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6장
===실제적 교훈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훈계와 명령
20.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24.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27.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28.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29.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30.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31.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32.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34.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35.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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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al Counsel
1 My son, if you have become surety (guaranteed a debt or obligation) for your neighbor,
If you have given your pledge for [the debt of] a stranger or another [outside your family],
2 If you have been snared with the words of your lips, If you have been trapped by the speech of your mouth,
3 Do this now, my son, and release yourself [from the obligation]; [a]Since you have come into the hand of your neighbor, Go humble yourself, and plead with your neighbor [to pay his debt and release you].
4 Give no [unnecessary] sleep to your eyes, Nor slumber to your eyelids;
5 Tear yourself away like a gazelle from the hand of the hunter And like a bird from the hand of the fowler.
6 Go to the ant, O lazy one; Observe her ways and be wise,
7 Which, having no chief, Overseer or ruler,
8 She prepares her food in the summer And brings in her provisions [of food for the winter] in the harvest.
9 How long will you lie down, O lazy one? When will you arise from your sleep [and learn self-discipline]?
10 “Yet a little sleep, a little slumber, A little folding of the hands to lie down and rest”—
11 So your poverty will come like an approaching prowler who walks [slowly, but surely] And your need [will come] like an armed man [making you helpless].
12 A worthless person, a wicked man, Is one who walks with a perverse (corrupt, vulgar) mouth.
13 Who winks with his eyes [in mockery], who shuffles his feet [to signal], Who points with his fingers [to give subversive instruction];
14 Who perversely in his heart plots trouble and evil continually; Who spreads discord and strife.
15 Therefore [the crushing weight of] his disaster will come suddenly upon him; Instantly he will be broken, and there will be no healing or remedy [because he has no heart for God].
16 These six things the Lord hates; Indeed, seven are repulsive to Him:
17 A proud look [the attitude that makes one overestimate oneself and discount others], a lying tongue, And hands that shed innocent blood,
18 A heart that creates wicked plans, Feet that run swiftly to evil,
19 A false witness who breathes out lies [even half-truths], And one who spreads discord (rumors) among brothers.
20 My son, be guided by your father’s [God-given] commandment (instruction) And do not [b]reject the teaching of your mother;
21 Bind them continually upon your heart (in your thoughts), And tie them around your neck.
22 When you walk about, they (the godly teachings of your parents) will guide you; When you sleep, they will keep watch over you; And when you awake, they will talk to you.
23 For the commandment is a lamp, and the teaching [of the law] is light, And reproofs (rebukes) for discipline are the way of life,
24 To keep you from the evil woman, From [the flattery of] the smooth tongue of an immoral woman.
25 Do not desire (lust after) her beauty in your heart, Nor let her capture you with her eyelashes.
26 For on account of a prostitute one is reduced to a piece of bread [to be eaten up], And the immoral woman hunts [with a hook] the precious life [of a man].
27 Can a man take fire to his chest And his clothes not be burned?
28 Or can a man walk on hot coals And his feet not be scorched?
29 So is the one who goes in to his neighbor’s wife; Whoever touches her will not be found innocent or go unpunished.
30 People do not despise a thief if he steals To satisfy himself when he is hungry;
31 But when he is found, he must repay seven times [what he stole]; He must give all the property of his house [if necessary to meet his fine].
32 But whoever commits adultery with a woman lacks common sense and sound judgment and an understanding [of moral principles]; He who would destroy his soul does it.
33 Wounds and disgrace he will find, And his reproach (blame) will not be blotted out.
34 For jealousy enrages the [wronged] husband; He will not spare [the guilty one] on the day of vengeance.
35 He will not accept any ransom [offered to buy him off from demanding full punishment]; Nor will he be satisfied though you offer him many gifts (bri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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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장 (개요)
6장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1. 경솔한 보증에 대한 경고(1-5).
2. 게으름에 대한 책망(6-11).
3. 불량하고 악한 자의 특성과 운명(12-15).
4.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곱 가지 일에 대한 설명(16-19).
5.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하도록 하라는 권면(20-23).
6. 음란죄가 초래할 해로운 결과에 대해 반복하여 경고함(24-35).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세속 일로부터 차용한 아주 많은 논증을 통해 죄를 짓지 말도록 설득을 받는다. 세속적인 것은 저 세상에서는 저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가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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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한 보증에 대한 경고(잠 6:1-5)
하나님의 말씀의 훌륭한 점은 그것이 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을 신중히 처리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대한 인간의 분별도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보증을 피하라"는 것은 한 가지의 좋은 철칙이다. 왜냐하면 보증으로 인해서 여러 가정이 알거지가 되고 파국에 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보증은 앞 5장에서 그가 칭찬하였던 친척이 주는 위안도 빼앗아가버리는 것이다.
