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2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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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3장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0.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7.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  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29.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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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Life and Conduct

1 When you sit down to dine with a ruler, Consider carefully what is [set] before you;

2 For you will put a knife to your throat If you are a man of great appetite.

3 Do not desire his delicacies, For it is deceptive food [offered to you with questionable motives].

4 Do not weary yourself [with the overwhelming desire] to gain wealth; Cease from your own understanding of it.

5 When you set your eyes on wealth, it is [suddenly] gone. For wealth certainly makes itself wings Like an eagle that flies to the heavens.

6 Do not eat the bread of a selfish man, Or desire his delicacies;

7 For as he thinks in his heart, so is he [in behavior—one who manipulates]. He says to you, “Eat and drink,” Yet his heart is not with you [but it is begrudging the cost].

8 The morsel which you have eaten you will vomit up, And you will waste your compliments.

9 Do not speak in the ears of a fool, For he will despise the [godly] wisdom of your words.

10 Do not move the ancient landmark [at the boundary of the property] And do not go into the fields of the fatherless [to take what is theirs],

11 For their Redeemer is strong and mighty; He will plead their case against you.

12 Apply your heart to discipline And your ears to words of knowledge.

13 Do not withhold discipline from the child; If you [a]swat him with a reed-like rod [applied with godly wisdom], he will not die.

14 You shall [b]swat him with the reed-like rod And rescue his life from Sheol (the nether world, the place of the dead).

15 My son, if your heart is wise, My heart will also be glad;

16 Yes, my heart will rejoice When your lips speak right things.

17 Do not let your heart envy sinners [who live godless lives and have no hope of salvation], But [continue to] live in the [reverent, worshipful] fear of the Lord day by day.

18 Surely there is a future [and a reward], And your hope and expectation will not be cut off.

19 Listen, my son, and be wise, And direct your heart in the way [of the Lord].

20 Do not associate with heavy drinkers of wine, Or with gluttonous eaters of meat,

21 For the heavy drinker and the glutton will come to poverty, And the drowsiness [of overindulgence] will clothe one with rags.

22 Listen to your father, who sired you, And do not despise your mother when she is old.

23 [c]Buy truth, and do not sell it; Get wisdom and instruction and understanding.

24 The father of the righteous will greatly rejoice, And he who sires a wise child will have joy in him.

25 Le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be glad, And let her who gave birth to you rejoice [in your wise and godly choices].

26 My son, give me your heart And let your eyes delight in my ways,

27 For a prostitute is a deep pit, And an immoral woman is a narrow well.

28 She lurks and lies in wait like a robber [who waits for prey], And she increases the faithless among men.

29 Who has woe? Who has sorrow? Who has strife? Who has complaining? Who has wounds without cause? Whose eyes are red and dim?

30 Those who linger long over wine, Those who go to taste mixed wine.

31 Do not look at wine when it is red, When it sparkles in the glass, When it goes down smoothly.

32 At the last it bites like a serpent And stings like a viper.

33 Your [drunken] eyes will see strange things And your mind will utter perverse things [untrue things, twisted things].

34 And you will be [as unsteady] as one who lies down in the middle of the sea, And [as vulnerable to disaster] as one who lies down on the top of a ship’s mast, saying,

35 “They struck me, but I was not hurt! They beat me, but I did not feel it! When will I wake up? I will seek more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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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육욕에 대한 경고(잠 23:1-3)

본문은 사치와 육욕 및 먹고 마시는 일에 탐닉하는 죄를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는데 이런 것은 우리가 아주 쉽사리 빠지는 죄인 것이다.

Ⅰ. 우리가 유혹에 빠지게 되고 죄에 빠질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가 지적되고 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면 너는 네 앞에 아주 풍성한 식탁을 대하게 되며 갖가지 음식과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 네가 거의 보지 못하던 상을 받게 된다. 그러면 하만이 그러했듯 너는 그로써 받는 영광과(에 5:12) 네 미각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기회만 생각하고 거기에는 네게 대한 올무가 쳐져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가 쉽다." 아마 늘 좋은 식탁을 대하는 자보다, 그런 어마어마한 향응에 생소한 자들에게는 그 유혹이 보다 더 강렬하고 더 위험할 것이다.

Ⅱ. 그러한 때에는 우리의 경각심을 배가시키라고 지시하고 있다.

1. 우리는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삼가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음식이 네 앞에 있는지 열심히 살펴서 가장 안전하게 먹거나 마시되 조금도 과식하지 않을 것을 고르도록 하라. 또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라. 그는 관원(원뜻:통치자)이 아니냐! 그가 지혜롭고 선한 자라면 자기 빈객 중 누구라도 자기 식탁에서 그와 함께 앉아 먹을 때라면 "우리 앞에 앉아 있는 분이 누구인지" 더욱 "삼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상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추호라도 "무가치하게," 어울리지 않게 "먹고 마시는"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2. 우리는 경각심을 높여 절제와 중용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즉 네 머리 위에 칼이 매달려 있기라도 하듯이 모든 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자제하라. 어느 때든지 배부름과 술취함으로 네 마음이 곤비하여 그 날이 부지 중에 네게 임할까 조심하라. 혹은 이 모든 일로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시리라. 술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이와 같은 말씀을 우리 목에 대한 비수로 삼으라." 라틴 사람들은 사치를 한다-즉 목구멍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죄악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으라. 흥청거리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파묻히기보다 절제를 가하며, 먹는 데 욕심을 낸다는 것이 곧 목에 칼이 들어가는 일인양 생각하라." 우리는 결코 "기탄없이 먹는 일"일이 있어서는 안되며(유 12), 이 탐식의 유혹이 앞에 있는 때를 특히 두려워해야 한다.

