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6장 [149. 주달려죽은 십자가] [384 '나의갈길다가도록] [314.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내구주예수님주같은분은없네
[왕하10:15...*15...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 ::::: 임마누엘 나의 주여, 주님께서 절대적 진실-신실-거룩하심 같이..보혈-말씀-성령으로 오소서!!... 새롭게 하신 오늘 하루, 매순간마다.. 주께 대해, 그리고 모든 이 하나하나에 대해 그러하도록!! 오직 주님이면 족하오니...열린 하늘로부터 새로이 주님 영광 부어 적셔 점유-충만 감동하심으로 운행하사 저를 일깨우소서...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소서...하나되신 주 임재 움직임 더 새로이 생생히 알리시며 주님 생각과 마음-심정 일러주시며 보이시며 깨닫게 하소서,,, 친히 주장하사 이끄시며 일하시며 행하소서...나의 그리스도 주님께서 친히 거듭난 내 안에 사심 이루사, 그리스도 주님을 살며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내 입에 채우시는 바 감동따라 하게 하시는 말씀만 담대히 하도록 이끄소서 ::::
===언약궤가 돌아오다...(백성이 등 돌렸기에!!)주님 홀로 일하고 계심!!..오 주여!!, 오늘, 내게 사는 분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셔야만 합니다!! [사63:1-5...*1.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그러므로 주께 돌이키라, 그분을 찾고 그분 이름을 부르라!!)) *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주여, 주님마음따라 갈망하며, 기다리며 기대하며 순종하며 섬기오리니.(주여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 붙들어주사 올곧게 주님께 열어 비워 내어드리고 충만하신 주님을 살도록 도우시며 이끄소서!!, ,,오로지 일심-일편단심, 생생한 하나됨으로 주와 하나, 그 안에서 임마누엘 주님과 교통하며 나아갈바!!)..나의 주님 주님의 영원 경륜의 갈망 그대로 이루소서!! 참 제사장-선지자-왕의 기름부음 받아 섬기는 왕들 <생명과 본성/성품에 있어서 Q-사람, Q의 사람, 그리스도-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게 하신, 그 명분 그대로 가진바> 거듭난 참생명 그리스도를 사는, 참되게 믿는자, Q의 아들들은 주님이 인정하시는 왕들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그 몸의 지체들이니, 그들이 나타나 주께 합당하도록 주를 섬기는 그 때, 합당하다 여기시는바 이 땅에 주님 거처 <새 예루살렘> 친히 완성하사 세우시며 거기 영원히 이름 두시며 머무실 것 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속건제에 대해서도 (주님 주신) 참된 지식 없음 드러냄..오직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 없음 .....사람에게는 직접 독종으로(항문 농양) + 동시에 쥐를 풀어놓으심으로 땅의 작물 손상 극심케 하셨을것(아니면 쥐로 인해 발병하는 독창과 비슷한 모양과 증세라고 오해)??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궤의 이동에 대해 일일이 지시하신 분 ((영존하시는 여호와, 거룩하신 Q) 주님의 상세 명령, 그 참된 지식도, 깨달음도 없음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영원하신 Q께 합당한 [Q 말씀 그대로 전심으로 합당하게 순복함..궤 이동에는 반드시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고 운반케 하셨음에 대한 깨달음-순종도 없음!!] + <전존재의 회개, 그나마 일말의 참 회개 기미조차 없기에!!> 영혼구원에 까지는 결코 이르지 못했고, 결국 겉치레(속임!!)에 불과함을 드러내고 있음...결국,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버림) 스스로 놓치고 있었음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다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사심과 호기심에 이끌려, 모든 금령 어기고 자의적으로!!)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수4:6-8...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 먼저 [그리스도, 곧 하나님 말씀, 언약궤]를 메고/붙들어 하나됨으로써 ..이끄시는 주와 함께 보조 맞추어!!. 찬송하며!! 앞서 행하시는 분과 함께!! 따라 걷기!! (새로운 경험 안으로!!) 나아가, 들어서고, 건너라!! ===.....[아마드!! = 하나이신 여호와, 그분 안에서, 그분 앞에서 동거함(상호 거함-상호 교통-상호 누림-상호 기업-상호 맛봄)으로 섬김]..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아마드-מדַעָ <것이 믿음이다....히브리어 <아마드מדַעָ<는 하나님 앞에서 일어서다의 의미가 있다 뜻을 분명히 하다((주와 함께 ... 모든 것을 멈추고 앞만 바라보다 ... 말씀 앞에 돌아오다... 지금까지 <내> 방법대로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만을 바라 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는 것을 의미...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확정하는 것... <아마드מדַעָ<는 기적의 Key이다 ... 하나님만을 바라 보는 경건과 거룩함으로 옷 입으려는 태도이니... 하나님의 얼굴만을 바라보는 믿음인 것이다 --- 믿음으로 <일어서다><들어서다>가 <아마드מדַעָ< ...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는 믿음이 순종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 ... 믿음의 정면돌파요, 뒤로 물러 서지 않고, 제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믿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그 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니!! 믿음으로 시작하는 순종의 행동에는 항상 응답이라는 열매가 있다 ...당장은 아무 것도 안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능력이 그곳에 함께 하고 있음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뒤로 물러 날 길은 전혀 없다 ...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아갈 길을 미리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 믿음으로 <일어서는 아마드מדַעָ <순종을 원하시는 시간이다!! .......==히브리어 야차브(끝까지 <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 발휘함으로써!!>견고히/굳건히 <의심 없이!! 신뢰로 끝까지!!> 서다)...[출14:13-15...*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5.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두려워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이루시는 구원을 보기만 하라" 여기서 '가만히 서서'는 히브리어로 '히트야차브'인데, 이 말은 '견고히 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자기의 자리에 견고하게 서서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다. 두렵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그저 우리 자리에서 굳건히 서는 것이다.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하나님 나라가 본향인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하는데, 그 악한 세력이 강하여 우리 힘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우리가 약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싸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저 우리의 자리에 견고히 서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얘야 이제 너는 내 옆에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해라. 내가 어떻게 저들을 상대하고 무찌르는지 잠잠히 지켜보기만 해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싸우시니 이 싸움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우리 편이 이기는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대를 쳐부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기분 좋은 구경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저 네 자리에 견고히 서서 내 솜씨를 지켜만 보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견고히 서게 된다. 언제나 그렇지만 믿음이 답이다.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 [KJV]제6장 1. And the ark of the LORD was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seven months. 2. And the Philistines called for the priests and the diviners, saying, What shall we do to the ark of the LORD? tell us wherewith we shall send it to his place. 3. And they said, If ye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send it not empty; but in any wise return him a trespass offering: then ye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be known to you why his hand is not removed from you. 4. Then said they, What shall be the trespass offering which we shall return to him? They answered, Five golden emerods, and five golden mice,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for one plague was on you all, and on your lords. 5. Wherefore ye shall make images of your emerods, and images of your mice that mar the land; and ye shall give glory unto the God of Israel: peradventure he will lighten his hand from off you, and from off your gods, and from off your land. 6. Wherefore then do ye harden your hearts, as the Egyptians and Pharaoh hardened their hearts? when he had wrought wonderfully among them, did they not let the people go, and they departed? 7. Now therefore make a new cart, and take two milch kine, on which there hath come no yoke, and tie the kine to the cart, and bring their calves home from them: 8. And take the ark of the LORD, and lay it upon the cart; and put the jewels of gold, which ye return him for a trespass offering, in a coffer by the side thereof; and send it away, that it may go. 9. And see, if it goeth up by the way of his own coast to Bethshemesh, then he hath done us this great evil: but if not, then we shall know that it is not his hand that smote us: it was a chance that happened to us. 10. And the men did so; and took two milch kine, and tied them to the cart, and shut up their calves at home: 11. And they laid the ark of the LORD upon the cart, and the coffer with the mice of gold and the images of their emerods. 