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론) 사66..겔48..단12..슥14..<140 >
예언자라는 이름은 비록 세상의 눈에는 지극히 초라해 보이나, 그것을 이해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위대하게 들리는 명칭이다.
예언자는 하늘과 매우 친밀하며,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자이며 따라서 땅에 대해서도 명령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니고 있는 자이다.
예언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위해 제시된다(벧후 1:20, 21). 왜냐하면 계시는 주로 꿈이나 음성이나 환상에 의해 먼저 예언자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을 통해서 다시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민 12:6).
한번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친히 시내산 꼭대기에서 수천 명의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그들은 너무도 무서워하여, 하나님께 앞으로는 이전처럼 “그 위엄으로는 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하고, 그 권세로는 그들을 누르지 못할”(욥 33:7) 자기들 자신과 같은 인간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하나님은 그 제의에 찬성하셨다.(“그들이 내게 말하는 그 말이 다 옳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신 5:27, 28). 그리고 그 문제는 그 때 양편의 동의에 의해 확정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훈을 받아 그것을 다시 그의 교회에 전할 책임이 있는 예언자를 통해서 듣기를 기대해야 한다. 구약의 신성한 경건이 기록되는 일이 시작하기 전에는, 예언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교회에 대해 성경의 역할을 했다.
우리 구주께서는 아벨을 예언자의 하나로 간주하고 계시는 듯하다(마 23:31, 35).
에녹은 예언자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 전해진 그것은, 마지막 날에 집행될 사건 즉 저 위대한 날의 심판을 처음으로 예고한 것이었다. “보라, 주께서 그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도다”(유 14).
노아는 의의 선포자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예언자”라고 부르셨다(창 20:7).
야곱은 장차 올 일을 예고했다(창 49:1). 아니, 모든 족장들은 “예언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나의 예언자들을 상하지 말라”(시 105:15).
모세는 모든 구약의 예언자들 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혁혁한 예언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신 자였기 때문이다(신 34:10). 그는 기록 문서를 남긴 최초의 예언자였고, 그의 손에 의해 거룩한 문서의 초석이 작성되었다. 모세의 정치적 역할을보좌하던 자들도 예언의 영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 시대에는 예언의 영이 풍성히 임하던 때였다(민 11:25).
그러나 모세의 죽음 후 몇 세기 동안은 여호와의 영이 예언의 영으로서 보다는 군사적인 영으로서 교회에 나타나셨고 또 그렇게 활동하셨다. 그리하여 말로 보다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더욱 감동시켰다. 이것은 사사들의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영이 옷니엘과 기드온과 삼손 등에 의하여, 그들이 펜이 아니라 칼을 가지고 그 나라에 봉사한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메시지가 기드온이나 마노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처럼 하늘에서 온 천사들에 의해서 전해졌다(삿 2:1).
사사기 전권에는 예언자에 대한 언급이 단 한번도 없고, 드보라만이 예언자로 불리고 있다(그 당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매우 귀했다. 즉 분명한 환상이 없었다. 삼상 3:1).
그들은 근래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서 예언은 소생되었고, 그에게서 교회 사상 유명한 한 신기원이 시작되었다. 즉 예언자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왔던 큰 광명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포로 시대의 얼마 후에는 구약 경전이 말라기까지 완성되었고, 그 후 약 400년간 예언이 끊어졌었으며, 마침내는 저 위대하신 예언자와 그의 선구자가 왔다.
몇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교회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기록해 놓은 것에다가 자기들의 이름을 넣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갓이나 잇도처럼 예언자들의 글을 대신 써 준 것으로 알려진 자들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그것이 출처가 확실한 기록이라는 증거를 남기려 했을 뿐이었다.
다윗과 그 밖의 사람들도 교회를 위해 신성한 군대를 지은 예언자였다.
그들의 시대 이후에는 특정한 사명을 띠고 보내어지거나, 어느 특정한 공적 사업을 위해 예언자들이 있음을 자주 읽게 된다. 그들 중 가장 유명했던 자는 이스라엘 왕국의 엘리사와 엘리야였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자기들의 예언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 시대의 역사 속에 있는 단편적인 내용 밖에는 그들에 관한 것들을 알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엘리야가 쓴 하나의 편지 이외에는(대하 21:12) 그들이 직접 기록한 것은 없다.
그러나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의 후반기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언자들에게 그들 설교의 일부나 그 발췌한 내용을 기록하고 발행하도록 지시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들의 예언 중 많은 것들의 시대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최초의 예언은 유당 왕 웃시야와 같은 시대의 이스라엘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는데, 이것은 포로 사건 약 200년 전이었고, 또 요아스가 성전 뜰에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직후였다.
그들이 예언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할지라도, 예언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그들을 고발하는 증거로서 남게 될 것이다.
호세아는 최초의 문서 예언자였다. 그리고 요엘과 아모스와 오바댜는 거의 동시대에 그들의 예언을 책으로 발행했다. 이사야는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이 제일 먼저 배치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예언이 모든 예언서보다 가장 크며 그 대부분이 모든 예언자들이 증거한 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상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그는 “복음의 예언자”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며, 일부 고전사가에 의하면 그는 “제5복음서 기자”라 했다.
우리는 본서 이사야서의 표제를 알게 될 것이다(1절).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단지 다음과 같은 것들만 살펴보기로 하자.
1. 그 예언자 자신에 관하여 살펴보자.
그의 아버지가(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웃시야 왕의 형제였으므로, 그는(만일 우리가 유대인의 유전을 믿어도 좋다면) 왕족 출신이었다. 그는 분명히 궁중에 많이 있었고, 우리가 그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히스기야 시대에는 특히 그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문체가 다른 선지자들의 문체보다 더 특이하고 우아하며 어떤 부분은 지극히 고상하고 활기찬 것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때로 그 예언자의 독특한 재능을 당신의 목적에 사용하셨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그것을 “통해서”(through) 성령이 말씀하시는 하나의 말하는 나팔이 아니라, 그에 “의해서”(by) 성령이 말씀하시는 하나의 말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은 빛에서나 불꽃에서나 그들의 생래적인 능력을 이용하시며, 그들 자신보다도 그 능력을 더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2. 그 예언에 관하여 살펴보자.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탁월하고 유용한 예언이다. 그것은 당시의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즉 죄의 자각을 돕고 의무를 지시하며, 환난 중에 위로한다.
교회의 두 가지 큰 환난, 즉 그의 시대에 있었던 산헤립의 침입에 의한 환난과 오랜 후 있었던 바벨론 포로 사건에 의한 환난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한 위로가 처방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곤궁한 각 시대를 위해 쌓아 둔 도움과 격려 속에서 우리는 풍부한 복음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복음서 중에서 이사야서만큼 많이 인용하고 있는 예언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에 관한 이처럼 명백한 증언, 곧 그의 동정녀 탄생(7장)과 수난(53장)을 이처럼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책도 없다.
이 책의 서론은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에 대한 경고로 대부분이 차있다.
그 후반부 끝은 좋은 말과 위로를 주는 말로 가득차 있다.
먼저 죄를 깨닫게 하고 그 다음에는 위로를 주는 이러한 방법을 그리스도의 성령은 이전에 예언자들에게 쓰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계시다.
그리고 그 위로의 축복을 받으려는 자들은 죄인이라는 사실에 굴복해야 한다.
물론 이사야는 많은 교훈을 가르쳤고 많은 메시지를 그 백성들에게 전했으나,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설교와는 달리 이 책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설교들은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충분히 선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지혜자께서, “세사으이 마지막 때가 임한”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만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예언은 그리스도의 역사(曆史)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고, 믿는 자는 그의 이름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자” 하여 씌어진 것이다. 그 당시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도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오! 이 복음이 믿음과 결합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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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다루심의 방식은 그분의 어떠하심, 즉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기준과 근거임]
....사랑하는 백성은 그분의 거룩하심의 기준에 따른 징계(징벌)로, 열국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곧 공의를 기준에 따른 심판으로 다루심...
**징벌 = 징계 ::: 사랑하는 백성 다루심의 방식 *1) 거룩하심, 즉 항상 사랑에 근거하여, 사랑 안에서<아버지로서(사1:2-3, 63:16, 64:8), 양육하는 어머니로서(66:13), 남편으로서(54:5)> 그분께 합당하도록 최선-최상에로 이끄심 *2)아버지가 자녀들을 교정-개선하여 바른 궤도로 나아가게 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야 하였지만 그들은 일반적=세상적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있어서 전혀 그분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하러 오심
**심판 ::: 열국을 다루심의 방식 *1)하나님의 의, 곧 공의에 근거하여 다루심... 하나님이 보시기에 열국(이방나라들)이 공평하고 의롭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하심....그러나, 열국의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추구하는 백성들이 있음을 친히 아시기에, 그들을 특별히 선대하시며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처럼, 그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징계하심 통해서, 그리고 열국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참되게 배우고 하나님을 사모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의 거룩하심을 실지로 경험하여 아는 데로 돌이키도록 기회를 열어주시고 계셨는데(욥기를 보라),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과 다루심에 있어서 범위 적용에 대한 시대적 경륜을 달리하심으로써, 이 열국 백성, 곧 이방인들조차도 그분의 교회로 들어오도록 완전히 개방해 주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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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믿는자인 우리는 잠잠히 우리 자신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비록 주님을 추구하고 있다 할지라도, 때때로 어떤 악한 것들이 우리의 매일의 생활 속에서 발호하여 일어나 시험에 들게 하려 하고 있기에 조심하고 주의하며 경계함으로 깨어 있어 기도할 필요가 있다(마26:41)...보라, 매일의 생활에서 방심-부주의하고, 주님과 다른이들에 대해, 심지어 우리 자신에 대해까지도 그릇되었을 때, 우리 기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사6:3상에서 이사야는 영광 안에 계신 주님에 대한 이상을 보았는데,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하면서 창화하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관심이 그분의 백성들의 그분의 거룩함을 참되게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감에 있는바, 그분의 거룩함따라 그분을 위함이 합당함을 가리킨다. 그분은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분이 부르신 자들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신다. 이사야가 이 이상을 보았을 때, 그는 그가 여전히 죄악되며, 부정한 입술을 가졌고, 부정한 입술을 가진 백성 중에 거한다는 것을 <아주 심각하게>깨달았다(5절)
....이사야의 체험은 오늘날 믿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케 되고,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본 받게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육신 안에. 옛장조 안에 있으며, 여전히 우리 속에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가 극도로 부정한 땅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날마다 우리는 우리 죄들과 결함-실패-단점-허물-실수들을 주께 자백할 필요가 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성도들과 우리 가족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못 행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성전인 우리 몸을 함부로 <멋대로>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화를 냄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그릇될 수가 있다.
....우리가 주님에 의해 빛 비춤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우리의 상황을 깨닫게되고, 주님께 우리 죄들을 자백하며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참된 체험을 갖기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옛창조 안에서 아직 땅위에 살고 있는 한, 우리가 죄악되다는 것과 우리 죄들에 대해 여전히 자백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선대하시며 은혜로 대하실 길을 갖게 될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주께 무엇인가를 드리기를 원했을 때마다, 그들은 그 제물 드림에 앞서서 반드시 속건제와 속죄제를 더해야 했다. 이 원칙은 오늘날 믿는이들인 우리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바, 우리가 주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려 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가 여전히 죄악됨을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로 속건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우리가 옛창조 안에서 아직 땅위에 살고 있는 한, 우리가 죄악되다는 것과 우리 죄들-결함들-실패들-단점들-허물들-실수들에 대해 여전히 자백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선대하시며 은혜로 대하실 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이사야 당시에 이스라엘에 관해 그러하셨듯이 우리에 관해 하소연하실 것이다.]
-----[이사야 / 입술을 숯불에 덴 선지자 / 오스왈드 샌더스]
구약의 모든 예언자 중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지자는 없다. 그는 복음을 외치며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이사야서보다 더 분명하게 메시야의 약속이 기록된 곳을 찾아볼 수 없다. 이사야서보다 더 메시야의 왕국이 생생하고 풍부하게 기록된 곳은 없다.
이사야의 예언적인 묵시는 그의 시대와 나라라는 좁은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그의 눈 앞에 교회가 일어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보았다. 만왕의 왕께서 “나의 백성 애굽과 나의 손의 역사인 앗수르에 복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는 믿지 않는 이 세상 세력의 대표인 애굽과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합하여 참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올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하였다. 말하자면 이사야의 예언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다리를 이룬다.(-세이스(A. H. Sayce)
“세계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일 뿐이다“라고 토마스 카알라일(Thomas Carlyle)이 말하였다.
예언자 이사야는 확실히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치가로서, 역사가로서, 혹은 예언자로서 이사야는 뛰어나게 그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가 기록한 책은 가장 고상한 문학 작품에 속한다. 일평생 세계 문학을 연구했던 모울튼(R. G. Moulton)교수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작품 속에 위대한 사상들이 이렇게 많이 다루어진 책은 세계 문학 속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 자신에 대해서는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오직 두세 가지의 자서전적인 언급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특별한 성공적인 경력과 사역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가 자신의 가장 깊은 영적 체험중 어떤 것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그의 글에서 그의 성품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그는 웃시야왕의 혁혁한 오랜 통치 기간 중에 살았다. 그런데 웃시야왕의 통치는 화려하고 번영했었으나 어두운 비극으로 끝났다. 웃시야는 원수의 위험은 이겨냈으나, 더 교묘한 번영의 책략에 굴복했던 많은 왕 가운데 하나였다.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이사야는 왕족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모스는 요아스의 아들이었고, 유다왕 아마새의 형제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웃시야왕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활동이나 말도 매우 담대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죄와 불의를 책망할 때에는 타협을 몰랐으나, 엄격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의 예언에는 비할 데 없는 비애와 부드러움의 말들이 있다.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랑과 영감과 경의의 분위기이다. 그의 견해나 동정심은 제한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광범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주된 임무인 유대인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이방 민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참된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예언에서 그는 단어를 이용하는 수사학의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의 이름과 두 아들의 이름을 대단한 힘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이 자서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6장에 기록되어 있는 환상에 대한 부분인데, 이것은 그의 생애의 가장 큰 위기였다. 그가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이 경험은 그의 메시지의 중심이 되는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이 환상은 매우 중요하며 귀중한 영적 원리를 드러내 주고 있으므로 이 환상은 이 연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환경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인간의 마음도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소명과 사역을 위한 헌신은 우리 시대의 하나님의 종에게도 관련이 된다.
==환상의 배경
52년 동안의 안정된 통치 후에 웃시야왕이 죽자, 유다 왕국에 큰 위기가 왔다. 그의 통치는 솔로몬 이후 가장 훌륭하고 번영된 것이었다. 따라서 온 나라는 거의 깨어지지 아니하는 평화를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영광이 빛을 잃은 것이다. 그를 문둥병자로 만든 심판의 채찍은 그가 점점 교만해지고 무례해진 데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이 심판이 침륜에 빠지고 자만한 나라에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으나, 그가 죽음으로 치명타가 되었다.
열렬한 애국자였던 이사야는 유다의 다가올 영광에 대한 묵시를 열심히 자기 민족과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왕의 죽음은 그의 희망과 꿈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그의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던 웃시야왕은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끊어져 문둥병자로 죽었다(대하 26:21). 이것이 바로 그를 깨뜨리고 다시 만든 삼차원적인 배경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국가적인 확장의 이상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이 주님께 질문하던 것이 떠오를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 그들의 이기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야망에 대한 주님의 응답은 날카로운 책망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관심을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영적 책임으로 돌리셨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슬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환상을 보이시며 바른 시각을 갖게 하셨고, 그의 나라와 온 세계를 위한 사역을 위해 그를 준비시키셨다.
