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9장 [546 주의약속하신말씀위에서].
......육신을 따름이 아니라 약속을 따라 ([Q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의 계보를 미리 예비해 두사 주님의 때에(그들은 부르심 받을 당시 겉만 보는 세인들의 눈에는 미련-연약-무능-열등하게만 보였지만] 친히 긍휼의 주님의 [창조주로서의] 주권적 부르심의 은혜로써) 생명 씨앗 곧 그리스도를 오게 하고 계셨다 .....[부르심 받은 새로운 , 믿음으로 사는 족속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이삭에게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고 그에게서 12지파를 산출하셨다 .....한편, 애굽의 바로에 대해서는, 멸하시기로 준비된 그릇이었으되, 살아계신 지존자, 창조주 Q 그분의 능력을 [바로와 그분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양자 모두에게 참되게] 알리고자 하셔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며 10 재앙을 주님의 때를 따라 전개하셨고, 당장 일거에 Q의 진노를 쏟아 붓지는 않으셨음을 설명함...[롬9:17, 18...*17.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이 원칙은 오늘날도 동일함..전능하신 Q의 손이 짧아지지 않으셨다...(원하시면 모든 핵무기와 모든 전쟁수단을 일거에 소멸시키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재앙(전쟁-기근-온역-지진)들은 주님 백성들의 범과, 곧 죄((부지 중, 또는 고의적으로 Q 말씀 거역))와 악(마음의 생각, 그 근본 기초를 사탄과 사탄적 체계에 두고 말씀의 머물 수 있는 여지가 없음 ::: 말씀을 적극적으로 배척함))으로 인한 허물의 관영한 결과이기에...먼저 믿는이들이 주 앞에 나아와 금식함으로 주께 부르짖으며 깊이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의 얼굴을 전심으로 구하여야 하며, 오직 주님 뜻 따라 주와 동행함 안에서 걸어가는 <주님이 친히 거하시며 주인이자 주님으로 이끄시는 삶 사는, 주 보시기에 의로운 자로서, (주님의 긍휼 베푸심으로써) 심판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함(아브라함의 중재와 모세의 중재기도를 기억하라!!...다윗과 여호사밧 왕을 기억하라)...[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는 그 가운데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지금 이 땅의, (전쟁 도발한) 국가-민족의 지도자들의 개인적 문제(자기를 사탄 마귀에게 팔았거나 속임 당했음...멸하기로 예비된 진노의 그릇일 수도 있음)가 아니라 실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적인 문제임!!....[범과 = 허물 犯 범할 범 ---過 지날 과, 재앙 화...범과는 화, 곧 재앙이 뒤따름...돌이키게 하시려 함이다!!] ......이에 더불어 명심하여야 할 바는, 주께 [고난의 의미에 대해 각자] 직접 여쭙고 각자의 태도를 확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즉 고통스러운 가난(간고)-고통스러운 질병(질고)에 대한 영적 이해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우리는 영적 측면에서 거류민-외국인-나그네요 동시에 거듭난 영에 그리스도께서 주님-주인-남편-머리-왕으로 함께 사시기에 마땅히 있는 그곳에서 (사탄마귀의 악한 영향력인)썩음을 막고 부패균의 확산을 막아내는 그리스도의 참 맛 지닌 소금이자, 산 위에 둔 꺼지지 않고 아래의 동네를 비추는 등대, 어두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어 밝혀주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나, 그 어떤 환난-고통-질병-기근-적신-위협-칼이라도 의미가 있는 것은 그분이 함께 하사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요, 그런 환경-상황-형편-처지마다 주 앙망-바로보고 주목함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의 생명-사랑-경건이 자라고 성숙하도록 마련해 두신 바이기 때문이다.. 다만, (극도로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살며 주님 이끄시는 그 무엇이라도 다 이루시도록 하시는] 주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라...부지런하라, 게으르지 말고 [주님 주신 목표 다 수행할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하라-쳐서 복종시키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주께 하듯, 주님이 하시듯 바로 그렇게 하루하루 생명 삶 살기를 실행하라....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의 주님 뜻에 두도록 하라.. ....Q의 의를 모르고("의의 법" 곧 그들에게 주어진 바 말씀의 참 의미를 주께 묻지 않음 인해, 눈 멀고 귀 먹어 (땅만 보느라) 등이 굽었음.....((주님이 주신 의의 법이란)) 주께서 창세전에 먼저 사랑하고 붙잡으셨고 주님의 예비하신 그 때에 [비천한 노예로서 소망 없이 고생하던 중] 애굽에서 친히 불러내신 주님을 참되게 믿고 신뢰-앙망하며, 전심으로 전 존재 다하여 사랑하고 그분의 짝으로서 그분에게 합당한 변화<성화-영화> 받고 그분의 내실에서, 그분의 영광 반사/반영-공급하며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를 추구하며 발견케 열어주신 그분 따라 순종하며 그분으로 사는 것이었지만) 무지무각 혼돈 상태에 빠져 오도되고 착각하여 자기 나름대로((짐짓 추정!!.....이것이야말로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였음을 명심하라, 믿는이마다 직접 주께 여쭈어 보고 그 길을 확정해야 한다)) 율법 준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여겨 열심히 추구하며[pursue and seek] 행한 결과 오히려 <참된 의미의> 의의 율법에 도달하지 못했음.......이는 결국 후에 성육신하여 오신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분의 교회를 거절하고 박해하기에 이르렀음
===약속의 자녀 약속의 말씀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 내용 없음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이스라엘의 양자 됨에 대해(이 양자 됨은 신약의 믿는이들에게도 동일함)..Q의 양자로 입양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업은 실지적 가시적 가나안 땅이었지만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업 곧 영적 가나안은 만유를 포함하시는 좋은 땅 그리스도...이로써 만유 위에 계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요, 교회를 그분의 몸으로 삼고, 영원한 거처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고 계심 ....TUQ의 관점에서 보면 독생자 Q은 오직 JC뿐이심... 성육신-대속의 십자가 죽음-장사 됨- 부활 승천 안에서 [타고 난 신성과 함께 참 인성 지닌} Q아들이심을 인정 받으시고 이제 그를 믿고 거듭난 이의 영을 그의 거하시는 내소로 삼으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JC안에서 그를 영접하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Q 생명과 본성을 받아] 하나 됨 이룬 Q의 아들들(양자)이로되 여전히 피조물이로되 Q의 신성과 참 인성 가지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본성을 완전히 획득하게 하고 계심...이로써 Q의 아들의 명분 가진 그리스도의 형제-친구-신부-전사, Q의 영원한 거처인 새 예루살렘을 만들고 계심...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히11:18 창21:12 갈3:29)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7:21, 18:10, 14)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말1:2,3)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출33:19) 하셨으니 ......[출33:18, 19...*18.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영생,자존,불변,무한의 창조주- 주권자 Q))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존 파이퍼, "부름 받은 것과 선택 받은 것은 어떻게 다른가?"...캐서린 웨버(Katherine Weber) 마태복음과 로마서에 나오는 "부름받음"과 "선택받음"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 질문과 관련하여 존 파이퍼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먼저 제시한다. 성경의 기자가 바뀌면 단어의 의미도 바뀌고, 어떤 경우에는 한 단어가 두 가지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2장1-14절에서 사용된 "부름받음"은 결혼식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한 왕의 비유와 관련되어 있다. 비록 사람들이 모두 잔치에 초대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지도 않고 그 중 한 사람은 잘못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비유는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으니라"로 끝난다. 