3. 우리는 감각의 충족에 대해서는 경건한 면에서 경멸감을 품도록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네가 탐식하는 자여든, 여호와의 두려우심을 상기하고 당장 결단력으로 자세해야 한다. 네가 과식에 빠질 위험에 처하는 때에는 네 목에 칼을 두어라.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한 번 정도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충분치는 않다. 그러나 그 뿌리에 도끼를 대어라. 네게 이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욕은 마땅히 굴복시켜야 한다. 진찬을 탐하지 말라."

우리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살펴 보아야 하며, 육신을 즐겁게 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에는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에 대해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부의 타락도 진압해야 한다. 음식을 원하는 것은 생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이 음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진찬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 된다. 신앙 양심상 맛좋은 것을 탐내어 기도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음식은 흔히 마음이나 몸, 또는 재산에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속이는 음식이다. 그러므로 다윗도 이런 음식을 먹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는 대신 먹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시 141:4). 진수성찬은 혀에는 달지만 아마 뱃속에서는 얹히고 쓰게되어 사람의 속을 쥐어 뜯고 그를 병나게 할 것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만족감을 채워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속은 것이다. 먹기를 탐하는 자들조차 맛이 유별난 음식을 먹어보아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곧 그 음식에 물리게 되어 보다 별미인 딴 음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고급만 찾는 입은 구미에 맞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될 수록 더 고급이 되고 음식 투정을 하게 되며, 만족을 얻기가 더 힘들어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넌더리나는 것이며 결코 만족을 주지는 못하다. 그러나 맛난 음식을 특히 간사한 음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몸은 즐겁게 해 줄는지 모르나 영혼에는 해가 되며,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어울리지 않게 하며, 나아가서는 마음을 빼앗아 가고 신령한 즐거움을 마음에서 유리시키며 영적 기쁨의 맛을 망쳐 놓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를 속이는 것이 틀림 없는 것을 왜 탐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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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의 허무함(잠 23:4-5)

먹는 것은 탐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2절) 탐욕에 미친 자들도 있는데 솔로몬이 본문에서 꾸짖는 대상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다. 사람들은 별미에 탐하는 것 못지 아니하게 돈에 마음을 쏟음으로써(돈이 아주 실속있는 물질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Ⅰ. 그는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자들에게 애쓰고 고통당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간절히 만류하고 있다(4절).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재산을 늘이거나 현재 풍족히 소유하고 있는 것을 더 많게 하려고 꾀하지 말라." 우리는 신분과 형편에 맞추어 안락히 살고 자녀와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며, 분수에 넘는 일을 구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려고 하며, 부를 자기의 중요한 낙이나 최고의 목적으로 바라는 자가 되지 말라(딤전 6:9). 탐욕스런 사람은 그 정도로 부자가 되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으로 상상하고 자신이 지혜로운 자인 듯이 생각한다. "그 지혜를 버릴지어다." 그것은 오산인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1. 큰 것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는 실제로 잡을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일들이 가득하게 되어 저희 삶은 완전히 고역인 동시에 끊임없이 분주하게 된다. 그러나 너는 그와 같은 바보가 되지 말라.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네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하든지 간에 너는 그것의 주인이 되라. "일찌기 일어나 늦게 눕는 자," "근심의 떡을 먹는 자"는 모두가 부자 되기에 애쓰는 자로서, 너는 그들처럼 자기 소유의 종이 되지 말라.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적당히 수고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의무이다(엡 4:28). 반면에 쌓아 둘 것이 있도록 하기 위한 극도의 수고는 우리의 미련함이 되고 죄가 되는 것이다.

2. 그들의 머리에는 자기의 이해력으로 감당하지 못할 계획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 삶은 언제나 근심과 불안으로 흔들린다. 그러나 너는 이와 같이 괴로움을 당하지 말라. 즉 "네 자신의 지혜를 버릴지어다." 새로운 방법을 궁리하지 말고 새로운 발명을 찾아내기 위해 네 지력을 짜내지도 말며, 네 사업의 길로 조용히 나아가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고 네 자신의 지혜는 버려라(3:5, 6).

Ⅱ. 그는 탐욕스런 인간에게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일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만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재물은 실속있는 것이 아니며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여 네 눈으로 실재하지도 않는 것을 따라서 열심히 그리고 맹렬히 좇아갈 만큼 바보가 되려느냐?"

(1) 이 세상에 있는 사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즉 자연 속에서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또 섭리의 실제적인 선물이 되어 있긴 하나 은혜의 나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영혼에게는 재물이 행복도 아니고 분깃도 아니며, 그것이 약속해 주고 우리가 기대하는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재물은 자기를 신뢰하는 영혼에게 허울이 될 뿐이며 그림자와 모조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잠간이면 존재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용하는 중에 멸망하며 그 모양도 사라져 버린다.

(2) 그러므로 이런 것을 향해 우리 눈을 돌리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그것이 최선의 것인양 탄성을 발하고 선한 것인양 치부하며, 독수리가 그 먹이를 향해 덮치듯 우리의 모든 행동이 그것을 겨냥하는 표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너는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하는가? 이성적 피조물인 네가 헛 것에 미치려 한다니 웬말인가? 눈은 합리적이고 지적인 힘을 상징한다. 너는 이러한 눈을 그토록 몰가치한 대상에게 두려워하느냐? 손과 발을 세상에 담가두고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러나 눈은 안 되며 마음의 눈은 더욱이나 안 된다. 이들은 보다 선한 것을 응시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내 아들아, 신앙을 고백하는 네가 하나님을 이다지도 모욕하려 하며(변함없이 네 눈을 그에게로 향하고 있어야 마땅한 터에) 네 영혼을 이토록 학대하려는가?"