환상은 6장에 나타나지만 연대적으로 보아 아마도 그것은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것이다. 변화받게 되는 환상을 보기 전에, 그가 어느 정도 선지자적인 사역을 위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그가 후에 감당하게 된 중요한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이 환상으로 인해서였다. 만일 이 환상이 1장에 기록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그 대답은 간단하다고 스미스(G. A. Smith) 교수는 말한다. “아마 6장은 그 앞에 기록된 일들보다 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사야가 그것을 기록해 넣은 것은 그의 선지자 생활의 가장 초기의 몇 개월에 일어난 사건일 뿐아니라 그의 경험에 의해 강조되고 기록된 것이다. 그것은 이 선지자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실제로 경험한 영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후의 경험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외적인 환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5장은 연대적으로 6장보다 앞서는 것 같지 않으나, 이사야는 그것이 그의 환상과 소명에 대해 더 많은 배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6장을 그 곳에 기록하였다. 이 장에서 그는 세상의 죄악에 마음이 상하고 그를 둘러싼 국가적인 쇠퇴의 뚜렷한 징조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유다가 배교한 이스라엘의 발자취를 빠르게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는 자기 나라의 국가적 사회적 죄를 고발해야만 했다. 그는 그들의 탐욕과 부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사 5:8) 보았다. 재산은 극소수의 손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농경 사회에서 큰 악이었다. 그는 그들의 약탈과 방탕과 지나친 쾌락 사랑(사 5:11),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과 반항(사 5:18), 도덕적 혼돈과 이상을 버린 것(사 5:20), 정치적인 자부심과 이기주의(사 5:21), 정부 고관들의 부패(사 5:23)를 묘사하였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의 신문을 읽는 것과 같이 들리지 않는가! 여호와의 증거자로서 이사야는 분개하여 화가 있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조금도 용서를 몰랐다. 그가 타협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 정죄의 사역을 위한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깨어진 사람만이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역이었다. 이사야의 생애에는 하나님께서 교묘한 하나님의 방법으로 공급하시고자 하는, 아직도 부족한 요소가 남아 있었다. 국가적인 위기의 시기가 선지자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과 위엄과 거룩을 볼 시기가 되어야 했다. 그는 다시는 그의 경험가운데 인간이 너무 커 보여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이 작아 보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신(행 17:26)“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환상의 요소들
왕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허락하신 보상적인 환상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둘째로, 그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셋째로, 그는 그의 사역의 특성과 영역을 보았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명령은 매우 중요하며, 이 교훈은 모든 시대의 주의 종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결하심과 완전하심의 환상은 먼저 불가피하게 그 자신은 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직 그럴 때에만 그는 사역의 환상에 응답할 준비가 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입을 다물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위해 말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환상
젊은 선지자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준 환상의 특징 다섯 가지가 있다.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는 그에게 새로운 개념이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웃시야왕이 그의 친척이었으므로 보좌에 앉은 왕을 보는 것은 이사야에게 새로운 것이 못되었으나, 이와 같이 높고 인상적인 보좌를 그는 본 일이 없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웃시야는 참으로 얼마나 초라한가! 그는 이전에 만왕의 왕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보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통치권의 상징이었다. 그는 그 환상이 하나님을 창조물 위에 무한히 높이 계셔서 그 손에 왕의 홀과 우주의 권세를 쥐고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의 최고의 개념이나 이상보다도 훨씬 크고 무한히 위엄있으신 분이었다. 유다의 보좌는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견고하고 영원하였다.
토저(A. W. Toz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나님은 항상 그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시다. 그는 가장 장엄한 것보다 더 장엄하시고, 가장 고귀한 것보다 더 고귀하시고, 가장 심오한 것보다 더 심오하시며, 가장 화려한 것보다 더 화려하시며, 가장 권위있는 것보다 더 권위있으시고, 가장 은혜로운 것보다 더 은혜로우시고, 가장 공의로운 것보다 더 공의로우시다.“
높이 들린 보좌 위에서, 이사야는 온 우주의 권세를 손에 잡으시고, 모든 나라와 모든 세대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이것이 그가 그의 선지서 40장에서 전개하는 주제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45:13).
인간은 시간의 노예이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왕이시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모든 세대를 행하시며 만유를 다스리시고 그분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것들을 지도하신다.
다음으로 이사야의 주의를 끈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공손한 태도와 이기심없는 봉사였다.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2-3).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주위에는 이 장면의 장엄함을 더하기 위하여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서 있었다. 이 상징적인 경배의 태도는 매우 깊은 인상을 준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로 인해 왕에 대한 관심을 감소시키지 않는 본질적으로 감추어진 종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아름다움까지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겼다. 그들의 발이 이루는 사역은 이루어지자마자 감추어졌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일들을 회고하기 위해 중단하는 일이 없이 새로운 사명을 위해 계속 달려 갔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는 그들의 찬양은 이사야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그의 예언에 반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의 전능을 강조하는 이름인 “만군의 주“는 60번이나 반복되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흠없는 성결을 나타내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30번이나 반복된다. 스랍들은 높이 들린 곳에서부터 이사야가 보았던 유다의 죄악과 그 이상의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죄를 정복하고, 심지어는 계속 잘못하는 유다를 통하여서라도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조용히 확신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이 있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이와 비슷한 것이 생각날 것이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매“(출 19:18).
이것은 오순절 날에도 그러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 2:2, 3).
이 명백한 초자연적 능력의 증거 안에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환상의 초월적인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의 충만이었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얼굴은 볼 수 없고, 오직 알 수 없는 넓고 흰 옷자락만이 보이는도다.[-브라우닝(Browning)]
이사야에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는 성소의 구조에 익숙해 있었다. 바깥 뜰은 모든 백성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고, 성소는 제사장들만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으며,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고요한 방이었다. 이 거룩한 방에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있었는데, 희생의 피가 없이는 안되었다. 그러나 이제 거룩에 대한 그의 생각이 대변혁을 일으켰다. 거룩한 옷자락이 성소 가장 깊은 데에서 바깥 벽까지 가득 찼다. “전능자의 옷자락이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을 덮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거룩한 것과 세속된 것 사이에 경계에 있을 수 없었다. 생애의 어떤 부분도 하나님의 임재와 절대적인 권위로부터 제외될 수 없었다.
환상에 대한 그의 반응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
스랍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쳤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그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으며,그 이후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은 그의 불타오르는 모든 사역에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환상
하나님에 대한 환상은 불가피하게, 자기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을 보게 해 준다. 이 축복된 환상이 모세의 교만을 꺾었다. 이 환상은 다니엘이 자신의 악뿐만 아니라 자신이 덕이라고 여겨왔던 것이 얼마나 부패한가를 보게 하였다. 이 환상은 사울의 눈을 멀게 하였고, 요한으로 얼굴을 가리게 하였다. 이 환상은 이사야의 교만에 구멍을 뚫었다.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보고 당황하게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찌르는 설교를 하는 선교자에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 설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폭로하지 않는 객관적인 설교를 훨씬 더 좋아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으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허락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모든 위장을 무자비하게 벗기시고, 그가 보시는 바 우리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첫째는, 그의 교만이 무너진 것이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사야는 방탕한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 그는 그 나라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처럼 그는 율법의 기준으로 보아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나는 광채 가운데 들어갔을 때에 할 수있는 일은 오직 문둥병자와 같은 외침밖에 없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그는 하나님은 모든 악한 것을, 심지어는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악까지도 영원히 미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대의 풍조는 인간의 최고의 필요는 좀더 자기를 의지하며, 자신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이사야의 경험에 따라 판단한다면, 우리의 가장 큰필요는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부족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지적하신다. 이사야를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이전의 그의 선교의 특징이었던 자기 만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는 “화로다 나여“라고 외치기 전에 남들이 화가 있다고 외쳤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치심과 자기 혐오감에 사로잡혔다.대제사장 여호수아처럼, 그는 예기치 않게 자신이 더러운 옷을 입고, 높은 직분에 합당치 않은 모습으로 서 있음을 발견하였다(슥 3:3). 어떻게 그의 더러운 입술이 그 같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병적으로 자아 성찰을 하거나 자기 분석을 할 필요는 없으며, 그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빛으로부터 우리를 멀리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기 시작하실 때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계적인 자기 방어를 버려야만 한다.
이 선지자는 이와 같이 드러난 자기 모습에 몹시 놀랐다. 그의 입에서는 어떠한 자기 변명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죄를 고백하는 일뿐이었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부정하구나. 내가 길을 잃었구나. 끝장이로구나“라는 식으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다. 이사야는 하늘의 교사께서 정하신 첫 번째 수업을 끝마친 것이다.둘째는, 그의 무가치함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그러면 어떻게 부정한 입술을 가진 사람이 눈이 청결하여 약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자가 될 수 있는가? (합 1:13) 말이 선지자의 무기인데, 하나님께서 정죄하신 것은 그의 말에 대한 것이었다.그는 죄를 애매하게 깨닫지 않았다. 그것은 한 가지 사실에 집중되어 있었다. 챨스 피니(Charles J. Finney)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한 가지 죄를 깨달은 사람은 모든 죄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아무 죄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에 대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될 때에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명확하게 우리 죄를 깨닫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대개 우리의 주의를 어느 특정한 우리의 생활 모습에 집중시키신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생각을 어느 특정한 죄의 행위로부터 그 죄를 짓게 하는 기초가 되는 기질로 향하게 하신다.
이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고, 잘못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자신에게 심판을 선포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는 틀림없이 유다의 보좌에 앉아 있는 문둥병에 걸린 웃시야의 변질을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라고 외쳤다.
이전에 그는 자기 의의 높은 기준에서 나라의 타락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두려운 거룩함을 보게 되자, 그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였고, 자기가 전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말의 죄로 인하여 효과적으로 사용받는데 제한을 받는다. 육체의 큰 죄는 삼가지만, 입술의 죄는 묵인하고 묵과한다. 이사야가 더러운 입술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더러운 말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대화에 탐닉하지 않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더 나쁜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교만한 말, 빈정대고 찌르는 말, 냉정하고 사랑이 없는 말, 진지하지 못하고 위선된 말, 생각없는 잡담, 화내는 말, 과장되고 거짓된 말 등이다. 깨닫지도 못한 진리를 말하고, 형식적인 기도를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청교도들의 신앙 고백을 읽을 때에 우리는 그들이 매우 악한 사람들이었거나, 아니면 우리가 매우 피상적인 그리스도인임을 깨닫게 된다. 가장 거룩하고 가장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 가장 비천한 고백을 한다. 죄를 고백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영적인 평판에 해를 가져올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한히 향상시킬 것이다.
셋째는, 이스라엘과 자신을 새롭게 동일시하게 되었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처음으로 이사야는 그가 그의 백성과 영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는 따로 떨어져 생활을 하는 고립된 시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구성원 중 하나였다.
그는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졌다. 그가 그들을 비난했을 때에 그는 실제적으로 자신을 비난한 것이다. 유다의 죄는 분명히 그에게도 있었다. 그것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생애는 나의 세대의 타락으로 물들어 있었다.나는 그들에게 더럽게 전염되었으며 무의식적으로 나의 기준을 낮추어왔다. 그들의 죄에 대해서 나 역시 책임이 있는 것이다. 화로다, 나여!“
우리의 나라, 도시, 혹은 교회의 구성원을 향한 하나님의 참 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들과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그들이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인 양 그들을 향하여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됨됨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인도하는 대로 그들은 따라올 것이다. 우리의 그릇된 인도는 그들의 실패 가운데 반영될 것이다.
==사역에 대한 환상
그 이후로 이사야는 사물을 올바르게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셨고,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온전히 거룩하셨고, 그는 오직 죄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성공적이었던 사역의 가면이 걷혀지자, 그는 자기 생애의 실패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부정하다는 그의 고백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악하지는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그가 아직도 자기 마음의 교활함과 이중성을 십분의 일도 발견치 못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어지고 통회하는 심령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고백에 이어 즉시 깨끗케 하는 불이 따라왔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6:6-7).
“때에...“
이제 통회하는 선지자의 입술에서 비참한 고백이 떨리며 나오자마자, 하나님은 당신의 깨어진 종을 깨끗케 하시고 위로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셨다. 스랍은 즐거운 심부름을 위하여 날아갈 준비를 하고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시 깨끗케하고 용서하신 것은 아버지가 탕자의 입에 입맞춘 일을 생각나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용서하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준비하고 갈망하고 계신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고 고백하는 순간 용서를 받는 것이다.
우리의 생애는 세계의 숫자판, 바늘은 계속 도는 하나님의 손, 짧은 바늘은 연단의 손, 긴 바늘은 영원한 은혜의 손.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연단을 거쳐야 하네.
하나님은 매 시간 은혜의 말씀의 종을 치시네.
은혜의 바늘 위로 계속 움직여, 60배의 은혜로 시험을 지우시네.
매 순간은 우리 하나님의 축복을 세고, 매 시간은 사랑의 학교의 수업, 두 바늘은 한 중심에 묶이어 있네.
높으신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위대한 사랑. [-췌머(S. M. Zwemer)]
그러나 왜 스랍은 핀 숯을 가지고 그에게 날아왔는가? 왜 그는 유일한 죄의 해결책인 피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이 기록에 속죄의 피는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잠재해 있다.
죄는 오직 피와 불로 깨끗케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타는 숯은 연기나는 희생의 제단으로부터 취해졌다.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은 바로 그 숯불 위에서 이미 태워졌다. 선지자의 입술을 태운 숯은 희생의 붉은 피가 흠뻑 적셔진 숯이었다. 피 없이는 죄사함이 없고, 불이 없이는 죄를 깨끗케 함이 없다. 신약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이사야가“소멸하는 영“(사 4:4)이라고 부른 성령께서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중재 사역의 효력을 적용시키신다. 갈보리 후에 오순절과 불과 성령의 밥티스마가 왔다.
“피는 죄를 깨끗케 한다. 성령의 역사는 불타 올라 이기적이고 죄악된 삶을 불태운다. 그리고 주님의 형상을 새긴다.“
하나님께 “단에서 취한 숯불“로 설교자의 입술을 태워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만큼 집회에서 자주 드려지는 기도는 없다. 이것은 매우 귀중한 영적인 갈구이지만, 이사야의 경험에서 의미했던 상징의 중요한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 화저로 제단에서 가져온 뜨거운 숯불을 입술에 댄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물집이 생기고 화상이 생기는 경험이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이다. 정결케 하는 불은 그의 죄가 집중되어 있는 그의 부정한 입술 위에 놓여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다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죄와 실패의 극악무도함을 우리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비상 수단을 동원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서 술을 취하여 우리의 죄의 근원에 닿게 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에게 즐거운 결과가 주어졌다.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그 이후 그는 순결한 마음과 불에 댄 입술로 설교를 할 것이다. 그의 사역에 새로운 특징이 생겨났다. “나의 백성을 위로하라.“
우리는 더 이상 그가 비판적인 입술로 차가운 비난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훈련이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그는 곧 도전적인 질문을 받았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하나님의 곤경이 이사야에게 기회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사용될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이사야의 깨끗하고 민감해진 영적인 능력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를 가능케 하였다. 그가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을 수있었다. 이제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가깝게 교제를 갖고 있었으므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그와 같이 친밀한 교제를 결코 누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과 즐거운 열정으로 그가 거리낌없이 대답하였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위임하는 말씀은 지체되지 않았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사 6:9).
오직 불에 덴 입술만이 그의 앞에 놓여진 사망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오직 스랍의 말만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권능의 말씀을 하시는 주님 자신이셨다. 그는 메시지를 받고자 하지 않는 불순종하고 마음이 굳은 백성에게 보냄을 받았다(사 6:10). 그 사명은 인기가 있다거나 극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존경받기보다는 멸시당하고 거절당하며, 결국에 가서는 톱으로 켜서 갈기갈기 찢김을 당하게 될 것이다(히 11:37). 그의 사명은 침륜에 빠진 그의 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주의하고자 하는 남은 자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실망스러운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명은 권능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말은 그 당시에는 마치 메아리와도 같이 공허하게 그에게로 돌아왔지만 수 세기를 거쳐 울려 퍼지면서 꿈에도 생각지 않던 열매를 가져 왔다.
