹은 작심일일이어도 좋습니다. 계획은 늘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은, 오늘도 우리가 나 자신을 죽이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참된 신앙의 길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것이 바로 새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일찍이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았을지라도, 옛 인간을 단번에 벗어버릴 수는 없고, 계속적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서 나날이 성화되어야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인간론으로 이해하면 이렇습니다. 지상의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본성을 가집니다. 곧 ‘영과 육’, 혹은 ‘옛 인간과 새로운 인간’이라는 두 본성이 우리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상호 투쟁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루터에 의하면) 그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루터의 신학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의인이면서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인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를 의롭다고 여길지라도, 그는 죄인이며, 결코 그의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최종적인 종말에,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성화(聖化)의 과정’이 완성되고, ‘죄성(罪性)의 잔재’가 완전히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진정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곧, 새로운 세상이 오기까지는, 우리는 죄인이며 이러한 죄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오늘도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넘어지고 쓰러지는 우리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정녕 이러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립니다.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삶은 이것을 인정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곧, 자신을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이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주현절기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 또한 구약의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우리의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여주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예수님)을 소개하며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합니다.

먼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마태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로 소개되어 있습니다(막 2:14 ; 눅 5:27). 세관은 세금업무를 보는 관공서를 말하죠?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국경 근처에 위치하여 통행세를 징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업무였습니다.

아무튼 예수께서 국경 근처 세관을 지나시다 마태를 만났고,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 세관 업무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죄인에게 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마 9:10) 이 때 사건이 생깁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0-11)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라고 말씀하시고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작심삼일로 자신의 의지 없음과 부족함을 탓하는 어리석은 우리를, 또한 이 불의한 시대에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부르시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아마존에서 22년을 사역한 허운석 선교사는 자신의 가식으로 뒤덮인 자아의 폭로하며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두란노서원, 2016)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기도하러 간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하나님을 훼방하고 대적하러 나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기도하려고 손만 모았다 하면 ‘하나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합니다. 우리가 달라는 이것, 저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일 수 있는데도, 입만 열었다 하면 내 마음에 드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달라고 조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교회를 다닌다 하면서 왕(王)바리새인처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교회 기도하러 간다하며 싸움합니다. 교회 찬송하러 간다하며 고함지릅니다. 교회 말씀 들으러 간다하며 남을 흉보는 이야기만 하고, 듣습니다. 교회에 사랑을 실천하러 간다하면서 미움과 증오와 혐오만 행하고 옵니다. 이러한 가식으로 뒤덮인 우리의 자아가 바로 병든 자, 죄인이며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 그렇습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이 죄인의 모습이었다면, 이제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면, 이전의 죄의 습성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new Being)’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화신학자인 폴 틸리히(P. Tillich)는 새로운 존재를, ‘인간 실존’에 관한 질문의 답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현된 존재’로 봅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우리 인간의 실존은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작심삼일은 새로운 존재의 지평에서 보면, 부족한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을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 실존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그렇다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새로운 존재인 우리들 앞에 펼쳐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사야가 잘 말해 줍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절망의 상황을 희망으로 바꿔주시겠다는 말씀이죠? 그리고 그 희망의 물을 마시게 한다고 합니다. 생수의 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존재가 행하는 새 일이 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찬송과 기도입니다. 이사야 말씀을 좀 더 볼까요?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 44:21-23)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뿐만이 아닙니다. 하늘도, 산들도 숲과 그 가운데 나무들도 소리 내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먹구름)같이, 우리의 죄를 안개(뜬구름)같이 없게 만드신 하나님, 공동번역은 “나는 너의 악행을 먹구름처럼 흩어버렸고 너의 죄를 뜬구름처럼 날려 보”내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죠?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그분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한 구체적인 모습이 사도행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였습니다. 바울은 기도합니다. 찬송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믿는 사람들의 기도와 찬송이 옥문을 열고 매인 사슬을 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찬송은 이러한 물질적 변화에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을 계속 보겠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행 16:27-30)

그렇습니다.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능력이 전파됩니다. 바울은 그 간수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행 16:31-32)”였습니다. 그리고 그 간수와 간수의 집이 구원을 받고 크게 기뻐합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3-34)

자, 다시 질문해 봅시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은 삶은 도대체 어떠해야 합니까? 새로운 존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앞서 서두에 말씀 드린 대로, 언제나 ‘의인이면서 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로지 최종적인 종말에,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성화의 과정이 완성되고, 죄성의 잔재가 완전히 소멸될 때 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까?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중요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마태의 집에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셨던 예수님은 이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 9:14)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 9:15)

물론 이 말씀은 금식에 관한 논쟁입니다. 그리고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자신을 낮아지게 하는 행위입니다. 음식을 금함으로 육신에 고통을 주어,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모습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의지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는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축제를 즐기셨습니다(요 2:7-10).