파이퍼는 이 비유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 즉,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분명히, 거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이 늘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선택 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만 '선택 받지' 않았을 사람들도 많이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용어로서 그 '부름 받음'은 단순히 세상 사람들에게 잔치에 오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초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일반적인 초대에 응하여 잔치에 온 사람들이 소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부름을 받은'(이것은 사도 바울이 사용한 의미이다)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8장30절과는 대조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구원의 초청을 결코 철회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칭의를 받고 칭의를 받은 모든 사람들, 즉,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영화롭게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만일 당신이 부름을 받으면 당신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방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의 부름을 받은 자인 것이다." 이어 파이퍼 목사는 "부름 받음"의 몇 가지 다른 용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 일반적인 부름이 있다: '오라. 네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그를 불러내는 것과 같은 부름도 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요한복음 11장43절). 시체가 그 부름으로 생명을 부여받았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8장30절에서 사용한 '부름 받음'이 이런 의미이다. 이 부름은 순종을 만들어낸다. 이 부름은 생명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런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용어가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고, 특히, 다른 기자가 사용했을 경우에는 그 뜻이 달라지게 되므로 성경을 읽을 때 이 점에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 다른 예를 더 들어본다..* 천국은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마13:47-50...*47.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끌어 모아 잡는) 그물과 같으니 *48.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Again,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dragnet cast into the sea, and gathering fish of every kind; and when it was filled, they drew it up on the beach; and they sat down and gathered the good fish into containers, but the bad they threw away. "So it will be at the end of the age; the angels will come forth and take out the wicked from among the righteous, and will throw them into the furnace of fire; in that plac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일전에 파이퍼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고자 할 때 "자신의 재능을 고려하고 Q 나라 이룸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교회와 상의할 것"을 주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소명에 대해 고민할 때 기독교인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 미전도 종족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재능을 사용하며 소모될 것을 감수하기로 각오하는 불굴의 소망이 자주 일어나는가?"
===믿음에서 난 의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Romans 9 New King James Version ==Israel’s Rejection of Christ *1. I tell the truth in Christ, I am not lying, my conscience also bearing me witness in the Holy Spirit, *2. that I have great sorrow and continual grief in my heart. *3. For I could wish that I myself were accursed from Christ for my brethren, my [a]countrymen according to the flesh, *4. who are Israelites, to whom pertain the adoption, the glory, the covenants, the giving of the law, the service of God, and the promises; *5. of whom are the fathers and from whom, according to the flesh, Christ came, who is over all, the eternally blessed God. Amen. ==Israel’s Rejection and God’s Purpose *6. But it is not that the word of God has taken no effect. For they are not all Israel who are of Israel, *7. nor are they all children because they are the seed of Abraham; but, “In Isaac your seed shall be called.” *8. That is, those who are the children of the flesh, these are not the children of God; but the children of the promise are counted as the seed. *9. For this is the word of promise: “At this time I will come and Sarah shall have a son.” *10. And not only this, but when Rebecca also had conceived by one man, even by our father Isaac *11. (for the children not yet being born, nor having done any good or evil, that the purpose of God according to election might stand, not of works but of Him who calls), *12. it was said to her, “The older shall serve the younger.” *13. As it is written, “Jacob I have loved, but Esau I have hated.” ==Israel’s Rejection and God’s Justice *14. What shall we say then? Is there unrighteousness with God? Certainly not! *15. For He says to Moses, “I will have mercy on whomever I will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ever I will have compassion.” *16. So then it is not of him who wills, nor of him who runs, but of God who shows mercy. *17. For the Scripture says to the Pharaoh, “For this very purpose I have raised you up, that I may show My power in you, and that My name may be declared in all the earth.” *18. Therefore He has mercy on whom He wills, and whom He wills He hardens. *19. You will say to me then, “Why does He still find fault? For who has resisted His will?” *20. But indeed, O man, who are you to reply against God? Will the thing formed say to him who formed it, “Why have you made me like this?” *21. Does not the potter have power over the clay, from the same lump to make one vessel for honor and another for dishonor? *22. What if God, wanting to show His wrath and to make His power known, endured with much longsuffering the vessels of wrath prepared for destruction, *23. and that He might make known the riches of His glory on the vessels of mercy, which He had prepared beforehand for glory, *24. even us whom He called, not of the Jews only, but also of the Gentiles? *25. As He says also in Hosea: “I will call them My people, who were not My people, And her beloved, who was not beloved.” *26.