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7장 [354.주를앙모하는자올라가].[88.내진정사모하는친구가][95.나의기쁨나의소망되시며].하나님한번도 나를,,나는비록약하나..주여호와를앙망하는자..주님다시오실때까지
거듭난 이의 영은 주님의 좌소, 혼은 온전한 거룩함에로 변화 중이며, 아직 몸은 구속함의 새롭게 됨을 기다리는 중...죄의 법이란 <죄성의 노예 상태에 있었던 몸의 (<(타락한 세상이 항상 그러한 상태로서,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옛자아의 잔재, 성급하고 충동적인 반항 습관 --일종의 [권력 쟁탈로 인한] 갈등 유발 요인.....이 죄의 법에 굴복하게 되면<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 하신 대로 [주님과의 달콤-충만한 사랑-하나됨-교통]의 느낌 사라지고 씁쓸한 사망의 느낌이 엄습해 올 것이지만, (진실로 회개하면 다시 그 관계는 회복됨) 이 사망의 느낌이 빈번해지면 <사탄의 점유에 자신을 내어줌 인해> 자포자기-->원망-->저주에 빠져들 수 있음.. ::: (선택 의지를 발휘하여, 주님 앙망하면서 그 느낌을 예수 이름으로 꾸짖고 그 자리-위치를 속히 떠날 때 극복 가능하며....항상 당신 자신으로 적셔주시며, 충만케 하시는, 내주하시는 주님 사랑 안에 거함-바라며 따르기를 통해 최종 처리될 것) > .......불신자가 보기에 참된 구원 얻는 주님의 길은 좁은 문-좁은 길처럼 보이지만, 참되게 믿는 거듭난이의 경험으로는, 매일 매순간이 날마다 새로우며, 자신을 온통 내어주시고 모든 것 아끼지 않으시는 분의 품에 안겨 주를 사랑하기에!!, 사랑-기쁨-평강 가운데 넘치는 감사하며 걷는 그 길은 [진정 참 자유 만끽하는 지복직관-영생 복락, 시온의 광활한 대로]로 여겨진다.
===혼인 관계로 비유한 율법과 죄. ....[[정말 감사하게도!!]]거듭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율법에 대한, 율법 주신 Q의 의도하신 바, 생명 체험에 대한 내용이 판이함을 바울은 누구보다 극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오히려)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사탄마귀 인격으로서의 죄, 본래 선한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선한-죄의 정체 폭로하는- 율법, 그 율법을 본래 목적 거슬러 거꾸로 악용하여 정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의 그 교묘-간교함을 보라!!)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는 육신이 너무 약하여 율법의 계명을 악용하여 더 치명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사탄의 흉계가 통하지만, 그와는 달리, 성령 따라 하나 되어 사는 거듭난 믿는이 마다에게 있어서는 (사탄의 잔재인 옛자아-육신/죄성의 기만책에 더 이상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할 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를 살펴 봄으로써] 오히려 그 궤계를 대적하고) 율법을 주신 바 그 참되고 선한 목적 따라 합당하게 작동케 됨(율법의 계명을 주신 Q의 목적은 정죄-죽음의 심판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 사랑에 머무르며 누리는 바 그 진복을 지킴 위해 경계할 바를 분명히 일깨우고 계심이었다) 곧 혹시 죄를 범하더라도 (참되게!!) 회개케 하시려 함에 있음.....죄의 유혹을 감지하는 순간마다 그대는 마땅히 끔찍한 지옥불의 고통을 떠올리기를 항상 연습하라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곧바로 대적하고 주께 그대 마음이 흔들렸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다시 자신을 주께 맡겨드리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기억하라, 명심하라, 조심하라, 분별하라, 계명이 밝히 드러내는 바 죄는 일면 겉보기에 [거듭났다 해도!!....깨어 경계하고 주님 이름 불러 그대 마음을 주께 맡겨 드림으로써 지키지 않는다면]죄는 그대에게 다가와, (보기에 좋고 먹음직하고 먹으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바) 당장에 달콤함 주고 영원한 만족과 즐거움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며, 비록 죄인 것을 알지만 범죄 결과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 은밀한 탐심과 정욕 자극하여 점점 더 갈망 불러 일으키는 미혹과 유혹에 노출될 것이요 일단 일탈하여 범죄하면 그대를 포로 삼아 정죄감-절망감으로 자포자기 하게 만들게 되고, 그냥 충동 따라 행하는 경우라 해도 계명과 Q을 멸시하는 비정상적인-병적인 쾌감/재미 유발 증폭, 결국 자포자기적 중독으로 치달아 자멸케 유도 되리라..(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사망 독성 가졌으되 분별 감각의 마비, 중독 가운데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공통 특성은 항상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계명은 그것의 근원을 밝혀 경계하게 하는 주의 말씀이다.(오직 생명, 사랑, 구원 영생 복락, 지고지선에 이르게 하려 하신다)...지금 오늘 그대의 영혼 상태는 어떤가 살펴보라, 주와 하나 되어 말씀 사랑 기쁨 평강 교통 누림의 순전한 즐거움이 (혹시 모를 은밀한 범죄 쾌락 [그 뒷맛은 항상 개운치 못하고 씁쓸함과 속았다는 느낌과 정죄감 뿐] 누림과는 (아니 그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정 더 낫고 크기에 호흡보다 의식보다 기까이 계신 (지고지선-진복-지복직관의)주님과 하나 됨을 끝까지 추구하리라 결심하고 있는가..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계명은, 죄가 행위로 나타나기 그 이전에 먼저 마음의 근본 동기적 측면에서부터 죄의 정체를 극명하게 빛 아래 드러내 주는 바, 내주하시는 성령은 순종하는 이마다 죄(그 동기)를 대적하고 떠나 주의 거룩하심 그대로 생명 Q의 거룩하심에 도달케 하신다.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우리말성경]제7장 ===결혼 관계로 비유된 율법 *1. 형제들이여, 내가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율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 결혼한 여자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간다면 간음한 여자라 불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습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율법으로 인한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속에서 작용해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죄와의 싸움 *7.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에 비춰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20:17;신5:21 *8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내 안에 각종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9. 전에 율법이 없었을 때는 내가 살아 있었지만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10. 나는 죽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됐습니다. *11.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12. 그러므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13. 그러면 선한 것이 내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가 죄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그 선한 것으로 내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계명으로 인해 죄가 더욱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죄 아래 팔려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15.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증오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나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안,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압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죄입니다. *21.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23. 