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2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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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4장


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8.  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22.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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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epts and Warnings

1 Do not be envious of evil men, Nor desire to be with them;

2 For their minds plot violence, And their lips talk of trouble [for the innocent].

3 Through [skillful and godly] wisdom a house [a life, a home, a family] is built, And by understanding it is established [on a sound and good foundation],

4 And by knowledge its rooms are filled With all precious and pleasant riches.

5 A wise man is strong, And a man of knowledge strengthens his power;

6 For by wise guidance you can wage your war, And in an abundance of [wise] counselors there is victory and safety.

7 Wisdom is too exalted for a [hardened, arrogant] [a]fool; He does not open his mouth in the gate [where the city’s rulers sit in judgment].

8 He who plans to do evil Will be called a schemer or deviser of evil.

9 The devising of folly is sin, And the scoffer is repulsive to men.

10 If you are slack (careless) in the day of distress, Your strength is limited.

11 Rescue those who are being taken away to death, And those who stagger to the slaughter, Oh hold them back [from their doom]!

12 If you [claim ignorance and] say, “See, we did not know this,” Does He not consider it who weighs and examines the hearts and their motives? And does He not know it who guards your life and keeps your soul? And will He not repay [you and] every man according to his works?

13 My son, eat honey, because it is good, And the drippings of the honeycomb are sweet to your taste.

14 Know that [skillful and godly] wisdom is [so very good] for your life and soul; If you find wisdom, then there will be a future and a reward, And your hope and expectation will not be cut off.

15 Do not lie in wait, O wicked man, against the dwelling of the righteous; Do not destroy his resting place;

16 For a righteous man falls seven times, and rises again, But the wicked stumble in time of disaster and collapse.

17 Do not rejoice and gloat when your enemy falls, And do not let your heart be glad [in self-righteousness] when he stumbles,

18 Or the Lord will see your gloating and be displeased, And turn His anger away from your enemy.

19 Do not get upset because of evildoers, Or be envious of the wicked,

20 For there will be no future for the evil man; The lamp of the wicked will be put out.

21 My son, fear the Lord and the king; And do not associate with those who are given to change [of allegiance, and are revolutionary],

22 For their tragedy will rise suddenly, And who knows the punishment that both [the Lord and the king] will bring on the rebellious?

23 These also are sayings of the wise: To show partiality in judgment is not good.

24 He who says to the wicked, “You are righteous,” Peoples will curse him, nations will denounce him;

25 But to those [honorable judges] who rebuke the wicked, it will go well with them and they will find delight, And a good blessing will come upon them.

26 He kisses the lips [and wins the hearts of people] Who gives a right and straightforward answer.

27 Prepare your work outside And get it ready for yourself in the field; [b]Afterward build your house and establish a home.

28 Do not be a witness against your [c]neighbor without cause, And do not deceive with your lips [speak neither lies nor half-truths].

29 Do not say, “I will do to him as he has done to me; I will pay the man back for his deed.”

30 I went by the field of the lazy man, And by the vineyard of the man lacking understanding and common sense;

31 And, behold, it was all overgrown with thorns, And nettles were covering its surface, And its stone wall was broken down.

32 When I saw, I considered it well; I looked and received instruction.

33 “Yet a little sleep, a little slumber, A little folding of the hands to rest [and daydream],”

34 Then your poverty will come as a robber, And your want like an arme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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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형통과 마음(잠 24:1-2)

Ⅰ. 여기 나오는 훈계는 앞에 나온 말씀(23:17)과 대동소이한 것으로서 악인을 부러워하거나 행복하다고 생각지 말라는 말씀이다. 죄인이 이 세상에서 제 아무리 번영을 구가하고매우 즐거워하며 든든히 하더라도 그와 같은 형편에서 살아 보았으면 하고 원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건한 신앙과 양심의 속박을 벗어 버리고 모모한 자들이 행하는 것같이 관능의 욕망에 마음껏 젖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따위의 생각이 결코 네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아니, 그런 자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행하는 대로 행하고 지내는 대로 지내고 싶어하지 말고, "네 분깃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지 말라.

Ⅱ. 여기에는 이 훈계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나온다. "저희 종말뿐만 아니라 그 길도 악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과 함께 생각하지 말라. 그들의 마음은 남에게 대한 강포(혹은 멸망)를 품고 있는 까닭이다(2절).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대한 강포(혹은 멸망)로 나타나나리라. 그들처럼 말하지 말라. 저희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신앙을 수치스럽게 하고 이웃을 악평하는 그릇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대한 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와 관계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너는 그런 자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으며 오히려 연민의 정을 품거나 아니면 그들의 악한 행위에 분노를 느껴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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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유익함(잠 24:3-6)

우리는 우리의 양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당한 수단으로 부자가 되고 자신과 가족의 지위를 높이며 재산을 늘리게 되는 자들을 보고도 부러워하는 마음이 듣기 쉽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런 유혹을 도외시하고 사람이 합법적이고도 정직한 수단에 의하여 사려깊은 경영을 하면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양심과 선한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자기 산업에 내리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일찍이 성공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자가 훨씬 더 오래 그 상태를 존속시킬 것이다.

