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장..[354.주를앙모하는자올라가][351. 믿는 사람들은주의군사니] [352. 십자가군병들아] [357. 주믿는사람일어나] [360. 행군 나팔소리에] [430.주와같이길가는것]
===두 증인
1. 또 [그분께서]내게 지팡이[=형벌을 암시] 같은 갈대[=소유하기 위한 측량 수단임]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에게이로..<부활 생명의 영으로 부활하여>깨어 떨쳐 일어나다] 하나님의 성전[=성소..나오스..주 임재 앞에서]과 제단[=희생제물 드리는 놋제단이 아니라 성소의 금제단..뒤시아스테리온, 주께 흠향되는, 향기로서의 기도 드림,, 곧 신령과 진리의 전 존재 쏟아 붓는 영적 예배]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메트레오..주님의 기준 잣대로 평가/판단/분별하다] :: 이제 신약에서는 지성소의 누림이 가능하기에.. 사도에게 측정하라 하신 것은 <일견 보기에는 땅의 예루살렘성전안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겠지만>, 오히려 <하늘에 있는> Q의 성전으로서, 지성소-금제단-성소와 그 안에 거하며 경배하는 이들을 말하고 있음을 명심할 것(이미 사탄은 하늘에서 패하여 영구히 내쫓겨 나갔기 때문임)..::영적 측면에서는 하늘 성전이 참 성전일 뿐<물론, 믿는이 개개인의 영도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Q의 성전이며, 육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바깥마당 상태일 수도 있음을 주의하라!!>, 번제단을 포함한 땅의 성전은 그림자에 불과하기에, 엄밀한 의미로 볼 때에는 땅의 성전과 번제단조차 <주님이 보시기에는, 주님 임재가 없다면> 성전 바깥마당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대환난때에는 적 그리스도와 이방인들에게 내 준 바 되기도 함<이런 의미에서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세워지게 됨>을 허용하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가능하게 된다..그러므로 마24:15에서 주님은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성소.holy place)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21.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라 말씀하고 계신다...[살후2:2, 3]*2.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3.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2. 성전 바깥 마당[=이른바 이방인의 뜰...광야장막에는 없었던 구역임..JC당시 예루살렘 성전 구조는 성전 바깥의 안 마당에 제사장의 뜰-이스라엘의 뜰-여인의 뜰이 있었고 그 바깥을 성전 바깥마당인 이방인의 뜰이라 했음...확대 적용해 본다면 땅의 성전조차 <주님 임재 앞에서 전존재를 참되게 내어드리는, 신령과 진리(실제)의 영적 예배가 없고, 영적 예배가 아니라면, >, 또한 바깥마당일 수밖에 없음에 주의하라]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대환난의 1260일, 또는 42개월, 또는 3년 반동안 땅위의 예루살렘과 땅위의 성전은 적그리스도의 수중에 떨어져 짓밟힐 것을 의미..<그대의 지금 위치는 어디인가, 그대의 신분에 합당히 [그 영따라] 행하며 영적 예배 가운데 거하고 있는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그대 자신을 마땅히 점검하라!! 사내 아이로 살기를 추구하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이들은 사내 아이의 전형들임 11:5, 6에서 나오는 바, 그들 행위의 특성으로 보건데, 오리라 한 모세와 엘리야임 -이들은 <하나님의 간증 그 자체인>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서 변화산에서도 나타났었다..마17:1-3]에게 권세를[=엑수시아. 진정한 권위, authority는 오직 Q과 자신-이웃을 참되게 알고, 실행하는 참 사랑 안에서 저절로 흘러 나오는 바, 그 진가를 알게 됨]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 제사장의 세마포가 아니라, 장례의 극한 슬픔을 표시하는 <애도의>상복임..이는 Q의 눈에는 예루살렘 거민들이 이미 죽은자들로 보여지시기 때문이요 보고 깨닫도록,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리라.]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기름을 산출함>요, 두 등대<감람기름으로 빛을 냄>요, 곧 기름의 두 아들(two sons of oil : 기름, 곧 그 영으로 충만하여 내주하시는 그 영의 충만 공급 통로가 되기 때문임...슥 4:3, 11, 12, 14) : 교회시대에는 교회들이 Q의 간증을 위한 등대들이지만(1:20), 이 시대의 마지막 3년 반 때에는 두 증인이 Q의 간증을 위한 등대들일 것!! ::: 계14장에 의하면 첫열매들의 휴거가 있은 직후 적 그리스도가 Q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자기와 자기 우상을 경배하도록 그들에게 강요할 것인데(14:9-12), 이 때에 두 증인이 Q의 백성에게 힘을 붇돋아 줄 것이요, 그들과 거의 동시에 [공중에 날아다니는] 천사가 Q의 영원한 복음<사람들은 마땅히 Q을 경외하고[그분의 백성을 핍박하지 말것], 그분을 경배하라[적 그리스도를 경배하지 말아야 함]는 내용의 복음>을 전할 것임(14:6)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지금 우리 믿는이들은, 누구나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님!!
6. 그들이 권능[=엑수시아]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엘리야가 행했던 그 기적..왕상17:1, 눅4:25] 또 권능[=엑수시아]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모세가 행했던 그기적들..출17:17, 19, 9:14, 11:1]
7. 그들이 [기적을 행함과 함께, 동시에 맡기신 그대로 Q을 위한 + 적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적 그리스도 :: 두 증인들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주 오실 그때까지 Q을 대항하여 <줄기차게> 싸우는, 지상의 유일한 한 사람일 것]이 그들[=두 증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 <기적을 봐야만 하는 이유로서, 기적을 본 자는 회개 통한 구원에로 돌이키게 되리라는 관념하에> 기적을 <회개-구원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신뢰해서는 결코 안됨을 명심하라..<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직접 목도했다 해도, 본인이 바로 그 당사자라 해도> 그 기적은 그 기적을 목도한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받는 회개에 이르도록 할 수는 결코 없고 다만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목숨 다해 일심으로 주 이름 불러야 구원 얻게 하는 믿음에 이르게 됨을 기억하라..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예루살렘] 길에 [방치되어]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간음과 음행, 음란이 가득한 도시]이라고도 하고 애굽[=Q과 그분의 나라, 백성을 대적하며, 세상의 이목과 평가만을 최우선순위 삼아,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추구하는 가치로 살아감]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 1948년 이스라엘 국가 복원후부터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이 Q의 평강의 도성이 아니라 바로 영적 음녀 소돔이요 애굽처럼 지극히 세상적인, 좌악 가득한 도성, 심지어 JC를 못박을 그 때보다 더 악독해져 있는 바임을 깨어 분별함 통해 알아차리고 회개하고 시급히 중단없이 중보해야 한다!!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구주는 3일만에<36-39시간만에 ::금요일오후3시 운명 --(3시간)--24시간<오후6시-다음날 오후6시>--자정까지(6시간)--새벽 동트기전에 부활?(3시간에서 6시간) >, 나사로는 나흘 뒤에 부활했고, 두 증인은 사흘 반 후에 부활하게 됨]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조에 프뉴마=생명의 영!!....생명 하나님의 호흡 숨결!!]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히스테미...견고하게, 확고하게 세우다..stand upon..부활 의미]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자기 죄를 봄 통해 애통하며 자복함의 회개가 없다.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공중이 아니라 삼층천으로..1260일째, 그들 사역의 마지막 날에..이때 동일한 날에 그리스도의 공개적 공중재림과 대다수 성도들의 공중에로의 휴거가 있게 될 것]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역사상 가장 큰 지진일 것!!]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그 나머지 부분은 16:19의 마지막 지진 때 세 쪽으로 나뉘어 질 것.... 진동의 근원은 언약의 무지개가 있는 보좌로서 긍휼을 잊지 않으시기에 온 인류를 당장 멸하시지는 않는다. ]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오노마 안드로포스 킬리아스 헵타 : [그 칠천명들은 모두 주예수님을 대적함으로써 그분을 <절대 믿지 말라>고 앞장서서 악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명망가, 유력자>들로서, 죄벌로서 멸절의 죽음 당한 바] 그 사람들의 이름들이 칠천이라.<진정 오늘날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철학자-박사-정치학자-금융가들>이 바로 그러하다!!>...o[noma (3686 오노마) ojnovmata 명사-주격-중성-복수, (이름들이) (names) ....a[nqrwpo" (444 안드로포스) ajnqrwvpwn 명사-속격-남성-복수, 사람이 ....ciliav" (5505 킬리아스) ciliavde" 명사-주격-여성-복수, 천이라 ....eJptav (2033 헵타) eJptav, 수사(형) 기수-주격-여성-- 복수, 칠 ::: 어쩌면 이 때가 회개하고 주께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기회일 듯하다!! .온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시온으로부터]돌아오실 때 비로소 구원 받게 될 것이다(롬11장<:26>을 읽어보라)
.....AD70년 로마장군 Titus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는데, 그는 다니엘서와 신약에서 나타나는 그 왕<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 예표였고, 또한 그 행위로 볼 때 대환난때 나타날 적 그리스도의 예표라 할 수 있다.....단9:26, 27은 언뜻 보기에는 그 둘을 하나로 간주하고 있지만, 만일 단 9 : 26. 27을 자세히 주의 깊게 읽는다면 예루살렘 멸망이 두 번 있게 됨을 볼 수 있게 될것.., 그 첫째가 Titus 장군<한 왕의 백성>에 의한 것이요, 둘째는 적 그리스도<황폐케 하는 자>에 의한 것이리라....적 그리스도는 Titus가 행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인데, 대환난의 특성상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후무후한 극히 가혹한 것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마24장과 눅21장에서 조차 주님은 그분의 예언에서 Titus에 의한 것과 적 그리스도에 의한 것을 명백히 구분지어 놓지 않으시며, 서로 엉켜 뒤섞여 있는 이런 연유로 인해 칠십 이레에는 69이레(이 69이레는 일곱 이레<예루살렘 중건> + 62 이레<끝에 그리스도가 끊어짐>로 구성됨)와 70번째 이레(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긴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이 간격이 지나간 후에는 곧 (다니엘의 마지막 한 이레를 적용한다면) 전 3년반의 유화적 제스처의 기간에 이어 + 적그리스도에 의한 후3년반의 대환난과 함께 예루살렘 멸망이 도래하게 되리라.
