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1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24.가이사랴헤롯궁총독부재판.더둘로의송사.바울의변명.벨릭스판결연기(2년간).고난+환난에 동참_날마다 죽음+부활생명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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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4장

===바울을 고발하다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영적 하향을 의미(대표 아나니아의 타락) :: 300리길]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바울이 변명하다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기쁘게..cheerfully] 변명하나이다(아폴로게오마이) ....분명히 오해할만한 상황이 전개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오해로 인해 번거롭게 한 점 사과함이 우선이다!!...그후에, 저간 사정을 명명백백하게 설명하고 거기 따르는 페널티가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의향도 있음을 말하고 ,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의 모든 행동 바탕과 근거인 생생한 그리스도 복음과 하나님께 대한 산 소망-의인과 악인의 부활/심판-을 가지고 있으며 실지로 믿음 위에서 양심에 거리낌 하나 없이(거룩하신 주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오고 있음을 성령따라 담대히 말함...더불어 고소인들의 잘못된 부분들, 곧 잘못된 가정-추정따라 빚어지고 증폭된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음..

......[아폴로게오마이...사과로 시작하는 복음 변증].(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하나되신 CJ의 친절/예의바른 정중함/요동없는 평강)와 두려움으로(= Q 경외감 + 진리 안의 담대함 + 상대 인격 존중함으로써 사실/실상을 말함) 하고 ((2,사전적 의미)) 대답, 변명 : ajpologiva(아폴로기아) 변호, 변명.(ajpologiva = ajpo +logo").... 명사 아폴로기아는 아폴로게오마이(ajpologeomai : 자기를 변호하되 복음으로(곧 그리스도로) 삶, 그 진가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상대방에게 긍정적/적극적 호기심 불러 일으키도록 고백함인 것이다)에서 유래했으며, '변호'를 의미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사건과 관련하여, '변호의 말'에 대해, (b) 행위에 관하여, 법정에서 '변호'('나의 첫 변호에서' 등)에 대해, (c) '변명, 해명'을 의미한다. ... 명사 아폴로기아는 70인역본 외경 지혜서 6:10에서 심판의 '답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명사 아폴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아폴로기아는 행 22:1에서 (a)의 의미로 '변호의 말'을 의미한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고전9:3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b) 딤후4:16에서 (b)의 의미로 처음 '변호'할 때를 나타낸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행25:16에서 '변명'의 기회를 표현한다: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c) 고후7:11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열성에 대해 사용되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빌1:7에서 복음을 변호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3,교훈))1) 예수 믿는 이유를 물어 올 수 있어야 한다.  ...벧전3:15에서 어떤 사람에게 변호할 것을 준비하라고 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변호에 대한 열성을 보여준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2) 누구에게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인가? 그리스도께서 주인이라면 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2)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를 늘 물어 올 수 있어야 한다. ....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두고 소망을 가진 자들은 비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으며 비 그리스도인들은 그 점에 대해 의아해 하고 질문하게 된다.  그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수호뿐만 아니라 그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답'에 해당하는 '아폴로기안'은 본래 재판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변호할 때 사용되어진 용어이다(행 22:1; 25:16).  본문에서 법정 용어가 사용된 것은 공식적인 대답의 요건을 갖추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대답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3)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는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헬라어에서의 온유는 태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가짐의 태도의 변화이다. 그래서 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서 성품이 변화된 것을 말한다.(딤후2:24,25)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변론하는 과정에서자기 주장이나 감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합당한 진리만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Stibbs).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의 대답 또는 많은 설명의 대답이 아닌 삶으로의 대답이어야 한다.  살아가는 그 삶 자체가 대답이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게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달라!”라고 감탄하며 고백하게 하라!  “나도 예수를 믿어 볼까?”하는 마음에 감동을 주도록 살자!...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성령의 고백은 *1)(실은 자기에게 무고히  덮어씌움 당함에도 불구하고!!..주께서 자신의 무죄하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의 죄 덮어쓰시고 담당하사 죄인되어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음을 참되게 깨달아 알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에 채워 희생 당함을  자기의 영광으로 받아들임 인해!!)  누군가가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은 비록 그리스도의 심장+그리스도 보혈 적용으로 날마다 청결케 되고 선한 양심으로 행함에도 불구하고)  고발하는 상대방의 그 표현의 유쾌-불쾌에 상관없이, 자기의 (그리스도와 함께  담당하는)  죄인됨을 깨달은자가 기분좋게/즐거이 부드러운 말로 상대방고소인과 판사에게 먼저 (번거롭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2)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행보에 대해!! 부드럽게 성령따라 간략-명확하게 말하여 오해와 착각을 풀어주고, *3)그 다음에는 그가 (고소인도 믿고 붙들어 살고있는바) 믿는 신구약성경을 확고히 붙듦과,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 열리리라는 하나님 약속 안에서 성육신하여 오사 자기를 구속하여 깨끗케 하시고 맡겨주신 바 복음 전파 사명 맡기신 그리스도 그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승천하사 이제는 영광의 성령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여 계신 분을 증거함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고발자들..곧 대제사장-사두개인 장로들-더둘로] 이단이라 하는 도를[=나사렛 이단이라 하며 박해하며 반대하는 바 JC 그 복음 진리 -- No spec, No Money, Only Jesus--!!]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곧 심판의 부활이!! 반드시]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QT]

.......@@고백 = 성령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 고백....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고백<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합니다.