12. And the kine took the straight way to the way of Bethshemesh, and went along the highway, lowing as they went, and turned not aside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and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nt after them unto the border of Bethshemesh. 13. And they of Bethshemesh were reaping their wheat harvest in the valley: and they lifted up their eyes, and saw the ark, and rejoiced to see it. 14. And the cart came into the field of Joshua, a Bethshemite, and stood there, where there was a great stone: and they clave the wood of the cart, and offered the kine a burnt offering unto the LORD. 15. And the Levites took down the ark of the LORD, and the coffer that was with it, wherein the jewels of gold were, and put them on the great stone: and the men of Bethshemesh offered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d sacrifices the same day unto the LORD. 16. And when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had seen it, they returned to Ekron the same day. 17. And these are the golden emerods which the Philistines returned for a trespass offering unto the LORD; for Ashdod one, for Gaza one, for Askelon one, for Gath one, for Ekron one; 18. And the golden mice, according to the number of all the cities of the Philistines belonging to the five lords, both of fenced cities, and of country villages, even unto the great stone of Abel, whereon they set down the ark of the LORD: which stone remaineth unto this day in the field of Joshua, the Bethshemite. 19. And he smote the men of Bethshemes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the ark of the LORD, even he smote of the people fifty thousand and threescore and ten men: and the people lamented, because the LORD had smitten many of the people with a great slaughter. 20. And the men of Bethshemesh said, Who is able to stand before this holy LORD God? and to whom shall he go up from us? 21. And they sent messengers to the inhabitants of Kirjathjearim, saying, The Philistines have brought again the ark of the LORD; come ye down, and fetch it up to you. --------- 1 Samuel 6 Amplified Bible ===The Ark Returned to Israel 1 Now the ark of the Lord had been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for seven months. 2 And the Philistines called for the priests and the diviners (seers), saying,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Lord? Let us know how we can send it back to its place.” 3 They said, “If you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do not send it empty [without a gift]; but be sure to return [it] to Him [together with] a guilt offering. Then you will be healed, and it will be known to you why His hand is not removed from you.” 4 Then they said, “What shall the guilt offering be which we shall return to Him?” They answered, “[a]Five golden tumors and five golden mice,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lords (governors) of the Philistines, for one plague was on all of you and on your lords. 5 So you shall make replicas of your tumors and of your mice that ravage the land, and give glory to the God of Israel; perhaps He will lighten His hand [of judgment] on you and your gods and your land. 6 Why then do you harden your hearts [allowing pride to cause your downfall] just as the Egyptians and Pharaoh hardened their hearts? When He had severely dealt with them and mocked them, did they not allow the people [of Israel] to go, and they departed? 7 Now then, make a new cart and prepare two [b]milk cows on which a yoke has never been placed; and hitch the cows to the cart and take their calves back home, away from them. 8 Then take the ark of the Lord and put it on the cart; and put the articles of gold which you are returning to Him as a guilt offering in a box beside it. Then send it away [without a driver]. 9 But watch, [c]if it goes up by the way of its own territory to [d]Beth-shemesh, then [you will know that] He has done us this great evil. But if not, then we will know that it was not His hand that struck us; this disaster happened to us by chance.” 10 And the men did so, and took two milk cows and hitched them to the cart, and corralled their calves at home. 11 They put the ark of the Lord on the cart, and the box containing the golden mice and the replicas of their tumors. 12 And the cows went straight toward Beth-shemesh along the highway, lowing as they went, and did not turn away to the right or the left. And the Philistine lords (governors) followed them to the border of Beth-shemesh. 13 Now the men of Beth-shemesh were gathering their wheat harvest in the valley, and they looked up and saw the ark and rejoiced to see it. 14 The cart came into the field of Joshua of Beth-shemesh and stopped there. A large stone was there; and the men split up the wood of the cart [for firewood] and offered the cows as a burnt offering to the Lord. 15 The Levites had taken down the ark of the Lord and the box beside it, in which were the articles of gold, and put them on the large stone. And the men of Beth-shemesh offered burnt offerings and made sacrifices that day to the Lord. 16 When the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saw what happened, they returned to Ekron that day. 17 These are the golden tumors which the Philistines returned as a guilt offering to the Lord: one for Ashdod, one for Gaza, one for Ashkelon, one for Gath and one for Ekron [the five chief cities of the Philistines]; 18 also the golden mice, according to the number of all the cities of the Philistines belonging to the five lords, both fortified cities and [unwalled] country villages. The large stone on which the Levites set the ark of the Lord remains a witness to this day in the field of Joshua of Beth-shemesh. 19 The Lord struck down some of the men of Beth-shemesh because they had looked into the ark of the Lord. He struck down 50,070 men among the people, and the people mourned because the Lord had struck the people with a great slaughter. 20 The men of Beth-shemesh said, “Who is able to stand before the Lord, this holy God? And to whom shall He go up from us?” 21 So they sent messengers to the residents of Kiriath-jearim, saying, “The Philistines have returned the ark of the Lord. Come down and take it up to you.” ===Footnotes 1 Samuel 6:4 It was customary in some ancient cultures to make replicas of injured or diseased body parts as offerings to gods for healing. These were called votive offerings. Moreover, worshipers of pagan gods often were not adverse to acknowledging the existence of other, powerful gods outside their own cultures, and in this case the exploits of the God who was inflicting their punishment were already well known (v 6). 1 Samuel 6:7 Here this refers to cows still nursing their calves. 1 Samuel 6:9 The nature of the milk cows would be to turn back toward their calves, not proceed forward, as they did, toward Beth-shemesh. 1 Samuel 6:9 A town belonging to the tribe of the sons of Judah. ====== 사무엘상 6장 (개요) 본 장에는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온 기사가 있다. 이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뒤를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제사장들의 충고를 듣고 이를 돌려 보냈다(1-11).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많은 선물을 보냈다(3-5). 그들은 소가 은근히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뜻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섭리는 그 젖소들을 이끌어 곧장 이스라엘 땅으로 가게 했다(8, 9). 2.