.....Titus 침공 당시 예루살렘은 죄악이 가득했었는데, 대환난의 시기인 적 그리스도 당시에는 한층 더 그러할 것이다. 계11장은 심지어 그 성을 예루살렘이라 부르지 않고 그 곳이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곳임을 언급하면서 [큰 성, 소돔이요 애굽]이라 부른다(8절)...유대인들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실한지..그래도 그들 중에는 여전히 인침 받은 144000명이 남아 있게 되리라...두 증인이 휴거된 직후 주님의 공개적 재림은 바로 뒤이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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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랍제국들이 제아무리 이스라엘나라를 멸하려 획책할지라도, 주님은 <그분의 정해두신 경륜을 따라>이스라엘을 정하신 때까지<하늘성전 척량 + 예루살렘을 적 그리스도에게 넘겨주시는 시점까지는> 돌보실 것인데, ((이것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진실로 위함 때문이 결코 아니다...계속 더욱더 죄악으로 가득해 가고 더욱 세상적이 될 것이다))....적 그리스도는 Titus가 했던 것보다도 더 극악하게 그 성을 훼파할 것이요 슥12장에서 말하듯이, <이미 너무나 가혹하게 많은 이들이 살육을 당했기에!!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핍박받은 유대인들을 그들이 찔렀던 그분을 <앙망함으로써>바라보는데 까지 몰리게 될 것이요, 이천년 전에 그들이 찌른 바로 그 분을, 구속자를 그들의 눈으로 마침내 보고는 극한 슬픔과 회한에 빠지게 될 터이나 이미 너무 늦은 게 될 것이다...우리는 미땅히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우리를 데려가실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하리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 Q의 진노의 7대접(16장)으로 구성된 셋째 화는 7째 나팔의 소극적인 내용들 중 일부임...바로 직전에 3년반동안의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이상 뒤에 기록되고 있기에, 또한 7대접재앙이 Q의 진노의 정점인 마지막 재앙이 될것이므로(15:1, 16:1) 7째 나팔의 화는 대환난의 끝임에 틀림없다(마24 : 21)..
===일곱째 나팔 소리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 :: ..7째 나팔이 울릴 때 대환난이 종결될 뿐 아니라 이 시대도 마감될 것, Q의 비밀은 끝날 것이요(10:7), 세상 왕국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 그 때에 또 다른 시대인 왕극 시대 곧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 :: 7째 나팔은 영원토록 왕국을 가져올 것...[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는 말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언급함이다.(22:5)..이는 7째 나팔이 새 예루살렘이 있는 새 땅과 새 하늘을 망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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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11 Amplified Bible
===The Two Witnesses
1 Then there was given to me a [a]measuring rod like a staff; and someone said, “[b]Rise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the altar [of incense], and [count] those who worship in it.
2 But leave out the court [of the Gentiles] which is outside the temple and do not measure it, because it has been given to the Gentiles (the nations); and they will trample the holy city for forty-two months (three and one-half years).
3 And I will grant authority to My two witnesses, and they will prophesy for twelve hundred and sixty days (forty-two months; three and one-half years), dressed in [c]sackcloth.”
4 These [witnesses]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lampstands which stand before the Lord of the earth.
5 And if anyone wants to harm them, fire comes out of their mouth and devours their enemies; so if anyone wants to harm them, he must be killed in this way.
6 These [two witnesses] have the power [from God] to shut up the sky, so that no rain will fall during the days of their prophesying [regarding judgment and salvation]; and they have power over the waters (seas, rivers) to turn them into blood, and to strike the earth with every [kind of] plague, as often as they wish.
7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and given their evidence, the beast that comes up out of the abyss (bottomless pit) will wage war with them, and overcome them and kill them.
8 And their dead bodies will lie exposed in the open street of the great city (Jerusalem), which in a spiritual sense is called [by the symbolic and allegorical names of] Sodom and Egypt, where also their Lord was crucified.
9 Those from the peoples and tribes and languages and nations [d]look at their dead bodies for three and a half days, and will not allow their dead bodies to be laid in a tomb.
10 And those [non-believers] who live on the earth will gloat over them and rejoice; and they will send gifts [in celebration] to one another, because these two prophets tormented and troubled those who live on the earth.
11 But after three and a half days, the breath of life from God came into them, and they stood on their feet; and great fear and panic fell on those who were watching them.
12 And the two witnesses heard a loud voice from heaven saying to them, “Come up here.” Then they ascended into heaven in the cloud, and their enemies watched them.
13 And in that [very] hour there was a great earthquake, and a tenth of the city fell and was destroyed; seven thousand [e]people were killed in the earthquake, and the rest [who survived] were overcome with terror, and [f]they glorified the God of heaven [as they recognized His awesome power].
14 The second woe is past; behold, the third woe is coming quickly.
===The Seventh Trumpet—Christ’s Reign Foreseen
15 Then the seventh angel sounded [his trumpet]; and there were loud voices in heaven, saying, “The kingdom (dominion, rule) of the world has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and He will reign forever and ever.”
16 And the twenty-four elders, who sit on their thrones before God, fell face downward and worshiped God,
17 saying, “To You we give thanks, O Lord God Almighty [the Omnipotent, the Ruler of all], Who are and Who were, because You have taken Your great power and the sovereignty [which is rightly Yours] and have [now] begun to reign.
18 And the nations (Gentiles) became enraged, and Your wrath and indignation came, and the time came for the dead to be judged, and [the time came] to reward Your bond-servants the prophets and the saints (God’s people) and those who fear Your name, the small and the great, and [the time came] to destroy the destroyers of the earth.”
19 And the temple of God which is in heaven was opened; and the ark of His covenant appeared in His temple, and there were flashes of lightning, loud rumblings and peals of thunder and an earthquake and a great hailstorm.
===Footnotes
Revelation 11:1 John is describing a rod that is about six feet long.
Revelation 11:1 The Greek corresponds to a Hebrew verb meaning “to stand” or “arise” which can be an instruction to prepare to fulfill a command, somewhat similar to the military command “attention.”
Revelation 11:3 See note 6:12.
Revelation 11:9 In Revelation John sometimes uses the present tense to refer vividly to the future.
Revelation 11:13 Lit names of people.
Revelation 11:13 These give glory out of servile fear, not worship from th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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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개요)
본 장의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Ⅰ. 성전의 넓이를 잴 척량자를 요한 사도에게 줌(1,2).
Ⅱ. 하나님의 두 증인(3-13).
Ⅲ. 일곱째 나팔과 그 나팔 소리 후에 일어난 일들(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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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측량(계 11:1-2)
여기 기록된 성전 척량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은 에스겔이 본 환상이 참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스겔의 환상과 사도 요한의 환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자의 성전 척량은 성전 재건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후자의 척량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본문에 예언된 재난과 위기가 닥칠 때 성전 보호를 대비해서 척량하는 것이라고 본다.
2. 또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시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시온산에 세워진 원래의 예루살렘 성전에 비할 때 현재의 성전이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3. 성전을 개혁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불충분하고 결함 있는 성전은 참된 원형을 따라 개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Ⅰ. 척량 되어진 대상.
1. "성전."
여기서 성전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복음 시대의 교회를 뜻한다.
교회는 언제나 자신이 복음의 규격대로 세워졌는지 혹시 교회가 너무 좁거나 또는 크지나 않는지 또 그 문이 너무 넓거나 또는 좁지나 않는지 재볼 필요가 있다.
2. 제단.
이는 일반적으로 예배의 엄숙한 행위가 수행되는 장소를 말한다고 하겠다.
교회는 그 본질이나 위치, 모든 면에 있어서 참된 제단을 가지고 있는지를 재어 보아야 한다.
본질이라 함은 그들이 제단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며 또 그들의 모든 제물을 과연 제단에 드리고 있느냐 하는 본래의 목적에 부응하느냐는 여부에 대한 물음을 말하는 것이요, 위치라 함은 그 제단이 가장 거룩한 곳에 위치하여 있는지 즉 교인들이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을 말한다.
3. 경배하는 자 또한 척량되어져야만 함을 본문은 말해 준다.
즉 그들의 예배의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며 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지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지 또 "그들의 생활을 복음에 합당한 것인지"를 척량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Ⅱ. 척량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척량에서 제외된 이유(2절).
1. 척량하지 않는 것.
그것은 "성전 밖 마당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성전 밖 홀은 헤롯이 성전 본 건물에 첨가하여 지은 것으로 "이방인의 뜰"이라는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드리안(Adrian)이 그 도성과 성전 밖 마당을 만들고 이 "홀"을 아일리아(AELIA)라고 명령한 후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2. 성전 밖 마당을 척량하지 않은 이유.
이 성전 밖 마당은 솔로몬이나 스룹바벨 왕이 지은 어전의 본래의 원형에는 없었던 것으로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마당을 개의치 않으신 것이다.
그는 이 성전 마당을 자신의 보호밖에 두었다. 이 성전 마당은 이방인들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그들이 이방의 제의와 관습을 끌어들여 복음 교회에 덧붙이기 위해서 세워졌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 성전 뜰을 그들에게 맡겨버려서 좋을 대로 사용하게 했으며 마흔 두 달 동안 그 성과 성전 밖 마당이 넓힘을 당하게 하셨다.
어떤 이는 이 기간을 적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이라고 말한다.
성전 밖 마당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거짓된 방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거나 위선적인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고 그의 원수들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3. 말씀의 개괄적 의미.
(1) 하나님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성전과 제단을 이 세상에 두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하나님은 이 성전에 대한 엄격한 관심을 보이시며 이 성전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목하신다는 사실이다.
(3) 성전 밖 마당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물리침을 당할 것이며 오직 휘장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만 열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4) 거룩한 성, 보이는 교회는 이 세상에서 많은 학대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5) 그러나 교회의 폐허는 제한된 기간 동안만일 것이며 곧 교회는 모든 고난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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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두 증인(계 11:3-13)
짓밟힘을 당하는 마흔 두달 동안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증인들을 보전하신다.