2. 재물은 영속성과 지속성이 없다. 부(富)라는 것은 매우 불확실한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즉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날아가리라." 우리 눈을 재물에 두면 둘수록 그들은 우리에게 더욱 더 날아가려고 한다.

(1) 재물은 우리를 떠나갈 것이다. 재물을 아무리 굳세게 잡고 자는 자라도 오래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재물을 우리로부터 앗아가든지 아니면 우리가 재물에게서 탈취되든지 둘 중의 하나는 꼭 일어난다. 욥기 20장 28절에서 재화는 강물처럼 흘러간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새처럼 날아가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2) 아마 우리가 재물을 얻는데 아주 많은 고생을 하고 나서 이제 그것에 대한 큰 자랑과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돌연히 그 재물이 떠나갈지도 모른다. 욕심많은 자가 자기 재산을 품고 앉아서 부화시켜 놓으면 그 재산은 어미닭 아래 있던 병아리처럼 날개가 생겨 가버리고 만다. 또 재산을 얻고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밭에 내려앉는 야생 조류를 보고 그 새는 자기 것이라고 하며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한 새는 그 가까이 다가가려면 곧 날개치며 날아 올라다가 딴 사람의 밭으로 내려 앉는 것이다.

(3) 재물이 날아갈 때 사용하는 날개는 그것 자신이 만든 것이다. 재물은 부패하고 좀먹고 녹쓰는 자체원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본질상 스스로 소모되어 버리며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는 한줌의 흙과 같다. 백설이 대지 위에 내려진 체로 남아 있으며 잠간 동안은 남아 있어 보기에도 아름다우나, 긁어 모아서 품에 넣을 때는 곧 녹아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4) 재물이 나가는 것은 "하늘로 나는 독수리처럼" 불가항력적이며 돌이킬 수가 없다. 독수리는 힘차게 날아가며(아무도 그의 비상을 저지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고 소리쳐 불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날아간다(그를 다시 데리고 돌아올 길도 없다). 재물이 사람을 떠나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만약 마음을 거기 두고 있다가는 재물이 떠나갈 때 상심과 심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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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욕과 사치에 빠진 자에 대한 경계(잠 23:6-8)

육욕에 빠져 먹기를 탐하는 자들(2절)은 흥청거리고 웃음이 떠나가는 듯한 장소에 가기를 즐겨하며, 탐욕스런 수전노들은 한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딴 사람의 밥상에서 얻어 먹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이 양자에게 다 사람의 초대마다 서슴치 않고 응하는 일을 삼가며 특히 불청객으로서 몸을 들이미는 일은 금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Ⅰ. 자기 친구들을 환영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그 환영이 충심에서 울어나지 않고 진실하지도 않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매끄러운 죄를 가지고 있으며 의당해야 할 말도 있다. 연희의 주인이 손님에게 찬사를 베푼다는 것쯤은 으레 기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먹고 마시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악한 눈"을 가진 자여서 자기 손님이 먹는 떡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아까와하며, 특히 마구 먹어대는 손님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들은 환대를 하는 데에 제법 도량이 넓은 것처럼 보이고 또 그런 신망을 얻고 싶어하지만, 금전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큰 반면 친구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작아 잔치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하고 자신이나 친구의 즐거움도 향유하지 못한다. 즉 구두쇠의 잔치는 그의 고행이다. 너무 이기적이고 옹졸하고 비천하여 자기 친구들을 환대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공연히 초청하여 인색의 죄에다 위선의 죄까지 추가시킬 게 아니라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자인하고 나서야 마땅하다. 그래야 "궤휼한 자를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며 인색한 자를 관대하다고 칭하지 아니하리라"(사 32:5).

Ⅱ. 주기 아까와하는 대접을 받고 즐거워할 자는 아무도 없다. "너는 그런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 그런 것은 자신이나 가지고 있으라 해라. 너는 후한 자라고 해서 그에게 기생(寄生)하지 말며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말라.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색하며 진실하지 못한 자에게 신세지는 일을 경멸하라. 산채에다 변변치 못한 음식일 망정 진심에서 울어나 대접을 받는 것이 참으로 환영하는 마음이 결여된 진수성찬을 받는 것보다 더 낫다."

1. 그러므로 사람은 그 마음을 따라 판단해야 한다. 네게 번지레한 말만 한다고 해서 너는 그에게 친구로서 경의를 표하고 친구인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며" 입술로 하는 말에 따라 그 사람됨됨이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할 것 없이 참으로 그렇다. 이것은 우리의 내면성을 말한다. 어떤 신앙이나 우정도 사실상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 가치가 없다.

2. 음식은 소화가 잘 되는지 또 먹는 사람에게 맞는지를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는 네게 마음대로 음식을 들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든 나중에든 자기의 인색하고도 탐욕스런 기질을 엿보일 것이며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표정에도 그것이 나타날 것이어서 너는 그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게 되리라." 네가 그 정도 존재임을 생각만 하여도 먹었던 음식이 도로 올라오게 되며 그의 인사치례에 대한 답례로 했던 말도 잡치게 될 것이다. 그가 네게 했든, 네가 그에게 했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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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에 대한 경계(잠 23:9)

우리는 여기서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며"(마 7:6) 거룩한 것을 불경건한 냉소자에게 보여 멸시아 조롱꺼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온갖 적당한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일에 대해 설파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Ⅰ. 아무리 슬기롭게, 그리고 적절하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다 조롱하려는 자들이어서 지혜로운 자의 말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혜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실은 그것이 조롱자 자신의 교훈에 극히 유용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자들은 특히 그 말이 자기들에게 대한 악의를 품고 있어서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기라도 하는 듯이 비난을 퍼부으려 들 것이다.