==그의 사역의 특성
정치가요 예언자로서의 그의 이중 역할은 나라의 영적, 정치적인 생명에 뜻깊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위기에 처했을 때에 지도자들을 상담해 주었고, 백성들의 관심을 하나님께 돌려서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았을 때에, 백성들은 다른 모든 큰 도시들은 큰 강 위에 세워진 반면에, 하나님의 도시는 물 공급도 없고 편리한 교통의 방법이 없는 언덕 위에 세워진 사실을 슬퍼하였다(사 33:31). 왜 하나님은 그처럼 근시안적이신가? 그러나 예언자는 그들을 꾸짖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같은 것이라.“
하나님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결과, 그는 위로의 사자가 되었다(사 40:1).
그는 이제 그의 하나님처럼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나 죄 짓는 사람들에 대해 끝없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난 가운데 연단을 받은 그는 이제 자신이 배운 교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현 세계는 위로의 사역을 무한히 필요로 한다. 마이어(F. B. Meyer)박사는 노년에 이르러 만일 그에게 삶이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더욱 많은 시간을 위로의 사역에 바칠 것이라고 말하였다.
모든 예언자들 중에서 이사야가 다른 누구보다도 복음의 영광에 대해 가장 분명한 통찰력을 받았다. 그의 책은 복음 메시지의 예시로 가득 차 있다. 53장은 갈보리의 의미와 죄지은 인간들을 향한 좋은 소식에 대해 매우 선명한 빛을 비추어 준다. 55장의 처음 구절들보다 더 설득력있고 감동적인 복음의 초청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이사야는 복음적 예언자라고 불리어 온다.
그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웅변적으로 선망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환상에서 받은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노력하였다. 구약 가운데에서 사상의 고상함, 표현의 적절함, 그리고 분명한 영적 통찰력 등에 있어서 40장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놀라운 초월성을 지니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타락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세계와 완전히 이질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태도(사 40:4-11)가 부드러우시며, 그 속성(사 40:12-31)이 뛰어남을 잘 묘사해 준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대속적 희생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준다.53장은 메시야의 고뇌의 대속적 성경을 강조하기 위하여 모든 표현 형식을 동원하고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그는 모든 종류의 상처(사 53:5)를 감수하셨다. 가시, 매질, 채찍질, 창, 못, 머리를 잡아 뜯기는 등 그는 모든 종류의 고통과 슬픔(사 53:4-6)을 경험하셨다. 고뇌, 압박, 슬픔, 징계, 고난, 버림받음, 그는 모든 종류의 수치(사 53:3)를 당했다. 멸시받고, 거절당하고, 존경을 받지 못하고, 상처입고, 도살당하고, 불의한 재판을 받고, 그 무덤이 악한 자와 함께 되었다. 그는 모든 양상의 죄를 대속하셨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였다.
그는 메시야를 이상적인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강력하게 주님의 생애를 장식했던 자질들,즉 하나님을 의뢰함, 겸손, 동정심, 낙관주의, 순종 등(사 42:1-4)을 예언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파멸을 예언했던 선지자이지만, 그의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선하심을 모두 경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경고는 때로 눈물로 얼룩졌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죄악된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 드러나며, 회개한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전달되었다. 그는 변함없는 충성심과 은혜로 어려운 사명을 이행하였다.
=========[433.귀하신주여(1-9)] [491.저높은곳을향하여(10-20)] [290.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623.주님의시간에] [ 389. 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개역개정]제1장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여호와의 말씀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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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לְכוּ־נָ֛א וְנִוָּֽכְחָ֖ה יֹאמַ֣ר יְהוָ֑ה אִם־יִֽהְי֨וּ חֲטָאֵיכֶ֤ם כַּשָּׁנִים֙ כַּשֶּׁ֣לֶג יַלְבִּ֔ינוּ אִם־יַאְדִּ֥ימוּ כַתֹּולָ֖ע כַּצֶּ֥מֶר יִהְיֽוּ׃
....참생명의 Q, 부활생명의 그영(CJ의 영-그영-성령..조성-형상/기름부음-양육/목양하시는 성령님) (거듭난이와 한 마음으로) 목양/양육-적셔-빚어-다루며-변화/대치-조성-충만케 하시는 분.., Q의 진리로 살며 그 상호거처됨이란 그분의 호흡해내신바 그대로[[기록된 말씀+즉각적으로 열어주시는 말씀]] 믿음으로 받고, 어찌하기를 원하시는지 여쭈고((nothing-nobody!!, 십자가 적용하는 매일-매순간의 구원/혼의 구출을, 생생하게 체득케 하시며 더욱더 새로와지며 말씀새기심을 경험케 하실것!!)) 이끄심따라 (믿음으로) 붙좇음.... 깊이 묵상-반추-앙망/응시/주이름 부름/머무름-적셔짐의 삶 안에 앙망하며 걷기, 이를 통해 부활생명의 넘쳐흐름인바 참지혜 그 자체로 조성될바, Q형상 진리 그릇의 그 삶 살아가는 참제자-곧 성령의 사람- (성령과 그의 마음이 하나됨으로써) 그 중심에 참생명 넘침의 제자 만드심이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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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가득 찬 성읍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צִיֹּ֖ון בְּמִשְׁפָּ֣ט תִּפָּדֶ֑ה וְשָׁבֶ֖יהָ בִּצְדָקָֽה
.....[@치욘<체데-요드-바브(상)-눈>...여호와의 참생명-인격으로 동심합치의 삶 살아가는바 [시온]은 ...@베_미슈파트<베이트_멤-쉰(우)-페이-테이트>...친히 주께서 열어 부어주신바 진리-형상의 기름부음따라 Q생명 넘쳐흐름인 참생명지혜로 살며.. @티_페데<타브-페이-달렛-헤이>...말씀을 열어 온전케 하신바 결합-연합-교통-공급으로 구별된 하나, 그 특별한 몫으로서 주께 합당하게 살아가는바 @웨_샤베하<바브_쉰(우)-베이트-헤이>..[주님없이 나홀로는 결코 살 수도/설 수도 없는바, nothing-nobody임을 철저히 깨닫고-항복하며!!, 십자가 적용하여 내려놓고-열어-비워-내어-맡겨드려, 전적으로 의지-앙망하며 붙좇는바, 그 진정한 회개/새롭게 하심 적용받음 = 구속+거듭남/날마다 -매순간마다 구원/구출 이룸!!] Q형상-진리-기름부음의 말씀따라 살아가며 @비_체다카<베이트_체데-달렛-코프-헤이>...말씀하시는 Q의 소망-교통따라 동심합치로 결합한 하나를 사는바 공의와 정의로 살도다.]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AMP.1
===Rebellion of God’s People
1 The vision of [the prophet] Isaiah the son of Amoz concerning [the kingdom of] Judah and [its capital] Jerusalem, which he saw [as revealed by God] during the reigns of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2 Hear, O heavens, and listen, O earth; For the Lord has spoken: “I have reared and brought up sons, But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and have broken away.
3 “The ox [instinctively] knows its owner, And the donkey its master’s feeding trough, But Israel does not know [Me as Lord], My people do not understand.”
4 Ah, sinful nation, A people loaded down with wickedness [with sin, with injustice, with wrongdoing], Offspring of evildoers, Sons who behave corruptly! They have abandoned (rejected) the Lord, They have despised the Holy One of Israel [provoking Him to anger], They have turned away from Him.
5 Why should you be stricken and punished again [since no change results from it]? You [only] continue to rebel. The whole head is sick And the whole heart is faint and sick.
6 From the sole of the foot even to the head There is nothing healthy in the nation’s body, Only bruises, welts, and raw wounds, Not pressed out or bandaged, Nor softened with oil [as a remedy].
7 Your land lies desolate [because of your disobedience], Your cities are burned with fire, Your fields—strangers are devouring them in your very presence; It is desolate, as overthrown by strangers.
8 The Daughter of Zion (Jerusalem) is left like a [deserted] shelter in a vineyard, Like a watchman’s hut in a cucumber field, like a besieged city [isolated, surrounded by devastation].
9 If the Lord of hosts Had not left us a few survivors, We would be like Sodom, We would be like Gomorrah.
===God Has Had Enough
10 Hear the word of the Lord [rulers of Jerusalem], You rulers of [another] Sodom, Listen to the law and instruction of our God, You people of [another] Gomorrah.
11 “What are your multiplied sacrifices to Me [without your repentance]?” Says the Lord. “I have had enough of [your]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well-fed cattle [without your obedience]; And I take no pleasure in the blood of bulls or lambs or goats [offered without repentance].
12 “When you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requires this of you, this trampling of My [temple] courts [by your sinful feet]?
13 “Do not bring worthless offerings again, [Your] incense is repulsive to Me; [Your] New Moon and Sabbath [observances], the calling of assemblies— I cannot endure wickedness [your sin, your injustice, your wrongdoing] and [the squalor of] the festive assembly.
14 “I hate [the hypocrisy of] your New Moon festivals and your appointed feasts. They have become a burden to Me; I am weary of bearing them.
15 “So when you spread out your hands [in prayer, pleading for My help],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Yes, even though you offer many prayers, I will not be listening. Your hands are full of blood!
16 “Wash yourselves, make yourselves clean; Get your evil deeds out of My sight. Stop doing evil,
17 Learn to do good. Seek justice, Rebuke the ruthless, Defend the fatherless, Plead for the [rights of the] widow [in court].
===“Let Us Reason”
18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a]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like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19 “If you are willing and obedient, You shall eat the best of the land;
20 But if you refuse and rebel, You shall be devoured by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Zion Corrupted, to Be Redeemed
21 How the faithful city has become a prostitute [idolatrous, despicable], She who was full of justice! Right standing with God once lodged in her, But now murderers.
22 Your silver has turned to [b]lead, Your wine is diluted with water.
23 Your rulers are rebels And companions of thieves; Everyone loves bribes And chases after gifts. They do not defend the fatherless, Nor does the widow’s cause come before them [instead they delay or turn a deaf ear].
24 Therefore the Lord God of hosts, The Mighty One of Israel, declares: “Ah, I will be freed of My adversaries And avenge Myself on My enemies.
25 “And I will turn My hand against you, And will [thoroughly] purge away your dross as with lye And remove all your tin (impurity).
26 “Then I will restore your judges as at the first, And your counselors as at the beginning; Afterward you will be called the city of righteousness, The faithful city.”
27 Zion will be redeemed with justice And her repentant ones with righteousness.
28 But rebels and sinners will be crushed and destroyed together, And those who abandon (turn away from) the Lord will be consumed (perish).
29 For you will be ashamed [of the degradation] of the oaks in which you took [idolatrous] pleasure, And you will be ashamed of the gardens [of passion] which you have chosen [for pagan worship].
30 For you will be like an oak whose leaf withers and dies And like a garden that has no water.
31 The strong man will become tinder, And his work a spark. So both will burn together And there will be none to quench them.
===Footnotes
Isaiah 1:18 There was a legend among the rabbis that on the Day of Atonement a scarlet woolen thread was tied to the door of the temple, and when the scapegoat reached the wilderness (Lev 16:10), if the sins of Israel were forgiven the thread would miraculously turn white.
Isaiah 1:22 Lit galena.
--------KJV
1. The vision of Isaiah the son of Amoz, which he saw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in the days of Uzziah,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2. Hear, O heavens, and give ear, O earth: for the LORD hath spoken, I have nourished and brought up children, and they have rebelled against me.
3. The ox knoweth his owner, and the ass his master's crib: but Israel doth not know, my people doth not consider.
4. Ah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doers, children that are corrupters: they have forsaken the LORD,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unto anger, they are gone away backward.
5. Why should ye be stricken any more? ye will revolt more and more: the whole head is sick, and the whole heart faint.
6. From the sole of the foot even unto the head there is no soundness in it; but wounds, and bruises, and putrifying sores: they have not been closed, neither bound up, neither mollified with ointment.
7. Your country is desolate, your cities are burned with fire: your land, strangers devour it in your presence, and it is desolate, as overthrown by strangers.
8. And the daughter of Zion is left as a cottage in a vineyard, as a lodge in a garden of cucumbers, as a besieged city.
9. Except the LORD of hosts had left unto us a very small remnant, we should have been as Sodom, and we should have been like unto Gomorrah.
10. Hear the word of the LORD, ye rulers of Sodom; give ear unto the law of our God, ye people of Gomorrah.
11. To what purpose is the multitude of your sacrifices unto me? saith the LORD: I am full of the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fed beasts; and I delight not in the blood of bullocks, or of lambs, or of he goats.
12. When ye come to appear before me, who hath required this at your hand, to tread my courts?
13. Bring no more vain oblations; incense is an abomination unto me; the new moons and sabbaths, the calling of assemblies, I cannot away with; it is iniquity, even the solemn meeting.
14. Your new moons and your appointed feasts my soul hateth: they are a trouble unto me; I am weary to bear them.
15. And when ye spread forth your hands, I will hide mine eyes from you: yea, when ye make many prayers, I will not hear: your hands are full of blood.
16. Wash you, make you clean; put away the evil of your doings from before mine eyes; cease to do evil;
17. Learn to do well; seek judgment, relieve the oppressed, judge the fatherless, plead for the widow.
18.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ith the LORD: though your sins be as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be red like crimson, they shall be as wool.
19. If ye be willing and obedient, ye shall eat the good of the land:
20. But if ye refuse and rebel, ye shall be devoured with the sword: for the mouth of the LORD hath spoken it.
21. How is the faithful city become an harlot! it was full of judgment; righteousness lodged in it; but now murderers.
22. Thy silver is become dross, thy wine mixed with water:
23. Thy princes are rebellious, and companions of thieves: every one loveth gifts, and followeth after rewards: they judge not the fatherless, neither doth the cause of the widow come unto them.
24. Therefore saith the LORD, the LORD of hosts, the mighty One of Israel, Ah, I will ease me of mine adversaries, and avenge me of mine enemies:
25. And I will turn my hand upon thee, and purely purge away thy dross, and take away all thy tin:
26. And I will restore thy judges as at the first, and thy counsellors as at the beginning: afterward thou shalt be called, The city of righteousness, the faithful city.
27. Zion shall be redeemed with judgment, and her converts with righteousness.
28. And the destruction of the transgressors and of the sinners shall be together, and they that forsake the LORD shall be consumed.
29. For they shall be ashamed of the oaks which ye have desired, and ye shall be confounded for the gardens that ye have chosen.
30. For ye shall be as an oak whose leaf fadeth, and as a garden that hath no water.
31. And the strong shall be as tow, and the maker of it as a spark, and they shall both burn together, and none shall quenc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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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개요)
본장에서 우리가 대하게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의 제명 혹은 제호가 설명되었다(1).
2. 피조물의 헛됨에 대한 일반적 교훈이 기록되고 설명되어 있다(3).
3. 이 교리에 대한 증명이 다음 사실에서 성립되고 있다.
(1) 인간 수명의 짧음과 이생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탄생과 매장으로부터(4).
(2) 모든 피조물의 가변적인 성질과 항구적인 회전, 그리고 해, 바람, 물 따위의 끊임없는 변전무상함(5-7)으로부터.
(3) 이 세상 것에 대해 인간이 애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고와 그에 반해서 인간이 얻는 보잘 것 없는 만족으로부터(8).
(4) 동일한 것이 다시 반복됨으로부터. 즉, 이것은 완전성의 한계를 보여 주며, 재고품이 매진되고 밑천이 다했음을 나타내 준다(9, 10).
(5) 모든 것은 망각 속에 파묻히고 만다는 사실에서(11).
4. 인간의 지식과 모든 영역의 학문, 특히 자연, 철학과 정치학 따위가 헛된 것이라는 데 대한 첫번째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이런 것들에 대하여 솔로몬이 해 본 실험(12, 13, 16, 17).
(2)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는, 그의 판단(14).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식을 획득하는 데에는 수고가 따르고(13)
2) 그 일은 아무 유익이 없으며(15)
3) 아무런 만족도 없기 때문이다(18).
그리고 만약 이것이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면, 품위나 가치에 있어서 이보다 못한 그 외의 모든 세상 일들이 헛되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참된 성도가 아니면 아무리 위대한 학자라도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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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이사야와 그 시대(사 1:1)
Ⅰ. 이 예언자의 이름을 보자.
그는 이사야(Isaiah) 또는 예사햐후(Jesahiahu)(히브리 원전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라 했고, 신약 성서에서는 에사야스(Esias)로 적혀 있다.