그러나 신랑 되신 예수님을 빼앗길 날이 올 텐데, 그때는 금식할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된 금식’과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남을 비난하는 그 낡은 가죽 부대와도 같은 바리새인들에게,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담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6-17)

 낡은 가죽 부대가 찢어져 새 포도주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둘 다 보전됩니다. 우리 교회가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 포도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둘 다 보전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성품을 배우려고 교회 생활하는 것이지,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비방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교인 모두가 새 것, 곧 좋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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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손을 내밀다 = 손 들고 맡기다..= 에크테이노

[눅5:11-13..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행4:24-31...*24.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손을 뻗다”의 헬라어는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입니다.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에는 3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손을 뻗다” “안수하다, 손을 얹다” “닻을 내리다”입니다. 또한, .....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을 뜻합니다. 온 힘과 정성을 다해서 손을 뻗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손을 얹고 축복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에는 축복해 주기 위해서 손을 뻗는다 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곳에 닻을 내려 줍니다. 잠시 손을 올려서 축복해 주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픈 영혼들을 향해서 손을 뻗어서 만져 주시는 것이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입니다.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기 위해서 축복으로 안수 해 주시는 것이 <에크테이노- ἐκτείν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수하실 때 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으로 선포하시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육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주님과 합하기 위해 손을 내밀며((마음으로 "주님"이름 부르짖어 친히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말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요제(각인의 심령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 거제(부활승천안에 계신 그리스도)**공급하기 위해 성령 부어주심 원하는 바, 구하는대로 부어주실 주님!!..모든 믿는이마다에게는 이미 열린 하늘임을 기억하라!!..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마카리오스...하늘나라/하나님나라의 복= 참된 진복, 곧 팔복 얻는 십자가복음에 대한 오해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제시할 수 있어서 감사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마크로듀모스...끝까지 인내하며 참을성 있게 경청하여]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그 어떤 상황과 형편처지에서도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복음전할바,..(육적관점에서 보아) 전도대상자를 차별함 없이!! 오로지, 그대 자신을 완전히 주께 맡겨드림으로써 주님의 마음과 입이되어 말하되!!  상대방의 눈높이- 정서 등 고유한 상황에 맞추어 [십자가를 적용하여, 오직 성령님따라] 전도하라...실패?? 주께서 카운트 하사, 상 주시리라!!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왜냐하면!!]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휘페테레스, 배 밑창에서 묵묵히 노젓는 노꾼 노예, 육상에서는 (사무엘에 대해 주님이 그리하셨듯, 마치 동료처럼 서로 묻고 대화하며 속삭이는 바) 주인 심정/의중 그대로 따르는 참된 청지기]과 증인[=마르튀스, 자기 목숨 내어놓는 복음전파자]을 삼으려[=프로이리조마이..택정/결정/지명하다...determine/appoint] 함이니

.......@@프로케이리조(마이).....신약성경에서 형용사는 나오지 않고 사도행전에 3회 나오는데 아마도 통상적인 헬라어 용법으로 이해해야 할 것.... 행 26:16에서 이 동사는 두 개의 목적격을 수반하여 자신이 보았고 또 장차 볼 것에 대한 증인과 일군으로 임명 받는 바울에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사용된다(행 16:9 이하; 행 22:17-21; 행 23:11을 참조).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이 임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아나니아의 말(행 22:14)도 비슷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알고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시고자 바울을 선택, 또는 임명하셨다.) 바울의 증거의 사역은 그의 응답을 요구하는 이 봄과 들음에 근거하였다. 이 결정은 → 시간 time에 대한 어떤 언급이 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나타내어진다. 이 해석의 전체가 되는 문법구조, 곧 프로케이리조(procheirizo:)를 사람을 나타내는 목적격과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사에 연결시키는 것은 분명히 현재까지는 독창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주전 3세기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인정되는 데스피아에(Thespiae)의 비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목적격과 하나의 부정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앞의 '고전 헬라어 문헌' 란을 보라). .....이 경우에 이 뜻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임명하셨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고 결정하셨다는 뜻이 된다. ....행 3:20은 회개를 촉구하는데,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라고 하였다.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마치 성육신하여 오신, 마치 자체로서는 미약/무력하신 JC께서 제한받지않으시는 분 성령의 전적인ㅁ/완전한 도우심따라 아버지 뜻 이루심처럼, 이제 부활승천하여 완전케 되신 CJ께서 부활생명의 그영으로서 내주하심+부어지심으로써 바울은 사로잡아 하나되어 이루실 바]

