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2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8
첨부파일 :

잠8장


###마음에 떠 오르는 8가지 죄의 생각들 (에바그리우스...악행 낳는 죄된 상념들...죄<하마르티아>란 정로/타겟에서 벗어남을 의미...식성수물명의 오욕 + 육신의정욕-안목의정욕-이생의자랑) 

--나태--교만--허영--슬픔--간음--질투--탐식--탐욕<나교/허슬/음질/식욕> :::: (영적 진보에 따라 언제든지 돌연히 나타날 수 있는, 악한 8가지 상념들의 진행 순서...1-2-3-4-5-6은 apatheia(무정념/평안/요동없음)도달 이전에, 7-8은 apatheia를 이제 거의 넘어서는 단계에서의 practike(수행, 금욕) 도중에 그 어느때라도 발생 가능.

....이는 오직!! [예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 , 그로 인해 부어주신 바 십자가 대속-부활-승천-휘장 안의 삶 안의 하나됨 열어주신,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소멸할 수 없는, 여호와의  불꽃 같은 절대적 사랑의 열정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 맡겨드리고, 이것들을 말씀+성령따라 돌파/극복이 가능해 지며, 이 때, 한량없는 평강과 기쁨이 넘침 맛봄 ) *1.탐식-->*2.음욕-->*3.탐욕-->*4.근심<노심초사>--.>*5.분노(질투>낙심/슬픔>거절감/두려움) ==>(아파테이아 도달 느낌!!) *6.영적 나태(아케디아...영적 추구에 대한 싫증/무기력증 자각)-->*7.헛된 영광(허영....명예욕..곁눈질/벗어나고파!!) -->*8.교만

::::: (잠8:17)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롬 12:11...나태) 부지런하여 게르으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잠언 16:18...교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갈5:25, 26...헛된 영광)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 (계214...낙심/슬픔/상실/이별)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마5:28)..간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 (잠언14:30...질투/시기)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 (잠언 23:21...탐식)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 (엡5:3 ..탐욕)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지혜와 명철 찬양

1.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6.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1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  내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15.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32.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

===The Commendation of Wisdom

1 Does not wisdom call, And understanding lift up her voice?

2 On the top of the heights beside the way, Where the paths meet, wisdom takes her stand;

3 Beside the gates, at the entrance to the city, At the entrance of the doors, she cries out:

4 “To you, O men, I call, And my voice is directed to the sons of men.

5 “O you naive or inexperienced [who are easily misled], understand prudence and seek astute common sense; And, O you [closed-minded, self-confident] fools, understand wisdom [seek the insight and self-discipline that leads to godly living].

6 “Listen, for I will speak excellent and noble things; And the opening of my lips will reveal right things.

7 “For my mouth will utter truth, And wickedness is repulsive and loathsome to my lips.

8 “All the words of my mouth are in righteousness (upright, in right standing with God); There is nothing contrary to truth or perverted (crooked) in them.

9 “They are all straightforward to him who understands [with an open and willing mind], And right to those who find knowledge and live by it.

10 “Take my instruction rather than [seeking] silver, And take knowledge rather than choicest gold,

11 “For wisdom is better than rubies; And all desirable things cannot compare with her.

12 “I, [godly] wisdom, reside with prudence [good judgment, moral courage and astute common sense], And I find knowledge and discretion.

13 “The [reverent] fear and worshipful awe of the Lord includes the hatred of evil; Pride and arrogance and the evil way, And the perverted mouth, I hate.

14 “Counsel is mine and sound wisdom; I am understanding, power and strength are mine.

15 “By me kings reign And rulers decide and decree justice.

16 “By me princes rule, and nobles, All who judge and govern rightly.

17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seek me early and diligently will find me.

18 “Riches and honor are with me, Enduring wealth and righteousness (right standing with God).

19 “My fruit is better than gold, even pure gold, And my yield is better than choicest silver.

20 “I, [Wisdom, continuously] walk in the way of righteousness, In the midst of the paths of justice,

21 That I may cause those who love me to inherit wealth and true riches, And that I may fill their treasuries.

22 “The Lord created and possessed me at the beginning of His way, Before His works of old [were accomplished].

23 “From everlasting I was established and ordained, From the beginning, before the earth existed, [I, godly wisdom, existed].

24 “When there were no ocean depths I was born, When there were no fountains and springs overflowing with water.

25 “Before the mountains were settled, Before the hills, I was born;

26 While He had not yet made the earth and the fields, Or the first of the dust of the earth.

27 “When He established the heavens, I [Wisdom] was there; When He drew a circle upon the face of the deep,

28 When He made firm the skies above, When the fountains and springs of the deep became fixed and strong,

29 When He set for the sea its boundary So that the waters would not transgress [the boundaries set by] His command, When He marked out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30 Then I was beside Him, as a master craftsman; And I was daily His delight; Rejoicing before Him always,

31 Rejoicing in the world, His inhabited earth, And having my delight in the sons of men.

32 “Now therefore, O sons, listen to me, For blessed [happy, prosperous, to be admired] are they who keep my ways.

33 “Heed (pay attention to) instruction and be wise, And do not ignore or neglect it.

34 “Blessed [happy, prosperous, to be admired] is the man who listens to me, Watching daily at my gates, Waiting at my doorposts.

35 “For whoever finds me (Wisdom) finds life And obtains favor and grace from the Lord.

36 “But he who fails to find me or sins against me injures himself; All those who hate me love and court death.”