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받아들였다. (1) 큰 기쁨과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12-18). (2) 호기심에 이끌리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그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른 성읍으로 보내기로 작정했다(19-21). --------- 궤를 돌려 보내기로 작정(삼상 6:1-9) 제6장의 맨 처음에 나온 말은 여호와의 궤가 얼마나 오랫동안 노획당했었던가를 말해 준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라고 되어 있다. (원래는) “블레셋 사람의 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여러 성읍에 다 보내보았지만 그때마다 그곳 주민들이 재앙을 입는 것을 보고 드디어 그들은 그것을 빈들로 내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역시 많은 쥐들이 나와서 거의 익어서 추수할 때가 다 된 곡식들을 망쳐 놓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는 재앙의 심판을 통해(5절), 그들이 그 궤를 어디로 가지고 가든지 그들이 그 궤를 노획하고 있는 한 그들이 저주를 당하리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하여 주셨다.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 28:16). 그러나 우리는 기록된 대로 단순히 “블레셋 사람의 지방”이라고 보아야 한다. --- 궤를 빼앗김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현현의 징조로서의 징벌을 일곱 달 동안 받았다. 여호와의 궤가 없는 회막은 얼마나 텅 빈, 허전한 것으로 보였을까! 거룩한 도성이 얼마나 쓸쓸했으며, 거룩한 땅이 얼마나 황폐했을까? 그 일곱 달이란 기간은 선한 백성들, 특히 사무엘에게 있어서 매우 우울한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궤가 어디에 있든지,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며,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공적인 의식에서 위로받을 길이 막혔을 때에도 믿음과 기도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궤가 비록 멀리 있어도 하나님 자신을 우리 가까이 모실 수 있다. ---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가 나타남으로 오히려 일곱 달 동안 징벌을 받았다. 그들이 그것을 제 고장으로 돌려 보내지 않는 한 그들은 재앙을 면할 수가 없었다. 죄인들이 그들의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계속 비참한 생활을 면할 길이 없다. 바로의 마음이 그렇게 강퍅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일찍이 떠나가게 했던들 애굽이 당한 재앙은 열 가지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여호와의 궤를 붙잡고 있는 한, 달리 치료할 길은 없었다. Ⅰ.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이 자문에 응했다(2절). 그들은 지혜의 법과 또 제사법이나 속죄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고 추측되었기 때문이다. 탁월한 종교 의식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이웃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이나 관습에 익숙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문을 받은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어떤 백성이든지 그들의 제사장들의 입에서는 모든 대답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존경한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예언자가 있었을까?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여호와 앞에 이를 수 있으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Ⅱ. 그들은 만장일치하는 가운데서 충분한 충고를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그들 나라의 방식대로 공식적으로 이를 자문하지 않았다. 1. 그들은 바로와 애굽인들의 경우를 볼 때(6절), 그 궤를 돌려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주기가 싫었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궤를 멀리 두고 좀 더 시험해 보기를 원했을는지 모른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렇게 쏘아 붙였다 . “애굽인과 바로가 그 마음을 강퍅케 한 것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겠느냐?” 그들은 모세의 역사를 잘 알며, 그것을 마음대로 인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잘 이용하여 우리도 완악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를 지연시켜야 하며, 우리의 마음을 그들처럼 강퍅케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애굽인들은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도 드디어는 궤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도록 굴복당할 것이다. 2. 그들은 그 궤를 돌려보낼 때 속건제의 제물도 함께 보내라고 충고했다(3절). 다른 백성의 신은 어떤 신이든 간에,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으며, 그 하나님은 그 자신의 백성에게 속죄제와 속건제를 엄히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궤가 붙들려 갔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진노하시리라는 것을 알알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며, 그리하지 아니하면 병이 낫지 못하리라”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상을 입은 의로움은 반드시 보상을 요구한다. 자연의 빛조차도 인간에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그 배상품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의 생각대로 완전히 잘못 처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궤에 대해서 행한 것 같이, 불의로 진리를 막은 사람들은(롬 1:8), 그들이 상처를 입힌 사람과 화해할 길은 오직 속죄제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만 한 가지의 방법으로 죄를 없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3. 그들은 이 속건제의 제물이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은 형벌을 사죄하는 것이 되도록 지시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굴복당하고 범죄한 자신들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으며, 가장 능하신 정복자이시며, 가장 의로우신 복수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화를 돌려보내게” 했다(5절). 그들은 “독종”의 형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곧 그들이 괴롬을 당한 종기와 화농인데, 그러한 치욕적인 질병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길이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시 78:6). 다음에는 또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야만 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승리의 날에도, 그처럼 보잘것없는 작은 짐승을 가지고도 그들을 혼내주고 꺾어 버릴 수 있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형상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목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값비싼 금속인 금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들은 “아무리 좋은 금”을 사용하더라도 조금도 값비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금독종”의 숫자는 “방백의 숫자”에 따라서 다섯이어야만 했다. 그들은 아마 피해를 받은 사람들일 것이며 그러한 결정에 만족했을 것이다. “금쥐”도 역시 다섯 개를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온 땅이 그 피해를 입었으며, 금쥐의 수는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의 수와 같다는 두 번째의 생각으로 볼 때(18절), 그 숫자는 그 이상이었다고 보여진다. 제사장들은 “그들 모두에게 내린 재앙이 일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똑같이 재앙을 당한 것으로 볼 때 다 같이 죄를 범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죄과에 대해서 속건제를 드리도록 제안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충분히 하늘의 계시에 따라 순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러한 속건제의 제물로 그와 같은 물건들을 보낸다는 것은 매우 일방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그들이 모세의 율법이 가르치고 있는 화해의 방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은 인간의 대속을 위해서는 금이 아니라, 피가 요청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런 방법이 바로 재앙을 면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소망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병도 나으리라”고 하였다(3절). 그들의 의사가 처방해 준 치료법은 그처럼 완강한 질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그 궤를 그들에게 돌려보내라. 그리하면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다시 말하면 너희가 궤를 돌려보냄으로 재앙이 그친다면, 너희에게 내려졌던 질병이 바로 너희가 그 궤를 붙잡아 둠으로 인해 발생했던 것임이 명백히 드러나리라.” 하나님은 때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개과천선이 그들의 구원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이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하셨다(말 3:10; 학 2:18, 19). 하지만 그들은 “그가 혹 그 손을 너희에게 대해 경하게 하실까 하노라”라는 식으로 의심쩍게 말했다(5절). 그들은 이제서야 겨우 그 궤를 속히 돌려보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오는 심판이 임하실 것이며, 그렇게 하면 자비하심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원인을 제거해야 작용하는 힘을 중지시킬 수 있다. 5.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내린 재앙이 정말 이스라엘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인가 아닌가를 좀 더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들은 궤를 위해서 새 수레를 마련하고, 날마다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던 두 젖소로 하여금 이를 끌게 하였다(7절). 그 소들은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이 먹이를 먹던 구유를 위해서나 그들이 먹이던 송아지들을 위해서 집안에 있고 싶어 하던 소들이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로 가는 낯선 길을 향해 가야만 했다. 그 젖소들은 끄는 사람이 없이 자기들끼리만 찾아가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 소들이 자기 집을 향해 도로 올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기적처럼 역사하여, 그 소들로 하여금 자연적인 동물의 본능에 거슬러 가면서도 이스라엘 땅, 구체적으로 말하면 벧세메스로 가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을 취소하며, 그들이 당한 재난은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들에게 임한 것”이라고 믿고자 했기 때문이다(8, 9절). 