그 뜻은 "여호와의 구원"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구원의 지식을 주시는" 도구로 쓰이는 예언자에게 적합한 이름이며, 이 예언자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는 구주 예수에 대해 그리고 구주에 의해 역사된 그 큰 구원에 대해서 매우 많은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모스(Amoz)의 아들" 이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예언자 아모스(Amos)가 아니라(히브리어에서 이 두 단어가 영어에서보다도 더욱 다르다) 유대인들의 견해대로, 유다왕 아마시아의 형제이거나 아들인 아모스(Amoz)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자의 아버지 이름이 나와 있을 때는 그 아버지도 역시 예언자일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규정처럼 애매 모호한 전승에 의한 것이다.
예언자들의 생도와 후계자들은 실상 흔히 그들의 "아들" 이라 불리우고 있으나, 우리는 예언자들의 친아들들이 그들의 계승자가 되었다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Ⅱ. 예언의 성격을 찾아보자.
그것은 이상(異象. Vision)가운데 그에 계시된 것이므로, 하나의 이상이다. 즉 그때 그는(발람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 24:4) "눈을 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자의 이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6장에 나오는 것처럼 그것은 처음에는 그리 뚜렷한 이상(환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언자는 "선견자" (Seer) 곧 보는 사람이라 불리웠으므로 그들의 예언은 이상(Visions)이라 일컬어지기에 적합하다.
그것은, 그가 마음의 눈으로써 보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육안으로 사물을 보듯이 선명히 예견하고 확신했으며, 충분히 알고 매우 감동받았던 그런 내용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자신이 믿고 확신했던 것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요 6:69; 요일 1:1).
2.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행 4:20; 고후 4:13).
Ⅲ. 예언자의 주제를 보자.
그것은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곧 두 지파의 지역과 그들의 중심지인 그 성읍에 대해 "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에브라임이나 열 지파(이스라엘)에 관한 것이 거의 없다. 그것에 관한 것은 호세아의 예언 안에 많이 언급되어 있다.
이사야서에는 바벨론, 애굽, 두로, 그리고 다른 이웃 족속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이 몇 장(章) 있다. 그러나 그 주요 내용이 되고 있는 것에서부터 그 예언의 표제를 따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라 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한 것은 유대 민족에 관련된 한에서만 언급된다.
1. 이사야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신탁에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2. 책망과 위협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알려진 유다에서, 또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나타난 살렘에서 불의가 발견된다면, 그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문책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환란의 때에 위로와 격려를 주고 있다.
왜냐하면 시온의 자손들이 그들의 왕을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Ⅳ. 예언의 시기를 보자. 이사야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했다. 이 사실을 통해 다음을 알 수 있다.
1. 그가 오랫동안 예언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만일 그가(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듯이) 결국 므낫세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게 되는 잔인한 죽음을 당했다면 특히 그러하다.
혹자는 바울 사도가 히브리서에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히 11:37) 추측하고 있다.
웃시야 왕이 죽은해(6:1)에서 히스기야 왕이 병들고 회복된 해까지는 47년이었다. 이사야가 그 전후로 해서 얼마동안 예언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떤 사람은 60년으로, 또 어떤 사람은 도합 80년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며 그의 나라에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젊었을 때부터 예언하기 시작하여 노년까지 계속했다고 추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제사장들처럼 사역을 시작하고 끝내는 연령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가 여러 시대를 걸쳐서 예언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요담은 선한 왕이었고 히스기야는 그보다 더 선한 왕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이 예언자에게 격려를 주고 그로부터 충고를 받아들였으며, 그의 지지자가 되고, 그는 그들에게 자문원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그리고 이사야가 한창이었던 때, 아하스 왕은 매우 불경하고 사악했다. 그 때에 이사야는 물론 왕궁에 대해 얼굴을 찌푸렸고, 도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선한 사람과 선한 사역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세대를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 당시의 종교는 여호와의 집 문들이 닫혀지고 우상의 제단이 예루살렘 각 곳에 세워질 정도로 타락했다. 그리고 모든 거룩한 웅변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소식을 가지고 있던 이사야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 가장 훌륭한 사역자들이라도 이 세상에서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선을 다 행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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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죄악됨(사 1:2-9)
우리는 이 책이 끝나기 전에 좀 더 밝고 즐거운 광경을 보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여기에 전개되는 서론에서는 모든 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매우 나쁘고 어둡게 보인다. 교회 곧 포도원이 이처럼 암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광야같은 이 세상은 어떠하겠는가?
Ⅰ. 그 예언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했으나, 그의 백성들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게 말하면서 그들의 주목을 청하고 있다(2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 이리석고 무감각한 백성들보다는 저 무생물이 더 빨리 들을 것이다. 그것들은 창조의 법을 지키고 있는 그 창조의 목적에 따르고 있다. 하늘의 빛들로 하여금 그 어두움을 부끄러워하게 하고 땅의 풍성함으로 하여금 그 불규칙적인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라. 모세도 여기서 예언자 이사야갸 한 그런 말로 시작했다(신 32:1). 모세가 예언했던(신 31:29)것이 이제 실현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또한 그 귀절이 하늘과 땅에 대한, 천사들에 대한, 그리고 나서 위와 아래 세상의 거민들에 대한 호소일 수도 있다. 그들로 "하나님과 그의 포도원 사이를 판단" 하게 하라. 그들의 어느 편이 이처럼 배은망덕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를 살피자.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으실 것이며, 하늘과 땅도 그의 공의를 선포할 것이다(미 6:1, 2; 시 50:6).
Ⅱ. 그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곧 야비한 배은망덕에 대해 그들을 책망하고 있다. 사람을 배은망덕한 자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1. 하나님께서 이들처럼 하나님의 혐오와 격노를 자극시키는 백성에게도 은혜롭게 대하시는 것을 듣고 놀라게 하라. "내가 그들을 자녀처럼 양육하고 키워왔다. 그들은 잘 먹고 잘 배워왔도다" (신 32:6). "나는 그들을 존귀케 하고 높였다(어떤 자는 이렇게 본다)." "그들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훌륭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부양했을 뿐만 아니라 영달을 주었다. 그들을 훈육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높이 일으켜 세웠다." 우리의 생명과 즐거움이 존속되고 우리가 발전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보시고 친절을 베푸시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2.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그처럼 그들에게 온유하신 하나님에 대해 그들은 얼마나 사악하게 대하는가를 보고 놀라게 하라.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또는(일부의 해석대로) 그들이 내게서 반기를 들었도다. 그들은 나의 면류관과 권위에 대한 탈주자, 아니 반역자였도다." 우리의 본성과 교육을 담당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모든 은총이 우리가 패역하게도 하나님을 떠나며 그에게 무례히 행하는 일체의 행동으로 하여금 더욱 가중한 죄가 되게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반역자가 되어 버렸다.
Ⅲ. 이것은 그들의 무지와 생각이 모자란 탓이라고 이사야는 말한다(3절). "소는 그 임자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도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소와 나귀의 영리함. 그들은 짐승 둥에서도 가장 무딘 종자이다. 그러나 소는 그 주인을 알고 섬기며 그 멍에에 복종하여 그 멍에를 멜 정도로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자기가 먹이를 먹고 머물던 장소인 그 주인의 구유나 여물통을 알 정도로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나귀는 풀어놓아졌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돌아 갈 것이다. 아주 훌륭한 지위에 있던 어떤 사람도 지식과 총명에 있어서는 미련한 짐승들만 못해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자, 그것은 그들에게서 그 짐승들에게로 보내어졌다. 배우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잠 6:6, 7), "땅의 짐승보다 더 많이 배웠으나" (욥 35:1)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들의 본을 받기 위해서이다(렘 8:7).
2. 이스라엘의 망령됨과 어리석음,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며 소유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지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가축이 우리의 것인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의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며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은 채 이렇게 묻는다. "전능자가 무엇이관대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그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간구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에게는 우리를 양육할 구유가 없도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집스러운 의지를 원망했다(2절).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알지 못하며,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거역하였도다." 총명이 어두워지므로 온 마음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다(엡 4:18). "이스라엘은, 비록 그들의 땅이 빛과 지식의 땅이지만, 알지 못하는도다. 유다에 하나님이 알려지셨지만,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실상 그들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경우에 적용시키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그것에 유념하지도 않는다." 다음을 기억하자.
(1)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유익을 얻고 그의 백성의 계약 관계 아래 놓여있는 자들 중에도, 자기 영혼의 문제에는 매우 부주의한 자들이 많이 있다.
(2)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의 큰 적이다.
(3)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거역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모르고 있으며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의무감도 감사한 마음도 유익을 분별하는 마음도 없다.
Ⅳ. 이사야는 그들의 교회와 나라가 보편적으로 타락되고 부패된 것을 탄식하고 있다. 죄라는 병이 전염되었고, 모든 지위와 신분의 사람들에게 감염되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4절) 이 예언자는 자기 자신들을 탄식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슬퍼하고 있다. "애석하도다.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그는 그들의 부패함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품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그는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한가를 알고 있으며, 그 죄악의 치명성을 보여 주고 있다(4절).
(1) 그 사악함은 전반적이었다. 그들은 사악한 민족이었다. 그 백성의 대다수가 부도덕했고 불경스러웠다. 그 민족의 수용 능력도 또한 사악했다. 대외적으로 공적인 약정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나 대내적으로 공의를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은 부패했다. 죄가 그 나라 전체에 퍼지면, 백성들에게도 해롭다.
(2) 그들의 죄악은 그 성질상 매우 중하고 극악했다. 그들은 "허물을 졌다." 즉 범죄와 그 범죄로 인한 저주가 그들 위에 매우 무겁게 놓여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드러난 것은 가혹한 책망이었고, 그들 자신으로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책망이었다. 그들의 사악함이 "납 조각" 처럼 그들에게 얹혀 있었다(슥 5:7, 8). 그들의 죄는 그들을 얽어매기 쉽고, 또 그들은 그 죄를 범하기 쉬웠다. 뿐만 아니라 그 죄는 그들에게 하나의 짐이었다(히 12:1).
(3) 그들은 나쁜 혈통의 출신으로서 "행악의 종자" 였다. 패역함이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본성적으로 패역했고, 이 사실이 그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고, 하나님을 더욱 분노케 했으며 구제책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열조를 대신하여 일어나, 그 열조의 전철을 밟아 "죄악의 그릇(한도)을 가득 채웠다" (민 32:14). 그들은 반역자들의 혈통이요 가문이었다.
(4) 자기 자신을 더럽힌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다. 그들은 "부패한 자손," 즉, 더럽혀진 채 태어난 자손 일뿐만 아니라 "행위가 부패한 자식" 으로서 악을 번식시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에 물들게 했다. 그들은 죄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혹자였다. 사탄에 의해 조정될 뿐만 아니라 그의 대리자가 되었다. "자녀들" 곧 "하나님의 자녀" 로 불리워지며 그의 가족에 속해 있는 자로 간주받는 자들이 악하고 부도덕해지면, 그들의 본보기는 가장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5) 그들의 죄는 그들이 패역스럽게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충성에서 이탈한 자였다. "그들이 그들 자신을 연합시켰던 여호와를 버리고,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그와 분리되어 그에게서 돌아섰으며, 그들의 깃발을 버리고 해야할 봉사를 중단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 때도, "완강한 암소처럼" "어린양처럼" 뒷걸음질 쳤다(호 4:16).
(6) 그들의 죄는 건방지고 대담하게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다" 고 했다. 그들은 무엇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행했다. 신앙과 또 하나님과 저들의 관계를 고백한 자들이 뒷걸음질 치는 것은 하나님을 특별히 격노케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그는 문둥병이 온 몸에 퍼졌거나 또는 욥의 경우처럼 심한 종기가 퍼진 병든 몸을 비유로 들어 그들의 죄악상을 설명했다(5, 6절).
(1) 질병이 활력소를 포위했으므로,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머리와 마음의 병은 매우 위험하다. 이제 머리, 온 머리가 병들고, 마음, 온 마음이 피곤해졌다. 그들의 판단력이 부패했다. 문둥병이 그들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전히 부정결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열정과 신앙은 식어 없어졌다. "그 남은 것도 죽게 되었다" (계 3:2).
(2) 병이 온 몸에 퍼져 극히 불결하게 되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즉 가장 낮은 소작인에게 가장 큰 귀족까지 "성한 곳이" 즉 훌륭한 원칙이나 신앙이(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없이" 오직 "상한 것과 터진 것," 즉 범죄와 타락, 거룩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지각있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슬픈 결과들뿐이었다. 다윗에게 있어서도 그가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시 38:5) 하고 호소했을 때 그러했었다(시 32:3, 4 참조). 개혁을 위한 시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 할지라도 효과적인 것이 못되었음이 판명되었다. 그 상처는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다" 고 했다. 죄가 회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상처는 보살핌과 씻김을 받지 못하여, 그 속에 있는 교만한 살이 잘려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죄가 사함받지 못하는 한, 상처는 기름으로 유하게 되거나 싸매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치료하거나 그 치명적인 결과를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행해지지 않는다.
Ⅴ. 그는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 아래에서도 그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것을 슬프게 탄식하고 있다.
1. 그들의 나라는 거의 다 멸망했다(7절). 그들의 사정은 매우 비참했으므로, 그들의 마음과 땅도 황폐케 되었고, 그들이 너무 어리석었으므로 이런 것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자. 너희 성읍들은 황무하였다. 밭은 주민의 부족으로 인해, 마을은 버려짐으로 인해 경작되지 않았다(삿 5:7). 그리고 이처럼 들과 포도원은 황야같이 그 위에 가시덤불이 퍼졌다(잠 24:31). 너희 성읍들은 너희를 침입한 대적들에 의해 불에 탔고(불과 칼은 보통 함께 한다) 너희 가족들의 양식이 되어야 할 너희 땅의 열매는 이방인에게 삼키웠다. 그리고 너희들을 더 분노케 하는 것은 그 참상이 너희 목전에 있으나 너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의 생계가 되었어야 할 음식으로 너희 원수들이 포식하는 동안 너희는 굶주린다. 너희 땅의 멸망은 이방인의 멸망과 같다. 그 땅을 침입자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장차는 이방인들이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온의 딸 같았던(시온에 세워진 성진은 예루살렘에게 어머니요 유모였다) 예루살렘 자체나 딸처럼 하나님께 귀중했던 거룩한 산 시온 자체는 이제 잃어 버려졌고 버림 당했으며, "포도원의 망대같이" 내버려졌다. 포도원의 수확이 끝났을 때, 그 망대에는 아무도 거하지 않거나 돌보지 않으며, "원두막의 상직막 같이" 또는 오두막 같이 그것은 천하고 보잘 것 없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마치 것이 "포위된 성읍" 인 것처럼(8절), 그 근처에 오기를 두려워하여, 거기에서 자기의 재산을 끌어내어 오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은 병든 몸으로 표현된 것은 그 왕국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6절). 아마도 이 설교는 아하스 통치 시대에, 즉 유다가 아람과 이스라엘 왕들에 의해, 그리고 에돔 사람과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침입당하던 때에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던 것이다(대하 28:5, 17, 18). 나라의 불경과 부도덕은 국가적인 황폐함을 초래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온 땅의 영광인 가나안과 온 세상의 기쁨인 시온산은 모두 조롱거리가 되고 멸망되었다. 그들에게 이 큰 참화를 불러들인 것은 바로 죄이다.
2. 그러나 그들이 전혀 개심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과정을 취하시려고 경고하신다(5절). "너희가 반역을 계속하여 책망 받을 일을 계속 되는 때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랴? 그렇게 된들 너희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지금까지 행한대로, 앞으로도 더욱 더욱 패역하려느냐?" 특히 아하스왕이 그러했다. 그는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던" 자이다(대하 28:22). 이와 마찬가지로, 의사는 환자의 경우와 절망적임을 알 때, 더 이상 그를 약으로 괴롭히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의 자식이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음을 발견하여 상속권을 박탈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났을 때는, 더 이상 그를 훈계하려 하지 않는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훌륭하게 만들려고 택하셨지만 바로 그 방책에 의해 더 나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를 맞을수록 더욱 패역해진다. 환란을 당하면 그들의 타락성이 제거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극되고 악화되며, 그들의 마음도 완악해진다.
