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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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역사는 제왕들과 그 통치에 관한 책들이다. 나라의 일은 왕과 그 왕의 통치에 관한 일로 압축된다.
이것은 흔히 왕관을 쓴 자들에게 돌려보냈던 영예의 일례였다.
성경은 인간들 중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역사의 기록으로서, 그 나라의 행정부는 여럿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왕은 하나요, 그 왕의 이름도 하나일 따름이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역사는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의 왕정에 관하여 기록한 세부적 기사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기록이다.
왜냐하면 성격이 성스러운 역사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제왕들의 어떠한 역사보다도 훨씬 교육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상의 제왕들의 역사(어떤 것은 아주 분명하다)는 시간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보다 앞서 있다. 또한 에돔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이전에 이미 왕이 있었지만(창 36:31. 그 점에서는 그들이 우위에 있다),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왕들에 관한 역사는 지금도 존속되고 있으며, 이 세상 끝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에돔 제왕들에 관한 역사는 이후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나는 영광은 영속성이 있는 것이나, 세상으로부터 나는 영광이란 버섯과도 같은 것이어서 하룻밤 사이에 돋아났는가 하면 하룻밤 사이에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는 족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보다 직접적이었던 사사들에 관한 기사로 시작되어 있으며,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의 경우에 적용시키기에는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의 역사와 같이 하나님의 일반 섭리의 명령에 따라 생겨난 계속적인 역사에서처럼 여기서 어떤 환상(vision)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메시아의 표상이나 상징에 대한 것을 많이 볼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크나큰 기대는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허다한 예언자들뿐 아니라 왕들도 복음의 깊은 신비를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눅 10:24).
사무엘상·하 양서는 곧 열왕기에 대한 입문서이니, 이 두 책은 서로 왕정(王政)의 기원을 사울에게, 그리고 왕족의 유래를 다윗에게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서와 열왕기는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에 관한 기사와 나라의 분열, 그리고 양국의 여러 왕위 계승에 관한 기록인데, 바벨론 유배 때까지의 그들의 역사를 간추려 주고 있다.
창세기에서 집안을 잘 다스리는 탁월한 경세(經世)법칙을 얻을 수 있듯이, 열왕기에서는 공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훌륭한 정치 법칙을 배우게 된다.
열왕기는 예수께서 오시게 된 다윗의 가정과 그 계보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윗의 자손 가운데 혹자는 그를 본받았으며 혹자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유다 제왕들의 성품이 지극히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다윗은 경건한 사람으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 르호보암은 검소한 사람, 아비야는 용감한 사람, 아사는 의로운 사람, 여호사밧은 독실한 사람, 여호람은 사악한 자, 아하시야는 불경스러운 자, 요아스는 배교자, 아마샤는 경솔한 자, 요담은 온순한 자, 아하스는 우상 숭배자, 히스기야는 개혁자, 므낫세는 참회자, 아몬은 모호한 자, 요시야는 다정한 사람으로 나와 있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그리고 시드기야 등은 모두가 사악했으며, 이러한 자들이 한결같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왕국에 조속한 멸망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그들 중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수효는 거의 맞먹는다 하겠으나, 보편적으로 선한 자들의 통치는 장기간이었으며, 사악한 자들의 통치 기간은 지극히 짧았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스라엘의 형편은 처음에 생각하듯이 모두가 한결같이 사악한 것은 아니라 하겠다.
이제 열왕기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게 된다.
1. 다윗의 죽음(1, 2장).
2. 솔로몬의 훌륭한 통치와 성전 건축(3-10장), 그러나 그의 밝은 햇살을 흐리게 하는 먹구름을 보게 된다(11장).
3. 르호보암 때의 영토 분할과, 그와 여로보암의 통치 기사(12-14장).
4. 아비야와 아사의 유다 왕국 치세 및 바아사와 오므리의 이스라엘 통치 기사(15, 16장).
5. 엘리야의 이적 기사(17-19장).
6. 벤하닷에 대한 아합의 왕위 계승 및 그의 사악함과 멸망의 기사(20-22장).
따라서 이 모든 역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바 한 가지 사실은 이들 열왕이 비록 우리에게는 신처럼 떠받들리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죽음을 면할 수 없으며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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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장 (개요)
본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피게 된다.
1. 다윗의 병세 악화(1-4).
2.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기도와 그 일당에 대한 처벌(5-10).
3.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대해 다윗의 명을 얻기 위한 나단과 밧세바의 시도(11-31).
4. 솔로몬의 기름 부음 받음과 백성들의 환호(32-40).
5. 아도니야의 찬탈 행위의 실질적인 종식과 그 일파의 분산(41-49).
6. 선행을 위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떠나게 함(50-53).
----왕상1:1-4------
==다윗이 늙은 때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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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야심 (1)(왕상 1:1-4)
사무엘서 마지막 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윗은 한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파멸케 하는 천사의 칼을 모면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이나 위험으로부터 구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집행 유예)에 불과하다.
촛불은 바람을 불어 끄지 아니하면, 저절로 다 타 버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고령이라는 약점 때문에 몰락해 가고 있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무덤의 문턱에까지 이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자는 “덫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Ⅰ. 이처럼 연약해진 다윗을 본다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다.
그의 몸은 늙었고 체온마저 다하여 어떠한 옷으로도 그의 몸을 따뜻하게 보온할 수가 없게 되었다(1절).