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e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re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the living God.” *27. Isaiah also cries out concerning Israel: “Though the number of the children of Israel be as the sand of the sea, The remnant will be saved. *28. For [b]He will finish the work and cut it short in righteousness, Because the Lord will make a short work upon the earth.” *29. And as Isaiah said before: “Unless the Lord of [c]Sabaoth had left us a seed, We would have become like Sodom, And we would have been made like Gomorrah.” ==Present Condition of Israel *30. What shall we say then? That Gentiles, who did not pursue righteousness, have attained to righteousness, even the righteousness of faith; *31. but Israel, pursuing the law of righteousness, has not attained to the law [d]of righteousness. *32. Why? Because they did not seek it by faith, but as it were, [e]by the works of the law. For they stumbled at that stumbling stone. 33 As it is written: “Behold, I lay in Zion a stumbling stone and rock of offense, And whoever believes on Him will not be put to shame.” ==Footnotes Romans 9:3 Or relatives Romans 9:28 NU the Lord will finish the work and cut it short upon the earth Romans 9:29 Lit., in Heb., Hosts Romans 9:31 NU omits of righteousness Romans 9:32 NU by works, omitting of the law ------------- Romans 9 Amplified Bible ==Concern for Israel *1. I am telling the truth in Christ, I am not lying, my conscience testifies with me [enlightened and prompted] by the Holy Spirit, *2. that I have great sorrow and unceasing anguish in my heart. *3. For [if it were possible] I would wish that I myself were accursed, [separated, banished] from Christ for the sake [of the salvation] of my brothers, my natural kinsmen, *4. who are Israelites, to whom belongs the adoption as sons, the glory ([a]Shekinah), the [special] covenants [with Abraham, Moses, and David], the giving of the Law, the [system of temple] worship, and the [original] promises. *5. To them belong the patriarchs, and from them, according to His natural descent, came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He who is exalted and supreme over all, God blessed forever. Amen. *6. However, it is not as though God’s word has failed [coming to nothing]. For not all who are descended from Israel (Jacob) are [the true] Israel; *7. and they are not all the children of Abraham because they are his descendants [by blood], but [the promise was]: “Your descendants will be named through Isaac” [though Abraham had other sons]. *8. That is, it is not the children of the body [Abraham’s natural descendants] who are God’s children, but it is the children of the promise who are counted as [Abraham’s true] descendants. *9. For this is what the promise said: “About this time [next year] I will come, and Sarah shall have a son.” *10. And not only that, but this too: Rebekah conceived twin sons by one man [under the same circumstances], by our father Isaac; *11. and though the twins were not yet born and had not done anything either good or bad, so that God’s purpose [His choice, His election] would stand, not because of works [done by either child], but because of [the plan of] Him who calls them, *12. it was said to her, “The [b]older (Esau) will serve the [c]younger (Jacob).” *13.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d]Jacob I loved (chose, protected, blessed), but [e]Esau I hated (held in disregard compared to Jacob).” *14. What shall we say then? Is there injustice with God? Certainly not! *15. For He says to Moses, “I will have mercy on whomever I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ever I have compassion.” *16. So then God’s choice is not dependent on human will, nor on human effort [the totality of human striving], but on God who shows mercy [to whomever He chooses—it is His sovereign gift]. *17. For the Scripture says to Pharaoh, “I raised you up for this very purpose, to display My power in [dealing with] you, and so that My name would be proclaimed in all the earth.” *18. So then, He has mercy on whom He wills (chooses), and He hardens [the heart of] whom He wills. *19. You will say to me then, “Why does He still blame me [for sinning]? For who [including myself] has [ever] resisted His will and purpose?” *20. On the contrary, who are you, O man, who answers [arrogantly] back to God and dares to defy Him? Will the thing which is formed say to him who formed it, “Why have you made me like this?” *21. Does the potter not have the right over the clay, to make from the same lump [of clay] one object for honorable use [something beautiful or distinctive] and another for common use [something ordinary or menial]? *22. What if God, although willing to show His [terrible] wrath and to make His power known, has tolerated with great patience the objects of His wrath [which are] prepared for destruction? *23. And what if He has done so to make known the riches of His glory to the objects of His mercy, which He has prepared beforehand for glory, *24. including us, whom He also called, not only from among the Jews, but also from among the Gentiles? *25. Just as He says in [the writings of the