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25장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다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부탁드릴 사안에 대해 YES하여" (끼리끼리에게만 적용하는, 편파적)호의를[=이는 누군가에게는 악행이 될수도 있음] 베풀어줌으로써)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카리스 :: Q께서 favor[용서+자비+]은총 베푸심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갚을길 없는 "은혜"이자 "은총"의 진정한 의미이다!! , 사람이 베풂에 지나지 않으면 "사람이 베푸는 호의 = 언젠가 반드시 그 이상으로 대가지불해야 할 빚"임...(편당적 호의는 결국 베푼 그룹에 가편투표를 요구하게 된다.). === 성령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잘 분별하여 "주님의 뜻 따라 은혜를 은혜되게 해야할 바, 반드시 베풀 때와 거절할 때를!! 주께 묻고 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대가 바라고 베푸는 호의는 이기적인 것이니, 스스로 패망의 함정에 빠져듦이다(벨릭스의 예가 그러했다.. 분명히 무죄로 판단하고서도!! 바울을 헤롯궁에 2년간 (편히!!) 머물게 하면서 자주 불러서 얘기를 듣는 와중에 내심 바울 수중의 헌금(돈)을 바랐으며, 그외에도 유대총독 재직중에 무수히 저지른바, 사적 편익 얻기 위해 제멋대로 죄수들을 잔인하게 고문-사형시키고 결국 민원 제기되어 소환-추궁당했고 그동안의 불법적 여죄가 하나하나 드러나서 처형당하고 말았다..)...."벤자민 플랭크린 효과--호의는 한번 베풀어 본 자가 또 베푸는 법(= 그러므로 조심하라!! 주께 묻지않으면!! 이것은 일종의 자아도취/자기만족 추구로 끝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베푼 호의가 오용되면 더욱 그 사람 자체와 주변사람들의 관계나 상황은 더 심각하게 치명적 공멸상태에 빠지고 마는등 더욱더 극히 악화될 수도 있기에!! 반드시 지혜의 근원이신 주께 묻고 그뜻따라 행하여야 함)".....무릇, "믿는이마다 마땅히" 돈이란 없어도 있는듯, 있어도 없는듯 살아가기를 [참되게!!] 배워야 할진대, 일확천금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음도 명심하여야 한다. .....서로 자기 개인이나 자기가 속한 당파 유익 위해 차별적 친분 쌓고 이용하는데까지 이르게 된 자기과시용이거나 편당적/차별적 호의가 아닌지를 "오른 손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시는 주께 여쭈어 주님 빛 아래서 찬찬히 검증받아봐야 함.... ......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한결같이 겸손과 온유로 (경우야 어떻든간에!! 누군가의 오해를 불러일으켜/또는 기분을 상하게 해서 (사리를 따져 밝혀야 하는 시점)법정까지 오게 된 점을 먼저 사과하고, , [비록 그가 타고난 악인이라 할지라도 주님 보시기에는 모두 한 형제이니...[특히 상관이라면 더욱 온유하게 대하여야함] 결코 기분 나빠하며-화내거나 분노하거나 치받아 대항하는 모습/(듣지 않겠다는) 건방진 모습 함부로 표현하거나 드러내 보이는 것 아니라 [화내거나 분노하거나 치받아 대항하는 모습/(결코 듣지 않겠다는) 건방진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니라-주께서 범사에!! 지혜를 주시리라- 사실과 진상읋 침착-온유하게 하나하나 밝혀나감 = 올바른 태도가 중요한 정직한 변명 --> 변증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그의 편파성/치우침이 드러나고 있음]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아니요, 그럴수는 없고, 도리어 지금 로마사람인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가이사의 재판자리라야 하는바,]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Q의 경륜을 따름은 로마행이다!!]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여기서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에피칼레오..간절히 부르짖다] 한대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참아 견뎌 버텨왔던바였지만..이제 주께서 뜻하신 바로 그 경륜 이룸 위해 2240km 거리에 있는 로마로 가게 하시는 때를 기다린 후, (편파적인) 베스도의 발언을 듣고나서야 가이사 상소를 청하고 있었다. -- 거듭난 우리의 "상소"는 단순/진실어린 단 한마디로 조용히 무릎꿇고 두손모아 "주여".."주여" "아버지" "아버지" 부르짖기만 해도 충분하다!! -- 그대의 간구기도 응답은 "바로-즉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또는 "에스, 노"로 최종적 결과로 드러나는 경우는 오래 참고-견디며-버텨내며-포기하지않고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만...돌연히 깨닫게 하시리라, 그대가 주님 자신을 구하고 있다면!! 실상 [다름아니라!!] 날마다 말씀 묵상-기도-찬송으로 기다리면서 주와 하나됨 그 자체가 응답임을 깨닫는가?!! .......@@상소하다 = 호소하다 = 에피칼레오(마이) .. 부르다, 호소하다, 상소하다, 청원하다. 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에피(ejpiv, 1909)와 칼레오(kalevw, 2564: 부르다)에서 유래한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a) '~에 이름을 붙이다, 별명을 붙이다, 별칭하다'(Xen., Plato.), (b) '소환하다'(Dem.). (c) '호소하다, 상소하다, 청원하다', 신에게 드리는 예배와 관련하여 '호소하다'나 '청원하다'라는 의미로(Hdt., 이래; Plato, Polyb.), 법에 호소하거나 통치자, 국가 관리들에게 상소를 제출할 때 법률적 용어로 사용되었다(Plut.). 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나오며, 거의 카라(7121: 부르다, 요청하다, 초대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대체적으로 보아 에피칼레오는 '요청하다, 예배 드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가장 중요한 용어이며, 또한 공개적 고백이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창 4:26; 33:20 등). 예배는 하나님 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대상 4:10)에게나 여호와(왕상 17:21)에게 아뢰는 것이거나 또는 무엇보다도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창 13:4; 신 14:23 이하; 사 64:7; 렘 10:25). 자주 셈어투의 엔(토) 오노마티 그리고 자주 셈어 투의 '이름으로'(왕상 18:24 이하)가 발견된다.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는 마치 견고한 망대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상에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잠 18:10). 신명기에 따라 하나님은 그가 선택한 장소에서 경배 받기 원하신다는 관점에서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샤칸(거하다)을 에피칼레이스다이로 번역하기도 한다(출 29:45 이하; 신 12:11; 신 16:2; 신 16:6; 신 16:11). 하나님의 존재의 계시와 현현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길로 그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에피칼레오마이는 별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행 4:36; 행 12:25; 행 10:18; 행 11:13; 행 12:12). 마 10:25에서 에피칼레오는 고유명에 대한 확인으로 사용되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b) 고후 1:23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호소하는 것은 사법적인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전 헬라어에서 에피칼레오는 이미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Herodotus; Antpho). 에피칼레오는 바울의 심리에 관한 본문에서 '호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25:11 이하; 행 25:21; 행 25:25; 행 26:32; 행 28:19). (c) 에피칼레오는 신학적 의미에서 중간태로 사용되어 교회의 선포에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백의 내용으로서 언제나 "이름" 즉 선포된 주님 자신을 가진다. ①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문맥상 예수님을 주로(참조: 롬 10:9 상반절) 기원하는 것(롬 10:10 하반절)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인류의 구원의 기초가 된다. 