(2) 하나님은 때로 오랫동안 고쳐질 수 없었던 자들을 징계하는 길을 중단하신다. 이 자체그 하나의 의로운 심판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는 것이다. 내어버려진 은은 풀무 속이 아니라 쓰레기 속에 던져질 것이다(렘 6:29, 30; 겔 24:13; 호 4:14 참조). "부정한" 자는, "여전히 부정하도록 버려두라."
Ⅵ. 이사야는 이러한 전반적인 타락과 황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기념비가 될 남은 자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써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9절). 여기에서 다음을 보라.
1. 그들이 완전히 근절당하게 될 운명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가! 그들은 죄와 멸망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거의 소돔과 고모라와도 같았다. 즉 그들은 "그들 중에 10인의 의인" 도 없을 정도로 점점 악한 상태에 빠져들어갔고, 마치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그들은 비참했고 그들의 땅은 유황 못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들을 아드마같이 놓고 스보임같이 두라" 고 말했으나, 긍휼은 "내가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고 말했다(호 11:8, 9).
2. 그들을 그것에서 구원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조금 남겨 두셨다." 즉 그 소수의 남은 자들은 저 일반적인 배교 때에도 순결을 지켰고, 저 일반적인 참화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 남은 자들이다. 이것은 바울 사도에 의해 인용되어 있다(롬 9:27). 즉 바울 시대에 백성의 무리가 기독교를 거부했을 때도, 그것을 받아들였던 유대 민족 중의 극소수에게와 그리고 열조에게 한 약속이 그들 속에서 이루어졌던 그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되어 있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최악의 시대에도, 대홍수에서의 노아와 그의 가족들처럼, 소돔의 멸망에서의 롯과 그의 가족들처럼, 불의로부터 지켜지고 긍휼을 위해 보존된 남은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인 절대 행위에 의해서 그 빛을 떨친다.
(2) 이 남은 자는 거역하여 멸망당한 죄인들의 거대한 수효에 비해 극히 그 수가 매우 적다. 다수는 참 교회의 표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과녁은 적은 무리이다.
(3)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불결함 속에서 멸망하도록 버림을 당하나, 또 어떤 사람들은 성별시켜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로서 그의 권능의 역사인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 조금 남겨 두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행위가 부패한 자들은(4절) 모든 사람을 더럽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집어삼키는 자들은(7절) 그들을 멸하기 위해 온 수단을 다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시어 당신을 위해 남은 자를 예비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이 승리했을 것이다. 따라서 남은 자들은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한다.
(4) 철저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고 얼마나 아슬아슬하게도 자기들이 그 멸망 가까이에 있었던가를 깨닫는 것이 좋으며, 또 자기들은 그 멸망의 틈바구니 속에 서 있었던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것은 이처럼 선한 사람들을 그들에게 남겨둔 선하신 하나님의 덕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좋다.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함은 오직 여호와의 자비하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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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만 남은 종교(사 1:10-15)
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부르고 있다(그러나 그 부름은 헛되었다 10절).
1. 하나님이 그들에게 붙인 호칭은 매우 이상하다. "소돔과 관원들(rluers)" 이라 했다. 또 "고모라의 백성" 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죄에 대해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시키는 것이 얼마나 의로운 일이겠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 이었는데(창 13:13), 유다 사람들도 그러했다. 지도자들이 나쁠 때 백성들도 그러할 것은 당연하다. 악이 덕을 제압했다. 왜냐하면 악이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덕을 능가했는데, 그것은 그 악이 그 편에 백성 곧 다수의 사람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추세가 이처럼 강했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남은 자를 안전케 할 수 없었다(9절).
지도자들은 여기에서 소돔의 지도자들처럼 예언자에게 강한 공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아첨하는 칭호를 붙일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는 이 때문에, 그 신들을 저주하고, "그의 백성의 관원들을 헐뜯었다" 하여 오랜 후까지도 비난을 당했고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2. 그들에 대한 그의 요구는 매우 합당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해야 할 말씀에 주목하고 그의 말씀을 너희 법으로 삼을지어다." 그들의 제물을 싫어한다는 다음의 선포는 - 실상 그것이 옛법에 대한 해설에 불과할지라도 - 그들에게 일종의 새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경우에 요구되어지듯이(시 50:7, 8) 특별한 배려가 여기에 따라야 한다. "이것을 듣고 떨지어다. 그것을 듣고 조심할지어다."
Ⅱ. 정당하게도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는 것과 그들의 봉사와 제물과 번제를 받아들이기를 버구하셨다. 즉 그것들의 기름과 피(11절), 그들이 그의 전 뜰에 참예하는 것(12절), 그들의 봉헌, 분향 그리고 그들의 엄숙한 집회(13절), 그들의 월삭과 정해진 절기(14절), 그들의 가장 열렬한 말을 받으시기를 거절하고 계신다. 그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거절당한 것이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믿음의 권능에 대해서는 이방인, 아니 원수들이지만, 믿음의 외양과 그림자와 형식에는 매우 열심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사악한 민족, 이 행악의 종자, 이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만큼 많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제물들을 거짓된 신들의 제단이 아니라(여기에서 그들은 이런 우상에 대한 책망을 받고 있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에 가져왔다. 즉 그들이 자기들의 몫을 얻게 되는 화목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 모두 불태우는 번제도 가져왔다. 또한 그들은 찢어진 것이나, 절름거리는 것이나, 병든 것이 아닌 살찐 짐승과 그 기름등 가장 좋은 종류의 것으로 가져왔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제물을 바치도록 다른 사람들을 보내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가서 하나님 앞에 현신(現身)했다. 그들은 법으로 제정된 장소(산당이나 숲이 아닌 하나님의 전 뜰)와 제정된 때 즉 월삭과 안식일과 정해진 절기 등 그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지켰다. 아니 그들은 특별한 집회를 소집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이외에도 예배를 위해 성회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즉 그들은 의식 절차만이 아니라 헌신의 실행으로써 하나님께 전념했다. 그들은 많이 말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자주 또 많이 기도했다. 아니 그들은 열렬하고 끈질기게 기도했고, 간절한 사람처럼 손을 쳐들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경건하고 신앙적인 백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 그들의 마음속에는 참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보이러," 즉(난외에 적혀있는 것처럼) 그 앞에 "보여지기 위해" 왔다. 그들은 그 의무의 한계 밖에서는 휴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원했고, 사람들이 보는 장소 이외에는 가려하지 않았다.
(2) 그들의 손은 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과 공의라는 구실 아래 살인과 약탈과 압제를 자행했다. 백성들은 피를 흘렸고, 관원들은 그런 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관원들은 피를 흘렸다. 그런데 나봇의 피를 흘린 이 세벨에게 이스르엘의 장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은 그들을 돕고 선동했다.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실상 그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2.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면, 먼저 죄를 버리고 생활을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예배 행사에 참여하려고 달려간다. 그들의 땅은 이제 황무해졌고, 그들의 성읍은 불탔다(7절). 그러자 그들은 전능자 하나님께 뇌물을 드려, 그 형벌을 제거하고, 그로 하여금 자기들이 계속 범죄하게 내버려 두도록 반들려는 것처럼 예전보다도 더 꾸준히 하나님께 희생물과 제물을 바치게 되었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 그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였다" (시 78:34). "여호와여 백성이 환란 중에 주를 앙모하였나이다" (26:16). 제물을 쾌히 바치려는 자들도 죄에서 떠나는 것은 싫어하는 자들이 많다.
3. 마음과 생활의 철저한 개혁이 없이는, 사악한 백성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예배를 드리더라도 그것이 결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에게 실로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순종하는 것이 제물을 드림보다 낫다" 는 사실을 매우 다양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아니, 복종함이 없는 제물은 희롱, 즉 하나님을 모욕하고 격노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의식적 행사를 대단히 무시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의식적 행사가 결국에는 모두 제거되고 말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무언의 암시이다. 지금 경시되는 것은 때가 이르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 - 또 그것에 힘입어 드리는 기도 - 을 원치 않으시리로다. 보시옵소서 "여기 내가 왔나이다(히 10:5; 7)."
그들의 제물이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1)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11절). 그것은 "헛된 제물" 이다(13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 15:9) 그들이 하나님의 법령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모두 헛된 수고였고, 어떤 훌륭한 의도에도 부합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① 그것은 어떤 의무의 행위로나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12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령을 부인하거나 그 명령대로 지키기를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행할 때, 그것을 요구한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께서는 실상 그 손이 피로 가득하고 계속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이다.
② 그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총에 부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의 피를 기뻐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통해 당신 자신이 영예롭게 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③ 그것은 그들을 위해 어떤 위안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기도할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실 것이다(시 66:18). 그는 그들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많은 기도를 할지라도 그 어느 기도도 순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종교적 예식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도 돌려주지 않았다.
(2) 나아가 추악하고 불쾌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받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몹시 싫어하고 혐오하셨다. "그것들은 너희의 제물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이 풍부하며 물리기까지 했다." 하나님은 그것들이 필요치 않았고(시 50:10), 원하지도 않았으며, 그것들을 충분히 그리고 충분한 것 이상으로 지니고 계셨다. 그들이 그의 뜰로 오는 것을 "그의 마당만 밟는," 또는 마당만 짓밟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부르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에 참예하는 바로 그 행위가 그 규례에 대한 경멸로 해석되어졌다. 그들의 분향은, 아무리 향기로울지라도, 그에게는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선 속에서 그리고 악한 의도와 함께 태워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엄숙한 집회도 하나님은 "견딜 수" 없었다. 즉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에게 준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성회가 불의하였다" . 비록 성회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성회를 열면 그 성회는 불의해진다.
이처럼 하나님의 규례가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될 뿐만 아니라 사악한 목적에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께는 "분한 일" (어떤 사람은 그렇게 읽고 있다), 격노케 하는 일이다. "내 마음이 그것을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 부담스러운 일이도다. 나는 그것에 완전히 넌더리가 나 있으며, 그것을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기에는 결코 곤비함이 없으시나, 악인의 호화스러운 제물에는 곧 곤비함을 느끼신다. 하나님은 싫어하고 분노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당신의 눈을 감추진다.
이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① 죄는 하나님이 매우 미워하시는 것이다. 그는 죄를 매우 미워하시므로 사람들의 기도와 그들의 경건한 봉사마저도 미워하신다.
② 그들의 가장된 경건은 이중적인 악이다. 종교적인 위선은 하늘의 하나님께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것이다. 제롬(Jerome)은 이 귀절을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그들은 율법과 성전에 대해 매우 열심인 척 했으나, 그들의 손을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의 피로 채움으로써, 그들의 죄악의 그릇을 가득 채웠고, 따라서 그들 자신과 그들의 모든 봉사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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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복종의 요청(사 1:16-20)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고집하는 한은 예배가 그들의 죄를 속하기에 불충분한 것으로 여기시어 거절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절망적인 상태에도 거절하시지는 않으셨다. 즉 여기에서 그는 그들의 예배가 상달되는 것을 방해했던 그들의 죄를 버리라고 요청하고 계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트집을 잡으셨다고 말하지 않게 하라. 아니 하나님은 화해의 방법을 제안하신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관찰토록 하자.
Ⅰ. 회개와 개심을 요구했다. "만일 너희 제물이 열납되고, 너희 기도가 응답 받게 되기를 원한다면, 너희는 올바른 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느니라. 나의 법도로 전향하라(갈대아 역은 이 권유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율법판 제2면에 기록되어 있는 너희의 의무를 유념하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너희 믿음의 행위가 상달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 공의와 자선이 결코 무신앙와 불경스러움을 속죄해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와 제물이 결코 사기와 압제를 속죄해 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에 대한 의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보편적인 의의 한 가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결한 믿음의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악행을 그쳐야" 한다. 더 이상 잘못을 행하지 말고 더 이상 무죄한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들을 씻으며 "스스로를 깨끗케 하라" 는 것을 의미한다(16절). 그것은 그들이 범한 죄를 슬퍼할 뿐 장차 그 행실을 끊어버리고, 그것으로 기울어지는 모든 부도덕한 감정과 취향을 없애는 것이다. 죄는 영혼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업은 죄를 회개하고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써 우리 자신을 씻는 일이다. 우리의 악행 - 이것은 세상 사람의 눈에 나타난다 - 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죄의 온갖 더러운 행실 - 이것은 하나님의 눈 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 곧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 뿌리와 습관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악행이나 죄악들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
2. 그들은 "선행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회개를 완성하는 데 필요했다. 악행을 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선행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1) 우리는 실행해야 한다. 악행을 그칠 때 또 다시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선을,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리고 유익을 가져올 선을 행해야 한다.
(3) 우리는 그것을 잘 행해야 한다. 올바른 태도로 올바른 목적을 위해 선을 행해야 한다.
(4) 그리고 우리는 선행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 의무에 관한 지식을 얻고 그것에 관해 조사하고, 그것을 돌보는 수고를 기울여야 하며, 우리 자신을 그것에 익숙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일에 쉽게 다가서게 되고 선을 행하는 이 거룩한 일의 숙련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이 지금까지 실패해 왔던 것, 곧 율법판 제 2 면의 의무를 잘 이행할 것을 특별히 강권하고 있다. "공의(심판)을 구하라. 옳은 것을 조사하여, 그것을 행하도록 하라. 너희 의무의 길을 지키고, 부주의하게 행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선행할 기회를 찾으라.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라. 바로 너희 자신들이 학대했던 그들을 도와 주라. 그들의 짐을 덜어 주라(58:6). 너희 손에는 권력이 있으니,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학대하는 자들을 돕는 데 사용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너희 과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해를 당한 자들의 원통함을 갚아 주라. 고아와 과부는 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은 그들을 짓밟고 학대한다. 법정에서 재판석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그들을 위해 옹호하라.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리고 너희의 친절에 대해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을 위해 말해 주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정의와 자선의 행위는 모든 번제와 제물들보다도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Ⅱ. 올바로 이치를 따지는 법정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의롭게 대하셨다는 것에 대한 논증을 펴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8절).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한 한, 비록 너희가 무수한 제물을 가져올지라도, 나는 너희와 상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가 자신들을 씻고 깨끗이 한다면, 너희가 내게 가까이 오는 것을 환영하겠다. 오라,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죄와의 맹약을 끊어버리는 자들, 그리고 그러한 자들만이 하나님과의 언약과 교제 안에 들어오도록 환영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전에는 그들이 당신의 전에 오는 것을 금하였으나, 여기에서는 "오라" 하고 말씀하고 있다(약 4:8 참조). 아니 오히려 이러했다. 즉 그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고 말하는 자들처럼(58:3), 하나님께서 그 숫한 제물들을 경홀히 여기심으로써 자기들이 모욕을 당한 것으로 간주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냉혹한 주인으로서, 즉 즐겁게 해드리기에는 불가능한 자로서 진술했다. "오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 문제를 공정하게 토론하자. 나는 내 길은 공평하나 너희 길이 공평치 않다는 것이(겔 18:25) 밝혀지리라는 것만큼은 의심치 않는다." 신앙은 이성(理性)을 자기편으로 삼고 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해야 할 모든 이유가 있다. 하늘의 하나님은, 당신을 반박하며 당신의 처사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이치를 따질 만큼 스스로를 낮추신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의로우시기" 때문이다(시 51:4). 그 송사는 단지(여기에서 처럼 매우 공정하게) 진술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스스로 결정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에스겔서에서와 같이. 겔 18:21-24; 33:18, 19) 보이시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조건이 올바른지 합당치 않은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신다.
1. 변론해보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회개하고 개심한다면 이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너희는 기대해도 좋다" 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니, 그것은 매우 친절한 일이다. 그 누가 다른 어떤 조건에서 그것을 바랄 얼굴을 가질 수 있겠는가?