prophet] Hosea: “I will call those who were not My people, ‘My people,’ And [I will call] her who was not beloved, ‘beloved.’” *26. “And it shall be that in the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re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the living God.” *27. And Isaiah calls out concerning Israel: “Though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be like the sand of the sea, it is only the remnant [a small believing minority] that will be saved [from God’s judgment]; *28. For the Lord will execute His word upon the earth [He will conclude His dealings with mankind] completely and without delay.” *29. It is as Isaiah foretold, “If the Lord of Hosts had not left us seed [future generations from which a believing remnant of Israelites came], We would have become like Sodom, and would have resembled Gomorrah [totally rejected and destroyed]!” *30. What shall we say then? That Gentiles, who did not pursue righteousness [who did not seek salvation and a right relationship with God, nevertheless] obtained righteousness, that is, the righteousness which is produced by faith; *31. whereas Israel, [though always] pursuing the law of righteousness, did not succeed in fulfilling the law. *32. And why not? Because it was not by faith [that they pursued it], but as though it were by works [relying on the merit of their works instead of their faith]. They stumbled over the stumbling Stone [Jesus Christ]. *33.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Behold I am laying in Zion a Stone of stumbling and a Rock of offense; And he who believes in Him [whoever adheres to, trusts in, and relies on Him] will not be disappointed [in his expectations].” ==Footnotes Romans 9:4 The Hebrew word “Shekinah” (“divine presence”) does not appear in Scripture, but has been used by both Christians and Jews to describe the visible Presence of God (the brilliant light of the divine), in such things as the burning bush, the cloud and the pillar of fire that led the Hebrews in the wilderness, and the Presence of God that rested between the cherubim over the mercy seat of the ark. It is said in the Talmud that the Emperor Hadrian once told a rabbi, “I want to see your God.” The rabbi replied, “You cannot see him.” “Indeed,” said the Emperor, “I will see him.” So the rabbi took the Emperor and positioned him to face the sun during the summer solstice, and said to him, “Look at it.” He replied, “I am not able to.” The rabbi said, “If you are not able to look at the sun, which is merely one of the servants that attend the Holy One—blessed be He—then how can you presume to look at the divine presence!” Romans 9:12 The descendants of Esau, the Edomites. Romans 9:12 The descendants of Jacob (Israel), the Israelites. Romans 9:13 The Israelites received God’s protection and blessing. Romans 9:13 The Edomites were left to God’s judgment. ======= 로마서 9장 (개요) 사도는 앞에서 칭의와 구원과 율법의 실천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 모세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이제 본장과 다음에 이어지는 장에서 이에 반대하는 반론을 예상하고 있다. 이상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유대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 곧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복음을 믿지도 않는 저들은 어떻게 되는건가? 이 규칙대로라면 저들은 틀림 없이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유대인들을 구원하겠다던 조상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건가? 이 약속이 무효화되고 폐기되는 게 아닌가? 물론 하나님이 말씀을 두고 볼 때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런 부작용을 자아내는 이런 교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식의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자신의 교의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의 배척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점은 바울은 인정하지만 이것을 그는 가능한 한 누그러뜨리고 저항이 없게 하려 하고 있다(1-5).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이 무효화된다는 점, 이것은 부인하고(6), 이 부정을 본장의 나머지에서 입증하는데 바로 이것은 앞서(8:28) 말한 위대한 예정교리를 구원의 과업에 있어서 기타 다른 모든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맨 첫 바퀴로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 바울의 동족에 대한 슬픔(롬 9:1-5) 여기에 유대민족에 대한 바울의 엄숙한 고백이 있으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원수요 구원의 길밖에 서 있다는 점을 못내 가슴 아파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큰 근심이 있고 그치지 않는 고통이 내게 있다"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그가 그들의 (Q 구원의 최우선순위에서 배제하심)배척을 이론적으로 내세우는 데서 얻을 수도 있는 비난을 씻기 위해서도 절대 필요한 것이다. 너무 거칠어 보이고 불쾌하게 들리는 진리는 완화해서 얘기하는 게 현명하다. 못을 박을 때는 기름을 바르면 더 잘 들어 가는 법이다. 사도행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어느 사도보다도 바울에 대해서 악감정이 컸다. 따라서 이들이 바울을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멸조가 아니라, 진심어린, 친절과]온정어린 투로 얘기를 꺼내고 있다. 배척(제쳐두심) 받은 유대인들을 두고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들에게 다가오는 재앙을 두고 기뻐하지도 않는 그다. 예레미야도 당시 유대인에게 닥쳐오는 재앙을 두고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렘 17:16).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이걸 바라지 않았기에 극구 부정하고 있다. 이게 자신의 모습으로 오해되어 저들의 우스개 노릇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Ⅰ. 그는 이것을 엄숙하게 항의하고 있다(1절).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나는 이걸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서, 거짓말하지 않는 자녀로서, 엄살부릴 줄 모르는 자로서 말한다"는 식이다. 아니면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마음을 살피시는 그리스도에게 호소하노라" 하는 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또 수천의 증인 대신에 자신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려는 것은 큼직하고 묵직한 것이었다.(하찮은 걸 두고 그렇게 항의할 필요가 뭔가) 그러나 그것은 비밀과 같은 것이니 하나님과 자기 양심 말고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낌새도 챌 수 없는 마음 속의 슬픔이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2절). 