롬 10:12 하반절에서처럼 여기서 에피칼레오는 고백(confession)의 외침에 대해 사용된다(아우투는 롬 10:12 상반절에서 퀴리오스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소유 관계의 근원(법률적 주장의 의미에서도)인 구약성경적 배경이 고려되어 한다. ② 행 2:21의 베드로의 말에서 구약성경의 인용(욜 3:5, 70인역본)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의 측면이 전제되어 있다. 요엘의 말씀은 원래 종말론적 의미에서 의도된 것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선포와 함께 현재의 구원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행 2:16; 행 2:22-24 참조). ③ 고전 1:2 ("주의 이름을 부르다")에서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말이 되었다(세례의 기초, 참조: 고전 1:13). 여기서 이 말은 단일체의 기초가 되는 진술로 기능한다. ④ 롬 10:14에서는 피스튜오(pisteuvw, 4100: 믿다)와 관련됨으로써 에피칼레오의 이러한 어감은 (전례상의) 찬성의 외침으로 분명해진다. ⑤ 행 9:14; 행 9:21에서 에피칼레오 토 오노마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명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는 행 22:16에서도 볼 수 있다. ⑥ 행 7:59에서는 직접 부르기 때문에 목적어가 제거된다. ⑦딤후 2:22("주를 부르는")과 벧전 1:17("아버지라 부른")은 동일한 내용에 대해 더 나은 헬라어 표현을 제공한다. ⑧ 벧전 1:17은 롬 8:15; 갈 4:6에 의거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새로운 선물의 실례이다. (d) 에피칼레오의 동일한 의미가 히 11:16의 상이한 종류의 구문에서 나타난다("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정사 에피칼레이스다이는 수동태로 간주된다. 약 2:7("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에서 부정과거 수동 분사는 세례(침례)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는 소유권의 이전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고전 1:2).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시3편:1-8...*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 서다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헤롯 아그리빠1세의 아들/아그리빠2세, 드루실라의 오빠 -- 유대교 신자로서 유대교 교리와 현 상황에 정통하였다...후에 황제가 된 칼리굴라의 황제모독죄를 대신 자청하여 대신 뒤집어쓰고 투옥된 공로 인정 받아서 왕 작위 받았음]과 버니게가(이 둘은 근친상간관계임..아그리빠2세는 그녀의 오빠임...예루살렘 파괴/유대 멸망 시킨 11세 연하 디도장군[나중에 황제가 됨]과 눈이 맞아 사귀지만 황후가 되지는 못했음)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JC믿는 그대여, 그분의 이름 부르는 그 때마다, 그분의 부활을 증언하거나 [참된, 영적] 구속사를 말할 그 때마다, 항상-늘-동일하게!! 전존재가!! (말하게 하시는 분!!) 성령 그분 임재의 감격/감동/떨림-진동을 느낌 인해 성령 충만 감동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분이 말하게 하심따라 말하고 있음 느끼는가?? 20.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허무/허망-죄악/음란에 자신의 전 존재 내어준바 사탄마귀 체계인 세상가치따라 살기에, 미혹/유혹/미망에 사로잡혀 세상만사 온통 허무감 느끼는 아그리빠]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판타시아...여기서만쓰이고 있음 = 겉멋/정중+화려+품위있게보이는겉치장)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PLACE OF HEARING]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판타시아) 보이기, 과시, 화려한 행렬. --화려한 의상으로 자신을 꾸밈....명사 판타시아(Aristot., Polyb.)는 판타조(fantavzw, 5324: 보이게 하다, 보이다)에서 유래했으며, '보이기, 과시, 화려한 모양, 전시, 장관, 화려한 행렬'을 의미한다. ....명사 판타시아는 신약성경에서 행 25:23에 한번 나온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여기서 판타시아는 '화려한 차림'이나 '행렬'을 나타낸다....진정한 참 위엄, 곧 영광은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바로 그 자리"...그 자리에서 무릎꿇고 참되게 듣는자로서, 듣는 마음으로 경청하고 회개할때라야 그리스도의 영광의 침 위엄이 나타나게 됨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아스팔레스..견고/진실/안전한) 사실[=실상/진상]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베스도의 속내 --책임지고 싶지는 않고, 자기 생색내며/자랑하고 싶어한다..)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보라, 가이사 상소의 목적은 철저히!! 구원의 복음 전파였다...우리도 모든 삶, 하루하루 날마다 걷는 발걸음이 바로 영혼구원의 복음 살며 전함이어야 한다--- ---바울은 자기를 "이세상에서는 도저히 용납못할바, 살려두지 못할자로 규정하고, 그 추정판단따라 고발하는 예루살렘 당국자들의 씌워 고발한 그 죄목은 "분명한 허위 고소로 밝혀졌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 스스로 고백하는 바 "나는 나사렛 이단, 곧 죽음에서 부활한 JC께서 나를 직접 친히 만나주셨고, 진실로 내가 그분을 여태까지 경험하여 아는바 그분께/거기에 속한 자로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는다]고 서슴없이 말하여 세상을 소동케 한 바, 바로 나야말로 ((날마다 내속에서 살아나는바, 그 죄 가운데 처한--그리스도 보혈로 씻김받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주심 받는--[죄목 없는 죄인!!=사함 받은/날마다 사함 받는 죄인 --세상은 이해불가능한 아이러니--])) 죄인중의 괴수"임을 고백하고 있었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 죄목으로 가이사 앞에 서서 재판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 이것을 베스도는 꿰뚫어 보고는 " 이 자체만 가지고서 볼 때만해도 바울 투옥은 말도 안되는데, 하물며 "상소했다고 하여 그의 소원대로" 가이사에게 이 상태 그대로 보낸다 함은 무리한(=알로고스...말도 안되는, 분별/이성/근거/의미없는, 몰지각/무의미/비합리/불합리한) 일"이라고 스스럼 없이 아그리빠와 베니게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자기 죄 보는 이였음))..흑인을 죽인 백인도 사람, 흑인도 사람...모든 인간은 모두 100% 타고난 죄인, 이것을 인정하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 죄를 살펴볼 때에라야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이 드러나게 됨 ......"~의 처방에 따르지 않았기에 결과가 여기에 이른것이니... 난 (목자지만) 책임 없다 =오불관="..이것은 "구원의 참 소명 받은" 목자의 태도, 곧 참된 위엄/영광 받음 이의 태도가 결코 아니며, 그러하기에 주님은 혹독하게 돌봄 소홀한 책임 끝까지 물으심을 명심하라.....마음에 주신 바로 그대로를 말하기만 하고 끝까지 함께 동행-위로/격려/함께 울고 웃으며 하나되어 행함이 성령의 위엄/영광 보유한 목자에게는 필수적 태도이다!! 끝까지 함께 하여 껴안아주고 위로/격려하며 함께 해결하여 가는 자세/태도--사랑의 실행이 올바른 목자 됨인바 바로 그것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계심.. ((어찌보면 지겹도록!!-주님도 참아주신다!!- 대적들의 반복되는 괴롭힘이랄 수도 있지만))...주님은 "애야.... 너 지금....정말...."상황-사건 그 가운데서" .너무너무 잘하고 있도다...화이팅" 박수치시며, 그런데.... "원망-불평을 거절하라, 거기에 자신을 몰입시키지 말고, 오직 주께 아룀으로써 주와 하나됨 견지함 인해 그분의 이끄심따라 말하기를 배우라!!(원망-불평하는자는!!, 그가 누구며/그 위치가 어떠하든지간에 주 보시기에는 이미 진것이란다...주님의 시선과 그분 마음/심정과 일치되도록 네 시선과 마음 중심을 주께만 향하라)-오히려 주와 하나됨 인해 오직 회개할 기회/선행의 기회만 찾아 구하여야 하며, 결코!! 네 느낌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말라, 악인이야말로 불의 저지를 기회 찾아 부지런히 구하는 법이니-그러다가 스스로 제풀에 지쳐서 망하는 법이란다!!" 그리고!! 제발 힘 좀 빼거라- 네 열심으로 하려 해서는 안되고- 그 모든 판단을 나, 주님께 맡기고 잠잠히 내 품에 머물러 쉬면서 나의 평안을 누리거라 -- 결코 서두르거나 염려-근심 말라, 다 내려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걸어감 인해 통과하여!! 나의 구원을 보라 - 내가 친히 (나 그리스도, 곧 복음을) 변명하기 위한 상소[주 이름 부름.누림으로써 주의 일 올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리니...결코 스스로 조급하게 앞서 나가지 말거라....((다만 날마다 순간순간 주 이름 불러서 주 안에 거하고, 모든 거리낌마다 회개함 통해 나 주를 경청하며 오직!! 주와 하나됨의 기쁨-사랑-평강 안에 거하거라)) .....