Ⅰ. 본문이 우리의 외적 번영에 최선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은 "지혜"와 "명철"과 "지식"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것이 참 지혜인 까닭에)도 되고 우리의 외면적 사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슬기도 된다. 우리는 만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의 규칙에 따라 자신을 규제하고 그 다음에 분별의 법칙에 의해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참으로 경건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더러 있는데 그것은 슬기의 부족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아주 지혜로 우면서도 번영하지 못하는 자들 여깃 적지 아니한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명철에 의지하고 저희 행사에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자가 되려면 이 두가지를 다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Ⅱ. 본문에서 참 지혜의 혜택이라고 우리 앞에 내어 놓는 것은 지혜가 인간의 외면적 사업을 성공시키고 형통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1.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견고히 된다"(3절). 인간은 불의한 행위에 의해서 자기 집을 건축할 수도 있으나 그 집을 확고히 세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썩어 있기 때문이다(합 2:9, 10). 이에 반하여 정직하게 획득한 것은 강철같이 오래 갈 것이며 대대로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다.

2. 지식은 집을 부유하게 하고 필요한 가구를 공급해 준다(4절). 지혜와 공평을 자기 사업을 경영하며, 가진 것을 늘이기 위해 부지런히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동시에 사치하지 않고 근검 절약하고 금품을 자선에 소비하는 자들은 자기 상점과 창고와 "방들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될"것이다. 이들은 정직한 수고로 얻은 것이기에 "귀하다." "부지런한 자의 재물은 보배롭다." 이들이 "아름다운" 것은(원뜻:"즐거움") 경건한 즐거움으로 누리는 재물인 까닭이다.

어떤 자는 이것을 주로 영적 재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즉 "지식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방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인 성령의 은혜와 위로에 채워진다. 성령께서는 명철을 불밝혀 주심으로써 영혼에 대한 자기의 온갖 힘을 행하시는 것이다.

3. 지혜는 집을 강화시켜 성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지혜"는 공격용이든 방어용이든 "병기보다 더 낫다." "지혜있는 자는 강하고" 견고한 요새 속에 있으며, "지식있는 자는 힘을 더하며" 더 강하게 한다(5절). 우리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처럼 모든 은혜에서도 자란다(벧후 3:18). "지혜를 더하는" 자들은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느니라"(골 1:9, 11). 지혜로운 자는 요사가 무력으로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지혜로 이룰 것이다. 심령은 참 지혜로 말미암아 신령한 일과 영적 싸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강화되는 것이다.

4. 지혜는 한 가정과 나라까지도 다스릴 것이며 가사와 국정을 다 관장할 것이다(6절). 지혜는 대학도 세울 것이며, 또 국무회의도 주재할 것이다. 지혜는 다음 두 가지 경우에 소용된다.

1) 공적인 분쟁의 처리를 위해.

지혜는 분쟁에 말려 들지 않게 하나 정당한 명분과 성공할 가망성이 없는 분쟁이라면 더 더욱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일단 개입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분쟁을 잘 처리해 준다. 유리한 화평을 맺거나 명예로운 퇴각을 하는 데는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전쟁은 지혜로운 계략으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쁜 결과를 가져 오기 쉽다.

2) 공중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승리(또는 안전)는 묘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위험을 예견할 수도 있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이익을 분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 투쟁에서도 지혜는 필요하다. 우리의 원수는 간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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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와 미련한 자(잠 24:7-9)

Ⅰ. 약한 자에게 대한 묘사.

"지혜는" 그에게 "너무높다." 그는 지혜가 자기에게 너무 높다고 생각하므로 아예 거기 보겠다는 생각조차 포기하며 지혜를 추구하는 일에 조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지낸다. 또 실제로도 그에게 지혜는 너무 높은 것이다. 그는 지혜를 수용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득도 그에게는 전부가 무용지물인 것이다.