===========

잠언 8장 (개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두가지 의미에서 그것은 지혜이다. 지혜 없는 말씀은 무가치이며 말씀 없는 지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1. 신적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이며, 그 위에 구축된 것은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는 경건한 신앙이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그것에 관하여 말하며 그것을 신실한 것으로서, 쾌히 영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추천하고 있다(1-21). 하나님은 그 계시의 말씀에 의해 인간의 자손들을 훈계하고 다스리시며 축복하신다.

2. 구속주께서는 영원하신 말씀과 지혜이시며 로고스이시다. 본장의 전반부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그 지혜자이시다. 모든 신적 계시는 그의 손을 통해 나오며 그의 안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성삼위의 제2위로서 많은 고대인들의 판단에 인격적 지혜를 나타나신 그에 대해 솔로몬은 본 장에서 말하고 있다(22-31). 솔로몬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들리는 그의 음성을 부지런히 경청하도록 하라고 누누히 부탁하며 끝맺고 있다.

===========

지혜로의 초대(잠 8:1-11)

우리에게 계시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이 본문에서 충분히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말씀은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아무도 무식하거나 실수 때문이었다고 하는 따위의 변명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 이 말씀은 받아들일 마한 가치가 있게끔 전개되어 있어서 아무도자기 부주의나 불신앙에 대한 구실을 대지 못하게 된다.

Ⅰ. 계시된 사실들은 알기 쉽다. 계시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한"것이기 때문이다(신 29:29). 우리는 이들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하늘로 솟아오를 필요도 없고 깊은 바다속으로 잠수해 들어갈 필요도 없다(신 30:11). 그것은 창조된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 공포되며 선포되고 있으며(시 19:1), 한층 더 완전하게로는 인간의 양심과 영원한 이성, 그리고 선악의 법칙에 의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들에 의해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알고 싶거든 그러한 것들을 들으라. 지혜의 교훈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혜의 교훈은 큰 소리로 선포된다(1절). "지혜가 부르지 아니 하느냐?" 그렇다. 그것은 소리쳐 부르며 그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사 58:1). "명철"이 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원하는 것처럼 "소리를 높인다." "예수께서는 서서 외치셨다"(요 7:37). 레 위인들은 저주와 축복을 큰 소리로 낭독하였다(27:14).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때때로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양심의 속삭임이 있는가 하면 양심이 크게 소리를 내는 때도 있는 것이다.

2. 그것은 높은 데서 선포된다(2절). "그가 길 가의 높은 곳에서 있느니라."

율법이 주어진 것은 시내 산 꼭대기에서 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산상에서 그 율법을 설교로 해설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소홀히 여긴다면 참으로 높은 곳인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르르 배반하는"셈이다(히 12:25). 간음하는 여인은 은밀히 말했고 이교도의 신탁은 중얼거렸지만 지혜자는 공공연히 말씀하신다. 진리는 모퉁이를 찾지 않으며 기꺼이 광명에게 호소한다.

3. 지혜의 교훈은 "집합처에서" 선포된다. 그 곳은 군중이 함께 모이는 곳으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좋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말씀하셨다(요 18:20). 그 신분과 형편이 어떠하든 이 길로 통과하는 자들이면 누구나가 다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알 수 있으며 자신의 과오만 아니라면 여호와께서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지를 알 수 있다. 이 지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말이나 언어는 없는 것이다. 지혜의 발견과 지시는 누구에게나 뚜렷이 주어진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4. 그것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선포된다. 지혜로운 교훈의 목적은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러 갈레의 길이 만나는 "사거리에서" 선포된다. 이것은 길가는 나그네들이 여기에 이르러 어쩔줄 몰라 하다가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묻기만 하면 가리켜 주기 위함이다. 그러면 너는 "네 뒤에서 이것이 정로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될 것이다(사 30:21). 우매한 자는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한다"(전 10:15). 그러므로 지혜는 서 있다가 즉시 그에게 지시해 주며 선견자의 집이 어디 있는지 기꺼이 가르쳐 주려고(삼상 9:18) "성문 곁과 문 어귀"에 서 있는 것이다. 아니, 지혜는 사람들의 집에까지 따라가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기를 "이 집에 평강이 있으라"한다. "평강의 아들이 만약 그곳에 있다면" 정녕 그 집은 평안함 위에 거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일과 가가호호 찾아 다니며 증언하는 일을 다 같이 명령받았다. 그들의 양심은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니면서 충고를 하며 그들이 머리와 마음을 드로 다니는 동안은 그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으니, 양심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법이 된다.

5. 지혜의 훈계는 인간의 자손에게 지시된다.

우리는 그 담화 속에서 자신이 불리워지는 것을 듣기 때문에 그 지혜의 담화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소홀히 하였을 것이다. 지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노라(4절). 나는 천사들을 부르는 게 아니고(그들은 이런 훈계가 필요없기 때문에), 마귀들을 부르는 것도 아니며(그들은 마이동풍이므로), 짐승들에게 소리치는 것도 아니고(그들은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없으므로) 너희 사람들을 부르노라! 너희 인생들은 땅 위에 짐승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공중의 새보다 더 지혜롭게 만들어졌느니라. 너희에게 이 법이 주어졌으며 이 초대의 말씀과 훈계도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이 인자들은 훈계받는 일에 관심을 갖는자요, 누가 봐도 이것은 감지덕지 환영할 것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나는 그런 자들에게 소리를 높여 외친다. 유대인들이여! 지혜가 소리쳐 부르시는 것은 너희 유대이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신사들아! 너희도 아니며, 학자들아! 너희도 아니다. 너희 사람들아! 인자들아! 극히 하찮은 자라도 좋다. 지혜가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은 바로 너희 인간들이다."