다윗은 과거에 원기 있는 활동가이자 사업가였고, 맹렬한 불길이 언제나 그의 가슴속에서 불일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그의 피는 싸늘해지고 순환이 불순하여, 침상에만 틀어박혀 있기만 하는데도 체온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이제 70세가 되었다. 허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나이에는 아직까지 박력 있게 사업을 수행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윗은 이전에 범했던 자신의 죄, 특히 우리아의 사건을 통해 범했던 죄에 대하여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겪은 예전의 여러 가지 수고와 역경을 당시에는 예사로이 여겼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악화됨을 깨닫게 되었다.
“힘센 자들아, 너희의 힘을 자랑 말지니라.” 그 힘은 질병으로 곧 쇠잔해질 수 있으며, 또 마침내는 노령으로 약화되고야 말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이러한 불행한 날이 이르기 전에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의 손이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그리고 우리의 세대를 위해 할 일을 발견했다면, 우리의 온 정성과 힘을 다해 그 일을 하자.
왜냐하면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 곧 연륜이란 밤이 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정력이 다 사라지고 났을 때, 그 정력을 선용했다는 사실을 회상하면 큰 즐거움이요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Ⅱ. 다윗의 의사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고 기술이 없어서 외형적인 처방으로밖에는 시술할 수 없음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강장제라든가 활력소가 아니라, 단지
1. “그들이 이불로 그를 덮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윗에게 체온이 다소 있었다면, 그 체온을 보존하여 온기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몸에 온기가 없었다면, 온기를 전달해 주는 데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것이니, 왕실의 침구로서는 소용이 없는 노릇이었다.
엘리후는 “우리의 의복이 우리에게 따뜻한 까닭”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욥 37: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아니한데”(학 1:6), 다윗이 지금 그러했다.
2. 어리석게도 그들은 그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는데도 혼례를 권하였다(2-4절).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자기들의 타락을 충족시킬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다윗의 건강을 진단한다는 미명하에 다윗의 타락(된 마음)을 만족시키는 일에 급급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다윗은(!!!) 스스로 그의 의원들에게 처방을 물었듯이, 그의 선지자들에게도 뜻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아내를 많이 거느리는 것이 묵인되던 그 당시였던지라, 이러한 일도 변명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같이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남자는 한 아내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마 19:5). 심지어 나아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전 7:1)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기 전에 먼저 다윗과 혼인하여, [공식적으로!!]그의 둘째 아내가 되었다.
그것은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죽은 후에(2:22) 그녀와 결혼하려 했음을 그의 크나큰 범죄로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왕상2:15-25------
==아도니야가 죽임을 당하다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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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종말(왕상 2:12-25)
Ⅰ. 이제 솔로몬은 왕좌에 올랐다(12절).
솔로몬은 다윗보다 훨씬 용이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즉위했고, 그의 정권은 훨씬 신속히 확립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선한 통치의 종지(終止)가 또 다른 선한 통치의 시작이 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행복이다.
Ⅱ. 왕권 확립을 위한 적수 아도니야를 제거했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요 필요한 일이었다. 아도니야는 은밀히 왕권을 넘보고 있었으나, 곧 그 허식은 여지없이 추락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자기를 솔로몬의 처분에 맡겨야 할 신세가 되었다. 솔로몬은 선행을 조건으로 하여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목숨은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배반하여 솔로몬의 정의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를 방임해 두셔서 전에 그가 반역한 일 때문에 벌을 받게 하시고, 또한 솔로몬의 왕위가 확립되도록 하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가 자기들이 잘 지내는 때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몰락하는 수가 많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참으심을 기화로 스스로에게 진노를 쌓아 둔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다윗의 첩 아비삭과 결혼하려는 아도니야의 음모가 있다.
이 음모는 그가 아비삭을 연모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녀를 통해 집요한 왕권 주장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혹은 “선왕의 처”(삼하 12:8)를 취하는 것은 당시에는 또 하나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압살롬은 자기 부친의 첩들과 동침하는 것이 자기의 자만심을 지탱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도니야는 특히 다윗의 첩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여인과 다윗의 침실에 들 수만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다윗의 왕좌에도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속으로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고조되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왕국을 쟁취하기 위한 불장난을 시도하여, 무력으로는 얻을 수 없으나 한 여인을 통해서 이룩하기를 바랐다. ((아비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취하는 행위, 이것에 대해, 사도바울은 [성도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음행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2. 이 음모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을 보자.
아도니야는 직접 아비삭에게 구혼하려 들지 않았다. 이스보셋이 이와 같은 경우에 그랬듯이(삼하 3:7), 그녀는 솔로몬의 의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솔로몬의 동의를 먼저 얻지 않으면 솔로몬이 당연히 분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솔로몬이 자기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처지라 자기 자신이 솔로몬에게 직접 청원해 보지도 않았다.
그는 밧세바를 이 사건에 중재자로 써 보았다. 그것은 밧세바가 이 사건을 애정 문제로 생각하고, 쉽사리 정책 문제로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밧세바는 아도니야가 그녀의 방에 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자기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먹고 오지나 않았나 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도니야의 최근의 음모를 분쇄하는 도구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니올시다. 나는 화평한 목적으로 와서(13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14절).”
이는 그녀가 그녀의 아들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을 이용하여 아비삭에게 장가들기 위한 그의 동의를 얻으려 함이었다. 그래서 이 동의를 얻기만 하면 그것을 감사히 받았을 것이다.