Ⅱ. 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은 좋은 충고와 교훈의 혜택을 상실하게 되며 지혜로운 자는 그런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고 권고받을 뿐만 아니라 충고 행위를 허락해 주지도 않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여전히 미련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런 자에게 귀중한 속삭임을 허비하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자기 슬기로서 하는 말이 아무반향을 얻지 못하면 입을 다물고 그 지혜가 존중을 받게 되는지 않는지 그 여부만 살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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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없는 자식의 권리 보호(잠 23:10-11)

Ⅰ. 아비없는 자식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자기들에게 베풀어지고 있음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호 14:3) 자기들을 위해 공의가 행해짐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구속자"요 저희의 고엘(Goel)-즉 가까운 친척이어서 저희편을 드실 것이며 저희 피해를 마치 자신의 모욕당함처럼 여기시고 저희를 위해 분연히 궐기하실 것이다. 저희의 구속자로서 그는 저희에게 해롭게 하는 자들을 대적하사 "저희 원을 펴실 것이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저희 권리를 옹호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저희에게 가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복수까지도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강하시니" 곧 전능하시다. 그는 저들을 보호하시는 데 자기의 전능하심을 사용하실 것이어서 극히 교만하고 가장 강대한 압제자들이라도 전능한 능력에는 적수가 되지 못함을 뼈져리게 느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다투려 하다가는 자기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Ⅱ. 그러므로 누구든지 옛 지계석을 몰래 옮기거나 강제로 밭에 침임함으로써 아비없는 자식을 해롭게 한다는지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없는 그들에게는 억울함을 풀어 줄 자도 하나 없고 아직 유년기의 나이이므로 자기들이 당하는 부당한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염치심만 있다 해도 사람들은 아이들 특히 아비없는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삼가할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자야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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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의무와 훈계(잠 23:12-16)

Ⅰ. 자기 자녀를 훈계하는 부모. 그는 여기서 자기의 책 특히 성서와 자신의 교훈서에 전념하고 "지식의 말씀"에 주의하라는 설득을 자식에게 하고 있다. 이로써 자식은 자기 의무와 위험 그리고 이익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마음까지도 거기에 기울이라고 한다. 그 교훈들을 기쁨으로 여기고 그 훈계의 권위에 자기 의지를 복종시키라고 한다. 훈계가 마음에 적용될 때에라도 마음은 훈계에 경주된다.

Ⅱ. 자기 자식을 징계하는 부모. 인자한 부모라면 자식을 초달할 마음이 거의 내키지 않을 것이며 또 아주 성미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필요성은 느낀다. 자식을 징계이는 일은 바로 그의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식을 징계할 필요성이 있을 때면 감히 "훈계하지 아니치 못한다"(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칠 것이다"). 그는 "채찍으로 그를 때리고," 그에게 따끔한 훈계를 하되 사람에게 채찍질하는 것이며 짐승에게 때리듯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다.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매는 그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매가 오히려 악한 길로 인해 빠져 들어갈 죽음에서 자식을 건져 줄 것이다. 매는 자식이 이런 나쁜 길을 걷지 못하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 일이 부모에게나 자식에게 "기쁘지 아니하고 슬픔"일이 된다. 그러나 이 일을 지혜로이 시행하고 선을 목적으로 하며 기도로 뒷받침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뒤따르게 될 때는 자식의 징계가 자식의 철저한 파멸을 방지하고 그 영혼을 "음부에서 권하는" 복된 수단으로 판명될 것이다. 우리는 자녀의 영혼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녀가 나락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온갖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를 방지해야 하며, 영원한 불길 속에서 타다 남은 나무를 꺼집어 내듯 위태한 지경에서 그들을 잡아채 내기 위해 극진히 보살피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주 예수의 날에" 그 영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몸을 따끔히 닥달해야 하는 것이다.

Ⅲ. 다음과 같이 말하여 자식을 격려하는 부모.

1. 부모가 엄한 회초리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모두 자식의 이익뿐이다. 즉 "그의 마음이 지혜롭고," "입술이 정직을 말하며" 그가 선한 원리의 통제 하에 있고, 특히 그 선한 원리를 따라 자기혀에 대한 선한 지배를 유지하게 되는 일 등이 바로 부모가 바라는 것이다. 어려서 "정직을 말하고" 어떤 악한 말도 감히 입에 담지 않도록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장성하면 "정직히"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이 일에서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경우, 부모에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내 마음이 즐겁겠고 너를 기뻐할 것이다. 곧 나의 것, 즉 네게 대해 그토록 많은 걱정을 하고 고생을 한 나의 마음, 너 때문에 수없이 쓰라림을 당하던 내 마음이 너를 기뻐할 것이다. 너는 이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보답을 할 수 있도록 궁리해야 마땅하다." 자녀의 지혜로움은 자녀나 제자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요 3:4)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는 부모와 스승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자녀들아, 너희가 지혜롭고 선하며, 경건하고 양심적이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즐거워하실 것이며 그것은 또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가르치는 데 들인 수고가 좋고 보답을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너희를 위해 드린 많은 기도에 대한 위로의 응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많은 걱정으로부터 해방이 될 것이며 너희를 엄중하게 감시할 필요도 없을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너희 자신이나 우리가 다같이 보다 편하게 되리라. 우리가 늙을때까지 산다면 너희가 우리의 명예와 위로가 되고 너희 후손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끼치며, 이 세상에서 평안히 살다가 저 세상에서도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란 소망으로 우리는 기쁨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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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에 대한 경외(잠 23:17-18)

Ⅰ. 불경한 자의 형통에 대해 선망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필요한 경고. "네 마음으로 죄인을 부러워하지 말라. 악인이 죄지으면서 누리는 자유나 성공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그들은 그들의 죄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할 것이며 그들의 선망의 적이기 보다는 차라리 연민의 대상인 것이다. 그들의 분깃은 자녀이다(시 17:14). 아니, 그것은 차라리 저희의 독약이다(1:32)."