[마10: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롬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빌2: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요일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 시인하다의 헬라어는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고백하다 자백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다의 뜻 ...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는 똑같은 것을 말하다 똑같이 고백하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곧 내면의 깊은 것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내 >속에 있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마음의 가장 깊은 것을 올려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의 또 다른 뜻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신뢰하는바 알게하신 그대로 ))똑같이 고백하다이다 ....주님이 비춰주시는 바로 그대로를, 즉 <내> 모습의 깊은 죄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을 의미...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는 죄에서 민감한 사람이 고백할 수 있다  또한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으로 깊이 반응하는 영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죄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가감없이 솔직하게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을 뜻한다 ...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영혼의 감사의 고백이다 회심의 증거이기도 하다 예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마음과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니...  <호몰로게오 ὁμολογέω>는 영혼의 호흡이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한 영혼의 입술에서 감사가 계속 흘러 나오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7.  [이제 사실-실상을 말씀드리자면]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에베소]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

[롬7:21-롬8:1...*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고전15: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갈2:19-21(20)..*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빌3:10-17(10-14)....*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 파데마]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고(골 1:20),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성도들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말한다(골 1:22).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언한다(롬 3:24).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빌3:10..그 고난 =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 위한 단 일회적 고난 = 파데마]은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말이니...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라는 표현을 그리스도 자신이 받은 고난 그 자체가 다시 되풀이 되어야함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당연히 올바르게 이해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거듭난 믿는이인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고난에 동참/참여할 수 있을까...이 때 쓸 수 있는 표현은 "환난, 곧 들립시스"로 표현한다...물론 "고난"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받은 고난(= 성육신의 인생 살아가셨고 마침내 무죄하신 이로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사 대속적 십자가 죽음 죽으셨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빌3:10-14...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을 보도록 하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자랑합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기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마다 주님 마음따라 생각하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것이다)) 바울은 글자 그대로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았다. 이는 그는 날마다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는 삶, 날마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삶, 날마다 고난을 받는 삶, 날마다 손해를 보는 삶을 살았다는 뜻....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날마다 자기의 육체의 생명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는 말.... 그는 날마다 자기의 생명을 움켜쥐고 안일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그는 날마다 기꺼이/즐거운 심정으로 = 너그럽고 부드러이 주님의 사랑-기쁨-화평 안에 머물러 있어서, 기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오로지 주님이 그의 안에서 말씀하시는 "복음 말해냄" 위해 올인하는바)) 고난을 당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날마다 손해보는 쪽, 날마다 희생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것은 그가 목자생활을 했다는 말이다. 그는 이기적이고 자기를 이용하는 양들에게 기꺼이 이용을 당하고 끝없이 양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비량하면서 돈을 벌면서 양들을 섬기면서 그들을 자녀와 같이 여기고 그들을 여러 모양으로 섬겼다. 바울은 ‘아비가 자녀를 위하여 물질을 저축하는 것이지 자녀가 아비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기의 시간을 양들에게 내어주었고, 자기의 물질로 양들을 섬겼다. 그는 날마다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고, 시간적인 손해를 보았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사는 삶이 날마다 죽는 삶이요, 날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삶이요, 날마다 죽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날마다 죽는 삶은 날마다 예수님의 못박힌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요,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것....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날마다 실제적인 고난을 받고 실제적인 고통을 받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란 극심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며 날마다 죽는다는 것... ((육으로 사는것 그 자체는 바로 장차 다가올 심판의 빛에 비추어 볼 때, 날마다 그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여기고 바로 그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자신, 곧 세상 추구하고 하나되어 살던 나의 옛사람-육신/죄성-옛성품을 매어달아 완전히 끊으시도록 내어드림 + 부활생명의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으로 성령을 따라 그분의 신부/제자로 행함일지니)).... 우리는 현실적으로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극한의 고통...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사람들은 ‘사람들은 십자가형을 받는 것 외에는 어떤 고문이라고 다 감수할 정도였다. 로마시대에 어떤 한 성이 로마군에 항복했는데 ‘남자 한명을 십자가에 못박겠다’는 협박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생각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고통이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날마다 그런 고통을 당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미소짓는 것일지니, ...이것을 주께서 마침내 이루시는 것이다.

......---[환난=뜰립시스]:: 믿는이마다 마땅히 겪어내야할바, ((오직 그리스도만 남도록!!)) 사망을 맛봄 + 그리스도의 한 몸 지체로, 연합한 하나 됨 위해 그리스도만 남도록 처리받음

[계1:9-10..9.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에 여러분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한 탓으로,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10.주의 날에 내가 성령 안에서 내 뒤에서 나팔과 같이 울리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 ...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만 연합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든 부분에 연합된 것....그 삶이 어떤 삶이었던가?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환난의 삶을 살다 가셨다.  배신과 따돌림과 조롱과 핍박을 당하셨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그도 예수님과 똑같은 환난을 당하고 있었다.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은 도미티안 황제(Domitian A.D 81-96년) 때 사도 요한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밧모 섬에 유배를 가서 그 열로 한 나이(노인)에 광산에서 부역을 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환난이다. ...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로서 ‘예수 안에서’ 그 환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환난θλίψιςG2347’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뜰립시스’..... 이 말은 ‘억압’ ‘압제’라는 말...영어로는 ‘tribulation’. 라틴어로는 ‘triblum’ 탈곡기라는 말. ... 고대의 탈곡기는 아래에다 홈이 나 있는 철판을 깔아놓고 위에서 빗살무늬의 철판으로 비비는 것이었다.  (믿는이마다  예수를 믿는 즉시 그 탈곡기에 던져진 사람인 것이다....예수를 믿는 순간 그 탈곡기에 던져져서 죽을 때까지 덜덜덜 죽을 때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그게 기독교 복음진리이다.

-----[고난 = 파데마....그리스도의 고난은 파데마, 거듭난 사람의 고난은 드립시스]---

(a)  갈 5:24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상태이기에!! (육)정과 욕심=정욕과 탐심조차도 그러하다!! 라는 말은 골 3:5을 생각나게 한다. 이 단어는 영적 영역 뿐만 아니라 갈 5:19 - 갈 5:21에서 언급한 것들을 다 포괄한다. 본문은 기반을 살크스에 둔 모든 충동들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고, 따라서 죽어 없어진 것이다는 것을 단순히 강조하는 것이다.  롬 7:5 에서 파데마타는 기독교 이전 세대에 "육신에 있을 때"의 특징이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육에 속한 삶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일어나서 지체들 중에서 역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톤 하말티온("죄의")이란 말은 정욕의 성질을 묘사한다.