이처럼 하나님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셨으며, 시험을 당하셨다. 그들의 신 다곤이 이러한 모욕을 당했을 때 그들은 그래도 좋다고 만족할 수 있었을까? 악인들이 얼마나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정죄의 손길을 피해 보려고 애쓰며, 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우연한 것”이라고 얼마나 믿고 싶어 하는가 보라! 만일 그렇다면 그 채찍은 그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소리는 아무 것도 들려주지 않을 것이다. ------ 궤가 돌아옴(삼상 6:10-18) Ⅰ.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돌려보낼 때 어떻게 돌려보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10, 11절). 블레셋 사람들은 궤를 빼앗아 왔을 때만큼 그것을 떠나 보낼 때도 기뻐했다. 하나님은 그 궤를 한 가정의 속박에서부터 이끌어 내셨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포로된 신세로부터 이끌어 내셨다. “애굽인들도 이스라엘이 떠날 때 이를 기뻐하였다”(시 105:38). 1.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상당히 많은 액수의 보상금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고레스에 대한 예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사 45:13). “그가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2. 아니 오히려,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금은 보배를 보태어 주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패전의 전리품 모양으로 블레셋 땅으로 이끌려 갔던 하나님의 궤가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불명예를 영원히 기념하게 하는 자신의 전리품을 이끌고 돌아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에 거슬러 행동하는 교회의 원수들이 아무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결코 자신의 영광에 손상을 입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 드디어는 자기를 경멸하는 자들에게서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 분이시다. Ⅱ. 그 소들이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이스라엘 땅으로 모시고 왔는가를 보여 준다(12절). “그것들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였다.” 벧세메스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스라엘의 성읍이었으며, 제사장의 성읍이었다. “그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이것은 미물 짐승까지라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보여 주는 산 예증이다.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못한 소들이 어떻게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곧장 앞으로 끌고 갈 수 있었는지,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는 기적 이상의 것이다. 그것들은 이끄는 자도 없이, 본능적으로 늘 향하게 되던 자기 집을 떠나며, 더욱이 자기들의 송아지가 있는 집을 거슬러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은 끌고 가는 자도 없이 8~10마일 밖에 있는 벧세메스로 곧장 가야만 했다. 더욱이 길을 헛딛지 말며, 무엇을 먹으려고 길 옆으로 내닫지도 말아야 했으며,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려고 집으로 돌아가도 안 되었다. 그 소들은 새끼들을 생각하고 음매 소리를 내며 울면서 갔다. 그들이 결코 새끼 송아지들을 잊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연적인 본성은 비록 짐승이라도 새끼를 두고 떠날 때 비탄을 금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연의 강한 충동을 이기기 위하여 더 능력 있게 역사하셨다. 이 두 마리의 젖소에 대해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말하기를 “그들은 그들의 위대하신 임자를 알았다”(사 1:3)고 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임자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이에 대해서 그 젖소들은 하나님의 궤를 되돌려 오기 위해 아무 일도 해 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어리석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로 그 궤를 되돌려 주었다고 덧붙여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섭리는 비록 미물 짐승의 행동까지라도 철저하게 이끄시며, 그것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뜻을 펴신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상당한 수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놀라워하면서 그 소들을 뒤따라갔다. 한때는 하나님의 궤에 대해 승리자로 군림했던 저들이 이제는 마치 머슴 모양으로 그 뒤를 따랐던 것이다. Ⅲ. 이스라엘 땅에서 그 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보여 준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밀을 추수하고 있었다”(13절). 그들은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지 않았으며,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 알아보지도 않았다. 만약 관심을 나타냈다면 그들은 그가 궤가 돌아오기 전에 이를 은근히나마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를 맞이하러 갔을 것이며,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땅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집은 황무하게 하고 자기 집은 단장하기에 바빴던 사람들” 모양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원수가 방해하건, 그의 편 사람들이 협력을 하지 않건 간에 상관하지 않으시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그의 교회를 구원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가 돌아올 때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한가하게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들에서 밀을 거두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쁜 소식이 목자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들은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마귀는 게으른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 은혜를 끼친다. 젖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땅으로 곧장 오도록 이끄신 보이지 않는 손이 이번에는 그 소들을 여호수아의 밭으로 인도하여 그 밭에 이르러 서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들이 거기에 선 것은 그 밭의 주인이 선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곳에 서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큰 돌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러 선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 돌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기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그 돌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이 되었다(14, 15, 18절). 1. 거두는 자들이 “궤를 보았을 때 기뻐하였다”(13절). 그들의 기쁨은 밀을 거두는 기쁨보다 더 컸다. 그리하여 궤를 환영하기 위해 그들의 일거리를 버려둔 채 마중 나갔다. 여호와께서 그 궤를 포로 가운데서 돌리실 때 “그들은 꿈꾸는 자 같았으며,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다”(시 126:1, 2). 비록 그들은 궤를 도로 찾아오기 위해, 그것을 보상해 오기 위해 열심을 다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그들은 충심으로부터 이를 환영했다. 하나님의 궤가 돌아오며, 억압과 환난의 날이 지난 다음에 거룩한 의식이 다시 시행되게 될 때,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쁨은 말할 수 없으리만큼 클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젖소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으며 수레의 나무를 패서 번제의 불을 피우기 위한 장작으로 삼았다(14절). 아마 블레셋 사람들도 처음에 궤를 돌려보면서 이것들이 그들이 드리고자 하고 속건제의 제물 일부가 되기를 바랐었는지도 모른다(3, 7절). 하여간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것들을 보자, 이를 바르게 사용할 방법을 알아차렸다. 그것들이 만일 다른 데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바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을 운반했던 수레는 절대로 다른 세속적인 물건을 운반할 수는 없다. 소들 역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은 바가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따라서 모든 번제물은 숫놈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록 암놈일지라도 번제로 드려야만 했다. 3.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보내온 보물 상자와 함께 하나님의 궤를 들판에 있는 큰 돌 위에 놓았는데 여호와의 궤를 모실 자리로는 너무 냉랭한 곳이며, 너무 보잘것없는 곳이다. 하지만 다곤의 신전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있는 것보다는 좋다. 하나님의 궤는 장엄하고 광채가 빛나는 환경 속에 거처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있는 것보다는 나무가 우거진 돌과 큰 돌 위에 있는 것이 더 낫다. 비록 그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보잘것없고, 누추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사법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그 장엄함은 우리의 눈에 보기에 조금도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궤를 싣고 온 수레를 태워서 그 소들을 번제로 드린 것은 다시금 그들의 궤가 이스라엘 땅 밖으로 실려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으며, 또 그 궤를 큰 돌 위에 놓은 것은 그 궤가 이제는 굳건한 터전 위에 터잡아지기를 바라는 그들의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세웠졌다. 4.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어떤 사람들은 따로 흙으로 제단을 쌓지 않고 그 큰 돌 위에서 제사를 드렸을 것으로 본다(15절). 이때의 제사는 특별한 제사였다. 여기서는 회막에 있는 제단에서 드리는 제사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마 그때 실로가 무너져 황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가장 귀한 영광은 여기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 벧세메스는 단 지파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유다 지파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궤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온 것은 우연한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동안 그 궤를 두시고자 하는 의도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장막을 거절하셨을 때, 유다 지파를 택하셨다(시 78:67, 68). 