지혜를 획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좋은 소질을 지니고 있더라도, 미련한 지혜는 "너무 높은 것"이 된다. 미련하다는 것은 게을러서 수고하려 하지 않으며, 놀기 좋아하고 하찮은 것에 정신을 팔며, 쾌락에 탐닉하고 악한 생각을 품으며 나쁜 친구들과 교제하는 것은 말한다. 이런 자들은 지혜에 이르기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조국에 대한 봉사를 하기에도 부적합한 자들이다. 즉 그들은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국회나 판사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며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아서 머리수나 채우고 말 못하는 동상이 될 뿐만 아니라 거수기를 상징할 뿐이다. 그들은 말할 게 하나도 없으므로 아무 말을 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말해 봐야 주목을 끌지 못하며 나아가서 핀잔만 먹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청년드른 모름지기 지혜를 얻기 위해 고생을 불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은 공직에 취임할 자격을 갖출 수 있고 또 그 맡은 일로 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Ⅱ. 악인에 대한 묘사. 우매자로서 멸시받고 혐오까지도 받는 악인은 두 부류가 있다.

1. 은밀히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

이런 자들은 정중히 말하며 그럴 듯하게 처신하면서도 "악을 행하기를 꾀하며," 자기들이 원한을 품고 있거나 시기의 눈으로 보고 있는 자들에게 악행을 하려고 궁리한다. 그렇게 행하는 자를 "일컬어 사특한 자" 또는 "행악의 명수가 하느니라." 아마 이 말은 당시에 치욕의 대명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는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롬 1:30)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며 어떤 악행이 발생하면 그가 범인으로 지목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종범으로 의심받게 될 것이다.

"악을 행하기를 꾀한다"는 것은 "미련한 자의 생각"이다.(9절). 그것은 단지 어리석은 일인 듯 가볍게 취급되고 농담으로 일축되지만 실은 "죄"이며 엄청난 죄인 것이다. 이것을 "죄"라고 부르는 것 이상으로 나쁜 이름은 없을 것이다.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악을 꾀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옛뱀의 간교함과 독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보다 일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어리석은 행위로 말미암아 죄를 짓는다. 뿐만 아니라 비록 생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서도 죄를 짓게 된다. 그리고 마음 속에 맨 처음 떠오르는 죄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이다. 우리는 이때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게 된다. 사악하고 음란하며, 교만한 생가뿐만 아니라 미련한 생각까지도 죄스러운 생각이다. "악한 생각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게" 되면 그것은 마음을 다 더럽힌다(렘 4:14). 이것은 왜 우리가 "열성을 다하여 우리 마음을 지켜야"하며 스스로 선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악한 생각을 품어서는(창 6:5)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2. 공공연히 모욕적인 자들. 누구에게나 험한 말을 하며 모욕 주는 일이나 창피 주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조금이라도 명예나 도덕에 대한 인식이 있는 자라면 거만한 자와 교제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 "전염병자의 의자"(70인 역은 오만한 자의 자리를 이렇게 부른다. 시 1:1). 여서 지혜로운 자라면 전염될 것이 두려워 가까이 가지도 않을 것이다. 남을 추악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자들은 자신을 추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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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의 날에 담대하라는 권고(잠 24:10)

Ⅰ. 우리는 "환난 날에 낙담하기"쉽고, 의기소침하여 용기를 잃으며 우리 일을 중단하고 구원에 대해 절망하는 경향이 있다. 심령이 맥빠지면 손이 축 늘어지고 무릎도 약하게 되어 우리는 아무 일에도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흔히 즐거울 때 가장 기뻐하는 자들이 무슨 괴로움을 만나면 가장 풀이 많이 죽고 절망을 심하게 하는 법이다.

Ⅱ. 이것은 우리의 "힘이 미약하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그 미약한 힘을 더 악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네가 환경의 변화로 발생한 고난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결단성있고 의지가 굳거나 심사숙고하는 형의 인물이 아니고 믿음이라는 조금도 없는(믿음은 영혼의 힘이기에) 사람이라는 표시이다." 어떤 자는 너무 연약하여 아무 것도 참지 못한다. 고난이 "임하기만" 하여도(욥 4:5), 더구나 위협하기만 해도 그들은 즉시 기가 꺾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포기해 버린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자기의 환란을 해결하기에 부적합한 자가 되고 말며 스스로 도울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담대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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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한 자를 구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잠 24:11-12)

Ⅰ.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큰 의무.

그것은 바로 학대받는 무죄한 자를 구원하러 나서는 일이다. 우리는 생명이나 생계가 부당하게 박탈될 위험에 처해 있는 자들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그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들의 유죄 판결에 근거가 된 기소장의 허위성을 반증하며 그들의 결백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일도 없고 아무런 연고 관계가 개재되 있지 않더라도 정의를 향한 일반적인 추구를 위해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또한 힘과 폭력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자들을 구출할 만한 힘이 있는 경우에는 그들을 구해 주어야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자가 무지로 인해 위험에 직면하거나 불행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길 가는 나그네든, 항해 중의 배든, 기타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 자신에게 위험이 초래되는 것을 무릅쓰고 급히 그들을 도와 주고 "권하지 아니치 말라."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한 경우에 구원의 손길을 늦추거나 태만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우리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Ⅱ. 흔히 이 의무의 불이행시 내세우는 구실에 대한 응답.