(b)  고후 1:5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말하고, 고후 1:6에서 독자들에게 같은 고난을 견디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들의 고난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고난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은총이며(빌 1:29), 모든 사람에게 복(福)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빌 3:10 - 빌 3:11에서 그리스도의 파데마타는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이지만, 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열정적인 신비주의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견디고 있는 실제적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연속이나, 모방 흑은 비유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길이 고난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조:행 9:16; 행 14:22).

골 1:24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도의 고난 사이에 병행을 볼 수 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제자들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없다는 것은 선하게 되어야 하는 부족한 것이 있다는 뜻이다. 고난은 가혹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롬 8:18은 고난이 장래의 영광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c)  히 2:9에서 죽음의 고난에 대해 언급한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같은 말의 반복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처음 언급을 강조하는 것이며, 단수형은 다나토스가 단수형인 것에 맞춘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복수형은 십자가에 달리신 전체 과정을 언급한다(히 2:10).

베드로전서에서 파데마타(파데인과 같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벧전 1:11의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는 말에서 볼 수 있다. 벧전 5: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에서 저자가 자신을 증인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한다고 할 때에는 계속되는 말 "영광에 참여할 자"에서 보듯이 수난을 목격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고난에 동참한다고 하는 견지에서 말하는 것이다.

........@@고난<드립시스θλῖψις>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영적 의미..실은, "환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고 번역해야 맞다..
---=고난 = 드립시스..[시119:67...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골1:24-25...*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벧전3: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난/환난의 헬라어는 <드립시스θλῖψις> 동사형 <드리보θλίβω>에서 왔다... 짜내다 짓누르다 혹독하게 밟다의 의미... 주로 올리브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거나 포도즙을 짜서 포도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단어 정제된 원액이나 기름을 뽑아 내기 위해서 극도의 압력이나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의미... 곧 극상품의 포도주나 올리브 오일을 만들기 위해서.. <드리보θλίβω짜내다>의 과정을 더 깊이 거칠수록 더 좋은 오일과 포도주가 만들어질 것... 그 당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날지라도 그 시간 만큼 양질의 상품이 만들어진다 .. 올리브와 포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니 성령의 열매와 아름다운 인격 예수 닮은 인격과 신앙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금 같은 믿음도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드리보 : 짜내다>의 과정을 지내야 한다 ... 하나님은 이유 없이 아프게 하지 않으시니... 목적 없는 고통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형상이 영광 가운데 크게 드러나는 삶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다
-----((파데오 = 파스카)) [딤후1: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그리스도의 그 고난에 동참함 =쉰카코파데오=쉰syn<함께> + 카코스<악한, 불행/재앙>+파데오<=파스카..고난>).”.....그리스도의 심장/심정 소유자로서 복음전파자로 살아야 함]  ((환난 =들립시스, 뜰립시스 = 그리스도만 남기까지, 완전히 깨어지고 부서짐 감수함....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함))[고후1:3-5..*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으로 (( 구속하신 십자가 사랑의 그 은혜 받은자로서 오직 그분의 모든 것 내어주신 이의 반쪽으로 합당하도록!! 거듭난 자신을 내어드림 위해 그분께서 당신의 신부/반쪽=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에 합당하도록 변화시켜가시는 바 "환난과 인내"로서 대망하는바 마라나타의 그날을 기대하며,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자신, 곧 세상 추구하고 하나되어 살던 나의 옛사람-육신/죄성-옛성품을 매어달아 완전히 끊으시도록  주권 내어드림 + 부활생명의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으로 성령을 따라 그분의 신부/제자로 행함일지니)).... 거듭난 우리는 현실 속에서 기꺼이 고난/환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실행해야 한다. 
[골1: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벧전4:12-16....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사도들이나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재난  (사도 베드로는, 연단하는 "불 시험"으로 표현) 곧,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환난(들립시스)을 가리키는 것 = 이는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심과 연결시켜보면, 곧 그리스도 자신의 환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신자들이 겪는 환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간주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라고 하신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사울이 신자들을 핍박한 것을 자신을 핍박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자기 백성이 환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 자신도 고통을 느끼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자로서 자신이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간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바로 그러하기에 예수님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16:3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당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면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고,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제자들을 떠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제자들에게 근심이 되는 일이지만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나타나시고, 또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심이 제자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보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악인들에게 고난당하는 것을 허용하시지만 그 고난이 극한 지경에 이르거나 무한히 계속되게 하지는 않으시리니.... 고난이 (미리 정해진) 양이나 수준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들의 고난은 악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고난의 양이 차는 것은 또한 죄악의 양이 차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환난 받게 하는 악인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자기 백성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실 것이다(살후 1:6-10).
골로새서 1장 24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기 백성이 당할 고난의 분량을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리라... 하나님은 고난의 분량을 정해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이 고난을 당할 때 함께 하시면서 고난을 이길 힘도 주신다. 고난을 통해 인내를 이루게 하시고 많은 영적 유익을 얻게 하신다. [=그리스도만 남도록,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충만에 이르도록, 거듭난 우리의 "생명-본성-성품"의 성장성숙이 바로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른 Q의 아들들로 나타나도록!!] 
또한 우리는 이 본문에서 고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적극적인 태도에 주목해야 하리니.... 그는 이방인 성도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도리어 기뻐하고 있었다!  ...세상에 고난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고난을 싫어하며, 가능한한 피하려고 한다. 사역자들도 사람이기에 고난을 좋아하지 않는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받는 고난으로 인해 이방인 성도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을 것이기에 기뻐하고,. 또한 자기가 고난을 받는 만큼 미리 정해진 고난의 양이 채워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성도들이 받을 고난의 양이 줄어들기에 기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환난이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것이므로 성도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함이 마땅하다고 담대히 말하고 있었다(롬 5: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약한 이방인 성도들이 환난 중에 믿음을 잃고서 [그토록 신실하던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의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살전 3:1-8; 고후 11:28-29). 그래서 골로새 교회의 연약한 이방인 성도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서 그들이 받을 고난의 양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지내다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드루실라..::[뜻-이슬::절세미인-좋은가문?-엄친아?...아그리빠2세의 동생](연모하고 있던바) 드루실라와 결별하지 않으면 큰 해악을 입게될거라 집요하게 말하도록 벨릭스가 마술사를 조종-위협-이혼케 하고 드루실라와 맺어졌다고 전해짐...당시, 각각 3-3번째 결혼이었는데,  드루실라18세--벨릭스60세 ::: 라헬-요셉은  야곱의 총애를 받았으나 임종 전에 베노니를 낳았고(이로 인해 야곱은 비로소 레아를 영적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어 레아가 그와함께 묘실에 들어가게 하고 있다), 반면에 레아는 야곱과는 부부의 참다운 희락을 누리지 못했기에 주님을 그의 남편 삼고 살았던바, 그로 인해(유다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게 된다.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행13에서 이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구속사적 복음을 말하였음**[행13:38-41...*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39.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0.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절제<엥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 성령 하나님의 다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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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믿음의 요체, 곧 이신칭의+성화+심판"에 대해 설교했지만....올바른 믿음의 진행은 그 역순으로(Q의 지금-오늘-당장!!의 심판 적용/회개/결단/영접/맡겨드림==>성화==>이신칭의 순서로 진행됨을 믿고자 하지 않았기때문에 그리스도 영접-성화의 삶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이것을 듣는 것만으로는 안됨.....결국, 벨릭스는 눈에 보이는 돈을 더 받기를 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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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멸망..믿음인가 불신인가))요3:17, 18...*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는자마다에게는 셈하심의 최종심판-시상이 있음))마25:26-30..*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히11:6...*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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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5-7...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행24:24, 25..*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그는 이미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Q과의 의로운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죄와 중독 등, 거듭난 영혼의 (주님 뜻에 합한 성장-성숙에) 해로운 습성들은 [판단/심판-죽음에 넘김 = 끊어냄 + 제거해 버림,,put aside]의 切除 절제 ...이는 성령께서 집도하시는 영혼의 수술적 제거에 해당함