(1) 자기가 왕국을 잃은 데 대한 보상으로서.
그는 “당신도 아시는 바와 같이, 왕위는 나의 부친의 생존시 그의 장자인 나의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였습니다”라고 넌지시 말했다(15절).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편에 선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왕위를 빼앗기고 한 여인으로 만족하려고 하는 동정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비록 그의 부친의 왕위를 계승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기 부친이 소유하고 있던 것 중 값이 나가는 어떤 것을 가지려고 한 것인데, 이것이 곧 아비삭이었다.
(2) 나라를 잃는 손해를 감수한 대가로서.
그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권을 자인했다. “그것은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가 왕위를 쟁취하려고 경쟁한 것은 어리석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솔로몬에게 돌아갔으나 나는 만족합니다.” 이렇게 그는 솔로몬의 왕위 즉위를 기뻐하는 척했으나, 그 때 그는 솔로몬의 마음을 교란시킬 수 있는 모든 수작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버터보다 더 부드러웠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3. 아도니야를 위해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한 말이 있다.
밧세바는 솔로몬 왕 앞에서 아도니야를 대변하기로 약속했고(18절), 또 그렇게 했다(19절).
솔로몬은 비록 자기가 왕이기는 했으나 어머니에게 해야 할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즉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 우편에 앉게” 했는데, 이것은 제5계명에 따른 것이다.
자녀들은 그들이 성장했을 때뿐만 아니라 위대하게 된 후라도,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예의 바르게 그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너의 어미가 늙었더라도 경시하지 말라.” 그가 자기 어머니의 지혜와 권위에 대해 표할 수 있는 공경의 일례를 더 든다면, 그녀가 자기 앞에 나와서 청원할 일이 있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 청원을 괄시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다음과 같은 제한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녀의 말을 기각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드디어 심부름으로 왕에게 나왔음을 실토했다. “아비삭을 당신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소서”(21절).
이상한 것은 그녀가 이 음모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며,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청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근친상간을 증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비삭을 다윗의 아내로 여기지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결혼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아도니야가 솔로몬에게 순순히 복종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녀의 생각에는 아도니야를 만족케 해 주기 위해 그런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음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녀의 약점이자 어리석음이었다. 그녀가 섭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군왕이나 고관을 보필하는 자들에게 있어 군왕이나 고관의 이익을 너무 탕진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지혜이듯이, 죄를 조장하거나 사악한 궤휼을 방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또한 그들의 의무다.
왕들에게 그들이 수락해서는 안 되는 것을 청탁하지 말자. 사악한 간청을 더 기뻐하거나 사악한 궤계 앞에 나서는 것은 훌륭한 사람에게는 합당치 않다.
4. 솔로몬은 그 요구를 정당하고도 합법적으로 기각시켰다.
그의 모친 자신이 대변인이 되었고, 그것은 “한 가지 작은 일로 간청”하는 것이라고 칭해졌고, 또 아마도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밧세바가 그에게 괴로움을 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거부한 것은 자기가 전에 한 총괄적인 약속을 파기한 것은 아니다(20절).
만약에 헤롯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를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 경우와 같이, 그는 자기가 헤로디아에게 한 총괄적인 약속에 의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아무리 좋은 우리의 친구라도 우리로 하여금 부당하고 어리석은 그러한 나쁜 일을 하게 할 정도로 우리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1) 솔로몬은 그의 모친에게 그 간청의 불법성을 확인시켰으며, 그녀가 전에 알고 있지 못했던 그 일의 귀추를 설명해 주었다.
그의 대답은 약간 신랄했다. 즉 “그를 위하여 왕위까지도 구하옵소서(22절). 왕의 침상을 계승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왕위 계승 요구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아도니야가 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과 더불어 자기를 교란시킬 음모를 하고 있다는 정보와 그렇게 의심할 만한 이유를 포착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도니야의 요구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계기를 주었을 것이다.
(2)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헛된 교만을 지적하고 맹세하면서 정죄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아도니야 자신의 말 때문에 정죄했다(23절). 그 자신의 말이 그에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더 무거운 짐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밧세바는 속았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아도니야가 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즉 “그는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으리라. 그는 그 입술로부터 나온 자신의 말로 함정에 빠지고 있으므로, 그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느니라.”
그는 곧 아도니야의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24절).
하나님은 친히 다윗의 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맹세로 선언하셨다(시 89:35). 하기에, 솔로몬은 그 왕위를 노리는 원수를 제거함으로써, 왕위를 견고케 하겠다고 그와 똑같은 확약을 했다. “왕위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즉, 이를 교란시키려는 아도니야는 정녕 죽어야 하리라.”
그리스도 왕국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패망이 분명한 것은 그의 왕국의 견고성이 분명한 것과 같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자녀와 모든 생명이 확고부동한 것과 같다.
아도니야의 사형 집행 승인은 곧 서명되었고, 그 사형 집행자로서는 다름 아닌 군대장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임명되었다(25절).