너는 "보라,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우리는 그 자가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줄 알지 못하였노라. 우리는 그 자가 무죄할 줄 확실히 알 수 없었으며 그의 결백을 증거할 방법도 알지 못하였고, 그에게 유리하도록 모종의 일을 행할 것도 알지 못하였노라.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를 도왔으리라"고 말한 것이다.

1. 이와 같은 변명을 하는 것은 쉬운 것이며, 그것으로는 세인의 비난을 피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했노라". 혹은 "우리가 그것을 잊었노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아마 그 말에 대한 반증을 제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잘못을 음폐하기 위해 거짓말하고픈 유혹은 특히 남들이 우리 거짓말을 입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을 때 더 강하다. 진실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만 전적으로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가 "이러이러하게 생각하였고 정말로 그럴 심산이었다"고 말할 때 우리 자신밖에는 아무도 그 진의를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2. 그러나 그런 구실로써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란 그다지 쉽지가 않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우리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며, 또 그 결정은 반드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1)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통찰하시며, 영혼을 지키시느니라." 그는 심령을 주목하고 계시며 그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 속의 극히 은밀한 생각과 의도까지도 전부가 적나ㅣ라하게 공개된다. 그와 같이 하실 수 있음은 그의 대권이며 이 일로 그는 영광을 받으신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노라"(렘 17:10). 그는 "영혼을 지키시며" 그것을 생명 속에 두신다. 이것은 왜 우리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중한 생명이며 그는 우리 생명을 은혜로이 지켜 주시는 것이다.

2) 그는 우리의 변명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시며 또 살피신다. 이 의무의 태만이 우리가 그 일을 알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인간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 게 아니라 자기만을 사랑한 때문인지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양심이 평범한 의무에 대한 우리의 태만을 나무랄 때 우리는 온갖 하찮은 핑계로 양심을 입막음하려고 생각한다. 그런 졸렬한 처사를 침묵시키는 데에는 이 말씀을 사용하도록 하자. "마음을 저울질하는 이가 어찌 그것을 통찰하지 못하시겠느냐?"

3) 따라서 그는 적당히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지식을 기만할 수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그의 공의를 편벽되이 할 수도 있다. 그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니," 악행을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선행을 불이행하는 것도 갚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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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지혜에 대한 권고(잠 24:13-14)

본문은 우리가 지혜의 즐거움과 그 이득을 성찰함으로써 지혜를 연구해 보도록 촉구하고 있다.

Ⅰ. 지혜는 매우 즐거울 것이다. 우리는 "꿀이 입에 달기 때문에 먹으며" 그 때문에 꿀을 "좋다"고 한다. 특히 "송이꿀"에서 맨 처음 흘러 나오는 것을 좋다고 한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으며 꿀은 그곳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었고(눅 24:41, 42 흠정역에는 "생선 한 토막과 꿀송이"라고 되어 있음)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먹었다(사 7:15). 이와 같이 우리는 지혜를 먹고 살아야 하며 지혜의 교훈을 맛보아야 한다. 꿀을 맛본 자라면 단 것을 달리 더 구할 필요가 없으며 아무리 쓴 것을 달다고 설명해 보았자 곧이 들을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경건함의 능력을 체험한 자들은 이 양자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그 단맛을 보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무신론자들이 궤변을 총동원하고 불경한 무리들이 온갖 말로 꾀어도 자기의 신앙 정조를 변치 않는 것이다.

Ⅱ. 지혜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꿀은 "입에 달지"몰라도 아주 완전하지는 않다. 그러나 지혜는 현재의 감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수반되는 미래의 보상도 있다.

"너는 꿀을 먹어도 좋다. 그리고 네 구미에 맞기 때문에 너는 그것에 끌린다. 그러나 네가 지혜의 교훈을 맛보고 소화하는 일은 더욱 할 만하다. 왜냐하면 네가 이것을 얻으면 네 장래(또는 상급) 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 종은 자기들의 수고에 대한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지만 너는 네 즐거움에 대한 값을 지불받을 것이다. 지혜는 실제로 너를 일에 착수시키지만 네 상급이 있을 것이다. 지혜는 실로 네게서 큰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네 수고만큼 네 소망도 허되지 않을 것이다.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23:18). 아니 네가 바라던 것을 무한히 능가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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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안전함과 확고함(잠 24:15-16)

이 말씀은 악인에게 대한 훈계라기 보다는(악인은 교훈을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23:9) 악인으로부터 위협받는 선량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악인에게 도전하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항을 살펴 보자.