6. 이 지혜의 훈계는 그들을 지혜롭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5절). 이것은 지혜의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적합하도록 고려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 많은 사람, 타락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즉 그것을 꼭 필요로 하고 그것이 없으면 파멸하게 될 사람들에게도 적합하도록 계산되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너희가 아무리 어리석다 하나 지혜가 너희를 문하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 지배를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명철한 마음을 주려고 도모할 것이다.

죄인들이 자기 죄에서 떠나 참으로 경건하게 될 때 "어리석은 자들은 명철하게 된다."

Ⅱ. 계시된 사실을 알 만한 가치가 있으며 쾌히 수락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그것을 들으려고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

들은 "가장 선한 것"이요(6절), "왕이 쓰는 물건"과 같은 것이다(단어의 원 뜻은 그렇다). 비록 이 지혜의 훈계가 가장 미천한 자의 수용 능력에도 알맞는 수준으로 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들은 신적이고 거룩한 것이며 매우 뛰어난 선한 것이어서, 이와 비교하면 모든여타 학문도 어린 아이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영존하시는 하나님, 불멸하는 영혼, 영원한 상태를 이야기하는 반드시 "가장 선한 것"이어야만 한다.

2. 그것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말씀 자체의 선함에 대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 그 계시의 사실들은 "정직한 것"(6절)이며 "다 의로운 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느니라"(8절).

계시된 종교의 모든 훈령과 지시는 자연계의 사실과 법칙에 조화되며 그것을 보완해 준다. 따라서 그 안에는 우리에게 무리를 가하는 일이 하나도 없으며 우리를 부당하게 속박하는 인간 본성의 존엄과  자유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전혀 없고, 우리가 불평할 만한 일도 없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교훈은 정당하다."

3. 그들은 명명백백한 진리로 되어 있다. 지혜의 법이 기초로 삼고 있는 지혜의 도리는 우리의 불멸하는 영혼을 내걸 수 있을 정도로 참되다. "내 입은 진리를 말할 것이니"(7절), 전체적으로 온전한 진리를 말할 것이며 진리 아닌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말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진실이다. 그 안에는 경건한 속임도 없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신 그 말씀으로 우리가 기만을 당하는 법도 없다. 그리스도는 신실한 증인이시며 진리 그 자체이시다. 즉 "그의 입술은 악(즉 거짓말)을 미워하신다."

거짓말은 악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삼가야 할 뿐만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거짓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우리가 하는 말도 그것과 멀리 떼어 놓아야 한다. 우리에게 하시는 그의 말씀은 예(yea)와 아멘(amen)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라 해놓고 "아니오"라 하지 말아야 한다.

4. 그것은 놀라우리 만치 만족스럽게 열납할 수 있는 지혜의 교훈이다. 이 지혜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자들, 자기들의 판단을 세상으로 인해 어둡게 하지 않고 육신으로써 비뚤게 하지 않으며 편견의 권세 아래 있지 않는 자들은 이 말씀을 기뻐 받으며, 하나님께 대해 배우고 그 총명의 문을 열고 있는 자들은 이 훈계를 즐겁게 여긴다. 그들은 공명 정대하게 "지식을 얻으며," 그것을 위해 수고하고 이제껏 자기들이 추구하는 가운데 그것을 얻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지혜의 훈계가 다음과 같이 여겨진다.

(1) 그것들은 전부가 다 "밝히 아는 바"여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책이 인봉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지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나 그렇다. "우리 복음이 감추어진 바 되었으면, 그것은 잃은 자들에게 숨기운 것이다." 그러나 "악에서 떠나는 자에게는 이는 "명철"이요, "계명을 행하는" 선한 명철을 지닌 자에게는 "다 밝히 아는 바가 되며" 그 가운데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경건한 신앙의 길은 대로여서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다"(사 35:8). 성서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알기 쉽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구실 하에 그 사용을 거부하는 자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2) 그것들은 모두 다 "정직한 것"이어서 복종하기가 어렵지 않다.

상이한 물건을 식별하며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은 정직한 모든 지혜의 훈령에 기꺼이 승복하며, 따라서 불평하거나 논란하지 않고 그 명령대로 자신을 다스린다.

Ⅲ. 이 모든 사실에서 그는 이 지혜의 계시 사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야말로 우리를 지혜로운 말씀의 형상으로 변형시켜 주며,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재물보다 더 낫게 여길 만하다는 사실을 이끌어 낸다(10,11절).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라."

훈계는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 훈계를 영접하고 그 감동을 받아야 하며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정금보다" 오히려 이 "지식을 얻어야"한다.

1. 우리는 부귀보다도 종교를 더 우선으로 여겨야 하며, 우리가 심중에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경외심을 품고 있다면 무진장의 금은을 가진 것보다 실제로 더 행복하며 모든 형편과 처지에서 보다 더 훌륭한 것을 공급받은 줄로 여겨야 한다. "지혜" 그 자체만해도 "진주보다 나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진주보다 더 낫게 여겨야 한다. 지혜는 우리에게 더 값진 것을 줄 것이며 보다 훌륭한 분깃이 될 것이다. 그것을 펼쳐서 과시하라. 그러면 최고 가치를 지닌 보배나 보석보다 더 훌륭한 장식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재물에 대해 앉아서 원하는 게 많다. 우리가 바라서 얻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진실한 경건함에 수반되는 유익과 비교하면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2. 우리는 신앙의 일에 더욱 밀접히 그리고 더욱 열심히 전념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 재물을 저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훈계를 가장 주된 것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은을 받든 못 받든 개의치 않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자가 자기 평생에 "좋은 것을 받은"것같이, 그것을 우리의 분깃과 상급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

지혜의 유익함(잠 8:12-20)

여기에서의 지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지혜는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며 마음 속에 계신 그리스도시오, 우리에게 계시된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된 그리스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신적 계시의 온전한 영역이며, 말씀이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신적 계시의 구심이 된다. 또한 이것은 말씀에 의해 형성된 영혼이요, 영혼 안에 이루어지신 그리스도이시다. 그 순수성과 능력에 있어서 이것은 종교가 된다. 여기에는 이 훌륭한 분, 이 극히 선한 것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일들이 표현되어 있다.