18.  그 눈을 뜨게 하여[= 각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상황-형편-처지를 영적 관점에서 이해/해석 가능케 하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환난-곤고-핍박-기근-적신-위협-칼 등 이 땅을 살아가는(불신자나 신자의) 닥치는 바 모든 주변 상황-형편-처지에 대한 영적 해석이 가능해지고 삶의 목적추구가 가능해지기에!!...((바로 이것이 각 사람이 이 땅에 보냄 받은 이유임)) 이 땅에 비추는 빛이시요 전능의 해결사 구주 JC를 전할 수 있고 공급할 수 있음 --롬5장, 롬8장....그대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케 하신 바, "산꼭대기에 도달한 등산가의 성취감" 느껴본 적 있는가, 

.......이런 영적 시야가 열릴 때!!, 그대의, 그대 주변의 힘든 가족, 힘들게 하는 가족들이란!! ...주 안에 있는 그대에게는 "올무"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를 적용함 통해] 전심다해 즐거움으로 사랑하며 섬길 전도대상자들이요, 주와 하나된 그대를 꼭 집어 임명하신 바 JC의 종과 증인으로 삼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기업됨에 이르게 하시려 바로 그대가 보냄받았음을 알게 될 것!!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네가 나 나사렛예수를 박해했다"는 주님 말씀그대로 인정하여 통히함으로써 회개하고!! 또 바울을 찾아 온 아나니아를 영접하고 그의 기도로 눈을 뜨고, 그를 통해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땅끝까지, 이방인에게까지 CJ 전파를 위한 복음전도자로서 살고 있는바]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이미 바울 자신이 그리함처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회개에 합당한 일 = 그 열매 =[십자가 적용...참생명 JC를 살며-살아내며-공급함/열매맺음(섬김-돌봄-전도)] ..., [미가서 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에피쿠리아 -- 주 하나님 JC께서 동맹군, 반쪽으로서, 체휼하시며 당신이 친히 제어하심..마5:11,12]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마5:11, 12...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다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유코마이...(주님여, 구원하시려는 주님 뜻대로 그리 해 주시기를!!) 원하고-바라고-기도합니다] 하니라

......유다는 "그의 며느리를" 그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그대가, 며느리가 (나보다) 옳다" 증거하고 편들고 있었으니...누구를 옳다 함으로 편들어 줌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다!!

......이방인(베스도)에게는 미련한 것, 유대인(아그리빠)에게는 거리낌인데, 믿는 그대에게는 어떠한가??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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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26  Amplified Bible

===Paul’s Defense before Agrippa

1 Then Agrippa said to Paul, “You are [now] permitted to speak on your own behalf.” At that, Paul stretched out his hand [as an orator] and made his defense [as follows]:

2 “I consider myself fortunate, King Agrippa, since it is before you that I am to make my defense today regarding all the charges brought against me by the Jews, 

3 especially because you are an expert [fully knowledgeable, experienced and unusually conversant] in all the Jewish customs and controversial issues; therefore, I beg you to listen to me patiently.

4 “So then, all the Jews know my manner of life from my youth up, which from the beginning was spent among my own nation [the Jewish people], and in Jerusalem. 

5 They have known me for a long time, if they are willing to testify to it, that according to the [a]strictest sect of our religion, I have lived as a Pharisee. 

6 And now I am standing trial for the hope of the promise made by God to our fathers. 

7 Which hope [of the Messiah and the resurrection] our twelve tribes [confidently] expect to realize as they serve and worship God in earnest night and day. And for this hope, O King, I am being accused by Jews! 

8 Why is it thought incredible by [any of] you that God raises the dead?

9 “So then, I [once] thought to myself that it was my duty to do many things in opposition to the name of Jesus of Nazareth. 

10 And this is just what I did in Jerusalem; I not only locked up many of the saints (God’s people) in prison after receiving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but also when they were being condemned to death, I [b]cast my vote against them. 

11 And I often punished them [making them suffer] in all the synagogues and tried to force them to blaspheme; and in my extreme rage at them, I kept hunting them even to foreign cities [harassing and persecuting them].

12 “While so engaged, as I was traveling to Damascus with the authority and commission and full power of the chief priests, 

13 at midday, O King, I saw on the way a light from heaven surpassing the brightness of the sun, shining all around me and those who were traveling with me. 

14 And when we all had fallen to the ground, I heard a voice in the Hebrew dialect (Jewish Aramaic) saying to me, ‘Saul, Saul, why are you persecuting Me? [c]It is hard for you to kick [repeatedly] against the [d]goads [offering pointless resistance].’ 