.......절제를 헬라어로 <엥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 = "아래/안에"를 뜻하는 <엔>과 (성령의)능력 권세를 뜻하는 <크라토스>의 합성어 --- 성령의 능력 아래 머무는 것 --- 성령 하나님의 뜻 안에서 머물러 성령의 은혜를 신뢰하고 누림 통해 그분을 절대적으로 사랑/신뢰함 안에 머무름 인해, 죽이고 살리시도록!! 주권/통제권 넘겨드리며 성령의 깨끗케 하시는/거룩케 하시는/그리스도의 짝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되시도록 수술하며 깎아내심의 능력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 --- 육신의 소욕을 <내>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절대 은혜의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친히 다스리시도록 주권을 넘겨 맡겨드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 아래서만 가능하기 때문!!---오직!!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 안에 머묾 인해 성화/영화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요!! 성령께서 은혜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머물게 하시는 것이니....그러므로!! 당연히,  Self-Control 이라는 영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초월적 의미가 있는데, 곧 성령 하나님의 다스림과 다루심에 순종함 통해 그리스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됨에 이르도록 깎아내며 조성해 가심인 것이니...이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절대 은혜라 함이 옳다

..... 절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자 하는 사모함에서 시작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절대 은혜인 것이다.....오 ! 성령 하나님의 능력 아래 머무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성령께서 마음과 생각을 이끌어 주실 것이니...육신의 소욕이 아닌 성령님의 뜻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변화시켜 주시리라.,...<나>를 다듬어 주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할수록 성령께서 <내>생각과 마음을 더 깊이 다스려 주시리라...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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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24 Amplified Bible

===Paul before Felix

1 Five days later, the high priest Ananias came down [from Jerusalem to Caesarea] with some elders and an attorney named Tertullus [acting as spokesman and counsel]. They presented to the governor their [formal] charges against Paul. 

2 After Paul had been summoned, Tertullus began the complaint [against him], saying to the governor:  “Since through you we have attained great peace, and since by your foresight reforms are being carried out for this nation, 

3 in every way and in every place, most excellent Felix, we acknowledge this with all gratitude. 

4 But so that I do not weary you further, I beg you to grant us, by your kindness, a brief hearing. 

5 For we have found this man to be a public menace and one who [a]instigates dissension among all the Jews throughout the world, and a ringleader of the [heretical] [b]sect of the Nazarenes. 

6 He even tried to desecrate the temple, but we took him into custody [c][and we intended to judge him by our Law, 

7 but Lysias the commander came, and with great force took him out of our hands, 

8 and ordered his accusers to come before you.] By interrogating him yourself concerning all these matters you will be able to determine [the truth about] these things with which we charge him.” 

9 The Jews also joined in the attack, declaring and insisting that these things were so.

10 When the governor nodded for him to speak, Paul answered, “Knowing that for many years you have been a judge over this nation, I make my defense cheerfully and with good courage. 

11 As you can easily verify, it has been no more than twelve days since I went up to Jerusalem to worship. 

12 Neither in the temple, nor in the synagogues, nor elsewhere in the city did they find me carrying on a discussion or disputing with anybody or causing a crowd to gather. 

13 Nor can they present evidence to you to prove what they now bring against me. 

14 But I confess this to you, that according to [d]the Way, which they call a [divisive and heretical] sect, I do worship and serve the God of our fathers, [confidently] believing everything that is in accordance with the Law [of Moses] and that is written in the Prophets; 

15 having [the same] hope in God which these men cherish themselves, that there shall certainly be a resurrection of [the dead], both of the righteous and of the wicked. 

16 In view of this, I also do my best and strive always to have a clear conscience before God and before men. 

17 Now after several years I came [to Jerusalem] to bring to my people charitable contributions and offerings. 

18 They found me in the temple presenting these offerings, after I had undergone [the rites of] purification, without any crowd or uproar. But there were some Jews from [the west coast province of] Asia [Minor], 

19 who ought to have been here before you to present their charges, if they have anything against me. 

20 Or else let these men tell what crime they found [me guilty of] when I stood before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21 other than for this one statement which I had shouted out as I stood among them,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 am on trial before you today.’”

22 But Felix, having a rather accurate understanding about the Way, put them off, saying, “When Lysias the commander comes down, I will decide your case.” 