(1) 요구 조건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즉 "단지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일부의 해석대로) 너희가 순종하기로 동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너희가 너희 뜻을 하나님의 뜻에 종속시키고 그것에 순응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너희 자신을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분에 의해 다스림을 받도록 맡기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는 이전의 완강함에 대한 형벌이 없으며, 멍에가 더 무거워지거나 그들 목의 속박이 더 가해지는 일이 없다. 단지 "여지껏 너희가 사악하고 순종치 않았고, 또 너희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따르려 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순종하면서 다스림을 받으라."
하나님은 "만일 너희가 완전히 복종하면" 이라 말씀하시지 않고, "만일 너희가 즐겨 그리하면" 이라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즐거이 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용납되기 때문이다.
(2) 이에 대해 약속되어 있는 것은 매우 크다.
① 그들의 모든 죄는 용서될 것이며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주홍과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비록 너희가 피의 범죄 아래 놓여 있을지라도, 너희가 회개하면 그것마저도 용서될 것이며, 너희는 하나님 보시기에 눈같이 희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아무리 중한 죄인들도, 만일 진실로 회개하면, 그 죄를 사함받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양심도 평정을 얻고 정결케 될 것이다. 우리의 죄는 주홍빛과 진홍빛, 짙게 물들고 2 중으로 물든 물감과 같았다. 즉 처음에는 원죄라는 것이 직물에 물이 들었고, 나중에는 실행죄가 옷에 물이 든 것이다. 또 비록 우리가 여러 번 뒷걸음질 쳐서 죄로 빠져들어갔을지라도, 그리고 옷감을 주홍빛으로 염색하듯이 그 속에 오래 젖어 있었을지라도, 용서의 긍휼은 완전히 그 얼룩을 없앨 것이며, "우슬초로" 정케하는 것처럼 자비에 의해 정결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정케 될 것이다" (시 51:7). 우리가 회개와 개심으로써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한다면(16절) 하나님은 완전한 사면으로써 우리를 희개 만들 것이다.
② 그들은 그들이 바랄 수 있는 모든 행복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오직 즐겨 순종하기만 하라. 그러면 너희가 약속의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다. 너희는 새 언약의 천국인 가나안의 모든 축복을, 그 땅의 모든 유익을 얻을 것이다.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은, 비록 훌륭한 땅에 거할지라도 위로와 함께 그 소산을 먹을 수 없다. 범죄는 모든 것을 쓰라리게 한다. 그러나 죄가 사해진다면, 피조물이 주는 위로도 참된 위로가 될 것이다.
2. 변론을 해 보더라도 계속 고집을 부려 불복종한다면, 멸망하도록 버림당하고 율법 판결이 그들을 처형하리라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무엇이 이 보다 더욱 공정하겠는가?(20절)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배반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들을 거절한다면, 너희가 칼에, 너희를 멸하도록 명령받은 너희 원수들의 칼에 - 너희에 대적할 하나님의 공의, 진노, 복수의 칼에 삼키우리라. 왜냐하면, 이것은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며 그가 그 자신의 영예를 보전하기 위해 이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은 분명히 그리고 마땅히 그의 칼에 삼키울 것이다.
" 그리고 이제 생명과 죽음, 선과 악이 이처럼 너희 앞에 놓여 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가 이 공의를 반대하거나 하나님의 조건에 순종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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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된 예루살렘(사 1:21-31)
Ⅰ. 유다와 예루살렘의 무서운 타락이 슬프게 탄식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 궁성은 하나님께와 그리고 사람들 중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익에 얼마나 신실된 성읍이었으며, 그 민족과 그 공적 유익에 얼마나 신실되엇었는가? "공평이 거기에 충만하였다." 즉 공의가 거기에 놓여진 재판의 보좌 곧 "다윗 집의 보좌" 위에서(시 122:5) 잘 집행되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행실에 있어서 정직했고, 불의한 일을 행하기를 싫어했다.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다." 항상 그들의 궁과, 그들의 모든 거처에 임하였었다. 즉 이따금씩 소용있을 때에만 의가 불리운게 아니라 항상 거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룩한 성이나 궁성들, 신앙이 고백된 장소나 정치가 행해지는 장소도 신앙이 그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 의무에 신실하지 못한다.
2. 그런 성읍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아름답고 정숙한 신부가 이제 파락하여 창기가 되었다. 의(리)가 더 이상 예루살렘에 거하지 않았다. 살인자들은 처벌되지 않은 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살았다. 아니 방백들 자신도 매우 잔인하고, 포악했으므로, 살인자보다 낫지 않았다. 무죄한 사람들은 이러한 재판장의 법정의 피해보다는 산적이나 강도의 무리가 주는 피해를 보다 쉽게 막아 낼 수 있었다. 조상들 때에는 덕과 결백으로 유명했던 어떤 가문이나 백성이, 사악해지면 그들의 죄악은 그만큼 더 가중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자들이 타락하면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악한 자들이 되고 만다. "원래는 가장 선했던 자가 타락했을 때에는 가장 악하게 된다" (눅 11:26; 전 3:16; 렘 22:15-17 참조).
(1) 예루살렘의 부패함은 비유로써 예증되어 있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도다" (22절)고 했다. 조상들의 성품과는 반대되는 성품을 지니고 있는 치리자들의 이러한 타락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그 은이 찌꺼기 되듯이, 그 나라에 큰 수치와 피해를 준다. 의로운 방백과 의로운 성읍은 곳간에 있는 은과 같으나, 불의한 방백과 성읍은 쓰레기 더미에 있는 은과 같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었는고!" (애 4:1)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그리하여 그것은 맛없고 시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즉 그들이 판 포도주에는 물이 섞여 반은 물이었다. 그들이 지불한 돈도 가짜였고, 따라서 그들은 거래하는 모든 사람을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상징적으로 해석되는 게 좋으리라. 즉 공의는 그들의 방백들에 의해 악용되었고,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은 제사장들에 의해 궤변으로 속여졌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용되었다. 은찌끼는 은처럼 빛날 수도 있고, 물이 섞인 포도주는 포도주 빛깔을 보유할 수도 있으나, 그 어느 것도 가치는 없다. 이처럼 그들은 덕과 공의의 외양에 겉치례를 지녔지만 그 참된 지각은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2) 몇 가지 사례로써 예증되어 있다(23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그리고 그의 율법에 복종하도록 지켜야 할 너의 방백들이 스스로 패역하여 하나님과 그의 율법을 무시하였도다. 도둑들을 규제해야 할 자들(교만하고 부유한 압제자들, 가장 나쁜 도적들, 그리고 그보다 더 낫지 않는, 채권자들을 고의적으로 사기하는 자들)이 스스로 도적과 짝하며, 그들을 묵인해 주고, 그들처럼 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방백이고 그 손에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그런 일을 행한다. 그들은 그들이 보호해 준 도적들과 불법적으로 얻은 것을 나누어 가지며" (시 50:18), "그들과 함께 제비를 뽑는다" (잠 1:13, 14).
① 그들의 지위에서 얻는 이득이 그들이 목표하는 모든 것이며, 옳든 그르든 그들은 그 지위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 한다. 그들은 선물을 좋아하며, 댓가를 바란다. 그들은 봉급 즉 그들의 정책상의 수입과 부수입에 마음을 두며, 그것을 탐내며, 결코 만족을 찾을 줄 모른다. 아니, 그들은 은밀한 사례가 생기는 일이면 아무리 율법과 공의를 거스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할 것이다. 뇌물과 사례금은 언제고 그들의 눈을 멀게 할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판단을 그르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그들이 사랑하며 열심히 추구한다(호 4:18).
② 그들의 직책상의 의무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은 해를 당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온 고발된 사건은 조사해 보아야 했다. 그밖의 무슨 목적으로 그들이 등용되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즉 고아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과부들은 자기들을 위해 길을 마련해 주고 그 송사를 제기해 줄 뇌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제 당하는 자들의 후원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가장 큰 압제자가 될 때, 그들은 크게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다.
Ⅱ. 이러한 비탄거리들을 바로잡으려는 결의(24절)가 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전능자 - 말한 것을 이룰 능력을 지닌, 그리고 그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군을 지휘하며, 그의 이스라엘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는 - 그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리라." 다음을 관찰하자.
1. 사악한 백성, 특히 잔인하고 포악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원수요, 그의 대적이며, 또 그렇게 간주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렇게 다루어질 것이다. 거룩한 자손들이 타락한다면, 자기 집안의 원수가 된다.
2. 그들은 하늘의 아버지께 하나의 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편케 하시겠다는 내용 속에 암시되어 있다.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는, 아니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전능자께서 사람들의 죄악으로 괴롭힘" 을 당하는 것을 괴로워하신다(43:24; 암 2:13).
3. 하나님은 이처럼 더 이상 인내해 줄 수 없는 자들에게 복수함으로써, 그 짐을 덜 방법과 시기를 찾아 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시고 개가를 부르는 자와 같이 말하고 계신다. "슬프다. 내가 내 마음을 편케 하리라." 하나님은 무거워서 "신음하고 있는" 이 세상을 편케 할 것이다(롬 8:21, 22). 그 이름에 붙어있는 비난으로부터 그 이름을 편케 할 것이다. 그는 "그의 원수에게 복수하심" 으로써, 그의 대적에게서 편케 될 것이다. 그는 그들을 "그의 입에서 토하여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서 편케 될 것이다(계 3:16). 그는 그의 "원수갚는 날이 그의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말씀하고 있다(63:4). 만일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답게(4절) 그의 형상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능자로서의 그의 손의 무거움(심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일하곤 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대적하기 위해 무장될 것이다. 하나님은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슬픔에서 그 자신을 편케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고, 그 타락한 재판관들 대신에 선한 재판관들을 일으킴으로써 하시리라. 교회에는 아무리 많은 찌기가 있을지라도, 버림을 당하지 않고 다시 깨끗게 될 것이다(25절). "내가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릴 것이라. 내가 잘못된 것을 고치리라. 악습과 불경스러움이 억압당하고 수치를 당케 될 것이며, 압제자들은 해임되어 악을 행하는 그 권세를 박탈당할 것이다." 사태가 아무리 나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바로잡고 완전한 개혁을 일으키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가 시작하신 것을 마치실 것이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릴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라.
① 사람의 개혁은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언제고 사람의 개혁이 행해진다면, 그것을 이루어 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나의 손을 네게 돌리리라. 나는 내가 처음에 심었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렇게 행하리라." 하나님은 그의 손을 돌리심으로써, 그것을 쉽게 행하실 수 있다. 그는 그것을 충분히 행하신다. 드러난 여호와의 팔 앞에서 어떤 도전이 설 수 있겠는가?
② 하나님은 선한 치리자들과 사역자들을 세워 주시는 축복을 통해 하실 것이다(26절). "내가 너의 사사들을, 행악자들에게 대하여는 법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처음과 같이 회복할 것이며, 공공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새로 세워질 그들은 쫓겨났던 바로 그 사람들이거나, 그들과 같은 성품을 지닌 다른 사람일 것이다.
③ 그는 사람들 가운데 공평과 의를 회복시킴으로써(27절), 또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공의 원칙을 심어 주고, 그 원칙에 의해 그들이 생명을 다스림으로써, 그것을 행하신다. 사람들은 외적인 제재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는 영" 으로서의 "그의 영" 의 감화력을 통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신다(4:4; 28:6; 시 85:10, 11 참조).
④ 한 백성의 개혁은 그들의 구원과 개종이 될 것이다. 죄는 가장 나쁜 포로, 가장 나쁜 노예이다. 그리고 위대하고 영원한 구원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에서 구속되는 것" 이며(시 130:8), 그 복된 구속자는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며(롬 11:26),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마 1:21) 자이시다. 여호와의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은 개종자들이 될 것이며, 그들의 개종은 곧 그들의 구원이다. "그 귀정한 자는 또는(난외에 있는 대로) 돌아오는 자는 의롭게 구원되리라." 하나님은 공평과 의로 구원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구원을 역사하신다.
⑤ 한 백성들의 덕행이 소생되는 것은 그들의 영예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즉
첫째, "네가 그렇게 될 것이다." 장관들의 개심은 그 성읍과 나라의 개혁으로 향하는 좋은 한 걸음이 된다.
둘째, 너는 그러하다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도시에게 있어서 의의 성읍이라는 칭함을 받으며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을때(21절), 잃어버린 옛날의 영예를 회복한다는 것보다 더 큰 칭송은 있을 수 없다.
(2) 개심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그 신실한 성읍에 함정이나 치욕으로써 남아있지 않게 하기 위해 잘라버림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평안을 얻으리라.
① 여기에서 경고되는 있는 것은 완전 멸망이다. 그들은 멸망하고 패망할 것이다. 단지 벌을 받고 징계당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근절이 시온의 구속에 필요할 것이다.
② 그것은 전반적인 멸망으로서, 거기에는 패역한 자와 죄인이 포함될 것이다. 즉 일체의 신앙을 완전히 던져버린 공공연한 침략자들, 그리고 신앙 고백이라는 구실 아래 사악한 생활을 살아가는 위선자들 - 그들이 모두 함께 패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을 반박하는 자들이나 신앙을 가식으로 내세우는 자들 모두 하나님께 똑같이 가증한 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자기들이 여호와께 연합해 있었으나, 이제는 "여호와를 버린 자도," 도관 속에 있는 물은 그 수원에서 끊어질 때 곧 없어지는 것처럼, "멸망할 것이다."
③ 그것은 불가피한 멸망이다. 피할 길이 없다.
첫째, 그들의 우상, 즉 "그들이 기뻐하던 상수리나무와 그들이 택한 동산은"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다. 그 신상들과 쓰레기 신들은 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숲과 나무 아래서 그 신들을 숭배했고, 그것들을 좋아하여 집착했으며, 그것들을 위해 참되신 하나님을 버렸고, 우상 숭배가 공적으로 지지되지 않았던 때에도 자기 자신들의 동산에서 비밀히 그것을 숭배했다. "이것이 패역한 자와 죄인들의 행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망하는 모습으로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29절). 그들은 그들의 우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그 우상에게 온갖 아첨을 다했지만, 결국에는 이득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상들 자신도 잡혀갈 것이다(46:1, 2). 피조물을 의뢰하는 자들은 스스로 수치르 마련해 놓는 것에 불과하다. "너희는 상수리나무와 동산을 좋아했다. 그러나 너희 자신은"
a. "시들고 말라버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잎사귀 없는 상수리나무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저주한 무화과나무처럼, 열매없는 나무는 당연해 잎사귀도 없게 된다.
b. "물없는 동산 같으리라. 즉 그 위에 비가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로 물대기도(신 11:10) 하지 않았으며, 샘이 없는(아 4:15) 동산이니, 결과적으로 메마르며, 그 동산의 모든 과실은 썩었도다." 우상을 의지하거나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는" (렘 17:5, 6) 자들은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이 광야나 물없는 땅 같지는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렘 2:31).