15 And I said, ‘Who are You, Lord?’ And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16 Get up and stand on your feet. I have appeared to you for this purpose, to appoint you [to serve] as a minister and as a witness [to testify, with authority,] not only to the things which you have seen, but also to the things in which I will appear to you, 

17 [choosing you for Myself and] rescuing you from the Jewish people and from the Gentiles, to whom I am sending you, 

18 to open their [spiritual] eyes so that they may turn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of Satan to God, that they may receive forgiveness and release from their sins and an inheritance among those who have been sanctified (set apart, made holy) by faith in Me.’

19 “So, King Agrippa, I was not disobedient to the heavenly vision, 

20 but I openly proclaimed first to those at Damascus, then at Jerusalem and throughout the region of Judea, and even to the Gentiles, that they should repent [change their inner self—their old way of thinking] and turn to God, doing deeds and living lives which are consistent with repentance. 

21 Because of this some Jews seized me in the temple and tried to kill me. 

22 But I have had help from God to this day, and I stand [before people] testifying to small and great alike, stating nothing except what the Prophets and Moses said would come to pass— 

23 that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was to suffer, and that He by being the first to rise from the dead [with an incorruptible body] would proclaim light (salvation) both to the Jewish people and to the Gentiles.”

24 While Paul was making this defense, Festus said loudly, “Paul, you are out of your mind! Your great education is turning you toward madness.” 

25 But Paul replied, “I am not out of my mind, most excellent and noble Festus, but [with a sound mind] I am uttering rational words of truth and reason. 

26 For [your majesty] the king understands these things, and [therefore] I am also speaking to him with confidence and boldness, since I am convinced that none of these things escape his notice; for this has not been done in a corner [hidden from view, in secret]. 

27 King Agrippa, do you believe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their messages and words]? I know that you do.” 

28 Then Agrippa said to Paul, “In a short time [and with so little effort] you [almost] persuade me to become a Christian.” 

29 And Paul replied, “Whether in a short time or long, I wish to God that not only you, but also all who hear me today, might become such as I am, except for these chains.”

30 Then the king stood up, and [with him] the governor and Bernice, and those who were sitting with them; 

31 and after they had gone out, they began saying to one another, “This man is not doing anything worthy of death or [even] of imprisonment.” 

32 And Agrippa said to Festus, “This man could have been set free if he had not appealed to [e]Caesar (Emperor Nero).”

===Footnotes

Acts 26:5 Paul probably is referring to the school of Shammai, which flourished from 30 b.c. to a.d. 20. Gamaliel, Paul’s teacher in the school of Hillel (22:3), discussed and interpreted the teachings of both schools, and often agreed with the teachings of Shammai, so Paul was familiar with Shammai as well as Hillel.

Acts 26:10 Lit cast down my (black) pebble. In ancient times a vote cast by throwing a white pebble meant acquittal, and a black one, condemnation.

Acts 26:14 An ancient Greek proverb dating back to the time of Euripides.

Acts 26:14 These were wooden shafts (like broomsticks) with a pointed piece of metal on one end, used by the farmer to keep an ox going in the right direction as it pulled a plow. Jesus was “prodding” Paul to take the proper direction in his life, and Paul had been resisting. 

Acts 26:32 Nero was the fifth and last of the Roman emperors of the Julio-Claudian dynasty. He ruled after the death of Claudius and actively persecuted Christians. Both Paul and Peter were martyred during Nero’s reign (a.d. 5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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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개요)

우리는 전 장에서 바울이 법정에 섰다는 사실과 또한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버니게와 그외의 가이사랴 성의 고관들이 자리 잡고 앉아서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변론하는가 듣고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고찰하였다. 본장에서는 다음의 사실을 고찰하여 보도록 하자.

Ⅰ. 유대인의 비방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론.

1. 그가 먼저 아그립바 왕에게 겸손히 말을 꺼낸다. 

그리고 자기가 그에게 얘기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찬사를 보낸다(1-3).

2. 바울은 자기의 태생과 교육, 바리새인으로서의 자신의 열심을 설명하고 의식을 준봉하는데 있어서는 바리새인들과 견해를 달리하지만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기본적인 신앙에 있어서는 바리새인들과 입장을 같이 한다고 설명한다(3-8).

3. 그의 활동 초기에는 기독교와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열심히 박해한 사실을 설명한다(9-11).

4.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회심하게 된 기적적인 회심에 대해 설명한다(12-16).

5.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늘로부터의 위임을 받은 사실을 설명한다(17, 18).