내 지체 안에서 하나의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잡아가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 Romans 7 Amplified Bible ===Believers United to Christ *1. Or do you not know, [a]brothers and sisters (for I am speaking to those who know the Law), that the Law has jurisdiction [to rule] over a person as long as he lives? *2. For the married woman [as an example] is bound and remains bound by law to her husband while he lives; but if her husband dies, she is released and exempt from the law concerning her husband. *3. Accordingly, she will be designated as an adulteress if she [b]unites herself to another man while her husband is alive. But if her husband dies, she is free from the law [regarding marriage], so that she is not an adulteress if she marries another man. *4. Therefore, my [c]fellow believers, you too died to the Law through the [crucified] body of Christ, so that you may belong to another, to Him who was raised from the dead, in order that we may bear fruit for God. *5. When we were living in the flesh [trapped by sin], the sinful passions, which were awakened by [that which] the Law [identifies as sin], were at work in our body to bear fruit for death [since the willingness to sin led to death and separation from God]. *6. But now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and its penalty, having died [through Christ] to that by which we were held captive, so that we serve [God] in the newness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ness of the letter [of the Law]. *7. What shall we say then? Is the Law sin? Certainly not! On the contrary, if it had not been for the Law, I would not have recognized sin. For I would not have known [for example] about coveting [what belongs to another, and would have had no sense of guilt] if the Law had not [repeatedly] said, “You shall not covet.” *8. But sin, finding an opportunity through the commandment [to express itself] produced in me every kind of coveting and selfish desire. For without the Law sin is dead [the recognition of sin is inactive]. *9. I was once alive without [knowledge of] the Law; but when the commandment came [and I understood its meaning], sin became alive and I died [since the Law sentenced me to death]. *10. And the very commandment which was intended to bring life, actually proved to bring death for me. *11. For sin, seizing its opportunity through the commandment, beguiled and completely deceived me, and [d]using it as a weapon killed me [separating me from God]. *12. So then,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is holy and righteous and good. *13. Did that which is good [the Law], then become death to me? Certainly not! But sin, in order that it might be revealed as sin, was producing death in me by [using] this good thing [as a weapon], so that through the commandment sin would become exceedingly sinful. ===The Conflict of Two Natures *14. We know that the Law is spiritual, but I am a creature of the flesh [worldly, self-reliant—carnal and unspiritual], sold into slavery to sin [and serving under its control]. *15. For I do not understand my own actions [I am baffled and bewildered by them]. I do not practice what I want to do, but I am doing the very thing I hate [and yielding to my human nature, my worldliness—my sinful capacity]. *16. Now if I habitually do what I do not want to do, [that means] I agree with the Law, confessing that it is good (morally excellent). *17. So now [if that is the case, then] it is no longer I who do it [the disobedient thing which I despise], but the sin [nature] which lives in me. *18. For I know that nothing good lives in me, that is, in my flesh [my human nature, my worldliness—my sinful capacity]. For the willingness [to do good] is present in me, but the doing of good is not. *19. For the good that I want to do, I do not do, but I practice the very evil that I do not want. *20. But if I am doing the very thing I do not want to do, I am no longer the one doing it [that is, it is not me that acts], but the sin [nature] which lives in me. *21. So I find it to be the law [of my inner self], that evil is present in me, the one who wants to do good. *22. For I joyfully delight in the law of God in my inner self [with my new nature], *23. but I see a different law and rule of action in the members of my body [in its appetites and desires],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subduing me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which is within my members. *24. Wretched and miserable man that I am! Who will [rescue me and] set me free from this body of death [this corrupt, mortal existence]? *25. Thanks be to God [for my deliveranc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on the one hand I myself with my mind serve the law of God, but on the other, with my flesh [my human nature, my worldliness, my sinful capacity—I serve] the law of sin. ==Footnotes Romans 7:1 Lit brethren. Romans 7:3 Lit becomes another man’s, probably referring to an illicit, sexual relationship. Paul uses the same language at the end of the verse, but there he probably means sexual intimacy within a new marriage. Romans 7:4 Lit brethren. Romans 7:11 Lit through it killed me. ----------- Romans 7 New King James Version ===Freed from the Law *1. Or do you not know, brethren (for I speak to those who know the law), that the law [a]has dominion over a man as long as he lives? *2. For the woman who has a husband is bound by the law to her husband as long as he lives. But if the husband dies, she is released from the law of her husband. *3. So then if, while her husband lives, she marries another man, she will be called an adulteress; but if her husband dies, she is free from that law, so that she is no adulteress, though she has married another man. *4. Therefore, my brethren, you also have become dead to the law through the body of Christ, that you may be married to another—to