벧세메스는 유다 지파로부터 떼어 “다른 자손”에게 준 땅이었다(수 21:16). 어떻게 해서 궤가 제사장의 성읍으로 온 것일까 ? 아마 그것은 이미 그 고장에서 궤를 내려놓고 번제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단지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15절), 그들은 제사장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 블레셋의 방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열심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은 채 에그론으로 돌아갔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곤 신의 예배를 저버릴 수 없었다. “어느 나라나 비록 신이 아니지만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바꾸어 섬긴 일은 거의 없다”(렘 2:11). 그들은 비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마땅히 거룩하시며, 영예로우시며, 두려워할 만한 분이시며, 찬양할 만한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하기는 하면서도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그들은 생각해야 하며, 그 신이 곧 자기들의 신이기 때문에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6. 그 큰 돌이 같은 곳에 계속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들은 그날까지도 거기 있었다고 한다(18절). 그 돌이 그대로 간직되었던 까닭은 그런 위대한 사건을 길이 기념하는 것이었으며, 후손들에게 전승되는 역사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돌은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부터 돌아왔을 때 안치되었던 그런 돌이다. 그 일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 벧세메스 사람들의 범죄와 형벌(삼상 6:19-21) Ⅰ. 여기에는 벧세메스 사람들의 범죄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았다”(19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깊은 숭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궤는 휘장 안에 가리어져 있으며 대제사장까지라도 일 년에 단 한 번만 그것도 향의 연기 속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마 이런 것 때문에 그처럼 많은 사람이 와서 보았을는지 모른다(그것은 금지된 것은 더욱 하고 싶은 인간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이유 때문에 어떤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것이 공개되었던 것보다도 더 그 궤를 볼 때 기뻐했는지(13절) 모른다. 하지만 단지 보는 것만으로 그들은 만족치 않았다. 그들은 단지 보기만 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의 일을 행했다. 그들은 아마 못 박아 놓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포장을 뜯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아마 블레셋 사람들이 증거의 두 돌판을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를 확인해 보고자 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감추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그런 것을 더욱 보고 싶어하는 그들의 죄악된 호기심을 만족시키려 했기 때문이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은 비밀한 것을 알아보고 캐려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크게 모욕하는 것이다(신 29:29; 골 2:18).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금지된 지식을 탐하다가 멸망했다.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본 커다란 죄는 하나님의 궤를 우습게 본 데서부터 나온 것이다. 이 경우 지나친 친밀함이 결국 멸시와 불경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은 아마 제사장들이 하는 모양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 직분의 위엄이 보상되었나 하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성물에 대한 불경을 한층 더 심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의 궤를 경외심을 가지고 우러러 보게 가르쳐야만 했다. 그들은 아마 그들이 베푼 궤에 대한 환대와 그리고 궤가 본토로 돌아온 것을 환영하여 그들이 드린 번제 때문에, 다시 말해서 그들이 그 궤를 위해서 행한 바가 많기 때문에 그 궤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보상을 받아도 좋으리라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한 바가 많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것에 대한 그의 불경과 무례가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 그 궤가 포로에서 갓풀려 나오고 아직 안주하지 못한 현재의 환경이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기에 그렇게 행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 그 궤는 차디찬 돌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이 보잘것없이 시행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명령 자체를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바르게 보며, 순전히 그 겉모양으로만 판단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궤가 그 어느때보다도 지금 바로 그 위엄의 극치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궤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이겼으며,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벗어나듯이) 그 속박을 벗어났다.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생각했다면 그들은 보통의 궤를 들여다 보듯이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보지 않았을 것이다. Ⅱ. 여기에는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의 기록이 있다. “여호와께서 벧세메스 사람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궤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질투를 많이 하신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자기에 대한 모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 그는 속임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의 은혜의 표를 두려운 마음으로 사용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노여움의 표를 받게 된다. 금지된 것을 캐 보려고 하며, 거룩한 불에 너무 가까이 가는 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오만 칠십인을 치셨다.” 여기 살육당한 자의 숫자는 원래 이상한 방법으로 기록되었다. 그처럼 많은 사람이 범죄했으며 그리고 살육당했겠느냐는, 그 불가능 때문에 그 본문이 바르게 기록된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원래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또는 사이에서) 칠십인, 오만인을 치셨다”라고 되어 있다. 시리아와 아라비아 역본에는 “오만 칠십인”이라고 되어 있다. 갈대아 역에는 “장로 칠십인과 일반인 오만”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칠십인의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오만 명과 맞먹는 것”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또 칠십인은 궤를 들여다 본고로 살육을 당한 벧세메스 사람의 숫자이고, 오만은 궤 때문에 살육을 당한 블레셋 지방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스무 명에 한 명씩 죽어가는 대량 학살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칠십인 즉 천 명 중에서 오십 명을 살육하셨다”라고 본다. 칠십인역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과 같이 “하나님이 오만인과 칠십인을 치셨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조세푸스(Josephus)는 단지 칠십인이라고 말했다. Ⅲ. 벧세메스 사람들을 휩쓴 무서운 공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20절). 어떤 사람은 이러한 말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해 주셨다는 불평을 하나님께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죄에 대해 책망하지 않고, 이와 비슷한 경우에 “다윗이 분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삼하 6:8, 9), 하나님과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 불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경외어린 찬양이라고 본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판단 앞에서 “누가 감히 이 궤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청함을 받고, 격려를 받고, 가능성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 쟁론하기 위해 그의 앞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설 수 있으며, 그것을 바로 쳐다볼 수 있겠는가?(딤전 26:16) 누가 감히 굽힐 수 없는 정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설 수 있으며, 자기의 옳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시 130:3; 143:2) 하나님께서 강한 팔을 휘두르실 때 누가 감히 그 앞에 설 수 있으며 그 매를 맞고도 버티고 설 수 있겠는가?(시 76:7) Ⅳ. 그 궤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그들의 원함을 기록하고 있다.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라고 그들은 물었다(20절).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화목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의 은혜를 되찾을 수 있는가?” 하고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미 6:6, 7). 그러나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궤에 대하여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만일 이때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정중히 모셨다면, 하나님의 궤가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이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들의 양심에 공포로 임하자, 그들은 자기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 말씀에 대해 쟁론을 제기하며, 이를 멀리했다(렘 6:10). 그들은 그들보다 훨씬 고지에 있는 강한 성읍 기럇여아림의 장로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이 내려와서 하나님의 궤를 그리로 가져 가라고 요청했다(21절). 