대적하는 세상의 지겨운 괴롭힘 가은데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기를 알게되는바...나야말로 주 보시기에 정말!! 극도로 지겨운 죄인됨을 자각하고 회개함 통해 오직 부활 주님만 전할 수 있게 하셨도다.. **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기 인식((진정한 죄인 자각 = 구주만 바람))-->하나님 인식((부활 생명의 성령 임재 알아챔, 곧 구주의 운행-움직임-채우심-신진대사적 충만/변화-공급 넘침으로 말해냄)) 가진 자 될지니..... 자기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면 [고난은 그 어떤 것이라도 자기에게 임하지 않기를 기복적으로 빌다가..고난이 닥쳐오면!!] 그냥 만사가 온통 근본 해결책이라곤 보이지않는, 다 열가지(충만수) 재앙일뿐이라...결국 세상으로 떠내려 갈 뿐이다.....가련한 사람아, 그대는 사람-상황-사건에서 벗어날 기회 얻으려 누구를/무엇을 기웃거리는가...온 애굽땅에 임한 열가지 재앙이라도 고센땅은 (주님이 임마누엘 임재의 방패가 되사 보호하시기에!!) 비껴나감을 잊지말라..그러나, 애급을 출애굽하도록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과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이것이 팔복이다!! --------- Acts 25 Amplified Bible ===Paul before Festus 1 Now Festus arrived in the province, and three days later he went up to Jerusalem from Caesarea [Maritima]. 2 And [there in Jerusalem] the chief priests and the leading men of the Jews brought charges against Paul [before Festus], and they repeatedly pleaded with him, 3 asking as a concession against Paul, that he would have him brought to Jerusalem; (meanwhile planning an ambush to kill him on the way). 4 Festus answered that Paul was being held in custody in Caesarea [Maritima] and that he himself was about to leave shortly. 5 “So,” he said, “let those who are in a position of authority among you go there with me, and if there is anything criminal about the man, let them bring charges against him.” 6 Now after Festus had spent no more than eight or ten days among them, he went down to Caesarea, and on the next day he took his seat on the tribunal (the judicial bench), and ordered Paul to be brought [before him]. 7 After Paul arrived, the Jews who had come down from Jerusalem stood around him, bringing many serious charges against him which they were not able to prove, 8 while Paul declared in his own defense, “I have done no wrong and committed no offense either against the Law of the Jews or against the temple or against Caesar.” 9 But Festus, wishing to do the Jews a favor, answered Paul, “[a]Are you willing to go up to Jerusalem and stand trial there in my presence [before the Jewish Sanhedrin] on these charges?” 10 Paul said, “I am standing before Caesar’s tribunal, where I ought to be tried. I have done nothing wrong to the Jews, as you also very well know. 11 Therefore, if I am guilty and have committed anything worthy of death, I do not try to escape death; but if there is nothing to the accusations which these men are bringing against me, no one can hand me over to them. I [b]appeal to Caesar (Emperor Nero).” 12 Then Festus, after conferring with [the men who formed] his council, answered, “You have appealed to Caesar; to Caesar you shall go.” 13 Now several days later, [c]Agrippa [II] the king and [d]Bernice [his sister] arrived at Caesarea and paid their respects to Festus [the new governor]. 14 While they were spending many days there, Festus laid Paul’s case before the king, saying, “There is a man here who was left as a prisoner by Felix. 15 When I was at Jerusalem, the chief priests and the elders of the Jews [told me about him and] brought charges against him, petitioning for a sentence of condemnation against him. 16 I told them that it was not the custom of the Romans to hand over any man [for punishment] before the accused meets his accusers face to face and has the opportunity to defend himself against the charges. 17 So after they arrived together here, I did not delay, but on the next day took my place on the tribunal and ordered that the man be brought before me. 18 When his accusers stood up, they brought no charges against him of crimes that I was expecting [neither civil nor criminal actions], 19 instead they had some points of disagreement with him about their own [e]religion and about one Jesus, a man who had died, but whom Paul kept asserting and insisting [over and over] to be alive. 20 And I, being at a loss as to how to investigate these things, asked whether he was willing to go to Jerusalem and be tried there regarding these matters. 21 But when Paul appealed to be held in custody for a decision by the Emperor [Nero], I ordered him to be kept in custody until I could send him to Caesar.” 22 Then Agrippa said to Festus, “I would like to hear the man myself.” “Tomorrow,” Festus replied, “you will hear him.” ===Paul before Agrippa 23 So the next day Agrippa and [his sister] Bernice came with great pageantry, and they went into the auditorium accompanied by the military commanders and the prominent men of the city. At the command of Festus, Paul was brought in. 24 Then Festus said, “King Agrippa and all you gentlemen present with us, you see this man [Paul] about whom all the Jewish people appealed to me, both at Jerusalem and here, loudly insisting that he ought not to live any longer. 25 But I found that he had done nothing worthy of death; however, since he appealed to the Emperor [Nero], I decided to send him [to Rome]. 26 But I have nothing specific about him to write to my lord. So I have brought him before all of you, and especially before you, King Agrippa, so that after the investigation has taken place, I will have something to put in writing. 