Ⅰ.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들에게 훌륭한 두뇌를 제공해 준다(12절).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 이것은 세속의 책략이 아니라(위에서 오는 지혜는 이와 상반된 것이다. 고후 1:12) 참된 분별이어서 처신을 올바로 하도록 지시해 준다. 명철한 자의 지혜는 "그의 길을 깨닫는"것이며, 모든 경우에 있어서 "지시하기에 유익하다." 이것은 뱀의 지혜여서 해로부터 지켜줄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도록 인도해 준다.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 즉 명철은 경건한 신앙의 산물이며 그 신앙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올바로 깨닫게 하고 마귀의 궤계를 효과적으로 봉쇄시키며 우리 자신의 세대에 선을 끼치는 데에는, 철학자의 학문이나 정객들의 정략이 여태까지 발견해 낸 것보다 성서의 도움으로 찾아 낸 "묘안"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그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전체 사업이 "비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며, 그 일 안에서 하나님은 "온갖 지혜와 명철로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까닭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저 큰 "발병의 지식을 찾아 내셨고" 그것은 그에게 값비싼 것이었으며, 자기의 보상의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의 놀라운 방편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발견, 발명을 해냈지만 그것은 우리를 파멸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발명을 하신 것이다. 은혜의 언약은 모든 일 가운데 너무나 잘 배치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명하신 분이야 말로 "명철을 주소로 삼으시는" 분임에 틀림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Ⅱ.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들에게 훌륭한 마음을 준다(13절). 참된 종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에 존재한다. 이것은 앞에서 권장한 지혜로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쳐 준다.

1.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며 영혼을 파괴시키는 모든 죄를 미워하라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악한 길(행실)을" 미워하며, 죄를 죄로서 미워하고 따라서 "모든 거짓된 행실"을 미워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외경이 있는 곳에는 오직 악일 수 밖에 없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2. 특히 두 가지 공통되고 위험한 죄, 곧 교만과 격정을 하라는 것. 우리 자신을 뽐내는 "교만과 거만"은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시는 죄이며,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며 누구나가 다 미워하는 죄이다.

모든 사람은 타인의 교만을 미워하지만 우리의 자신의 자만을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패역한 입" 즉 타인들에게 편벽되이 화내는 것은 인류 평화에 큰 원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것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의 종교가 아무리 부당한 비난을 받더라도 우리의 교만과 격정보다 우리 종교에 더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없으며, 우리 종교는 사람을 뽐내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기는커녕 우리에게 이들을 한 층 더 미워하라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당당히 말하여 우리 종교의 명예가 되도록 하자.

Ⅲ. 하나님의 지혜는 공공 업무와 모든 사회를 잘 다스리는 데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나(14절).

하나님 되신 그리스도는 힘과 지혜를 소유하고 계신다. 지혜와 힘은 그의 것이다. 구속주되신 그는 "하나님의 지혜며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리스도께 속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는 "능력과 지혜"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리스도 안에는 이 능력과 지혜가 우리를 위해 예비되 있어 우리 의무를 알고 행하게 한다. 그는 놀라운 도략가이고 놀라운 은혜를 주시며, 이 은혜만이 "참 지식"이다. 그는 "명철" 그 자체이시며, 자기 안에서 스스로 능력을 얻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되신다." 참 종교는 인간들의 모든 어려운 문제에서 가장 훌륭한 "도략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며 그 길을 평탄하게 하도록 도와 준다. 참 종교가 있는 곳에는 "명철" 있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어 줄 것이며 우리가 봉사하는 데에나 환란을 당하는 데에나 다 부족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는 곳에서는 그것이 사람을 "완전"하게 하며, "온갖 선한 말과 일을 충분히 공급"해 준다.

왕이나 주권자나 재판관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지혜와 능력, 도략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 그것을 구비해야만 자기들에게 부하(負荷)된 중임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으며 자기들이 다스리는 백성에게 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처리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15,16절).

1. 국민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이다. 그러므로 위정을 맡은 자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그것을 위탁받은 자들이다. "그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한다"는 것은 그의 왕으로서의 직분에게 갈라져 나온 한 부분이다. 그들의 능력은 모두 판단을 위임받고 있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연유한다. 그들은 그로 말미암아 통치하므로 그를 위해 치리해야 마땅할 것이다.

2. 옹이나 통치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정사를 베풀고 있는 자격이나 권한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그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은혜에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그들에게 정사의 영을 주시며, 그들은 그가 부여하시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어떤 기술이나 정의의 원리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혹은 판결) 왕이 입술에 있다." 그리고 왕들은 그가 만들어 주시는 말에 복종한다.

3. 종교는 통치에 아주 큰 힘이 되며 뒷받침이 된다.

그것은 국민에게 그 의무를 가르쳐 주어 왕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백성을 더욱 쉽게 "치리한다." 그것은 왕에게 그 의무를 가르쳐 주며 따라서 "왕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베풀어야 하는 대로 "치리하게" 된다. 그들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치리하면" 그들은 "공의를 세우게"된다. 참 종교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잘 통치하는 것이다.