6. 그 명령에 대한 성실한 그의 생활을 설명하고 그 생활이 유대인들을 대단히 격노케 하였음을 설명한다(19-21).

7. 그가 전념하여 이방인들에게 전한 가르침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양자를 성취하려는 것임을 설명한다(22, 23).

Ⅱ. 바울의 증언에 대한 논평.

1. 베스도는 이같이 광적으로 말하는 말은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였다(24). 

이에 대한 대답으로 바울은 베스도의 말을 부정하고 아그립바에게 호소하였다(25-27).

2. 아그립바 왕은(바울은 이 사람을 주 대상으로 삼아 말을 했었다) 지금까지 이같이 합리적이며 또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이 거의 회심할 뻔한 사실을 시인하였다(28). 이에 대하여 바울은 진심으로 그가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였다(29).

3. 그들은 모두 바울이 무죄라는 것에 동의를 하고 석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써 오히려 이제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사실을 동정하였다(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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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변명하다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바울의 다섯 번째의 자기 변명(1)(행 26:1-11)

이 재판정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아그립바가 가장 존귀한 인물이었다. 오직 그에게만이 왕의 칭호가 주어져 있었다. 

비록 그는 황제의 밑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총독들과 대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뛰어난 권력은 아니었으나 베스도에 비하여서는 상위의 계열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베스도가 재판을 열었으나 아그립바가 그 회의의 최고 위치에 있는 자로서 바울에게 변명하도록 허락을 내렸던 것이다(1절). 

바울은 자기에게 말할 기회가 허락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발언할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들 또는 가장 훌륭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서둘러서 말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베푼 친절은 유대인들은 좀처럼 베풀려 하지 않았던 친절이었다. 또 바울이 허락을 얻어 얘기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방해를 놓아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자유롭게 바울에게 기회를 허용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입장이 떳떳했으므로 자기가 변론하는 기회가 허용되는 것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더둘로가 유대인을 위해 변호했듯이) 말해 줄 변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본문에 바울의 자세가 언급되고 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는 사람처럼 또한 자유로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처럼 "손을 앞으로 뻗쳤다." 

그가 손을 뻗은 것은 또한 그가 진지하게 말하고자 한다는 것과 그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청종해 달라는 뜻을 지닌 것이었다. 

바울이 황제에게 호소하였다는 구실로 입을 열지 않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는 "나는 황제 앞에 설 때까지 모든 재판을 거부하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꺼이 그가 고난받고 있는 원인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소망에 대하여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벧전 3:15). 

이제 바울이 그의 변론의 전반부에서 말한 내용을 살펴 보자.

Ⅰ.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매우 특별한 존경을 표하였다(2, 3절).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증언할 때는 "벨릭스가 여러 해 동안 유대인의 재판장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었다(24:10). 

그러나 바울의 아그립바에 대한 태도는 이것보다 더 진지한 것이었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유대인의 비난을 받아 온갖 추악한 누명을 쓰게 된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기뻐하였다. 

바울은 자기가 사도이기 때문에 당국의 재판을 면제받아야 한다고 결코 생각지 않았다.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요, 우리는 또한 그 혜택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그 권력에 순복해야 되는 것이다.

2.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변명하도록 강요를 받았지만 그래도 아그립바 왕 앞에서 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 이유는 아그립바는 유대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으므로 다른 로마 총독들 보다는 종교적인 문제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로 보아서 아그립바는 학자 출신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특히 유대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유대 종교의 관습에 대하여 전문가였으며 유대의 관습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그립바는 또한 유대인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유대인의 관습에서 야기된 문제도 척척 해결하였다. 

아그립바는 구약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가 메시야라는 문제에 관한 바울과 유대인의 싸움을 잘 판결할 수 있었다. 

전도자에게 있어서 총명하고 사물의 차이를 식별 할 수 있는 청중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너희가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한 대상은 "지혜있는 자들에" 제한되어 있었다(고전 10:15).

3.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너그러이 들어 주기를, 다른 말로 "참고 들어 주기를" 간청한다. 

바울은 장시간 변론할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아그립바에게 그가 끝까지 짜증내지 않고 들어 줄 것을 간청한 것이다. 

또한 그는 솔직히 자신의 의견을 토로할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에게 화를 내지 말고 너그러이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바울은 아그립바가 유대 관습에 정통하여 바울의 사건을 정확히 판결할 수 있는 한편 그가 유대인의 누룩에 깊이 젖어 있어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속단해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왕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내 말을 너그러이 들어 주시기 바라옵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관한 설교를 할 때 최소한 필요한 조건은 상대편이 끝까지 너그러이 들어 주는 것이다.