아도니야에게 자기 변호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는 이 사건을 더 이상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도니야가 왕위를 노린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야심이 많고 불온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죽음의 도구를 스스로 준비하기 마련이다. 왕권을 잡으려다가 목이 잘린 자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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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아들들과 딸(대상3 :1-9)
*1.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은 다음과 같다: 맏아들은 이스르엘의 여자 아히노 암이 낳은 암논, 둘째는 갈멜 여자 아비가일이 낳은 다니엘, *2.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낳은 압살롬, 넷째는 학깃이 낳은 아도니야, *3. 다섯째는 아비달이 낳은 스바댜, 여섯째는 에글라가 낳은 이드르암이었다. *4. 이 여섯 아들은 다윗이 헤브론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데 거기서 그는 7년 6개월 동안 다스렸으며 그런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겨 거기서 33년을 통치하였다. *5. 그리고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은 [a]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이었으며 이들은 모두 암미엘의 딸이었던 [b]밧세바에게서 난 자들이었다. *6. 다윗에게는 또 다른 아홉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입할, [c]엘리수아, 엘벨렛, *7 노가, 네벡, 야비아, *8. 엘리사마, 엘랴다, 엘리벨렛이었다. *9. 그리고 다윗에게는 다말이라는 딸 하나가 있었으며 이 외에도 여러 첩의 아들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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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집안(대상 3:1-9)
우리는 다윗의 아들들에 관한 기사를 이미 살펴 보았다(삼하 3:2 이하, 5:14 이하).
Ⅰ. 그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의심할 바 없이 시편 127편 5절에서 그가 생각한 대로 기록했던 것이다. 이러한 화살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Ⅱ. 그들 중 어떤 아들들, 즉 암몬, 압살롬, 그리고 아도니야 등은 그에게 슬픔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솔로몬 이외의 어떤 아들도 그의 경건심과 신앙심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로몬도 다윗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Ⅲ.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 중 하나는 나단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것은 아마 그에게 죄를 책망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었던 선지자 나단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존 동안 이것 때문에 그를 더 사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앙으로 사귄 친구를 존경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누가복음 3장 31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의 이 아들로부터 우리 주 예수님이 나셨다.
Ⅳ. 여기에는 두 사람의 엘리사마와 두 사람의 엘리벨렛이 있다(6, 8절).
앞에 나오는 두 사람 즉 엘리사마와 엘리벨렛은 죽고 다윗은 다시 낳은 두 아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 이름은, 어떤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관습상으로 어떤 흉조를 가진 것이라면 다시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Ⅴ. 다윗은 많은 첩을 거느렸다.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된 것은, 명예가 될 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고(9절), 오히려 압살롬의 사건에서 그 첩들이 다윗에 대하여 불신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Ⅵ. 모든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솔로몬이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것은 아마 그의 개인적인 어떤 장점 때문이 아니고(그의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를 선하게 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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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논 Amnon(인) @/nm]a'(550, 암논)
암논(명남)은 아만(@m'a; , 539)에서 유래했으며, '성실함'을 의미한다.
1. 다윗의 아들
그는 다윗과 아히노암 사이에서 태어났다(삼하 3:2). 그는 이복 여동생 다말과 강제로 동침하였으며 이 일로 후에 다말의 오빠 압살롬에게 살해 당했다(삼하 13장).
2. 시몬의 아들...대상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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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Daniel(인) laYenId:(1840, 다니엘)
다니엘은 딘(@yDi , 1777)과 엘(laE , 410)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님은 심판자시다'를 의미한다.
다니엘은 B.C. 605년(여호야김 왕 3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간 우수한 소년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다니엘서의 주제인 포로 생활과 인간사와 관련된 꿈과 이상을 해석한 선지자이다.
정통적으로 다니엘은 다니엘서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포로 시대의 선지자이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벨드사살, 곧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바벨론 이름으로 개명되었고 왕궁에서 왕을 모시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단 1:1-7).
다니엘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 충실했으며, 꿈과 이상을 잘 해석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높임을 받았으며(단 2:46-49), 바벨론의 총리까지 되었다(단 6:1-3). 다니엘이 해석한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느부갓네살의 꿈(단 2, 4장), 벨사살의 왕궁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단 5장), 대 바벨론 제국의 미래와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한 다니엘 자신의 꿈(단 7-12장) 등이다.
다니엘의 인격과 생활에서 '자제력'(단 1:8; 단 10:3), 담대함(단 5:22, 23), 변함없는 성실성(단 6:4), 끊임없는 기도 생활(단 2:17-19; 단 6:10), 겸손한 인간성(단 10:17), 영적 통찰력(꿈과 이상 등의 해석) 등이 돋보인다.
신약성경에서 다니엘은 신약성경에서 마 24:15(병행구 막 13:14 TR)에만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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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 아비살롬 Absalom, Abishialom m/lv;ybia}(53, 아비샬롬)
아비샬롬(명남)은 아브(ba;' , 1)와 샬롬(!/lv; , 7965)에서 유래했으며, '평화의 아버지'를 의미한다.
1. 다윗의 아들 압살롬...삼하 3:3, 대하 1:20-21.
2. 르호보암 왕의 장인...왕상 15:2, 왕상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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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 Adonijah hY;nidoa}(138, 아도니야후)
아도니야후(명남)는 아돈(@/da; , 113)과 또는 야흐(Hy: , 3050)에서 유래했으며, '나의 주는 여호와시다'를 의미한다.
1. 다윗 왕의 넷째 아들. 왕상 1-2장.
2. 레위인. 대하 17:8-9.
3. 느헤미야 시대에 백성의 두목. 느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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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댜 Shephatiah(인) hy:f]p'v](8203, 셰파트야)
셰파트야(명남)는 샤파트(fp;v; , 8199)와 야흐(Hy: , 3050)에서 유랬으며,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를 의미한다.