Ⅳ. 하나님의 지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품에 품는 자들을 복되게, 참으로 복되게 해 줄 것이다.

1.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는다"(17절)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자들은 특별히 뛰어난 사랑으로 그에게서 사랑받을 것이다. 즉 그는 "그들을 사랑하실"것이며 "자기를 그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2. 그들은 그를 찾는 일에 성공을 거둠으로써 행복하게 될 것이다. "나를 간절히(혹은 일찍이)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나와의 교제를 구하고 내게서 이익을 구하는 자, 나를 일찍이 찾는 자, 즉 나를 간절히 찾고 다른 무엇보다 먼저 나를 찾는 자, 자기 청년의 때에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나를 찾기 시작하는 자, 이러 자들은 자기들이 찾던 대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것이요.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가 "헛되이 찾으리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3. 그들은 이 세상 재물로 행복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무한히 더 좋은 것으로 행복하게 될 것이다.

(1) 그들은 무한하신 지혜자가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보시는 만큼 많은 재물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다(18절). 그러한 것은 모두다 "그리스도께"있다. 줄 것은 그가 갖고 계시므로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시는지 않는지의 여부는 그에게 달린 것이다. 경건한 종교는 때때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부자와 위인으로 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며 명성을 누리고 재산을 늘어나게도 한다. 지혜자가 자기의 총아들에게 주시는 부요함에는 다음 두가지 잇점이 있다.

1) 그들은 "재물과 의"라는 점. 이것은 사기나 착취로 얻은 재물이 아니라 정상적 수단으로 정직하게 취득한 것으로서 자비롭게 사용하는 재물이다. 의연금품도 "의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자기 산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재물을 소유하게 된 자로서 그 재산을 가지고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 자는 "재물과 의"를 소유하게 된다.

2) 그들은 "장구한 재물"이라는 점. 헛된 수단으로 벌어들인 재물은 쉽게 없어질 테지만 올바른 수단으로 획득한 재물은 노래 갈 것이며, 손 대대에까지 물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건과 자선의 일에 선하게 사용된 재물은 최선의 흑자로 나타날 것이며 따라서 장구한 재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의의 재물로" 산 친구는 "우리가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우리를 영접할 것이기 때문이다(눅 16:9). 이것은 많은 날이 지나면 영원한 날을 위해 그 사실을 옳다는 것을 나타내 줄 것이다.

(2) 그들은 설사 이 세상에서 재물과 부귀를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무한히 더 나은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19절). "내 열매는 금보다 나으며 더 수지맞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고 작기는 하지만 더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다.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아서 보다 유리한 장사가 될 것이다."

마지막에 나올 지혜의 산물뿐만 아니라 그 중간에 버는 수입, 즉 그 열매뿐만 아니라 그 소득도 이 세상의 가장 좋은 소유물이나 재산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4. 그들은 현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선한 길의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20절). 이것은 바로 "금보다 낫고 정금 보다 나은" 지혜의 열매이어서 우리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고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며 앞장을 서서 그 길로 간다. 그 길은 하나님이 우리가 그의 안에서 행하기를 바라시는 길이요 우리는 바라는 목적지까지 꼭 이르도록 해 주는 길이다. 그것은 "공평한 길 가운데로"로 인도해 주며 우리가 어느편이든 이탈해 나가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Im medio virtus-즉 미덕은 한 가운데 누워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성령에 의하여 믿는 자들을 모든 진리로 안내하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은 그 "성령을 따라 행한다.

5. 그들은 금후에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행복하게 될 것이다(21절).

지혜가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은 자기 친구들을 의무와 복종의 길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기도 하다. 그 곳간은 이 세상 것이나, 하나님과 천국보다 못한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봉사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자는 행복은 실질직이며 만족할 만한 것이다.

(1) 그 행복은 본질적이며 본질 그 자체이다(저자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본문 안의 재물이란 원래 본질, 물질, 실질이란 뜻을 포함하는 까닭이다:역주). 이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외적으로 편리한 부수물의 뒷받침 없이도 혼자 서 있는 그런 행복이다. 신령하고 영원한 것들만이 유일한 실상이며 본질적 사물이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본질적 기쁨이며 확실하고 기초가 든든한 기쁨이다. 그 기쁨의 담보물은 약속이요, 그 보증인은 그리스도로서 이 양자가 다 본질적인 것이다.

그들은 "재물을 얻는다"(원의는 "본질을 유업으로 받는다"). 즉 이후에 얻을 그들의 상속은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영광이란 무게를 가지는 실체이다. 그것은 저희 산업이다(히 10:34 흠정역에는 본체). 그들은 그들의 모든 행복을 상속자로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 그 행복은 만족을 준다.

그것은 저희 손을 가득 채워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곳간도 채워 줄"것이며, 그들을 부양시켜 줄 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게도 해 줄 것이다. 이 세상 것으로 인간의 배는 채워질 수 있으나(시 17:14) 그 곳간은 채워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물을 여러 해 동안"거기에 안전히 보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밤"에 그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의 곳간은 아무리 크게 지어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는, 또 천국에는 그 곳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부한 것이 있다. 신자들은 지혜의 약속 안에 재물을 쌓으며 그 저장 기간은 몇 날이나 몇 해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열매는 "금보다 낫다."

--------------

지혜의 영원함(잠 8:21-31)

여기서 매우 분명하게 여겨지는 것은 본문 말씀의 주체자가 지성을 가진 신적 인격체라는 사실이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비단 신성의 본질적 속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지혜는 인격적 속성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적 인격체는 하나님의 아들 이외의 어느 누구일 수도 없으며, 여기서 지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주요 사항들이 성서 내의 딴 부분에서는 그의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 그자체로써 이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심에 있어 지혜를 수단으로 삼으셨고 그것은 그의 속성 중 한 가지이다.