27 For it seems absurd and unreasonable to me to send a prisoner [to Rome] without indicating the charges against him.” ===Footnotes Acts 25:9 Paul was offered a choice because of his rights as a Roman citizen. Acts 25:11 Roman citizens had the right to be tried before Caesar. Acts 25:13 Herod Agrippa II was the seventh and last of the Herods mentioned in the NT. Acts 25:13 Eldest daughter of Herod Agrippa I. Acts 25:19 Or superstition. ======= 사도행전 25장 (개요) 어떤 이들은 벨릭스가 해임되고 베스도가 그의 뒤를 이어 부임한 시기는 바울이 체포된 후 바로 일어났던 일이며 전 장의 끝 부분에 나오는 2년이라는 기간은 네로의 통치가 시작되는 때부터 계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이 벨릭스의 손에 인도된 때로부터 계산해서 2년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본장에서도 24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바울에 대한 심리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다. Ⅰ. 총독 베스도의 바울에 대한 심리(審理). 바울의 사건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그에게 제소되었다(1-3). 그러나 그 사건에 관한 청문은 유대인들이 원하는 예루살렘으로 정해지지 않고 가이사랴로 정해졌다(4-6). 유대인들이 와서 바울을 대적하여 그를 고소하였다(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결백을 주장한다(8). 그는 예루살렘으로 자신의 문제가 이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그는 그것에 대하여 동의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마침내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다(9-12). Ⅱ. 아그립바 왕의 바울에 대한 심리. 베스도는 이 사건을 그에게 고하였다(13-21). 아그립바는 자신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하여 듣고자 하였다(22). 따라서 재판이 열리어 바울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23). 베스도가 사건의 원인을 말한다(24-27). 그리고 다음 장에서 바울의 변론이 소개된다. ========= 베스도의 재판(행 25:1-12) 우리는 흔히 "주인이 바뀌면 법도 바뀌고 관습도 바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곳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였으나 바울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이 아직도 전의 총독에게서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베스도는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을 석방시켜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면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하여 바라는 바를 행하는 불의를 범하지도 않았다. 그는 바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분노에 바울을 내어 맡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Ⅰ. 대제사장과 다른 유대인들의 총독에 대한 강력한 청원. 그것은 바울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총독이 그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이 베스도에게 바울의 사건을 신속하게 재소함. 베스도가 임지로 부임하여 임무를 인수하고 가리사랴에서 취임한 후 사훌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곧 제사장들은 그에게 바울의 사건을 고소했다. 베스도는 바울이 죄수로 감금되어 있었던 가이사랴에서 삼일을 체류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삼일 동안 바울이 자기의 석방을 청원한 것을 아무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틀림 없이 그가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을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청원이 총독에게 수락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총독이 예루살렘으로 오자마자 서둘러서 총독에게 바울을 기소하였다. 그들의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보게 된다. 울이 그의 구속 기간이 연장된 것을 꾸준히 참고 있었는데 비하여 그의 적들은 그를 죽이기 전에는 기소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2. 그들의 재소에서 나타난 저희의 간악함. 그들은 바울에 대해 정식 재판이 개정되기도 전에 총독에게"바울에 대하여 악담을 하였다"(2절). 이같이 하여 그들은 가능하면 이 사건의 재판관이 될 총독이 이 사건에 대한 편견을 지니게 하므로 그를 자기 편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책략은 충분히 생각하여 준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지 못했다. 총독이 친히 바울에게서 증언을 듣기로 결심하였으므로 바울을 나쁘게 말한 모든 정보가 거짓임이 들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치밀하게 심사숙고된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울에 대한 재판이 있기 이전에 그를 암살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흉악한 방법들을(온 세상 사람들이 혐오할 이러한 방법들을) 이들 박해자들은 실행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악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을 모세에 대한 열심이라는 구실 아래 감행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이같이 끔찍한 것이었다. 3. 그들은 그럴듯한 핑계. 그들은 총독에게 "당신이 예루살렘에 있는 중이나 바울을 그곳으로 옮겨와" 재판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기소자들의 수고를 상당히 덜어 주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었다.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죄로 기소되었고 범죄자는 그 범죄가 저질러진 곳에서 재판받아야 한다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데려 와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타당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로 숨교진 목적은 바울을 호송하는 도중에 그를 죽이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전에 가이사랴로 비빌리에 호송될 때처럼 엄한 경비 아래 호송되어 오지는 않으리라, 또는 그를 호송하는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그들의 계교를 실행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들은 "베스도의 호의를 얻고자 하였다." 본문에 피고로 간주하고 있는 자에 대해 마치 공정한 법을 적용해 달라 요청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물론 피고의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그는 형을 받아야 되지만 만일 그의 결백이 입증된다면 그를 석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죄수를 벌 주기 위해 재판관의 호의를 사려고 했다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 그들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재판관이 베풀어 줄 수 있는 호의란 죄수를 위해 그 호의를 베풀어 그를 살려 달라 청원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본문의 무리들은 바울을 없애고자 재판관의 호의를 얻으려 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판관이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한다면 총독이 그들에 대하여 호의를 베푼 것으로 생각하였다. Ⅱ. 총독의 결심. 그는 바울이 자기가 있는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게 하고자 결심했다(4, 5절). 총독이 기소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살펴 보자. 1. 베스도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는 친절을 그들에게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베스도는 바울을 가이사랴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도록 명령하였다.