Ⅱ. 바울은 자기가 미움을 받고 사도라는 낙인이 찍혀 있지만 그는 이제까지 교육을 받고 생활하여 온 것 가운데 있는 모든 선을 행하면서 살아 왔음을 고백한다. 

바울의 종교는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약속하신 약속" 위에 언제나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 약속 위에 서 있었다.

1. 바울이 젊은 날에 신앙한 내용. 

바울의 젊은 때의 태도와 생활은 잘 알려져 있었다(4, 5절). 바울은 비록 유대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예루살렘에서 그들과 함께 성장하였다. 

비록 그가 최근에는 이방인들과 사귀어 오고 있지만(이것이 유대인들을 가장 격분케 한 조건이었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는 유대 민족에 정통하였고 또 유대 민족의 유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받은 교육은 외국의 것도 아니고 또 모호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신앙과 학문이 융성하였던 예루살렘에서 자기의 민족 가운데서 교육받았다. 

오래 전 일을 기억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바울은 자신을 과시하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으며 그가 유대교인일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모든 관습까지 철저히 지키는 자라는 것을 증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이 "유대교의 가장 엄격한 파에 속하여 있었으며" 자기가 속하여 있는 파의 제도를 가장 정확하고 훌륭히 지키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바리새인의 규례를 전하는 일에 가장 철저하고 열성적이었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불리웠을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으로서 살았다.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어느 바리새인들도 바울이 스스로 정하고 실천하였던 규칙을 그만큼 정확히 지킨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바리새인 가운데서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힐렐 학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기 때문이다. 

힐렐 학파는 사마이 학파보다 종교적으로 더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고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특성도 가지고 있었다.

(1) 바울은 학자였으며 박식한 사람으로 무지하거나 문맹이 아니었고 맹목적으로 종교의 규정을 따르는 자도 아니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알고 있었고 또한 율법을 잘 해석하였으며 율법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도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학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부로 자랐다는 것을 안 믿는 유대인들은 이것을 흠으로 책하였었다(4:13). 

그러나 가장 저명한 박사의 문하생 가운데서 사도가 일어났으므로 안 믿는 유대인들은 그것으로 이제 기독교를 책할 수 없게 되었다.

(2) 바울은 도덕주의자였으며 덕망있는 사람이었고 난봉군이거나 나태하고 방탕한 젊은이는 아니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철저히 살았으므로 그는 결코 주정뱅이나 방탕자가 될 수 없었다. 또는 그는 젊은 바리새인이었기에 아직 그때까지 돈밖에 모르는 착취자이지도 않았고 간교하고 탐욕적인 늙은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과부의 재산을 교묘히 빼앗는 재간도 아직 습득하지 않았었다. 

오직 그는 "율법 안에서 의를 행하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젊은 때 바울은 공개적인 악행을 저질렀다거나 율법을 모독했다고 하여 기소된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유대 종교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버렸다고 할 수 없듯이(왜냐하면 그는 박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유대교를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유대교의 의무를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버린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덕망있는 인물로 부도덕한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3) 또한 바울은 정통 주의자였고 건전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신론자나 회의주의자 또는 불신자가 될 소지가 있는 타락한 생활 원리를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두개인에게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바리새인이었다. 

바울은 사두개인들이 거부하는 구약의 책들까지 다 받아들이고 있었고 영혼의 세계를 믿었으며 영혼 불멸과 몸의 부활과 다가올 나라에서의 상벌을 믿었다. 이 모든 것을 사두개인들은 부정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신앙이 확고하지 않아서 유대교를 떠났다거나 그가 신의 계시를 존경할 줄을 몰라서 유대교를 떠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바울는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통적인 약속"을 믿었으며 그의 희망을 거기에 두었다.

바울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의롭다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런 것이 자기를 의롭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악감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아그립바로 하여금 자신이 유대인들이 얘기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님을 알리기 위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은 배설물로 간주하였지만 이 모든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기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하였다. 바울은 이 모든 그의 행위가 하나님의 법의 영적 특성과 그리고 내면적인 종교에 대해 낯선 사람이었을 때의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한 이 정도의 의로써는 그가 결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기가 회심 이전에도 무신론자이거나 신 모독자이거나 악덕인이 아니었고 자신이 알고 있었던 빛을 따라 살고자 하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따라 살고자 하였다"는 사실로써 기쁨으로 이 모든 사실을 회고하였던 것이다.

2. 바울의 현재의 신앙. 현재 바울은 자기의 젊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형식적인 율법에 열심을 두지는 않았다. 