하나님의 섭리가 죄인에게 미소를 던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내심에 불만을 품거나 악인의 좋은 형편처럼 되기를 바라서는 아니 된다. "네 마음으로 죄인을 흉내내지 말라(어떤 사본은 그렇게 돼있다). 악인처럼 행동하지 말라. 그들과 함께 길을 걷지도 말라. 그들이 비록 악한 방법에 의해 번영을 구가하더라도 부유해지기 위해서 악인이 취하는 방법을 너희는 사용치 말라."

Ⅱ. 항상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고결한 생각을 품도록 하라는 훌륭한 훈령. "너는 항상"(또는 "하루 종일"), 날이면 날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우리의 본분인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찬양에 힘쓰고, 그의 명령에 승복하고 그의 섭리에 복종하여 그를 기쁘게 하는 데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경외심을 생활화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데 기쁨을 느끼고 그의 뜻에 따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을 우리의 본령으로 삼아야 한다. "주를 경외하는 일에"(시 119:38) 전심하지 않으면 안 되며, 모든 언사와 행동에 있어서 이것을 지배원리로 삼아 그 규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우리 생의 모든 날동안 항상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며, 그의 권위에 경의를 표해야 하고 그의 노하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에게 대한 경외심 밖에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항상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Ⅲ. 이 두 가지 일에 대한 충분한 이유(18절). "정녕히 네 장래가 있을"것이니, 그것은 종말이되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처럼 기대할 만한 종말이다. 그러나 "악인의 자손에게는 끝장이 있을"것이니(시 73:17)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이와 같이 너의 고난에도 끝이 있을 것이니 지치지 말아라. 네 봉사나 일이나 전쟁의 종말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며, "온전하신 사랑이 곧 두려움을 ?아낼" 것이고, 상에 대한 너의 "소망이 끊어지거나" 무너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대를 무한히 능가할 것이다. 그러한 종말을 생각하면 우리가 걷는 길의 온갖 어려움과 실망을 무던히 참아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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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주는 부모의 충고(잠 23:19-28)

여기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충고하기에 좋은 말씀이 나온다. "마땅히 행해야 할 길로" 자녀들을 "훈육할" 수 있도록 말씀이 저희 입에 주어지고 있다.

Ⅰ. 젊은 이들에게 자기의 경건한 부모가 하는 권고에 귀를 기울이며 여기에 나오는 말씀뿐만 아니라 딴 모든 유익한 훈계에도 주의를 하도록 하라는 간절한 권고.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으라(19절). 이것은 네가 지혜롭다는 증거가 될 것이고 너를 보다 지혜롭게 만드는 수단이 될 것이다." 지혜도 "믿음"처럼 "들음으로 나오느니라(롬 10:17)." 들으라는 말씀은 22절에 또다시 나온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 너를 낳았기에 네게 권위를 가지며 애정을 품는다. 그러므로 너는 그가 네 자신에게 유익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우리 육체의 아버지를 공경"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우리를 낳아 주셨고 우리를 존재케 하는 도구가 되어 주신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를 조성하셨고 우리 존재의 창조자이신 "우리 영들의 아버지"께는 더욱 더 순종하고 복종해 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미" 또한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과 자식에 대한 모성애로 자녀를 잘 길러왔으므로 "늙었다"해서 "경히 여기지 말며" 그의 충고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가 연로하게 되면 그 자녀들은 장성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는 성장했다고 해서 그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시기가 지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많은 연륜과 그 세월 속에서 얻은 지혜 때문에 더욱 더 어머니를 공경해야 한다. 거만하고 무례한 청년들은 아마 노모의 선한 권고를 농으로 받아들이고 노파가 하는 말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들은 선한 계책을 무시했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선한 어머니를 경시하고 슬프게 했다는 데에서도 훗날 크게 보응하게 될 것이다(잠 30:17).

Ⅱ. 부모가 받을 큰 위안을 감안하여 이 권고를 강화하려는 논증(24,25절).

1. 어떻게 하면 선하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 궁리하여 그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자식된 도리이다. 그래야 부모는 "악한 날이 이르고 아무 낙이 없다고 이를 노년이" 되더라도 "크게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자녀가 잘 되어가는 것을 보는 까닭이니, "바실래"는 "김함"이 출세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이다.

2. 자녀가 "의롭고 지혜로우면" 그 부모의 기쁨이 될 것이다. 의는 참된 지혜이며, 선을 행하는 자는 자신을 위해 복되게 행하는 자이다.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지식과 학식이 있는 것을 말함) "의로우며"(정직하고 착하다), 처신에 있어 "의로울" 뿐만 아니라(즉 양심적이고 선의로 행함) "지혜롭기도"한(즉 슬기롭고 분별이 있는) 자들은 완전한 당위의 길을 걷는 자이다. 만일 자녀가, 특히 모든 자녀가 다 이와 같다면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울 것이며, 자기들이 자녀에게 너무 지나치게 잘하였거나, 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녀로 인하여 절로 흥이 날 것이며 이런 행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 해산의 고통과 양육의 고생을 홀로 감당한 어머니는 그 자식으로 인해 특히 기뻐하고 자기의 고생이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며, 비애와 고생은 잊혀지기보다 그 이상의 보람을 갖고 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하고 지혜로운 자는 이런 슬픔과 해산의 고통 끝에 태어난 자로서 이 세상에 대해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Ⅲ. 지혜와 미덕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 교훈.