Him who was raised from the dead, that we should bear fruit to God. *5. For when we were in the flesh, the sinful passions which were aroused by the law were at work in our members to bear fruit to death. *6. But now we have been delivered from the law, having died to what we were held by, so that we should serve in the newness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ness of the letter. ===Sin’s Advantage in the Law *7. What shall we say then? Is the law sin? Certainly not! On the contrary, I would not have known sin except through the law. For I would not have known covetousness unless the law had said, “You shall not covet.” *8. But sin, taking opportunity by the commandment, produced in me all manner of evil desire. For apart from the law sin was dead. *9. I was alive once without the law, but when the commandment came, sin revived and I died. *10. And the commandment, which was to bring life, I found to bring death. *11. For sin, taking occasion by the commandment, deceived me, and by it killed me. *12. Therefore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holy and just and good. ===Law Cannot Save from Sin *13. Has then what is good become death to me? Certainly not! But sin, that it might appear sin, was producing death in me through what is good, so that sin through the commandment might become exceedingly sinful. *14. For we know that the law is spiritual, but I am carnal, sold under sin. *15. For what I am doing, I do not understand. For what I will to do, that I do not practice; but what I hate, that I do. *16. If, then, I do what I will not to do, I agree with the law that it is good. *17. But now, it is no longer I who do it, but sin that dwells in me. *18. For I know that in me (that is, in my flesh) nothing good dwells; 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but how to perform what is good I do not find. *19. For the good that I will to do, I do not do; but the evil I will not to do, that I practice. *20. Now if I do what I will not to do, it is no longer I who do it, but sin that dwells in me. *21. I find then a law, that evil is present with me, the one who wills to do good. *22.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ccording to the inward man. *23. But I see another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bringing me into captivity to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24. O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deliver me from this body of death? 25 I thank God—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with the mind I myself serve the law of God, but with the flesh the law of sin. ===Footnotes Romans 7:1 rules ======= 로마서 7장 (개요) 본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Ⅰ. 율법에서 벗어나 성화를 덧입을 것을 강조(1-6). Ⅱ. 율법의 우월성과 효용성을 자신의 체험에 비춰 논함(7-14). Ⅲ.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은혜와 타락의 갈등(14-25). ======== 율법에 대한 관찰(롬 7:1-6)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나 성결에 이르게 하도록 하는 데 있어 앞장에 사용된 이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14절)는 것이었다. 이 이론이 이제 여기서도 더욱 강조되며 설명되고 있다.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났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어떻게 됐으며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어떻게 되었는가? 1.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를 저주하고 정죄하는 율법의 능력에서 벗어났다. 우리에게 불리한 율법의 사형 선고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모든 신자에게는 무효화되고 번복되었다.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고 율법은 말하지만 우리는 이 율법에서 벗어났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으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받은"것이다(갈 3:13). 2.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는 죄를 건드리며 삿대질하는 율법의 능력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타락하고 썩어져 가는 인간에게 명령만 하고 금하기만 하며 위협하기만 하고, 치료하고 힘을 주는 은혜는 제공하지 못하는 율법은 더욱 더 타락만을 불러 일으키고 조장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똥무더기에 비치는 햇살이 더러운 김만 올라 오게 할 뿐인거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타락하여 불구가 되자 들어서서 우리를 지도한다는 게 율법인데 이 율법이 우리의 불구를 치료하고 도와주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는 더욱 더 비틀거리며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JC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유케 된 자라는 이유로, 이 율법을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사문화 된 하나의 규범으로 치워 버리려 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 또한 엄연히 주의 말씀임을 주의하라..[오히려 마침내 완전히 이루실 바 거울로 삼고 거기에 자기의 행위를 비추어 살펴 보라...은혜를 통해 의롭게 된 자마다 성령의 도우심따라 살기만 한다면 저절로 이루게 하실 모습이기 때문이다] 즉, 예전의 정죄하는 행위언약이 아니라 이제는 은혜안에서의 언약이요 새로운 차원의 행위 언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이 율법 조항 하나 하나가 이제는 정죄에서 벗어난 믿는 이로서는 성령안에서 얼마든지 도달 가능한 목표, 곧 거룩함에 이르도록 비추어 주는 거울로서 거듭난 우리에게 거룩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는 여러 면에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거룩하게 하시려는 성령의 도우심과 격려로 성취 가능하다]. <우리의 극락의 진복누림 위해> 주께서 진정 원하시는 거룩함이기에, 결코 스스로 포기하여 주저앉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주 성령님 손 붙잡고 일심으로 한걸음씩 보조 맞추어 행하기만 하라, 그러면 이루리라는 주님의 격려가 있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우리는 "율법이 명하는 바를 저절로 이루도록 이끌리니, 성령안에 머무르는 네게 전능한 힘을 주겠다, 설령 때때로 실패하더라도 무한히 용서하고 보듬어 껴안으며 결코 너를 놓지 않으리라(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약속하는 [한량없는]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행위 언약의 아닌 은혜 언약 아래 있다는 얘기다. 곧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 아래 있는 것이다. 복음과 율법의 차이를 앞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비유로 얘기했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남편에게 결혼하는 비유를 들고 있다. Ⅰ. 