바울은 제의법이 정해 놓은 희생과 제사는 이 희생과 제사의 원형인 그리스도의 대 희생 제사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그는 제의법이 규정하는 제의상의 부정함과 순결을 중요하지 않게 여겼으며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안으로 삼켜진 바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대교의 다른 신앙의 근본 원리들에 대해서 바울은 전처럼 열심이었고 어느 면에서는 한층 더 열성적이었다. 

그는 이 신앙의 원리들을 따라 살다가 죽기로 결심하였다.

(1) 바울의 믿음은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위에 기초된 것이다. 

신앙은 신의 계시에 바탕을 두었으며 바울은 그것을 믿고 받아들였고 자기의 영혼을 그것에 위해 바쳤다. 

그의 신앙은 신의 은혜에 근거를 두었으며 그 은혜는 약속에 의해 나타나고 또 전래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바울의 믿음의 바탕이 되었으며 안내자가 되었다. "조상들에게 주신 이 약속은" 제의법보다 더 오래 전에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한다"(갈 3:17)고 하였다.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는 복음의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이다. 

즉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으며 이 영원한 "생명은 곧 독생자 예수 안에 있음"을 말해 준다. 바로 이 두 가지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었다. 

이 복음의 약속의 유형은 여인의 후손에 관하여 조상 아담에게 하신 약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족장들도 내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으며 또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복음의 약속의 유형은 주로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에서 이르기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셨는데 이 약속은 곧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이 그와 그를 좇아 난 그이 후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 하셨는데 이 약속은 하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마련해 놓으시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히 11:16).

(2) 바울의 믿음은 이러한 약속에 대한 희망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는 것과 육신의 법을 지키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하나님은 자주 그 자신이 이러한 제의(먹고 마시는 것과 육신의 법)을 중시하지 않으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과 또 약속에 그의 소망을 두었다. 

이 약속은 그것에 의하여 교회가 처음으로 구체화된 대헌장이었던 것이다.

① 바울은 약속된 자손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고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받을 것을 소망하였고 이로써 진실로 복된 삶을 살기를 소망하였다.

② 바울은 하늘 나라를 소망하였다. 

이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을 믿는다"(24:15)는 그의 고백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바울은 육신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신뢰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의 좋은 것들을 바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저 세상의 더 위대한 것들을 소망하였다. 

그는 저 세상에 그의 목적을 두었다.

(3) 이점에 있어서 바울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과 견해를 같이 하였다. 

그의 믿음은 성서에 따른 것일 뿐만 아니라 유대 교회의 증언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 유대 교회의 증언은 성서의 증언을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그들이 오직 바울을 공격 목표로 설정하고 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약속은 곧 이 아름다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 곧 모든 유대교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열두 지파"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이 처음에는 열두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록 열 지파가 자기의 나라로 돌아왔다는 성서의 기록은 볼 수 없지만 그들이 개별적으로 자기의 나라로 돌아 왔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가 있다. 

아마도 점차 사로잡혀 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다로 이주하여 왔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도 "열두 지파"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마 19:28). 

안나는 아셀 지파 출신이다(눅 2:36). 또 야고보는 "여러 곳에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내노라고 하였다(약 1:1). 

바울은 말한다. "우리 나라를 구성하는 열두 지파에 나와 다른 사람들도 속해 있다. 이제 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믿고 있음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에 의해 얻을 유익을 소망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메시야가 오실 것을 소망하고 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미 오신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우리는 다 같이 같은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저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삶을 희망하는데 이것은 나도 소망하는 바인 것이다. 내가 이 기본적인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과 일치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나를 위험하고 이단적인 교리를 전하는 자로 보며 또는 유대 교회의 예배와 신앙을 떠난 변절자로 나를 간주하려는가? 나는 그들이 희망하고 있는 꼭 같은 하늘나라가 마침내 임할 것을 소망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끝날에 즐거이 만날 것을 소망한다면 왜 도중에서 그렇게 서로 분쟁하여야 하는가?"라고 한다. 

유대 교회는 이 약속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그 희망 가운데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섬겼다." 