1. "네 마음을 정도로 인도할지니라"(19절). 잘 주의하여서 올바로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영혼의 동작과 애착은 올바른 대상물을 향해야 하며 꾸준한 인도 아래 있어야 한다. 마음이 바른 길로 인도된다면 그 발걸음도 따라서 정도를 걷게 되며 그 행실도 단정하게 될 것이다.

2.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지니라"(23절). 진리는 마음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진리가 없이는 선함도 없으며, 정당한 원리가 없다면 어떤 규칙적 행위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죄에 등을 돌리고 의무에 속박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지식과 확신에서 나오는 능력 때문이다. 그리고 명철은 지혜와 교훈에 정통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1) 따라서 우리는 그 진리를 사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기꺼이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가 어떤 가격으로 사야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그것을 사기만 한다면 비싸게 샀다고 할 수 없고, 또 어떤 값으로든지 꼭 사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얼마나 들든지 간에 그 매매를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식의 습득을 위해 희생을 치르고, 그토록 선한 명분을 훼손치 않겠다고 마음 먹을 때 우리는 "진리를 산다"고 할 수 있다. 부를 획득하기 위해 지식을 팔아먹기 보다 지식을 얻는 데 부를 사용함이 옳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알게 되고 진리와 오류를 구별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진리 탐구로 고심한다면 "진마를 산다"고 할 수 있다. Dii laboribus omnia vendunt-즉 하늘은 노력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 또한 우리가 진리를 부인하거나 소홀히 하려 하기보다 차라리 현새의 이익에서 손해를 감수하려 할 때 우리는 진리를 사게 된다. 진리는 엄청나게 값비싼 진주와 같아서 이를 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아야 하며, 믿음과 양심의 파산자가 되느니 차라리 재산과 직업과 출세를 파산시켜야 한다.

(2) 우리는 그러한 진리를 팔아서는 안 된다. 쾌락이나 명예나 재물이나, 그 외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진리를 내놓아서는 안 된다. 어떤 세속적 이익을 얻거나 모으기 위해 진리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지 말며, 진리에 대한 고백을 팽개치지도 말고 진리의 지배에 반역하려고 하지도 말라.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어떤 조건으로도 그것을 놓지 말라.

3. "네 마음을 내게 다오"(26절). 하나님은 이 권면에서 자식에게 하듯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아들아! 딸아! 네 마음을 내게 다오." 크신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서 요구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곧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 간에 만약 우리 마음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열납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사랑을 쏟아야 한다. 우리 생각은 그와 많이 사귀어야 하고 그와 얘기를 나누어야 하며, 그것을 우리의 최고 목표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그에게 고정시켜 두어야 한다. 여호와께 헌신하는 것을 자신의 행동과  행위로 삼아야 하며 그런 행동반경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과 세상에게로 나누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는 전부가 아니라면 하나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네 주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 이런 요구에 우리는 즉시 "내 아버지여,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것을 마땅한 상태의 마음으로 만드소서. 내 마음을 소유하시고 그 안에 보좌를 베푸소서"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또는 "살필지어다"). 하나님 말씀의 규범과 그의 섭리의 지시, 그의 백성의 선한 모범을 주목하라.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서 진행하며 그 길을 고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쓰는 자가 자기 사본을 들여다 보듯 우리의 눈은 이들을 관찰해야 한다.

Ⅳ. 모든 죄 중에서 지혜와 영혼의 은혜의 자손에게 가장 파괴적인 몇 가지 죄에 대한 각별한 주의. 이 죄들은 그들을 가난하게 하고 파멸시킨다.

1. 폭식과 폭음(20,21절). 세상은 바로 이런 죄와 유혹으로 만연하고 있으므로 모든 청년들은 이를 경계하고 멀리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술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말라."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은 허용되어 있으나(딤전 5:23) 많이 마시거나 상습적으로 마시거나 과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그러했듯 "고기를 먹으라고 갖다 줄꼬?" 하면서 몹시도 고기를 욕심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도 바울을 자유로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만일 식물이 자기 형제로 실족케 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고전 8:13). 이렇게까지 그는 고기에 무관심하였다. "고기"를 과도히 "먹지 말라." 음주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음식에 있어서도 부절제는 피해야만 한다. 사치한 육식가도 되지 말라. 매우 값지고 맛난 음식만 즐기고 짭짤한 반찬과 잘게 다져 양념한 고기 외에는 거들떠 보지 않으려고 미식가가 되지 말라. 어떤 자들은 자기 음식을 진귀하게 만들어 먹는 일로 도락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랑으로 알고 소위 그것을 잘 먹는다고 한다. 마치 식도락이 신사의 장식품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이런 것은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행위로서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수치가 된다. "술을 즐겨하는 자가되지 말며 고기를 탐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므로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는 더불어 사귀지 말라. 네가 저희 길을 배우고 부지중에 이 죄에 빠지게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런 죄에 대한 경계심과 혐오감을 상실하게 될까 두려우니, 이들에게 얼굴도 보이지 말고 그들을 지지하지도 말라. 그들은 너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데 그 이유는 타락한 자들이란 남들까지도 타락시키고 싶어 안달이 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들을 만족하게 해 주지 말아라."

또 필자는 폭음 과식에 따르는 과도한 경비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경향성으로부터 이 죄를 공박하는 논증을 유도해 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 가장 가까이에는 세속적 이익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악습이 몰고 오는 재산상의 파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나쁜 탐식의 습속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그 나쁜 버릇은 영적인 영원한 이익에 해를 미친다고 외쳐도 조금도 놀라거나 그만둘 작자가 아닌 것이다. "술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라고 말해 주어도, 아니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줄지라도 그들은 고치지 싫어한다. 술취함은 "잠의" 원인이다. 숙취는 사람을 마비시키며 일에 부주의하게 만들어서 만사가 파탄을 일으키게 되고 망하게 된다. 따라서 훌륭하게 생활하였던 자도 "헤어진 옷을 입게" 될 것이다.