이것은 인간의 것이기도 하다. 만약 솔로몬이 이런 의미로 인간들에게 지혜의 연구를 권장하기 위해 지혜 예찬만을 의도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가 기록한 것을 먼저 지으신 하나님의 성령은, 다윗에게 종종 그렇게 하셨듯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큰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도록 표현하게 하신다. 모든 신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이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에게 주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영원한 계획속에 내정되신 분이다. 이 성귀에 대한 최선의 해설은 요한 복음 서론(1-4절)에 나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하 생략).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그의 품성과 명백한 현존. 그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질이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위(성자위)를 가지사 "여호와께서 그를 가지셨으며"(22절), 그는 "그에게 세우심을 입고"(23절) "그에게서 났으며"(24,25절) "그의 곁에 있었으니" 이는 그가 "본체의 형상"(히 1:3) 이시기 때문이다.

Ⅱ. 그의 영원성. 그는 아버지에게서 났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를 자기 아들로, 자기를 사랑하는 아들로 "가지셨으며" 그를 품에 품으셨던 까닭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독생자로 났으며" 그나마도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나셨는데 이 점은 본문에서 아주 강조하는 것이다. 말씀은 영원하셔서 세상보다 먼저, 시간의 시작보다 먼저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영원 전부터 계셨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그 조화의 시작," 곧 자기 계획의 시작 때부터 "그를 가지셨으니" 그 때는 그가 "일하시기 전"이었다. 이 조화(혹은 길)는 실로 시작도 없었다.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의도는 그 자신처럼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우리의 언어로 하신다. 지혜가 자신을 "만세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다"고 설명하고 있다(23절).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안에서 아버지의 지혜와 능력으로 예정되고 승진되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창조와 구속에서 빛과 생명이 되었다. 그의 존재는 하나님이 "났다"는 사실과 그의 직분에 관한 하나님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가 세움을 입었다"는 사실은 매우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에 대한 표현과 대동소이하다(시 90:2 , 산이 생기기 전에").

1. "땅이 생기기 전부터." 땅은 사람이 생기기 전 "태초"에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보다 먼저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둘째 아담은 "땅이 생기기 전에" 존재하였으므로 "땅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 3:31).

2. 바다가 존재하기 전에(24절). 그 때는 아직 물이 모이는 "바다(혹은 깊음)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물이 솟아 나오는 "샘들도 있기 전"이었으며, 눈에 보이는 피조물의 창조를 위해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실 수면도(창 1:2) 없었다.

3. 산이 존재하기 전에, 곧 영원 불변하는 산이 있기 전에(25절)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계획을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무능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이 그에게 묻는다(욥 15:7). 너는 산들이 있기 전에 출생하였느냐? 아니다, "너는 그 때 생기지도 않았느니라." 그러나 "언덕이 생기기 전에" 영원하신 말씀은 "이미 나셨다."

4. 이 세상의 거주 지역이 생기기 전에. 이것은 사람들이 경작하고 그 소산을 거두는 곳, 즉 골짜기나 평지에 있는 "밭(들)"을 말한다(26절). 들에게는 산이 벽과 같고 "세상  진토의 가장 높은 부분"이 된다. 그것은 "세상 진토의 근원"(이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다)이다. 즉 세상의 여러 가지 요소를 구성하는 원자이란 말이다. 또 이말은 세상 진토의 제일 중요하고 으뜸된 것"으로 해독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인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지면의 티끌에서 나왔고 흙에 불과하나 티끌중 제일 주요한 것이며, 생기가 도는 진토요, 극히 정교한 진토인 것이다. 영원하신 말씀은 이간이 생기기 전에 존재하셨으니 이는 "사람의 생명이 그에게 있었던" 까닭이다.

Ⅲ. 세상을 창조하시는 신의 호라동. 그는 세상이 지음 받기 전에 존재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창조될 때 방관자가 아닌 건축자로서 참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렇게 물으심으로써 그를 침묵시키시고 겸손케 하셨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느냐?(욥 38:4 이하) 네가 그 거창한 공사의 도목수였던 영원하신 말씀과 지혜이냐? 아니다, 너는 어제 생긴 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여기서 욥고 하신 하나님의 이 대화를 넌지시 가리키면서, 욥은 이 세계 창조의 증인이나 일군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으며 자기가 바로 그 세계 창조의 역사에 종사한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셨느니라"(엡 3:9; 히 1:2; 골 1:16)

1. 태초에 창조하시는 첫 날에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한 마디 말씀으로 빛은 생겨났던 것이다. 그 때의 전능하신 말씀이 바로 이 영원하신 지혜이셨던 것이다. "그가" 빛의 근원인 "하늘을 지으실 때 내가 거기 있었노라." 빛이 여기에서는 무엇이든 간에 거기 하늘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다.

2. 그는 둘째 날에도 첫날 못지 않게 활동하셨다. 그는 창조 제2일에 무한한 넓이를 가진 하늘을 펴셨고 그것을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셨으며"(27절) 하늘의 휘장인 그 천개(天蓋)로 사면팔방을 둘러 막으셨다. 혹은 이것은 기술자가 자와 콤파스로 자기 작품을 설계하듯 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부분 부분 요소 요소를 짤 때 사용하신 정확한 순서와 방법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작업은 영원하신 마음 안에 형성된 설계도와 일호의 착오도 없는 작품을 만들어 내셨다.