이들 증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의 뛰어난 법도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Ⅰ. 증인들의 수효, 비록 증인의 수는 매우 적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 그 수효는 지극히 적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의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박해시에는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멀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시에 한 증인은 평화로울 때의 많은 수의 교인들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이 수는 비록 적은 수지만 그러나 충분한 수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을 둘씩둘씩 파견했다.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여기서 말하는 두 증인은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들리어 올라간 에녹과 엘리야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의 교회와 믿는 이방인들의 교회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두 증인은 최악의 경지에서도 기독교 복음만을 고백하고 그것을 전파할 하나님의 충성된 뛰어난 사역자들을 말한다고 봄이 옳겠다.
Ⅱ. 증인들의 예언 기간, 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간.
그 기간은 "일천 이백 육십 일"이다. 즉 이 기간은 적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시기를 말한다.
만일 예언의 기간이 언제부터를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 낼 수 있다면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세상 끝날이 언제가 될지를 가름해 볼 수도 있으리라.
Ⅲ. 증인들의 복장과 모습.
그들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다. 이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교회의 지위와 그리스도의 이권(利權)이 실추되고 몰락되었음을 슬퍼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Ⅳ. 그 증인들의 크고도 어려운 과업을 위임 맡은 동안 그들로 하여금 굳게 설 수 있게 해 준 도움의 근원.
그들은 온 세상의 하나님 앞에 섰고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언의 권세를 주셨다.
그는 그들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같게 하셨다. 즉 그들을 스가랴가 환상 중에서 본 두 감람나무와 촛대와 같게 하셨다(슥 4:2 이하).
그는 그들에게 거룩한 열심의 기름을 부으시며 용기와 힘과 위안을 주셨다.
그는 그들을 감람나무로 삼으시고 또 그들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기름을 그에게 공급받으므로 그들이 믿음의 고백의 등에 계속 불을 밝힐 수 있게 하셨다.
그들은 등에만 기름을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그릇에 이 기름을 공급받고 있었다. 이는 곧 그들이 영적인 생을 살며 빛 가운데 거하며 열심을 다하는 계속적인 신앙의 생을 말하는 것이다.
Ⅴ. 증인들이 예언하는 동안에 그들이 받은 안전과 보호.
본문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 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하였다"(5절)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십 부장과 그 오십 인이 왔을 때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요청했던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왕하 1:12).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렘 5:14)고 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증인들은 그들의 기도와 말씀 전파와 용기 있는 고난과 맞섬을 통하여 많은 박해자들의 양심과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줄 것이다.
이들 박해자들은 스스로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난 후의 바스훌과 같은 상태에 처할 것이다(렘 20:4).
그러나 증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누리시는 권한에 참여할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따라 그들의 적들에게 역병과 심판을 내리시고 그가 바로 왕에게 하셨듯이 하늘의 우로를 막고, 하늘 문을 닫아 거심으로 많은 날 동안 비가 오지 않게도 하실 것이다(왕하 17:1).
하나님은 박해자들을 향해 활을 당기시며 그들이 그의 백성을 괴롭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온역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그들로 "가시를 발로 차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게 하신다.
Ⅵ. 증언들의 살해당함.
그들은 그들의 증거를 보다 강하게 내보이기 위하여 그들의 피로 자신들의 증거를 인봉해야만 한다.
1. 증인들이 죽음을 당할 시기.
그 시기는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그들의 소임이 끝날 때까지는 그들은 결코 상처를 입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욱이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그들의 증거가 끝날 때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께 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굵은 베 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년이 거의 끝날 때까지 예언을 했을 때 그들은 적 그리스도인들이 악랄함의 마지막으로 발작을 일으킬 것을 각오해야 한다.
2. 증인들을 이기고 죽이게 될 원수.
이 원수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다.
마귀의 유익한 도구인 적 그리스도가 증인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이 원수는 간교하고 궤변적인 교훈으로 무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주로 폭력과 무력으로 무장을 갖춘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의 원수들이 그의 증인들을 대적하려고 하는 것을 당분간 허용을 하실 것이다.
3. 살육 당한 증인들의 시체에 대한 저희들의 야만적인 처우.
그들의 원수들의 악은, 증인들의 피를 보고 살육 을 한 것으로 만족치 않고 죽은 시체에까지도 악을 행한다.
(1) 그들은 증인들의 시체가 무덤 속에 조용히 매장하는 것마저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증인들의 시체는 바벨론의 중심거리나 대로에 또는 그 도시로 가는 넓은 진입로에 놓이게 된다.
이 도성은 그 끔찍한 죄악 때문에 애굽이라고도 한다. 신비스러운 육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보다 바로 이 도성에서 더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
(2) 그들의 시체들은 이 세상 거민들에 의해 욕을 보았고 또 그들의 죽음은 적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게는 기쁨과 환락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10절).
그들은 이 증인들이 제거된 것을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이 증인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모본을 통하여 적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고통과 두려움을 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영적인 무기는 악인의 심령을 쪼개며 그러므로 악인들은 신실한 자에 대하여 큰 분노와 잔악함을 품게 되는 것이다.
Ⅶ. 증인들의 부활과 그에 따르는 결과.
1. 그들의 부활의 시기.
죽임을 당한지 "삼일 반 후"(11절) 그들은 다시 일어난다. 이 기간은 그들이 예언하던 기간에 비해서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이 말씀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 있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너희의 죽은 몸도 산 것이며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사람들이 그의 재생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의 나사로의 부활과 관계 있는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죽임을 당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있기 전에 그들이 육체로 부활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정신은 그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계속 부활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업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끝난 것같이 보일 때에도 그 사업을 다시 소생시킨다.
2. 증인들을 부활시키는 능력. 이에 대하여 본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섰다"(11절)고 하였다.
하나님은 죽음에 생기를 불어넣으실 뿐만 아니라 힘도 불어넣으신다.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살리실 수 있다.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생명의 성령이시다. 이 생명의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죽은 시체를 살리시며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죽어 가는 듯한 이권(利權)을 살리신다.
3. 증인들의 부활이 그들을 괴롭히던 원수들에게 미치는 효과,
본문에 "그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과업과 증인들의 소생은 그의 원수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될 것이다.
죄악이 있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또한 박해하는 영은 비록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용기 있는 영이 아니라 비겁한 영이다.
그러므로 헤롯 왕도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Ⅷ. 증인들의 승천과 그 결과(12,13절).
1. 증인들의 승천.
하늘이란 말씀을 이 세상에 있는 은혜의 왕국인 교회의 찬란한 모습으로 이해를 할 수도 있고 위에 있는 영광의 나라의 보좌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12절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즉 이 세상에서와 심판의 큰 날에 적지 않은 수의 박해자들이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이 큰 영광 중에 들림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까지 그의 신자들은 이 영광의 승천을 하려 하지 않는다.
주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교회 안에서나 하늘에서나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섬김을 회피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서둘러 보상을 붙잡으려 해서도 안된다. 다만 주께서 부르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기쁨으로 그 앞에 들림을 받을 것이다.
2. 증인들의 승천 결과.
적 그리스도인의 나라에 큰 충격과 동요가 일어나고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진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종교 개혁의 서막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본다. 사실 종교 개혁시 많은 제왕들과 나라들이 로마 제국에게 대한, 예속 상태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이 위대한 개혁 사업은 많은 공격을 받았다. 적 그리스도인들은 결정타를 당했으며 그들의 많은 근거지와 이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1) 그들은 그 당시 뽑혀진 전쟁의 칼날에 의하여 치명타를 당하였다.
또 적 그리스도의 기치 아래서 싸우던 많은 사람들이 이 칼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2) 그들은 성령의 검에 의하여 치명타를 당하였다.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넘어졌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미신과 우상 숭배와 과오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참된 회개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므로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같이 하나님의 사업과 그의 증인들이 소생하면 악마의 일과 악마의 증인들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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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나팔(계 11:14-19)
우리는 여기서 일곱째인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는다.
그 나팔 소리는 늘 따르는 경고와 경청을 요청하는 말씀 다음에 울린다.
그러므로 본문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14절) 하였고 그 다음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라고 말씀하였다.
이 나팔 소리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울렸다. 그 이유는 사도로 하여금 이 중대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경과되자 그는 전에 그가 기대하고 있었던 일곱째 천사의 나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여기서 이 나팔 소리의 결과와 효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Ⅰ. 나팔이 울리자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큰 소리로 기쁨의 환호성을 외쳤다.
1. 그들의 경배 방법.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16절). 즉 그들은 최대의 경외와 겸허함을 가지고 경배하였다.
2. 그들의 경배의 내용.
(1) 그들은 이 경배를 통해 우리의 하나님과 구세주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하실 권리를 지니셨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시인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고백한다(15절).
하나님과 구세주는 창조 사업으로써 또한 구속 사업을 이루시므로써 언제나 세상에 대한 왕의 자격을 지니고 계시는 것이다.
(2) 그들은 그가 실제로 자기들을 소유하시고 통치하심을 감사함으로 시인한다.
그들은 그가 자신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그의 권리를 주장하시며 그의 권능을 행사하시므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하게 행하시기 때문에 그에게 감사를 드린다.
(3) 그들은 그의 통치가 영원하리라는 사실 때문에 즐거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원수가 그의 발아래 엎어질 때까지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을 하리로다." 아무도 왕의 왕권을 그에게서 빼앗을 자 없으리라고 노래한다.
Ⅱ. 여기 보면 전능하신 이가 나타나 권능을 행하시니 세상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방들이 분노하매"(18절)라고 하였다. 이방인들은 전에도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의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에게 고통을 가하시므로 그의 백성의 원수들에게 보복할 때가 반드시 있다. 또한 그가 그의 백성의 성실한 봉사와 고난에 대해 보상을 시작하실 때가 반드시 있다. 그들의 원수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상 주심을 시기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을 한층 무겁게 하며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Ⅲ. 나팔 소리 뒤에 있게 된 또 다른 결과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성전문이 열린 일이었다.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자유스러운 교제 즉 기도와 찬양이 보다 자유롭고 빈번하게 하늘에 상달되고 은총과 축복이 풍부하게 우리에게 내려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 하늘의 전으로 삼으신다는 말씀으로 봄이 오히려 타당할 것 같다.
이것은 첫 번 성전에 있었던 때의 여러 가지 환경을 회상할 때보다 이해에 도움을 받게 된다.