2. 음행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마음을 빼앗는" 또 다른 죄이다(호 4:11). 그는 이 죄에 따르는 위험을 제시하고 있다(27,28절).

(1) 이 죄는 일단 걸려 들기만 하면 회복하는 자가 거의 없는 죄이다. 그것은 마치 "깊은 구렁"과 "좁은 함정" 같아서 헤어 나오기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음란 죄에 접근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 죄로부터 후퇴해 나오기란, 후퇴의 주역이 되어야 할 양심이 음란에 젖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몰수된 형편이기에 극히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2) 이 죄는 사람을 흘려서 파멸케 하는 죄이다. "음녀는 강도같이 매복하여" 우정을 가장하지만 최대의 해를 심중에 품고,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죄다 강탈하며 무구와 장신구까지 벗게만든다. 음녀는 고결한 교육을 받아 음행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자까지 노력서 "매복"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숨어서 기다리다가 방심하는 틈이 생기면 기습하여 이들을 이용물로 삼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느 때라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3) 나라 안에 악과 부도덕을 마연시키는 데에 이보다 더 많이 이바지하는 죄는 없다. 음행은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한 음녀가 많은 고귀한 영혼을 파멸시킬 수 있으며, 한마을 전체를 타락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수도 있다. 음란죄는 배신자나 불충실한 자를 증가시킨다. 이 죄는 남편으로 하여금 그 아내를 속이게 만들고 종이 그 상전에게 거짓된 행동을 하게 할 뿐 아니라, 신앙을 고백하던 많은 무리로 하여금 그 고백을 팽개치게 만들며 하나님과 맺은 저희 언약을 깨뜨리게 한다. 그러므로 음란한 집은 염병이 발생한 집과 같아서 공중의 후생을 담당하는 게 직무자들은 이런 집을 취체하고 단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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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절제에 대한 경고(잠 23:29-35)

솔로몬은 앞서 자기가 말한 것을 보다 굳게 하기 위해서 술취하는 죄(20절)에 대한 따끔한 경고를 하고 있다.

Ⅰ.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이 죄에 대한 우리의 길을 멀리하라고 시키고 있다(31절). "포도주가 붉을 때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가나안에서는 붉은 포도주를 최상의 술로 여겼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포도의 피"라고 불리웠다. 포도주 품평가들은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도 그 빛깔로써 포도주의 품질을 판단한다. 어떤 포도주는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고 그 모양이 근사하여 마치 "와서 나를 마셔 주세요"라고 하는 듯하다고 한다. "포도주"는 절로 곧장 내려가며 아주 "순하게 내려간다." 아마 술맛이 껄껄하다고 해도 기분좋을 정도일 것이다. 독하게 빚은 강정주는 "자는 자의 입"까지도 좋을 정도일 것이다. 독하게 빚은 강정주는 "자는 자의 입"까지도 "움직이게 한다"고 한다(아 7:9). 그러나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1. 너는 감각의 지배를 받지 말고 이성과 신앙의 다스림을 받아라. 미각을 즐겁게 해 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네 눈을 즐겁게하는 것들을 탐내지 말라. 너는 네 감각의 잘못을 성실한 생각으로써 바로 잡을 것이며, 즐겁게 해 줄 것 같은 것들이 실은 해로움을 끼친다는 깨달음을 얻어 이런 것들에 대한 경계심을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 하여금 눈을 따라 행하게 하지 말 것이니 "눈은 속이는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2. "너는 이 죄뿐만 아니라 딴 어떤 죄의 매력에도 너무 대담하게 뛰어들지 말라. 네가 탐심을 일으키거나 금단의 열매를 취하지 않으려거든 보지도 말라."

어떤 죄든지 간에 그것을 멀리하려는 자들은 그 죄를 범하게 될 기회나 시작부터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며, 그 죄에 넘어갈까봐 그 유혹에 사정거리 안에 들게 되는 일조차 두려워해야 한다.

Ⅱ. 이 경고를 보다 강조하기 위해 그는 술취하는 죄의 해로운 결과를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낚시에 물릴까봐 미끼를 조심하라. "이것이 마침내 물 것이니라"(32절). 모든 죄는 다 그 결과가 씁쓸할 것이지만 특히 이 죄는 그렇다. 술군이 과음으로 인해 병이 나고 수종증이나 기타 중병에 걸리게 되며 재산을 탕진하여 알거지가 될 때 "이것은 뱀같이 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양심이 깨어나면 지난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움과 자기자신에게 대한 분노를 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가장 불행한 것은 마지막에 가서이다. 그 때에는 술취함의 잔은 떨림의 잔, 곧 여호와의 진노의 잔으로 변화될 것이며, 그는 그 잔의 찌꺼기를 영원토록 마시고 있어야 할 것이고 타는 듯한 혓바닥을 축일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죄의 즐거움 속에 있는 유혹의 위력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그 죄의 형벌을 미리 내다 보며, 회개로 예방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가서 그 결국이 어떠할지를 예상하라. 그 "종국에" 가면 "이것이 문다"(단어의 뜻은 그렇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이 어떠할지 생각하라. 그러나 필자는 영감에 의해 이 죄의 유해한 결과들, 즉 현재 우리 눈으로 봐서 깨달을 수 있는 결과들을 골라서 열거하고 있다.