우리의 첫 결혼은 율법과의 결혼이었다. 이 결혼은 결혼법에 따라 율법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다. 결혼법은 쌍방의 한 쪽이, 그게 어느 쪽이든, 죽을 때까지만 구속력이 있다. 그 이상은 효력이 없는 것이다. 둘 가운데 하나의 죽음은 서로를 풀어 놓는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는 그들을 율법을 아는 자들로 취급한다.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1절). 이미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상대로 얘기를 나눈다는 건 큰 유익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의도하는 진리를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는 신자들 중에 대부분은 유대인이었으며 율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율법이 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특별히 결혼법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모든 율법은 다 그런 식으로 제한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법이 그러하고 사회법이 그러하고 가족법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1. 법률의 의무는 여기서 끝이다. 살아 있을 때는 주인의 멍에 아래 있던 종도 죽으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욥 3:19). 2. 율법의 저주도 여기서 끝이다. 죽음은 율법의 끝마무리다. 한 행동은 한 인물의 죽음과 더불어 만료된다. 제 아무리 가혹한 법이라도 육체를 죽이는 데서 끝나니 그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율법을 상대로 살아 있었을 때는 그 율법의 능력 아래 놓여 있었다. 복음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기 전에는 곧 구약 시대에는 그러했다는 얘기다. 바로 결혼법이 이러했다(2절).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만 그에게 매이는 것이다. 철두철미 남편애개 매어 있기에 남편이 아닌 남과 결혼하면 음부 취급을 받는 것이다(3절). 이 경우에 그녀가 음부가 되는 건 딴 남자에게 더럽혀질 뿐 아니라 그에게 결혼하는 때문이다. 그것이 불의를 비호하는 수단으로 오용되어 하나님의 법도를 모독하는 처사이기에 더욱 더 악독한 것이다. 우리의 율법과의 결혼이 이러했다(5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곧 우리가 육적인 상태에 있을 때는, 죄와 타락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육신이 우리의 요소였을 때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였다." 우리가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을 때 불완전한 둑인 율법은 물살을 바로 잡지 못하고 더욱 광포하게 만들 뿐이었다는 얘기다. 아내의 마음이 그 남편에게 향하듯 우리의 마음은 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곧 죄가 우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얼싸안고 좋아라며 모든 걸 거기에 바쳤으니 날마다 그걸 밥먹듯 하며 그걸 기쁘게 해 주는 것만이 우리의 관심사였다. 마치 아내가 결혼법에 매이듯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었으며 이 결혼의 소산은 죽음에 이르는 열매뿐이었다. 곧 원죄에 의해서 죽음에 해당하는 실죄(實罪)가 소산으로 생긴 것이다. 율법에 의해 잉태된 욕정은(율법 이야말로 죄의 힘이다, 고전 15:56)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것이 죄와 율법에 결혼해서 생기는 후손이다. 이것은 우리 지체 중에 활동하는 죄의 정욕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이 우리를 상대로 살아있고 우리가 율법을 상대로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 Ⅱ. 우리의 둘째 결혼은 그리스도에게다. 이것은 어떻게 이뤄지며 그 이유는 뭣인가? 1. 아내가 그 남편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듯 우리는 죽음에 의해서 언약으로서의 율법에 대한 의무에서 자유롭게 되었다(3절). 양자 사이의 유사성은 별로 밀접한 것이 못된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너희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4절). 그는(어떤 사람들 생각처럼 율법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릴까 봐서) "율법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두고 "너희가 율법에 대해 죽어 있다"고 말한다. 세상과 우리사이에 대해 상호간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요 동시적인 사건이듯이 율법이 죽고 또 우리가 거기에 대해 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다(구원을 받았다, 흠정역)"(6절). "우리가"(카테르게데멘) 율법에 대해 "무효하게 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폐기되고 쓸모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율법이 우리에게 속박의 율법인 면에서 사문화된 걸로 얘기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 그 자체뿐 아니라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의무와 죄에 대한 도발이 모두 사문화되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사문화되고 영향력을 상실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은"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받으신 고난과 죽으심, 부활을 통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을 폐기하고 그 요구 사항을 완전히 해결, 곧 율법과의 매인 관계를 완파시켰고 은혜의 언약을 확보해 놓았으니 이 은혜의 계약 속에 율법으로는 불가능한 의와 힘이 믿는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과의 연합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었다. 세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합하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믿음에 힘입어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는다. 곧 죽은 종이 그 주인과 결별하여 무관하듯이, 죽은 우리는 그 율법과 별 볼일 없게 된다. 2. 우리도 그리스도와 결혼하였다. [주님은 말씀하신다...나는 너와 결혼하였다!!] 우리가 믿는 날은 우리 주 예수님과의 혼인 날이다. 그분과 종속 관계 의무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결혼해서, 흠정역)"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완곡한 표현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죄와 율법에 대한 우리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죽음 곧 그의 십자가에 못박힘과 일치하듯이, 새 생명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우리의 헌신이 그리스도의 율법과 일치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부활하셔서 존귀케 된 예수님과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니 이야말로 매우 영광된 결혼이 아닐 수 없다(고후 11:2; 엡 5:29 참조).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이처럼 결혼하게 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다. (1) "우리도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4절). 결혼의 한 목적은 다산(fruitfulness)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후손"(말 2:15)을 얻기 위해 이 제도를 정해 놓으셨다. 아내는 가끔 열매 많은 포도덩굴로, 자녀는 그 태의 소산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제 그리스도와의 결혼의 위대한 목적은 사랑, 은혜 및 모든 선한 일에 있어서의 풍성한 수확(fruitfulness)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맺어 드리는 열매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요, 그의 뜻에 합치하는 것이요 그의 영광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 죄와의 결혼이 사망을 수확하였듯이 우리의 두 번째 그리스도와의 결혼은 하나님에게 의의 열매를 맺어 드리는 것이다. 선행은 새로운 본성의 자녀 곧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의 소산이다. 마치 열매많은 포도 덩굴은 그 포도나무가 뿌리와 잘 연합한 결과이듯이 말이다. 