그때 우상을 섬기는 악한 왕이 통치할 때 성전은 폐쇄되고 소홀히 취급되었으나 신앙심이 깊고 개혁적인 새 임금이 통치하게 될 때 성전은 열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적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전은 폐쇄된 것처럼 보이고 실상 그러했지만 그러나 이제 성전은 다시 열리워졌다.
여기 성전문이 열려진 것과 관련하여 다음 사실을 생각해보자.
1. 성전문이 열렸을 때 성전 안에 있었던 것.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궤였다." 이것은 언제나 지성소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 궤안에는 율법 판이 보존되어 있었다.
요시야 임금 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분실되었다가 요시야 통치시에 다시 찾은 것처럼 마찬가지로 적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에는 하나님의 법은 한켠에 버림을 당하고 그들의 전통과 법령이 하나님의 법도를 억누르게 된다.
백성들은 성서를 대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성전이 열리자 감추어졌던 모든 것이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말로 형언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는 크나큰 특권이다.
언약 궤가 그러했듯이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의 백성들에게 재현된 것과 화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에게 주어지는 그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2. 성전에서 울려나온 소리와 감지된 것.
그것은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었다"(19절).
하나님의 축복된 이 변화의 사건에는 그의 무서운 섭리의 손길이 수반되었다.
하나님은 이제는 열려져 있는 그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와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되 의로운 모습으로 응답하시어 듣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신다.
세상의 모든 큰 변혁의 사건들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성도의 기도의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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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11장
=====11:1
1, 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척량하되. - '갈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라모스'(* )는 물건이나 건물 같은 것은 재는 도구로 '길고 곧은 장대'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갈대로 성전을 척량하였다(겔 40:2ff.). 한편 구약성경에서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한다(렘 31:39;슥 1:16;2:1-5). (2) 파괴를 의미한다(삼하 8:2;왕하 21:13;사 28:17;34:11;애 2:8;암 7:7-9). 본문의 '척량'은 두 가지 의미 중 전자에 해당된다(21:15-17, 24, 27, Johnson, Beasley-Murry, Hendriksen, Ladd).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척량되지 않은것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척량은 척량 대상이 설사 고난받을 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이 척량해야 할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님의 성전. - '성전'의 헬라어 '나온'(* )은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 )과는 달리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는 성소를 가리킨다(Johnson, Ladd). 요한이 척량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의 성전이 아니라 지상의 성전으로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실제 성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Holtzmann,Walvoord)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전3:16;6:19;고후 6:16;엡 2:21,Johnson, Morris, Hendriksen, Charles, Plummer,Beasley-Murray).
>>제단. - 이것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향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가리키는 듯하다(8:3;9:13, Hendriksen,Mounce, Hughes).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이나(히 13:10, Johnson)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언약 백성을 의미한다(1:5;5:10, Hughes, Morris, Mounce).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헤롯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로서 제사자의 뜰, 남자의 뜰 혹은 이스라엘의 뜰, 여자의 뜰이며, 둘째는 성전 밖의 뜰로 이방인의 뜰이다. 이 두부분의 뜰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Johnson). 이러한 두 부분의 뜰 중에서 본문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dd, Morris). (2) 혹자는 교회내에 있으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ohnson, Mounce, Hendriksen, Kissle).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것으로 한마디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Beasley-Murray). 이러한 이방인의 뜰은 척량 대상에서 제외되어 앞절에서 언급된 척량 대상과는 달리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파멸을 당할 것이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18절;2:26;19:15;20:3;21:24, 26;22:2). 한편 '주었은즉'의 헬라어 '에도데'(*)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거룩한 성'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성' 혹은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Holtzmann,Walvoord, Beckwith, Ladd, Rissi). (2) 혹자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1:2,10;22:19, Johnson, Moun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핍박을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마흔 두 달'은 단 7, 9장을 반영한 것으로 본서 내에서 '일천 이백 육십 '(3절;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하나님의 성소와 유대인을 핍박하는 것을 나타내며(단 8:10, 13; 마카비하 8:2), 본서에서는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2절),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마흔 두 달'이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임을 시사한다(Mounce). 이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신다는 의미이다(Morris).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두 증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혹자는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한다(에녹서 90:11, Tertullian). (2) 혹자는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Gundry, Barclay). (3) 혹자는 미래의 두 예언자라고 주장한다(Beckwith). (4) 혹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unce). (5) 혹자는 교회 안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Rissi). (6) 혹자는 일천 이백 육십 일과 같이 정해진 기간 혹은 교회의 전기간을 통해 증언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Johnson, Minear, Beasley-Murray, Hendriksen).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증인의 수가 둘이라는 사실은 실제 증인의 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Hughes).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증인이 둘이라는 사실은 증언의 진실성을 의미하고 있으며(신 19:15;요 8:17, 18)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다(막 6:7;눅 10:1). 한편 '굵은 베옷'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옷으로(사 20:2;슥 13:4) 회개나 애곡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증인의 사역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도록 하여 더이상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주로 확신하도록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Hughes,Beasley-Murray, Johnson).
=====11: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이 땅의 주 앞에 '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Morris). 한편 본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촤대'는 앞절에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스가랴의 환상을 암시한다(슥 4:1-14). 스가랴서에서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을 받은 총독 스룹바벧과 제사장인 여호수아를 가리킨다(슥 3:1;4:6, 7, 14). 요한은 이 스가랴의 환상을 이용하여 두 증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권위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Ladd). 또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서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 즉 감람나무의 기름을 통해서 촤대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진(Swete, Mounce) 이러한 교회와 그 증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마 5:14-16) 세상의 참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요1:4, 5, 9) 발해야 한다(Hughes, Johnson).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호하신 왕하 1:10과 렘 5:14을 반영한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두 증인들이 선포한 예언의 말씀을 암시한다(렘 5:14).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이 두 증인을 해하려 할지라도 원수들의 손에서 두 증인을 보호하시고 말씀의 선포가 지속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두 증인의 입으로 선포하는 불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그 원수들을 철저히 파멸시키신다.
=====11:6
본절은 앞서 언급된 두 증인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로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왕상 17:1).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 이것은 모세가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을 암시한다(출7:20;8:12).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혹자는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Smith, Barclay). 그러나 누가가 세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자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눅 1:17) 본절에서 암시한 모세와 엘리야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과거에 사역하던 역사적 인물의 재출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Ladd). 단지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소유한 교회나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Johnson, Beasley-Murray, Hughes).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 '증거를 마칠 때에'에서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 )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거하기를 다마쳤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려고 애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단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짐승'은 본서에서 제일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 )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네번째 짐승은 열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단 7:1-25).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Epiphanes)를 지칭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단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9:1-11;17:8). 한편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21을 반영하는 것으로 두 증인이 개인적인 두 인물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전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킴을 암시한다(Beasley-Murray).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줄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6:9-11).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본절의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 내에서 흔히 '바벧론'으로 지칭된다(16:19;17:18;18:10, 16, 18, 19, 21). 혹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Johnson, Morris, Beasley-Murray).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 )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려진다. (1) 소돔. 이 곳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창 19:4-11). (2) 애굽. 이 곳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중에서'에 대한 혹자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구조를 의미한다(Hughes, Morris). 한편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21:24;렘 8:1), 2;14:16). 짐승은 증인들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였으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Morris, Mounce).
@사흘 반 동안. -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다. 즉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증인들이 일천이백 육십 일 동안 증거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임을 시사한다(Ladd, Mounce,Hendriksen).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3:10;6:10;8:13;13:8, 14;17: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11:11,12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본절은 에스겔의 환상을 반영한다(겔 37:5, 10-12). 여기서 '생기'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창 2:7;6:17;7:15, 22) 두 증인들의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 사단과 그 무리들은 두 증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당하던 짧은 기간 즉 삼 일 반 동안만 즐거워할 수 있을 뿐이다. 삼 일반이 지난 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기를 통해서 두 증인이 부활하여 서게 됨으로 조롱하던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사단의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일지라도 그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됨을 암시한다(Morris, Mounce, Johnson).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그리고 영광을 의미한다(Johnson).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으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과 마찬 가지로(마 24:30;행 1;9-11) 두 증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드러내는 가운데 승천하였다. 한편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는 두 증인의 승천은공개성(公開性)을 시사한다. 두 증인의 승천은 절대로 감추어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사실이다(Morris, Swete).
=====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본문은 두 증인의 승천 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지진'은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의미한다(6:12;겔 38:19, 20;마 27:54). 두 증인의 부활때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죽은 '성 십분의 일'의 인구 '칠 천'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당시 예루살렘 성의 인구가 55,000-95,000명이었음을 추측하여(J.Jeremias) 예루살렘 성 주민의 일부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 결과로 유대인이 회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add). (2) 혹자는 인류 전체의 일부라고 이해하며 이러한 일부에 대한 징계로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orris,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절). 한편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것은 16:9에 나타난 반응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단순한 두려움이나 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11:14
@둘째 화는 지나 같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에 해당되는 화를 의미한다(9:13-11:14). 이 둘째 화 다음에 지체 없이 속히 임할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일곱째 나팔'은 10:7 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감추신 비밀에 대해 보여준다.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 '큰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늘의 천군 천사'의 음성인 듯하다 (Morris, Mounce).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본문은 시 2:2을 반영하는 것으로 큰 음성을 통해 이루어진 선포이다. 여기서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나 본서 내에서는 빈번히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1:8, Ladd,Morris). 이것은 본문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이 사단이나 군왕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선포임을 시사한다(Swete,Johnson, Beasley-Murray). 이제는 이 세상을 더이상 사단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1:6, 9;5:10;12:10;19:6;20:4;22:5). 한편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네토'(* )는 단순 과거 시상으로 이 세상의 주권이 사단에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로 전도되었음을 시사한다(12:10;19:6, 16;요 12:31, Ladd, Morris).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그가...왕노릇하시리로다'의 헬라어 '바실류세이'(* )는 단수이다. 이것은 사단에세서 이 세상의 주권을 되찾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주권의 단일성을(unity)을 시사한다(Mounce, Lohmeyer, Beasley-Murray).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신 왕으로서 단일한 주권을 가지시고 이 세상을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11:16,17
본문은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의 찬양은 여섯째 인의 심판
이 지난 후 나타났었다(7:2).