그들은 감히 그들이 손을 대서 이를 가져다 주려고도 하지 않고, 위험한 물건으로 생각하고 다만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만 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달으며, 완고한 철면피에서 비굴할 정도의 수치심으로 곧장 달려갔다. “삼림의 성읍”인 기럇여아림은 유다 지파에 속해 있었다(수 15:9; 60). 그리고 벧세메스로부터 실로에 이르는 길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궤를 가지고 가라고 사람을 보냈을 때, 우리 생각에, 그들의 생각은 그 궤를 실로의 장로들이 가져가기를 원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궤가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옮겨지며 아무도 정식으로 돌봐 주는 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아직 이스라엘 왕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준다. ===호크마 =====6:1 여호와의 궤 - 여호수아 3 : 14-17 강해, '언약궤에 대하여' 부분을 참조하라. 블레셋 사람의 지방 - 여기서 '지방'( , 사데)은 '들', '밭'을 뜻한다는 점에서(창 2: 5 ;왕하 4:39), 그 당시 언약궤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 들(field)에 보관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언약궤가 들어간 도시마다 여지없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들에 보관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 한 것이다. 일곱 달 - 이것은 물론 문자적인 일곱 달(seven months)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경의 숫자 표기상 '일곱'(7)이라는 숫자가 보통 '완전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대책없이 빈 들에서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음을 강조한 말로 볼 수도 있다. =====6:2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잘못 다룸으로써 엄청난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제 정치적인 방법(5:8, 10, 11)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방식에 의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 '제사장'( ,코하님)은 구약 성경에서 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제사 직분자에게 적용되지만, 여기서처럼 이교(異敎)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된다(미 3 : 11). 그런데 이 이교의 블레셋 제사장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다곤(Dagon) 우상 숭배 의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한편 '복술자'( , 코세밈)는 원래 '몫을 나누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복술자(卜術者)는 작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다가 그것이 나뉘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점(占)을 치던 자들이었다(민 23:23;신 18:10). 그런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했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안에도 존재했고, 또한 지도층 인사로 분류되기도 하였다(사 3:2). 아무튼 이들이 소집된 것은,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는 구체적인 방법 및 궤를 다루는 요령에 대해, 그리고 복술자들은 궤를 돌려보낼 날짜와 시기 등에 대해 블레셋 방백들에게 조언하기 위함이었다(Pulpit Commentary).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 블레셋 방백들의 이 질문은 또다른 재앙 없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이었다. 본처로 보낼 것을 - 이 말은 법궤를 빼앗기기 이전 법궤가 안치되었던 실로(Shiloh)의 성소가 여전히 본래의 기능을 발휘 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영토로 쳐들어 갔고, 심지어 그들은 실로의 성소까지도 그때 파괴했던 것 같다(렘 7:12;26:6; Albright). 따라서 여기의 '본처'(本處)는 실로(Shiloh)라는 특정 장소를 뜻하지 않고, 단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6:3 궤를...거저 보내지 말고 - 본 구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은. 금 패물과 의복'을 받아 나왔던 사건과 유사하다(출 3: 21 ; 11 : 2; 12:35, 36; 시 105:37;스 1:6). 더욱이 두 사건의 밀접한 유사성(類似性)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써 명백히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첫째, 본서 6 : 8과 출애굽기 12:35 모두 언약궤 및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려보낼 때 함께 보낼 예물을 언급하면서 공히 '켈리'( , '물건')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둘째,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나 출애굽 시의 상황 모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극심한 징벌을 받은 후에야 (5 :3-12;출 7:10-12:30)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언약궤 및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돌려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한편 바로 이같은 사실 들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실수로 타인의 소유물이나 사람을 취했을 경우에는 그 실수를 깨달은 직후 잘못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돌려 보내면서 실수에 따른 보상금(補償金)을 지불 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Klein). 한편 여기서 '보내지'( , 테솰레후)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잘못으로 위한 물건이나 사람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가리킨다(창 20:7; 출 21:34;삼하 9 :7).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 여기서 '그'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뜻한다. 따라서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을 범하였음을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속건제'( , 아솽)는 모세 율법대로 따른다면 하나님의 성물(聖物)이나 인간에게 해(害)를 끼치는 죄를 범했을 경우에 그 죄를 속함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혹은 예물이다(레 5:14-16 강해, 속건제에 대하여). 이때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피해자에게 피해물 외에 별도로 1/5을 배상금 조로 주어야 했다(레 6 : 5, 6). 따라서 모세 율법에서 언급되고 있는 속건제(repayment offering)는 배상(賠償)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견지에서, 여기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모세 율법에서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속건제'(贖愆祭)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 '아솽'이라는 단어가 '배상'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고 볼 때, 블레셋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해 인간적 차원의 배상을 위하여 이와 같은 예물을 생각한 듯하다. =====6:4 블레셋 사람의 방백 - 당시 블레셋은 다섯 개의 주요 도시 국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도시는 자체의 방백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5: 8 주석 참조.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 - 여기서 '금독종'(golden tumor)은 여호와의 궤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임한 '종처'(腫處) 또는 '종양'(腫瘍)의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이고, '금쥐'(golden mice)는 쥐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것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당했던 재앙의 종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벌에 의하여 '쥐'를 통해서 맹렬히 전염되는 '독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였던 것 같다(5 :6). 한편 이와 같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들을 형상(形像)로 만들어 귀하게 여기는 일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당한 '불뱀 사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민 21: 4-9). 따라서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자들도 그러한 불뱀 사건의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설사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아니했다 할지라도 블레셋 술사들의 이러한 처방은 당시 이방 문화의 일반적 관습이었다. 즉 고대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어떤 소망을 빌거나, 혹은 감사의 표시를 할 때 그 내용을 형상화(形象化)하여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질병의 치료를 원하는 자가 그 질병든 모습을 금이나 은으로 형상화하여 신에게 바치는 경우, 난파선에서 구출된 자가 자신의 옷을 넣툰(Neptune) 신전에 바치는 경우, 해방된 노예가 그 쇠고랑을 신전에 바치는 경우, 승리한 검투사가 자신의 검을 신에게 바치는 경우 등이 있다(Pulpit Commentary;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ii.p. 63). 아무튼 이러한 배경하에서 여기 블레셋 술사들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자신들의 나라 바깥으로 보내고자 한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임할 재앙도 자신들의 나라에서 떠날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Payne). 너희와 너희 방백에게 내린 재앙이 일반임이니라 - '금독종'과 '금쥐'를 방백의 수효대로 다섯개씩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재앙이 임했을 때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5:8)도 일반 백성들처럼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들의 대표가 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대표의 수효에 따라 금독종과 금쥐 형상을 각파 다섯개씩 만들었던 것이다. =====6:5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 - 여기서 '땅'은 문자적 의미로 곧 '토지'를 가리킨다고 보기 보다는, 오히려 이것은 블레셋 국가 곧 '블레셋 족속'을 가리킨다고 봄이 좋다. 즉 블레섯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재앙의 근본 재앙의 직접적 원인이었기 때문에 '땅을 해롭게 하는 쥐'라고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라 - 이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잘 알지 못하여 그분께 범죄했던 자 들이, 이제 하나님의 크신 심판의 손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가리킨다(수 7:19;렘 13:16). 