Ⅰ. 우리는 보증을 하나의 올가미로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1, 2절). "그 형편을 속속들이 알고 그 재정 능력을 굳게 믿을 수 있는 친구라 하더라도 그를 위해 담보를 선다는 것은 보통 위험스런 일이 아니다. 더구나 타인을 위하여 네 손을 친다(난외주; 역주)는 것, 즉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정직한 자인지도 모르는 이를 위해 보증을 선다는 것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아니면 여기서 타인을 위해 손을 친다는 것은 "채권자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그는 네가 의무를 지게 되는 고리대금업자이지만 아직까지 그는 네게 대해 타인이다. 너는 그에게 빚지고 있는 것도 없으며 그와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았다. 감언이설에 넘어갔거나 언젠가 너도 같은 친절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에서 만일 네가 경솔하게도 그런 계약에 끼여 들었다면 너는 네 입의 말로 얽혔다는 것을 알아라. 보증은 말 한 마디로 쉽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네 손을 종이 한 장에 갖다 대는 일일 뿐이다. 차용 증서에 날인을 하고 넘겨지면 보증서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히 끝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너는 네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심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혀로 범하는 죄를 가볍게 여길 만한 이유가 추호도 없음을 살피자. 우리 입의 말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빚지게 되고 그들의 처분에 좌우되는 수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불쾌한 존재가 될 수도 있으며 더욱 심하게 얽혀들 수도 있다. 말이 바람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거짓이며, 왕왕 말은 얽어 매는 올무가 되는 것이다.
Ⅱ. 우리가 만일 이 올무에 걸렸다고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시가 급하게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지혜가 될 것이다(3-5절). 지금 당장은 그것이 가만 잠자고 있다. 그것에 대해 아무말도 없으며 빚을 내 놓으라는 성화도 없다. 당사자는 "염려 말어, 우리가 그 일에 대해서는 잘 해낼 것이네"하고 말한다.
그러나 보증의 의무는 구속력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다. "이자는 늘어가고 채권자는 언제 네게 덮칠지 모른다. 그가 마음을 먹는 날이면 네게 달려 올 것이며 아마 급히 그리고 모질게 너를 덮칠 것이다. 빚을 얻어 쓴 본인이 악한이거나 나태한 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너는 네 아내와 자식들을 빼앗기지 않으면 안 되고 네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것을 갚기 위해 네 가정을 파멸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네 스스로 구원하라. 채권자가 보증을 포기하거나 빚진 장본인이 네게 네 보증과 맞먹는 대안을 제시해 주기까지 쉬지 말아라.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져 있고 그가 네게 대해 보다 유리한 칼 자루를 쥐고 있다면 그 때는 위협하거나 험한 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그를 자극시켜 사태를 더 악화시키게 된다) 겸손히 간구하여 보증을 면해 주도록 청하고 네 무릎을 꿇고 다가가 온갖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네가 상대편과 합의하여 그 일을 타협 볼 때까지 별의별 수단을 다해서라도 네가 선 보증으로 인해 너와 네 식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라. 이것은 수면을 방해할 만한 걱정거리이며, 네가 그 일을 해결할 때까지 잠조차 자지 말아야 한다. 네가 스스로 구원하게 될 때까지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라. 노루나 새가 그물치는 자나 사냥군의 손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처럼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며 황급히 서둘러라. 지체하는 것은 위험하며 나약한 노력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들을 자기 농토의 선한 농부로 만들고 그들에게 분별있는 관리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기 말씀 속에서 얼마나 애쓰고 계신가를 깨달아라.
"하나님을 따르는 경건"에는 "현재의 삶"과 관련된 약속뿐만 아니라 교훈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딴 사람을 위해 담보나 보증을 선다고 하여 무슨 경우에나 다 불법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의나 자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친구를 둔 자라면 이 보증서는 일에서 자신의 우정을 보여 줄 수도 있으며, 그것은 무사려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보증인이 되었다(몬 19절). 우리는 사업에 뛰어든 청년을 도와 줄 수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젊은이인 경우 우리는 그를 위해 말 몇 마디 던져 줌으로써 그에게 신용을 얻어 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손해는 하나도 없이 그에게 큰 친절을 베풀어 줄 수 있다.
1.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빚을 멀리하는 것이 각자의 지혜이다. 빚은 그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며 그를 세상에 얽어 매고 그로 나쁜 짓을 하게 하거나 손해를 입게 하는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꾸는 자는 꾸어주는 자의 종"이며, 빌리는 자는 자기 스스로를 세상의 지독한 노예로 삼는 자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값주고 사신" 크리스도인들은 이처럼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를 "사람들의 종"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고전 7:23).
2. 궁색한 사람들과 얽히고 설켜 그들의 빛 보증을 선다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은 때때로 돈을 떼먹으며 소위 시루에 물을 붓는 식으로 되는 경우가 십중 팔구이며, 이제나 저제나 우리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갚을 능력이 있고 갚을 마음이 있는 이상의 보증을 해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실패하는 경우 자기 가족에게 해를 미치지 않고 갚아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보증을 서야 한다. 이것은 그가 보증을 자신의 부채로 간주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벤지라 지혜서 8장 13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하지 말라. 왜냐하면 네가 보증을 서는 경우 너는 그것을 갚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우리가 어리석게도 얽혀 들어갔다면 될 수록 빨리 그 올무로부터 벗어나려고 궁리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을 지체하거나 수고를 아끼지 말며, 우리 자신을 안정하고 편안하게 하고 우리일을 좋은 형편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굽신거리지 않으려고 뻗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뻣뻣하고 거만한 태도 때문에 파멸을 당하는 것보다 겸손히 순응하는 게 더 나은 것이다. 친구에게 대한 보증을 면함으로써 "네 친구를 보증하라." 왜냐하면 사려깊은 점이 때로 우정을 굳게 결속시켜 주듯이 경솔한 보증은 그에 못지 않게 우정을 금가게 하는 때문이다. 하여튼 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타인의 죄에 간섭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자(딤전 5:22). 이는 타인의 빚 보증 서는 일보다 더 나쁘고 한층 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신경을 써 가면서까지 인간에게 대한 우리 빚을 용서받으려 해야 한다면 하나님과 사화하는 일은 더욱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에게 겸손하라. 너를 위해 중보하시는 네 이웃 그리스도를 친구로 보증하라. 네 죄가 사함을 받고 네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에서 건짐을 받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라. 그러면 그 간구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 질 때까지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네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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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책망(잠 6:6-11)
솔로몬은 여기에서 게으른 자를 상대로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 안일을 사랑하고 게으른 가운데에서 생활하며, 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아무 일도 이루지 아니하며, 특히 신앙의 일에 무심한 자이다. 나태가 비록 경솔한 보증만큼 빈궁에 이르는 첩경은 아니라 하더라도 확실성에 있어서는 그에 못지 아니한 길이다. 그가 다음과 같은 의미로 게으름뱅이에게 말하고 있다.