무엇에 대한 근심인가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유대인의 배척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Ⅱ. 그는 이 고백을 동족 유대민족에 대한 애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저주로 뒷받침하고 있다. "원하는 바로다." 그는 "나는 바란다"(I do wish)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고 "나는……했기를 바란다"(I could wish)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건 여기서 그렇게 말할 계제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내 자신이 내 형제를 [구원함에 도움이 된다면]위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동족에 대한 더 없이 큰 열정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어떠한 비참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이다. 사랑은 이처럼 모험적이요 용감하며 자기부정적이기 쉽다. 많은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은 한 사람의 복지와 행복보다 많은 쪽에 우선해야 하므로 바울은 그게 가능하다면, 그들의 행복을 사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서 있는 것이다. 1. 그는 산 자의 땅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끊어져도 만족하겠다는 투다. 유대인들은 그의 피를 목말라했으며 그를 이 세상에서 가장 흉칙한 사람으로 당 세대의 저주와 역병처럼 박해했었다(고전 4:13; 행 22:22). "자," 하고 바울은 말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 너희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 이상이라도 좋다. 할 수 있는대로 날 실컷 학대-능욕해 보라, 원하는 대로 욕하고 후들겨 보라, 그러나, 너희들의 구원의 복음 진리 말씀에 대한 오해와 착각, 오도된 불신앙과 배척, 억지부림이야 말로 내가 이 몸에 당하는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내 마음에 안겨 주고 있으니 차라리 너희들이 배척 받는 것보다는 이걸 참겠으며 더 바라겠노라." 2. 그는 신자들의 사회에서 파문되어도, 교회에서 쫓겨나고 성도들과의 교제가 끊겨 이방인이나 세리 취급을 받아도 그게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만족으로 여기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성도들 가운데서 기억되지 않고, 그의 이름이 교회기록에서 삭제되었으면 좋았겠다는 투다. 교회의 위대한 번식자, 수 천 수 만의 영적 아비가 유대인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교회의 저버림을 받아 더 이상 교제를 하지 않아도 자기로서는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혹시 유대인들 가운데 바울 때문에 기독교에 편견을 가진 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쨋든, 그에 대한 앙심과 원한이 어찌나 컸던지 이들은 그를 잡아죽이려 했을 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종교마저도 싫어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나 바울 때문에 이것이(기독교회가) 너희들에게 거리낌이 된다면 나로서는 내가 (기독교회에서) 쫓겨나서 그리스도인 취급을 안 받아도 너희들만 (JC안으로 믿어)들어 온다면 한이 없겠다"고. 모세도 마찬가지였다(출 32:32).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소서." 3. 아니, 더 나아가 그는 그게 그들의 구원의 방편이 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행복의 몫에서 인연이 끊겨도 만족하겠다는 식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흔히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보다 더 높고 귀하고 후한 [진정한 의미에서 이타적인]사랑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나는 어떠한가..형제자매들의 참된 구원, 곧 모든 영적 유익을 위해서 모든 오해-편견, 모욕과 비난, 저주-참소-조롱-비아냥을 당하더라도 있으라 하신 곳에서 [JC 바라보며 중보의 영안에서] 묵묵히 참아내며 견뎌내며 축복하는, 이타적 사랑의 영으로 행하고 있는가 ??)) Ⅲ. 이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된 이유. 1. 친척 관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저들은 그에게 몹쓰게 굴며 기회 닿는 대로 더할 수 없이 야박한 횡포를 퍼부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들을 이렇게 존중하는 투로 말하고 있다. 이 용서하는 영의 인간이라는 증거다.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다"(행 28:19). "내 친척"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다. 우리도 우리 친척, 형제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과 우리는 보다 특별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에게 유익한 일을 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지며, 그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쓰임새가 있어야겠다. 2.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4, 5절).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하나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선택받은 자 야곱의 후손이며 특별한 언약 관계에 들어 있으며 가견적 교회의 여러 특권으로 위엄과 탁월성이 과시된 이들이다. 이들의 특권을 살펴 보자. (1) "입양." 이 경우의 입양은 구원에 이르고 영생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이요 모형적인 것으로 가나안 복지에의 자격을 주는 입양이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출 4:22). (2) "영광." 속죄소가 함께 있는 법궤로서 그 위에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거느리고 거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삼상 4:21). 신의 임재와 인도에 대한 많은 상징과 표, 구름과 세키나(엄위) 그밖에 특유한 은총, 이 모든 것이 이들에게 영광이었다. (3) "언약들."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어지고 그의 후손과 여러 기회에 갱신된 언약이다. 이것은 시내산에서의 언약이요(출 24), 모압 평야에서의 언약이요(신 29), 세겜에서의 언약이요(수 24), 그 후로도 여러 번 맺어진 언약이니 이 모든 게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이었다. 이것은 특수 언약이었으니 모형상으로는 은혜 언약이라고도 볼 수 있다. (4) "율법을 세우신 것." 의식적인 율법과 사법적인 율법 및 도덕적 율법이 기록상으로 모두 그들에게 속해 있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상으로 모두 그들에게 속해 있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있다는 건 크나큰 특권이 아닐 수 없다(시 147:19, 20). 이것은 이스라엘의 위용이었다(신 4:7, 8). (5) "예배." [알고 예배함]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규례가 있었으니 성전, 제단, 제사장, 제물, 절기 및 이에 관계된 기구 등이다. 다른 민족들은 바위나 돌 악마, 알지도 못하는 자신들의 고안물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당신께서 친히 지정해 주신대로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크게 영광을 받고 있다. (6) "약속들." 일반 언약에 덧붙여 메시야와 복음에 관한 약속들이 이들에게 주어졌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약속에는 율법을 세우심과 하나님 예배가 따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의 의도는 이 율법에의 순종과 그 예배에의 의존에서만 [참되게 드러나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7)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5절). 하나님에게 크게 애호받던 저 유명한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이들의 자손이요 또 그런 만큼 이들은 이걸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우리 조상이다." 이들이 언약에 들어서게 된 것은 조상 덕분이다(11:28). (8)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이다(히 2:16). 그의 신성으로 말하면 그는 하늘에서 오신 여호와요 인성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 이 점 곧 그리스도께서 이들에게 친척이라는 점이 유대인들에게는 위대한 특권이었다. 