1.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 삼하 3:4, 대상 3:3.
2. 므술람의 아버지.
그는 베냐민 자손이며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였다(대상 9:8).
3. 하룹 사람 스바댜.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하룹 출신이여, 시글락에 숨은 다윗을 도왔다(대상 12:1, 대상 12:5).
4. 마아가의 아들.
그는 마아가의 아들로 시므온 지파의 관장이었다(대상 27:16).
5. 여호사밧 왕의 아들.
그는 여호사밧의 후계자인 여호람의 형제이며(대하 21:2), 여호람에게 죽임 당했다(대하 21:3-4).
6. 포로에서 귀환한 한 가족의 시조.
그의 자손들이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으며(스 2:1, 스 2:4, 느 7:9), 그 후 그의 가족들이 에스라와 함께 귀환했다(스 8:8).
7. 솔로몬의 신복.
그는 솔로몬의 신복이며, 그의 후손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다(스 2:57).
8. 아다야의 조상.
그는 유다 자손으로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에 거한 아다야의 조상이다(느 11:4).
9. 맛단의 아들로 예레미야를 대적한 자. 렘 38:1, 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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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르암 Ithream(인) ![;r]t]yI(3507, 이트레암)
이트레암(명남)은 예테르(rt,y< , 3499)와 암(![' , 5971)에서 유래했다.
그는 다윗이 에글라에게서 낳은 여섯번째 아들이다(삼하 3:5, 대상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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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아 Shimea(인) a[;m]vi(8092, 쉬므아)
쉬므아(명남)는 샤마([m'v; , 8085)에서 유래했으며, '그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를 의미한다.
1. 베레갸의 아버지. 게르손 가문의 레위 사람이며 베레갸의 아버지(대상 6:39).
2. 학기야의 아버지 시므아. 그는 므라리 가문의 레위 사람이다(대상 6:30).
3. 다윗의 형제 시므아. 이새의 셋째 아들이며 다윗의 형이며, 요나답과 요나단의 아버지이다(대상 2:13, 대상 20:7). 그는 삼마라고도 하며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다(삼상 17:13).
4. 다윗의 아들 시므아. 대상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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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밥 Shobab bb;/v(7727, 쇼바브)
쇼바브(명남)는 쇼바브(bb;/v , 7726)와 어원이 동일하며, '반역적임'을 의미한다.
1. 갈렙의 아들. 그는 갈렙이 아수바에게서 낳은 아들 중 하나이다(대상 2:18).
2. 다윗의 아들.
그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 예루살렘에서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삼하 5:14, 대상 14:4, 대상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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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 Nathan(인) @t;n:(5416, 나탄)
나탄(명남)은 나탄(@t'n: , 5414)에서 유래했으며, '선물'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나단'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6명이다.
1. 다윗과 솔로몬 시대 선지자 나단
그는 성전 건축 계획에 참여하여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지시했다(삼하 7:2,3; 대상 17:1,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전을 건축할 자는 다윗이 아니라 그의 자식이라고 말했다(삼하 7:12-13; 대상 17:11-12).
그는 다윗의 죄를 고발하면서, 다윗의 행악을 가난한 이웃의 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 대접하는 부자에 비유했다(삼하 12:1-4)
그는 비유의 부자가 다윗 자신임을 말하고 심판을 선언했다(삼하 12:7, 삼하 10-14).
그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지지하여 계략을 꾸미고 밧세바를 선동했다(왕상 1:11-14). 밧세바가 다윗에게 말할 때에 그도 들어가 솔로몬이 왕위 계승자임을 공식화하도록 했다(왕상 1:22-31).
그는 다윗과 선지자 갓과 더불어 성전 예배에서 악기사용을 장려하고(대하 29:25), 다윗과 솔로몬의 역대기를 기록하고(대상 29:29; 대하 9:29),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야로 개명했다(삼하 12:25).
그의 아들들이 솔로몬 아래에서 관직을 얻었다: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분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왕상 4:5-6).
2. 다윗의 아들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며, 솔로몬의 형제이다(삼하 5:14; 대상 3:5; 대상 14:4). 나단은 미래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사건에 개입한 사람들의 조상으로 언급되었다(슥 12:12).
나단은 신약성경에서 눅 3:31에 한번 나오며,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되었다: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3. 소바의 나단 그는 다윗의 용사 이갈의 아버지이다(삼하 23:36).
4. 유다 자손 나단
여라므엘 일족 중 앗대의 아들이며 사밧의 아버지..앗대는 나단을 낳았고 나단은 사밧을 낳았고(대상 2:36).
5.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
그는 족장으로서 에스라를 도와 일했다(스 8:16-19).
6. 포로에서 귀환한 자로서 이방인 아내를 취했던 자(스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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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Solomon(인) hmolov](8010, 셸로몬)
셸로몬(명남)은 샬람(!l'v; , 79999)에서 유래했으며, '평화스러운'을 의미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3번째 왕(B.C 971-931년경)이며,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이다.
선지자 나단이 그를 "여디디야"("여호와께서 사랑하심")라 칭했다(삼하 12:25). 그의 태평한 치세로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인 이름이 되었다.