Ⅰ. 훈계로서(6-8절).
솔로몬은 게으른 자를 학교에 보내 가르치고자 하는데, 이는 그들의 훈계를 받아야 하는 때문이다. 제자가 수고하려 들지 않는다면 선생은 더욱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하므로 그는 자기가 직접 게으른 자르르 교육시키고자 한다. 이는 게으른 자가 자기에게 배우러 오기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꿈꾸는 제자들은 두 눈이 떠있고 번쩍이는 선생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학교를 게으른 자에게 찾아 주었는데 이것은 그가 원할 수 있는 학교 중 가자 저급학교였다.
1. 그가 공부시키러 보낸 학교의 선생.
"개미에게로 가며 벌에게로 가라"(70인역 성서에서 그렇게 되어 있음). 인간은 지상의 야수들보다 교육을 많이 받고 하늘의 새보다 더 현명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너무나 타락하여 가장 미천한 곤충 한테서 지혜를 배우고 낯을 붉히게 된다. 우리는 하등 동물의 놀라운 슬기를 관찰하게 될 때마다 그들을 이처럼 기기묘묘하게 지으신 자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들 자신에게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통의 사물들을 영안으로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에게 쉽고도 유용인 일로 삼을 수 있으며, 그것들과 날마다 접할 수 있는 것이다.
2. 이 선생에게 배우기 위해서 요청되는 마음의 태도. "그 하는 것을 보라."
게으른 자가 게으른 까닭은 그가 살피지 않은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살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일로 배운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선한 일로 딴 사람을 본받으려 할 때에는 그들이 하는 일을 살펴 보고 그들이 행하는 바를 열심히 관찰하여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빌 3:17).
3. 가르쳐 주려는 교훈.
총괄적으로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보고 지혜를 얻으라." 모든 학문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식을 터득하는 일뿐만 아니라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을 목적하라는 말이다. 세부적으로는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라"것을 배우라는 것이다.
(1) 우리는 나중을 위해 예비해야 하며 현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두 먹어 치워버리고 아무 것도 저축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거두어 들이는 때에 쓸 때를 위해 쌓아두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세상 일에서 있어서도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염려 걱정으로써가 아니라 사려깊은 선견지명으로써 해야 한다. 겨울을 위해 들여 놓으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곤경과 궁핍을 위해 쌓으면 노년을 위해 준비하라. 우리 영혼의 일을 위해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물질이 아니고 본질이며 우리에게 쓸모가 있고 우리를 결코 궁핍하지 않게 할 양식을 우리는 예비해야 한다. 은혜의 수단을 즐기는 속에서 은혜가 부족할 것에 대비하여 생명 속에서 사망을 대비하며 시간 속에서 영원을 예비하라. 집행 유예와 예비의 상태에 있는 우리로서는 보응의 상태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우리는 고생해야 하며 우리 일로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사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태하에서 노동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실로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기가 더운 "여름"에도 개미는 "양식을 모아" 예비하기에 분주하며, 메뚜기처럼 자기 안일에 빠져 있거나 자기 즐거움을 취하지 않는다. 메뚜기는 여름철에 노래 부르고 놀다가 겨울이 되면 죽어버리고 만다. 또한 개미는 서로 돕는 곤충이다. 한 마리가 집으로 운반해 가기에 너무 큰 낟아를 물게되면 그 이웃 개미들이 도우러 오는 것이다.
(3) 우리는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미가 적당한 철에, 곧 여름 동안에 추수기에 분주하듯 우리는 얻을 수 있을 때에 거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리한 시기를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다. 왜냐하면 다른 때에는 전혀 이룰 수 없거나 그다지 잘 행할 수 없는 일이 이 때에는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네게 빛이 있는 동안 행하라."
(4) 우리가 이 교훈을 배우면서 얻게 되는 잇점. 개미가 지닌 교훈은 우리가 만약 시간을 무위도식하며 보낸다면 우리의 게으름과 태만을 더욱 나쁜 일로 되게 할 것이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으며 주권자도 없지만" 본능을 따라 저절로 행동한다. 개미와는 달리 우리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큰 치욕이 된다. 더군다나 우리들에게는 그 외에 부모와 선생과 목사와 장관들이 있어서, 우리 의무를 상기시켜 주고 그것에 태만하지는 않는가 점검하며, 의무의 길로 우리를 재촉하고 지시해 주며 우리를 불러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에 받는 도움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태만에 대해 변명할 길은 더욱 없어질 것이다.
Ⅱ. 책망으로써(9-11절).