우리의 주장과 핑계가 그 무엇이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에게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선행을 낳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가능하다(엡 2:10). 좋은 열매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열매일 뿐이다. 여기에 위선자와 독선가들의 선행과 신자들의 선행의 차이가 있으니 곧 후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곧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맺어진 열매다(골 3:17). 이것은 물론 경건의 위대한 신비 중에 하나다. (2)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6절). 새로운 남편에게 결혼했으면 우리의 행동을 바꿔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섬기는 일은 마찬가지어야 한다. 그러나 죄악의 종살이가 철저한 고행이었듯이 이것은 철저한 자유의 섬김이다. 이제 우리는 새 영으로, 새로운 정신적 규범에 의해서 새로운 정신적 원칙으로 곧 영과 진리로(요 4:24) 섬겨야 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이뤄진 우리의 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우리가 그를 섬기는 방향으로 말이다. "의문의 묵은 것으로"가 아니라 곧 법조문에의 집착만을 자랑으로 여겼지 영적인 예배의 면에는 생각이 없던 육적인 유대인들처럼 그저 외적인 섬김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다. 법조문은 우리를 죽여 속박과 공포의 상태로 집어 넣지만 우리가 이 멍에에서 벗어난 이유는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뜻에서다(눅 1:74, 75). 이제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이어야 하고 영으로 섬겨야 마땅하다(고후 3:3 이하 참조). 이제는 더 이상 바깥 뜰에서가 아니라 장막 속에서 예배하는 게 마땅하다. ----------- 율법의 우월성(롬 7:7-14) 전항에서 얘기한 것에 대해 사도는 스스로 반론을 제기하며 이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내리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바울이 죄의 지배를 말하면서 언약으로서의 율법이 지배적 영향을 너무도 몹시 강조했기에 흔히 이것을 율법에 대한 비난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그는 이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기 체험에 비추어 언약이 아니라 안내자로서의 율법의 우월성과 효용성을 재입증해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죄가 어떻게 계명을 등에 업고 날뛰는가를 더 자세히 얘기해 주고 있다. 상세히 살펴 보자. Ⅰ. 율법 자체의 우월성. 바울이 율법을 비난한다는 건 거리가 먼 얘기다. 그는 오히려 그걸 적극 칭찬하고 있다. 1. 이것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12절). 율법이 일반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세부적인 계명에 있어서도 그렇다. 법률은 그 입법자를 드러낸다. 위대한 입법자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시기 때문에 그의 율법 도한 그렇다는 건 필연적이다. 그 본질이 거룩하며 그게 명하고 격려하는 것 모두가 거룩이다. 그것이 거룩함은 거룩의 장본인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게 의로운 것은 형평의 원칙과 올바른 이성에 합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도는 올바르다. 그 목적에 있어서도 그건 선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의 유익 곧 이 세상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걸 준수하는 자들을 또한 선하게 만든다. 그것이 의도하는 바는 인류의 개선과 복리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은혜가 있는 곳에는 율법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데 대한 동의가 따르기 마련이다. 2. "율법은 신령하다"(14절). 그것은 우리를 신령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그 효과가 신령할 뿐 아니라 그 범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으니 그것이 우리 영혼에까지 미친다는 의미에서다. 그것이 영적인 증거는 많다. 그것은 속 사람의 동기를 억제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음의 생각과 뜻의 감찰자"이기 때문이다(히 4:12). 그것은 영적 악행, 마음의 살인, 그리고 마음의 간음을 금하며, 동시에 그것은 영적 예배를 명하고 마음을 통채로 요구하며 하나님을 영으로 예배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스스로 영이시요 모든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요, 그 주요 부분이 영적인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 영으로 말하면 인간의 최고 부분이다. 따라서 율법이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율법이 영혼에게 주어졌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이점에 있어서 곧 하나님의 법이 영적이라는 면에서 그것은 다른 모든 법을 넘어선다. 다른 법은 "헤아림과 상상" 곧 마음의 배도를 어찌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마음속 에 있는 죄악을 포착해 내고 만다.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렘 4:14). "우리는 이것을 알도다." 진정한 은혜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영적인 성격을 체험으로 알게 마련이다. Ⅱ. 그가 율법에 의해서 발견한 위대한 혜택. 1. 그것은 노출시키는 일을 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7절) 곧은 자가 있어야 구부러진 걸 발견하고, 거울이 있어야 우리 얼굴의 흉터와 허물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회개에 꼭 필요하고 화목과 사죄에 필요한 죄에 대한 지식도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저 율법에 비춰 비교해 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특별히 그는 제 10계명의 율법에 의해서 비로소 탐심이 죄라는 걸 알게 되었다. 탐심이라는 말은 그에게 있어서 우리 속에 내주하는 죄, 그 근본동기와 작용 곧 타락한 원리를 뜻한다. 이것을 그는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할 때야 알게 되었다. 율법이 직접 말하는 바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 그렇다고 말하는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곧 율법의 영적인 의미와 가치에서 얘기를 한다는 말이다. 영적 의미에서 그는 탐심이 죄라는 걸, 그것도 아주 지독한 죄라는 걸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마음의 동기와 바램이 죄 쪽에 기울어 있으면 무서운 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바울로 말하면 통찰력이 예리하고 모든 학문에 통달한 사람이었는데도 성령께서 율법을 가지고 그에게 알려 주기 전에는 내주하는 죄를 바로 알지 못했었다. 타고난 인간에게 있어서는 원죄에 대한 지식보다 더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성경께서 율법으로 알려 주기 전에는 전혀 백지상태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이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서 상처를 찾아 싸맬 준비를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죄는 계명에 의해서만 죄로 들어난다(13절). 제 모습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들어내는 것이다. 계명에 의해서 "심히 죄되게"(극히 죄악스러운, 흠정역) 모습을 들어낸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에서다. 우리가 죄를 율법, 그것도 율법의 영적인 성격과 비교해 보기 전에는 죄속에 들어 있는 무시무시한 독과 악의를 끝내 지나치고 말 것이다. 죄를 율법에 빛투어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게 바로 악이요 쓰디쓴 장본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2. 그것은 겸손하게 하는 작용을 했다(9절). "내가 살았더니." 그는 자신을 높이 평가했었다. 자기 생각에는 살아 있는 것 같아 보였고 자기의 상태는 선으로 가득찬 것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그가 "전에"(포테) 바리새인이었을 적에 바로 그는 이러했다. 당시 사람들은 스스로 다들 기만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한때 그는 그들과 똑같았으며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그가 "율법을 깨닫지 못했기"(율법밖에 있었기에 흠정역) 때문이다. 