1. 술은 사람을 분쟁에 말려들게 하고 남과 다투게 하며, 딴 사람들과의 싸움을 야기시킬 말이나 행동을 거침없이 하게 만든다(29절). 그는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하고 묻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재앙과 근심을 안가진 자가 어디 있는가?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애와 슬픔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주정뱅이는 자진하여 재앙과 슬픔을 자취한다. "분쟁"이 있는 자들에게는 재앙과 근심이 있다. 그런데 술취하는 자들은 그 "입술로 분쟁이 뛰어드는" 우매자들이다. 술이 들어오면 지각은 나가며 혈기가 일어난다. 그러면 술잔 위에서는 술취한 난투와 소동과 입씨름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법률 소송에 따르는 괴로움과 고통은 이렇게 하여 시작되는 것이다.

또 술취하면 "원망"이 나온다. 즉 중얼거리게 되면 말 싸움이 생기고 욕설을 주고 받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까닭없는 창상"이 생기게 될 것이다. 취한 사람은 판단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유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그 원인을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주먹을 마구 휘드르게 되며 그러다 보니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이에 응수하게 된다. 조국과 그 정당한 권리를 수호하다 입은 부상은 명예가 된다. 그러나 자기의 정욕을 추구하다 받은 "까닭없는 상처"는 치욕이 된다. 뿐만 아니라, 술취한 자는 민감한 부분을 다치게 된다. 그들은 "붉은 눈"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내면의 분노에 대한 증상이다. 이로 인해 그들의 시력은 약해지고 그 표정은 보기 흉해진다. 이러한 일은 다음 두 가지 때문에 생기게 된다.

(1) 오래 술마심으로써(30절). "술에 잠긴다"는 것은 술자리에 "오래 지체함"을 뜻한다. 술취한 패거리와 어울려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술주정뱅이의 통례이다. 그들은 유용한 일이나 다음 일을 위해 필요한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는 것이다. 수천만 사람들이 이 귀중한 시간을 그렇게 날려 보내는데, 이렇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 크신 날에 계산을 치르게 될 것이다.

(2) 추하게 하는 독한 술을 마심으로써. 그들은 자기를 즐겁게 해 줄 "술을" 이리저리 "구하러 다닌다." 저희의 끈덕진 탐색은 "최고급 술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혼합한 술을 찾는다." 혼합주는 아주 입에 맞지만 반면에 잘 취하게 하며 머리를 마비시키는 술이다. 그들은 즐겨자기들의 이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2. 술은 사람을 불순하고 무례하게 만든다(33절).

(1) "눈은" 제멋대로 되어 욕정을 일게 하는 "이상한 여인을 볼"것이어서 마음으로 간음하게 한다. Est Vemus in vinis-즉 술은 욕정의 불꽃에 대한 기름이다." 네 눈으로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니라." 즉 사람은 취하면 집이 빙빙 도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보여져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된다.

(2) 혀도 제멋대로 되어 엉뚱한 말만 많이 하게 된다. 술로 인해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니라." 망령된 것은 이성과 신앙심, 그리고 공중도덕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그들이 만약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정신이라면 입에 담기도 부끄러워할 말이다. 평소에는 아주 훌륭한 말을 하고 조리에 맞게 얘기하는 자들도 술에 취하면 아주 우스꽝스럽고 조리에 닿지도 않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3. 술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취하게 한다(34절). 사람이 술에 취하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1) 그들의 머리는 현기증을 느낀다. 자려고 누우면 자기가 "바다"의 파도 때문에 요동하고 있거나 "돛대 위에 누운" 것처럼 흔들린다고 느껴진다. 술취한 사람은 이때 자기 머리가 어지럽다고 호소한다. 잠도 대개 불안정하며 상쾌한 것이 못되고 그 꿈자리도 사나운 것이다.

(2) 그들의 판단력은 흐리다. "돛대 위에 누워"자는 것처럼 그들은 꾸준한 사고나 일관성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느니라"(잠 31:5). "포도주로 인하여 실수하며"(사 28:7) 말이 터무니 없이 많은 것처럼 생각도 엄청난 것이 많다.

(3) 술 취한 자들은 위험을 조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이나 사람의 책망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죽음과 저주의 절박한 위험 가운데 있으며 "돛대 위에 누워" 자는 자와 다름없이 위태한 가운데 있지만 안심하고 계속 잠난 잔다. 여호와의 두려움이 그들 앞에 펼쳐지는 때에도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자이다. 아니,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들 위에 실제로 임하고 있어도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가 자기들을 꽁꽁 묶어도 그들은 소리치지 않는다. 주정뱅이를 지하실 창고에 쳐넣어 보라. 그래도 그는 자기의 형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다. 내게 감각이 없도다. 그런 충격도 내게는 전혀 아무런 효과가 없도다." 사람은 술취하면 목석으로 변한다. 그들은 생각으로 생각될 수도 없고, 차라리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자라고 할 수 있다.

4. 무엇보다 불행한 것은 마음이 이 죄로 강퍅해져서, 술취함에 수반되는 이 모든 해악을 눈으로 보면서도 이 죄인은 완고하게 그것을 고집하며 고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나 깰까?" 숙취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그는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술의 독기는 제거할 수가 없어서 그는(새벽의 갈증 때문에) 다시 술을 찾게 된다.

술취한 자는 덕과 명예에 대한 감각을 이토록 완전히 상실하고 그의 양심은 너무나도 비참히 그을려서 "다시 술을 찾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이쯤되면 "희망이 없다." 그들은 술취한 자들을 "사랑한즉 그들을 따라 가리라"(렘 2:25). "술취한 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저희 "갈증을 더하게"하는 것이며 그래서 "독주를 따라가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은 저희 운명을 신명기 29장 19절과 20절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이사야 5장 11절에서 그들의 "화"를 찾아볼 수 있다. 술취한 죄의 결국이 이와 같다면 그 시초에 그치라고 했던 명령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즉 "포도주가 붉을 때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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