1. 주인이 늦잠을 잔 종에게 하듯 그는 게으른 자를 훈계하고 꾸중하며 타이르면서 일하라고 부르고 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때까지 눕겠느냐? 너를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언제까지 자려느냐? 네가 어느 때에 일어나려 하느냐?" 게으른 자들은 "어느 때까지"란 말로 깨우고 각성시켜야 한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1) 일고 의무의 길에서 게으른 자들, 즉 인간 개개인으로서 소명받았거나 크리스도인 전체로서 소명을 받은 자가 소명받은 의무에 게으른 자들에게. "너는 어느 때까지 네 시간을 낭비하겠으며, 너는 어느 때에 보다 나은, 시간의 절약자가 되려느냐? 너는 어느 때까지 네 안일을 사랑하겠으며 너는 어느 때에 자기 부인하는 법과 수고하는 법을 배우려느냐? 너는 어느 때까지 자기 재능을 묻어 두겠으며 너는 어느 때에 받은 바 달란트로 장사하려느냐? 너는 어느 때까지 금후는 전혀 게으치 않는 자마냥 머뭇거리고 연기하며 네 기회를 낭비하려느냐? 네가 어느 때에 스스로 분기하여 꼭 해야 할 일, 즉 지금 행하지 않으면 너로 영원히 파멸케 할 그 일을 행하려느냐?"
(2) 죄와 위태한 길에 있으면서 든든한 줄로 아는 자들에게. "너는 충분히 자지 않았느냐? 이제는 한 낮이 아니냐? 네 주께서 부르고 계시지 않느냐? 블레셋인들이 너를 덮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언제 일어나려느냐?"
2. 그는 게으른 자가 자신을 위해 꾸며내는 경박한 변명을 폭로하며, 게으른 자가 자신을 얼마나 우스꽝스런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가 깨어 일어나면 기지개를 키고 나서 적선해 달라는 걸인처럼 보다 많은 "잠" 보다 많은 "졸음"을 구걸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따뜻한 침상에 있기만 하면 좋으며, 이런날 생각을 하면, 특히 일하려고 일어난다는 것은 견딜 수없어 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주인에게 "좀 더 자"는 것고 "좀더 조는"것 밖에 원하지 않으며, 그런 다음에 일어나 일을 하러 가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사실을 관찰하자.
그러나 그는 이 일로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기질은 가만 두면 둘수록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법이다. 그를 잠시 자게 하고 조금만 더 졸게 해봐라. 그러더라도 그는 여전히 꼭 같은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좀더 자게"해 달라고 요구하며 아직 "좀 더 졸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는 푹 잤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면 곧 가려고 하는 듯이 가장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큰 일도 de die in diem-즉 날에서 날로 "조금만 더"하고 미룸으로 말미암아 손도 대보지 못한 채 그냥 있게 된다. 그들은 현재 순간을 사취당함으로 이하여 자기들의 모든 시간을 다 사취당하고 마는 것이다. "좀 더 자자"하는 것은 영원한 잠으로 관명된다. "이제는 자고 쉬라."
3. 그는 게으른 자에게 그 게으름의 치명적 결과에 대하여 정당한 경고를 하고 있다(11절).
(1) 자기 일에 게으른 자들에게는 "빈궁과 곤핍"이 꼭 임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일에 태만하면 그들은 전진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퇴하게 될 것이다. 자기 관심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 버려 두는 자는 곧 난파를 당하여 파멸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며, 자기의 금화를 한 푼짜리 동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이다. 또한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게으른 자들에게는 영적 가난이 찾아온다. 그릇에 기름을 예비해 두지 않는 자들은 꼭 사용해야 할 때 기름이 떨어질 것이다.
(2) "네 빈궁은 강도(여행하는 자로 되어 있는 성경도 있음:역주)같이 가만히 눈치채지 못하게 임할 것이며, 점점 심하게 될 것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를 것이다. 느리긴 하지만 틀림없이 마지막에는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너를 강도에게 털린 자처럼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Patrick 감독은 그렇게 해석한다).
(3) "그것은 군사같이 불가항력적으로 이를 것이다. 너는 그 무장한 군인을 대적할 수 없고 네 재간으로는 당할 길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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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추행(잠 6:12-19)
솔로몬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Ⅰ. 인간에게 화가 되고 다루기에 위험한 사람의 특성.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정죄를 받아야 한다면, 악을 행하고 자기들의 할 수 있는 모든 해를 끼치려고 꾀하는 자들이 정죄를 받아야 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서 "불량한 자"라고말하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벨리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말이 벨리알의 사람으로 번역되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성서에서 자주 쓰는 술어이며 또 그 설명도 되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에 대해 살펴 보자.
1. 여기에서 벨리알의 사람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그는 "악한 자"로서, 악을 행하는 것을 자기 업으로 삼고 특히 자기 혀로써 예사롭게 악을 행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는 자이다(12절). 그는 궤휼한 입으로 거짓말하고 왜곡시킴으로써 자기 계획을 이루며 하나님과 인간에게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이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다음과 같다.
(1) 매우 교묘하며 음모가 있다.
뱀의 간교함을 지닌 그는 아주 고도의 기술과 수완(13절)으로, 즉 "자기 눈과 발과 손가락으로" 자기 계획을 밀고 나간다. 그는 "감히 입 밖에 내려하지 않을 때"에도 자기의 악의를 표현하며(그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다), 또는 그렇게 하여 자기 흉계를 수행해 나간다. 그가 자기 악의 도구로 이용하는 주변 사람들은 그가 눈짓을 한 번 하고, 발을 굴리고, 손가락을 까딱하기만 해도 그 나쁜 의미를 알아 차린다. 그는 악을 행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될 만큼 그는 자기 행동은 은폐시키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눈치 채이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치밀한 자여서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가 시키려고 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행하려 하는 자들만 비밀의 장막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또한 그는 교활한 자여서 속임수를 쓴다. 그는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정직한 자들은 그 말을 알지도 못하고 또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이다.