@감사하옵나니 옛적에고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 '잡으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에일레파스'(*)는 완료 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두 가지이다. (1)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본 칭호는 앞서 언급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칭호(1;8;4:8)와 대비를 이룬다. 앞서 언급된 칭호에서는 '장차 올 자'라는 칭호가 있는 반면에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의 오심이 성취되어서 이미 오셨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음을 시사한다(Morris, Johnson, Mounce). (2) 전능하신 이. 분 칭호는 앞서 언급된 '큰 권능을 잡으시고'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의 권한과 힘에 대적할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1:8, Morris, Mounce).
=====11:18
@방들이 분노하매...하더라. - 본문은 시 2:2과 병행된다. 열방들은 서로 의논하여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으신 종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대적과 노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 제공의 역할만 하게 되었다(시 2:5, 12).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과 보상은 세 범주의 존재들에게 주어진다. (1)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죽은 자'는 20:11-15과 연결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의 여부가 정해지게 된다(Ladd, Johnson). (2)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시며.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받을 자에 대해 세 부류 즉 1 종 선지자(18:20), 2 순교자나 모든 시대의 믿는 자를 의미하는 성도들(5:8;8:3;13:7,10;15:4;16:6;18:20, 24), 3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7;15:4)로 나타난다. 이러한 세 부류의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주요목적은 하나님의 보상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Morris). (3)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바벧론이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나 용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무리를 나타낸다(16:13;19:2, 11;20:10. Beasley-Murray, Johnson). 이러한 자들은 그날에 멸망을 달할 것이다.
=====11:19
@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상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의 성전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여진 언약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언약궤는 B.C. 586젼에 느브갓네살의 침략과 성전의 손실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외경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회복 때까지 언약궤를 숨겨둔 것으로 되어 있다(마카비 2서 2:4-8). 이러한 사실은 메시야의 도래 시에 언약궤의 회복을 통해 구원을 소망하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Mounce). 그러나 본절의 언약궤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지상성전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과 백성간의 새 언약을 암시한다(Johnson). 옛 언약하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언약궤가 있는 지성고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그를 의지함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9:11, 12;10:19-22). 그러므로 본절의 언약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시사한다(Beasley-Murray, Johnson, Morris), 한편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그의 권능과 엄위를 묘사하는 표현으로(4;5;6:12;8:5;16:17-21) 하나님의 임재와 그 백성에 대한 보호를 시사한다(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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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째 나팔은 최후의 것(고전15:52)으로서, 대환난 끝에서부터 영원 미래까지의 모든 것들, 즉 7대접의 최후의 재난들(16장),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 성도들의 보상, 그리스도께서 땅으로 다시 오심, 큰 바벨론의 멸망(17:1-19:6), 어린양의 혼인(19:7-10),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사탄과 그 추종자들의 멸망(19:11, 20:3), 천년왕국(20:4-6), 땅과 사탄에 대한 최종심판(20:7-10), 죽은 자들에 대한 최종 심판(20:11-15), 영원토록 있을 새 예루살렘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21:1-22:5) 등을 포괄한다. 이들은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극적인 것들 : ^1>땅위의 거민들에 대한 마지막 화(8:13, 9:12, 11:14)인 7 대접의 마지막 재앙들(15:1, 16:1-21) 과 ^2>주님 재림시 발생할(17:14, 18:1-2, 19:19, 20:3) 땅을 파괴하는 자들의 멸망으로 구성됨
** 적극적인 것들 : ^1>도래할 왕국인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으로서(11:15, 17) 성도들의 부활 이전에 발생할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18절)과 ^2>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고전15:23, 52, 살전4:16-17)이후 그리스도의 공중 심판대(고후5:10)에서 있을 선지자들과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예루살렘 보좌(마25:31-34) 심판대에서 있을 Q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14:6-7)에게 주어질 보상 등으로 구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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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째 나팔의 구성들 ]
#1>셋째 화인 Q의 진노의 7대접을 포함함(11:14, 18, 15:1, 7-8, 16:1-21)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11:18)]라고 말하는데, 주의 진노란 16장의 7대접(=이것은 격노하시는 Q의 진노이다.
.... 이것을 쏟아부으심으로 그분의 진노는 소진될 것)을 말하는 것으로 7째 나팔의 소극적 내용들 중 일부임...그 대접들은 땅이나 하늘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특히 적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 위에 쏟아 부어질 것.
.... 마지막 화 때에 적그리스도는 Q을 대항하여 <아마겟돈으로 동방-서방-북방으로부터 군대를 소집하여> 싸울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싸우기 위해 그분의 이기는 자들의 군대를 이끌고 땅으로 내려오실 것인데, 그 때 셋째 화의 7대접은 적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격멸시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투하되는 바, Q께 사용되는 <짧은 시간 내에 쏟아 부어지는>7개의 폭탄과도 같을 것이요, 이로 인해 대환난은 끝나고 시대가 마감될 것.
#2>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으로 이어짐.(11:15, 17)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1:15)]라고 말하는 바, 세상 왕국은 그분이 다시오셔서 열국을 심판하신 후 그리스도의 왕국이 된다(단7:13-14)
#3>죽은 자들에 대한 <공중 심판대> 심판[이는 첫째부활에 참여 자격에 있어서, 그 성도가 과연 합당한지 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함]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11:18]
....7째 나팔이 경과하는 동안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여기에서는 크고 흰 보좌에서의 심판을 언급함이 아니라, 이 시대 끝 무렵에, 곧 천년왕국 이전에 요5:27-29절에 따라 누가 천년왕국 전에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며(고전15:23, 계20:4-6) 누가 천년 왕국 이후에 정죄의 부활에 이르도록 남아 있어야 하는지(20:11-12)에 관해 죽은 자들이 심판 받게 된다는 뜻이다.
....JC께서 성도들을 부활-휴거시키시기 전에 먼저 그분은 첫번째로 생명의 부활과 두번째로 정죄의 부활에 관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요, 이 결정을 내리신 후 비로소 성도들의 부활이 발생할 것....일단, 성도들이 부활되면 곧바로 공중으로 휴거될 것인데, 성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받드시 명확하게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낙원은 하늘의 낙원이 아니다..""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2:34,35)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 하셨고, [눅 16:23, 24....*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4.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살전4장이 분명히 말하는 것처럼 죽은 성도들이 <음부의 낙원으로부터...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하고 있는 것처럼 음부의 낙원으로부터> 새로운 몸을 입고 일어나는 것이지 죽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님에 유의하라(죽은 성도의 혼이 하늘에,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있다가 다시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는 기존 관념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적으로 옳은 관념은 죽은 성도의 혼은 음부의 안락한 곳인 낙원에서 안식하게 되는 바, 부활의 때에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여 휴거된다 함이 성경적 사실인 것이다!!).
.....먼저, 죽은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어 일어나고,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된 몸을 입고 함께 주를 만나기 위해 공중으로 끌어 올려질 것이다.
#4>상을 줌
*1)) 선지자와 성도들에게...[<공중 심판대>공중에로의 휴거된 가운데서 천년왕국에 공동왕으로서 참여 여부 판단]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11:18]
....이 상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신실한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22:12, 마16:27)
....선지자와 성도들에 대한 <상벌 판단의>심판은 그리스도의 [공중 휴거 상태에서 공중의] 심판대에서 이뤄질 것인데(고후5:10) 그 목적은 구원받은 이들 가운데 누가 상을 받기에 자격이 있고 누가 더 징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결정하려는 것으로, 선지자들과 성도들에게 상을 주는 것은 부활-휴거 후에 [공중에서] 이뤄질 것(고전15:23, 52 살전4:16-17)
....고전15장의 마지막 나팔이 계11장의 7째 나팔이다!!....결코 혼동해서는 안될 사실들이 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한 바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들보다 앞서지 못할 것이며 또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했었다. 본격적인 대다수 성도들의 공중 휴거는 대환난 이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대환난이 끝날 무렵의 7째 나팔 때에 <그리스도의 구름 타시고, 구름 위에 나타나시는, 공개적 공중재림 때에>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그 때에도 아직 그리스도는 땅위에 오신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공중에 계신 상태임에 유의하라...이 휴거 뒤에 곧 그리스도는 그분의 심판대를 [공중에] 세워서 누가 상을 받게 되고 그분의 이기는 군대의 일부가 될 것인지 그리고 누가 더 징계와 징벌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를 결정하시리라.
((물론, 하나님의 누림과 하늘전쟁에 참여할 어린양의 군대로서, 초기의 이기는 자들, 곧 사내아이, 수확의 첫열매의 휴거는 <대 환난 이전의 >은밀한 공중재림시의 휴거인 바, 일부분, 곧 성숙한 소수임을 반드시 분별하여 기억해 두자!!))
*2))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 <예루살렘 보좌 심판대> 그 기준은 영원한 복음..열국 백성으로 왕국에 참여]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11:18]
... 바로 이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영원한 복음에 유의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짐승이나 그의 형상을 경배하지 않고(14:6-7) 또한 주님의 궁핍한 사람들을 돌보는 자들이다(마25:33-40).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땅에 다시 오시어 아마겟돈 승리 거두신 후, 그분의 왕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그분의 영광의 보좌를 세우시고, 열국들과 생존해 있는 불신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도록 임명되었다고 말한다(행10:42, 딤후 4:1). 그분은 언제 어디에서 산 자를 [양과 염소 구분하는] 심판을 진행하시는가? 그 심판은 무엇을 위함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 일은 그분이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그륻의 추종자들을 멸하시고 난 후일 것이다(계19:11-21). 그 때에도 여전히 땅 위에는 많은 수의 불신자들이 있을 것인데, 마25:31-46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열국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그 분의 보좌로 모아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심판은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인가를 결정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다고 생각하지만, 마25:3132를 살펴보자[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신약에서 [열국들(민적들)]이란 말은 이방인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또 마25:32절은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라고 말한다. 즉, 이 심판은 율법이나 은혜의 복음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계14:6, 7절에서 천사에 의해 전해진 영원한 복음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즉, 환언하자면, 3년반 동안 적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자기와 자기 형상의 우상을 경배하도록 하고, 공중에서는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여 땅위의 사람들에게 그 형상을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라고 일러 줄 것인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이 영원한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면서 적 그리스도의 핍박 아래서 고통 받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왕은 마25:34-36절까지에서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실 것이요, 이 의로운 자들이 주님게, 어떻게 자기들이 그분께 이렇게 해 드릴 수 있었는지 여쭤볼 때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대답하시리라. 그 때, 이 양들은 왕국 안으로 옮겨져서 천년왕국동안 열국들이 될 것이다(2:26, 12:5).