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낼 때 바울에 대한 음모를 알고 있었다(23:30). 그러나 베스도 역시 그들이 바울을 도중에서 죽이려고 피의 음모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았든지 또는 그가 그런 의심을 품었다는 사실은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렇게 결심한 것은 대제사장과 그의 일당의 말에 자신이 죄우되기를 싫어서 또는 가이사랴에 있는 자신의 관저의 영예를 그가 존중하여 그들로 그 권위에 굴종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가 바울을 호송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가 어디 있었든지 간에 여하튼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바울을 대적자들의 손에서 구해내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아마도 음모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더 자기들의 음모의 비밀을 지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비밀이 탄로가 되므로 예전처럼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이 좌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번 처럼 그들의 의도를 발각되게 하지는 않으셨지만 총독의 마음에 그들의 의도대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방법을 통하여 그 음모를 무산시켰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구하시는 일을 하심에 있어서 한 가지 방법에 매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저희의 음모를 은폐시키는 것은 허용하시나 그 음모가 성취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그리고 고관들의 자기들을 위한 부당한 정책들도 자신은 은혜로운 목적에 이용하신다. 2. 그럼에도 총독은 만일 그들이 가이사랴로 와서 거기서 바울을 고소한다면 그들의 송사를 들으므로 그들에게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자 하였다.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다시 말해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거기까지 여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또는 기소하는데 구변이 좋고 또 그럴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이 사람을 송사하라. 또한 그가 범행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춘 중인들도 함께 가서 그들의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라. 만일 너희가 그를 기소하는 것처럼 그에게 그와 같은 악이 있다면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베스도에게 바울이 범죄자임을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의 죄가 증명되기까지 또 바울의 변론을 들어보기까지는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죄를 지었다면 그들은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Ⅲ. 바울에 대한 베스도의 재판. 베스도는 "열흘 동안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그 후에 가이사랴로 내려 갔다." 기소자들도 베스도와 함께 내려 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베스도가 그들에게 "나와 함께 내려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처럼 박해에 열심이었으므로 베스도는 이 사건을 제일 처음 재판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또한 기소자들로 예루살렘의 집으로 곧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튿날"재판을 개회하였다. 공무를 신속히 처리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러나 사전의 준비없는 신속함은 위험한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1. 재판이 열리고 죄수가 출두하였다. 베스도는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 하는 관례대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바울을 데려다 자기 앞에 세우라고 명령하였다"(6절).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그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무서운 재판장 앞에서도 그들이 굴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재판자리에 앉아 이스라엘 각 족속을 심판할 때"가 올 것을 약속하셨다. 2. 기소자들이 죄수에 대하여 제시한 기소의 내용(7절).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둘러서서"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은 그들의 숫자가 많았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한 시인도 "주여 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어찌 이리 많는지요"라고 말했었다. 본문의 내용은 또한 그들의 주장이 일치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들은 같이 모여서 서로 같은 의견을 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들은 기소를 하고 바울에 대적하여 소요를 일으키기고 합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재판관에게 겁을 주어 그들의 사악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또는 적어도 죄수에게 겁을 주어 침착성을 잃게 하려고 "둘러섰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는 모두 헛된 일이었다. 바울이 군중들에 의하여 공포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정당하고 강한 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한 시인은 "저희가 벌같이 나를 에워 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연소되었도다"(시 118:12)라고 노래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를 둘러 싸고 여러 가지로 중한 죄목을 들어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 중대한 죄와 비행을 저질렀다는 죄목을 씌우려고 하였다. 그들의 고소에는 매우 끔찍한 종류의 사실들이 다 포함되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자기들의 꾀와 악의을 총동원하여 모략할 수 있는 한 바울이 추악하고 분온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법정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나는 대로 기소의 이유를 떠들어 대기는 하였으나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는 꼼짝도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를 고소한 내용을 "능히 증명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에 대한 그들의 발언은 거짓말이었으며 그들의 고소는 근거가 없고 부당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거나 또는 잘못도 될 것이 없는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바울도 알지 못하고" 또한 그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얘기를 꺼내어 그를 고소했다.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도 그들을 향한 온갖 거짓된 악담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들 뛰어난 사람들은 "주정뱅이의 노래를 통하여 또한 죄인들의 자리에서 그러고 재판 자리 앞에서도" 중상 모략을 당한다. 3. 바울의 자기 변호(8절). 누가 자기를 꾸짖든지 바울은 양심에 떳떳하였고 그러므로 그의 말도 역시 떳떳하였다. "비록 그가 죽게 되더라도 그는 자기의 고결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바울이 자신을 위해 증언할 수 있는 차례가 돌아 왔을 때 그는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는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하였다. (1)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을 범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파괴하는 교리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가 믿음에 의하여 율법을 헛되이 하였다는 말인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율법을 세웠고"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 (2)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며 성전의 예배를 멸시하지도 않았다. 