(2) 매우 악의에 차 있으며 나쁜 목적이 있다. "그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야망이나 탐욕이라기 보다 오히려 타락한 "패역"과 악의와 나쁜 본성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자신을 부하게 하고 출세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런 저런 "악을 꾀하며," 순전히 악 그 자체를 위해 악을 도모한다. 참으로 벨리알의 사람, 즉 마귀의 사람은 교활한 면에서 뿐만 아니라 악의 의도에 있어서도 이러한 자를 닮고 있다.
2.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그의 재앙이 임한 즉," "그는 패망하리라"(15절).
화를 입히려고 꾀하는 자들은 화를 당할 것이다. 그에게 다가오는 파멸은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가진다.
(1) 예고 없이 임한다.
그것은 갑자기 임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기습하여 자기 함정에 빠뜨리는 데에 온갖 사악한 기술을 다 부렸다. 따라서 그는 벌을 받을 것이니 "당장에 패망할 것이다."
(2)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는 회복할 수 없을 만치 깨어져서 다시 접합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도움을 얻지 못하고 패망하리라." 온 인류에게 피해를 입힌 그가 무슨 구원을 기대하겠는가? "그의 끝이 이를 것이며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단 11:45).
Ⅱ. 하나님께서 특별히 싫어하시는 일의 목록.
그것은 전부가 다 앞에서 묘사한 벨리알의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다. 이 중 마지막 것은(일곱 번째 것을 말함인데, 그가 육칠가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특별히 의도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이간을 한다"("불화의 씨를 뿌린다"는 뜻)는 것으로 그의 두드러진 특성 중 일부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모든 죄를 다 미워하신다. 따라서 그는 결코 죄와 화해하실 수 없다. 죄 이외에 그가 미워하시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죄 중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미워하시는 죄가 있다.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전부가 다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그런 죄들이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사회를 안락하게 하는 데에 해가 되는 죄들을 특히 노여워하시는 사실에서 그가 인류를 향해 선의를 품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벨리알의 사람들은 저희 패망이 "갑자기 임하며, 도움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16절). 그러나 우리가 타인에게 치사가 돌아올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런 것들을 미워해야 한다.
1. 거만하고 저 잘난 체 뽐내며 타인을 경멸하는 것-즉 "교만한 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은 일곱 가지인데 교만이 그 첫째인 것은 많은 죄의 밑바닥에 교만이 깔려 있으며 교만이 죄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중에 있는 교만을 보시고 그것을 미워하신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며 모든 주위 사람들은 과소평가한다는 점을 얼굴 표정으로 증명하게 될 정도로 교만심이 기승을 부리게 될 때에 이것은 특별히 그의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는 경우에는 교만이 교만 그 자체를 뻐기며 수치를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2. 허위, 사기, 위선.
하나님께서 "교만한 눈" 다음으로 가장 혐오하시는 것은 "거짓된 혀"이다. 진리보다 신성한 것은 없으며 교제에 있어서 진실을 말하는 것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하나님과 모든 선한 자들은 거짓말을 미워하며 가증히 여기신다.
3. 잔인성과 흉악성.
악마는 최초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였다(요 8:44). 따라서 "거짓된 혀"와 마찬가지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도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데, 이는 저희가 이로써 악마의 형상을 가지며 악마를 섬기는 까닭이다.
4. 죄를 안출해 내는 데 있어서의 교묘함과 악을 행하는 데 있어서의 지혜로움.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악을 도모하는 머리는 악마의 깊은 속을 환히 알고, 어떻게 하면 그의 탐욕스럽고 시기하며 복수심에 불탄 흉계를 극히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안다. 그러나 범죄의 수법이 교묘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더욱 더 미워하신다.
5. 힘차고 부지런히 죄를 실행함.
즉 이것은 몹시 탐내는 일에서 시간을 놓칠까봐 두려워하거나 지체될까봐 안달이라도 내는 듯이, "빨리 악으롤 달려 가는 발"을 말한다. 죄인들이 범죄의 실천에서 보여 주는 권모술수, 열성과 근면을 생각하면 선한 일을 행하는데 이토록 서투르고 미지근한 우리가 낯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6. 거짓 증거 하기.
이것은 악한 계교가 꾀해 내는 최대의 해 가운데 한 가지로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담은 거의 없다. 알면서 거짓 증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모독하는 일은 없으며(증언은 하나님께 대한 맹세로 이루어지므로) 이보다 더 우리 이웃을 해치는 것도 없다(우리 이웃의 모든 이익은 심지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의 안위도 이런 종류의 공격에는 무방비 상태이므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은 일곱 가지인데 그 중 두가지는 거짓말에 관한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미워하시며, 곱절로 그것을 미워하신다.
7. 친척이나 이웃간에 이간을 시키기.