3. 그는 제3일에도 일하셨다. "위에 있는 구름을 견고하게 하심"으로 "궁창 위에 있는 물"을 모이게 하셨고, 물을 뿜어내는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심"과(28절) 또 그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의 한계를 정하심"(29절)으로 궁창 아래 있는 물을 모이게 하셨다. 이것은 이 영원하신 지혜의 존귀를 더욱 많이 나타내는 말씀이다. 이 사례로써 하나님은 자기가 크게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는 것이다(렘 5:22). 즉 "그는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정하사" 물이 계속 물 위에 나타나 있게 하시며 인간의 거소가 되기에 알맞도록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는 "땅의 기초"도 이와 같이 "정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구세주가 되기를 충분한 능력을 가지시며 조금도 손색이 없으시니 그는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인 까닭이다.

Ⅳ. 아버지가 그에게서, 그가 아버지에게서 얻으시는 무한한 만족감(30절).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혹은 양육받는 아이)가 되었다." 그는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아버지에게서 났고 영원한 계획에 의하여 그와 함께 양육되었는데, 이것은 "아들"에게 대한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암시한다. 그러한 아들을 "그의 사랑의 아들"이라고 불리운다(골 1:13).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아들이 떠 맡으실 인간의 구속 역사에 관하여 그들 간에 상호 의식과 양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곧 "이 두 분 사이에는." 그 일에 대해 "평화의 의논"이 있으셨던 것이다(슥 6:13). 나는 그가 alumnus patris-즉 아버지의 제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때가 되면, 즉 때가 차면 해내기로 되어 있던 그 일을 위해 영원 전부터 훈련을 받아왔으며 이로써 아버지의 특별하신 지도와 보호 아래 있는 생도란 말이다.

그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사 42:1). 그는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행하셨고(요 5:19) 그를 기쁘게 하셨으며, 그의 영광을 구하셨고 자기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계명대로 행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양육받은 자"로서 행하신 것이다. 그는 "날마다 자기 아버지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사 42:1), 또한 "그 앞에서 항상 즐거워하셨다." 이 말씀은 다음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복되신 성삼위께서 서로에게 대하여 품는 무한한 기쁨. 여기에 하나님의 품성이 갖는 행복의 대부분이 있다.

2. 성부가 성자에게서 얻는 기쁨. 그가 "세상을 만들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활동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아들이 만든 모든 것을 보셨고 "그것을 보기에 매우 좋았으며," 그를 즐겁게 하였다.

따라서 그의 아들은 창조의 엿 새 동안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다(출 39:43). 그리고 아들도 또한 "그의 앞에서 전체 창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즐거워하셨다"(시 104:31).

3. 인간 구속이란 위대한 사업으로 성삼위가 서로 간에 얻으시는 만족. 아버지는 자기와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된 아들을 기뻐하셨고 그가 제안하는 것도 기뻐하셨으며(마 3:17), 그가 "양을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려고"하였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셨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일을 내동댕이치고 달아나거나 실패하지 않고, 완성하리라는 것을 믿으셨다. 아들도 또한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그의 뜻대로 행하기를 기뻐하였고(시 40:8) 그 일에 아주 만족하는 자로서 자기 사업에 열심히 집착하였다. 일의 착수 시기가 왔을 때 그는 "보소서! 나를 가리켜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대로 내가 행하러 가나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일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 큰 만족을 표명하였다.

Ⅴ. 그가 인류에게 대하여 품으신 은혜로운 관심(31절). 지혜는 땅의 풍요한 산물이나 그 속에 숨겨 있는 보물을 기뻐하였다기 보다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자들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시에,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하시며 특별히 즐거워하시는 것이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구속과 구원에서도 그의 기뻐하시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창세 전부터" 그 큰 사업에 "알리신 바" 되었다(벧전 1:20). 인자들 중 남은 자는 그의 은혜를 통하여 영광에 이르도록 그에게 주어졌고, 그는 바로 이들을 기뻐하셨다.

그의 교회는 그의 거처할 땅이었으며, 하나님은 그곳에 그를 거주케 하여 반역하였던 자들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거처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손의 앞날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였다. 비록 그는 자기 사업의 수행 중 당면하게 될 모든 난국과 또 감당해야 할 봉사와 고난을 예견하였지만, 그 일이 결국 아버지의 영광과 자기에게 주신 바된 인자들의 구원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최대의 만족으로 그 일을 고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랄 수 있는 모든 담대함을 얻어 그에게 나아가고 그를 의지하며, 그가 영광스러운 거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의도하신 모든 은혜를 얻게 된다.

------------

지혜의 훈계(잠 8:32-36)

여기에는 지혜의 말씀이 나오고 있다. 그 담화의 의도와 취지는 우리 모두를 경건의 법에 전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한 것이며, 우리를 지혜있고 선량한 자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머리에 사상을 가득 주입시키거나 우리 입에 논쟁을 채우려 하지도 않으며, 단지 우리 마음과 생활 속에서 잘못된 것을 교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Ⅰ. 지혜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라는 권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훈계를 경청하고 그것에 순응하며,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듯이 그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식별하는 권면이 주어지고 있다.