비록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자란 율법 박사요, 그걸 철저하게 준수하는 실천가였지만 그래도 "율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법조문은 외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율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즉, 율법의 영적 의미는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맹이 없는 껍질뿐이었다. 손과 머리에는 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없었다. 모양만 가졌을 뿐 그 능력은 없었다. 영적으로는 죄 가운데 죽어 있으면서, 자신들 생각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부지기수다. 이 모든 과오의 원인은 그들의 율법에 대한 무지다. 그러나 "계명이 이르매"(눈에 뿐 아니라 마음에 보이게) 그 능력과 함께 계명이 등장하자, 햇살이 어두운 방에 비취면 먼지가 들어나 보이듯이 "죄가 살아났다." 바울은 전에 보지 못했던 걸 이제 죄 속에서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죄의 원인, 악독한 뿌리, 타락한 경향, 뒷걸음질치려는 속셈, 그 색채, 그 추함, 더러움, 의로운 율법의 파괴, 무서운 절대자에 대한 반항, 주권적인 왕관을 땅에 내던지는 모독, 그 결과, 죄의 발 밑에 도사리고 있는 사망, 그리고 거기에 깔려 있는 저주, 이 모든 것을 그는 죄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죄만 되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스스로 좋게만 생각하던 나 자신을 이제 달리 보게 되었도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곧 성령께서 계명을 들어 내가 죄에 머물러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죽음의 상태에 있다는 걸 확신시켜 주셨도다." 여기에 율법의 탁월한 효용성이 있다. 그것은 등불과 빛으로서 영혼을 개종시키고 눈을 뜨게 하며 바위를 가르고 산을 고르며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에게 마음을 돌리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춰 준다. Ⅲ. 본성의 율법 악용. 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8절). 개종하기 전에 그렇게도 뛰어났던 그에게도 각종 탐심이 있었다. 율법의 의에 대해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탐심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낳은 장본인은 죄, 내주하는 죄, 곧 타락한 본성(죄를 저지르는 죄를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요 이것이 계명을 핑계로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병든 몸의 풍기는 악취 냄새 같은 것이 그걸 처치하는 치료가 강력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부풀고 악취를 낸다. 바로 그러하듯이, 타락한 본성도 율법의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억제 규정이 아니었던들 그처럼 대책없이 비대하게 되고 횡포를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락한 본성이 "금지된 것을 향해 기울어지는 것은"(in vetitum niti) [일단 한번 그 선을 넘어섰기에] 어렵지 않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이후로 우리 모두는 통행금지된 길만을 넘나들고 있다. 상처를 주는 것, 금지된 것만 보면 병적인 식욕이 당기는 것이다. "법이 없으면," 마치 동면하는 뱀처럼 "죄는 죽은 것임이라." 율법의 햇살이 와 닿아야만 [비로소]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것이다. 2. 그것이 "나를 속였다". 죄는 죄인을 속이는 데 그 속임수는 아주 치명적이다(11절). "그것으로"(계명으로), "나를 죽였도다." 일견해 보면, 율법 그 자체에는 겉보기에 죄악스런 욕심에 대한 뚜렷한 경고나 위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죄는 곧 그 자신의 타락한 본성이 여기에 힘을 얻어 [죄가 안된다는 식으로] 그 악함과 치명적 위험성과 폭발력을 [평토장한 무덤처럼] 위장하고 그럴듯하게 미혹한다. 마치 뱀이 우리 조상에게 하듯이, "네가 정녕 죽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죄는 그를 속이고 죽였다. 3.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에 만들었다"(13절). 탐심을 이루는 것은 죽음을 가져 오게 마련이다. 죄의 삯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사특하고 타락한 본성이 율법을 곡해하고 죄지을 기회를 타지, 선한 것이 그럴 리는 만무하다. 향기로운 꽃에서 독을 빨아내는 것은 죄뿐이다. 이제 여기에 죄가 등장한다. 죄가 저지르는 극악한 일은 물론 그게 죄 그 자체에 더 없이 어울리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율법을 곡해하는 것이요 거기에서 기회를 타 더욱 더 악독하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생명을 얻도록 제정된 계명이-곧 행복과 안식의 길잡이의 역할을 하게끔 된 그것이-본성의 타락으로 죽음을 가져 오게 되고 말았다(10절). 저 구원의 바위에 부딪혀 으스러지는 영혼이 그 얼마이던가. 동일한 말인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구실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구실을 하고 마는 것이다. 똑같은 태양이라도 꽃밭에 비치면 향기를 더 하지만 그것이 똥더미 위에 내리면 악취만 더 할뿐이다. 똑 같은 열이지만 밀랍을 녹이기도 하며 흙을 굳게 하기도 한다. 똑같은 어린애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넘어지게 했는가 하면 또 많은 사람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오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우리 영혼이 머리를 숙이는 길이 있을 뿐이다. 거슬러 올라 가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거기에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 -------------- 은혜와 타락의 갈등(롬 7:15-25) 여기에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은혜와 타락, 하나님의 율법과 죄의 율법 사이의 투쟁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두가지 면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일부 사람들이 바울이 이들을 상대로 얘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대로, 마음에 확신은 하지만 아직 중생하지 않은 영혼 속에 있는 갈등이요 다른 하나는 중생하여 성화되었지만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영혼 속에 있는 갈등이다. 이 양자 가운데 사도는 그 어느 쪽을 두고 얘기하는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어 왔다. 그가 죄 아래 팔려 죄만 행하지, 선한 것을 행하지 않는 영혼을 두고 말할 때는 그 악의 지배가 너무도 광범위해서 이걸 육신을 쫓지 않고 영을 쫓는 중생한 영혼에게 적용하기는 아주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인정하며 그걸 즐거워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섬기는 면에 있어서는 그 선의 지배가 너무도 광범위하기에 이걸 죄로 죽어있는 중생하지 않은 영혼에게 적용하기는 참 난처하다. Ⅰ. 먼저 이것을 확신은 하고 있으나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영혼이 느끼는 갈등을 보도록 하자. 곧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걸 행하지 않는 영혼이요 보다 더 탁월한 것이 뭔 줄 인정하며 그것의 교훈을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그걸 어기며 사는 영혼이다(2:17-23). 그가 범하는 죄에 대해 그러지 말도록 증거하는 것이 자신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한 양심이 그 죄를 경고하며 찌르는데도 그런 죄를 범하는 것은 아직 이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욕정의 지배에 짓눌려 사는 노예로 머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중생하지 않은 인간이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율법에 의해서 확신은 되었으나 복음에 의해서 변화되지 않은 그런 자들만이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6:14)고 말한 바 있으며 이 증거로 은혜 아래 있지 않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죄의 지배 아래 있을 수 있고 또 그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율법은 죄를 발견하고 확신시킬 수는 있으나 그걸 정복하고 굴복시킬 수는 없다. 율법을 그렇게도 확신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의 압도 아래 있는가를 보면 이해가 가는 얘기다. 