이간하는 자들은 친척이나 이웃간의 애정을 소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서로간에 격분을 유발시키기 위해 온갖 나쁜 수단을 총동원한다. 사랑과 화평의 하나님께서는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심는 자"를 미워하시니, 이는 그가 조화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고자질과 중상모략을 하고, 악의 있는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모든 말고 행동을 나쁘게 과장시키고, 질투와 그릇된 추측을 유발시킴으로써 분쟁의 숯불을 피우는 자들은 결국 자신을 위해 같은 성질의 불을 예비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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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의 죄에 대한 경고(잠 6:20-35)
Ⅰ.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집착하며 그것을 우리의 모든 행동 가운데에 길잡이로 삼도록 하라고 전반적으로 훈계하고 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의 빛으로(23절). 그리고 하나의 법으로서(20,23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1) 이 논증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며, 우리의 오성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눈에게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등불"이요, 우리 발에게 지시해 주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확실한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며, 최고의 이성 위에 구축되어 있다. 성서의 빛은 확실한 빛이다.
(2) 그 권위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며, 우리 의지는 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빛은 철학적인 학파들에게서도 결코 나온 적이 없거니와, 그와 같은 법은 어떤 제왕의 보좌로부터도 결코 나온 적이 없다. 그토록 훌륭한 틀로 짜여지고 그토록 강한 구속력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등불과 빛이나 다름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이 법은 자기 자신의 선함에 대한 증거을 자기 안에 가지고 다니는 법이기 때문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아비의 명령"과 "우리 어미의 법"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20절).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그의 법이다.
(1) 그러나 우리들의 부모는 우리에게 그 말씀을 지시해 주었으며 우리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가운데에서 우리를 훈육시켰으며, 그 말씀의 본원이 신성하며 그 의무도 신성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부모의 말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 말씀을 시험해 보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닫기 때문에 믿는다. 그러나 부모가 그 말씀을 우리에게 추천해 준 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부모에게 은혜를 입었으며, 따라서 "우리가 배우고 확신을 얻는 일에 계속 거해야"할 온갖 이유를 알게 된다. "이는 우리가 누구에게서 이 일들을 배웠는지 알기 때문이다."
(2) 우리 부모가 주신 주의와 권고와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꼭 지켜야 한다.
자녀들은 장성하고 난 뒤에도 선한 "어머니의 명령"뿐만 아니라 선한 "어머니의 법"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호와께서는 자녀에게 대한 존귀를 아비에게 주셨고 아들에 대한 어미의 권세를 든든히 하셨느니라"(벤시라 지혜서:Ecclesiasticus 3:2).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녀야 하며 우리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인용하여 가르친 선한 교훈도 보유해야 한다.
(1) 우리는 그 말씀과 교훈을 버려서는 안 되며 선한 교육의 계약에서 벗어나는 일을(일부 몰지각한 자녀들이 하듯)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 듯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라. 아버지의 명령을 계속 지키고 절대로 버리지 말라."
(2) 우리는 일시적인 망정 그 말씀과 교훈에 방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21절).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계속 댈"뿐만 아니라(모세가 지시한 대로, 신 6:8) "네 마음에도 항상 새기라." 손목에 매단 성구함(phylactery:구약 성서에서 인용한 성구를 양피지에 기록하여 넣는 가죽 상자:역주)도 마음 속에 이따금씩 경건한 생각과 애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상의 가치는 전혀 없다. 말씀은 바로 마음에 새겨져야 하고 거기에 숨기워져 있어야 하며 양심 가까이에 있어야만 한다. 팔찌나 금목걸이 따위의 장신구처럼 "너는 그것을 네 목에 매라." 즉 "네 목을 돌아가며 매라"(말뜻은 그러하다). 말씀이 바로 그 통로의 호위자가 되게 하라. 그들을 네 인후 주변에 둘러서 어떤 금지된 과일도 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며 어떤 악한 말도 거기서 튀어 나오지 못하게 하라. 이렇게 하면 많은 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와 맞 닿아 있게하여 우리 마음과 목에 맨 것처럼 그 감동을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하자.
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이 주려고 의도하는 은혜를 이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언제나 그것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1) 그것은 우리 안내자가 될 것이며 우리는 그 지시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리라"(22절).
그것은 너를 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 들이고 그 길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며, 위험한 죄의 길로부터 너를 인도하고 그 길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네가 옆에서 빗나가려고 하면 그것은 이것이 길이다. 이 길로 행하라고 네게 소리쳐 줄 것이다. 그것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네게 해 줄 것이다. 그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그 말씀을 네 규칙으로 삼아라. 그리하면 너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이 네 경고자가 되고 후원자가 되어 주실 것이다."
(2) 그것은 우리의 수호자가 되어 줄 것이고 우리는 그 보호하로 들어가야만 한다.
"너의 잘 때에, 즉 네가 악한 흑암의 권세에 노출되더라도 그것이 너를 보호하리라. 너는 안전할 것이며 너 자신 또한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리가 하루 온종일 말씀의 훈계대로 자신을 다스리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의무를 본분으로 삼는다면, 밤에는 말씀의 약속 아래에서 피난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명하시고 또 앞으로 명하실 구원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3) 그것은 우리의 반려자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과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
"밤중에 네가 깨어서 그 깬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를 때, 네가 원한다면 그것은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고, 잠을 이룰 수 없는 밤마다 네가 즐거운 명상을 하게 하여 기쁘게 해 줄 것이다. 네가 새벽에 깨어서 하루 일과를 궁리할 때에도 그것은 그 일에 대해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며, 네가 최선의 궁리를 해 낼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시 1: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를 나누려 들며 마땅히 해 주실 그 말씀을 구하고 또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새벽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그의 말씀을 맨 처음 생각해야 할 과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루 종일 하나님과 함께 편안하고 밀접하게 행하는 데에 이바지해 줄 것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에는 우리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4)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될 것이다.