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그는 아주 위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으니 곧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하는 말이다. 그가 자기들 친척이라 해서 유대인들이 그를 천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에서 그는 이처럼 존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아주 충분한 증거이니 그는 중보자로서 만물 위에 계실 뿐 아니라 만세에 걸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저버린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큰 아픔을 당해야 마땅하겠는가! 만세토록 찬양받으실 하나님께서 인간, 그것도 유대인이 되셨다는 점은 유대인의 위대한 영광이 아닐 수 없으며 바울이 이들에게 친절을 보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당시 그 백성의 태도와 성격을 생각하면 그가 그처럼 슬퍼하고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 신의 주권(1)(롬 9:6-13) 사도는 복음전파사역의 우선순위에서 왜 자기 동족을 배척하게 되었는지를 두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동족 유대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이들의 특권을 얘기하고 나서 복음 시대의 확정으로 인해 야기된 유대인 배척이 그 조상들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결코 무효화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이 대목 이하에서 입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6절). 유대인의 현 상태를 두고 생각하는 바울에게 "큰 관심과 고통"(2절)을 안겨 준 걸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효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이건 그 무용론을 주장해선 안된다. 그가 일단 말씀하신 것은 그 어느 것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사 55:10, 11). 약속과 위협은 각각 그대로 성취될 것이요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는 율법을 높이시며 그것을 존귀케 하실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 이 점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 약속은 흔들리는 신앙으로 볼 때는 의심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무용하게 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에 가서는 진실을 말하게 되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제 남은 난제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배척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이 말씀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신의 은총의 외적 표현인 것이다. 이것을 그는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이 약속의 참 의미와 의도에 대한 설명(6-13절). 2. 인간을 상대로 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입증(14-24절). 3. 구약에 예언된 유대인 배척과 이방인 영접(25-29절). 4. 유대인 배척의 진정한 이유(30-33절). .....이 항목에서는 약속의 참 의미와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잘못 보고 그 약속을 오해한다면 그 성취 여부를 놓고 하나님과 다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의미를 우선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면 무조건 필연적으로 따르는 식으로 육신의 모든 후손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제한된 몇몇을 두고 말씀하신 점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것은 이삭에게는 통용이 되었지만 이스마엘에게는 달랐으며 야곱에게는 통용이 되었지만 에서에게도 달랐다. 그러나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효하게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동일한 약속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는 유대인에게는 통용되고 있으니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은 그 수가 얼마이건 내팽개치고 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약속이 패하고 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스마엘이나 에서의 모형적인 배척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다. Ⅰ. 그는 이 전제 조건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6절)……(7절). 아브라함과 야곱의 허리에서 태어난 자들, 이스라엘의 이름을 본따 이름 지워진 자들의 숫자가 많았지만 그러나 참으로 이스라엘인이기엔 너무 거리가 멀었으니 이 새 언약의 구원 혜택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이름과 주장만으로 모두가 이스라엘 사람일 수는 없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꼭 하나님의 자녀라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건만 이들은 그 따위 환상에 젖어 있었으니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그렇게도 뽐내고 거기에 모래집을 건축했던 것이다(마 3:9; 요 8:38, 39). 어림없는 얘기다. 은혜는 피에 섞여 흐르는게 아니요 구원의 혜택은 외면적인 교회의 특권에 불가분의 혈연관계를 지닌 게 아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놓고 확대해석하는 것이요 헛된 망상에 들뜬 나머지 소란을 피우는 것뿐이다. Ⅱ. 그는 이것을 예를 들어가며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선택받은 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도 있다는 점뿐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뜻에 따라 일하고 계신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 선택은 현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서먹서먹하게 결합되어 있는 율법의 계명과는 무관한 것이다. 1.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보라, 양자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이삭만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고 이스마엘은 배척을 받아 쫓겨 났다. 이것을 위해 그는 창세기 22장 12절의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왜 아브라함이 여자 노예와 그 자식을 내 쫓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곧 그 언약이 이삭을 상대로 맺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17: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땅에 떨어진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 큰 약속에 담겨진 축복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하신 것이요 누구의 머리에 그게 떨어지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요 그게 이삭에게는 들어맞고 이스마엘은 내쫓김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저 하는 바를 보여 주는 것이다. (1) 육신으로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다 해서 그 육신의 자녀가 꼭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스마엘도 똑같은 주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불신 유대인들에게 따끔하게 들릴 수밖에 없으니 이들은 육신으로 자기들이 가진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뽐내며 그리스도께서 폐지하신 육적인 방도, 곧 육신적인 방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육신을 믿고 있었다(빌 3:3). 이스마엘로 말하면 육신의 자식, 곧 하갈의 자식이었으니 하갈은 젊고 싱싱해서 얼마든지 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스마엘의 잉태, (거기엔 이삭의 경우처럼 뭐 특별하거나 초월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는 육신을 따라 태어난 자요(갈 4:29), 자신의 힘과 의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겠다는 모든 자들의 대표자다. (2)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는다"는 점. 