23 Then he ordered the centurion to keep Paul in custody, but to let him have some freedom, and [he told the centurion] not to stop any of his friends from providing for his needs.

24 Several days later Felix came with his wife [e]Drusilla, who was a Jewess. He sent for Paul and listened to him talk about faith in Christ Jesus. 

25 But as he was discussing righteousness, self-control [honorable behavior, personal integrity], and the judgment to come, Felix became frightened and said, “Go away for now, and when I find [a convenient] time I will send for you.” 

26 At the same time he was also hoping to get money from Paul [as a bribe]; so he continued to send for him quite often and talked with him. 

27 But after two years had passed, Felix was succeeded [in office] by [f]Porcius Festus; and wishing to do the Jews a favor, Felix left Paul imprisoned.

===Footnotes

Acts 24:5 Inciting rebellion was a serious crime under Roman law.

Acts 24:5 The Romans had forbidden the establishment of any new religion.

Acts 24:6 Early mss do not contain the remainder of v 6, v 7, nor the first part of v 8.

Acts 24:14 See note 9:2. Paul was probably referring to Jesus Himself.

Acts 24:24 Youngest daughter of Herod Agrippa I. 

Acts 24:27 Festus served about two years as governor (procurator). He was regarded as a fairly capable governor, superior to both his predecessor and his succ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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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뜰립시스θλίψις’, 인내‘휘포모네ὑπομονή’, 연단(단련) ‘도키메δοκιμή ’, 삼으셨다‘포이에오ποιέω’....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만 연합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든 부분에 연합된 것입니다.   그 삶이 어떤 삶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환난의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배신과 따돌림과 조롱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그도 예수님과 똑같은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병 다 낳고 누가 부자된다고 이야기 했습니까?   성경 어느구절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다 가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 위에서 덜덜덜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탈곡기 처럼... 네 환난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 만큼 환난당하고 계세요. 그런데 그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환난은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다 면 여러분도 바로 그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시게 됩니다.   (롬5:3-4) 3.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4.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구절을 보세요.  거기서 즐거워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우카오마이καυχάομαιG2744’입니다.  - 사전참조 유코마이εύχομαιG2172에서 유래(소원하다,하나님께 기도하다,하고 싶어하다 이 말은 ‘자랑하다, 뽐내다’의 뜻입니다. 신자는 환난을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환난을 자랑할 수 있게 될까요? 이유가 4절에 나옵니다.  ‘~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기 때문에 환난이 자랑이 됩니까?  그 환난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연단을 이루고 연단이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아는 자들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환난은 결국 소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에 환난이 올 때  ‘아, 난 정말 그리스도인이구나.’하고 자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3절에서 환난이 인내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ὑπομονή’라는 말은 단순히 ‘꾹 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휘포모네ὑπομονή’는 정절을 지키며 변치 않고 어디에 굳게 서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신자에게 있어서 환난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굳게 서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성령에 의해 거듭난 신자는 환난을 당하면서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면서  ‘난 정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정말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안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의 환난은 새로 거듭난 자기 안에 공존하는 죽을 몸, 옛 성품을 자꾸 쳐서 약화시켜줍니다. (환난-우리가 너무 익숙한 것으로부터 오면, 우리를 무장해제시킵니다) 그렇게 우리는 환난을 겪으면서 육신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만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휘포모네ὑπομονήG5281’ 환난이 인내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사전참조) 휘포메노ὑπομένωG5278(밑에 머무르다,남겨지다,참다,인내하다...)에서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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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4장

1.  And after five days the high priest Ananias came down with some elders, with a certain attorney [named] Tertullus; and they brought charges to the governor against Paul.

2.  And after [Paul] had been summoned, Tertullus began to accuse him, saying [to the governor], "Since we have through you attained much peace, and since by your providence reforms are being carried out for this nation,

3.  we acknowledge [this] in every way and everywhere, most excellent Felix, with all thankfulness.

4.  "But, that I may not weary you any further, I beg you to grant us, by your kindness, a brief hearing.

5.  "For we have found this man a real pest and a fellow who stirs up dissension among all the Jews throughout the world, and a ringleader of the sect of the Nazarenes.

6.  "And he even tried to desecrate the temple; and then we arrested him. {And we wanted to judge him according to our own Law.

7.  "But Lysias the commander came along, and with much violence took him out of our hands,

8.  ordering his accusers to come before you.} And by examining him yourself concerning all these matters, you will be able to ascertain the things of which we accuse him. "

9.  And the Jews also joined in the attack, asserting that these things were so.

10.  And when the governor had nodded for him to speak, Paul responded: "Knowing that for many years you have been a judge to this nation, I cheerfully make my defense,

11.  since you can take note of the fact that no more than twelve days ago I went up to Jerusalem to worship.

12.  "And neither in the temple, nor in the synagogues, nor in the city [itself] did they find me carrying on a discussion with anyone or causing a riot.

13.  "Nor can they prove to you [the charges] of which they now accuse me.

14.  "But this I admit to you, that according to the Way which they call a sect I do serve the God of our fathers, believing everything that is in accordance with the Law, and that is written in the Prophets;

15.  having a hope in God, which these men cherish themselves, that there shall certainly be a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16.  "In view of this, I also do my best to maintain always a blameless conscience [both] before God and before men.

17.  "Now after several years I came to bring alms to my nation and to present offerings;

18.  in which they found me [occupied] in the temple, having been purified, without [any] crowd or uproar. But [there were] certain Jews from Asia--

19.  who ought to have been present before you, and to make accusation, if they should have anything against me.

20.  "Or else let these men themselves tell what misdeed they found when I stood before the Council,

21.  other than for this one statement which I shouted out while standing among them,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 am on trial before you today.' "

22.  But Felix, having a more exact knowledge about the Way, put them off, saying, "When Lysias the commander comes down, I will decide your case."

23.  And he gave orders to the centurion for him to be kept in custody and [yet] have [some] freedom, and not to prevent any of his friends from ministering to him.

24.  But some days later, Felix arrived with Drusilla, his wife who was a Jewess, and sent for Paul, and heard him [speak] about faith in Christ Jesus.