솔로몬에 관한 주요기사는 왕상 1:11이하와 대상 22장-대하 9장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상의 기록은 예컨대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1)과 같은 초기 업적, "유다왕 역대지략"(왕상 14:29)에서 얻은 자료와 왕상 7:13-8:66에 있는 초기 성전 기록들에 근거한다. 두 어머니가 한 아이를 놓고 다툰 싸움에 관한 유명한 재판 기사는 왕상 3:16-18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장자 아도니야보다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다(왕상 1:15-31). 이리하여 성직자같은 화려함을 소유한 솔로몬이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에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왕상 1:38-40). 실망한 아도니야가 일으킨 왕궁의 모반은 진압되었으나 그 모반자(왕상 1:52 이하)와 그를 따른 공모자, 제사장 아비아달(왕상 2:26 이하)에 대해서는 솔로몬이 자비로운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쿠데타의 군대 지도자 요압은 젊은 왕의 손에 무사하지 못했다(왕상 2:28-3:5).
후에 아도니야가 밧세바를 통하여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줄 것을 요청하자 솔로몬은 그 요청을 자신의 지위에 대한 정치적 위협으로 해석하여 의심하게 되고, 아도니야를 처형했다(왕상 2:19-25).
솔로몬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간 것과 이 높은 곳에서 여호와께로부터 그가 받은 신탁은 하나님과 생명을 향한 그의 초기의 태도를 보여준다(왕상 3:4-15). 선과 악을 분별하여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구한 것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이것은 그의 명성을 떨치는데 일조하였다(왕상 3:16-28).
솔로몬은 문학적인 잠언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궁정의 현자들의 무리의 도움을 받았다(왕상 4:30이하). 그는 생명체에 관한 3천가지의 함축적인 관찰 기록을 남겼으며 엄청난 양의 노래를 작곡하였다고 한다(왕상 4:32). 솔로몬은 나무, 짐승, 새, 물고기 등에 관한 "권위가"로 간주되었으며, 그의 궁정은 이웃 나라로부터 지적인 조언을 받으려는 자들이 방문하였다(왕상 4:33; 9:23).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뿐만 아니라 그의 부에도 감탄해 마지 않았다(왕상 10:1,3이하, 7이하). 다윗이 시편의 아버지로 간주되었듯이 솔로몬은 후대에 히브리 지혜 문학이라 불리운 것의 아버지였다.
잠언서는 전통적으로 이 철학자 왕의 저작으로 인정된다.
그리스도시대에 솔로몬의 화려하고 장엄한 시류의 전통은 사실로 증명된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면에 기초한다(마 6:28).
솔로몬은 북쪽 홈스(Homs)에서 남쪽의 아카바 만에 이르는 왕국을 다윗에게서 물려받았다. 이스라엘의 영토가 그렇게 광대했던 적은 전무후무하다. 이 거대한 왕국은 한마디로 평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로 이스라엘의 강대한 이웃 국가들, 특히 앗수르와 이집트가 이 시기에는 세력이 약화되었거나 적어도 침묵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육상과 해상에서 유리한 모험적인 사업에 착수하였다.
해상 수송의 상업적 측면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에 의해 발달하였다. 지중해상 무역을 지배하고 있던 두로왕 히람Ⅰ세와의 동맹무역으로 솔로몬은 아카바만의 에시온 게벨을 아라비아와 아프라카와의 무역에서 이스라엘의 관문이 될 정도로까지 발전시켰다(왕상 9:26-28).
육상 교통에서 혁명적인 변화도 솔로몬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다. 낙타의 가축화로 인하여(B.C. 12세기)적절한 물만 공급하면 가능한, 며칠이 걸려 사막을 통과하는 대상 여행이 증가하게 되었다. 소바, 다메섹, 하우라, 암몬, 모압, 에돔의 변방 지역에 대한 솔로몬의 통치는 그가 아라비아와 북쪽 나라 사이의 대상 무역전체를 통할했음을 의미했다(왕상 4:21). 힛타이트 길리기아(왕상 10:28 이하에 대한 더 나은 번역)로부터 수입한 말과 애굽에서 온 병거는 육지와 바다의 길을 지배한 솔로몬의 상고들에 의해 정가에 구매되었다. 솔로몬은 국가 수비를 위해 일련의 병거성을 건설했는데(왕상 4:26; 9:15-19; 10:26) 여기에 배치할 병거와 기병은 국가 예산에서 값비싼 것들이었다(대하 9:28).
므깃도와 게셀(Gezer) 발굴물들이 성경의 기록과 전승을 입증해준다. 구리가 아라바에서, 에시온게벨과 그 주변지역에서 채광되고 정련되어 요단 계곡의 숙곳에서부터 사르단까지(왕상 7:46) 페니키아 일꾼들의 숙련된 원조아래 운반되었으니, 이는 솔로몬을 초기 구리 왕들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이 모든 산업과 무역이 이스라엘에게 가져다 준 부에 예속 국가들이 매년 바친 정규적인 공물이 추가되었음에 틀림없다(왕상 4:21-28)
솔로몬은 건축계획을 위해 백성 중에서 일꾼을 징집하였다(왕상 5:13-17; 왕상 9:19-21). 이스라엘에서 산출된 밀과 기름은 결코 잉여분을 남기지 않고 페니키아로 수출하여 숙련공, 목재, 금과 교환하였다(왕상 5:7-11; 왕상 9:14). 마지막에는 솔로몬이 히람왕과의 무역 균형에서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되어 갈릴리의 성읍 20개를 히람왕에게 양도하였다(왕상 9:10-13). 솔로몬이 38년을 치리하고 죽은 후(왕상 11:43), 국제 정세가 변화하였으며(왕상 11:14-25), 국방과 정부 소요경비는 여전히 높은 채로 있는 한편 국가 수입의 많은 원천이 떨어졌다.