더러움을 지적은 하면서도 씻어 없애지는 못하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만들며(마 11:28) 죄의 짐은 무겁게 하지만 그 짐을 털어 버리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하고 절규하게 하면서도 그를 건져 내기엔 너무도 무력하기에(8:3) 쇠고랑을 찬 노예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 두며 속박의 영을 주어 두려워하게만 할 뿐이다(8:15). 이제 율법의 의해서 이러한 단계까지 오른 영혼은 그리스도가 주는 자유의 길목에서 멀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주저앉아 버리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벨릭스 총독도 두려워 떨기만 했지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진 않았다. 뜬 눈으로(민 24:3, 4) 지옥에 간다는 말도 이해가능하다. 곧 일반적인 환신으로 머리가 깨어 있으면서도 자책하는 양심을 가지고 악마를 섬기는 것이다. "율법의 선한 것을"(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흠정역) "시인"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법도 알기를 즐거워하기도 하고(사 58:2 에 있는 그들처럼) 마음 속에 죄를 반대하고 성결의 편을 드는 게 있으면서도 죄에 대한 지배적인 애착에 이 모든 것이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술주정뱅이나 기타 속된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죄를 따나고 싶은 가느다란 바램은 있지만 그래도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 자신들의 확신은 그처럼 무력하고 무용한 것이다. [일종의 중독상태인 바]이러한 모든 걸 이해하고 찬동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사도의 의도가 바로 이것이라면 왜 일인칭을 썼으며 그것도 현재 시재를 썼는지 비록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자신의 정죄받은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 일로 광범위하게 다룬 바 있다(7절 이하). "나는 죽었도다.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만약에 그가 바로 이 상태를 자신의 현재 상태로 곧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상태로 얘기하는 거라면 그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Ⅱ. 그것은 성화된 영혼 속에 일어나는 은혜와 타락의 끈질긴 투정으로 보는 게 낫겠다. 은혜의 원리가 살아있는 곳에도 내주하는 타락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건 뻔한 얘기다. 이 타락이 날마다 약해서 저지르는 죄의 형태로 드러나 보여지고 있다(이건 은혜의 상태와 일치한다)는 점도 더 더욱 뻔한 얘기다.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셈이 된다(요일 1:8, 10). 참된 은혜는 이러한 죄와 타락을 상대로 투쟁하지, 그것을 허용치 않으며 그걸 증오하며 슬퍼하고 짐같이 여기며 끙끙대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실한 얘기다(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로 이것이 여기서 강론하는 사도의 얘기에 포함된 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의 의도는 성화의 특성을 더 상세히 설명하는 데 있는 셈이다. 곧 성화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죄없이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남아 있는 타락과의 투쟁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 성화의 목적이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투쟁한 것은 우리의 죄몫으로 쳐지지 않을 것이요 그 승리는 은혜를 통해 마침내 우리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의 투쟁은 뱃 속에서의 야곱과 에서의 투쟁이요 가난 복지에서의 가나안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간의 투쟁이요,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이ㅡ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위대한 것이, 마침내 승리하고 말 것이다.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살펴 보자. 1. 그가 불평하는 것, 내주하는 타락의 잔재. 이것을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율법은 중생한 사람이라도 의롭게 할 수 없다는 걸, 제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선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법대로 따진다면 자신 속에 자기를 정죄할 소지가 충분히 있으며 이것은 율법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율법을 충족시킬 수 없는 우리 자신의 타락한 본성의 잘못 때문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다. 여기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는 것은 바울 자신이 그가 쓰고 잇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통감하고 있으며 그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1)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14절). 그는 고린도 교우들을 상대로 얘기할 때도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들이란 말을 사용한다(고전 3:1). 영적 생명이 있는 곳에도 육적인 애정의 잔재는 남아 있는 법이요 그런 만큼 인간은 "죄 아래 팔려" 있는 것이다. 영에속한 사람, 영적인 생명의 사람이라 해도 아합처럼 자신을 [스스로를 포기함으로써 자원하여]악행에 파는 것이 아니다.(왕상 21:25) [아담이 죄를 범해 넘어졌을 때 그에 의해 팔렸다.] 다만, 불쌍한 노예가 팔려서 자기 의사에 반대되는 주인의 뜻을 행하듯이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 가운데 태어났기에 죄 아래 팔려 있는 것이다. (2)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15절). 또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19, 21절) 하는 것도 같은 얘기다. 타락의 위력이 그 정도이기에 그는 그렇게도 바라고 열망하는 성화 속에서의 완전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완전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지만 거기에 이미 도달한 것도 아니요 완전해진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빌 3:12). 모든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뜻을 완전하게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것이 그의 확고한 판단이었다)은 꿀맛 같았지만 그의 타락한 본성은 그를 곁길로 잡아 그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하늘 높이 치솟고 싶은데 끌어 당기는 쇠고랑과 같은 것이요 똑바로 던졌지만 빗나가게 하는 둥근 공에 붙은 혹과 같은 것이다. (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18절) 여기서 그는 타락한 본성을 설명하는데 이걸 그는 육이라 부르고 있다. 이 타락한 본성이 있는 한 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바닷가 바위나 모래 위에서 옥수수를 기대할 수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본성은 어떻게 해서든 죄를 범하지 않지만(요일 3:9)육은, 곧 옛 본성은 어떻게 하든 선을 행할 수 없다. 도대체 뭣 때문인가? 그건 육신이 죄의 법을 섬기며(25절) 그 법의 지배와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이요 그것이 이 상태에 머물러 잇는 한 어떠한 형태의 선이든 기대하기는 어렵다. 타락한 본성을 다른 곳에 서는 육이라 부르고 있으니(창 6:3; 요 3:6...저들이 육이[육체가...죽을 몸이] 됨이라) 이 육을 가진 자들에게 선한 것이 거할 수는 있겠지만 이 육이 있는 한 선은 없다. 육은 어떠한 선이든 감당할 능력이 있는 주체가 아니다. (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율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죄/마귀의 지배력]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23절). 타락하고 죄 많은 성향이 여기에는 율법에 비교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선한 동기를 누르고 제어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지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에 보좌를 펴고 계시니] 죄의 도구가 되는 것은 몸의 반역적인 지체들뿐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는 이것을 [성욕뿐 아니라 보다 정교한 욕정의 자리인 타락한 본성을 두고 일반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마음의 법, 새로운 본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 곧 정반대의 길로 이끌며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 일만 골라 가며 하는 것이니 타락한 성향이야말로 포악한 포로 상태 이상으로 영혼에게 크나큰 부담과 비애를 안겨 주는 것이다. 