복음의 성전이 유형인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없었다. (3) 바울은 가이사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그의 당국에 대하여서도 범죄함이 없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범죄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변명한 것을 보아 총독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들이 가이사의 충복인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바울이 현 실권자들에 대하여 반역적인 말을 하였노라고 기소했으리라는 것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이 일에 대하여 결백하다는 것과 자기를 기소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가이사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항의하였다. Ⅳ. 바울이 자기의 사건을 황제에게 호소함. 그의 상소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바울이 이런 생각을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도전에 대한 갑작스러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을 집어 넣으셨던 것이다. 그 이유는 주께서 바울에게 "네가 나의 일을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황제의 법정은 바로 로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베스도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제의하였다(9절). 이같이 제의한 것은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해서였다." 그는 로마의 시민인 바울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죄수보다는 기소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바울에게 그가 기소를 당한 곳이요 또한 그를 위하여 증거해 주고 그가 말한 것을 확인하여 줄 증인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서 그의 결백을 밝히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하였다. 베스도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요구대로 바울을 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고 물었다. 총독이 재판의 주재자였으므로 그가 원하는 것이기에 그는 바울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베스도는 바울의 동의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바울을 회유하여 그의 의견을 수락하게 한 것은 그러므로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난의 시대에 주의 성도들은 인내 뿐만 아니라 신중함도 구비해야 한다. 그들은 이리의 무리 가운데로 보내어진 양과 같으므로 뱀과 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베스도의 제의에 대한 바울의 거부와 거절한 이유. 바울은 만약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면 재판장의 치밀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가진 수단을 다하여 자기를 죽이려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다. (1) 바울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총독에 의하여서 재판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총독의 법정이 있는 가이사랴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내가 지금 가이사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즉 그는 유대 지역의 수도인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였다. 법정은 가이사의 명의로 열렸으며 가이사의 권위와 위임에 의해 열리는 것이었으므로 법정을 그의 법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 모든 공문서가 그 지방의 관리의 이름으로 발송되듯이 그의 모든 법정이 그의 이름으로 개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설 권리가 있다는 바울의 주장은 기독교의 사역자들도 지상의 권세의 지배를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사역자들이 정말로 죄가 있다면 마땅히 당국의 처결을 받아야만 할 것이며 만약 그들이 무죄하다면 그들의 심문에 순응해서 그들 앞에서 자기들의 무죄를 증명하여야만 할 것이다. (2) 유대 나라의 국민으로서 바울은 자기의 나라에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라고 말하였다. 무죄한 사람들이 자기의 결백을 호소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결백을 입증하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우리는 우리에 대적하는 거짓된 증언을 참아서는 안 되며 우리를 대적하여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는 우리의 결백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3) 바울은 자기가 기꺼이 법을 준수하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았노라고 하였다(11절). 만약 그는 자신이 죽음을 당할 만한 중죄를 지었다면 그는 결코 항의를 하거나 탈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재판을 회피하거나 법정과 대결하여 투쟁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였다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하고 내 불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기소되거나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되면 그들은 판결에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과 당국에서 잘못을 범했노라고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무죄하다면 가는 바울과 같이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송사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면 저희의 기소가 악의에 의한 것으로 내가 옳든 그르던 저희가 나의 피를 흘리고자 결심한 것이라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뚜렷한 증거 없이는 총독일지라도 그들에게 나를 내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있는 자를 벌하고 무죄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총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바울은 자기의 보호를 주장하였다. 3. 바울이 가이사의 법정에 호소함. 바울이 계속하여 유대인의 위험 가운데 있었고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울을 그들의 손에 넣으려고 계속하여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그들이 자비를 베푼다고 해도 그것은 냉혹한 것이었다) "바울은 무죄한 자의 최후의 수단인" 마지막 피난처에 호소하였다. 그것 이외에 정당한 재판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를 마지막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지기 보다는 가이사에게 호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바울은 베스도가 그것을 승낙하리라고 여긴 것 같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지기 보다 차라리 네로의 재판을 받겠노라"고 하였다. 다윗이 여러 번 사울의 격노를 피하여 도망하여야만 했고 또 사울이 어느 날엔가는 그 손으로 자기를 멸망시킬 무서운 적인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을 했었다. 즉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고 하였다(삼상 27:1). 