솔로몬은 국제적 사업과 정책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 세계주의(cosmopolitanism)를 배양하였다. 그의 통치 초기에 그는 애굽왕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으며(왕상 3:1), 그녀의 지참금으로 게셀(Gezer)의 성채를 얻었다. 그것은 전에 바로가 가나안족속에게서 탈취한 것이다(왕상 9:16 이하). 이 애굽왕녀는 계속하여 솔로몬의 총애를 받았으며, 솔로몬은 자기에게 가까운 곳에 그녀의 궁을 건축했다(왕상 9:24). 솔로몬은 결혼을 통하여 이웃 나라들과 많은 동맹을 맺었는데(왕상 11:1-3), 그는 그 나라에서 탁월한 지위에 있는 여인들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궁정과 나라 전체에서 세계주의의 풍조에 기여하였다. 성경 밖의 전승은 시바 여왕의 방문을 로맨스로 변형시켰다. 비록 일부다처제는 당시 중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 결혼 규범이긴 했지만 후대의 랍비는 솔로몬에게 단 한명의 아들 르호보암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일부일처제를 어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한다. 솔로몬의 아내들과 동료들은 사적인 채플을 소유했다. 시돈의 아스다롯과 암몬의 몰록과 모압의 그모스(왕상 11:5-7)는 예루살렘에서 사당과 제사장과 궁정 후원자를 가진 이방의 신들이었다. 이와 같이 여자들의 영향력은-아마도 심지어 궁정에서 공개적 개종과 함께-솔로몬의 종교의 순결성에 영향을 끼쳤다(9절이하). 통일 왕조의 붕괴는 경제적인 몰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불순종과 이방신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9-11절).
솔로몬의 통치 시초부터 이스라엘의 옛 부족 체계는 중앙 집권식 통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왕상 4:7-19). "솔로몬 앞에 섰던" 선지자들이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에게 부친이 부과한 과중한 세금을 가볍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왕상 12:1-19). 그러므로 솔로몬의 영화를 이룩한 경제적 힘이 또한 솔로몬의 영화를 무너뜨린 결과를 가져왔다.
솔로몬의 건축 계획은 두드러진 업적이 되었다. 비록 그는 나라의 농경생산물을 증대 시키거나 생활의 기준을 향상시키지는 못했지만 막대한 부와 나라 경제의 장악을 통하여 거대한 건축 계획을 시작함으로써, 무역을 보호하고 국가 수비를 위해 국고성과 병거성을 건설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공적 역사 가운데는 다윗이 여부스족속에게서 도성을 탈취했을 때 세운 성벽의 균열을 보수하고(3:1), "다윗성"의 북쪽 지역에 밀로성을 건축한 일도 포함되었다(9:15, 24). 솔로몬은 오늘날의 하람 지역에 에쉬 셰이프esh-Sheif(예루살렘의 성전지역)를 세웠다. 이것은 남쪽에서 시작하여 북쪽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서 있었다. 즉 레바논 나무의 집(이 건물의 특징은 백향목으로 지어졌다, 7:2-5);솔로몬 행각(7:6, 이것은 그리스도 시대와[요 10:23] 사도들의 시대[행 3:11; 행 5:12]에 성전 지역의 건축물로 계속 남아 있었다); 보좌의 낭실과 재판하는 낭실(왕상 7:7); 솔로몬 자신의 거처(왕상 7:8); 솔로몬의 아내 애굽 왕녀의 거처(7:8); 그리고 성전 순이다. 예루살렘 도시에 세운 이러한 건축물들은 솔로몬에게 지속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는 이 건물들을 짓기 위해 외국의 건축가와 일꾼을 고용했다(5:18; 7:13). 이것은 새로운 사상에 대한 솔로몬의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5:2-10).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성전으로 올리는, 즉 건설중인 건축물을 지나 성전의 내소로 옮겨 안치한 의식과 그 다음의 성전 봉헌식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입증하고 증거 하였다. 이 의식은 분명 그의 종교적 경력의 최고봉이었다. 비록 그 장황한 기도와 연설은 신명기 기자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솔로몬의 열정과 헌신만은 분명히 보여진다(8:22-66). 솔로몬은 그의 백성에 대하여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는 그의 종교적 성품 및 초기의 단련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후 솔로몬은 그가 지은 성전에서 해마다 세번씩 제사를 드렸다(9:25). 당시 솔로몬의 성전은 그 땅의 모든 다른 신전들을 무색케 했다. 그곳에서는 아마도 다른 어떤 신전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에 걸쳐 계속적으로 경배가 드려졌을 것이다. 하늘이나 하늘의 하늘이나 어떤 예루살렘의 신전이라도 용납치 못할 하나님께서(8:17) 솔로몬이 여호와를 경배하기 위하여 지은 이 집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솔로몬은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온다. 솔로몬은 사실 신약성경에서 별로 나타나지도 않고 크게 높여지지도 않으며, 모욕도 당하지 않는다.
(a) 마 1:6이하에서 그는 그리스도 계보의 적절한 곳에 나온다. 마 6:29(=눅 12:27)은 그의 "영광"을, 그리고 마 12:42(=눅 11:31)은 그의 지혜를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행 7:47은 그를 성전의 건축자로서 인정한다.