Ⅰ. 의인에 대한 악인의 궤계와 그들이 성공하리라 믿고 있는 계획. 이 음모는 은밀히 베풀어진다. 악인은 "의인의 집을 엿보느니라." 이것은 그 집에 어떤 불법을 행하려고 생각하거나 모종의 악한 계획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다윗을 박해하던 자들처럼(시 59편 표제) 의인이 일어나 밖에 나오면 잡기 위해 문에 숨어 기다린다. 그 희망은 고조되어, 그들은 의인은 약하여 자기 집을 부지할 수 없으므로 그 "처소를 헐게"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의인의 처지는 비천하고 궁지에 몰려 있어서 이미 거의 영락한 거나 진배없으므로 그의 집을 무너뜨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믿는다. 이 모든 일은 여인의 자손에 대해 뱀의 자손이 가졌던 옛 적개심의 결심이다. "피에 목마른 자는 정직한 자를 미워하느니라."

Ⅱ. 이런 궤계의 미련함과 좌절.

1. 파멸이 예상되던 의인이 스스로 일어나게 된다. 그는 "일곱 번 넘어져서" 혼란에 빠지게 되나 그의 지혜와 완전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서" 자기의 고난을 꿰뚫어 보고 그 고난 뒤에 올 보다 좋은 시절을 내다 보게 된다. "의인도 넘어지며," 때로는 "일곱 번이나 넘어져서" 죄악에 빠지게 되며 시험의 기습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유악의 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회개에 의하여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자비를 얻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2. 악한 자는 의인의 파멸을 보리라고 기대하고 그 작업을 한층 더 촉진시키다가는 망하게 된다. 그는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 지느니라." 즉 악인의 죄와 환란은 자신의 완전한 멸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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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불행을 기뻐하지 말라는 권고(잠 24:17-18)

Ⅰ. 우리는 원수의 환란을 보고 즐거워하기 쉬운데 여기에서 이것이 금지되고 있다. 어떤 자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였거나, 혹은 단지 그들이 햇빛을 가로 막고 길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대해 적의를 품는다면, 그들에게 어떤 피해나(그들이 넘어진다고하면) 위험이(그들의 엎드러짐을 가상하면) 이를 때에 우리의 부패한 마음은 그 일로 내심 기쁨과 만족을 느끼게 되기 쉽다.

-"아하! 우리가 원하던 바가 이루어졌구나, 저희가 걸려들었구나. 저희가 광야에 갇히었구나." 이것은 두로가 예루살렘을 쳐서 이르기를 "그가 횡무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함과 같다(겔 26:2). "사람들은 자기 원수나 경쟁자가 파멸을 바라는데 이것은 복수를 위한 것이거나 자기 이득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처럼 비인간적으로 되지 말아라. 너의 가장 악한 원수가 엎드러질 때도 기뻐하지 말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들의 멸망에는 거룩함 기쁨이 있을 수 있다. 그 원수의 멸망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복리에 기여하는 때문이다(시 58:10). 그러나 우리 원수의파멸 만으로는 우리가 결코 기뻐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그들이 울 때는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하며(다윗처럼, 시 35:13, 14), 그것도 그들의 재난을 마음 속으로 은밀히 기뻐해서는 안되며 진지하게 행해야 한다.

Ⅱ. 악인의 불행을 기뻐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이유만 그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행위인 까닭이다. 그런 즐거움이 마음 속에만 감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분별있는 아비는 딴 자식의 징계에 손바닥을 치며 좋아하는 자식을 보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식은 그 형제의 징계를 보며 떨며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경종으로 삼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 징계가 얼마나 빨리 자신의 차례로 돌아올지 알 수 없으며 그 자신의 행위도 그런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ad hominem-즉 개인에게 주는 논증을 덧붙이고 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 그것을 기뻐하는 것보다 그에게 무자비한 것은 없다. 그럴 때에는 너를 혼란하게 하고 괴롭히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 것이다.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인간의 분노를 충족시키거나 그의 어리석은 정욕에 비위 맞추어 줄 의도가 전혀 없으시다. 그는 그렇게 보이시니 차라리 자기 분노의 시행을 연기하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그에게 옮기신다고 할 때에 그 진노를 네게 옮기실 것이며 떨림의 잔이 네 손이 쥐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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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악자의 종말(잠 24:19-20)

Ⅰ. 악인이 악한 길로 누리는 성공과 쾌락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는 훈계는 앞서도 나왔는데 그 경고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솔로몬은 이 말씀을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서 인용하고 있다(시 37:1).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시든지 간에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분을 품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일이 우리의 기분이나 이해(利害), 그리고 기대와 아무리 배치되는 것이라 해도 우리는 묵묵히 따라야 한다. 우리를 슬픔에 잠기게 하는 일에조차 분을 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에 어떤 일에 대해서도 우리 눈을 험상궂게 찡그리는 일조차 없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고 의롭단 말인가? 그러므로 악인이 번영하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것과 꼭 같이 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Ⅱ. 그는 악인이 행하는 그 길의 마지막을 들어서 이 경고의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저희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1. 그들의 번영에는 참 행복이 없다. "대저 행악자는 장례가 없을 것이라." 그들의 번영은 현재의 생존에만 소용이 될 뿐이다. 그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란 이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상의 세계에서 그가 받을 상급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금생에서 자기 분깃을 받고 살다가 그것을 다 잃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을 부러워할 이유란 조금도 없는 것이다(시 17:14).