둘째, 그들은 그들 자신을 도울 수 없게 될 것이다(31절). "강한자가 곧 부러져 산산조각이 날 뿐만 아니라 쉽게 불붙는 삼오라기 같을 것이다." 그리고 견고케 되어 그 자신을 안전케 해 주기를 바라던 그의 공적(난외에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은 그 자신의 삼오라기에 대한 불티 같아서, 그에게 불을 놓을 것이며 그와 그의 공적이 함께 불탈 것이다. 그 자신의 계획이 그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 자신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에 불을 붙여, 지옥 밑바닥까지 태울 것이며, 그것을 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죄인이 그 자신을 삼오라기와 나무 그루터기같이 만들고 하나님은 그에게 친히 사르는 불같이 되실 때, 무엇이 그 죄인의 완전 멸망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이 모든 것은
a. 아하스의 통치로 인한 가증스러운 타락 후, 히스기야 시대에 이루어졌던 복된 개혁 사업에 적용될 수 있다. 그때에는 선한 사람들이 발탁되었고, 악인의 얼굴이 수치로 가득 찼었다.
b.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사건에 적용될 수 있다. 그 사건은 그들을 우상 숭배에서 완전히 치료했던 것이다.
c. 복음의 교회와 성령 강림에 적용될 수 있다. 이것에 의해 신약 교회는 새 예루살렘 곧 의의 성읍이 될 수 있었다.
d.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될 수 있다. 그 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타작마당 곧 그들 전답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죽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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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 하존 예샤야후 벤-아모츠 아셰르 하자 알-예후다 위_예루샬라임 비메 웆지야후 요탐 아하즈 예히즈키야후 말케 예후다
חֲזֹון֙ יְשַֽׁעְיָ֣הוּ בֶן־אָמֹ֔וץ אֲשֶׁ֣ר חָזָ֔ה עַל־יְהוּדָ֖ה וִירוּשָׁלִָ֑ם בִּימֵ֨י עֻזִּיָּ֧הוּ יֹותָ֛ם אָחָ֥ז יְחִזְקִיָּ֖הוּ מַלְכֵ֥י יְהוּדָֽה
==--- @하존<헤이트-자인-바브(상)-눈>..계시....성령의 역사하심인바, Q의 참생명-인격 조성 위한, 부활생명의 영의 생생한 활동..@예샤야후<요드-쉰(우)-아인_요드-헤이-바브(중)>.."여호와-말씀"은 "구원"이시다.. @벤-아모츠<베이트-눈, 알렙-멤-체데>..말씀의 확장, Q-사람의 결한한 하나 이룸.. @아셰르<알렙-쉰(우)-레이시>...엘로힘 판박이인바 거듭난 영혼.. @하자<헤이트-자인-헤이>..곧 부활생명의 영으로 빚어다루심 받아 주님 그분을 사는 실존.....(계시의 대상) 진복의 실존이라.... @알-예후다<아인-라멛, 요드-헤이-바브(중)-달렛>..분배말씀으로 낳으신바 참제자, 그 존재 중심이 말씀과 동심합치로 사는 자.. @위_예루샬라임<바브-요드-레이시-바브(중)-쉰(우)-라멛-멤>..(동심함치로 주와 하나라) 실제의 그영을 머리삼은 참제자, + 그분의 거처로 사는 자..@비메<베이트-요드-멤-요드>..말씀-곧 진리를 살아가는 실제 이룬 나날들..*욤<요드-바브-멤..말씀진리의 거처로 사는 나날> @웆지야후<아인-자인-요드(점)-헤이-바브(중)> @요탐<요드-바브(상)-타브-멤> @아하즈<알렙-헤이트-자인> @예히즈키야후<요드-헤이트-자인-코프-요드-헤리-바브(중)> @말케<멤-라멛-쿠프>...진리의 참제자 현존으로 살아감 @예후다<요드-헤이-바브(중)-달렛-헤이>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쉬메우 샤마임 웨_하아지니 에레츠 키 예호와 디베르 바님 긷달티 웨_로마므티 웨_헴 파쉬우 비
שִׁמְע֤וּ שָׁמַ֙יִם֙ וְהַאֲזִ֣ינִי אֶ֔רֶץ כִּ֥י יְהוָ֖ה דִּבֵּ֑ר בָּנִים֙ גִּדַּ֣לְתִּי וְרֹומַ֔מְתִּי וְהֵ֖ם פָּ֥שְׁעוּ בִֽי׃
==@쉬메우<쉰(우)-멤-아인-바브(중)> @샤마임 @웨_하아지니<바브_헤이_아인-자인_요드-눈-요드> @에레츠....동심합치 이룬바 Q형상의 기름부음받아 거듭난 참생명 가지요(샤마임), 그 가지를 빚어다루심-확장 하심 통해 나타난바 아레츠...곧 샤레츠 이룬자됨이라.. @키 @예호와 @디베르<달렛-베이트-레이시>...@바님<베이트-눈-요드-멤> @긷달티<김멜-달렛-라멛-타브-요드> @웨_로마므티<바브_레이시-바브(상)-멤-멤-타브-요드> @웨_헴<바브-헤이-멤> @파쉬우<페이-쉰(우)-아인-바브(중)> @비<베이트-요드>...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바 그 받은자는, 말씀으로 낳으신바 자녀-그분의 거처된자,.. 성령과 하나된바, 그 온전함으로 사는자..., 그영께서 진리확장으로 조성하시는바 Q의 참생명-인격으로 사는자요, 주께서 친히 호흡해내신 바로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 살며, 그분자신을 열어 그릇된 그의 마음과 입에 넣어주신바, 동심합치로 그 말씀 그대로 전하는자, 곧 말씀을 살아내는자에게로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야다 쇼후 코네후 와_하모루 에부쓰 바_알라우 이스라엘 로 야다 암미 로 히트보난
יָדַ֥ע שֹׁור֙ קֹנֵ֔הוּ וַחֲמֹ֖ור אֵב֣וּס בְּעָלָ֑יו יִשְׂרָאֵל֙ לֹ֣א יָדַ֔ע עַמִּ֖י לֹ֥א הִתְבֹּונָֽן׃
== @야다<요드-달렛-아인>..여호와께서 친히 결합-연합-교통-공급-구별한 하나로서 상호 붙는 하나 이루고 게심을 참되게 체득하여 알지니.@슈르<쉰(우)-바브(상)-레이시>..Q의 생명-인격 그대로 옮겨부어주사 빼어닮은자 됨이니, 그분의 노래 자체, 온전한 "샤레츠"를 살아가며..@코네후<코프-눈-헤이-바브(중)>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실존 되게 하시려는바 그뜻 그대로 주님과 한마음 이룬, 그분의 판박이로서, 확장-증대-산출-발아케 하는 생명력 발휘케 하시나니. 그분을 앙망하라.. @와_하모르<바브_헤이트-멤-바브(상)-레이시>...생명-진리를 살아냄으로써 실제의 그영의 생명-인격을 그대로 살지니.. @에부쓰<알렙-베이트-바브(중)-싸멕> 동심합치로, 마음 다하여 Q말씀을 그대의 보좌 삼으라 @바_알라우<베이트_아인-라멛_요드-바브>...말씀을 품고 살아가는바, 분배말씀으로 거듭난 참제자마다... @이스라엘 ...엉적 이스라엘이라...@로<라멛-알렙> @야다<요드-달렛-아인> @암미<아인-멤-요드>...말씀으로 목양/양육하시는 Q께서 진리로 낳으신바 된자를 친히 아심이라 @로<라멛-알렙> @히트보난<헤이_타브-베이트-바브(상)-눈-눈>...호흡해내신바, 말씀안에 거하시는 참생명-인격으로 온전케 되고 그 확장-증대를 온전히 이루라..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호이 고이 호테 암 케베드 아온 제라 메레임 바님 마쉬히팀 아제부 에트-예호와 니아추 에트-케도쉬 이스라엘 나조루 아홀
הֹ֣וי ׀ גֹּ֣וי חֹטֵ֗א עַ֚ם כֶּ֣בֶד עָוֹ֔ן זֶ֣רַע מְרֵעִ֔ים בָּנִ֖ים מַשְׁחִיתִ֑ים עָזְב֣וּ אֶת־יְהוָ֗ה נִֽאֲצ֛וּ אֶת־קְדֹ֥ושׁ יִשְׂרָאֵ֖ל נָזֹ֥רוּ אָחֹֽור
:: 거듭난자마다 분배말씀을 살게 하신바, 그분의 거처이니....친히 [그분 자신을 열어] 호흡해내신바 공급-분배 말씀 그대로 붙들어 상호 붙좇는 믿음으로 (존재중심을 열어 드림, 곧 "아멘"의 참믿음 발휘함으로써) 충만-작동되게 하시는바 (부활생명의 그영의 넘쳐흐름, 곧 거듭난이마다에게 도달하신 참지혜, 그 Q) 참성령의 생명-인격의 삶 살도록 그분 말씀으로 적셔 주입-점유-충만-운행/작동/변화/조성 되게 하시나니....[결합-연합-교통-공급-구별된 하나로서 상호 거처됨의 믿음/그 머무름으로] 변화-조성 이루는 말씀께서 그대로 이루시게 하라...그분의 생명-인격을 살게 하시며 빚어 다루심으로써 그릇 됨 이루사, 친히 그분 자신으로, 진리-생명 능력의 생생한 확장이자 기름부음의 온전함으로 채우시나니, , 곧 "베레시트"그대로 이루시는 실제의 영이시라....오직 그분과 늘 한마음 한뜻으로 행하며, 결합한 하나로서, 조성되고 거룩케 하신바 유일무이의 근원적 참생명 TUQ의 그영, 그분의 생명 확장 이루라
==@호이<헤이_바브(상)-요드> @고이<김멜-바브(상)-요드> @호테<헤이트-테이트-알렙> @암<아인-멤> @케베드<카프-베이트-달렛> @아온<아인-바브(상)-눈> @제라<자인-레이시-아인> @메레임<멤-레이시-아인-요드-멤> @바님<베이트-눈-요드-멤> @마쉬히팀<멤-쉰(우)-헤이트-요드-타브-요드-멤> @아제부<아인-자인-베이트-바브(중)> @에트-예호와 @니아추<눈-알렙-체데-바브(중)> @에트-케도쉬<알렙-타브, 코프-달렛-바브(상)-쉰(우)> @이스라엘 @나조루<눈-자인-에이시-바브(중)> @아홀<알렙-헤이트-바브(상)-레이시>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 알 메 투쿠 오드 토씨푸 싸라 콜-로쉬 라홀리 웨_콜-레바브 다와이
עַ֣ל מֶ֥ה תֻכּ֛וּ עֹ֖וד תֹּוסִ֣יפוּ סָרָ֑ה כָּל־רֹ֣אשׁ לָחֳלִ֔י וְכָל־לֵבָ֖ב דַּוָּֽי׃
==@알<아인-라멛> @메<멤-헤이> @투쿠<타브-카프-바브(중)> @오드<아인-바브(상)-달렛> @토씨푸<타브-바브(상)-싸멕-요드-페이-바브(중)> @싸라<싸멕-레이시-헤이> @콜-로쉬<카프-라멛, 레이시-알렙-쉰(우)> @라홀리<라멛-헤이트-라멛> @웨_콜-레바브<바브_카프-라멛, 라멛-베이트-베이트> @다와이<달렛-바브(중)-요드>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미카프 레겔 웨_아드-로쉬 엔-보 메톰 페차 웨_합부라 우마카 테리야 로-조루 웨_로 훕바슈 웨_로 루케카 밧샤멘
מִכַּף־רֶ֤גֶל וְעַד־רֹאשׁ֙ אֵֽין־בֹּ֣ו מְתֹ֔ם פֶּ֥צַע וְחַבּוּרָ֖ה וּמַכָּ֣ה טְרִיָּ֑ה לֹא־זֹ֙רוּ֙ וְלֹ֣א חֻבָּ֔שׁוּ וְלֹ֥א רֻכְּכָ֖ה בַּשָּֽׁמֶן׃
==@미카프<멤-카프-페이> @레겔<레이시-김멜-라멛> @웨_아드-로쉬<바브_아인-달렛, 레이시-알렙-쉰(우)> @엔-보<알렙-요드-눈, 베이트-바브(상)> @메톰<멤-타브-멤> @페차<페이-체데-아인> @웨_합부라<바브_헤이트-베이트-바브(중)-레이시-헤이> @우마카<바브(중)_멤-카프-헤이> @테리야<테이트-레이시-요드(점)-헤이> @로-조루<라멛-알렙, 자인-레이시-바브(중)> @웨_로<바브_라멛-알렙> @후바슈<헤이트-베이트-쉰(우)-바브(중)> @웨_로<바브_라멛-알렙> @루케카<헤이시-카프-쿠프> @밧샤멘<베이트_쉰(우)-멤-눈>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 아르체켐 쉐마마 아레켐 세루포트 에쉬 아드마테켐 레네그데켐 자림 오켈림 오타흐 우_쉐마마 케마흐페카트 자림
אַרְצְכֶ֣ם שְׁמָמָ֔ה עָרֵיכֶ֖ם שְׂרֻפֹ֣ות אֵ֑שׁ אַדְמַתְכֶ֗ם לְנֶגְדְּכֶם֙ זָרִים֙ אֹכְלִ֣ים אֹתָ֔הּ וּשְׁמָמָ֖ה כְּמַהְפֵּכַ֥ת זָרִֽים׃
==@아르체켐<알렙-레이시-체데_카프-멤> @쉐마마<쉰(우)-멤-멤-헤이> @아레켐<아인-레이시-요드-카프-멤> @세루포트<신(좌)-레이시-페이-바브(상)--타브> @에쉬<알렙-쉰> @아드마테켐<알렙-달렛-멤_타브-카프-멤> @레네그데켐<라멛-눈-김멜-달렛-카프-멤> @자림<자인-레이시-요드-멤> @오켈림<알렙-카프-라멛-요드-멤> @오타흐<알렙-타브-헤이> @우_쉐마마<바브(중)-쉰(우)-멤-멤-헤이> @케마흐페카트<카프-멤-헤이-페이-카프-타브> @자림<자인-레이시-요드-멤>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 웨노테라 바트-치욘 케쑤카 베카렘 키멜루나 베미케샤 케이르 네츄라
וְנֹותְרָ֥ה בַת־צִיֹּ֖ון כְּסֻכָּ֣ה בְכָ֑רֶם כִּמְלוּנָ֥ה בְמִקְשָׁ֖ה כְּעִ֥יר נְצוּרָֽה׃
==@웨_노테라<바브_눈-바브(상)-타브-레이시-헤이> @바트-치욘<베이트-타브, 체데-요드-바브(상)-눈> @케쑤카<카프-싸멕-카프-헤이> @베카렘<베이트-카프-레이시-멤> @키멜루나<카프-멤-라멛-바브(중)-눈-헤이> @베미케샤<베이트_멤-코프-쉰(우)-헤이> @케이르<카프_아인-요드-레이시-> @네츄라<눈-체데-바브(중)-레이시-헤이>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 룰레 예호와 체바오트 호틸 라누 시리드 키메아트 키쎄돔 하이누 라아모라 다미누
לוּלֵי֙ יְהוָ֣ה צְבָאֹ֔ות הֹותִ֥יר לָ֛נוּ שָׂרִ֖יד כִּמְעָ֑ט כִּסְדֹ֣ם הָיִ֔ינוּ לַעֲמֹרָ֖ה דָּמִֽינוּ׃ ס
== @룰레<라멛-바브(중)-라멛-요드> @예호와 @체바오트<체데-베이트_알렙-바브(상)-타브> @호티르<헤이-바브(상)-타브-요드-레이시> @라누<라멛-눈-요드> @시리드<쉰(우)-레이시-요드-달렛> @키메아트<카프-멤-아인-테이트> @키쎄돔<카프_싸멕-달렛-멤> @하이누<헤이-요드(점)-요드-눈-바브> @라_아모라<라멛_아인-멤-레이시-헤이> @다미누<달렛-멤-요드-눈-바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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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쉬메우 데발 아도나이 케치네 세돔 하아지누 토랕 엘로헤누 암 아모라