법이 현재의 "등불이"며 "빛"이듯이,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다." 우리에게 과실을 지적해 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하게 행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말씀의 책망은 생명으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행복과 직결되 있는 신실한 책망에 우리는 불편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Ⅱ. 여기에는 음란의 죄에 대한 구체적 경고가 나온다.
1. 이 죄가 얼마나 지천으로 흔하고, 그 본성이 얼마나 극악하고, 그 결과가 얼만 유해하며 영혼 안에 있는 신령한 생명의 모든 씨앗에게 얼마나 확실한 파괴력을 가지는지를 살핀다면, 이 죄에 대한 경고가 이렇게 자주 반복되고 크게 강죄되어 훈계된다고 해서 이상히 여기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1)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법을 주시면서 의도하신 한 가지 큰 친절은 사람들을 이 죄에서 보호하려고 하셨다는 것이다(24절). "훈계의 책망이 너를 지켜서, 너를 틀림 없이 죽게 할 악한 계집에게, 너를 사랑하는 척하지만 네 파멸을 도모하는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므로 네게는 생명의 길이다." 아침에 마음이 동하는 자들은 아주 쉽사리 일시적 기분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 덫을 피하고자 하는 자들은 좋은 훈계의 책망을 크나큰 친절 행위로 받아들여야 하며, 자기들에게 신실하게 대해 주는 훈계의 책망을 아주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잠 27:5, 6)
(2) 우리가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은 곧 이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며, 이 죄를 극도의 공포심과 혐오감으로 대하는 것이다(25절).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네 마음으로도 탐하지 말라. 네가 마음으로라도 탐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여자를 마음으로 간음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얼굴의 매력에 관해서 말하지 말며 그녀의 요염한 시선에 매혹되지도 말라. 그런 것은 전부가 덫이요 그물이니라.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그녀의 표정은 화살이요 화전이다. 즉 그들은 여인들이 의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것들이다. 소위 그런 것을 즐거운 포로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멸망시키는 것이며 애급의 노예 신분보다 더욱 나쁜 것이다."
2. 솔로몬은 여기에서 음행의 죄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리를 역설하고 있다.
(1) 이것은 사람을 가난하게 마들고 그들의 재산을 탕진시키며 그들을 알거지로 돌아가게 하는 죄이다(26절).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자기의 재물을 지불하여 자기의 몸과 영혼의 파멸을 샀다. 탕자는 자신의 생계를 창기에게 소비했던 관계로 자신을 돼지의 더부살이군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우매함 때문에 빠지게 되는 이 가난한 중한 벌을 받게 되는 중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없다(욥 31:12).
(2) 이것은 죽음을 위협하는 죄이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다.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라" 이것은 음녀인 들릴라가 삼손의 목숨을 노렸듯이 아마 계획적으로 생명을 노릴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 죄는 적어도 생명에게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간음은 모세 율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서 처벌되었다. "음란한 자와 음란한 계집은 정녕 죽음을 당할 것이다." 누구나가 다 이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한 욕정의 만족을 위해 자신을 율법에게 꼼짝없이 내 주려는 자들은 자살 행위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3) 음란은 양심에 죄를 가져와서 그것을 타락시킨다. "자기 이웃의 아내를 만지는 자," 음심을 품고 만지는 자는 "죄 없게 되지 않는다(29절).
1)"불을 품에 품거나, 뜨거운 숯불을 밟고 있는" 사람이 "불에 델"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그는 간통을 범할 위기에 놓여 있는 자이다. 이 죄의 길은 내리받이 길이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유혹에 뛰어든 자는 그 죄에서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부나비는 불꽃을 보고 들떠서 날아들다가 어리석게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 그것은 깊은 함정이므로 그 가장자리에 감히 서려고 하는 것조차도 미친 것이다. 악명이 높은 자들과 교제하고 동행하며 접촉하는 자들은 자기의 결백을 오래 보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유혹 속에 들이밀어서 하나님의 보호부터는 스스로 튀어나오게 하는 자이다.
2) 간음을 범하는 자는 멸망으로 가는 대로에 서 있는 것이다. 대담하고 주제넘은 죄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죄를 한번 범해 보겠다. 그리고도 형벌을 피해 보리라. 나는 비록 죄의 길을 계속 갈지라도 평안을 누리리라." 그러나 그것은 "내가 불을 내 가슴에 품고도 내 옷은 태우지 않겠으며, 내가 뜨거운 숯 불을 밟아도 내 발은 데지 않겠노라"라고 말하는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남의 아내와 간통하는 자"는 자신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욕정의 불은 지옥의 불을 사른다.
(4) 이 죄는 명성도 훼파하며 아무리 훌륭한 이름이라도 그 위에 끊임없는 치욕을 던진다. 그것도 도둑질 보다 한층 추문을 높게 하는 죄이다(30-33절).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며,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그렇지 않을 것같다. 도둑놈은 수갑에 채여 감고에 보내지고 감화원으로, 교수대로 보내지지만 악한 간통자는 처벌은커녕 다수의 경우 명예 손상도 입지 않는 형편이다. 그는 자기의 악행을 감히 자랑하기 까지 하며, 한낱 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법으로 보면 간음은 한층 더 무거운 범죄이다. 하나님이 명예의 근원이시라면 그의 말씀은 명예의 표준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1) 절도죄에 대해.