2. 그들의 번영에서는 지속성이 없다. 악인의 "등불"은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꺼질"것이며 저희의 모든 행락과 위안에는 종막이 내려질 것이다(욥 21:17; 시 37: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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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함과 악인에 대한 경계(잠 24:21-22)

Ⅰ. 경건한 신앙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병행해야 한다. 우리를 창조하신 이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경배하고 존경하며 항상 경외한다는 것은 인간된 우리의 본분이다.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우신 정부에 충성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은 상호 이익을 위해 결합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이다(롬 13:1, 2). 참으로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양심 속에서 충성된 국민이 될 것이다. 땅에서 경건한 자는 "그 나라에서 잠잠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참 애국자가 아니거나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면 충성하지 않을 거이다. 자기의 하나님께 거짓된 자가 어찌 자기 통치자에게 진실하겠는가? 그리고 신앙과 권세의 두 가지가 경합되고 있을 경우가 "사람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판정된 일이다.

Ⅱ. 하나님의 일이나 정치를 쇄신한다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필자는 "변화시키는" 자들과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보다 좋게 개선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할 수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역자"(원뜻:"변하기를 탐하는 자")와는 관계하지 말라고 훈계한다. 그들은 현존하는 것에 대한 비뚤어진 불만에서나, 아니면 혼란의 와중에 고기를 낚아 보려는 바램에서 변화 자체를 위한 변화를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나 정치에서나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저희의 밀으에 참예치 말라." 저희 모의에 가담하지 말고 저희의 불의한 비밀에 참견하지 말라.

Ⅲ. 그 성질이 불안정하고 당쟁을 좋아하며 난폭한 자들은 보통 부지중에 화를 자초하게 된다.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라." 그들이 극히 은밀하게 역모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미쳐 생각지도 못할 때에 발각되어 응징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왕들을 얕보는 자들, 곧 반역자뿐만 아니라 그들과 사귀는 자들, "이 무자"에게 하나님과 왕이 내리 "멸망"의 시기와 방법을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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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잠 24:23-26)

여기에는 "지혜로운" 자, 곧 재판관들과 통치자들을 위한 교훈이 나온다. 국민이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하며 위정자에게 복종해야 하듯 위정자도 진정 사건이나 쌍방간의 소송에 있어서 백성에게 정의를 행사할 의무가 있다. 이 말씀은 그러한 다스리는 자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Ⅰ. 그들은 언제나 사건의 시비곡직을 달아 보아야 하며 관계 당사자들에게 대한 이런저런 고려로 인해 동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은" 그 자체가 "옳지 못한 일"인 동시에 결코 유익한 일도 못된다. 그렇게 행한 결과는 법과 공평을 빙자하여 정의를 왜곡하고 악을 행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재판관은 진실만 알고 얼굴은 모를 것이다. 친구라고 하더라도 옳지 못한 송사에 연루되어 있으면 감싸거나 도와 주지 않을 것이며, 원수의 재판이라고 하여 승소에 유리한 말이나 행위를 묵살하지 않을 것이다.

Ⅱ. 그들은 결코 사악한 자들의 악행을 묵인하거나 부추겨서는 안 된다. 재판석에 앉은 판사나 행정 관료들은 악한 자를 법대로 다루어야 한다. 그 악인의 배경이 좋은 자거나 자기의 각별한 친구이어도 그의 잘못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고 결국 그 장래가 어떻게 될지 보여 주며, 그의 악함을 세상에 알려 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에게 악인의 범법 행위를 고지하는 게 임무인 자들이 악인을 봐주고 묵과하거나 그 죄를 변명해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악인을 더 좋아하고 그와 연합한다면(이것은 사실상 "네가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자기의 임무인 공공의 안녕과 복리에 대한 적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국민의 복리와 안녕을 증진시키는 데 이바지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며" 치욕적인 욕설의 세례를 받을 것이다. 심지어 딴 "국민에게"까지(딴 국가의) 맡은바 소임을 저버린 야비한 배신자로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Ⅲ. 그들은 온갖 사기, 폭력, 침해, 그리고 부도덕을 물리치고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해 어떤 특성인에게 원망을 듣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과 세인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밖에 사직 당국자나 목사나 능력이 있는 개인들까지도 악인을 "견책"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인을 회개시킬 수 있으며, 회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치감을 느끼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견책자들은 자기 가슴에 그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 되었다는 양심의 증언을 얻게 될 때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이 복은 하나님과 사람의 축복이다. 그들의 신앙이 수호자로서 또 애국자로서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28:23 참조).