본문의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자칭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하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 블레셋인과 즉 네로에게 호소해야 했고 예루살렘 보다는 로마나갓(블레셋의 도성 이름)이 더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 성서 기자는 "어찌하여 아름다웠던 도성이 창기와 같이 되었는고!"라고 탄식했던 것이다. Ⅴ. 베스도의 최종 결판. 바울은 석방되지도 않고 또 처결되지도 않았다. 바울의 적들은 바울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맺기를 희망하였다. 한편 바울의 친구들은 그의 석방으로 재판이 끝맺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 어떤 결판도 없이 유야무야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같이 사건이 미결로 남아 있게 되자 양편 다 실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서서히 진행된다는 실례를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는 때때로 우리가 기대하듯이 일의 결말을 속히 보여 주시지 않는다. 우리의 조급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지닌 소망이나 두려움 때문에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전에는 다른 시간으로 연기되었던 재판이 이제는 다른 장소 곧 다른 법정으로 연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바울의 시련을 통하여 그의 인내를 주고자 하는 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1. 재판장의 배석자들과의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총독은 "배석자들과 상의하였다(메타 투 쉼불리우, 25:12)." 그는 유대인들의 회의에 의논하지 않고 언제나 총독에게 조언을 하는 배석자들과 의논하였다. "여러 조언자들과 협의 하에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재판관은 선고를 내리기 전에 스스로 심사숙고 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의논해야 한다. 2. 총독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어떤 이는 본문은 바울이 황제 본인에게 호소한 뜻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울이 유대인의 법정에 넘겨지는 것보다는 총독의 재판의 결과를 따르겠노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최종 결판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그립바가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다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26:32)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으로 본문을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로미의 재판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이면 언제든지 최고의 법정에 호소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가(상급 법원의) 사건 이송 명령에 의하여 상소를 할 수 있고 범죄인들도 인신 보호령(habeas corpus)에 의하여 상고할 수 있듯이 그들도 상소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느냐 그러면 가이사에게로 갈 것이니라"고 최종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총독은 이 사건이 매우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렇게나 판결을 내리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이런 생각이 황제에게 알려지면 그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베스도는 이 사건을 황제의 심리에 의뢰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율법에 의거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호소한 그 율법에 의하여 정죄될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 복음 앞에 자신을 호소하는 사람은 그들이 호소한 그 복음에 의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아그립바의 베스도 방문(행 25:13-27) 우리는 본문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사실을 대하게 된다. 그것은 아그립바의 판결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다만 바울의 사건에 대한 조언을 얻거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통치자와 왕들 앞에 설 것을" 말씀하셨었다. 본장의 앞 부분에서 바울은 총독 베스도 앞에 섰었고 본문에서 그는 아르립바 앞에 선다. 이 두 경우 다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다음의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Ⅰ. 아그립바 왕의 베스도에 대한 친선 방문. 그의 방문은 베스도가 이 지방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13절). 이에 대해 본문은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이 가이사랴에 왔다"고 전해 준다. 그의 방문은 왕족으로서의 친선 방문이었다. 왕이 자기 친구들에게 축하의 뜻을 전할 때는 사절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몸소 베드로를 방문하였다. 그것은 그가 몸소 방문하므로 친구를 만족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만남이야말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1. 방문자는 누구였는가. (1) 그는 아그립바 왕이었다. 그는(아그립바라는 별칭이 붙은) 바로 헤롯 왕의 아들로서 헤롯은 사도 야고보를 살해하였고 충이 먹어서 죽은 바로 그 헤롯이었다. 또한 아그립바는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 다스리던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본문의 아그립바를 "젊은 아그립바"라고 불렀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를 칼커스의 왕으로 책봉하였고 누가복음 3장 1절에 언급된 "드라고닛 지방과 아빌레비(갈릴리지방)의 분봉왕"으로 책봉하였다. 유대의 역사가들은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라이트푸트 박사의 글을 인용한다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희년의 종반부에 왕은 율법에 규정된 대로 율법을 국민 앞에서 낭독하였다. 왕은 말씀을 읽는 도중(신 17:15)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두지 말 것이며"(신 17:15)라는 말씀에 이르게 되자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왕이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회중들이 목격하고 "아그립바 왕이여 위로를 받으소서. 그대는 우리의 형제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들이 그렇게 외친 것은"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혈통을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종교를 믿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전해 주고 있다. ##[[로마가 나눈 이스라엘행정구역]]**갈릴리호수기준 지역구분: 서쪽(갈릴리), 북쪽+북서쪽(아빌레비), 북동쪽(이두래) 남동쪽(데가볼리), 이두레와 데가볼리합류지점의 동쪽(드라고닛) **요단강기준 : 서쪽(유대+사마리아) 동쪽(데가볼리+베레아) (2) 버니게도 왕과 함께 왔다. 그 여지는 왕이 여동생이었고 칼커스 왕이었던 그의 삼촌 헤롯의 미망인이었다. 자기 남편이 죽은 후에 그 여자는 자기 오빠인 아그립바와함께 살았다. 아그립바와 이 여인은 이 불륜의 관계를 맺었으리라는 사실이 전해져 온다. 그 여지는 길리기아의 폴레몬왕과 재혼하였으나 곧 그에게서 이혼 당하고 다시 자기 오빠 아그립바 왕에게로 돌아 왔다. ^^쥬브넬은 아그립바가 자신의 불륜의 관계를 맺어온 누이 동생인 버니게에게 준 다이아몬드 반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버니계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던 너무도 유명한 보석은 그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오빠의 선물이었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는 그후 그 여자와 티투스 베스파시안 황제 사이에 있었던 부도덕한 사통을 언급하였다. 벨릭스의 아내 두르실라는 그의 또다른 여동생이었다. 