....천년 동안,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왕들이 될 것이고, 구원 받은 유대인들은 제사장들이 될 것이며, 이들 의로운 자들은 이기는 자들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될 것이다.
....한편, 적 그리스도를 따르고 영원한 복음에 귀기울이기를 거절했던 [영소들] 곧 악한 자들은 [마귀와 그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불못(마25:41) 안으로 던져지게 될 것인데, 이것이 7째 나팔 동안에 일어나게 되는데, 온 땅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고 나서 발생할 것이다.
#5>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킴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11:18)].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큰 바벨론(17:2, 18:3), 적 그리스도(13:3), 거짓선지자(13:14), 사탄(20:7-9), 그들을 따르는 사람듥(17:12-14, 19:19, 20:8-9) 등을 포함하며, 그들 모두는 7째 나팔 동안 멸망될 것이다.
....큰 바벨론이요 거짓 종교인 로마 천주교 역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로 여겨져야 한다. 계17:2절은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라 한다....이처럼 땅을 망하게 하고 온 땅이 그녀에 의해 부패되었으므로 주님은 그녀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 후 주님은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아마겟돈에서 멸망시키실 것이요, 그들은 함께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사탄도 멸망케 될 것인데 주님은 사탄을 두 번 처리하실 것이다. 먼저는 천년왕국 전에 그를 결박하여 무저갱 속애 던지실 것이며, 두 번째는 천년 왕국 후에 그를 불못 안으로 내던지실 것이다....아마도 적그리스도가 불못 안으로 던져질 최초의 인물일 것이요,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그들의 추종자들과 마25장에 있는 염소들 중 일부는 사탄 보다 앞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19:20, 마25 :41)... 물론, 천년 왕국 끝에 이르러 구원 받지 않은, 모든 죽었다가 부활하여 <백보좌 심판>을 받는 불신자들도 역시 불못으로 던져질 것이다.(20:15)...그때에 우주 가운데 모든 소극적인 것들이 말끔히 말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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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인 떼심의 전 과정, 그 내용들을 반드시 숙고하자
.....특히 1째 인 떼심은, 마침내 구주 승천 직후부터 구주의 다시오심으로 종결되는, 은혜시대=교회시대=복음전파시대인 이 시대의 끝까지 곧, 땅끝의 모든 백성에게 빠짐 없이 전파되어야 마땅한 바, 거침 없이 중단 없이 전파될 이기고 또 이기는 구주의 복음 전파 사명의 당위성을 기억하고,
....2째-3째-4째 인 떼심, 곧 반복되는 잦은 전쟁-기근-온역으로 인한 삶의 환난과 고통의 의미가 바로 구주의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깨닫고 애통하며 돌이켜 주의 이름을 불러 회개함으로써 영혼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려는 지혜로운 주님의 또 하나의 구원에로의 초청 수단임을 참되게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며,
....5째 인 떼심으로 펼쳐지는, <제단 아래 순교자들의 <그들의 무고한 피흘림에 대한 보수를 탄원하는> 탄원기도는 반드시 주께서 응답하시는 바, <순교자들의 수가 차기까지>기다리고 계시는 인내의 시간임을 명심하고, <대환난을 통과 하게 될, 보호의 인침 받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서 12지파에 속하지 않기에>,그 이전에 [초기의 이기는 자-수확의 첫 열매-사내 아이로서 합당한 성숙 [=이는 우주적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에 합당한 성숙 (곧 성령의 9 열매 + 성결과 의, 겸손-관용-용납-서로 받아 줌으로써 자기를 희생하며 내어주는 합당한 섬김, 일편단심의 절개의 12덕목의 완비) 상태요, 동시에 주 보시기에 섬김에 합당한 배분해 주신 직분은사들(곧...예섬가위구다긍/지지믿병능예영방통)따라 충분히 숙련된 능숙함]에 이르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5째, 6째 인 떼심 사이에 예상되는 구주의 <은밀한 공중재림>을 통해 들림받아 삼층천의 하늘 보좌 앞에 나타나는 무수히 많은, 종려가지를 든 무리들 가운데 나차나게 되기를, 그리하여 어린양의 인도하시는 그대로 어디든지 따라가는, 하늘의 전쟁에 참여-승리하여 마귀를 그의 수하들과 함께 땅에 내던지는,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이들인 바, Q의 구속받은<초기의 이기는 이들>이 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6째 인 떼심 인해. 이제 비로소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초자연적인<천체군과 땅의 진동>이 시작되는 바, 큰 지진으로 지각 변동(산과 섬들이 움직임)-일식(해가 빛을 잃음)-밤의 달이 피빛으로 변함(bloody moon) 징조들은 땅의 거민들(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 어린양의 진노의 날>이 임박했음을 고백하는 사건들임에 주의하라.
.....6, 7째 인 떼심 사이에 이스라엘12지파의 남은 자들에 대한 <대환난을 통과하나 보호받음의>이마에 인침 장면과 함께, 뒤이어 흰 옷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든 무수한 무리가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 있는 광경이 나타나게 됨을 보라
.....7째 인 떼심으로 인해 <성도들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공로의 향과 함께 그리스도의 손으로 금향단에 드려지고, 그리스도께서 금향단의 제단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심 인해 <우레=음성-번개-지진>으로 Q의 응답하심이 나타남 인해 일곱 나팔 울림이 시행되는데, 1,2,3,4째 나팔 울림은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땅과 천체군>의 진동됨인 것을 보게 되며,
......이제 본격적 대환난[이제 그동안 유화정책을 써 오던, 적 그리스도가 본색을 드러내는 바, 땅에 떨어진 사탄에 의해 열린 무저갱으로부터, 곧 <바다의>무저갱에서 귀신들과 함께 올라와서 인침 받지 않은 사람들만 5달 동안 괴롭게 하고, 열국을 미혹하여 특히 동방으로부터 2억 마병대를 일으켜 서진하도록 하며(이 과정에서 땅의 거민들 중 1/3이 죽게됨), 동시에 서방과 북방군대들의 원정으로 아마겟돈에 집결하도록 유도함과 동시에, 예루살렘을 수중에 넣고 자기와 자기형상의 우상 숭배를 강요하게 되는 이 기간에, 두 증인의 사역(그들의 증거가 마쳐질 무렵 적 그리스도에 의해 죽임 당하지만 3일반 만에 부활-휴거됨)과 공중에 나는 천사의 영원한 복음의 전파가 이어짐]의 때인 5,6,7째 나팔 울림은 곧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재앙임을 말하는데, 이 1,2,3,4째 나팔 울림 인한 재앙들과 5, 6째 나팔 울림 재앙들의 목적은 여전히 <회개하여 주께 돌이키게 하는 것 :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라>.
.......일단 7째 나팔 울림과 동시에 대다수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본격적 곡물 수확]가 일어나고 곧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있은 후 구주와 함께 그분의 군대가 땅에 내려 옴으로 이어지며, 일곱 대접이 짐승<=적 그리스도>의 보좌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쏟아 부어짐으로 인해 그들이 궁극은 여지없이 멸망에 이르고 그 종결은 <격노하시는 Q의 진노의 포도주 틀>인 아마겟돈전쟁의 패배로 끝나게 될 것이요, <사탄은 결박되어 무저갱에 천년왕국기간 동안 갇히고, 적 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 그들의 추종자들은 불못에 던져지고>이는 천년왕국에로 연결될 것
==반드시 기억할 것은 일곱 나팔은 일곱째 인의 유일한 내용이지만, 일곱 대접은 일곱째 나팔의 내용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는 일곱 대접 쏟음과 함께
*1)일곱 대접 재앙과 이어지는 바 아마겟돈 전쟁 종결,
*2)<그리스도의 전권인 바>[잠자는 성도들 중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격자 선별,
*3)[부활한 성도들과 생존하여 변화된 몸 입고 휴거된 성도들의]공개적 공중 재림-공중 휴거중 천년왕국에서 공동왕으로 참여할 자들에 대한 분별,
*4)땅에 남아 있는 생존하여 있는 불신자들에 대한 <영원한 복음에 유의하여 Q을 경외하고 Q만 경배하며 성도들을 섬긴 자들의 천년왕국에서 열국 백성들로 참여 여부를 가리는 , 이른 바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예루살렘 보좌 심판>,
*5)사탄의 결박과 무저갱에 던져짐,
*6)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 그들의 추종자들, 일부의 염소들을 불못에 뎐져짐 등이 동시성을 가지고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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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1:19에서는,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한다.
::: 계시록에는 네번의 <특별한 전환을 시사하는 바, 큰 진동으로서의> 지진이 예언되어 있음을 기억하자
.....처음 것은 6:12절로서 6째 인 떼심과 동시에, 즉 6째 인 떼심 안에 있고,
.....둘째는 7째 인 떼신 후 잠시 뒤, 7 나팔 중 첫 나팔 울림 이전 그 사이에, 곧 성도의 기도와 향을 더하여 담은 금향로를 금제단에 드린 후 그 제단불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 (8:5) 발생하고 있으며,
.....셋째는(11:13) 6째 나팔 울림 후, 7째 나팔 울림 사이에 있고, (두 증인의 죽임 당함-부활-승천 직후, 이로 인해 예루살렘 성벽1/10 이 무너짐)
.....넷째는(19절) 7째 나팔 울림 후 일곱 대접 전개 직전에 있으며 [하늘에 큰 음성들의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됨, 그분의 왕노릇하심에 대한 선포>, 이에 반응하여 이십사 장로들의 Q께 경배와 찬양 드림 그 직후에 하늘성전 열림 인한 언약궤 보임과 동시에 발생됨], 그것은(16 :18-20) 7째 나팔의 소극적 내용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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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의 광경들
**15:5절의 연속인 바, 11:19절에서는 Q의 성전이 열려져 있음을 본다.
--4:2, 3절에 있는 무지개를 두른 보좌 :소극적 측면에 있어서 6장부터 11장 까지의, 땅위에 집행되는 모든 심판의 중심이지만[곧, Q의 심판을 위한 것], 그 반면에 11:19절의 언약궤를 가진 성전은 적극적 측면에 있어서 12장부터 22장 까지에서 수행되는 우주 가운데 Q의 모든 성취의 중심이다[곧, Q의 건축을 위한 것]
...누가 성전이 되는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주로 교회이다. 누가 언약궤인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Q의 건축의 중심은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교회일것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무지개를 두른 보좌 아래, 심판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성전 안에, 건축 안에 있음을 명심하라....적 그리스도와 모든 불신자들은 모두 무지개를 두른 보좌 아래 있게 될 것이지만, 우리는 여기 언약궤가 있는 성전 안에, 즉 그리스도가 계신 Q의 건축 안에 있다.