후손 취급을 받는 자들은 자기들의 공로나 행적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된 은총을 주시기로 기꺼이 베푸신 약속 때문이다. 이삭은 약속의 자손이었으니 그는 이 점을 9절에서 창세기 18장 10절을 인용하여 입증하고 있다. 그는 약속된 자녀요(많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의 잉태와 탄생이 모두 이 약속 때문이니 지금 후손으로 취급받는 자들, 곧 육신의 뜻이나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태어난 참신자들, 곧 새로운 마음의 약속에 따르고 약속의 말씀에 따르는, 썩어지지 아니할 후손을 잘 예시하는 모형이다(갈 4:28). 이삭이 잉태된 것은 믿음을 통해서였다(히 11:11). 구약시대에는 구원의 신비가 모두 이런 식으로 가르쳐져 왔으니 곧 그때는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모형을 통해 교육되었다. 물론 이것들이 그들에게 장막이 걷혀지고 모형이 원형에 의해 가르쳐지는 오늘날 만큼 명백할 리는 없었다. 2. 야곱과 에서의 경우(10-13절). 이 두 경우는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은 이 약속에 관계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권으로 그렇게 정해 놓은 자들만이 여기에 관계가 있다는 점을 더욱 강력하게 보여 준다. 이스마엘이 쫓겨나기 전에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는 이미 차이가 있었다. 이삭의 출생 전부터 이스마엘은 여자 노예의 자식이었고, 난폭하여 이삭을 모욕하고 박해했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켜 그를 쫓아 내실 때 이 모든 점을 감안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의 경우는 둘 중에 어느 하나도 다르지 않고 둘 다 다르지도 않았으니 이 둘은 한 어머니에 의해서 태어난 이삭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한 번의 임신으로"(엑스 에노스 코이텐, 9:10) 태어난 자들이다. 그 차이는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들이 선악을 행하기 전에 신의 경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이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실 때 둘이는 어머니의 태에서 똑같이 버둥거리고 있었으니 이것은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서게 하려"는 뜻에서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어떤 자는 택하기도 하시고 어떤 자는 버리기도 하시며 절대적이요 주권적인 뜻에 따라 은총을 베풀기도 하시고 이것을 보류하기도 하신다는 위대한 진리가 확립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이 야곱과 에서의 차이점을 그는 말라기 1장 2,3절을 인용해 가며 더 설명해 가고 있는데 거기에는 개인 야곱과 개인 에서를 두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을 두고 말하고 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특유한 언약 관계에 들어가고 가나안의 땅이 주어졌으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시고 보급해 주며 구원해 주시는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자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셨는가 하면 에돔 족속은 배척을 받았으니 그들에게는 성전도, 제단도, 제사장도, 예언자도 없었다. 특별한 친절과 보호가 이들에게는 없었다. 맨 처음 두 민족의 우두머리로서의 야곱과 에서에게 차이가 있었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허리에서 태어난 두 족속들에게 이러한 차이를 두셨다. 그 결과 이 선택과 배척은 모두 모형적인 것으로 다른 의미에서의 선택과 배척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1) 어떤 이들은 이것을 [Q의 주권으로 이해하지 않고] 조건, 또는 특성 따른 선택과 배척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야곱은 선택하시고 이스마엘과 에서는 배척하셨듯이 그는 믿음을 구원의 조건으로 선택하시고 율법의 행위는 배척하셨다는 것이다. 아미니우스도 약간 다르게 이해한다. (배척받은 자와 선택받은 자는 특성에 따라 구별지어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존 굿윗도 마찬가지 견해를 보인다. 그러나 이 들 두사람은 성경을 억지 해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는 첫째 시종일관 사람을 두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자비를 베풀려는 자(어떠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또한 14, 19절의 반론은 이에 대한 반론도 아니다. 둘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두고 말한 대답은 그것이 구원의 조건을 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어떤 이들은 이것을 영원전부터의 특별한 개인에 대한 선택과 배척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미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야곱과 에서를 말할 때 그 개인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라 조상으로서 말한 것이니 민족으로서의 야곱, 민족으로서의 에서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공로를 생각지 않고 그저 그냥 그가 저주하고 싶어서 이들을 저주하거나 저주하기로 정하신 것도 아니다. (3)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민족의 선택과 배척이 복합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의 의도는 [그리스도를 믿는]이방인을 교회로 불러 들여 자신과 언약을 맺고 유대인들은 고집을 부려 계속 불신앙 가운데 머물어 비(非)교회화 하는 가운데 그들의 평화에 관한 것을 그들의 눈에서 숨기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자비 및 진리를 정당화하려는 데 있다. 사도의 설명의 추론과 그 입증은 특별한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을 명확히 하는 데에도 적합할 뿐 아니라 사실상 그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 것이다. 구원케 하는 혜택의 전달은 교회 특권의 전달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 예정과 선택, 부르심은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아시는 그분의 주권적 섭리를 따르는 신비요, 이에 대한 개인의 반응[곧 합당한 믿음 발휘하여 그 사랑안에 귀의함]으로 결정됨에 주의하라!!)) 동생 야곱을 택하여 형 에서보다 더 우대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타고난 후손이요 교회의 맏형이긴 하지만...신약에 이르러서는 주님이 주권에 따라 이들은 제쳐 놓고 동생격인 이방인들이 대신 그 자리에 들어 서서 장자권과 축복을 누려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다. 유대 민족은 한 정치기구로서 의식 율법, 한 성전, 한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뭉쳐져 있는 가운데 수 세기 동안 하늘의 총아요 제사장의 왕국, 거룩한 민족이었으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임재로 위엄과 위용을 갖춘 탁월한 민족이었다. 이제 복음이 전파되고 기독교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 민족적 기구는 제쳐지고 그들의 교회 기구도 폐쇄되었으며 기독 교회가(기독화한 민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신의 은총과 이 은총의 결과인 특권과 보호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이 위대한 복음의 세대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공의를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여기서의 사도의 의도다. ----------- 신의 주권(2)(롬 9:14-24) 사도는 지금까지 약속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고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원한 상태를 두고 그들에게 행사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주창하고 입증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하나님을 당신의 계시된 율법이나 언약 그대로 상주시고 벌하시는 감독자나 통치자로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각자마다 독특하게 서로 다르게 지어진 바 인간들에게 영원하고 은밀한 뜻과 경륜에 따라 베푸시는 은혜와 은총의 소유주이자 시혜자로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개인의 믿음을 보시는 은혜와 은총의, 그 누구도 다 알 수 없고 형언할 수 없이 의로우신 창조주, 주권자 하나님은 융통성이 한량없으시면서도 경륜과 섭리를 통해 마침내 모든 인간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고 계시다!!)) 