Ⅳ. 그들은 항상 공평의 원리에 따라 판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26절). 그들은 "적당한 말로 대답"해야 한다. 즉 그들은 법에 따라 자기 의심을 진술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며 소송의 참된 시비를 가려내어야만 한다. 이렇게 행하는 자에게는 "모든 자가 입맞출"것이다. 누구든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고 그의 명령에 순종할 것이다. 입맞춤은 애정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순종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상 행동에서도 적절하고도 진실된 말을 하는 자는 그 벗들에게서 호감을 받게 되며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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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관리의 슬기로움(잠 24:27)

이것은 가사의 관리에 대한 슬기로운 규칙이다. 모든 선량한 날자는 훌륭한 남편이 되어야 하며 분별있게 처신해야 한다. 그러한 분별심은 많은 죄와 고통과 직업상의 수치를 방지해 줄 것이다.

Ⅰ. 우리는 편리한 물품보다 필수품을 중시해야 하며, 가족의 부양에 소비해야 할 것을 겉치레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양식이 모자라 풍부한 것을 위해 빚을 꾸러 다니느니 초라한 오두막집일 망정 하나의 거초로서 만족해야 한다.

Ⅱ. 우리는 건축할 능력이 없을 때는 집지을 생각을 하지도 말아야 한다. "너는 먼저 밖에서 밭에 있는 네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라. 네 땅을 고루고 농사를 돌보아라. 너는 거기서 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생명줄이다. 네가 거기서 잘 거둬 들이기까지는 딴 생각을 말라. 충분한 것을 거두었을 때 너는 네 집의 개축과 단장을 생각할 수 있다. 네가 돈을 소비할 대상도 장소도 네 집이 되는 것이다." 많은 자들이 집짓기를 "능히 마칠 수 없을 때 짓기" 시작하여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대상에 돈을 투자하게 되어 재산을 가정을 망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청년들에게 세상에서 출세하여 처자를 편안히 부양시킬 만한 자력이 있기 전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뜻으로(가정은 결혼에 의해 건축되므로)해석하기도 한다.

Ⅲ. 우리가 어떤 큰 계획을 추진할 때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은 일단 일이 시작되고 나서 재료의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솔로몬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에서 이 규칙을 지켰다. 그는 건축에 임하기 전 모든 것을 완비하였던 것이다(왕상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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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거와 보복의 금지(잠 24:28-29)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특히 본문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이란 형식으로 빚어지는 가해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Ⅰ. 증인으로서 "까닭없이 어떤 사람을 대적하여 증언하지 말라. 네가 사실과 추호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네가 증거인으로 나서서 밝힐 만한 분명한 의무를 지닌 경우에만 증언하라.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 본문에서는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고 부언하고 있다.

"재판관과 배심원을 속이지 말며, 네가 교제하는 자들을 속여서 이웃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게 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해 얘기할 때는 진실된 것만 얘기하라. 사실이 아닌 것을 네 말 속에 은연 중에 나타내어서 비유나 과장으로 속이게 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Ⅱ. 원고나 기소인으로서,

이웃에 대한 고소나 고발을 할 경우에는 보복 심리에서 하지 말라. "내가 그에게 복수를 해야지,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이렇게 악의를 품고 고소할 때는 의로운 소송도 불의한 게 되고 만다. "내가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겠고" 그 일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지 말지니라." 그렇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그의 보좌에 발을 들여 놓거나 그의 손에서 일을 빼앗으려는 따위의 무엄한 일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굳이 우리 자신의 송사에서 주역이 되고 재판관이 되려한다면 하나님의 법정에 호소할 수 있는 혜택을 상실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복수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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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고 지혜 없는 자의 피해(잠 24:30-34)

Ⅰ. 솔로몬이 "게으른 자의 밭과 포도원"에서 본 광경.

그는 일부러 보러 가지는 않았다. 지나는 길에 대지의 풍요로움을 살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그네들이 길가면서 흔히 하기에 알맞은 행동이다. 또 그는 자기 백성이 땅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도 살피게 되었는데 이것은 위정자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다. 그러다가 그는 딴 것과 전혀 다른 "밭과 포도원"에 눈이 미치게 되었다. 토양은 비옥한데 그 안에 자라는 것은 "가시덤불과 거친풀"뿐인 밭과 포도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덤불과 풀이 여기 저기 띄엄띄엄 돋은 게 아니라 땅 전체에 우거져 있었다. 설사 열매가 맺혔다고 하더라도 담도 없으니 짐승이 다 먹어 치워버렸을 것이다. "돌담은 무너졌느니라." 지면에 내린 저주의 결과를 보라(창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그로 수고하지 않으면 딴 어떤 것도 얻지 못하리라."