그러나 블레셋 술사들의 이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이처럼 이방인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영광을 회복하신다. 혹 - 여기서 '혹'( , 울라이)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대로 어떤 행동을 하실 수도 또한 안하실 수도 있는 하나니므이 주권(主權)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암 5:15). 그 손을...경하게 하실까 하노라 - 이것은 배상(賠償) 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진정을 기대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준다. =====6:6 바로가...강퍅케 한 것 같이 - 이것은 블레셋의 술사들이 출애굽 시에 하나님께서출애굽에 대하여 행하신 권능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4:8>.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 당시 주변 국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던 역사적 대사건이라는 점을 시사한다(출 15:14-16;수 2:10). 한편 여기서 '강퍅케 한'( , 테카베두)은 '무겁다'의 뜻을 갖는 어근 '카베드'( )에서 파생된 말로서, '마음을 스스로 완악하고 교만하게 하다'란 의미이다(출 7:3;10:20). 그가...기이하게 행한 후에 - '기이하게 행한'( , 히트알렐)은 '욕보이다', '조롱하다'란 뜻의 동사 '알랄'( )에서 파생된 말로서, 곧 상대방을 일개 장난감처럼 천하게 위급하는 것을 가리킨다(31:4;삿 19:25;렘 38:19). 즉 애굽인들과 바로는 마음을 강퍅케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이와 같은 징벌을 받았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애굽인과 바로 위에 행하신 기이한 일은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10대 재앙'(출 12:29-36 강해, 도표 참조)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 애굽인들과 바로가 하나님의 엄청난 재앙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내보낸 사실을 가리킨다. 블레셋의 술사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더이상의 재난을 당하기 전에 속건제의 예물과 함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속히 돌려보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6:7 새 수레를 만들고 - '새 수레'(a new cart)는 한 번도 세속적(世俗的)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같은 수레는 존재치 않았을 것이므로 블레셋의 제사장들은 그것을 새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블레셋 제사장들이 이처럼 법궤를 새 수레에 실어 보내고자 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그에게 경외심을 보이고자 했기 때문이다(Keil, Fay).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소 둘 - 이것 또한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전혀 사용되지 아니한 소를 가리킨다(민 19:2). 모세 율법에서도 정결 의식에 필요한 희생 제물은 이같은 조건에 부응해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신 21 :3). 젖 나는 소 둘 - 즉 새끼가 딸린 암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운반할 짐승으로 이같은 암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블레셋 제사장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족속들에게 내려진 재앙이 어디서 말미암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그들은 그 재앙의 근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인지 아니면 다만 우연인지를 궁금해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9절에서 블레셋 제사장들은 재앙의 근원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즉 그들은 그 수레의 진행 방향을 보아 그 재앙의 근원을 규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새끼가 딸리지 않은 암소를 사용한다면, 그 암소가 목적지를 향해 곧장 간다고 하더라도, 그 암소는 다만 본능대로 길을 따라 간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새끼가 딸린 암소를 사용할 경우, 그 암소가 새끼를 개의치 않고 그렇게 곧장 간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가 개입됐다고 단정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블레셋 제사장들은 새끼가 있어 그것들에게 젖을 물리는 암소를 법궤 운반용으로 택했던 것이다. =====6:8 금 보물은...궤 곁에 두고 - 블레셋 제사장들이 이같이 한 이유는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블레셋 족속에게 재앙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 예물로써 여호와의 꿰를 달래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6:9 벧세메스( , 베트 쉐메쉬) - '태양의 집'이라는 뜻.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이러한 의미는 일찍이 이곳이 가나안인들에 의하여 태양신이 숭배되던 곳임을 암시해 준다. 당시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 약 22km지점에 위치하였고, 블레셋 땅으로 연결되는 동서 골짜기에 있었으며,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유다 지파의 땅이었다(수 21 :13-16). 한편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이곳으로 보내려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어 있던 실로는 당시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심하게 파괴되었고(4:10 주석 참조). (2) 벧세메스는 언약궤로 인해 마지막으로 재앙을 당한 블레셋 도시 에그론과 제일 가까운 이스라엘의 성읍이며, (3) 벧세메스는 언약궤를 관리할 수 있는 제사장들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수 21:16). =====6:10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 블레셋 제사장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확실히 규명하기 위하여(9절) 이처럼 어미 암소를 젖먹이 송아지들로부터 격리시켰다. =====6:11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수레에는 여호와의 궤 뿐만 아니라 그 궤로 인해 발생된 독종 재앙과 쥐 재앙을 형상화(形象化)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도 함께 보내졌다(4절). 이것들은 여호와의 궤를 진정시키기 위한 속건 예물용으로서(3절), 상자에 담겨져 여호와의 궤 옆에 놓여졌다(8절). =====6:12 암소가...가며...울고 - 이와 같은 현상은 이 암소들로부터 새끼를 떼어 놓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이, 새끼 송아지에게 모성적(母性的) 본능이 이끌리면서도 하나님의 강권 하시는 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 이같은 사실은 블레셋의 제사장들이 스스로 기준을 세 운 바(9절)와 같이, 블레셋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았음을 명확히 보여 준다(7절 주석 참조). 대로로( , 비메실라 아하트) - 문자적으로는 '단 하나의 큰 길로'(along one highway, RSV)의 뜻이다. 결국 이것은 암소들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로 행했음을 암시해 준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여기서 '치우치다'에 해당하는 '수르'( )는 '빗나가다', '기울다', '떠나가다'란 뜻이다. 따라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란말은 종종 성경 안에서 철저한 순종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신 5:32;17:11;수 1:7). 여기서는 암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목적지 벧세메스로 곧바로 갔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1)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소들이 수레를 이끌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과, (2) 더군다나 젖 빨리는 새끼 송아지들을 둔 상태에서 좌우로 치우침 없이 곧장 갔다는 점은 분명 이 소들이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일깨워 준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천상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인 이시다. 블레셋 방백들은...따라가니라 - 블레셋 방백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1) 만약의 돌발 사태에 신속히 대처하며 (2) 재앙의 원인을 직접 확인키 위함이었다. =====6:13 벧세메스 사람들이...궤를 보고...기뻐 하더니 -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던 만큼, 법궤의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특히 제사장의 성읍(수 21 :13-15)인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다. 골짜기 - 이는 예루살렘 서남쪽 약 21km지점에서 지중해 쪽의 서북 방향으로 32km 가량 이어져 있는 소렉 골짜기이며(삿 16:4), 오늘날의 '와디 에스 사랄'(Wady es Sarar)과 동일 지역이다. 한편 삼손의 아내 들릴라가 살았던 딤나(Timnah)는 이 골짜기의 서남쪽 입구에 위치했었다(삿 14:1). 그리고 '벧세메스'(Bethshemesh)는 이 골짜기 남쪽 입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밀을 베다가 - '밀'(wheat)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곡식이었다(왕상 5 : 11).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 '밀' 수확은 보통 5, 6월 경에 이루어진다(Robinson). 한편 언약궤가 돌아온 때가 마침 밀을 수확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오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목격될 수 있었다. 눈을 들어 - 이 말은 먼 곳의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다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취하는 자세로서 성경의 관용어이다(창 24:63;33:1;민 24:2;수 5:13;삿 19:17 등). =====6:14 수레가...여호수아의 밭...이르러 선지라 - 수레를 끄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레가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까지 와서 딱 멈춰 선 것은 블레셋에 대한 재앙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내려졌음을 분명히 시사해 준다(9절). 그리고 여기서 '여호수아의 밭'( , 세데)은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 , 세데)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분명히 옮겨쟝음을 강력히 시사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언급되었다. 비록 여기의 '여호수아'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가나안 땅 정복의 위대한 지도자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Joshua)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였던 그 사람의 밭에 하나님께서 수레를 멈춰 세우신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큰 돌 - 여기서 '큰 돌'은 '돌'( , 에벤)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 , 추르)를 뜻하지 않는다(창 28:11; 출 31: 8; 수 4:5). 