....일곱째 나팔 울림이 있고 난 후에는 모든 비밀들이 지나가게 되고, 모든 심판들이 수행되어질 것이며 Q의 통치의 모든 행사가 완성되어질 것이며, 오직 한 가지-Q의 건축- 만이 남아서 계속될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고 있다는 참된 이상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목표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출한 자로서 더 >거룩해 지거나 영적으로 되게 하려 함이 아니라 우리로 한 몸인 교회로 건축되게 하려 함에 있는 바, 우리 모두는 Q의 건축을 위한 언약궤가 있는 성전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11:19) ::: 이는 7째 대접을 쏟아부음으로 인한 것과 동일한데, 바로 그것이다.(16 :17-21)....번개-음성-뇌성은 그분의 심판 안에 잇는 Q의 진노의 엄중한 선포요, 지진과 큰 우빅은 사실적인 심판임..역사상 최대의 것이 될 그 지진에 의해 큰 바벨론인 로마 등을 포함한 도시들이 흔들리고 무너지게 될 것이요(16:19) 가장 큰 우박에 의해서 사람들은 큰 재앙을 능가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인데(16:21), 이는 대환난의 끝 무렵에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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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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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 권위, authority, 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ejxousiva(1849, 엑수시아)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Soph., Thu. 이래)는 엑세스티(e[xesti, 1832: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용인이나 허용되어 왔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ability을 의미한다.
(b) 그 다음 이 단어는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 right, '권세' authority, '승인' permission.
① 정부가 허용해 준 가능성. ② 여러 가지 사회 관계에서의 권리를 의미한다.
(c) 엑수시아는 어떤 잠재적 힘이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혹은 자연적인 힘들에 의거하며, 무의식적 행동들, 강한 행위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 안에서 드러나는 뒤나미스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5b). 예를 들면 이 말은 늘 특별한 지위나 명령과 함께 사용되므로, 그 말은 마음대로 처분하는 왕권이나 부권 혹은 소작권(P. Qxy. 11, 273)이나, 관리들 혹은 사자들의 권한을 의미한다(Diod. Sic. 13, 36, 2; 14, 81, 6).
그 외에도 그 말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자유를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2d). 따라서 그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자연적인 힘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d) 또한 이 단어는 율법에 맞서는 주제넘은 자유나 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 문맥은 대개 법적인 명령이다.
(e) 파생된 의미들로 '권력있는 지위', 복수로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 공무원, 찬미의 말, 군중' crowd, 그리고 '화려한 것' pomp을 뜻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메스샬라, 살레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권리, 권력'을 나타내며, 율법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다니엘과 마카베오서에서 이 단어는 왕이나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엑수시아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를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의 개념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인 하나님의 개념을 우수하게 표현해주는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참조: 단 4:14).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 the power to give orders(마 8:9, 병행구 눅 7:8; 눅 19:17; 눅 20:20)을,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 jurisdiction(눅 23:7)을, 그리고 복수로서는 '공직자' officials, '당국자' authorities(눅 12:11; 딛 3:1)를 의미한다.
롬 13:3의 "관원들(아르콘테스[archontes])"와 마찬가지로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엑수시아이스 히페레쿠사이스)"은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천사의 권세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블랙의 저술(M. Black)을 참조하라.
신약성경 기자들이 엑수시아와 뒤나미스(duvnami", 1411)를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우주적인 힘의 구조에 따르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눅 9:1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뒤나미스(duvnami", 1411)는 기름부음 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엑수시아는 파송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에게; (2)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3)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이다.
(a) 하나님의 엑수시아.
① 하나님의 종말론적 권위는 세계사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심판자로서의 그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마지막 날과 때를 결정하며, 역사의 종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계신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하나님은 인간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유한 분이심을 그의 예정 속에서 실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에 비유한다(롬 9:1; 참조: 사 29:16; 사 45:9; 렘 18:6; 지혜서 15:7; 집회서 36[33]:12이하).
② 하나님은 종말론적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사들에게는 심판날에 처벌할 권세가 위임될 수 있고(계 6:8); 다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을 수 있다(계 9:3, 계 9:10, 계 9:19).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권세(엑수시아이)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상의 권능들이란 말은 아르카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고, 그 말은 뒤나메이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엡 1:21; 엡 3:10; 골 1:16; 골 2:10).
그리스도의 높아 지심은 그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엡 1:21; 벧전 3:22).
그러나 아직 적대 세력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통치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쿰란 문서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연인은 흑암의 권세와 악마의 주권하에 있다(골 1:13; 참조: 행 16:18). 그 반대편에 빛의 영역과 성자의 왕국과 하나님 자신이 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다(계 13:2, 계 13:4, 계 13:12).
심지어 악마는 세상 지배권을 주겠다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그러나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권세도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그의 활동 범위는 제한된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악마의 권세에 관한 언급은 세상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쁜 소식에서 부여된 것이다.
악마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른 바로 그 대목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파멸을 선언하신다.
(b) 예수님의 엑수시아.
①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악마와 귀신들이 그들이 권세를 박탈 당했다는 것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고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들을 구해낼 권세를 갖고 계신다.
따라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권능에 의거한 것이며(눅 4:36),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도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마 10:1, 병행구 막 3:15; 눅 9:1; 막 6:7; 눅 10:19).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확증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마 9:2-8, 병행구 막 2:3-12; 눅 5:18-26; 참조: 시 103:3).
예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사명,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에 결국 → 바리새인들 Pharisees이 이해한 것으로서의 → 율법 Law과 충돌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주장하였던 랍비 할라카(Halachah)의 주장에 의거하여 율법의 축자적인 이해를 거부하였다(참조: 마 12:10, 마 12:12; 막 3:4; 눅 14;3; 요 5:10). 예수님의 권위는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가르침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막 1:22, 막 1:27; 마 7:29; 눅 4:32).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는데 반해(마 7:29), 예수님, 즉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은 모세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 아버지 Father를 아시고 그분을 드러내실 수 있는 아들의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마 28:18; 참조: 마 11:27; 눅 10:22; 요 3:35; 요 13:3; 요 10:15; 요 17:25).
성전 정화에도(참조: 마 21:12이하; 막 11:11-17; 눅 19:45이하; 요 2:13-17; 출 30:13; 레 1:14; 사 56:7; 렘 7:11) 메시야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②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예수님께서 아들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는 마지막 날의 심판권도 부여받았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7).
그러나 공관복음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능력은 강제적인 지배에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종이 되신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엑수시아도 갖고 계시며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갖고 계신다(요 10:18).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부여받았다(요 1:12).
③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표상은 부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활절 이후 들어 올리우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님은 인자가 나라의 보좌에 오를 것이며 그에게 권능이 부여되리라는 다니엘의 환상을 성취하셨다(참조: 단 7:14).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능은 강압적으로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 복음 Gospel 전파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된다.
외견상 지상에서의 메시야 통치로 여겨지는 것은 교회이지, → 이스라엘 Israel의 주권적인 통치가 아니다(행 1:6-8).
왜냐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높이 올리우심은 악한 자의 멸망과 심판과 시대의 전환점에 대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귀하신 주님은 사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권세를 부여하신다(마 28:18-20).
지상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부활절 메시지의 취지에 따라 활약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성령을 수여할 권세를 부여 받았는데(행 8:19; 행 2:38; 행 19:6; 행 10:44-48), 그 권세는 인간을 파하는 권세가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권세이다(고후 10:8; 고후 13:10).
사도는 교회에서 종으로서의 영적인 사역을 행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전 9:4-6; 살후 3:9).
이 성구들에서 엑수시아는 '권리'나 '특권'을 의미한다. (참조: O. Betz;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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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power 힘, 세력, 능력, 역량. duvnami"(1411, 뒤나미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Homer. 이래)는 뒤나마이(duvnamai, 1410)에서 유래했으며,
(a) ① '능력, 힘, 세력' ② '가능성, 할 수 있음' ③ 신체적, 지적, 영적 '힘, 능력'을 의미한다.
(b) 호머 이래로 자주 발견되는 뒤나미스는 '성취할만한 능력, 체력'을 의미하며, '군대, 전투력', 그리고 '정치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헬라 철학자들과 의학자들은 그 개념을 체력과 정신력에 의존하는 생존하고 활동하고자 하는 힘 혹은 능력이라는 그 말의 본래 의미로 사용하였다.
뒤나미스는 자연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그 말은 더위와 추위의 기세, 식물들과 자연 요소들을 치유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헬라 시대에 그 말은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포시도니우스(Posidonius)는 기본적인 원소에서 생명체의 원리를 보았다.
스토아 학자들은 사방에 퍼져있는 창조적인 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였다(Alexander of Aphrodisiensis).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자로 찬양하였으며 인간들이 거룩한 힘과 합해짐으로써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Corp. Herm., Poimandres, I, 26).
사람들은 특히 마술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공유하고자 하였다(I amblichus, De Mysteriis 2, 1). 병든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신의 능력의 실연으로 말미암아 치료 받고자 하였다(P. Oxy).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나오며, 주로 하일(138회)과 차바(113회)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군사력'을 의미한다.
뒤나미스는 또한 통치자의 힘, 천국 그리고 하나님의 힘에 대해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는 신약성경에서 1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그리스도의 사실.
신약성경의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힘에 관한 개념도 그리스도의 사실에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 사실은 분명히 언제나 하나님의 힘과 관련되는 구약성경의 메시야관과 관련되어 있다(참조: 사 9:5; 사 11:2; 시 110:2; 마 5:5). 이 힘은 주로 왕적인 능력이지만 예언적인 힘도 포함되어 있다(참조: 미 3:8; 행 7:22[모세]; 눅 1:17[세례(침례)요한]).