농부라는 직업이 얼마나 이 세상에 대한 축복이 되는지 보라! 이 땅도, 가나안 복지조차도 농부의 경작이 없으면 광야가 아닌가! "왕도 그 공궤할 것을 밭에서 얻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농부에게 분별심과 근면함을 주셔서 땅을 개간하며 심고 씨뿌리며 울타리로 두르게 하지 않으시면 임금도 별 수 없이 굶주려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일에 있어서조차 각 사람의 경영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보라! 어떤 자들은 자기의 게으름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광고하고 나태의 결과를 번연히 보면서도 개의치 아니하고 남의 근면에 얼굴을 붉히지도 않으며, 자신의 명예는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Ⅱ. 이를 보고 그는 명상에 잠겼다.

그는 잠시 쉬다가 "깊이 생각했고" 다시 "보고 훈계를 받았다." 그는 그 땅 임지에게 대해 격노를 폭발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고 욕설도 하지 않았다. 반면에 이 관찰을 통해 유익한 것을 얻고 근면하게 되도록 자극을 받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남에게 훈계를 주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스스로 훈계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읽는 것이나 듣는 것에서 훈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는 훈계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서 훈계를 얻을 수 있자만 사람들의 태도를 보는 가운데 얻기도 하며, 사람의 훌륭한 행위뿐만 아니라 악한 행동 속에서도 훈계를 찾아 낼 수 있다. 플타크는 "바보가 현인에게서 얻는 것보다 현인이 바보에게서 얻는 이익이 더 많다"는 말을 대(大) 카토가 남긴 명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지혜로운 자들은 어리석은 자의 결점을 피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지혜로운 자의 덕행을 본받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밭의 살풍경 그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나 교훈을 제시해 주지는 않았고 다만 자신의 관찰이 이전에 게으른 자의 어리석은 우행과 그에 따르는 확실한 불행을 상기시켜 주는 데 불과하였을지라도, 솔로몬은 이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훈계를 받았다"고 생각하였다(그 게으른 자는 꼭 해야 할 일을 눈 앞에 두고도 이불 속에 누워 잠에 취한 채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하고 소리친다. 잠은 여전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요구할 것이며 마침내 잠을 다 자고 나서야 눈을 뜰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수면을 통해 다음 할 일에 대해 적합한 준비를 하지만, 이 게으름뱅이는 그렇게 많이 잔 까닭에 활발치 못하고 무기력하게 되어 아무 소용없게 되어 버린다). 그의 "빈궁은 강도(또는 "나그네")같이 온다." 가난은 꾸준히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곧 그를 덮칠 것이다. "강도처럼" 무기를 가진 자가,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릴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의 세상 일에 적용할 수 있다. 즉 세상 사업에서 게으름은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인지 또 가족에게 얼마나 피해를 끼치는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 영혼의 일에도 적용된다.

1. 우리의 영혼은 각자가 돌보고 가꾸고 지켜야만 할 우리의 밭이며 포도원이다. 이 전원은 잘만 경작하면 선용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이득을 풍성하게 할 열매도 지천으로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영혼의 밭을 점유하고 있으라는 위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영혼을 맡아 관리하자면 굉장한 손질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2. 이들 밭과 포도원은 왕왕 매우 불량한 상태에 있다. 열매를 못 맺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가나 전부가 "가시덤불과 거친 풀"(무절제한 욕망과 혈기, 교만, 탐욕, 정욕, 악의 따위가 할퀴고 찌르는 가시덤불과 거친 풀이며 성별 받지 못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들포도이다)로 뒤덮여 있으며, 원수가 못 들어오도록 경계하는 이도 없고 "돌담은 무너져서" 모든게 공유화되었고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3. 이와 같은 상태로 되어 있는 영혼은 죄인 자신의 게으름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는 게으름뱅이여서 잠을 좋아하고 수고는 싫어한다. 또한 명철이 없으므로 자기 사업도 모르고 자기의 이익도 알지 못한다. 그는 철저히 얼빠져 있는 것이다.

4. 이러한 일의 결과는 영혼과 그 영혼의 모든 복리에 대한 파멸밖에 가져 오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영혼에게 군사처럼 덮쳐 오는 것은 영원한 곤핍이다. 우리는 이러한 악인과 게으른 종에게 할당되어 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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