단지 땅 위로 드러난 굵직한 자연석(自然石)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이 큰 돌은 제단 대용으로서의 구실을 했다(Pulpit Commentary).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물(至誠物), 곧 법궤를 운반했던 수레는 절대로 다른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고, 다만 번제를 위한 땔감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벧세메스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에 따라 행해졌을 것이다.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 번제물은 반드시 수컷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레 1: 3-13>, 여기서 암컷을 번제로 드린 것은 특별히 이 소들은 성물을 운반하여 다시는 세속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곳 벧세메스의 희생 제사는 반드시 중앙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여호와의 명령(신 12:5-7, 11-14)에 심히 위반되는 제사는 아니었다(Keil). 왜냐하면 비록 이 희생 제사가 실로(Shiloh)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해졌지만 (1) 실로가 완전한 중앙 성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지정된 곳이 아닐 뿐 아니라, 당시는 블레셋 족속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고 (4:10 주석 참조). (2) 또한 무엇보다 그 때에 벧세메스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져 있었으며, (3) 그리고 그 제사가 레위인 제사장들에 의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됐고(15절), (4) 저자도 그 제사를 잘못된 일로 언급치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F.R. Fay). =====6:15 레위인은 - 여기의 이 '레위인'은 벧세메스에 거주하도록 지정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곳 벧세메스는 여호수아에 의해 아론 자손의 성읍, 곧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지역이었다(수 21:13-15). 따라서 여기 '레위인'은 아론의 후손들로서 곧 제사장일 가능성이 크다 (Mathew Henry, F.R. Fay). 여호와의 궤와...큰 돌 위에 두매 - 이와 같은 궤 운반 행위는 오직 고향 자손 레위인만이 할 수 있었다(민 3:25-4:28). 한편 고핫 자손 레위인(제사장)들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큰 돌 위에 두었는데, 이는 큰 돌 곧 커다란 자연석(自然石)을 순수하고 깨끗한 것으로 여기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볼 때(창 31 :45; 출 20:25; 신 4:13; 수 4: 3 ;왕상 7:9), 그 당시의 상황에서 벧세메스의 레위인들은 언약궤를 수레에서 옮겨놓을 장소로 그곳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금 보물 담긴 상자 - 당시 레위인들은 블레셋 방백들이 함께 보낸 이것을 언약궤가 놓여 있던 '큰 돌' 위에 같이 올려 놓았다. 이와 같이 한 이유는 당시 레위인들이 그 상자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제 - 이것은 성경에서 주로 '화목제'(和睦祭, peace offering)를 가리키는 말이다(민 7: 17, 23; 10 :10 ;수 22:23; 왕상 8:63; 대하 30:22). =====6:16 블레셋 족속을 대표하는 다섯 방백 들은 법궤의 귀환 과정을 빠짐없이 모두 목도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범궤로 인해 파생된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분명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마음 속 깊이 깨닫고 체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도시 에그론과 그들의 신 다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6:17 아스돗 - '진'(陳)이란 뜻으로 가사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교통 관문이다.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다(행 8:40). 5: 1 주석 참조. 가사 -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80km지점, 지중해 해안으로부터는 약 5km지점, 아스글론으로 부터는 남쪽으로 약 20km지점에 위치했다. 당시 이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남서쪽으로는 애굽으로, 북쪽으로는 수리아 ,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군사, 무역용 도로가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도시는 군대 및 대상(隊商)들이 취거나 물을 공급받았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Mare). 아스글론 - 이곳은 아스돗과 가사의 중간에 위치한 지중해변의 비옥한 도시이다. 가드 - 아스돗 동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도시로, 오늘날 '텔 엘 사피'(Tell el-Sahfi)로 추정된다. 5 : 8 ; 수 11 :22;13: 3 주석 참조. 에그론 - 지증해 연안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아스돗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 하나이다. 수 13: 3 주석 참조. =====6:18 본절은 사본(寫本) 전수 과정상 약간의 문제가 내포된 구절이라 볼 수 있다. 즉 맛소라 사본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본절 중 '웨에드'( , '그리고~에 이르기까지')를 '웨에드'( , '그리고 증거')로, '아벧'( , '슬픔', '통곡')을 '에벤'( , '돌')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Keil & Delitzsch, F.R. Fay, R. Payne Smith). 그렇게 볼 때 본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된다. "드린 바 금쥐는 모든 견고한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서 오늘까지 증거가 되니라"(And the number of the gold rats was according to the number of Philistine towns belonging to the five rulers-the fortified towns with their country villages, The large rock, on which they set the ark of the Lord, is a witness to this day in the field of Joshua of Beth Shemesh, NIV). 견고한 성읍 - 높은 성벽이 둘러쳐 있고 문과 빗장이 있었던 요새화된 성읍을 가리킨다(신 3:5). 시골 동리 - 이것은 '견고한 성읍'과는 반대 개념으로서, 저지대에 위치하였고 성곽을 갖추지 못한 작은 마을을 가리킨다(겔 38:11;슥 2:4). 그 돌은...오늘까지 있더라 - 성경에서 '돌'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건들을 세월이 흐른 후에도 생생히 일깨우게 할 증표로서 종종 언급되곤 한다(창 31 :52; 수 4: 5;24:27). 따라서 여기의 '큰 돌' 역시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시 되찾은 기념비적 사건을 후일에 되새기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한편 '오늘까지'는 본서를 기록할 그 당시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6:19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민 4:5, 6, 15-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것의 내부를 들여다 본 것은 사악한 세속적 호기심 때문이었으며, 그 같은 호기심은 결국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결과였다(갈 6:7).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궤를 전리품 취급한 블레셋을 정벌하셨듯이(5:1, 2), 그 궤를 단순히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정벌하신 것이다. (오만)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 여기서 '오만'이라는 숫자는 필사자의 실수에서 기인한 듯하다. 즉 숫자 표기를 종종 상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내는 고대의 숫자 표기 방식에 따라 '칠십명'( , 쉬베임 이쉬)을 달리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오만'이라는 말이 삽입된 것 같다. 어쩌면 '아인'( , 70)을 '눈'( , 50,000)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Kennicott). 아무튼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도 7만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오만 칠십 인'은 그냥 '칠십 인'으로 봄이 타당하다(Keil, Smith, Fay). 이런 점에서 유대의 역사가 요세 푸스의 기록도 '칠십 인'으로 말하고 있다(Antiquities, vi, 1, 4). 그리고 히브리 여러 사본들 에서도 '오만'이란 숫자는 빠져 있다.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 하나님의 징계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벧세메스 사람 '칠십 인'은 한 가정의 가장(家長) 등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었을 것이므로, 그 두려운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달아야만 했다. =====6:20 누가 능히 서리요 - 여기서 '서리요'( , 아마드)는 원래 '서다', '머물다', '시다' 등의 의미이다. 특별히 이 단어는 성경에서 '존경하는 자세로 어떤 특별한 대상 앞에 서있는 것', 곧 '경배' 혹은 '숭배'의 의미로 사용된다(왕상 1:2;17: 1;18:15;왕하 3:14;렘 40:10). 따라서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은 감히 받들어 모실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성과 인간의 철저한 부패성을 시인하는 말임에 틔림없다. 그를...뉘게로 가시게 할꼬 - 법궤를 경솔히 돌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자신들이 징계를 당한 분명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에게 언약궤와 관련하여 미신적 신앙이 다분히 있었음을 보여준다(4:3;5: 8) =====6:21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 여기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서 오늘날의 위치는 '쿠르엣 엘 에납'(Kuryet el Enab)으로 추정된다(Robinson).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위치하였다. 그러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다른 성읍들을 제치고 하필 이면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까? 그것은 그 당시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Blenkinsopp). 이 사실은 위의 두 성읍과 인근한 르바임 골짜기를 후에 다윗이 블레셋 족속들로부터 회복시켰다는 성경의 언급을 통해서 분명해진다(삼하 5 :18-25). 즉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를 완전히 수복시키기 전까지 위의 두 성읍은 당시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던 것이다. 너희는 내려와서 - 여기서 '내려와서'라는 말은 벧세메스(Beth-Shemesh)가 해발 약 305m, 그리고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이 해발 약 762m라는 점에서,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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