그것이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포로로, 흠정역)"가는 것이다.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는 말도 똑같은 얘기다. 곧 타락한 본성, 중생하지 않는 부분이 계속해서 죄를 향해 작용한다는 얘기다. (5) 그의 일반적인 불평(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가 불평하는 것은 사망의 몸이다. (우리가 이 몸에 있는 동안은 우리는 타락으로 괴로워하게 될 것이요 우리가 죽게 되면 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다는 뜻) 이것은 필연적으로 죽어가기 마련인 육신의몸을 두고 하는 말이 든지 죽음에로 곧 영혼의 파멸로 치닫는 죄의 몸, 옛 사람의 몸, 타락한 본성의 몸을 두고 하는 말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의식 율법에 있어서 죽은 몸을 만지는 것이 불결한 것이듯이 실죄가 죽은 일이라면(히 3:14) 원죄는 죽은 몸인 것이다. 이것이 마치 바울에게 있어서 죽은 몸이 달라 붙어 있어 어디를 가든 질질 끌고 가야 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고 절규하기에 이른다. 어떠한 상황에 있어서나 자족할 줄 아는 그가 그의 이 타락한 본성은 이처럼 불평하는 것이다. 나더러 바울을 두고 그의 사람됨을 얘기하라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오 축복받은 인간이여! 그대는 그리스도의 대사요, 하늘의 총아요, 수천의 영적 아버지로다!"하고.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보았을 때는 타락한 본성이 따라다니기에, 곧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선을 기꺼이 행하지 못했기에, 획득하지도 못하고 완전해지지 못했기에 자기는 비참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는 비참한 절규가 따른다. 그것이라면 진절머리가 났으니 그걸 없앨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는 투요 그래서 자기에게서 그의 타락한 본성을 떼어 놓을 친구가 없는가 하고 살피는 눈치다. 내주하는 죄의 잔재야말로 은혜로운 영혼의 고통스런 짐이 아닐 수 없다. 2. 그가 위로로 삼는 것. 그가 처한 상황은 슬펐지만 몇 가지 위로가 있었으니 세 가지 위로다. (1)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심은 자기 속에 선한 원칙의 지배와 통제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구속받은 영혼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한 길로만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선한 원칙의 지배란 하나님의 율법으로 여기에 대해 세 가지 점이 지목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성화된 모든 사람에게만 잇는 것이지 그밖에 다른 사람에게 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① "내가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16절). 여기서 (suvmfhmi)는 "내가" 그 율법에 "표를 던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판단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율법의 가혹성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율법의 훌륭함에 대한 동의도 있기 마련이다. "그 자체로서 좋을 뿐 아니라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이 말은 율법이 마음에 쓰여 있다는 것을 곧 영혼이 그 형태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성화된 판단은 율법의 평형성뿐 아니라 그 우월성까지도 동조하는 것이니 율법에의 일치가 인간 본성의 최상의 완전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존귀와 행복이기 때문이다. ②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22절) 그의 양심은 율법에의 자족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율법의 약속뿐 아니라 그 말씀의 교훈과 금지사항 모든 면에 있어서 즐거워하였다. 여기의 (sunhvdomai)는 점진적인 "즐거움"을 뜻한다. 그는 이 점에 있어서 모든 성도들과 일치한다. 구원에 이르도록 중생받고 거듭난 자들은 모두 진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아는데 대해 즐거워하며 그걸 행하는 걸 즐거워한다. 곧 그것의 권위에 즐거이 복종하고 이 복종 가운데 흐뭇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 마음과 생활이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합치할 때 그처럼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속 사람으로는"의 "첫째" 의미는 육신의 육감적인 취향과 뜻에 반대되는 마음이나 이성적인 기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혼은 속 사람, 곧 거듭난 마음이다. 그리고 그곳이 은혜로운 즐거움의 자리다. 그러므로 이 즐거움이야말로 진지하고 은밀한 것이니 속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고후 4:16). 그 "둘째" 의미는 새로운 성품이다. 새 사람을 가리켜들 "속 사람"(엡 3:16)이라, "마음에 숨은 사람"(벧전 3:4)이라 부르고 있다. 바울도 그가 성화받은 만큼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③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25절). 율법에 동의하고 그걸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섬겨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통채로 그걸 순종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는 얘기다. 바울의 마음의 경우가 그러했으며 모든 성화된 새 마음이 그러했다. 이것이 일상적인 길이요 진로다. 그게 영혼의 흐름인 것이다. "내 자신이"(아우토스 에고)하는 말은 그가 제 1인칭으로 직접 말하고 있음을 명백히 해 주는 말이다. (2) 잘못은 그의 본성의 타락에 있으며 이것을 그는 심히 아파하고 그것에 대해 분투하고 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는 이것을 두 번이나(17,20절)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핑계가 아니라 그가 실망 가운데 전락하지 않고 자원하는 영혼을 받아들이고 육신의 약함을 사죄하는 은혜 언약에서 위로를 얻는다는 증거에 대한 구실이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면 악을 저지르는 죄가 우리 속에 거하고 있다는 정죄는 마땅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마찬가지로 여기서 내주하는 죄가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에 대해서 반항을 제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동의는 이미 표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죄의 율법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나선다. "그건 내가 아니다. 그 사실과 나는 무관하다. 그것의 진행은 나의 마음에 반대되는 처사다." 마치 의회에서 나쁜 다수당이 모든 일처리를 그릇되게 경정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회의 결정이지만 그러나 정직한 소수당은 이에 반대 투쟁을 벌이며 그 결정을 슬퍼하며 끝까지 반항하는 경우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직한 소수당의 일이 아니다. "내 속에 거하는 이것 '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조공을 바치며 사는 가나안 족속들처럼 죄가 내 속에 거한다는 뜻이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그 자리에 내주하려 한다. (3) 그의 크나큰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25절). 이런 저런 불평을 하는 가운데 그는 갑자기 찬양을 터뜨린다. 여러 가지 공포와 비탄에 대한 특별 처방은 찬양을 드리는 데 있다. 맥빠져 의기 소침해 가는 많은 영혼이 경험한 그대로다. 우리의 모든 찬양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는 것이 노래의 골격을 이뤄야 한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하고 그는 도움을 어디에서 구해야 할 줄 모르는 나머지 당황하고 있는 투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완전 충족적인 친구를 발견하였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영, 내주하시는 성령...바로 그분이 내안에서 당신을 친히 확장하시며 속사람을 새로이 하사 그리스도를 빼어닮도록 만들어 가시며 친히 찬송-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