1.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들어 보지도 못한 자를 믿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32절). 기록된 말씀을 읽고 선포되는 말씀은 앉아서 들으며 이 두 가지로 하나님을 송축하고 그것으로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그에게 귀를 기울이라." 나이로 보아 자녀된 자녀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니, 이는 그 때가 저희의 학습기인 때문이고 또 그들이 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은 것은 평생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 때맞춘 쾌사가 될 것인 까닭이다. 혈연 관계로 자녀된 자들은 저희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저희 어머니되신 지혜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 부모에게 순종하고 생명을 얻어야 마땅하다. 지혜자의 자녀된 자들은 그를 들음으로써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야 하며, 참으로 그의 자녀됨을 입증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1) 우리는 지혜의 말씀을 공손하게 그리고 기꺼이 들어야 한다(33절). "훈계를 들으며 그것을 버리지 말라. 마치 그것이 필요없는 물건이나 좋아하지 않는 것인 양 버리지 말라. 그것은 호의로서 네게 준 것이다. 만약 네가 그것을 거절한다면 너는 위태롭게 되리라." 하나님의 충고를 배격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저버리고 그것을 받지 않는 자들이다(눅 7:30). "또 다른 것을 받기가 싫지 않거든 이제 그것을 버리지 말아라."

(2) 꾸준히 그리고 주의깊은 귀로 들어야 한다. 우리는 거지가 적선을 받듯, 소송 의뢰인이나 환자가 충고를 받아들이듯 "날마다 그 문곁에서 기다리며" 지혜를 들어야 하며, 종이 겸손하고 참을성있게 기다리다가 명을 받으면 즉각 봉행하는 것처럼 "그 문설주 옆에서 기다려서"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지혜가 얼마나선한 집을 진고 있는지 살펴 보라. 그 집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적선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지혜는 얼마나 훌륭한 학교를 개설하고 있는지 감탄하라. 그 학교에서는 연중 무휴 강의를 쉬는 날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목전에 하나님의 일을 대하고 있으며 그의 말씀을 우리 손에 쥐고 있는 한 매일같이 지혜를 듣고 그에게서 훈계를 배울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시중은 얼마나 충성스럽고 부지런한 것인지 살펴 보자.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그 문 곁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1) 우리는 지식과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면 무슨 기회든지 포착해야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불변의 궤도 속으로 진입하여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교시(敎示)를 청문함에 있어 매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되며 어떤 장소이든, 비록 극히 초라한 곳이라도 그의 훈계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즐거워해야 한다. 성전 문직이라도 즐거이 되려 했던 다윗처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에 접할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이런 훈계의 말씀에 대해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주의와 끈기와 인내로써 경청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던 자들같이 지켜보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갈구하던 자들은 원래의 문자 그대로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었으며"(눅 19:48), "그의 말을 들으려고 나아왔던"것이다(눅 21:38).

2. 우리는 양심적으로 "일을 행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만 축복"을 얻는 까닭이다.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우리는 "그의 도를 지켜야"한다(32절). 지혜가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해야 하며 그 길의 철책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그 난간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혜의 선로만 따라가고 그 길로 매진해야 하며 그 길에서 참고 견디어야 한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 훈계수를 단으로 삼아서 네 처신을 정하는 데에 지혜로운 자가 되라. 우리가 지식으로 인하여 지혜있는 자가 되지 못할 경우 그 지식은 헛된 아는 것이 된다"(33절).

Ⅱ. 지혜에게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된다고 하는 확신. 그들은 복이 있다란 말씀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32,34절). 지혜의 문 곁에 지켜서서 기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거기 기다리고 섰다는 것마저도 그들의 행복이 된다. 그곳은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거기서 기다리는 자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간 동안만 계속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그 문을 열릴 것이다. 지혜를 찾고 있는 그들은 자기들이 찾던 그 대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들이 찾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수고에 대해 보상을 해 줄 것인가? 물론이다(35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즉 이 생명은 모든 행복, 그가  필요로 하거나 소원할 수 있는 모든 선한 것을 말한다. 그는 신령한 생명의 원리가 되고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 되는 바로 그 은혜 속에서 생명을 만나며 얻는다. 그는 "생명을 얻는다." 즉 그는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고" "그의 은총 안에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아들에게 왕의 총애가 돌아간다면 왕 중 왕의 은총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스도는 지혜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 그에게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는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에게 생명이신 까닭이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면 누구나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얻는 자는 생명을 즉 영생을 얻으며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고 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을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Ⅲ. 지혜와 그 지혜의 제안을 거부하는 모든 자들에게 내려지는 운명(36절). 이런 자들은 스스로 멸망하도록 방치될 것이다. 그들은 지혜의 모든 충고를 초개같이 여겼기 때문에 지혜도 그들의 자멸행위를 막지 않을 것이다.

1. 그들의 범죄는 매우 큰 죄이다. 그들은 "지혜에게 범죄하고"("지혜를 잃으며," 우리 성경), 지혜의 빛과 법에 반역하고, 그 의도에 배치된 행동을 하며 저희 우행으로 지혜를 거스린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께 범죄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멸시하고 그의 삶과 죽음이 지닌 모든 목적을 반박하는 가운데 행동한다. 이것은 지혜를 미워하고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의 원수들이다. 모든 아름다움의 중심이시고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신 그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악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2. 그들의 형벌은 매우 공평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징벌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 득죄하는 자들은 자기들 자신을 가장 크게 해하는 자드리다. 즉 그들은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자이다. 자신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자신의 영혼에 때와 얼룩을 입히는 자들이다. 이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눈에 매우 보기 싫은 자들로 비치게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에 적합하지 않는 자들로 만든다. 그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동요시키며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이 죄는 영혼에게 해가 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와 불화하는 자들은 자신의 멸망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죽음이 될 것은 사랑하고 자기들의 생명이 될 것은 멀리한다. 죄인들은 죽을 존재인고로 죽는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들로 하여금 변명할 수 없고 그들의 저주를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며, 영원히 하나님을 의롭게 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가 스스로를 패망하게 하였도다."


이전글 : 잠7
다음글 : 잠9