25.  And as he was discussing righteousness, self-control and the judgment to come, Felix became frightened and said, "Go away for the present, and when I find time, I will summon you."

26.  At the same time too, he was hoping that money would be given him by Paul; therefore he also used to send for him quite often and converse with him. 

27.  But after two years had passed, Felix was succeeded by Porcius Festus; and wishing to do the Jews a favor, Felix left Paul impris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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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장 (개요)

우리는 전 장에서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헤롯궁의 법정에서 그에 대한 재판이 곧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있는 내용까지 고찰하였었다. 

그러나 사건이 터져 그가 갇히게 된 초창기에는 사건 처리가 신속히 진행되었지만 후반부에서는 더디 진행된다. 

우리는 본장에서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기소되고 또한 재판을 받는 사실을 대하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바울의 기소자들의 출현과 죄수의 법정 출두(1, 2).

Ⅱ. 더둘로의 바울에 대한 고소. 

그는 기소자들 편의 변사였다. 그는 능변으로 재판장을 칭송하고 죄수를 힐난하였다(2-8).

Ⅲ. 증인들 또는 자신의 기소에 대한 지지(9).

Ⅳ. 죄수의 변론. 

바울은 총독에게 갖출 예의를 표시하고(10) 자신이 받는 혐의를 부인하고 고소인들에게 혐의가 진실인가를 증명하라고 한다(11-13). 

또는 진실에 입각하여 심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예기치 않은 고백을 한다. 

그는 그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바로 이 신앙 때문이라고 선언한다(14-16). 

그리고 자신이 처음 체포되게 된 경위부터 상세히 설명한다. 죄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항의한다(17-21).

Ⅴ. 재판의 연기. 바울의 계속된 옥중 생활(22, 23).

Ⅵ. 바울과 총독 사이에 있었던 은밀한 대화. 

이 대화를 통하여 바울은 그 재판관에게 선한 일하기를 바랐고, 그 재판관은 바울에게 돈을 얻을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양쪽의 기대가 모두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24-26).

Ⅶ. 이년 간의 바울의 옥중 생활. 

그의 옥중 생활은 다론 총독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27). 

그곳에서 바울은 전에 모든 무리의 관심의 대상이었을 때에 비해 잊혀진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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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고발하다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더둘로의 송사(행 24:1-9)

우리는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내고 나서 바울을 대적하고자 나타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바울을 기소할 일이 있으면 가이사랴로 갈 것과 거기서 바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요 재판도 행해질 것이라고 말하였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아마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구태여 가이사랴까지 가는 수고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증오감을 사그러뜨릴 그 어떤 방도도 없었던 것이다.

Ⅰ. 바울에 대한 고소의 진행 경위. 재판은 활기를 띄고 진행되었다.

1. 재판은 얼마 안 있어서 개최되었다. 

왜냐하면 고소인들은 "5일 만에" 재판에 필요한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울을 박해하기 위해 모든 다른 일은 제쳐 놓았다. 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는 일에 이토록 열심인 것이다. 

어떤 이는 바울이 처음 잡히고 난 후 "5일만에" 본문의 재판이 열린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대단한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간지 열 이틀밖에 못되었다"고 말했고(11절) 또한 바울은 성전에서 결례하는 데 칠 일을 소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닷새는 열 이틀에서 칠 일을 뺀 나머지 날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의 재판자 노릇을 하였던 자들이 본문에는 그의 기소자로서 나타난다. 

즉 그를 재판하기 위하여 높은 자리에 앉았던 대제사장 아나니아 자신이 서서 바울을 기소하였다.

(1) 아나니아가 그처럼 자신을 욕되게 하고 자신의 지위에 대한 존엄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대제사장이 기소자가 되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자기의 임무를 버려 두고 헤롯궁의 법정에서 고소인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들 스스로 이같이 자신들을 비하시킨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말 2:9).

(2) 이같이 아나니아가 직접 나서서 바울을 대적하였다는 것 역시 기이한 일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느 누구에 대하여 악의를 지니고 있다면 자신은 될 수 있는 한 뒤로 숨어서 하며 정책적으로 다른 사람을 하수인으로 기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송사를 하는 사람은 대개 욕먹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자신이 바울에 대한 서원한 적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장로들이 그를 수행하였다. 

그들이 그와 함께 가이사랴에 온 것은 그들이 아나니아를 지지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또 기소를 강력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이같이 직접 나선 것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격렬하게 공소를 행해 줄 변호사나 대리인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일을 고안해 내는 일에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을 비하시키며 지칠 줄 모르고 날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선한 일에 대한 우리의 냉담, 사양, 무관심이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 수치가 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Ⅱ. 바울에 대한 송사의 내용. 

기소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온 더둘로라는 어떤 변사를 데리고 왔다. 그는 로마인으로 로마법과 로마어에 능통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총독 앞에서 송사하는 데에 적격이었고 승소할 수 있는 능력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분노에 가득 차서 예리한 어투로 조리있게 말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그들의 자문 노릇을 하는, 풍자로 유명한 더둘러를 고용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더둘러에게 많은 삯을 주었을 것이요 아마도 그 삯은 그들이 관리하는 성전의 비용에서 빼낸 것일 게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건은 교회가 관련된 것임으로 돈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핑계를 대었으리라. 

바울은 법정에서 총독 벨릭스 앞에 앉았다. 그는 소환되어 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2절). 

더둘로의 임무는 기소자들을 대신하여 바울을 송사하는 것이었다. 더둘로는 돈만 받으면 무슨 일이고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은 그의 혀를 샀다. 

자기 입장을 변호해 줄 변론인을 고용한다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으나, 많은 변사들이 [법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정의감은 내동댕이 치고 부당한 입장까지도 [돈 때문에] 의식적으로 수호한다는 데 문제는 있는 것이다. 

더둘로도 바로 이러한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변론이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

[아마도 본문의 내용은 그의 변론을 요약한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툴리(Tully)의 연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로마의 변호사들은 이러한 경우에 장광설을 늘어 놓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그의 변론은 아부와 거짓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말은 악을 선으로 선을 악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1.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인간 중의 하나가 본문에서 가장 훌륭한 위인인 것처럼 칭송되고 있다. 