이처럼 그에 대한 언급들이 따로따로 분리된 것은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완전히 합치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b) 솔로몬은 위대한 다윗의 위대한 아들이었으나, 약속된 왕도 아니요, 메시야도 아니었다; 그는 메시야의 조상에 불과했다(마 1:6이하).
(c) 참으로 솔로몬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장엄한 성전을 건축하긴 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의 연설 전체에서 스데반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어떤 것이든 "손으로 만든" 성전의 가치를 하락 시키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성전과 그 뒤에 건립된 제2의 성전은 배교와 불신앙, 바로 그것들의 중심지였다.
(d) 행 7:50과 마 6:29은 모두 청중들과 독자들의 주의를 솔로몬의 업적과 같은 인간적인 업적으로부터 창조주의 영광으로 돌린다.
(e) 마 12:42은 온갖 지혜를 겸비한 솔로몬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무색해졌음을 명백히 말한다. 먼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공격하고 있는 이 구절은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전형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솔로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구절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초대교회가 글자 그대로 다윗의 아들을 드물지 않게 그의 종말론적 후계자와 비교하고 대조 시켰다는 것을 제시해준다.(참조: HBD; D.F. pa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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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할 Ibhar(인) rj'b]yI(2984, 이브하르)
이브하르(명남)는 바하르(rj'B; , 977: 선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그가 선택하셨다'를 의미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다윗에게 난 아들이다(삼하 5:15, 대상 3:6, 대상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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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마 Elishama(인) [m;v;ylia>(476, 엘리샤마)
엘리샤마(명남)는 엘(laE , 410)과 샤마([m'v; , 8085)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를 의미한다.
1. 암미훗의 아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족장이며(민 2:18, 민 10:22), 모세를 도와 인구 조사를 하였으며(민 1:10), 자기 지파를 대표하여 봉헌 예물을 드렸다(민 7:48, 민 7:53). 그는 여호수아의 조부라고 한다(대상 7:26).
2. 다윗의 아들.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 중 한 명이며(삼하 5:13-16, 대상 3:6, 대상 3:8, 대상 14:7), 엘리수아라고도 표기된다(삼하 5:14-16).
3. 여가먀의 아들...그는 유다 지파의 헤스론 가문 자손이다(대상 2:41).
4. 그달리야를 죽인 이스마엘의 할아버지. 왕하 25:25, 렘 41:1.
5. 여호야김 때의 서기관. 렘 36:12, 렘 36:20.
6. 여호사밧의 왕 때의 제사장.
그는 여호사밧왕이 유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도록 파송한 두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대하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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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다 Eliada [d;y:l]a,(450, 엘야다)
엘야다(명남)는 엘(laE , 410)과 야다([d'y: , 3045)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님께서 아신다'를 의미한다.
1. 르손의 아버지..그는 아들 르손으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였다(왕상 11:23).
2. 베냐민 지파의 용사.
그는 여호사밧 왕 때 큰 용사로서 활과 방패를 잡은 자 이십만을 거느렸다(대하 17:17).
3. 다윗의 아들..삼하 5:16, 대상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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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벨렛 Eliphelet(인) fl,p,ylia>(467, 엘리펠레트)
엘리펠레트(명남)는 엘(laE , 410)과 펠레트(fLeP' , 6405)에서 유래했으며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를 의미한다.
1. 다윗의 아들.
그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인데 그의 어머니는 밝혀져 있지 않다(대상 3:6). 그는 엘벨렛으로도 표기된다(대상 14:5).
2.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삼하 5:13, 삼하 5:16. 대상 3:8. 대상 14:7.
3. 사울의 자손. 그는 에섹의 셋째 아들이며 베냐민 지파로 사울의 자손이다(대상 8:39).
4. 아하스배의 아들.
그는 다윗의 용사 중 한 사람이다(삼하 23:34). 대상 11:35의 울의 아들 엘리발과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5.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아도니감의 자손. 스 8:13.
6. 포로 귀환 후 이방인 아내와 이혼한 하숨 자손. 스 10:33.
1과 2는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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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 Nogah Hg'nO(5052, 노가흐)
노가흐는 노가흐(Hg'nO , 5051)와 동일하며, '빛남, 광명'을 의미한다.
노가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들 중 하나이다(대상 3:7; 대상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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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벡 Nepheg gp,n<(5298, 네페그)
네페그는 '싹 sprout'을 의미한다.
1. 레위인.그는 고핫의 자손이며, 이스할의 아들이고 고라의 형제이다(출 6:21).
2. 다윗의 아들들 중 하나.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 중 한 명이다(삼하 5:15, 대상 3:7, 대상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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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아 Japhia(지) ['ypiy:(3309, 야피아)
야피아는 야파([p'y: , 3313)에서 유래했으며, '비춤'을 의미한다.
1. 스불론 지파의 경계 성읍.수 19:12.
3. 라기스의 성읍의 왕.수 10:3.
3. 다윗 왕의 아들.
그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후에 태어났다(삼하 5:15, 대상 3:7, 대상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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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 tamar rm;T;(8559, 타마르)
타마르(명여)는 토메르(rm,To , 8560)와 어원이 동일하며, '종려나무'를 의미한다.
1. 유다의 아들 엘의 아내.
그녀는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대상 2:4).
2. 다윗의 딸.삼하 13:1-33.
3. 압살롬의 딸.삼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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