당시 상류 계의 인사들은 이같이 음란한 무리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전 시대가 오늘날보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시대였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2. 이 방문의 의도. 그들은 "베스도에게 인사차" 들렸다. 베스도의 승진을 축하하고 그의 법무가 형통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것에 경의를 표하고 그와 우호 관계를 가지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또한 갈릴리를 다스리는 아그립바가 유다의 총독인 베스도와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페스도에게 인사도 할 뿐 아니라 그의 궁전에서 놀기도 하고 또 그들의 훌륭한 의상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옷은 외출하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말기에 허영의 족속들은 이러한 짓을 하는 것이다. Ⅱ.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과 그의 사건에 대하여 설명함. 그가 이 사건을 아그립바에게 설명한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 1. 아그립바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서였다. 또한 아그립바로 기분전환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고 누구든지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단순히 놀라운 이야깃거리거나 오락거리로써 뿐 아니라 그것이 만일 진실되게 또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다면 매우 교훈적이고 덕을 깨우쳐 준다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특히 아그립바가 관심을 가질 만한 얘기였다. 그 이유는 재판관으로서의 그가 알아 둘 만한 가치가 있는 법률이나 관습상의 배울 점이 이 사건에 있었기 때문이요 또한 유대인으로서 그가 알아 둘 만한 종교적인 문제들이 이 사건 속에 내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그의 조언을 얻기 위하여서였다. 베스도는 새로이 재판관이 되었다. 그는 적어도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생소한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사람들의 자문을 받기를 바랐다. 특히 바울의 사건은 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 같았기에 그는 왕의 조언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그는 왕에게 그 일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한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하자(14-21절). (1) 바울은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죄수로 있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처음부터 그 사건의 경위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본문에서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다"는 말로 서두를 꺼내었다. 베스도는 당초에 바울을 체포했던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였다. 그가 왔을 때는 이미 바울은 구속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바울을 그대로 감금하여 두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일이 자신을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 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 베스도는 왕에게 유대의 산헤드린이 바울에 대해 대단한 악감를 품고 있음를 말하였다. 그는"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나에게 바울은 위험한 인물이요 살려 두어서는 안 될 인물이며 그러기에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하더이다"라고 말하였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대하여 대단히 열심인 것처럼 하였고 그러기에 베스도는 그들을 결백한 사람들로 생각하여 자기가 그들을 위하고 신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를 품었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베스도 이상으로 그들을 알고 있었기에 베스도는 이 일에 대하여 왕의 조언을 청한 것이었다. (3) 베스도는 왕에게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법을 들어 죄수의 증언을 듣지 아니하고는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고 말하였다(16절). "자연법과 정의의 기본적 계율에 의하여 자신의 나라를 치리하는 로마인들은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변명하기 전에 즉 원고의 고소에 맞서 자신을 변명하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허용되기 전에는 죽음에 내어 주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다"고 하였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이 죄수를 심문하지도 않고 정죄해 줄 것을 자신에게 기대한 사실에 대하여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인과 또 로마 당국을 모독한 것이라는 듯 그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너희들의 법이야 어떠한지 모르지만 로마인들이 이러한 불의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로마인들은 다른 편의 사정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규율은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가 남을 책망할 일이 있을 때 기억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할 만한 규율인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변호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 보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나쁘게 이야기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4) 베스도는 왕에게 자기의 의무에 따라서 그를 자기의 법정에서 심문하였노라고 말하였다(17절). 베스도는 그 일을 신속히 처리하였다. 이것은 기소자들로 하여금 총독이 더디 일을 처리한다는 불평을 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자신이 "그들이 오자 지체하지 아니하고 다음날"(그들은 지체함 없이 가이사랴로 즉시 왔으리라고 우리가 믿어도 좋으리라) 바울을 재판하였노라고 하였다. 또한 가장 엄숙한 의식을 따라 바울을 재판하였다. 그러기에 베스도는 로마의 재판관들이 중대 문제를 재판할 때 하는 방식대로 "재판 자리에 앉았다." 로마의 재판관들은 사소한 일을 재판할 때는 법정의 마당(뜰)에서 재판하곤 했지만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하기 위하여 큰(大) 법정을 열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또한 이 사건을 종결시킬 의사에서 그는 대법정을 열었다. (5) 베스도는 왕에게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고소한 내용에 대하여 대단히 실망하였음을 말하였다(18, 19절). "원고들이 서서" 고소를 하였는데 저희는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① 베스도는 그 고소인들이 하도 열심히 고소하였고 그들이 부임하는 총독에게마다 이 사건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그는 적어도 그들이 아래와 같은 문제로 고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첫째, 그는 그들이 바울에 사유 재산이나 공공질서에 위험한 인물이기에 그에 대해 자기에게 고소하는 줄로 알았다. 즉 적어도 그들이 자기에게 도적질하거나 살인자이거나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자임을 논증하는 줄로 기대하였었다. 아니면 그들이 자기에게 바울이 반란의 주모자이거나 또는 바울이 최근 반란을 일으켜 반역자로 정죄된 애굽인은 아니더라도(천부장은 그들을 애굽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와 동류의 인물임을 유대인들이 논증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핵의 부르짖음이 이같이 너무 크고 격렬하였으므로 그 탄핵의 소리의 격렬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악한 무리로서 간주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이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