이러한 칭송이 주어진 것은 그가 재판관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벨릭스는 유대인인 요세푸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벨릭스와 같은 동족인 로마 역사가들에 의해서도 매우 악한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재판정에서의 그의 특권을 이용하여 온갖 악을 저질렀고 암살을 장려하고 암살자를 후원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압제자로 묘사된다(Joseph. Antiq. XY. Cap 6). 그가 이런 자인데도 불구하고 더둘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이름으로 또한 아마도 그들의 특별한 지시에 의하여 벨릭스를 찬양하고 마치 그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훌륭한 통치자라는 듯이 하늘까지 추켜 세웠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이러한 찬사를 교사했으리라는 것은 벨릭스가 최근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적의를 무마하려고 그들이 그를 추켜 세웠으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건의 최근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대제사장 요나단은 벨릭스의 폭정을 비난하여 벨릭스를 격노케 하였는데, 벨릭스는 암살자를 고용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 이들 암살자들은 그 후에도 고용될 때는 언제나 사람을 암살하는 일을 하였는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아무도 감히 끔찍한 악을 자행하는 암살자들을 처벌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 암살자들은 자기들이 처벌되지 않는 것을 기회로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또 때로는 돈을 받고 고용되어 사람을 찔러 죽였는데, 그들은 심지어 성전에서도 사람을 찔러 죽였다. 

이들을 동원하여 벨릭스가 자기들의 동료를 살해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벨릭스를 이용하여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심을 충족시키고 또 그르이 그의 행위를 눈감아 준 친절을 보인 대신 그도 자기들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뜻으로 그들을 벨릭스를 역대 총독들 중 가장 뛰어난 그들 교회와 만족을 위한 공헌자라고 아첨하였다.

(1) 벨릭스에 대한 찬사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더둘로에게 시킨 것이었다(2절).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립니다. 또 우리는 당신을 우리의 수호자요 보호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즉 당신의 지혜와 가호와 지키심에 의해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감사무지하옵나이다"라고 말한다. 

총독이 앞서 천부장이 말한 애굽인의 폭동을 진압하였다는 점에서 그가 유대인에게 공헌한 것이 있음도 사실이었다(21:38). 그러나 그가 그러한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의 유대인들에 대한 모든 폭정과 압제가 다 눈감아 질 수는 결코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찾아 보도록 하자.

① 위대한 인간이 상대적으로 폄하되는 불행. 

악항자들의 치적이 과장되어 칭찬되고 그들의 결점이 솔직하게 그들 앞에서 지적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불행이다.

② 악한 인간의 정치. 

그들은 아첨하는 관리들에 의해서 점점 더 나쁜 정치를 하게 된다. 

로마의 교황들도 각 나라의 폭군들과 또한 불법적 왕위친탈로 왕이 된 자들에게 아첨하고 추켜 세워서 교권을 공고히 하였고 또 그들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들을 박해하도록 조종하였고 그들을 자기들의 악의 도구로 삼았다. 

마치 본문의 대제사장이 벨릭스를 추켜 세워 그를 통해 자기의 계획을 이루려고 하였듯이 말이다.

(2) 그들은 그의 은덕을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3절). 

그들은 더둘로를 통해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즉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당신의 은덕을 기억할 것입니다. 고귀하신 벨릭스 각하여, 우리는 당신의 은덕을 온갖 감사의 말로 찬양하나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은 현명하고 좋은 총독으로 우리 나라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하셨다는 것을 당신을 위해 증언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그가 그들이 말한 것과 같은 총독이었다면 그의 선정을 그들이 감사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임이 마땅할 것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 당국을 통하여 받는 유익함, 특히 현명하고 선량한 통치자들의 다스림에 의하여 얻는 유익은 하나님과 인간에게 우리가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진정, 통치자에게 있어서 최대의 영예는 백성들이 그의 보호 아래 태평을 누리고 그의 선정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음을 인정하고 치하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본문의 벨릭스는 그런 인물이 못되었던 것이다.

(3) 그들은 이러한 찬사를 그에게 보내므로 이 일에 대한 벨릭스의 호의를 기대하였다(4절). 

그들은 벨릭스의 시간을 더 이상 빼앗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오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인내를 베풀어 준다면 잠간 말하겠다는 뜻으로 그들은 더둘로를 통해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 원하옵나이다"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들이 이 모든 말은 그가 자기들의 송사를 지지해 주도록 유도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들은 사실이 공정하게 재판되면 아무 소득도 없을 것으로 여겨 바울을 하게 다스리게 만들려고 그에게 아첨을 한 것이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로마 정부를 증오하였고 로마 정부의 멍에를 지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그러기에 그들이 벨릭스를 미워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없애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갖 아첨을 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마치 그들이 우리 주님을 박해할 때 빌라도와 가이사에게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들은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통치자들은 군중의 입에 발린 아첨에 의해 그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충성과 아첨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2. 가장 선한 사람이 여기서는 가장 악한으로 비난되고 있다. 

단지 그가 체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를 죄가 있다고 비난한다. 

더둘로는 미사여구로 아첨을 한 후(그의 말은 진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용건을 말한다. 

그는 법정에 선 죄수에 관한한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먼저번의 분에 넘치는 아첨이 혐오감을 우리에게 주었듯이 지금의 도에 넘치는 욕지기 역시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필자는 더둘로를 동정한다. 또한 필자는 그가 바울에게 악의도 없었으며 또 그가 바울을 힐난하듯 바울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가 벨릭스를 필요에 의해 과찬하였듯이 다만 돈 때문에 바울을 비난하였으리라..

그러나 필자는 이와 같이 기지가 넘치는 사람이 고작 말을 팔아 먹고 살려고 한 사실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또한 그로 하여금 이러한 말을 하게 한 잔인한 마음을 지닌 더러운 인간들인 대제사장의 무리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이제 더둘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이름으로 벨릭스에게 두 가지 점을 고소하였다.