가견적 교회의 회원자격과 특권의 은총이 어떤 사람에게는 주어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거절되었는가 하면 유효적인 은혜가 어떤 사람에게는 거절되고 있다. 이 항목의 강론은 두 반론에 대한 대답이다. Ⅰ.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하는 반론이 우선 있을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똑같은 인간을 두고 다루시면서 독단적으로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배척한다면 그에게 불의가 있다고도 의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럴 수 없느니라!"하고 소스라치며 놀라는 게 사도의 대답이다. 턱 없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온 지상의 심판관께서 의롭게 하시지 않을 리가 있는가?(창 18:25; 3:5, 6) 그는 이 입장을 부정하고 그 부정을 입증하고 있다. 1. 그가 자비를 베푸는 자들의 경우(15, 16절). "나는 은혜를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출 33:19) 하는 말씀을 인용하므로 그는 그의 은총을 행사하시는 데 있어서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심의 모든 이유는 주권자 로서 하나님 자신의 문제다. 모든 인간이 하나같이 죄악의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으며 똑같이 죄책과 진노 아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주권을 행사하시는 방향에서 특별히 어떤 자들을 이 타락하고 배덕한 상태에서 건져내어 은혜와 영광의 그릇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다만 초월적 창조주-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은총을 주시되, 그에 대한 세세한 이유는 제시하시지 않으신다. 오직, 당신의 기뻐하심에 따라(!!!) 어떤 이들은 택하여 자비와 은혜, 예방적인 은혜와 유효적인 은혜의 기념비적인 존재로 삼으시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다. 보라, 그 표현이 아주 강경하며 반복적 강조가 또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의 의지의 초월적 완전 절대성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참으로 주께서 하고 싶은 대로 행할 뿐이요 거기에는 부차적 설명이 필요치 않으며 설명을 하는 것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출 3:14) 하는 위대한 말씀이 당신의 존재의 절대 독자성을 표현하듯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하는 말씀은 당신의 의지의 절대적인 대권과 주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자비를 베풀고 싶은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는 말씀을 들어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기 위해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능력과 자유를 시사하는 가운데 친히 말씀하신 거기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혼자만으로도 유능한 심판이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나 결심하신 바는 그 무엇이나 공의로운 것으로 이미 입증되고 있다. "나는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겠다"(엘레에소 혼 안 엘레소, 9:15). 시작하면 끝장을 낸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히 거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요, 그의 은총과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하는 말씀이 따른다(16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선, 그것에 대한 영광은 인간의 최고 바램이나 최고 근면한 노력에 돌릴 게 아니라 오로지 순전히 하나님의 자유 은혜와 자비에 돌려야 마땅하다. 야곱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게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할텐데..' 하는 리브가의 간절한 소망이나 뜻에 따른 것도, 그 축복을 받으려고 성급하게 달려간 야곱의 달음박질에(그는 그것을 받으러 달려 갈 수밖에 없었다) 따른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따른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성결하고 행복한 백성이 다른 사람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으니 이들을 서로 다르게 하는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과 그 은혜라는 점이다. 바울이 이 일반적인 법칙을 자기 앞에 문제로 등장한 특별한 경우, 곧 어떻게 무자격하고 무가치한 이방인들은 부름을 받아 교회에 접붙임을 받고 유대인들 대부분은 불신앙 가운데 멸망하게 내버려 두셨는가 하는 그 이유에 적용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어디가 잘 났거나 그런 은총을 특별히 더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이 차이점을 두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때문이다. 이방인들로 말하면 그걸 바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걸 바랄 사람들도 아니었으며 그걸 보고 달려가는 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마 4:16)이었다. 흑암 가운데 있는 만큼 그들은 자기들이 아직도 못하는 것을 바랄 수도 없었다. 흑암 중에 "앉아 있다"는 얘기는 현 상태에 만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그걸 향해 달려 갈 생각은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은 모두 이런 식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를 찾지도 않는 자에게서 발견되어지며(사 55:1) 이경우의 예방적이요, 유효적이며 구분하는 은혜에 있어서도 그는 자신의 은혜를 공급하는 시혜자로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그가 선하시다 해서 우리의 눈은 씰룩해질 것이 아니요 우리나 다른 사람이 누리는 모든 은혜에 있어서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 115:1). 2. 멸망하는 자들의 경우(17절). 죄인의 멸망에 있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의 예가 바로에게서 나타나고 있다(출 9:16 인용). (1) 하나님께서 바로를 상대로 어떻게 하셨는가. 그는 그를 키우시고 출세케 하셨으며 유명하게 하셔서 왕권을 맡기셨다. 곧 산마루의 봉화로 그의 모든 재앙의 표적으로 삼으신 것이다(출 9:14). 그러나 그는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겠노라"(출 4:21)고 하신 그대로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니 누그러지게 하는 은혜를 보류하시고 혼자 내버려 두는 가운데 사탄을 그에게 풀어 놓아 강퍅케 하는 섭리만이 그의 뒤를 좇게 한 것이다. 아니면 그를 키우셨다는 말은 재앙의 휴지 곧 그 동안에는 바로가 쉼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걸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다. 히브리서에 보면 "내가 너로 서게 하였다"는 말씀이 있는데 산 자의 땅에 계속 머물러 있게 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길러서 악의 날에 제물이 되게 하시는 것이니(잠 16:4) 자비를 주시면서 외적인 번영과 외적인 특권 가운데 키우시는 것이었다(마 11:23). (2)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도.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상대로 삿대질을 하며 대들던 자요 의롭고 거룩한 것은 모조리 짓밟아 뭉개던 저 용감하고 위대한 독재자의 교만과 오만을 꺾으므로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시고 당신의 이름을 존귀케 하셨다. 바로가 그처럼 높아지지 않고 위력이 당당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오만불손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멸망시켜 봤자 그의 능력이 그렇게 실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행패를 부리며 모든 것을 다 앗아간 위대한 왕이기에 그 보좌의 탈취는 그만큼 하나님을 그 거룩에 있어서 영광스럽게 하고, 그 찬양에 있어서 위엄이 있으며 기사를 베푸시는 게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출 15:11). 이것이 바로요 그의 수많은 무리들의 꼬락서니다. (3) 이 두 가지에 대한 결론(18절). "그런 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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