만일 어떤 사람이 지독한 궁핍으로 인하여 도둑질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주릴 때에 배(혹은 자기 영혼)를 채우려고" 양식을 도적질한다면 그것이 설령 그의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의 범죄를 경감시켜 줄 것이어서, "사람들이" 그를 "멸시"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를 치욕스럽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에게 연민의 정을 품게 될 것이다. 굶주림은 두꺼운 돌벽이라도 뚫게 만들며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이다. 그러므로 치욕은 그를 그토록 가난하게 만든 자나 구제해 주지 않은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더구나 그가 도둑질하다 "들키고" 그것에 대한 증거가 아주 명백한 경우 설령 그가 자기를 변명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칠 배"만 보상하면 그만인 것이다. 모세 율법에는 양 한 마리 훔친 자는 네 배를, 소를 훔친 자는 다섯 배를 보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출 22:1). 다윗도 이에 따라 판결하였었다(삼하 12:6). 그리고 우리는 후세의 재판관들이 율법에 규정이 없는 사건인 경우에도 율법의 공평성에 입각하여 범죄에 대한 적당한 형벌을 결정하였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만일 밭에서 소를 훔친 자가 다섯 배를 갚아야 한다면 사람의 집에서 물건을 훔친 자는 "칠배를 갚아야" 하는 것이 이치에 타당하다. 지금처럼 절도죄나 대로상에서의 강도죄에 대해 사형을 시키라는 율법은 없었으며 솔로몬이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도 이와 같이 절도죄 중 가장 악한 죄에 대한 것이나, 이런 도둑질에 대한 최대 형량은 율법대로 따르기 위해서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라"고 하는 정도였으며 그의 피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2) 그러나 간음을 범하는 것은 한층 흉악한 죄이다. 욥도 그렇게 생각하였으며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라고 표현하였다(욥 31:11). 나단이 다윗의 간음에 대해 그 악함을 선고하여 깨우침을 주고자 하였을 때 그는 아주 악한 강도질에 대한 우화를 통해 이를 이루었다. 다윗이 판단하기로는 이 강도질은 마땅히 사형에 처해 질 만한 죄이었던 것이다(삼하 12:5). 바로 그 때 나단은 다윗의 죄가 그 부자의 죄보다 "심히 더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던 것이다.
첫째, 이것은 인간의 이성에서 보다 큰 치욕거리이다. 그는 자기 굶주림을 채우려고 그랬었다는 도둑같이 변명할 수도 없다. 그는 굶주림 때문이 아니라 방종함 때문에, 하나님의 법의 울타리를 짓부시는 자기의 짐승 같은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노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요," 큰 바보로 낙인 찍힐 만한 것이다.
둘째, 이 죄는 하나님의 법에 의해 한층 엄중한 형벌을 받게 된다. 도둑질한 자에게는 벌금형이 부과되었으나 간음하는 자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도둑은 "자기 영혼(혹은 배)을 만족시키기 우해 훔치지만" 간음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멸망"시키며,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정의에게 동정 받지 못하는 제물이 되고 만다. "죄인이여, 너는 네 자신을 멸망시키고 말았구나!" 이것은 죄의 결과인 영적 죽음 곧 영원한 사망에 비할 수 있다.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 양심을 손상시키고 이성의 힘을 부패시키며, 영적 생명의 모든 불꽃을 꺼버리고 자신을 영원한 하나님의 진로하심에 드러내 놓아 결국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
셋째, 이 죄의 오명은 지울 길이 없다(33절). 그것은 그의 아름다운 이름의 "상함"이 되고 가족에게는 "능욕"이 될 것이며, 비록 참회로써 그 죄는 없어지더라도 그 "부끄러움"은 없어지지 않고 그가 간 뒤에라도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야의 일로 저지른 다윗의 죄는 그 자신의 인격에 끊임없는 치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대적들에게 하나님의 성호를 참람케 하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5) 이 죄는 투기하는 남편의 분노에 간음자를 드러내 버린다. 그는 그 남편의 명예에 그와 같은 모욕을 가한 까닭이다(34,35절). 이웃의 아내를 만지고 친숙하기만 하는 지라도 그 여자의 남편의 질투를 유발시키는데 하물며 그녀를 범하는 자는 어떠하랴! 이 일을 아무리 비밀로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질투의 물로 드러날"것이었다(민 5:12). "만일 발각되면 너는 아내의 간통으로 피해 입은 남편을 만나느니 차라리 새끼를 빼앗긴 어미곰을 만나는게 더 나을 것이다. 간통 사건으로 피해받은 남편은 자기 형제가 살해당한 경우 자기 형제의 피를 복수하려는 자에 못지 아니하게자기 명예에 대해서 가혹한 복수를 하려 들 것이다. 네가 설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지 않더라도 남편의 분노는 두려워하라. 투기는 죽음같이 강하며 음부같이 잔혹하다. 원수를 갚는 날에, 즉 네가 너의 생명이 걸린 재판에 나아올 때 고소인은 자기 고소에서 어떤 수고나 비용도 아까와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 강도맞은 자가 강도에게 대하듯 추호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감형도 용납지 않을 것이며 어떤 화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비록 네가 뇌물 공세를 취하고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그는 법의 집행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듣지(만족하려) 아니하리라. 너는 돌로 맞아 죽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려 한다면 그것으로 도둑질(31절)은 속죄받을 수 있을 터이나 간음은 속죄받지 못할 것이다. 이 경우 그런 제의는 전적으로 무시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으로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찰라적인 더러운 즐거움 때문에 네 자신을 이 모든 불행에 드러내지 말라. 이는 종말에 가서 쓰라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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