신약성경에서는 예언적인 면이 매우 두드러진다(참조: 눅 24:19).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힘을 부여받은 선지자 이상의 존재이다; 그의 전 존재는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 유일 무이한 것이다. 이것은 동정녀 잉태 기사에서 성령과 지존자의 능력의 병행에서 표현된다. 형식을 묘사하려는 어떤 시도도 행해지지 않았다. 성육신은 정상적인 발생 과정을 초월하는 잉태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도 탄생 때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붙여진다(눅 1:35). 이런 사실에 의거해 볼 때,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에서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이다(눅 4:14, 눅 4:36). 하나님의 본질이 힘이므로, 힘의 부여는 성령의 선물과 결부되며,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에게 그의 권세(엑수시아)를 전달해 준다. - 이 권세는 그가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자를 고칠 때 행사할 수 있는 능력(뒤나미스)을 지니는 권세이다(눅 5:17; 눅 6:19; 눅 8:46). 이런 이유로, 그의 제자들이 증거한 바는 하나님께서 성령과 권능으로 예수님께 기름 부으셨다는 것이다(행 10:38). 그가 행한 일들도 뒤나메이스(복수)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막 6:2; 눅 19:37; 또한 행 2:22). 이 일들은 그 당시 세계에서 행한 비슷한 능력의 행동들과 다음의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① 이 일들은 마술과 관련이 없다.
② 이 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말씀으로 행해지는데,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 적대 세력의 지배를 전복시킨다.
③ 이 일들은 이 일을 행하시는 분에 대한 믿음과 이 일들이 행해지는 사람들의 믿음을 전제하며, 따라서 인격적인 관계가 요구된다(마 13:58; 참조: 막 9:14이하).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음에는 능력이 있다(막 9:23). 왜냐하면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한 일들은 놀라움과 찬양을 불러 일으키며(마 13:54; 눅 19:37), 헤롯에게서는 양심의 불안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마 14:2).
요한복음은 뒤나메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엑수시아나 세메이온과 함께 동사 뒤나스다이를 사용함으로써, 강조점을 행동에서 능력으로 전이시킨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충만한 메시야적인 능력에서 행해진 세메이아는 독특한 행동들이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즉 그가 아버지와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는 뒤나미스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예수님의 메시야 활동은 아들의 보내심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뜻의 통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요 5:19, 요 5:30, 뒤나타이). 그리고 그의 기적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내는 징표이다(요 3:2; 요 9:16; 요 10;21, 항상 뒤나타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반대로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실재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어둠의 세계 속에 감금되어 있기 때문이다(요 3:3; 요 8:43; 요 14:17, 우 뒤나타이). 그들은 오직 선택(요 6:44)과 거듭남(요 3:5)을 통해서 해방될 수 있다.
요한에게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특징은
① 뒤나스다이에 유일무이한 그리스도 사건이 있다는 점.
② 이 사건 속에 있는 권능은 새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점이다. 이 권능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서 특별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은 마 22:29에 나오는 그의 말씀을 뒷바침해 준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4에서 베드로는 이 부활의 권능을 매우 인상깊게 부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낸다: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죽음의 권세는 깨뜨려졌다.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님께서 권능의 행동을 하도록 그에게 능력을 부여해 준 것처럼 또한 예수님께서 새 생명을 가지도록 능력을 부여해 준다.
바울은 고전 6: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과 고후 13:4("성구삽입")에서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전파한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며 그에게 권능 그 자체가 부여된 것도 아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그가 소유하게 된 것은 성육신의 외적인 약함과 대조되는 완전한 능력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만약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불리운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인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안에서 승리적으로 작용하며 그것을 목적지에까지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서 이 능력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권능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의 도달 범위를 넘어 선다. 이 능력으로 아들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이 세상을 다스린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요한계시록에서 이 능력은 영광과 동일시된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계 1:16).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그가 그의 일을 완성하고 다른 모든 세력들을 굴복시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확립하실(*빌 3:21) 능력을 가지고 오시기를 기다린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막 9:1). 이 오심은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있는 천사들을 동반하신 것이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7).
(b) 하나님의 능력, 악마적인 세력들, 그리고 구원의 능력.
①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빛을 던져준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따라서 이것은 부여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눔으로써, 이 능력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그의 능력은 구약성경에서처럼, 종말론적 사건의 역사적인 능력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그리스도 사건에서 나타난다(마 22:29; 참조: 히 11:19).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통치에 의해 뒤나토스가 된다(참조: 눅 1:49).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참조: 마 19:26). 믿음으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만물은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마 6:13; 계 4:11 등에서처럼, 구약성경의 송영을 받아들인다. 계 11:17-18과 계 12:10의 송영은, 그리스도 사건에서 하나님 능력이 이미 나타났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적대적 세력들을 멸망시키고 세상을 완전하게 하시리하는 고백을 암시하고 있다.
② 그리스도 사건은 또한 악마적인 세력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신약성경은 이 세력들을 인정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이 세력들은 우주적 세력인 동시에 천사적인 세력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그 힘을 잃어버렸으며 그의 재림 때 공개적으로 그 힘을 박탈당할 것이다. 이 두 사건들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신자들의 새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이며 그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엡 1:20-21; 롬 8:38, 롬 8:39), 이 세력들은 제거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싸우며(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결국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적그리스도는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서 거짓을 퍼뜨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만이 다시 그를 최종적으로 멸망시킬 것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살후 2:9).
③ 그리스도의 사역 또한 구원의 능력에 관한 질문에 새로운 답을 준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묻자, 그리스도는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참조: 마 19:26).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인간의 무능력을 날카롭게 강조한다. 우리의 약함 때문에, 율법조차도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롬 8:3).
히브리서는 제사에서 똑같은 무능력을 발견하고 있다(*히 10:1, 히 10:11).
요 3:3에서 언급되듯이, 만약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
만약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신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가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하나님만이 구원할 능력을 지니시며, 그는 예수님 안에 그의 권능을 나타내신다(롬 1:16; 고전 1:18). 이 능력은 신비적인 입교식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구원을 지시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도의 능력이다. 이것은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부터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김으로써, 구원을 부여해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 사건의 구원 행동, 즉 역사 안에서 행한 하나님의 능한 행동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벧후 1:3-4에서만, 즉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들을 주신다고 할 때만 역동적인 개념보다는 실질적인 개념을 엿볼 수 있다.
(c) 제자들의 능력.
전파는 하나님의 뒤나미스로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계속하며,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여 받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눅 9:1), 능력으로 그들을 무장 시켰다.
이 능력은 악마의 힘을 이긴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제자들은 믿음으로만 이 능력을 가질 수 있다(참조: 막 9:14이하).
이것은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 자신의 임재의 능력이다(눅 24:48; 눅 24:49; 행 1:8). 능력으로 설교하고 병을 고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의 부여가 오순절에 일어났다(행 4:7이하, 행 4:33; 행 6:8, 행 6:10).
바울의 사역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에 의해, 즉 성령의 능력에 의해 효력을 발한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
뒤나메이스는 사도직의 표시이다(갈 3:5; 살전 1:5). 허나 이 능력은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뿐만 아니라 신자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성령의 능력이다. 사도들은 십자가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약하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파하며, 따라서 청중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거하게 된다(참조: 고전 2;1이하).
뒤나미스는 메시지의 형식이 아닌 메시지의 내용과 관련된다. 전파의 목표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사역자가 된 것도 똑같은 능력에 의해서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 3:7).
고전 5:3-4에서처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은 또한 사법적인 것일 수도 있다: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여기에서는 만일 신자들이 사단에게 넘겨지지 않는다면, 사단은 신자들을 제어할 힘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심지어 사단에게 넘겨질 경우에도 그 목적은 여전히 구원에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사도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은 끊임없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빌 4:13; 딤전 1;12; 딤후 4:17).
이 강화하는 것은 원조의 형태를 취하며, 따라서 마나(mana)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종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의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d) 공동체의 능력.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의거하는 공동체가 바울의 목표이다(참조: 고전 2:1이하). 신자들은 "주 안에" 있을 때 강할 것이다(참조: 엡 6:10).
사단의 세력에서 구출되었지만, 여전히 위험에 싸여있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을 보호하고 보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보호 받는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이 사도의 기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누리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혹은 그들이 모든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이 능력은 그들의 부름과 영광스런 기업에 대한 소망을 만들어 낸다.
기독교인들이 참고 인내하려면 이 능력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보전할 뿐만 아니라 변화시키는 힘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게는 소망이 넘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됨으로 그들은 포괄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성장한다(참조: 엡 3:14이하).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가진다(참조: 요일 4:7).
모든 선한 결의와 믿음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뒤나미스를 발휘하며<이 때 주 영에 의해 변화됨 통해 견고히 세워져 가며>행하는<이 때 공급 통로가 된다>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10).
더구나 공동체에서 역사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부활의 능력이다: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3-4).
하나님은 주님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 6:14). 비천한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근거한다(빌 3:21).
어느 누구도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잡아챌 수 없다(요 10:28-29).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 - 그의 백성을 위해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창출해내는 능하신 행동 - 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뒤나미스의 원천이다.
(e) 능력과 약함.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 존재의 약하고 부패하기 쉬운 영역에서 역사한다. 따라서 이것은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려진다.
십자가의 도는 외적인 약함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참조: 고후 13:4).
그러나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고전 1:25). 바울은 이런 사실을 그의 사도 직무의 모든 약함 속에서 인식하게 되었다(고후 12:9-10; 참조: 빌 4:13). 이 초월적인 능력은 비겁의 영이 아닌 능력과 사랑과 자제(딤후 1:7)의 영을 주시는 하나님께 속한다(고후 4:7).
약함<여자의 자각 가운데 있는, 비록 강한 사내 아이에 속하지만, 동시에 마땅한 자리를 아는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이 약함은 그리스도의 임재의 보증(증거) - 바울은 이 증거에서 자아로부터 해방과 하나님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다. - 이다.
약함 속에서 강해진다는 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부활 능력은 복음의 사역자에게 있어서나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게 있어서나 더욱 더 풍성하게 역사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능력안에 있어")'는 사도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믿음의 실재를 표현해 준다(고후 6:7).
(참조: W. Grund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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