(1) 바울에 의하여 그 나라의 질서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나쁜 사름으로 몰지 않고서는 그들을 괴롭힐 수가 없었다. 

또한 처음부터 제자들을 가장 사악한 무리로 모함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제자들에게 지독한 고난을 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제자들에 대한 그들의 얘기는 전혀 거짓된 것이었고 그러한 조그만 근거도 제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그 누구라도 순수함이라든가 뛰어남 또는 유익함을 지녔다고 해서 모함과 비난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통치자들이나 대중들이란 곧잘 비난의 말에 현혹되어 미쳐 날뛰게 된다. 

비록 불의한 사실이라도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확신있게 정당한 것처럼 주장하면 그것이 본문에서처럼 그럴 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바로 바울이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하나님의 예루살렘을 패역한 성이라고 정죄하고 왕과 방백들을 비난한다는 것이었다(스 4:15, 19). 

또한 우리 주 예수에 대해서 그들은 그가 나라를 소요케 하며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누명을 씌웠던 것이다. 

본문에 보면 바울에게도 똑같은 비난이 주어진다. 그들은 바울이 전적으로 나쁘다는 것을(이것은 전적으로 거짓이지만) 모든 상상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였다. 

그들은 "우리는 바울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혐의를 두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기정 사실인 것처럼 "우리는 그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부터 그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치도 그가 반역자이며 이미 그의 반역이 유죄로 입증된 것처럼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증언에는 한 마디의 진실도 없었다. 바울의 실생활이 조사된다면 그가 그 증언과는 반대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① 바울은 그의 나라에 대단히 복된 사람이며 유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예의범절을 지닌 전형적인 선한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 누구도 섭섭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염병"이라고 불리웠다(5절).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로이몬)- 즉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이 말은 그가 시끄러운 인물이며 잔악하고 성품이 나쁜 자요, 가는 곳마다 소요를 일으키는 자라는 뜻의 말이다.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세대에게 전염병 보다도 더 해로움을 주며, 그들은 그의 독소는 퍼져서 남까지 감염시키는 것이요 마들도 자기처럼 악하게 만드는 그러한 독소라고 생각했다. 

역병이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고 모든 것을 폐허가 되게 하듯이 바로 바울이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를 염병처럼 두려워하고 경계할 인물로 여겼다. 그가 전한 많은 훌륭한 설교와 선한 사업 때문에 그는 염병과 같은 자라고 칭해졌던 것이다.

② 바울은 화평케 하는 자였다. 

바울은 모든 적들을 없애는 힘을 지닌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였으며 진실하고 영원한 평화를 심는 자였다. 

바울은 자신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살았으며 타인들에게 그렇게 살도록 권면하였다. 

그런데도 본문에서 그는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라고 포함되었다.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완고한 고집쟁이들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특히 그러하였다. 

벨릭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계하는 눈초리로 지켜 보았다. 

이제 그들은 벨릭스로 하여금 바울이 그들을 소요케 선동하는 자라고 믿도록 속이려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 자신이 백성들 가운데 반역과 소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소자인 그들도 이 사실을 내심으로 수긍하였다. 

사실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가 전한 신앙을 미워한 것도 그가 그들이 로마인과 싸우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나 바울에 대적하였고 그에게 반대하도록 군중을 선동하여 소요케 하였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모든 장소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들은 이제 그 모든 책임을 부당하게도 마치 그가 소요를 일으키는 선동자인 것처럼 바울에게 씌우려고 하였다. [이런 극히 추악하고 못된 짓을 본따서]그후 오래지 않아 네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이 불을 질렀다고 핑계대었던 것이다.

③ 바울은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를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종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본문에서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되었다. 

즉 그 말이 지닌 의미대로 이 이단의 표본되는 주동자라고 하였다. 한 구브로인이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도 그에 대한 선고문에는 "악한 일을 꾀하는 파의 주동자요 괴수"라는 말이 삽입되었었다. 

바울이 기독교를 전하는 주동적 인물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첫째, 그가 전한 종교가 하나의 이단이라고 말한 것은 전적인 거짓이었다. 

바울은 군중들로 당을 꾸미게 하거나 은밀한 말로 그들을 이간하지도 않았다. 또는 그가 그의 생각을 그들이 법처럼 여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진실한 기독교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관심이 되는 사실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며 세상과 화해하기를 바라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종파의 유래가 그러했듯이 기독교를 편견과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진실한 기독교은 인간을 하나로 연합하게 하며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이도록 불러 모으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또한 기독교가 인간의 마음에 올바른 능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만 한다면 인간들을 온유케 하고 정숙케 하고 평화롭고 서로 사랑하게 하며 모든 문제를 용이하게 처리하게 하며 서로 용납하며 서로에게 유익을 주게 할 수 있는 것이요, 무질서의 씨를 심고 분열로 이끌어 주는 당파와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기독교는 세상적인 이익이나 권리를 목적하지 않기에, 전혀 당파로 불리울 수는 없는 것이다. 

당파로 세우는 사람들은 그들의 세속적인 이익을 따라 그 당파를 운영하며 그들은 부귀와 영화를 목적 삼지만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그들에게 귀중했던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또 없는 것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부당하게 기독교를 나사렛이단이라고 불렀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나사렛 출신으로 표현한다. 즉 그는 선한 것이 나오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메시야가 태어나리라고 예언된 베들레헴 출신이었지만, 그럼에도 주께서는 자신이 나사렛 예수라고 칭해지는 것을 좋아하셨다(22:8). 

성경은 그 이름에 영예를 부여하였다(마 2:23). 그러므로 이 칭호가 본래는 모욕을 주려는 의도에서 주어진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주인이신 주님이 기꺼이 받아들이신 이 칭호를 부끄러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바울을 나사렛이단의 괴수요 주동자라고 부른 것은 커다란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④ 바울은 성전을 경외한다. 

그는 성전을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장소로써 존경하였기에, 최근에도 성전에서 경건하게 봉헌을 드리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바울을 성전을 더럽히는 자요, 고의로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멸시하려고 하였다(6절)고 고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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