שִׁמְע֥וּ דְבַר־יְהוָ֖ה קְצִינֵ֣י סְדֹ֑ם הַאֲזִ֛ינוּ תֹּורַ֥ת אֱלֹהֵ֖ינוּ עַ֥ם עֲמֹרָֽ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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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람마 리 로브 지베헤켐 요말 아도나이 사바티 올로트 엘림 웨헤렙 메리임 웨담 파림 우케바심 웨아투딤 로 하파츠티
לָמָּה־לִּ֤י רֹב־זִבְחֵיכֶם֙ יֹאמַ֣ר יְהוָ֔ה שָׂבַ֛עְתִּי עֹלֹ֥ות אֵילִ֖ים וְחֵ֣לֶב מְרִיאִ֑ים וְדַ֨ם פָּרִ֧ים וּכְבָשִׂ֛ים וְעַתּוּדִ֖ים לֹ֥א חָפָֽצְתִּי׃
12.키 타보우 레라오트 파나이 미 비케쉬 조트 미예드켐 레모스 하체라이
כִּ֣י תָבֹ֔אוּ לֵרָאֹ֖ות פָּנָ֑י מִי־בִקֵּ֥שׁ זֹ֛את מִיֶּדְכֶ֖ם רְמֹ֥ס חֲצֵרָֽי׃
13.로 토시푸 하비 미느하트 솨웨 케토렡 토에바 히 리 호데쉬 웨솹바트 케로 미케라 로 우칼 아웬 와아차라
לֹ֣א תֹוסִ֗יפוּ הָבִיא֙ מִנְחַת־שָׁ֔וְא קְטֹ֧רֶת תֹּועֵבָ֛ה הִ֖יא לִ֑י חֹ֤דֶשׁ וְשַׁבָּת֙ קְרֹ֣א מִקְרָ֔א לֹא־אוּכַ֥ל אָ֖וֶן וַעֲצָרָֽה׃
14.호드쉐켐 우모아데켐 사네아 나프쉬 하이우 알라이 라토라흐 닐르에티 네소'
חָדְשֵׁיכֶ֤ם וּמֹועֲדֵיכֶם֙ שָׂנְאָ֣ה נַפְשִׁ֔י הָי֥וּ עָלַ֖י לָטֹ֑רַח נִלְאֵ֖יתִי נְשֹֽׂא׃
15.우베파리세켐 캎페켐 아림 에나이 미켐 감 키 타르부 테필라 에넨니 쇼메아 예데켐 다밈 말레우
וּבְפָרִשְׂכֶ֣ם כַּפֵּיכֶ֗ם אַעְלִ֤ים עֵינַי֙ מִכֶּ֔ם גַּ֛ם כִּֽי־תַרְבּ֥וּ תְפִלָּ֖ה אֵינֶ֣נִּי שֹׁמֵ֑עַ יְדֵיכֶ֖ם דָּמִ֥ים מָלֵֽאוּ׃
16.라하추 힞자쿠 하시루 로아 마알레켐 민네게드 에나이 히델루 하레아
רַחֲצוּ֙ הִזַּכּ֔וּ הָסִ֛ירוּ רֹ֥עַ מַעַלְלֵיכֶ֖ם מִנֶּ֣גֶד עֵינָ֑י חִדְל֖וּ הָרֵֽעַ׃
17.리메두 헤테브 디르슈 미쉬파트 앗쉐루 하모츠 쉬페투 야톰 리부 알마나
לִמְד֥וּ הֵיטֵ֛ב דִּרְשׁ֥וּ מִשְׁפָּ֖ט אַשְּׁר֣וּ חָמֹ֑וץ שִׁפְט֣וּ יָתֹ֔ום רִ֖יבוּ אַלְמָנָֽה׃ ס
18.레쿠 나 웨니와케하 요말 아도나이 임 이흐우 하타에켐 캇솨님 캇쉘레그 얄비누 임 야에디무 카톨라 캋차메르 이흐우
לְכוּ־נָ֛א וְנִוָּֽכְחָ֖ה יֹאמַ֣ר יְהוָ֑ה אִם־יִֽהְי֨וּ חֲטָאֵיכֶ֤ם כַּשָּׁנִים֙ כַּשֶּׁ֣לֶג יַלְבִּ֔ינוּ אִם־יַאְדִּ֥ימוּ כַתֹּולָ֖ע כַּצֶּ֥מֶר יִהְיֽוּ׃
19.임 토부 우쉐마템 투브 하아레츠 토케루
אִם־תֹּאב֖וּ וּשְׁמַעְתֶּ֑ם ט֥וּב הָאָ֖רֶץ תֹּאכֵֽלוּ׃
20.웨임 테마아누 우메리템 헤렙 테우켈루 키 피 아도나이 딥벨
וְאִם־תְּמָאֲנ֖וּ וּמְרִיתֶ֑ם חֶ֣רֶב תְּאֻכְּל֔וּ כִּ֛י פִּ֥י יְהוָ֖ה דִּבֵּֽר׃ 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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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예카 하예타 레조나 키르야 네에마나 멜레아티 미쉬파트 체뎈 야린 바흐 웨앝타 멜랓체힘
אֵיכָה֙ הָיְתָ֣ה לְזֹונָ֔ה קִרְיָ֖ה נֶאֱמָנָ֑ה מְלֵאֲתִ֣י מִשְׁפָּ֗ט צֶ֛דֶק יָלִ֥ין בָּ֖הּ וְעַתָּ֥ה מְרַצְּחִֽים׃
22.카셒페크 하야 레시김 사베에크 마훌 밤마임
כַּסְפֵּ֖ךְ הָיָ֣ה לְסִיגִ֑ים סָבְאֵ֖ךְ מָה֥וּל בַּמָּֽיִם׃
23.사라이크 소레림 웨하베레 간나빔 쿨로 오헤브 쇼하드 웨로데프 솰레모님 야톰 로 이쉬포투 웨리브 알마나 로 야보 알레헴
שָׂרַ֣יִךְ סֹורְרִ֗ים וְחַבְרֵי֙ גַּנָּבִ֔ים כֻּלֹּו֙ אֹהֵ֣ב שֹׁ֔חַד וְרֹדֵ֖ף שַׁלְמֹנִ֑ים יָתֹום֙ לֹ֣א יִשְׁפֹּ֔טוּ וְרִ֥יב אַלְמָנָ֖ה לֹֽא־יָבֹ֥וא אֲלֵיהֶֽם׃ 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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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라켄 네움 하아돈 아도나이 체바오트 아비르 이스라엘 호이 엔나헴 및차라이 웨인나크마 메오예바이
לָכֵ֗ן נְאֻ֤ם הָֽאָדֹון֙ יְהוָ֣ה צְבָאֹ֔ות אֲבִ֖יר יִשְׂרָאֵ֑ל הֹ֚וי אֶנָּחֵ֣ם מִצָּרַ֔י וְאִנָּקְמָ֖ה מֵאֹויְבָֽי׃
25.웨아쉬바 야디 알라이크 웨에체로프 캅보르 시가이크 웨아시라 콜 베디라이크
וְאָשִׁ֤יבָה יָדִי֙ עָלַ֔יִךְ וְאֶצְרֹ֥ף כַּבֹּ֖ר סִיגָ֑יִךְ וְאָסִ֖ירָה כָּל־בְּדִילָֽיִךְ׃
26.웨아쉬바 쇼페타이크 케바리쇼나 웨요아차이크 케밭테힐라 아하레 켄 잌카레 라크 이르 핯체데크 키르야 네에마나
וְאָשִׁ֤יבָה שֹׁפְטַ֙יִךְ֙ כְּבָרִ֣אשֹׁנָ֔ה וְיֹעֲצַ֖יִךְ כְּבַתְּחִלָּ֑ה אַחֲרֵי־כֵ֗ן יִקָּ֤רֵא לָךְ֙ עִ֣יר הַצֶּ֔דֶק קִרְיָ֖ה נֶאֱמָנָֽה׃
27.치욘 베미쉬파트 팊파데 웨솨베하 비체다카
צִיֹּ֖ון בְּמִשְׁפָּ֣ט תִּפָּדֶ֑ה וְשָׁבֶ֖יהָ בִּצְדָקָֽה׃
28.웨쉐베르 포쉐임 웨하타임 야흐다우 웨오제베 아도나이 이켈루
וְשֶׁ֧בֶר פֹּשְׁעִ֛ים וְחַטָּאִ֖ים יַחְדָּ֑ו וְעֹזְבֵ֥י יְהוָ֖ה יִכְלֽוּ׃
29.키 예보슈 메에림 아쉘 하마드템 웨타흐페루 메학간노트 아쉘 베하르템
כִּ֣י יֵבֹ֔שׁוּ מֵאֵילִ֖ים אֲשֶׁ֣ר חֲמַדְתֶּ֑ם וְתַ֨חְפְּר֔וּ מֵהַגַּנֹּ֖ות אֲשֶׁ֥ר בְּחַרְתֶּֽם׃
30.키 티흐유 케엘라 노벨레트 알레하 우케간나 아쉘 마임 엔 라흐
כִּ֣י תִֽהְי֔וּ כְּאֵלָ֖ה נֹבֶ֣לֶת עָלֶ֑הָ וּֽכְגַנָּ֔ה אֲשֶׁר־מַ֖יִם אֵ֥ין לָֽהּ׃
31.웨하야 헤하손 리네오레트 우포알로 레니초츠 우바아루 쉬네헴 야흐다우 웨엔 메캅베
וְהָיָ֤ה הֶחָסֹן֙ לִנְעֹ֔רֶת וּפֹעֲלֹ֖ו לְנִיצֹ֑וץ וּבָעֲר֧וּ שְׁנֵיהֶ֛ם יַחְדָּ֖ו וְאֵ֥ין מְכַבֶּֽה׃ 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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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를 세우심에 대한 언급
---동심합치로 사는바 영원하신 Q의 참제자 ((=알렙-멤=엘로힘+샤마임)) 됨, 곧 [Q을 참되게 알고, 절대적 신뢰의 참 믿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열어-비워-내어-맡겨드림으로써!!, 그 가치관이 십자가 ((죽음-부활))진리에 적셔짐 통해 철저히 관통-변화된자, 즉 말씀이 그 존재 전체를 관통된 자요, Q의 속성으로 빚어 다루심에 완전히 자신을 열어드림으로써, 그분의 호흡해내신바 진리의 증인으로서 그대로 살아가며, 그분을 최고봉 삼기에, 조성하신바 부활생명을 살아내며, 보좌에 계신 분께서 열어주심따라 그 기름부으심으로 사는자, 곧 말씀으로 새롭게 조성된 참제자, 새로운 피조물인 실존[엘로힘-샤마임-하_아레츠]로 살아가며감..호흡해내신바 그대로 들이마심으로써 그영으로 빚어 다루심 받아 조성된, 진리의 참증인 부활생명의 그영의 실제로 사는, 완전한 생명가지, 보좌의 그영께서 열어주신바 그 말씀을 말하는, 그 생명의 확장-산출 발하여 땅(혼)을 참제자 삼는자..==
[출9:16...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 웨울람 바아부르 조트 헤_에마드티카 바아부르 할오테카 에트 코히 우레마안 샤페르 셰미 베콜 하아레츠 ... וְאוּלָ֗ם בַּעֲב֥וּר זֹאת֙ הֶעֱמַדְתִּ֔יךָ בַּעֲב֖וּר הַרְאֹתְךָ֣ אֶת־כֹּחִ֑י וּלְמַ֛עַן סַפֵּ֥ר שְׁמִ֖י בְּכָל־הָאָֽרֶץ׃ ]
== @웨_울람<바브_알렙-바브(중)-라멛-멤>..십자가 진리로 그의 가치관이 전적으로 거듭난, 참제자요 주님 그릇으로 살아감 알렙=으뜸-머리-가치관/세계관 *알렙-멤=엘로힘+샤마임 *알렙-라멛-멤 = 말씀하시는 Q의 참제자로 살며 (가치관이 완전히 주님의 어떠함과 일치하는바) 동시에 그분의 집/거처됨.. @바_아부르<베이트_아인-베이트-바브(중)-레이시> ....말씀으로 철저히 관통된 존재라, [Q뜻 이루시는 분, 실제의 그영과 조화-일치의 하나 이뤄 호흡맞춰 살아감] 동심합치의 절대적 신뢰의 참믿음으로 살아감이 무엇인지 배워 알고 적셔짐.. @조트<자인_알렙-타브> ..Q의 속성 그대로 .빚어 다루심을 기꺼이 감수-환영하며 완전히 맡겨드림..@헤_에마드티카<헤이_아인-멤-달렛-타브-요드-쿠프>...호흡해내신 그대로, 진리말씀에 적셔져 사는 존재, 진리-성령의 참증인의 온전함 그대로 살아내는자.. @바_아부르<베이트_아인-베이트-바브(중)-레이시> @하_르_오테카<헤이_레이시-알렙-타브-쿠프> @에트-코히<알렙-타브, 카프-헤이트-요드> @우_레_마안<바브(중)_라멛_멤-아인-눈> @싸페르<싸멕-페이-레이시> @셰미<쉰(우)-멤-요드> @베콜-하_아레츠<베이트-카프-라멛, 헤이_알렙-레이시-체데>...그의 중심이 주님 말씀으로 관통됨으로 인해 그 말씀안에 살아계시는 Q생명 호흡-숨결이신분, 그영의 속성 그대로 살아가는 거듭난 실존이 됨 , 그분의 속성 자체가 바로!! 믿는이를 거듭나도록 조성하는 부활생명이기에, 한마음-한뜻의 참제자된 이마다 진리로 살 수 있게 되는것이요.. 그분은 보좌에 계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열어 그분의, 형상-진리의 기름부음으로 살게 하시며 주께서 호흡해내신 바로 그 실존, [전적으로 진리 충만-넘침의 샤마임과 하나로서,(=진리로 적셔진 "샤레츠=영혼"으로 불림)), 곧 거듭난"땅-혼"인 바 하_아레츠를 얻게 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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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מִֽכָּל־מִ֭שְׁמָר נְצֹ֣ר לִבֶּ֑ךָ כִּֽי־מִ֝מֶּ֗נּוּ תֹּוצְאֹ֥ות חַיִּֽים׃ ... 미칼- 미쉬말 네촐 리베카 키-밈멘누 토초트 하임 ]
==@미칼<멤-카프-라멛>-@미쉬말<멤-쉰(우)_멤-레이시> 진리로 조성된 참제자, (주께서 베무시는 진리말씀 그 안의), 한량없는 기름부음따라(결합-연합한 하나로 붙좇음, 그 참된 믿음 통해 살게 하시는바) 진리에서 진리에 이르게 하신 그대로 (주의 영으로)살아가는 사람
@네촐<눈-체데-레이시> @리베카<라멛-베이트-쿠프> (십자가로 옛존재 처리받고 부활생명으로 거듭남, 곧 그 부활생명을 주께서 공급하시는바, 그 생명나무 본제의 확장-산출-발아된 생명가지와) 연합한 하나 이루신바 (가지마다 붙좇는 하나, 그 믿음 발휘함 통해, 날마다-매순간마다 그 실존-영혼-참제자-가지와, 아버지의 영원하신 경륜 그대로 살아가는, 참생명의 신진대사적 선순환 이루고 계심이기에)), (일심으로-일편단심으로 앙망하며 주예수 이름 부룸으로써, 누리게하시는바!!) 말씀으로 적셔진 참제자의 현존 살아가라
@키<카프-요드>-@밈멘누<멤-멤-눈-바브(중)> ..진리의 온전/완전함 그대로 이루시리니 절대적 참믿음으로 붙좇아 동행함으로써 그리 조성될지라... 오직!! 신뢰함으로써 붙좇아 살아감으로써 조성되라..(조성됨이란, 말씀 열어주시는 그대로 두손으로 받아 껴안고 수용-적용-비춤/조명 통해 십자가로 달려감 + 완전히 붙좇는 하나로써 그분께 오늘 메순간의 삶 맡겨드리며 머리/으뜸이신 주님과 하나로서 동행함이니, 이를 통해 그분의 담지자-거처-증거궤안의 말씀새겨진 증거판의 사람 만들며 이루고 계심이라...주님은 능히 이 땅을 걷는 그대에게 말씀 그대로, 기름부음의 육화, 곧 예수님의 그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바, 그분께서 이미 이긴자의 반열에 두셨기 때문이라, 바로 그 생생한 진리를 살아내라!!)
@토초트<타브-바브(상)-체데-알렙-바브(상)-타브> @하임<헤이트-요드(점)-요드-멤>...십자가 과정 거치신분, 바로 부활생명의 그 영이신 CJ, 그분, 그분은 창조주-전능자시요 완전하신 참 생명 부친-완전하신 참 모친의 근원적 생명-인격이시라, 이미 그리 십자가 과정 거쳐 새로 만들어 두신바 그 새로운 담지자됨과 함께 Q의 참생명-관계적 인격이신 그분자신을 그대로 채워주시나니, 바로 결합-연합한 하나됨 일깨워 거침없는-불가능 없는-막힘 없는 차원-영역 초월하는 부활생명 능력, 이와 더불어 그 넘쳐흐름인바 그분의 참생명지혜가 발현되게 하시며, 담아 공급하게 하시도다(즉, 하나된 생명가지의 참제자마다에게, 주예수 앙망하며 그 이름부를 그때마다 넘치도록 채우시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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