성전에서의 섬김은 일련의 연속적인 종교적인 의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예배는 아침과 저녁, 낮과 밤, 한해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이행되는 것이다. 또한 이 성전의 섬김은 열두 지파를 대표하여 성전에서 대속 희생을 드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곧 정해진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섬김은 영생에 대한 약속을 믿는다는 고백과 영생을 소망하는 가운데서 계속 되어 온 것이다. 이제 바울도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통하여 "밤낮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열두 지파는 그들의 대리자들(제사장과 레위인)을 통하여 모세의 율법에 의해 하나님을 받들어 섬겼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들은 꼭 같은 약속에 대한 소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한다. "그들은 내가 그들이 믿는 바와 꼭 같은 약속을 믿고 있는 한 나를 그들의 교회의 배신자로 취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다면 비록 예배의 형태와 의식은 차이가 있지만 같은 예수 안에서 같은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끼리는(각 교파간의 관계를 말함) 상대방이 잘 되기를 소망하고 거룩한 사랑 가운데 함께 거해야 하는 것이다. 또는 본문의 "열두 지파"는 그 지파에 속한 특정인들로서 안나와 같이 하나님을 열심을 다하여 전심으로 섬기는 것을 통하여 유대 교회의 규례를 계속 지키고 유대 교회의 섬김에 열심인 몇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밤낮으로 기도와 금식을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그런 방법 가운데서 그들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였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하고 중단이 없는 자들만이 영생을 옳게 소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뿐만 아니라 그 영생에 대한 전망은 우리로 모든 신앙적인 일들에 부지런하고 중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목적을 두고 우리의 역사를 계속해야 한다. 

또한 "밤낮으로 하나님을 끊임없이 섬기는" 사람들은 비록 우리와 견해가 같지 않은 점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관대히 대해야 할 것이다.

(4) 이제 바울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바로 위로 같은 신앙 때문이었다. 

즉 만일 그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들도 시인할 수밖에 없는 그 교리를 전파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이 약속을 소망하므로 송사를 받나이다"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제의법에  반하여 약속에 집착하였다. 반면에 그의 기소자들은 언약에 반하여 제의법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즉 이 약속을 소망한다면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여기에 내가 행하는 그것에 의해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종교의 형식을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 신앙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미워하고 박해하게 되는 것이 상정인 것이다. 바울의 소망은 그들 또한 소망하는 것이었다(24:15). 그럼에도 그들은 바울이 그 희망에 따라 살려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고난받는 것이므로 그 고난은 바로 그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28:20).

(5) 그의 말을 듣기는 하나 실제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사람들을 바울이 설득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 신앙에 대한 것이었다(8절). 

그러므로 그는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말하였다.

8절의 말씀은 앞의 내용과 연관이 없이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이 말씀하였을 것이다. 

그는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부활과 영생에 대한 약속이 됨을 설명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조상들이 소망한 그 부활의 예표요 전조이신 죽음에서 일어나신 그리스도를 믿는 까닭에 그의 희망이 올바른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생략되고 곧바로 8절이 말씀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를" 열망하였고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의하여 자신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얻기를" 바랐던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0, 11절을 참조하라. 

현재 자리하고 있는 바울의 청중의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 특별히 베스도가 그러하였다. 그들이 대부분 이방인이었으므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또한 열두 지파가 바라는 죽음에서의 부활을 말하였을 때 그들은 아덴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의 말을 조롱하고 비웃었을 것이고 바울이 이까짓 문제로 유대인들과 쟁론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고 서로 수근거렸을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시나이까"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 이르기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8:6)고 하셨던 것이다. 

즉 그것이 자연적인 능력 위에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기이하게 여길지 모르나 그것은 자연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기이할 것이 없으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거시 전혀 믿지 못할 일로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것 즉 모순투성이인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 속에는 또한 특별히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에는 우리로 믿을 수 있게 하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는 것이다. 

무한하신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진흙에서 우리의 몸을 빚으시고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진흙으로부터 그들을 빚으신 그 능력을 가진 분이신 그가 그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없겠는가? 우리는 봄이 돌아올 적마다 자연 가운데서 부활의 일례를 찾아 볼 수 있지 않는가? 태양이 죽은 식물을 소생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래 하나님께서 죽은 육체를 일으키시는 것은 믿을 수는 없다는 말인가?

Ⅲ.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있는 동안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극심한 적이였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까지도 계속 기독교를 박해하였으리라고 고백한다. 

그가 이 사실을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그가 그리스도인과 전도자가 된 것은 그가 이전부터 그 도에 대하여 알았고 또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인한 것이었거나 또는 그가 점차 기독교의 교훈을 좋게 생각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과의 쟁론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극심한 정도의 박해에서 돌연히 기독교에 대한 지고한 확신에 이른 것이었다. 

이 사실을 통하여 그가 그리스도인이요 또 전도자가 된 것은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여졌다. 

바울이 그렇게 기적적인 방법으로 회심을 한 것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독교 진리를 확신케 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2. 바울은 아마도 이 사실을 말함으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기소자들을 용서하신 사실을 알리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고소하는 자들에 대하여 "저희는 저희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바울 자신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할 때 그가 마땅히 할 바를 행한다고 생각하였었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같은 오류를 범하는 수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자기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바울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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